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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뜬금없는 ‘이승만·박정희 국부론’… 71년 정쟁 ‘우율 문묘종사’ 닮았다

    뜬금없는 ‘이승만·박정희 국부론’… 71년 정쟁 ‘우율 문묘종사’ 닮았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8일 뜬금없이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론’을 다시 꺼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와 선진화의 아버지가 그것이다. 국부론이 성립하려면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절이 돼야 하고 상하이임시정부의 법통은 부정돼야 한다. 상하이임시정부 법통론을 두고, 그가 북한 정권 수립을 옹호하려는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제기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화는 이른바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관변 학자들이 나서서 ‘8월 15일은 건국절’이라고 주장했다. 건국절이 된다면, 이승만은 자연스럽게 건국의 아버지가 된다.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해 역사를 아예 정부가 관장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끝내려 했다.‘국부화’는 이들에게 찍힌 친일과 독재의 낙인을 한 방에 지울 수 있는 수단이었다. ‘대한민국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이 나라의 정통성의 원천으로 공인받는 것으로 그 후예들은 이 나라의 적통이 된다. 역사적 정통성은 현실 정치에서 집권의 정당성으로 이어진다. 이들을 거부하면 체제 부정 세력이 된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모 인사가 제기하고 가짜 보수집단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민주화의 아버지 이승만’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들은 한국 현대정치의 흑역사를 열어 놓은 이승만의 ‘부산정치파동’(1952년 5월 25일 계엄령 선포부터 같은 해 7월 7일 제1차 개정헌법 공포까지 이어진 정치적 소요)을 한국 최초의 민주화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건국, 산업화는 물론이고 민주화까지 혈통 속으로 끌어들여 ‘한국판 백두혈통’을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국부화’ 논란은 조선의 문묘종사 정쟁에 연원을 두고 있다. 조선 중기 등장한 붕당은 제각각 자파의 영수를 문묘에 종사하기 위해 대를 이어 가며 정쟁을 벌였다. 문묘에 종사된다는 것은 조선의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의 법통을 승계했음을 공인받는 것이다. 집권의 정당성은 이념적 정통성 위에서 가능하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부화는 대한민국 역사의 문묘 맨 윗자리에 그 위패를 안치하려는 것이니, 조선의 문묘종사와 다르지 않다. ‘아버지 운운’하는 것이 조선의 ‘현인’ 논란보다 훨씬 더 유치하고 구리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인조 13년(1635년) 성균관(지금의 국립서울대학교에 해당한다)에 난리가 났다. 유생들이 수업 거부, 동맹휴학, 제적, 자퇴, 가투까지 벌였다. 시위대가 대궐 앞까지 진출했으니 왕조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난리였다. 5월 11일, 송시형을 소두(상소의 대표자)로 하여 유생 270여명이 서인의 종장인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문묘에 종사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이른바 ‘우율 문묘종사 상소’다. 그러자 남인 유생 57명이 채진후를 소두로 하여 맞섰다. 농성장인 동학(관립 4부학당 중 하나. 지금의 동대문 옆 옛 이화여대부속병원 자리에 있었다)으로 가면서 지름길인 지금의 대학로를 놔두고 굳이 창덕궁 앞으로 돌아갔다. 대궐 앞 시위를 위해서였다. 인조는 우율 문묘종사를 거부했다. 그러자 인조반정의 공신들이 들고일어났다. 12일 영의정 윤방, 우의정 김상용이 중신 회의에서 우율 문묘종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3일엔 송시형이 다시 상소를 올렸고 오윤겸, 조익 등 대신들이 두둔했다. 점입가경이었다. 서인은 채진후 등 남인계 유생 6명에게 정거(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 벌) 처분을 내렸고 남인계 유생 50여명은 수업 거부에 해당하는 권당에 들어갔다. 조정에서는 이조판서 최명길이 성균관 관련 직책인 대제학과 지성균관사의 사표를 걸고 3명에 대한 정거를 주장했다. 지방에서도 황해도, 경기도, 평안도, 전라도, 충청도의 서인 유생들이 릴레이 상소를 했다. 인조는 불쾌했다. 최명길이 낸 대제학, 지성균관사 사표를 수리했다. 지방 유생들의 상소에는 “유생의 본분이나 지킬 일이지 알지도 못하는 일을 거론해 남의 비웃음을 사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우율 문묘종사 청원이 시작된 것은 인조반정 직후였다. 반정에 성공하고 불과 13일 만인 1623년 3월 27일, 서인 유순익이 율곡 이이의 문묘종사를 청원했다. 이에 민성징, 이민구, 유백증 등 반정공신들이 인조에게 윤허를 청했다. 인조는 점잖게 거부했다. ‘중차대한 문제를 쉽게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인조는 문묘종사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었다. 42년의 논란 끝에 광해군 초 결말이 난 5현 문묘종사의 전말을 지켜봤고 이언적과 이황의 위폐를 문묘에서 빼는 문제(회퇴변척)를 놓고 벌인 북인과 남인의 정쟁도 지켜봤다. 서인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조정을 장악한 것도 모자라 학문과 이데올로기의 정통성까지 독점해 항구적인 집권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 아닌가. 재위 기간 내내 상소는 계속됐지만 인조는 외면했다. 정쟁이 다시 불붙은 것은 효종 즉위년이었다. 서인은 왕이 어리숙할 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1650년 1월 성균관 유생 홍위 등 수백 명이 문묘종사를 청원하는 상소를 했다. 긴장한 남인 유생들은 2월 경상도 진사 유직을 소두로 900여명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영남의 거의 모든 읍이 참가했다. 그러자 성균관의 서인 유생들은 유직에게 삭적과 부황의 처벌을 내렸다. 유생 명부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고 그의 이름을 쓴 종이를 큰 북에 붙이고 북을 치며 장안을 도는 처벌이었다. 흉악범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과 같은 조처였다. 남인 유생들은 공관으로 맞섰다. 일종의 동맹휴업이었다. “과거를 보기 위해 구차스럽게 반궁에 남아 있을 수 없다.” 서인 유생도 염치가 없었던지 공관을 했다. 효종은 속이 끓었지만, 자신의 즉위를 기념해 치르는 증광시가 무산될 수 있어 걱정이었다. 영의정 이경여와 우의정 조익이 부황 처벌만 면제하는 수습책을 냈다. 그러나 서인 유생들은 막무가내였다. ‘선현을 모욕한 자들에 대한 처벌을 철회할 수 없다.’ 효종은 역정을 냈다. “너희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자들이 아닌가.” 그러자 서인 유생들은 “‘불학무도한 놈’이 어떻게 성균관에 들어갈 수 있느냐”며 다시 수업을 거부했다. 손을 든 것은 효종이었다. 7월 3일 ‘군왕으로서 거친 말을 한 것은 잘못’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자 훗날 소론의 영수가 되는 박세채 등이 우율 문묘종사 청원과 함께 부황 처벌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효종이 상소의 수용을 거부하자 이번엔 승정원에서 치받았다. ‘유생의 상소에 답하지 않는 것은 선비를 대우하는 바른 도리가 아닙니다.’ 효종은 다시 사과를 해야 했다. ‘유생들에게 불평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 내 자신이 매우 부끄럽다.’ 성균관 공관 사태는 이것으로 일단락됐다. 6년 뒤 서인의 두 영수가 직접 소두로 나섰다. 송준길은 1657년 10월, 송시열은 이듬해 12월에 우율 문묘 종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효종은 거부했다. 서인의 의도와 집요함에 넌더리가 났다. 현종이 즉위하자 서인들은 다시 공세에 들어갔다. 즉위년(1659년) 관학 유생 윤항 등이 5차례 상소를 올렸고 부제학 유계 등 대간들도 차자를 올렸다. 효종 3년엔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충청도, 전라도 유생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상소했다. 현종 역시 거부했다. 우율 문묘종사 정쟁은, 당쟁을 왕권 강화에 이용한 숙종 때에야 끝났다. 경신환국(1680년·숙종 6년)으로 남인을 남김없이 쓸어버린 뒤 숙종은 서인의 요구에 따라 1682년 우율 종사를 윤허했다. 처음 청원이 있고 59년 만이었다. 숙종은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을 통해 서인을 숙청한 뒤 남인의 주장에 따라 우율의 위패를 문묘에서 철거(철향)했고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을 숙청한 뒤 위패를 복향했다. 무려 71년 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이와 성혼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학문적 정치적 궤적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서인의 권력 기반은 확고부동해졌다. 서인의 노론 소론 분당 이후엔 김장생, 송시열, 송준길 등 노론의 종장이 차례로 문묘에 종사됐다. 조선은 노론의 천하가 되었다. 조선이 불가역적인 쇠락의 길을 걷던 조선 말(고종 20년)에는 김집의 문묘 종사가 이루어졌다. 참으로 집요했다. 그 집요함은 지금 ‘대한민국 아버지’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5·18 39주년] “계엄군 무차별 총칼, 혈투로 맞선 시민들… 5월은 잔인했다”

