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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하나로 뭉친 노령·상하이·한성정부…‘미완의 통합임정’ 세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하나로 뭉친 노령·상하이·한성정부…‘미완의 통합임정’ 세우다

    1919년 3·1운동 뒤로 국내외 곳곳에서 임시정부가 생겨났다. 이 가운데 러시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는 독립전쟁을 치르기 좋은 위치였지만 일본의 공세에 노출돼 있었다. 중국의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하이정부)는 정치 활동이 자유로웠지만 국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거리가 너무 멀었다. 한성임시정부는 민주적 절차를 잘 지켜 정통성이 컸지만 조선총독부가 자리잡은 서울에 머문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세 정부는 각자의 처지를 인정하고 힘을 모으고자 통합에 나섰다.●상하이정부·노령정부 통합 앞서 갈등 표출 지난달 중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차 찾아간 상하이 상업지역 화이하이중루. 10·20세대가 주로 찾는 거리 한 모퉁이에 글로벌 의류 브랜드 매장이 입점한 6층짜리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우리 역사학계에서 ‘하비로 청사’라고 부르는 곳으로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상하이정부가 그해 8∼10월 사용했다. 당시 임정이 청사로 쓰던 2층 양옥은 1920~1930년대 철거됐다. 기자와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수개월간의 논의 끝에 1919년 9월 11일 개헌을 통해 세 임시정부의 통합을 여기서 결정해 선언했을 것이다. 그래서 의미가 남다르다”고 전했다. 상하이정부가 수립된 직후부터 국내외에서는 세 임정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성·상하이정부는 정부 수립을 전후해 양측 인사들이 꾸준히 교류한 터라 통합에 거부감이 적었다. 한성정부 대표 자격으로 상하이정부 안창호(1878~1938)와 협상을 벌인 이규갑(1887~1970)의 증언을 보면 당시 양측의 우호적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도산과 두 정부의 통합을 논의했다. 나는 상하이정부가 먼저 생겼으니 우리 한성정부가 합류하는 것이 맞다고 양보했다. 하지만 도산은 한성정부야말로 국내 13도 대표가 총의를 모아 만든 정부이니 당연히 자신들이 속한 상하이정부를 해체하고 한성정부의 법통에 순응해야 한다며 (내 제안을) 사양했다.”●안창호 “해산 후 한성 밑으로 모이자” 제안 사실상 상하이정부와 노령정부 간 통합 논의만 남았다. 노령정부가 먼저 나섰다. 1919년 4월 2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회의를 열어 연해주 대한국민의회와 상하이 임시의정원을 합치고 러시아에 행정부를 두자는 의견을 정했다. 노령정부는 5월 특사 원세훈(1887~1959)을 중국에 보내 이를 제안했다. 상하이정부에서도 안창호가 본격적인 통합 협상에 나섰다. 6월 17일 상하이정부 국무원(행정부)은 노령정부와의 협의 내용을 반영한 의안을 임시의정원에 제출했다. 임시정부는 상하이에 두되, 새 의회는 러시아로 이전이 가능하도록 여지를 뒀다. 하지만 의정원은 상하이에 계속 남고 싶었던 탓인지 안건을 거부하고 국무원에 돌려보냈다.●노령정부 불만 터져 불완전한 결합 이뤄 협상이 난항에 빠지자 안창호는 새 아이디어를 냈다. 상하이·노령정부를 모두 해산하고 한성정부 밑으로 다시 모이자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제3지대 창당론’이 될 것 같다. 단, 통합 정부는 ‘한성임시정부’가 아닌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부르고, 상하이에 남기로 했다. ●상하이정부, 한성을 ‘우회 상장’ 통로로 여겨 노령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8월 30일 총회를 열고 의회를 해산했다. 그런데 상하이에서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애초 해산하기로 한 의회와 행정부를 그대로 둔 것이다. 정부 조직만 한성정부 형태로 바꿔놨다. 비유컨대 건설업자가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기로 약속한 뒤, 실제로는 건물 도면에 맞춰 리모델링만 한 것이다. 당시 안창호는 “한성정부를 (실제가 아닌) 정신적으로 승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은 정통성은 있지만 실체가 없던 한성정부를 동등한 통합대상으로 보지 않고 서울에서 생겨난 정부라는 법통을 흡수하려는 ‘우회 상장’ 통로로 여긴 듯 하다.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상하이정부가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지키려다가 생겨난 일”이라고 분석했다. 통합 임시정부에 참여하기로 한 문창범(1870~1938)과 이동휘(1873~1935)는 “상하이가 우릴 속였다”며 취임을 거부했다. 문창범은 연해주로 돌아가 1920년 2월 대한국민의회 재건을 선언했다. 통합 임정으로서는 미래 정부 활동 자금줄이자 무장 투쟁 동력을 잃어버렸다. 여기에 신채호(1880~1936)와 박용만(1881~1928)도 새 내각 불참을 선언했다. 임정 통합 중심축 이동휘, 독립자금 좌파세력 유용으로 치명타이승만(1875~1965)이 1919년 2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1856~1924)에게 “국제연맹이 한국을 위임통치할 수 있게 주선해 달라”고 청원한 것을 문제 삼았다. 통합 임정이 시작도 전에 분열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이동휘는 안창호의 간곡한 설득으로 11월 3일 통합 임정 국무총리에 복귀했다. 내무총장 이동녕(1869~1940)과 재무총장 이시영(1868~1953), 법무총장 신규식(1880~1922) 등도 함께 취임식을 가졌다. 이렇게 세 임정은 불완전하게나마 통합정부로 다시 태어났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을 상하이정부가 생겨난 4월 11일이 아니라 세 임정을 통합한 9월 11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상하이정부가 노령정부를 모두 끌어안아 완전체가 됐다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을 것이다.●통합 임정에 힘 실어 준 아전의 아들 이동휘 “그는 키가 크고 힘이 장사였으며 가슴이 떡 벌어졌다. 군인답게 콧수염을 길러 마치 프랑스 원수 같았다. 민족운동의 거성인 동시에 저명한 혁명가였다. 열렬한 행동주의자였으며 불덩이 같은 신념을 지녔다. 천군만마를 노호할 듯한 기개와 위엄을 갖춘 당당한 거인이었다.” ‘아리랑’의 저자 헬렌 포스터 스노(1907~1997)가 이동휘에 대해 내린 평가다. 그는 ‘반쪽짜리’로 전락할 뻔한 통합 임정에 극적으로 합류해 독립운동 중심체로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러시아 소비에트 최고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에게서 받은 통합 임정 운영자금을 자파(自派) 유지비로 돌려써 독립운동 분열도 초래했다. 1873년 함경남도 단천에서 아전 이승교의 아들로 태어나 18살 때 통인(군수의 시중을 드는 하급관리)이 됐다. 23살 때 탐관오리였던 단천군수 홍종후가 잔칫날 어린 기생을 무릎 위에 앉혀 추행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술상 옆에 놓인 화로를 군수에게 끼얹었다고 한다. 불의를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에 나서는 그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이동휘는 서울로 도피했다가 함경도 명천 출신 관료 이용익의 도움으로 한성무관학교에 입학해 군 장교가 됐다. 이후 일제가 그의 애국심을 우려해 수차례 체포와 수감을 반복하자 1913년 북간도로 탈출했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해 1914년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했다.당시 일본은 러시아 영토를 탐내 시베리아에 주둔해 있었다. 이동휘는 러시아와 손잡고 일제와의 전면전을 벌여 단박에 조선 독립을 쟁취하려 했다. 일본군과 맞서던 러시아 볼세비키(사회주의자)들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러시아와 일본이 동맹국이 되는 바람에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그러자 북간도로 넘어가 중국과 연합해 대일 독립전쟁을 치르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중국도 1915년 일본의 ‘21개조 요구안’(제1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이 중국에 제출한 권익 확대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고 한편이 돼 이 역시 무산됐다. 1918년 5월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을 세우고 기관지를 발행했다. 군사학교 설립과 한인적위대 조직에도 나섰다. 애초 이동휘와 한인사회당은 3·1운동 민족대표들과 임시정부 설립자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한국의 독립에 관심을 가질 리 없고 조선 지식인들이 기대를 건 파리강화회의 역시 식민지 해방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동휘는 “상하이 측과 정치 싸움을 벌여선 대국(일본)을 파괴할 수 없다”며 통합 임정에 뛰어들었다. 그의 결단 덕분에 통합 임정은 ‘이승만(한성)-안창호(상하이)-이동휘(노령)’라는 3대 축을 갖춰 대외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독립자금 전용 탓 신뢰 잃어… 국제사회도 외면 그는 씻기 힘든 과오도 남겼다. 1920년 1월 통합 임정은 이동휘의 측근 한형권(생몰연대 미상)을 러시아 모스크바에 보냈다. 레닌 정부와 접촉해 정식국가로 승인받고 독립 자금도 지원받기 위해서였다. 결국 레닌으로부터 200만 루블을 받기로 하고 1차분 60만 루블을 얻어냈다. 지폐의 양이 많아 20만 루블은 모스크바에 두고 일단 40만 루블을 김립(1880~1922)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그는 이 돈을 통합 임정에 전달하지 않고 한인사회당 등 좌파 운동세력에게 나눠줬다. 일부는 개인 용도로도 썼다. 이동휘는 소련 자금 배달사고의 배후로 지목돼 입지가 좁아졌다. 1921년 1월 총리에서 물러났다. 이 일로 사회주의 계열은 신뢰를 잃고 독립운동 주류에서 배제됐다. 통합 임정도 국제적으로 평판이 나빠져 운영 자금 마련이 더 힘들어졌다. 이후 이동휘는 연해주 일대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매진하다가 1935년 1월 31일 62세로 숨을 거뒀다. 서울·상하이·블라디보스토크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여기는 남미] 자동차에 개 묶고 질질끌다 쓰레기통에 버린 男

