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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버스 불태우려 하고… 물대포 조준 발사하고

    지난 14일 노동계가 주도한 민중총궐기 대회가 당초 우려를 뛰어넘은 격한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폭력시위에 대해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동시에 경찰의 진압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평화적 시위를 공언했던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측 주장과 달리 이번 주말 도심시위는 지난해 노동절 이후 처음으로 횃불까지 등장한 가운데 일부 시위대가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고, 보도블록이나 벽돌을 경찰들을 향해 던지는 등 폭력적인 양상을 보였다. 일부는 차벽을 부수기 위해 경찰버스를 밧줄로 잡아당기거나, 경찰을 향해 쇠파이프와 각목을 휘둘렀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 시위 참가자는 경찰버스의 주유구를 열어 불을 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시위가 막바지에 달한 오후 9시 40분쯤에는 약 40∼50명이 횃불을 들고 경찰 차벽 앞에 줄지어 서는 장면도 연출됐다. 이 때문에 광화문역 일부 출구가 봉쇄되는 등 이날 인근을 찾은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대학원생 이모(29)씨는 “평화적으로도 충분히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데 굳이 시민들에게 불편을 가하고 애꿎은 경찰들을 폭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한모(53)씨는 “요즘 같은 때 경찰버스를 부수고 경찰을 향해 쇠파이프를 휘둘러대는 것은 주장하는 바가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광화문광장 집회가 허가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집회를 하고 싶다면 소송 등 법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했어야 했다”며 “쇠파이프·밧줄 등을 동원해 굳이 광화문광장으로 진격하겠다는 것 자체가 시위대의 폭력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측이 차벽을 설치하는 등 집회를 차단한 것이 참가자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해 폭력적인 양상을 부추겼다는 주장도 나온다. 차벽은 2011년 헌법재판소가 ‘과도한 행정권 행사’라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경찰은 서울광장 주변 도로까지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했지만 광화문광장 집회는 불허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이 사전집회가 시작될 무렵부터 광화문 일대에 차벽을 설치했는데 이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아무것도 못하게 하겠다’고 위협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는 국가가 먼저 국민들에게 폭력을 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헌재는 차벽의 경우 국가기관이 보호받아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만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했는데, 광화문광장 자체를 보호받아야 할 국가기관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살수차가 참가자들을 향해 캡사이신 섞인 물대포를 직사하거나 조준 발사한 것에 대해서도 ‘관계 법령 위반’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랑희 인권단체연석회의 공권력감시대응팀 활동가는 “경찰이 장비사용 규정이나 지침을 어겼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2008 촛불집회’ 후 최대 규모… 폭력 집회 ‘강경’으로 대응

    ‘2008 촛불집회’ 후 최대 규모… 폭력 집회 ‘강경’으로 대응

    2008년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이후 최대 규모로 열린 주말 도심 집회가 결국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얼룩졌다. 지난 14일 오후 2시쯤부터 서울광장, 대학로, 서울역광장 등에서 사전 집회를 벌인 참가자들은 오후 4~5시 사이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광장을 출발한 노동자대회 참가자 중 1만 5000여명이 행진했고 서울역과 구 삼성본관 앞에서 집회를 벌인 농민대회, 빈민·장애인대회 참가자 중 1만 8000여명, 대학로 일대에서 시민대회, 청년·학생대회에 참가했던 인원 중 6000여명이 합류하기 위해 행진했다. 경찰은 이보다 앞선 오후 3시 30분쯤부터 경찰 버스를 이용해 세종대로의 청계천 부근과 광화문사거리에 2단계 차벽을 설치해 집회 참가자들의 광화문광장 진출을 차단했다.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 뒤편으로도 경찰 버스를 대기시켰다. 경찰은 이날 경찰 버스 700여대, 차벽 트럭 20대, 살수차 19대를 동원했다. 시민 통행을 위해 청계천 소라탑 부근에 열어 놨던 통로는 오후 4시쯤 닫혔다. 같은 날 오후 4시 40분쯤엔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거의 모든 통로가 막혔다. 세종대로 코리아나호텔 앞과 종로구청사거리 부근에서 총 3만 3000여명이 경찰 차벽에 접근하면서 충돌이 시작됐다. 차벽에 막힌 시위대는 경찰 버스를 파손하고 경찰관을 쇠파이프로 폭행하는 등 과격한 모습을 보였고, 경찰은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와 캡사이신 분무기로 대응했다. 시위대가 던진 벽돌에 한 언론사 기자가 얼굴을 맞아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시위대 규모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충돌은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계속되면서 검거된 시위 참가자가 속출했다. 15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시위 현장에서 경찰관 폭행과 장비 파손 등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총 51명이 검거됐다. 이들은 서울 7개 경찰서에 분산 호송됐으며 고등학생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입건됐다.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를 직격으로 맞은 농민 백모(68)씨가 뇌출혈을 일으켜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으로선 백씨의 수술에 최선을 다했다”면서 “뇌 안의 혈액이 모두 제거된 상태지만 깨어날 가능성과 깨어나더라도 뇌 기능이 얼마큼 회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은 “전날 시위 과정에서 살수에 의해 농민 부상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빠른 쾌유를 빈다”면서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청문감사관을 팀장으로 정확하고 철저하게 사고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백씨가 강한 물살에 쓰러진 뒤에도 계속 물대포를 맞다 다른 집회 참가자들에게 구조되는 모습이 영상으로 찍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경찰의 유감 표명에도 불구하고 폭력 진압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불법 집회와 재판 불응 혐의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된 한상균(53)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 전날 민중총궐기대회 현장에 나타나 그를 체포하려는 사복 경찰 수십명과 이를 막으려는 노조원들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14일 오후 1시쯤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연 한 위원장은 경찰의 체포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노조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서울광장으로 이동해 사전 집회와 광화문광장 행진에 모두 참석했다. 경찰은 충돌이 거칠어지면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한 위원장 체포를 포기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법질서·공권력 중대 도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동”

