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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UR STORY] CAR~섹시 레이싱 걸

    [OUR STORY] CAR~섹시 레이싱 걸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인기 키워드 중 하나. 바로 ‘레이싱걸’이다. 무한질주의 자동차 경주장, 신차 발표 등 각종 모터쇼에서도 ‘존재의 이유’를 한껏 뽐내며 없어서는 안될 ‘자동차의 꽃’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오랫동안 붙잡는다. 소위 ‘쭉쭉빵빵’한 몸매와 아찔한 옷차림, 상큼한 미소로 네티즌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들은 디지털 카메라와 인터넷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엔터테이너로 당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울러 누구나 ‘찍’으면 그림이 되는 레이싱걸 사진이 인터넷에 오르내리며 많은 팬들까지 확보하고 있는 것. 특히 방송과 연예계에 진출하는 ‘스타’들도 많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바일 화보에도 단골처럼 등장할 만큼 우리곁에 친숙해지고 있다. 이쯤되면 ‘그녀들의 세상 속’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동차 경기가 열린 지난 일요일에 밀착취재했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여자의 변신은 무죄 지난 20일 아침 8시, 자동차 경주가 열리는 서울 ‘용인 스피드웨이’. 경기에 나갈 차들이 스폰서 스티커를 붙이고 경기 등록을 하러 왔다갔다 분주하다. 이때였다. 주차장 쪽에서 눈에 ‘확’띄는 여인들이 아스팔트 위를 사뿐사뿐 걸어온다. 화장도 없는 얼굴에 수수한 청바지, 티셔츠를 걸치고 있어도 ‘레이싱걸’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스피드웨이에 도착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여자 화장실’. 볼일이 급해서일까? 아니다.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메이크업실이 바로 ‘화장실’이다.‘백조’같이 곱고 섹시한 미녀들의 메이크업 장소가 화장실이란 점이 다소 의외였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은지 1시간여 수다떨며 준비를 마친 미녀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쌩얼’의 수수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화려한 화장과 짧디짧은 치마, 예쁜 귀고리 등으로 단장한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다. # 자동차 레이싱의 꽃 오전 10시. 경기가 시작되자 미녀들도 자동차가 뿜어내는 굉음에 흥분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팬들을 위한 서비스인 ‘포토타임’에 나섰다. 아주 짧은 상의에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아니 살짝 걸쳤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미녀들의 모습을 찍기 위한 카메라 셔터소리가 요란해진다.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자동차 경주 관람은 뒷전이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팬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주미씨 여기 좀 봐주세요.”라고 하자 벽계수까지 녹였다는 황진이의 미소(?)를 살짝 지어 보인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돌리며 깜찍한 표정을 짓자 어김없이 모든 카메라가 그녀를 향한다.170㎝가 넘는 키에 뒷굽 9㎝짜리 하이힐을 신은 미녀들이 동시에 일어섰다. 쭉 빠진 다리, 잘록한 허리, 풍만한 가슴 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걸친 그녀들의 몸짓에 따라 카메라들이 이리저리 춤을 춘다. 그야말로 자동차 경주의 꽃이었다. # 우린 백조예요 174㎝의 키에 32-23-35의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지만 애환도 적지 않다.“비록 저희들이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정주미(25·이하 한국타이어 소속)씨. 한여름의 폭염에다 아스팔트의 지열까지 더하면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임에도 계속 밝은 웃음을 지어야 한다. 차가운 날씨 때에도 마찬가지. 이은미(21)씨는 “감기 때문에 콧물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약을 먹고 나섰는데 팬들은 모르잖아요. 아무 일 없듯 미소짓고 그들과 대화를 하느라고 힘든 때가 많아요.”라고 토로한다. 또 김하나(25)씨도 “저흰 비록 연예인은 아니지만 조금만 자기관리를 소홀히 하면 금방 티가 나요.”라고 하면서 건강 관리에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방 지장을 초래한다고 고백했다. 극성팬들 때문에 속상한 경우도 더러 있다. 모기에 물려 보기 싫거나, 허리나 배가 살짝 접힌 곳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려 난감하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씨는 “그래도 저희를 사랑해 주는 팬들이 있어서 행복해요. 초콜릿이나 영양제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든 십자수 쿠션 등을 선물하며 ‘힘내세요’라는 한마디에 보람을 느끼지요.”라며 활짝 웃는다. 이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포토타임, 팬서비스, 미팅, 다양한 이벤트 진행과 우산을 쓰고 레이서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는 일 등을 했다. 