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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89% 불교신자… ‘승려=정신적 지주’

    미얀마 군사정부의 기습적인 휘발유값 67% 인상과 물가 5배 인상에 항의해 촉발된 반정부시위를 9일째 이끌고 있는 승려들은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 국민의 존경을 받는 정신적 지주다. 미얀마의 지난해 말 현재 인구는 5651만명. 이중 68%는 버마족이고 나머지 32%는 샨족과 카렌족 등 13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돼 있으며,89%가 불교도다. 미얀마의 젊은이들은 한국의 병역의무처럼 종교의무로 16세 생일을 맞기 전과 20세 전후에 각각 출가해 일정기간 승려생활을 해야 한다. 미얀마 전문가인 윈 민은 “청소년의 출가 관습에 따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가족 중 최소 1명이 승려이며 늘 40여만명의 승려 수가 유지된다.”면서 “불교사원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어서 군부타도의 선봉에 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불교사원은 군사정부가 못하고 있는 사회보장정책의 틈을 메우는 역할도 한다. 윈 민은 “사원은 보육원과 학교, 에이즈 환자 등을 보살피는 병원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승려들이 이번 시위 과정에서 군인들의 시주를 거부한 것은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큰 모욕을 준 것으로 보인다.‘대안 아세안 네트워크’의 사회운동가 데비 스토타드는 최근 AFP 통신에 “승려들이 군인의 시주를 거부한 것은 가톨릭에서 교황이 파문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승려들은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고,1988년 민주화 운동 당시 반군부 시위도 이끌었었다. 미얀마 전문가들은 “승려들은 국민의 존경을 받는 계층이기 때문에 이들의 평화적인 가두행진을 무력으로 진압하면 대규모 시민 반발과 시위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이번엔 아마디네자드가 ‘反美총대’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올해 유엔 총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지난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로 규정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이어 올해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반미 국가’들의 선봉에 서고 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이 비밀감옥 설치와 적법 절차가 없는 재판 및 도청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아마디네자드는 미국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불행하게도 인권을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국가라고 자처하는 특정 강대국들에 의해 인권이 광범위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제적인 이슈가 된 자국의 핵 개발과 관련,“이란 핵 문제는 현재 종결됐다.”면서 “이 문제는 유엔 감시기구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의해 다뤄져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의 모든 핵 활동은 전적으로 평화적이고 투명하다.”면서 “서방국가들이 이란의 핵 에너지 이용 권리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마디네자드의 연설이 끝난 뒤 차베스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베네수엘라 국민의 이름으로 미 제국에 맞서 싸운 데 축하를 보낸다.”고 말했다고 미 언론은 보도했다. 이날 유엔 총회에서는 아마디네자드와 함께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도 연설을 통해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며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을 옹호했다. 아마디네자드는 전날에는 뉴욕의 컬럼비아대학이 주최한 포럼에서 연설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리 볼린저 컬럼비아대 총장과 가시 돋친 설전을 주고받았다. 포럼 주최자인 볼린저 총장은 아마디네자드를 소개하면서 ‘비열하고 잔인한 독재자’로 표현했다. 볼린저 총장은 특히 그가 홀로코스트를 부정한 것은 “뻔뻔스러운 도발자이거나 놀라울 정도로 무식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아마디네자드는 “홀로코스트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았다.”면서 “홀로코스트가 중동지역에 미친 여파를 감안할 때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나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미국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미국은 9·11 테러의 근본원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컬럼비아대 주변에는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수백명의 시위대가 아마디네자드의 포럼 참석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dawn@seoul.co.kr
  • “파키스탄 국민 봉기하라”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20일 한 이슬람 웹사이트에 새로 공개된 오디오 테이프에서 파키스탄 국민을 향해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에 대한 봉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고 AP와 CNN 등 미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빈 라덴은 이 테이프에서 “무샤라프가 지난 7월 이슬라마바드의 ‘붉은 사원(Lal Masjid)’을 점거했던 이슬람 시위대들을 군대를 동원, 유혈 진압함으로써 미국에 복종하는 이단자로 전락했다.”며 이같이 촉구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미얀마 승려 수천명 반정부 시위

    남아시아의 대표적 불교국가로 승려들이 국민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미얀마에서 승려들이 이틀째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벌여 군사정권과의 대치가 격해지는 양상이다.미얀마에서는 1948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정부가 민심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승려들이 반정부 시위를 이끄는 전통이 있다. AP,AFP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얀마 승려 1000명 이상이 19일 만다레이시에서 대규모 평화시위를 벌였다. 옛 수도 양곤에서도 200여명의 승려들이 100명씩 나뉘어 시위했다. 미얀마 군사쿠데타 19주년인 18일에도 양곤에서 400여명의 승려가 평화행진을 벌이는 등 적어도 7개 도시에서 수천명의 승려들이 반정부 시위행진을 했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시위가 격화될 조짐을 보이자 19일 군경 진압대에 최루탄과 경고사격을 가할 수 있도록 했다. 미얀마는 88년 쿠데타 뒤 19년째 군사정권이 통치하고 있다. 미얀마 시트웨시에서는 18일 경찰이 1000여명의 승려와 시민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하고 시위대원을 구타, 수명의 승려가 구속됐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미얀마에서는 지난달 15일 군정이 예고없이 천연가스 가격을 5배, 디젤 2배, 휘발유는 67%를 인상해 반정부 시위가 수주째 이어졌으며 시위 진압 과정에서 100여명이 체포됐고, 재야인사 등이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5일 중부 파코쿠 지방에서 평화시위를 벌이던 승려들에게 치안당국이 위협발포와 폭행을 해 1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에 승려단체들이 “17일까지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나섰지만 군정이 사과하지 않자 18일 전국적으로 시위에 나선 것이다. 미얀마의 승려들은 군사쿠데타가 발생한 88년 이후 90년까지 군정반대 시위를 벌였으나 큰 성과없이 진압된 경험이 있다.88년 반군정 시위 때는 학생 등 수백명이 숨졌다. 이 때문에 승려단체들은 “이번만큼은 지도부가 지하에 머물면서 시위를 선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국제사회로부터 민주화 압력을 받고 있는 미얀마 군정에는 부담이 클 것으로 보인다. 유엔을 비롯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평화로운 시위 보장과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하면서 미얀마 군정을 비난하고 있다.그러나 미얀마 군정은 “해외의 반정부 단체가 국내 단체에 지령을 내려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이랜드 점주들 “시위 피해” 민노총에 100억 손배소