    “법질서·공권력 중대 도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동”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가 과격 시위 양상을 보인 것과 관련해 “불법 시위를 주도하거나 배후 조종한 사람, 극렬 폭력 행위자는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15일 담화문을 통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과격 폭력 시위가 또다시 발생했다.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화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장관은 “정부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집회를 최대한 보장했으나 일부 시위대는 쇠파이프 등 불법 시위용품을 미리 준비하고 폭력 시위에 돌입했다. 공무를 수행하는 경찰관을 쇠파이프로 내려치는 등 폭력을 자행했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특히 “옛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반대하는 주장과 자유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 했던 주범인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며 “법질서와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김 장관은 “정부는 불법 집단행동이나 폭력 행위에 대해 ‘불법필벌’의 원칙에 따라 빠짐없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경찰버스 파손과 같이 국가가 입은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 민사상 책임도 함께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김 장관이 민주노총을 거론한 것은 이번 집회의 진앙지가 민주노총이라는 정부의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면서 “검경의 수사력이 민주노총 쪽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사설] 쇠파이프·횃불 등장한 불법시위, 이게 법치국가인가

    대규모 시위가 열린 지난 주말 서울의 광화문 일대는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민주노총·전교조 등 53개 단체로 구성된 ‘민중 총궐기 투쟁본부’가 주도한 그제 시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폭력과 불법이 난무했다. 시위대는 쇠파이프로 경찰차를 내리치고, 차벽을 향해 횃불을 던졌다. 경찰은 캡사이신과 물대포를 뿌리며 강공 진압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은 60대 노인이 뇌출혈로 의식불명 상태까지 가는 불상사도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1980년대 시위 현장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광경에 할 말을 잃는다. 이게 과연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시위에 참가한 인원은 8만여명(경찰 추산)으로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집회와 시위는 헌법에서 보장된 국민의 권리이다. 하지만 헌법상의 기본권이라 하더라도 이런 불법·과격 시위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마침 이날은 서울 소재 11개 대학에서 10만 명 이상의 수험생이 대입 논술 시험을 치르는 토요일이었다. 무단 도로 점거와 소음 등으로 시민의 일상을 망쳐놓고 그것도 모자라 수험생들과 학부모들까지 마음 졸이게 한 시위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시위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노동개혁 및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비정규직 보호 등을 요구했다. 진보 단체들로서 내세울 수 있는 이슈들이고, 국민들의 공감을 살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과거 시위꾼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인 정권을 뒤엎자는 그들의 외침은 시위의 명분과 목적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집회에 참가한 53개 단체 중 ‘통진당 해산을 반대’하는 단체 19곳과 법원이 이적단체로 규정한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범민련 남측본부 등 2곳이 포함된 것만 봐도 그렇다.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시키려 한 통진당의 해산을 반대하고, 그 주범이자 내란 음모혐의까지 받은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해괴망칙한 정치적 구호까지 등장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통진당은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 등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과 맥을 같이해 온 정당이라 할 수 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정당 해산이 이뤄진 이유다. 그런데 이런 통진당 세력의 부활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우리 법질서와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으며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런 과격시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먼저 불법적인 폭력 시위를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 툭하면 정권퇴진 운운하며 흉기나 다름없는 쇠파이프·횃불을 들고 시위를 해야 하나. 경찰도 과잉 진압 논란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과격 시위가 과잉 진압의 빌미가 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경찰은 공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시위 농민이 사망한 데 대해 대국민 사과했던 일이 있지 않은가. 정부는 어제 담화문을 내고 “불법 시위 관련자에 대해 엄벌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말로만이 아니라 폴리스라인을 벗어나면 국회의원이라도 수갑을 채우는 미국처럼 철저하게 ‘무관용의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 물대포 맞은 농민 “수술 후 사경 헤매고 있다”…경찰 반응은?

    물대포 맞은 농민 “수술 후 사경 헤매고 있다”…경찰 반응은?

    물대포 맞은 농민 “수술 후 사경 헤매고 있다”…경찰 반응은? 물대포 맞은 농민14일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에 참가한 한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수술 후에도 중태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집회를 주최한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15일 오전 농민 백모(69)씨가 입원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무차별로 고압 물대포를 난사한 결과 백 농민이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주장했다.조영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총장은 “관련 법령에 따르면 살수차는 직사하더라도 가슴 이하 부위로 해야 함에도 백씨는 머리 부분을 즉각 가격당했고 넘어진 상태에서도 20초 이상 물포를 맞았다”면서 “이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의도”라고 덧붙였다.투쟁본부에 따르면 백씨는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현재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며, 며칠간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태로 전해졌다.백씨는 경찰버스를 밧줄로 끌어당기다 경찰이 발사한 물대포에 직격으로 맞아 쓰러졌다.백씨는 전남 보성군 웅치면에서 출생했다.1989~91년 가톨릭농민회 광주전남연합회장,1992~93년 전국부회장을 지냈다.보성군 농민회 등에 따르면 백씨는 1970년대 중앙대 학생 운동권 출신으로 몇 차례 제적당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대 초반 고향인 보성군으로 귀농하고서는 농민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경찰은 백씨가 크게 다친 데 대해 유감의 뜻을 전하면서도 살수차 운용은 과잉 진압이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백씨가 크게 다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빠른 쾌유를 빈다”고 말했다.구 청장은 “그 즉시 청문감사관을 투입해 백씨에게 살수한 경찰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지만 물대포 살수와 관련한 내부 규정을 어긴 사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백씨가 쓰러지고 나서도 물대포에 맞고, 그를 도우려는 시위대에게까지 물대포를 직사한 사실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내용은 정확한 경위를 파악해봐야 한다”며 “물포를 쏜 경찰관은 백씨가 넘어진 것을 보지 못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해명했다.“경찰이 과잉진압한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 청장은 “시위대가 극렬 불법 행위를 하면서 경찰 차벽을 훼손하려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살수차 운용 등은 과잉진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쇠파이프 시위 물대포 진압…도심 아수라장

    쇠파이프 시위 물대포 진압…도심 아수라장

    서울의 한복판이자 대한민국의 중심부인 광화문 일대가 주말 저녁부터 자정 무렵까지 시위대의 함성과 쇠파이프, 경찰의 방패와 물대포가 뒤섞이며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이 세운 차벽에 길이 막히자 일부 시위대가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충돌이 격화됐다. 많은 사람이 다치고 연행됐다. 경찰버스 파손 등 재산 피해도 상당했다.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을 내걸고 열린 민중총궐기 대회에는 10만명 안팎의 인원(주최 측 주장 13만명, 경찰 추산 6만 8000명)이 참가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 차벽에 길이 막히자 과격한 양상을 보였다. 일부 참가자들이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고 미리 준비한 밧줄로 경찰버스를 끌어내 파손시켰다. 일부는 횃불을 들고 나타나 심야까지 경찰과 대치했다. 본집회 시작 전 차벽으로 광화문광장 일대를 원천 봉쇄한 경찰은 쇠파이프와 각목 등이 등장하자 캡사이신 살수총과 물대포로 맞섰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백모(68)씨가 얼굴에 물대포를 직격으로 맞으면서 쓰러져 긴급 수술을 받았다. 집회 참가자 49명이 입건됐고 시위대 29명과 경찰 113명 등 142명이 부상했다. 경찰버스 50여대가 파손됐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이날 담화문을 통해 “불법 시위를 주도하거나 배후 조종한 자, 극렬 폭력행위자는 엄벌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민중총궐기 대회, 4만 7000여명 규모… ‘수배중’ 한상균 위원장도 합류

