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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항 가스公 본부장 첫 시집

    이제항 가스公 본부장 첫 시집

    이제항(57) 한국가스공사 강원지역본부장이 늦깎이로 첫 시집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4일 가스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강원지역본부장으로 부임한 이 본부장은 종합문예지 지필문학 제36회 신인공모전 시 부문에 당선돼 지난 6월호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후 공기업 고위직으로는 드물게 첫 시집 ‘삶 속에 흐르는 노래’를 펴냈다.
  • 쿠바 ‘호세마르티 특별상’ 받아

    쿠바 ‘호세마르티 특별상’ 받아

    오영호(62) 코트라 사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쿠바에서 한·쿠바 경제 협력과 문화 교류에 이바지한 공로로 ‘호세마르티 특별상’을 받았다고 코트라가 3일 밝혔다. 이 상은 쿠바 독립을 이끈 시인이자 문화혁명가인 호세마르티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오 사장이 처음이다. 코트라는 “쿠바와 무역 확대 사업을 추진하면서 ‘내조의 여왕’, ‘시크릿가든’, ‘대장금’ 등 한국 인기 드라마를 전파하는 등 문화 교류에 기여한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 ‘카톡 검열논란·세월호 시위’ 여대생 재판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집회에 참여했던 대학생과 시인 등이 불법 시위를 벌인 혐의로 잇따라 재판에 넘겨졌다. 대학생의 경우 세월호 관련 침묵 시위를 처음 제안하고 ‘카카오톡 검열 논란’을 점화시킨 주인공 중 한 명이라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동주)는 일반교통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대학생 용혜인(24·여)씨를 불구속 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용씨는 지난 5월 18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침묵 행진 ‘가만히 있으라’를 기획해 서울 도심 일대에서 집회를 벌였다. 검찰은 용씨가 사전 신고한 집회 종료 시간인 오후 7시를 넘겨 집회를 계속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용씨가 그때까지 남아 있던 150여명과 함께 집회 장소를 벗어나 광화문 방면 차도로 나아가는가 하면 인근 교통섬과 횡단보도를 점거해 시민과 차량 통행에 불편을 끼쳤다는 것이다. 용씨는 경찰의 집회 종결 선언에도 불응하고 오후 10시쯤까지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연좌시위를 이어 갔다. 용씨는 또 6월 10일 청와대 만민대회와 같은 달 28일 2차 시국대회 행진에서도 도로를 점거하는 등 교통을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용씨는 최근 정진우(45) 노동당 부대표와 함께 ‘사이버 검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불법 시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이 용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통상적인 압수수색 절차라고 선을 그었지만 인권단체와 진보 성향 시민단체 등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부 국정감사에서도 야당 의원들은 용씨의 사례를 예로 들며 “세월호 침묵 시위를 제안한 대학생의 카톡까지 털리고 있다”고 검찰 수사를 비판한 바 있다. 정 부대표가 주도한 ‘5·8 청와대 만민공동회’에 참석한 시인 송경동(47)씨도 기소됐다. 집회 시간이 지난 뒤 참가자 40여명과 함께 집회 장소를 이탈해 행진하며 세 차례에 걸친 경찰의 해산 명령에도 응하지 않고 차량 교통을 방해한 혐의다. 같은 달 24일에도 또 다른 세월호 추모 집회에 참석해 차량 통행을 방해하고 해산 명령에 불응한 혐의도 추가됐다. 앞서 송씨는 정 부대표와 함께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한 희망버스 캠페인을 기획했다가 2012년 함께 구속되기도 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조영선 변호사는 “국가의 총체적인 무능과 부실, 부패 문제에서 비롯된 시위 집회로 참작할 만한 여러 상황이 있는데도 공안적 시각에서 보복적으로 기소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백석문학상에 전동균 시인

    백석문학상에 전동균 시인

    제16회 백석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전동균(52)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시집 ‘우리처럼 낯선’(창비)이다. 전 시인은 1986년 ‘소설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오래 비어 있는 길’ ‘함허동천에서 서성이다’ ‘거룩한 허기’ ‘우리처럼 낯선’ 등을 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고(故) 김영한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년 10월 제정됐다. 최근 2년 내에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한다.
  • 텅 빈 종이위 ‘감성 터치’… 펜 대신 ‘붓’으로 말하다

    텅 빈 종이위 ‘감성 터치’… 펜 대신 ‘붓’으로 말하다

    “서울대 다니던 시절, 시화전을 열면서 ‘지하’라는 필명을 썼죠. 그런데 나중에 성명학자가 ‘거의 매일 감옥에 드나들겠군” 하더군요.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영일(英一)이란 본명을 직접 그림에 사용합니다.” 시인 김지하(73)는 1970~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저항의 상징이었다. 청년들은 그의 글귀를 읽으며 절대 권력에 반하는 자유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언젠부터인가 그는 세상을 겉돌고 있다. 말투는 한층 어눌해졌고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호통을 치기 일쑤다. “농성하는 노조원들의 확성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스스럼없이 불평할 만큼 예전 ‘민주투사’ 이미지를 벗은 지도 오래다. 매섭고 날카로운 작가의 옛 필체를 떠올리는 이라면 낙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신 작가는 요즘 텅 빈 종이 위에 평생의 발자취를 드리우며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 장모인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별세한 2008년 이후 부인인 김영주 토지문학관 대표와 함께 강원 원주에 눌러 앉았다. 조금 여유를 되찾은 뒤로는 원주를 중심으로 철원·영월, 충북 제천·충주, 경기 여주·이천까지 전국을 돌며 수묵 산수화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그린 산수화가 벌써 수백점. 자연의 울림과 나름의 감수성을 조화시킨 그림 100여점을 꼽아 오는 8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생애 첫 산수화전을 연다. 전시에는 ‘김지하의 빈산’이란 제목이 따라붙었다. 실체에 몰입하려는 노력 덕분인지 작가의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활짝 핀 모란과 매화, 난이 엿보인다. 금세라도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후드득 날아갈 만큼 생생하다. 또 눈보라 속에 피어나는 한매(寒梅)는 작가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어머니는 참 독한 여자였어요. 어려서 그림에 워낙 관심이 많았던 터였는데, 환쟁이가 되면 배고프다며 불과 네댓살짜리 아들의 두 손을 꽁꽁 묶어 놓았을 정도죠. 그래도 발가락에 숯을 끼우고 회벽에 꽃과 새를 그렸어요.” 늦게나마 화가가 된 이유도 독특하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서울대 미학과는 문리대가 아닌 미술대 소속이었죠. 동·서양화는 물론 사군자, 데생을 한꺼번에 배울 수 있다는 선배의 꼬드김에 넘어가 입학했어요. 결국 세월이 지나 그림 그리기 소원을 푼 것이죠.” 다시 붓을 든 것은 1980년대 출옥 후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조선시대 선비들의 놀이일 따름이었다”고 낮춰 보던 난초 그리기에 맛을 들였다. 이후 경치 좋은 시골로 내려간 뒤로는 주변 산수를 그리기 시작했다. “전남 목포가 고향이라 바다를 무척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바다의 시작은 산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설명이 따랐다. 이번 전시에선 진분홍빛이 감도는 모란꽃 그림도 접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작가의 외가 뒤뜰에 피었던 꽃으로 그 옅은 붉은색을 늘상 동경해 왔다고 한다. 그림마다 시인은 ‘모심’이란 낙관을 찍었다. 모시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작가는 “그림을 팔아서 우리 집사람에게 새 차 한 대 사주려 한다”며 웃었다. 그저 핑계일까. 그토록 희망했던 그림으로 여생을 메우고 싶다는, 완곡한 표현은 아닐까.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손편지와 느린 우체통/정기홍 논설위원

