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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세 가지 질문/강동형 논설위원

    다툰 친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쓴 노랫말에 가수 송창식이 곡을 붙인 ‘푸르른 날’을 출근길에 들으며 노랫말처럼 그리워할 사람을 생각하니 너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내용이었다. 글 말미에 ‘기적이지?’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는 종종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 언제이며, 사람은 누구인지, 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라는 난감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얼버무리게 되는데 톨스토이의 단편집을 읽은 뒤부터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좀 할 수 있게 됐다. 톨스토이는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이고,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이 순간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보다 친한 사람을 용서하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용서가 진정한 용기라는 말도 생겼을 것이다. 친구가 출근길에 들었다는 ‘푸르른 날’을 들으며 친구의 얼굴을 떠올린다.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해 본다.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작지만 선한 일을 먼저 해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광기, 혁명의 시작

    광기, 혁명의 시작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로버트 단턴 지음/김지혜 옮김/알마/388쪽/2만 2000원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라는 총탄을 격발시킨 방아쇠는 무엇이었을까. 프랑스대혁명의 지적 기원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되는 지점이 있다. 흔히 ‘혁명의 성서’로, 프랑스대혁명에 사상적 자극을 준 것으로 알려진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실제 혁명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학자로 미시사 전문가인 로버트 단턴은 또 다른 저서 ‘책과 혁명’에서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베스트셀러 금서 목록에 루소, 볼테르 등 유명한 계몽사상가들의 저작물은 한 권도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면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혁명을 했을까. 이 지점에서 역사 속으로 숨어 버린 흥미로운 사상 하나가 새롭게 떠오른다. 단턴은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에서 ‘만인은 평등하다’는 루소의 급진적 사상보다는 ‘메스머주의’란 사이비 과학이 혁명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한다. 당시의 프랑스 풍자화에는 당나귀 얼굴을 한 메스머주의자가 아름다운 여성을 최면에 빠트린 후 질병을 치료하는 장면 등이 자주 등장했다. 그만큼 대중적인 사상이었다는 방증이다. 메스머주의란 오스트리아 빈 의과대학 출신 안톤 메스머가 주창한 이론으로, 18세기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메스머는 모든 물체 주변에 ‘메스머 유체(流體)’란 게 존재하며 이를 매개로 중력이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유체를 이용해 최면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멀리 있는 이들과 영적 교신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혁명 자체가 메스머주의라는 기묘한 이론의 집단 최면에 걸린 행위였다는 게 프랑스대혁명의 역사 뒤에 숨은 흥미로운 미시사다. 이성보다는 광기 어린 열정이 혁명의 동력으로 작용했던 셈이다. 메스머주의는 혁명을 꿈꾸지는 않았지만 주류 계층의 공격과 비판을 받으면서 민중에게 탄압받는 순교자 이미지가 덧씌워지게 됐고, 결과적으로 구체제를 비판하는 원천이 된다. 메스머주의는 또 루소주의마저 흡수해 혁명 사상 보급에 기여했다. 메스머의 후계자인 베르가스는 귀족들이 어리석은 관습에 의해 유체와 연결이 끊기고, 신체적·도덕적 힘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대신 원시적 미덕을 지닌 평민들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해 루소와 비슷한 맥락에서 혁명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메스머주의를 지지했던 사람 중에는 라파예트, 자크 피에르 브리소, 장 루이 카라, 롤랑, 니콜라 베르가스, 뒤발 데프레메스닐과 같은 미래의 혁명 지도자들도 포함돼 있었다. 저자는 “베르가스가 메스머의 이름으로 공표한 소명, 농민과 시골 신부들의 미덕을 동원하라는 소명에는 희미하게나마 민주적인 경향이 존재했다”고 평가한다. 혁명 전야의 시대상은 역설적으로 과학의 시대였다. 당대 대중과 지식인들은 과학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냈고, 자연의 경이를 설명하는 이론이라면 그것이 유체든 어떤 허구적인 힘이든 무조건 믿었다. 과학에 대한 지나친 신봉이 역설적으로 비과학적 주장들을 꽃피게 되고,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지적은 과대 포장된 것일까. 혁명 이후 메스머주의는 최면 치료의 하나로 전락하게 된다. 정치적·사상적 힘도 잃는다. 특히 최면 치료 분야는 훗날 프로이트의 심리학 발전에 영향을 끼치게 되지만 차츰 잊힌 사상으로 도태되고 만다. 하버드대 교수인 단턴은 ‘책과 혁명’, ‘고양이 대학살’, ‘시인을 체포하라’ 등을 쓴 ‘책의 역사가’다.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는 방대하고 치밀한 문헌 조사를 통해 오늘날 완전히 잊힌 메스머주의란 사상을 발굴해 냄으로써 프랑스대혁명의 배후에 있던 잊혀진 ‘지적 지형도’를 현대에 세밀하게 복원한 역작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고요서사 차경희 대표의 서점 운영기

    고요서사 차경희 대표의 서점 운영기

    2013년 12월 1일 일요일 밤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대학 근처를 친구와 걷다가 영화 전문 서점으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 핑크빛 네온사인이 빛나는 창문 안쪽에는 장 콕토 등 영화인들의 얼굴이 크게 박힌 책 표지가 정면을 향해 있었다. 그 서점을 스쳐 지나가며 문득, 앞으로도 계속 책을 만들며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12월 19일 목요일 오후 3시. “작은 서점을 차리면 어떨까. 출판 작업도 할 수 있는”이라고 일기장에 적었다. 2014년 8월 17일 일요일 서점을 한다면 ‘문학 중심 서점’으로 해 보자는 생각을 굳혔다. 콘셉트는 ‘깊이가 없는 서점’. 8월 23일 토요일 깊이가 없는 서점, 즉 너무 수준이 높지 않고 책과 독서에 쉽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서점. 짙은 갈색 책장, 창문 쪽에 설치될 독서 공간으로서의 나무 바, 일정 주제를 정한 후 큐레이션을 한 10~15종 정도의 책 목록 작업, 소박한 도서 리뷰 잡지…. 지금 고요서사에서 실현된, 혹은 실현할 예정인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이날 다 떠올랐다. 2015년 4월 21일 화요일 서울 연희동의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예상했듯 높은 월세 장벽을 실감. 6월 7일 일요일 ‘고요서사’라는 이름 확정. 서점, 책, 이야기 등의 뜻을 지닌 ‘서사’라는 말은 박인환 시인이 운영했던 서점 ‘마리서사’에서 따오기로 이미 정해 뒀었다. 그 앞에 붙일 말을 고민하다 개인 블로그 타이틀로 오랫동안 썼던 ‘고요’라는 말을 떼 왔다. 좋은 책과 독서는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게 도와준다는 의미를 떠올리며. 7월 12일 일요일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해방촌카페 ㅇㅎㅎ’와 공간 제휴 결정. 7월 31일 금요일 출판사 퇴사. 9월 7일 월요일 가구와 수서 목록 등 본격적인 서점 준비 시작. 10월 15일 목요일 임시 오픈 기간 중 처음으로 책 판매.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이언 매큐언 ‘속죄’. 사업자 등록할 때 임의로 적은 개업 날짜와 꼭 같은 날 첫 판매가 이뤄져 신기하기만 했던. 12월 29일 화요일 헌책 코너 ‘두 번째 방문’의 첫 기획전 시작. ‘두 번째 방문’이란 서점에서 팔려 나간 책들이 다시 서점을 방문했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 첫 기획전 주제를 ‘해방촌 이웃의 책장’으로 정하고 해방촌에서 카페, 독립 서점, 식당 등을 운영하는 이웃들의 헌책을 받아 진열하고 판매. 뮤지션, 편집자 등 직업별 혹은 조직이나 지역별 등으로 매번 헌책 기획전의 주제를 정할 예정. 2016년 2월 11일 목요일 소설가 한강의 목소리를 타고 영국 BBC방송에 고요서사 이야기가 소개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2월 15일 월요일 KBS ‘TV 책을 보다’ 프로그램을 고요서사에서 촬영했다. 2월 29일 월요일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적 같은 일들을 겪으며 사는 감사한 나날이긴 하지만, 하루에 책이 단 한 권이라도 팔리길 늘 기도하는 불안한 날들이기도 하다.
  • [이주일의 어린이 책] 학교에 간 동물들… 공부할까 장난칠까

