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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국궁 제작 28년째 주장응씨

    국궁(國弓)은 양궁보다 힘이 더 세다.당기면 ‘팽팽한’ 시위에 전율감마저 느껴진다.최고 2㎞까지 날아간다.과녁의 거리도 양궁이 30∼90m인 반면 국궁은 140m가 기본이다. “과녁에 화살이 꽂히며 멀리서 들려오는 ‘퉁…’ 소리가짜릿하다”는 국궁의 장인(匠人) 주장응(周莊應·51)씨. 국궁을 만들어온지 올해로 28년째다.73년 누나의 시아버지인 김장환씨(84년 작고,무형문화재 47호)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다 아예 눌러앉아 국궁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러기를 7년.경기도 부천의 김씨 집에서 독립한 그는 충남 당진을 거쳐 82년 충남 연기군 전의면 신방리로 내려와 정착,현재까지 국궁을 만들어오고 있다. 국궁 하나를 만드는데는 꼬박 1년이 걸린다.재료도 다양해손잡이 부분인 좀통은 굴참나무,젖가슴 모양인 대림끝부터바틈오금∼한오금∼먼오금∼삼세미까지는 대나무,목수에서시위를 매는 고지까지는 아카시아 나무를 쓴다.시위는 나일론과 면을 섞은 줄을 사용한다. 나무에 물이 오르는 4∼5월에 재료를 준비하고 수입 물소뿔은 한창 더운 8월에 썰어서 쪼갠다.날씨가 추우면 뿔에 금이 가기 때문이다. 활 만들기는 10월 들어서 본격화된다.각기 다른 나무를 이은 뒤 활 안쪽에는 켜낸 물소뿔,바깥쪽에는 소힘줄을 붙인다.소힘줄은 아홉겹을 붙여 활이 무척 탄력적이고 튼튼하다.추울때 해야 잘 붙기 때문에 주로 새벽 2시부터 작업하는 정성을 쏟는다. 접착제로는 ‘민어부레풀’을 쓴다.민어의 부레를 끓여 우려낸 풀이다. 추울때 활을 만드는 것도 민어부레풀이 썩지 않도록 하기위함이다.완성된 활은 백열등으로 35도쯤 덥힌 종이상자 안에서 20일정도 말린다. 활은 탄력이 좋으면서 가벼워야 최상급으로 친다.국궁은 북한에서만 제작되다 남쪽에서는 120여년 전부터 경북 예천 등지에서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다.현재는 주씨 곁을 떠난 제자 3명을 포함,전국에 10여명뿐이다.주씨가 한햇동안만드는 국궁은 340여개.70년대에는 500개를 만들어도 금방동이 났다.개당 60만원쯤 하니 지금도 수입이 적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어 걱정”이라며 “아들에게 가르치려 하나 아들은 ‘의사가 되겠다’고 고집을피운다”고 말했다. 글·연기 이천열기자 sky@
  • [장익는 마을](5)남양주 ‘시골큰집’

    “1년 미만의 햇된장이 깔끔한 전통의 맛을 냅니다” 갓 담근 햇된장으로 전통의 맛을 이어가는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용암리 이영순(李英順·48)씨. 이씨는 오래 묵힌 된장보다 담근지 1년 미만의 햇된장을고집하고 있다.이씨는 “오래된 된장은 콩단백질의 끈적끈적한 성질로 깔금한 맛을 내지 못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대신 장담그는 과정에서의 재료 선택과 정성을 매우 중요시 한다.콩은 인근 주민들이 생산한 우리 콩을 사용한다. 장을 띄울 때도 1년 이상 묵힌 소금만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소금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서다. 특히 소금물에 띄운 장은 섭씨 28도를 유지하는 황토방에서 1주일정도 묵힌다.“된장에 기(氣)를 넣기 위해서”라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모든 과정은 50여일만에 끝이 난다.그뒤 6개월 정도면 숙성이 되고 빛깔이 노르스름한 맛이 유난히 깔끔한 이씨 집 특유의 된장이 된다. 이씨의 이런 장담그는 법은 놀랍게도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아니라 시아버지에게 배웠다. 시아버지는 88년 돌아가기전까지 장담그는 법을 비롯해 송엽주,호박식혜 등 갖가지 전통음식 만드는 법을 일일이 글로 남겨 며느리인 이씨에게 전했다. 이에 힘입어 이씨는 ‘양주군 향토음식 기능보유자’로지정됐고 시아버지의 글은 가족들에 의해 ‘호곡유고(壺谷遺稿)’란 유고집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또 이씨는 99년부터 양주군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으로 집마당 한켠에 30평 규모의 황토방과 장만드는 작업장을 갖추고 한해 100여명의 주부들에게 장담그는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올해는 콩 4,000㎏으로 장을 담가 ‘시골큰집된장’이란상호로 ㎏당 8,000원선에 판매하고 있다.문의 (031)863-7506). 양주 이동구기자 yidonggu@
  • 설 연휴 특집극 풍성

    쌀쌀한 날씨,번거로운 예약절차,집안 대소사….이런저런 사정 따지다보면 설연휴 모처럼 극장 한번 찾기가 쉽지 않다.이런 이들을 위해방송3사가 정성껏 준비한 따끈한 설 특집극들이 안방을 찾아간다.저질성 시비의 온상이 돼온 게 공중파 드라마들이지만 온가족이 둘러앉는 명절이니만큼 가족사랑을 돌이켜보게 하는 훈훈한 소재가 대부분. 테이프를 끊는 것은 SBS.21일 오후9시50분부터 두시간동안 방송되는2부작 ‘먼길’은 고아청년이 우연히 한 여자의 가짜애인이 되어 그녀의 고향에 묻어들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다.명절이 다가오자 애인을 데리고 내려오라는 시골 아버지 독촉전화에 시달리는 선주(박진희).변심한 애인 기현(소지섭)에게 고향만이라도 같이 가달라고 매달리지만 거절당한다.다급해진 선주는 우연히 만난 우식(이병헌)에게 일일 사윗감이 되달라 청하고,고아로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란 우식은 자신을 끔찍이 챙겨주는 선주 아버지를보며 평생 처음 가슴이 미어지는 그리움을 느끼는데…. MBC가 25일 오전9시40분방송할 ‘며느리들’은 99년 동명 추석특집극에 이은 연작형식.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온 자식들이 그린벨트에서 해제된 부모의 땅을 노려 아웅다웅했던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부모 앞에서 티격태격하는 아들딸 네쌍의 모습을 이웃인양 밉지않게 그려간다. 간밤에 꾼 황소꿈을 태몽으로 철썩같이 믿은 오씨부인(김을동).서울서 내려온 넷째 며느리(김가연)가 속이 안좋다 하자 집안일을 면제시켜 다른 며느리들의 불만을 산다.그런데 정작 임신한 것은 남자친구기준(김진)을 데리고 내려온 막내딸 경주(김윤경)라는 게 밝혀져 집안은 발칵 뒤집힌다.시아버지에 정진,아들들에 이계인 이영범 김세준,며느리들에 박순천 홍진희 노현희 등 99년 멤버들이 다시 모인다. 한편 KBS 위성2TV를 통해서는 이채롭게 연변방송국이 만든 드라마도만날 수 있다.22∼26일 1∼10회,29∼31일 11∼16회가 이어질 16부작‘가족사진’.젊은시절 징용으로 만주땅에 끌려갔다가 국내의 아내가살해됐다는 비보에 접한 리현직이 주인공.연변에서 교수가 돼 새 가정을 꾸린 그는 50년이 지난뒤에야 첫 아내가 생존해 있다는 기막힌소식을 듣는다. 연변동방예술학교,연변TV드라마제작센터가 합작했고 이동철 최금순이근화 오향옥 등 연변배우들이 출연한다. 손정숙기자 jssohn@
  • 백악관 안주인 정겨운 인수인계