    [5·18 39주년] “계엄군 무차별 총칼, 혈투로 맞선 시민들… 5월은 잔인했다”

    5·18민주화운동 기간인 1980년 5월 18~27일 실상을 낱낱이 밝힌 자필 원고(200자 원고지 140장 분량)의 구체적 내용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박석무(77·당시 광주 대동고 교사)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항쟁 중심지 곳곳을 누비며 직접 보거나 들은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한 ‘5·18 광주 의거-시민항쟁의 배경과 전개 과정’이란 제목의 글이다. 일자별 항쟁 상황과 발생 원인, 의의, 교훈 등 8개 소주제별로 기록돼 있다. 국회 청문회, 검찰 수사,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등 몇 차례 조사를 거쳐 상당 부분 세상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항쟁에 참여한 교사가 직접 작성한 수기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띤다. 내용을 발췌해 그 과정을 되짚어 본다.#18일 군부에 의한 전국 계엄 확대 조치 다음날로 일요일인 이날 오전 9시쯤 전남대생 500여명은 정문 앞에서 이미 시내에 배치된 계엄군과 대치 중이었다. 돌멩이로 계엄군에 맞서던 학생들은 힘이 부치자 삼삼오오 흩어져 4㎞쯤 떨어진 전남도청(현 동구 광산동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몰려들었다. 학생들은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 투석전을 벌이며 금남로·충장로 골목으로 흩어졌다 모였다를 되풀이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오전 투석전 등으로 충장로파출소가 파괴되는 등 시위는 점차 과격해졌다. 계엄사 측은 오후 공수부대 병력을 시내에 투입, 젊은이들을 무차별 구타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가택 수색과 연행 등으로 숱한 학생과 시민들이 짐짝처럼 군용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19일 날이 밝자 도청 인근 골목 곳곳에서 대학생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다.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시가전 양상으로 바뀌었다. 계엄군은 닥치는 대로 찌르고 구타했다. 시내가 온통 유혈로 물들었다. 동구 계림동 광주고 인근에서 계엄군의 첫 발포로 부상자도 나왔다. 시민들은 육탄으로 총칼 앞에 혈투를 감행했다. 금남로, 공용터미널, 광주역 인근 등에선 인산인해를 이뤄 계엄군과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벌였다. 분노한 군중은 식칼, 낫, 몽둥이를 들기도 했다. 사망자가 쏟아졌지만 사람이 쓰러지면 곧바로 연막탄을 뿌려 시야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군용차로 실어 갔다. #20일 아침부터 휴교 중인 고교생들도 거리로 나왔다. 대학생 지도부가 작성한 ‘시민 회보’라는 전단이 뿌려지고, 신문이 없는 터에 신문 구실을 했다. 계엄군 만행과 시민 도륙 참상이 알려지고 외신기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해질무렵엔 도청 앞 계엄군과 대치하던 금남로 왕복 8차로 도로, 광주역~전남여고~노동청 사잇길도 인파로 메워졌다. 30만~40만 인파가 각목 등을 들고 “전두환 찢어 죽이자”며 어깨를 결었다. 영업하던 택시기사 5명이 무차별 자상과 폭행으로 숨졌다는 게 확인되자 동료 기사 80여명은 공설운동장(무등경기장)에 모여 클랙션을 울리며 차량을 몰고 금남로로 진출했다. 시민들은 밤을 꼬박 새우며 계엄군과 일진일퇴 공방전을 계속했다. 격렬한 ‘전투’로 도청을 뺀 전역이 시민들에게 넘어갔다. #21일 새벽 곳곳에서 총성과 함께 불탄 차량, 혈흔, 흩어진 보도블럭이 어우러져 잔인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시민들은 전날 밤 계엄군으로부터 탈취한 M16 소총 20여정으로 아세아자동차(현 기아차)를 털어 차량을 확보하고 일부 자체 무장했다. 낮 12시 30분쯤 계엄군 저지선을 차량으로 뚫으려 접전을 벌였다. 계엄군의 도청 앞 집단 발포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민들은 부상자를 병원으로 나르고 헌혈을 자처했다. 아낙네들은 차량에 탄 시위대에 물과 음료수, 김밥을 날랐다. 오후 3시쯤부터는 인근 전남 화순과 나주 등지의 예비군 무기고에서 빼앗은 칼빈 소총과 권총, 수류탄, 폭약(TNT) 등으로 무장했다. 도청을 지키던 계엄군은 오후 4시 외곽으로 철수했다. 광주는 ‘해방구’로 변했다. #22~27일 도청 앞에선 시민궐기대회가 열려 ‘독재 타도’ ‘살인마 전두환 퇴진’을 외쳤다. 도청에 작전본부와 수습대책위도 꾸려졌다. 시민군은 도시 외곽에 진지를 구축하고 야간 계엄군 침입에 대비하는 등 자체 경비와 치안을 강화했다. 도청 앞 상무관 등지에는 시신과 부상자를 확인하려는 가족으로 뒤덮였다. 매일 낮 대규모 군중이 시국을 성토했다. 광주는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며칠을 보냈다. 계엄군은 27일 새벽 지상과 공중을 이용해 살육작전을 감행해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워 도청을 접수했다. 항쟁 지도부는 도청 사수를 결의하고 끝까지 저항했으나 5·18은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포토] ‘한국당 해체하라는’ 시위대 비켜가는 황교안 대표

    [포토] ‘한국당 해체하라는’ 시위대 비켜가는 황교안 대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0일 오후 대구 경북대학교 북문 인근의 한 카페에서 대학생들과 간담회를 한 후 자유한국당 해체를 외치는 시위대를 피해 차량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 황교안 “대권투쟁? 이 땅의 아비규환을 보라”…시위대도 만나

    황교안 “대권투쟁? 이 땅의 아비규환을 보라”…시위대도 만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8일 “좌파 세력은 민생대장정을 대권투쟁이라고 폄하한다. 당신들이 파괴한 이 땅으로부터 펼쳐진 아비규환을 제대로 보라”고 비판했다. 황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무능한 문재인 정권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보라”며 이같이 밝혔다. 황 대표는 “당신들이 망가뜨린 민생에서 나오는 고통의 절규를 제대로 들어보라”며 “당신들은 국민의 겉에 있고, 저는 국민의 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정치를 시작할 때 국민 속으로 들어가,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고 약속했다”며 “말로만 국민을 외치는 게 아니라 현장에 있는 시민의 목소리로 정책을 만들고 실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의 무능이 국민을 고통스럽게 할 때마다 누가 국민의 절규를 들어줘야 하나. 좌파들의 폭력이 국민을 아프게 때릴 때마다 누가 국민의 손을 잡아 줘야 하나”라며 “국민 속에서 문재인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황 대표는 거제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방문을 시작으로 통영, 창원, 양산 등을 훑으며 180㎞를 이동했다. 김 전 대통령의 생가에서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휘호가 담긴 액자와 흉상을 한동안 바라보며 추모했다. 방명록에는 ‘평생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대통령님의 큰 뜻 국민과 함께 지키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황 대표는 다만 대통령 집무실을 구현한 전시실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라는 주변의 권유에 “제가 찍으면 오해가 생긴다”며 동행한 의원들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황 대표를 알아본 한 중년남성이 “대권을 꿈꾸는 사람이니 부탁 하나 드리자. 못 살겠다.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 사생결단 죽기 살기 각오로 싸워달라”고 외치자 “잘 알겠습니다”라며 악수하기도 했다. 이어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로 이동한 황 대표는 조선소 정문 앞 천막농성 중인 ‘대우조선해양 동종사 매각반대 지역경제살리기 거제범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만났다. 황 대표는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수 만명의 생계가 걸려 있는 문제인데 졸속 행정이 된 것 아니냐”며 “정부에 촉구할 것은 촉구하고, 입법적 노력을 해가면서 당 차원의 적극적 노력을 하겠다”고 답했다. 황 대표는 창원의 마산부림시장으로 이동했다가 ‘적폐청산과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 소속 시위대와 마주하기도 했다. 15명 가량의 시위대는 황 대표를 향해 “황교안은 오지 마라”고 반발했고, 한국당 지지자들은 “문재인 좌파독재 물러가라”고 맞서며 시장 일대에 소란이 빚어졌다. 일부 한국당 지지자들은 시위대에게 욕설을 하며 피켓을 뺏기도 했다.황 대표는 이에 대해 “민생 행보를 하러 왔는데 소란을 야기한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민주사회 시민이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다만 황 대표는 “결과적으로 시장에 불편을 드린 것이 있다면 송구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청년 시장이 문을 닫은 곳이 많다고 해서 왔는데 2년 전에 문을 닫고 완전히 텅텅 비었다”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드려서 청년몰이 청년들의 또 다른 희망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전날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눈시울을 붉힌 데 대해서는 “국민들이 힘들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며 국정을 맡았던 사람 입장에서 참 마음이 아팠다”며 “민생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포토] 황교안 향해 질책 퍼붓는 시민