    [이주일의 어린이 책] 학교에 간 동물들… 공부할까 장난칠까

    동물 학교 한 바퀴·우리 집 한 바퀴/박성우 지음/박세영 그림/창비/104쪽·108쪽/각 1만 1000원 ‘수학 문제 풀 때는 팔이 없어서 못 푼다더니/급식 시간에는 여덟 개 팔로 얼른 먹고/흐물흐물 졸더니//학교 끝나니까/여덟 개 다리로 뛰어서 문방구에 1등으로 가네.’(문어는 못 말려) 50여 가지도 넘는 동물들이 왁자지껄 학교로 몰려왔다. 등교는 꼴찌여도 거꾸로 매달리기는 일등인 나무늘보,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데 ‘여기가 학원이야, 여기가 학교야’ 대꾸하는 굼벵이, 받아쓰기 공책이고 스케치북이고 먹어 치우기 바쁜 염소…. 박성우 시인은 그림 동시집 ‘동물 학교 한 바퀴’에서 동물들을 학교로 들여보내 이들이 짓까부는 모습을 시로 엮어냈다. 동물들은 허둥지둥 실수 연발이다. 배추흰나비는 책은 안 가져오고 공책만 펄럭인다고 선생님께 혼나기도 하고 고슴도치는 가시에 닿아 자꾸 터지는 풍선 때문에 주눅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새 유쾌하고 씩씩하게 친구들과 어울린다. 동물들의 특성에 착안한 재치 있는 시들을 짚어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이 설핏 보인다. 김제곤 아동문학평론가는 “동물과 친구가 되고 싶은 어린이의 마음을 자연스레 북돋우고 거기에 살포시 날개를 달아 주는 시집”이라고 평했다. ‘동물 학교 한 바퀴’가 한바탕 익살을 풀어냈다면 함께 펴낸 ‘우리 집 한 바퀴’는 아이의 입말로 쓰인 서정시들을 소담스레 담아냈다. 엉뚱하면서도 당찬 9살 규연이네 가족의 일상을 시로 옮겼다. 툭툭 뱉어내는 듯하지만 어른이 흉내 낼 수 없는 통찰력이 깃든 아이의 말을 받아 적은 듯 순전한 언어들이 반짝인다. ‘뚜띠가 하도 낑낑 짖어 대서/마당에 나와 보니//지붕 위에 반달이 올라 있다//반달아, 순한 강아지니까/마당에 내려와서 놀아도 괜찮아!’(강아지와 반달) ‘엄마, 아빠랑 별을 보러 갔다.//우리가 별을 보려고 반짝이니까/별들도 우리를 보려고 반짝였다.’(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정관 개정이 부산영화제 독립의 핵심”

    “정관 개정이 부산영화제 독립의 핵심”

    “정관 개정은 부산국제영화제 독립의 핵심 문제입니다.”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은 3일 서울신문과 한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서병수 부산시장이 정기총회에서 재신임안을 상정하지 않아 임기가 만료됐다. 이 전 집행위원장은 서 시장이 지난 2일 부산시청 9층 프레스룸에서 BIFF 집행위가 신규 자문위원 68명을 위촉한 게 부당하다고 한 지적에 “정관에는 집행위원장이 자문위원을 위촉하도록 돼 있다”면서 “부산시에 사전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오늘 서 시장의 기자회견을 반박하는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주관했다. 서 시장은 신규 자문위원 위촉을 총회 2일 전에 알았다고 하는데, 그건 공무원을 질책할 일이다. 집행위는 자문위원들을 2월 12일자로 위촉했고, 15일 부산시에 이 내용을 통지했고, 19일에는 명단까지 전달했다. →신임 자문위원 위촉은 재임 시도라는 지적이 있다. -정관을 개정하면 재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오래전에 내비쳤다. 이제 와서 부산시가 자꾸 거짓말하고 트집 잡는다. →신규 자문위원을 크게 늘린 이유는. -임시총회를 하고 정관을 개정하려면 다수의 자문위원이 필요하다. 집행위원장 연임 여부도 정관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부산시장이 물러나라고 한다고 해서 집행위원장이 물러난다면 BIFF의 독립성을 지킬 수 없다. 만일 연임이 욕심났다면 재신임을 막더라도 총회에서 밀어붙일 수 있었다. 내가 부산시와 한 약속을 지키려고 거부했다. 오히려 약속을 지키지 않고 나를 매도하는 쪽은 부산시인데, 참으로 가슴 아프다. →공식적으로는 연임 안 한다는 말은 안 했는데. -그렇다. 공식적으로 (연임을) 안 하겠다는 말은 안 했다. 정관 개정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서 시장을 반박하는 오늘 기자회견에 직접 나서지 않은 것도 부산시와의 감정싸움으로 비칠 것 같아 일단 참았다. 한편 부산영화인연대는 3일 발표문을 내고 서 시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영화제 자문위원 자격과 관련해선 “총 24명 조직위원 중 영화인은 강수연, 이용관 공동집행위원장 2명뿐”이라며 “이번 기회에 공무원, 공공기관 대표, 기업체 대표 일색인 임원진을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로 개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관대로 임시총회 소집 ▲부산시의 개입과 외압 중단 ▲정관 개정안 등 영화제 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김 수석프로그래머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자문위원 위촉 문제에 대해 “부산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법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달빛 동맹’ 이번엔 미래車

    ‘달빛 동맹’ 도시인 광주와 대구가 미래형 자동차 선도 도시로 거듭난다. 3일 광주시에 따르면 양 도시는 미래형 친환경자동차산업의 선도 도시로 동반 성장하기 위해 광주·대구 공동 전담팀(TF)을 꾸리기로 했다. 전담팀은 지난해 12월 권영진 대구시장의 광주 방문 때 윤장현 광주시장과 체결한 ‘달빛 동맹 상생 협력’ 후속 조치의 하나다. 당시 미래형 친환경자동차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전기자동차와 수소연료전지차 산업 발전을 위한 국책사업을 공동 발굴하기로 합의했다. 미래형 자동차 상용화 개발과 실증 테스트를 위해 일정 지역에 대한 규제제로구역(가칭) 지정과 법제도를 선도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이를 토대로 정부 지원을 이끌어 내고 친환경자동차의 보급, 확산에도 나설 방침이었다. 이와 관련해 양 도시 실무진은 최근 광주 북구 오룡동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서남지역본부에서 공동TF 구성과 구체적인 운영, 기획 방향 등을 협의했다. ‘예비타당성 조사급’ 대형 프로젝트 사업을 기획하고 미래형 친환경자동차 육성 전략을 담은 특별법 제정 추진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규제프리존제도와 연계해 광주의 수소자동차산업, 대구의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법·제도적 각종 규제 개선을 위해 상호 협력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전담팀에는 광주에서 광주그린카진흥원과 자동차부품연구원 광주전남본부, 전자부품연구원, 생산기술연구원, 테크노파크 자동차센터 등의 전문가가, 대구에서는 자동차부품연구원 대구경북본부, 지능형자동차부품진흥원, 대구경북연구원 등의 전문가가 참여할 예정이다. 이들은 이달 중 경남 함양 인근에서 워크숍을 열어 사업 추진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갈 방침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양 지역의 핵심적인 자동차 연구와 지원 기관의 전문가가 모두 참여해 공동 과제를 발굴하고 이를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이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강남구 K 스타로드…한류 ‘星地’

    [서울 핫 플레이스] 강남구 K 스타로드…한류 ‘星地’