    춘향전에 ‘행인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 구절이 나온다. 서간(書簡), 즉 편지를 보내려다가 행여 할 말을 다 못하고 보낸 듯해 봉투를 다시 뜯어 본다는 뜻이다. 어사 이몽룡이 남원으로 내려가다 춘향의 서간을 허리춤에 차고 한양으로 가던 어린 심부름꾼을 만나는 과정에서 한 말이다. 당나라 시인 장적(張籍)의 ‘부공총총설부진(復恐???不盡) 행인임발우개봉(行人臨發又開封)’에서 따와 인용했다.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해 옥살이를 하던 춘향에게 변고가 생길까봐 조마조마하던 마음을 일순간 풀어 준 매력적 구절이다. 편지 말미에 사용하는 ‘추신’(追伸)에도 ‘행인임발우개봉’과 뜻이 비슷한 데가 있다. 추신은 편지글을 퇴고하면서 놓친 것과 빠진 것을 더 붙여 쓰는 것을 이른다. 먹을 갈면서 생각을 가다듬은 뒤 붓을 들던 게 일상이던 옛날, 고급 한지를 허비하지 않으려던 선조의 글 쓰는 지혜가 녹아 있는 단어다. 추신에는 다른 의도도 다분히 있다. 겸연쩍어 줄곧 풀어내지 못했던 속내를 이를 통해 기필코 드러낸다. 대체로 감성으로 둘러대기보다 직설적이고 반전을 노리는 문구가 많다. 사춘기 때 글이 미덥지 못하고 아쉬워 추신을 이용했던 기억 하나쯤은 다들 갖고 살고 있지 않을까. 현 시절은 편지를 쓰고 받는 이도, 이런 정서도 찾기 어려운 때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나 문자 메시지가 편지의 자리를 대신해 간단명료해야만 시대를 옳게 사는 것으로 여긴다. 대문호(大文豪) 빅토르 위고가 그의 책을 낸 출판사에 보낸 편지에서 ‘?’로 묻고 출판사가 ‘!’로 초단타로 답했다지만, 낄낄대며 쏘고 되쏘는 전자우편에 비할 바 아니다. 편지를 무수히 썼다는 대문장가에게만 적용되는 형식 파괴가 아닐까 한다. 우정사업본부가 4개 부처와 함께 ‘5000만 편지 쓰기’ 행사를 열고 있다. 손편지 쓰기 캠페인을 통해 명맥만 잇고 있는 아날로그식 소통 문화를 되살려 보려는 의도다. 무엇보다 ‘속도’에 함몰된 청소년에게 또박또박 글을 쓰게 하는 습관이 필요해 보인다. 어릴 때 편지를 주고받으면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사리 판단을 잘한다는 통계도 있다. 편지봉투에 100원짜리 우표를 붙이고 그 밑에다 50원·10원짜리를 또 붙인 뒤 떨어져 전해지지 못할까봐 침까지 발라 눌렀던 어른의 추억도 단절돼선 안 되겠다. 때마침 ‘하얀 종이 위에 쓴 편지를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그 손’이 그리운 가을이다. 요즘 느려터진 편지만을 받는 ‘느린 우체통’이 큰 주목을 받는다고 한다. 손으로 꼭꼭 눌러 쓴 편지를 ‘완행 우체통’에 넣어 보는 여유로움을 가져 보자. 이 가을이 주는 덤일 것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14세 소녀 신부’는 왜 남편 독살범이 되었나

    ‘14세 소녀 신부’는 왜 남편 독살범이 되었나

    나이지리아에서 21살 연상의 남편을 독살한 혐의로 14세 소녀가 사형 위기에 처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31일 보도했다. 현지 검찰 당국은 35세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 와실라 타시우에게 사형을 구형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슬람교도가 많은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은 미성년자 혼인이 빈번한데, 이 지역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어린 소녀들이 결혼에 내몰리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기독교인이 많은 남부 지역과 종교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북부의 빈곤 가정 출신인 타시우는 지난 4월에 운구와르 얀소로라는 마을에 사는 당시 35세인 남성 우마르 사니와 혼인했다. 하지만 그녀는 2주 뒤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고 말았다. 이는 그의 식사에서 쥐약 성분이 나왔기 때문. 나이지리아 제2 도시인 카노 교외에 있는 제자와 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검찰 측은 타시우 피고에 대해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며 최고형을 구형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번 소식에 기독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이지리아 남부를 중심으로 여러 인권 운동가들은 타시우가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그녀가 피해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즉각적으로 석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살해 사건이 발생한 북부 지역은 이슬람 율법(샤리아)과 세속법(일반법)에 따른 형법이 혼재해 이 결혼이 합의로 이뤄졌는지를 두고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피고 측은 이번 결혼이 강제적으로 이뤄졌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타시우 피고의 가족은 그녀가 결혼을 강요받았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북부에서는 14세 소녀가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피고와 피해자가 전통적인 청혼 제도에 따라 혼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21세 미만일 경우 보호자의 동의 아래 결혼할 수 있는 데 피고와 부친이 이 결혼에 합의했다는 증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강제 결혼을 주장하는 피고 측에게는 불리한 자료이다. 이에 대해 피고 측 변호인은 “이번 쟁점은 이슬람 사회에서 미성년자의 결혼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형법에 14세를 살인죄로 기소할 수 없다는 점”이라면서 피고를 청소년법으로 심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 이번 공판은 오는 11월 26일까지 연기됐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왜 이 詩여야 했나… 시인들이 답하다

    왜 이 詩여야 했나… 시인들이 답하다

    문단을 대표하는 원로·중견·신진 시인들이 그들의 자작시 가운데 대표작을 직접 뽑았다. 한국작가회의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출간한 저서 ‘세 겹으로 만나다:왜 쓰는가’(삼인 펴냄)에서다. 수많은 시 중 딱 한 편을 대표작으로 고른다는 건 고역이다. 작가회의 관계자도 “시인들이 무척 어려워하고 민망해했다”고 귀띔했다. 시인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손수 고른 만큼 그 시에 얽힌 사연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강은교(69) 시인은 ‘아벨 서점’을 꼽았다. 아벨서점은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있는 헌책방이다. 시인은 “헌책방은 내 문학의 자궁 같은 곳이자 고향”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헌책방에서 문학을 시작했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많은 책을 읽었다. 서울 혜화동의 헌책방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곳 주인이 릴케의 시집을 선물해 릴케를 처음 알게 됐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릴케에 엘리엇까지 결합하면서 문학을 살찌웠다. 아벨 서점 다락방에서 강의를 하며 만난 사람들도 ‘아벨 서점’에 애착이 가게 했다. 그 사람들은 이 시대에 보기 드물 정도로 열정적이고 순수했기 때문이다. 천양희(72) 시인은 ‘직소포에 들다’를 제일로 쳤다. 그는 1979년 여름, 부안 내변산의 직소폭포를 찾았다. 삶이 힘들어 방황하다 세상을 등지려 찾아갔다. 폭포 소리가 우렁찼다. 그 소리가 ‘너는 죽을 만큼 잘 살았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순간 깨달음을 얻고 다시 돌아와 삶을 시작했다. 이후 13년 만에 시를 완성했다. 긴 고통과 정신의 수련 끝에 얻어진 시다. 시인은 “시가 안 쓰일 때면 가슴에 넣어 놨던 그 소리를 꺼내 다시 듣곤 한다”며 “나를 살린 폭포”라고 회고했다. 정호승(64) 시인은 ‘자작나무에게’를 우선순위에 올렸다. 여행지에서 받은 감명을 잊지 못해서다. 키르기스스탄의 거대한 호수 ‘이스쿨’을 찾았다가 자작나무 숲을 봤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생가로 가는 길에서도 자작나무 숲을 접했다. 두 곳에서 자작나무가 갖고 있는 영성·신성을 느꼈다. 시인은 “자작나무에게서 느낀 영성이 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가 됐고 이 나이에 무언가를 고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고 말했다. 시 세계의 변화를 알리는 작품을 대표작으로 뽑기도 했다. ‘농무’를 꼽은 신경림(78) 시인은 “다른 모든 시에도 애착이 가지만 ‘농무’는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 내 시가 예전 시와 달라진 전환점의 시”라고 말했다. ‘풀의 신경계’를 으뜸으로 든 나희덕(48) 시인도 “‘뿌리에게’로 대변되는 유기체적인 수목(樹木)적 상상력에서 풀의 자유분방하고 불규칙적이고 유동적인 운동성 쪽으로, 내 감각이나 상상력이 변화하는 새로운 지향점을 잘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책에는 시인 60명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시, 낭독하기 좋은 시’에 대한 물음에 직접 3편씩 고른 180편의 시가 담겨 있다. 고은, 신경림 등 원로부터 이성복·정호승·황인숙·안도현 같은 중견 시인, 이설야·유병록·박준 등 신진 시인까지 다양한 성향의 시인들이 참여했다. 소설가 8명과 평론가 4명은 ‘왜 쓰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나름의 답도 내놨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생명의 窓] 가을 단상/이재무 시인

