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시위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5,344
  • 강남 입시 명문 여고의 배신…‘내신 불신’ 촛불로 번지다

    강남 입시 명문 여고의 배신…‘내신 불신’ 촛불로 번지다

    전국 여고 중 서울대 최다 합격 ‘내신 지옥’ “전교 100등→1등? 이곳선 사실상 불가능” 다른 학교 학부모들도 여고 앞 집회 참석 “입시 치열한데 출발선부터 부정 의혹 화나 아이들 최대 피해… 내신 믿으라 말하겠나”‘교육 특구’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한복판의 숙명여고가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교무부장의 쌍둥이 딸 성적이 급상승해 문·이과 전교 1등을 하면서 ‘문제 유출 의혹’이 불거졌고, 서울 교육청이 감사를 벌인 데 이어 5일에는 경찰이 학교 교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학부모들은 지난달 30일부터 매일 정문 앞에 모여 촛불을 들고 있다. 학부모들은 숙명여고에서 불거진 의혹에 왜 이토록 민감해하고, 분노할까. 숙명여고 의혹이 더욱 회자된 건 학교의 상징성 때문이다. 숙명여고는 일반고다. 하지만 ‘영재고-자율형사립고·외고-일반고’로 서열화된 고교 지형에서 다른 일반고와는 위상이 다르다. 2018학년도 대입 때 서울대에 17명(재학생 기준)을 합격시켰다. 전국 여고 중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냈다. 학부모들은 ‘숙명외고’라고 부른다. 또 공부를 혹독하게 시키기로 유명하다. 내신 등급을 따기 어려운데도 선호하는 이유다. 대치동 입시 컨설팅 업체 대표인 김은실씨는 “숙명여고 내신시험은 출제범위가 넓고 어려워 선행학습 없이는 못 따라간다”면서 “이런 학교에서 성적이 급상승했으니 전국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곡동, 대치동, 역삼동 등 부자 동네의 아이들이 모이는 만큼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예전의 경기여고 같은 위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지난 3일 숙명여고 앞 집회 현장에서 만난 학부모들의 분노는 매우 컸다. 이 학교 1학년생의 어머니는 “내신지옥으로 알려진 학교라 아이를 보낼지 많이 고민했었다”면서 “아이들이 모두 피 토하게 공부하기 때문에 100등 이하에서 1등으로 오르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에 아이가 재학 중인 학부모도 집회에 합류하고 있다. 특정학교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다. 교과·비교과 등 내신 성적으로 대학 가는 수시 전형 비율이 80%에 육박하는 가운데 내신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주는 단면이다. 이모(43)씨는 “아이들의 모든 활동이 대학 입시, 성적 위주로 돌아가는 상황인데 (부정한 행위 때문에) 출발선이 똑같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화나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딸이 숙명여중에 다니는 또 다른 이모(53)씨는 “주변에서는 ‘애가 찍힐 수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집회에 3번째 나왔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에게 불이익이 갈까 두려워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시위에 나온다. 이번 사태가 알려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강남 학부모 정보 커뮤니티인 A사이트에는 지난달 10일부터 지난 4일까지 430여개의 관련 글이 올라왔다. 글에 많이 쓰인 단어를 분석한 결과 ‘내신,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비리, 입시, 공정, 수시, 대학, 분노, 억울하다’ 등이 많았다. 키워드를 연결해 보면 “학종 등 수시가 중요해진 시대에 내신 비리 가능성 탓에 입시가 불공정해져 억울하고 분노한다”는 생각이 읽힌다. 이날 서울 수서경찰서는 숙명여고 교장실과 교무실, 쌍둥이 아버지인 전 교무부장 A씨 자택 등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했다. 시험지·정답지 결재 서류 등을 확보해 시험지 유출 여부에 대한 물증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앞서 서울교육청은 “문제 유출 개연성은 발견했으나 물증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트럼프의 반격? 나이키의 수난?

    트럼프의 반격? 나이키의 수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이키에 대해 반격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국민의례 거부 논란을 일으켰던 미식축구 선수를 광고에 출면시킨 나이키를 향해 “끔찍한 메시지를 보내서는 안된다”며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보수 인터넷 매체 ‘데일리 콜러’와의 인터뷰에서 “(나이키가) 콜린 캐퍼닉을 선정해서는 안됐다”며 “유명 스포츠 의류 업체가 캐퍼닉을 기용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캐퍼닉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나이키는 이로 인해 수난을 겪고 있다. 앞서 나이키는 지난 3일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무릎꿇기 시위를 벌여 파문을 일으킨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을 ‘저스트 두 잇’(Just Do It) 캠페인 30주년 기념 모델 중 한명으로 발탁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지지자들은 나이키 불매 운동을 펼치며 반발 중이다. 트위터에는 ‘나이키보이콧’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나이키 신발과 옷을 태우는 동영상이 게시하기도 했다. 이를 반영하듯 4일(현지시간) 나이키 주가는 3.2% 하락한 82.2달러로 마감했다. 나이키 투자자들도 역시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글로벌데이터리테일의 닐 손더스 매니저는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전략이며, 이번 나이키는 편파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발언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손더스는 이 광고가 궁극적으로 고객들을 멀어지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캐퍼닉은 2016년 8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의 쿼터백 선수로 활동하던 당시 경기 직전 미국 국가가 나올 때 트럼프 행정부의 인종차별에 항의해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캐퍼닉을 향해 애국심이 없다고 비난하며 갈등을 빚었다. 캐퍼닉은 지난해 3월 팀과 재계약에 실패한 이후 줄곧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또 “나이키는 내 임대인”이라며 “그들은 많은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CNN에 따르면 나이키 플래그십 스토어는 미국 뉴욕 주의 트럼프 타워 옆의 건물에 입점해 있었으나 문을 닫았다. 나이키는 2018년 하반기 뉴욕의 번화가인 5번가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MB 청와대, 용산참사 덮으려 ‘연쇄살인범 강호순 이용’ 지시

