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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는 동남아] 로또 당첨에 흥분한 태국 남성, 과도한 축하주에 사망

    [여기는 동남아] 로또 당첨에 흥분한 태국 남성, 과도한 축하주에 사망

    한 태국 남성이 로또에 당첨된 이튿날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 남성은 로또에 당첨된 사실에 흥분해서 친구들과 술잔치를 벌이다 음주 과다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세계일보에 따르면, 지난 18일 태국 촌부리주 경찰이 숙소에서 숨진 40세 남성을 발견했다. 경찰은 침대에 쓰러져 숨진 남성에게서 외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방안 여기저기에 대량의 맥주병과 고량주 병이 널려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시신을 병원으로 옮겨 부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아직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과도한 음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사망한 남성의 모친은 “로또 당첨이 아들에게 불운을 가져왔다”고 한탄했다. 모친은 아들이 전화로 로또 당첨 소식을 전했을 때 아들에게 “큰 행운이 올 때 뭔가를 잃을 수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면서 “하지만 아들의 목숨을 잃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통곡했다. 평소 아들이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사실을 알고 늘 술을 조금만 마시라고 다그쳤지만, 로또 당첨 축하주가 결국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 모친은 아들의 로또 당첨금을 장례식에 쓰고, 남은 돈은 아들의 공덕을 쌓기 위해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 ‘수군 동원 日본토 역습’ 상소한 기개… 변응정, 횡당촌전투 큰 공적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수군 동원 日본토 역습’ 상소한 기개… 변응정, 횡당촌전투 큰 공적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충남 금산 칠백의총의 종용사(從容祠)에는 임진년(1592년)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의사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7월 10일 눈벌전투의 전라도 의병장 고경명, 8월 18일 연곤평전투의 옥천 의병장 조헌과 공주 의승장 영규대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8월 27일 횡당촌전투를 이끈 해남 현감 변응정은 조금 낯설 수도 있겠다. 그는 왜군의 기세가 최고조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도 ‘수군을 동원한 일본 본토 역습’을 상소한 기백 있는 젊은 장수였다.● 종용사 방명록 ‘천오백의총 바꿔야’ 필자가 칠백의총을 찾아갔던 날, 누군가 종용사 방명록에 ‘칠백의총이 아니라 천오백의총으로 이름을 바꿔 주세요!’라고 적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연곤평전투 당시 조헌 휘하 칠백의병과 더불어 영규의 의승군이 장렬하게 순절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일 것이다. 기록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600~1000명이었다는 영규의 의승군은 평균해 800명 남짓으로 보곤 한다. ‘천오백’이라는 숫자의 근거가 된다.칠백의사의 시신은 연곤평전투 나흘 뒤인 8월 22일 박정양과 전승업이 거두어 조헌이 군사를 독려한 경양산 어귀에 하나의 봉분으로 모셨다. 1634년에는 금산 군수 김성발과 제원 찰방 조평이 조헌·고경명·변응정은 물론 휘하 막료까지 모두 봉안했으니 칠백의총이라는 이름은 이미 어울리지 않았다. 훗날 사액되며 이름을 종용사로 바꾼 종용당을 이때 세우며 영규대사의 사당도 지었다. 하지만 이제 영규 사당은 찾아볼 수 없다. 칠백의총에 변응정이 향사된 것은 횡당촌전투가 조헌과 영규가 이끈 제2차 금산전투의 연장선 위에 있기 때문이다. 변응정은 당초 조헌과 금산성을 함께 치기로 했지만, 행군에 차질을 빚으면서 뒤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변응정은 조헌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찌하여 약속을 하고도 기일을 어겨 함께 죽지 못했다는 말인가” 하며 탄식했다는 것이다. 변응정 부대는 금산성의 서남쪽 조종산성에서 왜군과 맞부딪쳤다. 변응정(邊應井·1557~1592)은 중종반정의 정국공신으로 원양군에 봉해진 무신 변사겸의 증손이다. 1588년(선조 21년) 식년시에 무과에 급제했는데 당시 나이가 32세였다. 과거 합격자의 인적사항을 담은 방목(榜目)은 한양 거주 변응정의 무과 합격 이전 경력으로 충의위(忠義衛)를 들었다. 왕실 측근을 호위하는 충의위는 공신 자손을 등용한 뒤 별다른 역할을 부여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면 관직을 부여하곤 했던 특수층이었다. ● 32세 무과에… 왕실 측근 호위 충의위 변응정은 왜침(倭侵)의 기운이 높아진 1589년 비변사가 시행한 불차채용(不次採用)에 추천됐다. 전력이나 서열과 관계없이 왜적 방어에 필요한 인물을 등용하는 제도다. 당시 이름을 올린 사람으로는 이순신, 손인갑, 박진, 정담, 정발 등이 있다. 변응정을 추천한 사람은 당대의 맹장이었지만 충주전투에서 왜군에 무참히 패한 신립이다. 변응정은 충의위 시절부터 무인으로 주목을 끌었기에 바로 전해 무과에 급제한 신출내기임에도 불차채용의 추천 대상에 올랐을 것이다. 그가 급제하자마자 월송만호에 부임한 것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월송진은 경북 울진군 평해읍에 있던 수군기지였다. 첨사진보다 규모가 작기는 했어도 400명의 군사를 거느린 지역 사령관이다.변응정이 왜란 직전 현감으로 부임한 해남은 전라우수영이 자리잡고 있던 고을이다. 당연히 해남은 우수영 소속 관포의 하나였으니 현감은 수령이면서 동시에 수군 지휘관이었다. 그러니 우수영 핵심 고을의 수령이 당시 전라좌수영의 이억기 수군절도사 휘하 수군이 아닌 육군으로 싸웠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순신 휘하 전라좌수영의 핵심무장 순천부사 권준이 한때 전라도 관찰사 이광 휘하로 차출됐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박동량(1569~1635)은 일기 ‘기재사초’에 ‘웅치 전투 며칠 전’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변응정이 상소하기를 ‘적이 북으로 함경도, 서쪽으로 평안도에 이르고, 동남쪽 수천리에는 각각 군사를 두어 지키고 있으니, 그 형세가 30만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작고 추악한 왜적이 군대를 30만이나 내보냈다면 그 나라는 반드시 비었을 것이니, 우리가 수군 4만~5만으로 바람을 이용해 돛을 올리면 순식간에 왜적의 땅에 도착할 수 있고, 곧장 근거지를 쳐부수면 나머지는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정에서 그 말을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계략을 채용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당시 일본 전역에서 동원한 병력은 30만명 남짓이었고 이 가운데 16만~17만명을 조선 침략에 내몰았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상식이다. 그러니 일본에도 13만~14만명의 병력은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4만~5만 수군으로 비어 있는 일본 본토 공격’을 주장한 변응정을 철없는 무인으로 대우하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일본의 병력 상황은 이후에 밝혀진 역사적 사실이다. 당시 조선에서 일본 본토에 남은 왜적의 병력이 어떤 규모였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日 본토 공격’ 기히 여겨… 채용 못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본거지 역습’을 주장한 조선 장수의 존재는 자랑스럽다. 전라우수영과 전라좌수영이 병력 현황과 훈련 상태에서 상소를 뒷받침할 만큼 전투에 나설 준비 태세가 잘 갖춰져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군인으로서의 변응정의 정체성도 육군보다는 수군에 가까웠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변응정이 전사한 이후 선조가 전라좌수사를 추증한 데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을 것 같다. 횡당촌전투를 두고 연곤평전투에 이어 의리만 앞세운 소수 병력의 무모한 공격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1596년 4월 6일자 선조실록에는 함흥 판관 신충일의 임진년 당시 행적이 전해진다. ‘신충일은 앞서 강진에 부임했다가 왜란을 당해 변응정과 금산 싸움에 나서면서 사생을 언약했다. 변응정은 신충일의 말만 믿고 먼저 출전해 싸웠다. 적의 형세가 그리 강성하지 못했으니, 신충일이 나아가 구원했다면 변응정이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것인데 구원 요청을 못 들은 체하고 군사를 물렸다’는 내용이다. 횡당촌전투에는 이보와 소행진이 이끈 익산 의병도 참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과 뜻을 같이한 의병은 400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이 순절한 날이 횡당촌전투가 있었던 8월 27일이다. 이들의 의로운 죽음은 이치 정상에 세워진 ‘임란순국무명사백의병비’로 기리고 있다. 횡당촌전투에는 최소한 해남, 강진, 익산의 관군 및 의병이 연합해 출전한 것이었다. ‘적이 강성하지 못했다’는 실록의 기록대로라면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변응정이 언제 어디서 순절했는지를 두고는 혼선도 없지 않다. 1594년 4월 3일자 선조실록은 ‘변응정이 몸소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 강개한 마음으로 죽기를 맹세하고 싸우다가 웅치 싸움에서 전사했으므로 지금까지도 말하는 자들이 못내 마음 아프게 여기고 있다’는 비변사의 보고내용을 전하고 있다. 류성룡의 ‘징비록’은 물론 송시열이 지은 변응정의 묘표까지 ‘웅치 전사’로 적었다. 하지만 신석겸(1754~1836)은 ‘선묘증흥지’에서 과거 기록을 조목조목 검토해 ‘7월 웅치가 아닌 8월 금산 전사’가 옳다고 봤다.금산에는 당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제6군에 안코쿠지 에케이가 이끄는 별동대가 합류해 있었다. 안코쿠지(安國寺)의 승려 에케이는 앞서 김해에서 의령을 넘어 전라도를 침공하고자 했지만 곽재우와 김면의 의병에 차례로 막히며 금산까지 북상한 상태였다. 일찌감치 ‘전라감사’를 사칭했던 안코쿠지는 금산에서 ‘대일본 대왕이 정치의 도(道)를 조선에 베풀어 백성들을 구휼하고자 하는데 무슨 까닭으로 바다와 육지의 길을 막아 도리어 원수가 되려 하는가’로 시작하는 포고문을 내걸고 주민 회유에 나서기도 했다. 왜군은 전라도 초입이었던 금산에 들어서는 과정에서부터 거센 저항에 시달려야 했다. 금산 군수 권종은 6월 22일 불과 200명 남짓한 병력으로 충청도 영동 방면에서 금강을 넘으려는 왜군을 막아서다 순절했다. 조선군은 전주로 향하는 왜적과 싸워 7월 7일 웅치에서 선전했고, 7월 8일 이치에서는 승리를 거뒀다. 이후 조선군은 눈벌전투, 연곤평전투, 횡당촌전투에서 잇따라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고, 결국 왜군은 금산에서 철수했다. 변응정의 횡당촌전투는 왜적으로 하여금 호남을 포기하게 만든 마지막 결정타였다.
  • 北 이탈주민과 토크콘서트… 고민 듣는 강서[현장 행정]