    [포토] 황교안 향해 질책 퍼붓는 시민

    부산·경남(PK) 지역에서 ‘민생투쟁 대장정’ 중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8일 오후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부림시장을 갔다가 호된 질책을 받았다. 이날 ‘적폐청산과 민주사회건설 경남운동본부’ 소속 시위대 15명은 황 대표를 향해 “황교안은 오지 마라”고 반발했고, 한국당 지지자들은 “문재인 좌파독재 물러가라”고 맞서며 시장 일대에 소란이 빚어졌다. 일부 한국당 지지자들은 시위대에게 욕설을 하며 피켓을 뺏기도 했다. 황 대표는 이에 대해 “민생 행보를 하러 왔는데 소란을 야기한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민주사회 시민이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다만 황 대표는 “결과적으로 시장에 불편을 드린 것이 있다면 송구스럽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총구 겨눈 살벌한 베네수엘라 대정쟁… 결국 국민은 안중에 없다

    총구 겨눈 살벌한 베네수엘라 대정쟁… 결국 국민은 안중에 없다

    ‘한 나라 두 대통령’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이 남미의 베네수엘라에서 넉 달째 계속되고 있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35) 국회의장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아침 수도 카라카스 인근 공군 기지 앞에서 수십명의 군인과 함께 쿠데타(군사봉기)를 선언했다. 군부의 외면으로 실패한 뒤 베네수엘라 정국은 한마디로 시계 제로다. 불법 선거 논란 속에 지난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니콜라스 마두로(56) 대통령은 쿠데타 시도를 진압한 뒤 지난 4일 국방장관 등 군 지도부와 45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한 행사에 참석해 건재를 과시했다. 과이도 의장은 파업과 시위를 이어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를 지지하는 미국은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마두로를 압박하고 있다. 경제난에다 생필품과 의약품의 절대적 부족에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한때 남미의 석유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가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실패한 쿠데타의 파장과 향후 정국 전망, 국제사회의 복잡한 셈법 등을 짚어 봤다.①야권 쿠데타 실패 후 정국 혼란 과이도 의장과 야권이 시도한 쿠데타가 실패한 뒤 지난 2일까지 사흘 동안 반정부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마두로 대통령에게 타격을 줄 정도로 파급력이 크지는 않았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에 따르면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사흘간 5명이 숨지고 239명이 다쳤다. 군부의 이탈은 소수에 그쳤다. 군 장성 등 고위급보다 중간 간부들이 반정부 진영에 가세하고 있다. 마두로가 아직까지는 군부를 장악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물샐틈없이 견고해 보이지는 않는다. 마두로는 군부와 핵심 지지층 결속을 다지고 있다. 쿠데타 시도 세력에 대한 강력 처벌을 천명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에 군이 철저히 대비하라고 촉구하며 긴장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마두로 측근인 제헌의회 의장은 5일 군사봉기를 지지한 야당 의원들의 면책특권을 박탈할 계획이라며 야권을 옥죄이고 있다. 한편 과이도 의장은 지난 4일 미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군부 내 지지세력을 과대평가했다”고 실패를 인정했다. 그동안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 왔던 과이도는 인터뷰에서 필요하다면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의회에서 논의해 승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밝혀 주목된다. 과이도는 그러나 미군의 단독 작전에는 여전히 반대하며 베네수엘라 군대가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의 전·현직 관료들과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직접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정권교체에 대한 미국의 강한 의지는 균열 조짐을 보이는 마두로 지지세력을 동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유럽, 대부분의 남미 국가 등 54개국의 지지와 미국의 경제제재, 반정부 시위대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과이도 의장이 넉 달 동안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지도력과 야권의 집권 능력에 대한 회의도 일부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②수개월 준비한 쿠데타 왜 실패했나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들에 따르면 야권과 마두로의 핵심 측근들 간 마두로 퇴진과 평화로운 정권교체에 대한 비밀 협상이 수개월간 진행돼 왔다. 베네수엘라 야당 정치인들과 엘리어트 애이브람스 미국의 베네수엘라 특사 등에 따르면 협상이 잘 진행돼 양측은 15개 항의 합의문까지 마련했다고 한다. 협상에는 마두로의 최측근인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장관과 메이켈 모레노 대법원장, 이반 라페엘 헤르난데즈 대통령 경호실장 겸 군정보국장, 마누엘 리카르도 크리스토퍼 피구에라 비밀경찰 수장 등이 참여했다. 이 중 피구에라 비밀경찰 수장만 과이도 편에 서고 나머지는 막판에 마음을 바꿔 마두로를 지지했다. 양측은 마두로의 쿠바로의 정치적 망명 허용, 핵심 인사들 및 군 관계자들에 대한 사면, 과이도가 이끄는 과도정부 출범 및 조기 자유 대통령 선거 실시 등에 합의했다. 국방장관과 대법원장 등에게 사면뿐 아니라 새 정부에서도 중책을 맡기고, 미국의 이들에 대한 제재 해제도 받아낸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들이 막판에 약속을 어기고 ‘배신’을 한 걸까. 첫째 과이도가 체포될 가능성이 커지자 ‘거사일’을 갑자기 하루 앞당겨 제대로 조율이 안 됐다는 설명이다. 둘째 마두로의 핵심 측근들이 처음부터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는 분석이다. 파드리노 국방장관 등은 야권의 비밀 협상 제의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반정부 진영과 미국의 마두로 축출 전략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려 했다는 것이다. 쿠바 정보당국의 지원 속에 마두로 측이 세운 이중 전략에 과이도와 미국이 속았다는 것이다. ③미러의 대리전 양상… 복잡한 셈법 미국과 러시아는 베네수엘라 사태를 놓고 서로 ‘내정 간섭’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은 마두로 퇴진 계획이 무산된 데에는 러시아와 쿠바의 개입이 있었다고 비난하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외무장관은 주초 핀란드에서 만나 베네수엘라 문제를 논의하지만 원론적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눈엣가시였던 친러시아 성향의 사회주의 정부를 몰아내길 바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외교적 성과에 목말라 있다.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정권의 실패를 미국 민주당과 연결시키려는 정치적 속내도 감지된다.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41%를 수입해 온 미국은 원유 카드로 목을 죄고 있다. 러시아에게 베네수엘라는 주요 무기 수출국이고 석유화학산업 등 경제적 이권이 걸려 있는 전략국가이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요충지로 미국 영향권에 들어가도록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④경제 실정·부정부패 최대 피해자는 국민 남미의 석유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가 왜 이렇게까지 됐나.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는 국제유가가 정점을 찍었던 2008년 즈음 석유수출로 연간 60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넘쳐나는 오일머니로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를 늘리고 주요 생필품 가격을 통제해 물가를 안정시켰다. 석유 등 주요 산업을 국유화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부 20년간 재정 지출을 과도하게 늘리고 외자 도입 등으로 나랏빚이 급증했다. 오일머니에 의존했던 경제는 2015년부터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고위층의 부정부패는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경제정책의 실패와 만연한 부정부패로 죽어나는 건 국민들이었다. 살인적 물가와 식량난, 의약품 부족에 전력난까지 겹쳤다. 가장 큰 문제는 살인적인 초인플레이션. 지난해 인플레는 무려 130만%를 기록했다. 상상조차 힘든 수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가 이보다 10배 가까이 높은 1000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유엔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20%인 700만명이 인도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에 놓여 있다. 5세 미만 어린이 110만명을 포함해 280만명이 의료 검진을 받아야 하며, 430만명이 식수와 위생시설 없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조국을 등진 베네수엘라 사람이 300만명이나 된다. ⑤향후 가능한 시나리오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언론들과 베네수엘라 전문가들이 내놓은 향후 시나리오는 정리하면 3개 정도다. 첫째 마두로가 계속 집권하는 것이다.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고 반정부 활동도 더욱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제재가 강화되면서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돼 민심이 걷잡을 수 없이 이반될 수 있다. 둘째 야당과 주변국들과의 협상을 통해 쿠바나 러시아로 마두로가 정치적 망명을 떠나는 것이다. 이후 과도정부가 들어서고 자유선거를 통해 새 대통령을 뽑고 정상화되는 최선의 시나리오다. 셋째는 마두로 진영에서 후임자가 나오는 것인데, 정권 교체라 보기 어렵다. 정국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미 국무부도 마두로가 수주 또는 수개월 안에 쫓겨나거나 자진해서 물러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향후 최대 변수는 군부다. 실패한 이번 쿠데타 시도를 통해 마두로의 내부 장악력에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많다. 과이도 역시 지도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면 지지세력의 결집을 담보하기 어렵다. 미국과 남미 국가들의 연합체인 리마그룹 등 국제사회의 중재와 압박이 더해져 유혈사태 없이 평화적으로 현 정국을 풀어 가지 못하면 고통받는 건 시민들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할 때다. 대기자 kmkim@seoul.co.kr
  • 로켓 공격 vs 전투기 공습… 이-팔 또 무력 충돌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가자지구에서 지난 3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며 임신부와 어린이를 포함해 10여명이 사망했다. 5일 AP통신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지난 4일부터 이틀간 450발의 로켓포가 이스라엘로 발사됐으며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와 관련된 목표물 260여곳을 타격했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에서 발사된 로켓포 중 250발 이상을 요격했다”고 밝혔다. 이틀간 양측의 충돌로 팔레스타인인 8명과 이스라엘인 3명이 사망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은 지난 4일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임신 중이던 37세 여성과 14개월이던 그의 딸을 비롯해 4명이 사망한 데 이어 5일에는 4명이 추가로 숨졌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로켓포 공격으로 58세 남성 모쉐 아가디 등 3명이 사망했다. 이번 공습에 터키 통신사 아나돌루가 입주해 있던 건물도 공격당했다. 터키 외무부는 “이스라엘의 비대칭적 행동으로 고조된 이 지역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행동을 긴급히 촉구한다”고 규탄했다. 양측의 이번 충돌은 앞서 3일 가자지구와 이스라엘의 접경 지역에서 시작됐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저격수의 총격으로 이스라엘군 2명이 다쳤다며 보복으로 하마스 대원 2명을 사살했다. 같은 날 장벽 부근에서 가자지구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대 2명이 이스라엘 저격수의 총격에 사망했다. 이에 지난 사흘간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의 충돌에 따른 사망자는 최소 15명으로 늘었다. 니콜라이 믈라데노프 유엔 중동특사는 “양측 간 갈등의 해법을 찾고자 오랜 시간 노력한 것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끝없는 폭력의 굴레는 끝나야 한다”며 양국 간 긴장을 완화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최근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가속화한 미국 국무부는 “미국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전폭 지지한다”고 밝혔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쿠데타 실패한 과이도 “군부의 지지 과대평가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군사봉기)를 선언했다 실패한 야당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쿠데타에 대한 군부의 지지를 과대평가했다”고 4일(현지시간) 인정했다. 과의도 의장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아마도 우리에겐 더 많은 군인들이 필요하다. 아마도 헌법을 수호하려는 더 많은 정부 관료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군부 내 이탈자가 대거 발생해 마두로 대통령이 사임할 것으로 기대했던 반(反)마두로 세력의 계획과는 달리 실제 정권에 등을 돌린 이탈자가 미미했을 뿐만 아니라 군이 반정부 시위대 진압에 적극 나서 야당의 시도가 수포로 돌아갔다고 WP는 설명했다. 과이도 의장은 그동안 내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 개입에 부정적이었으나 이날 인터뷰에선 검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국의 개입을 제안하면 뭐라고 답할 것이냐는 질문에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마도 의회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야권 지지층 사이에선 미 군사 개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라고 WP는 전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해 온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난 3일 중남미 지역 관할 사령관을 워싱턴DC로 불러 브리핑을 받는 등 군사 압박 수위를 높였다. 과이도 의장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파업이나 부문별 시위를 조직하고 수행할 것”이라고 파업과 시위로 반정부 운동의 동력을 이어 갈 뜻을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임신부·영아도 폭격에 숨져…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충돌 중지 합의

