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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줄기 길 잃은 날 잊혀진 북방을 부르다

    ‘장엄한 숲에 드니 비로소 숲의 상처가 보인다/가지가 꺾이고 몸통이 휘고 부러지고/끝내는 쓰러진/상처투성이의 북방 침엽수림에서 나를 본다/혹독한 겨울의 잔해를 떠안은 설해목들/숲은 서늘한 사랑으로 모두를 끌어안고 있다’(숲에 드니 숲의 상처가 보인다) “남들보다 먼저 아프고 오래 앓고 마지막까지 질문한다”는 곽효환(47) 시인. 그의 고백대로 새 시집 ‘슬픔의 뼈대’(문학과지성사)에는 그가 사회, 현재와 불화하며 앓은 흔적이 선명하다. ‘인디오 여인’(2006), ‘지도에 없는 집’(2010)에 이어 4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에서 그는 4대강 사업, 강정마을, 크레인 시위, 희망버스, 사라진 피맛길 등 개발 논리와 자본의 탐욕, 갈등 사회 앞에서 밀려드는 무기력과 목메임, 피로감을 순정하게 다듬은 시어로 토로한다. ‘계절이 세 번 바뀌어도 끝내 허공 속에 머물고 있는/이 세상에 있어도 없는 혹은 없어도 있는 사람/(…중략)/홀로 마주한 밥상의 서걱거리는 밥알들/씹다 만 깍두기처럼 겉도는 말들/떠도는 말들과 부유하는 진실을 삼키는/여름날, 목메는 도심의 저녁 식사’(도심의 저녁 식사) ‘강줄기가 문득 길을 잃은 그날 이후/늪은 오랜 침묵의 깊이를 알고 있었을까/새벽이면 어부가 깊고 아득한 과거를 깨우는/밤이면 한사코 꽃망울을 닫는 가시연꽃을 품은/1억 4천만 년의 미래를’(1억 4천만 년의 미래-우포늪에서) 이렇게 현재의 부조리와 비합리에 아파하는 시인이 거듭 불러내는 것은 ‘북방’이다. “곽효환에게 시의 부름은 북방으로부터 왔다. 그에게 북방은 차단된 삶의 여로이고 단절된 역사의 현장이며 잊혀가는 오래된 정감의 고향이자 채울 수 없는 결핍과 그리움의 진원지”라는 김수이 평론가의 지적처럼, 그는 유전자에 각인된 북방을 펼쳐내는 것으로 포용력을 되찾는다. 엄혹한 땅이 시인에게는 글쓰기의 스승인 백석과 이용악이 존재하는 시의 고향이자,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는 유토피아인 셈이다.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가 낮은 목소리로/섬과 숲과 호수의 정령을 부르는 북방의 밤/장작 더미에 피워 올린 모닥불을 에워싼/나와 나를 닮은 사람들, 푸른 눈망울의 사람들/삼백서른여섯 개의 물줄기를 받아들여/단 하나의 물길로 흘려보내는/이들의 몸에는 하나같이 은빛 물살무늬 피가 흐른다’(바이칼 사람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오마이베이비 샤크라 출신 이은 대저택, 아일랜드 리조트 권오영·권용 부자와의 일상 드러내

    오마이베이비 샤크라 출신 이은 대저택, 아일랜드 리조트 권오영·권용 부자와의 일상 드러내

    그룹 샤크라 출신 이은이 8년 만에 방송에 출연해 재벌가 며느리의 일상을 공개해 화제다. 이에 이은의 시아버지인 권오영씨와 남편 프로골퍼 권용씨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은은 13일 방송된 SBS ‘오 마이 베이비’(이하 오마베)에 출연해 세 딸과 남편 권용, 시아버지 권오영 등 시댁 식구들과 함께하는 근황을 드러냈다. 이은의 집은 SBS 드라마 ‘야왕’에서 재벌가 저택으로 등장했던 아일랜드 리조트라는 곳. 70만평 대지에 펼쳐진 아일랜드 리조트 안에 타운하우스를 짓고 시아버지 권오영, 남편 권용씨와 이은, 그리고 그 딸들 등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특히 아일랜드 리조트 안에는 헬기 착륙장과 말들이 뛰어 노는 목장 등이 있어 놀라움을 자아냈다. 샤크라 출신 이은의 시아버지 권오영씨는 세 딸의 아토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이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이은을 눈물짓게 하는 등 자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은의 시아버지 권오영 씨는 아일랜드 리조트 회장으로 1980~1990년대 신도시 개발 바람을 타고 레미콘 사업 등을 운영하며 국내 굴지의 건설사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이은의 남편인 권용 씨는 프로골퍼로 아일랜드 리조트의 상속자다. 젝스키스 출신 장수원의 소개로 만난 이은과 권용은 2009년 결혼해 슬하에 세 딸을 두고 있다. 샤크라 출신 이은의 ‘오마이베이비’ 아일랜드 리조트 생활을 본 네티즌들은 “샤크라 이은, 아일랜드 리조트 권오영 권용 재벌가로 시집가서 안 나왔었구나” “샤크라 이은, 재벌가 권오영 아일랜드 리조트 며느리였구나. 남편이 권용?” “샤크라 이은 시아버지 권오영, 엄청난 재력가였네. 아들 권용도 아일랜드 리조트 상속자라니” “샤크라 이은, 권오영 같은 시아버지에 권용같은 남편. 그리고 아일랜드 리조트까지, 부럽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오 마이 베이비 첫 방송에 대해서도 “SBS 육아예능은 ‘오마이베이비’가 담당하는구나”, “‘오마이베이비’, 새롭긴 한데 재벌가 모습 보여주기에 치중한 듯” “오마베가 뭔가 했더니 ‘오마이베이비’였네”, “오마베, 앞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할 텐데”, “오마베, 다음 편 기대된다”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쿨 유리 결혼, 6살 연하남 골퍼와 다음달에 결혼 ‘신랑 알고보니..’

    쿨 유리 결혼, 6살 연하남 골퍼와 다음달에 결혼 ‘신랑 알고보니..’

    쿨 유리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혼성 그룹 ‘쿨’의 멤버 유리(37)가 결혼을 발표했다. 상대는 6세 연하 골프선수다. 13일 유리의 소속사 WS엔터테인먼트는 “유리가 다음달 22일 결혼한다. 예비 신랑이 연하인데도 연하 같지 않은 어른스러움과 자상함에 반해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며 결혼 소식을 전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두 사람은 4년간 교제해 왔으며 양가 상견례까지 마친 상태다. 유리의 예비 신랑은 미국에서 골프 선수 겸 사업가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리는 앞서 인터뷰에서 예비 신랑에 대해 “착하고 남자답고 골프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단 저를 좋아해 주고, 저도 좋아하며 부모님들께서 많이 좋아하신다”고 전했다. 쿨 유리 결혼 소식에 네티즌들은 “쿨 유리 결혼, 연하가 대세군”, “쿨 유리 결혼, 행복하세요. 골프 선수라니 멋있다”, “쿨 유리 결혼, 드디어 시집가네”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쿨 유리 결혼)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잘 먹고 잘 사는 법(SBS 토요일 오전 8시 45분) 탤런트 김동현·혜은이 부부가 평창 송어축제를 찾아 얼음낚시를 체험하고 함께 썰매를 타며 핑크빛 로맨스를 펼친다. 두 사람은 강원도 정선의 한 어머니댁을 찾아 메밀전병을 배운다. 한편 혜은이는 메밀전병을 만드는 김동현에게 칭찬과 잔소리를 번갈아 하며 남편을 조련하는 비법을 공개한다. ■고향극장(KBS1 토요일 밤 7시 15분) 전남 곡성에는 ‘여배우 마을’이 있다. 1명도 아닌 무려 7명이나 마을 곳곳에 포진해 있는데…. 이들은 바로 꽃다운 나이에 시집 와 허리 한 번 못 펴보고 살아온 아지매들로 일생을 남편과 자식만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삶을 살기로 한다. ■인간의 조건(KBS2 토요일 밤 11시 15분) 2014년 새로운 체험, 새로운 합숙게스트와 함께 추운 겨울을 맞아 난방비 제로에 도전한다. 추워도 너무 추운 겨울. 부푼 마음에 도착한 숙소의 실내온도는 겨우 10도밖에 안 된다. 멤버들은 각자 따뜻한 아이템을 구하러 나선다. ■무한도전(MBC 토요일 오후 6시 25분) ‘IF 만약’에 두 번째 이야기. 다소 야릇하게 아침 일상이 시작되는 홍철과 윤주의 신혼생활. 알콩달콩한 휴일을 보내는 부부의 신혼집에 짓궂은 아주버니들이 방문하자 새댁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만 간다. 한편 옴므파탈 길에게 또 다른 여인이 생겼다. 폭설 속에서도 그녀를 위해 준비한 동물원 데이트에 나선다. ■사랑해서 남주나(MBC 일요일 밤 8시 45분) 병주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순애에 대해 서운함을 표시한다. 미주 역시 돈 때문에 엄마를 모시는 데 대해 병주에게 서운함을 표하고, 둘은 다툰다. 한편 유라는 우연히 현수가 순애를 만나 목걸이를 선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대한민국 힐링 프로젝트 화풀이(EBS 일요일 밤 8시 25분) 정리되지 않은 여자의 집. 여자는 이혼 후 자녀 양육과 생계를 위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다. 여자의 두 아이는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엄마의 빈자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명불허전(OBS 일요일 밤 9시 15분) ‘영원한 농구인’ 박찬숙이 출연한다. 초등학교 5학년에 이미 170㎝를 넘어버린 소녀 박찬숙에게 ‘꺽다리’, ‘키다리’라는 별명은 당연히 뗄 수 없는 꼬리표였다. 그리고 16세에 최연소 국가대표에 발탁되고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뿌듯함은 잠시였다. 매일 밤 일기장을 눈물로 적시던 선수촌 막내 생활까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힌다.
  • 에일리 후진주차, 거침없이 핸들 돌려 ‘상남자 스타일’

    에일리 후진주차, 거침없이 핸들 돌려 ‘상남자 스타일’

    ‘에일리 후진주차’ 가수 에일리가 능숙한 후진주차를 선보였다. 지난 8일 방송된 JTBC ‘대단한 시집’에서 에일리는 가상 시어머니와 신년모임 탁구경기에 참석했다. 이날 에일리는 시어머니와 탁구장으로 향했다. 시어머니는 출발 전 운전석에 앉아 “운전 경력 20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운전 실력은 불안했고 탁구장에 도착한 에일리는 당황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주차선이 지켜지지 않은 것. 이에 에일리는 시어머니에게 “주차 다시 해드릴까요?”라고 물은 뒤 운전석에 탔다. 에일리는 혼잣말로 “어머니가 주차를 귀엽게 하셨다”고 말하고는 한손으로 핸들을 돌리며 능숙하게 후진주차를 했다. 여성들이 매력을 느낀다는 ‘상남자’ 스타일의 후진주차가 눈길을 끌었다. 네티즌들은 “에일리 후진주차 멋있네”, “에일리 후진주차 매력 있다”, “에일리 상여자처럼 생겼는데 후진주차 보니 상남자 스타일”, “에일리 후진주차 완벽한 실력”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JTBC(에일리 후진주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이근배·신경림·나희덕·신달자 원로·중진 시인 잇따라 새 시집… 새해 문단에 훈풍 주목

