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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사 사장 살해 혐의’ 전무 자해 시도·묵비권

    10여일 전 실종된 대구 건설업체 사장 김모(48)씨를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이 업체 전무 조모(44)씨가 경찰 조사를 받던 중 자해를 시도하는 등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대구 수성경찰서에 따르면 조씨는 19일 오전 6시 20분쯤 경찰서 유치장에서 입으로 오른쪽 손목을 물어뜯는 자해를 시도했으나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후 다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앞서 경찰은 전날인 18일 오후 6시 20분쯤 경북 경산 모 대학교 주차장에서 조씨를 검거한 뒤 살해 동기, 시신 유기 장소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으나 조씨는 범행을 전면 부인하거나 대부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수사 브리핑에서 “용의자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씨는 지난 8일 오후 김씨, 거래처 사장 2명과 함께 경북 경산에서 골프 모임을 한 뒤 인근 식당에서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신 후 대구에서 김씨를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다니다가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조씨를 용의자로 특정한 이유로 “조씨가 자기 승용차로 김씨를 만촌동 모 아파트 버스 승강장에 내려 줬다고 주장했으나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거짓말인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실종된 다음날 경북 청송 방면 일대를 운행하다 오전 7시 20분쯤 경북 영천의 한 주유소에서 삽을 빌린 후 반환하는 등 혐의점이 충분하다고 봐 범인으로 특정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조씨가 주유소에서 삽을 빌려 간 뒤 1시간여 만에 돌려준 점으로 미뤄 그 주변에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색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확보한 증거자료를 토대로 조씨를 추가 조사해 20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상시 청문회’ 국회법 개정안 통과

    ‘상시 청문회’ 국회법 개정안 통과

    靑 “국정 발목” 與 “합의상정 어긋나” 신해철법 등 135개 안건 처리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 가능해져 여야가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처리한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은 표면적으로는 ‘여야 합의 상정’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이면에서는 개정안에 담긴 ‘상시 청문회’ 허용에 반발하고 있다. 여야는 이날 본회의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제안한 국회법 개정안을 재적의원 222명 중 찬성 117명, 반대 79명, 기권 26명으로 의결했다.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에서 주요 안건 심사나 현안 조사를 위해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도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열 수 있으나 법안이나 국정감사·국정조사에 필요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논란이 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청문회 실시가 가능해지는 등 사실상 대상에 제약이 사라지는 것이다. 앞서 개정안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당시인 지난해 7월 운영위를 통과했지만 원유철 원내대표 체제 등장 이후 개정안 처리에 반대하면서 ‘본회의 계류 법안’으로 묶여 있다가 이번에 전격 처리됐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이 ‘여야 합의’ 없이 개정안을 상정했다고 불만을 제기했지만 흐지부지됐고, 표결에서도 유 전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탈당파 무소속 의원들이 야당 의원들과 함께 찬성표를 던져 가결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정안 통과 직후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 법안”이라면서 “(탈당파 무소속 의원들이) 복당을 하지 않겠다는 뜻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지난해 6월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대상으로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번에도 재현될지 주목된다. 여야는 또 이날 본회의에서 의료사고로 피해를 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과 주사기를 재사용한 부도덕한 의사를 형사처벌하는 의료법 등 모두 135개 안건을 처리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추진해 온 노동개혁 관련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 등 주요 경제 법안은 제외됐다. 야당이 요구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소비자 집단소송법, ‘사법시험 존치법’(변호사시험법), 세월호특별법 등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들 법안은 여야 간 이견으로 19대 국회 종료(5월 29일)와 함께 자동 폐기된다. 다만 여야의 ‘주력 법안’이라는 점에서 20대 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다시 밟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야의 이견이 크다는 점에서 또다시 정쟁의 중심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이날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대 국회 4년간 발의된 1만 7822개 법안 중 43.1%인 7683건만 처리됐다. 나머지 1만 139개 법안은 폐기된다. 발의 법안과 폐기 법안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19대 국회에서는 몸싸움이 난무했던 18대 ‘동물 국회’의 추태는 사라졌지만 여야가 국회선진화법 시행에 걸맞은 정치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서 ‘식물 국회’로 전락한 탓이 크다. 한편 여야 3당은 20대 국회 개원일(6월 7일)을 20일 남겨둔 이날 원내대표 회동을 갖고 본격적인 원 구성 협상에 돌입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50돌 맞은 민음사...재단장한 세계시인선으로 독자 영혼 살찌운다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웠다.”(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김경주 시인)  1973년 민음사가 첫선을 보인 세계시인선은 시인과 독자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살찌웠다. 세계시인선은 박맹호 민음사 회장이 고 김현 평론가에게 건넨 제안에서 뿌리를 내렸다. 당시만 해도 해외 문학 책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옮긴 게 대부분이었다. 박 회장은 “번역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원문과 한글 번역을 나란히 배치해 제대로 번역한 시집을 내보자”고 김 평론가를 부추겼다. 그렇게 해서 1973년 12월 고은 시인이 번역한 이백과 두보의 작품집 ‘당시선’,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 4권이 탄생했다. 이 시집들은 1966년 서울 종로구 청진동 옥탑방에서 움튼 민음사가 국내 대표 문학 출판사로 자라나는 양분이 됐다.  19일 창립 50년을 맞은 민음사가 일체의 기념행사 없이 세계시인선만을 새로 펴내기로 한 데는 이런 역사가 있다. 지난해 현암사의 70주년, 지난 2월 창비의 50주년 행사에 견주면 다소 초라하다. 민음사는 “지금의 민음사를 있게 만든 세계시인선 재단장을 통해 더욱 기본에 충실하고 또 한 번의 반 세기를 준비하는 출판사로 기반을 튼튼히 다지겠다”고 밝혔다.  새 시인선의 목표는 100권 출간이다. 1973년 시작 때 세운 계획이지만 당시에는 80권 완간에 그쳤고 1994년부터 2007년까지 다시 펴냈을 때도 63권에 그쳤기 때문이다. 내년에만 50권을 낼 계획이다. 이번에 출간된 1차분 15권 가운데 새로 펴낸 시집은 9권이다. 대표적 비극 정전인 ‘욥의 노래’, 라틴 문학의 고전인 호라티우스의 ‘카르페 디엠’, ‘소박함의 지혜’, 김수영의 ‘꽃잎’, 백석의 ‘사슴’,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의 노래’ 등이다. 소설가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찰스 부코스키, 극작가로만 알려진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집도 펴내며 그들 안의 시심(詩心)도 느낄 수 있게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포토]한달만에 또 지진이...