    “슈퍼주니어가 저기 있다. 빨리 와. 미유키!” 유리코(24)는 연달아 늘어서 있는 아트토이 중 파란색의 하얀 별로 멋을 낸 슈퍼주니어 아트토이로 뛰어간다. 그리곤 스마트폰을 꺼내서 연방 사진을 찍어 댄다. 일본 도쿄에서 왔다는 이들은 엑소, 샤이니, 2PM 등 한류 스타를 줄줄 꿰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K 스타로드’가 일본과 중국, 인도 등 외국관광객이 꼭 찾아야 하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동관에서 청담 사거리까지 17개의 귀여운 한류스타 상징물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예쁜 옷과 각종 소품을 파는 가게, 한류스타들이 찾는 맛집이 골목 곳곳에 숨어 있다. 볼거리와 쇼핑, 맛집이 어우러진 K 스타로드를 돌아봤다. ●“관광객들에게 필수코스이자 성지로” 영국 런던의 애비로드,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광장,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관광객들이 꼭 가봐야 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이유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애비로드엔 세계적인 그룹 비틀스가, 스페인광장에는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미드레벨에는 영화 ‘중경삼림’의 추억이 묻어 있다. 도시를 찾는 관광객은 이런 스토리에 특별함을 느낀다. 그래서 강남구가 한류 팬들을 위해 특별한 장소를 만들었다. 그게 압구정 K 스타로드다. 지하철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 2번 출구를 나서면 화려한 모양의 곰 인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세히 보면 엑소, 샤이니 등 한류 스타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청담 사거리까지 1㎞에 걸쳐 17개 한류스타를 상징하는 아트토이가 인도를 따라 이어진다. 미쓰에이를 시작으로 2PM, 포미닛, 슈퍼주니어, 샤이니, FT아일랜드, 동방신기, 씨엔블루, 엑소, 소녀시대, AOA, 방탄소년단, B1A4, 빅스, 인피니트, 카라, 블락비 등 지금 국내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해외에서도 인기가 있는 아이돌 그룹의 아트토이다. 강남구는 지역 내 SM과 JYP, CUBE 등 기획사 소속 한류스타의 아트토이를 ‘강남’과 한류 아이돌(Idol), 인형(Doll)의 의미를 담아 ‘강남돌’ (GangnamDol)이라 이름 붙였다. 어른들은 모양과 색상, 디자인도 제각각인 강남돌 중 어떤 게 씨엔블루인지, 방탄소년단인지 쉽게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열혈 팬들은 멀리서 알아보고 뛰어간다. 이유는 한류스타의 앨범 디자인이나 의상, 분장 콘셉트 등을 녹인 디자인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한류 팬들은 멀리서도 구분할 수 있다. 정태숙 강남구 관광진흥과 주무관은 “아트토이 디자인은 듀코비란 디자이너가 맡았다. 여기에 한류스타나 소속 기획사 의견이 더해지면서 모두 17개 강남돌이 각기 멋진 디자인으로 탄생한 것”이라면서 “단체뿐 아니라 개인 관광객들에게 서울에서 꼭 찾아야 하는 한류문화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4시에 매출 300만원” 상권에 활력 “오늘은 정말 대박이에요. 오후 4시인데 벌써 매출이 300만원이 넘었어요.” 지난 2일 입구정로데오역 7번 출구 앞에 예쁘게 꾸며진 강남돌하우스에서 근무하는 이재연씨는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이씨는 “K 스타로드의 강남돌을 축소한 아트토이를 한 번에 10개씩 사는 해외 관광객이 많다”면서 “오늘만 100개가 넘게 팔렸다”고 말했다. 하나에 2만 9000원인 아트토이를 한 번에 17개, 모든 한류스타 아트토이를 산 중국인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아트토이 판매액이 3000만원을 넘어섰다. 이뿐 아니다. K 스타로드 등 강남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K 스타로드 건너편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중국인 남녀 연인이 파스타를 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성은 잔뜩 부은 눈 위로 살구색 테이프를 붙였다. 레스토랑 직원 김성민(31)씨는 “중국인이나 일본 손님이 평일 오후 5~10팀 정도는 창가에서 식사하면서 K 스타로드를 즐긴다”면서 “여자 손님은 대부분 간단한 성형수술을 하기 때문에 눈이나 코 등에 테이프를 붙인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모자와 장갑, 마스크를 파는 심성익(36)씨는 “K 스타로드가 바람길이라서 다른 곳보다 춥고 바람이 거세다”면서 “날이 추우면 장갑 등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서 매출이 짭짤하다”고 말했다. ●최지우 가는 맛집… 탑이 찾는 피규어 집도 연예인 최지우와 고소영 등이 자주 찾는 멀티숍 ‘스수와’(02-543-1117). 깔끔하고 독창적인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여자 연예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곳이다. 일본 인기 아이돌그룹 칸쿤의 멤버 나카마루 유이치가 예능방송 미션으로 ‘한국에서 최지우 찾기’를 수행하러 서울로 온 적이 있었다. 유이치가 서울 곳곳을 헤매다가 최지우를 찾은 곳이 바로 스수와였다. 그래서 일본 관광객이 더욱 많이 찾는다. 목걸이 가격대는 30만~40만원대. 슈퍼주니어 최시원이 브런치를 즐기는 집으로 알려진 ‘컬렉터스 키친’(02-546-8896). 퓨전 프렌치 요리와 예술작품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최시원은 주로 테라스석에 앉아 샷을 추가한 에스프레소와 브런치를 즐긴다고 한다. 미쓰에이 페이와 지아도 이곳의 파스타와 피자를 좋아한다고 주인이 전했다. 2대째 정통 중국요리를 고수하는 ‘연경’(02-549-7843)은 수애, 김희선, 차승원부터 소녀시대와 2PM 조권 등 나이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연예인이 찾는다. 특히 몇 명이서 단출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방이 많아서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에게도 인기다. 피규어 뮤지엄 W(02-512-8865)는 피규어 마니아들의 성지로 알려졌다. 만화 속 캐릭터부터 스크린 속 히어로까지 다양한 피규어를 전시, 판매하는 테마파크다. 빅뱅의 승리와 탑, 비스트의 손동운 등 많은 스타가 피규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운 좋으면 옆에서 같이 피규어를 감상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씨줄날줄] 사라지는 대학신문/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라지는 대학신문/최광숙 논설위원

    고교 때부터 학보로 불리는 대학신문 애독자였다. 군대 갔다가 복학한 오빠가 학보를 보내 준 덕분이다. 갈래머리 여고생 눈에는 신문 기사보다는 석탑의 학교 건물과 캠퍼스에 더 눈길이 가면서 미래의 대학 생활을 동경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꼼꼼히 읽게 된 학보에는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아카데믹한 진리의 향연도 있었고, 사회를 향한 비판과 고뇌도 담겨 있었다. 1970~1980년대는 특히 학생들이 독재 권력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대학신문과 정부 당국 간의 충돌이 심했던 시기다. 5공 시절 고려대의 ‘고대신문’(1947년 창간)만 하더라도 시험 인쇄본이 나오는 월요일 아침이면 학생회관 2층에서 기관원들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어떤 경우는 배포 금지되기도 했다. 그 후 당국의 외압 대신 원고의 사전 검토를 주장하는 주간 교수와 학생 기자 사이에 편집 자율권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렇듯 학보는 단순히 학생들만의 신문이 아니었다. 부조리한 정치권력과 횡포를 단호히 거부하고자 하는 날 선 시대정신을 담아 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1960년도 ‘고대신문’의 사설을 보면 졸업생에게는 ‘낡은 사회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라’고, 신입생들에게는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거부한다’고 썼다. 지금도 가슴을 뛰게 하는 사설이지 않은가. 이런 대학신문들이 3·15 부정선거 이후 학생들의 저항의식에 불을 댕겨 4·19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토양이 됐던 것은 당연하다. 연세대의 ‘연세춘추’는 1935년 ‘연전타임스’라는 이름으로 창간됐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던 시절인데도 학생 기자들이 한글 신문을 고집하는 결기를 보였다고 한다. 그후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발행이 중단됐다가 6·25전쟁 중인 1953년 재발행됐다. 전쟁통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윤동주 시인 특집호를 기획해 민족의 자긍심 고취에 나서기도 했다. 학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2년 미국의 선교사가 운영한 평양 숭실학교에서 ‘숭대시보’를 창간하면서다. 광복 후 1946년 지금의 서울대인 경성대학에서 ‘경성대학예과신문’(훗날 대학신문으로 재창간)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대학신문들이 발행되면서 지금은 학보를 내지 않는 대학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대학생 10명 중 3~4명은 학보를 읽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없어서’ ‘바빠서’ 등이 이유란다. 그러다 보니 학교 측도 예산 등을 핑계로 학보를 폐간하거나 온라인 발행으로 바꾸려고 한단다. 취업난, 인터넷 매체의 등장 등을 고려하면 대학신문의 미래가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기에 대학신문의 위기가 더 안타깝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