    이근배·신경림·나희덕·신달자 원로·중진 시인 잇따라 새 시집… 새해 문단에 훈풍 주목

    우리 시단을 대표하는 원로·중진 시인들이 새 시집을 들고 잇따라 귀환한다. 웅숭깊은 성찰과 투명한 서정으로 쌓아올린 시편들이 문단에 훈풍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등단 53년차인 이근배 시인은 9년 만에 새 시집 ‘추사를 훔치다’(문학수첩)를 펴냈다. 오는 13일에는 신경림 시인과 나희덕 시인이 나란히 신작을 발표한다. 신경림 시인은 2008년 열번째 시집 ‘낙타’ 이후 6년 만에 ‘사진관집 2층’(창비)을 출간하고, 나희덕 시인은 2009년 ‘야생사과’ 이후 5년 만에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을 들고 독자들을 찾아온다. 2월에는 한국시인협회 회장인 신달자 시인이 신작을 내놓는다. 2011년 시집 ‘종이’ 이후 3년 만이다. 시와 시조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전통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퍼뜨려 온 이근배 시인. 그는 이번 시집에도 특유의 장기를 아낌없이 부려 넣었다. 서문에서 시인은 “이 땅의 산과 물이, 역사가, 사람이, 참으로 귀신스러운 조상들의 솜씨가 빚어낸 글씨, 그림, 청자, 백자, 벼루 같은 것들이 내 꿈자리를 어지럽히고 무어라고 귓속말로 내 혼을 꾀어 내지만 나는 그에 값할 말을 찾을 길이 없다”고 말한다. 사라진 시대를 풍미한 인물과 문화 유산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짝사랑에 대한 이 고백은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와 재료들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정철-송강정’, ‘이규보-사가재’, ‘김시습-무량사’ 등 우리 정신사를 이끌어 온 큰 스승과 선비들을 시 속으로 불러들여 우러른다. ‘그래 송강은 오늘토록/마르지 않는 신명으로/혼자 흘러가는 것일 테지/(중략)/한때의 뜬구름/이제 세사를 훌훌 벗고/그림자마저 지운 시선(詩仙)/잔 들고 이 봄을 다 채우고 있을 테지.’(정철-송강정) ‘왕도가 쫓겨 와 숨어들고/한 떼의 병마가 지나가도/하늘과 땅이 주는/넉넉함은 빼앗지 못하고/여기 이대로 산과 들은/또 한 아침을 맞는 일이다/새들에게는 하늘을 주고/물고기에게는 강물을 주고 저희들끼리 살게 하는 일이다’/(중략)/산다는 것은/흰 구름의 뜻을 아는 일이다/흰 구름처럼 나를 비우는 일이다.’(이규보-사가재) 벼루를 유달리 아끼는 시인이 빚어낸 벼루 연작(‘신라토기 벼루에 대한 생각’, ‘조선백자 반월형연적’, ‘추사를 훔치다’ 등)들은 묵향 어린 선비의 고고한 정신을 되살려 낸다. ‘벼루의 때를 벗기듯 속속들이/내 마음속의 때를 벗기었다면/사람값도 하고 글도 잘 풀릴 것을/품삯도 못 받는 때밀이가 되어/손에 먹물만 잔뜩 들이고.’(세연·洗硯) 소멸을 운명으로 하는 세상사를 관조하는 시선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맑다. ‘눈멀고 귀먹은/돌이라 살자 해도/티끌 목숨 끝에/매달리는 헛된 생각/풋 열매 익히지 못하고/이슬로나 지는 것.’(적멸·寂滅)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시어들을 가리켜 “이제는 잃어버린 것들, 사라져버린 것들, 그럼에도 우리의 어딘가에 꺼지지 않는 씨앗으로 숨어 있어 문득 살만 건드리면 생생한 향기로 감싸안아 산뜻이 되살아나는 품격 높은 정조로 솟아나는 말들”이라고 평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에일리 후진주차, 옆좌석 잡고 한손 핸들링 ‘상남자 에일리’

    에일리 후진주차, 옆좌석 잡고 한손 핸들링 ‘상남자 에일리’

    에일리 후진주차가 화제다. 지난 8일 오후 방송된 JTBC ‘대단한시집’에서는 에일리가 시어머니와 탁구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시어머니는 탁구장까지 운전을 한 뒤 주차선을 지키지 못한 채 엉망으로 주차를 했다. 그러자 에일리는 자신이 하겠다며 시어머니에게 차 키를 건네 받았다. 에일리는 “어머니가 주차를 귀엽게 하셨다”고 웃은 뒤 후진으로 다시 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옆좌석을 손으로 짚은 뒤 카리스마 있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 채 한손 핸들링을 시작했다. 특히 능숙하게 주차를 하는 모습은 베테랑 운전수 못지않아 절로 감탄을 자아냈다. 사진 = JTBC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길섶에서] 세탁기/최광숙 논설위원

    어릴 적 세탁기 있는 집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던 시절도 아니었으니 누군가 열심히 펌프질을 해야 빨래를 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겨울철 차가운 물에 빨래를 할라치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 시절 어머니들은 찬물에 빨개진 손가락을 호호 불어가며 빨래를 했다. 그러니 그 이후 세탁기의 출연은 가히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중학교 시절 한 친구는 “시집가면 아버지가 세탁기를 꼭 사주기로 했다”고 자랑했던 기억도 있다. 시중에 나왔어도 고가이다 보니 세탁기를 귀한 혼수품으로 장만하던 시절이다. 그런 세탁기가 이젠 군에도 보급돼 사병들의 손을 덜어주고 있다. 최근 전역을 하루 앞둔 병장이 총기를 손질하라는 상관의 지시를 받고 총을 분해해 옷가지에 싸서 세탁기에 돌렸다가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말년 병장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라는 얘기가 괜한 소리가 아님이 입증된 셈이다. 전역에 들뜬 그의 눈에는 군인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총이 장난감 총으로 보였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지상파 하이라이트]

    ■시사기획 창(KBS1 밤 10시)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 나진항의 존재 가치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러시아 측은 연초까지 나진항 현대화 공사를 마치고 올해까지 배후 물류 터미널을 완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진항의 현재 모습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최근 촬영한 나진항의 위성사진 등을 이용해 지상과 공중에서 본 나진항의 지금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본다. ■순금의 땅(KBS2 오전 9시) 수복과 순금이 죽은 줄로만 안 연희는 대갓집 세운당에 시집가 있다. 마님은 연희에게 모진 시집살이를 시킨다. 취한 수복은 순금에게 엄마가 살아 있다는 말을 하고, 우창은 가족을 찾아 나선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린다. 우창과 순금이 나란히 누운 봉놋방의 밤이 지나고, 순금은 주막에서 유엔탕을 사 먹다가 세운당 딸인 진경과 만난다. ■MBC 아침드라마 내 손을 잡아(MBC 오전 7시 50분) 주원(이재황)은 연수(박시은)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한 채 괴로워한다. 정현(진태현)은 우연찮게 자주 만나게 되는 진태(안석환)의 존재를 은성에게 물어보게 된다. 한편 금자(박정수)는 진태가 신희(배그린)의 친부인 걸 알고는 그의 앞에 나타나 딸을 위해 죽은 듯이 살라고 윽박지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오후 5시 35분) 커다란 머리, 세모꼴의 얼굴형, 툭 튀어나온 이마를 지닌 여덟 살 민주의 외모는 또래와 다르다. 미숙아로 태어나 호흡곤란과 안면기형 등의 이상 증세를 보였던 민주. 그 후 아빠, 엄마는 민주가 소토스 증후군이라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으며 치료 방법조차 없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장수의 비밀(EBS 밤 10시 45분) 인천 동구 화평동의 한 골목. 벽화가 크게 그려진 집에는 92세의 박정희 할머니가 살고 있다. 현관에서 볕을 쬐며 글을 쓰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할머니의 집에는 일상을 이야기로 만들어낸 글이 한가득이다. 지난날을 기억하면서 그림과 글로 일상을 끊임없이 기록하는 습관은 할머니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까. ■멜로다큐 가족(OBS 밤 11시 5분) 경북 영양의 해발 500m 고지에 단둘이 살아가는 김병철, 김윤아 부부가 있다. 겨울이면 직접 재배한 콩으로 전통 장을 만드는 부부. 손맛 좋은 아내와 손재주 좋은 남편은 산속에서 자급자족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7년 전 봄, 산골 오지에 들어온 이후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 가는 이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천천히 살림 배우라는 시어머니와 다급한 베트남 며느리

    천천히 살림 배우라는 시어머니와 다급한 베트남 며느리

    전북 장수에 살고 있는 베트남 며느리 딘티신과 시어머니 최순주 여사. 최순주 여사는 젊은 시절 미용기술에 한복·양장 바느질까지 안 배운 기술이 없을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나고, 장수에서 최초로 오이·고추 등 특수 작물을 시작한 ‘잘나가는’ 농사꾼이다. 모든 건 하루아침에 배워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최 여사의 철칙이다. 반면 한국 음식도, 농사도 빨리 배우고 싶은 베트남 며느리. 이 고부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3일 오후 10시 45분 EBS에서 방송하는 ‘다문화 고부 열전’에서 만난다. 최근 시어머니는 아들과 둘이서 김장을 했다. 며느리는 준비만 거들었을 뿐 정작 양념을 버무리고 배추에 양념하는 건 보지도 못했다. 매운 양념이 3살 손녀딸에게 튀어 눈에라도 들어갈까봐 걱정이 됐다는 게 어머니의 이유였다. 하지만 며느리는 어머니가 자신을 못 미더워하는 것 같아 서운하기만 하다. 딘티신은 6살 때 친정 어머니와 헤어져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렸을 때부터 일을 했기 때문에 음식을 배울 시간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그는 깔끔한 살림 솜씨와 맛깔난 음식 솜씨를 자랑하는 시어머니에게 빨리 살림 노하우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아직까지 며느리에게 ‘이렇게 해라’고 가르쳐본 적이 없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며느리는 시집살이 3년에 눈치껏 어머니의 살림 솜씨를 흉내 내는 정도가 됐을 뿐이다. 베트남에서 어렸을 때부터 바깥일을 해왔던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농사일을 돕고 싶다. 혼자 하면 힘들지만 둘이 하면 훨씬 수월하지 않겠는가. 며느리는 어김없이 시어머니가 일하는 비닐하우스로 향하지만 어머니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된장찌개를 짜게 끓여도, 정리를 깔끔하지 않게 해도 남들 앞에선 뭐든지 괜찮다고 칭찬을 한다. 낯선 타인 앞에선 좋은 말만 늘어놓는 시어머니지만 며느리는 정작 자신의 잘못을 시어머니가 지적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을 고칠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답답하기만 하다. ‘빨리 배우고 싶은’ 며느리와 ‘모든 건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친정인 베트남 끼엔장으로 여행을 떠난다.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떠난 친정 나들이. 과연 베트남에선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긴 여정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즐겁게 해드리겠어요. 말띠 가시내들

