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시집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 전승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 집단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 농산물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 화분
    2026-07-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608
  • “예전엔 몸에 철갑을 두른 고슴도치… 지금은 힘 쫙 뺀 낙지처럼 시를 쓴다”

    “예전엔 몸에 철갑을 두른 고슴도치… 지금은 힘 쫙 뺀 낙지처럼 시를 쓴다”

    ‘그녀의 정과 념은 모두 시/문학을 단단히 비끌어매는 일에 온전히 바쳐져 있다. 그녀는 정말이지 만신인지도 모르겠다.’(이현승 시인) ●‘만신’으로 불리는 베테랑 편집자 물고 빨며 책을 만드는 베테랑 편집자(출판사 난다 대표)로 문인들에게 ‘만신’이나 다름없는 김민정(40) 시인이 시의 자리로 돌아왔다. 7년 만에 낸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문학동네)을 통해서다. 시인은 “점쟁이에게 ‘문운이 다했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자궁을 들어내는 심정으로 쓴 시집”이라 했다. 하지만 깊이를 더하고 품을 늘린 33편의 시들은 시인의 성장을 증거한다. “김정환 시인이 그러셨어요. ‘남의 것만 골 빠지게 책 만들어 주고 니 시 안 쓰면 그건 니가 아냐.’ 시를 안 써서 내가 없으면 주변 사람들도 없는 거잖아요. 그간 다른 문인들 책 내느라 내 걸 욕심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나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내가 뭐라고 할지 들어봐야겠다 싶었어요.” 그의 첫 번째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2005), 두 번째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2009)를 읽어온 독자라면 확연한 시의 변화를 감지할 듯하다. 세계와 드잡이할 듯 거칠 것 없이 지르고 찔러대던 말투는 잦아들었다. 상대의 눈을 오래 들여다보고 말을 고르며 대화를 이어가는 화자가 새 시에 들어앉았다. 아름답고 쓸모없는 것마저 사랑으로 품어 안는 시선은 그렇게 자리했다.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시인은 스스로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20대 땐 떼를 썼고 30대 땐 옹알이와 걸음마를 했다면 이젠 인간과 인간 사이, 어른과 어른 사이의 대화를 하게 됐어요. 예전엔 고슴도치처럼 몸에 철갑을 둘렀다면 몸에 힘을 쫙 뺀 낙지처럼 됐달까. 그렇게 힘을 빼고 나를 돌아봤더니 시가 대화가 되더라고요.” 아버지와의 메일, 동료 편집자와의 채팅, 슈퍼 아저씨가 냉이를 팔며 건넨 말, 김춘수 시인의 댁을 찾았던 기억 등 생활을 시로 옮기면서 공감의 반경은 더 넓어졌다. “‘이게 시가 아니면 뭐 어때?’라고 말하듯이 쓰인 시가 ‘그런데 이게 인생이 아니면 뭐냐!’하고 말하듯 삶의 깊은 데를 툭툭 건드린다”(신형철 평론가)는 평이 나온 이유다. ●“시를 재미있어서 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특유의 발랄함과 발칙함, 재기는 빼놓지 않는다. 우리 시에서 보기 드문 그의 유머 코드는 은근해지면서 더 강해진 인상이다. 유사음을 활용한 언어 유희가 도드라지는 그의 시편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쿡, 하고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몹시 문란하지 않으면/가족은 탄생할 수 없다/창문 저 밖/남의 가정은 다 안락해 보이고/창문 저 안/나의 가정은 다 안락사로 보이듯/그 순간 미처 걷지 못한/불쌍한 빨래들이/백기처럼/펄럭펄럭/손을 흔든다’(밤에 뜨는 여인들) “우리 시단에는 웃기는 시를 쓰는 사람이 없었어요. 웃기면 가벼워지니 가벼워지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던 거죠. 두 번째 시집부터 ‘에라, 모르겠다’ 몸의 비계를 털고 났더니 편하더라고요. 시를 재미있어서 봤으면 좋겠고 그게 내 역할인 것 같아요. 가발을 쓴 사람이 있으면 그 가발을 뚜껑 열듯 들어 보이고 싶은 사람, 그게 나니까.”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新전원일기] 하늘과의 동업 농사는 기다림…바보처럼 지킨 못난이 토마토

