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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눈] 두 개의 기시감/김민석 국제부 기자

    [오늘의 눈] 두 개의 기시감/김민석 국제부 기자

    태국 군부가 20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지난 7일 총리가 실각한 뒤 그의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의 시위로 시끄럽던 태국이 일순간 숨을 죽였다. 군부는 평화와 안정을 위한 행동일 뿐 쿠데타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계엄은 과도정부 총리가 퇴진 거부 의사를 밝힌 다음 날 선포됐다. 계엄군은 방송국을 장악했다. 향후 군이 정계 개편에까지 손을 대면 사실상 계엄은 쿠데타가 된다. 전날 터키 사법부는 25명을 체포했다. 지난 13일 폭발 사고가 일어나 광부 301명이 목숨을 잃은 탄광회사의 관계자들이다. 경영진 3명은 구속됐다. 이들은 경비 절감을 위해 일부러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광부들은 안전 관리 체계를 제대로 세우지 않고 점검을 소홀히 한 정부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인에게 두 사건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우리는 53년 전과 34년 전 5월에 쿠데타를 겪었다. 쿠데타는 계엄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다. 그들도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군의 통치엔 항상 시민의 죽음이 뒤따랐다. 그래서 태국의 계엄령에 기시감을 갖는 한국인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다 스러져 간, 또 앞으로 그렇게 될 그 나라 국민에게 남다른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태국을 보며 저들보다 더 안전하고 덜 권위주의적인 국가라고 안도할 수 있을까. 터키 정부의 사고 대응 태도를 보면 아직 깨지 않은 악몽에 몸서리가 처진다. 총리는 “탄광 사고는 어느 나라에서든 일어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보좌관은 넘어진 시위대원을 축구공 차듯 걷어찼다. 성난 민심이 일어나자 정부는 부랴부랴 기업이 잘못했다며 관리자들을 잡아들였다. 우리에게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다. 19일 대통령은 눈물 젖은 담화와 함께 대대적인 국가 개조를 발표했다. 그러나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나온 담화는 국민을 달래지 못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노란 리본을 달았다는 이유로 불심검문을 했던 정부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에도 경찰은 세월호 유가족을 미행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책임을 통감하기보다는 또다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었다. 담화를 마친 뒤 아랍에미리트연합으로 날아가 버렸다. 60년 된 해경이 하루아침에 해체됐다. 야심 차게 출범한 안전행정부는 껍데기만 남았다. 대통령의 눈물에 초점이 맞춰졌던 담화는 국민에게 서늘하게 다가왔다. 그가 울기 전 이미 수없이 울었던 국민이 정작 그의 눈물 앞에서 함께 울 수 없었던 이유다. shiho@seoul.co.kr
  • [뉴스 플러스] 세월호 침묵시위 40대 폭행혐의 첫 구속

    세월호 관련 침묵시위 참가자가 대치하던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17~18일 세월호 관련 집회 시위 참가자 215명이 경찰에 연행됐지만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지난 17일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가 주도한 추모집회에 참여한 여모(41·자영업)씨를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여씨는 해산명령을 내린 경찰과 대치하던 중 경비과 소속 경찰관의 멱살을 잡은 혐의를 받고 있다.
  • 이軍, 팔 소년 2명 조준사격 파문

    이軍, 팔 소년 2명 조준사격 파문

    가방을 멘 한 소년이 거리를 가로질러 걷다가 갑자기 고꾸라진다. 주위 사람들이 혼비백산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축 늘어진 그 소년을 부축해 옮긴다. 잠시 뒤 이번엔 다른 소년이 반대쪽에서 걸어온다. 멀쩡하게 걷던 소년은 무릎이 꺾여 맥없이 쓰러지더니 가슴을 움켜쥐고 데구루루 구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20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동영상에서 두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군이 조준사격한 총탄에 맞아 죽는 모습이다. 피해자는 모함마드 살레메(16)와 나딤 나와라(17). 의사가 작성한 살라메의 사망보고서를 보면 총알은 등 오른쪽을 파고 들어가 심장을 관통한 뒤 흉골까지 부쉈다. 두 청년은 지난 15일 이스라엘 점령지 웨스트뱅크에서 열린 ‘나크바’ 시위에 참여했다가 변을 당했다. ‘나크바’는 팔레스타인어로 ‘재앙’이라는 뜻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70여만명이 추방당한 일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이날 행진을 하며 시위를 벌인다. 사건 발생 직후 이스라엘군은 “폭동 현장에서 두 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보안군은 실탄을 쏘지 않고, 고무탄으로만 방어했다”며 소년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사건 현장 근처 사무실의 폐쇄회로(CC)TV에 찍힌 동영상을 보면 소년들은 돌멩이조차 들지 않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 6시간짜리 CCTV 화면을 처음 입수해 저격 순간 위주로 편집해 공개한 인권단체 비티셀렘은 “군인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던 무고한 소년들을 200m 밖에서 정조준해 쐈다”면서 “명백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동영상이 전 세계로 퍼지며 파문이 확산되자 이스라엘군은 “헌병대가 다시 진상조사를 할 것”이라면서도 “선입견과 의도를 가지고 편집한 동영상”이라고 항변했다. 미국 국무부 젠 사키 대변인은 “이스라엘군의 무력 사용이 정당했는지 신속하고 투명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구원파 “오대양 관련 명예 회복 됐다”… 찬송가 부르며 길 터줘