    홈에버와 뉴코아 등 이랜드 매장에서 장사하는 홈에버·뉴코아 입점주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7∼8월 두 달간 영업 방해로 끼친 손해를 물어내라며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뉴코아·이랜드 노동조합 등을 상대로 3일 서울 서부지법에 1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들은 홈에버 월드컵몰점을 포함해 수도권 이랜드 매장 11개에 세들어 있는 1000개 점포의 주인들로 “시위대의 매장봉쇄 투쟁 때문에 두 달 동안 많게는 80%, 적게는 30%가량 매출이 줄었다.”고 밝혔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20세기 사건의 이면 들춰 볼 것”

    “20세기 사건의 이면 들춰 볼 것”

    “이순재도 야동을 보는데, 나는 컴퓨터도 못하고 자료조사를 싫어해서….” 민중미술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최민화(53)가 20세기를 돌아보는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 마련된 중진작가 초대전.3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에 그는 ‘이십세기 연작’을 내놓았다. 작품은 20세기 주요 전쟁을 찍은 유명 보도사진을 실사출력한 뒤 다시 물감을 칠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지우고자 하는 부분,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에 선택적으로 색을 입혔다. 작가는 네이팜탄에 화상을 입고 울부짖으며 달려가는 벌거벗은 베트남 소녀, 드골의 파리 입성 때 꽃다발을 들고 환영하는 소녀들,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등을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골랐다. 앞으로 4부에 걸쳐 20세기를 돌아보는 작품을 선보일 계획인 최민화는 “한국에 관한 사진, 전쟁, 포르노와 팝스타를 아우르는 대중문화를 다룰 생각”이라며 “그런데 컴퓨터로 포르노를 볼 줄 몰라 문제”라고 말했다. 존 레넌, 신중현, 이소룡 등이 그가 생각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팝스타들이다. 최민화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도중 최루탄을 맞아 숨진 이한열씨를 다룬 걸개그림 ‘그대 뜬 눈으로’와 시위대가 태극기를 들고 뛰어가는 보도사진을 그림으로 그린 ‘쏘지 마라’ 등의 작품으로 대표적인 민중화가 반열에 올랐다. 그의 이름인 ‘민화(民花)’ 역시 80년대 들어 바꾼 것. 그는 민중화가로 활동한 80년대에 대해 “민중미술에 특별한 이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면서 “조직을 싫어하지만 조직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시민으로서 참여했을 뿐”이라고 회고했다. 표현기법으로 사진을 빌려 쓴 것에 대해 그는 “쉬운 접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20세기의 구체적 사건 하나하나가 아닌 보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02)760-4598.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제자에게 성매매 강요 여교사 ‘몰카’에 덜미

    인도의 한 공립학교 여교사가 제자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충격적인 사실이 ‘몰래 카메라’ 형태로 전파를 타면서 학부모들이 ‘폭동’ 수준의 거센 항의시위를 벌였다. 31일 인도 언론에 따르면 현지 방송채널인 잔마트(Janmat)는 전날 아침 한 공립학교 여교사가 제자들의 성매매를 알선하는 장면을 담은 ‘함정 취재’ 형태의 화면을 방영했다. 이 화면에는 올드댈리 소재 한 학교에서 수학을 담당하는 우마 쿠라나(41)가 전임 학교의 12학년 여학생을 시내의 한 식당으로 데려가 ‘고객’으로 가장한 취재진에게 성매매를 알선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쿠라나는 제자의 성매매 대가로 손님에게 4천루피(약 9만원)를 요구했다. 또 잔마트 TV는 쿠라나가 수면제를 먹인 뒤 찍은 누드사진으로 제자들을 협박해 성매매를 강요했으며 평소 교실에서도 음란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학생들의 진술도 전했다. 이 밖에도 이 여교사는 서명을 위조하는 방식으로 여러 은행에서 엄청난 규모의 불법 대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각종 불법행위로 지난해 12월 한차례 정직조치를 받기도 했다. 정직조치를 받을 당시 델리시 교육청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교사로서의 자질이 떨어지며 학교장으로부터 자주 지적을 받았고 시험 때는 일부 학생들에게 답안지를 유출시키기도 했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학부모와 일부 주민들이 학교로 몰려가 쿠라나를 내놓으라며 시위를 시작했고 격분한 시위대는 학교 건물에 돌을 던지는가 하면 학교 인근에 세워진 차량을 파괴하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로 경찰차 1대가 전소되고 25대의 차량이 파손됐다고 밝혔다. 사건을 공식 접수한 경찰은 취재 테이프를 입수해 분석에 들어갔으며 델리시 교육청은 특별조사팀을 학교에 파견, 조사를 거쳐 쿠라나를 문책하기로 했다.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최태환칼럼] 허준영, 이택순 그리고…