    [新전원일기] 하늘과의 동업 농사는 기다림…바보처럼 지킨 못난이 토마토

    소 한 마리로 시작한 낙농업 10년… 우유 판로 막히면서 하우스 농사로… 병충해 시달리면서도 유기농법 25년 안전 먹거리·윤리적 농법 의식 확산… 못난이 토마토 이젠 없어서 못 팔아… 착즙 개발해 年 수익 1억 5000만원 남편은 뒤늦게 방송대서 농학 공부… 아내는 최근 식품가공기능사 합격… 변화 꿈꾸는 부부는 또 새로운 ‘시작’ 어린 시절 더운 여름날,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가 미리 설탕에 재워 차갑게 식혀 둔 토마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콤하고 시원한 과육을 포크로 찍어 흘릴세라 접시에 대고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남은 과즙을 서로 들이마시겠다고 동생과 머리를 맞대고 실랑이하던 기억. 거꾸로 읽어도 토마토, 바로 읽어도 토마토. 껍질도 과육도, 안팎이 똑같이 빨간 토마토는 추억이다. # 꿈이 농부였던 남자 충남 아산시에서 유기농 토마토와 아로니아를 재배하는 ‘달기 농장’의 조재호(59)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 농업인이었다. 면 단위 중학교를 나와 평택까지 통학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예비고사를 보러 가는 길에 결국 옆길로 샜다. 어차피 농사를 지을 건데 대학에는 가서 무엇하느냐는 그의 고집을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에 예산 산다는 박응서(58)씨를 중매로 만났다. 당시 그녀는 그보다 한 살 어린 스물다섯. 그 시절 생면부지의 나이 어린 청춘들이 마주 앉아 나눌 법한 이야기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꿈은 농사를 계속 짓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박씨는 그렇게나 좋았더란다. 그러나 박씨는 농사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시집와 처음으로 남편과 시아버지를 따라 들로 나갔다. 농약 치는 기계를 보고만 있으면 된다 해서 따라나섰던 길인데, 아버님이 둘둘 말린 호스를 계속 풀고 감으라 하신다. 논은 저 멀리 들판 너머에 있고, 논두렁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기계를 실은 경운기는 길가에 서 있다. 그 길이 까마득히 멀어 무거운 호스를 풀고 당기고 또 풀고 당겨주어야 하는데, 한 뼘 그늘도 없는 뙤약볕 아래에서 그 일이 너무나도 힘에 부치더란다. “제발 그것만은 좀 안 시켰음 싶은데, 농사 짓는 집에 시집와서 못 한다고 할 수도 없고, 나중에는 약 치러 가자 하시면 정말 경기를 일으키겠더라고요. 그때부터 약 치는 일은 힘든 일, 안 좋은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그날의 들판 위로 부는 바람과 햇살, 땀방울이 다시금 생각나는지, 부부는 서로 시선을 맞추고 웃음을 터뜨린다. 오래 한 곳을 바라보며 살아온 부부의 마주치는 눈빛이 깊다. 들판 너머로 힘들어하는 어린 신부를 바라만 봐야 했던 어린 신랑의 마음은 또 어떤 것이었을까. #패물과 돌 반지 팔아 시작한 낙농업 10년 두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 신랑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좀더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아내의 패물과 아이들 돌 반지를 팔아 소 세 마리를 들였다. 시골에서 몇 마리의 소만 먹여도 부자 행세를 하던 시절이었다. 바람대로 소는 금방 네 마리가 되고 다섯 마리가 되었다. 젖을 짜기 시작하며 돈도 돌기 시작했다. 스물대여섯 마리까지 늘어나며 해마다 주변의 땅도 조금씩 사들였다. 하지만 워낙 낙후된 지역이었다. 땅이 질척거려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동네였다. 목장 앞까지 집유차가 들어올 수 없어서 우유 통을 경운기에 실어 큰 길까지 내가곤 했는데, 이제 더이상 그렇게는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서였다. 한때 육우로 돌려보기도 했지만 결국 시작한 지 10년 만에 목장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마침 따로 지었던 애호박 농사로 재미를 보았던 터라, 소를 판 돈으로 목장을 밀고 다져 하우스를 세웠다. “그런데 그게 또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란 말이지요. 애호박으로 시작해서 부추, 깻잎 등 하우스 작물들을 심었는데….” 처음에는 바람에 하우스가 파이프째 날아가 버렸다. 낙하산처럼 날아올랐다가 이리저리 나부끼는 것을 붙들면 사람까지 딸려 날아갈 지경이라 속수무책 바라만 봐야 했다. 바람이 잦아진 뒤에야 들판에 널려 있는 파이프를 주워 와 다시 펴고 땜질해 설치하면 또 날아가고, 다시 설치하면 또 날아갔다. 하우스 시설에 대한 이해와 경험 부족 탓이었다. “나중에는 그냥 같이 날아가 버리고 싶더라고요.” 충청도 특유의 구수한 억양을 담아 그가 농담처럼 말하고, 아내가 또 그 말을 웃음으로 받는다. #어찌 됐든 농업은 하나님과의 동업 본격적으로 유기농법을 시작한 지는 25년, 토마토로는 19년째다. 당시 한 산림조합 관계자의 설득으로 시작하게 됐는데, 조 대표도 돈이 덜 되더라도 꼭 가야 할 길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 역시 해마다 실패하고 말았다. 병충해가 돌고 벌레가 생겨 작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어쩌다 작황이 좋아도 판로가 마땅치 않았다. 유기농이라는 말 자체가 없을 때였다. ‘무공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을 통해 판매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알고 찾는 소비자가 많지 않았다. 돈이 덜 되는 정도가 아니라 소 판 돈을 모두 잃고 농사짓던 땅마저 야금야금 팔아야 했다. “후원을 받아 단체로 일본이나 유럽 쪽으로 벤치마킹을 다니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쪽에서는 벌레 먹고 못생긴 것들을 안전하다고 아주 자연스럽게 잘 사먹는데, 우리는 여전히 번드르르한 것만 찾는 현실이 답답하더라고요.” 차츰 미생물을 배양해 농약 대신 뿌리고 천적을 이용해 방제할 수 있는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었다. 작황이 좋아지고 가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며 소비자들에게도 안전한 먹을거리와 자연을 윤리적으로 이용하는 농법에 대한 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도 한 10년 전부터는 ‘못난이 토마토’가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생김새나 크기 때문에 등급을 받지 못했을 뿐 맛이나 효능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거든요. 그런 것들을 ‘못난이’라고 이름 붙여 싸게 팔았더니, 정품보다 더 잘 팔리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농사는 하나님과 동업하는 일, 작황은 기후에 따라 유동적이고 토마토는 저장성이 좋지 않다. 때로는 트럭에 싣고 서울로 올라가 지인들의 사무실을 돌며 팔기도 하고,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직접 목청껏 소리쳐 팔기도 했다. #차별화된 착즙 개발과 기다림의 시간 그래도 고향이다 보니 이웃은 물론이고 시청 등에도 지인이 많았다. 관련 공무원들과 농업 현실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수 있었다. 짧은 유통 기간에 대한 타개책의 하나로 2009년 지원금 3500만원을 받아 조립식으로 가공 공장을 짓고 중탕기와 포장 기계를 들였다. 따로 벤치마킹을 할 곳을 찾지 못해 주변의 건강원 등을 찾아다녔다. 토마토는 익혀 먹으면 그 맛과 효능이 배가 된다. 특히나 항산화 물질인 라이코펜 성분은 가열 때 4배 이상의 효과를 낸다. 무수한 실험과 연구 끝에 맛과 영양을 모두 잡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홈페이지(www.dargi.co.kr)도 개설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알고 오겠어요. 처음에는 주위에 다 나눠줬죠. 아는 고깃집이나 미용실에 맡겨두기도 하고, 어쩌다 전자상거래 유통업체에서 연락이 오면 어떤 조건이든 그냥 다 줬어요. 어디서든 하나라도 팔면 광고가 되고, 누구든 먹어보면 그 맛과 효능을 인정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입소문으로 전해지며 차츰 판매량이 늘어갔다. 단골도 늘어 2014년 2월에는 급기야 만들어 놓은 제품이 다음 시즌이 되기도 전에 완판됐다. 계속 드시던 고객들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귀한 생물로 제품을 만들어 공지를 띄우면 몇 시간 만에 품절되기 일쑤였다. 가공 시설을 갖추고 홈페이지를 개설한 지 5년 만의 일이었다. “농사는 기다림이거든요. 봄이 오길 기다리고, 싹이 나길 기다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길 기다리고, 그 열매가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장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했죠.” 부부는 현재 2800평 규모의 토마토 하우스와 50평 남짓의 가공 공장, 노지 1500평의 아로니아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융복합 산업 농장으로 선정돼 가공 시설과 체험 시설 등의 증축과 확장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은 연간 1억 5000만원가량의 수익을 내고 있지만, 그동안의 투자액을 생각하면 다른 산업에 비해 수익률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고 한다. 조 대표는 자신을 자꾸만 바보라고 표현한다. 일반 농사도, 낙농도, 하우스도, 유기농도, 토마토도 그 실상을 알고 숫자에 밝아 셈을 할 줄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런데 농사는 돈의 논리로만 생각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나도 그렇고 우리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도 그렇고,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잖아요. 공적 산업이랄까, 뭐 그런 사명감을 갖고 어느 정도는 자신을 내려놓고 비워야 해요.” 조 대표는 뒤늦게 방송통신대에서 농학을 공부했다. 여러 단체에서 벤치마킹을 오기도 하고, 귀농인들의 멘토가 돼 농장은 종종 교육장으로 변신한다. 대형 물류 창고를 닮은 선별장은 프로젝트와 스크린까지 갖춘 교실이 된다. 오랜 세월 속에서 터득한 자신만의 노하우는 적당히 감출 법도 한데, 조 대표는 절대 그러는 법이 없단다. “시골 사람들은 자랑할 게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뭐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면 신이 나서는 그냥 다 알려주는 거죠.” 조 대표가 또 충청도 특유의 억양을 담아 여유롭게 농담을 하고, 아내가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면서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도 지난달 국가고시인 식품가공기능사 시험을 봤단다. 엊그제 합격 통보를 받았다며 기뻐 어쩔 줄 몰라 한다. “얼마나 힘들게 공부했는지 몰라요. 내후년이면 예순인데,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가서는 글자가 어디 눈에 들어와야지요. 그래도 자꾸 찾아서 배우려 해요. 전자상거래도 그렇고, 자격증도 그렇고. 사실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관공서 양식에 맞춰 사업계획서를 쓰고, 서류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조금씩이나마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었으면 해요. 세상이 변하는데, 농민도 농사도 옛 방식 그대로일 수는 없지요.” 그녀가 운영하는 블러그(http://blog.naver.com/pes6538)에서 읽은 마크 트웨인의 ‘앞서 가는 방법의 비밀은 시작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오랜 세월 한길을 걸어오면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온 이 부부의 ‘시작’은 현재진행형이다. 글쓴이- 소설가 서진연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13년 제2회 EBS 문학상 우수상 수상. 소설 ‘붉은 나무젓가락’, 그림동화 ‘옥상에 텃밭이 생겼어요’, 옴니버스 에세이집 ‘가족이 힘이다’, ‘수업’, ‘가족, 당신이 고맙습니다’ 등.
  • 인천시 공식 발간 시집에 창씨개명 미화한 詩 수록

    인천시 공식 발간 시집에 창씨개명 미화한 詩 수록

    인천시가 공식 발간해 학생들에게 배포한 시집에 일제의 창씨개명을 미화하는 친일시가 실려 교육계가 반발하고 있다. 인천시는 ‘2015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된 것을 기념해 인천을 배경으로 한 시와 인천 출신이 쓴 시 173편을 엮어 지난해 12월 시집 ‘문학산’을 발간했다. 시는 1500부를 찍어 인천 지역 259개 중·고교와 공공도서관, 각 기관에 배포했다. 논란이 된 작품은 시집 맨 마지막에 수록된 시인 홍명희(84·여)씨의 ‘시인의 모습’이다.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으로 바꾼 일본 이름을 예쁘다고 표현하는가 하면, 창씨개명한 선생님을 칭찬하는 문구가 나온다. ‘선생님이 창씨개명을 설명하시며/ 칠판에 靑松波氏(아오마 쓰나미요)라고 쓰셨다/ 집에 돌아가 말씀드리니 아버지도 당장 말씀하셨다/ 아 이름 한번 예쁘구나/ 너희 선생님은 시인이시구나/ 종이에다 붓으로 먹물을 찍어 靑松波氏라고 쓰며 계속 감탄하셨다/그 후 나는 인천 월미도 앞바다와 靑松波氏란 이름을 품고 시를 꿈꾸는 소녀가 되었고 지금도 선생님은 나의 시인이시다’라는 내용이다. 상당수 문학 전문가는 이 시를 창씨개명을 미화한 시로 규정했다. 인천의 한 여고 국어교사는 “창씨개명을 미화한 것 말고는 달리 해석의 여지가 없는 시”라며 “어떻게 자치단체가 공식 발간한 시집에 이런 시가 실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문제의 시가 시집에 수록된 것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보고 시집을 회수·폐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인천시가 중·고에 배포한 시집에 창씨개명 미화하는 시 수록

    인천시가 중·고에 배포한 시집에 창씨개명 미화하는 시 수록

    광복 71주년이 되는 올해 인천시가 공식 발간해 학생들에게 배포한 시집에 일제의 창씨개명을 미화하는 친일시가 실려 교육계가 반발하고 있다. 인천시는 ‘2015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된 것을 기념, 인천을 배경으로 한 시와 인천 출신이 쓴 시 173편을 엮어 지난해 12월 시집 ‘문학산’을 발간했다. 시는 1500부를 찍어 인천지역 259개 중·고교와 공공도서관, 각 기관에 배포했다. 논란이 된 작품은 시집 맨 마지막에 수록된 시인 홍명희(84·여)씨의 ‘시인의 모습’이다. 일본 강점기 창씨개명으로 바꾼 일본 이름을 예쁘다고 표현하는가 하면, 창씨개명한 선생님을 칭찬하는 문구가 나온다. ‘선생님이 창씨개명을 설명하시며/ 칠판에 靑松波氏(아오마 쓰나미요)라고 쓰셨다/ 집에 돌아가 말씀드리니 아버지도 당장 말씀하셨다/ 아 이름 한번 예쁘구나/ 너희 선생님은 시인이시구나/ 종이에다 붓으로 먹물을 찍어 靑松波氏라고 쓰며 계속 감탄하셨다/그 후 나는 인천 월미도 앞바다와 靑松波氏란 이름을 품고 시를 꿈꾸는 소녀가 되었고 지금도 선생님은 나의 시인이시다’는 내용이다. 상당수 문학 전문가들은 이 시를 창씨개명을 미화한 시로 규정했다. 인천의 한 여고 국어교사는 “창씨개명을 미화한 것 말고는 달리 해석의 여지가 없는 시”라며 “어떻게 자치단체가 공식 발간한 시집에 이런 시가 실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문제의 시가 시집에 수록된 것이 적절치 않았다고 보고 시집을 회수·폐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수백 편의 시를 대상으로 시집에 수록할 작품을 고르는 과정에서 미처 걸러내지 못한 것 같다”면서 “논란을 일으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국책연구기관장이 공식 석상에서 “천황 폐하 만세”를 3창해 논란을 일으키는 등으로 ‘친일 청산’문제가 다시 주요한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詩 르네상스 이끈 지기 그들이 토한 병든 시대