    즐겁게 해드리겠어요. 말띠 가시내들

    2014년 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말띠 해입니다. 청말(靑馬)이죠. 속설에 따르면 여성이 말띠면 팔자가 세다고 합니다. 더욱이 푸른 말은 유독 드세다는 입소문도 있습니다. 때문에 말띠 해에는 여아 출산율이 떨어지고, 남아 출산율은 치솟는답니다. 1990년 백말띠 해에는 남아가 예년보다 4% 많이 태어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띠 속설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미신일 뿐입니다. 말띠 해에 태어난 여아는 기질이 세 시집가면 남편의 기를 꺾는다는 일본의 구전(口傳)이 우리에게까지 깊이 파고든 겁니다. 말띠 속설과 관련된 문헌은 우리뿐는 물론 중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역’의 십이지(十二支) 풀이에 따르면 말이 기(氣)의 왕성함을 상징하는 동물인 까닭에 말띠 생은 밝고 매력적이며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선데이서울은 말띠해인 1990년 새해를 맞아 1월 14일자 제1092호에 ‘즐겁게 해드리겠어요. 말띠 가시내들’이라는 화보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24년 전이죠. 주인공들은 모두 24세, 1966년 적(赤)말띠생입니다. 영화배우 김주연·최경아·김경주, 모델 최완정·차혜미·김지영이 한국 마사회의 협조 아래 말과 함께 멋진 사진을 연출했습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준마처럼 빠른 속도로 인기 정상에 올라 팬들을 즐겁게 해드리겠어요”라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모두 한창 스타의 꿈을 꾸며 모델로, 배우로 첫 걸음을 내딛은 새내기인 듯합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어쩐지 낯설고, 어색하죠. 세련미도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파격입니다. 선데이서울의 새로운 기획이었답니다. 선데이서울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야심에 찬 새해 포부를 밝히는 가시내들은 하나같이 말띠다. 말띠 해를 맞아 말띠 해에 태어난 그 ‘말띠가시내’들의 희망찬 새해 아침을 연다” 우리의 말에 대한 관념은 강인한 생동감입니다. 역동성과도 맞물립니다. 힘차게 뛰면서 희망을 이루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온라인뉴스부
  • [말에 얽힌 이야기] ‘백수의 우두머리’로 추앙… 말로 다 못하는 애마 민족

    [말에 얽힌 이야기] ‘백수의 우두머리’로 추앙… 말로 다 못하는 애마 민족

    “천하를 내달리면 바람과 구름이 일고, 한번 울부짖으면 천지가 진동하니… 말의 위용은 백수(百獸)의 우두머리요, 공덕을 논하자면 모든 가축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조선 순조 때 장군인 이석구의 ‘애마시’) 인천 동구 화수동에 자리한 조선시대의 ‘화도진’. 이곳에는 말에 대한 예찬을 읊은 병풍이 놓여 있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야전사령부 역할을 하던 진영(陣營)에 홀로 남겨진 이 병풍에는 이석구 장군의 말에 대한 사랑이 다양한 말(馬) 서체와 함께 구구절절 적혀 있다. 2014년 갑오년(甲午年)은 말띠의 해. 말 중에서도 가장 진취적이고 활발하다는 청마(靑馬)의 해가 60년 만에 돌아왔다. 이는 육십갑자 가운데 갑오, 병오, 무오, 경오, 임오의 순서를 오방색과 짝지어 푸른말, 붉은말, 노란말, 흰말, 검은말 로 부르기 때문이다. 말은 인간과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동물이다.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유독 친근한 존재다. 살아 있을 때는 승마와 역마 등 교통과 통신, 전마와 기마 등 군사 및 농경, 수렵 등에 이용됐다. 또 죽어서는 말갈기는 갓으로, 말가죽은 신발과 주머니로, 말힘줄은 활로, 말똥은 마분지의 원료와 땔감, 거름으로 활용됐다. 심지어 제 몸을 내어 고기를 주기도 했다. 이런 친숙함 덕분인지 말은 어떤 십이지(十二支) 동물보다 다양한 상징을 품고 있다. ‘풍요와 다산’, ‘신비로운 동물’, ‘나쁜 것을 막아 주는 동물’, ‘친숙한 삶의 동반자’, ‘왕업’ 등이 그것이다. 경주 금령총에선 무덤 주인의 극락왕생을 비는 ‘기마인물형토기’(국보 제91호)가 출토됐고, 천마총의 ‘천마도’는 액을 막는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신라·가야시대의 ‘마형 토기’는 의례용과 부장용으로 사용됐고, 고려시대 ‘마상배’는 전쟁에 나서는 장수가 승전을 기원하며 말 위에서 하사주를 마시는 데 활용됐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박문수와 같은 암행어사는 말이 새겨진 ‘마패’를 사용했고, 말을 타고 공을 치는 ‘격구’는 조선시대 무과 과목으로 채택될 만큼 중시됐다. 말은 일상에서도 노비 두세 명과 맞바꿀 만큼 귀한 존재였다. 장례에선 죽은 사람을 태우는 영혼의 대리자였고, 음력 정월 첫 ‘말날’인 상오일(上午日)에는 말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있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말의 이미지는 박력과 생동감으로 수렴된다”면서 “어느 동물보다 깊은 유대를 맺어 왔지만 한국인의 단면을 규명하기 위한 말과 관련된 생활사 기록은 부족한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말과 관련된 우리 민족의 첫 기록은 중국 사기(史記) 조선전(朝鮮傳)에서 찾을 수 있다. 한나라와 대립하던 위만조선이 5000필의 말을 보내 화친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 말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을 전해 준다.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선 부여에서 유난히 명마가 많이 나온다는 기록도 있다. 천 관장은 우리나라의 주요 건국신화에서 말이 거의 빠짐없이 나온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동부여의 금와왕,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혁거세 등 국조의 탄생신화에 대부분 말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말은 왕의 죽음이나 국가의 흥망을 예시했다. 또 아기장수 설화에선 지도자의 탄생을 미리 알리기도 했다. 이는 영물인 말이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흥미로운 점은 ‘말띠 여자가 팔자가 세다’는 속설의 진위 여부다. 천 관장은 “일본에선 말띠해에 태어난 여자가 시집을 가면 남편의 기세를 꺾는다고 여기는 습속이 있었다”며 “일제강점기에 이런 속설이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옛 문헌에선 이런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조선왕조에서만 정현왕후(1462~1530년), 인열왕후(1594~1635년), 인선왕후(1618~1674년), 명성왕후(1642~1683년·현종의 비) 등이 모두 말띠였다. 천 관장은 “말에 대한 한국인의 사랑은 지금도 이어진다”면서 “갤로퍼(질주하는 말), 에쿠스(말을 뜻하는 라틴어) 등 승용차 이름은 물론 여행사, 고무신, 양말, 구두약 등의 상표에도 말이 꾸준히 애용돼 왔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선데이서울] 22세 귀염둥이 김자옥(金慈玉)의 핑크빛 소문

    [선데이서울] 22세 귀염둥이 김자옥(金慈玉)의 핑크빛 소문

    이 시대 ‘국민배우’ 중 한 명이었던 김자옥이 폐암에 따른 합병증으로 16일 오전 7시 40분 세상을 떠났다. 향년 63세. 김자옥은 시인이자 무용 평론가였던 고(故) 김상화의 딸로, CBS기독교방송의 어린이 성우로 활동하면서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 1970년 MBC 공채 탤런트로 뽑혔으나 학업(한양대 연극영화과)을 위해 그만뒀다가 이듬해 KBS를 통해 다시 데뷔하면서 평생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국내 연예 주간지의 대명사였던 ‘선데이서울’(서울신문사 발간)도 1970~80년대 김자옥의 다양한 활동과 모습을 기사화해 독자들에게 전했다. 아래는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73년, 데뷔 초기 22세 당시의 김자옥을 다뤘던 기사 전문이다. 기사의 제목은 ‘귀염동이 金慈玉(김자옥)의 핑크빛 소문’이다. 당시 세간에 퍼졌던 염문에 대한 김자옥의 직접적인 해명을 전하면서 그의 연애관, 결혼관, 직업관 등을 소개했다. =================================================== 「데뷔」1년만에 일약「KBS의 얼굴」로 자란 인기「탤런트」김자옥(金慈玉·22)이 연애를 한다는「핑크」빛 소문이 방송가에 나돌고 있다. 앳되고 청순한「마스크」의 귀염둥이 김자옥(金慈玉)도 이제 한 여성으로서 성장해 가는 것일까? 인기가 오르면서 자연히 소문도 늘어가는 것이 연예가의 통례다. 김자옥(金慈玉)도 예외가 아닌듯. 71년 11월 매일극『심청전』의「히로인」으로 발탁되어 좋은 연기로 기반을 잡자 방송가에는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김자옥(金慈玉)이 가수 이상렬(李相烈)과 뜨거운 사이라는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다음『한중록』에서 혜경궁 홍(洪)씨 역을 맡아 폭 넓은 연기로「팬」을 확보해 가자 이번엔 같은 방송국의「탤런트」이(李)모군과 가까운 사이라는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후『신부들』의 주역을 맡은 다음에는 또 그녀가 30대의 남자와 (서울 중구) 소공동 밤거리를 거닐더라는 소문이 번졌다. 결국 김자옥(金慈玉)이 일일극의 주연을 맡을 때마다 연문(戀聞)이 하나씩 늘어간 셈일까? 동료「탤런트」들은 이러한 소문을 두고 김자옥(金慈玉)이 예상보다 감쪽같이「데이트」를 잘하는 모양이라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다 큰 계집애가 연애하는 것은 하나도 어색할 게 없잖아요? 그렇지만 하나 같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화가 날뿐이죠』 소문의 진원을 묻는 기자에게 김자옥(金慈玉)은 이렇게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도 아빠가「탤런트」생활 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시지 않는데 이런 소문이라도 아신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하실 거예요』 「아빠」의 얘기를 할 만큼 김자옥(金慈玉)은 아직도 어리고 순진한 편이긴 한데···. 『말이 많은 곳엔 그런 것이 다 화제가 되겠지만 너무 심해요.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집어치우고 싶은 생각밖엔···.』 억울해 죽겠다는 듯 예쁜 두눈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해명을 하면 변명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또 있겠지만 저로서야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어요』 믿지 않아도 할 수 없다면서 김자옥(金慈玉)이 밝힌 해명은 다음과 같다. 『이상렬(李相烈)씨는 제 친한 친구 이상숙의 오빠예요. 상숙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아주 가까운 친구였고. 그러니까 가끔 만났죠.「탤런트」가 되기 전부터「오빠」라고 따르던 사인데 무슨 연예예요. 그런 감정은 추호도 느껴본 적이 없고 그분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집에서는 다 알아요』 요즈음은 서로 바빠서 얼굴을 본 지도 아주 까마득하다고 말한다. 다음 동료「탤런트」이(李)모군은 언니의 서라벌예대(지금의 중앙대) 동창생이란다. 김자옥(金慈玉)이「탤런트」가 되기 전부터 가끔 집에 놀러 왔기 때문에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되었고 방송국에 들어오자 아는 사람이 없어 자연히 이(李)군과 방송국 근처의 다방에서「코피」를 들고 얘기를 나눈 정도로 만났을 뿐이라는 것. 이에 대해서는 이(李)군도 같은 얘기다. 『방송국에서 선배로 또 오빠로서 대했을 뿐인데 연애라니 어림도 없는 얘기지요』 결국 두 사람은 다 남매처럼 대했다는 것으로 해명이 끝난 셈.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데이트」로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만하다. 다음 소공동을 같이 거닐던 사람은 누구일까? 이에 대해 김자옥(金慈玉)은 형부의 친구라고 말한다. 『재일교포인데 형부와 아주 절친한 친구예요. 형부를 통해 알게 되어 같이「볼링」을 하러 가 본 적이 있지만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김자옥(金慈玉)의 말을 빌면 그건「데이트」가 아니고 그저 한번 만난 것뿐 그 사람이 일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 뒤에는 다시 못만났다고. 혹시 맞선을 본 것이 아니냐고 묻자 자신이나 집에서나 아직 시집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림도 없는 얘기라고 펄쩍 뛴다. 『25살 넘어서 결혼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에』지금은「데이트」는 해도 결혼 상대를 찾고 있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제야 연기가 무언인지 알아가는 햇병아리예요. 도와 주지는 못할 망정 헛소문을 진실처럼 험구하진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이러다간 아빠와 외출을 해도「핸섬」한 중년 신사와「데이트」하더라고 소문이 나겠다며 웃는다. 연예계 신입생인 그녀가 뒷공론 때문에 신경을 쓰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의 인기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리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 눈치. 『「탤런트」생활을 생업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저도 여자니까 때가 되면 시집을 가서 가정을 꾸미는 것이 자연스런 일 아니겠어요. 꼭 맘에 드는 작품 하나만 흡족하게 하고 미련없이 떠날 생각이에요』 꼭 맘에 든 작품의 배역이 언제 주어질 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주어지면 심혈을 기울여 조용히 연기자 생활을 마무리 짓겠단다. 『연기자는 건강해아 하는데 전 몸이 좀 약해요.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어요』 지난 여름『한중록』을 마치고 집에서 빈혈로 쓰러진 것을 봐도 연기자로서 치러야 할 중노동을 이겨내기에는 몸이 약한 것 같단다. 단시간내에 인기의 정상에 오른 김자옥(金慈玉)은 시인이자 무용 평론가인 김상화(金相華)씨의 2남5녀 중 세째 딸.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아동극을 시작했으니 연기 경험은 퍽 많은 셈이다. 배화여중 1년 때부터 배화여고 2년 때까지 TBC-TV에 아역 배우로 출연,『우리집 5남매』등 많은「프로」에 나갔다. 성인으로「탤런트」가 된 것은 여고 졸업 후, 70년 2월 MBC-TV 「탤런트」2기생으로 들어가면서···. 그러나 MBC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다가 그만두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브라운」관을 떠났었다. 그러다가 1년 뒤인 71년 11월 KBS-TV의『심청전』에「스카우트」되면서 본격적인「탤런트」로「데뷔」, 1년만에 정상급에 오르게 된 것이다. 붙임성이 있고 상냥해서 동료「탤런트」들간에 귀염둥이로 통하고 있는 김자옥(金慈玉). 이제 그녀도 사랑할 나이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오(五)> [선데이서울 73년 2월11일 제6권 5호 통권 제226호]
  • [2014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전당포/김아로미