    [최태환칼럼] 허준영, 이택순 그리고…

    경찰이 벌집 쑤신 듯하다. 이택순 경찰청장이 중심이다. 자신을 비판했던 부하 총경을 중징계하기로 한 게 발단이 됐다. 경찰들 사이에 구관이 명관이라는 얘기가 다시 나온다. 허준영·이택순 전·현 청장 모두 임기 중 위기를 맞았다. 개인뿐 아니라 조직의 위기를 불렀다. 그러나 개인 운명은 정반대다. 허 전 청장은 반FTA 시위에 발목이 잡혔다. 시위농민이 사망했다. 임기 중 퇴진이라는 불명예를 불렀다. 이 청장은 한화 회장의 보복폭행 수사와 관련, 시련을 겪었다.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 내부로부터도 비판이 높았다. 그러나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버텨냈다. 허 전 청장은 시위농민 사망 이후 시민단체, 농민세력으로부터 거센 사퇴압력을 받았다. 경찰청 앞은 연일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허 전 청장은 뚝심으로 버텼다. 하지만 결국 물러났다.2005년 말이다. 재임 1년 만이었다. 청와대 압력이 결정적이었다. 경찰 분위기는 ‘억울하다.’였다. 엄연한 불법·폭력시위였다. 공권력의 무력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퇴임식장이 ‘눈물바다’였다. 이택순 청장 역시 만신창이었다. 한화회장 보복폭행 사건 수사는 경찰 신뢰를 무너뜨렸다. 축소·은폐 의혹으로 옴짝달싹하기 어려웠다. 서울경찰청장, 남대문경찰서장, 간부들이 줄줄이 직위해제 등 문책됐다. 그는 한화고문과의 통화 및 골프회동 사실을 숨기다 들통이 났다. 은폐의혹까지 제기됐다. 경찰 내부에서 청장 사퇴요구 움직임까지 일었다. 그러나 버티기에 성공했다.“청장이 물러날 정도의 사안이 아니다.”는 청와대의 응원이 힘이 됐다. 검찰수사도 면죄부를 줬다. 부하들을 딛고 혼자 살아 남았다. 지금 국민들과 경찰의 눈엔 어떻게 비칠까. 아이로니컬하게도 허 전 청장은 소신있고 괜찮은 사람으로 비친다. 청와대와 밀고당기는 강단을 보인 게 작용했다. 그의 홈피는 지금도 사표로 삼고 싶다는 경찰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시위농민이 사망했다면, 그 역시 물러나는 게 도리였다. 정권이 서툴렀다. 사퇴시키는 시기나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사망원인 규명이나 경찰 책임 등 진상을 먼저 살폈어야 했다. 경찰 사기가 곤두박질쳤다. 이후 경찰은 각종 집회가 열려도 몸조심이 먼저다. 수사권 독립 주장도 힘을 잃었다. 이택순 청장은 한화파동을 넘어섰다. 그의 임기는 내년 2월이다.2003년 경찰청장 임기제 도입 이후 임기를 채우는 첫 청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그는 경찰 이미지 추락을 불렀다.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그래서일까. 정권에 대한 로열티는 극진하다. 과잉충성 해석이 뒤따르는 건 당연하다. 최근 취재제한에 대한 태도만 봐도 극명하다. 일선 경찰서까지 기자들의 출입을 막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청와대까지 나서 난색을 표명하자 오락가락이다. 뒤늦게 들고 나와 역풍을 맞은 부하 총경 징계문제도 마찬가지다. 확실하게 줄세우려는 것일까. 정권 신임을 바탕으로 막나가는 또다른 모습이다. 임기를 무사히 마친다면 이 청장은 어떤 인물로 기억될까. 조직 위상을 초라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앞선다면, 임기보전이 의미가 있을까. 그뿐만 아니다. 처신이 조직과 국민 기대와는 어깃장인 고위 공직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정권말기의 한심한 풍경들이다.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印 연쇄폭탄테러 42명 사망

    인도 남부 하이데라바드에서 25일 저녁(현지시간) 테러로 추정되는 연쇄 폭발사고가 일어나 적어도 42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다쳤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안드라 프라데시주(州)의 주도인 하이데라바드에서는 25일 오후 7시40분 룸비니 놀이공원에서 첫 폭발이 일어났다. 이어 30분 뒤에는 인근 시장에 있는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 ‘고쿨채트’에서도 출입구에 설치돼 있던 폭탄이 터졌다. 주정부 관계자는 이번 연쇄 폭발로 고쿨채트에서 32명, 룸비니 공원에서 10명이 각각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부상자 가운데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폭발 사건의 배후에 대해서는 엇갈린 관측이 나오고 있다. PTI 통신은 정보당국이 이번 사건의 배후로 방글라데시에 본부를 둔 이슬람 분리주의 무장단체 ‘하르카트-울-제하디 이슬라미(HUJI)’를 지목하고 있다고 전했다.HUJI가 배후로 추정되는 지난 5월의 사원 폭파 사건에도 같은 종류의 폭발물이 사용됐다는 것이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인구 700만 가운데 40%가 무슬림인 하이데라바드는 종교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 곳이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 5월에도 한 유서깊은 사원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5명이 숨졌으며 경찰은 당시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발포하기도 했다.하이데라바드(인도) 연합뉴스
  • 부시·푸틴 “분위기는 좋았지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분위기는 더할 나위없이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얻기엔 양쪽의 의견차가 너무 컸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박2일 ‘별장 회동’은 급속도로 냉각된 양국 관계에 약간의 온기를 불어넣는 데 만족해야 했다. 1·2일 이틀간 미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의 가족별장으로 푸틴 대통령을 초대한 부시 대통령의 손님접대는 극진했다. 아버지 부시는 공항까지 나서 푸틴을 맞았고, 영부인 로라 여사와 어머니 바버라 여사는 별장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푸틴은 이들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 부시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간단히 별장을 소개한 뒤 곧바로 아버지 부시의 모터보트에 푸틴을 태우고 주변 경관을 둘러보게 했다. 만찬에는 아버지 부시와 바버라 여사가 준비한 바닷가재 요리가 준비됐다. 세르게이 라프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저녁식사이후 이뤄진 두 정상간의 비공식 대화가 매우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2일 아침에는 팬케이크와 오믈렛으로 아침식사를 한 뒤 보트를 타고 대서양에서 낚시를 즐겼다. CNN은 이번 회담에서 이란 핵 문제와 미국 동유럽 미사일방어(MD)계획이 가장 중요한 현안이었다고 전했다. 또 북한 핵 문제와 이라크 및 코소보 사태 등 다른 국제 현안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미국의 지지를 호소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백악관과 크렘린궁 관계자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특별히 정해진 의제없이 모든 현안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며 특정한 현안이 타결될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고 밝혔다. 한편, 미·러 정상이 만난 부시 가의 별장 주변에는 이라크 전에 반대하는 시위대 1500명이 이틀에 걸쳐 “부시와 체니를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dawn@seoul.co.kr
  • 전국 곳곳서 ‘反 FTA’ 집회

    한·미FTA 추가 협상이 타결된 29일 전국에서 대규모 ‘반 FTA’ 집회가 열렸다. 서울 도심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된 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는 이날 오후 5시30분쯤부터 노동자, 농민, 학생 등 1만 4000여명(이하 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종로 일대에서 ‘한·미 FTA저지 범국민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오종렬 범국본 공동대표는 “FTA는 노동자에게 큰 불행을 안겨줄 것이다.”라면서 “단체행동권이 민주주의의 근간임에도 노무현 정권은 FTA 저지 투쟁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범국본측은 6시30분쯤 집회를 마친 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광화문사거리로 진입했다. 경찰이 주한 미 대사관 방면 10차선 도로에 저지선을 구축했지만 시위대가 광화문사거리 한복판을 점거하면서 종로2가, 시청, 사직터널 등 모든 방면의 교통이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시위대는 세종로와 을지로, 종로 일대에서 2000여명이 남아 게릴라식 시위를 벌이다 8시10분쯤 자진 해산했다. 앞서 민주노총은 오후 2시쯤부터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1만 2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6월 총력투쟁 전국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부산과 대구, 울산, 전주, 광주, 창원 등 전국 6곳에서도 1만 3900여명이 모여 집회와 행진에 나섰다. 경찰은 이날 광화문 등 서울 도심일대에서 교통 흐름을 방해하고 경찰을 폭행한 집회 참가자 5명을 집시법 위반 혐의로 연행해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임일영 강국진 이경원기자 argus@seoul.co.kr
  • [홍콩 반환 10년 현장을 가다] (상) 안정과 민주사이의 홍콩인들