    구원파 “오대양 관련 명예 회복 됐다”… 찬송가 부르며 길 터줘

    검찰이 유병언(73·청해진해운 회장) 전 세모그룹 회장을 검거하기 위해 21일 경기 안성시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시설 금수원에 들어갔지만 유씨가 이미 금수원을 빠져나간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검찰이 유씨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뒷북 진입’이라는 지적과 함께 수사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유씨가 최근 금수원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이지만 얼마 전까지 머문 만큼 도피 여부를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장남 대균(44)씨를 추적하는 데 필요한 단서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점도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검찰의 금수원 수색은 검찰 소환 조사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잇따라 불출석한 유씨와 대균씨의 신병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다. 금수원에는 공권력 투입 소식이 전해지면서 새벽부터 정문에 신도들이 나와 검찰과 경찰의 강제 진입에 대비했다. 오전 7시부터 신도 70여명이 정문 앞에서 ‘무차별 확대 수사 종교 탄압 웬 말이냐’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오전 8시를 넘기면서 정문 앞 신도 수가 300여명을 넘어섰고 외부에서 3~4명씩 짝을 지어 남녀 신도들이 오전 내내 속속 도착했다. 오전 9시쯤 교통경찰관들이 왕복 4차로인 금수원 앞 국도 중 1개 차로를 막고 교통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음을 감지한 신도들의 구호에는 ‘순교도 불사한다’는 내용이 담기면서 점점 긴장감이 더해졌다. 검찰, 경찰의 강제 진압에 대비해 내부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대치해 오던 구원파는 오전 11시 10분쯤 금수원 정문 앞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태종 구원파 임시 대변인은 “검찰로부터 유 전 회장 및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오대양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공식 통보를 받았다”며 “검찰이 우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표했다고 판단해 투쟁을 물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당초 우려했던 검·경과 신도들 간 물리적 충돌은 빚어지지 않았다. 구원파가 협조 의사를 밝히자 정문에서 1.5㎞ 떨어진 곳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기동대를 태운 버스들이 줄지어 금수원 방향으로 진행했다. 12시 10분쯤 정문을 지키던 100여명의 신도들은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소속 검사와 수사관 등 70여명을 태운 버스, 승용차, 승합차 등 7대가 내부로 들어가는 것을 저항 없이 지켜봤다. 신도들은 차량이 통과할 때 양옆에 서서 찬송가를 불렀다. 신도들은 차량이 모두 통과한 뒤 철제 정문을 다시 걸어 잠그고 ‘김기춘 실장, 갈 데까지 가 보자!’고 적힌 검은색 현수막과 ‘우리가 남이가!’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었다. 1991년 32명이 집단 변사한 오대양 사건 당시 법무부 장관을 맡았던 김 실장을 겨냥한 것이다. 검찰은 금수원으로 들어가 구인영장과 체포영장이 각각 발부된 유씨와 대균씨에 대한 신병 확보와 함께 금수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함께 집행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날 수색에서 유씨와 대균씨의 행방을 찾는 데 실패했다. 전국 신도들이 매주 주말마다 성경 공부와 예배에 참석하는 금수원은 축구장 30여개 넓이인 46만 6000여㎡ 규모로 크고 작은 건축물이 산재해 있어 검찰이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날 정문에서는 오전 한때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는 50대 후반 남성이 유씨 등에 대한 욕설을 쓴 피켓을 들고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수색과 영장이 집행되는 동안 애국국민운동대연합이라는 단체의 회원 3명이 나타나 유씨 일가에 대한 강력한 수사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15개 기동 중대 1300명을 동원한 경찰은 체포조의 내부 진입을 위해 기동대원 200여명을 정문과 주요 진입로에 배치했고 경기소방본부도 구급차와 소방차 등 8대를 인근에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한편 검찰은 유씨가 세월호 침몰 사고의 해운회사인 ‘청해진해운 회장’이자 ‘1호 사원’으로 1000억원대 횡령 및 배임, 100억원대 조세 포탈을 한 혐의를 잡고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유씨와 자녀들이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수년간 계열사 30여곳으로부터 컨설팅비와 상표권 수수료, 고문료 등을 챙기고 사진 작품을 고가에 강매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박근혜를 왜 욕해”라는 호통은 이제 그만!

    [문소영의 시시콜콜] “박근혜를 왜 욕해”라는 호통은 이제 그만!

    “박근혜가 뭘 잘못했다고 욕을 해”라는 버럭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면 70~80대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마치 친여동생을 감싸듯이 옹호했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경로석과 같은 공공장소도 가리지 않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해 김용준 총리 내정자의 부정축재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개인비리 등으로 인사 파동이 났을 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미국 국빈방문 길에 인턴 여직원을 성추행하는 사건을 저질렀을 때다. 박 대통령이 그때는 그나마 사표도 받고 경질도 했다. “박 대통령이 왜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반문이 세월호 참사 이후 자주 들린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을 구조하지 못한 것은 해경이고, 300명이 넘는 승객에게 “가만히 있어라”라고 방송하고서 줄행랑친 것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라는 것이다. 팽목항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계란 없는 컵라면을 먹은 것도, ‘청와대는 재난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발언도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정부의 실패는 행정부를 총괄하는 대통령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대통령은 해경의 무능과 공직자의 부적절한 언행, 무너진 기강에 엄중히 경고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 그런 탓에 행정부와 청와대의 얼빠진 언행은 계속됐다. ‘조문 사진 파동’도 그 하나다. 유가족이 아닌 할머니와 찍은 사진이 유가족을 위로하는 사진으로 둔갑해 방송과 신문에 보도됐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는 유가족들이 문제제기하기 이전에 오해가 없도록 언론에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기에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이 ‘조문 할머니’ 연출 의혹을 제기한 언론에 낸 소송은 적반하장으로 비치는 것이다. KBS가 공정방송과 재난보도에 실패한 원인이 청와대 탓이라는 내부고발에는 침묵하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대통령 선거캠프와 인수위에 참여했던 박효종 교수를 내정한 것도 문제다. 관피아 해체를 선언하면서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를 진행한 것이다. 게다가 청와대 언론장악 논란이 벌어지는 시점이 아닌가. 심지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눈물로 사과하던 19일 유가족은 사복경찰의 사찰을 받았고, 경찰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선 시민을 붙잡아 그중 200여명을 사법 처리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손발이 맞지 않으니 대통령의 선의가 의심받는다. 그러니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호통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 대통령이 인사로 문책하고 책임질 때 정부 내 온갖 부조리가 해결된다. symun@seoul.co.kr
  • 남학생도 치마 입고 등교…프랑스서 성차별 반대운동

    남학생도 치마 입고 등교…프랑스서 성차별 반대운동

    최근 프랑스에 있는 한 고교의 많은 남학생이 치마를 입거나 ‘성차별 반대’ 내용이 담긴 배지를 달고 등교하는 진풍경을 벌였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6일 프랑스 서부 낭트 지역에 있는 클레망소 국립고등학교 앞에서 치마를 입은 남학생들을 포함한 여러 지지자가 동성 결혼 찬성 및 성차별 반대 시위를 펼쳤고 이를 반대하는 이들과 충돌이 일어나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프랑스 중심으로 확산 중인 ‘치마를 걷어 올리자’(Ce que souleve la jupe)라는 성차별 반대 운동의 하나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시위는 전날 시교육 당국의 승인 아래 진행된 성차별 반대에 관한 토론회에서 일부 참석자가 동성 결혼 등의 주제를 바꾸려 하면서 동성 결혼 찬성파와의 마찰을 빚었고 결국 이 사태가 확대돼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소프트 쿠데타’… 방콕은 폭풍전야