    임신부·영아도 폭격에 숨져…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충돌 중지 합의

    미국 대이란 압박에 이스라엘 공조 무력시위 분석 사흘간 이어진 무력 충돌과 관련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대표가 무력 충돌을 중지하기로 합의했다고 알자지라 방송 등 외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충돌로 임신부와 영아 4명을 포함한 최소 29명이 숨지는 참극이 빚어졌다. 알자지라 방송은 가자지구 관계자를 인용, 카타르와 이집트의 중재로 현지시간 4시30분 부로 양측이 교전 중지 합의를 이행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측은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았으나 외신들은 6일 오전 이스라엘의 공습 작전이 없었고 공습경보에 대피했던 이스라엘 주민도 귀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의 표적이 된 가자지구 무장조직 이슬라믹지하드 관계자는 알자지라 방송에 “이번 휴전 합의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봉쇄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성사됐다”라면서 “어업 허용 해역을 해안선에서 12해리(약 22㎞)로 늘리고 연료와 전기 공급 상황도 개선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무력 충돌은 지난 3일 이스라엘 남쪽 경계와 가까운 가자지구 북부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봉쇄 조처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던 중 인화 물질을 단 풍선을 날리자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팔레스타인인 4명이 사망하면서 촉발됐다. 이에 4일 팔레스타인을 통제하는 무장정파 하마스는 로켓포를 수십발 발사했고 이스라엘은 대규모 공습과 탱크의 포격으로 대응했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화력 속에 이런 양측의 공방이 5일까지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이 최소 25명, 이스라엘인이 4명 숨졌다. 팔레스타인 사망자 가운데는 임신부 2명과 영아 2명(생후 14개월. 4개월)이 포함됐다.이스라엘군은 6일 “지난 48시간 동안 하마스와 이슬라믹지하드의 로켓포 발사대, 훈련소, 무기고, 관측소 등 표적 350곳을 폭격했다”라면서 “이들 테러조직은 690여발의 로켓포를 발사했고 이 가운데 240여발을 요격했다”라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와 이슬라믹지하드와 관련된 건물에 ‘외과수술식 폭격’을 단행했고 임신부와 영아 사망은 공습이 아니라 하마스의 로켓포 오폭 탓이라고 주장했으나 팔레스타인 측은 민간인 건물도 무분별하게 파괴됐다고 반박했다. 터키는 국영 아나돌루통신의 가자지구 지국이 입주한 건물도 폭격당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스라엘군은 5∼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겨냥해 대규모 공습과 전차 포격을 단행했다. 이스라엘군이 밝힌 작전의 직접 원인은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무장조직 하마스와 다른 무장조직 팔레스타인 이슬라믹지하드(PIJ)가 지난 4일 이스라엘 남부를 겨냥해 로켓포를 다량 발사했다는 것이다. 가자지구에서 로켓포가 날아오기 하루 전 가자지구 북부에서는 반이스라엘 시위를 진압하는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팔레스타인인 4명이 숨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스라엘군은 이 시위대가 인화 물질을 매단 풍선을 날려 보내는 ‘테러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공습의 발단으로 볼 수 있는 반이스라엘 시위는 지난해 3월부터 매주 이어지는 일로, 지난주라고 해서 새로울 게 없었으나 이스라엘은 통상적인 예를 벗어난 대규모 공습 작전을 감행했다. 이스라엘군은 4∼5일 이틀간 하마스와 PIJ의 근거지와 군사시설 350곳을 폭격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비대칭적 대응의 배경에는 부패 혐의로 기소 가능성이 커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가자지구와 충돌을 의도적으로 확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의 위기를 외부와 갈등 고조로 희석하는 정치 전략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검찰은 3월 네타냐후 총리를 뇌물 수수, 배임 등 비리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런 악재에도 지난달 9일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직 5선에 성공했지만 기소될 경우 총리직 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그가 국제적 비판과 논란을 무릅쓰고 시리아 골란고원과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을 자국 영토로 선언하고 가자지구에 대해 무력 대응을 강행하는 것은 개인의 위기를 더 크고 예민한 이슈로 돌파하려는 것으로 해석한다.이와 동시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했지만 실제 조준경은 이란을 겨냥했다는 해석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미국이 이란에 대해 적대적인 경제 제재를 강화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는 가운데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이스라엘이 이란이 지원하는 가자지구를 공습함으로써 일종의 ‘무력시위’를 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첨예해지면 적성국 이란을 직접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곤 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공습 작전 동안 하마스뿐 아니라 PIJ를 노렸다는 점을 부각했다. 하마스도 이란과 우호적이지만 PIJ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자금을 직접 지원하는 무장조직으로 알려진다. 이스라엘군은 “PIJ의 저격수가 평소와 같이 순찰하던 이스라엘군에게 가자지구 분리 장벽을 가로질러 총격을 가해 병사 2명이 부상하면서 이번 무력 충돌 사태가 촉발됐다”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에너지 장관은 라디오 방송에 “이란은 미국이 제재하고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그들의 군사자산을 공습하자 ‘우리는 PIJ를 통해 이스라엘에 보복할 수 있다’라고 말하려는 수단으로 팔레스타인의 폭력 사태를 바라본다”라고 비판했다. 또 이스라엘군은 5일 하마스의 사령관급 인사 하마드 알코두리가 자신들의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하면서 “그는 이란에서 많은 자금을 반입한 자다”라고 주장했다. 가자지구를 폭격하면서도 시선은 이란에 돌린 셈이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동력 상실 ‘과이도의 난’… 베네수엘라 시계제로