    힐러리 클린턴 여사와 로라 부시 여사의 백악관 안살림 인수인계가시작됐다.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당선자의 부인 로라 여사는 18일 지난 8년간 백악관 안살림을 맡아온 힐러리 여사를 방문,차를 들며 백악관 살림살이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물러나는 퍼스트 레이디와 새로 백악관의 안주인이 될 두 사람간의만남은 미 대통령의 권력승계 절차의 하나로 자리잡은 전통. 언론들은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생활을 시작하는 ‘활동파’힐러리 여사와‘현모양처형’인 로라여사의 백악관 대면 분위기를 상세히 전했다. AP통신 등은 ‘헬로’‘만나서 반갑습니다’로 시작된 두 퍼스트 레이디의 만남에 대해 워싱턴의 혹한을 녹일만큼 따뜻하고 정다웠다고설명했다.힐러리 여사는 현관 입구에까지 나와 예정시간보다 7분 늦게 도착한 로라 여사를 맞았으며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사진기자들에게 환한 미소로 포즈를 취했다.특히 혹한 때문에 승용차 문이 얼어 붙어 열리지 않자 힐러리 여사는 따로 경호원을 불러 문을 열어줬다. 로라 여사는 “백악관에 대해서는 좀아는 편이며 링컨 룸과 퀸즈룸에서 자 본 적이 있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그녀는 시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 재임 때 백악관에 묶은 적이 있는 데다 남편이 텍사스 주지사 재직중 백악관 초청행사 등에도 참석,백악관과는 매우 친숙한 편.지난 89∼93년까지 백악관 안살림을 챙겼던 시어머니 바버라 부시 여사로부터 세밀한 조언을 받을 수도 있는 형편이다. 힐러리 여사는 자서전 판권료로 거액을 챙긴 것과 관련,“워싱턴에수백만달러 짜리 집을 살 계획이 있느냐”라고 기자들이 묻자 “좀도와줄 수 있겠냐”며 농담으로 응수,프로 정치인다운 여유를 보였다. 두 사람의 패션도 주목을 받았다.힐러리 여사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 검정색 바지 정장에 광택나는 분홍색 블라우스,로라 여사는 자주색 울 수트에 소박한 모양의 구두 차림이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MBC 스페셜, 조선왕조 마지막 황세손비 줄리아

    역사의 소용돌이는 때로 전혀 이방인인 듯한 개인의 삶까지 송두리째 휩쓸어 버리는 법. 17일 밤11시5분 ‘MBC스페셜-줄리아의 마지막 편지’편은 미국인으로 조선왕조 마지막 황세손비가 됐던 줄리아 리 얘기다.한반도가 어디붙어있는 지 모른채 살아갔을지도 모를 줄리아는 MIT공대에 유학중이던 고종황제 손자 이구를 만나 혼약하게 되면서 한민족 격변사의 한복판으로 걸어들어온 셈. 그 줄리아가 지난 9월 77세 중풍든 몸으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국방문길에 올랐다.남편이었던 이구를 만나려는 것.58년 7살 연하 황세손과 결혼해 신혼단꿈에 젖은 것도 잠시,이국인을 못마땅하게 여긴 종친회에 의해 82년 이혼당한 뒤 쫓겨나다시피 하와이로 돌아와 말년을 보내고 있던 차였다. 하와이에서 한인 양로원이나 남편이 지은 이스트웨스트센터 방문 등으로 그리움을 달래던 줄리아가 모처럼 작심하고 돌아온 한국은 그러나 마냥 따뜻하지 않다.줄리아는 이미 이곳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져버린 인물이었으며 종친회의 냉대속에 남편과의 재회에도 실패한다.몰락해간 왕조를 증언해줄 450점의 사진,왕가 문장과 유물 등을덕수궁 박물관에 기증하고 시아버지였던 영친왕의 묘소를 찾는 것이고작,한달만에 하와이로 돌아가고 만다. 이 프로는 줄리아의 이같은 방문길을 내내 동행하면서 역사의 희생자인 한 여인의 입을 빌어 당시를 증언한다.황세손이었음에도 결혼패물 하나 해줄 수 없을 정도로 몰락했던 왕가,볼모로 일본에 끌려가 원치않던 결혼을 당해야 했던 영친왕의 비극적 스토리,왕가 여인들의거처인 낙선재에서 쓸쓸하게 사라져간 윤비,이방자여사,덕혜옹주 등에 대한 회상 등. 3년전 제작진이 최초 접촉했을 때만 해도 고운 모습이 사라진 것을보이기 싫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던 줄리아는 풍을 맞은 뒤 한층 초라해졌지만 이번에는 카메라 앞에 나섰다.스스로 사연많은 개인사에 대한 정리의 필요성을 느꼈을까. 제작을 담당한 이종현 PD는 “한국 근현대사는 가치관에 혼란을 줄만큼 격변을 거듭해왔음에도 우리는 서글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은근슬쩍 지워버리고 넘어온 게 부지기수다.줄리아를 통해 이에 대한 총체적 문제제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 北서 ‘생존 확인’ 서울 李春愛할머니 애끓는 사연

    “먼저 시댁에 가 있으면 곧 따라온다더니 그게 50년이 돼부렀어야…” 2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남편 고광욱(高光旭·73)씨가 북에서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은 이춘애(李春愛·72·서울 종로구 창신동)씨는 너무 기가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스물둘 꽃다운 나이였던 50년 피란 길에 남편과 헤어져 재혼도 하지않고 오누이인 자식들만 바라보며 살아온 지 50년 만의 일이다. “도라꾸(트럭)에 기름만 채워놓고 금방 뒤따라 갈 테니 먼저 장성본가에 가 있으라고 해서…”이씨는 인천 상륙작전 뒤인 50년 9월27일 국군과 인민군의 밀고 밀리는 어지러운 싸움을 피해 신접 살림을 하던 전남 광주를 떠나 시댁본가가 있던 전남 장성으로 피란을 떠났다. 도청 공무원으로 마을에서 똑똑하기로 소문난 남편이었기에 곧 따라온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양복을 입고 손을 흔드는 남편을 뒤로 한 채 시아버지를 따라나선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열여덟 나이에 얼굴도 모르는 남편에게 시집간 이씨는 당시 뱃속에딸 재현(在賢·50)씨를 가진 임신 9개월 만삭의 몸이었다.아들 재정(在廷·52)씨는 두 돌을 하루 앞둔 갓난아기였다. 이씨는 “죽은 줄로만 알고 20년 전부터는 명절마다 차례도 지냈는데 이제야 찾는지 모르겠다”며 50년을 청상과부로 지낸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듯했다. 시아버지는 운수업을 해서 큰 화물차를 몇대나 가진 갑부였다.그러나 장성 본가로 피란간 지 얼마 안돼 시댁은 국군과 빨치산의 싸움에모두 타버렸다. 시아버지도 폭격에 돌아가시고 그 많던 재산도 모두없어졌다. 이씨는 “태어난 지 1주일 된 핏덩이 딸은 업고 아들은 품에 안고초겨울 찬서리를 밟으면서 울며불며 산길을 며칠이나 걸어 광주로 돌아왔제”라며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지난날을 회고했다. 전쟁이 끝난 뒤 광주에서 포목점을 하던 이씨는 지난 57년 서울로올라와 친정 언니의 도움을 받으며 구멍가게 등에서 억척같이 일했다머리 속에는 ‘애들이 애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잘키우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들 재정씨는 H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회사 간부로 일하고 있다.딸 재현씨는출가해 어엿한 1남2녀의 어머니가 됐다. 이씨는 “만나면 왜 이제야 찾느냐고 따져야겠다”며 웃는지 우는것인지 모를 얼굴로 하늘을 쳐다봤다. 전영우기자 ywchun@
  • 리뷰/ KBS 일일연속극 ‘좋은걸 어떡해’