    거침없다. 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은 말과 행동이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거침없다. 대화는 명쾌하지만 가끔 아슬아슬하다. 때가 때인 터라 올해 구정 계획을 듣는 자리에서도 이런 줄타기가 이어졌다. 1997년 장을병 국회의원의 정책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이미경 의원의 정책비서관과 입법보좌관으로 활동하면서 정치를 배웠다. 정치판을 잘 아는 만큼 쓴소리도 독하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구청장이니까 정치적인 발언은 자제하라’고 하더라”면서 국내 정치 논평보다는 ‘안전한’ 해외 정치 논평으로 슬쩍 넘어갔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니 샌더스 돌풍’을 잘 보세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라는 운동이 있었죠. 시민의 세금으로 거대 금융기업에 구제자금을 투입했는데, 흥청망청 썼어요. 금융회사를 망치고 고객 돈을 떼먹은 핵심 인물들은 처벌받지 않았죠. 정의롭지 못한 집단의 민낯이 드러났어요. 그런데 월스트리트를 개선해야 할 정치권이 거기서 후원금을 엄청 받아요. 변화가 있겠어요? 서민이 공분할 수밖에 없죠. 샌더스 돌풍의 원인은 그런 사회경제적 원인에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김 구청장은 우리 사회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와 서민경제”라고 했다. 국내 정치로 논제가 되돌아가나 했더니 구정을 거론한다. 그는 올해의 핵심 가치로 ‘금융복지’를 꺼냈다.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은 상황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대출 금리가 상승한다면 300조원 수준의 생계형 대출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경제적으로 허덕이는 서민을 위해 중앙정부가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정부의 부자 감세 기조는 그대로라 복지예산을 늘리기 위한 세수 확대는 요원하다. 중앙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은 교육청에,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은 재정 빈곤 상태에 빠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는 편법을 쓰고 있다. 은평구의 올해 예산 5400억원 중 60%가 기초연금(1000억원), 무상보육(1000억원), 기초생활수급비, 의료급여 등에 들어간다. 그는 이런 상황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서민들의 수입과 소비가 영양실조에 가까운 상태”라고 진단했다. 영양 공급을 위한 구청장의 첫째 숙제는 ‘빚에서 구제’하는 것이다. 그는 금융복지상담센터 설립을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빚의 노예’가 돼 고통당하는 주민을 위해 상담을 통해 대처법을 알려주는 기관이다. 오는 4월 구청 민원실이나 지하철 3호선 녹번역의 사회적경제센터에 금융복지상담센터를 만들 예정이다. ‘빚 구제’를 위해 은평구는 부실·악성 채권을 소각하는 ‘빚 탕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저소득층의 가계부채는 개인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라는 김 구청장은 “정부는 대출을 부추기고 금융기관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라도 나서 어려움에 빠진 서민을 살려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이를 위해 사회적경제활성화기금 40억원 중 1억원 정도를 긴급금융구제에 편성했다. 지난해 말 은평제일교회에서 1000만원을 지원받아 은평구민의 부실 채권 46억원어치를 소각했다. 1억원이면 400억원의 부실 채권을 소각할 수 있다. 많은 주민을 빚에서 탈출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적 구제만큼 김 구청장이 올해 심혈을 기울이는 사안이 ‘국립한국문학관 유치 사업’이다.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 소설가 이호철·최인훈 등 한국 근현대문학의 거장들이 은평에 살았거나 인연이 깊다. 세계사에서 유일한 ‘기자촌’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은평이야말로 문학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 기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은평구에 기자마을을 만들었어요. 기자들에게 주택을 공급했지만 언론 통제적인 접근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긴급조치’에 반대한 글을 썼던 해직 기자들도 기자촌에서 많은 애환을 쏟아냈다는 겁니다. 그 흔적을 기록하고 이어 갈 수 있는 은평이야말로 국립한국문학관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국립한국문학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학 진흥을 위해 추진하는 시설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은평구 진관동에 들어서는 것이 유력해 보였다. 구가 지리적 토대, 문학적 의미, 접근성 등을 내세워 적극적인 유치 노력을 하면서 마무리에 다다르는 듯했다. 그런데 다른 지자체가 확대 공모를 요청하면서 문체부가 모든 과정을 제자리로 돌렸다. “2차로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김 구청장은 “역사적인 주요 문인들과 문인과 다름없는 기자들의 노고가 새겨진 이곳의 이야기를 살리려면 국립한국문학관을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정지가 북한산 자락이라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 “신분당선 연장이 결정되면서 기자촌까지 지하철이 닿으니 은평에서 강남까지 30분 거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문학은 꽃을 노래하는 겁니다. 자유로운 상상의 영역이죠. 북한산 자락에서, 웅장한 자연 속에서 얼마나 풍부한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낼 수 있겠어요. 통일로가 있는 은평에 한국문학관이 들어서면 통일시대에 우리 문학이 판문점을 넘어서, 휴전선을 건너고 평양을 넘어 널리 퍼질 수 있겠죠.” 상기된 표정으로 그는 “문학으로 남북을 하나로 엮고, 통일의 전초기지가 되는 곳이 국립한국문학관”이라고 강조했다. 김 구청장이 취임한 2010년(민선 5기)부터 은평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불광동 질병관리본부가 떠난 자리에 서울혁신파크가 안착했다. 수색역세권을 쇼핑·문화·교통의 중심지로 만드는 서울시 개발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은평뉴타운엔 8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인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이 올라가고 있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요인들이 ‘은평 3대 축’을 그리고 있다. 큰 그림이 완성되는 가운데 마을공동체 사업과 공직사회 내실화 작업도 진행된다. 특히 주민 참여형 도시 재생 사업이 활발하다. 개발·재건축의 전면 철거 방식이 아니라 주택 관리나 개·보수, 방범, 커뮤니티센터 등의 기반시설을 구가 보조하면서 주민 주도로 추진하는 ‘두꺼비하우징’은 김 구청장의 대표적인 사업이다. 40년 이상 개발 소외지였던 신사동 산새마을은 두꺼비하우징으로 새로운 마을이 됐다. 낡은 도로를 정비하고 경관을 바꾸면서 주민들이 텃밭 조성, 자율 방범 활동 등을 펼쳐 마을공동체의 모델을 만들었다. 산골마을(녹번·응암동), 토정마을(역촌동), 수리마을(불광동) 등에도 주민 참여형 재생 사업이 한창이다. 또 지난해를 ‘청렴도 회복의 원년’으로 삼은 구는 구청장을 포함한 전 직원이 청렴 실천 결의대회를 열고 주민 불만을 꾸준히 점검하면서 외부 통제 기능도 강화하는 한편 직원 간 소통을 활발히 해 공직 청렴도와 투명성을 높였다. 그 결과 지난해 전국 청렴도 평가에서 최고 상승 점수(1.03점)를 기록하면서 청렴도 순위도 69위에서 27위로 수직 상승했다. 김 구청장은 “청렴 사업은 일상 속에서 실천해야 할 공직자의 자세”라며 지속적으로 추진할 청렴종합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은평은 경제적 여유는 크지 않지만 8년 연속 적십자회비 모금에서 1등을 한, 사람 사는 정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착한 흥부에게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줬듯이 선량한 은평구민들은 큰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은평살이 자체가 큰 선물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냉대받은 잡상인 “국회의원이 접대” 거짓신고

    2일 밤 서울 마포경찰서에는 마포구 도화동의 한 식당에서 국회의원이 주민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무려 19명의 경찰관이 식당으로 출동했지만 현장에는 접대의 흔적이 없었다.   경찰은 허위 신고자로 인근 거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김모(52)씨를 찾아냈다.  김씨는 “술에 취해 거짓 신고를 했다”고 시인했다. 김씨는 해당 식당 주인이 자신을 냉대하자 허위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누나 세제 등을 파는 상인인 김씨는 그 식당 주인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하자 복수를 결심한 것이다. 김씨는 9차례나 약식기소돼 벌금을 낸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김씨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4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봄이 부서질까 조심조심… 새 단장한 광화문 글판

    봄이 부서질까 조심조심… 새 단장한 광화문 글판

    서울의 낮기온이 8도까지 오르며 봄이 머지않았음을 알린 2일 광화문광장 앞 교보생명빌딩에 걸린 광화문 글판을 배경으로 시민들이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이 글귀는 고 최하림 시인의 작품 ‘봄’의 일부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여의도 카페] 대통령 축사·부총리 없는…거래소 환갑잔치