    北 이탈주민과 토크콘서트… 고민 듣는 강서[현장 행정]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들 몰래 초특급 깜짝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북한이탈주민과 함께하는 리얼 토크콘서트’가 열린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강서구민회관 우장홀. 사회를 맡은 MC 남희석씨가 600여명의 관객들에게 ‘깜짝 게스트’를 소개했다. 이윽고 김태우 강서구청장이 활짝 웃으며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들 사이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가 함께 쏟아졌다. 23일 구에 따르면 이날 행사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북한이탈주민을 이해하고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강서구 내 북한이탈주민은 900여명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세 번째로 많다. 김 구청장은 ‘사회적 약자와의 동행’을 구정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행사에서는 김일성종합대 출신 사회운동가 김금혁씨와 유튜버 강은정씨, 강서구청에서 환경공무관으로 근무하는 명홍성씨 등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의 실상과 신구세대의 차이 등에 대해 진솔하게 설명하고, 김 구청장과 즉흥 대화를 나눴다. 김 구청장은 “강서구에 젊은 북한이탈주민이 많은 이유를 알고 있냐”는 사회자의 갑작스런 질문에 “강서구는 지하철 5호선과 9호선이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로 주거비가 저렴하고, 무엇보다 가장 젊은 구청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재치 있게 답했다. 안타까운 사연들도 소개됐다. 북한이탈주민 박송미씨는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13살 때부터 산에서 약초를 캐 쌀을 구했지만 할머니가 16살 때 돌아가셨다”며 “만일 할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북에 남아서 계속 돌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씨는 “늦은 밤 귀갓길에 길거리에서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싣고 가는 모습을 보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이야기했다. 김 구청장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더 감사하게 느껴진다”며 “일상에 감사하며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고 답했다. “한국에 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출연자들은 사교육비 부담을 우선 꼽았다. 이에 김 구청장은 “큰아이가 10살인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사교육비 문제에 공감이 간다”며 “앞으로 교과서만 봐도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구청장은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그분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고, 사회적 약자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따뜻한 강서구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 쓰레기집서 시신 2구와 함께 버려진 8살 아이…송은이·안정환 분노