마지막으로 시상식이 진행되면 우승자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옆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나면 하루일과가 끝난다. 과거에는 사회적인 시선에 다소 부담을 느꼈지만 요즘은 아니란다.“레이싱걸이란 직업을 전혀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요.”라는 의미있는 얘기를 던지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 이색 레이싱걸 현재 활동중인 전문적인 레이싱걸은 40여명. 하지만 최근들어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지원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주부 레이싱걸을 비롯해 패션사업가, 연예인 등 다양한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 왕언니 강민정 레이싱걸의 ‘왕언니’ 강민정(30·R스타즈소속)씨는 요즘 무척이나 바쁜 사람이다.2001년 모터쇼를 통해 레이싱걸이 된 그녀는 2004년 6월에 결혼한 아줌마로 일과 가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쿠즈플러스에서 열린 ‘페라리 599 GTB 피오라노’ 발표회에서 만난 그녀의 모습에선 전혀 ‘아줌마티’가 드러나지 않았다.175㎝의 늘씬한 키에 빨간색의 섹시한 의상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요. 결혼해서 지난해까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어요. 물론 집안일은 별로 한 것도 없지만 항상 시부모님을 볼 때 마음에 걸렸어요.” 강씨는 당시 광고기획사에 다니던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가 권유해 레이싱걸 생활을 시작한 케이스. “결혼할 때 어른들에게 허락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의 직업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보여드렸지요. 남편의 지원사격도 있었지만요.” 지금은 오히려 시부모님이 며느리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로 열성팬이 됐다. 전시장이나 경기장에서 보여준 고운 자태와는 달리 집에서는 팔 걷어붙이고 빨래·청소하는 억척 아줌마로 변신한다. ■ 사장님 정란선 이렇게 앳되고 예쁜 사장님이 또 있을까. 키 169㎝ 몸무게 49㎏, 까만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TV에서 보았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하 맞다. 정란선(27)씨다. 한때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게 했던 레이싱걸이다. 서울 강남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씨는 지난해 5월 레이싱걸을 그만두고 인터넷 패션몰 (RSlook.com)을 열었다. 요즘 주문 들어오는 물건을 포장·배송하는 일로 무척이나 바쁘단다. “제가 원래 옷에 대한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쇼핑몰을 하나 열었는데 팬들이 알고 응원을 많이 해주셔서 지금 너무 행복해요.” 패션 디자이너를 하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옷을 고르고 입는 안목이 남다르다. 파는 옷은 ‘빈티지’풍이 주류를 이룬다.‘로맨틱 카고바지’는 하루에 50여장씩 팔려 나갈 정도로 인기를 끈다. 자신이 직접 모델도 하고 사진도 찍어 운영비를 최대한 아껴 약간의 흑자를 보고 있단다. 또한 얼마전에는 오픈 마켓인 엠플(www.mple.com)에 입점했다. “레이싱걸을 할 때도 최고가 되려고 무척 노력했듯이 새로운 분야에서도 열심히 해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 레이싱걸 1호 사장답게 반드시 정란선의 독자 브랜드를 갖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 A급 1년 전속금 300만~500만원 레이싱걸 전문 에이전시인 GL P&P의 이혜진(29)실장은 레이싱걸 입문과정에 대해 “보통 전문 에이전시에 자신의 프로필 사진을 보내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정된 지망생은 심층 면접을 통해 자질이 있는지를 꼼꼼히 평가받는다. 주로 가을에 새로운 레이싱걸을 뽑아 이듬해 봄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다음은 그가 말하는 레이싱걸이 갖추어야 할 세가지 조건. 첫째 몸매. 기본적으로 키가 170㎝가 넘어야 하며 일반 모델과는 달리 몸매에 볼륨이 있어야 한다. 둘째 소위 ‘사진빨’을 잘 받아야 한다. 레이싱걸의 주된 일이 사진에 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 ‘말’을 잘해야 한다. 팬들과 지근거리에서 접하는 직업이라 조리있는 표현이 요구된다. 하지만 이런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고 해도 레이싱걸로 데뷔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인 자동차 경주시장은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나 레이싱팀에 전속계약을 맺어 활동하고 있는 레이싱걸은 고작 40여명일 정도로 수요 또한 적다. 그래서 대부분 모터쇼 등의 행사에 도우미로 활동한다. 자동차 부품업체나 레이싱팀에 속해 있는 A급 레이싱걸이 받는 1년 전속계약금은 300만∼500만원. 이외에 한번 경기 때마다 20만∼40만원 내외의 수당을 받는다. 레이싱걸을 선호하는 이유는 얼굴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 각종 모터쇼나 전시회에 설 때 ‘몸값’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레이싱걸은 부업이고 내레이터 모델이 주업인 경우가 많다.
