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리스트’ 끝내 의혹으로 남나
검찰이 세종증권 매각 비리 의혹 등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남겨 놓은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정·관계 로비 자금 제공 의혹?
이번 사건에서 검찰을 가장 곤혹스럽게 했던 부분이다.사건의 핵심인물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 회장이 평소 정치권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고 있었던 탓에 당초 검찰이 목표로 삼은 부분보다 정·관계 로비 의혹이 더욱 조명을 받았다.
‘박연차 리스트’,‘정대근 리스트’에 대한 설왕설래도 있었다.검찰도 내사 초기 현대차 뇌물사건으로 수감된 정 전 회장을 면회한 정치인 명단을 확보하기도 했으나 구명 로비 등 특별한 혐의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검찰은 2007년 초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세종증권 매각 경위를 조사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번에 밝혀진 범죄 혐의를 묵인했다기보다는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또 세종캐피탈 쪽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건평씨 쪽과 정 전 회장 쪽에 각각 건넨 30억원과 50억원,박 회장이 정 전 회장에게 건넨 20억원의 용처를 추적한 결과 정치권 등으로 흘러간 정황이나 진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검찰은 로비 리스트를 입수한 사실도 없고,국세청에서도 리스트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으나 향후 보강 수사 과정에서 로비 혐의가 확인되면 언제든지 이를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휴켐스 헐값 매각?
검찰은 박 회장과 정 전 회장을 기소하며 배임 혐의는 배제했다.부당한 헐값에 휴켐스를 사고팔아 농협에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는 더 수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검찰은 입찰 전에 농협이 휴켐스를 태광실업에 넘기기로 결정했고,입찰 금액이 높을 경우 돈을 깎아 줘서 2순위 업체의 입찰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로 사전에 양측이 합의했다는 점을 파악했다.
특히 노조 실사 방해 등을 이유로 양해각서에는 없는 우발채무 127억원을 추가로 감액해 본 계약 때 모두 322억을 깎아준 점에 검찰은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부당 감액에 따른 배임 여부에 대해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검찰은 농협의 또 다른 자회사 남해화학 인수를 위한 추가 로비 의혹은 규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미공개 정보 이용?
박 회장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협의가 진행될 때 이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사고팔아 259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었고,이 가운데 계약금 58억원을 포함해 121억원 상당을 휴켐스 인수 자금으로 썼다.
정 전 농협 회장에게 건네진 20억원 가운데 15억원도 시세차익에서 나온 것으로 검찰은 확인했다.검찰은 2005년 1월 이후 세종증권 주식거래 내역 전체를 확보해 대량 매매 계좌 210여개를 압축한 뒤 집중조사한 결과,건평씨의 딸과 사위,사돈이 모두 6억원,박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이 가족 명의로 7억 7000만원,남경우 전 농협축산경제 대표가 차명으로 5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사실을 파악했다.반면 정·관계 인사가 얽힌 정황은 찾아내지 못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는지 여부다.세종증권의 내부자·준내부자에게 직접 정보를 얻어야 처벌할 수 있다.
검찰은 건평씨가 박 회장에게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동향을 알려 줬을 가능성이 높다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정 전 회장에게 세종증권 인수를 청탁한 건평씨와 통화한 직후 박 회장이 세종증권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였기 때문이다.
검찰은 또 증권사 직원이 세종증권 전망이 좋지 않다고 우려하자 박 회장이 “묻지 말고 팍팍 사라.”고 주문한 녹음 내용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세종증권 매각 과정에 관여한 건평씨가 내부자 또는 준내부자에 해당되는지 법리 검토를 벌이는 한편,박 회장 등의 정보 입수 경로에 대해 보강수사를 할 예정이다.
이 밖에 검찰은 박 회장의 정산개발이 아파트 부지를 시행사 두 곳에 매각해 330억원의 차익을 남긴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개인적으로 유용했는지,어디에 썼는지에 대해 계속 수사할 계획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