    [홍콩 반환 10년 현장을 가다] (상) 안정과 민주사이의 홍콩인들

    오는 7월1일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금융·무역의 허브, 동양의 진주 홍콩의 밤거리는 계속 불야성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코스모폴리탄 홍콩인은 과연 중국의 공민(公民)에 머물고 말 것인가. 사회주의 중국에 맞선 민주의 보루는 어찌 될 것인가.1997년 전반 중국 회귀를 앞두고 쏟아진 이런 질문들에 10년이 지난 오늘 몇 개의 답변은 가능할 듯하다. 현지 탐방을 통해 3회에 걸쳐 홍콩 특집을 싣는다. 2005년 12월 홍콩에서 중대 사건이 발생한다. 막강 홍콩 경찰의 방어벽이 세계무역기구(WTO)체제 반대에 나선 한국의 원정 시위대에 무너졌다. 예고된 시위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을 사전답사까지 했던 홍콩경찰이지만, 시위대의 노련한 작전에 맥없이 1차 저지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시위대의 ‘밀기’에만 신경쓰다가 ‘밀었다, 당겨’는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도의 원리’에 우르르 앞으로 넘어진 홍콩 경찰들 위로 한국인 시위대의 진격 모습이 TV로 생생하게 전달되자 홍콩 사람들은 경악하고 만다.“한국 사람이야 ‘그 정도 갖고 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홍콩인들의 충격은 컸습니다. 그 일 이후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몰라요.” 홍콩 한인회 김구환 부회장의 말은 ‘안정’에 대한 홍콩인들의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홍콩인의 안정에 대한 집착은, 곧 ‘혼돈’에 대한 불안감의 반영이다. 홍콩의 최근 역사는 안정희구 성향을 잘 보여준다.1967년 노동 파업으로 시작돼 반식민지 운동으로 번졌던 반영(反英)폭동 때도 노동자 탄압이나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보다는 결국 시위대만이 혼란의 주범으로 각인된다. 사회 질서가 불안해지고, 자본이 홍콩을 빠져나가자 홍콩인 대다수는 시위대를 원망하게 된다. 이는 홍콩인들이 ‘안정’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실제 안정이 흔들리면 홍콩인들도 크게 흔들렸다. 홍콩 반환이 결정된 1984년 중국과 영국의 연합성명 발표 이후 본격화된 홍콩인의 해외 이주는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중국이 혼란에 빠져들자 절정을 이루게 된다. 캐나다 서부도시 밴쿠버가 돈 많은 홍콩인들의 집단 이주로 ‘홍쿠버’로 불리게 된 것도 이후의 일이다. 현재는 상황이 변했지만…. 굵직한 사건 때마다 ‘안정’은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홍콩인의 중국 본토 자녀 흡수 문제의 분수령이 됐던 2000년 홍콩 입경처 방화사건을 보자. 심사과정 등에서 심하게 모욕을 당한 일부 ‘대륙인(중국본토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불을 지르며 난동을 부린다. 그러나 홍콩인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홍콩을 혼란에 빠뜨릴지도 모를 ‘대륙인의 폭력’에 시선을 집중한다. 그 결과 대륙인이 홍콩에서 당한 인권모독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한 해 전만 해도 ‘홍콩인들이 본토에서 낳은 자녀는 홍콩인이 될 수 있다.’는 종심(終審)법원의 판결로 대륙에 남은 홍콩 자녀들의 입경이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위 난동으로 ‘폭도’,‘홍위병’ 등의 단어가 들먹여지자 여론은 험악해져 갔고, 판결은 허망하게 뒤집힌다. 안정이 기준이었다. 2003년 홍콩에서는 50만명이 모여 시위를 벌인다. 영국 식민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홍콩 정부가 국가전복행위를 금지한 국가안전법을 입법화하려 하자 회귀 기념일인 7월1일 시민들이 반대시위를 통해 이를 무산시킨다. 많은 이들은 여기서 민주주의의 단초를 찾는다. 행정수반 둥젠화의 하야와 직선제 요구가 본격 제기된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4년 국회의원 선거는 예상과 달랐다. 친중파(親中派)의 승리.“시민들이 중국과의 대화를 통한 ‘안정’을 바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언제 홍콩에 자유와 민주가 있었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영국 식민시기의 자유도 결국은 민주주의 없는 ‘시장의 자유’ 또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자유일 뿐인데, 보편적 자유인 양 찬양됐다는 얘기다. 주로 중국쪽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1997년 반환을 앞두고 영국 식민정부에 의해 진행된 정치개혁을 식민통치의 잔재를 남기려는 술책이었다고 비난한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정치전문 대기자 크리스 영은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홍콩의 민주는 중국과 영국이 홍콩문제를 해결한 80년대 중반 무렵에 싹이 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 식민정부는 홍콩 반환이 확정된 1984년부터 반환 직전까지 상당한 자치권과 국제적 자율성을 부여한다. 선거권·피선거권·정치참여권은 중국 반환 결정 이후 부분 도입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명예로운 퇴각을 위한 정치개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홍콩에서 만난 상당수 홍콩인들은 ‘민주화’에 대한 질문 자체에 민망한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그들은 대체로 “우리는 안정속의 번영을 원한다.”고 답했다.‘민주’라는 가치에 집착하지 않아 보였다. 진정한 민주와 자유가 없던 영국 식민 시절부터 ‘안정’된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번영을 누려 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 사진 홍콩 이지운특파원 jj@seoul.co.kr ■ ‘一國兩制’ 일거양득 효과 |홍콩 이지운특파원|‘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는 홍콩 반환을 앞두고 홍콩인뿐 아니라 영국 등 서방 세계를 안심시키는 주요 기제로 작용했다. 이는 나아가 대(對) 타이완 통일 원칙으로도 적용되고 있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티베트 문제에도 마찬가지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 귀국을 종용하는 당근,‘고도의 자치’도 일국양제의 변형이다. 왕전민(王振民) 칭화대 법학원 부원장은 “일국양제를 통한 통일 구상은 중국인의 통일관을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게다가 이는 아무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통일 비용을 크게 줄이는 효과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 만큼 홍콩에 대한 일국양제의 성공은 중국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이번 1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정치선전이 진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국양제는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것이다. 그는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사회주의를 핵심으로 하되 경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두 체제를 병행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당초 선전(深) 등 경제특구에서 적용했던 것이다. 일국양제 10년에 대해서는 일단 좋은 평가가 우세하다. 마거릿 베킷 영국 외무장관은 최근 홍콩을 방문,“지난 10년간 정치·경제적으로 약간의 부침이 있었지만 당시의 불길한 예언은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12년 전 홍콩에 대한 전망 보도가 잘못됐다고 시인하면서 홍콩 반환 10년의 변화상을 전하며 “홍콩은 아직 죽지 않았고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전했다. jj@seoul.co.kr
  • [씨줄날줄] 조총련 중앙본부/황성기 논설위원