    MB 청와대, 용산참사 덮으려 ‘연쇄살인범 강호순 이용’ 지시

    경찰특공대, 안전장비 없이 등 떠밀려 투입김석기 등 당시 경찰 지휘부 책임 부인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가 용산 재개발구역 철거 세입자들을 경찰이 무력 진압해 6명이 숨진 이른바 ‘용산 참사’ 논란을 덮기 위해 연쇄살인마 강호순을 적극 홍보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사실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 특공대는 소화기와 안전매트, 크레인 등 경찰과 철거민의 안전을 지켜줄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경찰 지휘부에 등을 떠밀려 무리한 진압작전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를 비롯한 경찰 수뇌부는 진압 작전이 위험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발뺌하고 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5일 용산참사 사건에 대한 인권침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심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의 이모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에게 이메일을 한 통 보냈다. 이 행정관은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 행정관은 구체적인 홍보방침도 지시했다. 즉각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온라인 홍보팀을 활용해 ▲연쇄살인 사건 담당 형사 인터뷰 ▲증거물 사진 등 추가정보 공개 ▲드라마 CSI와 경찰청 과학수사팀의 비교 ▲사건 해결에 동원된 경찰관, 전경 등의 연인원 ▲수사와 수색에 동원된 전의경의 수기 등을 언론에 퍼트릴 것을 지시했다. 이 행정관은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으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라”고 강조했다.군산연쇄살인 사건은 2009년 초 경기 서남부 지역 등에서 10명의 여성을 살해한 피의자 강호순이 붙잡힌 사건을 말한다. 당시 언론은 피의자의 얼굴과 신원을 일찌감치 공개하고 검거 수사관의 인터뷰를 실었으며, 일부에선 강호순의 가족사진을 입수해 보도하는 등 치열한 보도 경쟁을 벌였다. 자연스레 용산 참사에 대한 여론의 관심도 멀어지는 계기가 됐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19일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용산4구역 상가세입자들이 이주 대책을 요구하며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있는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시작하자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특공대 등이 이튿날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1명이 사망하고 철거민 9명과 특공대원 21명이 다친 사건이다.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는 사건 전날 현장을 둘러본 뒤 “백주 대낮에 시내 한복판에서 어찌 이런 일이…이런 것을 방치하면 안 된다. 우리 경찰의 임무가 무엇이냐”고 말하며 경찰특공대장을 격려했다.이후 진압작전이 실행됐으나 계획과 달리 현장에는 대형크레인 2대 대신 소형크레인 1대가 투입됐고 낙하사고를 예방할 에어매트는 설치되지 않았다. 유류화재를 진압할 화학소방차 대신 일반 화재 진압용 펌프차 2대만 동원됐다. 특공대원들은 현장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전 예행연습도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 특공대 제대장은 작전을 연기해달라고 상부에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당시 서울청 경비계장은 “겁 먹어서 못 올라가는 거야? 밑에서 물포로 쏘면 될 거 아냐”라고 나무랐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특공대가 옥상에 1차 진입하자 농성자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1차 화재가 발생하고 망루 일부가 무너지면서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1차 진입 후 후퇴한 특공대 제대장은 특공대장에게 “저항이 격렬하다”고 보고했으나 경찰 지휘부는 추가 진입을 재촉했다.2차 진입에서 결국 옥상과 망루에 가득찬 유류성 인화물질이 폭발하며 큰 불이 났고 인명 참사가 발생했다. 조사위는 “2차 진입 강행은 특공대원과 농성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무리한 작전 수행이었다”며 “1차 진입 후 유증기 등으로 화재 발생 위험이 커진 점 등을 파악해 적절히 지휘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사위는 당시 서울청 지휘부의 이같은 조치가 업무상 과실치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전국 사이버 수사요원 900명을 동원해 용산참사와 관련한 인터넷 여론을 분석하고, 경찰 비판 글에 반박 글을 올리는가 하면 각종 여론조사에도 적극 참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이는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 지시가 발단이 돼 이뤄진 조치로 드러났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용산참사 후 사퇴했다. 이후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 주일본 오사카 총영사관 총영사,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경북 경주 지역구에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조사위는 “당시 경찰지휘부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위반하였다”며 “그런데도 김석기 청장을 비롯한 당시 경찰지휘부는 용산 참사 진상 규명에 협조하지 않고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석궁으로 실패하자 사흘 동안 독약을 안약처럼 타 남편 독살

    석궁으로 실패하자 사흘 동안 독약을 안약처럼 타 남편 독살

    남편 스티븐(64)을 살해하려고 마음 먹은 라나 클레이턴(52)은 석궁으로 머리를 겨냥해 봤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남편이 마실 물에 독극물을 안약처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흘을 실행해 서서히 남편을 독살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인 샬럿에서 32㎞ 떨어진 클로버시 외곽에 있는 자택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고통스러워 했던 남편은 결국 세상을 등졌다. 몇 주 뒤 아내는 체포됐다. 부검 결과 테트라하이드로졸린이란 약품이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마비나 호흡 곤란, 가수면 상태 유도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미국국립약품공전에 기록돼 있다. 처방전을 받지 않은 안약통과 나잘 스프레이에 이 물질이 담겨 있었다. 요크 카운티 경찰은 지난 7월 19일(이하 현지시간)부터 21일까지 독성 물질을 마시게 해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지난달 31일 라나를 체포해 구금하고 기소했다. 그녀는 수사 과정에 남편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독살하려고 시도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친구와 친지들에 따르면 물리치료 회사를 창업했던 클레이턴의 장례식은 집 뒷마당에서 엄수됐는데 경찰이 사인을 밝혀내기 전이었다. 라나는 범죄 전과도 없고 이전에 경찰에 체포된 적도 없었다. 또 경찰은 그녀의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이렇다 하게 밝히질 않고 있다. 검찰은 2년 전 남편이 잠 들었을 때 라나가 석궁으로 머리를 조준했던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그녀는 울면서 크게 놀란 상태였으며 경찰 보고서에는 활이 시위를 떠난 것이 사고였다고 기록돼 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정신적으로는 괴롭혔지만 결코 몸에 손을 대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부부가 함께 지낸 지는 8년 밖에 되지 않았으며 아내는 이웃들과 성경 연구 모임에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요크 카운티 공증법원은 남편 사후 부인이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밝혔다. 부부의 자택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마운트 버논 자택을 본떠 지어졌는데 80만달러(약 8억 9300만원)의 가치로 평가됐다. 라나의 페이스북 계정 프로필에는 그녀가 미국재향군인회 샬럿 지부에서 근무했다고 기재돼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쓴다고?” 나이키 제품 불태우기 확산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쓴다고?” 나이키 제품 불태우기 확산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고? 그러면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자.’ 나이키가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미국프로풋볼(NFL)에서 맨처음 무릎꿇기 시위를 한 콜린 캐퍼닉(31)을 슬로건 ‘저스트 두 잇’의 30주년 광고 시리즈에 기용하자 미국 전역에서 나이키 운동화와 셔츠를 불태우는 후폭풍이 급격하게 번지고 있다. 캐퍼닉의 광고에 분노한 이들은 트위터에 해시태그 #JustBurnIt과 #BoycottNike를 달고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동영상과 사진들을 올리고 있다. 소셜미디어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스프레드패스트(Spredfast)에 따르면 4일 아침(이하 현지시간) 현재 #JustBurnIt를 단 트위터 글만 800건이 넘는다. 켄터키주에 있는 이색 도시 콜 런(Coal Run)의 앤드루 스콧 시장은 나이키와 NFL과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끝났다”며 나이키 운동화들을 불태우는 여러 동영상을 보여줬다. 컨트리 가수 존 리치는 트위터에 나이키 양말에서 저유명한 스우시(swoosh) 로고를 잘라낸 사진을 게재했다. 하지만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대신 필요한 사람들, 특히 현역병이나 참전용사, 그 가족들에게 기증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는 글을 올리는 트위터리언도 있었다. 물론 캐퍼닉의 시위 취지를 적극 옹호하고 NFL과 소송을 벌이는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이들도 많다.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트위터에 “캐퍼닉은 미국에 만연된 인종에 관한 정의롭지 못한 것들에 관심을 집중하게 만들었다”며 “그는 우리 국기에 대한 불경을 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완벽한 동맹을 결성하기 위해’란 우리 헌법 정신을 구현하려 했던 것이다. 잘했어. 콜린, 잘했어”라고 적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무릎꿇기 시위의 원조 캐퍼닉, 나이키 저스트두잇 30주년 광고에