    詩 르네상스 이끈 지기 그들이 토한 병든 시대

    1980년대 ‘시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시인들이 나란히 새 시집을 냈다. 1979년 등단해 1980년대 스타 시인으로 군림한 최승자(64), 1980년에 데뷔해 단단한 서사를 품은 장시를 장기로 부려온 김정환(62) 시인이다. 이들은 문학으로 곁을 함께하면서 1980년대 출판사 홍성사에서도 같이 일한 오랜 지기다. 두 시인은 죽음의 이미지, 세계·문명에 대한 비애가 두드러지는 새 시집으로 ‘병든 시대에 대한 울화’를 드러냈다. 정신분열증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 온 최승자 시인은 5년 만에 여덟 번째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문학과지성사)를 냈다. 첫 시집의 첫 시에서부터 스스로를 ‘천년 전에 죽은 시체’라 일컬었던 시인은 과거 독하고 예리한 언어로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부정 혹은 비극의 시학’으로 이름났던 청춘을 지나 이제 그는 부운몽(浮雲夢) 같은 삶과 죽음을 굽어본다. ‘살았능가 살았능가/벽을 두드리는 소리/대답하라는 소리/살았능가 죽었능가/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고/벽을 두드리는 소리만/대답하라는 소리만/살았능가 살았능가//삶은 무지근한 잠/오늘도 하늘의 시계는/흘러가지 않고 있네’(살았능가 살았능가) ‘내 존재의 빈 감방/푸른 하늘이 떠 있지 않나요/갇혀진 감방이 아니에요/바람으로 구름으로 통하는 감방이에요/그런데도 감방은 감방이로군요’(내 존재의 빈 감방) ‘세계 전체가 한 병동’(나의 생존 증명서는)이라는 최승자의 인식은 ‘세계가 늙고 세계의 언어가 늙는다’(보유(補遺): 발굴 바벨탑 토대)는 김정환의 비관과 맥이 닿아 있다. 김정환 시인은 “시를 쓴 지난 3년간 인간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감각하게 한 일들이 많았다”며 “‘사는 게 사는 건가’, ‘살아 있는 게 맞는가’ 등 시인이란 자들이 남들보다 더 전적으로 파고들어야 하는 질문들을 곱씹은 결과”라고 했다. 새 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문학동네) 얘기다. 시집에는 ‘한 권의 시집이 한 편의 시로 여겨질’(김민정 시인) 만큼 한 호흡으로 써내려간 장시들이 묵직한 존재감을 내뿜는다. 시인은 세월호 참사를 압축한 장시 ‘물 지옥 무지개’의 참혹한 서사와 ‘우리가 당분간 유지할 것은 연민의 각도’(각도)라는 일갈은 ‘타인에 대한 감각’을 강조한다. ‘무지개 뜨지 않았다. 비가 내렸고 평소가 돌아왔다. 그래야겠지… 그런데 평소가 가장 음란한 포르노 같고, 가장 냄새나는 추문 같다.(중략) 무지개 떴다. 무지개 떴다. 여기가 물 지옥. 퉁퉁 불은 무지개 떴다.’(물 지옥 무지개) ‘우리가 사라지는 것도 모르고 사라질 수 있다./우리가 사라진 것도 모르고 사라질 수 있다./그건 차라리 낫겠지. 그때 사라지지도 못한/사람들 생각하면 생이, 잔존하는 생명이/끔찍 그 자체일 수 있다. 원전 노후,/그것은 괴물이 스스로 그러기 전에 자신을 폐해달라는 말.’(원전 노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시가 뭐꼬? 시집 낸 할매… 학춤 봤나? 춤 추는 할배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시가 뭐꼬? 시집 낸 할매… 학춤 봤나? 춤 추는 할배

     경북 칠곡은 참 낯설다. 칠곡과 관련하여 어떤 물건이나 사건 등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명소가 생각나지도 않는다. 칠곡의 위치도 대략 짐작할 뿐이다. 확인해 보니 칠곡은 대구, 구미, 김천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도시와 농촌의 복합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행에 있어서 칠곡의 테마는 ‘호국의 고장’이다. 장년층 이상의 세대들에게는 칠곡이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낙동강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라고 기억될 만 하지만 중년, 청년층에게는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겨루었던 어느 격전지보다도 먼 얘기 같다. 실제 칠곡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어서 조선시대는 물론 삼국시대에도 종종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던 칠곡이 달라지고 있다. 시(詩)와 연극, 전통춤, 이야기 등이 마을마다 스며들어 말랑말랑한 감성이 살아있는 고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해 가을 첫 시집을 펴낸 칠곡의 할머니들이다. 남계마을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칠곡의 할머니 89명이 참여해 펴낸 시집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시가 뭐고?>’가 7개월 만에 6쇄를 찍고 6500부를 판매하며 조용히 문학,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사랑이라 카이 / 부끄럽따 / 내 사랑도 / 모르고 사라따 / 젊을 때는 쪼매 사랑해조대 / 그래도 뽀뽀는 안해봣다”(사랑, 박월선)  “논에 들에 / 할 일도 많은데 / 공부시간이라고 / 일도 놓고 / 헛둥지둥 왔는데 / 시를 쓰라 하네 / 시가 뭐고 / 나는 시금치씨 / 배추씨만 아는데”(시가 뭐고, 소화자)    맞춤법이나 운율 등을 따로 배운 것도 아닐 텐데 그들이 걸어온 삶이, 현재의 생활이 고스란히 시 속에 살아있다. 글을 막 배운 아이들 마냥 평균 나이 75세의 ‘할매’들 시가 순수하다. 이러한 감성들이 시 한줄 쓰기는커녕 읽기도 힘든 요즘 사람들 가슴에 무언가 울림을 남긴다.  지난 5월 말에는 칠곡군이 주최하고 이야기경영연구소에서 운영한 ‘시 낭독 열차’가 서울역에서 칠곡군을 향해 떠났다.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넘치던 주말 약 80여명의 도시인들이, 부부시인으로 유명한 장석주· 박연준 시인과 함께 칠곡의 할머니 시인들을 만나러 갔다. 칠곡 남계마을을 대표하는 신유 장군 유적지 마당에 모여 두 시인과 할머니들이 읽어 주는 시도 듣고 남계마을의 저수지 둘레와 솔길을 가볍게 걷기도 했다. 고즈넉한 농촌 마을이 이때만큼은 유명 관광지 부럽지 않은 인기 여행지가 되었다.  칠곡의 감성은 시 뿐만이 아니다. 연극과 춤 등 장르를 넘나든다. 시인 할매들이 ‘전국구’ 스타라면 지역 스타는 연극하는 배우 할매들이다. 60~70대 할머니들이 주축을 이룬 어로리의 ‘보람할매연극단’은 2013년 창단해 지역에서 각종 공연을 갖더니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실버축제에서 최우수상을 타기도 했다. 한글을 배우면서 글맛에 이어 몸으로 표현하는 맛을 알게 된 덕분이다. 2015년에는 독자적으로 연극축제를 열기도 했다.  학상리의 할매, 할배들은 ‘학춤’을 춘다. 마을이름이 ‘학상리’인 것에서 착안해 우리나라의 대표 민속춤인 승무를 변형해 주민들 스스로 학이 되었다. 하얀 도포 입고 검은 갓을 쓰고 학이 되어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을 배경으로 추는 군무는 그 자체가 장관이다. 논 한가운데 있던 폐쇄된 보육센터를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자 외부인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카페로 개조하기도 했다. 2층 카페 테라스에 앉아 초여름 모내기를 끝낸 연초록의 들판과 가을 벼가 익어가는 황금 들판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 한 잔은 도심의 번화가에서는 누릴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칠곡이 ‘인문학 도시’를 선언한 것은 2011년부터다. 10여 년 전 주민 평생교육을 목표로 부문별 학습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던 것에서 마을마다 특정 주제를 결합하여 본격적으로 인문학 마을 육성에 앞장 섰다.  칠곡군 교육문화회관 지선영 평생교육담당관은 “주축을 이루고 있는 60~70대의 주민들은 스스로가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관통한 삶을 살아왔지만 당신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며 “특히 할머니들은 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 분 한 분이 주인공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생각으로 ‘인문학 마을’ 사업을 펼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19개 마을이 참여했고 올해 5개 마을이 추가로 ‘인문학 마을’ 사업에 참여한다. 마을의 전통 민속축제를 재현하기도 하며 옛날 빨래터에 모여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장르를 국한하지 않으니 매년 가을 ‘인문학 축제’가 열리면 볼거리는 더욱 풍성해진다.  무엇보다 칠곡의 인문학 마을이 인상적인 것은 철저히 마을에 뿌리를 두고 주민 스스로가 꾸려가는 것이다. 외부 전문가는 돕기만 한다. 시인, 배우, 선생님, 합창단, 춤 등은 ‘남의 인생’이겠거니 했는데 생각조차 못했던 늘그막에 주인공이 된 것이다. 주민들의 눈빛과 얼굴표정이 바뀌니 도시에 나갔던 자식들까지 달라졌다. 고향엔 관심조차 없던 자식들도 변화된 부모님과 고향의 모습에 열렬히 응원하며 관심을 보탠다. 세대, 지역 간의 갈등까지 저절로 줄어들고 있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 여행수첩 (지역번호 054) →함께 가볼 만한 곳: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가산에 삼중으로 축조한 성이다. 학상리 부근에 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1952년 설립된 대표적인 가톨릭 성당의 하나로 붉은 벽돌의 서양식 건물이 엄숙하면서도 아름답다.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해 조용히 돌아보는 이들이 많다. 왜관역에서 걸어서 갈 수도 있다. →맛집:어로리에선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마을 주민이자 배우들이 손수 밥상을 차린다. 왜관역 앞 우동김밥점(972-8253)은 직접 만든 김밥과 우동의 깔끔하면서도 깊은 손맛이 인상적이다. 칠곡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은 한미식당(974-0390)과 국제식당(973-5333)이다. 옛날 소스맛의 돈가스와 직접 만든 두툼한 패티의 햄버거, 돈가스 샌드위치 등을 판다.
  • ‘광명의 시인’ 기형도 문학관 착공