  • 내 여보냐 네 여보냐

    내 여보냐 네 여보냐

    성(姓) 둘을 가지고 두 여자와 각각 결혼, 두 부인을 모두 정 부인으로 호적에 따로 올려 데리고 살던 현대판 「야누스」가 경찰에 입건됐다. 한 남자 밑에 서로 다른 성(姓)을 가진 자식만도 여섯명-. 송경화(宋京和)(36·일명 김경화(金京和)·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씨가 서울 서대문 경찰서에 잡혀와 조사를 받고 있는데 형법 제231조. 234조, 228조인 사문서 위조 및 동 행사, 공정증서원본 불실기재 등 혐의-. 호적상으로나 실제로나 宋씨 에게는 김원미(金元美)(36·가명·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여인, 황경산(黃京山)(46·가명·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여인등 어엿한 두 아내가 있다. 누가 본처도 누가 후처도 아닌- 서로가 남편이 바람정도 피우는 것으로 알았던 두 여인이 우연찮게 만나 『내가 본 부인이다』『아니 내가 본 부인이다』라고 지난 달 대판 벌인 싸움 끝에 이 요절복통할 宋씨의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의젓하게 법을 속이고 두 여인을 정실부인으로 아이들까지 각각 낳고 살다 경찰에 잡힌 宋씨의 직업은 사법서사 사무소의 사무원. 경력 12년의 「베테랑」급이다. 호적상 「宋」씨로 金여인과 결혼해 살던 宋씨는 자기 본명이 국내에 없는양 무호적 증명서를 사법서사 사무원으로 서의 재간을 발휘, 허위로 꾸며 「金」씨로 둔갑한 새 호적을 만들곤 黃여인에게 새 장가를 들었다. 金여인과의 사이에 3남1녀, 黃여인과는 2남 등 6명의 자식중 4명은 宋씨요 2명은 金씨 성을 가졌다고 담당형사에게 눈하나 깜짝않고 대꾸해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 해괴한 둔갑은 「宋」씨이자 「金」씨인 경화(京和)라는 사나이가 사법서사 경력 12년에 귓전으로 배운 기막힌 잔 재주의 결과였다. 그러나 경찰에 온 宋씨이자 金씨는 『나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슬픈 과거가 있었다』는 독백이다. 金씨(그때까지는 金씨였다)는 황해도에서 아버지를 김동산(金東山·가명)씨, 어머니를 나(羅)씨로 하고 태어났다. 얼마 안가서 어머니 나(羅)씨를 두고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곧 나(羅)씨는 이웃마을 송용만(宋龍萬·가명)씨에게 재가해 아들 경화(京和)를 데리고 새 남편과 함께 살았다. 1·4 후퇴 때 세 식구는 월남, 서울서 살았다. 의부 송용만(宋龍萬)씨는 부인이 재가할 때 데려온 경화(京和)를 송(宋)씨로 서대문 구청에 가본적을 만들 때 취직시켰다. 이때부터 핏줄만은 金씨인 경화(京和)씨는 법적으로 宋씨가 됐다. 그때만 해도 군 입대는 복잡한 서류가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金씨로 입대, 제대까지 했다. 宋씨 성으로 1956년 10월 김원미(金元美)여인과 평택(平澤)에서 중매로 결혼했고 다음해 11월엔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직업은 사법서사 사무소 사무원. 4명의 자식을 차례로 낳고 탈 없이 아내와 알뜰히 살았다. 집도 3채나 되었고 월수는 5만원대. 그러나 결혼생활 10년이 되던 해부터 이들 사이엔 가정불화로 싸우기가 일쑤였다. 불화가 계속되자 宋씨는 아내 金여인이 평소 시부모를 모실 수 없다고 버틴다는 이유를 들어 처가 어른들의 동의를 얻어 (宋씨의 주장) 1965년 1월 부인과 이혼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金여인은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펄쩍 뛴다. 3년을 별거 끝에, 자식들이 넷이나 되는데 이혼까지 해서 갈라 설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주위의 충고와 꾸지람을 이기지 못해 宋씨는 金여인과 다시 살게됐다. 이 별거중인 3년동안 宋씨는 새 여자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또 하나의 성(姓) 金씨를 만들어 냈던 것. 金여인과의 가정불화로 이혼이다, 아니다로 다투고 있을 때 宋은 대서업무관계로 자주 사무실을 드나들던 황(黃)여인과 우연히 알게 됐다. 10년이나 연상의 黃여인을 宋은 누님이라고 불러댔다. 黃여인도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살아오던 터였다. 누님과 동생 사이는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변해 둘은 남모르게 동거생활을 벌였다. 