    무릎꿇기 시위의 원조 캐퍼닉, 나이키 저스트두잇 30주년 광고에

    북미프로풋볼(NFL)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무릎 꿇기 시위의 원조 격인 콜린 캐퍼닉(30)이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 30주년 광고 캠페인에 얼굴을 내민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으로 6년 동안 활약한 캐퍼닉은 2016년 백인 경찰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폭력을 행사한 데 대한 항의로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으며 항의해 다른 동료 선수들의 시위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물론 이 시위 때문에 미국 사회가 양분됐다는 비판도 대두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성조기에 대한 예를 표하지 않는 NFL 선수들을 겨냥해 “개XX들”이라고 거친 표현을 동원하며 이들을 모두 해고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이키 광고는 캐퍼닉의 얼굴을 비치면서 “뭔가를 믿어라. 설사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의미하더라도”라고 자막을 내보낸다. 캐퍼닉 뿐만아니라 NFL 동료였던 오델 베컴 주니어와 샤킴 그리핀,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가 시리즈 광고에 얼굴을 비춘다. 캐퍼닉은 3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광고 사진을 올리고 자막만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일절 다른 멘트를 적지 않았다. 지노 피사노티 나이키 북미 브랜드 부회장은 미국 ESPN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콜린이 스포츠의 파워를 지렛대 삼아 세계를 앞으로 진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 우리 세대 선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영감을 안기는 선수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캐퍼닉은 2011년 나이키와 후원 계약을 맺어 무릎꿇기 논쟁의 와중에도 계속 후원을 받고 있다. 지난해 포티나이너스와 계약이 끝난 그는 그 뒤 어떤 팀과도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위 때문에 리그에서 쫓겨난 것은 부당하다며 NFL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5월 NFL은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무릎을 꿇는 선수들은 새로운 규정에 따라 벌금을 물리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예를 표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라커룸 등에서 머무를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국기와 국가에 대한 예를 표하지 않거나 기립하지 않는 리그 종사자들 역시 합당한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사랑이여/ 그대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마저 바치리/ 그러나 사랑이여/ 조국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마저 바치리”(헝가리 시인 페퇴피 산도르의 시)의열단장 김원봉은 고국이 해방되자 이역에서 숨진 아내 박차정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귀국했다. 김원봉은 피 묻은 박차정의 속적삼을 친정 식구들에게 전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고향인 경남 밀양 부북면 제대리 뒷산에 유골을 묻었다. 13년이란 짧은 세월이었지만 중국 땅에서 함께 투쟁한 동지이자 반려자였다. ●중국서 만난 김원봉과 13년간 항일독립운동 제대리에서 내려 농가를 지나 야산으로 들어가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니 띄엄띄엄 무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묘지였다는데 나무와 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100m쯤 올라가니 박차정의 묘소가 나타났다. 마른 솔잎이 봉분을 뒤덮는 바람에 풀이 자라지 않아 메말라 있었다. 피 흘리며 싸우다 숨진 여성 독립운동가의 묘소로는 너무 초라했다.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 박차정 여사의 묘’란 비문만이 묘주(墓主)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묘소에서 멀리 너른 들녘이 보이고 밀양강이 굽이쳐 흐른다. 밀양강 바로 북쪽, 해천 옆에 남편 김원봉의 생가가 있었다. 그 위쪽 부북면 신작로에는 해방 후 귀국해 고향을 방문한 김원봉을 환영하는 인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찼었다.‘빨갱이’로 낙인찍힌 김원봉의 배우자란 딱지는 박차정의 공훈을 인정받는 데도 오랫동안 장애물이 됐다. 1995년에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박차정의 생가는 부산 동래구 칠산동 동래고등학교 담벼락 옆 동네 안쪽에 있다. 지금은 옛날 모습대로 깔끔하게 복원돼 드문드문한 관람객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충절의 고향 밀양에서 태어난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은 어릴 때부터 반일 감정이 남다른 소년이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던 김원봉은 대한광복회의 암살 활동에 충격을 받고 중국으로 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약산은 난징 진링대학에 입학한 이듬해 터진 3·1운동의 비폭력에 실망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암살·파괴활동이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열혈 운동가들은 민중 속에 잠재한 폭력의 위력을 끌어내는 뇌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1919년 11월 9일 중국 지린성 반 아무개 농부의 집에 우국 청년 10명이 모였다. 밤샘 토론 끝에 김원봉을 의백(義伯·단장)으로 하는 의열단이 결성됐다.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친일파 거두 등을 ‘칠가살’(七可殺)로 규정, 처단의 목표로 삼았다. 단원들은 거사에 서로 가겠다고 싸울 정도로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첫 거사 모의는 그만 악명 높은 조선인 경찰 김태석에게 발각돼 윤세주 등 6명이 붙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최수봉의 밀양경찰서장 폭탄 투척,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 암살 기도,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습격 등 잇단 의거를 감행했다. 헝가리인 마자알의 고성능 폭탄 제조법 전수와 의열단 정신을 명문화한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으로 의열단의 기세는 더욱 높아져 단원이 100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의열단원 김지섭은 화물선 석탄창고 속에서 열이틀을 지낸 끝에 일본에 도착해 황궁에 폭탄을 던졌다. 의열단원들의 잇단 항거는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원봉에게는 김구 선생보다 많은 100만원(현재 가치 약 320억원)이란 막대한 현상금이 붙었다. 김원봉은 잠자리를 자주 옮겨 다니고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는 원판을 회수하는 치밀함을 보이며 일경을 따돌렸다. 신출귀몰이었다. ●신출귀몰 약산,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 더 붙어 5~6년 동안 수백건의 투쟁을 했지만 자금이 바닥나자 의열단의 활동도 주춤해졌다. 장제스가 교장으로 있던 황푸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약산은 군관학교에 다니던 조선 학생들을 가입시키면서 의열단 재건에 나섰다. 김원봉이 박차정을 만난 것은 이즈음이다. “천궁에서 내다보는 한 조각의 반월이/ 고요히 대지 위에 비칠 때(…)/ 옛 기억이 마음의 향로에서 흘러넘쳐서/ 비애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1910~1944)이 18세 때 모교(동래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교지에 발표한 시 ‘개구리 소리’다. 꿈 많은 문학소녀였던 박차정은 항일 정신으로 무장된 집안의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용한은 일제의 침략에 비분강개해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박차정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이어 1930년 1월에 서울 여학생시위사건을 배후에서 지도했다. 바로 ‘근우회 사건’이다. 두 번의 구금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해 몸은 거의 반신불수가 되었다. 병석에 누워 있던 박차정을 중국으로 부른 사람은 의열단에 몸담고 있던 둘째 오빠 박문호였다. 박차정은 곧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합류했다. 1930년 3~4월쯤이었다.●독립투쟁·문학 공통관심… 사랑으로 발전 박차정은 등단을 권유받을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김원봉도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등의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다. 독립투쟁과 문학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관심사는 사랑으로 승화됐다. 두 사람은 1931년 3월 결혼했다. 김원봉은 난징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장제스의 지원으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개설해 투사들을 양성했다. 이육사는 이 학교 1기 졸업생이었다. 박차정은 교관으로 힘을 보탰다. 김원봉은 일본의 침략이 격화되자 혁명세력의 통합을 위해 민족혁명당을 창당했다. 박차정은 그 산하에 난징조선부녀회를 만들어 당원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을 규합해 항일투쟁을 독려했다. 약산은 중일전쟁 발발 후인 1938년 10월 10일 항일 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약산은 의용대장이 됐고 박차정은 부녀복무단장을 맡았다. 의용대는 주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선전활동을 했고 총을 들고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1939년 2월 박차정은 장시성 쿤륜관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화베이지방으로 북상해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다. 김원봉은 화베이로 가지 않고 임시정부에 합류해 광복군 부사령관, 임정 군무부장에 취임했다. 군무부장 취임 직후인 1944년 5월 27일 부상의 후유증이 깊어져 아내 박차정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김원봉은 광복을 맞아 근 30년 만에 귀국했으나 더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좌익 인사 김원봉에게 반대파의 백색테러와 암살 위협이 지속됐다. 미군정에 체포됐을 때 고문을 하고 수모를 준 경찰이 친일 앞잡이 노덕술이었다. 김원봉은 풀려난 뒤 너무나 분해서 사흘 동안 통곡했다고 한다. 김원봉이 월북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검열상과 노동상이란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는 1958년 숙청당하고 말았다. 남북 양쪽에서 버림받은 것이다. 그는 본질적으로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좌우를 넘나들며 독립을 염원한 민족주의자였다.●약산 생가터엔 의열기념관… 서훈은 거부 당해 밀양 내이동 김원봉의 생가터에는 의열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그 앞에 흐르는 해천변에는 항일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준설 학예연구사는 “김원봉뿐만 아니라 박제혁, 최수봉, 강우규 의사 등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라면서 “의열단에 최초로 참여한 사람은 알려진 대로 13명이 아니라 10명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약산 집안의 9남2녀 중 4형제는 6·25 때 보도연맹사건으로 총살당했다. 막내 김학봉(86)씨가 생존해 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 중이다. 김원봉에 대한 유족과 밀양시민들의 서훈 신청은 번번이 거부됐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통하는 길·공존하는 삶… 사람 품은 도시, 근대 문화를 낳다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통하는 길·공존하는 삶… 사람 품은 도시, 근대 문화를 낳다