    민중총궐기 대회, 4만 7000여명 규모… ‘수배중’ 한상균 위원장도 합류

    민중총궐기 대회, 4만 7000여명 규모… ‘수배중’ 한상균 위원장도 합류민중총궐기 대회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물대포와 캡사이신, 플라스틱 의자와 생수병이 난무했다.  이날 오후 2시쯤부터 서울광장, 대학로, 서울역광장 등에서 노동·농민·청년 학생·빈민 장애인 등 부문으로 나눠 집회를 벌인 참가자들은 4시~5시 사이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광장을 출발한 노동자대회 참가자 4만 7000여명이 청계천 부근 세종대로에 설치된 1차 저지선에 도착한 오후 4시 50분쯤 충돌이 시작됐다.  시위대가 경찰버스에 밧줄을 묶어 잡아당기자, 경찰은 2대의 살수차를 이용해 물대포를 쐈다. 경찰 병력이 장대 끝에 톱을 매달아 들고 버스 위로 올라가 밧줄을 자르려고 시도했다. 시위대는 플라스틱 의자와 생수병을 경찰 쪽으로 던졌다.  경찰은 5시쯤부터 캡사이신을 사용했다. 살수차의 물대포에 섞어 쓰기도 했고 경찰버스 안에서 분무기로 조준해 쏘기도 했다. 5시 22분 일부 경찰버스가 끌려나왔다.  시위는 점점 과격 양상으로 치달았다. 경찰버스가 심하게 파손되고 일부 경찰이 끌려나와 폭행 당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시위대 일부가 연행됐다. 구급차가 부상자를 싣기 위해 오갔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부상을 당해도 대열에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종로구 르메이에르타워 부근에서도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는 농민대회 참가자들과, 물대포와 소화기를 분사하는 경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앞서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범시민대회를 연 청년 학생, 시민연대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오후 4시 정각에 이화사거리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 종로를 따라 종각 쪽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종각에서 을지로 방향으로 돌아 서울광장 쪽으로 향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자대회 참가자 4만 7000여명도 오후 4시 30분 서울광장에서 대회 종료를 선언하고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앞서 종로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로 기자회견을 열었던 한상균(53) 민주노총 위원장도 노조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광화문광장으로 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전국노점상연합과 장애인단체 등이 모인 서울역광장 빈민·장애인대회 참가자 3000여명은 구 삼성본관 앞에서 집회를 끝낸 농민대회 참가자 1만 5000명과 합류해 보신각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이보다 앞선 오후 3시 30분쯤부터 경찰버스를 이용, 세종대로의 청계천 부근과 광화문사거리에 2단계 차벽을 설치해 집회 참가자들의 광화문광장 진출을 차단했다.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 뒷편으로도 경찰버스를 대기시켰다. 4시 40분쯤엔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거의 모든 통로가 막혔다. 오후 4시까지 시민 통행을 위해 청계천 소라탑 부근에 열어 놨던 통로도 굳게 닫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민중총궐기 대회, 4만 7000여명 참가… ‘수배중’ 한상균 위원장도 합류

    민중총궐기 대회, 4만 7000여명 참가… ‘수배중’ 한상균 위원장도 합류

    민중총궐기 대회, 4만 7000여명 참가… ‘수배중’ 한상균 위원장도 합류민중총궐기 대회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물대포와 캡사이신, 플라스틱 의자와 생수병이 난무했다.  이날 오후 2시쯤부터 서울광장, 대학로, 서울역광장 등에서 노동·농민·청년 학생·빈민 장애인 등 부문으로 나눠 집회를 벌인 참가자들은 4시~5시 사이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광장을 출발한 노동자대회 참가자 4만 7000여명이 청계천 부근 세종대로에 설치된 1차 저지선에 도착한 오후 4시 50분쯤 충돌이 시작됐다.  시위대가 경찰버스에 밧줄을 묶어 잡아당기자, 경찰은 2대의 살수차를 이용해 물대포를 쐈다. 경찰 병력이 장대 끝에 톱을 매달아 들고 버스 위로 올라가 밧줄을 자르려고 시도했다. 시위대는 플라스틱 의자와 생수병을 경찰 쪽으로 던졌다.  경찰은 5시쯤부터 캡사이신을 사용했다. 살수차의 물대포에 섞어 쓰기도 했고 경찰버스 안에서 분무기로 조준해 쏘기도 했다. 5시 22분 일부 경찰버스가 끌려나왔다.  시위는 점점 과격 양상으로 치달았다. 경찰버스가 심하게 파손되고 일부 경찰이 끌려나와 폭행 당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시위대 일부가 연행됐다. 구급차가 부상자를 싣기 위해 오갔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부상을 당해도 대열에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종로구 르메이에르타워 부근에서도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는 농민대회 참가자들과, 물대포와 소화기를 분사하는 경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앞서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범시민대회를 연 청년 학생, 시민연대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오후 4시 정각에 이화사거리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 종로를 따라 종각 쪽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종각에서 을지로 방향으로 돌아 서울광장 쪽으로 향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자대회 참가자 4만 7000여명도 오후 4시 30분 서울광장에서 대회 종료를 선언하고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앞서 종로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로 기자회견을 열었던 한상균(53) 민주노총 위원장도 노조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광화문광장으로 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전국노점상연합과 장애인단체 등이 모인 서울역광장 빈민·장애인대회 참가자 3000여명은 구 삼성본관 앞에서 집회를 끝낸 농민대회 참가자 1만 5000명과 합류해 보신각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이보다 앞선 오후 3시 30분쯤부터 경찰버스를 이용, 세종대로의 청계천 부근과 광화문사거리에 2단계 차벽을 설치해 집회 참가자들의 광화문광장 진출을 차단했다.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 뒷편으로도 경찰버스를 대기시켰다. 4시 40분쯤엔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거의 모든 통로가 막혔다. 오후 4시까지 시민 통행을 위해 청계천 소라탑 부근에 열어 놨던 통로도 굳게 닫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속보] 민중총궐기대회, 농민회 소속 노인 참가자 뇌진탕 생명 위독