    [포토]한달만에 또 지진이...

    규모 7.8의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에콰도르에서 한 달여만인 18일(현지시간) 규모 7.0에 육박하는 두 차례의 여진이 발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날 오전 에콰도르 서부 도시인 로사 사라테에서 북서쪽으로 24km 떨어진 태평양 연안에서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날 지진으로 성인 1명이 숨지고 85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이날 수도 키토의 외교부에서 직원들이 청사 밖으로 대피한 가운데 두 사람이 안도의 포옹을 하는 모습.AFP 연합뉴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번역을 할수록 내 글이 건강해졌다… 18년 만에 나의 소설을 쓰려 한다 충북 증평군 내성리에 자리한 ‘21세기 문학관’에 도착한 것은 지난 10일 점심시간이 약간 지나서였다. 하늘색 점퍼에 청바지 차림을 한 그가 녹색 철문 뒤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18년 만에 재개한 소설 창작을 위해 얼마 전 제주도 집을 떠나온 그는 이곳을 ‘자발적 유배지’라고 불렀다. 점심 겸 해서 낮술 잔을 기울였다. 적당히 술기운이 올랐지만, 그의 유장한 말투는 빨라지지 않았고 간결한 문장들은 장황해지지 않았다. 중간에 말을 멈추는 때가 잦았는데 적확한 단어나 표현을 고민하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가 말했다. “기자 양반이나 나나 즐겁게 술 마실 만큼만 건강하게 살면 되는 거요.” 김석희(64)는 ‘구름에 달 가듯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1979년 3월 어느 날 한참을 못 보고 지냈던 친구가 찾아왔다. 국사학과에 다니던 이종범이었다. ‘학생운동 하다가 제적됐다는 소식까지는 들었는데 갑자기 어쩐 일일까.’ 전공은 달랐지만, 중간에 연결고리가 되는 친구들 덕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학교에서 잘리고 나서 작은 출판사를 하나 차렸다고 했다. “내가 불문과 다른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김석희가 프랑스책 최고로 잘 읽는다고 하더라.” 다짜고짜 프랑스 고전을 하나 골라서 번역을 해 달라고 했다. “명색이 출판사이니 책을 좀 내야 하는데,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자니 번역료 줄 능력이 안 된다. 너한테는 술 한잔 사주면 되지?” 황당했지만, 학교에서 잘리고 뭐라도 해 보겠다는 그 친구의 딱한 사정을 안 들어주기가 어려웠다. 곰곰 생각하다가 18세기 프랑스 심리소설의 효시로 평가되는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를 번역해 주었다. 나는 불어를 말하고 듣는 것에는 약했지만, 독해와 번역에 나름 강점이 있었다. 번역료는 정말 술 한잔이었다. 1980년 이종범이 학교에 다시 돌아오면서 출판사는 소리없이 사라지고 그 책도 절판이 됐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게 내 인생의 이정표를 정한 최초의 순간이었다. 참, 이종범은 현재 조선대 사학과 교수로 박물관장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노동의 대가를 받고 번역한 작품은 1982년 6개월 동안 작업한 영국 작가 존 파울스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다. 1981년 메릴 스트립과 제러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동명 영화가 개봉되면서 갑자기 원작 소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 책은 1997년과 2002년에 다시 번역을 했는데, 내가 전문 번역가의 길을 가게 된 첫 작품이 됐다. -1952년 제주시 무근성(삼도2동)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공무원이셔서 경제사정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섬 소년에게 사방에 둘러쳐진 바다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갑갑함이었다. 섬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이었다. 1970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재수를 위해 서울로 와서 육십을 바라보는 2009년 4월에 다시 고향에 정착했다. 40년의 타향살이 끝에 그 바다가 그리워 다시 돌아왔다. 나는 변덕을 부렸지만, 바다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보듬어준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 때 가르쳐 주신 서예로 초등학교 때 웬만한 상들은 휩쓸었는데, 나한테 약간의 글재주가 있다는 것은 중학교 졸업 무렵에 알게 됐다. 제주일고 입학을 앞두고 도내 한 신문사가 주최한 학생 문예작품 공모전에 산문을 출품했다. 아직 고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2, 3학년 형들을 제치고 장원을 차지했다. 이 일로 입학을 하자마자 3학년 형들에 의해 반강제로 ‘향원’이라는 문학서클에 들게 됐다. 2학년 때는 동국대 문예백일장에서 산문부 장원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제주도립도서관은 제2의 집이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카뮈의 ‘이방인’을 이곳에서 읽었다. 모두 살인자인 두 책의 주인공이 꿈속에 뒤바뀐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큰 바다를 누비며 글을 쓰는 ‘마도로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국립해양대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6·25 때 서울 영등포에서 납북된 숙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있어 입학이 불허됐다. ‘마도로스 소설가’의 꿈은 그냥 ‘소설가’로 수정됐다. -1972년 삼수를 해서 대학에 갔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했다. 어떤 친구들은 두 주먹 불끈 쥐고 거리로 나갔고, 어떤 친구들은 술집으로 가 통음을 했다. 어떤 친구들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내 속의 울분을 터뜨리고 발산하기 위해 내가 택한 건 글쓰기였다. 일기를 쓰듯 글만 썼다. -수업에 들어간 기억이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붕구(1922~1991) 교수님의 수업은 늘 감동 그 자체였다. 보들레르의 시를 설명하기 위해 직접 한시를 써서 읊으시다가 그걸 서양의 역사와 철학으로 이끌고 가셨다. 그러다가는 동양 인문학의 심오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셨는데, 이야기에 빠져 한참을 넋 놓고 있다 보면 어느새 처음의 보들레르로 돌아와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넓고 깊은 인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울림 있는 강의를 하는 교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1979년 2월 졸업과 동시에 국문과에 학사편입을 했다. 소설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문학을 좀더 배우고 싶었다. 그때부터 등단을 향한 나의 긴 여정이 시작됐고, 그 과정은 1987년 12월 26일에야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끝이 났다. 세상에 대한 풍자와 야유를 담은 ‘이상의 날개’라는 작품이었다. 당선되고 나서 나를 인터뷰한 기자가 ‘칼의 노래’, ‘현의 노래’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이다. 당시 그는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1시간에 걸쳐 그와 나눴던 대화가 지금도 또렷하다. 그날 진탕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한겨울 골목길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고상한 책만 번역한 줄 안다. 하지만, 내 손을 거친 책들 중에는 일본 잡지의 부록과 같은 것들도 상당수 있다. 번역은 그 자체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시사영어사 출판부에 다니던 친구가 맡겨 준 연애소설 ‘할리퀸문고’ 시리즈는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 한 달에 한 권씩 15개월을 번역했는데, 그 돈으로 쌀도 사고 아이들 공부도 시킬 수 있었다. 외국말을 입으로 하는 재주는 없었지만 눈으로 읽는 능력은 남보다 뛰어났다. 불어야 전공이니까 자연히 접할 기회가 많았고 영어는 틈틈이 원서를 읽으면서 번역 실력을 키웠다. 