    [생명의 窓] 가을 단상/이재무 시인

    이 가을에 나는 과수원 과수들 가지마다 탐스럽게 열린 과일들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에 젖게 되었다. 하나는 모든 생존하는 것들의 필연적 인연의 그물망에 관한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종족 번식을 위한 고투에 관한 것이다. 붉은 열매들은 등불들 같다. 바라보는 이의 마음의 뜰을 환하게 밝히는 저 많은, 시월의 등불들은 대체 누가 다 켜놓은 것일까? 붉게 달아오른 둥근 얼굴들은 자부로 가득 찬 표정이다. 단맛 가득 품고 있다가 누군가의 입을 크게 웃게 만들 저 다디단 사랑이 과연 과수들의 의지와 다짐만으로 가능했을까? 늦봄 가지를 열고 나온 것들 중에서 매듭 많은 시간을 건너오는 동안 비와 비람 혹은 벌레와의 싸움에 져서 돌연사한 것들도 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스스로 온전히 익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 환한, 잘생긴 웃음들은 그러므로 나무의 고된 노동만으로 지어낸 것들이 아닌 것이다. 또한 한여름 자지러지게 울며 서럽던 벌레며, 열매 이전 연한 꽃 살 파고들던, 맑은 날 밤의 별빛이며, 지붕의 기왓장 녹이고 건천의 자갈 구워 먹고는 언덕을 오르며 땀 뻘뻘 흘리던 염천의 햇살과 걸핏하면 가지와 잎에 와서 희롱을 일삼던 바람과 비 온 뒤에야 붐비던 냇물 등속의 노고만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을 일등품으로 통통하게 살(肉) 오르게 한 것은 농어민 후계자 김씨의 걸쭉한 땀방울만도 아니다. 저 혼자서 스스로 깊어진 생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저 시월의 등불들이 5촉 밝기로 환하게 밤을 밝힐 수 있게 된 것은 인드라망 즉 위에 열거한 모든 것들을 포함한 우주 안에 미만한 사물들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진실이 이러하니, 우리 사람도 시월이면 더러 마음의 심지에 불을 밝히고 사립 나서 하늘과 땅, 먼 산과 들녘을 그윽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다. 더불어 공연히 숙연해져서는 무엇이고 눈 닿는 것에 머리 조아린 채 두 손 맞잡을 줄도 알아야 하겠다. 저 보기 좋게 잘 익은 둥근 지혜들을 잘 헤아려 다녀갔거나, 함께 걷고 있거나, 다가올 인연들에 부디 옷깃 여밀 줄 알아야겠다. 많은 식물은 씨앗을 맛좋은 과육으로 감싸, 그 과육의 색깔이나 냄새로 잘 익었다는 것을 알려 동물들이 자기 씨앗을 운반하도록 만드는 계략을 쓴다. 배고픈 동물은 그 과일을 따 먹고 다시 걷거나 날아가다가 부모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씨앗을 뱉어내거나 배설한다. 이 방법으로 씨앗은 수천 ㎞나 멀리 운반할 수 있다. 식물이 동물을 유인하는 한 예로서 야생 딸기의 경우를 보자. 딸기 씨가 여물지 않아서 아직 땅에 심어질 준비가 안 되었을 때 종자를 둘러싸고 있는 과육은 파랗고 시고 단단하다. 그러다가 씨가 다 익으면 과육도 빨갛고 달고 연해진다. 이렇게 딸기의 색깔이 변하는 것은 결국 개똥지빠귀 같은 새들이 그 딸기를 먹고 날아가서 종자를 뱉어내거나 배설하도록 유인하는 신호가 되는 것이다-재레드 다이아 몬드 ‘총, 균, 쇠’중에서. 딸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을 열매들의 고혹적인 자태들도 종국엔 종족 번식과 관련이 있다. ‘총, 균, 쇠’의 저자에 의하면 과육이 그토록 탐스럽게 익어가는 것은 씨앗을 땅에 퍼뜨려 종족을 유지 내지 번식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연 식물계에는 본래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란 없는 것이다. 인간만이 자연의 질서와 법칙에서 벗어난 예외적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이 가을 저 붉은 열매들은 내게 묵언으로 전하고 있다.
  • [커버스토리] 사색(思索)에 잠기다