    [2014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전당포/김아로미

    때 현대 곳 한적한 거리/ 전당포 안 등장인물 남자 40대 여자 30대 후반, 남자의 아내 노인 전당포 주인 손님 1 손님 2 제1장 배경은 한적한 거리이다. 무대에는 사막(絲幕)이 내려와 있고 사막(絲幕) 뒤로 상점의 흐릿한 불빛이 한번 반짝이다가 꺼진다. 남자와 여자가 무대 오른쪽 끝에서 등장한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걷는다. 여자의 시선은 앞을 보고 있으나 초점이 흐릿하다. 남자 길을 잃은 것 같지? 여자 무엇이 보이는지 자세히 말해 봐요. 내가 당신보다 훨씬 길눈이 밝잖아요. 남자 방금 들어선 골목 입구에는 작은 어린이집이 하나 있었지. 아까도 그랬던가? 여자 노란색 미끄럼틀이 있던가요? 남자 글쎄 노란색이었던가. 우리가 이미 지나온 길이지? 여자 아뇨. 이제야 제대로 찾아온 것 같아요. 그곳은 아주 오래된 곳이에요. 어렸을 때 몰래 담을 넘어 들어가선 친구들과 원형 그네를 타고 놀았죠. 남자 원형 그네? 여자 동그란 새장같이 생긴 그네 말이에요. 네 명이 들어가서 두 명씩 마주보고 앉으면 그 안이 꽉 차곤 했죠.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열에 여덟 번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그네를 밀어야 했어요. 남자 그 어린이집은 이제 막 지어진 새 건물이던데. 물론 어두워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말야. 여자 그네를 밀다가 심술이 나면 정글짐에 달려가 거꾸로 매달렸어요. 모든 게 거꾸로 보이곤 했죠. (사이) 아주 재미있었어요. 해본 적 있어요? (남자, 고개를 젓는다) 한참을 매달려 있으면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왔어요. 지나가는 발만 봐도 그게 아버지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죠. 왜냐하면 아버지의 구두는 아주 특별했거든요. (걸음을 멈춘다. 남자 또한 여자가 멈추자 함께 멈추어 선다) 목구멍이 간질거려요. 남자 감기에 걸리면 고생이야. (자신의 목도리를 풀어 여자에게 둘러준다.) 여자 아뇨.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단 말이에요. 그게 갈색이었던가, 검은색이었던가. 남자 남성용 구두는 다 비슷하게 생겼지. 여자 아녜요. 그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구두였어요. 남자 그나저나 여기는 우리가 찾던 길이 아닌 것 같아. 점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 여자 좀 더 밝은 곳으로 나를 인도해 줘요. 그러면 뭔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두리번거리다가 왼쪽으로 퇴장.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들린다. 사막(絲幕) 뒤에서 갑자기 조명이 밝아지더니 한 남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몇몇 사람들의 실루엣도 보이지만 그들은 거의 움직임이 없어 마치 물건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사막(絲幕) 뒤의 조명이 천천히 어두워진다. 두 사람, 다시 오른쪽으로 처음처럼 입장한다. 남자 다시 그곳이야. 여자 정말요? 남자 응.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그 흔한 택시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군. 여자 원래부터 이 동네는 차가 잘 다니지 않아요. 그래서 아버지와 나는 꽤 오래 걸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사이) 역시 여전하군요.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에요. 남자 당신 말이 맞다면 그 분식집은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여자 분식집이 아니라 문방구. 남자 그러니까 떡볶이를 파는 그 문방구 말야. 여자 무엇이 보이는지 내게 자세히 말해 봐요. 남자 우리가 들어온 골목 입구에는 어린이집이 하나 있었고. 여자 노란색 미끄럼틀이었나요? 남자 어두워서 보지 못했어. 여자 당신은 너무 쉽게 지나치는 경향이 있어요. 그건 중요한 문제예요. 남자 (여자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날씨가 몹시 쌀쌀해. 여자 목도리를 다시 가져가도록 해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더듬거린다. 여자 캄캄해서 그런지 이 정도도 잘 보이지가 않네요. 남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커튼 뒤의 불빛 하나가 유난히 반짝 들어온다. 사막(絲幕) 뒤에 있던 남자의 그림자는 사라진 뒤다. 남자 (사이) 요즘엔 깔끔한 게 제일이지. 떡볶이도 마찬가지야. 당신이 그렇게 말하던 그 떡볶이, 지금 먹어보면 오히려 실망만 클걸. 나도 어렸을 적 먹던 삼양라면 맛을 잊지를 못하지. 하지만 정작 슈퍼에 가서 사오는 건 나가사끼 짬뽕이라고. 여자 사실 그건 딱히 맛있지는 않아요. 남자 당신은 나가사끼 짬뽕이 아니라 너구리를 더 좋아하지. 여자 떡볶이 말예요. 남자 그래.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 여기는 (둘러본다) 아무것도 없어. 여자 떡볶이는 상관없어요. 그저 당신과 함께 와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바로 이곳을 말예요. (사이) 좀 더 밝을 때 왔더라면 흐릿하게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남자 추억이 특별해지는 건 마음에서 잊고 났을 때뿐이지. 여자 그래요. 하지만 나처럼 잊어버릴 일만 남은 사람에게 무엇을 추억한다는 건 말예요.(남자, 말을 자른다) 남자 지금 당신 입장에선 이게 꽤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아. 내가 그걸 이해하려 무척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알아줬으면 해. 그치만 안타깝게도 여기에 당신이 찾고 있는 거라곤 없어. 이미 우린 같은 자리를 네 번이나 뱅뱅 돌고 있다고. (여자의 손을 잡는다) 꽁꽁 얼었군. 여자 우린 같은 자리를 헤매고 있는 게 아녜요. 당신이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리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라고요. 예를 들면….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다. 남자 또한 여자의 시선을 따라 둘러본다.) 여자는 남자보다 먼저 그 불빛 가까이로 다가간다. 사막(絲幕)을 손으로 건드린다. 여자 들어가서 물어봐요. 남자 뭘 말이야? 여자 이런저런 것들을요. 남자 그러니까 이런저런 것들이라면? 여자 여기가 입구네요. 제2장 여자가 불빛 바로 앞으로 다가가서 손짓한다. 남자는 하는 수 없이 여자를 따른다. 무대 전체에 내려와 있던 사막(絲幕)이 서서히 올라간다. 사막(絲幕)이 올라가고 하나의 막이 더 설치된 무대의 바닥에는 중앙이 동그랗게 뚫린 철문의 그림자가 있다. 그곳에 노인의 머리통이 어른거린다. 여자 낯설지가 않아요. 뭔가 기억이 날 듯도 한데. 남자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철문뿐인걸. 아주 단단히 닫힌 것 말이야. 여자 (중얼거리며)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철문뿐인걸. 남자 아무도 없어. 여자가 막에 손을 뻗으려고 하는 것과 동시에 막 사이로 한 노인의 손이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도리어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노인 (손을 흔들며) 내 놔! 물건부터 내놓고 시작하지. 남자 뭘요? 여자, 노인의 얼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 빤히 본다. 노인 곧 문을 닫을 시간이야. 딱 1분 주지. 1분 안에 물건을 팔아봐. 남자 저희는 단지 길을 잃었기 때문에. 노인 다들 그렇게 핑계를 대곤 하지. 처음부터 여길 찾아올 생각은 아녔어요. 어르고 달래야 그제야 슬쩍. 그런 거 다 생략하자고. 혹시 휴지가 필요한가? 그렇다고 고해성사를 하라는 건 아니야. (여자를 슬쩍 보더니) 기다려. 영 귀찮지만 말이야. 여자 어디로 갔죠? 남자 웬 헛소리를 지껄이는군. 그냥 돌아가자고. 여자 역시 우리 앞에 보이는 건 철문뿐이 아니었어요. 남자 여전히 철문뿐이야. 그리고 이 철문 뒤에는 이상한 노인이 하나 있어. 여자 무슨 물건을 내놓으라는 거죠? 남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우리는 길을 물으러 온 것뿐이니까. 여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어요.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를 생각해 봐요. 남자 당신이 그까짓 떡볶이를 꼭 먹고 싶다고 해서 온 거지. 여자 정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당신 먼저 돌아가요. 노인의 그림자가 다시 어슬렁거린다. 노인 (여자에게 휴지를 건넨다) 아직 필요 없나? 남자 여기 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 지나다니는 택시도 없고, 전화로 부르려고 해도 이곳이 어딘지 설명할 수가 없군요. 노인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외면한다) 여기는 보성당 골목이죠. 남자 보성당이 어디죠? 노인 이미 예전에 없어졌지. 그렇지만 보성당을 기억하는 택시 기사 한 명쯤은 있을 거야. 여자 생각났다. 보성당! 노인 (반가워하며) 내가 말했지. 보성당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거라고. 비록 택시 기사는 아니지만 말야. 여자 아버지가 졸업선물로 손목시계를 사주셨죠. 노인 좋은 아버지를 뒀군요. 여자 벽엔 커다란 괘종시계가 빼곡히 걸려 있고 유리장 속에는 딱딱하고 달콤해 보이는 보석들이 잔뜩 진열이 되어 있었죠. 그 보성당 이름을 어떻게 잊었지? 남자 모든 걸 기억하며 살 순 없는 거니까. 여자 좋겠군요. 당신은 아직 보고 기억할 것들이 많아서. 노인 잠깐 들어오시는 건 어떨까요? (남자에게) 필요하신 건 주소란 말이죠? 남자 보성당 골목이 이곳 주소 아닌가요? 노인 보잘것없이 보여도 저도 명함이란 게 있습니다. 쓸 일이 없어 그렇지. 서랍 어딘가에 있겠죠. 난 무엇이든 버리는 법이 없거든요. (손짓하며) 이쪽입니다. 철문이 열리는 육중한 소리가 들리고 남겨졌던 하나의 막이 천천히 올라가자 물건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는 전당포 내부가 드러난다. 정면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물건의 크기에 알맞게 제작된 조립식 진열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열장은 각각 유리로 된 문이 달려 있어 그 내부를 볼 수 있다. 무대 중앙에는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무대의 오른쪽에는 스탠드가 놓인 노인의 사무용 책상과 의자가 하나 덩그러니 있다. 노인, 그들을 테이블 앞 소파로 안내하고는 책상 서랍을 뒤지기 시작한다. 서랍을 빼내어 뒤집어서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몽땅 바닥으로 탈탈 턴다. 바닥에는 구겨진 영수증과 편지봉투, 정리되지 않은 크고 작은 메모지와 아이스크림껍질, 비닐봉지 따위가 쏟아진다. 여자 (유리장을 더듬거리며) 여기 안에 이 작고 반짝이는 건 뭐죠? 남자 커다란 유리구슬이네. 여자 스노우볼. 뒤집어서 마구 흔들어 제자리에 놓으면 천천히 눈이 내려오는 것. 남자 참 난잡하게 물건들을 진열해 뒀네. 아무런 체계도 없이 말이야. 여긴 웬 머리고무줄 하나가 덩그러니 있군. 여자 기분이 이상해요. 남자 맞아. 하는 것 없이 지치는 날이군. (노인을 흘끗 본다) 아무래도 저 노인, 몹시 오래 걸리거나 아예 쓸모가 없을지도 몰라. 그저 잠깐 쉬었다가 나가도록 하자구. 여자 (말없이 남자를 이끌고 걸음을 옮긴다) 여기엔요? 남자 구두 한 짝이 들어있군. 여자 (들여다보며) 희미하게 볼 수 있어요. 남자 흔해빠진 남성용 구두. 여자 아버지의 것과 비슷한 것 같아. 남자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 남자 구두는 다 비슷비슷하니까. 여자 아버지의 구두는 단 하나밖에 없는…. 맞아! (말을 멈춘다) 남자 무슨 일이야? 여자 아버지와 함께 여기에 온 적이 있어요. 노인, 그 말을 듣고 물건을 뒤지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일어나 여자 쪽으로 다가온다. 갑자기 모든 조명이 꺼진다. 여자의 목소리만 들린다. 동시에 1장에서 들렸던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들려온다. 여자 여기는. 노인 전당포지요. 유리장 속에서 작은 조명이 반짝 켜진다. 오뚝이 모양을 하고 있는 알람시계이다. 무대 가운데에 핀 조명이 떨어지고 무대 끝에서 손님1이 걸어 들어온다. 손에는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는 것과 똑같은 알람시계가 들려져 있다. 손님1 이런 것도 받아 주시나요? 어디가 고장 난 모양인지 약을 갈아도 작동되지 않아요. 하긴 요새 누가 알람시계를 쓰나요. (머리를 긁적인다) 그렇지만 담보가 될 만한 것이 물건에 대한 값진 기억이라고 하셔서 고민 끝에 가지고 왔습니다. 제게 잠시만 시간을 내주세요. (손을 내저으며) 아뇨. 휴지는 필요 없어요. 