일본어는 학사편입한 국문과에서 현대문학 연구를 위해 일본 문헌을 참고해야 했기 때문에 독학을 했다. -1979년 학사편입부터 신춘문예에 당선된 1987년까지의 시간들은 이제 와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고난의 시간들이었다. 계속되는 탈락에 마음엔 칼바람이 불었고,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제주의 어르신들은 나를 ‘백수’로 생각했다. “백날 써 봐야 안되는 소설, 그만 좀 하고 다른 일 찾아봐라. 서울대를, 그것도 과를 2개(불문과, 국문과)씩이나 나와서 이게 무슨 꼴이냐.” 명절에 고향 내려가는 건 아주 고역이었다. ‘아버지의 감귤밭을 이어받아 농사를 지을까,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촌형을 찾아갈까.’ 고민은 계속됐지만, 소설가에 대한 꿈은 결코 포기가 되지 않았다. 안되면 안될수록 갈증은 더 심해졌다. 그러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한 번역은 계속해야 했다. 번역한 책에는 ‘김한경’이라는 필명을 썼다. 나와 아내, 아이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땄다. 내 본명은 내 최초의 소설의 표지를 위해 남겨 두기로 했다. -1987년 재일교포 작가인 김석범의 ‘화산도’를 번역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5권짜리 대하소설이었다. 자유실천문인협회 이호철 대표가 “6월 항쟁을 계기로 4·3 사건을 다룬 책도 나올 수 있는 시대가 올 테니 미리 준비를 하자”고 했다. 마지막 제5권은 이 대표가 번역을 했고 내게는 1권부터 4권까지 번역을 맡겼다. 일본어를 번역하며 곳곳에 제주 사투리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제주 출신 번역가가 필요했다. 제주 출신인 내가 4·3 사건 관련 책을 번역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김한경’이 아닌 ‘김석희’를 역자 이름으로 썼다. 이 일을 계기로 번역료가 크게 올라갔다. 그다음 맡은 일은 2년 6개월에 걸친 영국 브리태니커 사전 한국판 번역이었다. 매월 200자 원고지 1000장씩을 넘겼다. 아내의 가계부에 단비가 내렸다. -1994년 한길사의 김언호 사장이 두꺼운 책 3권을 들고 번역가 정도영·오정환 선생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이 책들을 읽어보고 번역해 출판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했다. 책의 지은이는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였다. 정도영 선생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오정환 선생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내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 당시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에서 제3권(나중에 총 15권으로 완결)까지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세 명 중 가장 젊은 내가 맡았다. 2주 정도의 검토 끝에 우리 모두 ‘OK’ 사인을 냈다. 그때부터 2009년까지 12년에 걸쳐 번역을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로마인 이야기’의 내용은 상당히 진취적이었다. 대부분의 책이 귀납적 형식을 취하는데 이 책은 제1권 전체를 할애해 ‘국가 크기도, 문화도, 경제도 1위가 아닌 로마가 어떻게 패권(覇權)을 쥐었는지 궁금해 이 책을 쓴다’는 의문을 던지는 게 특별해 보였다. 투박하지만 힘 있는 문체도 흥미를 끌었다. 책은 번역 출간되자마자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베스트셀러 첫머리에 이름을 올렸고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내가 저들만큼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아무리 해도 거장들의 작품과는 차이가 많은데, 이걸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하나.” 힘들게 소설가로 등단을 하고 10여년이 흐른 1998년, 내 인생의 방향을 가르는 큰 선택을 했다. 그해 가을 중편 소설을 하나 냈는데 불현듯 소설에 대한 회의가 밀려왔다. 안되는 걸 들고 끙끙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다. ‘나를 애먹이지 말자’고 했다. 소설을 중단했다. -2011년엔 ‘모비딕’을 출간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번역이었다. 작가인 허먼 멜빌은 정규 대학교육 없이 선원으로 살다가 작가가 된 사람이었다. 단정하게 완성된 문장이 아니었고, 단축형 비문이 많았다. 간혹 셰익스피어를 따라하는 도치문은 번역으로 그 느낌을 살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번역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단어도 이유 없이 배열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대학 은사인 이휘영(1919~1986년) 교수님을 존경한다. 그는 1960년대에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의 ‘홍수’를 번역했다. 독해가 번역의 초벌작업이라면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휘력과 문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신 분이다. -나는 ‘888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8시간 자고, 8시간 놀고, 8시간 번역한다. 일은 주로 밤에 한다. 아직 번역하고 싶은 책들이 많다. 특히 판타지의 고전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다. 국내에서는 ‘해리 포터’를 어린이들이 먼저 즐기게 됐지만, 사실 판타지 소설의 세계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고 심오하다. 할아버지가 되고 보니 다섯 살 손자를 위한 번역에도 욕심이 난다. 하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1998년 절필했던 소설 창작이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잡은 소설이다. 수많은 번역의 경험이 소설을 다시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많은 책을 번역하면서 내 글도 건강해졌다. 그저 예쁘게 다듬기만 한 미문, 추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게 됐다고 할까. 젊은 날 나의 명함에는 ‘소설가·번역가’가 동시에 적혀 있었다. 소설가가 되고픈 열망이었다. 정작 등단한 후 소설을 접고는 ‘번역가·소설가’라고 썼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소설가라는 직업을 다시 앞에 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번역가 김석희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로 통한다. 영어와 불어, 일어로 된 해외 작가들의 소설을 한글로 재탄생시켜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해 왔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허먼 멜빌의 ‘모비딕’, 재일작가 김석범의 ‘화산도’, 쥘 베른 걸작선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번역을 ‘장미 가시덤불에서 춤추는 것과 같은 고통 속의 쾌락’이라고 표현한다. 신춘문예 등단 작가이기도 한 그는 최근 18년 만에 자신의 소설 창작을 재개했다. ▲1952년 제주 제주시 출생 ▲제주제일중·고 ▲서울대 불문과·국문과 ,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 중퇴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소설 ‘이상의 날개’)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 수상(1997년) ●주요 작품 ‘화산도’(김석범) ‘아돌프’(뱅자맹 콩스탕) ‘여자란 무엇인가’(비올라 클라인)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에펠 탑의 검은 고양이’(아라이 만) ‘즉흥시인’(안데르센) ‘시간 박물관’(움베르토 에코 외) ‘인물 삼국지’(이나미 리쓰코) ‘빙벽’(이노우에 야스시) ‘칸의 제국’( 조너선 스펜스) ‘죽음을 삼킨 땅’(조르제 아마두) ‘프랑스 중위의 여자’(존 파울스) ‘지구에서 달까지’(쥘 베른) ‘문명 속의 불안’(지그문트 프로이트) ‘살아 있는 역사’(힐러리 로댐 클린턴) ‘모비 딕’(허먼 멜빌)
  • 베스트셀러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시인 “생활보조금 받아요”