    한결 선선해진 서울 광화문의 한밤, 하수도 정비 공사 소리가 늘 같은 고요를 비집는다. 노숙자가 모로 누운 화강석 벤치, 한 칸 건너 형광색 조끼를 입은 인부들이 어둠 속에 잡담을 뿌린다. 어제는 가로등을 정비하더니, 맞은편에는 물청소차가 천천히 지난다. 폭염도 폭우도 갔나 보구나. 내일이 밝으면 또 몇 군데 크고 작은 시위가 있을 것이고, 이 가을에도 광화문 모서리에서 몇 구절 시구가 태어날 테지. 이 익숙한 도시의 밤 풍경은 150년 전 프랑스 제2제정 시대(1852~1870년) 파리에서 시작되었다.나폴레옹 3세의 독재 치하에서 오늘날 파리의 밑그림이 그려졌고, 당시 파리 시장(정확하게는 센(Seine) 구의 수장)을 맡았던 외젠 오스만의 과감한 개조 사업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편이다. 그 소개에는 언제나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못 치게 하려고 대로를 뚫은 독재의 조력자, 빈민가를 순식간에 철거하고 집세를 급등시킨 자본주의 첨병이라는 평가가 덧붙는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오스만이 잘못했다고 배웠어요.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철거민을 만들고 부자들 좋도록 재개발을 했으니까. 그런데 요즘 돌이켜 보니까 당시에 오스만이라는 사람이 그나마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물론 오스만이 처음은 아니고, 나폴레옹 때부터 그런 구상을 했다고 해요. 파리를 유럽의 수도로 만들자. 나폴레옹 3세도 좋은 도시가 되려면 어떻게 돼야 하는가를 나름대로 연구했어요. 독재를 하면서 시위 진압하기 편하게 하려고 시작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거로 끝나지 않고 결국에는 좋은 도시가 되게 하려고 노력했거든요.” 그러나 여전히 찜찜하다. 독재자가 독재적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 좋은 도시일 수 있는가? 좋은 도시라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도시라면, 우선 통해야 돼.” 음, 스승의 가르침은 이렇게 간단한 것인가? 발자크와 위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파리의 골목이라고 하면, 종로의 피맛골 같은 대로의 뒷골목을 상상하곤 하지만, 사실 1850년까지 파리라는 도시의 거의 모든 길은 평균 폭이 1~2m에 지나지 않았다. 4층 넘는 건물이 빽빽한 인구 백만의 도시에, 곧은 길이라고는 없이 구불구불하고 막다른 데다가 가장 넓은 도로라고 해 보았자 폭이 5m도 되지 않았으니 파리에는 오로지 골목밖에 없었다. 마차나 수레가 드나들지 못했다. 당시 한 보고서에 따르면 5㎡짜리 옥탑방 한 칸에 23명의 어른과 어린이가 바글바글 살면서 그 생활 오물과 폐수를 그냥 길 앞에 내다버렸으니, 하루 종일 해도 바람도 들지 않는 좁은 골목 환경이란, 사람들이 하수구 속에 사는 꼴이었다. 콜레라가 창궐한 것은 그 하수가 그대로 상수에 섞여들고 집들이 너무 다닥다닥했기 때문이다. 도시 생활을 견디지 못한 성난 민중들이 집앞 바닥 포장돌을 파내서 쌓으면 바로 기마대를 막을 수 있었으니 그것이 혁명기에 고안되었다는 바리케이드의 정체였다.파리를 개조해야 한다는 제안은 18세기부터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어떤 전제 군주도 손댈 생각 없었던 도심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나폴레옹 황제였다. 콩코르드 광장부터 루브르를 지나는 리볼리 가를 닦기 시작했지만 마치지 못했다. 나폴레옹의 실각으로 유년기를 유럽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보냈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은 자유주의에 관심을 가졌고,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그 도시 경관에 크게 감동했다. 그가 1848년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데에는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향수에 더해 서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에 힘입은 바 컸다. 파리는 프랑스의 심장이고 위대한 도시라고 열을 올리며 불로뉴 숲을 런던 하이드 파크를 능가하는 공공 공원으로 조성하고 삼촌이 못 마친 리볼리 가의 연장 공사에 착수했지만 사업이 더뎠다. 임기 내에 공약을 이행하지 못할 형편이 되자 재선이 불투명해졌고 불안감에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종신을 선언한 나폴레옹 3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임 파리 시장을 찾는 것이었고, 그때 배짱과 열정에 충만한 오스만을 만났다. 1853년 취임 첫 주인 오스만에게 파리 지도를 펼쳐 보이며 “통하게, 통합되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어 보라고 명했다.“오스만이 처음에 한 일이 동서하고 남북으로 대로를 십자(그랑 크로아제)로 내요. 이렇게 하면 도시가 고르게 발전되죠. 그다음에 동서남북 네 길 끝에 역을 연결하고 도시를 순환하는 대로를 내요. 모든 게 연결되도록 만든 거지.” 6년 만에 1단계 사업이 완료되자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파리 시민들은 환영했다.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에게 어째서 같은 건축가와 계속 작업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던 사업이 갑자기 순조로워졌는지 오스만에게 물은 적이 있는데, 자신만만하게 ‘시장이 다른 사람이니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대로는 정말 독재자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뚫은 것일까? 나폴레옹3세 치하 파리에서 진압할 만한 봉기는 일어난 적이 없었다(파리 코뮌은 정작 실각 후다). 오스만은 훗날 보수적 의회에서 예산을 따낼 명분으로 내세웠을 뿐이라고 변명한 바 있다. 실로 오스만은 치밀했다. 폭 20m가 넘는 대로는 시위꾼 노동자들이 우글거리는 불량 주택만 없앤 것이 아니었다. 교통 정체와 오물과 매연도 사라졌다. 거기에 인도가 생겼고, 빛과 바람과 가로수가 도로를 채웠다. 오스만의 파리 개조에서 더 중요한 것은 대로의 지하, 보이지 않는 데 있었다. “첫 번째, 위생이다. 그래서 파리의 하수도 계획이 선 거예요. 굉장히 잘한 거죠.”파리 인구 전체에 배분될 분량을 계산해 상수원을 끌어왔다. 새로 판 거대한 하수도는 가스등과 다음 세기에 지하철이 지날 관이기도 했다. 시에서 받은 제복을 입은 인부들이 매일같이 하수에 모인 빗물로 도로를 청소하고 수만 그루의 가로수를 다듬고 가스등을 켜고 끄는 도시 풍경이 처음 탄생했다. “두 번째, 도시에 빈 데가 많아야 된다. 사람들이 숨 쉴 수 있는 공원도 숲도 만들었죠. 관통하고 호흡하게 만든 거예요. 오페라 극장이며 에펠탑도 서는 건 그다음이죠.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의 파리가 탄생했습니다.” 오스만은 공원 울타리, 벤치, 신문 가판대, 공중 화장실, 광고판 같은 도시의 공공시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계하고 도시 전체에 고루 일관되게 적용했다. 그것은 상하수도처럼 시민 모두가 누릴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것은 가로변에 철거한 다음 새로 지은 건축물들이었다. 같은 길에 면한 건물들은 서로 주인이 달라도 모두 하나로 이어져 보이도록 짓게 했다. 실내에서야 아무리 개성적으로 호화판으로 살든, 대로변 외관에 건축주의 부를 뽐내는 조각품이나 맥락을 끊는 디자인은 엄격히 금했다. 외벽 마감은 인근에 흔한 석재로 통일하고, 같은 형태의 테라스 난간을 설치하게 했다. 모든 건물은 최소한 10년에 한 번씩 일제히 보수하고 청소해야 했다. 사소한 데까지 꼼꼼하고 일관된 규제 속에 지어져 ‘오스만 건축’이라고 불리게 된 이 건물들은 하나하나 튀지는 않지만 방문객을 파리의 장대한 원근법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관광용 유물이 아니라 삶의 풍경이다. 대로변 건물의 2~3층은 가족이 많은 부유층의 아파트고, 5층이나 6층에는 독신자나 노동자, 학생들이 살았다. 도시 전체가 상가이자 동시에 주택가고, 빈부가 한 지붕 밑에 공존했다.파리 도심에는 고층 아파트가 없지만 인구 밀도는 1㎢당 2만명이 넘어 서울보다 훨씬 높다. 근대의 수도, 파리 시민들은 추리닝 차림으로 자가용을 끌고 외곽의 대형 쇼핑몰을 가는 대신에 차려입고 1층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은 가게들을 산책하며 쇼핑하고, 길이 끝나는 데서 저녁의 오페라를 즐긴다. 위정자의 영광을 향한 길이 아니었다. 오스만은 파리의 오래된 역사적 건축들이 돋보이는 각도로 새 길을 냈고, 도시의 구마다 고르게 크고 작은 녹지 공원과 광장을 조성했다. 이 대대적 사업을 순식간에 시행하기 위해서 권력을 등에 없고 법을 개정하고, 자본가의 도움을 빌어 투자 회사를 설립했으며 수만 명의 노동자를 동원했다. “일을 끊임없이 벌이고 세금 많이 걷으니까, 결국 오스만은 그래서 실각하죠. 자동차 시대를 예견했는지는 모르지만, 모던한 도시 계획인 거고, 유럽의 근대 도시가 여기서 출발하는 겁니다. 미국 시카고, 워싱턴, 바르셀로나, 빈…, 그런 대도시가 다 파리를 따르거든요. 그 기틀이 뭔지 자세히 봐야 할 거예요. 여러 사람을 괴롭혔지만 결과적으로 도시를 문화적으로 굉장히 성숙하게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불도저 김현옥 시장을 오스만하고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할 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들은 한 세기 전에 오스만이 해 온 것을 비판도 하지만 새로 연구하고 근사하게 이어받아서 라데팡스를 만들었어요. 그러면 정도전이 만들어 놓은 서울이 확장될 때 우리는 무엇을 놓친 건가….” 르코르뷔지에를 위시한 모더니스트들이 비난을 퍼부은 오스만의 파리 개조가 왜 모던한 도시의 출발인가. 데이비드 하비는 모더니즘의 본질을 획일적 전통에 대한 ‘창조적 단절’이라고 말한다. 황현산 선생이 평생 연구했듯, 누구나 뻔히 공감할 완결된 서정성을 과감하게 뚫는 아이러니가 프랑스 상징주의의 모던한 시 정신이고, 그 정신이 제2제정기의 파리에서 태동했다. 1960년대 쿠데타 이후 반세기, 서울이 낳은 시와 도로를, 서울이 남긴 역사와 어둠을 지운 야경을 떠올려 본다. 격자 대로를 가도 가도, 600년 전 북악과 광화문에 맞먹을 비스타를 마주칠 일이라고는 없는 강남과 여의도에서 터전을 닦은 중산층은 이제 그들이 세운 도시를 깨끗이 철거하고 역사를 지우는 데 바쁘다. 폭염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재개발과 폭등과 재생이 터져 겨루는 서울은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기획 수류산방 조성룡 건축가·도시건축 대표 심세중 수류산방 편집장
  • 경찰 ‘세월호 집회 피해 배상’ 안 받는다