    ‘소프트 쿠데타’… 방콕은 폭풍전야

    “쿠데타가 아니니 국민은 당황할 필요가 없다.” 태국의 육군 참모총장 쁘라윳 짠오차는 20일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군은 정국 혼란을 정리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밝힌 근거는 1914년에 제정된 법으로 사문화된 것이다. 1932년 입헌군주제 실시 이후 18차례나 쿠데타를 일으켰던 군부가 100년 묵은 법을 들이밀며 또다시 정치 전면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과도정부 측이 8월 3일 총선 실시를 요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군부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정부의 치안유지담당 기관과 방송국을 장악했다. 애초부터 군부 쿠데타를 원했던 옐로셔츠(반정부시위대)는 물론 과도정부 유지 및 총선을 통한 새 정부 구성을 요구해 온 레드셔츠(친정부시위대)도 군부의 위압에 눌려 예정된 시위를 취소했다. 레드셔츠 지도자는 “저항하지 마라. 아직 정부는 붕괴되지 않았다”고 시위대에 말했다.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과도정부 총리는 속수무책으로 군의 일방적인 계엄령 선포를 지켜봐야 했다. 방콕 시내는 오히려 더 평온해졌다. 시민들은 “당분간 시위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며 안도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은 ‘소프트 쿠데타’, ‘절반의 쿠데타’라고 분석했다. 쿠데타든 아니든 태국의 운명은 또다시 군부의 손에 들어가게 됐다. 동남아 전문가 베라팟 파라왕은 뉴욕타임스에 “군부가 선거를 치를 환경을 만드느냐 아니면 과도정부를 무너뜨리느냐에 따라 태국의 앞날이 바뀔 것”이라면서도 “후자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군이 선거를 통한 정부 구성을 무시한다면 태국의 민주주의는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태국은 지난 7일에도 헌법재판소가 잉락 친나왓 총리를 해임하면서 ‘사법 쿠데타’를 경험했다. 잉락의 오빠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8년 전 쿠데타로 실각했다. 군과 사법부가 투표로 선출된 총리를 번갈아 끌어내리면서 삼권분립은 뿌리부터 흔들렸다. 보수기득권층의 지지를 받는 야권은 국민 대다수인 농민의 지지를 받는 친탁신 세력을 선거로 누를 가능성이 없자 상원에서 투표 없이 총리를 지명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야권이 다수인 상원이 재판관을 승인하는 헌법재판소와 엘리트로 이뤄진 법원, 군부, 대기업, 푸미폰 국왕까지 야당에 동조하고 있다. 군은 당분간 양쪽 시위대를 억누르면서 두 진영의 타협을 중재하는 모습을 보이겠지만, 결국에는 자신들의 뜻에 따라 정계개편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군부에 우호적인 인물을 새 총리로 임명하면 이번 계엄령은 쿠데타의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군부는 2006년 탁신 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헌재를 해산한 뒤 재판관 9명 중 8명을 다시 임명했으며, 이들에게 총리·각료·국회의원 탄핵심판권, 위헌정당해산심판 권한을 줘 언제든 선거를 통한 정권을 끌어내릴 수 있도록 했다. 또 국가반부패위원회를 설립해 국가기관을 마음대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1946년 창당한 태국 최고(最古) 정당 민주당은 과거 군사정권에 맞섰으나 탁신 이후 집권이 불가능해지자 군부에 기대어 권력을 얻는 신세가 됐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태국 군부, 계엄령 선포…방콕 시내·방송국 장악

    반정부 시위로 정국 불안이 6개월째 계속되는 태국에서 군부가 20일 오전 3시(현지시간) 전격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군이 수도 방콕으로 진입해 방송국 등 주요 시설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충돌은 없었으며,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 양쪽 모두 강제 해산시키지 않았다고 AP 등이 전했다. 2006년 쿠데타 이후 8년 만에 군부가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선 가운데 과도정부는 정국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8월 3일 총선 실시를 요구했다. 군부는 이날 성명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며 이는 “쿠데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군은 계엄령과 관련해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과도정부 총리와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정부 측은 “계엄령 선포가 ‘절반은 쿠데타’”라며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태국 계엄령 선포…군부 “쿠데타 아니다” 강조 [속보]

    태국 군부 계엄령 선포… “쿠데타 아니다” 강조 태국 군부가 20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군부는 이날 TV방송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 나섰다”면서 “쿠데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태국은 반정부 시위가 6개월 넘게 이어지며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잉락 친나왓 총리가 실각했다. 반정부 시위로 지금까지 28명이 숨지고 800명 가까이 다쳤다. 군은 최근 시위대에 대한 총격으로 사망자가 추가 발생하자 상황이 악화하면 무력 개입을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34년 전 광주로 시간 되돌려 죽은 자와 산 자의 고통 인간 존엄 깨달았죠”

    “34년 전 광주로 시간 되돌려 죽은 자와 산 자의 고통 인간 존엄 깨달았죠”