    [여기는 남미] 자동차에 개 묶고 질질끌다 쓰레기통에 버린 男

    길에서 반려견을 학대하다 결국엔 쓰레기통에 버린 남자가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의 지난 5일 보도에 따르면 남자는지방 대도시 중 하나인 투쿠만에서 반려견을 승용차 리어범퍼에 줄로 묶은 뒤 질질 끌고 다녔다. 목줄을 건 반려견은 처음엔 헉헉거리며 자동차를 따라갔지만 이내 다리가 풀어졌다. 힘이 빠진 반려견은 바닥에 쓰러진 채 자동차에 질질 끌려다녔다. 한동안 그런 상태로 반려견을 끌고 다닌 남자는 자동차를 멈추더니 반려견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잔인한 학대 행위는 행인들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분노가 치밀고 너무 마음이 아프다" "저런 짓을 한 사람은 정신병자다" "인간이 극단적으로 악할 수 있다는 데 소름이 끼친다"는 등 네티즌들은 공분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당국이 나서게 된 건 한 시의원이 문제의 동영상을 보고 "경찰은 뭐하고 있냐. 당장 이 사람을 조사하라'고 호통을 치면서다. 경찰 관계자는 "동영상에 찍힌 자동차의 번호를 확인, 차주의 신원을 확인했다"면서 "차주를 불러 누가 운전을 했는지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운전자가 확인되면 운전면허를 취소하고, 정신감정을 받도록 할 예정이며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은 따로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는 연방법으로 동물학대를 금지하고 있다. 고의로 동물을 다치게 하거나 고문하는 경우,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경우 최고 12월 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 경찰은 "동영상을 보면 학대가 거의 변태급"이라면서 징역이 불가피할 것이고 밝혔다. 사진=엘투쿠마노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이천 ‘뻔뻔(fun fun)한 클래식’공연으로 민.관.군 하나되다

    이천 ‘뻔뻔(fun fun)한 클래식’공연으로 민.관.군 하나되다

    경기 이천시와 육군항공작전사령부가 공동으로 주최· 주관한 맥키스 오페라단의 ‘뻔뻔(fun fun)한 클래식’공연이 14일 이천아트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번 공연은 지역 사회와 육군항공작전사령부간 협력과 유대 강화를 위해 추진한 문화예술행사로 허건영 항공작전사령관이 엄태준 이천시장에게 공동 주최를 제의해 이뤄졌다. 공연 시작과 함께 무대영상으로 이천시의 아름다운 모습과 육군헬기의 위용을 함께 보여주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으며 ‘축배의 노래‘를 시작으로 ‘남몰래 흐르는 눈물’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명곡 18곡이 이어졌다. 마지막 곡으로 ‘오 해피데이’를 부르며 군인가족과 이천시민이 함께 한 즐거운 시간을 끝으로 관객과 공연팀이 함께 어우러져 기념 촬영을 진행했다. 서숙경(34·여)씨는 “결혼 9주년 기념일을 맞아 남편과 함께 좋은 공연을 관람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며 “이천에 살면서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건영 항공작전사령관은 “항작사 간부들도 모두 이천지역 주민인 만큼 지역주민과 함께 공연을 보면서 공유하는 좋은 추억이 생겼다”며 “이천시와 함께 이런 의미있는 기회를 더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엄태준 시장은 “지역주민과 군인가족이 소통할 수 있는 의미있는 공연이었다”며 “문화 예술로 더불어 행복한 이천을 만드는 데 힘 쓰겠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여성 해방 다룬 인형의 집, 지금 한국에 딱 맞는 작품”

    “여성 해방 다룬 인형의 집, 지금 한국에 딱 맞는 작품”

    “입센은 ‘인형의 집’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죠.”서울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연출을 맡은 러시아 연극연출가 유리 부투소프(57)는 “저에게도 이제 이 작품을 다룰 적절한 시기가 됐고, 마침 ‘인형의 집’ 안에 담긴 문제들이 한국에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며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졌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5일 서울신문과 만나 “‘인형의 집’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모두 다 담고 있다”고 말했다. 부투소프는 러시아 최고 권위의 ‘황금마스크상’을 수상하는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꼽힌다. 2008년 한국 무대에 올린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는 원작을 뒤집는 파격적인 연출로 화제가 됐다. 그는 현재 러시아 최고 극장으로 발돋움한 모스크바 바흐탄고프 극장의 수석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형의 집’은 순종적인 여성 ‘노라’가 자신의 굴레를 깨닫고 남편과 아이들을 떠나는 여성 해방 이슈를 담고 있다. 1879년 발표 당시 유럽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부투소프는 ‘미투 사건’ 등 국내 연극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지인들을 통해 이미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한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일본 위안부 문제 등을 예로 들며 “(한국 사회가) 여성의 자유와 지위를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하고, 다양한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0년 전 한국에 왔을 때보다 여성의 자유가 조금 더 커졌음을 느낀다”며 “느리게라도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부투소프는 ‘인형의 집’ 출연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배우들과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배우 오디션을 직접 본다”면서 “두 달 이상 배우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이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예술을 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서로 잘 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연극이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부투소프가 몸담은 바흐탄고프 극장 역시 지난 시즌 관객 수가 30만명에 달했다. 그는 “모스크바에 연극전문학교가 설립된 게 100년이 넘고, 이 같은 역사가 바로 러시아 연극의 힘”이라며 “러시아로 유학을 온 한국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정말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다. 이들이 연극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한국에서도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번 공연은 6~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갈 길 바쁜 한국당 또 해묵은 계파 갈등

    당협위원장 심사·교체 관련 불만도 조명균 통일 장관 해임 건의안 제출 자유한국당 중진 의원들이 비상대책위원회의 혁신 행보와 한국당발 ‘보수대통합’ 등을 두고 해묵은 계파 갈등을 드러냈다. 국회에서 31일 열린 한국당 비대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는 비대위의 권한과 혁신 행보에 대한 반발 기류와 잔류파, 복당파 간의 갈등이 재연됐다. 친박계로 통하는 홍문종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해서 탄핵을 받았나. 탄핵백서를 만들어 달라”며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보다 훨씬 탄핵감이 많은 정부지만, 당 나갔던 사람, 탄핵에 찬성한 사람이 한마디 반성도 하지 않고 탄핵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우택 의원도 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와 당무감사위원회가 착수한 당협위원장 심사 및 교체와 관련해 “지금 원외 당협위원장 이야기를 들어 보면 갈팡질팡하고 있다”며 “대표 체제가 바뀌면 그때마다 원외위원장을 흔들어 대니 지역구 관리를 연속적으로 할 수 없고 하려 해도 흔들면 힘이 빠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진석 의원은 “백서를 만들자는 의견을 주셨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표결을 한 지 2년 다 돼 간다. 시의적절한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다”고 맞받았다. 조경태 의원도 “민심이반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경제난국 때문”이라며 “제1야당으로서 한국당은 민심이반을 잘 살펴보고 우리 당이 수권했던, 수권할 수 있는 정당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거들었다. 한편 한국당은 이날 ‘막대한 재정이 수반되는 남북 경협 사업을 독단으로 처리하려 했다’며 조명균 통일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수목원은 현대인에 치유죠···시간이 갈수록 가치 빛나”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수목원은 현대인에 치유죠···시간이 갈수록 가치 빛나”