    [여의도 카페] 대통령 축사·부총리 없는…거래소 환갑잔치

    한국거래소가 3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증권시장 개장 60주년 기념식’을 갖습니다.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 출범과 함께 문을 연 국내 증시의 ‘환갑잔치’를 벌이는 겁니다. 기념적인 날인 만큼 떠들썩한 파티를 벌일 법도 한데 상당히 조촐하게 진행됩니다. 오후 6시부터 2시간가량 열리는 기념식에는 국회의원,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등 500여명의 인사가 참석할 예정입니다. 2006년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50주년 기념식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냈고, 한덕수 당시 경제부총리가 축사를 했습니다. 올해는 어떤 면에서 50주년보다 더 의미 있는 환갑을 기념하는 자리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는 없다고 합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않습니다. 이벤트도 수수합니다.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이 새로 발간된 ‘한국거래소 60년사’를 주요 상장사 대표 등 3명에게 헌정할 예정입니다. 백시향 한국시낭송교육원장은 거래소 이사를 지낸 이명 시인의 축시를 읊습니다. 퓨전국악 등 5분 분량의 기념 공연도 한다고 하네요. 거래소는 1996년 40주년 때 강세장의 상징인 ‘황소’(Bull)가 약세장을 뜻하는 ‘곰’(Bear)을 뿔로 들이받는 조각상을 선보였습니다. 지금도 1층 로비에 전시돼 명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50주년 때는 증권인들의 마라톤 대회 ‘불스 레이스’를 창설했고, 이는 해마다 4월 개최되는 연례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사실 거래소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으나 화려한 걸 싫어하는 최 이사장이 소박하게 꾸미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입니다. 거래소가 ‘환갑잔치’에 배정한 예산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조달청에 공시된 ‘60주년 리셉션 행사 대행용역’ 입찰 공고를 보면 1억 8000만원이 책정됐습니다. 증권가는 조촐하게 행사를 치르자는 최 이사장의 뜻에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안 그래도 장이 안 좋아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 마당에) 그래도 환갑인데 대통령의 축사 메시지 한 줄 없고 경제부총리도 불참하고 좀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정호승 시인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정호승 시인

    “시인은 평생을 바쳐야 시 한 편이 살아남는다. 시는 당대의 고통을 반영할 뿐 아니라 초월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시로서의 생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초월성은 서정을 통해 나타난다. 1970~80년대라는 겨울을 지나면서도 서정이라는 함박눈조차 내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참혹할까 싶었다.” 겨울의 스산함은 사라졌지만, 새봄의 훈풍은 아직 깃들지 않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앞. 정호승(66) 시인이 성당 앞 계단을 부지런히 내려왔다. 환갑보다는 고희에 더 가까운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맑은 얼굴을 하고서였다. 신자들에게 강연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요즘 ‘주’(시)와 ‘객’(강연)이 바뀐 것 같아 강연을 자제하려고 하는데 워낙 와달라는 요청이 많아 생각처럼 줄지는 않는군요.” 이날도 평생 그의 시를 관통해온 ‘사랑’에 대해 강연을 했다는 그는 성당 앞 카페에서 3시간 동안 시와 인생, 세월과 나눈 사랑 얘기를 들려주었다. -1963년의 어느 봄날. 까까머리 중2 교실에 짝짝짝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에 서 있던 나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친구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호승이는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거야.” 시(詩)라는 걸 난생처음 써봤던 그때, 국어 선생님은 내가 지은 시 ‘자갈밭에서’를 반에서 가장 잘된 작품으로 골라 낭독을 시키셨다. 그게 내가 시와 맺은 인연의 출발점이었다. -내가 다닌 대구 계성중학교는 박목월, 김동리 등 문단의 거목들을 많이 배출한 영남 지역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당시 교사들 중에도 현역 문인들이 꽤 있었는데 국어를 가르쳤던 김진태 선생님도 등단한 수필가셨다. 시 낭송이 있고 얼마 후 담임 선생님이 조회시간에 “교내 백일장에 누가 나가면 좋겠느냐”고 물으셨다. 국어 수업의 기억이 또렷한 반 아이들은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나를 지목했다. 솔직히 난 그때 백일장의 뜻도 몰랐다. ‘백일 동안 어딜 좀 다녀오는 건가?’ -학교 운동장 너머 솔숲에서 백일장이 열렸다. ‘불’을 주제로 시나 산문을 쓰라고 했다. 나는 ‘등불’이란 제목으로 시를 썼다. ‘스스로 발광체인 나’로 시작했는데, 발광체는 바로 며칠 전 물상 수업에서 배웠던 단어였다. 덜컥 장원이 됐다. 상으로 학교 매점에서 쓸 수 있는 1000원짜리 종이표를 주었다. 그 맛있던 30원짜리 삼립 단팥빵을 30개나 사고도 돈이 남았다. 친구들에게 크게 한턱을 내고 나니 어깨가 으쓱거려졌다. ‘이런 식으로 하면 공짜 빵을 계속 먹을 수가 있겠구나’ 매월 교내 문예원고 모집 때마다 시를 써 보냈고, 그때마다 상을 받았다. 상금으로 공책도 사고 체육복도 사면서 든 생각. “이걸 평생의 일로 삼을 수도 있겠구나.” -당시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백일장 장원의 여세를 몰아 ‘석의 심정’이라는 제목의 산문을 보냈더니 우수작으로 뽑혔다. 이후 고교 시절까지 계속 글을 보냈고, 그때마다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박남수, 박목월, 박두진 등 쟁쟁한 시인들이 직접 나의 시에 대해 평을 해 주셨다. 그분들의 평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그런 식으로 시를 스스로 공부했다. -우리 집안의 뿌리는 대구다. 아버지는 대구농림전문학교를 나와 은행원이 되셨는데, 이 지방 저 지방 전근이 잦으셨다. 내가 6·25 전쟁이 터지기 몇 달 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것도 아버지께서 상업은행 하동지점에 근무하셨기 때문이다. 경기 평택 등지에서 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대구에 완전히 정착을 했다. 그때 명동 상업은행 본점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서울이 싫다며 고향으로 오셨다. 한참 후에 집안이 쫄딱 망해서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오게 됐는데, 만약에 그때 일찌감치 서울에 정착했더라면, 그래서 내가 계성중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그리고 내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해준 ‘가난’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버지는 내가 중3 때 사업을 하겠다며 은행을 나오셨다. 하지만 마음만 앞섰지, 경영에 대한 감이나 수완은 없으셨다. 이를테면 당신이 운전도 못하면서 주변 사람 말을 듣고 택시회사를 차린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1년 만에 퇴직금을 전부 날리고 커다란 빚을 졌다. 난생처음 가난을 맛봤다. 부지런한 어머니 덕에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기마다 학비를 내는 게 벅찰 정도였다. -1967년 고3이 됐다. 대학엔 가고 싶은데, 앞이 안 보였다. 공부라도 잘해야 빚을 내서 대학 등록금 마련할 생각도 해볼 텐데, 내 성적은 딱 반에서 중간 정도였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경희대 문예장학생 제도였다. 경희대가 주최하는 백일장이나 전국고교생문예현상모집에 장원으로 당선되면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할 수 있었다. 그해 9월 경희대 백일장에 나갔다. 하지만 나는 장원은커녕, 차상도 차하도 아닌 참방(參榜)에 머물고 말았다. 장려상쯤 되는 건데 그걸로는 문예장학생이 될 수 없었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후일에 내 스승이 되신 조병화 선생은 “상위권에 올리자니 문제가 있고, 떨어뜨리자니 아깝다”고 평하셨다. 대구로 내려오는데 기차 안에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아직 고교생문예현상모집이 남아 있었다. 시 부문을 포기하고 평론 부문으로 종목을 바꿨다. 원고지를 100장 이상을 써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했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의 부탁을 받고 팔자에 없는 거짓말을 담임 선생님에게 해야 했다. “우리 호승이가 몸이 너무 아파서 1주일간 학교를 쉬어야겠네요.”(나중에 꾀병임을 알게 된 선생님에게 출석부로 머리를 맞아야 했지만…) 집안에 틀어박혀 나의 첫 평론 ‘고교 문예의 성찰: 고교시를 중심으로’를 완성했다. 그게 최우수작이 됐고, 1968년 3월 나는 당당히 경희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입학 장학금의 유효기간은 단 1년이었다. 장학금 규정상 2학년 이후에도 계속 받으려면 신춘문예 등을 통해 등단을 해야만 했다. 친구들이 신나게 놀 때 나는 학업을 유지하기 위해 자취방에서 도서관에서 시를 썼다. 그러나 당선의 문턱에서 계속 미끄러졌다. 한 해 휴학까지 했는데도 등단이 안 됐다. 친구들보다 군 입대를 일찍 했던 것도 등록금이란 화살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군에서도 신춘문예에 계속 투고를 했다. 제대하기 직전인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로 당선이 됐다. “이제는 학비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겠구나.” -사람들에겐 막연한 선입견 같은 게 있다. ‘시인은 가난과 가깝고, 일상을 방기하곤 한다’는 인식이다. 난 그게 싫었다. “시인이라도 열심히 일하면 가난하지 않을 수 있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40대 초반까지 잡지사 기자 생활을 열심히 했다. 물질적인 여유가 있어야 시 창작을 위한 시간도 더 내고 공부도 더 많이 하면서 결과적으로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인’은 생계 수단으로서의 직업이 안 된다. 아주 잘 팔리는 시집을 1년에 한 권씩 내더라도 생활이 안 된다. 나만 해도 시집 판매량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들 텐데도, 그것만으로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있는 수준까지 벌지 못했다. 그래서 잡지사 생활 때 열심히 저축을 했고 그걸 위해 많은 걸 포기했다. 술도 자제했고, 밥은 회사 식당에서 먹었다. 운전도 못하고, 골프는 채도 한번 잡아본 적이 없다. 그렇게 해서 아내와 두 아들을 굶기지는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고, 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1976년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해 서울에서 50명을 뽑는데 8등을 했다. 뒤늦게나마 내가 공부에 잠재력이 없진 않았구나 생각해본 순간이었다. 하지만, 교사는 내 적성이 아니었다. 3년 정도 가르치다 잡지사 기자로 전환했다. ‘주부생활’, ‘샘터’, ‘여성동아’, ‘월간조선’ 등에서 일했다. 직장 생활에 치여 1987년까지 시를 단 한 편도 쓰지 못했다. 두 번째 시집 ‘서울의 예수’가 1982년에 나오긴 했지만 이전에 써 놨던 작품들을 책으로 엮어내기만 한 것이었다. -1991년 월간조선에 사표를 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기자로서 다양한 분야에 대해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소설가에 대한 욕망이 한층 커져 갔다. 이미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위령제’라는 단편소설로 당선된 적도 있었다. 시인으로 등단한 상태여서 우리 아들 이름으로 냈지만. 그때 가진 생각이 “10년 뒤에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에 전념하자”는 것이었다. -서울대 근처의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소설을 썼다. 그런데,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다. 스스로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문장에 물기가 없었다. 변변한 수입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니 생계도 어려워졌다. ‘내 문학적 기질은 소설이 아닌 시’라는 걸 깨닫기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잘못하면 시도 못 쓰겠다” 싶은 두려움에 1996년 나는 소설을 떠나보냈다. 소설에 파묻힌 5년 동안 틈틈이 적어놨던 메모를 바탕으로 5개월 동안 시를 썼다. 그렇게 해서 나온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6개월 만에 10만부 이상이 팔렸다. 마음에 편해졌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았다. -나는 스스로 미당 서정주 선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미당을 통해 한국 시의 전통적인 문학성과 가락성 등을 배웠다. 군 복무 시절 친구로부터 서정주 시선을 빌렸다. 춘천 시내에 가서 좋은 노트를 산 뒤 시집의 맨 앞표지부터 맨 뒤 판권 기록까지 그대로 베꼈다. 그리고 필사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 필사본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시인은 평생을 바쳐야 시 한 편이 살아남는다. 시는 당대의 고통을 반영할 뿐 아니라 초월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시로서의 생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초월성은 서정(抒情)을 통해 나타난다. 1970~80년대라는 겨울을 지나면서도 서정이라는 함박눈조차 내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참혹할까 싶었다. 시대상황의 반영과 서정성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닌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고 내놓은 작품들이 ‘슬픔이 기쁨에게’, ‘맹인부부가수’,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이다. 이 시들은 지금도 대중 속에서 살아있다. 20대에 목표로 삼았던 미당과 김수영의 결합이 어느 정도 성공하지 않았나 싶어 다행이라 여긴다. -내 시는 노래 가사로도 많이 쓰였다. 대중가요와 가곡 등 합쳐 60여곡 정도가 노래로 만들어졌다. 가수 안치환씨와는 몇 해 전부터 ‘안치환, 정호승을 노래하다’라는 콘서트를 한 달에 한 번꼴로 열고 있다. 가장 처음 노래로 나온 건 이동원씨가 부른 ‘이별노래’다.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그 곡에 가장 애착이 간다. 안치환씨가 불렀던 ‘풍경 달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도 좋아한다. 김광석씨가 불렀던 ‘부치지 않은 편지’, ‘수선화에게’ 등도 기억에 남는다. -‘시는 노력이 아닌 선천적인 감각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에게 시는 철저히 노력의 산물이다. 내가 시를 쓰면서 100번이고 200번이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는 건 그래서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 인간의 삶 등을 접하고 그 이면을 보려면 자신만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라는 산은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야 한다. 내가 시라는 산을 찾아야 산에 있는 나무를 껴안을 수 있고, 산길도 걸을 수 있다. 칠레의 유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시가 나에게 찾아왔다”고 말했지만 난 단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다. -신의 도움이 있다면 10년 뒤에도 열심히 시를 쓰고 싶다. 지금 가슴 속에 시상(詩想)이 많다. 생의 마지막에 ‘이걸 다 쓰지 못하고 죽어서 아쉽다’는 생각은 안 하고 싶다. ‘전(前) 시장’이나 ‘전 국회의원’은 있어도 ‘전 시인’은 없다. 시인은 언제나 현직이다. 항상 시를 써야 시인이다.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정호승 시인은 김소월, 서정주 등을 잇는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이다. 초·중·고 교과서에 그의 시가 20여편 실려 있고,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글판에도 지금까지 세 편의 시가 걸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대와 현실의 목마른 척박함에 발을 대고 서 있지만 위로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김승희 서강대 교수·문학평론가)자세를 꿋꿋이 유지하면서 김수영의 참여 정신을 서정의 틀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별들은 따뜻하다’ 등의 따뜻한 시로 힘든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의 손길을 건넸다. 대표 시선(詩選)으로는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이 있다. ▲대구 계성중·대륜고 ▲경희대 국문학 학사·석사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1973년) ▲소월시 문학상(1989년) ▲정지용 문학상(2000년) ▲한국가톨릭문학상(2001) ▲상화시인상(2006) ▲공초문학상(2008년)
  • 연아도 팬도 난민 사랑… 유니세프에 6000만원 기부