    베스트셀러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시인 “생활보조금 받아요”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시인 최영미(55)가 최근 저소득층을 위한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 된 사실을 스스로 공개했다. 시인은 지난 16일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마포세무서로부터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연간 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란다”라고 올렸다. 이어 “약간의 충격. 공돈이 생긴다니 반갑고 (베스트셀러 시인이라는 선입견 없이) 나를 차별하지 않는 세무서의 컴퓨터가 기특하다. 그런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하고 탄식했다. 그는 또 “아는 교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시간 강의를 달라고 애원했다. 생활이 어려우니 도와 달라 말하니 학위를 묻는다. 국문과 석사학위도 없으면서 시 강의를 달라 떼쓰는 내가 한심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책을 낸 출판사에 전화해 ‘근로장려금 대상자’임을 내세워 2년 넘게 밀린 시집 인세를 달라고 ‘협박’해 3년 전 발행한 책의 인세 89만원을 받았다고 전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주식·외환시장 거래 시간 이르면 7월부터 30분 연장

    이르면 7월부터 주식과 외환시장 정규 거래 시간이 30분 늘어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18일 “오전 9시~오후 3시인 정규 거래 시간을 오후 3시 30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7월 중 시행 목표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외환시장 거래 시간도 외국인 투자자의 편의를 위해 주식시장과 함께 늘어날 예정이다. 거래소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주식 거래 시간을 4시간에서 5시간으로 늘린 데 이어 2000년부터 현행 6시간 체제로 운영 중이다. 그러나 싱가포르(8시간), 독일·영국(각 8시간 30분) 등과 비교하면 2~3시간 짧아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1월 올해 주요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거래 시간 연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증권사 노조가 반발하고 있어 협의가 필요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살균제 피해’ 키우고…감추고… 檢, 옥시 외국인 前대표 부른다

    ‘옥시 보고서’ 쓴 서울대 교수 月 400만원 석달간 자문 계약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대 가해 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외국인 전·현직 임원을 19일부터 불러 조사한다. 옥시에 유리한 보고서를 써 준 혐의로 지난 4일 구속된 서울대 수의대 조모(57) 교수는 석 달간 1200만원을 받기로 옥시 측과 계약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19일부터 옥시 외국인 전·현직 임원을 차례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18일 밝혔다. 소환 대상은 영국 레킷벤키저가 2001년 3월 옥시를 인수한 이후 대표를 지냈거나 마케팅·재무 부문에서 일한 외국인 임원들이다. 현재 국내에 있는 외국인 임원을 먼저 부르고 외국에 머물고 있는 임원들도 연이어 소환할 방침이다. 검찰은 옥시의 재무 담당 이사인 H씨와 살균제 판매의 법적 문제를 전담한 옥시 전 사내 변호사 김모씨를 19일 참고인 신분으로 부른다. 옥시 전 대표로는 한국계 미국인 존 리(48) 현 구글코리아 대표가 우선 소환될 예정이다. 리 전 대표는 신현우(68·구속) 전 대표에 이어 2005년 6월부터 2010년 5월까지 5년간 옥시 최고경영자로 재직했다. 그가 대표를 맡았던 시기에 살균제 판매가 가장 많이 이뤄졌다. 검찰은 리 전 대표에 이어 2년간 경영을 책임지며 증거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인도 출신 거라브 제인(47) 전 대표도 소환할 방침이다. 그는 현재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006년부터는 외국인 대표 등을 조사하지 않고는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며 “그러나 외국인 임원 소환과 영국 본사에 대한 수사는 다른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검찰은 옥시가 제품 개발 전 가습기 살균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생활화학제품 제조업체 E사 대표 노모(55)씨로부터 “흡입 독성 실험이 필요하다”는 경고를 듣고도 무시한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또 옥시에 유리한 보고서를 써 주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조 교수가 2011년 10월쯤 옥시와 ‘자문 계약서’를 작성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 시점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흡입 독성 실험이 진행되기 직전이다. 제인 전 대표 명의로 작성돼 이메일로 전달된 계약서 내용에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에 무해함을 밝히고, 폐질환과의 연관성을 확인한 질병관리본부의 실험을 비판해 달라’는 취지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자문 대가로 옥시가 조 교수에게 3개월간 다달이 40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연구 결과를 왜곡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던 조 교수는 검찰 조사에서 계약서의 존재를 시인했다. 조 교수는 이날 구속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재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옥시, 전문가의 가습기살균제 유해성 경고에도 ‘무시’ 정황 포착