    ‘월급쟁이 출신’ 성만기 원장이 말하는 수목원 40년“오늘 우리 한국 사람은 너무 바쁘게 급하게 삽니다. 오늘 일을 하면 내일 결과가 바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3년이나 5년 계획을 ‘장기 계획’이라고 우깁니다. 조급증 환자같이 살다 보니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도 모른 채 살다가 죽습니다. 하지만 나무를 키우니, 수목원을 하다 보니 시간의 의미를 체험합니다. 수목원은 최소 100년, 어쩌면 한 300년쯤 지나야 제대로 된 멋과 품격을 풍깁니다.” 수목원 가는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 재벌도 기업가도 아닌 평범한 월급쟁이 출신이 수목원을 멋있게 가꾸고 산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3일 경남 고성군 동해면에 있는 소담수목원으로 차를 몰았다.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을 따라 향했지만 길가에 촘촘하게 선 전봇대와 얼기설기 걸린 전선이 눈에 거슬렸다. 수목원에 들어서 엔진을 끄자마자 성만기(73) 수목원장이 나왔다. 조성한 지 올해로 40년째인 이 수목원 앞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옥빛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이름 그대로 작고 아담했다. 그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숲을 걸었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나뭇잎은 여름 그대로였다. “저기 저 나무가 스트로보 잣나무입니다. 미국 코네티컷에서 이 나무를 보고 반했지. 나무 대신 씨앗을 가져와 심었는데 저렇게 자랐습니다. 한 40년 자랐을까, 대한민국에서 아마 유일할 겁니다. ‘이스턴 화이트’라고도 해” 설명을 듣고보니 경기도나 강원도에서 보던 잣나무보다는 흰색이 강했고, 가지들이 피라미드처럼 층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다. “스트로보 잣나무가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만큼 우리 생물자원이 풍부하다는 겁니다. 저건, 로보참나무야. 독일에선 ‘할아버지가 로보참나무를 심으면 손자가 벤츠를 탄다’는 말이 있지. 그만큼 목재 가치가 높거든.”국내 유일한 잣나무, 국내 최대 참나무 보유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한 나무 앞에서 그가 걸음을 멈췄다. “이건 핀오크 참나무야. 국내에선 제일 클 겁니다. 손기정(1912~2002) 선생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하면서 받은 월계관이 사실은 이 핀오크 참나무 가지로 만든 거야. 손기정 선생을 기념해 서울 양정고등학교에도 저런 핀오크 참나무가 자라고 있지.” 이 나무 높이가 25m쯤 돼 보였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나뭇잎이 다른 참나무와는 달리 단풍나무처럼 들쭉날쭉 길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핀오크를 대왕참나무로 부른다며 그 유래를 설명했다. “1990년 중반 핀오크 참나무를 조달청에 우리말로 등재하기 위해 고민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국립수목원 조무연 박사와 의논했지요. 참나무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는 생각에 대왕 참나무로 명명했습니다. 목재로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가을 단풍도 정말 아름답지요.” “대왕 참나무 이름도 지어···생물자원 풍요”그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73년 대한항공에 공채로 입사했다. 승무직으로 4년가량 일하다 그만두고 나와 건축업과 자동차 딜러 등 개인 사업을 했다. 갑자기 불어닥친 불황으로 1년여 만에 모두 ‘까먹고’ 1979년 대한항공에 재입사했다. 대한항공 재입사 1호다. 수석 사무장 15년과 객실이사(현재의 상무)를 지낸 그의 비행시간은 약 3만 시간에 이른다. 지구를 300바퀴쯤 돌았다. 전 세계 곳곳의 좋다는 곳은 다 가봤다. 2000년 퇴직하고 수목원을 가꾸고 있다. 왜 수목원을 할까. “두 발을 땅에 딛지 않고 하늘에서 승무원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그만큼 깎아먹는 시간입니다.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 일하는 나의 시간, 나의 ‘우주’를 갖자는 열망이 강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시간, 사색의 시간이 많아지면서 외국의 유명 식물원과 정원을 찾았습니다. 캐나다의 부차드가든, 영국의 큐식물원, 호주의 닐슨파크 등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지요. 그러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거리(소피스트 로드)’에서 영감을 얻고 수목원을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철학자의 거리를 자양분 삼은 문인과 철학자가 많이 나면서 독일의 지적 수준을 높였지만, 하이델베르크보다 더 풍광이 좋은 제 고향 이곳은 궁색한 시골이었습니다. 이를 바꿔보고 싶었거든요.”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거리’서 영감···고향 바꾸고 싶어서“수목원을 하는 데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자란 그의 개인적 특성도 작용했다. “씨앗을 지배해야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려 세계 곳곳에서 씨앗을 사 들였다. 소담수목원도 어린나무를 심는 게 아니라 씨앗을 발아시켜 성장시킨다. 수목원을 가꾸는데 시간도 훨씬 많이 걸린다. “요즘 길가 화단을 보면 꽃이 잘 핀 화초를 심는데 이건 1회용이예요. 1회용. 꽃이 시들면 파내 버리고 다른 화초로 갈아 끼우고···, 화초엔 인간의 이기심이랄까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도시의 욕망이 빚어낸 참사입니다.” 그의 비판이 신랄하다. “한번은 뉴욕 외곽의 종묘상에 갔는데 파산으로 ‘땡처리’를 하는 거예요. 평소 400달러 하던 씨앗을 40달러에 팔기에 무작정 종류대로 사들였지요. 한 1330여종이 됩니다. 국내엔 없는 희귀 종자들이 많이 있었지요. 종자를 사기는 했는데, 어떻게 발아시키는지 몰랐고, 당시엔 발아시킬 곳도 없어서 1976년 경기도 광릉임업시험장(현재 광릉수목원)에 그대로 기증했습니다. 당시 내가 가진 재산의 전부였죠.” 지금도 국립수목원 종자표본실에는 ‘기증자 성만기’의 이름이 내걸려 있다. 외국 수종실을 만든 이로 기록돼 있다. 희귀종자 등 외국 씨앗 1330여종 국가기증 성 원장은 오솔길의 호젓함을 달래주는 새소리를 따라 걸으며 계속 설명해줬다. “이건,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에 평양 백화원초대소 앞에 심은 모감주나무”, “이건, 열매를 깨서 하천에 던지면 미꾸라지와 가재가 배를 뒤집고 뜬다는 때죽나무”, “이건, 밤에 잎이 오므라드는 자귀나무”, “이건, 6·25때 숲으로 피신한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준 돌배나무” 등등 숲 해설사처럼 들려줬다. “저기 보이는 저 참나무, 줄기에 검은빛이 도는 나무가 루브라참나무고, 그 옆에 저 잣나무는 변종이야. 학계에서 아직 이름을 붙여주지 못하고 있어요.”그의 수목원 프로젝트는 아들이 태어나던 1978년 시작됐다. “처음엔 고향 아버지의 밭뙈기 한쪽에 나무 씨앗을 뿌렸지요. ‘쓰잘데 없는 일한다’고 핀잔도 많이 받았습니다.” 할아버지대부터 살던 이곳 3만 5000평을 샀다. 산도 있고 바다도 있어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외딴 오지여서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땅값이 말 그대로 ‘껌 값’이었다. “여기에 수목원 한다고 땅을 사니 가까운 사람들이 저보고 ‘돌았다’고 했습니다. 땅을 더 살 작정이었는데 그만 1995년쯤 마산 진전면에서 여기까지 다리를 놓는다는 계획이 덜컥 나오더라고요. 땅값이 너무 뛰어서 수목원을 더 확장할 수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때 다리(동진대교)만 놓지 않았더라도 이곳이 확 변했을 겁니다.” 고향 땅 사서 일궈···주말마다 나무 심어 주중에는 승무원으로 세계를 누비고 주말에는 스튜어디스였던 부인과 함께 내려와 종자를 뿌리고, 어린나무를 옮겨심고, 잡초도 맸다. 부부가 항공사 승무원이었으니 사천공항이나 김해공항을 통해 내려오기가 한결 수월했으리라 짐작된다. “가능하면 자연을 그대로 살리고자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만 살리고 모두 베어낼 수는 없잖아요. 원래 이곳에 터를 잡았던 소나무, 밤나무, 물푸레나무, 칡덩굴 등등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4계절 다 아름다우면서도 주위 경관과도 조화를 이루는 그런 수목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봄에 벚꽃 하나만 피면 좀 유치해 보이잖아요. 현재도 수목원을 한창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한 50~60년쯤 뒤에는 수목원다운 풍모를 보일 겁니다.” 현재 이 수목원에서 자라는 나무만 300여종이란다. 식물은 1000종 이상 심었다. “여기 수목원의 고성의 기후와 토양에 따라 어떤 식물이 가장 계절을 잘 나타내주느냐 그렇게 만드는 것이 사명이고 정체성입니다.” 성 원장은 산책길을 따라 심은 어린 핀오크 참나무를 만지며 “아까 그 핀오크의 씨앗이 발아한 2세예요. 이네들은 고성이 ‘네이티브’인 핀오크입니다. 돈이 급할 때 내다 팔려고 길가에 심었습니다만···. 어릴 때는 볼품 없지만 크면 클수록 똑바로 서서 자랍니다. 나무에 기품이 있지요.” 이 수목원에 성 원장 부부의 전 재산이 다 들어갔다. 그러나 수목원이 미완성이니 아직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국내 유일이거나 국내 최고의 나무가 있는 수목원이 한편으론 경남의 얼굴이고 고성의 작품이지만 모두 고개를 돌렸다. 자연적 문화공간에 정부 돈은 1원도 들어가지 않았다. 부인 이상숙씨가 카페를 운영하며,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거든다. 수목원을 산책하다 카폐에서 마시는 차 한 잔에도 여유가 묻어났다.고향의 얼굴인데도 지원 없어···카페도 운영 “캐나다 부차드가든은 한 개인이 만들었지만 정부의 지원으로 전세계에서 관람객들이 옵니다. 반면 우리나라 천리포수목원은 전세계 목련을 모았고 세계적인 작품이 돼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돈달라는 것도 아닌데 국가에서 이런 자원을 이용해 국익을 위해 활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도 내가 죽고 나서가 아니라 살아있을 때 관심을 두고, 관리에 참여하면 지역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가 이 말을 하면서 목에 힘이 들어갔다. “형편상 사람을 데리고 쓸 수가 없어 제가 다 합니다. 요즘도 하루 평균 4~5시간 잡초를 속고, 씨앗을 거두고, 나무를 심고 합니다. 운동도 되고 좋습니다. 카페가 문 여는 오전 10시30분 이전에 다 마칩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열정 이외는 식물과는 인연이 없다. “식물 공부, 책으로 혼자 했지요. 조경회사 만수원의 고 김명원씨, 천리포수목원을 세운 ‘미스터 밀러’(고 민병갈 원장), 충북 진천에 있는 영주농장 이영주 대표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카페 한쪽 구석에 자리한 창고에는 식물과 관련된 책으로 가득했다. 초창기엔 씨앗만 보고 어떤 특징을 지닌 나무인지 모르니 움이 트더라도 숱하게 죽었으리라. “멘토로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삼았습니다. 그 눈빛만 봐도 힘이 났습니다.” 그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멘토를 이야기할 때 수목원을 조성하면서 느꼈을 벽, 고독과 고난 등이 묻어났다. 킹 목사가 멘토···“그 눈빛만 봐도 힘 솟아”성 원장은 산책 도중 중간에 칡덩굴 숲 옆에 서며 “아침이면 굴뚝새 수백 마리가 날아오릅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정글을 이룬 칡덩굴이 나무를 휘휘 감고 넘실거리고 있다. “이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로 작은 우주입니다.” 몇 걸음 더 가다 “이게 백화등이라고, 담쟁이처럼 나무를 감고 올라가 5월이면 아주 향기로운 하얀 꽃을 피웁니다. 어떤 향수보다 더 달콤하고 향긋합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선생님, 이게 나무를 휘감아 죽이는 것 같아 베어냈습니다’고 말해요. 몇 년 동안 정성 들여 팔뚝 굵기로 키웠는데, 너무나 안타깝지만, 기왕 베어낸 것, 제가 말을 못합니다. 들어와서 보는 것은 좋은데 제발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수목원의 가치요? ‘종자 전쟁’이나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지구에 재앙이 닥쳤을 때 씨앗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씨앗저장소가 대표적이다.)는 아니지만 수목원은 훼손된 자연의 복원과 치유입니다. 오늘 일하고 내일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조급한 세상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수목원에서 조금이나마 치유가 될 것입니다. 수목원은 시간이 갈수록 진가가 발휘되죠. 그게 느리게 산다는 것, 여유롭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만족합니다.” 산책하던 성 원장이 엎드려 작은 루브라참나무 옆에 우거진 잡초를 손으로 뽑아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현대이지만 한 자리에 우뚝 서서 수백년을 지키는 거목같은 수목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고성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채유미 서울시의원, 집중호우로 인한 재해 현장 찾아 수해 복구 작업 직접 나서