宋씨는 부인 金여인과 이혼, 함께 살 것을 黃여인에게 다짐했다. 黃여인은 宋씨가 부인 金여인과 이혼한 것을 호적열람으로 확인, 68년 혼인신고를 서울 종로 구청에 했다. 이 때 宋씨는 사법서사로 익힌 재간을 유감없이 발휘해내고 있었다. 『나는 원래 金씨의 피를 받았는데 법적으로 이상하게 된 宋씨로야 살 수 있느냐』며 黃여인을 꾀어냈던 것. 宋씨는 아내 金여인의 호적을 말소시킬 수 없음을 알고 무적신고를 내서 또 하나의 호적을 만들 것을 결심했다. 宋씨는 2명의 무적보증인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金씨로 되어있는 제대증명서, 병적증명서를 첨부, 자기가 위조해낸 무적증명서를 만들어 서울 종로 구청에서 김경화(金京和)란 새 호적을 떼어냈고 그 위에 黃여인과의 혼인신고를, 두 아이의 출생신고까지도 마쳤다. 그 후로는 두 아내집을 거의 반반씩 드나들며 살았다. 이미 이혼한 원부인 金여인의 집엘 왜 자주 가느냐는 黃여인의 반발로 가끔 싸움도 벌였지만 자식들 문제란 핑계로 교묘하게 부인 黃여인을 속였다. 그때까지 원부인 金여인은 남편이 잠시 첩을 얻어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알았을 뿐이다. 두여인은 물론, 두 여인의 아들 딸들은 저마다 아버지 성이 宋씨요, 金씨임을 믿는데 의심이란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성으로의 둔갑은 들통이 났다. 지난 달, 첩살림으로만 믿고 있는 宋씨의 부인 金여인은 서대문구 연희동 黃여인 집을 찾아 남편을 포기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 말을 들은 黃여인은 『내가 어째서 첩이냐』 『제 남편이 싫어서 이미 이혼한 것이 무슨 낯짝으로 찾아와 귀찮게 구느냐』 고 金씨가 자기의 정식남편이라며 대들어 두 여인사이엔 서로 떠밀고 밀치는 싸움이 벌어졌던 것. 이튿날 黃여인은 종로구청에서 떼어 온 호적등본을 남편 金씨의 어머니 나(羅)여인에게 들이대고 자기의 정당함을 호소했다. 이에 질세라 金여인도 宋씨가 남편임을 증명하는 호적등본을 떼어 호적상 적법한 부인임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두 부인은 이 엄청난 사실에 아연실색, 남편에게 宋씨와 金씨 중 어느것이 가짜 성이냐고 울면서 호소했다. 경찰에 잡혀온 그는 문초 형사에게 본명은 김경화(金京和), 일명 송경화(宋京和) 라고 거침없이 대답. 한편 자기가 진짜 宋씨와 金씨의 아내임에 틀림없다고 경찰에서 진술하고 있는 이들 두 부인은 서로 양보를 거부, 끝까지 버티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金여인은 남편 宋씨의 처벌을 원치 않으나 새 여자를 얻기위해 법을 어기고 성까지 바꾸는 파렴치 행위는 참을 수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10년이나 손 아래인 내 남편이 그런 사람인줄은 몰랐다고 黃여인 은 한탄. 주인공 宋씨이자 金씨는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법의 심판을 달게 받겠지만 어떻게 하면 한 사람 밑에 각기 다른 두개의 성을 가진 자식들을 정리할 수 있겠느냐면서 앞날을 걱정하기도 했다. 담당 경찰쪽은 『宋씨에 대한 적용법규가 63년 12월에 공포된 일반사면령에 해당된다』면서 법의 약점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는 宋씨의 행위가 백번 벌을 받아야 하지만 근거가 흐려졌다고 수사상의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최광일(崔光一) 기자> [선데이서울 69년 12/14 제2권 50호 통권 제 64호]
  • [발언대] 외국인 새댁 농촌정착 내년부터 지원/정승 농림부 농업구조정책국장

    전북 부안군 동진면에 사는 백인기(38)씨는 4년전 베트남 출신 찬 티탄튀(25)와 국제결혼했다. 백씨는 자신의 땅 1만 4000평을 포함해 모두 2만 4000평의 벼농사를 짓는 쌀 전업농이다. 백씨는 결혼 후 아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매년 1∼2달씩 친정을 방문하도록 하고 있다. 자신도 부인과 함께 베트남 처가에 가서 열흘정도 머물다 먼저 돌아오곤 한다. 엄마가 보고 싶고, 고향음식도 그리워하는 아내를 배려한 백씨의 노력이다. 열심히 한국말과 문화를 배우고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려고 노력하는 티탄튀와 그녀를 배려하는 백씨는 20개월된 딸 주연이를 키우고 있다. 티탄튀는 현재 둘째를 임신중이다. “올해 모내기때 티탄튀가 많이 도와줬어요. 우리는 맞벌이 농사꾼이니까 서로 돕지 않으면 농사짓기가 어렵습니다.” 