이 시계는 제겐 정말 의미가 컸어요. 이 시계만 있으면 다른 장난감은 필요 없었어요. 노인이 무대 위로 등장해 손님1 옆에 나란히 선다. 그러고는 손님1을 조금씩 조명 밖으로 밀어낸다. 노인 나는 다른 장난감은 필요가 없었어. 이 녀석만 있으면 충분했거든. 손님1 (사이) 이 녀석의 몸뚱이가 볼록하고 통통한 것이 이걸 이불 속에서 끌어안고 있으면 외롭지 않게 잠들 수 있었어요. 어머니는 (노인이 말을 자른다) 노인 나의 어머니는 귀가가 매일 늦었지. 그래서 (손님1에게 어서 이야기하라고 재촉한다.) 손님1 이 녀석의 배에다가 (노인이 동시에 말하기 시작한다.) 노인 귀를 대고 있으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나 혼자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지. 손님1 (노인에게)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노인 (손님1이 들고 있는 알람시계를 빼앗는다) 여기서 똑딱, 하면 나도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똑딱! 손님1 저기요. 이건 제거예요. 노인 (정색하며) 이게 네 거라고? 확실해? (알람시계의 버튼을 누르자 까르르 웃는 소리가 난다) 손님1 약도 들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된 일이죠? 노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튼을 누른다. 까르르 까르르. 그것을 들으면서 따라 웃는다. 손님1 그래서 값은 얼마를 쳐주신다는 거죠? 조명이 꺼졌다 다시 유리장 속의 조명 몇 개가 차례대로 빛난다. 손님1 퇴장. 남자 요즘에도 이런 곳이 남아 있군요. 쓰던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곳 말이에요. 여자 쓰던 물건을 맡기고 돈을 얻는다니 쓸쓸해지네요. 남자 그 돈을 다시 새로운 물건을 사는 데 쓰고. (사이) 별 다를 것 있나? 노인 아무 물건이나 받지는 않지요. 그 안에 기억할 만한 것이 담겨 있어야 해요. 여자 모든 물건에는 기억할 만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노인 그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지.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여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건을 다시 찾으러 오겠군요. 노인 이곳을 둘러봐요. 이 수많은 물건들을. 지금까지 물건을 되찾으러 온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지요. 여자 어째서요? 노인 요즘 사람들은 제 자신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니까요. 자신이 이곳에 들렀었다는 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걸요. (남자를 본다) 여자 물건을 되찾으러 왔다는 사람이 맡긴 물건은 뭐였나요? 노인 사실 되찾아갔다고 볼 수는 없지요. 용케도 자신이 무엇을 맡겼는지는 기억해냈지만 그 사람이 찾아간 건 엉뚱하게도 다른 사람의 물건이었거든. 비슷하게 생긴 다른 사람의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집어 들기에 그냥 보고만 있었지. 여자 얼마 전에도 남편과 함께 식당에 갔다가 다른 사람이 제 신발을 신고 돌아가 버려서 남의 신발을 신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남자 똑같은 브랜드, 똑같은 사이즈의 신발이었으니까. 여자 그래도 그건 내 신발이 아니죠. 남자 식당 주인이 결국 신발값을 물어주었으니 손해 본 것은 아니지. 그나저나 제 기억에 전당포라고 하면 아주 캄캄한 내부에 차갑고 단단해 보이는 철창뿐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군요. 노인 이전에 전당포에 와 본 적이 있소? 남자 아뇨. 그저 전당포라고 하면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노인 그렇지만 기억 속 전당포라는 말을 했지요. 남자 영화나 티브이 혹은 소설 속에도 전당포는 종종 등장하곤 하니까요. 말꼬리를 잡으시는 군요. 여자 그렇지만 여보. 여기에도 아주 튼튼한 철창이 곳곳에 있어요. 남자 아니, 철창이라곤 없어. 아, 그렇지. 당신은 여기가 확실하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당신이 철창이라고 본 것은 아주 얇은 유리문이야. 여자 제대로 봐요. 당신은 너무 쉽게 지나치고 단정하려고 들잖아요. 남자 내가 지금 눈앞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야? 노인 아주 영리한 아가씨군. 남자 (비아냥거리며) 아가씨라고하기엔 조금 많이 늙었지요. 여자 제가 이곳에 왔던 때에는 아주 어린 꼬마였을 거예요. 아버지가 무언가를 두런두런 이야기하시고 저는 이곳을 둘러보는데 정신이 빠져 있었어요. 노인 아, 기억이 나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왔던 꼬마 숙녀. 여자 저를 기억하세요? 저희 아버지도요? 노인 난 뭐든 잊어버리는 법이 없지. 무대 전체, 조명이 꺼진다. 유리장의 불빛이 하나씩 차례대로 들어온다. 천천히 깜빡깜빡거리는 조명. 그러다 다시 무대 전체가 밝아진다. 여자 저희 아버지가 무엇을 파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노인 물론이지. 그렇지만 그것을 돌려줄 수는 없어. 본인이 아니면. 여자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노인 안타깝군. 인상이 아주 좋은 양반이었는데. 남자 우리는 택시를 부르러 여기에 온 거야 여보. 노인 택시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데에도 그렇게 시간이 걸리다니. 여자 요새 자꾸 깜빡하곤 하더라고요. 노인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거지. 남자 내가 잊어버린 말은 택시가 아니야. 그렇지만 그냥 넘어가도록 해. 내가 제대로 말 한마디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곳에 오고부터 당신이 아주 수다스럽게 내 정신을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자 모든 게 내 탓이군요. 차라리 혼자 오는 것이 더 좋을 뻔했어요. 당신은 내가 이 동네를 찾아오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했어요. 남자 당신이 꼭 이 동네에 있는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했으니까. 내가 비싸고 좋은 선물을 사주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지. 노인 오늘이 어떤 특별한 날인가? 생일? 결혼기념일? 프러포즈를 한 날? 여자 제 생일은 오늘이 아니라 이 달의 마지막 날이에요. 남편이 바빠 오늘밖에는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요. 남자 그 귀한 시간을 이곳에서 낭비하는 것보다는 밖에 나가서 그 떡볶이 집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소원이라고 했잖아. 여자 내게 중요한 건 떡볶이가 아니라 아버지와의 추억을 다시 새기는 일이에요. 제가 누누이 말했잖아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이 점점 어려워졌다고 말예요. 사진을 들여다보려고 해도 눈앞이 흐릿하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다고요. 노인 눈은 언제부터 말썽이었지? 여자 몇 년 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이제 선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건 절 불안하게 만들어요. 예를 들면, 초록색이란 것을 떠올리려고 해도 쉽지 않아요. 이제 제 눈으로 볼 수 있는 초록이란 아저씨가 입고 있는 짙은 쑥색의 것밖에 없지요. 그럴 때는 기억 속의 초록을 떠올리는 데 열중해요. 신호등의 눈이 부신 녹색, 이제 막 뜨거운 물에 데친 시금치의 색깔 같은 것. 남자 여보, 이 분이 입고 있는 건 쑥색이 아니라 네이비색이야. 아주 짙고 검은 파랑. 노인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라네. 하지만 이건 쑥색이 맞아. 내가 쑥색을 좋아하기 때문에 쑥색인지 아닌지는 내가 제일 잘 알 수 있어. 남자 어르신, 전 색맹이 아닙니다. 노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남자 그건 분명한 파랑색이니까요. 노인 당신의 기억 속에서 파랑색과 녹색의 체계가 멋대로 흔들리고 섞여버린 거라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내게 설명할 수 있지? 남자 그렇담 어르신 말이 옳다는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노인 말했듯이 난 뭐든 잊는 법이 없어. 이 옷을 산 지는 아주 오래되었지만 분명히 나는 쑥색의 옷을 골랐고 종업원은 내게 쑥색의 옷이 아주 잘 어울리시네요, 하고 말했지. 그리고 당신의 부인이 다시 한 번 말해 주지 않나. 남자 말해 봐야 내 입만 아프지. 그나저나 혹시 잊으신 건 아니겠죠. 제가 사장님께 원하는 건 이곳의 주소가 적힌 종이 쪼가리인 것을요. 여자 여보, 제발 그 퉁명스런 태도 좀 어떻게 할 수 없어요? 계속 이럴 거면 혼자 돌아가도록 해요. 나는 이곳에서 꼭 찾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건 내게 무척 의미 있는 일이지만 당신에게는 시간낭비일 뿐이라면 말예요. 남자 그저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이 주소를 묻기 위해서였다는 걸 당신이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서 말이야. 노인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잠시 손님 대접을 했을 뿐이야. 남자 저희는 무엇을 팔러 온 게 아닙니다. 노인 확실해? 그 말을 꼭 기억해 두도록 하지. 노인은 다시 책상으로 가 서랍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때 누군가 문을 급하게 두드리기 시작한다. 노인은 그것을 무시한다.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손님2 사장님! 사장님 안 계세요? 안에 계시는 거 다 알아요. 이번에는 진짜예요. 이번에는 정말 굉장한 것을 가지고 왔어요. 들어보세요. 듣고 계세요? 제3장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가운데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온 손님2가 등장한다. 그는 가방을 옆에 내려다 놓고 물건 하나를 꺼낸다. 노인은 무대 왼쪽의 책상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소파에 앉아서 그를 쳐다보고 있다. 손님2 이 물건으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우선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부터 알아 두셔야 합니다. 아주 가치 있는 물건이죠. 여기 정중앙에 있는 이 마크가 보이시죠? 이건 88올림픽을 기념하여 캐논사에서 스페셜 에디션으로 내 놓은 겁니다. 1988년 그때를 기억하시죠? 굉장했죠. 어마어마하게 넓은 잔디밭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그 소년 말이에요. 노인 그 소년이 자넨가? 손님2 아뇨. 그건 아니에요. 노인 자네는 또 내 시간을 뺏고 있어. 손님2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이 카메라는 제가 어렸을 때에 할머니께서 주신 물건이지요. 할머니는 일수쟁이셨는데 돈을 제때에 갚지 못하면 대신 값나가는 물건을 받아오시곤 했어요. 노인 (하품을 한다) 손님2 이 물건의 진짜 가치에 대해 아직 말하지 못했습니다. 이 카메라는 한 여인에게 정말 귀중한 물건입니다. 이 카메라의 주인은 미군부대 앞에서 몸을 팔던 아주 어린 여자였지요. 몸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순수한 소녀 말이에요. 상상해 보세요. (노인의 눈치를 슬쩍 본다) 그 소녀에겐 정인이 있었죠. 그 사람이 소녀에게 선물한 카메라예요. 노인, 기지개를 켠다. 그러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장부를 뒤적이는 등 딴짓을 한다. 손님2 자신의 정인이라고 생각한 남자가 주고 간 카메라를 일수쟁이에게 빼앗기게 된 거죠. 어쩌면 돈 대신 이 카메라를 내어준 것은 이미 그 소녀는 이곳에 사랑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정말 슬픈 이야기 아닌가요? 제 애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울던걸요. 노인 그 일수쟁이는 정말 비정하군. 그런데 말이야. 자네 애인이 이야기를 듣고 울었단 말이지. 손님2 여자들이란 눈물이 많죠. 노인 그것은 이미 그 여자에게 팔렸군. 손님2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는데요? 노인 이 봐, 그 카메라가 자네의 기억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손님2 누군가의 사연이 담긴 물건이잖아요. 노인 전해 오는 이야기일 뿐이지. 차라리 그 사진기로 찍은 사진이나 가져오면 몰라. 손님2 요즘에 누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요. 저는 그렇게 사진을 잘 찍는 편도 아니고요. 