    현재 방송3사에서 방송되는 드라마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것은 KBS1 일일연속극 ‘좋은 걸 어떡해’(월∼금 오후8시25분)다.근 두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하지만 시청률만큼 내용이 건강한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좋은걸…’은 남편의 구타로 이혼한 수경(정선경)이 전 남편의 친구이자 대학선배인 장수(정보석)와 결혼하면서 겪는 가족간의 갈등이주요 줄거리다. 방송초 20%의 시청률에서 출발,장수의 어머니 남숙(김자옥)이 결혼을 반대하면서 갈등이 불거지자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이런 시청률 상승에 힘입어 KBS ‘9시뉴스’ 시청률이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의 두배를 넘어서는 견인효과까지 발휘하고 있다. ‘좋은걸…’이 인기를 얻는 데는 가족간의 갈등이 큰 역할을 한 셈이다.문제는 이 갈등이 주로 여성의 문제로 귀착된다는 것이다.여성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어내고 남성들은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를 은근히 부추키고 있다. 수경의 시아버지 치성(주현)은 수경을며느리로 받아들이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아내를 계속 달랜다.수경은 시어머니의 구박에 계속 울지만 든든한 버팀목인 남편을 보며 모든 것을 견딘다. 수경의 시동생 태수(구본승)와 결혼을 원하는 미주(이민영)도 마찬가지.태수에게 자신의 모든 인생이 걸린 것처럼 태수의 행동 하나하나에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한다.이 과정에서 미주의 어머니 순자(양미경)는 시댁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결국 여성이 겪는 모든 갈등은 가족에 기인하고 가족이 해결해 줄수 있다는 설정이다.직장이나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드라마에서 고려대상이 아니다. ‘좋은걸…’ 홈페이지에는 ‘저질 드라마’‘3류 드라마’라는 혹평에서부터 ‘고부간의 반복되는 갈등이 짜증스럽다’,‘한 집안에서그렇게까지 싸울 수 있느냐’는 비판이 올라와 있다.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너무 이상한 드라마’,‘이해되지 않는 설정’이라는 반응이다. 전경하기자
  • [오늘의 눈] 이별, 또다른 만남의 시작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것을 믿습니다.’ 서울과 평양에서 벌어진 3박4일의 ‘한민족 눈물전쟁’이 ‘예정된이별’로 막을 내렸다. 50년을 헤어져 살아온 남북의 가족들이 부둥켜 안고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나겠느냐”며 통곡하는 장면은 우리뿐 아니라 우리 정서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온 외국인들에게도 ‘심금을 울린 충격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이처럼 처절한 이별이 예전처럼 까마득한 절망만은 아니었다. 17일 마지막 상봉장.남북의 가족들은 ‘오래 살아서 다시 만나자’고 절규했다.이 절규가 예전처럼 참담하게 가슴을 후비는 이별의 전주가 아니라 ‘이제야 시작됐다’는 희열과 쾌재로 받아들여 지는 건헤어짐의 아픔에 애간장이 녹아버린 우리 민족의 비원이 낳은 서글픈착란만은 아니리라. 모두들 그렇게 믿고 다시 먼길을 떠나고 또 떠나보냈다. 2차 개별상봉때 ‘부디 오래 사시라’며 미수(米壽)의 어머니에게큰절을 올린 김일성대 교수 조주경씨(68)나,마지막 오찬장에서 ‘많이 드시고 건강하시라’며 눈물로 석별을 고한 북녘 아들 강영원씨(66)의 인사도 결코 마지막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분명 절절한 재회의 염원이 배어 있었다. 그런 염원이 엿보여서일까.북측 방문단이 가족 상봉의 자리에서 틈만 나면 되내인 ‘김정일 장군님의 크나큰 은덕’이라는 칭송도 닫힌사회의 답답한 체제선전이나 세뇌의 결과로만 치부되지 않았다. 다른것은 희망에 이르는 ‘우리’와 ‘그들’의 방법뿐이었다. 18일 아침 쉐라톤워커힐에서 북으로 시아버지를 떠나보낸 한 주부는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며 이렇게 전했다. “시아버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이제는 이별이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다.힘써 통일을 준비하면머지않아 좋은 날이 꼭 올거라고요.”심 재 억 전국팀기자 jeshim@
  • 양승현의 취재수첩/ 金대통령의 소회와 恨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과거 야당총재 시절,정치보복을 우려하는일부의 시각에 곧잘 ‘한국의 한(恨)’으로 대응했다.심청의 한은 심봉사가 눈을 뜨는 것으로,춘향의 한은 이도령을 만나는 것으로 풀리는 것이라고 했다.다시 말하면 숱한 죽을 고비와 핍박,망명,사형선고로 이어지는 정치역정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한의 승화로 전이(轉移)된다는 얘기다.정치보복을 우려할 필요도,역대정권들이 만들어낸 ‘진보적 색채’도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임초,IMF 위기를 건널 때도 우리 고유의 정서인 한과 신명을 강조했다.우리 민족만의 에너지로 위기의 터널을 지혜롭게 지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김대통령은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한다.“TV를 보기 전까지는 이렇게 눈물을 흘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또 “우리민족이 이토록 많은 사연을 안고 여기까지 왔다”며 못내 가슴아파했다고 한다.무엇보다 남쪽에서는 월북한 가족으로,북쪽에서는 월남한 친지로 인해 그동안 가슴 조이며 살아온 사람들이 이번에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남북 정상회담때보다 세계 유수언론이 더 관심을 갖고,취재경쟁에열을 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지구상 어느 민족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한의 문화’가 그들에겐 생소하고 낯선 취재거리였을지 모른다. 무려 55년 동안 사랑하는 아내를,아들과 딸을,그리고 형제를 만나지못하고도 그저 위정자들의 처분만을 바라고 살아온 한겨레,한민족이다. 김대통령은 구한말,시아버지(대원군)와 며느리(명성황후)의 권력투쟁으로 세계의 변화와 근대화를 간과한 탓에 100여년 동안 그 후손들이 분단,전쟁,반목의 세월로 또다른 한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지난 ‘눈물 주간(週間)’을 통해 ‘한많은’ 서민들이 어떤경고와 바람을 표출하고 있는지 우리네 위정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양승현 정치팀 차장 yangbak@
  • 간통피소 여성파출소장 “남편이 폭행 불륜사실 없어”

    친딸이 엄마의 불륜을 인터넷에 공개해 간통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된여성파출소장 김모씨(42·경위)의 심경이 적힌 글이 서울경찰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랐다. ‘경찰사랑 김규주’라는 이름으로 올려진 ‘친딸에게 공개 고발당한 여자의 진술서’라는 글에서 전 광주D파출소장 김씨는 “친딸(21)이 나를 공개고발했지만 딸이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워 지금까지 남편 하모씨(49)에대해 대응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김씨는 “남편과는 고3때 제자와 스승으로 만나 강제로 성관계를 맺고 딸을임신하게 돼 결혼했다”며 “남편은 지난 80년부터 줄곧 폭력을 행사해 왔으며 동료 여교사, 함께 교회를 다닌 여성 등과 여러번 외도를 한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고소당하기 직전인 지난달 7일 시아버지가 내가 위자료 1억원을 내는 조건으로 이혼을 허락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친구 이모씨(40·광주시서구 상무동)집에서 잠시 지낸 것”이라며 불륜사실을 부인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휴먼 카페] 간통으로부터의 해방