    [속보] 민중총궐기대회, 농민회 소속 노인 참가자 뇌진탕 생명 위독

    [속보] 민중총궐기대회, 농민회 소속 노인 참가자 뇌진탕 생명 위독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진행 중인 민중총궐기대회에서 한 노인 참가자가 큰 부상을 당해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에 따르면, 집회 참여를 위해 상경한 전남 보성농민회 소속 백모씨(68)는 이날 오후 7시쯤 종로구 서린동 SK빌딩 인근에서 차벽을 둘러싼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중 뇌진탕으로 쓰러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백씨가 쓰러진 경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졌을 것으로 보인다. 집회 참가자들은 “백씨가 참가자들과 함께 버스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기던 중 경찰의 물대포를 직격으로 맞아 쓰러졌다”고 주장했다.  백씨는 오후 7시 30분쯤 인근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서울대병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한편 이날 열린 민중총궐기대회는 오후 8시가 지난 뒤 전체 시위 참가자가 1만명 안팎으로 줄어들어 소강을 맞고 있다. 경찰은 이날 경찰관을 폭행하거나 경찰 장비를 파손한 참가자 12명을 연행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민중총궐기 대회, 4만 7000여명 참가…경찰과 격렬 충돌 ‘상황 어땠나 보니?’

    민중총궐기 대회, 4만 7000여명 참가…경찰과 격렬 충돌 ‘상황 어땠나 보니?’

    민중총궐기 대회, 4만 7000여명 참가…경찰과 격렬 충돌 ‘상황 어땠나 보니?’민중총궐기 대회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물대포와 캡사이신, 플라스틱 의자와 생수병이 난무했다.  이날 오후 2시쯤부터 서울광장, 대학로, 서울역광장 등에서 노동·농민·청년 학생·빈민 장애인 등 부문으로 나눠 집회를 벌인 참가자들은 4시~5시 사이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광장을 출발한 노동자대회 참가자 4만 7000여명이 청계천 부근 세종대로에 설치된 1차 저지선에 도착한 오후 4시 50분쯤 충돌이 시작됐다.  시위대가 경찰버스에 밧줄을 묶어 잡아당기자, 경찰은 2대의 살수차를 이용해 물대포를 쐈다. 경찰 병력이 장대 끝에 톱을 매달아 들고 버스 위로 올라가 밧줄을 자르려고 시도했다. 시위대는 플라스틱 의자와 생수병을 경찰 쪽으로 던졌다.  경찰은 5시쯤부터 캡사이신을 사용했다. 살수차의 물대포에 섞어 쓰기도 했고 경찰버스 안에서 분무기로 조준해 쏘기도 했다. 5시 22분 일부 경찰버스가 끌려나왔다.  시위는 점점 과격 양상으로 치달았다. 경찰버스가 심하게 파손되고 일부 경찰이 끌려나와 폭행 당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시위대 일부가 연행됐다. 구급차가 부상자를 싣기 위해 오갔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부상을 당해도 대열에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종로구 르메이에르타워 부근에서도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는 농민대회 참가자들과, 물대포와 소화기를 분사하는 경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앞서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범시민대회를 연 청년 학생, 시민연대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오후 4시 정각에 이화사거리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 종로를 따라 종각 쪽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종각에서 을지로 방향으로 돌아 서울광장 쪽으로 향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자대회 참가자 4만 7000여명도 오후 4시 30분 서울광장에서 대회 종료를 선언하고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앞서 종로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로 기자회견을 열었던 한상균(53) 민주노총 위원장도 노조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광화문광장으로 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전국노점상연합과 장애인단체 등이 모인 서울역광장 빈민·장애인대회 참가자 3000여명은 구 삼성본관 앞에서 집회를 끝낸 농민대회 참가자 1만 5000명과 합류해 보신각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이보다 앞선 오후 3시 30분쯤부터 경찰버스를 이용, 세종대로의 청계천 부근과 광화문사거리에 2단계 차벽을 설치해 집회 참가자들의 광화문광장 진출을 차단했다.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 뒷편으로도 경찰버스를 대기시켰다. 4시 40분쯤엔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거의 모든 통로가 막혔다. 오후 4시까지 시민 통행을 위해 청계천 소라탑 부근에 열어 놨던 통로도 굳게 닫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도심서 민중총궐기대회…경찰과 격렬 충돌

    도심서 민중총궐기대회…경찰과 격렬 충돌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물대포와 캡사이신, 플라스틱 의자와 생수병이 난무했다.  이날 오후 2시쯤부터 서울광장, 대학로, 서울역광장 등에서 노동·농민·청년 학생·빈민 장애인 등 부문으로 나눠 집회를 벌인 참가자들은 4시~5시 사이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서울광장을 출발한 노동자대회 참가자 4만 7000여명이 청계천 부근 세종대로에 설치된 1차 저지선에 도착한 오후 4시 50분쯤 충돌이 시작됐다.  시위대가 경찰버스에 밧줄을 묶어 잡아당기자, 경찰은 2대의 살수차를 이용해 물대포를 쐈다. 경찰 병력이 장대 끝에 톱을 매달아 들고 버스 위로 올라가 밧줄을 자르려고 시도했다. 시위대는 플라스틱 의자와 생수병을 경찰 쪽으로 던졌다.  경찰은 5시쯤부터 캡사이신을 사용했다. 살수차의 물대포에 섞어 쓰기도 했고 경찰버스 안에서 분무기로 조준해 쏘기도 했다. 5시 22분 일부 경찰버스가 끌려나왔다.  시위는 점점 과격 양상으로 치달았다. 경찰버스가 심하게 파손되고 일부 경찰이 끌려나와 폭행 당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시위대 일부가 연행됐다. 구급차가 부상자를 싣기 위해 오갔다.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부상을 당해도 대열에서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종로구 르메이에르타워 부근에서도 경찰 저지선을 뚫으려는 농민대회 참가자들과, 물대포와 소화기를 분사하는 경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앞서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범시민대회를 연 청년 학생, 시민연대 집회 참가자 6000여명은 오후 4시 정각에 이화사거리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 종로를 따라 종각 쪽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종각에서 을지로 방향으로 돌아 서울광장 쪽으로 향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자대회 참가자 4만 7000여명도 오후 4시 30분 서울광장에서 대회 종료를 선언하고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앞서 종로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로 기자회견을 열었던 한상균(53) 민주노총 위원장도 노조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광화문광장으로 가는 대열에 합류했다.  전국노점상연합과 장애인단체 등이 모인 서울역광장 빈민·장애인대회 참가자 3000여명은 구 삼성본관 앞에서 집회를 끝낸 농민대회 참가자 1만 5000명과 합류해 보신각 방향으로 행진했다.  경찰은 이보다 앞선 오후 3시 30분쯤부터 경찰버스를 이용, 세종대로의 청계천 부근과 광화문사거리에 2단계 차벽을 설치해 집회 참가자들의 광화문광장 진출을 차단했다.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상 뒷편으로도 경찰버스를 대기시켰다. 4시 40분쯤엔 광화문광장으로 향하는 거의 모든 통로가 막혔다. 오후 4시까지 시민 통행을 위해 청계천 소라탑 부근에 열어 놨던 통로도 굳게 닫혔다.  사회부 경찰팀 종합
  • 중국판 머독 꿈꾸는 마윈