    쓰레기집서 시신 2구와 함께 버려진 8살 아이…송은이·안정환 분노

    쓰레기로 가득한 집에서 8살 아이가 시신 2구와 함께 발견된 사건이 공개돼 충격을 안겼다. 지난 21일 오후 8시 50분 처음 방송된 E채널 ‘용감한 형사들2’에서 MC 송은이는 ‘포천 고무통 살인사건’의 전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방송에서 소개된 고무통 살인 사건 일지를 보면 2014년 포천의 한 빌라에서 아이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이에 출동한 119 대원들은 집으로 들어가 아이를 구출했다. 당시 아이가 발견된 집 내부 상태는 끔찍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쌓여 있어 일상생활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였다. 더 놀라운 점은 역한 악취가 나는 작은 방에서 119 대원들이 발견한 고무통이었다. 고무통 덮개를 열자 비닐랩과 이불로 둘둘 감긴 백골 시신이 2구나 나왔다. 사건을 설명한 형사는 “시신 하나는 10년 전 살해된 (범인의) 남편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연남의 시신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의 범인 A씨는 독극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8살 아이를 시신 2구와 함께 집에 방치했으며, 그저 가끔 들러 아이에게 먹을 것만 주고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A씨는 2015년 의정부지법에서 살인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0년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는 남편의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A씨가 남편 살해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면서 2심 법원이 이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을 내렸다. 결국 징역 18년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이 확정됐다.
  • ‘안성 추락사고’ 유족 오열…“광주에서 붕괴 사고 난 지 1년도 안 됐는데”

    ‘안성 추락사고’ 유족 오열…“광주에서 붕괴 사고 난 지 1년도 안 됐는데”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1년도 안 돼 또 터졌어.” 경기 안성 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에서 추락 사고로 사망한 40대 중국인 A씨 유족은 21일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사고가 난 지 1년도 안 됐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면서 비통해했다. A씨 시신은 경기 평택의 한 병원에 안치됐다.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은 유족들은 대기 공간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응급실 옆 의자에 앉아 쉼 없이 오열했다. A씨 어머니는 아들 이름을 연신 부르며 “엄마 어떻게 살아”라며 절규했다. 병원 1층에는 A씨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가득 찼다. A씨 이모도 “생전에 자주 안 오더니 지난 주말에는 ‘일이 일찍 끝났다’며 왔다”면서 눈물을 쏟았다. 이날 오후 1시 5분쯤 안성의 KY로지스 저온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에서 작업자 5명이 5~6m 아래로 떨어져 2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용노동부는 하부 동바리(가설 구조물)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작업자들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로 건물 4층에서 콘트리트 타설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4층의 일부 공간이 아래층 양생 작업이 끝나지 않아 작업을 하지 못하고 구멍이 뚫려 있었고 이를 메우기 위한 작업이 이날 진행됐다. 레미콘 차량 5대분인 30㎥의 콘크리트가 타설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에도 레미콘 차량 2대분인 12㎥가 타설될 예정이었는데 오후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바닥이 무너졌다. 무너진 곳 아래는 차량 통행이 가능하도록 2층과 3층을 연결한 램프 구간의 중간 부분이어서 다른 구역보다 층고가 더 높았다. 이날 오후 찾은 사고 현장에는 휘어진 모양의 철근 등 공사 자재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공사장 한 켠에는 ‘저는 여러분의 피땀 어린 노고에 안전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안전은 희망이자 행복이자 배려입니다’, ‘추락 충돌 화재 추방’ 등의 글귀가 쓰인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사고 현장을 찾아 사망·부상 근로자에 대한 깊은 애도와 유감을 표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검토를 지시했다. 노동부는 사고 발생 직후 공사 현장에 근로감독관을 보내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콘크리트 초기 양생(콘크리트가 완전히 굳을 때까지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고 충격을 받거나 얼지 않도록 보호하는 일) 기준 준수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도 조사했다. 노동부는 작업 중지를 명령한 뒤 이 장관의 지시에 따라 중앙산업재해수습본부, 지역산업재해수습본부를 구성했다. 사고가 난 건물은 ‘강문일반산업단지’ 내 9000여㎡ 부지에 지하 1층·지상 5층에 건축연면적 2만 7000여㎡ 규모의 저온물류창고를 짓는 곳으로 내년 2월 완공 예정이었다. 현재 공정률은 50% 정도를 기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성시는 지난 5월 집중호우 대비와 8월 혹서기 대비 명목으로 두 차례 안전 점검을 했다. 당시 시는 흙막 시설을 정비하라고 했지만 안전 사항과 관련해 특별한 건 없었다고 했다.
  •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쩌나…” 안성 물류창고에서 어머니 통곡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쩌나…” 안성 물류창고에서 어머니 통곡

    “추락한 사람들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의식이 없었고 철근더미에 깔린 분들도 있었어요.” 21일 오후 추락 사고가 발생해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 안성시 원곡면 KY로지스 저온물류창고 신축 공사현장에서 만난 작업자 A씨는 참담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지하층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던 A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동료들과 함께 추락한 근로자들을 구하기 위해 2층으로 향했다. 현장에는 채 굳지 않은 콘크리트가 가득했고, 바닥이 붕괴하며 함께 떨어진 철근들이 여기저기 나동그라져 있었다고 한다. 추락한 작업자 중 일부는 아예 의식이 없는 상태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철근이 다리에 박힌 사람도 있었다. 무너진 곳 아래는 차량 통행이 가능하도록 2층과 4층을 연결한 램프 구간의 중간 부분이어서 다른 구역보다 층고가 더 높았다. 이 때문에 부상 피해도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직원들이 몰려가서 추락한 사람들을 구출해 심폐소생술을 했다“며 “이후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다친 사람들을 이송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고 당시 대피한 3명은 (작업 중에) 전선을 잡고 있는 등 보조 역할을 하고 있어서 무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사망자 중 30대 중국인 B씨의 시신이 안치된 평택시 내 한 병원 장례식장은 유족들의 통곡 소리가 가득했다. 중국동포인 B씨의 어머니는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쩌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며 “고생만 한 착한 아들인데 왜 하필 너가 이렇게 일찍 가느냐”며 통곡했다. B씨의 이모는 “(조카가) 건설현장에서 3년 정도 일을 하며 안전 자격증도 따며 열심히 살았는데…”라며 말을 잇지못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물류창고 신축공사장 추락사고 현장을 찾아 현장을 살펴본 뒤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당부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6시쯤 사고 현장을 찾아 추락 지점을 살펴본 뒤 대기 중인 취재진에게 “건설 현장의 안타까운 사고들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며 “사람의 생명과 안전보다 비용을 중시하는 나쁜 문화 때문이고 감시 인력 부족 문제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책임을 크게 지지 않다 보니 사용자 측에서는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는 측면들이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사용자 측 책임을 강화하려는 것도 여러 가지 이유로 여의치 않은데, 산업재해 축소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꼬집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도 이날 늦게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이 장관은 이 자리에서 사망·부상 근로자에 대한 깊은 애도와 유감을 표한 뒤 엄정한 수사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검토를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특히 앞으로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점을 고려해 신속하게 감독을 하라고 당부했다.
  • [포착] “조상 뵐 면목이” 관짝 ‘와르르’ 유골 어쩌나…伊 공동묘지 붕괴