    집회·시위 피해 금전배상 없는 최초 사례 경찰이 “세월호 추모 집회 때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다”다며 주최 측에 냈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법원의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경찰도 최근 위헌 결정을 받은 ‘혼합살수’(물에 최루액을 섞어 뿌리는 방식)의 책임이 있는 만큼 금전 배상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국가가 집회·시위 때 경찰이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며 국민을 상대로 낸 손배소에서 금전 배상을 받지 않는 쪽으로 끝난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 3일 경찰과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양측은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88단독 황혜민 판사가 낸 조정 결정에 이날까지 이의신청을 내지 않았다. 법원의 조정 결정에 재판 당사자가 2주간 이의제기하지 않으면 조정은 ‘재판상 화해’로 확정판결에 준하는 효력을 갖고 재판이 종결된다. 황 판사가 낸 조정안은 원고인 국가와 피고인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원회·4월16일의 약속국민연대 등이 민사상 청구를 제기하지 않고, 서로 입은 피해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가는 피고들이 이 집회를 열게 된 근본적 원인에, 피고는 집회 때 경찰관들이 입은 피해에 각각 유감을 표하라는 것이다. 금전 배상은 조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경찰은 2015년 4월 18일 열린 세월호 추모 집회 진압 과정에서 물적·인적 피해를 입었다며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포함된 시민단체를 상대로 778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헌법재판소가 시위대 해산 때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어 참가자에 뿌리도록 한 경찰 지침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면서 “(위헌 결정의 영향 등으로) 서로 책임을 주장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정이 현재 진행 중인 국가의 다른 집회·시위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사안에 따라 (집회 참가자에 인적·물적 피해의 책임을 묻지 않을지) 각기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아베, 우리 아직 여기 있소” 92세 김복동 할머니 빗속 외침

    암 투병 중, 수술 5일 만에 거리 나와 日기자에 “미안하다고만 하면 된다” “우리를 보러 온 적도 없는 사람들이 (위안부) 할머니 팔아 월급 받는 게 우스운 일 아닙니까.” 92세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궂은 날씨를 뚫고 나온 김 할머니는 준비된 휠체어도 마다하고 “내가 걸어가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관계자들의 만류로 결국 휠체어에 오른 김 할머니는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 김복동’이라고 적힌 노란 피켓을 들고 외교부 후문 앞에 자리잡았다. 김 할머니는 “수술한 지 5일밖에 안 됐는데 방에 드러누워 있어도 속이 상해 죽겠어서 나왔다”며 말문을 열었다. 암 투병 중인 김 할머니는 최근 콩팥 쪽에도 문제가 생겨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 같은 여성이니 잘 좀 부탁한다’며 당장 해결 지을 것처럼 하더니 서로 화해하기로 했다면서 위로금을 떡하니 받아 왔다”면서 “정부에 일본이랑 싸우는 건 우리가 할 테니 재단 좀 철거해 달라고 말했는데도 아직까지 꼼짝 안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할머니는 현장을 찾은 일본 일간지 기자에게 “하루라도 서로 좋게 지내려면 아베가 나서 해결을 지어 달라고 꼭 일본 신문에 내서 전해 달라”면서 “처참하게 겪은 식민지 시대의 잘못에 대해 그저 기자들 모아 놓고 ‘우리가 그랬다. 미안하다. 용서해 달라’고만 하면 우리도 용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기억재단은 이날부터 9월 한 달간 외교부와 화해치유재단 앞에서 매일 릴레이 1인 시위를 진행한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권수정 서울시의원, 궁중족발 윤경자 사장과 함께 청와대앞 1인시위 진행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8월 31일 오전 9시 궁중족발 문제 해결을 위해 청와대 앞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윤경자 사장을 방문하여 중소상공인 권익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말하였다. 이 사건은 서촌 궁중족발이라는 음식점의 건물주가 월 297만원이던 임대료는 1200만원으로 3000만원이던 보증금을 1억으로 일방적으로 올리며 그것을 내지 못하면 퇴거할 것을 이야기하고 최근 강제집행까지 하며 사회적으로 건물주의 일방적 횡포를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이다. 권수정 의원은 1인시위를 함께하며 “현재 국회에서 계류중인 상가임대차보호법이 하루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정의당 차원에서 더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하였다. 또한 권 의원은 “특히 서울시에서 이런 자영업자들이 억울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향후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하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민중의 역린 ‘연금’ 건드린 푸틴, 집권 이후 최대 위기