    한강(44)의 새 장편 ‘소년이 온다’는 읽어 내기가 힘겹다. 깊은 사유가 맺힌 그의 정교한 문장들을 타고 한 호흡에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거듭 숨을 골라야 한다. 1980년 5월 광주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데려갔다가 그 참혹이 계속되고 있는 현재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 역시 그랬다. 자료 조사와 취재, 집필을 하는 1년 반 동안 악몽을 꿨고 지하철에선 눈물을 쏟았다. 1980년 그해 여름을 미처 건너오지 못한 한 소년 ‘동호’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느 기사에서 한 프로파일러가 그러더군요. 살인 현장에서 일하는 직업 때문에 길을 가다 문득 눈물이 쏟아지고 바다에 가면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요. 저도 3개월간 5·18 자료만 보다 보니 딱 그 상태였어요. 책상 앞에 앉는 게 벌을 받는 것 같고 작업실에서 나올 땐 누군가를 두고 나오는 느낌이었어요.” “소설은 그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다 한 말들을 대신 전하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자기 파괴를 각오할 때만 도달할 수 있는 인간 존엄의 위대한 증거를 찾아내는데 (중략)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는 신형철 평론가의 평은 증언하는 자나 증언을 듣는 자에게나 예외가 아닌 셈이다. 이야기는 ‘너’로 지칭되는 ‘동호’의 조각들을 맞추는 구성으로 짜여 있다.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동호는 친구 정대가 계엄군의 총에 스러지는 장면을 목격하고 도청 상무관에서 ‘시취를 뿜어내는 것으로 또 다른 시위를 하는 것 같은’ 시신들을 수습한다. 정대의 누나 정미는 실종되고 동호와 함께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고문 끝에 살아남아도 결국 자살하거나 허수아비처럼 영영 일상과의 끈을 잇지 못한다. 작가가 34년 전 광주로 시간을 되돌린 이유는 뭘까. 5·18이 있기 몇 개월 전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한 그는 명절 때 ‘그 일’을 얘기하는 친척들의 수군거림을 들었다. “늘 제 소설 속에는 내적 탐색과 투쟁이 있었어요. ‘왜 내가 인간을 이토록 의문을 가지고 바라보는지, 인간을 껴안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라는 질문에 계속 다가서다 보니 5·18과 마주하게 됐어요. 인간의 근원과 닿아 있는 광주를 일단 통과해야겠다 싶었죠.” 7장으로 이뤄진 소설은 장마다 화자와 화자가 지칭하는 인물을 달리해 죽은 자와 산 자의 고통을 입체적이고 통감각적으로 되살린다. 열흘간의 사건 이후 5년, 10년, 20년, 33년 등 시간적 배경을 현재까지 연결해 광주 사태가 현재진행형임을 상기시킨다. “5·18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선 사건 열흘간의 시간은 많이 형상화됐지만 이후 이야기는 없었어요. 이건 내가 얘기할 수 있겠다 싶었죠. 하나도 해결된 것 없이 광주가 계속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 용산 참사 때문이었어요. 그때 뭔가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역시 공권력이 비어 있는 자리에서 자원봉사자, 유족 등 약자들이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이 (광주와) 겹쳤고요.” 여고 3학년 때 5·18을 겪은 ‘은숙’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경찰에게 원고를 검열받다 뺨 일곱대를 맞는다. 피가 맺히는 통증보다 그를 더 먹먹하게 한 것은 먹선으로 지워진, 숯이 된 문장들이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을 찾았느냐고 묻자 작가는 시신에 흰 천을 덮어 주던 사람들의 손길을 얘기했다. “‘5월 광주’는 제가 보고 들었던 것보다 실제로 일어난 현실이 더 참혹했어요. 도저히 길을 못 찾을 것 같던 때 폭력보다 그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던 사람들 하나하나가 보였어요. 밥을 나누고 시신을 하얀 천으로 덮어 주던 사람들…. 인간은 생명을 맨 앞에 두고 예의를 갖추고 존엄을 지키려는 존재라는 것, 그걸 잊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게 됐습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태국 계엄령, 군부 “반란 아니다” 장병 원대복귀 지시

    태국 계엄령, 군부 “반란 아니다” 장병 원대복귀 지시 정부 시위 사태로 정국 위기가 깊어지는 태국에서 군부가 20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군부는 이날 새벽 군 TV 방송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며 이는 “쿠데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군은 “국민은 당황할 필요가 없다”며 “이번 조치는 국민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국민은 평소대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라윳 찬-오차 육군 참모총장은 평화질서관리센터(CAPO) 등 정부 치안유지담당 기관의 기능 정지를 선언했으며, “육군, 공군, 해군의 모든 장병은 원 근무지로 복귀하라”고 밝혔다. 자체 방송국을 보유한 군은 이날 방콕 내 몇 개 민간 방송국에 진입했다. 이로써 군은 전국의 치안질서유지 권한을 갖게 됐다. 군은 계엄령 선포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번 계엄령 선포를 위해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과도총리 대행 정부와 사전에 협의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反)-친(親) 정부 시위대는 이날 대대적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계엄령 선포 직후 거리 행진 시위를 바로 취소했다. 이번 계엄령 선포가 현 정부를 퇴진시키기 위한 쿠데타에 따른 것이라면 친정부 진영으로부터 큰 반발을 사고, 정치 위기가 더 깊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주요 정치 세력 중 하나인 군은 1932년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18차례 쿠데타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계엄령은 반(反)-친(親) 정부 시위에 따른 유혈 사태 방지와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선포됐을 가능성도 크다. 친정부 시위대인 ‘레드 셔츠’ 지도자는 “계엄령 선포로 현 정부와 헌정은 여전히 존속하며, 이는 쿠데타를 반대해온 우리 입장과 배치되지 않는다”며 계엄령 선포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 이에 앞서 프라윳 총장은 15일 반정부 시위에 대한 총격으로 3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치자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폭력이 계속되면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군이 나설 수도 있다”며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시사했다. 태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반정부 시위가 6개월 넘게 이어지며 정국 불안이 지속하는 가운데 7일 헌법재판소의 권력남용 결정으로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해임됐다. 이후 반정부 시위대는 중립적인 인물을 선정해 새 과도 총리로 임명하겠다며, 오는 26일까지 예정으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친정부 진영은 선거로 구성된 현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 총리를 임명하는 것은 위헌이자 반란에 해당한다며, 반정부 진영이 새 총리 임명과 새 과도 정부 구성을 강행하면 대규모 맞시위를 벌이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태국은 2월 실시한 조기 총선이 무효가 돼 오는 7월 재총선을 실시키로 잠정 결정됐으나, 반정부 진영이 새 과도정부 구성을 주장하며 선거에 반대해 재총선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 사태가 발생한 이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시위대에 대한 괴한들의 공격 등으로 지금까지 28명이 숨지고 800명 가까이 다쳤다. 정부는 여행객과 재외동포의 안전을 위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급박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방문 자제를 의미하는 여행경보 상향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네티즌들은 “태국 계엄령, 군대가 진 치고 있는데 무섭네”, “태국 계엄령, 앞으로 여행 못 가는 것 아닌가”, “태국 계엄령, 제발 빨리 해결돼야 하는데”, “태국 계엄령, 국민들 정말 불안할 듯”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국 계엄령 선포 “쿠테타 아니다” 여행 경보 상향 조정?