    옥시, 전문가의 가습기살균제 유해성 경고에도 ‘무시’ 정황 포착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최대 가해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살균제 개발 전 제품에 대한 유해성 경고를 받고도 무시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들은 살균성분제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부터 직접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해외 저명학자의 경고 메일 등과 더불어 옥시 주요 책임자의 업무상 과실치사 및 과실치상죄를 입증하는 핵심 증거로 판단하고 있다. 18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2000년 중반께 옥시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있던 최모(구속)씨는 서울 모처에서 생활화학제품 제조업체 E사 대표 노모(55)씨를 만났다. 당시는 옥시가 문제의 살균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첨가한 새로운 가습기 살균제 개발을 검토하던 때였다. 노 대표와의 만남은 옥시가 먼저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PHMG가 인체에 무해한지, 흡입 독성 검사 필요성은 없는지 자문을 받으려는 목적이었다. 옥시 측에서 여러 전문가를 제쳐놓고 가장 먼저 노 대표를 만난 이유는 노 대표가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 바이오텍 사업부장으로 있던 1994년 세계 최초로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 메이트’를 개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노 대표는 살균제 성분물질의 용도 특허도 10건 이상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곰팡이 제거제의 시초인 ‘팡이제로’를 개발·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노씨가 개발한 가습기 살균제는 해외에서 흡입독성 실험을 통해 인체 무해 용량과 농도가 수치화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함유한 제품이다. 노 대표는 당시 최씨에게 “CMIT, MIT와 달리 PHMG의 흡입독성은 국내외에서 전혀 검증된 바 없다. 자체적인 독성 실험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노 대표의 얘기를 메모지에 꼼꼼하게 받아적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이 의견을 당시 연구소장 김모(구속)씨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결국 흡입 독성 실험은 생략된 채 2000년 10월 PHMG를 원료로 한 가습기 살균제가 시판됐다. 검찰은 올 2월 옥시 본사와 연구소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최씨의 메모지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수사 과정에서 옥시 측 주요 관련자의 과실 책임을 밝히는 핵심 증거로 활용됐다. 최씨는 검찰 조사에서 노 대표를 만난 사실과 당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등을 모두 시인했다. 이 메모지 한 장은 결국 제품 개발과 제조를 지휘한 옥시 최고경영자 신현우(68·구속) 전 대표의 처벌로 이어졌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확보한 여러 물증 가운데서도 노 대표와의 면담 기록이 혐의 소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이날 롯데마트·홈플러스의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조한 용마산업 김모씨를 재소환해 조사한다. 김씨는 16일 1차 조사에서 “두 유통사가 시키는대로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홈플러스 제품개발 담당자 2명도 이날 출석한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제품 개발 및 제조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고] 양해각서, 낮춰 볼 일 아니다/김정수 한국무역협회 국제사업본부장

    [기고] 양해각서, 낮춰 볼 일 아니다/김정수 한국무역협회 국제사업본부장

    이달 초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이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지난 1월 대이란 경제제재가 해제됐지만 달러화 거래는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이란 정부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자금줄이 돼야 할 유가는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쟁국들의 이란 시장에 대한 선점 노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지난 1월 이란투자진흥청에 따르면 2015년 3월부터 약 9개월 동안 총 47개국, 145개 경제사절단이 이란을 방문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속에서도 유독 이란과의 사업을 활발히 추진해 온 중국을 비롯해 유럽, 인도의 기업들이 앞다퉈 이란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재 해제 이후 외국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이란을 방문해 고속철도, 원전 프로젝트 등 총 17개 분야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향후 10년 내 양국 교역 규모를 현재의 11배인 6000억 달러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 2월 중국 저장성을 출발한 화물열차가 옛 실크로드를 거쳐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을 경유해 처음으로 수도 테헤란에 도착했다. 현재 해상운송을 통해 45일 걸리는 것이 14일로 단축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유럽의 에어버스사는 250억 달러 규모의 118대의 항공기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탈리아 국영철도업체는 테헤란과 역사유적 도시인 이스파한 간 고속철을 포함해 50억 달러 규모의 이란 철도 개발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프랑스와 독일 역시 이란의 철도역 리노베이션과 철로 시스템 개선 프로젝트 계약을 속속 성사시켰다. 정상 방문은 양국 기업 간 협력과 거래 성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기업들로서는 정상 방문의 기회를 활용해 사업 파트너와의 프로젝트 계약 체결이나 그 이전 단계인 양해각서(MOU) 서명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계약서는 물론 MOU 한 장 쉽게 써지지 않는 게 국제시장의 현실이다. 최근 순방 성과가 실속 없는 MOU로 과대 포장돼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MOU는 프로젝트 최종 수주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고 최종 단계까지는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후에도 상대측과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고도의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MOU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에 눈치를 보느라 우리 측이 조급하고 불리한 자세로 향후 협상을 진행할까 우려된다. 모든 일은 변화에 대한 판단과 시기의 파악이 성패를 결정한다. 시기라는 말에는 시간과 기회라는 두 가지 함의가 담겨 있다. 이란의 국제사회 재진출은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출이 어려워진 우리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좌고우면하거나 여론에 휘둘릴 시간이 없다. 기업인들의 뛰어난 통찰력으로 최근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판단해 기회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 등 통신기술이 발달한 정보화 시대에는 국내 여론이 영자지나 번역 기능을 통해 상대측에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국내 여론에 떠밀려 MOU를 맺은 우리 기업들이 상대국 파트너와 본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벌이는 데 조금이라도 불리한 입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얻기 힘든 것이 때이고 잃기 쉬운 것이 기회다.
  • 이육사 ‘청포도’ 시 썼던 성북구 딸과 함께 탄생 112주년 문화제

    이육사 ‘청포도’ 시 썼던 성북구 딸과 함께 탄생 112주년 문화제

    “아버지께서 교과서에 실린 시 ‘청포도’를 쓴 서울 종암동에 표지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합니다.” 서울 성북구는 18일 ‘이육사 탄생 112주년 기념 문화제’를 연다고 17일 밝혔다. 시인 이육사는 성북구 종암동에 살면서 1939년 8월 ‘청포도’와 1940년 1월 ‘절정’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18일 오후 6시 30분부터 성북구청 4층 아트홀에서 열리는 문화제는 시인의 유일한 혈육인 딸 이옥비(75)씨가 제안했다. 이씨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네 살 때 청량리에서 용수를 쓰고 포승줄에 묶여 중국으로 압송돼 가던 아버지를 본 게 마지막”이라며 “아버지의 육 형제 가운데 네 분이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이육사추모사업협회 이사인 그는 ‘시인 이육사, 그리고 아버지’란 제목으로 문화제에서 강연한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이육사 탄생 112주년 기념 문화제’가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절정’) 상황에서도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청포도’)하고 독립의 그날을 고대하던 시인의 뜻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어두침침 정릉천, 주민이 나서 환하게