    [커버스토리] 사색(思索)에 잠기다

    변완수(45)씨는 ‘권독사’(勸讀士)다. 경기 파주출판단지에서 인쇄·출판·기획디자인과 관련된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매주 수요일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단지 내 대형 도서관인 ‘지혜의 숲’을 찾는다. 오후 4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안내 데스크를 지키며 이곳을 찾은 독서객에게 책을 안내하고 권유한다. 책이 도난당하거나 훼손되지 않게 보호하는 것도 자원봉사자인 그의 역할이다. 그는 “그저 책이 좋아 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사서가 없는 도서관으로 알려진 지혜의 숲은 김병윤 대전대 교수가 원목 재질의 서가를 이용해 미로 같은 공간에 ㄱ, ㄴ, ㄷ의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접목했다. 매력적인 서가의 책장마다 박원호 고려대 교수, 유초하 충북대 명예교수 등 개인 도서 기증자나 범우사·청아·한울 등 책을 내놓은 출판사들의 이름이 빼꼭히 들어차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그런 덕분에 파주출판단지에서 꼭 들러야 할 명소 가운데 첫손가락에 꼽힌다. 누구나 자유로이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는 개방성이 특징이며, 교수 등 기증자의 지적 편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장서 분류법이 눈에 띈다. 지혜의 숲은 1, 2, 3으로 나뉜다. 어린이 책은 지혜의 숲 2관에 대부분 모여 있다. 그런데 단지 내에서 이곳만큼 호불호(好不好)가 갈리는 곳도 드물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최고 14칸짜리 8m 높이의 책장이 줄을 잇지만 사람의 손이 닿는 곳은 겨우 4칸 남짓. 이동식 철제 사다리가 있으나 이를 이용해 높은 곳의 책을 꺼내 읽는 ‘적극적인’ 독서객은 드물다. 이런 이유에서 “진정한 애서가보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다”는 비판도 없지는 않다. 이곳의 하루 방문객은 평일에는 최대 400여명, 주말에는 800여명. 24시간 개방하는 3관 위 3~5층에는 게스트하우스인 ‘지지향’(紙之鄕)이 자리한다. ‘지식연수원’ 정도로 불리는데, 책을 읽다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이다. 이 공간도 24시간 개방돼 있다. 모두 79개의 객실을 갖췄는데, 5층 17개실은 ‘김홍신룸’, ‘고은룸’ 등 작가의 이름을 따서 꾸며졌다. 방마다 책은 물론 사인, 사진 등 작가의 체취가 그대로 배어 있다. 지지향은 TV 대신 책장으로 벽이 채워져 있다. 호텔과 맞먹는 비싼 숙박료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높은 벽이다. 그러나 지지향의 관계자는 “단체 연수객 외에도 주말이면 책이 좋아 들르는 개인 투숙객이 많다”고 귀띔했다. 내친김에 책의 향기에 더 깊이 빠지고 싶다면 지혜의 숲 건너편 ‘열화당 책박물관’을 찾아보면 좋다. 인문예술 출판사인 열화당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3년 넘게 도서관과 책방을 따로 운영하다 2012년 7월 책박물관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옛 책들이 살아 숨 쉰다. 동서양의 고서와 미술·디자인·건축 등 문화예술서, 인문서 등이 1·2층의 서가에 나뉘어 꽂혀 있다. 곳곳에 개별 조명과 책걸상을 마련해 자유롭게 책 속에 파묻힐 수 있게 했다. 2층 회랑에는 음악 감상용 LP 음반도 마련돼 있다. 책박물관의 내공은 2층 서가 한 귀퉁이만 훑어봐도 읽힌다. ‘사상계 1956년 5월호’, ‘자유문학 1958년 3월호’, ‘문예지 1966년 1월호’ 등 색 바랜 국내 고서들이 즐비하다. 종교 개혁가이자 신학자인 마틴 루터(1483~1546) 사후 그의 글들을 모은 두꺼운 마틴 루터 전집은 서양고서가 담긴 1층의 유리문 책장에 꼭꼭 숨어 있다. 정현숙 학예연구실장은 “1551년부터 1559년까지 8년간 저술된 책 가운데 12권을 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1층 중앙전시대에선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12월 26일까지는 서거 10주기를 맞은 한국 출판 1세대 대표 인물인 한만년(1925~2004) 일조각 창업자의 행적을 조명하는 전시가 이어진다. 열화당책박물관 바로 옆에는 직접 활자로 인쇄 과정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활판공방’이 자리한다. 또 이곳에서 광인사길을 따라 북쪽으로 200여m 올라가면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쇄소인 ‘보진재’가 있다. 활판공방은 말 그대로 활자를 찾아 고정시키고 잉크를 바른 뒤 종이를 얹어 손으로 인쇄기를 돌리는 책 제작 체험장이다. 인쇄된 종이를 모아 가느다란 바늘로 전통 방식의 오침 제본을 한다. 공방은 활판을 직접 만들어 책을 찍는 국내에 단 한 곳 남은 활판 인쇄소의 역할도 한다. 컴퓨터로 뚝딱 책을 만드는 시대에 좀처럼 맛볼 수 없는 삶의 여유다. 백경원 실장은 “2007년부터 서정주, 박목월, 김남주, 신달자, 김종철 등 국내 주요 시인들의 책을 연간 6권씩 전통 활판 방식으로 인쇄해 왔다”고 말했다. 보진재는 1912년 8월 설립돼 4대째 가업을 잇는 대형 인쇄소다. 지금은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파주출판단지에서 인쇄·제책을 일괄 처리하는 종합인쇄공장을 운영 중이다. 교과서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견학할 수 있으나 현대적 시설로 채워져 옛 역사를 더듬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반대로 현대 출판의 묘미를 경험하고 싶다면 출판단지 맞은편에 자리한 출판사 사계절의 북카페 ‘사계절 책 향기가 나는 집’을 찾으면 된다.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라는 프로그램에서 어떤 책을 만들지(기획), 누가 글을 쓰고 다듬을지(편집), 책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디자인·출력·인쇄·제본), 어떻게 홍보하고 판매할지(마케팅) 등을 실제 작업 과정이 담긴 영상과 체험 워크북 활동으로 배울 수 있다. 출판사 돌베개의 북카페인 ‘행간과 여백’은 책과 어우러진 그림전시로 유명하다. 서울 강남에서 온 바리스타가 뽑아 주는 진한 원두커피 외에 카페 안 갤러리에서 마주하는 전시가 인상적이다. 최근에는 평론가 최열이 쓴 ‘이중섭 평전’과 함께 이중섭이 생전 그린 잡지와 단행본의 표지화, 목차화 등을 전시 중이다. 출판도시라고 화려한 북카페만 떠올리면 오산이다. 이곳에는 유명한 헌책방도 3곳이나 있다. 아름다운가게가 기증도서를 싼값에 판매하는 ‘보물섬’과 30년 이상 자리하며 파주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이가고서점’,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헌책방 마을 ‘헤이 온 와이’(Hay on Wye)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문발리 헌책방 골목·북카페 올리브나무’도 있다. 이곳에선 아동도서의 경우 새 책의 4분의1 가격인 1000~2000원, 일반도서는 3분의1인 3000~4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김형윤(68) 문발리 헌책방 골목·북카페 올리브나무 대표는 “쇠락한 작은 탄광촌에서 헌책방 골목으로 변신한 헤이 온 와이를 다녀와 깔끔하고 차별화된 헌책방 북카페를 열었다”면서도 “책이 좋아서 하는 일이지 수익은 거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축 평론가 마크 어빙이 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실린 출판사 ‘들녘’ 사옥도 한번쯤 들러 봐야 한다. 한쪽은 콘크리트, 반대편은 목재로 만든 차가우면서도 따스한 건물이다. 어빙은 지상 4층의 이 건물에 대해 “전망과 구조 사이에 대화가 소통되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출판단지 초창기인 2003년부터 이곳에서 일해 온 이현화 돌베개 문화예술팀장은 “여름, 가을에 개망초와 억새로 뒤덮인 파주출판도시는 한 폭의 그림”이라며 “책 익는 고소한 냄새와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한 출판인들의 고뇌가 뒤섞여 응축된 공간”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저항 위해 예술 벼린 지식인 벤야민 사유의 흐름 좇는 여행