    민중의 역린 ‘연금’ 건드린 푸틴, 집권 이후 최대 위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간곡한 설득과 양보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민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2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전역에서 반(反) 연금개혁법 시위가 열렸다. 주최측인 제1 야당 공산당 추산 1만명(경찰 추산 6000명)이 모스크바에 모여 연금개혁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사회주의 부활이 러시아를 살리는 길’, ‘모든 권력을 노동자에게’, ‘민중을 테러하는 자본가 정권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이외에도 모스크바 인근의 블라디미르, 모스크바 남부 보로네슈, 서부 스몰렌스크 등에서 연금개혁 반대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TV 대국민 담화에서 연금 개혁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그는 또 여성 정년 및 연금 수급 연령을 당초 개혁안의 63세에서 60세로 완화하는 조치도 내놨다. 그러나 남성에 대한 대책이 없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금개혁안 발표 이후 두 달 만에 16%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이날 시위는 연금개혁안이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외교부 첫 1인 시위’ 김복동 할머니 “위안부 할머니 팔아 월급 받다니…”

    ‘외교부 첫 1인 시위’ 김복동 할머니 “위안부 할머니 팔아 월급 받다니…”

    일본군 성노예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가 3일부터 9월 한 달간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들어갔다. 비가 오는 이날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2) 할머니가 우비를 입고 휠체어를 탄 채 1인시위 첫 주자로 나섰다. 암으로 투병 중인 김 할머니는 닷새 전 수술을 받았다.그는 “제가 누워있으려니 속이 상해 죽겠는 기라. 아물 말이라도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 나왔습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어떻게 일가친척도 아니고 팔촌도 아닌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고, 우리 보러 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할머니들 팔아서 그 돈으로 자기들 월급 받는 것이 참 우습다”며 “전 세계 돌아다녀도 우리 같은 나라는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위로금을 받으려고 이때까지 싸웠느냐. 위로금을 1000억 원을 준다 해도 우리는 받을 수 없다”며 “우리가 돌려보내라고 했으면 적당히 돌려보내야 할 텐데 정부는 ‘해결해준다.’고 해놓고 아직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화해·치유 재단은 2015년 한·일 합의에 따라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약 100억원)으로 설립됐으나 합의에 대한 논란과 함께 10억 엔 반환과 재단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현재 사실상 기능이 중단된 상태다.김 할머니는 일본 언론에서도 취재를 나왔느냐고 물어본 뒤 아사히 신문 특파원에게 “일본 정부가 과거 식민지 시대에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라는 이야기를 늙은 김복동이가 하더라고 신문에 내서 아베 (총리) 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나는 비참한 식민지 시대를 겪었지만, 아베는 말로만 들었지 겪어보지 못했다”며 “버틸 걸 버텨야지 자기네들은 무조건 안 했다, 우리는 모른다고 할 게 아니라 아베가 나서서 해결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김 할머니는 아베 총리를 언급하며 “대담하게 나와달라. 자신들이 했다는 발표만 해달라. 어려운 일이 아니다”며 “과거에 행한 일이 잘못된 일이라고 용서해달라고 하면 우리도 해 줄 수 있다”고 재차 사과를 촉구했다. 거동이 불편한 김 할머니는 빗속에서 30여 분간 외교부 청사 앞을 지키다 발길을 돌렸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독일서 난민 찬반시위 벌어져 경찰 등 18명 부상

    독일서 난민 찬반시위 벌어져 경찰 등 18명 부상

    독일 작센주의 소도시 켐니츠에서 1일(현지시간) 극우단체의 집회와 이들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맞불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지난달 26일 켐니츠에서 열린 축제에서 참가자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35세 남성이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체포된 용의자는 시리아와 이라크 출신 남성 2명이다. 이에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극우단체에서 약 6000명이 거리로 나와 폭력적인 집회를 열었다. 이날 열린 집회 역시 그 연장 선상이다. 극우단체 약 8000명이 겜니츠 거리로 나와 난민 범죄를 규탄하고, 난민 수용 반대를 주장했다. 제3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정치인들과 극우단체 ‘페기다’ 인사들도 참석해 집회를 주도했다. 이들은 ‘우리가 국민이다’, ‘메르켈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집회 도중 폭력사태가 벌어져 경찰 3명을 포함해 18명이 부상했다. 죄렌 바르톨 사회민주당 의원과 그의 지지자들은 맞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극우 세력에게 공격을 받았다. 또 아프가니스탄 출신 남성이 복면을 쓴 괴한들에게 폭행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현지 경찰은 이날 집회에서 폭력과 재산 피해, 공권력에 대한 저항 등 총 37건의 불법행위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2015년 이후 독일로 유입된 난민은 백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영화감독 안나는 왜 평양에 갔을까?

    영화감독 안나는 왜 평양에 갔을까?

    호주 시드니에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탄층 가스 채굴이 시작된다. 이곳에 사는 안나는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선전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녀는 북한으로 향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원제: Aim High in Creation!)의 콘셉트다. 그렇다면 안나는 왜 선전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북한으로 향했을까.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안나는 자신의 딸이 뛰어노는 시드니 파크에서 탄층 가스 시추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대규모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다. 그러던 중 안나는 몇 해 전 평양에 다녀온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한 권의 책을 떠올린다. 김정일이 1987년에 쓴 ‘영화와 연출’이란 책이었다. 완벽한 선전영화를 만들기 위해 직관적이고 세세한 김정일의 지침서였다. 안나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김정일의 생각과 할리우드 영화를 향한 그의 애정에 곧 매료됐다. 안나에게 탄층 가스는 그야말로 자본주의 최악의 사례이자 돈에 눈이 먼 다국적 기업들은 김정일의 선전영화에 등장하는 완벽한 적이었던 것이다. 안나는 ‘감독은 인민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받은 독립적인 예술가이며 창조적 사령관’이라고 명시한 부분을 읽는 순간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된다. 영화감독으로서 강력한 선전영화를 만들어 시드니 파크의 가스 채굴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많은 환경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했음에도 직설적이고 투쟁적인 다큐멘터리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그녀의 도전에 영향을 끼쳤다. 이제 안나는 호주 배우들과 함께 김정일의 규칙에 따라 북한식 단편 선전영화를 만들어 탄층 가스 개발을 막는다는 내용의 영화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그렇게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가 시작됐다. 안나는 완벽한 선전영화를 만드는 김정일의 방식을 배우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서구 영화인 최초로 북한 영화산업 전반에 관한 촬영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선전영화를 만드는 평양 최고의 영화인들을 만나 그들만의 영화제작기법을 전수받는다. 그 사이 안나는 시드니의 환경 문제와 자신의 사연을 이해하고 공감해준 김정일의 대표 영화인들과 교감을 하고,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인 ‘어디에 살든, 어떤 체제 아래에 있든, 영화인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사회문제에 관한 새롭고 기발한 접근과 시도를 한 여성감독 안나 브로이노스키의 좌충우돌 평양 영화계 모험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는 오는 9월 13일 개봉한다. 96분. 전체 관람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매일 공공 화장실의 몰카 찾아내는 도시? 답은 서울