    채유미 서울시의원, 집중호우로 인한 재해 현장 찾아 수해 복구 작업 직접 나서

    서울특별시의회 교육위원회 채유미 의원(더불어민주당, 노원5)은 8월 30일 밤사이 발생한 기습적인 폭우로 인해 피해를 입은 노원구 상계3,4동 수해 지역을 찾아 관계공무원 및 자원봉사자와 함께 직접 복구 작업을 벌였다. 채유미 의원은 노원구에 상계3,4동 수해현장에 도착해 바로 현장복구 지원소에서 직접 수해 복구를 위한 수해지원현황을 보고받은 한편 수해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수해 복구 지원방안을 면밀히 검토할 것을 지시하였다. 채 의원은 파손된 도로와 물에 잠겨있는 주택을 방문해 수해 주민들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수해 복구를 위해 직접 현장에서 복구 작업을 실시했다. 채 의원은 “밤사이 기습적인 폭우로 인해 마을 및 주민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라고 안타까워하며,“수해 주민들을 위해서 빠른 시일내에 복구작업이 완료 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의 협의에 최선을 다하며, 다시는 이러한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재난예방에 힘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노원구 상계3,4동에 피해를 입은 지역은 보광사 앞 일대에서 도로파손 약 400㎡, 주택침수 10여 세대, 도로파손, 일부 세대 정전이 일어났으며, 덕릉로 129길 107 일대에서 축대붕괴 150㎡가 일어났다. 복구를 위해 채유미 의원을 비롯하여, 경찰 20여명, 소방대원 15여명, 공무원 20여명이 동원 되었으며, 굴삭기 및 덤프트럭 등 각종 중장비가 동원되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후] 힘 받는 지방분권… 기재부도 한목소리

    李총리 “종합계획에 지자체 의견 반영”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핵심 공약인 지방분권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지방정부와 권한 나누기를 꺼리던 중앙정부가 최근 언론 비판과 시·도지사의 강력 반발로 전향적인 입장을 내놨다. 2일 행정안전부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전국 시·도지사들은 지난달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민선7기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에게 “실질적 지방분권이 필요하다”며 청와대가 지방분권 추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박 시장은 17개 시·도지사를 대표해 “지역별 맞춤형 일자리 정책 등을 추진하려면 현장을 잘 아는 지방정부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중앙정부가 제도적 지원과 재정적 뒷받침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낙연 국무총리는 “오는 11일 자치분권 종합계획을 국무회의에 의결할 예정”이라면서 “이 계획이 시·도지사들의 기대에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지자체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 등 일부 단체장들은 이달부터 분권형 개헌을 촉구하는 ‘전국 대장정’에 나서기로 했다. 염 시장은 “문재인 정부가 말로만 지방분권을 추진한다고 했을 뿐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나도 이뤄진 게 없다”면서 “서울신문 연속 보도를 계기로 지방 4개 협의체(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를 중심으로 정부의 진정성 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31일 열린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 110명 전원이 공동발의한 ‘정부의 자치분권 종합계획안·지방자치법개정안 수정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도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윤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분권 핵심인 재정권과 관련해 예산을 쥐고 있는 기재부가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어 지방정부에서 ‘지방분권의 가장 큰 걸림돌이 기재부 관료’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지방분권 핵심인 자치입법, 자치인사권, 재정운용권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지방이 사업을 자율적으로 하고 거기에 소요되는 재원은 반드시 이양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2018 모던보이들은 행복할까

    [흥미진진 견문기] 2018 모던보이들은 행복할까

    1930년 경성, 소설 속의 구보가 걸었던 암울한 식민지 수도였으나 화려한 도시문화가 시작되던 역동적인 공간으로 시간여행을 시작했다. 광통교를 지나 구보의 집터였던 다옥정 7번지 근처인 한국관광공사로 이동했다. 엘리트지만 백수였고, 작가이자 모던 보이였던 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최서향 해설사를 통해 만났다.모던 보이를 상징하는 ‘오갑빠머리’와 잘 빠진 양복을 입은 박태원의 사진을 보며 한껏 멋 부리고 이 거리를 누볐을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을 상상해 보았다. 종로네거리 화신상회(종로타워)와 유리 빌딩 사이 오랜 벽돌 건물인 광통관(우리은행 종로지점)을 지나 나석주 열사 동상이 있는 황금정(하나은행 본점)으로 이동했다. 경제 수탈의 중심지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고 자결한 나석주 열사의 굳게 다문 입과 힘 있게 움켜쥔 두 손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그의 희생으로 우리가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전차가 다녔으리라고 짐작도 되지 않는 도로, 높은 건물들 사이로 긴 걸음이 계속됐다. 구보가 전차에서 내렸다는 조선은행(한국은행)을 지나 단골 카페 낙랑파라(더플라자호텔 근처)에 도착했다. 구보가 일정 중 3번이나 들렀다는 이곳에서, 그는 지인들을 만나 소통하고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당시의 일상이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아 신기했다. 화려했다던 소공로 골목은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키던 양복점들이 이전하고 텅 비어 있었다. 구보가 느꼈을 피로를 같이 느끼며 어둑해진 거리를 따라 ‘서울로7017’로 향했다. 각기 다른 빌딩에서 내뿜는 빛으로 완성된 서울의 스카이라인과 수많은 자동차가 비추는 도로가 눈에 들어왔다. 빛의 한가운데 서자 1930년에서 2018년으로 빠르게 이동한 듯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행복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경성을 배회한 구보가 오늘의 우리를 행복한 사람들로 생각할까 궁금해진다. 이지현 책마루독서교육연구회 연구원
  • [전문] 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남북평화 정착이 진정한 광복”

    [전문] 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남북평화 정착이 진정한 광복”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이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제70주년 정부수립 기념 경축식에 경축사를 통해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경축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오늘은 광복 73주년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매우 뜻깊고 기쁜 날입니다. 독립 선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우리는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 깊이 경의를 표합니다. 독립유공자와 유가족께도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구한말 의병운동으로부터 시작한 우리의 독립운동은 3·1운동을 거치며 국민주권을 찾는 치열한 항전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우리의 나라를 우리의 힘으로 건설하자는 불굴의 투쟁을 벌였습니다. 친일의 역사는 결코 우리 역사의 주류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독립투쟁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치열했습니다.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함께 싸워 이겨낸 결과였습니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힘을 모아 이룬 광복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광복의 그날 우리는 모두가 어울려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에 높은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이곳은 11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의 땅이 된 서울의 심장부 용산입니다. 일제강점기 용산은 일본의 군사기지였으며 조선을 착취하고 지배했던 핵심이었습니다. 광복과 함께 용산에서 한미동맹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용산은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온 기반이었습니다. 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의 평택 이전으로 한미동맹은 더 굳건하게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용산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같은 생태자연공원으로 조성될 것입니다. 2005년 선포된 국가공원 조성계획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중심부에서 허파역할을 할 거대한 생태자연공원을 상상하면 가슴이 뜁니다. 그처럼 우리에게 아픈 역사와 평화의 의지, 아름다운 미래가 함께 담겨있는 이곳 용산에서 오늘 광복절 기념식을 갖게 되어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용산이 오래도록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것처럼 발굴하지 못하고 찾아내지 못한 독립운동의 역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의 독립운동은 더 깊숙이 묻혀왔습니다.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평양 평원고무공장의 여성노동자였던 강주룡은 1931년 일제의 일방적인 임금삭감에 반대해 높이 12미터의 을밀대 지붕에 올라 농성하며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외쳤습니다. 당시 조선의 남성 노동자 임금은 일본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조선 여성노동자는 그의 절반도 되지 못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저항으로 지사는 출감 두 달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지만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1932년 제주 구좌읍에서는 일제의 착취에 맞서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다섯 분의 해녀로 시작된 해녀 항일운동이 제주 각지 800명으로 확산되었고 3개월 동안 연인원 1만7천명이 238회에 달하는 집회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지금 구좌에는 제주해녀 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광복절 이후 1년 간 여성 독립운동가 이백 두 분을 찾아 광복의 역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 중 스물여섯 분에게 이번 광복절에 서훈과 유공자 포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분들도 계속 포상할 예정입니다. 광복을 위한 모든 노력에 반드시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받게 하겠습니다.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낼 것입니다. 묻혀진 독립운동사와 독립운동가의 완전한 발굴이야말로 또 하나의 광복의 완성이라고 믿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우리 국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태 함께 만든 나라입니다.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에 함께 성공한 나라는 없습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에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살려 전 세계를 경탄시킨 나라, 그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분단과 참혹한 전쟁, 첨예한 남북대치 상황, 절대빈곤, 군부독재 등의 온갖 역경을 헤치고 이룬 위대한 성과입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전 세계에서 우리만큼 역동적인 발전을 이룬 나라가 많지 않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대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세대가 함께 이뤄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상과 역량을 스스로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에 나가보면 누구나 느끼듯이 한국은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나라이고 배우고자 하는 나라입니다. 그 사실에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자부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70년의 발전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길입니다. 분단은 전쟁 이후에도 국민들의 삶속에서 전쟁의 공포를 일상화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막대한 경제적 비용과 역량소모를 가져왔습니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북부지역은 개발이 제한되었고 서해 5도의 주민들은 풍요의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조업할 수 없었습니다. 분단은 대한민국을 대륙으로부터 단절된 섬으로 만들었습니다. 분단은 우리의 사고까지 분단시켰습니다. 많은 금기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막았습니다. 분단은 안보를 내세운 군부독재의 명분이 되었고 국민을 편 가르는 이념갈등과 색깔론 정치, 지역주의 정치의 빌미가 되었으며 특권과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분단을 극복해야 합니다.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입니다. 저는 국민들과 함께 그 길을 담대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국민들의 힘 덕분입니다. 제가 취임 후 방문한 11개 나라, 17개 도시의 세계인들은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와 정의를 되살리고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우리 국민들에게 깊은 경의의 마음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국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한미동맹을 ‘위대한 동맹’으로 발전시킬 것을 합의했습니다. 평화적 방식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G20의 정상들도 우리 정부의 노력에 전폭적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아세안 국가들과도 ‘더불어 잘사는 평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시진핑 주석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로 했고 지금 중국은 한반도 평화에 큰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과는 남북러 3각 협력을 함께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아베 총리와도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나가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그 협력은 결국 북일관계 정상화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판문점 선언’은 그와 같은 국제적지지 속에서 남북 공동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남과 북은 우리가 사는 땅, 하늘, 바다 어디에서도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남북은 군사당국간 상시 연락채널을 복원해 일일단위로 연락하고 있습니다. ‘분쟁의 바다’ 서해는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평화의 바다’로 바뀌고 있고 공동번영의 바다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비무장화, 비무장지대의 시범적 감시초소 철수도 원칙적으로 합의를 이뤘습니다. 남북 공동의 유해발굴도 이뤄질 것입니다. 이산가족 상봉도 재개되었습니다. 앞으로 상호대표부로 발전하게 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사상 최초로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뜻깊은 일입니다. 며칠 후면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시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북미 정상회담 또한 함께 평화와 번영으로 가겠다는 북미 양국의 의지로 성사되었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양 정상이 세계와 나눈 약속입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포괄적 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틀 전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판문점 회담’에서 약속한 가을 정상회담이 합의되었습니다. 다음 달 저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평양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정상 간에 확인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딛을 것입니다. 남북과 북미 간의 뿌리 깊은 불신이 걷힐 때 서로 간의 합의가 진정성 있게 이행될 수 있습니다. 남북 간에 더 깊은 신뢰관계를 구축하겠습니다. 북미 간의 비핵화 대화를 촉진하는 주도적인 노력도 함께 해 나가겠습니다. 저는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남북관계의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입니다.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에 북핵 위협이 줄어들고 비핵화 합의에까지 이를 수 있던 역사적 경험이 그 사실을 뒷받침 합니다.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평화경제, 경제공동체의 꿈을 실현시킬 때 우리 경제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날도 앞당겨질 것입니다. 국책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향후 30년 간 남북 경협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최소한 17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합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철도연결과 일부 지하자원 개발사업을 더한 효과입니다. 남북 간에 전면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때 그 효과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질 것입니다. 이미 금강산 관광으로 8천9백여 명의 일자리를 만들고 강원도 고성의 경제를 비약시켰던 경험이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협력업체를 포함해 10만 명에 이르는 일자리의 보고였습니다. 지금 파주 일대의 상전벽해와 같은 눈부신 발전도 남북이 평화로웠을 때 이뤄졌습니다. 평화가 경제입니다.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정착되면 경기도와 강원도의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할 것입니다. 많은 일자리와 함께 지역과 중소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철도, 도로 연결은 올해 안에 착공식을 갖는 것이 목표입니다. 철도와 도로의 연결은 한반도 공동번영의 시작입니다. 1951년 전쟁방지, 평화구축, 경제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유럽 6개국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창설했습니다. 이 공동체가 이후 유럽연합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경의선과 경원선의 출발지였던 용산에서 저는 오늘,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 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합니다. 이 공동체는 우리의 경제지평을 북방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되어 동아시아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식민지로부터 광복, 전쟁을 이겨내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뤄내기까지 우리 국민들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국민들이 기적을 만들었고 대한민국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가고 있습니다. 독립의 선열들과 국민들은 반드시 광복이 올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경제 살리기라는 순탄하지 않은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까지처럼 서로의 손을 꽉 잡으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우리가 어떻게 하냐에 달렸습니다. 낙관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광복을 만든 용기와 의지가 우리에게 분단을 넘어선, 평화와 번영이라는 진정한 광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원시의 섬 태초의 힘