    일본 도쿄의 지요다구 후지미초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중앙본부가 들어선 것은 1963년이다. 신주쿠에 있던 조선회관이 60년 우익세력의 방화로 소실되자 조선인 동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지었다. 일본과 국교가 없는 북한은 이 곳을 주일 대표부처럼 써왔다.725평의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10층인 이 건물은 언제나 경계가 삼엄하다. 반북 우익테러에 대비해 경찰이 중앙본부 앞에 상주한다. 자체 경비도 엄중해 건물 앞에서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곧바로 직원이 나와 제지하곤 했다. 건물에 들어서면 1층 로비에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 대형 그림이 걸려있다. 점심 시간이면 북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직원들은 치마저고리를 입는다. 일본 속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 셈이다. 2002년 9월 김정일 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시인 이후 조총련은 시련을 맞는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학생들이 폭행 당하는가 하면 중앙본부 앞은 반북 시위대로 시끄러웠다. 극우파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2003년 외국공관에 준해서 면제해 오던 고정자산세를 중앙본부에 물리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조총련은 최근 중앙본부 건물과 토지를 한 투자회사에 팔았다. 파산한 조총련계 신용조합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일부를 조달하기 위해서다. 건물은 조총련이 그대로 쓴다는 이면계약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매수자가 조총련에 우호적인 전직 공안조사청 장관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계약 자체가 백지화될 공산이 커졌다. 유형무형의 압력에 거래가 깨지면 중앙본부는 제3자에 넘어갈 수 있다. 일왕이 사는 ‘황거(皇居)’와 이웃한 중앙본부는 야스쿠니 신사 바로 옆에 있으면서 후지산이 보이는 1급지이다. 우파 세력들은 ‘신성한 장소’에 들어선 재일 조선인의 본산이 눈엣가시여서 쫓아내지 못해 안달인 모양이다. 납치문제가 터지기 전에는 무라야마, 하시모토, 모리 등 전직 총리나 자민당 간부들이 김일성, 김정일 생일과 북한 건국기념일에 초청받아 연회에 참석했던 곳이다.‘미래의 대사관’으로 여겼던 일본이다. 이제는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할 의지가 정말 없는 것인지 요즘 하는 일은 너무 심하다 싶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길섶에서] 6월 불볕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6월 ‘불볕’이다. 시청앞 잔디광장이 고요하다. 서울시 의회앞 시위대 확성기만 이따금 정적을 깬다. 오랜만에 CD가게에 들렀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를 골랐다. 그리스의 국민작곡가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그리스의 영혼이다. 하루라도 그의 음악을 듣지 않는 국민이 없다고 할 정도다.‘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눈에 들어온다. 이별 노래다. 민주화운동가를 사랑한 여인의 아픔이 담겼다.‘카테리나행 열차는 8시에 떠나네/…함께 나눈 시간들/밀물처럼 멀어지고/이제 당신은 오지 못하리’ 1967년 군사정권 시절의 곡이다. 이후 7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민주화 투쟁은 멈춤이 없었다.1000여회의 콘서트를 가졌다. 며칠 전 6월항쟁 20주년이었다. 젊은이들은 감흥이 있을까. 신문을 뒤적이다 보니, 가수 한대수가 첫 딸을 봤단다.59세다. 암울했던 시절 민주화를 갈구하다, 미국에서 집시처럼 지내다 5년 전 귀국했다.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등. 그의 노래는 당시 한 줌의 생명수였다. 그는 “조국이 품어준 결과”라고 감사했다. 문득 불볕이 살갑다. 삶은 언제나 감동인 것을.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씨줄날줄] 시위 반대 시위/함혜리 논설위원

    지난 2005년 봄 프랑스 전역은 새 고용법에 반대하는 시위와 파업으로 몸살을 앓았다. 정부가 청년실업 대책으로 내놓은 최초고용계약(CPE)제에 반발한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 정부를 압박했다.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저지하는 경찰과 이에 맞서 돌과 화염병, 보도블록 등을 던지며 저항하는 학생들…. 폭력시위가 빈발하자 파리의 소르본 대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휴업에 들어갔다. 시위가 장기화되자 한편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파리의 팡테옹 광장에서 250명의 학생들이 학습할 권리를 외치며 시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어 학생과 일반 시민 2000여명은 파리시내에서 가두행진을 하며 대학봉쇄는 학습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시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보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신기하기만 했다. 국내에서도 최근 시위 반대 시위가 벌어져 눈길을 끌었다. 그제 경기도 과천의 정부종합청사 앞 운동장에서 하얀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 30∼40대 주부 200여명이 모여 학습권 보장을 요구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모의수능고사가 치러진 이날만큼은 시끄러운 집회를 하지 말아 달라는 뜻으로 과천 중앙고의 학부모들이 뭉친 것이라고 한다. 과천 중앙고는 언제부터인가 공식 집회장으로 변한 청사 맞은편 운동장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있다. 북과 꽹과리, 확성기를 동원해 구호와 함성, 운동가요를 쏟아내는 시위와 집회 때문에 이 학교 학생들은 수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이 운동장에서 모두 75차례 집회와 시위가 열렸던 것을 감안하면 중앙고 학생들은 닷새에 한 번꼴로 집회소음에 시달린 셈이다. 그동안 학교측과 학부모들이 관계당국에 소음대책을 수없이 요구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불법 집회와 시위도 여전하다. 오죽하면 어머니들이 시위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일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들은 ‘내 권리 주장도 중요하지만 남의 권리 배려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사교육비에 등골 휘고, 거리에서 시위해야 하고…. 대한민국 학부모들은 이래저래 자식 키우기가 힘들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8) 당시 외신기자가 본 6월 항쟁