    남편이 바람이 나 다른 여성과 실림을 차렸다는 30대 여성이 내게 상담하러왔다. 고등학교때 공부를 잘 했지만 가난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중매로 결혼을 한 여성이었다.결혼 후 겨우 아이 둘을 낳고 중풍으로 몸져 누운 시아버지를 돌아가실 때까지 간병해온 억척같은 여성이었다. 그녀에 따르면 남편의 바람을 눈치채고 짐을 싸서 친정으로 갔다가 아이들걱정에 돌아오니 남편이 그 여성과 함께 집에서 살고 있더란다.그러다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남성에 이끌리고 그 남성을 통해 남편을 혼내줬으면 하고 부탁을 할까,묻는 등 다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여성에게 우선 취직을 하라고 권했다.또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하지도 말라고 했다.그 죄로 남편을 고소하면 남편의 사회생활은 파괴되고 어차피 자식들 때문에 남편과 다시 연루되기 때문에 무익한 일이 될 거라고 했다.그리고 딴 살림을 차린 남편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한 그 여성에게 보석은많이 깎일수록 빛이 나는데 이번 어려움을 극복하면 훨씬 아름다운 사람이될 것이라고 다독여줬다.남편에게 매달리는 현재의 마음을 접고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키워줬다. 우리의 삶에서 솟아나는 모든 희로애락,생각,행동 중에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발전시키고 도우는 것이 나오고 또 제거해야 되는 것이 나온다.간통을 한남편,그 반대의 경우에 의해 상처받은 현대의 생활인들은 그 불행에 매여 있지 말고 그걸 현실로 빨리 인정하고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다.그 주변의 사람들도 간통이나 바람에 흥분하거나 실의하기보다 그 이후의 유쾌한 삶을 위해차분히 도와주어야 한다. 양천구보건소 소아과 의사 안병선 quasy@chollian.net
  • 北서 통보한 8·15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명단(서울·경기)

    표 보는 법=이름,성별,나이,본적지,헤어질 당시 주소,헤어질 당시 직장 직위,남쪽 가족 이름 및 관계 순으로 정리 [서울] ■리기명 남,70,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4-264,서울 동대문구 신당동,한양공대 건축과 학생,리무욱(부),정예분(모),기영 기봉 기남 기화(형제),리재홍리재영(처남) ■림순응 남,65,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서울 공업학교학생,림승택(부),김음분(모),춘응 영숙 원응(형제),무성(조카) ■로 남 남,68,충남 홍성군 홍주면 대교리,경기 양주군 의정부면 의정부리,의정부면 양주국민학교 교원,로제순(부),리춘홍(모),삼 강 미도(형제),제윤(삼촌),수친 룡식(4촌) ■로영근 남,68,서울 용산구 이태원,강원 영월군 영월읍,영월화력발전소 건설장 노동,로춘식(부),백안순(모),귀손 영구 영순 영자(형제),옥린 옥란(조카) ■문양옥 여,67,경남 거창군 거창면 동리,서울 종로구 숭인동,숙명여자중학교 학생,문윤상(부),신숙재(모),경자 종옥(형제),괴상(삼촌),무원(4촌),신명숙(이모) ■전기홍 남,68,서울 성동구 상왕십리,서울 영등포구대방동,성남중학교 학생,전한갑(부),박예분(모),기춘 기송 기옥 기남 기태 기륭(형제) ■조진용 남,69,서울 부여군 임천면,서울 종로구 동승동,서울대학교 법과대학 1년 학생,조석영(부),정선화(모),진만 진수 진회 진열(형제),재영(삼촌) ■임재혁 남,66,서울 동대문구 용두정 199,서울 중구 충무로1가,북양상점먹공장 노동자,임휘경(부),최경희(모),창혁 정혁 봉혁 부자 명자(형제),최봉주(외삼촌) ■김동진 남,74,서울 종로구 명윤동,서울 동대문구 안암동,서울 고려대학교 경제학부 학생,김복길(부),정복순(모),동만 동순 경순 경자(형제),동호 동욱(4촌) ■김영황 남,69,서울 종로구 충신동,서울 중구 필동,동국대학교 문화부 학생,김윤택(부),박옥령(모),리성숙(형수),김우현(조카),장재원 장정민 장정엽 장정모(이모4촌) ■리영수 남,66,서울 영등포구 본동,서울 용산구,서울 교통학교 학생,리복성(부),김봉자(모),영호 인길 순길 인순(형제),영숙(4촌누이) ■김옥배 여,62,서울 종로구 가회동,서울 종로구 계동,서울 종로구 창덕고등여학교 학생,김현도(부),정길순(모),유광 숙배 영배(형제),안교준(시아버지),황성래(시어머니) ■박 섭 남,74,경북 상주,서울 서대문구 동소문동,극단 ‘신향’ 배우,박창례(부),김간란(모),병련(동생),김순경(처제) ■김 득 남,68,경기 인천시 송림동,경기 인천시 서림동,인천시 인천동산중학교 학생,김림(부),하정일(모),석 복 의형 말형(형제),김욱(4촌) ■홍신희 남,68,서울 종로구 사간동,서울 중구 본정,서울 금성제약회사 노동자,홍붕식(부),리영주(모),백희 규희(4촌),기웅 기천 기문(5촌조카),리택주(외3촌) ■김용현 남,70,서울 종로구 다동 99,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신공덕리,서울대학교 공과대학 2학년 학생,김성동(부),최영희(모),김익동(삼촌),기현 옥현 정남 복현(4촌),최광섭(외4촌) ■리상규 남,65,서울 중구 서사은정,서울 종로구 교동,경기도청 이발소 견습공,리수봉(부),리수환(삼촌),금배 은배(4촌) ■리명호 남,63,서울 마포구 공덕동 122,서울 용산구 원효로2가,원효로 중학교 학생,리중환(부),리남영(모),길호 청자(형제),호경(4촌),노마(고모),손창학(고모부),손규수(고모4촌) ■리원상 남,60,경북 칠곡군 왜관면,경기 서울 성동구,경기 서울 청구국민학교 학생,리영욱(부),리소조(모),일상 영자(형제),리순히(고모),리순(고모부),리경조 리애성(이모) ■주영섭 남,68,서울 종로구 청진동,서울 종로구 계동,휘문중학교 학생,주병한(부),홍갑희(모),경자(누이) ■윤경순 여,72,서울 종로구 연건동,서울의학대학병원 약국처방 검열원,윤태형(부),고춘경(모),완 근(형제),태협(삼촌),용 용순 수옥(4촌) ■김영숙 여,68,서울 종로구 혜화동 32,서울 동대문구 안암동,서울 동대문구 성신여자중학교 학생,김한순(부),신경순(모),정숙(언니),김우일 김승일(조카),신호열 신호영(외3촌) ■조성명 남,64,서울 상주군 낙동면 운곡리,서울 영등포구 대방동,서울 공업중학교 학생,조형면(부),전씨(모),성대(동생),성욱(4촌),이연(3촌) ■서윤만 남,72,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서울 종로구 낙원동,서울 종로구경교자동차수리공장 노동,서승복(부),리백분(모),일영(누이),천금복(매부),리장제(이모4촌) ■주영훈 남,69,서울 종로구 관훈정 161,서울종로구 명륜동,서울 동국대학교 정치경제학부 학생,주진환(부),문경자(모),영관 영인 영희 영애(형제) ■서병옥 여,66,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경기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서울여자상업중학교 학생,서상용(부),남경의(모),병서 병상 병희 병숙(형제),서경원(아저씨),서상욱(조카) ■김재호 남,65,서울 마포구 엽리동,서울 서대문구 만리동,서울 서대문구균명중학교 학생,김재호(부),차경희(모),재만 재환 재순(형제),차경상(외삼촌) ■강옥순 여,64,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노동,강양우(부),어인숙(모),신하(오빠),신호(4촌),어문호(외3촌),어일우 어일순(외4촌) [경기] ■김응용 남,61,경기 강화군 강화면 갑곶리,경기 강화군 강화읍,경기 강화군 강화공립국민학교,김오순(부),배순자(모),대용 명숙(동생),복실(고모),기철(삼촌),운용(4촌) ■김윤흠 남,82,경기 인천 금곡동,경기 인천시,경기도 인천시 부두 노동자,김중히(부),심사신(모),순흠 연순 옥녀 순분(형제) ■김상렬 남,69,경기 부천군 용유면 남북리,경기 인천시 화수동,경기 인천시 영화중학교 학생,김동빈(부),최씨(모),종렬 광렬 승렬 경렬(형제) ■김홍래 남,67,경기 용인군 남사면 아곡리,경기 부천군 소사면 개봉리,경기 부천군 소사면 개봉리 농업,김부성(부),리옥기(모),형식 형기 형덕 형무(형제),형태 형묵(4촌) ■고천식 남,66,경기 고양군 은평면 불광리,서울 서대문구,서울중학교 학생,고영원(부),김복님(모),준자 은자 광자(4촌),김형기(외4촌),박희진 박수진(고모4촌) ■리종원 남,71,충남 천안군 성환면 용곡리,서울 종로구 수송동,서울 조선전기공업중학교 교원,리택영(부),남인(모),종배 종균 종한(형제),지윤 성렬경은(조카) ■리호범 남,72,경기 부천군 오정면 고강리,서울 종로구 사직동,서울 종로구 윤히구 자동차수리공장 수리공,리계로(부),윤계재(모),락범 치범 원범 오범(형제),재영 재호(조카) ■리수권 남,69,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서울 용산구 체신학교 학생,리귀학(부),리귀희(모),수영 수종 수렬(형제),명운 명범(조카) ■리상순 남,66,경기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경기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 농업,리현준(부),장순이(모),호순 성순 정순 자순(형제),창순 완순(4촌동생) ■민창근 남,67,경기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인천시 만석동,인천 동양방직공장 준비직장 수리공,민억석(부),리영희(모),정숙 정옥 정림 정자 정순 정애(형제) ■박봉옥 여,72,경기 인천부 송현정,경기 인천시 관동,경기 인천시 대동석유주식회사 타자수,박창희(부),김일남(모),홍영애(딸),기옥(동생),인옥 상옥 인웅(4촌동생),원배(외삼촌) ■박두원 남,68,경기 수원군 양감면 송산리,경기 수원군 양감면 송산리 농업,박용복(부),우씨(모),규원 순원(형제),충원(4촌) ■박상업 남,68,경기도 평택군 오성면 학현리,경기도 평택군 오성면 안중리,안중고등공민학교 학생,박태원(부)남씨(모),상룡 상덕 상무 상희 (형제) ■변태식 남,67,경기도 경성부 당주동 74,서울시 종로구 화동,경기 중학교학생, 변영은(부)김용은(모),관식(형제),희창(조카),충식 천식 대식 인식(4촌) ■심혁진 남,62,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농업,심영식(부)리아지(모),심혁정 갑순(형제),천기 수기(조카) ■조재식 남,66,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후리,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하품리,여주 금사고등공민학교 학생,조상길(부)간난(모)재수 재덕 재연 재금 재분(형제) ■최상길 남,68,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가산리,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가산리,농업,최성옥(부)리보금(모), 상원 상춘 삼숙 상화(형제),상철 상녀(사촌) ■최영식 남,64,경기도 고 양군 숭이면 미아리,서울 종로구 청운동, 청운동 경기상업중학교 학생,최영묵(부), 리부전(모),규식 관식(형제) 성호 성희(조카) ■안순환 남,65,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초일리,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초일리,농업,안병홍(부), 리덕순(모),순옥 민환 문환 윤환 인환(형제) ■안인택 남,66,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양주군 대청관 노동자,안경삼(부), 모숙자(모), 인수 우삼(형제), 정돈(삼촌), 인철(사촌) ■유장순 남,68,경기도 강화군 화점면 이강리,경기도 강화군 화점면 이강리,농업,유정봉(부)장음전(모),병숙 정남 정옥 정례(형제) ■황하익 남,71,경기도 강화군 화점면 부근리,서울 영등포구 노량진동,서울동양대학 학생,황우일(부), 김정민(모), 계익 동익 효익 선익(형제),영식(조카) ■홍응표 남,64,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상암리 수상동,경기도 고양군 은평면상암리,상암리 학생,홍영근(부),윤씨(모),양순(형제),삼녀 추녀(4촌)
  • [어떻게 지내십니까] 安弼濬 전 보건사회부장관