노인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 나는 드라마틱한 사연을 원하는 게 아니야. 그런 사연이라면 차라리 방송국에 제보하라고. 자네의 것을 가져오란 말이야. 자네의 기억, 추억거리가 담긴 물건들 말이야. 손님2 그치만 저는 그렇게 물건을 오래 쓰는 성격도 아니고 평소 건망증도 심하기 때문에 그럴 만한 것이 없어요. 노인 그런데도 자꾸 이곳에 찾아오는 이유가 뭐야. 돈이 급하면 나가서 은행을 찾아봐. 사채를 쓰든지 장기라도 팔든지. 손님2 할아버지가 자꾸 이렇게 퇴짜를 놓으시니까 제 삶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종일 멍하고 우울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노인 할아버지? 이 봐. 고해성사는 이곳에서 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는지. 이제 돌아가게. 내 인내심은 바닥이 났어. 손님2 아직 물건이 많이 남았어요. 제가 모조리 긁어 온걸요. 노인 영업은 끝났어. 이 손님들이 오늘의 마지막 손님이지. 노인은 손님2를 데리고 무대를 퇴장하고 남자는 여자의 손을 끌고 소파에서 일어서려고 하지만 여자는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여자 여보, 저 남자는 담보할 만한 기억이 하나도 없대요. 남자 그럴 수도 있지 뭐. 여자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요. 우리에게도 담보할 만한 기억쯤은 있는 거겠죠? 남자 오늘따라 무척 감상적이군. 아무리 생각해도 저 노인은 수상해. 당신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말이 돼? 여자 저는 분명히 기억이 나요. 남자 난 저 노인을 말하고 있는 거야. 우린 저 사람에게 휘둘리고 있어. 노인, 다시 무대에 등장한다. 진열장에서 머플러 하나를 꺼내어 목에 두른다. 남자는 그것이 신경 쓰인다는 듯 쳐다본다. 남자 자, 알아들었지?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여자 이제 막 아버지의 물건을 찾아보려고 하는 중이란 말예요. 남자 어차피 당신이 되찾을 수 없는 물건이야. 여자 찾을 수도 있어요. 남자 여기선 아무 물건이나 당신 아버지 것이 될 수도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자, 저기 있는 저 구두 한 짝이 당신 아버지의 구두라고 하자고. 당신은 그저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겠지. 맞아요, 아버지의 것이 확실해요 라고 말할 거야. 아니면 저기 저 덩그러니 진열된 만년필이 당신 아버지 것이라고 한다면 말이야. 여자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아요. 노인,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가 흘러내려 바닥에 질질 끌린다. 남자가 움찔한다. 남자 (사이) 여보. 지나간 건 지나간 거야. 중요한 건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야. 여자 그래요 오늘. 내게 오늘은 제대로 볼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해요. 노인은 머플러를 다시 진열대에 곱게 접어 둔다. 그러고는 서랍을 뒤져 장부 하나를 가지고 온다. 노인, 두 사람 가운데에 선다. 노인 (장부를 여자에게 건네며) 이 전당포를 개업하고부터 지금까지 써 왔던 것이니 아버지의 이름이 분명 여기에 적혀 있을 거야. 한번 찾아보시게. 남자 아뇨. 저희는 이제 가 보겠습니다. 잊으신 게 아니라고 하신 그 주소는 이제 필요 없을 것 같군요. 그리고 또 잊으신 게 아니라면 제 아내는 앞이 잘 보이지 않죠. 여자, 소파에 앉아서 장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잘 보이지 않는 듯 눈 바로 앞에다 가져다 대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들여다보는 것에 열중한다. 노인 굳이 주소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서 일부러 기다리고 있던 거였지. 자네는 이미 이곳에 온 적이 있지 않나? 남자 저는 이곳에 처음 왔습니다. 길을 잃었다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노인 길을 잃었다는 건 확실한가? 자네가 이곳을 찾아낸 건 아닌가? 남자 이곳을 발견하고 저를 이끈 것은 제 부인이었죠. 노인 그렇지만 자네 부인의 눈은 영 말썽이지. 남자 말장난은 이제 그만 하세요. 노인 여기에 맡긴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걸 확신할 수 있나? 남자 네. 물론입니다. 노인 잊어버린 것은 아니고? 남자 잊어버린 것이라면 다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 아닐까요. 노인 그래.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그렇지. 돈을 받고 기억을 버리는 것. 여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장부를 들고 뒤의 유리장을 기웃거린다. 남자의 시선이 여자를 살핀다. 여자, 결국 유리장 사이로 들어간다. 남자가 그것을 쫓아가려고 하는데 노인이 남자의 팔목을 잡는다. 남자 (노인에게) 왜 이러는 겁니까. 여보, 어디로 가는 거야. 이리 나와. 여자 (목소리) 걱정 말아요. 혼자 찾을 수 있어요. 남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 여자 장부에서 분명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본 것 같아요. 적혀진 번호에 따르면 이쯤에. 여보, 여긴 아주 많은 물건이 있어요. 남자 따라서 들어가 봐야겠으니 이것 좀 놓으시죠. 노인 저 안은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비좁아서 둘은 들어갈 수 없어. 한 명이 들어가려면 한 명이 나와야 하고. 한 명이 나오기 위해선 다른 한 명이 들어가서는 안 되지. 두 명이 한꺼번에 들어간다면 둘 다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고. 저 안에선 길을 잃을 염려가 없으니 안심해. 남자 그 안은 캄캄하지 않아? 여자 캄캄해요. 그래도 보일 건 다 보이는걸요. 노인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지. 연도별로 작은 구멍도 없이 완벽하게. 남자는 노인의 손을 뿌리치고는 소파에 가서 앉는다. 남자 대체 이 따위 것들을 사들이는 이유가 뭡니까? 노인 그야 가치가 있으니까. 남자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죠. 물건에 담긴 고유한 기억요? 노인 그렇지. 남자 그렇다면 아까 그 남자의 물건은 왜 값어치가 없다고 돌려보내신 거죠? 노인 불순물이 없는, 아무와도 공유되지 않았던 기억만이 내게 가치가 있지. 남자 이를테면 최초의 고백. 노인 그렇지. 남자 그런 것들을 돈을 주고 사신다고요. 그러니까 대체 왜요. 노인 원하는 것들만을 기억할 수 있는 거야. 프레임 안에 새로운 필름을 끼워대는 것처럼 나는 다채로운 기억 속에서 숨 쉰다고. 매일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말이야. 남자 남의 것들이잖아요. 당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들의 것들. 노인 깊숙이 숨겨져 있던 기억들이야. 내가 아니었으면 제 자신이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들. 남자 순진하시군요. 노인 무슨 뜻이지? 남자 가장 순수한 형태로 내재되어 있던 기억을 샀다. 당신이 사 모은 것들은 모두 거짓말이에요. 당신은 사람들에게 속은 거라고요. 여자 (목소리) 당신 거기 괜찮아요? 남자 괜찮아. 노인 난 여태껏 한 번도 속아본 적이 없어. 남자 자신이 기억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기억이라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게 거짓된 말들을 지어낼 수도 있죠. 노인 나는 항상 앞뒤 정황과 맥락을 기억하고 있지. 아까 그 남자도 내게 거짓말을 하려던 걸 귀신같이 잡아낸 걸 보지 못했나? 남자 당신이 사들인 완성된 기억이라는 것. 그건 원래 없었던 것일 수도,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어요. 당신이 끼어들어서 만들어 낸 거겠죠. 노인,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손바닥 위에 올린다. 노인 한 남자가 가져온 머플러지. 냄새를 맡아 보겠나? 아직도 그 여자의 화장품 냄새가 나. (남자는 거부한다) 이게 내 손에 쥐어져 있으면 내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장면이 있지. 첫사랑과 동정을 떼어버린 날. 그녀의 목을 감싸고 있던 이 부드러운 머플러를 천천히 풀어내는 장면. 그 여자의 머리칼보다 더 부드러운 머플러. 이제 그녀는 없고 그날의 기억들은 이 머플러의 부드러운 결 틈틈이 저장되어 있지. 하나도 막히지 않고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어. 남자, 노인에게 다가가서 머플러를 만져 보려다가 주저한다. 무대의 조명이 한순간에 꺼진다. 진열장에서 차례로 조명이 깜빡거린다. 손님 1, 2가 무대 위로 천천히 등장한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여자 (목소리) 여보! 내가 찾은 것 같아요. 진열장의 깜빡이는 조명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꺼진다. 무대 뒤로 사라졌던 여자가 진열장 사이로 걸어 나온다. 여자,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린다. 네 사람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는 듯 더듬으며 서성거린다. 노인은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다. 진열장 사이로 빛이 쏟아진다. 이제 네 사람은 빛 사이를 헤매 다닌다. 노인 번호 7218. 남성용 정장구두. 남자 머리카락의 엉킴. 여자 딱 맞으면 안 돼. 노인 4684 다시 1번. 한 칸씩 밀려났군. 여자 오른발이 더 커야 해. 남자 축축한 곰팡이 냄새. 여자 왼쪽 구두의 앞코는. 노인 여기도 구멍. 남자 캄캄한 방. 여자 좀 더 밝은 빛이 필요해요. 남자가 서성거리다가 손님1과 부딪혀 넘어진다. 알람시계의 까르륵 소리가 들린다. 손님 1과 2가 동시에 말한다. 손님1 한 번도 필요하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일분이라도 늦게 왔으면. 손님2 그 소녀. 아, 내가 전에도 말한 적 있나요? 손님1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면서, 오락실에서 서둘러 뛰어 오면서, 골목 어귀에서 떨어진 꽁초나 주워 모으면서. 손님2 떠난 정인을 기다리는데 카메라라니요. 이건 처음 말하는 거죠? 손님1 그랬나. 손님2 그랬었지. 손님1 그랬었지. 손님2 그랬나. 말들이 어지럽게 뒤섞인다. 등장인물들 때로는 동시에 말하기도 한다. 여자와 남자는 어둠 속을 더듬으며 서성거린다. 노인은 여자가 떨어뜨린 장부를 주워 자세히 들여다본다. 진열장이 제멋대로 천천히 깜빡인다. 노인 여기가 뻥 뚫렸잖아. 여자 뽕따. 꼭다리만 드시고는 했는데. 남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골목에서 노인 만년필 뚜껑. 여자 어금니로 살살. 남자 몇 번이나 머플러는 노인 시집. 여자 잔뜩 찌푸려지면 남자 질척한 바닥에 손님1 (남자에게) 혹시 저 모르세요? 여자 깊게 파인 주름 때문에 남자 미끄러지는데. 손님2 악! 노인 티켓. 여자 너무 진해서 손님1 (여자에게) 내가 어디까지 말하고 있었죠? 남자 쓸모없는 잔상들. 여자 눈썹이 말이야. 노인 목캔디. 남자 분명히 내가 다 버렸었는데. 손님2 (말없이 긴 한숨을 쉰다.) 여자 두 눈 같았던. 노인 카세트 테이프. 남자 뚫려 있는 구멍에. 여자 간신히 기억난 거야. 손님1 내가 말하고 있는 중이잖아! 남자 그랬지. 여자 미안해. 남자 그렇지만. 여자 이제야. 노인 연두색. 뭐라고 써진 거야. 남자 내 것이 아닌. 손님2 (긴 한숨을 쉰다.) 여자 기억. 남자 악몽의 조각조각. 노인 립스틱. 여자 조각난 것들이. 노인 하이힐. 여자 꿰맞춰지고. 노인 새빨간 색이라는 설명이 빠졌군. 남자 반복되는. 손님1 (더듬더듬 말하려다가 실패한다.) 여자 유영하는. 남자 당신? 여자 잘 보이지가 않아요. 노인 어두우니까. 남자 뭐라고? 노인 무슨 껍질? 여자 당신 거기에 있어요? 남자 당신? 여자 분명히 들었어요. 남자 움직이지 마. 내가 갈 거야. 남자와 여자. 어둠 속을 더듬다가 결국 만난다. 여자 당신이지요. 남자 여기 있었군. 점점 어두워지며 무대 전체에 사막(絲幕)이 천천히 내려온다. 진열장의 불이 차례로 꺼지고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 제4장 사막(絲幕)의 앞쪽이 밝아진다. 남자와 여자가 무대 오른편에서 등장한다. 여자 여기는 어디죠? 남자 처음 들어선 곳인 것 같아. 여자 여전히 아무 간판도 보이질 않죠? 남자 날이 몹시 어두워졌어. 여자 찬찬히 봐요. 스쳐 지나지 말고. 남자 저기에 있는 가게는 내부를 다 뜯어냈군. 여자 매일같이 지나던 거리에 있던 가게 하나가 뻥 뚫리고 없어지면 그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 도무지 기억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남자 요새는 상점들이 참 빨리도 들어섰다가 없어지곤 하지. 여자 안타까운 일이네요. 남자 저쪽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 같은데. 남자와 여자, 무대를 가로질러 퇴장. 암전.
  • 탈북미녀들 “설날 떡국은 1년간 배고프지 말라는 뜻” 폭소 자아내