    [포착] “조상 뵐 면목이” 관짝 ‘와르르’ 유골 어쩌나…伊 공동묘지 붕괴

    이탈리아에서 한 공동묘지 건물이 무너져 10여개 관이 공중에 매달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18일(이하 현지시간) 가디언과 안사통신은 하루 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묘지 대리석 건물이 붕괴했다고 보도했다. 사고는 17일 나폴리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포조레알레에서 발생했다. 공동묘지 내 포르타 발레스트리에리 묘역의 4층짜리 대리석 건물이 무너지면서 관 12개가 밖으로 위태롭게 밀려 나왔다. 몇 개 관에선 시신도 노출됐고, 고인들의 유골을 안장한 납골당 역시 일부 무너졌다. 공동묘지 관리 책임자인 나폴리 시의원 빈센조 산타가다는 “붕괴가 있기 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짙은 먼지 바람이 일었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로서 우리는 필요한 모든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사고 이후 나폴리 당국은 해당 건물을 폐쇄하고 원인 파악에 돌입했다. 일각에선 최근 내린 많은 비 때문 아니냔 추정이 제기됐다. 현지 수사당국은 근처 지하철 공사 여파일 수도 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사고가 난 날은 공동묘지 정기 휴관일로 방문객이 없어 다행히 인명피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는 시신까지 노출됐을 정도로 끔찍한 사고라 유족들 반발이 거셌다. 부모님과 아내를 해당 건물에 안치했다는 한 유족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가족들 관이 건물 안쪽에 있어서 밖으로 밀려 나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캄파니아 정치인들은 주도인 나폴리의 공동묘지의 관리 부실 문제를 지적했다. 유로파 베르데(유럽 녹색당)의 지역 의원인 프란체스코 에밀리오 보렐리는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나폴리의 묘지는 너무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고 쏘아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포조레알레 공동묘지에서는 지난 1월 5일 또 다른 건물이 무너져 관 300여개가 훼손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9개월이 넘도록 조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탈리아는 대표적인 장묘문화 국가다. 국교인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사람의 몸에 영혼이 있다고 믿어 1980년대 들어서야 화장을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는 아파트형 혹은 서랍식 납골당이 많은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비슷한 붕괴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 “곡괭이로 학대 기억 선명” 진화위, 선감학원 사건 40년 만에 인권침해 결론

    “곡괭이로 학대 기억 선명” 진화위, 선감학원 사건 40년 만에 인권침해 결론

    2기 진실화해위, 선감학원 사건에폐쇄 40년만에 ‘중대 인권침해’ 결론피해자 “바닷가에 시신 모습 선명”“사망자 29명보다 많아···발굴 필요”아동과 청소년을 구금해 강제노역, 학대 등을 일삼았던 ‘선감학원 사건’과 관련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는 국가 차원의 첫 조사 결과가 나왔다. 1982년 선감학원이 폐쇄된 지 40년이 흘러 피해자들이 전부 고령이 된 지금에서야 나온 뒤늦은 결론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공식 사과하고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선감학원 수용자 전원은 아동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라며 무분별한 단속을 주도했던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와 경찰, 선감학원을 운영했던 경기도는 피해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선감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토대로 추가로 밝혀낸 5명을 포함해 총 29명의 사망자를 확인했다며 부랑아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선감학원 단속·수용·운영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등 총체적 삶의 피해를 규명했다고 밝혔다. 선감학원은 1942년 경기도가 경기 안산 선감도를 매입해 개원한 부랑아 수용시설이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 진술을 바탕으로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유해매장 추정지에서 시굴을 진행한 결과 5구의 유해를 발견하고 치아 70개와 단추 6개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800명이 넘는 탈출자 등을 감안하면 실제 사망자의 규모는 더 클 것이라며 추가 유해 발굴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 13명은 백발이 성성한 채로 눈물을 글썽이며 과거를 회상했다. 피해자 오광석(52)씨는 여전히 40여년 전 썰물이 빠진 갯벌에 도망치다 익사한 아동의 두 다리가 꽂혀 있던 광경을 기억한다고 했다. 1976년 기차에서 잠이 들었다가 선감학원에 입소한 오씨는 이유없이 학대를 당한 경험 탓에 불쑥불쑥 치미는 울화와 무력감 등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오씨는 “곡괭이 자루를 끼운 채로 무릎을 꿇게 하고 발로 허벅지를 짓누르거나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넣고 꼬아 살이 찢어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퇴소 후에도 트라우마를 견딜 수 없어 공업사, 이삿짐 센터, 페인트 업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분투해왔다”고 말했다. 회견에 참석한 김 지사는 “심각한 국가 폭력으로 크나큰 고통을 겪으신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선감학원 사건은 국가 권력에 의한 아동 인권침해 사건이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고 피해 회복을 약속했다.
  • “SPC, 살인적인 12시간 교대 근무…노동자 기계 취급”

    “SPC, 살인적인 12시간 교대 근무…노동자 기계 취급”