    태국 계엄령 선포 “쿠테타 아니다” 여행 경보 상향 조정? 정부 시위 사태로 정국 위기가 깊어지는 태국에서 군부가 20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군부는 이날 새벽 군 TV 방송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며 이는 “쿠데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군은 “국민은 당황할 필요가 없다”며 “이번 조치는 국민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국민은 평소대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라윳 찬-오차 육군 참모총장은 평화질서관리센터(CAPO) 등 정부 치안유지담당 기관의 기능 정지를 선언했으며, “육군, 공군, 해군의 모든 장병은 원 근무지로 복귀하라”고 밝혔다. 자체 방송국을 보유한 군은 이날 방콕 내 몇 개 민간 방송국에 진입했다. 이로써 군은 전국의 치안질서유지 권한을 갖게 됐다. 군은 계엄령 선포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번 계엄령 선포를 위해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과도총리 대행 정부와 사전에 협의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反)-친(親) 정부 시위대는 이날 대대적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계엄령 선포 직후 거리 행진 시위를 바로 취소했다. 이번 계엄령 선포가 현 정부를 퇴진시키기 위한 쿠데타에 따른 것이라면 친정부 진영으로부터 큰 반발을 사고, 정치 위기가 더 깊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주요 정치 세력 중 하나인 군은 1932년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18차례 쿠데타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계엄령은 반(反)-친(親) 정부 시위에 따른 유혈 사태 방지와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선포됐을 가능성도 크다. 친정부 시위대인 ‘레드 셔츠’ 지도자는 “계엄령 선포로 현 정부와 헌정은 여전히 존속하며, 이는 쿠데타를 반대해온 우리 입장과 배치되지 않는다”며 계엄령 선포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 이에 앞서 프라윳 총장은 15일 반정부 시위에 대한 총격으로 3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치자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폭력이 계속되면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군이 나설 수도 있다”며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시사했다. 태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반정부 시위가 6개월 넘게 이어지며 정국 불안이 지속하는 가운데 7일 헌법재판소의 권력남용 결정으로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해임됐다. 이후 반정부 시위대는 중립적인 인물을 선정해 새 과도 총리로 임명하겠다며, 오는 26일까지 예정으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친정부 진영은 선거로 구성된 현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 총리를 임명하는 것은 위헌이자 반란에 해당한다며, 반정부 진영이 새 총리 임명과 새 과도 정부 구성을 강행하면 대규모 맞시위를 벌이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태국은 2월 실시한 조기 총선이 무효가 돼 오는 7월 재총선을 실시키로 잠정 결정됐으나, 반정부 진영이 새 과도정부 구성을 주장하며 선거에 반대해 재총선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 사태가 발생한 이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시위대에 대한 괴한들의 공격 등으로 지금까지 28명이 숨지고 800명 가까이 다쳤다. 정부는 여행객과 재외동포의 안전을 위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급박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방문 자제를 의미하는 여행경보 상향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네티즌들은 “태국 계엄령 선포, 여행 가야 하는데 걱정이네”, “태국 계엄령 선포,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태국 계엄령 선포, 혼란이 언제 가라앉을 지 모르겠네”, “태국 계엄령 선포, 국민들 생업이 제대로 되겠나”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눈물 담화, 지지율 하락 차단 효과” “개각 등 후속조치 없으면 영향 미미”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관피아 척결과 공직 개혁 등을 화두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내놓으면서 보름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에 끼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세월호 참사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변수라는 점에서 대국민 담화 이후 민심의 흐름이 여야의 선거 승패를 가를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대통령이 눈물까지 흘리며 사과한 만큼 대통령 및 여당 지지율 반등의 기회가 될 것이란 관측이 있는 반면 이번 조치만으로는 당장 여야 지지율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담화 이후의 후속 조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은 “야당을 압도하는 즉각적이고 큰 폭의 상승은 힘들겠지만 지지율을 일정 수준 복원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상당히 구체적인 안을 내놓고 책임을 인정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등 감성적인 모습도 보여 줬다는 점에서 지지율 하락 차단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특히 이번 참사로 무당파로 넘어갔던 여당 지지층을 재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이번 주중 당·청 지지율이 반등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관측과 함께 “정권 퇴진론 시위 등에 대한 반발로 보수층 결집 속도가 야당 회귀층보다 더 빠르다”고 분석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담화에 대한 여야 평가가 현저히 다른 만큼 앞으로의 민심 방향을 봐야 한다”면서도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사과도 했으니 여당에 나쁜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통령 담화가 당장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치기는 힘들며 전면적인 개각 등 적절한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장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조각 수준의 개각’, 입법 활동 등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제도적인 얘기는 이성적으로 접근한 것인데 국민들은 감성적으로 슬퍼한다”며 “감성적 차원에서 전면적인 조각 수준의 개각으로 보완하면 여당에 유리하게 민심이 돌아설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조재목 에이스리서치 대표는 “결국은 대통령이 얘기했던 부분을 정부 여당에서 빠른 시일 내에 후속 조치를 취해 주느냐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방선거에 대한 영향은 아직까지 양면적”이라며 “무당파를 지지 세력이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식적으로 선거가 시작돼 선거 결과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의견을 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전례 없는 대형 참사였던 만큼 이번 대통령 담화를 두고 여야의 지방선거 유불리를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는 “세월호 참사라는 게 초유의 사건이고 이에 대한 직접적인 대통령 사과도 처음이라 비교할 만한 과거 사례가 없다”며 “결국 민심은 측정을 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태국 계엄령 선포…軍 “쿠데타 아니다” 연신 강조

    ‘태국 계엄령’ 태국 계엄령이 선포됐다. 태국 군부는 20일 군 TV 방송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 나섰다”며 이는 “쿠데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태국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6개월 넘게 이어지며 정국 불안이 지속하는 가운데 최근 잉락 친나왓 총리가 실각했다. 반정부 시위로 지금까지 28명이 숨지고 800명 가까이 다쳤다. 군은 최근 시위대에 대한 총격으로 사망자가 추가 발생하자 상황이 악화하면 무력 개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중·베트남 분쟁/정기홍 논설위원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제갈량이 중국 남부지방인 남만(南蠻·지금의 윈난성)의 왕 맹획을 일곱 번 잡고 일곱 번 놓아주었다는 고사다. 남만은 중국 남쪽의 오랑캐(이민족)를 이른다. 중국이 우리를 동이(東夷), 즉 동쪽 오랑캐로 불렀던 것과 같다. 제갈량은 남만 정벌때 “중국인을 남기면 군사와 군량이 있어야 하고, 이인(夷人·현지인)들이 상하면 우환이 생긴다”며 간접통치를 택했다. 이인의 소요를 우려한 것이다. 남만을 베트남 북쪽이라고 하지만 다른 지역이다. 하지만 이 고사는 고대 중국의 남부지방 통치철학을 엿보게 한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국경을 맞대고 있는 대국(大國) 중국의 침략과 지배에 맞서 왔다. 양국의 분쟁은 기원전 2세기 말 한나라의 침공으로 남월(南越·남 비엣)이 멸망하면서 시작됐다. 당나라 때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가 설치됐고, 이후 중국은 안남(安南)으로 칭했다. 당시 백제에 웅진도독부를,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이후 송·원·명나라의 침략에 시달렸으나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서도 굴하지 않고 인도차이나의 맹주 역할을 해 왔다. 베트남은 60년 동안 지배를 받아온 프랑스와의 독립전쟁(1946~1954년)에서 이겼고, 미국과의 전쟁(1959~1975년)에서도 승리했다. ‘30년 전쟁’으로 불리는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인 호찌민은 베트민(베트남 민주공화국·월맹)을 세우고 중국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구찌터널과 베트콩은 세계 전사에서 ‘승리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베트남인들은 이를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1979년의 중·월 전쟁은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베트남이 소련의 편을 든데다 중국 화교들을 내친 게 원인이었다. 하지만 조그마한 베트남이 동남아의 맹주로 나선 것이 눈에 거슬린 것도 이유였다. 당시 ‘오뚝이’ 덩샤오핑(鄧小平)은 “꼬마 녀석을 혼내줘야겠다”고 호언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베트남 민병대가 산악 지형에서 구사한 게릴라전에 중국은 혀를 내둘렀다. 양국은 이후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벌이다가 1988년에야 지긋지긋한 국경전쟁을 끝냈다. 최근 중국의 남중국해 원유 시추를 둘러싸고 양국이 다시 으르렁거리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대규모 반중국 시위가 벌어지고, 중국 정부는 자국민 7000여명을 본국으로 대피시켰다. 경제 보복도 밝혔다. 경제적으로 중국에 예속된 베트남 당국은 강력 대응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베트남의 ‘구찌터널의 자부심’은 꺾일 것인가.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태국 계엄령 선포, 군부 “쿠데타 아니다” 강조…정국 불안 심화에 결국 계엄령까지