    탈북미녀들 “설날 떡국은 1년간 배고프지 말라는 뜻” 폭소 자아내

    지난 29일 방영된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하 이만갑)에서는 탈북미녀들이 총출동해 남한문화 관련 퀴즈를 푸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들에겐 너무나 쉬운 문제들이었지만 탈북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들에겐 한국 역시 낯선 땅이나 다름없었다. 몸풀기를 위한 첫 번째 문제는 식은 죽 먹기의 난이도였다. 떡국을 먹는 것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스무 명 중 8명이 정답인 ‘한 살 더 먹는다’를 고르지 않고 오답인 ‘1년동안 배고플 일이 없다’를 선택했다.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지하철 역 중 대학교 이름이 아닌 역 이름을 고르는 것이었다. 보기로 한성대, 교대, 낙성대, 이대 역명이 주어졌다. 순간 많은 탈북미녀들이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어 남한 출연자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택시 미터기에 나오는 동물을 맞추는 주관식 문제에서는 기상천외한 답이 쏟아져 나와 촬영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남한생활 5~10년차 탈북미녀들은 ‘말’이라고 답해 정답을 맞췄다. 하지만 남한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탈북미녀들은 강아지, 곰, 물개 등을 답으로 골랐다. 최후의 1인으로 신은희 출연자가 남았다. 그녀는 ‘경의선 증기기관차에 쓰여 있는 문구는?’이라는 마지막 문제 답으로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정확히 표기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녀는 우승 소감에서 “서른 살에 시집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2013년에 목표달성이 어려울 것 같다. 내년엔 꼭 시집가겠다”고 밝혀 결혼에 대한 굳은 의지를 다졌다. 사진 = 채널A 방송캡쳐 이문수 연예통신원 dlans0504@naver.com
  • [2013년 문학계 결산] ‘이야기의 힘’ 강했지만 ‘부익부 빈익빈’ 심화

    [2013년 문학계 결산] ‘이야기의 힘’ 강했지만 ‘부익부 빈익빈’ 심화

    2013년 문단의 키워드는 단연 ‘이야기의 힘’이라 할 정도로 소설이 득세했다. 소설 강세 기류는 대작들이 쏟아져 나온 올여름부터 본격화됐다. 7월 초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40만부)가 독주한 가운데 정유정의 ‘28’(18만부)이 치고 올라왔다. 하지만 뒤이어 등장한 조정래의 ‘정글만리’(전3권)가 돌풍을 일으켰다. 30~50대 남성 독자들까지 끌어당기며 100만부를 팔아치웠다. 국내 문학에서 밀리언셀러가 나온 것은 2008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이후 5년 만이다. 신경숙, 김영하, 정이현 등 국내 중견작가들뿐 아니라 댄 브라운,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해외 인기 작가들의 신작도 ‘소설 특수’에 불을 댕겼다. 하지만 이는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형 작가, 자본력을 내세운 일부 소설에 국한된 외적인 풍요에 그쳤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신인작가의 등장에 대한 장벽은 더욱 공고해지고 시 등 다른 문학장르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는 등 쏠림이 심해 문단 내부로 선순환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학과 정치는 긴장 관계를 거듭했다. 지난 5월 한국시인협회는 근현대사 인물 112명에 대한 시를 엮은 시집 ‘사람’을 출간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박정희, 이승만 등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들을 찬양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책을 전량 회수하는 소동을 겪었다. 지난해 대선 기간 박근혜 당시 후보에게 안중근 의사의 유묵 소재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은 지난 7월 절필을 선언했다. 이에 문인 217명이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은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을 예찬하는 비평과 함께 실어 논란을 빚은 데 이어 유신, 1987년 민주화 항쟁을 언급한 이제하, 정찬, 서정인 작가의 소설 연재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켜 파문을 일으켰다. 문인들의 기고 거부, 여론의 비판 등이 이어지자 현대문학은 작가들에게 사과하고 양숙진 주간과 편집위원 전원이 사퇴하는 것으로 진화에 나섰다. 젊은 작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신속한 연대를 통해 제 목소리를 내는 등 세상과 소통했다. 현대문학 파문 직후 페이스북에 보이콧 페이지가 만들어지고 문인 74명이 성명을 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문학평론가의 책이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인기를 끄는 ‘사건’도 있었다. 황현산(고려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의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가 문인들 사이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9쇄(1만 5000부)를 찍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1990년대 전위의 아이콘 백민석 작가의 귀환도 화제였다. 분노·폭력의 에너지가 들끓는 작품들로 주목받았으나 절필을 선언하고 문단을 떠난 그가 10년 만에 소설집 ‘혀끝의 남자’로 돌아오면서 파괴력 있는 작가를 기다리는 문단의 기대감을 높였다. 출판사들의 잇단 팟캐스트 출범은 문인, 평론가들을 마이크 앞에 불러 앉혔고 문학 비평을 새로운 매체로 옮겨가게 했다. 지난 7월 출범한 문학동네의 ‘문학동네 채널1-문학 이야기’를 비롯해 올해 창비, 푸른책, 북스피어 등이 출판계 팟캐스트 열풍에 합류했다. 올해 문단은 큰 상실도 겪었다. ‘영원한 문청’ 최인호 작가가 지난 9월 침샘암으로 영면했다. 지난 5월에는 황석영, 김연수 등 국내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책이 사재기 파문에 휘말렸다. 이를 두고 한 문인은 “작가들에겐 열패감을 안기고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임을 방증한 사건이었다”고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울 처녀도 눌러앉힌 ‘매력의 섬’ 보길도