    원시의 섬 태초의 힘

    갈라파고스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출발지인 에콰도르 과야킬 공항에서부터 짐 검사가 까다로웠다. 비행기에 오르는 모든 승객들은 가방의 지퍼를 열어야 했다. 씨앗이나 과일은 섬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 백발의 외국인 아주머니는 말린 꽃차까지 빼앗아 간다며 화를 냈다. 게다가 지갑에서 돈도 쑥쑥 빠져나갔다. 입도 카드(TCT)가 무려 20달러. 여기에 입도비 100달러를 또 내야 했다. 자연에 해를 주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써야 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는 지금 갈라파고스에 가고 있잖아요.” 꽃차를 뺏겼던 백발의 아주머니는 티켓을 흔들며 웃음을 지었다.과야킬 공항을 이륙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승무원들이 수하물 선반을 모조리 열고는 소독약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착륙이 가까웠다는 신호였다. 갈라파고스의 산크리스토발섬에 착륙해서도 바다사자와의 만남은 잠시 더 시간을 미뤄야 했다. 가방 지퍼를 다시 열어젖히고 짐 검사를 다시 한 후, 탐지견이 한참 동안이나 코를 가방을 대고 킁킁거리다가 꼬리를 흔들고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갈라파고스의 흙을 밟을 수 있었다. 섬에서 가장 번화한 마을인 푸에르토바케리소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저녁이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노을이 번져 오고 있었다. 예약한 크루즈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가는 길, 여행자를 반기는 건 ‘끄으윽 끄으윽’ 하는 바다사자의 울음소리였다. 선착장 끝에는 마을 사람들과 바다사자들이 모여 보랏빛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는 커다란 바다사자 한 마리가 누워 “어서 와, 갈라파고스는 처음이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콧수염을 찔금거렸다. 1835년 9월 15일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제도에 도착한 찰스 다윈은 제각기 부리가 다르게 생긴 새들이 모두 같은 핀치새라는 것을 알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진화론을 세우게 된다.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약 1000㎞ 지점에 위치한 갈라파고스제도는 19개의 섬과 많은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화산 폭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정식명칭은 콜론제도다. 갈라파고스에는 산호초가 없다. 적도에 위치하지만 해저에서 솟아나는 차가운 물과 남미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한류의 영향으로 수온이 15℃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연 강수량도 1000㎜가 채 되지 않아 야자수도 자라지 않는다. 갈라파고스만의 독특한 생물상은 이런 척박한 환경과 고립된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갈라파고스에 서식하는 포유류와 조류·파충류의 80%, 고등식물의 약 40%가 고유종이고 바닷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바다이구아나는 전 세계에서 오직 갈라파고스에서만 살고 있다.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 [사설] 기록적 폭염 속 전력수급 차질 예방에 만전을

    폭염 지속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수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주엔 무려 네 차례나 여름철 최대 전력사용량 기록이 경신됐다. 지난 16일 8631만㎾를 기록해 기존 여름 최고치인 2016년 8월의 8518만㎾를 넘어선 데 이어 20일엔 8808만㎾까지 치솟았다. 역대 최고 기록인 지난 2월 6일의 8824만㎾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지난 5일 정부는 8월 중순쯤 최대 전력 수요가 8830만㎾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으나 당장 이번 주부터 이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 어디까지 치솟을지 걱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예비전력 확보를 위해 원전 가동률을 높이기로 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다. 지난 21일부터 한울 4호기가 재가동됐고, 8월에는 한울 2호기도 다시 가동된다. 이를 통해 예비전력 1000만㎾ 이상, 전력예비율 11% 이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탈원전 정책에 드라이브를 거는 정부가 운행을 중단했던 원전을 재가동하는 것은 자칫 정책 후퇴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오해를 무릅쓸 만큼 상황이 급박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으나 탈원전 정책이 도그마가 아니라 현실적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 지구적으로 기상이변이 심화하면서 겨울엔 이상 한파, 여름엔 폭염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도 이런 예측 불가능한 기후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수립돼야 하는 건 불문가지다. 지난해 말 발표된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이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을 정부는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친환경 에너지를 늘리는 방책과 더불어 매년 한파와 폭염 때마다 대규모 정전이 일어날까 가슴 졸이는 일이 없게 철저히 대비하는 데 정부는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성남시 아동수당 논란 봉합…박능후 “지방정부에 힘 싣겠다”

    성남시 아동수당 논란 봉합…박능후 “지방정부에 힘 싣겠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성남시의 지역화폐 아동수당 지급 논란과 관련해 “(아동수당 지급방법은) 법적으로 지방정부 재량사항”이라며 “기본적으로 지방정부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성남시의 복지정책에 잇따라 제동을 걸며 갈등을 빚었지만 박 장관은 “지방자치분권이 시대적 흐름”이라며 법적인 틀 안에서는 가급적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인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장관은 19일 세종시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갖고 아동수당과 원격의료, 어린이집 차량사고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성남시가 지역화폐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반대 여론이 있어 계획을 변경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최종안이 나오면 원칙에 맞게 심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방정부가 복지정책을 바꿀 때도 원칙이 있고, 자율성을 갖되 책임을 져야 한다”며 “만약 지역화폐로 만들어보라고 했는데 성과가 없고 비난만 받았다면 해당 지자체에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어린이집 사고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과 죄송함을 느낀다”며 “앞으로 실질적인 방법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보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차량 뒷자리에 버튼을 설치해 운전자가 시동을 끄기 전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경고음이 울리도록 하는 ‘슬리핑 차일드 체크제’, 어린이집 등원확인 시스템을 통해 아동의 안전을 2∼3번 확인하는 시스템을 검토하고 있다. 박 장관은 8시간 보육체계인 ‘맞춤형 보육’ 폐지에 앞서 어린이집 보육교사도 대폭 확대할 뜻을 내비쳤다. 박 장관은 국회에서 맞춤형 보육 폐지를 공언한바 있다. 그러나 8시간이 기본인 맞춤형 보육을 폐지하고 12시간제로 운영할 경우 어린이집 교사들의 업무량이 너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장관은 “8시간 급여를 주면서 12시간을 운영하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합리적 방안은 보육교사를 대폭 늘려서 그분들에게 법정시간 내에서만 근무하게끔 근무 요건을 재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장관회의에서 이 부분을 3번이나 얘기했더니 다른 장관이 ‘정말 끈질기다’라고 말했다”며 “내년부터 할 지 검토해보겠지만 어정쩡한 방식으로 진행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가 반대하고 있는 원격의료에 대해서는 “전부 개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초기에는 의사가 환자와 대면 진료를 하고 이후 정기적인 관리는 원격의료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며 활성화 의사를 내비쳤다. 박 장관은 “거동 불편자, 장애인들, 격·오지 거주자에 대한 진료를 커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의료취약지에 대한 활용방안을 거론했다.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전국의 환자가 몰리고 있어 의료전달체계를 과감하게 손보겠다는 뜻도 밝혔다. 박 장관은 “만성질환은 동네병원에서 관리하고, 상급종합병원은 중증, 급성기 질환을 치료하는 쪽으로 수가와 인센티브 체계를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주치의 제도를 확대해 만성병을 관리한다면 환자와 신뢰관계가 쌓이는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강보험료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수차례 강조한대로 “애초 설계했던 3%대 인상률을 절대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나머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국고지원 강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 편에서… 마포구민 하늘처럼 섬길 것”