    ‘광명의 시인’ 기형도 문학관 착공

    요절 시인 기형도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형도문학관’ 착공식이 23일 경기 광명시 소하동 기형도문화공원에서 열렸다. 양기대 광명시장은 이날 착공식에서 “1989년 3월 7일 저녁, 동아일보 기자였던 저는 서울 광화문 술집에서 동료 기자에게 그의 타계 소식을 들었고, 일면식도 없지만 그때의 이름 석 자 ‘기형도’가 가슴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서 “광명시장이 된 후 기형도 시인이 성장한 곳이 광명시 소하동이란 것을 알게 된 뒤 지난 5년간 공무원들과 최선을 다해 기형도문학관 건립을 추진해 오늘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양 시장은 “기형도문학관이 문화 명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기형도 문학상’도 제정하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누나 기향도씨는 이날 행사에서 “젊은 시절 요절한 동생 형도가 지금 살아 있다면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시어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기형도문학관은 공사비 28억 4000만원을 투입,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조성해 내년 7월 문을 열 예정이다. 기형도는 1960년에 태어나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중앙일보 기자였던 그는 1989년 3월 7일 종로의 한 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29세였다. 유작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은 세대를 뛰어넘는 베스트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제24회 공초문학상] “시인의 삶이란 형벌이자 축복”

    [제24회 공초문학상] “시인의 삶이란 형벌이자 축복”

    ‘시인은 시에게 사로잡힌 포로이며 벌받은 사람이다.’ 나태주 시인(71)이 내린 시인의 정의다. 등단한 지 46년, 그는 왜 반세기 가까이 자처해서 벌을 받고 있는 걸까. “고통의 기쁨,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끌림 때문이었죠. 남녀의 사랑도 고통이잖아요. 제일 좋은 건 가만히 혼자 앉아 있는 거예요. 알면서도 우리는 기꺼이 사랑에 빠져들잖아요. 그처럼 시인이란 운명에 포섭된 건, 그게 평생 이어져 온 건 내게 형벌이자 축복이에요.” 열여섯에 시인이란 운명을 받아들인 것만큼 지순하고 투명한 언어로 독자들의 잔등을 쓸어준 나태주 시인. 그가 제24회 공초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공초문학상 심사위원단은 그를 “정지용, 윤동주, 박목월 등의 계보를 잇는 천진한 동심의 소유자”로 꼽았다. 속된 현실에서 인간의 본연을 깨닫게 하는 그의 시어는 공초 오상순 선생의 세계관과도 맥을 같이한다. “공초는 신문학 초기에 우리에게 좋은 발판을 놓아주신 선배이자 삶의 길을 놔주신 분이에요. 공초가 자주 하신 말씀 중에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는 말이 있어요. 누구나 만나면 그렇게 말씀하셨죠. 구상 선생이 노년에 ‘꽃자리’라는 시로 그 말을 인용하기도 하셨어요. 요즘 세상 사람들이 다 불행하다고 해요. 그런데 공초의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는 말만 기억한다면 불행할 일이 없어요. 우리네 삶이 곧 기쁨이죠.” ‘풀꽃’은 대중에게 나태주란 이름을 인장처럼 새기게 한 대표작이다. 2012년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 내걸렸던 시구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라는 시구는 지난해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글판으로 뽑혔다. 쉽고 간명한 시어지만 한 번 두 번 곱씹어 볼수록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그의 시에는 ‘위로의 힘’이 있다. “시경에 ‘동천지감귀신’이라는 말이 있어요.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을 감동시킨다’는 뜻인데 이런 역할로는 시보다 좋은 것이 없대요. 시는 따지고 비난하는 글이 아닙니다. 주먹이 창호지 문으로 푹 들어가듯이, 영혼과 영혼 사이로 불쑥 들어오는 글이에요. 괴테는 좋은 시란 어린이에겐 노래, 청년에겐 철학, 노인에겐 인생이 도는 시라고 했죠. 이런 시가 있으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란 생각으로 시를 쓰니 독자들에게 위로가 되는가 봅니다.” 이번 수상작 ‘돌멩이’도 독자들의 마음에 불쑥 그윽한 파동을 일으킨다. 시인이 백담사 내설악 골짜기를 찾았다가 자갈돌을 건지며 함께 길어 올린 시다. “맑은 물 밑에 깔린 자갈돌이 참 예뻤어요. 갈 때 하나 주워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바위 위에 하나를 건져 올려놨죠. 10여분 배회하고 돌아왔을까. 물에 젖어 반짝반짝했던 자갈이 물이 마르니 다른 돌과 똑같이 되어버렸어요. 찾을 수가 없었죠. 난감하더라구요. ‘이게 우리 사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나도 본래의 나를 잊어버리고 남과 구분이 안 되게 사는 건 아닌가’ 하고요. 시란 인생의 각성과 발견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늘 이렇게 제 생활에서 시가 뽑아져 나옵니다.” 인터뷰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도 지하철에서 시를 하나 썼다는 시인은 성실한 글쓰기, 왕성한 책내기로 유명하다. 지난 46년간 37권의 시집, 13권의 산문집, 4권의 시화집 등 94권의 책을 냈다. 편운 조병화 선생이 ‘불안해서’ 자주 책을 냈다면 그는 “살아있음을 증거하기 위해 책을 낸다”고 했다. 그의 평생은 시업과 교육으로 직조됐다.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64년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된 그는 2007년 공주 장기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단에서 물러났다. 교직 은퇴 뒤 그의 문학 인생은 더 풍요로워진 듯하다. 2014년 시 ‘풀꽃’을 기념해 세워진 공주풀꽃문학관의 관장을 지내면서 한 해 150여건의 문학 강연 요청을 소화하는 인기 강사로 전국을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잘생긴 사람이 아니에요. 못났고 늙고 가난한 사람이죠. 이런 사람한테 좋은 시로 위로해 달라는 강연 요청이 전국에서 들어옵니다. 좋은 시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과 같죠. 성별, 세대, 종교, 이념을 뛰어넘어 사람들을 쓰다듬어주는 시, 지친 마음에 꽃송이가 되어주는 시를 쓴다면 저는 죽어도 사는 목숨일 겁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나태주 시인은 ▲1945년 3월 충남 서천 출생 ▲서천중학교, 공주사범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 충남대 교육대학원 졸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대숲 아래서’로 등단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시집 ‘대숲 아래서’, ‘울지 마라 아내여’, ‘지상에서의 며칠’, ‘지금도 네가 보고 싶다’ 등 ▲현 충남 공주풀꽃문학관 관장
  • “韓日문학 가교 역할 30년… 번역은 내 인생·내 종교”

    “韓日문학 가교 역할 30년… 번역은 내 인생·내 종교”