    [6월 항쟁 20주년 ‘그날의 함성’ 그 이후] (8) 당시 외신기자가 본 6월 항쟁

    시위대와 전투 경찰의 벼랑끝 대치, 호헌철폐 구호와 최루탄으로 뒤덮였던 1987년 6월의 거리에는 언제나 푸른 눈의 기록자들이 있었다. 독재 정권에 재갈이 물렸던 국내 언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현장을 누비며 민주화에 대한 한국 민중의 목마름을 전세계로 타전했던 외신 기자들이 그들이다.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한국을 다시 찾은 스펜서 애덤 셔먼(51) 전 UPI통신 한국지국장과 로렌스 슈크 맥도널드(53) 전 AFP통신 기자를 7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나 87년의 뜨거웠던 여름에 대해 들어봤다. 두 전직 저널리스트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8∼9일 개최하는 ‘국제언론인 세미나’의 토론자로 초대됐다.87년 봄 나란히 종로구 안국동 사무실에 부임하면서 20년 지기의 정을 이어온 이들은 “인터뷰는 많이 해봤지만 인터뷰 당하기는 처음이라 떨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87년 6월은 내 생애 가장 극적인 기억” 87년 6월은 이방인들의 뇌리 속에 어떤 잔상으로 남아 있을지가 가장 궁금했다. 셔먼은 “6월23일쯤부터 이상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제2의 광주 사태가 될 것이라는 등 갖가지 소문에 뒤숭숭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하지만 29일 노태우씨가 6·29선언을 했고 군사 독재는 종식됐다. 한국인의 바람이 실현되고 자유를 얻은 그날이, 한국인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맥도널드는 울산 등에서 파업 현장을 취재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경찰이 최루탄을 쏘아대며 각종 진압 장비로 압박하면 노동자들도 중장비를 동원해 맞섰다. 마치 전투를 앞두고 두 나라의 군대가 대치한 것 같았다. 중간에서 숨가쁘게 취재를 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느끼곤 했다.”고 회상했다. 군부독재가 막바지로 치닫던 당시 한국의 상황은 외신기자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셔먼과 맥도널드는 “정보요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이 한 달에 한 번씩 사무실에 들러 동정을 살피곤 했다. 그들은 늘 우리를 의심했고 어떻게든 통제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소속사의 한국인 동료들과 기자들이 시위 현장으로 안내하곤 했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학생·가정주부 등 민중의 힘 크게 작용” 6월 항쟁의 성과에 대해 두 사람은 의견을 같이했다.“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피플파워로 민주화를 이뤄냈다고 본다. 학생들은 물론 회사원, 가정주부, 상인 등 민중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고 입을 모았다. 다른 아시아의 독재정권들이 꿋꿋하게 버틴 것과 달리 한국에서 어느 정도 민주화 운동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으로 88서울올림픽을 꼽았다. 맥도널드는 “전두환(전 대통령)은 서울올림픽 유치가 자신에게 ‘왕관’을 씌워줄 거라고 생각했다(장기 집권의 든든한 견인차가 될 것이라는 의미). 하지만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을 앞두고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군사 정권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한 측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수출지상주의 경제정책도 본의 아니게(?) 민주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셔먼은 “내수 위주의 폐쇄적인 경제정책을 유지한 필리핀 등과 달리 수출에 목숨을 건 한국의 독재자들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美 언론의 잘못된 길을 답습하지 않길…” 두 사람이 90년대초 항공편 환승을 위해 하루 정도 머물렀던 것을 제외하면 20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난 4일밤 입국해 서울 곳곳을 누비며 옛 기억을 더듬었던 셔먼과 맥도널드가 가장 놀란 점은 일본 식민지배의 잔재인 건축물들이 철거되고 도심이 ‘리빌딩’됐다는 점이다. 반면 80년대 후반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강남이 역설적으로 일본 도쿄의 긴자처럼 변한 것 같다고 이들은 밝혔다. 기자실 통폐합 논란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기자 생활을 했던 셔먼이 입을 열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기자실 시스템이 비슷하다고 알고 있다. 일본의 기자단은 경쟁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며 정부와 유착돼 있는 끔찍한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맥도널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해 말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인터넷 매체의 발달 등에 따라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와 언론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셔먼은 “미국의 미디어는 거대 자본에 잠식되면서 독립성을 잃어가고 있다. 자본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면서 “역동적인 민주 사회인 한국은 미국 언론이 저지른 과오를 답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맥도널드도 “저널리스트는 일체의 외부 간섭으로부터 독립된 영혼을 가져야 하며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글 사진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6·10항쟁’ 통한 언론 반성과 역할 “6월 항쟁은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하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는 내용의 6·29선언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제 언론은 6월 항쟁의 정신을 되새기고 그 부채를 갚아야 할 시점입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7일 언론재단·기자협회·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6·10항쟁 20주년, 언론의 반성과 역할’ 토론회에서 한국 언론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했다. 김 교수는 ‘6·10항쟁의 정신과 한국언론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글에서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통해 언론이 진실을 찾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 5공 보도지침에 대한 작은 반란이 시작됐다.”면서 “앞으로 언론은 정의 구현과 진실 추구, 인권 수호, 민주주의로 요약되는 6월 항쟁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기자협회가 지난해 8월 전국 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신뢰하는 언론사가 없다.’는 답변이 무려 45%에 달하는 등 일선 기자들조차 언론을 불신한다면 누가 언론을 신뢰하겠느냐.”면서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로 언론인을 위한 윤리강령과 보도강령 준수를 고용의 전제 조건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6·10항쟁 정신 계승을 위한 5가지 제언’을 통해 언론의 자기 반성과 다짐을 요구했다. 그는 “세월이 바뀌었지만 권력 기관이나 출입처 보도자료에만 충실하며 영웅 만들기와 신화 창조에 앞장서는 관행은 여전하다.”면서 “그런 보도 태도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 ‘육사의 혼이 빚은 지도자’로 홍보했던 5공 시대 언론이 떠올라 참담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진실 추구는 게을리하면서 호들갑만 떠는 것은 한순간 눈길을 잡을 수는 있지만 6월 항쟁 정신에는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난해 일심회 사건으로 구속된 장민호씨나 2003년 송두율 교수 구속 사건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간첩’이라고 단정짓는 보도를 내보냈다고 지적하면서 “정치적 편향이나 이념 문제로 인권이 무참하게 짓밟혀 여론 재판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언론은 어떤 경우에도 인권 수호의 보루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영방송이 상업주의에 물드는 것 아니냐는 뼈아픈 충고도 있었다. 그는 “5공화국 당시 공영방송은 ‘땡전뉴스’로 시청자를 기만했고 이런 권언유착의 폐해는 국민이 떠안아야 했다.”면서 “이제는 권언유착 문제가 해소된 대신 일부 상업주의 폐해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내부감시 시스템 구축과 조직내 대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김 교수는 “언론사는 홍보기관이 아니고 진실 추구를 생명으로 한다.”면서 “6월 항쟁의 이면에는 언론으로부터 진실에 목말라했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던 만큼 진정한 민의의 대변자, 주장보다 사실에 충실하고 과장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말을 맺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온실가스 2050년까지 절반 감축”