    동력 상실 ‘과이도의 난’… 베네수엘라 시계제로

    이틀째 유혈충돌… 20대女 총탄 맞아 숨져 미러 서로 “내정 간섭 말라” 장외 대리전 美, 군사개입 경고 속 “축출 오판” 지적도‘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의 군사봉기 시도로 격랑에 휩싸인 베네수엘라에서 노동절인 1일(현지시간) 이틀째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나 야권이 주도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퇴진 운동이 예상 외로 큰 동력을 얻지 못하면서 베네수엘라 정국이 또다시 ‘시계 제로’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미국과 마두로 대통령을 두둔해 온 러시아는 서로 내정 간섭을 중단하라며 장외에서 격돌했다.과이도 의장은 이날 수도 카라카스 중산층 거주 지역에 집결한 지지자들에게 “(마두로) 정권이 우리의 압박 수위가 최고조에 달했다고 판단한다면 그건 잘못됐다”면서 “계속 압박을 가하자”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군인들과 대화해 그들 모두가 우리의 대의명분에 참여하도록 할 것”이라며 군부의 ‘전향’을 촉구했다. 진압에 나선 군경과 시위대 간 유혈 충돌도 이틀째 이어졌다. 비정부기구인 베네수엘라 사회갈등관측소에 따르면 이날 27세 여성 한 명이 머리에 총탄을 맞아 숨지고, 46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전날 25세 남성 한 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을 입은 데 이어 이틀 연속 사망자가 나온 것이다. 시위가 유혈 충돌로 확산하면서 브라질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베네수엘라 주민도 평소보다 3배 이상 급증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베네수엘라 야권이 최근 수개월간 국방장관, 대법원장, 대통령궁 경비대 사령관 등 마두로 정권 고위 인사들과 비밀 회담을 갖고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는 논의를 해 왔다고 보도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정부 내부 분열을 일으키려는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외신들은 과이도 의장의 정권 퇴진 운동이 동력을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 향배의 열쇠를 쥔 군부에서 마두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이탈자는 극소수이며 정국 혼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됐던 이날 시위대 규모도 수천명에 불과했다. 과이도 의장을 지지한 고위급 인사는 베네수엘라 비밀경찰(SEBIN) 수장 한 명에 그쳤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 정부 고위 참모진이 반(反)마두로 세력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이번 군사봉기가 정권교체로 이어질 것으로 오판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마두로는 여전히 권좌에 있는데, 미 정부의 역할이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와 쿠바의 개입이 베네수엘라와 미러 양국 관계에 있어 불안정 요소가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 정부는 여전히 군사적 개입 가능성을 열어 두는 등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 태세를 유지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내전 위기 베네수엘라… 美 “마두로 쿠바 망명, 러시아가 막았다”

    내전 위기 베네수엘라… 美 “마두로 쿠바 망명, 러시아가 막았다”

    과이도 “軍·시민 모두 거리로” 시위 촉구 마두로 “폼페이오 주장 어이없는 소리” 볼턴 “모든 옵션 준비” 군사적 행동 시사 러·터키, 과이도의 군사 봉기 촉구 비난 베네수엘라의 정권 퇴진 운동이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의 군사 봉기 촉구로 내전 양상의 무력 충돌 위기로 치닫고 있다. 과이도 의장이 30일(현지시간)에 이어 1일 군과 시민 모두 거리로 나오라고 대규모 시위를 촉구하고 있어 혼란은 분수령을 맞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베네수엘라 내 서로 상반된 세력을 지지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 과이도 의장을 지원하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하야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반면 러시아는 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은 “모든 선택 가능성이 책상 위에 놓여 있다”며 군사적 선택을 들어 보이며 마두로 정권과 러시아, 쿠바를 압박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듯이 마두로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특히 베네수엘라인이 아닌 외국인들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군사행동을 선택한다면 미군은 대통령이 의도하는 바를 달성할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 “마두로 대통령이 이날 쿠바로 망명할 준비를 마쳤으나 러시아가 (떠나지 말고) 머물라는 뜻을 전해 눌러앉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마두로 대통령은 “어이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러시아 외교부는 성명을 내 베네수엘라 야권이 폭력에 의존하고 있다며 야권이 군사 봉기를 촉구한 것은 군부를 충돌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베네수엘라의 핵심 동맹국 중 하나인 볼리비아는 미국을, 터키는 베네수엘라 야권을 비난했다. 이날 마두로 대통령 측의 군 장갑차가 수도 카라카스 등에서 시위대에 돌진하는 등 양측 충돌로 100여명이 부상했다. 과이도 의장을 지지하는 군인과 시민 수만명은 얼굴에 파란색 마스크를 쓰거나 어깨에 파란색 완장 및 리본을 착용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노동절, 혼돈의 유럽… 곳곳서 시위·물리적 충돌

    노동절, 혼돈의 유럽… 곳곳서 시위·물리적 충돌

    노동절인 1일(현지시간) 유럽 곳곳에서 기념집회, 시위 등이 열렸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와 경찰, 시위대와 시위대 간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에서는 일부 과격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날 집회에는 ‘노란 조끼’ 시위대 등 수만명이 참여했다. 극좌 성향 무정부주의 단체 ‘블랙 블록’은 시위대 전면에서 병, 각종 물건 등을 경찰에 던졌다. 경찰은 최루가스, 고무탄 등으로 강경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명이 다치고 200여명이 연행됐다. 베를린 등 독일 주요 도시에서도 수만여명이 노동절 집회에 나섰다. 독일 동부의 켐니츠에서는 극우세력 500여명의 집회와 이에 반대하는 시민 1100명의 맞불 집회가 열렸다. 스웨덴의 소도시 쿵엘브에서는 반(反)파시스트 활동가들이 집회를 열던 신(新)나치주의자들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에게도 돌과 폭죽을 던져 18명이 체포됐다.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10만명이 노동절 집회에 참여했다. 러시아의 반체제 단체 OVD-info의 활동가 6명은 반정부 집회를 열려다가 체포됐다. 러시아 극동지역 페트로파블롭스크 캄차츠키에서 노동절 집회에 노란 조끼를 입고 참여한 10여명도 연행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에서 실업을 ‘전 세계적인 비극’이라고 치칭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베네수엘라 정부군 장갑차 시위대 향해 돌진

    베네수엘라 정부군 장갑차 시위대 향해 돌진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수도 카라카스의 라 카를로타 공군기지 근처에서 군사 봉기를 시도한 가운데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시위 과정에서 정부군이 장갑차와 최루탄을 이용해 진압에 나서면서 반정부 시위대와 충돌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장갑차에 깔리는 등 5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과이도 의장 측은 중무장 군인 70여 명을 이끌고 군사 봉기에 나섰으며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과이도 의장은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성취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베네수엘라 정부 측은 “군 반역자들이 일으킨 소규모 쿠데타일 뿐, 폭력에 대한 강력한 진압을 실시하고 있다”며 “ “시위대에 경고한다. 이 모든 행동을 중단하지 않으면 폭력, 죽음, 유혈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게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한편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과 그들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사진·영상= Guardian News youtube 영상부 seoultv@seoul.co.kr
  • 홍콩 중국과 범죄인 인도 협정 반대 시위에 13만명 집결해 항의 시위

    홍콩 중국과 범죄인 인도 협정 반대 시위에 13만명 집결해 항의 시위

    홍콩 정부가 입법화를 추진하는 중국 본토와의 범죄인 인도 법안이 정치범 탄압 등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홍콩 중심가에서 벌어졌다. 홍콩 시민단체 ‘민간인권전선’과 야당 등이 주도한 이번 시위는 ‘우산 혁명’으로 불리는 2014년 민주화 시위 이후 최대 규모였다. 2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시위대는 전날 오후 홍콩 코즈웨이베이 지역에서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에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출발해 애드머럴티 지역에 있는 입법회 건물까지 4시간에 걸쳐 행진했다. 주최 측 추산 13만명, 경찰 추산 2만 2800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 상당수는 우산 혁명의 상징인 ‘노란 우산’을 들고 있었다. 우산 혁명은 당시 시위대가 우산으로 경찰의 최루액 분사를 막았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 법안의 추진은 지난해 홍콩 여성이 대만에서 살해당하면서 비롯됐다. 여성 피해자는 홍콩인 남자친구와 대만 여행 중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 당했는데, 이 남자친구는 홍콩과 대만간 범죄인 인도 협정이 체결돼 있지 않은 까닭에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 법안은 중국과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홍콩 정부가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위대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 이 법규가 악용될 수 있다며 법안의 추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시위에 참석한 리주밍(李柱銘) 홍콩 민주당 창당 주석은 “홍콩인들이 다시 단합의 모습을 보였다”며 “정부는 ‘악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홍콩 정부는 탈세 등 9가지 경제범죄는 이 법안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으나, 시위에 상당수 재계 인사가 참여하는 등 홍콩 시민들의 분노를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위대는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이 홍콩인들을 배신했다면서 즉각적인 퇴진을 촉구했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 폴리 로는 “홍콩인들이 중국으로 보내져 법정에 설 위험에 처했다”며 “홍콩 정부가 인민의 적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2015년 중국이 지정한 금서를 판매한 혐의로 중국으로 강제 연행돼 구금된 경험을 한 출판업자 람윙키(林榮基)는 이 법안이 시행되면 자신이 중국으로 보내질 것이라며 지난 25일 대만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특히 시위대의 분노를 더욱 키운 것은 홍콩 법원이 최근 우산 혁명 지도부에 대해 최대 16개월의 징역형을 내린 판결이었다. 홍콩 법원은 지난 23일 우산 혁명을 주도한 베니 타이(戴耀延) 홍콩대 교수와 찬킨만(陳健民) 홍콩중문대 교수에게 공공소란죄를 적용해 각각 16개월 징역형을 선고했다. 시위를 주도한 민간인권전선 측은 이 판결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홍콩 정부가 홍콩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다음 달에 더 큰 규모의 시위를 벌여 입법회 건물을 포위하겠다”고 밝혔다. 홍콩 정부 입장도 완강하다. 장젠쭝(張建宗) 홍콩 정무사(司·국) 사장은 이날 시위에 대해 “시위 참여 인원이 적고 많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며 “대만 살인 사건을 통해 현행법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함”이라며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日도심서 천황제 반대 집회…극우 인사들과 대치도