    “하루 하루 건강하게 지내는 것에 만족하세요.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말고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안필준(安弼濬·68) 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장관이 건강 및 노인문제 전도사로 변신,활발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그는 노인회,성당,대학 등에서지금까지 100여 차례 강연 및 특강을 했다.최근에는 멋지고 건강한 노년의삶을 위한 지침서 ‘55세부터 인생은 꿀맛이어라’는 책을 펴냈다. 안 전장관은 “고령기에도 멋진 삶을 보내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수”라고전제한뒤 “항상 웃으며 모든 것에 감사해하며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의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며 지론인 3만족 생활운동을 역설한다. 그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인생관과 함께 건강을 위해선 끊임없는 관리와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그는 하루 2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아침에 일어나 30분 정도 맨손체조를 하고 저녁식사후 1시간 정도 걷고 30분가량 스트레칭을 한다.음식물을 많이 먹게 되는 저녁 회식은 되도록 피한다. 안 전장관은 90년초 일본의 베스트 셀러 ‘황홀한 사람’을 읽으면서 노인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모시면서 며느리가 겪는고통과 가족의 갈등을 다룬 이 책을 통해 노인문제는 더 이상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맡아야 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듬해 5월 보사부장관으로 입각한 그는 보건행정을 이끌면서 노인복지에대한 인식을 넓혀간다.93년 2월 장관직을 물러난뒤 미국으로 건너가 1년동안 미국 노인들은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며,질병을 치료하는 지를 살폈다.94년부터는 정부주관 세계보건기구(WHO) 장학생으로 선발돼 일본 동경대학교 의학부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연구에 매진했다.98년 ‘일본의 노인복지정책이한국에 미치는 시사점’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해 자신의 집에 한석(韓石)건강연구소를 차려놓고 노인문제에 대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도 65세 이상의 노인층이 전체인구의 7%가 넘는 등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만큼 노인문제를 더 이상 개인에게 맡겨둬서는 안된다”며 “경제관료들도 선 성장 후 분배의 논리에서 벗어나 많은 예산을 노인복지에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교육,노동,복지문제가 성장론에 밀려 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며“앞으로 이 부문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더욱 요구된다”며 공직사회의 열린 시각을 당부했다. 4성장군에서 행정가로,건강전도사로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안 전장관은 최근 40여개 노인단체의 협의체인 전국노인복지단체협의회장을 맡았다. 임태순기자 stslim@
  • M-TV 새 주말극 ‘사랑은 아무나 하나’ 주연 김지호