    경기 평택의 SPC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노동자 사망사고와 관련해 주·야간 12시간 맞교대 근무하는 장시간 노동이 사고를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받은 ‘SPL 혼합기 끼임 사고 동향보고’에 따르면 사고 전날 오후 8시부터 야간 근무를 했던 A(23)씨는 10시간 정도 일하다 근무 교대 시간 2시간 정도를 앞두고 사고를 당했다. 이 공정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2조 2교대 근무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주일에 5일을 하루 12시간씩 야간 근무를 한다는 얘기다. 유족을 통해 공개된 남자친구와의 생전 카카오톡 메시지에서도 장시간 노동과 야간 근무의 어려움이 드러난다. “이래서 야간 오지 말라고 한겨(거)”, “일 나 혼자 다 하는 거 들킬까봐”, “졸려 죽오(어)” 등 고인은 평소에도 일의 어려움을 자주 호소한 것으로 드러났다.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상임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SPC 그룹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휴식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허울뿐인 주 52시간 근무 시간을 지키려고 그 안에 한 명이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 물량을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인은 특히 야간에 일하다 사망했다”며 “그렇게 일을 시키면 누구도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없다. 노동자를 감정 없는 기계로 취급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수진 의원은 “12시간 주야 맞교대 노동은 노동자의 정신과 삶을 갉아먹는다. 이 때문에 국제암연구기구에서도 2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회사는 살인적인 주야 맞교대 방식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사고와 관련해 경위 파악을 지시한 가운데 고용노동부와 경찰도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사고”라며 “오늘 아침 이 일에 대해 경위 파악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아무리 법이나 제도나 이윤도 다 좋지만, 우리가 같은 사회를 살아나가는데 사업주나 노동자가 서로 상대를 인간적으로 살피는 최소한의 배려는 서로 하면서 우리 사회가 굴러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고용부는 SPL 대표이사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고용부는 사고가 발생한 기계가 2019년 제작돼 자율안전확인신고 대상인데도 끼임 사고 방지 장치(인터록)나 덮개 같은 안전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식품가공용 혼합기는 2013년부터 자율안전확인신고 대상 기계·기구에 포함돼 회전날 접촉 위험이 차단된 구조로 제조·사용돼야 한다. 또 회사의 매뉴얼 등을 토대로 작업의 위험성을 알고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졌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A씨의 장례 절차는 이날 마무리됐다. 경찰은 지난 19일 A씨 시신에 대한 부검을 마치고, 유족에게 인계했다.
  • “아픈 현대사 치유”… 여순사건 정부 주도 첫 추념식

    “아픈 현대사 치유”… 여순사건 정부 주도 첫 추념식

    여수·순천 10·19사건 제74주기 합동추념식이 첫 정부 주최 행사로 열렸다. 오전 10시 추념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전남 여수·순천·광양시 전역에는 1분간 묵념 사이렌이 울렸다. 19일 광양시 광양시민광장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여순사건 유족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영록 전남지사, 소병철·김회재 국회의원, 전남 동부권 6개 시군 단체장과 부단체장, 도민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조화가 무대에 세워졌고, 한 총리의 영상 메시지도 이어지는 등 사건 발생 74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 주최로 열려 의미를 더했다. 추념식은 ‘74년 눈물, 우리가 닦아 줘야 합니다’라는 주제로 추모 공연과 진혼무 등 위령제, 헌화 분향으로 진행됐다. 여순전국유족총연합 광양유족회 김명자(74)씨는 “경찰이 ‘산사람’을 잡는다는 구실로 총을 얼마나 쐈는지 시신들이 피범벅이 돼 아버지를 찾을 수도 없었다”며 “이제는 모든 것을 떠나 유족들 마음속에 핀 눈물꽃을 가슴으로 안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 장관은 “정부도 여순사건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에 속도를 내겠다”며 “화해와 통합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과거사를 해결하고, 자유 대한민국의 아픈 현대사를 치유하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진실을 바로 세우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6일 한 총리의 주재로 제3차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를 개최해 여순사건 희생자 45명과 유족 214명을 공식 인정했다.
  • 광명 기아차 공장 컨테이너 건물서 불…근로자 1명 숨진 채 발견

    19일 경기 광명시 소하동 기아 오토랜드 내 컨테이너 초소 건물에서 불이 나 근로자 1명이 숨졌다. 소방 당국은 이날 오전 6시 5분 기아차 공장 부품품질기획관 사무동 옆 컨테이너 초소에서 검은 연기가 보인다는 인근 편의점 직원 신고로 현장에 도착해 컨테이너 문 앞에서 쓰러져 숨져 있는 근로자 A(60대)씨를 발견했다. A씨는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채 심정지 상태였다. 소방대원이 도착했을 때 불은 이미 공장 자체 진화로 일부 꺼진 뒤였으며, 당국의 잔불 정리 등으로 6시 48분 완전히 진화됐다. A씨가 숨진 정확한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A씨는 시설관리 관련 부서 정직원으로, 이날 야간근무를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가 난 컨테이너는 순찰 직원들이 휴게실로 사용하는 공간이다.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고 원인을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컨테이너 안에서 인화성 물질이 발견됐고, A씨가 플라스틱통을 가지고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목격자가 나와다”면서 “A씨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고 수습과 현장 조사를 위해 기아 생산라인 가동은 일시적으로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공지문을 통해 “전 공장 라인 운영은 오전 9시 30분부터 정상 가동 예정”이라며 “조합원의 사망과 관련해 출처를 알 수 없는 내용이 유포돼 고인의 명예가 훼손되고 있는데, 정확한 경위가 파악되면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 [나우뉴스] 셀카찍다가…낙수량 10배 불어난 이구아수폭포서 관광객 추락