    매일 공공 화장실의 몰카 찾아내는 도시? 답은 서울

    매일 공공 화장실에 몰래 카메라가 숨겨져 있는지 공무원들이 살펴보는 도시가 있는데 다름 아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라고 영국 BBC가 전했다. 지난해 몰카 포르노가 6000건 이상 적발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 서울시는 몰래카메라를 찾아내기 위해 다음달부터 환경미화원들이 2만여곳의 공공 화장실을 매일 점검해 빈 구멍이 있는지 등을 살펴 보고 이를 기록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한달에 한 번씩은 여성 안심 보안관이 몰래 카메라 감지 장비로 점검하고 1000여곳의 유흥업소 주변 공공 화장실은 특별 점검 대상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방송은 수만명의 여성들이 여러 차례 몰래 카메라에 반대하는 시위를 펼쳤는데 그들이 펼친 플래카드에는 “내 삶은 당신 포르노가 아니다”란 문구 등이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여성들이 어디선가 사진이 찍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영상 등으로 떠돌아다닐지 모른다는 공포에 짓눌려 살고 있다는 여성운동가들의 주장도 전했다.사법당국 간부들은 이전에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몰래 카메라를 숨기는 이들이 하도 정교하게 설치하고 이를 15분 안에 다시 떼내기 때문에 이들을 현장에서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5400명 이상이 몰래 카메라와 연관된 범죄로 체포됐는데 그 가운데 2%도 안 되는 사람들만 실형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50명의 공무원이 몰래 카메라를 찾아내는 임무를 수행했으나 2년 동안 한 건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전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트럼프, 초청 못 받은 매케인 장례식날 골프장으로 직행

    트럼프, 초청 못 받은 매케인 장례식날 골프장으로 직행

    고(故)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장례식이 열린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버지니아 주에 있는 자신의 골프장으로 갔다. 추모 메시지도 내놓지 않았다. 이날 메케인의 장례식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와 남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인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추모사에 나선 매케인의 딸 메건은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뼈있는 말을 쏟아냈다. 메건은 매케인의 국가에 대한 봉사를 ‘미국인의 위대함’(American greatness)이라고 표현하고, “그것은 그(매케인)가 기꺼이 바쳤던 희생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던 사람들의 값싼 레토릭은 물론, 그(매케인)가 (국가를 위해) 고통을 당하고 봉사하는 동안 안락과 특권의 삶을 누려온 사람들의 기회주의적 전유도 아닌 진짜”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5년 반 가까운 기간 포로생활을 한 매케인에 대해 “나는 포로로 잡히지 않은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메건은 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슬로건을 겨냥한 듯 “미국은 항상 위대했다”면서 “‘존 매케인의 아메리카’는 다시 위대해질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케인 의원 장례식이 진행 중인 시간에 나프타 개정 협상과 관련해 캐나다에 경고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를 새로운 나프타 협상에 묶어둘 아무런 정치적 필요성이 없다.수십 년간의 악용 이후에 공정한 딜(거래)을 하지 않으면 캐나다는 아웃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트위터를 올린 후 백악관을 떠나 곧바로 자신이 소유한 버지니아주 라우든카운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으로 향했다.장례식이 오전 10시부터 낮 12시 35분까지 진행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오전 11시 16분 골프장에 도착했고 오후 3시 37분께 골프장을 떠났다. 백악관은 트럼프의 이날 일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으나 언론들은 트럼프가 골프를 치는 사진을 보도했다고 백악관 공동취재단이 전했다. 10여명의 시위대가 골프장 앞 도로에서 트럼프를 비꼬는 ‘아기 트럼프’ 풍선을 띄우고 “트럼프는 매케인과 비교할 수 없다”, “영웅인 메케인의 명복을 빕니다”, “반역죄 탄핵” 등의 피켓을 들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황제 납치 프로젝트3]러시아, 베델에 고종 납치 제안

    [황제 납치 프로젝트3]러시아, 베델에 고종 납치 제안

    서울신문은 대한제국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찾았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조선과 일본에 머물며 직접 취재해 쓴 이들 소설에는 고종의 해외 망명 시도 등 극비 내용이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대한제국이 배경인 거의 유일한 해외 소설이어서 사료적 가치도 큽니다. 서울신문은 먼저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연재 형태로 소개합니다. <3회> “저는 조선 황제를 납치해 상하이로 모셔 가려고 서울에 왔습니다.” 소녀가 웃음기없는 얼굴로 똑똑히 말했다. 나는 이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의 반응을 살피던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의 눈도 반짝거렸다. 그는 고개를 힘있게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말 그게 전부인가요?” 나는 짖궃게 악의없는 농담을 섞어 물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충격적인 제안이었으니까. “이게 다는 아니죠.” 그녀의 목소리에는 내 반응이 너무 경솔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듯 작은 꾸짖음이 담겨 있었다. “제가 좀 더 설명할게요. 베델씨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방금 이름을 알려드린 그분(러시아 극동총독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알렉세예프로 추정됨)은 앞으로 3주쯤 뒤 일본이 조선에 대대적인 공격을 가할 것이라는 매우 확실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서 황제에게 무력시위를 할 것이라는 것도. 대한제국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다는 내용의 보호령 문서에 서명을 받아내기 위해서죠. 일본은 이미 영국과 미국에 이 사실을 알렸고, 두 나라는 조선 황제가 자발적으로 보호령을 요청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일본과 말을 맞춰놓은 상태입니다.” 소녀는 크게 숨을 들이쉰 뒤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일본 입장에서는 영국과 미국이 아닌 다른 열강들이 마지막 걸림돌이예요. 독일과 러시아가 대표적이죠. 이들 역시 조선과 같은 약소국을 자신들의 통제권에 두고 싶어하니까요. 이 때문에 이들은 조선이 스스로 일본의 보호국이 되길 원한다고 명확히 밝히지 않는 이상 지금 상황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에요.” 모든 문이 잠겨있는 이 방 안에서 가장 빛나는 눈을 가진 여성이 러시아를 대신해 우리에게 비밀 임무를 전달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러시아는 최근 일본과의 전쟁(러일전쟁)에서 패배해 사실상 한반도 지배권을 빼앗겼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어떻게든 일본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한다면 러시아로서는 적국인 일본의 대륙 침략 시도를 막아낼 수 있어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소녀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조선 황제는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 외교권을 가지러 조선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이미 허버트(‘고종의 밀사’로 불리던 호머 허버트 1863~1949)를 미국 루즈벨트(시어도어 루즈벨트 1958~1919) 대통령에게 보내 이를 막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성과가 없었어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이거예요. 이토가 황제를 겁박해 서명을 얻어내려 해도 그 문서에 옥새가 찍혀있지 않으면 일본은 대한제국을 접수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죠. 조선이 진심으로 일본의 보호를 원해서 조약을 체결한 것이 아닐수도 있다는 의혹이 퍼지면 독일과 러시아가 반드시 이 부분을 걸고 넘어질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물었다. “하지만 왕이 옥새를 찍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요? 그랬다가는 이토가 자신을 죽이고 새 왕을 세울 수도 있다고 생각할텐데...” 소녀가 내 표정을 읽은 듯 힘있게 대답했다. “그래서 러시아가 조선 황제를 상하이로 망명시키려는 모험을 제안하는 겁니다. 황제가 조선을 빠져 나오면 일본은 조약 문서에 옥새를 찍을 수 없어요. 그가 외국에 나가 있으니 죽일 수도 없겠죠. 이쯤되면 독일과 러시아는 “도대체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따질 것이고, 일본은 전 세계 언론의 비난을 사겠죠. 두 분 다 아시겠지만 아직 일본은 다른 열강보다는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요. 국제여론을 악화시켜가면서 불 속에 뛰어드는 짓(을사늑약 체결)은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해요.” 소녀는 멋진 머리를 뒤로 젖히며 조용하지만 진심을 담아 웃음지었다. 커다란 보라색 눈이 더욱 도드라졌다.“제 말이 꼭 숨은 역사를 설명하는 교수의 강의처럼 들리시나 보네요. 아무튼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조만간 보게 될 거예요. 상하이에 계신 그 분은 제가 두 분같은 ‘젠틀맨’(의로운 일에 자신의 목숨까지 거는 신사도 정신의 소유자)과 힘을 합쳐 이 일을 해낼 것으로 확신해 큰 게임을 시작했어요. 제가 상하이를 떠나기 전날 밤 그분의 마지막 이야기는 이것이었어요. ‘가서 베델을 만나라. 그가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니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요.” ‘황제 납치 프로젝트’는 4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여성가족부 장관 교체 ‘신의 한수’냐 ‘코드 인사’냐 ‘시끌’