    ”늘 제가 나온 프로를 보면 창피하죠. 그래도 이번에는 오랜만의 출연이라즐겁게 연기했어요. 앞으로 좀 더 노력해야겠지요” 16일부터 방송을 시작하는 MBC 새 주말극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 출연하는 김지호의 소감이다.김지호가 이번에 맡은 역은 시골역의 역무원 서경주. 8살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쌍둥이 자매를 하나씩 맡아 키우는 바람에 아버지와단 둘이 산다. 암에 걸린 아버지의 병수발을 하는 자신의 신세에 대한 자격지심에 세상에대해 거친 대사들을 뱉어낸다.극의 후반부에서는 지하철 역무원인 동희(김호진)와 결혼해 시댁에 들어가 살면서 시어머니와 동서들과 한판 결전을 벌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주부역까지 연기한다.그동안의 밝고 건강한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늘 발랄한 역만 맡을 수는 없잖아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 얼굴에 세월의그늘도 묻어나고요.주위에 시집간 친구들이 많아서 그 친구들한데 도움을 많이 요청할 거예요” 요즘 김지호는 시간만 나면 꼭 드라마 편집실을 찾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자신이 한컷 한컷 찍은 연기가 전체적으로 어떤 분위기 속에서 녹아들어가는 가를 배우기 위해서다. “표정연기가 가장 맘에 안 들어요.다시 찍었으면 하는 장면도 많고요” 그의 고집을 받아들여 편집과정에서 다시 찍은 장면도 있다.6일 방송될 자전거장면이다.김지호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핸드폰으로 전화통화를 하는데정신이 팔린 김호진과 부딪치는 장면인데 조명이 너무 세고 역광이라 잔뜩찡그린 모습이 전체 분위기와 맞지 않아 재촬영을 고집했다.6년의 연기생활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편집과정을 지켜보는 게 연기에 많은 도움이 돼요.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더라구요. 대학생이라는 신분도 없어진지 근 1년이나 됐으니 이제 진짜 연기인이 돼야죠”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기 전 김지호는 8개월 동안 쉬었다.그동안 한 일은 요리배우기.요리학원에 다니며 퓨전요리를 집중적으로 배웠다. “재미있더라구요. 요리하는 것도 그렇고 음식을 만들고 나서 먹는 사람의반응을 기다리는 것이 가슴 떨리는 경험이었어요” 시집갈 나이가 된 모양이다. 김지호는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자신도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좋은 사람만나타나면 당장 시집갈 거라는 김지호의 이상형은 느낌이 통하는 사람.서로대화가 되고 이해심이 많으며 경제적인 능력도 갖춘 사람이었으면 한다고. 전경하기자 lark3@. *'사랑은 아무나 하나' 내용은. MBC 새 주말극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서는 드센 여자에 기죽어 사는 남자들이 주종을 이룬다.여자들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드라마이다 보니 '고개숙인 남자’들이 된 셈이다. 경주(김지호)의 시아버지로 나오는 최불암은 그동안의 이미지를 떨쳐 버리고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하면서 어떻게든 밖으로 돌 궁리만 하는 역을 맡았다.아내(정혜선)의 드센 기질에 눌려 자기 할 말 제대로 못하는 아버지 상이다. 연출을 맡은 정인 PD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아버지상”이라며”최불암씨가 연기하면 구수한 맛을 느낄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PD가 특히 애정을 갖고 지켜보길 원하는 출연진은 전자회사 웹디자인팀에근무하는 인태(류진)와 그의 아버지 중필(양택조). 인태는 자신이 악하다고생각하고 악하게 행동하지만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 완연히 드러나는 ‘위악’적인 인물이라는 설명이다.악하게 굴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동정심을 느낄 수 있도록 했는데 여기에는 양택조의 연기가 한몫 할 예정이다.양택조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로 월세방에서 살아가는 홀아비역을 맡아 ‘돈없이 늙어버린,능력없는 남자’의 구질구질함을 한껏 표현해 낼 생각이다.
  • [기고] 영어, 교육은 해도 공용어 안될말

    요사이 영어의 공용어화문제가 또다시 논의되고 있다.일본에서 영어의 공용화 이야기가 나온 후에는 우리 나라에도 더 자주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민족어에는 그 민족의 문화와 가치관이 포함되어 있다.그래서 언어는 동일민족의 증표이기도 하다.그래서 한국 말을 못하는 해외교포는 한국 민족으로인정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영어에는 영국 민족의 문화와 가치관이 말과 표현 속에 포함되어 있다.그래서 동료 교수들끼리도 한국 사람끼리는“김 교수”라고 해야 하고,영어로는 조지,테드 등 이름을 부른다. 한국 말로는 김 교수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호칭은 ‘김 교수’라고 3인칭을써야 하고, ‘당신’이라고 하면 큰일 나는데,영어에서는 ‘You’면 누구에게나 통한다.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카드를 보낼 때도 한국어로는“아버님생신 축하합니다”이지만,영어로는“Happy birthday,George!”가 된다.영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고 미국적 가치관이 담겨져 있다. 또한 민족어에는 식인종처럼 다른 말을 잠식하는 성질이 있다.옛날‘국제화’에 의해 한자가 들어왔는데 그 결과‘?뫼’,‘?밭’이라는 좋은 우리 말은 잠식당하고 대구(大邱),대전(大田)이 되어 이제는 ?뫼,?밭이라는 말을아는 사람도 드물다.미국 식민지 100년이 못되었는데도 필리핀 말(타갈로그)은 완전히 영어에 잠식당하여 다방이나 집안에서만 쓰인다. 콧대 높은 인도의 대학교수들도 학술논문은 힌두어로 쓰지 못한다.영어를전용하는 중등학교가 대인기라서 특권학교가 되어 학생들은 집에서도 영어를쓰고 힌두어 사용 학교 학생들을 멸시한다.이것이 지금 인도 사회의 고민이다.한국도 공과대학 특히 컴퓨터 관련 학술논문은 한글로는 쓰지 못하게 되어가고 있다.공대 교수들 서가에 한국어 책이 5%가 안될 것이다. 민족의 말을 특정 분야에서 쓰지 못하면 그것은 그 말의 죽음의 시작을 의미한다.지금 영어를 공용어화하면 100년 후에 우리 말은 지금의 필리핀 ‘타갈로그’처럼 술집이나 집안에서만 쓰이게 될 것이다.화교 국가 싱가포르의고민은 중국 책과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국민이 격감해 간다는 것이다.그래서세계 각국은 실용의 편리를 위해 꼭필요한 경우 영어를 쓰더라도 공식적으로 민족의 자존심과 언어평등권이 관련되는 경우에는 자국어를 고집한다.“중국은 위대한 나라이고,위대한 민족의 언어는 존경받아야 한다”면서 중국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 중국 말만 쓰기 시작하였고,중국으로 돌아간 홍콩에서는 학교 교육을 중국 말로 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각국에서 유엔대표로 올 정도의 지식인은 다 영어를 알면서도 공식회의 때에는 반드시 6개국 유엔공용어로 통역해줄 것을 요구한다.EU의회에서는 연설을 11개의 공용어로 동시통역을 시키고 있다.지난해 9월 핀란드에서 개최된EU외무장관회의 때에 독일의 피셔 외무장관은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면서도독일 말을 고집하고 통역을 요구하였다. EU국가(國歌)의 곡은 베토벤의 ‘기쁨의 찬가’로 하자고 대략적인 합의는되었는데 가사를 무슨 말로 할 것이냐가 합의가 안되고 있다.그래서 627명유럽의회 의원의 20%가“중립적 국제공통어 에스페란토를 유럽 공통어로 사용하자”는 데 찬의를 표하고 있다.실제로는 영어를 알더라도 공식적으로 영어를 국제공통어로 채택할 수 없는 것이 국제언어정치학적 사정이다. 네덜란드사람,독일사람은 영어가 공용어가 아니라도 각자 필요에 따라 배워서 유창한 영어를 한다.영어가 필요하면 배워서 실용적으로 쓰면 된다.그것을 정식으로 공용어화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웃음거리이다.그렇지 않아도 영어가 밀물처럼 잠식해 들어오는 현실 속에서 오히려 정부가 할 일은 한글과우리 말을 지키는 것이다.적어도 정부 공문서에는 불필요한 영어는 쓰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그렇게 노력해도 2100년 새해 인사를 한국 말로 할 수있을지가 염려되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이종영 한국 에스페란토협회장
  • 77세 시아버지·40세 며느리 나란히 석사모 쓴다