    억대 연봉도 마다하고 번역한 책 200여권 “돈 벌기는커녕 사비 써도 우리 詩 알려 보람… 집짓기 같은 번역, 계속 설레면서 할 겁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온 게 벌써 30년이 됐네요. 돈을 벌기는커녕 사비를 쓰면서까지 우리 시를 일본에 알려 왔는데 후회는 전혀 없어요. 제 인생이자 종교였던 문학의 길을 따라온 것만도 행복합니다.” 한국과 일본 문학의 가교 역할을 해 온 한성례(61) 번역가 겸 시인의 번역 인생이 30년을 맞았다. 그는 한·일 시인 70인의 시를 모은 시선집 ‘생의 인사말’(황금알)을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최근 펴냈다. 당초 광복 70주년, 한·일 수교 50주년이었던 지난해 펴내려던 책이 뒤늦게 열매를 맺었다. 번역 인생 30년의 선물이 너무 소박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안도현 시인도 똑같은 말을 하더라”며 수줍게 웃었다. 고교 때 문예반장을 지내며 시에 빠져든 그는 1985년 세종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던 해에 처음 한·일 문학 번역에 발을 내디뎠다. 지금까지 양국에 번역 출간한 책은 200여권에 이른다. “전후 세대 문인 가운데 일본 문학 전공자가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고 알 수 없는 사명감에 휩싸였어요. 한·일 문학, 그중에서도 우리 시를 번역해 일본에 알려 ‘양국 간 무지개 다리를 놓으리라’ 결심했죠.” 사실 그는 1990년대 후반 억대 연봉을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엔지니어였다. 1975년 고교 졸업 후 당시 한국통신에 입사한 그는 1999년 문학 번역에 헌신하려고 ‘신의 직장’을 과감히 내치고 나왔다. “지금 수입은 당시의 반 토막이 났지만 일본 문단에서 한국을 ‘시의 나라’라 부르며 우리 시를 상찬해 주는 것만 해도 큰 보람과 환희를 느껴요. 국내 문학의 해외 출간을 지원하는 대산문화재단도, 한국문학번역원도 없던 시절인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 문예지에 우리 시를 알려 왔죠. 처음엔 실어 줄 계간지를 찾는 것도 힘들었는데 요즘엔 매년 계절마다 일본 전역의 10여개 계간지에 우리 시인들을 소개할 정도로 꽃을 피웠어요.” 일본 문예지에 끈기 있게 우리 시를 소개해 온 그의 노력은 일본 출판사가 우리 시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시집을 출간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올해만 해도 그는 고은, 곽효환, 김경주 시인 등의 책을 번역해 일본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시를 향한 각별한 애정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이번 시선집에서도 그는 고은, 정호승부터 김경주, 김이듬, 김선우까지 세대와 경향, 인지도와 상관없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시인과 작품을 아울러 소개했다. “번역과 집필은 집짓기와 같아요. 못 하나라도 잘못 박으면 집이 무너지죠. 특히 번역은 남의 집을 제대로 지어 주는 일이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우리만의 정서, 우리만 쓰는 단어에 부딪힐 때마다 각주를 달지 말지, 어떻게 달아야 할지 고민이 얼마나 컸나 몰라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밤새워 번역에 매달릴 거예요. 제 번역으로 서로 만나 교감할 한·일 양국의 시들에 가슴 설레면서요.”(웃음)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최고 70년 된 서울의 ‘평양냉면’ 노포(老鋪)

    최고 70년 된 서울의 ‘평양냉면’ 노포(老鋪)

    ‘냉면’의 계절이다. 냉면을 여름 음식으로 착각하지만, 그 기원은 북쪽에서 겨울에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은 것이다. 더위를 식힐 음식으로 주목받으면서 냉면은 ‘슴슴한’(심심하다는 뜻의 북한어) 육수와 거친 메밀 면이 조화를 이룬 ‘평양냉면’이 대세가 됐다. 북한 평양 인근에서 냉면집을 하던 식당 주인들이 해방과 6·25 한국전쟁을 거치며 경기 연천과 서울 등에 자리 잡으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여름 음식으로 떠올랐다. 을밀대 등 고향의 맛을 못 잊어 실향민들이 주로 찾는 서울의 대표적인 노포(老鋪)뿐 아니라 그 나름대로 노하우로 냉면의 진화를 이룬 신흥 강자들이 서로 경쟁한다. 인터넷과 SNS를 중심으로 어느 집 냉면이 더 맛있느냐를 설명하느라 치열하다. 평일 점심 때 20~30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더위를 잊게 해줄 시원한 평양냉면의 세계로 빠져보자. 우리 민족이 냉면을 먹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정확히 알 순 없지만 1843년 유만공이 서울 모습을 그린 시집 ‘세시풍속’에 ‘냉면집과 탕반(국밥)집이 길가의 권세를 잡고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조선 말기 문신 이유원의 임하필기(1871년)에 ‘순조가 초년(1800년)에 달을 감상하며 냉면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따라서 냉면은 조선시대에는 최소한 한민족과 함께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서울의 평양냉면 노포는 크게 둘로 분류된다. ‘의정부파’와 ‘평양 식당파’다. ‘평양 식당파’의 대표는 누가 뭐래도 ‘우래옥’이다. 평양에서 명월관을 운영하던 장원일씨가 1946년 서울 중구 주교동에 차린 식당이다. 서울 냉면집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암소의 엉덩이살과 다리 안쪽 살을 고아낸 진한 고기 육수가 특징이다. 본래 평양냉면은 꿩 육수에 동치미를 섞지만, 우래옥은 순수 소고기 육수를 고집한다. 육향이 너무 강해서 처음 맛보는 사람은 ‘누린내가 난다’는 표현까지 할 정도이다. 하지만, 담백하고 시원한 고깃국물 육수는 수십 년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삶은 계란을 얹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대신 채를 썬 배와 백김치가 맛을 잡아준다. 비싸기는 하지만 입에서 살살 녹는 불고기를 먹고 냉면으로 입가심하면 제격이다. 냉면 1만 2000원, 불고기(150g) 3만원. 1984년 서울 장충동에 자리 잡은 ‘평양면옥’은 실향민들이 고향 맛에 가장 가까운 집으로 꼽을 만큼 기본기가 탄탄하다.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하던 김면섭씨가 6·25 한국전쟁 직후 서울로 내려왔다. 다른 일을 하다가 1984년 며느리인 변정숙씨와 함께 장사를 시작한 곳이 평양면옥이다. 정갈하고 맑은 육수가 특징이다. 짭조름하면서 구수하다. 면을 한 입 베어 물면 메밀의 향이 그윽해진다. 냉면과 곁들이는 만두도 맛있다. 돼지고기를 비롯해 두부, 콩나물, 파가 넉넉히 들어 있으며 여자 주먹만 한 크기로 가성비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냉면 1만 1000원, 만두 1만 1000원. 서울 마포 을밀대는 평양냉면의 진화를 이룬 집이다. 평안도가 고향인 창업주 김인주씨가 1971년 문을 연 곳으로 평양냉면에 함흥냉면의 장점을 살짝 더했다. 일단 면발이 굵고 차지다. 메밀에 녹말 전분을 섞어서 전통 평양식 면발과 차이가 있다. 또 냉면의 냉(冷)이란 뜻에 가장 걸맞게 얼음이 버적버적한 셔벗 형태의 육수를 내어놓는다. 차진 면이 얼음 육수에 풀리면서 쫄깃함이 더하다. 면을 삶아 얼음물로 담그면 쫄깃해지는 식이다. 또 겉은 바삭하고 안이 촉촉한 녹두전은 별미 중 별미다. 냉면 1만 1000원, 녹두전 8000원. ‘의정부파’로 불리는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은 같은 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 후퇴 때 남쪽으로 온 평양 출신 김경필 할머니가 1969년 경기 연천에 평양냉면집을 열었다. 김 할머니의 두 딸이 서울에서 냉면집을 차렸는데 그곳이 바로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이다. 그래서 두 집은 냉면의 면과 육수 등의 특징이 같다. 이들의 특징은 고춧가루다. 냉면 위에 투박하게 올라간 고기 고명 위에 파와 고춧가루를 뿌려준다. 이상하게도 심심한 육수와 고춧가루가 잘 어울린다. 고춧가루는 메밀의 냉기를 누그러뜨리고 은근한 매운맛으로 입맛을 돋운다. 두 집 중에서도 을지면옥 손님은 70대 어르신들이다. 을지로 뒷골목의 허름한 건물에 자리한 덕분에 1970년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해서인 듯하다. 고소하면서도 슴슴한 육수가 최고이며 면의 양도 다른 곳보다 많다. 또 기름기 적당한 편육은 이 집의 특제 소스와 잘 어울린다. 냉면은 1만원, 편육은 1만 8000원.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행보가 심상찮다. 그의 배지가 등장하고, 그에 대한 ‘충성서약’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그를 이상적인 남편상으로 꼽는 찬양가도 나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개인 숭배가 최고조에 이른 1960년대 중반 문화혁명을 연상시킬 정도로 ‘용비어천가’가 넘쳐난다. 이런 흐름은 시 주석의 권력체제 확립과 궤를 같이한다. 9년 전인 2007년 제17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전만 하더라도 ‘떠오르는 샛별’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그늘에 철저히 가려 있었다. 당시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전·현 국가주석, 쩡칭훙(曾慶紅) 부주석 등 최고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극히 제한된 인사들 외에는 후계자 경쟁에서 그가 리커창을 앞설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5년 뒤 제18차 당대회에서 당총서기 및 당중앙 군사위 주석직을 한꺼번에 물려받았지만, 권력 기반이 취약해 리커창과 권력을 양분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의식한 듯 시 주석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해 권력 기반 강화에 나섰다. 당총서기 취임 직후 “호랑이부터 파리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깡그리 척결하겠다”며 사정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듬해 국가주석까지 승계한 그는 비리 관리를 대거 숙청하면서 반부패 운동의 강도를 높였다. 정부와 군, 사법, 공안 등 전방위로 이뤄진 부패척결 과정에서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과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 등 정적들을 과감히 처단해 입지를 다졌다. 이 와중에 총리의 업무인 경제까지 장악하며 독주의 가속 페달을 밟았다. 그는 총리가 맡아 온 ‘중앙재경영도소조’와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국가안전위원회’, ‘심화국방군대개혁영도소조’ 등 국가 핵심 조직의 조장을 직접 맡아 정치와 경제, 군사 등 전 분야를 총지휘하고 있다. 반부패 운동에 박수를 보내는 중국인들의 지지에 편승해 정적을 제거함으로써 권력 기반을 닦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올해 초부터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당서기가 충성 서약을 하는 등 ‘시 총서기를 영도(領導) 핵심으로 드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인민일보와 중국중앙방송(CCTV), 신화통신 등 3대 관영매체는 ‘당매성당’(黨媒姓黨·당의 매체는 성씨가 당이다)을 강조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한 시짱 대표단은 시 주석의 사진이 들어간 배지를 달고 나타났다. “시집가려면 ‘시다다’(習大大·시진핑 삼촌) 같은 남자를 만나라”며 그를 이상적인 남편상으로 부각하는 가요가 유행했다. 지난 8일에는 언론·사상을 총괄하는 당중앙선전부에 충성교육을 강화하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그의 ‘개인숭배’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시진핑 1인 독주 체제는 마오의 절대 권력에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한 집단지도체제를 허물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다. 권력은 안 되는 일도 되게 하고, 되는 일도 안 되게 하는 무소불위의 힘이다. 권력은 법치와 충돌하고 부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권력과 부패는 이란성 쌍둥이다. 이런 속성을 가진 권력, 특히 절대 권력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다. 영국 역사학자 존 액턴은 일찍이 이렇게 갈파했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khkim@seoul.co.kr
  • [톡! 톡! talk 공무원] ‘커피 시인’ 윤보영 복지부 오송생명과학단지 지원총괄팀장