    [나우뉴스] 셀카찍다가…낙수량 10배 불어난 이구아수폭포서 관광객 추락

    낙수량이 평소의 10배로 불어난 이구아수폭포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소방대는 보트를 동원해 수색작전을 전개하고 있지만 워낙 낙수량이 많아져 사실상 작전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사고는 17일 오전 11시쯤(현지시간) 275개 이구아수폭포 중 하나인 보세티폭포에서 발생했다. 백발의 남자관광객이 폭포 밑으로 추락했다. 한 관광객 우연히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면 남자는 물에 빠진 후 상반신을 드러냈지만 이내 물에 떠밀려 폭포 밑으로 떨어졌다. 현장에 있던 관광객들에 따르면 남자는 혼자 낙수량이 불어난 이구아수폭포를 구경하려다 변을 당했다. 워크웨이 난간에 걸터앉아 셀카를 찍다가 균형을 잃고 물에 빠진 것. 한 목격자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다”면서 “처음엔 사고가 난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소방대와 해안경찰 등 구조 당국은 신고를 받고 즉시 구조대를 투입했지만 수색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낙수량이 불어나면서 물살까지 빨라져 사실상 수색이 불가능하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소방대원은 “기적을 바라지만 남자가 어디까지 떠내려갔는지 가늠하는 것조차 힘들다”면서 “사고를 당한 남자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해 시신이라도 수습해야 하는데 지금은 보트를 운행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이구아수 강과 우루과이 강 상류에 내린 폭우로 이구아수폭포 낙수량은 평소의 10배로 불어난 상태다. 한때 폐쇄했던 이구아수폭포 국립공원은 다시 문을 열었지만 일부 전망대는 여전히 접근이 통제되고 있다. 특히 이구아수폭포 최대 볼거리인 ‘악마의 목구멍’ 폭포는 워크웨이가 개방되지 않고 있다. 낙수량이 급증하면서 일부 구간이 파손됐기 때문이다. 이구아수폭포 국립공원 관계자는 “시설파손의 위험이 있어 워크웨이 난간들을 모두 접어놨지만 결국 51개 구간에서 파손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구아수폭포에는 불어난 낙수량만큼이나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웅장함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폭포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달려갔다는 관광객 호세는 “낙수량이 10배로 늘어난 이구아수폭포를 지금 못 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면서 “기대했던 대로 (낙수량이 불어난) 이구아수폭포는 과거에 내가 본 폭포가 아니었다. 경이로움까지 느껴진다”고 말했다. 자진 폐쇄했다가 14일부터 다시 문을 연 이구아수폭포 국립공원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광객을 받고 있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여순사건 74년만에 정부 주도로 첫 추념식 개최

    여순사건 74년만에 정부 주도로 첫 추념식 개최

    여순 10·19사건 제74주기 합동추념식이 첫 정부 주최 행사로 열렸다. 19일 광양시 광양시민광장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추념식에는 여순사건 유족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영록 전남지사, 소병철·김회재 국회의원, 여수·순천·광양·고흥·구례·보성 등 전남 6개 시·군 단체장과 부단체장, 도민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추모 조화가 무대 위에 세워졌고, 한 총리의 영상메시지도 이어지는 등 사건 발생 74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 주최로 열려 의미를 더했다. 오전 10시 추념식 시작과 함께 여수·순천·광양시 전역에는 1분간 묵념 사이렌이 울렸다. 참석자들과 유족·시민들은 사이렌에 맞춰 묵념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아픔을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추념식은 ‘74년 눈물, 우리가 닦아줘야 합니다.’는 주제로 추모공연과 진혼무 등 위령제, 헌화 분향으로 채워졌다. 특히 전국유족총연합 광양유족회 김명자(74) 할머니의 사연은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김 할머니는 “경찰이 ‘산사람’을 잡는다는 구실로 총을 얼마나 쐈는지 시신들이 피범벅이 돼 아버지를 찾을 수도 없었다”며 “이제는 모든 것을 떠나 유족들 마음 속에 핀 눈물꽃을 가슴으로 안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상민 장관은 “정부도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에 속도를 내겠다”며 “화해와 통합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과거사를 해결하고, 자유 대한민국의 아픈 현대사를 치유하겠다”고 말했다. 김영록 지사는 추념사를 통해 “여순사건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 앞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유족들께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며 “여순사건의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진실을 바로세우는데 온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고, 국민들에게 여순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널리 알리도록 위령사업 추진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6일 한 총리 주재로 제3차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를 개최해 여순사건 희생자 45명과 유족 214명을 공식 인정했다. 여수 순천 10·19사건 피해 신고는 2023년 1월 20일까지 접수한다. 여수·순천·광양시에는 이달 한달동안 위령제를 비롯 공연, 사진전, 학술 행사, 포럼 등 다양한 추모 행사가 열린다. 여순사건은 정부수립 초기 여수에서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한 데서 비롯됐다. 1948년 10월 19일부터 1955년 4월 1일까지 여수·순천 등 전남을 비롯해 전북, 경남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무력충돌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 최근 탈환한 도네츠크서 쏟아져 나오는 시신들…어린이 5명도 발굴

    최근 탈환한 도네츠크서 쏟아져 나오는 시신들…어린이 5명도 발굴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탈환한 도네츠크 지역에서 하루 최대 15구의 시신이 계속 발굴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외신은 우크라이나 당국의 말을 빌어 과거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의 무덤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과 군인 시신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네츠크 지역은 개전 이후 러시아가 점령했던 곳으로 지난 1일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이후 집단 무덤에 대한 조사 작업이 이어졌다. 도네츠크주 경찰 대변인 올렉산드라 하블릴코는 "도네츠크에 43개의 공동묘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이중 도네츠크 거점인 리만의 대규모 무덤 2곳에서 민간인과 군인이 함께 묻힌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이어 "각 무덤에 최대 10명이 묻혀있을 수 있다"면서 "사망자 대부분 폭발물로 인한 부상이 사인으로 보이지만 폭력으로 사망한 시민도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우크라이나 경찰은 18일 리만에서 어린이 5명의 시신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아이들 중 4명은 집단 묘지에, 다른 1명은 그의 모친이 집 마당에 매장했다. 보도에 따르면 희생자는 2008년, 2019년, 2021년 출생한 소녀와 2011년, 2012년 출생한 소년들로 전해졌다.우크라이나 경찰 측은 "잠정 조사결과 5명 전원 러시아 포격으로 인한 파편으로 부상을 입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희생된 어린이들은 법의학 조사 후 다시 매장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까지 리만 지역에서만 35명의 군인과 152명의 민간인 시신이 발굴됐으며 아직 접근못한 무덤도 40곳이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부부싸움 다음날 숨진 남편…아내 상해치사 혐의 구속

    부부싸움 다음날 숨진 남편…아내 상해치사 혐의 구속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을 때려 숨지게 한 6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 서부경찰서는 상해 치사 혐의로 A씨를 구속하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15일 오후 9시쯤 부산 서구 자신의 집에서 부부싸움을 하던 중 가재도구로 남편 B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부부싸움을 한 다음날 A씨는 남편이 숨을 쉬지 않는다며 119에 직접 신고했다. B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다발성 골절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가재도구에서 B씨의 혈흔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A씨의 폭행 때문에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A씨는 범행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불법체류자 짓” 12살 소녀 성폭행·고문 살해…佛 이민 논쟁 점화