    |파리 이종수특파원|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7일(이하 현지시간) “G8(서방 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들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독일 북부 휴양도시 하일리겐담에서 이틀째 속개된 G8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큰 성공’이란 표현을 쓰면서 “기후변화 대책과 관련한 논쟁을 처리하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각국 정상들이 기후변화와 관련한 향후 협상의 구체적인 틀을 유엔이 만든다는 데 합의했다.”며 “오는 12월 발리에서 열리는 유엔 주요국가 회동에서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후변화 대책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량을 정하는 데 반대해서 난항이 예상되던 의제였다. 그러나 6일 회담장에 도착한 부시 대통령이 “메르켈 총리와 협력할 ‘강력한 의지’가 있다.”고 밝혀 일각에서는 접점을 찾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결국 이날 회담에서 G8 정상들이 온실가스 50% 감축에 합의함으로써 큰 고비를 넘겼다. 아울러 합의를 이끌어낸 메르켈 총리의 국제적 위상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기지 설치를 둘러싼 거친 공방을 주고받았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양자 회담을 가졌다. AP통신은 이날 푸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기존 지역이 아닌 제3의 장소에 양국 공동의 레이더 기지 설치를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대체지로 제시한 곳은 중앙아시아의 아제르바이잔으로 드러났다. 푸틴 대통령은 “레이더 시스템을 아제르바이잔에 설치한다면 반대를 철회하겠다.”고 밝혀, 미국이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각국 정상들은 이날 오전과 오후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세계 경제의 성장과 책임 ▲외교 현안 ▲기후변화와 에너지 효율성 ▲도하개발라운드 추진 방안을 놓고 토론했다. 그러나 회의장 바깥에서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았다. 반세계화 단체들은 이날도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1만명의 시위대는 로스토크 공항에서 회담장으로 가는 모든 도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이어갔다. 또 프레스센터가 설치된 퀼룽스보른에서 하일리겐담으로 가는 협궤 철도도 봉쇄했다. 과격한 시위대 수백명은 회의장 밖 12㎞에 둘러친 펜스 앞까지 몰려와 시위를 벌였다.vielee@seoul.co.kr
  • ‘동유럽 MD’ 미·러 氣싸움 가열

    |파리 이종수특파원|푸틴은 미국을 향해 날을 세우며 갈수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부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체코 등 동유럽 미사일방어(MD) 순방에 나섰다. 이 와중에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중재하는 데 곤경에 처했다. 미국의 동유럽 MD 체제 구축을 둘러싼 미·러의 기싸움도 점입가경이다.6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리는 G8(서방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러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핵전쟁’까지 언급할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다. ■ 러시아-”절대 안돼” ●푸틴 “北·이란, 美 공격할 로켓 없다” 푸틴 대통령은 3일 모스크바 인근 자신의 농장에서 가진 회견에서 미국의 MD 시스템을 겨냥,“북한·이란은 미국이 요격해야 할 만큼 (고성능)로켓을 확보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의 MD시스템 구축 명분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핵전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발언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푸틴의 발언은 행동을 강행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기보다는 강력한 외교적 경고를 담고 있는 수사지만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란 평가다. 푸틴은 “미국이 계획을 바꾸지 않을 경우 ‘보복적 수단’이 취해질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놓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세계 전략균형을 흔들 것” “새 군비경쟁과 냉전시대를 초래할 것” “유럽을 ‘화약통’으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까지 냉전 시대의 미·러 관계를 방불케 한다. ■ 미국-마이웨이 ●부시 “냉전 끝나… 러시아 적 아니다” 그렇지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예정대로 4일 MD기지 설치를 협의하기 위해 동유럽 순방을 강행했다. 부시는 5일 “동서 냉전은 끝났고 러시아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하며 푸틴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부시 대통령은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과 협의했고 G8회담 마지막 날인 8일 폴란드도 방문한다.4일 첫 방문지 체코에 도착한 부시를 맞이한 것은 수백명의 반미 시위대였다.‘부시는 반성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대는 프라하 성 인근 대형 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또 수백명의 학생들이 미 대사관 인근에서 반미 구호를 외치며 힐탑 성까지 행진했다. 체코 국민 61%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사일 방어기지가 들어서는 데 반대했다.57%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체코인들은 MD 레이더 기지를 세우더라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통제 아래 둬야 한다며 미·러 대결을 부담스러워했다. ■ EU-눈치보기 ●EU, 중재안 마련에 속 태워 상황이 악화되자 발등의 불은 EU 회원국들에 떨어졌다.G8회담 참가국인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은 양국 갈등이 유럽정세에 악영향을 미칠까 중재안 마련에 가슴을 태우고 있다.EU 순회의장국이자 G8회담 주최국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조심스러운 자세로 상황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고 현지언론들은 전했다. 그녀가 이끄는 기독민주당 소속 칼-테오도르 주 구텐베르그 의원도 “지금은 푸틴을 자극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중재에 적극적 의지를 보였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말을 주의깊게 듣겠다. 솔직한 대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장 밥티스트 마테이 외무부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의 발언으로 초래된 우려를 완화하기 위한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등 다급한 심정을 표출했다. 미·러 갈등에 결국 피해를 볼 당사자는 EU 자신들이란 생각이 EU 주요 국가들의 중재 행보를 재촉하고 있다고 현지언론들은 전했다. vielee@seoul.co.kr ■ 푸틴 최근 발언 ▲“미국, 동유럽 MD구축 강행땐 핵전쟁 촉발할수도”(6월 3일 서방 주요언론 회견) ▲“미,MD구축은 러시아 겨냥한 것”(6월 3일 서방 주요언론 회견) ▲“나는 간디 이후 유일한 민주주의자”(6월 3일 서방 주요언론 회견) ▲“미국이 군비경쟁 나서도록 러시아 자극”(6월 1일 서구 언론 기자회견) ▲“미국이 동유럽을 신무기로 가득 채우고 있다”(5월 31일, 그리스 대통령 회동) ▲“자기 의사를 강요하는 외교정책은 제국주의”(5월 31일 기자회견) ▲“미국의 동유럽 MD 구축은 유럽을 화약통으로 만들려는 기도”(5월 30일 포르투갈 총리 회동) ▲“미국의 MD 구축은 새 군비경쟁 가속화 가능성”(5월 24일 오스트리아 대통령 회담)▲“인권을 중시하는 유럽연합이 왜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 인권은 거론하지 않는가?”(5월18일 EU와 정상회담)
  • ‘글렌이글스의 약속’ 못지킨 G8