    [톡! 톡! talk 공무원] ‘커피 시인’ 윤보영 복지부 오송생명과학단지 지원총괄팀장

    ‘커피에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네요. 아, 그대 생각을 빠뜨렸군요.’ 시에서 달콤 쌉싸름한 커피향이 난다. 그윽한 커피향과 그리움이 단 두 문장에 담겼다. 윤보영 보건복지부 오송생명과학단지 지원센터 지원총괄팀장의 시 ‘커피’다. 그는 ‘공무원’ 윤보영보다 ‘커피 시인’으로 더 잘 알려졌다. 복지부 내에서도 윤 팀장이 ‘윤보영 시인’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200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지금까지 12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7만명의 팔로어가 있는 ‘SNS 스타’이기도 하다. SNS에 시를 올리고 독자와 소통한다. ‘12월의 선물’과 ‘가슴에 내리는 비’, 이 두 편의 시는 1000만명이 조회했다. “사람들이 매일 제 새로운 시를 읽고 행복해해요. 그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저 역시 행복하고요. 지난 15일 충북 오송생명과학단지에서 만난 윤 시인은 시 ‘커피’를 직접 낭송해 주며 이렇게 말했다. 무뚝뚝한 인상이지만 시를 낭송할 땐 천생 시인의 표정이다. 커피 시인이란 별명을 얻게 된 건 2013년부터 커피에 대한 시만 1300여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SNS에 커피 관련 시를 한 편씩 올리겠다고 독자들과 약속했는데, 아침저녁으로 시를 쓰다 보니 어느새 1300여편이 됐다. 커피를 좋아해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했다. 윤 시인의 시는 90% 이상이 짧다. 시는 어려울 필요가 없으며 독자들이 읽었을 때 ‘아, 맞아 나도 이런 적 있어’라고 공감할 수 있어야 좋은 시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시 낭송회를 하며 독자들과도 자주 만난다. “한 독자가 암 수술을 앞두고 있었는데 딸이 제 ‘네잎클로버’라는 시를 들려주고선 ‘엄마는 우리 희망이야’라고 말했대요. 수술을 받으며 그 시를 생각했고 잘 견뎌 암을 극복했다며 제게 편지를 보내온 적도 있어요.” 한글을 몰랐던 70대 독자가 그의 시 낭송을 듣고선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며 한글을 배운 일도 있었다. 이 독자는 1년 만에 한글을 다 배우고 곧 자신의 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윤 시인은 복지부 공무원을 하다 시인이 됐다. 2000년 친형에게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시를 선물했는데, 형이 시를 읽고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시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누구나 시인으로 살 수 있도록 감성 자극이 필요한 이들과 치유가 필요한 분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재능 기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송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현장 행정] 시끌벅적 도서관, 우리동네 사랑방

    [현장 행정] 시끌벅적 도서관, 우리동네 사랑방

    “언제든지 누구나 오셔서 편히 쉬다 가시면 됩니다. 책을 읽어도, 얘기를 나눠도, 속내를 털어놓아도 좋아요.”(김인희 하늘샘 작은도서관 명예관장)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로 천연동에는 작은 도서관이 자리한다. 165㎡의 공간에 5600여권의 장서와 열람실, 회합실 등을 갖췄다. ‘하늘샘 작은도서관’으로 불리는 이곳은 천연동 보건분소 한쪽을 떼어내 2012년 7월 문을 열었다. 도서관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불을 밝힌다. 주말인 토요일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문을 연다. 갈 곳 없는 주민들을 위해서다. 낡았지만 깨끗한 시설물 곳곳에선 당장이라도 향기가 뿜어져 나올 듯하다. 울긋불긋 매트 위에 놓인 허름한 좌식 책상들이 전부지만 발을 들인 사람은 누구나 불평 없이 책으로 손을 뻗는다. ‘으악! 늦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같은 유아·초등학교 서적부터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기시미 이치로 등이 지은 ‘미움받을 용기’ 같은 성인 책까지 어느새 손길이 바빠진다. 여느 지역 도서관과 다를 바 없는 이 평범한 도서관이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서대문구 최초의 주민주도형 자치도서관인 덕분이다. 지역 독서모임 ‘책뜨레’ 회원 6명은 이달부터 하늘샘 작은도서관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명예관장과 명예 사서를 나눠 맡았다. 모두 자원봉사자다. 혼자 책 읽는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은 어른들을 위해 ‘학부모 독서클럽’을 만들고 어린이집 원아들을 위한 ‘작은도서관 견학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회합실에선 가족과 친구, 동호회원들이 어울려 왁자지껄하며 생일잔치도 열 수 있다. 지난 10일 도서관을 찾았을 때 방문객을 처음 맞은 것도 캘리그래피(멋글씨)를 쓰던 40~50대 아주머니 예닐곱 명이었다. 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듯 떠들썩하게 얘기를 나눴다. “까르르” 하며 웃음도 터져 나왔다. 올해 53세인 김 명예관장은 “구청에서 이곳을 운영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무척 망설였다”고 말했다. 21세 때 천연동으로 시집 온 그는 장성한 아들과 딸을 뒀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이곳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사랑방 같은 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돈의문 뉴타운 맞은편에 자리한 천연동은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곳이다. 1990년대 말 대규모 재건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으나 바로 옆에는 여전히 원조떡볶이집 등으로 유명한 영천시장이 공존한다. 인근 신촌과 달리 대표적인 낙후 지역으로 꼽힌다. 자원봉사자인 30~50대 명예 사서들은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자”며 김 명예관장과 뜻을 같이했다. 남은경(40) 명예 사서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선생님’ 하고 부르며 달려올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현재 이곳 이용객은 하루 30~40명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서대문구는 주민주도형 작은 도서관을 확대할 계획이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이곳이 마을공동체의 거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면서 “다른 관내 11개 도서관도 주민주도형으로 바꿔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호준 시간여행] 완행열차와 함께 떠난 것들

    [이호준 시간여행] 완행열차와 함께 떠난 것들

    해마다 6월이면 기차 여행을 떠난다. 녹음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계절, 산천은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른다. 들판을 열어젖히며 달리는 기차의 창을 스치는 풍경은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지. 이 무렵에는 자동차보다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 훨씬 행복하다. 산들은 금방 머리를 감고 나온 새댁처럼 싱그럽고 강물은 노래하며 완보(緩步)로 흐른다. 강둑에는 미루나무 여린 잎들이 바람 따라 깔깔거리며 몸을 뒤챈다. 낮은 언덕에는 예배당 종탑이 우뚝 서 있다. 가슴을 활짝 열어젖히면 뎅뎅 푸른 종소리가 들판을 달려와 안길 것 같다. 간이역에서 내려 가르마처럼 뻗은 논길을 걸어가면 산 아래 낮게 엎드린 집에서 허리 굽은 어머니가 마중 나올 것 같다. 기차가 시골 역에 들어서면 사람 사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주름이 깊어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노인 하나가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 열차가 서고 젊은 여인과 서너 살 정도 먹어 보이는 아이가 내린다. 노인의 얼굴에 순식간에 환한 꽃이 피어오른다. 고단으로 찌든 삶 어디에 저런 미소가 숨어 있을까. 시집간 딸과 손자가 다니러 온 모양이다. 할머니를 발견한 아이가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달려간다. 노인도 마주 달려간다. 걸음이 둔할수록 상봉의 감동은 웅숭깊다. 만남이 있는 곳에는 헤어짐도 있기 마련. 아빠와 엄마, 그리고 꼬마 형제가 기차에 오른 뒤 플랫폼에는 노인만 남았다. 노인은 떠나는 자식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든다. 화살처럼 내리꽂히는 뙤약볕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손짓마다 이별의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하지만 얼굴 가득 피어난 미소는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 6월의 여행은 가능하면 천천히 달리는 기차를 타고 간다. 역마다 서는 기차라야 제맛이 난다. 검은 연기를 내뿜던 증기기관차는 퇴역한 지 오래고 완행열차 자체가 시간의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그 이름에 담긴 그리움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시골 풍경 속을 지나다 보면 완행열차가 누비던 날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때의 기차는 민초들의 기쁨과 아픔까지 싣고 오갔다. 돈벌이를 찾아 도시로 가는 처녀도, 푸른 꿈을 품고 서울로 가는 청년도 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났다. 그 시절의 완행열차는 요즘의 기차처럼 안락하지 않았다. 자리 하나에 여럿이 끼어 앉기도 하고 통로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으면 그게 내 자리였다. 시큼한 땀 냄새와 억센 사투리도 함께 길을 떠났다. 손수건에 싸 온 삶은 달걀을 나눠 먹고 사이다 하나로 여럿이 갈증을 달래기도 했다. 그런 풍경 역시 옛날이야기가 됐다. 속도 경쟁에서 밀려 소박한 삶을 실어 나르던 열차도, 정겹던 풍경도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빠르게 달리는 세상이 어지럽다. 분침과 초침에 쫓기는 삶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달려야 하는 일상 속에서는 나 자신조차 들여다볼 기회가 없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속의 부품으로 전락한 채 한세상을 쫓기다 갈 뿐이다. 천천히 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한발 비껴나 본래의 나를 찾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완행열차다. 그 열차 어딘가에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꿈이 길게 누워 있을 것 같다. 6월이면 느리게 달리는 기차를 타는 이유다. 시인·여행작가
  • 詩 사는 공간 아닌, 詩 얻는 공간 되길