    어두침침 정릉천, 주민이 나서 환하게

    성북구 종암동 정릉천이 동네 주민의 제안으로 벽화거리가 됐다. 지난 4일 골프존 직원 500여명과 가족, 종암동 주민과 마을계획단이 한마음이 되어 약 4㎞의 정릉천 중 300m 구간을 벽화로 단장했다. 최근 관광객 때문에 불편을 느낀 주민들에 의해 훼손됐던 종로구 이화동의 벽화거리는 정부가 주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정릉천 벽화는 주민 40여명으로 구성된 종암동 마을계획단이 직접 구에 제안한 것이다. 지난 1월 마을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설립된 마을계획단은 주민이 제안한 여러 정책을 논의했다. 정릉천 벽화는 정릉천을 되살리고 벽화로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자는 뜻에서 주민들이 제안했다. 예산이 없어 곤란을 겪다가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으로 벽화가 완성됐다. 벽화는 성북구가 아동친화도시인 만큼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깔을 골라 ‘운동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벽화가 완성되자 주민들은 “낮에도 다리를 지날 때는 어두워서 약간 불안했는데 밝고 깨끗하게 색칠을 하고, 아이들이 운동하는 그림을 보니 아주 좋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이명수 마을계획단 복지경제분과위원장은 “정릉천을 주민들이 더욱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고민 중”이라며 주민참여예산 사업에 정릉천 관련 정책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종암동 사거리를 지나는 정릉천은 종암동, 월곡1동, 월곡2동과 동대문구 청량리동, 제기동으로 이어진다. 청계천과도 연결되며 백로, 왜가리, 오리 등이 출몰하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잘 정비돼 있다. 김영배 구청장은 “새로운 벽화 거리를 찾아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땅에서 만나는 최신 배

    국내 대표 해양레저박람회로 성장한 경기국제보트쇼가 19일부터 오는 22일까지 경기 고양 킨텍스와 김포 아라마리나에서 열린다. 17일 경기도에 따르면 올해 국제보트쇼에는 178개 기업에서 1439부스를 신청했다. 이는 지난해 1080부스보다 33%가량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국내 보트제조업체들의 신모델 공개도 관심사다. 동연보트는 자사의 기존 주력 모델은 물론 최근 동남아로 대규모 수출을 성사시키며 품질이 검증된 고무보트 제품을 추가해 해외 바이어를 맞는다. 럭셔리 콤비보트를 건조하는 엘크마린과 투명카누 수출기업 한남종합마린은 2017년형 신모델을 세계 최초로 공개한다. 알로이마린은 올해 국내 보트낚시인들의 요구를 반영한 최신형 알루미늄 보트 5척을 선보인다. 올해 국제보트쇼는 전시 분야를 가장 대중적인 레저 활동인 낚시로 확대했다. 한국루어낚시협회(LFA)를 중심으로 엔에스(NS), 영규산업(YGF) 등 국내 굴지의 낚싯대 제조업체들을 비롯한 200여개의 낚시업체 부스를 만나 볼 수 있다. 지난해 부분적으로만 참여했던 캠핑카 업체들도 올해에는 한국레저자동차산업협회를 중심으로 단체관을 마련했다. 전시뿐 아니라 고양 중학생 410명을 대상으로 한 해양안전교육, 대형 보트 전시 및 승선 체험, 미국 공연팀의 수상스키 공연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린다. 해외 보트제조기업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3명이 선진기술과 트렌드, 선진국의 해양레저 문화를 주제로 발표한다. 경기도는 국제보트쇼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나서 오는 7~11월 경기테크노파크에서 ‘해양레저 청년 일자리 창출사업’의 하나로 ‘해양레저 정비 테크니션 양성 교육’을 한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위안부 피해자 공점엽·이수단 할머니 별세

    전남 해남에 살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공점엽(96) 할머니가 17일 별세했다. 또 중국에 사는 한국인 출신 위안부 피해자인 이수단(95) 할머니도 이날 오후 3시쯤(현지시간) 헤이룽장성 둥닝현의 한 양로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42명(국외 2명 포함)으로 줄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지난해 설 무렵 뇌졸중으로 쓰러진 공 할머니가 이날 오후 5시 12분쯤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공 할머니는 16세이던 1935년 직업을 소개해 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뒤 1943년까지 모진 고초를 겪었다. 1945년 귀국해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가정을 꾸리고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2년 동안 노환으로 병상에 있었던 공 할머니는 두 달 전부터 몸상태가 나빠져 결국 이날 숨졌다. 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고향인 평양에서 ‘공인(工人)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자원했다가 위안부가 됐다. 러시아 연해주에 인접한 국경도시인 둥닝에서 위안부로 고통을 겪었다. 이 할머니는 70년 넘는 세월 동안 본인의 이름 외에 한국말을 모두 잊어버리고 말년에는 치매증세을 보이기도 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신정아 “조영남이 직접 그렸다”

    신정아 “조영남이 직접 그렸다”