    [민선7기 단체장에 듣는다] “돈 없고 힘없는 사람 편에서… 마포구민 하늘처럼 섬길 것”

    유동균 신임 서울 마포구청장은 5일 “행정이란 돈 없고, 힘없는 사람,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지가 필요한 사람을 보호해 주는 것”이라면서 “따뜻한 가슴으로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그들의 오른팔이 되겠다는 각오로 구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구정을 펼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당선 소감은. -선거는 구도 싸움인 만큼 이번 6·13 지방선거는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지지도에 힘입어 당선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 방향에 보조를 잘 맞추면서도 동시에 마포구민이 만족하는 구정을 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마포와의 인연은. -14세 때 마포로 이사 온 뒤 40년 넘게 마포에 살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구의원(재선), 시의원으로 봉사하며 지내 왔다. 그러는 동안 전임자인 박홍섭(3선) 전 구청장과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그분과 같은 철학을 공유하며 일했다. 구민이 물질적으로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이 풍부해지도록 교육과 문화에 힘 쏟아야 한다고 보고 중앙도서관 및 청소년교육센터 건립에 함께했다. 경의선 걷고 싶은 거리와 석유비축기지 문화공원 조성도 시의원 재직 당시 용도변경, 예산투입 등에서 힘을 썼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포, 교육과 문화가 풍부한 마포, 지역경제가 발전하는 도시로 마포를 가꿔 나가겠다. →주요 정책 방향은. -우선 마포구가 저출산 극복 해결의 선봉에 서겠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봐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장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때부터 지원해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산후 조리비(50만원) 지원은 물론 구립 산후조리원을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주차장 특별회계로 500억원 정도의 예산이 있는데 주차장을 건립할 때 주차장은 지하로 넣고 지상에는 산후조리원을 만드는 구상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 예산도 끌어오겠다. 이 외에도 지역 경제 발전과 함께 대두되는 젠트리피케이션(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 내몰림 현상)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고 있다. 남북 화해 중심도시로 마포구를 발전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상암동 장례식장 민원 해결은. -현재 건립 계획 단계인 상암동 장례식장은 상암동과의 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고양시와의 사이에는 큰 도로가 나 있어 실제 생활 영향은 상암동으로 미치게 돼 있다. 행정 관할이 경기 고양시여서 허가권은 고양시에 있는 게 문제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마포구 주민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만큼 주민들과 호흡을 맞춰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상암동 롯데몰 개발 해법은. -상업시설이 많이 들어와야 지역 경제가 발전하는 만큼 성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업시설이 이뤄지는 행위가 마포구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상암동 롯데몰에서 발생하는 수입에 대한 세금이 마포구로 귀속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마포 지역 일자리 창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주차 위반 딱지를 두고 찬반 논란이 있는데 -주차 단속을 두고 항상 민원이 있다. 해도, 안 해도 문제다. 다만 과도한 단속보다는 계도가 중요하다. 요식 업계에서는 점심 시간만큼은 융통성 있게 대처해 달라고 요청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저녁 식사 시간인 오후 5시에서 8시까지는 퇴근 시간과도 겹치기 때문에 원활한 교통 흐름을 고려할 때 단속이 불가피하다. →새 구청장이 온 만큼 인사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데. -인사가 만사다. 인사를 빨리 해야 일도 손에 잡힐 것이다. 공무원들이 정책을 개발하고 구민의 요구를 행정에 접목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기본 전제 중 하나가 구청 인사다. 오는 20일 전후로 실시할 계획이다. →구청 직원들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신임 구청장이지만 구의원, 시의원 때부터 구청 직원들을 지켜봐 왔다. 이번 사무관 승진 대상자 인사를 앞두고서는 서기관급 간부들과 함께 심사도 해 봤는데 보는 눈은 결국 다 비슷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인사와 관련해 이뤄져야 할 제도 개선이 있다면. -우선 서울시와 구청 간, 그리고 구청과 구청 간 인사 교류가 너무 적다. 공무원은 전문가이지만 한 구청에서만 일하면 시야가 좁아질 수도 있고, 부부 공무원이 한 구청에서 일하면 남편이 부인 근무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도 발생한다. 바람직하지 않다. 구청 공무원에 대한 활발한 인사 교류가 이뤄지도록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제안하겠다. →계획이 있다면. -30대 당시 마포구의원으로 일하면서 구청장이 돼 더 큰 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오늘까지 달려왔다. 지금은 신임 구청장이지만 재선을 목표로 삼고 일하겠다. 최선을 다해 구민들을 섬기고 마포를 발전시킬 것이다. 행정이란 결국 ‘주민에게 아부하는 것’, ‘주민 마음에 들 때까지 봉사하고 또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가슴으로 약자를 돌보고 구민을 편하게 만드는 행정을 펴겠다. →가장 고마운 사람은. -부모, 형제,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데 저는 정청래 전 국회의원을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고, 그게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저를 믿고 지지해 주시는 분들의 성원에 항상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마포구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인생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저는 물론이고 구청 직원들도 항상 국내외 정세는 물론 세상이 변하는 데 대해 배우는 자세로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만족스러운 대민 봉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열심히 하겠다. →요구가 많으면 직원들이 힘들지 않겠나.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동안 편하게 일했다는 것이다. 마포를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 주길 바란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유동균 구청장은소년 노동자 출신… 구·시의원 지내며 구민과 소통 탁월 유동균 서울 마포구청장은 소년 노동자 출신의 ‘흙수저’ 인생이었다. 전북 고창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14세 때 가족들과 함께 마포구 성산동으로 이사 왔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등으로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등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대신 뒤늦게 20~30대에 걸쳐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이어 방송통신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어려움이 닥쳐도 노력한다면 반드시 이겨 낼 수 있다는 소신으로 살아왔다.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1987년 27세 때 평화민주당에 가입해 당원 활동을 시작했다. 주민 속을 파고들며 마포구의회 제2대(최연소), 6대 구의원도 지냈다. 지역에서 바닥부터 다지고 올라오면서 대민 봉사의 기본은 소통이라는 소신을 갖게 됐고, 이에 따라 이번 임기 공약 1호로 마포구민 소통 플랫폼인 ‘마포1번가’ 운영을 계획했으며, 실행을 위한 막바지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민선 6기 제9대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는 전임자인 박홍섭 전 구청장과 한 팀으로 보조를 맞추며 마포중앙도서관 건립, 경의선 걷고 싶은 거리 조성 등 굵직한 사업들을 함께 완성했다. 구청장 취임 뒤 첫 행보로 지역 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마포인재육성장학재단 기탁식에 참석했다. 이미 2015년부터 현재까지 장학금을 기탁해 왔는데 기부금을 매월 1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높인 것이다. 지금까지 장학금을 1000만원 넘게 기부하면서 재단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마포드림즈 멤버가 되기도 했다. 정치적인 멘토로는 정청래 전 국회의원을 꼽는다. 정 전 의원의 지역구 사무국장으로 8년간 일하면서 정치에 본격 입문했다. 어려운 사람들의 오른팔이 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항상 낮은 곳으로 향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아르헨티나 16강 진출…메시 선제골에 로호 결승골로 기사회생

    아르헨티나 16강 진출…메시 선제골에 로호 결승골로 기사회생

    전례 없는 부진에 감독과 선수 사이의 ‘불화설’까지 나왔던 아르헨티나가 리오넬 메시의 선제골과 후반 41분에 터진 마르코스 로호의 결승 득점에 힘 입어 2018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 월드컵 16강에 극적으로 진출했다. FIFA 랭킹 5위 아르헨티나는 27일(한국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D조 3차전 나이지리아(48위)와 경기에서 2-1로 이겼다. 1승 1무 1패가 된 아르헨티나는 3승의 크로아티아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아르헨티나는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 4개 대회 연속 16강 진출 행진을 이어갔다. 2006년과 2010년 대회에서는 8강까지 올랐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준우승했다. 같은 시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열린 같은 조 경기에서는 크로아티아가 아이슬란드를 2-1로 꺾고 3전 전승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와 1-1로 비겨 돌풍을 일으킨 북유럽의 ‘강소국’ 아이슬란드는 1무 2패, 조 최하위로 탈락했다. 이로써 C조와 D조의 16강 대진은 C조 1위 프랑스와 D조 2위 아르헨티나, D조 1위 크로아티아와 C조 2위 덴마크의 대결로 펼쳐진다. 이날 반드시 이겨야만 16강 진출을 바라볼 수 있었던 아르헨티나는 전반 14분에 메시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산뜻한 출발을 했다. 에베르 바네가가 하프라인에서 길게 찔러준 공이 메시에게 배달됐고, 메시는 허벅지와 왼발로 한 차례씩 공을 컨트롤하다가 오른발 중거리포로 나이지리아 골문을 열었다. 페널티 지역 오른쪽을 파고들며 골대 왼쪽을 향해 강하게 찬 공이 그물을 흔들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후반 6분 만에 페널티킥을 얻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코너킥 상황에서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리언 발로군을 끌어안고 넘어뜨리는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내줬다. 나이지리아는 이 페널티킥을 빅터 모지스가 성공시키면서 승부를 1-1 원점으로 돌렸다. 아르헨티나는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후반 41분 로호의 결승골로 기사회생했다. 오른쪽 측면에서 가브리엘 메르카도가 올려준 크로스를 로호가 오른발로 받아 넣어 아르헨티나를 ‘사상 최악의 부진’이라는 수렁에서 건지고 16강으로 보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호환의 교육의 향기] 펜의 힘