    ‘태국 계엄령’ 반정부 시위 사태로 정국 위기가 깊어지는 태국 계엄령이 내려졌다. 군부는 20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날 새벽 군 TV 방송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며 이는 “쿠데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군은 “국민은 당황할 필요가 없다”며 “이번 조치는 국민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국민은 평소대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체 방송국을 갖고 있는 군은 이날 방콕 내 몇개 민간 방송국에 진입했다. 이로써 군은 전국의 치안질서유지 권한을 갖게 됐다. 군의 계엄령 선포가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과도총리 대행이 이끄는 내각의 승인을 받았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번 계엄령 선포가 현 정부를 퇴진시키기 위한 쿠데타에 준한 것이라면 친정부 진영으로부터 큰 반발을 초래하고, 정치 위기가 더 깊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주요 정치 세력 중 하나인 군은 1932년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18차례 쿠데타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계엄령은 반(反)-친(親) 정부 시위에 따른 유혈 사태 방지와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선포됐을 가능성도 크다. 프라윳 찬-오차 육군 참모총장은 15일 반정부 시위에 대한 총격으로 3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치자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폭력이 계속되면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군이 나설 수도 있다”며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시사했다. 태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반정부 시위가 6개월 넘게 이어지며 정국 불안이 지속하는 가운데 7일 헌법재판소의 권력남용 결정으로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해임됐다. 이후 반정부 시위대는 중립적인 인물을 선정해 새 과도 총리로 임명하겠다며 오는 26일까지 예정으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친정부 진영은 선거로 구성된 현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 총리를 임명하는 것은 위험이자 반란에 해당한다며 반정부 진영이 새 총리 임명과 새 과도 정부 구성을 강행하면 대규모 맞시위를 벌이겠다고 경고 중이다. 태국은 2월 실시한 조기 총선이 무효가 돼 오는 7월 재총선을 실시키로 잠정 결정됐으나 반정부 진영이 새 과도정부 구성을 주장하며 선거에 반대해 재총선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 사태가 발생한 이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시위대에 대한 괴한들의 공격 등으로 지금까지 28명이 숨지고 800명 가까이 다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계의 창] 中 해양굴기 최전선 남중국해

    [세계의 창] 中 해양굴기 최전선 남중국해

    남중국해가 중국 해양굴기의 최전선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분쟁도서 석유시추에 베트남이 반발하고 미국이 중국에 ‘도발 중단’을 경고하고 있으나 중국은 남중국해가 자국의 ‘핵심이익’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베트남 내 반중(反中)시위 보도를 자제하던 중국 관영 언론들은 지난 18일을 기점으로 베트남 내 반중 정서를 대대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반중 시위가 수그러들고 있음에도 중국인 철수 조치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석유시추 주변 배치 선박도 130척으로 늘리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전쟁 준비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면서 관련 국가 간에 국지전 발생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남중국해는 350만㎢의 광대한 바다와 수많은 섬 및 산호초들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파라셀군도(중국명 시사군도)는 중국과 베트남 간 영유권 분쟁지다. 중국은 1974년 무력으로 이곳을 점령해 실효지배하고 있으며, 베트남은 지금도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양국 간 분쟁은 그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으나 중국이 이달 초 이 군도 인근에 10억 달러 규모의 석유시추 시설을 설치하면서 폭발했다. 시추시설은 베트남 연안으로부터 130해리(240㎞) 거리에 있는데 베트남은 이를 근거로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진행되는 중국의 공사는 불법이라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시사군도 해역 안에서 진행되는 공사라며 맞서고 있다. 중국은 이달 초부터 세 차례에 걸쳐 공사에 항의하는 베트남 감시선에 물대포 세례를 퍼붓고 인근 상공에 초계함을 띄우는 식으로 베트남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 13일 베트남 내 반중 시위로 중국인 2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다쳤지만 중국은 18일 시추 시설 주변에 함선 17척을 추가하면서 베트남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베트남 언론들이 보도했다. 중국은 베트남이 군사적으로 약세이고 경제적으로는 자국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타이완 타블로이드지 왕보(旺報)는 19일 “베트남 내 반중 시위에 침묵하던 중국 관영 언론들이 18일부터 태도를 바꿔 베트남 비난 공세에 나선 것은 중국 내 민족주의를 고양시켜 수시라도 국지전에 나서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달 중순을 기점으로 스프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의 존슨 남 암초(중국명 츠과자오)에서 군사기지 건립을 강행해 필리핀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필리핀은 존슨 남 암초가 자국의 EEZ 안에 있다는 이유로 중국의 기지 건립에 반발하고 있으나, 중국은 필리핀 측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중국이 츠과자오에 군사기지를 건립하는 것은 자국에서 멀리 떨어진 난사군도에 제2의 남중국해 전략기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친중국계인 홍콩 대공보는 최근 “시사군도 융싱다오(永興島)에 군사기지가 들어선 뒤 하이난(海南)섬 기지 대신 융싱다오 기지에서 전투기를 출격시키면서 남중국해 방위 부담이 크게 줄었다”면서 “이처럼 난사군도 츠과자오에 제2의 기지가 들어서면 남중국해에 대한 통제를 한층 강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2012년 남중국해 주권 강화를 위해 시사군도 융싱다오에 난사·시사·중사 등 3개 군도를 통합한 싼사(三沙)시를 설립하면서 첫 번째 남중국해 군사기지를 건립한 바 있다. 필리핀은 중국이 2012년 자국과 분쟁 중인 남중국해 스카버러(중국명 황옌다오)를 무단 장악했다며 반발, 유엔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에 분쟁 중재를 신청했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 영토라며 중재를 거부하는 등 일방통행식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집착하는 것은 우선 남중국해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남중국해는 석유, 천연가스 등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천연자원의 보고인 데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해 원유를 수송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다. 중국의 국가전략 최우선 순위는 경제발전이며,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풍부한 자원과 물류 및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송로 확보가 필수적이므로 남중국해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국내 정치적 요인을 감안할 때도 남중국해는 일본과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만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이익’이다.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중국의 남중국해 장악은 세진 힘을 바탕으로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 고유의 권리를 되찾는 의미가 있으며 이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내세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인들은 남중국해가 중국 고유의 영토라고 교육받았으며, 이에 따라 당국이 남중국해를 협상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공산당은 국내 정치적 압력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베트남과의 갈등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강화하는 미국을 향해 남중국해가 자국의 ‘핵심이익’이란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을 방문한 팡펑후이(房峰輝)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이 지난 15일 미 국방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석유시추 시설은 반드시 완공될 것이며, 미국이 객관적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중국과 미국 간 관계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대구시장] 권영진 vs 김부겸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대구시장] 권영진 vs 김부겸