    日도심서 천황제 반대 집회…극우 인사들과 대치도

    日경찰, 즉위식에 드론 공격 우려로 방해 전파 계획계승 3순위 왕자 학교 책상에 흉기 놓여아키히토 즉위식땐 박격포 공격 감행도일왕 교체를 사흘 앞둔 28일 일본 도쿄(東京)의 번화가에서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날 오후 도쿄 시부야(澁谷)에서는 50명이 천황제 폐지를 촉구하며 거리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반(反)천황제, 반전(反戰), 개헌 저지’, ‘아베 정권 타도’, ‘파병 반대’ 등이 쓰인 현수막을 들고 “천황제 폐지를 쟁취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였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거리 행진 도중 이들에 반대하는 극우 인사들이 항의하며 경찰을 사이에 두고 양측이 맞서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통신에 따르면 전국에서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일왕이 교체되는 다음달 1일 도쿄의 중심가 긴자(銀座)에서는 600명 규모의 거리 집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일본 경찰은 이들 시위대의 행동이 과격해지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특히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즉위식이 열렸던 1990년 11월12일에는 일왕의 거주지인 ‘황거’ 쪽을 향한 박격포 공격이 감행된 적이 있다. 경찰은 특히 지난 26일 왕위계승 서열 3위 히사히토(悠仁·13) 왕자가 다니는 중학교 교실 책상에서 흉기가 발견되자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경찰은 드론을 이용한 테러 발생을 막기 위해 방해 전파로 드론을 무력화시키는 장비를 활용하는 한편, 다음달 1일 오전 0시를 기해 새 연호 맞이 카운트다운 행사가 열리는 시부야에는 테러대책 부대를 배치하기로 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동영상] 이번에는 환경단체 런던 시위 현장에 뱅크시 작품

    [동영상] 이번에는 환경단체 런던 시위 현장에 뱅크시 작품

    환경단체 ‘대멸종에의 저항(Extinction Rebellion)’이 영국 런던에서 지난 25일(현지시간)까지 2주 가까이 시위와 집회를 벌였는데 그들이 머물렀던 마블 아치의 담벼락에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이 발견됐다. 누가 봐도 뱅크시의 작품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화풍이다. 소녀가 이 단체의 엠블럼이 그려진 컵에다 넣은 촛불을 켠 채 들고 있는 그림에다 ‘이 순간부터 절망은 끝나고 책략이 시작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늘 그렇듯 자신이 이 시위에 참여했는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뱅크시를 배출한 도시로 믿고 있는 브리스톨의 이 단체 지부는 트위터에 많은 시위대원들이 25일 폐회식 때문에 스피커스 코너에 모여 있었을 때 밤새 벽화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당시 마블아치에 밤새 남아 있던 시위대원들은 이 은둔 그래피티 작가가 그렸을 것이란 점을 100% 확신한다고 입을 모았다. 런던에 사는 캘빈 벤슨(48)은 “그 작품이 보존돼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캠핑을 했다며 “우리가 지난 열흘 동안 역사적 이벤트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홀랜드 파크 출신인 스티브 존스(53)는 대멸종에의 저항 집회를 마친 뒤 돌아와보니 스텐실 작품이 “떡하니 나타나” 있었다며 “어젯밤 만난 한 남자가 뱅크시 작품을 모두 사진으로 갖고 있는데 모든 면이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고 했다.웨스트민스터 시 위원회는 “뱅크시일 가능성을 알고” 있으며 간부들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5일 이후 옥스퍼드 서커스, 워털루 다리, 의회 광장 등의 교통을 차단한 잘못 등으로 시위대원 1100명 이상이 체포됐다. 행동주간 마지막 날 행사로 활동가들은 런던 금융지구의 교통을 차단하고 열차에 기어오르고, 재무부 밖에서 인간띠 잇기로 출입구를 봉쇄했다. 이 단체는 정부가 기후 위기의 실체에 대해 “진실을 말해주길” 요구하고 있다. 또 이산화탄소 배출을 2025년까지 0으로 줄이고 시민의회를 소집해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들을 감시해나가자고 주장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노란 조끼’에 응답한 마크롱...재기 성공할까

    ‘노란 조끼’에 응답한 마크롱...재기 성공할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말 유류세 반대로 시작해 반정부 시위로 확산된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한 대책을 내놨다. 근로자에 대한 소득세를 대폭 감면하고 월 2000유로(약 258만 원) 이하 연금액을 물가와 연동해 재도입하는 것을 비롯해 그동안 프랑스 정·관·재계에 포진한 엘리트를 육성해온 그랑제콜(소수정예 특수대학) 국립행정학교(ENA)를 폐지한다는 구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대국민 생방송 TV담화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득세를 대폭 내리려고 한다. 내각에 소득세를 인하하는 대신 조세감면을 줄일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소득세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분은 50억 유로로, 정부지출과 조세감면을 축소해 충당하겠단 방침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러면서 “프랑스는 이웃 나라들보다 덜 일한다.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마크롱 정부는 20여년 전 도입된 주 35시간 근로제를 고쳐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공휴일을 줄이는 방안 등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1945년 신분·배경에 관계없이 관료 엘리트(테크노크라트)를 육성한단 목표로 설립된 ENA를 폐지하겠다고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고위 공무원 제도를 개혁할 것이다. 더는 능력 본위의 시스템이 아니며 공직자의 평생 고용이 필요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대신 프랑스 정부는 국가 공무원 전반을 육성하는 새 교육기관을 출범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NA는 그동안 프랑스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권력 자본이 과도하게 집중됐단 비판을 받아왔다. 마크롱 대통령 본인 역시 ENA 졸업생이다. AP통신은 ENA에 대해 “마크롱을 포함해 역대 대통령 네 명과 총리 7명을 배출했고, 주요 대기업 최고경영자도 수두룩하다”고 소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노란 조끼’ 시위대가 요구해온 국민투표 확대에 대해서도 마크롱은 국민의 직접 민주주의 참여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과 집행이 수도 파리에서 이뤄지는 것을 재검토해 지방에 권한을 어느 정도 이양해주는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노란 조끼 시위대가 요구해온 부유세 부활은 거부했다. 그는 “부유세 축소는 부자에게 주는 선물이 아니라 투자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라며 부유세가 폐지된 것이 아니라 완화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2020년에 부유세 제도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날 대국민담화는 지난해 11월부터 매주 토요일 이어져 온 ‘노란 조끼’ 연속 시위에 따른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당초 지난 15일 예정됐었지만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로 한 차례 연기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노란 조끼’ 연속시위에 따른 추가 대책들을 내놓기는 했지만 주요 정책 기조를 계속 가져가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집권 후 2년간 해온 것을 중단해야 하는지,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온 것인지 자문해봤는데 내가 옳았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은 이날 마크롱 대통령이 제시한 소득세 인하 등 대책이 그가 직면한 정치적 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장시간 회견을 통해 전해진 마크롱의 전반적인 메시지는 지금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강경한 노란 조끼 시위대는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마크롱의 타깃은 그들이 아니라 프랑스 전체였다”고 풀이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수갑차고 도망치던 팔레스타인 소년, 이스라엘군 총맞아 논란