    서울 처녀도 눌러앉힌 ‘매력의 섬’ 보길도

    청정 바다에 어딜 가나 전복이 널린 풍요의 섬 보길도. 고산 윤선도가 제주로 향하던 길에 풍랑을 만나 잠시 머문 뒤 죽을 때까지 일곱 번이나 찾았다는 곳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3대 정원 중 한 곳인 ‘세연정’의 매력을 찾는 관광객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은빛 멸치가 마을을 물들이는 보길도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EBS ‘한국기행’은 23~27일 오후 9시 30분 ‘보길도의 바다’를 연속 방영한다. 1부 ‘부자(父子)의 바다’에선 전복을 키우는 최영수씨 부자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조류가 세지 않고 따뜻한 보길도는 다시마와 미역 농사가 늘 풍년이다. 청정 해역에서 자란 다시마와 미역은 전복이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자연스럽게 이곳에선 전복 기르는 일을 생업으로 삼은 어부들도 생겼다. 최영수씨 집에선 부자가 함께 전복을 기른다. 아들 승원씨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뭍에서 보길도로 돌아왔다. 아들은 배 위에서 크레인을 운전하고 아버지는 뱃머리를 지킨다. 아들은 전복 농사를 끝마치기 무섭게 다시 감성돔 낚시를 떠난다. 아버지는 아들이 밥도 거른 채 낚시하는 게 영 탐탁지 않지만 섬에서 아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소일거리라 꾸지람도 하지 못한다. 밤이면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아들이 잡아온 감성돔으로 작은 잔치를 벌인다. 이튿날 새벽 5시 30분. 선창마을의 어촌계장 아침은 어김없이 분주하다. 2년간 정성껏 키운 전복을 출하하는 날이면 동네 친구들은 새벽잠을 설치며 길을 나선다. 이들의 손은 쉴 틈 없이 움직이고, 크레인은 잠든 전복을 깨운다. 출하 날이면 어촌계장의 아내 김향미씨는 전복으로 준비한 새참으로 이웃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부 ‘어부의 꿈’에선 낭장망을 이용해 멸치를 잡는 보길도의 보옥마을을 소개한다. 멸치는 보옥마을의 생업이다. 이곳에는 푸른 해송 사이로 전해지는 시원한 파도 냄새에 마음을 뺏겨 눌러앉은 손미애씨가 살고 있다. 여행 왔던 서울 처녀는 보길도에서 다섯 형제의 엄마로 살아간다. 남편 김후진씨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사리 때를 손꼽아 기다린다. 조류가 세면 셀수록 멸치가 그물에 잘 걸려들기 때문이다. 요즘 그물로 찾아오는 손님은 멸치가 아닌 디포리(밴댕이)다. 3부 ‘나의 사랑 보길도’는 토박이는 아니지만 보길도와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보길도 총각과 사랑에 빠져 시집온 박애종씨와 고택에 사는 김보정씨의 삶이 전해진다. 4부 ‘같은 바다를 품은 섬, 소안도’는 보길도에서 뱃길로 10분 거리인 소안도를 소개하고, 5부 ‘윤선도가 사랑한 섬’에선 보길도 부용리에서 황칠나무를 키우는 박권재씨와 박온석씨의 연꽃잎처럼 아름다운 삶을 비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어린이 책꽂이]

    떡배 단배(마해송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한국 근·현대 아동문학사의 큰 산을 이룬 마해송 작가의 전집 가운데 2권. 식민지 통치를 비판하고 평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족 자본의 중요성을 역설한 ‘떡배 단배’와 1960년대 아이들의 고단한 삶을 다룬 ‘그때까지는’ 등의 중편을 포함해 동극, 노랫말, 어린이를 위한 수필 등 마해송의 문학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글이 담겼다. 1만 5000원.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박일환 지음, 오윤화 그림, 창비 펴냄) ‘동화책에 나오는 마귀할멈들아/우리 집에 빗자루 많다/엄마 몰래 와서/다 타고 가 버려라’ 두 딸의 아빠이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인 박일환 시인의 동시집.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끙끙댔다는 시인의 말처럼 시 속에 엉뚱하고 능청스러운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눈망울이 반짝인다. 8500원. 세계를 바꾸는 착한 똥 이야기(박소명 지음, 정인석 그림, 북멘토 펴냄) 더럽고 냄새 나고 못생긴 똥이 착한 일을 한다고? 천연 비료가 되는 페루의 새 똥, 땔감이 되는 티베트의 야크 똥, 물고기 먹이로 쓰이는 사람의 똥 등 귀중한 자원이 되는 ‘착한 똥’을 찾아 세계 여행을 떠난다. 1만 2000원. 줄리어스, 어디 있니? (존 버닝햄 지음, 김정희 옮김, 현북스 펴냄) 양고기 요리와 통감자, 푸딩 등 엄마 아빠는 끼니마다 진수성찬을 차려 내지만 줄리어스는 늘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 빠진다. 상상의 세계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구멍을 파느라 낙타를 타고 나일강 근처 피라미드 꼭대기를 오르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끼니마다 펼쳐지는 이색적인 상차림과 줄리어스의 상상 속 세계를 그림으로 만나는 재미가 흐벅지다. 1만 2000원.
  • 우리나라 미래가 보인다 ‘2013 대한민국 인재상’ 100명 선정

    우리나라 미래가 보인다 ‘2013 대한민국 인재상’ 100명 선정

    ‘어느 날/밭에 불끈 솟아난 허수아비가/아직은 노을이 그립나보다’ 콩 하나를 물고 날아 구름 뒤로 숨은 참새를 따라가지 못한 채 금빛 어둠이 내린 밭을 지키는 허수아비 풍경을 노래한 시 ‘금 따는 콩밭’의 한 구절이다. 변아림(21·여·전북 군산여상 3년)씨가 펴낸 시집 ‘고백’에 실렸다. 변씨는 소형 영구임대아파트에 홀로 산다. 어릴 적 아버지 친구 집에 맡겨졌다가 혼자가 됐고, 2년 동안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부모를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밝게 살기 위해 변씨는 시와 글을 썼고, 18개 공모전에서 우승했다. 군산여상 장세진(58) 교사는 17일 “아림이는 모든 글쟁이처럼, 글을 쓰지 않으면 허물어져 버릴 학생”이라면서 “꼭 작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동현(18·서울 보인고)군은 영화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도입부분을 패러디한 ‘레스쿨제라블’로 일약 스타가 됐다. 수십만명이 조회한 이 패러디는 청소년 자치문화단체인 다올미디어에서 2년 동안 활동한 김군의 내공 덕분에 빛을 보게 됐다. 어린 시절 주의력 결핍장애를 겪었던 경험이 무색할 정도로 김군은 영상 제작과 축제 기획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문현우(27·경기대)씨는 지난해 10월 ‘아리랑 유랑단’을 결성해 15개국, 29개 도시를 돌며 아리랑을 주제로 거리공연을 펼쳐 호응을 얻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지낸 초등학교 시절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거나, 한국에 돌아온 뒤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와 쪽방에서 살 때 힘을 주던 ‘아리랑’을 지키기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 2011년 동북공정을 펴는 중국이 아리랑을 자국 문화에 편입시키려 한다는 보도를 보고 유랑단 결성을 결심했다고 한다.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은 18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들을 비롯해 우리나라 미래를 이끌 인재 100명에게 ‘2013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여한다고 17일 밝혔다. 미래형 인재를 발굴하고 격려하기 위한 상이다. 수상자에겐 대통령 명의 상장, 메달, 장학금 300만원이 수여된다. ‘기타 신동’으로 14세에 한국 최초로 유튜브 1억 조회를 기록한 기타리스트 정성하(18)군, 지체장애 역경을 딛고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한 ‘장애인 수영의 박태환’ 이인국(18)군, 판소리를 K팝 수준의 글로벌 문화로 만들고 싶다는 판소리 계승 인재인 이다은(23·여)씨,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조류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 한국야생조류협회 최연소 회원이 된 정다미(22·여)씨 등도 수상자에 포함됐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詩는 다른 사람 위한 위로의 편지… 아픈 이들 표현 못한 아픔 대신 써”

    “詩는 다른 사람 위한 위로의 편지… 아픈 이들 표현 못한 아픔 대신 써”

    “시는 저에게 있어 기도이고 다른 사람에게 읊어주는 위로의 편지입니다.” 사람을 향한 애정, 삶에 대한 감사함을 정결한 시어로 전해온 이해인(68) 수녀가 문학 인생 40여년을 압축한 시 전집을 냈다.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포함해 그가 펴낸 순수시집 10권을 한데 담은 ‘이해인 시전집 1·2’(문학사상)이다. 1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해인 수녀는 “단 한 번도 훌륭한 시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시전집이 나온다니 부끄럽다”며 “사람들에게 시 한 톨로 기쁨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2008년 대장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인 그는 “암을 겪고 나니 아픈 이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더 커졌고 그것이 시에 그대로 반영된다”고 담담히 말했다. 때문에 그는 “제 중심의 개인적인 시보다는 아픈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들이 표현하지 못 하는 아픔을 대신 써주려고 한다”며 “슬픔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역이용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암에 걸리면 명랑하게 투병하겠다’는 다짐 아래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은 이해인 수녀는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다. 나빠지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다. 암세포랑 ‘조금만 더 살게 해달라’고 대화하니 암세포가 참아주는 것 같다”며 맑게 웃었다. 자신이 속한 부산의 성베네딕토 수녀원 창고에 독자들의 편지를 모두 모아놓을 정도로 독자 사랑이 지극한 그는 최근 한 독자로부터 새로운 애칭을 얻었다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어떤 분이 저를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국민 이모 수녀님’이라고 부르더라”며 “지금 제가 가장 좋아하는 별칭이고 이 시대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며 미소지었다. ‘이해인 시전집’은 이 수녀가 40년 동안 쓴 1000여편의 시 가운데 800여편을 담았다. 사진 60컷을 1, 2권에 나눠 실어 그의 삶의 여정도 따라가 볼 수 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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