    저항 위해 예술 벼린 지식인 벤야민 사유의 흐름 좇는 여행

    가면들의 병기창/문광훈 지음/한길사/1104쪽/3만 5000원 발터 벤야민(1892~1940)은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지식인 가운데 오늘날까지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의미심장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상가다. 베를린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벤야민은 나치를 피해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막다른 길목에 처하자 스페인의 국경 마을 포르부의 한 모텔방에서 모르핀을 삼키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일생의 대부분을 읽고 쓰기에 몰두했던 그는 문학과 비평, 매체학과 미학, 철학과 정치이론, 도시분석과 자본주의 비판, 문화학, 신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에 걸쳐 풍부한 논의를 담은 탁월한 글을 남겼다. 학자도, 번역가도, 신학자도, 시인도, 철학자도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고독한 지식인의 비극적인 삶과 사유 방식은 많은 후대 지식인들의 지적인 호기심과 탐구심을 자극하는 주제였다. 독문학자 문광훈 충북대 교수는 6년간의 사색과 모색 끝에 발터 벤야민에 대한 본격 연구서 ‘가면들의 병기창’을 내놓았다. 벤야민이 남긴 네 권의 저서와 500편이 넘는 논문과 논설, 서평, 소책자, 정치적 선전문구, 플래카드, 포스터 등을 모두 찾아 읽으며 이 ‘잡다한 무더기’ 속에서 그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를 짚었다. 그리고 벤야민의 사유와 통찰 중에서 어떤 것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여전히 유효한지를 검토했다. 단순한 독해를 넘어 오늘의 상황, 즉 한국의 문학적·문화적 지형에 맞는 새로운 벤야민론을 재구성해 보기 위한 시도다. 저자는 “벤야민의 저작이 주는 충격은 다채롭고, 그 논의에는 이견의 여지가 많으며, 그 사유법은 복잡하면서도 급진적이다. 그것은 매우 인화성이 높은 취급 주의 저작물”이라며 글을 시작한다. 이런 특성은 벤야민의 독특한 사유 방법에서 나온다. 벤야민의 사유는 예술과 비평, 작품과 매체, 원전과 번역, 정치와 희망, 법과 정의, 역사와 구원, 전통과 아방가르드, 폭력과 화해처럼 이율배반적 축 사이에서 움직이되 낯선 것들의 상호대립적 길항작용에서 나오는 생산적 에너지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더 진실하고 더 선하며 더 아름다운 것”으로 향해 나간다. 저자는 “그가 고민한 문제는 세속적인가 아니면 신성한 것인가, 역사인가 아니면 신인가와 같은 양자택일적 선택이 아니라 세속적인 현실에서의 구원가능성이었다”고 설명한다. 벤야민은 미리 주어진 신념이나 가치를 무조건 따르지 않고 지속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여러 원칙과 명제를 서로 떼어내 다시 잇고 다시 와해시킨다. 따라서 그의 텍스트는 복잡한 구조나 다양한 주제의식, 이질적인 입장들 간의 균형 속에서 자기 관점을 드러낸다. 저자는 “벤야민의 사유방법은 해체구성의 변증법이고, 그 내용은 좀 더 공정한 세계, 즉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이며 그 목표는 행복일 것”이라며 “(벤야민이 그랬듯이) 문화적으로 축적된 모든 것은 오늘의 관점에서 부단히 검증되어야 하고, 이 검증 속에서 늘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의 제목은 벤야민의 문제의식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표현으로 벤야민 사후 10년 만에 출간된 ‘베를린의 어린시절’에 실린 글에서 따왔다. 가면은 예술에 대한 비유다. 벤야민의 사유공간은 세상과 대결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무기를 벼린 곳이고, 그의 글들은 예술의 저항적 가능성을 탐색한 병기창인 셈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낮엔 선생님, 밤엔 절도범…여교사 충격 이중생활

    낮엔 선생님, 밤엔 절도범…여교사 충격 이중생활

    낮에는 초등학교 선생님, 밤에는 마약에 취한 절도범으로 돌변했던 30대 여성의 충격적인 이중생활이 적발됐다. 스코틀랜드 지역매체 스코티시 데일리 레코드(Scottish Daily Record)는 낮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밤에는 절도범으로 각종 범죄행위를 저지른 32세 여성 바네사 로의 교원자격 유지여부 논란이 일고 있다고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로는 지난 2012년 초 스코틀랜드 동부 파이프 주(州) 일대의 가정집 차고를 한밤중에 부수고 들어가 자동차 연료, 현금 등을 훔쳤다. 로의 이러한 행위는 인근 도시인 던퍼믈린, 글래스고 등에서 몇 차례 반복됐다. 문제는 이 시기에 로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었다는 점이다. 스코틀랜드 파이프 주(州) 메스힐 초등학교는 그녀가 2011년부터 2012년까지 해당 교에서 근무했음을 밝혔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밤에는 범죄자로 이중생활을 했던 것이다. 특히 절도행각을 벌일 당시, 로가 제정신이 아닌 마약에 취해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적발됐다. 관련 협의회는 “로는 교사로 근무하며 불법 약물인 헤로인을 수시로 복용하며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며 그녀의 교원자격 박탈여부를 내달 5일 결정할 예정이다. 한편, 이와 관련해 로는 “과거 행위에 대해 자세히 밝히고 싶지 않다. 이는 내 사생활이기 때문”이라며 “분명한 것은 현재 나는 회복 중에 있다는 점이다. 지금 계속 치료를 받고 있고 하루하루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강제 결혼 주장’ 14세 소녀, 남편 독살 혐의로 사형 위기

    ‘강제 결혼 주장’ 14세 소녀, 남편 독살 혐의로 사형 위기

    나이지리아에서 21살 연상의 남편을 독살한 혐의로 14세 소녀가 사형 위기에 처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31일 보도했다. 현지 검찰 당국은 35세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인 와실라 타시우에게 사형을 구형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슬람교도가 많은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은 미성년자 혼인이 빈번한데, 이 지역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어린 소녀들이 결혼에 내몰리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기독교인이 많은 남부 지역과 종교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북부의 빈곤 가정 출신인 타시우는 지난 4월에 운구와르 얀소로라는 마을에 사는 당시 35세인 남성 우마르 사니와 혼인했다. 하지만 그녀는 2주 뒤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고 말았다. 이는 그의 식사에서 쥐약 성분이 나왔기 때문. 나이지리아 제2 도시인 카노 교외에 있는 제자와 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검찰 측은 타시우 피고에 대해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며 최고형을 구형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번 소식에 기독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나이지리아 남부를 중심으로 여러 인권 운동가들은 타시우가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그녀가 피해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즉각적으로 석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살해 사건이 발생한 북부 지역은 이슬람 율법(샤리아)과 세속법(일반법)에 따른 형법이 혼재해 이 결혼이 합의로 이뤄졌는지를 두고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피고 측은 이번 결혼이 강제적으로 이뤄졌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타시우 피고의 가족은 그녀가 결혼을 강요받았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북부에서는 14세 소녀가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피고와 피해자가 전통적인 청혼 제도에 따라 혼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21세 미만일 경우 보호자의 동의 아래 결혼할 수 있는 데 피고와 부친이 이 결혼에 합의했다는 증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강제 결혼을 주장하는 피고 측에게는 불리한 자료이다. 이에 대해 피고 측 변호인은 “이번 쟁점은 이슬람 사회에서 미성년자의 결혼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형법에 14세를 살인죄로 기소할 수 없다는 점”이라면서 피고를 청소년법으로 심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 이번 공판은 오는 11월 26일까지 연기됐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협회 간부 아들이라고… 태권도 또 승부조작