    ■ ‘텃밭 혁신’ 非朴의 실험 권영진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는 TK(대구·경북) 출신이긴 하지만 비박근혜계로 통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 쟁쟁한 친박계 후보들을 제치고 후보로 선출된 것은 그 자체로 ‘반란’이라 할 만하다. 그는 이번 경선에서 ‘변화의 리더십’을 앞세웠고, 이에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호응하면서 파란을 일으킨 것이다. 권 후보는 1962년 경북 안동에서도 40여리 떨어진 남선면 원림리 양지마을에서 태어났다. 50~60가구가 모인 두메산골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닌 후 안동 시내로 전학하고, 고등학교는 대구로 진학했다. 어린 시절부터 낯선 유학생활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배짱을 몸에 익혔다. 그는 “촌놈 자존심을 지키려고 친구들과 싸움도 많이 하고 아버지가 학교에 불려오기도 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고려대 영문과에 입학한 1980년은 ‘서울의 봄’이 한창이었고 캠퍼스는 민주화 열기로 뜨거웠다. 그 역시 공부보다는 길거리 시위로 최루탄 연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친구들이 사회·노동운동에 투신할 무렵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총학생회 초대 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전국 대학원 학생회 설립 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좌파성향으로 흐르는 학생운동에 염증을 느끼게 됐고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공직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쪽으로 가치관이 바뀌게 됐다. 그는 1990년 통일부 사무관 공채로 입사해 1992년 남북 총리회담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정 등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 정치권에는 1999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 보좌역으로 입문했다. 그는 원외 신분이었지만 남경필·김영선 의원 등 초선 의원들과 함께 한나라당 소장파 그룹 ‘미래연대’를 결성해 초대 사무총장을 맡는 등 리더십을 보였다. 당시 그가 영입했던 이들 중에 원희룡, 오세훈 등 훗날 쟁쟁한 정치인으로 성장한 이들도 끼어 있었다. 이회창 대통령 후보 보좌역으로 임했던 2002년 대선에서 패배의 고배를 든 뒤 2004년 17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탄핵 역풍이 매서웠다. 그는 서울 노원을에서 선전했지만 1.9% 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그는 도약의 계기를 맞는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비서실장으로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사석에서 오 시장이 “정말 비싸게 모셔온 부시장”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그는 부시장직을 끝까지 고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부시장직을 맡아서는 자원회수시설 광역화, 용산부지의 자연생태공원 보존 등의 실적을 남겼다. 18대 총선에서 노원을에서 당선된 뒤 초선들의 쇄신 모임인 ‘민본 21’ 간사를 지냈다. 비박계였지만 합리적 성향으로 한나라당 재창당 위기 때 박근혜 대통령과 쇄신파 간 만남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19대 총선 때 당시 민주당 우원식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패배했지만 기획력을 인정받아 2012년 대선 때 여의도연구소 상근 부소장에 임명된다. 이후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기획조정단장 등을 맡으며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지난해 암중모색 시기를 거친 그는 자신에겐 정치적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구에서 시장 출마를 선언한 이후 100여일 만에 후보 자리를 꿰차는 저력을 보였다. 권 후보는 자신의 경선 당선에 대해 “변화를 바라는 대구 시민들의 열망이 분출된 결과”라면서 “대구 시민·당원들이 친박·비박을 놓고 선택한 게 아니라 30년 넘게 발전이 지체된 대구를 바꿀 능력을 누가 갖고 있는지를 따져본 결과”라고 주장한다. 비주류인 그의 정치 실험이 성공할지 이번 선거에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불모지 꽃’ 두 번째 도전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낙선했지만 40%가 넘는 득표율로 기염을 토했다. 야당의 불모지인 대구에서 거둔 의미 있는 성과였다. 그에게 이번 대구시장 선거는 지역주의의 벽을 깨기 위한 두 번째 ‘겁없는’ 도전인 셈이다. 김 후보는 1956년 경북 상주군 상주읍 오대리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5대 독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성화에 고교 2학년 때 결혼하고 이듬해 김 후보를 낳았다. 그는 대구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대학 시절 대부분은 유신 반대 시위, 이에 따른 두 번의 실형과 제적으로 점철됐다. 입학 이듬해인 1977년 유신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제적을 당했고, 1978년에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아 실형을 살았다. 1980년 ‘서울의 봄’으로 복학했으나 다시 학생운동 지도부로 활동하다가 5·17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또다시 제적됐다. 그가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쯤이다. 신군부와 학생 간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서울대 학내는 재학생과 복학생이 온건파와 강경파 등으로 나뉘어 치열한 노선투쟁을 벌였다. 그는 당시 복학생 대표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 모인 1만여명의 학생을 향해 “민주화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국과 민족의 앞날을 우리 각자가 결단해 열어나가자”는 내용의 연설을 토해냈다. 그의 연설은 학생들이 상호 불신을 털어내고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명연설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2년 그는 민주화운동 동지이자 친구인 이용재 목사의 동생 이유미씨와 결혼했고, 딸만 셋을 낳으면서 ‘딸 바보’ 아빠가 됐다. 그의 둘째 딸이 탤런트 윤세인(본명 김지수)이다. 김 후보는 1988년 ‘반(反)지역주의 개혁정당’을 표방한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현실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91년 민주당에 들어갔지만 민주당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으로 분당되면서 ‘꼬마 민주당’으로 세가 약화됐다. 김 후보는 꼬마 민주당에 남아 노무현 전 대통령 등과 함께 3김 청산, 지역주의 극복 등을 외치며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결성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들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P(김대중·김종필) 연합’ 참여와 한나라당 합류라는 두 개의 노선으로 갈라섰다. 김 후보는 한나라당 행을 택했고 고(故) 제정구 당시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도 군포를 물려받아 16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김 후보는 이후 한나라당에서 소장 개혁파로 활동하며 국가보안법 폐지와 대북송금특검법안 반대 등을 주장, 당내 강경보수파와 갈등을 빚었다. 그는 결국 2003년 김영춘 전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독수리 5형제’라 불린 이들의 합류로 전국 정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은 창당의 명분을 얻었지만 그에게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됐다.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김 후보가 혹독한 도전을 다시 시작한 것은 19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아성인 대구에 출사표를 던지면서다. 김 후보는 당시 “세 개의 벽인 지역주의, 기득권, 과거의 벽을 뛰어넘겠다”면서 민주통합당 간판으로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과 맞붙었지만 끝내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거둔 40.4%의 득표율은 새누리당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김 후보는 지난 3월 대구시장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대구에서는 야당 시장의 당선이야말로 대박이 될 것”이라면서 “대구 출신 대통령에 야당 대구시장이라는 하늘이 내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결기를 드러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태국 계엄령, 군부 “쿠데타 아니다” 주장…정치 위기 심화 분석도 [종합]