    “불법체류자 짓” 12살 소녀 성폭행·고문 살해…佛 이민 논쟁 점화

    파리에서 벌어진 아동 살인 사건으로 프랑스가 발칵 뒤집혔다. 특히 용의자가 추방 명령을 받은 이주민 여성으로 밝혀지면서 정치권에선 이민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재점화됐다.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19구의 한 아파트 단지 뜰에서 실종됐던 12세 소녀 ‘롤라’가 숨진 채 발견됐다. 가방 안에 들어있던 소녀의 시신은 손과 발이 묶여 있었으며 목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발바닥에는 각각 0과 1이라는 숫자가 빨간색으로 적혀 있었다. 부검 결과 소녀는 성폭행 피해 후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당국은 소녀의 얼굴과 등, 목 등 신체 곳곳에서 고문 흔적으로 보이는 상처가 발견됐으며, 사인은 경부압박 등에 따른 질식사라고 밝혔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다음 날 오전 알제리 태생의 여성 다흐비아B(가명·24)와 40대 공범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했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에는 다흐비아B가 14일 밤 소녀와 아파트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몇 시간 후 그가 공범 남성과 함께 소녀의 시신을 유기한 가방을 아파트 밖으로 운반하는 장면도 확인됐다.16일 경찰 조사에서 용의자는 고문 및 성폭행, 살인, 사체 유기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용의자는 실직 상태로 고정된 거주지가 없으며 평소 심리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이상 행동을 한 적도 있는 걸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용의자에 대한 심리 검사가 예정돼 있다고 전했다. 사건 이후 현지에선 정신 질환 문제 등 용의자의 살해 동기를 둘러싼 여러 추측이 오갔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용의자가 숨진 소녀의 어머니와 아파트 출입 문제를 놓고 언쟁을 벌인 것이 사건의 발단일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용의자가 피해 소녀의 발바닥에 남긴 숫자의 의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 공포가 번졌다. 끔찍한 아동 살인 사건에 불안감이 확산하자, 안 이달고 파리 시장과 팝 은디아예 교육부 장관은 숨진 소녀의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위한 심리 상담을 지원할 거라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리짓 여사도 “참을 수 없게 비극적인 일”이라며 “우리는 모든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과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엘리제궁으로 소녀의 부모를 불러 위로하고, 지원을 약속했다.정치권에선 이민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됐다. 보도에 따르면 알제리 태생인 용의자는 6년 전 학생 신분으로 프랑스에 입국했다가 체류증 만료가 적발돼 지난 8월 프랑스 한 공항에서 붙잡혔다. 이후 한 달 내로 프랑스를 떠나라는 강제출국명령(OQTF)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 프랑스에 머물다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에 대해 BBC는 프랑스에서 강제출국명령은 10건 중 1건만 지켜지고 있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극우·우파 진영 프랑스 정치인들은 정부의 느슨한 이민 정책과 치안력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총공세에 나섰다. 프랑스의 대표적 극우 인사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는 “이런 야만적인 짓을 한 용의자를 프랑스에 둬서는 안됐다. 너무나 많은 범죄가 불법 이주민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며 “통제받지 않고 은밀히 이뤄지는 이주를 왜 중단시키지 못하고 있느냐”고 성토했다. 지난 대선에 후보로 나섰던 극우인사 에리크 제무르 역시 이번 사건을 ‘프랑스인 살해’로 규정하며 정부가 소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반이민 정서를 선동하려는 극우 인사들의 언행을 경계하면서, 유족을 존중하고 말을 가려서 하라고 맞받았다.
  • [포착] 셀카찍다가…낙수량 10배 불어난 이구아수폭포서 관광객 추락

    [포착] 셀카찍다가…낙수량 10배 불어난 이구아수폭포서 관광객 추락

    낙수량이 평소의 10배로 불어난 이구아수폭포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소방대는 보트를 동원해 수색작전을 전개하고 있지만 워낙 낙수량이 많아져 사실상 작전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사고는 17일 오전 11시쯤(현지시간) 275개 이구아수폭포 중 하나인 보세티폭포에서 발생했다. 백발의 남자관광객이 폭포 밑으로 추락했다. 한 관광객 우연히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면 남자는 물에 빠진 후 상반신을 드러냈지만 이내 물에 떠밀려 폭포 밑으로 떨어졌다. 현장에 있던 관광객들에 따르면 남자는 혼자 낙수량이 불어난 이구아수폭포를 구경하려다 변을 당했다. 워크웨이 난간에 걸터앉아 셀카를 찍다가 균형을 잃고 물에 빠진 것. 한 목격자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무도 도와줄 수 없었다”면서 “처음엔 사고가 난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소방대와 해안경찰 등 구조 당국은 신고를 받고 즉시 구조대를 투입했지만 수색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낙수량이 불어나면서 물살까지 빨라져 사실상 수색이 불가능하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소방대원은 “기적을 바라지만 남자가 어디까지 떠내려갔는지 가늠하는 것조차 힘들다”면서 “사고를 당한 남자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해 시신이라도 수습해야 하는데 지금은 보트를 운행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이구아수 강과 우루과이 강 상류에 내린 폭우로 이구아수폭포 낙수량은 평소의 10배로 불어난 상태다. 한때 폐쇄했던 이구아수폭포 국립공원은 다시 문을 열었지만 일부 전망대는 여전히 접근이 통제되고 있다. 특히 이구아수폭포 최대 볼거리인 ‘악마의 목구멍’ 폭포는 워크웨이가 개방되지 않고 있다. 낙수량이 급증하면서 일부 구간이 파손됐기 때문이다. 이구아수폭포 국립공원 관계자는 “시설파손의 위험이 있어 워크웨이 난간들을 모두 접어놨지만 결국 51개 구간에서 파손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구아수폭포에는 불어난 낙수량만큼이나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웅장함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폭포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달려갔다는 관광객 호세는 “낙수량이 10배로 늘어난 이구아수폭포를 지금 못 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면서 “기대했던 대로 (낙수량이 불어난) 이구아수폭포는 과거에 내가 본 폭포가 아니었다. 경이로움까지 느껴진다”고 말했다. 자진 폐쇄했다가 14일부터 다시 문을 연 이구아수폭포 국립공원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광객을 받고 있다. 
  • ‘일류보훈’ 故 정옥성 경감 유가족 주거환경 개선