    여성가족부 장관 교체 ‘신의 한수’냐 ‘코드 인사’냐 ‘시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되자 정부가 최근 대두된 여러 여성 이슈들을 강한 정치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를 뽑았다는 의견과 탁현민 행정관에 대해 비판하고 혜화역 시위에 참석하며 여성을 대변했던 정현백 여가부 장관보다 정권에 친화적인 인물을 내세웠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1세대 페미니스트 등판, 정치력과 더해져 시너지 낼 것” 진 후보자의 이력만 봤을 땐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운동으로 촉발된 직장 내 성폭력 문제나 가부장제 철폐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임자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38회 사법고시를 통과한 그는 법무법인 변호사로 활동하며 이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입(민변) 여성인권위원장을 지냈다. 우리나라 여성 운동의 가장 큰 사건으로도 손꼽히는 ‘호주제 폐지’에도 앞장섰다. 1950년대부터 여성 운동의 큰 과제였던 호주제 폐지는 2005년 마침내 국회 본 회의에 통과하는데 진 후보자는 변호사 초기이던 1999년부터 2008년 호적법이 폐지되기까지 10년간 호주제 위헌소송인단에 참여했다. 19대 국회에 입성한 이후엔 행정안전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음란물 유통 사이트인 ‘소라넷’ 서버 폐쇄와 불법촬영 근절에 나섰으며, 영화계 성폭력 방지를 위한 예술인복지법과 지방자치단체의 공중화장실 불법촬영 정기점검 의무를 부과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등 입법활동에도 주력했다. 이번 인선을 환영하는 이들은 진 후보자의 이같은 이력을 언급하며 “법률 지식과 재선 의원으로서의 정치력이 더해져 타 부처와의 협력이 절실한 여가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풀어내는 데 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친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란 수식어에 걸맞게 여가부에 더 무게를 싣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대표적인 친문 인사, ‘여성 권익’ 앞서 정권 비호할 것” 그러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근절 시위가 수차례 진행되는 동안 청와대 차원에서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아 정권에 대한 여성들의 비판이 거세지는 가운데, 여성 이슈 해결에 앞서 정권의 코드에 맞는 인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장관 업무평가에 기반한 쇄신 개각”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부처와는 달리 교체 이유가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와 학계에 발을 담그고 있던 정 장관은 정권 초기에 청와대 탁현민 행정관에 대해 수차례 경질을 요구했으며, 최근 혜화역 시위에도 직접 참석해 격려의 말을 전했다. 여성계는 이러한 정 장관의 행보를 환영했으나 정부 입장에선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관측됐을 가능성이 높다.다른 부처와는 달리 교체 사유도 뚜렷하지 않은 편이다. 이번에 내각 대상이었던 5개 부처 중 국방부는 ‘기무사 계엄령 문건’을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경질성 인사였으며, 고용노동부는 고용지표 악화라는 외부 요인이 큰 역할을 했다. 교육부도 대입제도 개편으로 사회적인 혼란을 야기해 교체됐다. 여가부도 미투 운동이 대두되는 과정에서 부처간 협력이나 국회의 협조를 속도감 있게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낳았던 다른 부처와 비교하면 개각이 될 만한 대상은 아니었다는 평이다. 이렇다 보니 더불어민주당에서 대표적인 ‘친문 인사’로 분류되는 진 후보자가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정부의 입장을 비호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도 점쳐진다.▲“기대감과 별개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 진 후보자 인선에 대한 내막이나 평가와는 별개로 지금 당장 여가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불법촬영 근절을 위해 지자체가 공공화장실 등을 단속하고, 피해자 지원책 등을 강화했지만 해외에 서버를 둔 온라인 사이트는 여전히 건재하며, 플랫폼 운영자나 유통업체에 대한 법적 규제는 미흡한 상황이다. 안희정이 1심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위력에 의한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이슈도 다시금 불이 붙었다. 미투과 관련해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지난 6월 기준 12건 중 10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내부에서 평이 좋던 장관님이 교체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회에 협조를 구하는 일이 좀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 아쉬움과 기대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1일 런던 상공에 ‘시장님 비키니’ 풍선이 떠다니게 된 사연

    1일 런던 상공에 ‘시장님 비키니’ 풍선이 떠다니게 된 사연

    9월 1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상공에 사디크 칸 런던 시장이 비키니를 걸친 채 나타난다. 당연히 시장이 비키니를 입은 것처럼 그림을 그려넣은 풍선이다. 지난달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 항의의 뜻으로 ‘기저귀를 찬 트럼프’ 풍선을 띄웠던 시민단체들이 다시 뜻을 모아 칸 시장을 풍자하는 풍선을 띄우겠다고 허락을 구했고, 화통한 런던 시는 이를 받아들였다. 종일은 아니고 아침 9시 30분부터 2시간 만이다. 시민단체들은 5만 8182 파운드(약 8427만원)를 모금해 8.8m 길이의 ‘베이비 칸’ 풍선을 제작해 팔리아먼트 광장에서 띄울 계획이다. 칸 시장은 “사람들이 토요일에 노란 비키니를 걸친 날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해드리겠다”며 “그렇긴 해도 노란색은 내 컬러가 진짜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유쾌하게 받아넘겼다. 왜 비키니 차림일까? 다 사연이 있다. 2016년 칸 시장은 ‘해변에서의 몸이 준비됐나요?’ 광고가 시의회와 경찰, 영국 항공관제센터(NATS)를 통과했는데도 이를 막았던 전력이 있는데 이를 비웃는 것이 이번 시위의 목적이다. 풍선 기금 모금 홈페이지에는 “‘베이비 트럼프’ 풍선이 런던 상공에 떠있게 허용한 만큼, ‘베이비 칸’도 만들어 이 나라에 표현의 자유가 있는지 확인해보자”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그 뒤에는 “칸 재임 기간 우리는 범죄율이 전례없이 치솟는 것을 봐왔다. 런던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느끼지도 못하고 안전하지도 못하다. 칸은 물러나라”고 이어졌다. 또 기금이 더 모이면 칸 축출 캠페인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쓰겠노라고 약속했다. 시장 대변인은 “늘 그렇듯 시청은 경시청 등 다른 주요기관들과 긴밀히 협력해 시위가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NATS 대변인은 “철저한 평가를 통해 우리는 풍선이 일상적인 항공 관제 업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경시청도 풍선 비행을 허용해 이에 따라 항공 시위를 승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