    ‘글렌이글스의 약속’ 못지킨 G8

    #장면 1:2005년 7월 영국 글렌이글스에서 개막된 ‘서방 선진7개국+러시아(G8) 정상회의’.8개국 정상들은 2010년까지 아프리카 원조규모를 연간 500억달러로 늘리고 42개 빈곤국의 부채를 탕감한다고 선언, 박수를 받았다. #장면 2:지난 2일 영국 런던 템스강변에서 수 천명의 시위대가 “G8, 세계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G8 정상들이 ‘글렌이글스의 약속’을 2년이 지나도록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탕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옥스팜 “전세계 원조규모 10년 만에 첫 감소” 6일 독일 휴양지 하일리겐담에서 열리는 ‘G8 정상회의’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반(反) 세계화’ 시위가 확산되고 8명의 정상들은 둘레 12㎞ 철조망 안에서 ‘그들만의 회담’을 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주창했지만 올해도 레토릭(수사)에 그칠 것이란 게 중론이다. 영국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은 4일 지난해 G8의 원조 규모는 한해동안 각국이 사치재에 쏟아부은 돈보다도 형편없이 적다고 자성론을 전했다. 국제 구호단체인 옥스팜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원조 규모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G8이 2005년 연간 500억달러 증액키로 약속한 원조 규모는 목표치의 10%만 이뤄졌다. 아프리카 지원금은 2004년 이후 2년 동안 2%가 늘었다. ●G8 작년 생수 소비액 580억弗… 원조액의 3배 반면 G8이 지난해 생수에 쓴 돈은 아프리카 전체 원조금인 180억달러의 3배가 넘는 580억달러다. 같은 기간 군비로 1조달러를 퍼부었다. 인디펜던트는 영국인이 지난해 와인과 샴페인을 마시는 데 쓴 돈은 원조금의 2배가 넘으며 일본은 명품 소비에, 프랑스는 향수, 독일은 구두, 캐나다는 맥주를 마시는 데 지출한 돈이 더 많다고 꼬집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선진국의 대외 공적개발원조(ODA)가 전년 대비 5.1% 감소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국민총소득(GNI) 대비 원조액 비율도 0.05%로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 아프리카발전위원회(APP) 의장조차도 올해 G8 회담에선 어떤 새로운 약속도 기대하지 않으니 기존의 약속을 지켜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올해도 ‘화려한 공약´ 쏟아내 따가운 눈총 G8의 ‘화려한 공약’은 올해도 쏟아지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2008년에 원조 예산을 7억 5000만달러 더 늘리고 향후 4년 동안 30억달러를 추가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9년까지 ‘에이즈퇴치 긴급프로그램(PEPFAR)’ 예산을 두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개발 원조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잠비아의 도시 지역에선 무료 의료가 시행되고 있다. 가나는 전 어린이에 대한 의무 교육을 시작했고, 말라위는 매년 4000명의 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아프리카 전체 에이즈 환자의 4분의 1인 130만명이 치료를 받았고 그 중 25만명은 지난해 목숨을 건졌다. 그럼에도 G8을 왜 비판할까. 옥스팜 등 시민단체들은 ‘글렌이글스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지난해에만 50만명의 목숨을 더 구할 수 있었다고 개탄한다. 전 세계 부유한 국가들의 국민 1인당 1년에 1달러(928원)만 지원해도 ‘글렌이글스의 약속’은 지켜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8명의 정상 여러분. 이번 회담에선 사진 찍으며 만찬만 하지 말고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고통받는 지구촌 약자들을 떠올려 보세요.”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황광우 지음

    한국의 1980년대는 사람들의 이름에 시대의 흔적을 새겼다. 평범한 이름 석자가 ‘민주화의 상징’이 되기도 했고,‘빨갱이의 수괴’가 되기도 했다. 수많은 가명과 필명이 탄생했고, 작명 과정에서 후일담이 넘쳐났다. 황지우 시인의 동생인 황광우(49)는 ‘정인’ 혹은 ‘최윤석’으로 불렸다. 때론 ‘조현업’으로 불렸고, 때론 ‘살로우만’이라고도 불렸다.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창비 펴냄)는 황광우가 이름을 바꿔가며 살아야 했던 시대를 그린 자전적 초상화다. 황광우가 호명한 사람들에 대한 삶의 기록이고, 호명 받은 사람들의 기억으로 재생된 펄떡거리는 역사다. 한국 현대사의 상흔이자 진보의 동력이었던 두 꼭짓점,80년 5월과 87년 6월을 찍은 무채색 다큐멘터리다. 황광우의 이름은 80년대 곳곳에 발자국을 찍었다.78년 ‘서울 6개 대학 연합시위’에 연루돼 군사재판을 받았고,80년 ‘서울의 봄’ 땐 서울대 총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다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제적됐다.85년 구로동맹파업 땐 ‘학출’(대학생 출신 위장취업자) 노동자로 공장을 멈췄고,87년 6월항쟁 땐 최루가스 안개 속에서 항쟁을 주도했다. 황광우에게 80년대는 젊음의 시대였다. 젊음의 상징은 ‘돌격’이다. 일단 부딪고 아픔은 부서진 뒤 생각한다. 아픈 줄 모르고 부서져간 이름들을 황광우는 하나씩 기억해냈다. 광주항쟁 당시 머리에 총을 맞고도 기적처럼 살아난 김상호, 광주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돼 13년간 망명생활을 해야 했던 윤한봉,80년대 중반 목숨 걸고 조직 비밀을 지켰던 인천 노동운동의 리더 전희식, 감옥을 수없이 들락거리다 약혼식마저 감옥에서 해야 했던 김창한…. 황광우는 역사에서 ‘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500명의 시위대가 1000명의 전경들에게 밀렸던 몇 달 전”을 기억하며 87년 6월의 황광우는 “1000명의 전경들이 1만명의 시위대열에 에워싸여 버렸다.”며 감격한다. 오늘의 민주화는 소수의 스타가 아닌 독재권력에 ‘떼로 덤빈’ 다수의 무명인들이 이룩한 ‘수의 승리’란 것이다. 황광우도 분명 스타였다. 정인이란 필명으로 쓴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은 당대 젊은이들의 의식을 때린 필독서였고,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을 마지막으로 현실정치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는 진보정치 진영의 촉망받는 이론가였다. 그런 그도 몇몇 스타운동가들이 ‘386’이란 이름을 전유하며 순식간에 명멸하는 지금, 거리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이 내뱉었던 뜨거운 호흡을 그리워한다. 윤동주의 시어를 빌려, 황광우는 오직 말한다.“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1만1000원.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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