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빼먹기’ 버릇 고친다
‘외국자본의 실체 규명이냐, 달러 빼먹기에 대한 응징 차원이냐.’
외국계 자본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단물만 빨아 먹는 외국계 자본의 합법적 영업활동에 대한 ‘검증’이란 긍정론과 금융자유화의 논리를 무시하고 국내 정서를 등에 업은 무모한 ‘칼질’이란 부정론으로 엇갈리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여과없이 받아들인 외국계 자본의 폐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세무조사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때문에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가 외국계 자본에 대한 명(明·선순환적인 투자)과 암(暗·투기로 인한 국부유출)을 가르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탈루·탈세 혐의가 드러난다면 외국계의 비난을 잠재우고, 정부와 국회에서 추진하는 국내 자본의 역차별과 관련된 법안 추진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성과가 없으면 외국자본에 대한 역차별이란 비난은 물론 외자유치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도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조세파난처에 본부둔 펀드 도마에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국제금융시장에서의 투기성 자금(헤지펀드+사모투자펀드) 규모는 1조 8000억달러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세계 금융자산(2003년말 기준 126조달러)의 1.4% 정도다. 이중 아시아지역에는 2200억달러가량이 투기성 자금으로 옮겨다닌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펀드는 이번 세무조사에 포함된 칼라일·론스타 외에 JP모건·골드만삭스·뉴브리지 등으로 주로 케이만군도·라부안 등 조세 피난처에 본부를 두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의 행태는 투자대상 기업의 성장성과 경영 안정성을 해치고, 산업자본의 공급기능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를 받아 왔다. 투자자금의 회수를 위해 무리한 감원, 핵심자산 매각, 고액배당 및 유상감자, 경영간섭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부실채권·부동산·은행 등을 싼값에 인수한 뒤 되팔아 큰 차익을 남기는 수법을 써 왔다.. 이 자본은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대우건설 쌍용건설 외환은행 LG카드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국내자본 역차별 해소 법안 논란 거듭
이 때문에 국내 자본의 역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논의가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외국에서 적대적 M&A 대응방안으로 시행하고 있는 차등의결권제도, 의결권제한제도, 황금주제도, 자사주 매입제한 철폐, 주식대량 보유 보고제(5%룰) 등의 도입 또는 강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추진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 가운데 5%룰은 기존의 규정을 좀더 강화해 시행에 들어갔지만, 외국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에 계류중인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은행법 개정안 등 외국자본 규제 관련 법률도 국회 의원입법으로 올 초부터 상정돼 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외자유치 걸림돌 될수도
이런 상황에서 국세청은 외국자본의 탈루·탈세 여부를 밝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밝히고 있다. 과세는 국가간의 조세협약에 따르도록 돼 있다는 현실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선 데는 탈루·탈세 혐의를 밝혀내면 외국계 자본의 무분별한 행태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국회에서 논의되는 외국자본 규제 관련 법안이 탄력을 받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불법 행위를 발견하지 못한 채 ‘성과 없는’ 조사로 끝날 경우 적잖은 반격을 당할 수도 있다. 외국계 자본의 시세차익에 불만을 터뜨리는 국민 정서 등에 편승한 무리한 ‘코드성 세무조사’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외국자본에 대한 세무조사를 발표한 뒤 일각에서 반(反)외국자본 정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점도 국세청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