    “동작이 제대로 안 되는데 어떻게 이겨. 김 전무 아들이 뛴다고 이래도 되는 거야?” 지난해 7월 8일 경기 의정부시의 한 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제4회 전국 추계 한마음 태권도 선수권대회’에선 난데없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고등부 단체 품새시합 4강전에서 고교 연합 동아리인 A팀이 흠잡을 데 없는 동작을 선보이고도 몇 수 아래 기량을 보인 서울 B고교에 심판 전원 일치인 ‘0대5’로 패하자 A팀 코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B고교에 서울시태권도협회 전무의 아들이 있는데 이 때문에 편파 판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코치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30일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가 주최한 장애인·비장애인 연합 태권도 대회에서 승부 조작을 지시한 협회 겨루기 담당 심판 부의장 김모(62)씨와 품새 담당 심판 부의장 전모(61)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 부의장은 서울시협회 김모(45) 전 전무의 아들이 속한 B고가 이기도록 전씨에게 승부 조작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전무는 지난해 5월 전국체전 고등부 겨루기 대회에서 승부 조작을 주도한 혐의로 최근 입건됐으며, 김 부의장과는 과거 서울시협회에서 함께 일해 잘 아는 사이다. 특히 김 전 전무가 개입했던 지난해 5월 전국체전 고등부 승부 조작 사건은 억울한 패배를 당한 선수의 아버지 전모(당시 47)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지만, 태권도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과 두 달 만에 또 추악한 승부 조작을 저질렀다. 경찰은 당시 심판 5명을 불러 조사했고 이들 모두 범행을 시인했다. 심판 이모(45)씨는 경찰이 경기 영상을 틀어 주자 “무조건 부인하려고 했는데 버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심판 서모(40)씨는 “기량 차이가 너무 많이 나 승부 조작 지시를 잊고 A팀 승리를 뜻하는 청기를 올리려다가 다른 심판들이 홍기를 드는 걸 보고 급히 바꿨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김 전 전무의 승부 조작 개입 여부는 입증되지 않았다. 김 부의장은 “김 전무 아들의 팀이 이기도록 승부 조작을 지시했다”면서도 “스스로 판단해 지시한 것이며 김 전무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고 공모 의혹을 부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학을 보내야 하는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승부 조작 사건이 계속 터진다”며 “전국 대회에서 승부를 조작해 메달을 따는 데 1000만~2000만원이 든다는 얘기도 나돈다”고 밝혔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한국서 딸 만난 이주여성 부모들 “꿈인지…”

    한국서 딸 만난 이주여성 부모들 “꿈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머나먼 한국 땅에서 딸을 만나니 반갑기만 합니다.” 30일 오전 10시 30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호텔 1층 클라벨홀은 혈육을 만난 기쁨과 회환으로 눈물바다가 됐다. 8개국 18명의 경북 거주 결혼이주여성과 친정 부모 23명이 짧게는 3년, 길게는 9년 만에 만나 얼싸안았다. 결혼이주여성들의 부모들은 외손주들과도 첫 만남을 가졌다. 경북도가 결혼이주여성들의 모국 부모들을 초청해 환영 행사를 여는 자리다. 이번 행사에는 결혼 후 서로 방문한 적이 없는 가정, 다자녀 가정, 결혼 기간이 오래된 가정의 부모가 주로 초청됐다. 캄보디아 7명, 베트남 5명, 몽골 3명, 키르기스스탄 3명, 네팔 2명, 인도네시아·카자흐스탄·필리핀 각각 1명 등이다. 환영 행사에서는 사위들이 장인, 장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주고 결혼이주여성들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낭독했다. 베트남 출신 하티수엔(30·봉화군)씨는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4년 전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국으로 시집와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럴 때마다 시어른을 공경하고 남편을 잘 모시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기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제는 주위에서 인정받으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제 제 걱정은 마시고 건강히 오래오래 살아 주세요”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결혼이주여성과 친정 부모 방문단은 다음달 6일까지 서울과 경북 안동, 대구 등지를 오가며 주요 관광지를 방문하는 투어에 나선다. 10월 현재 경북 지역 결혼이주여성은 모두 1만 2620명이다. 김재남 경북도 다문화행복과장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사위 나라의 발전상을 자랑스럽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한전 ‘나주 시대’ 12월 개막 새달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나주)에 새 둥지를 튼 한국전력이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한전이 추진 중인 ‘빛가람 에너지 밸리’ 조성도 탄력을 받고 있다. 한국전력은 다음달 7일부터 말일까지 혁신도시 이전을 마무리한다고 29일 밝혔다. 이 기간 주말 동안 서울 본사에서 이삿짐을 옮긴다. 짐 분량만 5t 트럭 800여대 분에 이른다. 광주·전남 혁신도시에 세워진 한전 신사옥은 전체면적 9만 9307㎡, 지상 31층(154m) 규모로 거의 내장 공사가 마무리 단계다. 이주 인원은 1700여명에 이른다. 이에 따라 한전과 한전KDN, 한전KPS, 전력거래소 등 에너지 관련 기업이 한데 뭉친 빛가람 에너지밸리 조성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에너지밸리는 일본의 기업도시인 도요타시나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빛가람 도시를 중심으로 광주·전남권 관련 산업과 연계한 지역사회를 조성하는 개념으로 추진된다. 한전은 12월 1일부터 빛가람 도시에서 정상업무에 들어가며 같은 달 중순쯤 개청식 겸 이전 기념행사를 열 계획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병마와 사투, 세상과 화해… 시인의 마지막 인사

    병마와 사투, 세상과 화해… 시인의 마지막 인사

    ‘이것저것 끌어모아 시집을 낼까 두렵다. 그래서 작은딸의 힘을 빌려 눈에 뜨이는 원고부터 힘겹게 정리했다. 부끄러운 수준이다. 혹시 시간 지나 책이 되어 나오면 용서 바란다. 그리고 잊어 주길 바란다.’ 지난 7월 작고한 김종철 시인이 임종 전 마지막 의식이 있을 때 쓴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문학세계사)의 서문이다. 1968년 등단 이후 46년간 천착해온 시도, 사람들도, 삶도 모두 내려놓고 떠나려는 심정이 묻어난다. 시인은 떠났지만 그의 시는 남았다. 유고시집엔 시인의 마지막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인은 지난해 7월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으면서 기적적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지난 3월엔 한국시인협회장에 취임하기까지 했다. 시의 달 제정, 시인의 마을 조성, 시문학 전문지 부활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러다 지난 5월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됐다. 시인은 이제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조만간 의식조차 사라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임종 한 달 전쯤부터 둘째딸 시내씨와 함께 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간의 시도 다시 다듬고, 투병 중의 심정도 한자 한자 시로 옮겼다.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주사실에 들렀다/칸칸이 놓인 빈 침대의/허연 슬픔이 나를 맞았다’(암 병동에서) ‘매일 아침/기도가 머리에서 한 움큼씩 빠졌다/마른 장작처럼 서서히 굳어 가는 몸/한 방울씩 스며든 항암 주사액에/생의 마지막 잎새까지 말라 버렸다.’(나는 기도한다) ‘몸과 마음을 버려야만 비로소 머물 수 있는 곳/아내의 따뜻한 손에 이끌려/용인 천주교 공원묘지와 시안에도 들렀다/(중략) 부활의 집 지하3층에서/망자와 함께 이제사 천상의 집 지으리라’(절두산 부활의 집)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들도 정리했다. ‘커브 볼 세 개로/집사람 노후 대책/어린 손자 미래 보기/그리고 지인과 작별 준비하고/위협구인 빈볼 하나쯤으로/세상과 화해하고/일곱 번째는 직구로/꼭 가고 싶은 곳을 찾고/(중략) 일생의 마운드에서/결코 교체되지 말아야 할 나는 패전투수/열 개의 버킷리스트로 기록된 자책점들!’(버킷리스트) 시인 곁에서 시집을 정리하며 마지막을 함께 했던 시내씨의 회고담이다. “아버님은 예전엔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셨다. 굉장히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된 뒤 이승의 삶을 떠나 영적 세상에 모든 걸 맡기고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하신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죽음을 평화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신 것 같다.” 시인은 ‘병을 얻자 멀쩡한데도 따라서 투병하고 길면 6개월에서 1년 주치의 암 선고 들었던 날 밤 애써 웃었던’(언제 울어야 하나) 아내를 눈을 감는 순간에도 잊지 못했다. “혼자 남은 아내가 마음에 걸린다. 잘 부탁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손성진 칼럼] 친일과 뉴라이트, 그리고 기회주의