    희수(喜壽)의 시아버지와 40대 며느리가 오는 15일 동국대 졸업식에서 나란히 석사모를 쓰게 됐다. 이 대학 불교대학원에서 ‘경허스님의 생애와 선(禪)사상연구’로 문학석사학위를 받는 김영수(金永洙·77)씨와 산업기술환경대학원에서 ‘청정생산 기술개발을 통한 기업전략에 관한 연구’로 공학석사학위를 받는 이성숙(李聖淑·40)씨가 주인공. 두사람은 한번도 강의에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학교공부에 열심이었고 졸업성적도 4.5점 만점에 시아버지 4.38,며느리 4.25점으로 최우수 성적을 받았다.김씨의 7남매 중 넷째 며느리로 한지붕에 사는 이씨는 원고지 1,000장을 넘는 한자 투성이인 시아버지의 논문을 일일이 교정하고 가다듬어 컴퓨터로 옮겨 쳐주는 효성을 발휘했다. 지난 51년 고등고시 행정과 2회에 합격한 뒤 교단에도 서는 등 공직과 사업에서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는 김씨는 “늦은 나이에 돋보기를 끼고 학업에매달리는게 쉽지 않았지만 불교가 좋고 노후를 멋있게 보내고 싶어 공부를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산업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이씨는 “시아버지처럼 평생 공부하는자세로 계속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
  • 고령화시대 치매관리대책 시급하다

    경기도 남양주군 진접읍에 사는 주부 김정순씨(41).김씨의 가장 큰 소원은‘잠 한번 푹 자봤으면’하는 것이다.그녀는 24시간 긴장속에 지낸다.치매환자인 시아버지 조모씨(74)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집안을엉망으로 만들어놓기 때문이다.벌써 3년째다.더 암울한 것은 아무런 대책도없고,그 고통스런 생활이 언제 끝날지도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고령화시대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치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도 크게 늘고 있다.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노인 수는 약 22만명.65세이상 노인 320만명의 8.3%에 달한다.하지만 치매환자를 밖으로드러내 보이기 꺼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를 감안하면 실제는 10%가 훨씬 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21세기에는 고령화에 비례해 치매환자가 크게 늘 전망이다.세계노인의 해한국조직위원장인 김병태 의원(국민회의)은 “2020년쯤이면 치매환자가 지금보다 3배 정도 늘어난 60만명에 이를 것”이라며 “범국가차원의 적극적인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치매관리 실태는 어떤가.한마디로 ‘수준이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전국적으로 치매노인을 위한 전문요양원은 14개,치매전문병원이 9개 정도 있을 뿐이며,주간보호소 34개,단기보호소 17개정도가 있다.전국 보건소에는 치매환자신고센터가 개설돼 있다.하지만 신고접수만 받을 뿐 실제적인 도움은 주지 못하고 있다.부족한 시설과 인력이나마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역할도 없는 형편이다. 치매노인의 10%,즉 2만명 이상은 전문병원 등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증치매를 앓고 있다.하지만 전국적으로 치매환자가 차지하고 있는 병상은 1,000여개에 불과하다.그만큼 치매는 치료와 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다.현재 대부분의 치매환자는 싫든 좋든 가족들이 돌보고 있다.따라서 치매환자 가정에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가정중심의 치매환자 관리를 위해 강남대 노인복지학과 고양곤 교수는 “가정을 방문해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정봉사원 서비스와 보호센터 증설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250개의 가정봉사원센터와 160개의 주간보호소,40개의 단기보호소가 필요하다는 것. 그러면 현재 치매환자를 위한 정부의 노인복지 예산은 얼마나 될까.고교수는 “노인복지예산만을 볼 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불효자국”이라고 혹평한다. 금년 약 80조의 정부 예산중 노인을 위한 복지예산은 1,900억원 정도.인구의 7%인 노인을 위해 쓰는 돈이 0.24%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그 가운데 치매관리를 위해 쓰는 돈은 300억도 채 안된다.이러한 수치는 전문가들이 치매관리를 위해 우선 급하게 필요하다고 분석한 2,600억원보다 턱없이 적다. 치매전문병원 등 치매환자를 수용해 치료,관리하는 전문시설을 단기간에 대량으로 만드는 것은 예산상 불가능하다.또 치매환자를 시설수용 위주로 관리하는 것은 가정 중심의 관리에 비해 치료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의들의 지적이다.한국치매협회 우종인 회장(서울대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는 “치매문제에서 앞으로 정부가 해야할 역할은 가족이 치매환자를 돌보는데 고통을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노인의 해’다.21세기를 코앞에 두고 치매 문제에 대한 국가적,전세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치매 치료를 언제까지나 자식의 효도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짧게는 2∼3년,길게는 20년 이상 치매부모를 돌보는 동안 부부사이에 금이 가고 부모형제간 온정이사라지는 것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고통받는 가족들의 ‘도와달라’는 호소를 정부가 더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임창용기자 sdragon@
  • [대한매일 95년] 대한매일신보와 배설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준 몇명의 외국인 중에는 본보 대한매일신보(대한매일)를 창간하여 항일구국 언론의 선봉이 된 영국인 배설(裵說·영국명 베델)과 일제 침략기에 언론인으로 한국에 특파되어 ‘대한제국의 비극’을 쓴 캐나다 출신의 매켄지(Mckenzie)그리고 고종황제의 밀령을 갖고 헤이그를 찾는 등 국권수호에 큰 역할을 하고 ‘대한제국멸망사’를 쓴 미국인 헐버트(Hulbert)를 빼놓을 수 없다. 잊을 수 없는 외국 벗들“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는 영생케하여 한국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남기면서 ‘대한매일’을 키우다가 이 땅에 묻힌 배설에 대해 매켄지는 이렇게 썼다. “일본인들은 갖은 수단을 다 부려 그의 생활을 위협했으며, 그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렸다. 그의 우편물은 하나도 거르지 않고 검열을 받았으며, 그가 거느리고 있는 하인들은 여러가지 구실로 위협을 받거나 체포되었으며, 그의 집 주위에는 첩자들이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놀라운 끈기를 보여주었으며 세월이 흘러도 굴복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비극’·신복룡 역주) 헐버트는 ‘대한제국멸망사’의 헌사에서 “지금은 자신의 역사가 그 종말을 고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만 장차 이 민족의 정기(精氣)가 어둠에서깨어나면 ‘잠이란 죽음의 가상(假像)이기는 하나’죽음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대한제국의 국민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란 애정과 국권회복의 희망을 기대하였다.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는 “이 이토의 백마디 말보다 신문(대한매일)의 일필이 한국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는 개탄을 남겼다. 외국인 중에서 우리를 돕거나 해치는 입장이 이토록 달랐다.‘잊고 있는’잊어서는 안될 인물’배설이 우리 애국지사들과 손을 잡고 본보를 창간한 지 18일로 95주년이 된다. 20세기 마지막 생일을 맞아 배설의 일화와 유족 관계를 추적해본다. 배설생일과 한일 기념일 배설은 친한배일(親韓排日)을 ‘운명적’으로 하여 태어난 듯하다. 그의 생일 11월3일은 그가 그토록 증오한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과 같은 날이고 후일 한국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던 날과 더불어 같은 날이다. 배설의 한국 사랑은 남달랐다. 일제의 농간으로 상해에서 3주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후일 그의 비문을 쓴 장지연과 통음을 한 다음날 서둘러 한국으로돌아와서 다시 항일의 붓을 들었다. 그리고 심장병을 얻어 한살 아래인 부인 모드게일(Maude Gale)과 와아들 허버트 오웬을 남긴 채 37세의 짧은 생애를 접었다. 모드 게일은 남편이 죽은 뒤에도 “나는 결코 망부(亡夫)의 사업을 계속 하겠다”면서 사재를 털어 ‘대한매일’의 경영에 바쳤으며, 어린 아들에게 부친의 뜻을 잇도록 하겠다면서 한복을 입히고 한글과 한문을 가르치는 열정을 보였다. 그러나 일제가 ‘대한매일’을 탈취하고 강제합병에 이르자 오웬을 데리고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영국에서 90세까지 살다가 1965년 7월2일에 사망하고, 아들은 어머니가 죽기 전에 런던에서 사망했다. 한국정부는 1968년 3월1일 배설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오웬은 첫 부인과 사별하고 도로시 여사와 재혼하여 딸 수잔과 아들 토미를낳고 1965년 사망하였다. 1968년 7월 주영 한국대사관이 배설 유족찾기에 나서 런던타임스의 도움으로 도로시 여사를 만났을 때 그녀는 시아버지가 ‘대한매일’사옥에 걸었던 낡은 태극기 등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그녀는 1995년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정부 초청으로 한국을 다녀갔다. 당대 최고의 논객 참여 국운이 풍전등화일 때에‘대한매일’에는 외국인 배설과 함께 양기탁·박은식·신채호·장도빈 등 당대 최고의 논객이자 항일 우국지사들이 모여 피끓는 항일논조를 펼쳤다.한국병탄 과정에서 ‘눈엣가시’와 같은 ‘대한매일’에 일제는 배설과 양기탁을 재판에 회부하는 등 온갖 탄압을 자행했지만, 열혈지사들은 이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기우는 국운을 지사 몇 사람이 버티기에는 힘이 겨웠다. 배설의 죽음에 양기탁의 조시는 지금도 후학들의 심금을 울린다. 대영(大英)남자가 대한에 와서 한 신문으로 깜깜한 밤중을 밝게 비추었네 온 것도 우연이 아니건만 어찌도 급히 빼앗아갔나 하늘에 이 뜻을 묻고자 하노라. 정명(正名)을 회복한 대한매일신보사는 금세기마지막 창간일을 맞아 삼가배설·양기탁·박은식·신채호·장도빈 선생 등 선각들의 애국혼을 기리며거듭 바른 글 정신을 다진다. 김삼웅 주필kimsu @
  • 「남북한 西海 교전」꽝… 꽝… 꽝 포성에 섬전역 긴장