    연아도 팬도 난민 사랑… 유니세프에 6000만원 기부

    ‘피겨 여왕’ 김연아(26)의 팬들이 성금 6000여만원을 모금해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전달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2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김연아 팬 카페와 디시인사이드의 김연아 갤러리에서 활동하는 팬들이 김연아의 올림픽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기부 모금을 펼쳐 성금을 위원회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김연아의 팬들은 지난달 17일부터 26일까지 ‘올림픽 챔피언 6주년&2주년 기념 유니세프 기부 모금’ 행사를 진행했다. 총 400명의 회원들이 성금 6275만 1584원을 모았다. 성금에는 김연아의 기부금 5000만원도 포함돼 있다. 김연아는 팬들의 자발적인 모금 활동 소식을 우연히 듣고 해당 계좌에 5000만원을 기부했다. 유니세프 관계자는 “성금 전액은 시리아 난민 어린이를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연아의 팬들은 2010년 김연아의 생일을 축하하는 의미로 약 3000만원을 모아 유니세프에 기부했고 2011년엔 1400만원을 모금해 전달했다. 2013년에는 시리아와 필리핀 긴급구호 성금을 냈고 지난해에도 바누아투 피해 지원 성금을 유니세프에 보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해경 해체 후 ‘0’인천항 밀수 적발

    해상 범죄 대응력 급격히 하락 밀입국 적발도 30건서 1건으로 해양경찰이 해체되고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전환된 뒤 밀입국 단속 시스템에 결정적인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수사·정보 인력이 크게 줄어든 데다 단속 범위마저 축소된 게 최근 빈번한 항만 밀입국의 원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2일 해양경비안전본부에 따르면 2014년 해경이 해체된 이후 밀입국 사범에 대한 첩보수집과 검거 등을 담당하던 수사·정보·외사 분야에서 일하던 직원 792명이 287명으로 줄었다. 200명은 육지경찰(경찰청)로 전출됐으며 305명은 다른 부서에 배치됐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단속 실적이 방증한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해경의 밀입국·밀출국 적발 건수는 30건에 달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현재까지 적발 실적은 단 1건에 불과하다. 밀수범죄 또한 2010∼2013년에 39건을 적발했지만 2014년부터는 실적이 전혀 없다. 이 같은 현상은 해경 해체 이후 수사·정보 기능 대부분이 경찰청으로 넘어가면서 해상에서 벌어지는 범죄 대응 능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밀입국자를 비롯한 해상범죄자가 항만을 벗어나 육지로 도주할 경우 해양경비안전본부로서는 관할권이 없어 끝까지 추적하지 못하는 한계마저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공백이 생기면서 인천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밀입국 브로커 조직들이 생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올 들어 세 번째 인천항을 통한 밀입국 사건이 발생한 지난달 26일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인천항 주변에 중국 등과 연계된 밀입국 브로커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인천항이나 부산항 등으로 밀입국하는 이들은 대개 북·중 접경 항구도시인 퉁장(同江)과 피커우(皮口) 등에서 브로커와 접선한 뒤 국내로 잠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해경에서 일하던 수사·정보 분야 직원들이 육지경찰로 넘어왔지만 이들이 역량을 발휘하기에는 모호한 점이 있다”면서 “최근 잇따른 밀입국 사건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이용관 BIFF 전 집행위원장 “정관 개정은 독립 핵심 문제”