    조씨 “관행” 시인… 발언과 배치 2015년 부처님 오신 날 부천 석왕사 천상법당에서 ‘조영남이 만난 부처님’ 기획전을 열며 아트디렉터로 재기했던 신정아(44·여)씨는 1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가수 조영남씨의 대작 논란’에 대해 일축한 뒤 “조영남 선생님이 직접 작품을 그렸다”고 주장했다. 이는 조씨가 ‘대작’을 시인하고 “관행으로 도덕적인 책임을 느낀다”고 발언한 것에 배치된다. 2007년 학력 위조 파문에 휩싸인 신씨는 2015년 5월 가수 조영남의 전시회를 통해 8년 만에 큐레이터로 복귀했다. 이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다닌다는 목격자들이 나와 서로 사귄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대작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았는가. A:대작이라는 논란에 놀랐다. 옆에서 (조영남) 선생님이 집에서 직접 작품 그리는 모습을 자주 봐 왔다. 그래서 선생님 작품이 맞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작업을 할 때는 섬세하고 예민하다. 작품을 그리다 맘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하는 등 상당히 꼼꼼하게 작업했다. 같이 일을 해봐서 알지만 대충 (그림 그리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보통 화가들이 전시전을 준비할 때는 부분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밑작업부터 마무리 최종작업은 직접 한다. 회화작품들은 반복되는 작업이 이어질 때는 조수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백남준 선생님도 설치하는 과정에서는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만들어 냈다. 주변에서 들어 알고 있지만 (조영남) 선생님을 도와준 사람도 미국 뉴욕에 살다 오신 분으로 강원 속초에 머물며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작이라는 표현을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어 안타깝다. Q:작년 석왕사 법당에서 열었던 기획전에서 작품이 판매된 것으로 알고 있다. 몇 점이나 팔려나갔나. A:몇 점이 팔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 그림은 선생님이 직접 그린 그림이다. 함께 준비하면서 지켜봐 왔다. 한편 조씨가 2013년 제주 가파도에 짓겠다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홍보한 ‘조영남 미술관’은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제주도에 따르면 “조씨의 미술관 건립은 부지 토지가격 문제와 마을 주민들의 토지 출자 등을 둘러싸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현재 백지화된 상태”라며 “탄소 없는 청정 섬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가파도에 대작 논란을 빚고 있는 조영남 미술관이 들어섰다면 망신을 당할 뻔했다”고 말했다. 속초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한강 맨부커상 수상] “딸이지만 질투 나는 감수성·시적 문체”

    [한강 맨부커상 수상] “딸이지만 질투 나는 감수성·시적 문체”

    오빠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딸이지만 같은 소설가로서 질투가 날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문체가 시적이다. 내 세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갖고 있다. 딸의 문장을 보면서 나도 내 글을 더 아름답게 다듬으려고 애쓴다. ”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인 원로 작가 한승원(77)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딸의 맨부커상 수상에 대해 “기쁘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면서 “딸이 아침에 전화해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하길래 ‘네가 효녀다. 아버지의 세계를 뛰어넘는 자식이야말로 효녀다’라고 말해줬다”고 뿌듯해했다. 한 작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포구의 달’ 등을 펴낸 한국 문단의 거장으로, 고향인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토속적 세계와 원초적인 생명력을 탁월하게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년 전부터 전남 장흥군 ‘해산토굴’에서 터를 잡고 있다. 한 작가는 ‘딸의 수상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반반이었다.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감수성과 문학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번역만 잘 됐다면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딸은 영국으로 가기 전 나와 통화할 때 ‘기대하지 마시라’고 했다”면서 웃었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에 대해선 “인간의 폭력에 저항하는 식물성 나무가 돼보자 하는 그런 세계를 그렸는데 그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신화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내 소설이 전설적인 신화의 세계라면 딸은 현대적인 신화를 창조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강 작가는 아버지뿐 아니라 오빠와 남편도 문인이다. 오빠 한동림은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이며, 남편은 김달진문학상과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한 홍용희 문학평론가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한강 맨부커상 수상] 인간의 폭력과 존엄 녹아든 아름다운 문장… 세계를 홀렸다

    [한강 맨부커상 수상] 인간의 폭력과 존엄 녹아든 아름다운 문장… 세계를 홀렸다

    “나는 왜 이토록 인간을 의심하며 바라보나. 인간을 껴안는다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건가. 제 소설 속엔 늘 이런 투쟁이 있어요. 결국 인간을 뚫고 나가는 게 제가 소설을 쓰는 가장 강력한 동기죠.”(한강 작가) ‘인간을 뚫고 나간 소설’에 세계도 홀렸다. 무참한 폭력을 저지르는 인간, 그에 대응해 존엄을 되찾으려는 인간은 한강 소설을 꿰뚫는 큰 화두다. 이를 치열하게 탐색해온 그의 작가정신은 ‘채식주의자’가 올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의 승자가 된 이유다. 공신은 또 있다.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한강의 시심(詩心) 어린 문장과 섬세한 감수성을 스타일리시한 문체와 정밀한 뉘앙스로 세공하듯 옮긴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다. 2007년 출간된 ‘채식주의자’(창비)는 스스로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고 믿으며 육식을 거부하고 죽음으로 다가가는 영혜의 이야기다. 세 화자의 관점으로 풀어 쓴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3개의 중편이 연작소설로 묶였다. 상처입은 인물의 고통에 식물적인 상상력을 결합시킨 소설은 기괴한 이미지, 아름다운 문체로 발표 당시에도 큰 주목을 받았다. 스미스의 번역으로 지난해 1월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에서 ‘더 베지터리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작품은 지난 1월 미국 호가드 출판사에서도 발표됐다. 이후 영미권에서 잇단 호평을 받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팔려나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이고 한 문장 한 문장이 놀라운 경험”이라고 서평을 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나온 가장 에로틱한 소설 중 하나”라며 “이 치밀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책은 독자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며 꿈에까지 나올 수 있다”고 평했다. 미국 소설가 에이미어 맥브라이드는 “허술한 데가 한 군데도 눈에 띄지 않아 놀랍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는 맨부커 후보 발표부터 수상의 순간까지 줄곧 역자에게 공을 돌렸다. 스미스는 포르토벨로 편집자에게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한 20쪽짜리 샘플과 홍보 자료를 처음 건네 출간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6년 전 처음 한국어를 배웠다는 스미스의 정교한 번역은 한강의 문학성을 세계에 알린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런던대 소아스(SOAS)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밟은 그는 단어마다 일일이 사전을 뒤졌던 ‘번역 초보’에서 한국 문화와 언어의 뉘앙스를 간파한 ‘언어의 연금술사’가 됐다. BBC는 이날 별도 기사를 통해 스미스의 한국어 번역에 주목했다. 스미스는 앞으로 한강 작품 이외에도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 ‘올빼미의 없음’, ‘서울의 낮은 언덕’ 등을 번역해 미국 출판사를 통해 출간할 계획이다. 또 자신이 세운 비영리 출판사 틸티드 악시스(아시아·아프리카 문학 전담)를 통해 황정은과 김연수 등의 작품도 영국에 소개할 예정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한강 맨부커상 수상]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소설가 첫발