    - 전부대원들 전투배치 15일 오전 연평도 앞바다에서 북한과 우리 해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는소식이 전해지자 이곳 군부대는 즉각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꽝 꽝 꽝”하는 포성이 터지자마자 지휘관들은 전 부대원을 전투배치한뒤 참모들과 함께 지하벙커 상황실에 자리잡고 상부에서 내려오는 작전명령을 점검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연평도에 주둔하며 레이더로 해상감시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 293부대는 전부대원이 완전군장을 갖추고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연평도 앞바다 2㎞ 지점에 설치된 해군 바지선 근처에서는 150t급 고속정은 물론,1,000t이 넘는 대형 초계함과 전함들이 빠른 속도로 기동했다.부두에서 배를 타고 나간 남편과 시아버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주민 김순용(金順容·39)씨는 초계함과 전함을 가리키며 “연평도에서 계속 살았지만 대형 군함이 기동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연평도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해병대 9518부대도 106고지 대공감시 포병반에 “서해에서 교전으로 예상되는 포성이 들린다”는급보가 날아들자 즉각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다.해안경비 소대장 강병석(姜炳碩·25)중위는 “소대원들은 이런 때를 대비해 평소 충실히 훈련했다”면서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웃 공군기지에서는 조종사들이 비상출동 명령이 내려지면 즉각 출동할 수 있도록 시동을 걸고 기내 ‘전투대기’에 돌입했다.백령도 등 서해 5개 도서와 인근 바다에 대한 전투공중초계(CAP)도 강화됐다.
  • 3·1절에 보는 베델의 한국사랑

    1904년 창간된 순수 민족정론지 대한매일신보의 사장 베델(裵說)과 신채호등 항일언론인들이 펼친 구국운동이 TV영상을 통해 조명된다.3·1절 80주년을 맞아 KBS 1TV ‘역사스페셜’(토 오후 8시10분)은 ‘3일간의 재판-영국인 베델을 추방하라’를 특집으로 내보낸다.재판은 AP통신에서 특파원을 보낼정도로 국제적 화제를 모았다.이 프로는 90여년 전 서울 정동 주한 영국총영사관에서 3일동안 계속된 공판장면을 재현함으로써 시작된다.‘국내 최초의국제재판’이었던 당시 재판의 피고는 베델이었고 죄목은 ‘한국민 선동죄’였다. 이에 앞서 대한매일신보는 1905년 11월20일 을사보호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된 직후 황성신문에 장지연의 명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이 실리자 같은달 27일 이를 영문으로 번역,호외를 발행하는 등 민족의 소리를 대변했다.당시 1만 3,256부로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했고 영문판까지 있어 국내는 물론 국제여론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베델은 영국인이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신문의 치외법권적 지위를 확보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베델이 한국에 온 것은 1904년 2월.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의 특별통신원자격이었다.‘경운궁의 화재’를 특종보도했던 그는 양기탁 신채호 박은식등 지사적 언론인들과 자주 접촉하다 스스로도 항일 정신을 갖게 됐다. 이런 사실은 일본과 영국의 외교문서에 기록된 베델의 흔적을 추적한 결과확인됐다.자료들은 베델의 ‘처리’를 놓고 영·일 간에 빚어진 외교적 마찰과 베델의 한국 밖 추방결정 과정 등을 알려준다. 담당연출자 김형석PD는 취재과정에서 베델의 한국사랑과 선각자들의 활동에 “감탄했다”면서 “프로그램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프로제작 때 가장 신경을 기울인 부분은 법정의 재현 장면.법정에서 시작해 법정에서 끝나기 때문에 자칫 ‘재미’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였다. 이를 위해 버츄얼 스튜디오(가상공간)에서 진행자가 3자적 관점으로 재판을지켜보는 연극적 방식을 채택,시청자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피고석의베델은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연기자 대신 확대한 사진을 활용했다. 베델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귀중한 자료도 공개된다.1909년 베델이 서울에서 숨지자 한국인들이 보낸 조문편지 묶음 등이 그 것.편지에는 유림과 농부,동경유학생 등 각계각층의 애통해 하는 마음이 절절이 배어있다. 취재 뒷이야기도 많다.베델의 며느리 도로시여사(82)는 시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도로시여사는 당초 ‘촬영 절대불가’를 조건으로 취재에응했다. 이에 따라 김PD는 카메라 뚜껑도 열지 못했으나 이튿날 도로시여사의 자녀들이 찾아와 “할아버지를 많이 알지 못해 안타깝다”면서 도로시여사를 설득해 비로소 촬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PD는 “베델은 ‘한국의 쉰들러’라는 표현외에 달리 형언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許南周yu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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