    중국판 머독 꿈꾸는 마윈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홍콩의 유력 영자지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수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SCMP는 정확한 사실 보도와 중국에 비판적인 보도로 친중국 일색인 중화권 매체에서 독보적 권위를 인정받는 신문이다. 하지만 알리바바의 창립자이자 미디어 재벌을 꿈꾸는 마윈(馬雲) 회장은 중국 공산당과의 끈끈한 유대로 사업을 키웠다. 알리바바가 SCMP 인수에 성공한다면 단순한 미디어 산업 재편을 넘어 중국을 둘러싼 여론 형성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10일 중국 영문 일간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알리바바는 SCMP를 발간하는 SCMP그룹과 투자 협의에 나섰다. 알리바바의 SCMP 인수설은 SCMP가 내년 1월부터 왕샹웨이(王向偉) 편집장을 교체하고 태미 탐(譚衛兒) 부편집장이 뒤를 잇도록 할 것이라는 인사 소식이 전해진 뒤 나왔다. SCMP와 마윈은 ‘악연’이 있다. 마윈은 2013년 SCMP와의 인터뷰에서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와 관련해 덩샤오핑(鄧小平)의 시위 진압을 “가장 정확한 결정이었다”고 말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 기사는 곧 삭제됐으며 해당 기자도 편집자 승인 없이 기사를 수정했다는 이유로 업무 정지 처분을 받은 뒤 사직했다. 마윈은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해서도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의 문제”라며 화살을 대학생 시위대에 돌리기도 했다. 구글이 중국에서 철수할 때도 “중국에서 사업을 잘하려면 당국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리바바는 SCMP 외에도 중국 내 2대 온라인 뉴스포털인 신랑망(新浪網·시나닷컴)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사용자가 3억명에 이르는 신랑망은 뉴스포털과 함께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를 운영하고 있다. 또 중국 영화사 차이나비전미디어그룹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샤미를 인수한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중국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유쿠투더우(優酷土豆)의 지분도 전량 매입했다. 중국 최대 경제신문인 제일재경일보도 알리바바의 품에 안겼다. 전자상거래를 넘어 미디어와 콘텐츠를 장악하려는 마윈의 야심이 현실화되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씨줄날줄] 미얀마의 봄/오일만 논설위원

    “수치는 전 세계가 다 아는 미얀마인의 지도자라네. 이제 독재가 물러갈 수 있도록 우리 미래를 위해서 당신의 역사를 써 주오. 독재는 물러가라.” 민주화를 열망하는 미얀마인들이 25년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를 염원하는 가사 내용이다. 노래 제목도 아웅산 수치(70) 여사를 상징하는 ‘강인한 공작새’라고 명명했다.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최근 미얀마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53년간의 군부 독재 사슬을 끊었다는 평가다. ‘강인한 공작새’가 드디어 미얀마 하늘을 자유롭게 날게 된 것이다. 수치 여사의 인생 역정은 참으로 험난했다. 두 살 때 독립 영웅이자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 정적에게 암살되는 비운을 겪은 그는 1988년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병마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수발하기 위해 돌아온 조국 미얀마가 군부에 짓밟힌 채 시위대의 피로 물드는 것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야당 세력을 결집해 민주주의민족동맹을 창설한 직후인 1989년 군부에 의해 15년간 가택 연금을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1962년 당시 우리보다 훨씬 잘살았던 미얀마는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 군부가 사회주의를 채택하면서 ‘황금의 나라’에서 ‘시간이 멈춘 나라’로 변했다. 가혹한 공포 정치로 민주화를 외치던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극단적인 폐쇄경제로 동남아시아의 강국이자 부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 1100달러 수준의 최빈국으로 추락했다. 53년간의 군부독재가 미얀마에 남긴 상처는 너무도 깊었다. 이런 상황에서 NLD가 집권당이 된다고 해서 곧바로 미얀마의 민주화가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군부가 전체 의석의 25%를 자동으로 가져가도록 헌법에 규정하는 등 겹겹이 안전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다. 군부의 견제로 대통령직에 나서기 어려운 수치 여사는 ‘대통령직 위의 지도자’를 구상하며 미얀마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자신의 대리인을 당선시켜 ‘미얀마의 최고지도자 아웅산 수치’를 통해 미얀마를 이끌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1980년 군부 독재에 맞서 싸우며 ‘서울의 봄’을 온몸으로 겪었던 우리로서는 미얀마 국민들의 위대한 민주화 여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럼에도 총선에서의 승리 한 번으로 민주주의가 곧바로 오지는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 군부가 호락호락 권력을 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군부 독재와 싸우면서 우리가 겪었던 험난한 민주화의 길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수치 여사도 오래전 “독재로부터 자유로운 민주주의로 가기가 쉽다고 생각하거나, 모든 문제의 종착점이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지는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 ‘강인한 공작새’ 수치 여사는 미얀마의 미래를 위해 참으로 ‘먼 여행’에 나설 채비를 한 것 같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대만서는 “만나지 말라” 반대 시위