    [한강 맨부커상 수상]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소설가 첫발

    ‘한강현’ 필명… 1994년 ‘붉은 닻’ 당선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토대는 서울신문 신춘문예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을 실으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한강은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당시 당선소감에서 “아파서 쓴 것인지, 씀으로 해서 아팠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아프면서 썼다. 밤은 아득하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나 새벽은 늘 여지없었다. 어둠의 여지없음만큼이나 지독한 힘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무릎이 꺾인다 해도 그 꺾이는 무릎으로 다시 한 발자국 내딛는 용기를 이제부터 배워야 하리라”라고 다짐했다. 등단 이후 22년간 무릎이 꺾이는 순간마다 새벽의 힘을 믿고 한 발자국 내딛는 용기로 그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 결과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을 받게 됐다. 한강을 발굴한 1994년도 신춘문예 심사위원은 고 서기원(1930~2005) 작가와 김병익(78) 문학평론가다. 김 평론가는 17일 전화 인터뷰에서 “정말 축하할 일”이라며 기뻐했다. 그는 “당시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밀물처럼 휩쓸던 운동권 소재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우수로 채운 작품들이 주를 이뤘었다. 큰 주제보단 요즘 말하는 미시권력에 집중하던 시기였는데 ‘붉은 닻’도 그런 작품들 중 하나였다. 서기원 선생과 큰 이견 없이 이 정도면 당선작이 될 만하다고 합의해 수상작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처음엔 남자인 줄 알았다. 한강이라는 이름도 아니었고, 이런저런 약력을 보고 한승원 선생 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자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한강은 당시 ‘한강현’이라는 필명으로 응모했다. 김 평론가는 당시 심사평에서 “‘붉은 닻’은 그 제목이 암시하듯 매우 서정적인 작품이어서, 육체적인 병과 마음의 병을 앓아온 형과 동생과, 그들 간의 미묘한 갈등, 사라진 남편 대신 그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안쓰러운 모습이 섬세한 문장 속에 깊이 박혀 잔잔한 긴장과 화해의 밝은 전망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이 소설도, 정황의 서정성은 아름답지만 이야기의 구체성은 모호하다는 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평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K문학, 세계 속 ‘큰 강’ 되다

    K문학, 세계 속 ‘큰 강’ 되다

    3대 문학상… ‘채식주의자’로 “아름다움·공포의 기묘한 조화” 폭력 앞에 선 인간, 그의 존엄을 지켜내려는 한강의 집요한 분투가 응답받았다. 소설가 한강(46)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작가가 됐다. 그는 이 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인이자 최연소 작가라는 기록도 세우며 한국 문학사의 별이 됐다. 16일 밤(현지시간)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만찬 및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장 보이드 턴킨이 ‘채식주의자’를 들어 보이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올해 심사대상이었던 세계 155개 소설 가운데 심사위원단 5명이 만장일치로 뽑은 단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노벨문학상 작가인 터키의 오르한 파무크, 중국의 가장 강력한 노벨상 후보 옌롄커도 한강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한강 작가는 “제가 써온 소설들은 대중성이나 상업성이 없는, 인간에 대한 질문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소설들”이라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독자들이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나눠 갖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고 소감을 밝혔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문학 기자 보이드 턴킨은 ‘채식주의자’에 대해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할 가치가 넘치는,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고 상찬했다. 그는 “한 평범한 여성을 집과 가족, 사회에 옭아매는 모든 관습을 거부하는 궤적을 쫓는, 서정적이면서도 격렬한 이 소설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각인돼 꿈에까지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평했다. 한국 문학의 빛나는 순간으로 남을 이번 ‘사건’은 지난해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으로 진통을 겪은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은 “한강의 맨부커 수상으로 이제 한국 문학은 세계 문단의 관심사가 됐고 노벨상에도 한발 더 다가가게 됐다”며 “벌써부터 한강 외에 다른 재능 있는 작가들을 추천해달라는 해외 출판사의 의뢰가 줄을 잇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남성 작가, 분단의 역사 등 거대 서사를 중심으로 해외 문단에 알려져 온 우리 문학에 여성 작가, 젊은 작가들이라는 다양한 자산이 있음을 확인한 계기도 됐다. 이광호 문학평론가(서울예대 교수)는 “한강이 우리 문단에서 대중적이거나 최고의 권위를 누린 작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수상은 남성 작가, 팔리는 작가 중심으로 양극화됐던 문학계를 되돌아보게 한다”며 “이번 기회에 실험적이고 시적 상상력을 품은 여성 작가, 젊은 작가, 시인 등 우리 문학의 좋은 자산들을 조명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어권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맨부커상은 스웨덴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묶인다. 책을 번역해 해외에 처음 소개한 영국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도 한강과 함께 공동 수상자로 호명됐다. 두 사람은 상금 5만 파운드(약 8500만원)를 나눠 가진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한강 아버지’ 소설가 한승원, “아버지 세계 뛰어넘는 자식이야말로 효녀”

    ‘한강 아버지’ 소설가 한승원, “아버지 세계 뛰어넘는 자식이야말로 효녀”

     “딸이지만 같은 소설가로서 질투가 날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문체가 시적이다. 내 세대에선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갖고 있다. 딸의 문장을 보면서 나도 내 글을 더 아름답게 다듬으려고 애쓴다. ”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인 원로 작가 한승원(77)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딸의 맨부커상 수상에 대해 “기쁘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면서 “딸이 아침에 전화해 ‘낳아주셔서 고맙다’고 하길래 ‘네가 효녀다. 아버지의 세계를 뛰어넘는 자식이야말로 효녀다’라고 말해줬다”고 뿌듯해했다. 한 작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포구의 달’ 등을 펴낸 한국 문단의 거장으로, 고향인 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토속적 세계와 원초적인 생명력을 탁월하게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년 전부터 전남 장흥군 ‘해산토굴’에서 터를 잡고 있다.  한 작가는 ‘딸의 수상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반반이었다.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감수성과 문학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번역만 잘 됐다면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딸은 영국으로 가기 전 나와 통화할 때 ‘기대하지 마시라’고 했다”면서 웃었다. 수상작인 ‘채식주의자’에 대해선 “인간의 폭력에 저항하는 식물성 나무가 돼보자 하는 그런 세계를 그렸는데 그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신화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내 소설이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세계라면 딸은 현대적인 신화를 창조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강 작가는 아버지뿐 아니라 오빠와 남편도 문인이다. 오빠 한동림은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이며, 남편은 김달진문학상과 유심문학상 등을 수상한 홍용희 문학평론가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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