    詩 사는 공간 아닌, 詩 얻는 공간 되길

    만남과 헤어짐, 도착과 떠남이 매일 교차하는 서울 신촌 기차역 앞에 ‘시의 공간’이 움튼다. 시단의 현재를 이끄는 젊은 시인 유희경(36)이 차리는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다. 그가 시집 서점을 낸다는 소식은 문인들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미 소문이 왁자하다. 새달 7일 오픈에 앞서 2일 열리는 김소연 시인의 시 낭독회는 유료지만 이미 매진이다. ‘어쩌자고 시집 서점을 차렸냐’는 질문에 시인은 공감의 웃음을 터뜨리며 “어쩌자고”란 말을 되뇌었다. 착상은 지난해 여름부터였다. “편집자 생활을 9년 했는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놀 순 없고 글을 쓰면서 재미있는 걸 해보자 했더니 할 줄 아는 게 시밖에 없더라구요. 박준 시인에게 처음 얘기했더니 ‘나는 시집 리어카를 해보고 싶었다’며 웃더라고요. ‘상업적으로 오래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성실히 잘 가꾸면 형한테 많은 게 남을 것 같다’고요. 빚만 남지는 않겠죠.”(웃음) 문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용기 있는 결정”, “편이 되어주겠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시인들이 좋다고 해서 용기는 많이 얻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인들이란 돈 셈을 못 하니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더라구요(웃음). 지금 워낙 관심이 많아서 한두 달은 잘될 것 같은데 저는 2년 정도 봐요. 회의적인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다 쏟아붓겠다는 각오죠. 시를 ‘사는’ 공간이 아니라 시를 ‘얻어가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바람이에요. 안 망할 순 없을 것 같고(웃음) 신촌 향레코드처럼 누군가에게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됐으면 해요.” ‘위트 앤 시니컬’이란 서점 이름은 그가 대표로 있는 시 잡지 ‘눈치우기’ 멤버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다. “제가 발음이 좋지 않아요. 한번은 제가 ‘위트 있는 시’라고 말했더니 하재연 시인이 ‘위트 앤 시니컬이 뭐야’라고 되물어서 우리끼리 깔깔대다 헤어졌죠. 명사와 형용사의 조합이라 문법적으로는 오류예요. 하지만 모든 시가 위트(재치)와 시니컬(냉소적)이라는 성정을 갖고 있잖아요. 마음에 들었죠.” 요즘 일부 시집이 잘 팔리는 추세를 미리 짚은 것일까. 시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대형 서점에 가면 팔리는 시집만 눈에 띄는 매대에 나와 있고 오히려 서가에 꽂혀 있는 시집 권수는 대폭 줄었다”면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복합문화공간 카페 파스텔 안에 자리잡은 3평짜리 서점에는 2000여권의 시집이 채워진다. 매대의 주제는 외국시집 특별전, 시인의 첫 시집 등 늘 생동감 있게 바뀔 예정이다. 감각 있는 시인이자 눈 밝은 편집자가 그려주는 시의 지도, 시의 무늬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은 젊은 시인들의 시집만 찾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이 읽었던 시는 선배들의 시거든요. 그래서 ‘시의 계보’를 큐레이팅 해보려고요. 나만 알고 있고 숨겨놓고 싶은 보석 같은 시집들,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 같은 대형 문학 출판사뿐 아니라 작은 출판사들이 펴낸 희소한 외국 시집들, 제대로 발굴 안 되거나 지금은 팬덤이 사그라져 찾지 않는 좋은 시집들…. 절판된 것도 많아서 중고책방을 열심히 뒤질 생각이에요. 제일 빨리 들여놓고 싶은 건 절판된 성석제 소설가의 시집 2권이에요. 매대를 보면 저뿐 아니라 시인들이 추천하는 시집들을 짚어볼 수 있을 거예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사진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 “시 사는 공간 아닌 시 얻어가는 공간으로”

    “시 사는 공간 아닌 시 얻어가는 공간으로”

     만남과 헤어짐, 도착과 떠남이 매일 교차하는 서울 신촌 기차역 앞에 ‘시의 공간’이 움튼다. 시단의 현재를 이끄는 젊은 시인 유희경(36)이 차리는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이다.  그가 시집 서점을 낸다는 소식은 문인들의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미 소문이 왁자하다. 새달 7일 오픈에 앞서 2일 열리는 김소연 시인의 시 낭독회는 유료지만 이미 매진이다. ‘어쩌자고 시집 서점을 차렸냐’는 질문에 시인은 공감의 웃음을 터뜨리며 “어쩌자고”란 말을 되뇌었다. 착상은 지난해 여름부터였다.  “편집자 생활을 9년 했는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놀 순 없고 글을 쓰면서 재미있는 걸 해보자 했더니 할 줄 아는 게 시밖에 없더라구요. 박준 시인에게 처음 얘기했더니 ‘나는 시집 리어카를 해보고 싶었다’며 웃더라고요. ‘상업적으로 오래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성실히 잘 가꾸면 형한테 많은 게 남을 것 같다’고요. 빚만 남지는 않겠죠.”(웃음)  문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용기 있는 결정”, “편이 되어주겠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시인들이 좋다고 해서 용기는 많이 얻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인들이란 돈 셈을 못 하니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더라구요(웃음). 지금 워낙 관심이 많아서 한두 달은 잘될 것 같은데 저는 2년 정도 봐요. 회의적인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걸 다 쏟아붓겠다는 각오죠. 시를 ‘사는’ 공간이 아니라 시를 ‘얻어가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바람이에요. 안 망할 순 없을 것 같고(웃음) 신촌 향레코드처럼 누군가에게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됐으면 해요.”  ‘위트 앤 시니컬’이란 서점 이름은 그가 대표로 있는 시 잡지 ‘눈치우기’ 멤버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다. “제가 발음이 좋지 않아요. 한번은 제가 ‘위트 있는 시’라고 말했더니 하재연 시인이 ‘위트 앤 시니컬이 뭐야’라고 되물어서 우리끼리 깔깔대다 헤어졌죠. 명사와 형용사의 조합이라 문법적으로는 오류예요. 하지만 모든 시가 위트(재치)와 시니컬(냉소적)이라는 성정을 갖고 있잖아요. 마음에 들었죠.”  요즘 일부 시집이 잘 팔리는 추세를 미리 짚은 것일까. 시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대형 서점에 가면 팔리는 시집만 눈에 띄는 매대에 나와 있고 오히려 서가에 꽂혀 있는 시집 권수는 대폭 줄었다”면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복합문화공간 카페 파스텔 안에 자리잡은 3평짜리 서점에는 2000여권의 시집이 채워진다. 매대의 주제는 외국시집 특별전, 시인의 첫 시집 등 늘 생동감 있게 바뀔 예정이다.  감각 있는 시인이자 눈 밝은 편집자가 그려주는 시의 지도, 시의 무늬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은 젊은 시인들의 시집만 찾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이 읽었던 시는 선배들의 시거든요. 그래서 ‘시의 계보’를 큐레이팅 해보려고요. 나만 알고 있고 숨겨놓고 싶은 보석 같은 시집들,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 같은 대형 문학 출판사뿐 아니라 작은 출판사들이 펴낸 희소한 외국 시집들, 제대로 발굴 안 되거나 지금은 팬덤이 사그라져 찾지 않는 좋은 시집들?. 절판된 것도 많아서 중고책방을 열심히 뒤질 생각이에요. 제일 빨리 들여놓고 싶은 건 절판된 성석제 소설가의 시집 2권이에요. 매대를 보면 저뿐 아니라 시인들이 추천하는 시집들을 짚어볼 수 있을 거예요.”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문학계 어른’ 3인이 발굴한 시인들