    [손성진 칼럼] 친일과 뉴라이트, 그리고 기회주의

    “내 조부가 친일이면 일제강점기 중산층은 다 친일파”라는 이인호 KBS 이사장의 강변(强辯)을 듣고는 생각난 단어가 지조와 절개다. 조선으로 치면 왜장(倭將)을 끌어안고 강물로 뛰어든 논개의 지조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라고 외친 사육신 성삼문의 절개 말이다.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 논개나 성삼문처럼 행동할 용기를 가졌던 지식인들이 그 얼마나 되었을까. 비단 일제강점기 때만이 아니라 건국 이후 근 반세기에 가까운 독재의 시기에도 진딧물의 단물을 빠는 개미처럼 처신한 이 땅의 지도층, 지식인들은 수없이 많다. 옹호하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시대가 만든 비극이기도 하고 그 비극적인 시대에 산 사람들이 한편으로 측은하기도 하지만 가려내고 단죄하지 않는다면 역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시종일관적이었던 골수 친일파보다 육당이나 춘원처럼 중도에 변신한 민족지사들이 더 욕을 먹는 것도 지조와 절개를 버린 데 대한 분노심 때문일 게다. 그들은 광복 후에도 친일 경력을 깨끗이 세탁하고 대한민국 정부에 귀의하는 ‘멋진’ 변신술을 보여 주었다. 변신은 현재 권력이나 사상과의 일종의 타협인데 지난 수십년간 권력 이동과 이념 투쟁의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태생적인 ‘확신범’도 있으나 전향이라는 이름으로 좌우와 여야를 넘나든 철새들 또한 드물지 않다. 가장 희극적인 전향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주사파가 이른바 뉴라이트의 한 축으로 변신한 것이다. 반미종북의 선봉에서 극단을 달리던 그들은 뉴라이트로 짐을 옮기고 나서도 시선만 정반대 방향을 바라볼 뿐 똑같이 극단을 달리고 있다. 그들의 방향 전환은 주지하다시피 공산주의의 몰락에 따른 정신적 붕괴의 결과다. 좌파로서는 기회주의적 변절이요 배신이다. 원의 바깥 선을 아무리 돌려도 여전히 바깥에 있듯이 극단은 결국 극단으로밖에 변신할 수 없는 것일까. 이 이사장도 변신과 전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세대 러시아사학자로서 이 이사장의 성향은 원래 중도 진보였다고 한다. 1987년 역사문제연구소 창립 당시 강만길, 김진균씨 등 대표적인 진보 학자들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황모씨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에는 자신 때문에 서양사학과를 택했다는 최영미 시인과 동참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역임한 핀란드 대사에 이어서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 최초의 러시아 대사를 지낸 것은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진보처럼 보인 덕일 것이다. 그랬던 그가 돌연 뉴라이트의 선두에 서서 바뀐 정부의 공영방송 이사장직에 오르고 ‘대한민국 공로자로서 김구 선생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은 소련의 지령이었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이런 변신은 조부의 친일이 공론화된 뒤부터인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엘리트 의식이 강한 이 이사장이 자존심이 상해 반대편으로 돌아섰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할아버지 때문에 신념까지 바꾼, 어쩌면 그 자신이 현대사의 비극일지 모른다. 민주주의에서 신념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정권과 시류에 영합하는 신념은 타인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 한국에서 ‘돈’과 ‘높은 자리’로 매매되지 않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어느 교수의 말은 과격해도 팔순을 눈앞에 둔 이 이사장의 ‘노욕’(慾)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제 와서 “독재를 미화하고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옹호한다는 비판은 터무니없다”는 것도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표적 뉴라이트 학자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6년 한 방송에 나와서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객관적인 자료는 하나도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위안부 문제로 일본과 담을 쌓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정부와 반대의 인식을 갖고 있는 뉴라이트 학자들을 대거 중용하고 있는 것은 이해불가다. 대북 관계의 직위에 종북 학자들을 등용한 꼴과 다를 게 없다. 지조와 절개, 변절 여부는 둘째 문제다.
  • 불길을 걷는다