    대만서는 “만나지 말라” 반대 시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 간 정상회담 개최 예정 소식이 전해진 4일 대만 야권 시위대가 수도 타이베이에서 반대 집회를 벌이고 있다. 현수막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마 총통과 시 주석은 만나지 말라”는 뜻의 글귀가 적혀 있다. 타이베이 AP 연합뉴스
  • 유럽 선거감시단, 터키 총선 ‘부정선거’ 규정... 후폭풍 예고

     지난 1일(현지시간) 집권 정의개발당(AKP)의 압승으로 마무리된 터키 총선이 부정 선거 시비로 얼룩졌다. AFP와 가디언 등 외신들은 2일 터키 총선을 감시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참관단이 이번 선거가 불공정과 폭력으로 점철돼 국민들이 정당한 선택의 기회를 상실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OSCE 참관단의 이그나시오 산체스 아모르 단장은 보고서에서 “비판 언론이 탄압받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유례없는 사태가 발생했다”면서 “야당 관계자들을 겨냥한 물리적 공격과 안보 문제 등이 총선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아모르 단장은 이 같은 경향은 남동부 지역에서 특히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유럽평의회 참관단도 “이번 선거는 심각한 공포로 얼룩졌다”면서 터키 정부가 정치적 해법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이번 선거를 불과 닷새 앞두고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에선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잇따라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또 선거 운동기간 쿠르드 반군과 정부군의 교전으로 친쿠르드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은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앞서 지난달 10일에는 평화적인 집회를 이어가던 반정부 시위대를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테러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소행으로 결론지었다. 결국 집권당인 AKP는 선거에서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획득해 압승했다. 지난 6월 총선에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AKP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고, 연정 구성마저 좌절돼 조기 총선이 이어졌다.  한편 터키 정부는 선거 이튿날인 2일부터 비판 성향의 주간지 편집장들을 체포하는 등 언론 단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현지 도안통신 등은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삶에 정해진 길 없어…끊임없이 진로 재탐색해 꿈 찾아”

    “삶에 정해진 길 없어…끊임없이 진로 재탐색해 꿈 찾아”

    “22번 이후 세는 것을 포기해 버릴 정도로 많은 수술을 받았는데, 눈을 감싼 붕대를 풀 때마다 병원 침대 곁에 늘 엄마가 계셨어요. 그 얼굴을 항상 기억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신순규(48)씨는 시각장애인이다. 9살 때 시력을 잃어버린 뒤 지금은 희미한 빛조차 볼 수 없다. 그러나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졸업한 뒤 21년째 활동하는 월가 애널리스트이자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공인재무분석사(CFA)로 이름을 높이게 됐다. 그가 자신의 삶과 일 속에서 빚어낸 희망의 여정을 정리한 책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판미동 펴냄)의 출간에 즈음해 한국을 찾았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 무교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신씨는 “점자 컴퓨터로 3년에 걸쳐 원고를 써 내려갔는데 영어 점자 타이핑보다 서투르고 우리말 표현도 익숙하지 않아 사전을 계속 찾아보며 쓰느라 오래 걸렸다”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노력과 인내로 성공을 이룬 사람의 자서전이 아니라 남다른 환경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생각과 가치관을 에세이처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15살 때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비장애인도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출발은 어머니의 의지였지만 완성은 쉼 없이 꿈꾸는 그만의 능력이었다. 신씨는 “어린 시절 안마사만은 시키지 않겠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피아노를 쳤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말했다. 영어도 제대로 못 하는 장애인 유학생이 겪은 현실의 높은 벽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의 낙천적인 성격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거기에서 음악적 재능이 부족함을 절감한 뒤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겠다며 물리학을 공부하겠다는 꿈을 꿨고, 그것이 막히자 의사를 꿈꿨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대학교수가 되고자 했지만 지금은 투자은행에서 애널리스트 일을 하고 있다”면서 “삶에 정해진 길이 따로 없는 만큼 끊임없이 꿈과 길을 재탐색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2001년 9·11테러, 2011년 ‘월가 점령 운동’이 그가 일하는 회사 바로 앞에서 벌어졌다. 세상의 불평등에 대한 그의 시선도 낙관, 그 자체였다. 그는 “창문을 ‘내다보면’ 바로 앞에서 시위대들이 구호를 외치는데 정말 미안해서 막히는 출근길에도 전혀 화나지 않았다”면서 “(세상을 통째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예컨대 수감자 자녀, 탈북자 자녀, 조손 가정, 보육원 아이들에게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그만큼 세상의 불평등을 줄여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적과 싸우다…일과 싸우다…시대 변해도 계속되는 ‘숭고한 희생’

    적과 싸우다…일과 싸우다…시대 변해도 계속되는 ‘숭고한 희생’