    수갑차고 도망치던 팔레스타인 소년, 이스라엘군 총맞아 논란

    팔레스타인 지역 내 유대인 정착촌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는 모양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 인근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15세 소년이 수갑을 차고 눈이 가려진 채 도주하다가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두 다리를 맞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인터넷상에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CNN에 따르면, 이날 팔레스타인 민간인 시위대와 이스라엘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가운데 한 소년의 체포 과정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 인근 팔레스타인 자치마을 ‘투구’의 주민과 팔레스타인 목격자들은 이날 오전 해당 마을에서 며칠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한 여교사의 장례식이 치러져 많은 사람이 모였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장례식이 끝난 뒤 투쿠 마을로 통하는 길목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 병사들 사이에 소요가 일어났다는 것. 이에 대해 이스라엘방위군(IDF) 대변인은 해당 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이나 민간인이 탄 차량을 향해 대규모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돌팔매질로 목숨을 위협했다고 밝혔다.이에 일부 무장한 이스라엘군이 현장에 투입됐고 도주하던 이들 중 해당 소년 한 명을 붙잡았는데 이 소년이 두 차례에 걸쳐 도주를 시도해서 한 병사가 총으로 다리를 쐈다는 것이 IDF 측의 설명이다. 특히 이 지역은 최근 들어서 이스라엘인들과 이들이 탄 차량을 상대로 돌을 던지거나 차량 타이어에 불을 지르는 행위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마을 근처에 유대인 정착촌이 있기 때문이라고 CNN은 설명했다. 반면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두 다리를 다친 오사마 알바단(15)의 부친 알리 알바단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은 아무 이유 없이 이스라엘군에게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은 아이가 돌을 던졌다고 의심했지만 난 내 아이가 그러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만일 돌을 던졌다면 숨기지 않고 인정했을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돌을 던진 행위가 아이를 총으로 쏠 만한 변명이 되는가”라고 되물었다. 현재 IDF 측은 이번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팔레스타인 측 목격자들은 소년이 총에 맞아 쓰러지자 몇몇 이스라엘 병사가 응급 치료를 시작했고 일부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다가가자 한 병사가 민간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가까이 온 사람의 이마에 쏘겠다고 외쳤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측이 공개한 영상에는 이스라엘군이 하늘을 향해 위협 사격을 가하는 장면도 찍혔다.그 후 소년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았으며 현재 회복 중이다. IDF 대변인은 소년에 관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으며 다만 이날 또 다른 팔레스타인 사람이 체포되는 일은 없었다고만 밝혔다. 사진=CNN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트럼프 6월초 英방문… 대규모 항의 시위 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초 영국과 프랑스를 잇달아 방문한다. 영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방문에 대한 대규모 반대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 런던의 반(反)트럼프 시위대가 선보였던 거대한 ‘트럼프 베이비’ 풍선이 다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6월 3~5일(현지시간) 영국을 국빈 방문한다고 23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만난 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회담할 예정이다. 또 영국 포츠머스에서 열리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6일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나선다. 영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빈방문에 맞춰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질 예정이다. 지난해 7월 취임 후 첫 영국 실무방문 때는 영국 전역에서 100회가 넘는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저귀를 찬 채 화내는 모습의 6m짜리 ‘트럼프 베이비’ 풍선이 다시 등장할지도 주목된다. 풍선 제작 크라우드펀딩을 했던 레오 머리는 가디언에 “지난해보다 5배 커진 풍선 제작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이 현실화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존 버커우 영국 하원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등을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의 합동연설에 강력 반대하기 때문이다. 합동연설은 하원의장과 상원의장의 승인을 받아야 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2011년 영국 방문 때 합동연설 기회를 얻었지만, 조지 W 부시와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합동연설을 하지 못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심재철 “21살 청년의 자필진술서 민주인사 77명을 겨눈 칼이 되었다”