    [전호환의 교육의 향기] 펜의 힘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한다. 케임브리지 사전은 이 말을 “사상과 글쓰기가 폭력이나 무력을 사용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전쟁이 발발한 지 4개월 만에 2만 1097명이 사망했다. 이들 중 2755명은 전투 중 사망했고, 2019명은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악화돼 사망했으며, 1만 6323명은 전투와 상관없는 질병으로 사망했다. 160여년 전에 일어난 ‘크림전쟁’의 실상이다. 크림전쟁은 1853년 10월부터 1856년 2월까지 크림반도에서 있었던 영국, 프랑스, 오스만제국의 연합군과 러시아제국 간의 싸움이다. 질병에 이어 크림반도에 혹독한 겨울까지 닥치자 크림반도에 파견된 5만 3000여명의 영국군 가운데 작전 수행이 가능한 병사의 수가 전쟁 1년 만에 20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부실한 물자 수송과 인력 부족은 물론 지휘관의 무능력과 혼란에 빠진 지휘 체계로 전장은 지옥과 같았다. 이러한 상황은 누군가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영국의 타임스는 역사상 최초의 종군기자인 하워드 러셀을 크림반도에 파견했다. 러셀은 무능력한 군부의 현실을 현장에서 그대로 글로 전했다. 당시 타임스 편집장인 존 딜레인은 이를 가감 없이 지면에 보도했고, 지휘관들을 맹비난하는 사설도 서슴없이 실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신문을 이용한 전쟁 지원 모금활동을 펼쳐 간호사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크림반도의 군 병원에서 활약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160여년 전의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 크림반도의 실상과 이 보도로 인한 영국 내각의 총사퇴 과정을 엮은 책 ‘딜레인의 전쟁’(Delane’s War)이 필자에 의해 ‘펜의 힘’으로 번역돼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은 1854년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4개월 동안 크림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의 전투에 관한 타임스와 정부의 진실 게임 이야기다. 러셀과 나이팅게일의 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임스는 생생한 전장의 소식을 전하고 정부의 거짓 발표를 반박했다. 신문사의 사주와 편집장이 힘을 합쳐 정부에 대항해 진실을 폭로한 점에서 올해 초 개봉된 영화 ‘더 포스트’의 내용과 흡사하다. 간호사로서의 나이팅게일의 헌신적인 활동은 잘 알려져 있다. 상류 가문에서 태어나고도 당시의 관습으로 인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녀의 수학적 재능은 뛰어났다. 크림전쟁 중 사상자의 원인을 분석한 자료는 그녀가 통계학자임을 보여 준다. 전장에서 전투와 관계없는 질병으로 죽은 숫자가 총사망자의 77%에 달했다. 그녀는 ‘왜 젊은이들이 전쟁에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영국 정부에 던졌고, 야전병원의 위생시설을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 1854년 겨울에는 입원 환자의 43%가 사망했지만, 위생시설을 개선하고 6개월이 경과하자 사망률이 2%대로 크게 줄었다. 전쟁이 끝난 후 나이팅게일은 사상자 원인에 대해 단순한 숫자가 아닌 색깔과 면적의 크기를 활용해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도표인 로즈 다이어그램(Rose Diagram)을 세계 최초로 만들고, 이를 활용해 병원 개선을 위한 책을 펴낸다. 그녀는 영국왕립통계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키워드는 데이터가 아닌가. 나이팅게일은 160여년 전에 이미 ‘데이터의 힘’을 보여 준 혁신가였다. 또한 타임스 편집장인 딜레인은 저널리즘 정신과 ‘펜의 힘’으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인 오늘의 영국을 만드는 데 공헌한 영웅이 됐다. ‘펜의 힘’은 1974년 8월 미국 대통령 닉슨을 사임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사한 특별검사의 보고서에 나오는 다음의 말로 시작한다. “공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지 않고, 시민들이 이들을 감시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존속되지 않는다는 간단하면서도 기본적인 명제로부터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 대학 교육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건전한 비판정신을 가진 민주 시민을 기르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 철학은 건강하고 강한 국가를 만드는 핵심 자양분임이 틀림없다.
  • [은빛자서전 프로젝트<2>]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내 고향 옥천이여

    [은빛자서전 프로젝트<2>]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내 고향 옥천이여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장은 충북 옥천신문과 손잡고 ‘은빛자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작은 박물관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80세 이상 주민의 구술(口述)을 풀어내 자서전으로 정리하는 프로젝트다(서울신문 3월 16일자 ‘인터뷰 플러스’ 참조).이번에 만난 사람은 군북면 대촌리에 사는 류항보(80) 씨입니다. 방아실 혹은 방화실(芳花室)로 불리는 바로 그 마을이 그의 고향입니다. 류 씨는 20대 중반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활로를 모색하다 향수(鄕愁)를 이기지 못하고 24년 만에 귀향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의 습관으로 만든 것이 봉사였습니다. 고향에 돌아와선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운명이 된 봉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문화 류씨 종친회 총무와 회장을 맡게 되었고, 최근에는 마을 노인회 회장과 군북면 노인회 부회장, 전국농업기술자협회 옥천군지회 지회장 등으로도 봉사하고 있습니다. 류 씨는 고향을 세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유년 시절에 부모를 따라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에 가서 살다가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서 돌아왔고, 20세 무렵에 군대에 입대하느라 고향을 떠났다가 3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 고향을 떠나지 않고 고향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은 것이 류 씨의 마지막 소원입니다.●항상 항(恒) 도울 보(輔), 운명적 내 이름 나(류항보)는 1939년 옥천군 군북면 대촌리에서 태어났다. 1506년 창봉 류근 선생이 화산 아래 터를 잡고 세운 문화 류씨(文化 柳氏) 집성촌인 대촌리는 두 개의 또 다른 마을 이름을 가지고 있다. 외지인들은 ‘방아실’이라 부르고, 주민들은 ‘방화실(芳花室)’이라 부른다. 대촌리는 아랫말, 웃말, 둔턱골로 나뉘는데,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랫말이다. 마을 이름도 두 개였듯이 내 이름도 두 개였다. 문화 류씨 집성촌인 대촌리에선 돌림자를 써야 했다. 그래서 내 이름은 ‘우열(芋烈)’로 지어졌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집에서는 ‘항보’라고 불렀다. 한자로 쓰면 항상 항(恒)에 도울 보(輔)였다. 그리고 그 이름은 나의 운명이 되었다. 실제로 평생 남을 돕는 봉사를 하면서 살아왔다. ●갈까마귀 떼 울부짖던 압록강을 건너서 나는 고향을 세 번 떠났다가 돌아왔다. 첫 번째 출향과 귀향을 체험한 시기는 10세 전후 무렵이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우리 가족은 중국으로 이주했다. 당시 흑룡강성의 성도인 하얼빈에서 큰형이 제과업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4~5년 동안 지내다 귀국했다. 우리 가족은 추위로 얼어붙은 압록강을 엉금엉금 걸어서 건넜다. 자칫 얼음이 깨지면 풍덩 빠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귀국길이었다. 압록강을 건널 때 갈까마귀 떼가 하늘을 뒤덮은 채 울부짖던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만 같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늦은 나이에 대정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두 번째 출향과 귀향을 체험한 시기는 20세 전후 무렵이었다. 군대에 입대해 약 3년 동안 병영에서 청춘의 시기를 보내고 귀향한 것이다. 부산에 위치한 육군 부대였는데, 부대장의 신임을 받아 “군대에 ‘말뚝’을 박으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선 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거절했다. 막상 제대하고 귀향하자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어렵게 자전거 한 대를 마련해 쌀장사를 시작했다. 수몰되기 전이었던 당시의 대촌리는 116가구의 비교적 큰 마을이었다. 마을에서 농민들에게 쌀을 살 때는 ‘되’나 ‘말’이 넘치도록 고봉으로 측정했고, 대전에 나가서 쌀을 팔 때는 되나 말의 높이에 정확히 맞추어 측정했다. 그렇게 하면 한 말에 보통 4~5홉 정도가 남았는데, 그것이 내가 챙길 수 있었던 이문으로 일종의 유통 비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쥐꼬리만큼 차익을 남겨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도시, 특히 서울 생활을 동경하게 되었다. 23세에 지금의 아내를 중매로 소개받아 결혼했다. 동갑내기 아내인 박선호는 당시 이원면 역전에 살고 있었다. 생활력이 강했던 아내는 세천에서 두부 장사를 했다. 이듬해 맏아들 영덕이 태어났다. 아이를 도시에서 공부시켜야 가문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져 갔다. ●24년 동안 23회 이사, 부평초 서울 생활 나는 26세가 되던 해인 1964년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상경했다. 아내와 아들을 고향에 남겨 두고 먼저 단신으로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서 터전을 잡기 위해 보낸 약 2년은 한마디로 ‘맨땅에서 헤딩하기’였다. 밑천과 연줄 하나 없이 시작한 도시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88년 귀향할 때까지 24년 동안 무려 스물세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거의 1년에 한 번은 이사를 다닌 셈이었다. 상경해서 가장 먼저 자리 잡은 곳은 동작구 상도동이었다. 그곳에 엉성하게 지어놓은 니트공장(일명 요꼬공장)이 있었다. 따로 묵을 곳이 없었던 사람들 15명이 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우리는 낮에는 편직기계를 돌리고 밤에는 그곳에서 칼잠을 잤다. 임시 건물이라 추위를 온전히 가릴 수 없었고, 이와 빈대까지 들끓어 마음 놓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달리 기댈 곳이 없었기에 그 추운 요꼬공장에서 두 해 겨울을 보내야 했다. 서울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에 아내와 아들을 서울로 불러올렸다. 그 무렵 나는 선배가 운영하던 무역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플라스틱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던 회사였는데, 그곳에서도 정말 열심히 일했다. 컵과 쟁반 등 신제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한창 장사가 잘될 때는 한 달에 25만개의 제품을 생산한 적도 있었다. 힘겨운 생활이었지만 소소한 행복이 우리 부부를 위로했다. 1965년 맏딸 영미가 태어났고, 1968년 둘째 아들 영남이 태어났다. 거의 서울 사람이 되어갈 무렵 나는 독립해 건축업을 시작했다. 이후 10년 동안 서울과 수도권 곳곳을 다니며 약 30동이 넘는 주택을 지었다. 서울에서 거주지는 수시로 바뀌었다. 상도동에서 시작한 서울 생활은 아현2동, 공덕동, 제기동, 아현1동으로 이어졌다. 당시 내가 절감한 것이 하나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사 다니지 않고 한곳에 정착해 살 수 있는 것만도 큰 영광이자 행복이라는 깨달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열심히 사는 사람만 행복 누릴 수 있어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을 꼽으라면 아내 박선호를 가장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 초반에 가난한 나에게 시집와서 60년 가까이 동반자가 되어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혼자 서울로 올라가 터전을 잡을 동안 두부 장사를 하면서 아이를 키워주었다.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수없이 이사를 다녔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가정을 지켜주었다. 나는 아내 박선호와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낳았다. 그리고 영덕, 영미, 영남 3남매가 다시 6명의 손주를 낳아주었다. “열심히 사는 사람만이 행복을 만날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라. 그러면 반드시 살길이 열릴 것이다.” 내가 후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종친회 어른 중의 한 분이 내 호를 ‘방산(芳山)’으로 지어주었다. 남은 인생도 방화실을 지키는 산처럼 살 것을 다짐해본다. 내 이름 항보(恒輔)처럼 항상 남을 돕는 인생을 살겠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사진 옥천신문
  • [박주용의 생각 담은 공부] 고차적 사고를 평가하기, 상편