    2013년 3월 1일 밤 11시 24분. 인천 강화경찰서 내가파출소 소속 정옥성 경위는 외포선착장에서 바다 쪽을 향해 달려가는 남자를 전력을 다해 뒤쫓았다. 그는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었다. 정 경위는 물가에서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거친 물살에 발이 묶여 앞으로 넘어지며 풍덩 빠졌지만 자꾸만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남자에게 손을 뻗으며 한 발, 한 발 따라 들어갔다. 잠시 후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밤바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커멓게 출렁였다. 정 경위는 그렇게 밤바다의 별이 됐다.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다 목숨을 잃는 경찰관이 매년 수십명씩 나온다. 서울신문은 경찰 창설 70주년을 맞아 경찰청으로부터 순직 경찰관 1만 3542명의 사망 경위가 담겨 있는 명단을 23일 입수, 분석했다. 70년간 순직한 경찰관들의 이야기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 역사의 굴곡을 보여 준다. ●광복 후 극심한 좌우 대립… 1562명 잠들다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부터 6·25전쟁 직전까지 경찰 순직자는 1562명이었다. 이들 중 90% 이상이 ‘폭도’, ‘반도’, ‘좌익 불순세력’, ‘공비’와의 교전이나 작전 중 사고로 숨졌다. 미국과 소련이 남과 북을 나눠 점령했던 시기, 북쪽에서 들어온 무장공비와의 잦은 교전 탓이었다. 1946년 10월 1~3일 대구, 경북 영천시, 칠곡군 등에서 44명이 순직한 것으로 기록됐다. 당시 대구에서는 10·1사건이 일어났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10·1사건은 미 군정의 친일관리 임용과 강압적인 식량 공출 정책에 반발한 민간인과 일부 좌익 세력이 경찰, 행정 당국과 충돌한 사건이었다. 1948년 제주에서는 4월 3일 5명, 4월 12일 1명, 5월 13일 8명, 5월 22일 4명, 6월 16일 2명의 경찰관이 공비와 교전하다 사망했다. 이들은 ‘제주 4·3사건’의 초기 경찰 사망자들이다. 제주 3·1절 기념집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6명이 숨지고 민심이 들끓자 남로당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경찰을 공격했다. 미 군정은 제주도민 토벌 작전에 나섰고, 이로 인해 2만 5000~3만명으로 추정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4·3사건 당시 진압을 위해 출동하라는 이승만 정부의 명령을 일부 부사관이 거부하면서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났다. 20~24일 전남 여수, 순천, 고흥, 장흥 등지에서 270명의 경찰이 숨진 것으로 기록됐다. 반란은 10여일 만에 진압됐지만 이후에도 계속된 교전으로 이 지역에서 수백명의 순직자가 더 나왔다. ●6·25전쟁 발발부터 휴전까지 8823명 순직 1950년 6월 25일부터 휴전협정일인 1953년 7월 27일까지 8823명의 순직자가 명단에 올랐다. 경찰은 이들이 모두 전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단일 전투로 가장 많은 경찰 희생자를 낸 것은 1950년 7월 19일부터 치러진 강경 전투였다. 83명의 경찰관이 목숨을 잃었다. 휴전협정 뒤에도 전사자는 속출했다. 휴전 직후부터 1955년까지 469명 중 60.3%에 해당하는 283명이 크고 작은 교전 중에 숨졌다. ●1962년 간첩 수색하던 25명 한꺼번에 숨져 1960년 4월 19~20일에는 6명의 경찰관이 4·19혁명 현장에서 진압 중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간첩을 체포하거나 수색하는 과정에서 습격을 받거나 폭발물이 터져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1962년 4월 1일에는 울산에서 간첩 수색을 위해 출동하던 경찰관 25명이 자동차 사고로 한꺼번에 사망했다. 1963년 6월 25일엔 장승포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주민 61명이 사망했다. 이때 18명의 경찰관이 주민 대피를 돕다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3명의 목숨 앗아 간 김신조·실미도 사건 1966년부터 1975년 사이 순직자 중 주목되는 사람은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 검거 작전 중 적탄에 전사’라고 기록된 최규식 서울 종로경찰서장과 1971년 8월 23, 24일에 인천에서 각각 순직한 두 명의 순경이다. 1968년 1월 21일 게릴라전 특수훈련을 받은 김신조 등 북한 124군부대 무장간첩 31명이 당시 서울 세검동 자하문초소까지 진입해 경찰과 교전을 했다. 현장을 지휘하던 최 서장이 전사하고 경찰 2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 뒤 우리 군은 124군부대와 똑같은 규모로 북파 부대를 창설했다. 인천 중구의 무인도인 실미도에서 실전과 똑같은 훈련을 받은 북파 부대원들은 1971년 8월 23일 기간병들을 살해하고 서울로 향했다. 인천의 경찰관 두 명이 이 과정에서 희생됐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압하다 스러진 순경 4명 1979년 10·26사건으로 박정희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민주화운동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1980년 5월 18일 시작된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191명이 숨지고 852명이 부상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 기간 중 전남 함평경찰서 소속 순경 4명이 사망했다. 순직자 명단엔 ‘80년 5월 20일 데모 진압 중 자동차에 밀려 사망’이라고 적혀 있다. 1989년 5월 3일에는 ‘동의대 사건’이 일어났다. 시위대로 위장한 사복경찰 5명이 학생들에게 발각돼 도서관에 감금됐다. 경찰은 도서관에 진입했고 학생들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 4명이 사망했다. 공식 서류에는 ‘동의대 학생들에게 납치된 전경 5명의 구출 작전을 벌이던 중 학생들이 석유 등을 뿌리고 화염병을 투척, 화재로 인한 화상 및 질식하여 사망’이라고 나와 있다. ●시간 지날수록 경찰 ‘과로사’ 점점 늘어 전쟁과 휴전 직후엔 교전으로 인한 전사자가 많았지만 이후 과로로 순직하는 경찰이 크게 늘었다. 시기별 순직자의 사망 경위 중 과로·졸도 사망은 전쟁 직후에는 15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1956~1965년엔 전체 사망자의 28.9%로 급증했다. 1966~1975년에는 42.3%로 껑충 뛰었다. 1976~1985년 37.1%, 1986~1995년 40.1%에 이어 1996~2005년에는 과로 순직이 58.4%로 급등했다. 최근 10년간은 경찰 149명이 순직한 가운데 53.7%인 80명이 과로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과로로 숨진 경찰관들의 사망 경위를 살펴보면 밤새 당직을 서거나 잠복근무를 한 뒤 충분히 쉬지 못하고 다음날 다시 근무에 투입된 경우가 많았다. 1998년 말엔 탈옥수 신창원 검거를 위한 특별근무 등으로 업무가 과중돼 간경변이 재발한 순직자가 있었다. 2000년엔 전년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 뒤 유해업소 특별단속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철야 근무를 계속한 경찰관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다 숨지기도 했다. 2010년엔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을호 비상근무 등으로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이송범 광주지방경찰청장 등 2명의 경찰관이 쓰러져 숨졌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중재자 없는 이-팔 ‘피의 보복’