    태국 계엄령, 군부 “쿠데타 아니다” 주장…정치 위기 심화 분석도 [종합] 태국 반정부 시위 사태가 장기화 되고 있는 가운데 군부가 20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태국 군부는 이날 새벽 군 TV 방송을 통해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군은 하지만 계엄령 선포가 “쿠데타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군은 “국민은 당황할 필요가 없다”면서 “이번 조치는 국민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국민은 평소대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체 방송국을 갖고 있는 군은 이날 방콕 시내 민간 방송국에 진입했다. 이번 계엄령 선포로 군은 전국의 치안질서유지 권한을 갖게 됐다. 군의 계엄령 선포가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과도총리 대행이 이끄는 내각의 승인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 계엄령 선포가 현 정부를 퇴진시키기 위한 ‘준 쿠데타’일 경우 정치 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앞서 프라윳 찬-오차 육군 참모총장은 15일 반정부 시위에 대한 총격으로 3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치자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폭력이 계속되면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군이 나설 수도 있다”며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시사했다. 태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반정부 시위가 6개월 넘게 이어지며 정국 불안이 지속하는 가운데 7일 헌법재판소의 권력남용 결정으로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해임됐다. 반정부 시위대는 중립적인 인물을 선정해 새 과도 총리로 임명하겠다며 오는 26일까지 예정으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친정부 진영은 선거로 구성된 현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 총리를 임명하는 것은 위험이자 반란에 해당한다며, 반정부 진영이 새 총리 임명과 새 과도 정부 구성을 강행하면 대규모 맞시위를 벌이겠다고 경고 중이다. 태국은 2월 실시한 조기 총선이 무효가 돼 오는 7월 재총선을 실시키로 잠정 결정됐으나, 반정부 진영이 새 과도정부 구성을 주장하며 선거에 반대해 재총선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 사태가 발생한 이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시위대에 대한 괴한들의 공격 등으로 지금까지 28명이 숨지고 800명 가까이 다쳤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태국 계엄령 “여행 예약했는데 어쩌나” 현재 상황은?

    태국 계엄령 “여행 예약했는데 어쩌나” 현재 상황은? 정부 시위 사태로 정국 위기가 깊어지는 태국에서 군부가 20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군부는 이날 새벽 군 TV 방송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며 이는 “쿠데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군은 “국민은 당황할 필요가 없다”며 “이번 조치는 국민을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국민은 평소대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라윳 찬-오차 육군 참모총장은 평화질서관리센터(CAPO) 등 정부 치안유지담당 기관의 기능 정지를 선언했으며, “육군, 공군, 해군의 모든 장병은 원 근무지로 복귀하라”고 밝혔다. 자체 방송국을 보유한 군은 이날 방콕 내 몇 개 민간 방송국에 진입했다. 이로써 군은 전국의 치안질서유지 권한을 갖게 됐다. 군은 계엄령 선포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번 계엄령 선포를 위해 니와툼롱 분송파이산 과도총리 대행 정부와 사전에 협의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反)-친(親) 정부 시위대는 이날 대대적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었으나, 계엄령 선포 직후 거리 행진 시위를 바로 취소했다. 이번 계엄령 선포가 현 정부를 퇴진시키기 위한 쿠데타에 따른 것이라면 친정부 진영으로부터 큰 반발을 사고, 정치 위기가 더 깊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주요 정치 세력 중 하나인 군은 1932년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18차례 쿠데타를 일으킨 전력이 있다. 그러나 이번 계엄령은 반(反)-친(親) 정부 시위에 따른 유혈 사태 방지와 치안질서 유지를 위해 선포됐을 가능성도 크다. 친정부 시위대인 ‘레드 셔츠’ 지도자는 “계엄령 선포로 현 정부와 헌정은 여전히 존속하며, 이는 쿠데타를 반대해온 우리 입장과 배치되지 않는다”며 계엄령 선포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 이에 앞서 프라윳 총장은 15일 반정부 시위에 대한 총격으로 3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치자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해 “폭력이 계속되면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군이 나설 수도 있다”며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시사했다. 태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반정부 시위가 6개월 넘게 이어지며 정국 불안이 지속하는 가운데 7일 헌법재판소의 권력남용 결정으로 잉락 친나왓 전 총리가 해임됐다. 이후 반정부 시위대는 중립적인 인물을 선정해 새 과도 총리로 임명하겠다며, 오는 26일까지 예정으로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친정부 진영은 선거로 구성된 현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 총리를 임명하는 것은 위헌이자 반란에 해당한다며, 반정부 진영이 새 총리 임명과 새 과도 정부 구성을 강행하면 대규모 맞시위를 벌이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태국은 2월 실시한 조기 총선이 무효가 돼 오는 7월 재총선을 실시키로 잠정 결정됐으나, 반정부 진영이 새 과도정부 구성을 주장하며 선거에 반대해 재총선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 사태가 발생한 이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시위대에 대한 괴한들의 공격 등으로 지금까지 28명이 숨지고 800명 가까이 다쳤다. 정부는 여행객과 재외동포의 안전을 위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급박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방문 자제를 의미하는 여행경보 상향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네티즌들은 “태국 계엄령, 여행 준비했는데 어떻게 하나”, “태국 계엄령, 무섭다”, “태국 계엄령 앞으로가 더 문제네”, “태국 계엄령, 혼란이 언제 가라앉을 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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