    이용관 BIFF 전 집행위원장 “정관 개정은 독립 핵심 문제”

    “정관 개정은 부산국제영화제 독립의 핵심 문제입니다.”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은 3일 서울신문과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서병수 부산시장이 정기총회에서 재신임안을 상정하지 않아 임기가 만료됐다. 이 집행위원장은 서 시장이 지난 2일 부산시청 9층 프레스룸에서 BIFF 집행위가 신규 자문위원 68명을 위촉한 게 부당하다는 지적에 “정관에는 집행위원장이 자문위원을 위촉하도록 돼 있다”면서 “부산시에 사전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 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오늘 서 시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반박하는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주관했다. 서 시장은 신규 자문위원 위촉을 총회 2일 전에 알았다고 하는데, 그건 공무원을 질책할 일이다. 집행위는 자문위원들을 2월 12일자로 위촉했고, 15일 부산시에 이 내용을 통지했고, 19일에는 명단까지 전달했다. -신임 자문위원을 위촉은 재임시도라는 지적이 있다. →정관을 개정하면 재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오래전에 내비쳤다. 이제 와서 부산시가 자꾸 거짓말하고 트집 잡는다. -신규 자문위원을 크게 늘린 이유는. →임시총회하고 정관을 개정하려면 다수의 자문위원이 필요하다. 집행위원장 연임 여부도 정관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부산시장이 물러나라고 한다고 해서 집행위원장이 물러난다면 BIFF 독립성을 지킬 수 없다. 만일 연임 욕심 난다면 재신임을 막더라도 총회에서 밀어붙일 수 있었다. 내가 부산시하고 한 약속을 지키려고 거부했다. 오히려 약속을 지키지 않고 나를 매도하는 쪽은 부산시인데, 참으로 가슴 아프다. -공식적으로는 연임 안 한다는 말은 안 했는데. →그렇다. 공식적으로 (연임을)안 하겠다는 말은 안 했다. 정관 개정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서 시장을 반박하는 오늘 기자회견에 직접 나서지 않은 것도 부산시와 감정싸움으로 비칠 것 같아 일단 참았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광주와 대구 ‘달빛 동맹’ 미래 자동차 분야로 확대

    ‘달빛 동맹’ 도시인 광주와 대구가 미래형 자동차 선도 도시로 거듭날 전망이다. 3일 광주시에 따르면 양 도시는 미래형 친환경자동차산업의 선도도시로 동반 성장하기 위해 광주·대구 공동 전담팀(TF)을 꾸리기로 했다. 양 도시가 참여하는 전담팀은 지난해 12월 권영진 대구시장의 광주 방문 때 윤장현 시장과 체결한 ‘달빛동맹 상생협력’ 후속 조치의 하나이다. 윤 시장과 권 시장은 당시 미래형 친환경 자동차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전기자동차와 수소연료전지차 산업 발전을 위한 국책사업을 공동으로 발굴하기로 합의했다. 또 미래형 자동차의 상용화 개발과 실증 테스트를 위해 일정 지역에 대한 규제제로구역(가칭) 지정과 법제도 개선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토대로 정부지원을 이끌어 내고 친환경 자동차의 보급 확산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이와 관련, 양 도시의 실무진은 최근 광주 북구 오룡동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서남지역본부에서 미래형 친환경자동차산업 선도와 달빛동맹 상생협력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사업기획 공동TF 구성과 구체적인 운영, 기획 방향 등을 협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예비타당성 조사급’ 대형 프로젝트 사업을 기획 발굴하고 미래형 친환경자동차 육성 전략을 담은 특별법 제정 추진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규제프리존제도와 연계해 광주의 수소자동차산업, 대구의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법·제도적 각종 규제의 개선을 위해 상호 협력 지원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 광주·대구 공동 TF에는 광주에서는 광주그린카진흥원과 자동차부품연구원 광주전남본부, 전자부품연구원, 생산기술연구원, 테크노파크 자동차센터 등의 전문가가, 대구에서는 자동차부품연구원 대구·경북본부, 지능형자동차부품진흥원, 대구·경북연구원 등의 전문가가 참여할 예정이다. 이들은 이달 중 경남 함양 인근에서 워크숍을 열어 사업추진의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갈 방침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양 지역의 핵심적인 자동차 연구와 지원기관의 전문가가 모두 참여해 공동과제를 발굴하고 이를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이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언론인 10년, 정치인 20년 경력의 6년차 구청장이다. 빨간색, 보라색 등으로 염색한 머리 색깔과 여름이면 반바지에 잠자리 눈알 같은 파란색 렌즈의 미러 선글라스 차림으로 가끔 주민들을 놀래 주기도 한다. 외양만 파격적일 뿐 아니라 구민들을 위한 정책도 ‘용꿈꾸는 작은도서관’ ‘걸어서 10분 거리 도서관도시’ ‘지식도시락 배달서비스’ ‘365 자원봉사도시 관악’ 등 재치와 배려가 넘친다. 억지에 가까운 민원은 “세종대왕이 관악구청장을 해도 그 문제는 어쩔 수 없을 겁니다”라며 단호하게 대처하지만, 대부분의 민원을 세종대왕처럼 슬기롭게 해결해 낸다. 신문기자 시절 그는 ‘머’로 불렸다. 재치 있는 농담을 잘해서 성과 합하면 ‘유머’가 그의 별명이었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나 군중을 웃게 하는 농담은 다양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당의 대변인으로 활약할 때도 그의 유머 감각은 빛을 발했다. 민감한 정치 사안에 대해 김한길 의원의 속마음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의 답은 이랬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겠습니다.” 경로당을 자주 찾는 그가 인사말로 꼭 꺼내는 농담이 있다. “저는 여당도 야당도 아니고 경로당입니다. 어르신 모시는 일에는 오로지 경로당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 번 들은 말이라도 들을 때마다 어르신들은 박장대소한다.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여러 일을 하다 정치계에 뛰어들고서 낙천, 낙선을 다섯 번이나 겪은 끝에 “겨우” 구청장에 당선됐다. 대기업 사원, 기업 홍보실장, 공공기관장, 편집국장, 방송작가, 베스트셀러 작가, 방송국 사장 등 무수한 이력을 쌓는 중간중간 백수로 지낸 적도 많았다. 유 구청장이 던진 사표 숫자만도 7장이다. 감정적으로 던진 것은 아니었다. 첫 직장인 LG그룹 기획조정실은 ‘혼을 바쳐 일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 나왔다. 한국일보 기자 시험에 합격해 3년간 다녔지만, 국민주주의 성금으로 한겨레가 창간되자 과감히 옮겼다. 5년간 일한 한겨레는 고(故) 송건호 전 한겨레 초대회장의 인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표를 던지고 떠났다. 그는 “준비되지 않은 사표를 던지고 엄청 고생이 많았다”며 “젊음은 용기와 배짱이 생명이니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사표를 던지면 더 좋은 길이 나타날 거란 무책임한 충고는 할 수 없다”고 ‘사표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했다. 유 구청장은 서울대와 함께 성장하는 도시인 관악구의 첫 서울대 출신 민선 구청장이다. 서울대 안에 경전철 역이 들어설 수 있도록 역할도 했다. 현재 역사 건설 비용을 놓고 서울대와 서울시가 입장이 다른 상황이다. 그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서울대 캠퍼스를 지나는 경전철을 후보노선으로 검토해 달라고 건의했고, 도시철도법상 2018년에 재검토하도록 법적으로도 조치했다. 삼성전자 연구소도 서울대와 협력해서 유치해 내년 1월 낙성대 주변에 연구원 1000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연구시설이 완공된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50대 후반의 공무원이란 사실을 잊게 할 만큼 틀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종종 던진다. 선거운동을 하다 구청장이 뭐냐고 묻는 아이에게 “관악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대답했다가 “잘난 체하시네!”라는 핀잔을 들었다. ‘잘난 체하시네!’라는 제목으로 펴낸 구청장 선거 일기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바라던 국회의원은 못 되고 국회도서관장이 되었을 때, 모두 “한직이지만 책이나 많이 읽다 와라”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한직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서 세계의 위대한 도서관 50여곳을 탐방해 쓴 ‘세계 도서관 기행’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개정판까지 낸 ‘세계 도서관 기행’으로 아직 전국 곳곳에서 강연 요청이 오고, 인세 수입도 쏠쏠하다. 해외 도서관을 탐방하며 보고 들은 바를 관악구 정책에 접목시킨 것도 상당하다. 도서관에서 전문 직업 상담사가 취업정보를 제공하고, 각종 취업 관련 세미나도 여는 ‘잡 오아시스’는 뉴욕 공공도서관의 사례를 적용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에서 첫 직장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뉴욕 도서관의 직업정보센터의 힘이었다. 해외 사례는 물론 가까운 국내 사례의 잘된 정책을 빨리 도입하는 것이 그의 구정 경쟁력이다. 본격적으로 도시농업을 시작하면서 서울시 도시농업의 메카라 할 수 있는 강동구도 이미 다녀왔다. 유 구청장이 관악구 공무원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좋은 것은 따라 하자’는 정신이다. 올해는 옥상텃밭, 상자텃밭, 자투리텃밭 등으로 ‘걸어서 10분 거리 도서관 도시’에 이어 ‘걸어서 1분 거리 텃밭 도시’로 관악구를 만들 계획이다. 처음 도시농업 계획을 내놓았을 때 공무원들은 농사를 지을 땅이 없다며 난색을 보였다. 유 구청장은 공무원들에게 시야를 넓히라고 조언했다. 결국 공무원들은 여기저기서 노는 땅을 찾아왔다. 그는 “자치단체장의 역할은 ‘조물주’에 맞먹습니다. 구청장이 말을 하면 공무원들이 이뤄내니까요”라고 ‘구청장 조물주론’도 농담 삼아 곁들였다. 기초단체장으로서의 철학도 확고하다. 아무리 기초단체장이 주민 복지를 챙겨도 국가 안보가 불안하면 ‘지붕 새는 집’이라는 것이다. “국가 안보는 집으로 치면 기둥이자 지붕이고, 지방 자치의 복지는 아늑한 이불 덮고 따뜻한 밥상 차리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기둥이 기울고 지붕이 새는 문제를 복지로 해결할 수는 없지요. 게다가 안보는 99%를 막아도 1%가 새면 문제입니다.” 지방 자치로 국민 불안을 잠재울 수 있어도 국가 안보는 1%의 빈틈도 메우겠다는 자세로 안정적 운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년간 정치계에 몸담은 유 구청장은 정치의 계절을 맞아 “정치는 짧고 정책은 길다”라며 그동안의 경험을 담은 정치철학을 소개했다. 별 4개 단 장군도, 시민운동가도, 언론사 사장도, 앵커도 정치권만 가면 멀쩡하던 사람이 ‘건달’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정책이 없고 누구 따라다닐까만 생각하다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 건달’이 되어버린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는 노예무역 폐지를 정치 목표로 삼고 20여년에 걸쳐 결국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유명 정치인 누구를 따라다닐까, 누구 눈치를 볼까에 집중하다 보면 장군도 정치계에서는 졸병이 되어버립니다. 자기 테마와 정책을 갖고 이 제도개선을 꼭 해야겠다, 작은 진보라도 이뤄야겠다고 마음먹고 이뤄야만 정치 건달이 되지 않습니다.” 정치권 20년 경험자의 ‘정치 건달 되지 않기’ 철학이다. 유 구청장이 올해 새롭게 구상 중인 정책은 ‘동물복지’다. 2014년부터 반려동물 등록제가 시작되면서 인구 50만명인 관악구에서 4만여 마리의 반려견을 등록했다. 동물복지에 관한 책인 ‘돼지도 장난감이 필요해’를 ‘관악의 책’으로 선정한 관악구는 반려동물에 관한 교육을 시작으로 다양한 반려동물 정책을 펼칠 계획이다. 1인 가구가 많은 관악구를 포함해 현대사회에서 반려동물은 필수적인 사회구성원이란 생각에서다. 반려동물을 돌보는 방법부터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예의 등을 가르치고 ‘애견 파크’와 같은 반려동물을 위한 시설도 늘려 간다는 구상이다. 보건소에서 정육점 민원을 처리하던 수의직 공무원도 반려동물 업무에 배치했다. 정책 구상을 위해 사료업체 대표를 만난 유 구청장은 “15살짜리 개가 동물병원에서 곧 사망한다는 판정을 받았는데 주인이 정성으로 밥을 해 먹였더니 6년이나 더 살았다고 하더라”며 동물이 행복하면 사람은 더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도시농업, 동물복지는 모두 시대의 흐름을 읽은 구청장이 내놓은 정책이다. ‘좀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그가 세상을 바꿀 또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3·1절 더 빛난 귀향