    ‘문학계 어른’ 3인이 발굴한 시인들

    시 몇 편으로 한 시인의 내공과 문학적 지도를 가늠할 수 있을까. 문단에 진입하는 주요 통로인 신춘문예와 문예지의 등단이 이뤄지는 방식이다. 이에 황현산 문학평론가, 김혜순, 김정환 시인 등 문학계의 큰어른 3인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등단 여부와 상관없이 시집 한 권 분량의 시로 될성부른 시인을 가려내겠다는 것. 그리고 엄정한 판단을 거친 시인을 세상에 소개하겠다는 것이다. 시작을 알린 건 2013년 7월이었다. 이후 시집선의 기획위원인 황현산 평론가와 김혜순, 김정환 시인은 3년간 매달 한두 차례씩 모여 투고된 시들을 읽어 나갔다. 지원자는 지금까지 200여명. 한 사람당 50~60여편으로 이뤄진 원고를 보낸 만큼 이들이 읽은 시집은 200여권에 이른다. 기획위원들의 눈에 들어온 작품들은 평을 붙여 주인에게 반송했다. 고쳐 보내온 시들은 또다시 심사대에 올렸다. 최근 출간된 삼인 시집선 1·2권의 탄생 배경이다.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는 유진목(35)의 ‘연애의 책’, 경기 안성에서 소를 키우는 조인선(50)의 ‘시’다. 첫 권을 꿰찬 유진목 시인은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한 적이 없는 ‘생짜 시인’이다. 문학과지성사를 패러디한 문학과죄송사에서 펴낸 시집 ‘강릉 하슬라 블라디보스토크’가 문학적 이력의 전부다. 제도권의 굴레에 얽히지 않아서일까. 그는 감각적이고 대담한 시어들로 능수능란한 언어유희를 펼치며 “한국 최고의 연애시”(황현산 평론가)들을 빚어냈다. 조재룡(고려대 불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는 시집을 가리켜 “아직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연애시”라며 “매우 뛰어난 방식의 사랑에 대한 기술(記述)이자 연애의 마음을 눅눅하게 받아 적은 필사의 기록으로, 끝내 당신을 죽인다”고 평했다. ‘시옷에서 이응까지 선 채로 포개었다가 아득히 눕는 이야기 보드라운 바람이 창문을 넘어오고 눈부신 커튼이 사샤 서셔 소쇼 수슈 스시 우리는 동그랗게 아야 어여 오요 우유 으이 가느다란 입술이었다가 오므린 입술이었다가 벌어진 입술로 누워 있는 사이 속옷을 아무렇게나 벗어서 발끝에 거는 사이’(사이) 황현산 평론가가 “한국에서 자생한 초현실주의 작가”라는 찬사를 보낸 조인선 시인은 1993년 첫 시집 ‘사랑살이’를 시작으로 다섯 권의 시집을 냈지만 소를 키우는 농민으로 생업을 이으면서 잠시 시업을 중단했다. 따라서 이번 시집 ‘시’는 그가 다시 시인으로 발을 내딛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삶이 엿보이는 많은 시편이 ‘시’를 향해 간절히 손을 뻗고 있다. ‘시’라는 같은 제목의 시만 다섯 편에 이른다. 구제역으로 키우던 소를 구덩이로 내던지면서는 “언어는 왜 그리 매혹적인지/빈 축사에 들어서면/텅 빈 말씀이 가득했다”고, 닭 모가지를 따며 ‘다시는 짐승처럼 태어나지 말라’는 베트남 아내의 말에선 “감각은 그렇게 응축되고 결정화된다”고 읊는다. ‘속이 꽉 찬 배추는 문자를 닮았다/튼실한 놈일수록 속이 익었다/언어를 향한 바람의 깊이마저 다른지/칼로 쳐봐야 피 한 방울 없지만/배추 몸통 하나의 무게가 온전히 시 한 편이다/뿌리가 보잘것없다고 탓하지 말라/그것이 자연이라면/농부의 마음이라면/도박 아닌 인생 없고 팔자 아닌 운명 없다’(뿌리에게)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또 오해영’ 에릭, 서현진 도시락 꼭 껴안고 아련 눈빛 “짠해서 어쩌나”

    ‘또 오해영’ 에릭, 서현진 도시락 꼭 껴안고 아련 눈빛 “짠해서 어쩌나”

    ‘또 오해영’ 에릭의 ‘짠내 나는’ 비하인드컷이 공개됐다.25일 tvN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박도경님께 5첩 도시락이 도착하였습니다. 맛있게 먹었다고 왜 말을 못해. 부끄럼쟁이. 일년에 두 번 청첩장도 괜찮아요. 사위사랑은 장모님. 해영이 시집보내기 대작전”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사진에서 에릭(박도경)은 지난 23일 방송된 ‘또 오해영’ 7회에서 서혀진(오해영)에게 받은 도시락을 껴안고 있다. 특히 짠내 나는 아련한 에릭의 눈빛이 팬들의 시선을 끌었다.이에 네티즌들은 “에릭 존잘 서현진 존예”, “둘이 짠해 죽겠다”, “다음주 언제와요”등 반응을 보였다.한편 에릭, 서현진 등이 출연하는 tvN ‘또 오해영’은 매주 월, 화 오후 11시에 방송된다.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공희정 컬처 살롱] 늦지 않았어요

    [공희정 컬처 살롱] 늦지 않았어요

    누가 정해 놓았을까, 꽃이 피는 순서를. 어떻게 알았을까, 봄이 가면 여름이 와야 한다는 것을. 가끔은 오고 가는 것이 바뀌면 어떨까. 사람들은 기상이변이라 걱정하지만 순서가 흔들린 올봄이 한편으로는 지루했던 일상을 깨워 주는 듯했다. 한꺼번에 피어난 꽃은 매일매일을 황홀한 천국으로 만들어 주었고, 때 이른 폭염은 서둘러 여름을 준비하게 해 주었다. 습관처럼 해 오던 것에서 벗어나는 순간 의외의 기쁨과 지혜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배우 김영옥은 요즘 랩을 한다. 욕쟁이 할머니 연기를 했던 전력이 있긴 하지만 여든의 그녀가 쏟아내는 랩은 놀라웠다. 실력파 래퍼 딘딘, 주헌 등과 호흡을 맞춘 그녀는 래퍼가 된다는 것이 어쩌면 인생 마지막 도전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고 한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험을 즐겼다. 스튜디오에서 시작한 랩은 젊은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강남의 클럽을 거쳐 대학 축제 무대까지 점령했다. “연기가 내 몫, 연기가 내 솔, 연기를 위해서, 죽이고 살리지.” 보통 노래보다 10배나 어려웠다는 랩을 배워 노래하는 그녀는 20대의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소리 질러.”, “같이 노래해.”, “놀아 놀아.” 손을 높이 올리며 군중을 향해 외치는 그녀의 얼굴은 빛났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노인이 되지만, 그 흐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인생의 관망자(觀望者)가 아니라 스스로 주인공이 돼 주어진 시간을 끝까지 이끌고 가는 것, 역시 주도적 삶은 아름다웠다. 여든 넘은 그녀의 도전을 주책이라며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랩은 그녀의 인생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녀의 도전이 멋있다. ‘황혼기 청춘들의 인생찬가’라는 부제가 붙은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예순이 넘었다. 그중 정아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나문희는 세계여행을 꿈꾸는 일흔둘의 엄마로 나온다. 시집오던 날부터 머리채 휘어잡으며 구박하던 시어머니와 옹졸한 짠돌이 남편, 길러 출가까지 시켜야 했던 여섯 명의 시동생과 시누이들. 딸 셋도 모두 결혼시켰는데 이번엔 친정엄마가 치매란다. 엄마의 요양원 비용을 벌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일을 한다. 식구들을 위한 오랜 희생이 벅찼지만 그녀를 지탱해 준 것은 자신만을 위한 꿈이었다. 멋진 자동차 타고 스카프 휘날리며 세계를 누비는 상상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했다. 세계여행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시청하고, 관련 자료를 차곡차곡 모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자동차 운전면허도 손에 쥐었다. 길 위에서 죽는다 해도 평생 소원했던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온 의미는 충분했다. 사실 오랫동안 익숙해진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그래서 노년의 도전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젊은 시절보다 현격히 떨어진 체력과 지력은 늘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하고, 나잇값 못한다고 할까봐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춤거리는 사이에 봄여름가을겨울은 순서대로 지나가고, 꽃들도 피었다 지길 수없이 반복한다. 그리고 꿈을 잊은 채 노인이 되어 간다. 그런데 요즘 텔레비전이 자꾸만 이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늦지 않았다고. 자신의 꿈을 향해 한발 내디뎌 보라고. 그 멋진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드라마 평론가
  • 열애설 박한별, 유진·기태영 딸 ‘로희’에 애정 듬뿍 “연애하니 부럽나”

    열애설 박한별, 유진·기태영 딸 ‘로희’에 애정 듬뿍 “연애하니 부럽나”

    23일 박한별 열애설이 화제인 가운데 과거 일상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최근 박한별은 인스타그램에 “몇일 전, 얼굴이 반쪽(?)된 순둥이 로희 천사랑. 사랑 가득한 유진 언니 집”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렸다.사진에서 박한별은 유진, 기태영 부부의 딸 로희와 셀카를 찍고 있다. 로희의 깜찍한 표정과 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박한별의 모습이 시선을 끌었다.이에 네티즌들은 “언니도 얼른 시집가세요”, “천사들 인가요”, “로희 너무 귀엽다”등 반응을 보였다.한편 이날 박한별이 1살 연하의 사업가와 4개월째 교제 중이라는 열애설이 제기됐지만,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