    [박주용의 생각 담은 공부] 고차적 사고를 평가하기, 상편

    평가에는 힘이 있다. 사회 자체가 평가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영국의 교육학자인 고든 스토바트(2008)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평가는 가치가 담긴 사회적 활동으로, ‘문화 중립적’ 평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평가는 사람을 만들며, … 무엇을 어떻게 배울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며, 효과적인 학습을 해치거나 고양시킬 수 있다.”스토바트의 주장을 염두에 두고 우리나라의 평가 현황을 살펴보자.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은 물론 내신, 입사시험, 공무원시험 등의 문항 형식은 대개 선다형이고 약간의 단답형 문항이 사용된다. 이런 시험 방식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나름대로 적절히 활용돼야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문항이 되기 쉽고, 깊게 생각하도록 하는 문항을 만들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미 비슷한 문제들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이 기출 문제를 이용해 패턴을 찾아내고 그 패턴을 익히려고 반복 훈련을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덕분에 아이들의 자유 시간을 패턴 익히기로 대체하는 사교육이 호황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고급 관료나 전문직으로 진출하는 데 필요한 시험은 어떻게 치러질까? 인사혁신처의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5급 행정 2차 심리학 과목은 거의 모든 문항이 “~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 서술하시오”, “~ 기술하시오”로 끝난다. “~에 대해 비판하시오”, “~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시오” 혹은 “~ 주장을 평가하시오”와 같은 문항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전자의 문항들은 비록 논술이지만, 고차적 사고가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암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마치고 보는 변호사시험도 고차적 사고와 거리가 멀다. “변호사시험을 위해 판례 암기에 치중하느라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하지 못한다.” 지난 5월 4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로스쿨 10년의 성과와 개선 방향’ 간담회에서 현재 로스쿨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 발언이다. 공부가 암기 활동으로 축소된 이유는 바로 암기를 요구하는 평가의 힘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암기 중심 평가는 빨리 쫓아가는 일은 잘 해내는 인재를 키울 수 있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거나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돌파구를 찾는 인재를 키우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 현재 우리의 학계와 산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대목에서 왜 프랑스나 핀란드 혹은 다른 나라에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논술 시험을 보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는 5일에 걸쳐 과목당 2시간 30분에서 4시간짜리 논술로 치르는 고등학교 졸업 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를 본다. 합격률이 거의 90%에 육박하고 채점을 포함한 총비용이 무려 15억 유로에 달하는 비싼 제도다. 그럼에도 이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생각하는 프랑스인’을 키워 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프랑스가 산업은 물론 지성계에서 유럽과 전 세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이 제도 덕분인 부분이 있다. 우리도 이제 서열을 쉽게 정하기 위한 평가에서 벗어나자. 그런 평가를 유지하면서 대학 입시에서 정시와 수시의 비율을 얼마로 할지,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을 얼마로 할지를 고민하는 것은 지엽적인 문제로 우리의 자원을 낭비하는 행위일 뿐이다. 그 대신 평가가 가진 힘을 활용해 고차적 사고력을 평가하자. 앞서 소개한 “~에 대해 비판하시오”, “~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시오” 혹은 “~ 주장을 평가하시오”와 같은 문항을 사용하자. 이런 방식으로 평가가 이루어지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거나 적어도 그런 사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더 잘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평가하는 것이 우수한 인재를 키워 내는 비법이 될 수 있다. 에세이를 쓰게 하거나 프로그램을 짜게 하거나 그 밖에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도록 하고 이들을 평가해야 한다. 이런 평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채점 부담이다. 채점 비용이 너무 높지 않으면서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번 칼럼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 “지지율 높지만 보수세 강해 긴장”

    “지지율 높지만 보수세 강해 긴장”

    “적폐 마지막 그림자 걷어낼 것”“지지율은 높게 나오지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인천이 보수층에 유리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끝까지 잘해야 합니다.” 인천 남구 선거사무소에서 30일 만난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인천시장 후보는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으로 남북 관계에 예민한 인천 지역이 민주당에 유리해졌다고 설명했다. 선거 준비로 다소 지친 기색의 박 후보는 ‘인천시장에 박남춘이어야 하는 이유’를 묻자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적폐청산’ 두 가지만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달라진 남북 관계로 인천에 변화가 왔나. -옹진군만 하더라도 피란민이 많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 자유한국당을 많이 지지했다. 그러나 이제는 확성기 소리도 멈추면서 이산가족 상봉 가능성도 커지고 평화가 오고 있다는 걸 느껴서인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서해평화협력시대 동북아 경제중심 도시 인천을 제1공약으로 내걸었다. 서해평화협력청을 만들고 유엔 평화사무국도 인천에 유치하겠다. →국회의원직을 그만두면서까지 인천시장에 출마한 이유는. -적폐 세력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지막 그림자를 걷어 내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정권 교체를 이루려면 지방정부도 교체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정치적 철학을 같이하는 사람이 지역을 맡아 호흡을 맞추면 더 좋지 않겠나. →인천시장 선거가 공약 대결보다는 적폐청산에만 집중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자유한국당에서도 문재인 정권의 심판을 이야기하지 않나. 유정복 한국당 후보는 인천시장에 출마할 때 친박(친박근혜)임을 내세우고 힘 있는 시장임을 강조했지만 정작 시장이 돼서는 후한 점수를 받기는 어려운 시정을 펼쳤다. 유 후보는 시민들에게 사과하고 함께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인천시의 부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유 후보는 여전히 남아 있는 10조원 부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시장이 되면 시민과 의견을 모아 부채 탕감 로드맵을 만들어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빚을 갚을 생각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서울시의회 더민주당 국회정문서 ‘지방분권’ 릴레이 시위

    서울시의회 더민주당 국회정문서 ‘지방분권’ 릴레이 시위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5일 오후 1시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지방분권 개헌 촉구를 위한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다. 이번 ‘지방분권 개헌 촉구 릴레이 1인 시위’는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자치분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하여 천만인 서명운동과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구청장 및 지방의원을 중심으로 2월 한 달 동안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은 첫 번째로 조규영 부의장이 1인 시위에 나섰고, 이어 김동욱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이 이어 ‘지방분권 개헌 촉구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나갔다. 김동욱 대표의원은 “반쪽 지방자치 27년 청산!! 촛불혁명의 완성은 진정한 지방분권개헌의 실현입니다!”, “국민의 명령 지방분권개헌! 개헌 없이 주권 없다!”, “주민이 참여하는 지역자치! 자치분권개헌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갑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6월 13일 전국지방선거와 동시에 지방분권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권력구조 개편 등 시대적 요구를 담아내는 개헌을 해나갈 것을 촉구했다. 특히 오는 8일 지방분권에 대한 내용을 담은 ‘지방의회법’ 발의를 앞둔 전현희 국회의원(서울 강남구을)이 깜짝 방문하여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김동욱 대표의원과 함께 ‘지방분권 개헌 촉구 릴레이 1인 시위’에 힘을 실어주었다. 김동욱 대표의원(도봉4)은 “지방이 살아나고 자치분권이 실현되는 것은 촛불시민혁명에서 나타난 우리 국민들의 민심이다”며 “지금 이때야말로 개헌과 관련한 자치분권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그 어느때보다도 매우 시의적절한 때다”라고 밝혔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것과 같이 개헌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되, 주권자인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토론의 장을 만들고, 이를 위해 국회는 이번 임시회에서 최선을 다해줄 것”을 요청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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