    3·1절 더 빛난 귀향

    일제 강점기 가슴 아픈 우리 역사를 다룬 영화들이 3.1절을 맞아 박스오피스에서 더욱 빛을 냈다. 1일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직후부터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고 있는 ‘귀향‘(왼쪽)은 전날 전체 상영작 중 관객 점유율 34.0%를 차지했다. ‘귀향’은 개봉 첫날인 24일 23.1%, 25일 26.1%, 26일 29.6%, 27일 29.7%, 28일 31.7% 등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당일 흥행을 가늠하는 잣대인 예매율은 1일 한때 34%를 웃돌며 개봉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3·1절 일일 관객 수는 지난달 28일 기록한 30만명을 크게 웃돌 것으로 점쳐진다. ‘귀향’은 전날까지 관객 128만 3697명을 끌어모았다. 개봉 닷새 만에 100만명을 돌파했던 ‘귀향’은 스크린 수를 계속 늘려 현재 상영작 중 가장 많은 781개를 확보하기도 했다. 조정래 감독과 주연을 맡은 손숙과 최리, 위안부 피해 소녀와 일본군을 연기한 조연 배우들은 이날 CGV 왕십리점,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모두 일곱 차례 무대 인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윤동주 시인의 삶을 그린 영화 ‘동주’(오른쪽)는 3·1절에 누적 관객 70만명을 돌파했다. 실시간 예매율은 8% 안팎을 유지하며 4위를 달렸다. 전날까지 65만 5910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는 윤 시인만 조명한 게 아니다. 시인과 한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이자 독립운동가인 송몽규의 삶까지 다뤘다. 제작비가 5억원에 불과한 저예산인 이 작품은 개봉 6일 만인 지난달 22일 손익분기점인 27만명을 넘어섰다. 이튿날에는 흥행 4위까지 치솟았다. 374개 스크린으로 출발했지만 개봉 2주차 후반에는 최고 540개까지 스크린 수를 늘리는 뒷심을 발휘하는 중이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멕시코로 간 독립의 꿈… 안창호 선생 동선 첫 확인

    멕시코로 간 독립의 꿈… 안창호 선생 동선 첫 확인

    3·1운동 직전 멕시코 한인사회를 방문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체류했던 숙소가 발견됐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지난해 멕시코·쿠바 지역에 남아 있는 독립운동사적지를 심층 조사한 결과 안창호 선생이 묵었던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프란세스 호텔(왼쪽)을 찾았다고 1일 밝혔다. 1905년 4월 4일 첫 이주 이래 멕시코 한인들은 낯선 나라에서 억척스럽게 생활 기반을 닦으며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지부를 만들어 멀리서나마 조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당시 미국에 있었던 안창호 선생은 멕시코 한인의 초청으로 1917년 10월부터 1918년 8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멕시코 전역을 순행했다. 순방을 마친 안창호 선생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자 1918년 6월 12일 멕시코시티에 있는 미국총영사관을 방문했지만 일본 영사가 발행한 여행권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안창호 선생은 제2의 도시인 과달라하라로 이동했고 이때 머무른 곳이 바로 프란세스 호텔이다. 그동안 안창호 선생이 미국과 멕시코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은 전해져 왔지만 구체적인 행적은 거의 밝혀진 바가 없었다. 연구소 국외사적지팀이 현지에서 발로 뛰어 찾은 프란세스 호텔은 당시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재(오른쪽)도 호텔로 사용 중이나 중간에 리모델링을 해 안창호 선생이 묵었던 20호실은 찾을 수 없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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