    이스라엘 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에서 17일(현지시간) 흉기를 휘두른 팔레스타인 사람은 5명이었고 이 가운데 최소 3명이 이스라엘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한 달 동안 주로 팔레스타인 십대의 흉기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8명이 숨졌다. 이스라엘 당국의 발포로 인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39명이다. 최근 부쩍 유혈 충돌이 잦아지면서 발생하는 ‘피의 보복’의 양상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 최근 폭력 사태가 잇따르는 이유는. -지난해 7월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 십대 3명을 납치해 살해했고, 몇 주 뒤 유대 극단주의자들이 17세 팔레스타인 소년을 납치해 살해했다. 갈등이 깊어지던 차에 지난달 13일 유대 극우주의자들이 예루살렘 구시가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할 권리’를 주장하자 이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경찰이 충돌했다. 비잔틴 시대에 교회로 지어졌던 이 사원은 이슬람교 3대 성지 중 하나인 알아크사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알아크사 사원을 유대 교회로 변경하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했다. 곳곳에서 벌어진 소요를 이스라엘이 강경 진압하며 보복전이 이어지고 있다. →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또 다른 일전인가. -이스라엘 정보 당국에 따르면 최근 소요를 주도하는 조직적인 배후단체는 파악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사정을 파악하고 서로 따라 하는 식으로 흉기를 휘두르는 사례가 많다. 과거 하마스처럼 주도세력이 분명했던 인티파다(무장 민중 봉기)가 재현되기에는 팔레스타인 측 조직력이 약화됐다고 보는 견해도 여기에서 나왔다. → 소요 사태를 풀 중재자가 있나. -없다. 이 지역에선 참견은 많고 조율은 없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6일 긴급회의를 소집했지만 폭력 종식을 위한 실효적 행동을 취하겠다는 결단은 나오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두 개의 국가’에 대한 기대는 양측 모두에서 줄었고, 양측 시민은 무장 중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이·팔 청춘, 또 핏빛 봉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며 3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 봉기) 가능성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공습에 즉각 대응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의 ‘조직되지 않은 열정’이 1, 2차 인티파다와 다른 양태의 3차 인티파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알자지라는 1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 북쪽 검문소에서 13세 소년인 아마드 샤라케가 시위 중 이스라엘군 총에 맞아 숨졌고, 이스라엘 북부 하데라에선 20세 아랍계 청년이 이스라엘인 4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에게 치명상을 입혔다고 보도했다. 지난 열흘 동안 팔레스타인인 22명과 이스라엘인 4명이 숨졌고, 부상자 수백 명 중 추가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 정치 지도자들은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은 “이스라엘이 정착촌 활동을 중지하지 않음에 따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하는 2국가 체제를 선언한 오슬로 협정은 무효가 됐다”고 선언했다. 이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요르단강 서안과 예루살렘의 아랍계 거주 지역에 수천 명의 군·경찰 병력을 추가 배치해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는 정책으로 대응했다. 영국 가디언은 팔레스타인정책조사연구센터(PCPSR)가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평화 없는 인티파다를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이 석달 전 49%에서 최근 57%로 늘었다고 밝혔다. 3차 인티파다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3차 인티파다 가능성에 회의적인 전망도 많다. 중동모니터는 “팔레스타인의 청년들이 과거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나 하마스가 쓰던 조직화된 방식으로 이스라엘에 대응하기보다 차를 몰고 돌진하는 등 개인적 분노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복수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과거 인티파다와 달라진 행태를 전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쿠르드계 지지자 집결지서 ‘쾅’… 터키 정부 “PKK·IS가 배후”

    쿠르드계 지지자 집결지서 ‘쾅’… 터키 정부 “PKK·IS가 배후”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10일(현지시간)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95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쿠르드계 야당인 인민민주당(HDP)은 폭탄 테러로 128명이 숨졌고 이 중 120명의 신원은 확인됐다고 11일 밝혔다. 터키 사상 최악의 테러로 누가 왜 저질렀는지 관심이 집중된다. 테러를 자행했다고 주장하는 단체가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정부와 현지 언론은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터키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반군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다음달 조기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이번 테러로 터키에서 민족 갈등과 정국 혼란이 우려된다. ●야당 “128명 숨져”… 부상자 48명도 위중 10일 오전 10시쯤 앙카라 기차역 광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이 거의 동시에 두 차례 발생했다. 부상자 48명은 위중한 상태라 사망자 수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폭발 당시 기차역 광장은 낮 12시로 예정된 시위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터키 노동조합연맹 등 반정부 단체들이 주최하는 이날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정부에 PKK와의 유혈 충돌을 중단하라고 촉구할 예정이었다. 테러 발생 직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앙카라 기차역에서 발생한 테러는 우리의 단결, 형제애, 미래를 공격 목표로 한 것”이라며 연대와 투지를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총리는 “이번 공격이 자살 폭탄 테러라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면서 유력한 테러 용의자로 IS, PKK, 그리고 극좌 테러조직 혁명민족해방전선(DHKP-C)을 지목했다. 반면 셀라하틴 데미르타쉬 HDP 공동대표는 폭발이 HDP 지지자들이 모여 있던 곳에서 발생했다며 테러 목표는 HDP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력한 정보망을 가진 정부가 이번 공격의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되물었다. 테러를 막지 못한 정부를 비판한 것이다. 테러 직후 정부의 태도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있던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이 부상자를 치료하러 오는 구급차를 막았다고 강하게 항의하면서 시위대와 경찰 간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터키 정부가 폭발 상황이 담긴 사진에 대해 보도 통제를 하고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접속을 차단하자 이날 밤 이스탄불에 수천명이 모여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며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최근 터키는 IS와 쿠르드족을 상대로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국내 테러 위협이 고조됐었다. 쿠르드족의 독립을 주장하며 30년간 투쟁해 온 PKK는 2013년 정부와 휴전 협정을 맺었지만 지난여름 PKK 대원이 정부군을 공격하고 정부가 이라크 북부에 있는 PKK 진지를 공습하면서 협정은 파기됐다. 10일 테러 발생 직전에 PKK는 다음달 조기 총선 전까지 휴전하자고 정부에 제의했지만 이번 테러로 양측의 충돌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워싱턴근동연구소의 소네르 차아프타이 터키담당 연구원은 “이번 테러는 PKK가 터키 정부와 계속 투쟁하도록 유도하려는 PKK 내 강경하고 극단적인 분파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르드족과의 긴장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쿠르드족과 충돌을 유발해 터키 국민의 반(反)쿠르드족 정서를 강화함으로써 오는 11월 총선에서 쿠르드계 야당인 HDP의 지지도를 잠식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총선에서 약진하며 집권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의 과반 확보를 저지한 HDP는 오는 11월 총선에서도 저번 총선과 비슷한 수준의 지지를 얻을 전망이다. 이번 테러가 쿠르드계 정당인 HDP가 참가한 시위 현장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IS도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라 있다.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는 시리아 북부에서 IS에 잇따라 승리를 거두며 사실상의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외교부, 터키 전역에 ‘여행유의’ 경고 발령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는 11월 총선에서 과반을 확보해 강력한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편 외교부는 이와 관련해 11일 “터키 전 지역에 여행경보상 1단계인 남색경보를 오늘부로 발령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남색경보는 여행경보 중 가장 약한 단계로 ‘여행유의’에 해당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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