    불길을 걷는다

    강천산 단풍이 곱다는 이야기, 참 여러 차례 들었다. 전북 순창에 솟은 작은 산이지만, 가을 풍경만큼은 ‘소금강’이라 부를 만하다고도 했다. 행장 꾸려 나선 길, 현지인들은 단풍이 절정에 이르려면 11월 초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한데 외지인의 시선으로는 그마저도 충분했다. 온통 붉기만 하면 무슨 맛이랴. 노랗고 푸른 기운들이 섞여야 외려 더 아름답지 않겠나. 강천산(584m)은 아름답고 편안하고 소박하다. 이웃한 산성산(603m), 광덕산(578m) 등을 묶어 등산을 즐길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책하듯 자박자박 걷는 쪽이 더 나아보인다. 강천산의 백미는 ‘음이온 산책길’이다. 이에 대한 안내판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강천산엔 폭포가 여러 곳이다. 폭포 주변엔 음이온이 많이 생성되는데, 이를 흡수하며 걸으면 힐링도 되고, 건강도 얻는다는 것이다. 음이온 산책길은 매표소부터 구장군 폭포까지 왕복 5㎞ 남짓 거리다. 매표소~병풍폭포~강천사~현수교~구장군 폭포로 이어진다. 산책로는 잘 닦여 있다. 산길치고 폭도 넓은 편이다. 높낮이도 완만해 왕복 세 시간 남짓 동안 가쁜 숨을 몰아쉴 일이 없다. 길은 구장군 폭포에 이를 때까지 줄곧 계곡과 동행한다. 계곡과 폭포에서 떨어진 물 입자는 음이온을 만든다. 음이온 수치는 산책길 중간중간에 설치된 LED전광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맨발로 걷는 황홀한 단풍길… 구름 다리 위 신선놀음 산책로에서 처음 만나는 명소는 병풍폭포다. 2002년에 만들어진 인공폭포다. 병풍처럼 펼쳐진 절벽 위로 크고 작은 두 개의 폭포가 조성돼 있다. 폭포에선 쉼 없이 물줄기가 쏟아지는데, 워낙 가늘어 안개비가 내리는 듯하다. 이 덕에 햇살이 비치는 오후 무렵이면 늘 폭포 아래쪽으로 무지개가 걸린다. 폭포 맞은편은 단풍 숲이다. 만지면 묻어날 것 같은 이파리가 붉은빛으로 선연하다. 음이온 산책로 옆으로 목재 데크 길이 나 있다. ‘숲길 산책로’다. 음이온 산책길이 계곡을 따라 걷는 반면 숲길 산책로는 산 중턱을 따라간다. 병풍폭포에서 강천사 앞 삼인대까지 5㎞ 정도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가파른 구간이 많아 난이도는 꽤 높은 편이다. 산책로를 따라 애기단풍 터널이 이어진다. 스물두 그루 메타세쿼이아와 폭포가 어우러진 풍경도 빼어나다. 숲을 나서면 곧 강천사다. 신라 진성여왕(887년) 때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절집이다. 강천사 초입엔 범상치 않은 자태의 모과나무가 서 있다. 밑동부터 가지까지 깊게 주름이 패였고, 노송처럼 이리저리 휜 모양새에선 신산했던 삶의 궤적이 느껴진다. 모과나무는 300년 묵었다고 한다. 강천사와 더불어 늙은 셈이다. 절집에서 십여분쯤 걸으면 구장군 폭포다. 이때부터 하늘이 활짝 열린다. 폭포를 품은 절벽은 그야말로 기골이 장대하다. 높이가 무려 120m에 이른다. 이에 견주자니 폭포는 실핏줄처럼 가늘다.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이자, ‘호남의 소금강’이라 상찬받는 강천산의 진수를 여기서 맛본다. 절벽 여기저기엔 마한시대 아홉 장수가 죽기를 결의하고 전장에 나가 승리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구장군폭포는 원래 마른 폭포다. 장마철에만 폭포수가 쏟아진다. 한데 물을 끌어올린 뒤 흘려보내면서 이제는 늘 폭포수가 쏟아지는 모습과 마주할 수 있게 됐다. 구장군폭포에서 온 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만나는 이들마다 표정이 밝다. 웃음소리도 맑게 느껴진다. 음이온을 한껏 들이켠 덕이지 싶다. 그중 몇몇은 맨발이다. 발에 닿는 흙의 느낌이 좋았던 게다. 등산화 벗은 아저씨는 흔하고, 운동화 벗은 여고생도 간혹 눈에 띈다. 두 손으로 신발 들고 산길 걷는 모습이 꽤 평화롭다. 음이온 산책길은 일부 구간을 빼고는 바닥이 잘 다져진 흙길이다. 매표소 가까운 곳에 발을 씻는 세족대가 마련돼 있으니, 흙 묻을 걱정일랑 접어두고 맨발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좋겠다. 오를 때 보지 못했던 바위들도 하산길에서야 눈에 든다. 고은 시인의 시 ‘그 꽃’에서처럼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다. 단풍에 가려져 있었을 뿐, 바위는 우직한 생김새 그대로 서 있다. 붉은빛 구름다리도 오른다. 강천산의 명물이다. 계단을 따라 급한 산비탈을 올라야 하지만, 품은 그리 들지 않는다. 구름다리는 현수교다. 지상 50m 높이에 폭 1m, 길이 76m다. 빨간 구름다리 위에서 굽어보는 풍경이 멋들어지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다리가 위아래로 출렁이는데, 그때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짜릿함도 맛본다. 날머리는 신선교다. 음이온 산책길 한번 돌아봤다고 선계에 이르지는 못하겠지만, 마음만은 신선이다. ●섬진강에 기댄 마을 순창… 새달 2일까지 장류축제 이쯤에서 돌발 퀴즈 하나. 순창에는 메타세쿼이아길이 있다, 없다? ‘있다’를 찍었다면 ‘딩동댕~’이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순창읍내 고추장민속마을에서 강천산 가는 길에 만난다. 길 위로 튼실하게 솟은 메타세쿼이아 덕에 왕복 이차선 도로가 숲 터널로 변했다. 순창은 섬진강에 기댄 고을이다. 섬진강 물줄기 위로 명소들도 몇 곳 있다. 그중 하나가 장군목이다. 강물이 바위와 몸을 섞으며 만든 다양한 형태의 너럭바위들이 강변을 따라 3㎞ 정도 이어져 있다. 핵심은 요강바위다. 포트홀이라 불리는 돌개구멍이 요강처럼 움푹 패어 있다. 돌개구멍은 둘레 1.6m, 깊이 2m에 달한다. 요강바위는 한때 도난당했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했다. 무게만 15t에 달하는 바위를 옮기느라 도둑들도 고생깨나 했지 싶다. 순창은 전통 장류의 ‘메카’처럼 인식되는 곳이다. 고추장, 된장 등 전통 장류와 발효 음식의 진수를 맛보는 ‘순창 장류축제’가 3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순창 고추장민속마을과 강천산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로 9회째. ‘자연이 빚은 순창이야기’를 주제로 순창 장류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80여개 체험 행사와 공연, 전시 프로그램 등이 진행된다. 레드 데이 이벤트도 진행한다. 붉은색 옷을 입었을 경우, 축제장에서 여러 할인 혜택을 준다. 글 사진 순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김제 나들목으로 나와 전주 방면 1번 국도로 갈아탄 뒤, 쑥고개 교차로에서 순창 방면 27번 국도로 다시 바꿔 탄다. 한산한 도로를 따라 임실 옥정호 등 풍경의 명소들을 꿰며 갈 수 있다. 다소 돌더라도 내장산 나들목이나 백양사 나들목으로 나와 여러 단풍 명소들을 둘러보며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순천완주 고속도로 남원 분기점에서 88올림픽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순창 나들목으로 나오는 방법도 있다. 강천산 관리사무소 650-1672. →맛집: 명가원숯불구이(652-1667)는 매운 숯불돼지갈비가 맛있는 집이다. 돼지갈비를 마늘과 간장, 생강, 양파 등으로 양념한 육수에 재워 애벌 조리한 뒤, 고추장을 발라 숙성시켜 구워 먹는다. 녹원식당(653-2673)은 저렴한 가격에 한정식을 내는 집이다. 강천산공원 주차장 입구 산호가든농원(652-4035)은 민물 고추장 매운탕이 맛있다. →잘 곳: 장류체험관(650-5432)은 체험장과 숙박시설을 함께 갖춘 곳이다. 고추장민속마을 가장 끝 쪽에 있다. 객실료는 크기에 따라 4만 5000~6만원 선으로 저렴한 편이다. 다만 고추장 담그기 등 농촌체험을 해야 숙박할 수 있다. 순창읍내 S모텔(653-3960, 4960)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굿스테이’ 업소다.
  • 가수 신해철 1968~2014…굿바이 마왕,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가수 신해철 1968~2014…굿바이 마왕,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가수 신해철이 27일 4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가 심정지로 쓰러진 정확한 원인을 두고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신해철의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는 “신해철이 이날 오후 8시 19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떠났다”면서 “사인은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17일 복통을 호소하며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병원에서 장협착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그러나 통증이 재발해 22일 다시 입원했고, 이날 오후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입원 당시 의식은 물론 동공반사와 호흡이 없는 위중한 상태였다. 그가 쓰러지자 패혈증과 위 절제 수술, 다이어트 등이 심정지의 원인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소속사는 “의료진이 부어오른 장으로 인한 심장 압박이라는 소견을 냈지만 장 상태가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명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며 일축했다. 한편 그와 절친한 사이인 밴드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페이스북에 “병원의 과실이 명백해 보인다.” “해철아 복수해 줄게.” 등의 글을 올려 논란을 예고했다. 신해철은 20여년간 음악에 대한 꾸준한 탐구로 한국 록의 지평을 넓혔다. 그는 1988년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의 보컬로 참가해 ‘그대에게’라는 곡으로 대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1990년 솔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안녕’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등을 히트시키며 자신만의 색채가 뚜렷한 음악인으로 각인됐다. 1992년에는 밴드 넥스트를 결성해 1990년대 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도시인’ ‘날아라 병아리’ ‘해에게서 소년에게’ 등으로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동시에 잡았다. 2000년대 이후로는 과거와 같은 대중적 성공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음악적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6월 발표한 솔로 6집 앨범 ‘리부트 마이셀프’에서는 1인 아카펠라를 시도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논객’으로도 유명했다. MBC ‘100분 토론’에 패널로 출연해 정치와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곡도 발표했다. ‘고스트스테이션’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의 거침없는 언변으로 팬들로부터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빈소는 28일 오전 10시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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