    ‘일류보훈’ 故 정옥성 경감 유가족 주거환경 개선

    시민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정옥성 경감의 유가족이 거주하는 주택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경제계가 뜻을 모았다. 국가보훈처는 18일 국가유공자 주거환경 개선사업 ‘일류보훈 동행’의 2호 주택으로 순직 경찰관인 정 경감의 배우자가 거주하는 인천 강화군 소재 주택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정 경감은 2013년 3월 1일 강화군 외포리 선착장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물에 뛰어든 시민을 구하고자 바다에 몸을 던졌다가 파도에 휩쓸려 실종됐다. 민·경·군 합동 수색에도 끝내 시신은 찾지 못했다. 정부는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고, 전국 경찰과 인천 시민들이 2013년 6월 강화경찰서에 정 경감의 흉상을 건립했다. 이 흉상은 2017년 11월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경찰청은 고인을 ‘2022년 경찰 영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보훈처는 균열이 발생한 외벽을 보수하고 지하실 단열 창호를 교체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 원로 신학자 유동식 교수 별세… 100세에 하늘로

    원로 신학자 유동식 교수 별세… 100세에 하늘로

    원로 신학자 소금 유동식 전 연세대 교수가 18일 별세했다. 100세. 고인은 1922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연희전문학교와 일본 고쿠가쿠인 대학 등에서 공부했다.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연세대 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유 전 교수는 유불선(儒佛仙)을 통합한 최치원의 ‘풍류도’에 기초해 ‘풍류신학’을 독자적으로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풍류신학’은 한민족의 종교적 심성을 무교로 보고 한국 종교문화에 그리스도교 신학을 토착화시키려 한 신학이다. ‘풍류’(風流)는 최치원이 쓴 ‘난랑비서’(鸞浪碑序)에서 나왔다. 저서로는 ‘예수의 신’(1954), ‘한국감리교회 사상사’(1993)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1997), ‘제3시대와 요한복음’(2014) 등 수십 권이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학과 관련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석학에게 주는 용재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고인의 시신은 생전 유지에 따라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됐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8호실이다. 장례예배는 20일 오전 9시 연세대 교내 교회인 루스채플에서 열린다.
  • “오빠 앞으로 보험 9개 들어있었다”…‘제2 이은해 사건’?

    “오빠 앞으로 보험 9개 들어있었다”…‘제2 이은해 사건’?

    중학생이 엄마와 공모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과 관련해 중학생의 고모인 피해자 여동생이 “(살해된) 오빠가 고소한다고 협박하지 않았고, 새 언니가 찾아와 ‘조카(중학생) 앞으로 재산을 증여해 달라’고 요구했다”며 “오빠 장례를 치르고 알아보니 오빠 앞으로 보험이 9개나 들어있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전중부경찰서는 지난 17일 A(15·중 3년)군을 존속살해 혐의로, A군 어머니 B(40대 초반)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 8일 아버지이자 남편인 C(40대 후반·자영업)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C씨의 여동생은 18일 모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과 연합뉴스 통화에서 “B씨가 경찰에서 ‘남편이 고소한다고 협박해 무서워서 범행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여동생은 “B씨는 ‘남편이 지난달 22일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었다’고 했는데 거짓말이다. 교통사고 기록이 전혀 없다. 오빠 눈을 어떤 화학 용액이 담긴 주사기로 찔러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빠가 B씨의 말대로 폭력적이고, 고소한다고 협박했다면 우리에게도 비밀로 하지도 않았고, (오빠가) 내게 울면서 전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를 증거할 녹취파일도 있다”고 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이 내 언어장애를 비하하는데 화가 나 남편 눈을 찔렀는데, 고소한다고 협박해 겁이 나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었다. 여동생은 또 “지난 7월 B씨가 큰아들 A군을 데리고 시댁을 찾아와 ‘시부모 재산을 조카(A군) 앞으로 증여해달라’는 말도 했다”고 했다. 여동생은 “나 뿐 아니라 다른 형제도 오빠에게 부모님 재산을 증여하는 것에 이미 동의해 놓았는 데도, 오빠도 없이 갑자기 모자 둘만 와서 이런 말을 해 의아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빠 장례식을 치른 뒤 확인해보니 오빠 앞으로 가입된 보험이 9개였고, 이 중 3개가 올들어 신규 가입한 보험이었다”면서 “그동안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는데 바라는 것은 오직 철저한 조사 뿐”이라고 호소했다. 여동생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제2 이은해 사건’으로 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C씨 앞으로 올해 새로 가입된 보험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보험금을 노린 범행인지에 대해서도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경찰조사 결과 B씨와 아들 A군은 지난 8일 오후 8시쯤 대전 중구 자신의 집에서 C씨를 흉기와 둔기로 살해했다. 어머니 B씨는 범행 하루 전인 지난 7일 아들에게 “네 아버지가 나를 너무 무시한다”면서 함께 살해하자고 범행을 공모했다. B씨는 언어장애(3등급)가 있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 C씨가 툭하면 “병신 같은 ×” 등 말을 하며 자신을 무시했다”고 진술했다. B씨는 2006년 남편 C씨와 결혼해 아들 둘을 두고 있으나 작은 아들(14)은 범행 당시 PC방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모자는 이날 수면제를 먹여 잠이 든 C씨에게 독극물을 주입해 살해하려 했으나 C씨가 잠에서 깨어나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A군이 흉기로 찌르고 B씨는 둔기를 휘둘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C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폐가 손상되고 두개골이 함몰된 것으로 밝혀졌다. 몸에서는 수면제와 소량의 독극물도 검출됐다. B씨는 이 범행 전에도 잠 자는 C씨의 눈을 향해 주사기를 찌르거나, 국에 농약을 넣는 등 남편 살해를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결국 아들을 끌어들여 이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남편 C씨를 살해한 B씨와 아들 A군은 집 안 화장실에 시신을 뒀다 이튿날인 9일 오전 6시 넘어 승용차로 옮겨 싣고 충남에 있는 친정집으로 이동했다. 작은 아들은 이날 오전 1시쯤 귀가해 잠을 자 범행을 눈치 채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이동하기 전 친정 엄마에게 “남편이 숨을 쉬지 않는다”고 연락했고, 이 말을 들은 친정 어머니가 미리 병원으로 가 있어 만나지 못했다. 장례를 통해 시신을 처리하려다 실패한 모자는 대전으로 다시 돌아와 이날 오후 2시쯤 “남편이 숨진 것 같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대전지법은 지난 13일 부부싸움 하는 부모를 말리던 중 혼자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A군의 구속영장을 “만 15세 소년이고 증거 인멸·도주 우려가 적어 보인다”고 기각했으나 경찰이 재수사 후 신청한 A군과 B씨의 구속영장을 지난 17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끝에 “도주 우려가 있다”고 발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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