    심재철 “21살 청년의 자필진술서 민주인사 77명을 겨눈 칼이 되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TV에 출연해 1980년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1980년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심 의원에 대한 재심에서 수원지법 안양지원 제1형사부(부장 김소영)는 23일 무죄를 선고했다. 심 의원은 징역형을 선고받은지 39년만이다. 심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있던 지난 1980년 4월 학내 시위를 벌이다 숨진 고 김상진 열사 추도식을 거행하면서 비상계엄 해제, 유신잔당 퇴진 등 구호를 외친 혐의 등으로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심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게재한 글에서 유 이사장이 지난 20일 KBS 2TV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1980년 당시 자신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미화했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이같은 내용의 글과 함께 판결문 증거요지를 참조로 덧붙였다. 심 의원은 “1980년 (유 이사장이) 합수부에서 쓴 A4 용지 90쪽 분량에 이르는 상세한 운동권 내부 동향 자백진술서는 사실상 그가 진술서에서 언급한 77명의 민주화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됐다”고 밝혔다. 특히 “그중 3명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공동피의자 24인에 포함되는 등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핵심 증거로 활용됐다”며 “유시민의 진술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판결문에서 증거의 요지로 판시됐다”고 말했다. 또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자신의 재판에 핵심 증거물로 제출돼 유죄 선고 증거로 채택됐다고 강조했다. 심 의원은 “이러한 진술서에 대해 유 이사장은 방송에서 ‘진술서 용지에 하루에 100장을 쓴 적이 있다…(중략)…안 맞으려고.어떻게든 늘여야 하잖아,분량을’이라고 하는 등 우스개마냥 이야기했다”며 “예능 화법으로 역사적 진실이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에 대한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시민은 역사적 진실을 예능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며 “자신의 왜곡 발언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심재철 의원의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유시민은 역사적 진실을 예능으로 왜곡해서는 안된다 4월 20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KBS-2TV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1980년 서울의 봄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왜곡했다. 유시민 이사장은 TV에서 “누구를 붙잡는데 필요한 정보 이런 것은 노출 안시키고 우리 학생회 말고 다른 비밀조직은 노출 안시키면서 모든 일이 학생회 차원에서 이루어진걸로” 진술했다고 합리화 했지만 1980년 합수부에서 쓴 A4 용지 90쪽 분량에 이르는 그의 상세한 운동권 내부 동향 자백진술서는 사실상 그가 진술서에서 언급한 77명의 민주화 운동 인사를 겨눈 칼이 되었고, 그 중 3명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공동피의자 24인에 포함되는 등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핵심 증거로 활용되었다. 유시민은 군검찰에 임의진술 형식으로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한 뒤 불기소로 풀려났지만 검찰관이 작성한 그의 참고인 진술조서는 공소유지를 위한 검찰의 핵심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되었고 유시민의 진술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서 ‘증거의 요지’로 판시되었다. 본 의원이 체포되기 3주 전인 1980년 6월 11일과 12일자로 최종 정리된 유시민의 합수부 제출 자필 진술서(001168-001257쪽)에는 77명의 이름이 구체적인 행동과 함께 적시되었다. 곧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서울지역 학생회장단 22명, 총장 등 서울대 보직교수 6명, 서울대 학생운동권 40명의 행적, 민청협(신군부가 김대중 산하단체로 기소함) 회장 이해찬 등 복학생 8명, 해직언론인 1명의 이름이 혐의내용과 함께 상세하게 기술되었고 결국 당사자에게는 또 다른 칼로 겨눠지게 되었다. 유시민의 진술서는 1980년 2월부터 5월까지 서울대 핵심 운동권의 동향, ‘김대중과 관계한다는 이해찬’을 중심으로 한 복학생들의 시위 교사 정황, 서울시 22개 학생회장단, 사북탄광 실태조사, 외부 해직기자들과의 연대까지 일지처럼 상세하게 9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유시민은 자신의 자백 진술서에 77명의 이름과 행적을 적시함으로써 계엄당국은 사태 처음부터 서울대 등 당시 학원 상황과 학원관련 외부 움직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카드를 쥐게 되었다. 이처럼 상세한 진술서에 대해 유시민은 방송에서 “진술서 용지에 하루에 100장 쓴 적이 있어요. 편지지처럼 줄 쭉쭉 그어져있는 진술서 있죠. 거기에 볼펜으로 100장을 쓴 적이 있어요. 안 맞을려고. 어떻게든 늘여야 되잖아 분량을”이라고 등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우스개마냥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지나치게 상세한 진술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가급적 숨기려했던 다른 관련자들에게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되었다. 수사당국이 이미 알고 있는데도 이를 알 리 없는 피체(被逮)자들은 하나라도 숨기려 했다가 곧바로 폭력의 세례 앞에 발가벗겨져야 했다. 실제 그의 진술서에는 ‘4월 11일 시국성토대회를 한다고 마이크를 접수하려던 복학생이 민청협회장이자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이 돌던 이해찬(001180쪽), 복학생들이 5월 2일부터는 교내시위를 벌이면서 비상계엄문제를 이슈화하라고 지시했고(001196쪽), 사북사태보고서는 복학생 황광우가 조사반으로 현지에 다녀왔으며(001249쪽)’ 등을 비롯해,‘5월 14일 심재철이 광화문으로 가두시위 할 것을 결정 발표하고 저는(유시민은) 목이 쉬어 학생들 지휘할 생각을 포기하고 학생들 틈에 섞여 있었으며(001230쪽), ’5월 15일 12시 심재철의 지시에 따라 5천명이 모인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저는 사회를 보았는데 강경론과 온건론이 대립하여 서로 양보할 기미가 없었으므로 저는 중립을 지켰고(001232쪽)’등의 내용이 상술되었다. 검찰과 경찰에겐 상세 지도나 다름없는 유시민의 진술서는 본 의원을 기소할 때도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물로 재판부에 제출되었고(검찰 증거목록 정수 1582~1583), 유시민이 ‘심재철에 대한 내란음모 등 피의사건에 관하여 임의로 진술하겠다’고 작성한 8월 12일자 검찰관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는 본 의원의 유죄선고 증거로 채택되었고(정수 1354~1364), 검찰의 공소사실이 전부 유죄로 인정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도 유시민의 진술은 ‘증거의 요지’로 판시되었다.(1심 판결문 160쪽 내지 162쪽) 1980년 서울역 시위대 해산 과정도 유시민의 행동이 미화되는 소재로 왜곡되어서는 안된다. 예능 화법으로 역사적 진실이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시대에 대한 폄훼이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 시위에 대해서도 유시민은 자신이 진술서에서 언급한 사실과 다르게 진실을 왜곡하고 자신의 행적을 대중의 입맛에 맞게 왜곡 미화했다. 유시민은 TV에서 “버스위에 올라가서 해산하면 안된다고 얘기를 하래요. 그래서 내가 올라가서 그 얘기를 했어요”라며 자신이 해산이 아닌 진군을 주장한 것처럼 했다는데 이것은 진실을 왜곡한 것이다. 실제 유시민은 진술서에서 5월 15일 서울역으로 진출하기 직전인 낮 12시 교내시위 때 ‘강경론(교외진출 주장)과 온건론(당분간 교내투쟁 주장)이 대립’하는 가운데 자신은 ‘중립을 지켰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후 학생회장단의 서울역 해산 결정이 내려지자 자신은 안도했다고도 말한 바 있다. 그랬던 유시민이 학생들에게 ‘해산불가’를 선동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서울역 광장에 마이크 시설이라고는 이수성 서울대 학생처장의 주선으로 확보한 마이크로버스 한 대에 달린 소형 확성기 뿐으로 당시 마이크를 쥔 사람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본 의원뿐이었다. 그 마이크로 버스 안에서 서울지역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모여 해산과 진군 여부를 결정했던 것이다. 유시민 역시 진술서에 “심재철은 다음 단계의 행동은 오늘(5월 15일) 저녁 22:00시 고대에서 총학생회장단 회의를 열어 결정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학생들에게 발표할 때 발판으로 이용된 것은 서울대학교의 마이크로버스였으며 이 마이크로버스에 방송기재를 싣고 갔습니다.”(001235쪽)라고 썼다. 역사는 예능이 아니다. 1980년 서울의 봄에서 39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역사적 진실은 은폐되지 않는다. 본 의원은 1997년 5.18광주민주화유공자보상위원회 결정으로 유공자 무상의료보험증이 발급되었지만 곧바로 반납했고 보훈처에 유공자 등록도 하지 않았다. 당시 민주화투쟁은 학생의 당연한 행동이었기에 국가에 공을 세웠다고 대우해달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 의원은 유시민이 이해찬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있던 1988년의 국회5·18민주화운동청문회 때는 80년 유시민 진술서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1995년 전두환내란음모사건 고발인 진술서를 작성할 때 비로소 80년 유시민 진술서의 내용을 알 수 있었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2016년 총선 때는 유시민이 본 의원의 지역구에까지 와서 정의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본 의원을 허위사실로 비방하고 유투브로 낙선운동을 했을 때도 침묵했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마저 거짓을 역사적 사실로 왜곡하는 모습을 보고 진실을 공개하기로 했다. 유시민 위원장이 TV연예프로그램을 통해 80년 상황을 왜곡하고 자신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미화시키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역사는 후세에 전하는 현 시대의 기록이다. 개인적인 유불리 잣대로 진실을 거짓으로 왜곡하고 거짓을 진실로 위장하는 것은 역사 앞에 누를 범하는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떤 입장이 각광을 받는다고 당시 있었던 사실 자체가 달라질 수는 없다. 21살 재기 넘치는 청년의 90쪽 자필 진술서가 다른 민주화인사 77명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되었고 이 중 3명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24인 피의자가 된 진실을 감추고 자신의 문재(文才)를 확인하는 집필 계기가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유시민씨는 자신의 왜곡발언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39년 전 자신의 자백 진술서가 검찰이 본 의원을 기소한 핵심 증거였고 자신의 검찰관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로 운동권 선후배들이 고통당하게 된 신군부의 촘촘한 포획망이 되었음을 유시민 이사장은 지금이라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2019. 4. 22. 국회의원 심 재 철   <참조>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판결문에 증거의 요지로 판시된 유시민   공소사실이 100% 유죄로 인용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1,2심 판결문의 증거의 요지로 유시민의 이름이 판시되었다.  증거의 요지 (중략) 검찰관 작성의 한**, 김**, 홍**, 함**, 강**, 김**, 채**, 조**, 조**, 박**, 최**, 금**, 이**, 유시민, 박**, 이**, 조**, 이**에 대한 각 진술조서 중 판시 사실에 부합하는 각 진술 기재부분.(중략) 등을 종합하면 인정할 수 있고, 피고인 김대중, 문**, 이**, 조**, 설*, 서** 및 김**에 대한 판시 각 전과 외 점은 위 피고인들의 이 법정에서의 각 해당판시 전과에 부합하는 진술에 의하여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인들에 대한 이건 판시 사실은 증명이 충분하다. (1심 판결문 160쪽 내지 162쪽)   2. 검찰참고인진술조서를 작성하고 불기소로 풀려난 유시민 유시민은 980년 8월 12일 심재철에 대한 내란음모 피의사건에 대해 검찰관 참고인자격으로 수도군단계엄보통군법회의검찰부에 임의로 진술한 참고인 진술조서 작성후 불기소로 석방되었다. 본 의원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의자 중 유일하게 김대중씨나 김대중씨 측근에게 금품을 수수했다는 법정 진술을 한 적이 없었으며 이는 공판조서에서도 확인된다. 본인이 수배 중 계엄사 합수부에서 발표한 중간수사결과에서 언급된 백만원 수수는 김대중씨 최측근의 허위자백(김xx씨 검찰 참고인 진술조서)(김xx씨 합수부 진술조서)임이 확인되어 공소사실에 빠졌지만, 유시민은 추가로 김대중씨가 본인에게 20만원을 교부했다는 검찰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하고 불기소로 풀려났다. 유시민: 저는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19:00경 청원중국음식점에 가기위하여 먼저 출발하였기 때문에 잘 모르겠으나 나중에 들으니 김대중이 함석헌과 함께 참석하여 조위금 20만원을 심재철에 교부하고 조사를 하였으며 학생들이 이 ‘김대중만세’등의 구호를 외치며 상당히 과열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하였습니다.(유시민 검찰 작성의 참고인 진술조서, 1980.8.12)) 1980년 4월 11일 고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서 본인이 김대중씨에게 받은 조위금 20만원 자기앞 수표는 다음날 학생회 총무가 은행에 입금후 인출해 농대학생회를 통해 김상진열사 유족에게 전달되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본인과 김대중씨의 공판조서에도 명백히 명시되어 있다. 본인은 공판중 추도식에서 ‘김상진열사 어머니가 소개되었다’ ‘장례금으로 수령했다고’ 진술했고 김대중씨 역시 ‘유족이 있어서 20만원을 조의금으로’ 줬다고 법정 진술을 한다.(심재철 1심 6차 공판조서 001601-1602쪽)(김대중 1심 14차 공판조서 002364~002365쪽)   3. 서울역 시위 해산과 진군에 대한 유시민 진술의 허구성 유시민의 진술서에는 유시민은 진군을 주장하는 학생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본인이 중립이었고 교문밖 시위를 주장하는 강경파와 복학생들에게 휘말리지 않으려 노력한 온건파 중립이었다고 기술했다. 저는(유시민은) 학생들 지휘할 생각을 포기하고 학생들틈에 섞여있었고(001230쪽)21:30분이 다가오자 초조해졌고 학생들을 해산시킬일이 걱정되었던참에 경찰저지선에서 지휘하시는 분이 서울대 정문에 오시던분이어서 제가 손을 흔들며 달려가서 인사를 드리고 22:00까지 해산시킬테니까 페퍼포그를 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리자 응낙해주셨고 저는 정확히 22:05에 학생들을 해산시켰습니다.(001232쪽) 5월 15일 12시 심재철의 지시에 따라 5천명이 모인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저는 사회를 보았는데 강경론과 온건론이 대립하여 서로 양보할 기미가 없었으므로 저는 중립을 지켰습니다.(001232쪽) 학생처장 이수성교수는 저에게 ‘자꾸 강경파에게 밀리지 말고 소신껏 학생들의 피를 흘리지말고 활동하라’고 말하였습니다.(001238쪽) 5월 17일 복학생 김병곤이 저를 찾아와 가두시위를 말해 저는 제가 결정할 일도 아니고 심재철에게 이야기해 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001240쪽)   4. 5월 17일 수배중인 본 의원의 행선지를 합수부에 밝힌 유시민 5월 17일 18시 25분경 이대 쪽에서 익명의 학생이 총학생회장단 검거소식을 알리고 19시 10분경에 학생활동위원장이 전화해 자신은 이대에서 도망쳐왔는데 심재철의 검거소식은 알 수 없다고 말하고(001243쪽), 19:30분경 심재철로부터 무사히 빠져나와 노량진에 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001244쪽)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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