백씨는 아내와 함께 하는 농사일을 자랑한다.2남2녀중 셋째딸인 티탄튀는 베트남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농사일 경험이 풍부하다. 결혼 초기 언어소통의 어려움에다 문화 이질감, 고령의 시어머니 부양 등으로 티탄튀가 많이 힘들어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티탄튀는 남편 등 가족의 말을 절반쯤은 알아듣는다. 두사람 모두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게 쉽지 않았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외국에서 농촌으로 시집오는 새댁들을 위한 정부와 지역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백씨 부부는 입을 모았다. 특히 결혼초기 1∼3년동안 한국어교육, 한국문화와 예절교육, 음식만들기, 자녀교육 지원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족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농촌에 사는 여성 결혼이민자들은 농촌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이동에 제약이 따른다. 읍·면 소재지나 인근에 사는 경우는 조금 낫지만, 띄엄띄엄 운행하는 버스시간 맞추기도 만만치 않다. 특히 말이 서툰 새댁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교육시설에 다니기가 쉽지 않다. 결국 남편이 일일이 도와주지 않으면 외출이 아예 불가능하다. 농림어업인의 국제결혼이 늘어나 지난해에는 3명중 한명꼴로 외국여성과 결혼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10년동안 국제결혼으로 농촌에 시집온 결혼이민자는 1만 4000여명에 이른다. 국적별로는 중국, 베트남, 일본, 필리핀 순이고, 연령별로는 20∼30대가 대부분이다. 농촌에 젊은 여성인력 유입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성 결혼이민자가 매우 중요한 농업 인적자원이다. 이들이 농촌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지원하고 농업전문성을 갖는 여성 농업인력으로 육성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농림부는 이러한 농촌현장의 특수성을 반영해 농촌 여성 결혼이민자들의 정착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찾아가는 교육도우미제도’를 내년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교육도우미가 주 2회 정기적으로 농가를 찾아가 우리말교육과 생활상담을 실시하게 된다. 초기 적응단계를 거친 여성들을 대상으로 소그룹교육도 병행할 계획이다. 가족들의 상호 이해를 위해 남편과 시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부부교육, 가족캠프도 실시한다. 농촌정착에 성공한 부부를 선정해 고향나라 방문기회도 제공하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정승 농림부 농업구조정책국장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4)전북 장수군 천천면 신기마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4)전북 장수군 천천면 신기마을

    백두대간 큰 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호남정맥. 새로운 줄기가 시작되고 금강과 섬진강이 발원하는 전라북도 장수는 물길이 길다 하여 예부터 장수(長水)라 부른다. 금강 상류지역은 물줄기 굽이굽이 흐르는 곳마다 조그만 마을들이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무주와 장수 그리고 진안 세 군(郡)의 접경 물굽이에 자리잡은 신기마을은 언뜻 보면 여느 오지 마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서당이다. 상투를 틀고 도포 입은 선비가 살고 있다.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인 명륜학당 훈장 김대중(55)씨. 김씨는 원래 지리산 청학동 사람이었다. 지난 1989년 청학동에서 이주해 올 당시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심신단련을 위한 수행자들이 유난히 많이 몰려들었다. 그런 이유로 지리산 청학동 ‘도사’들이 이주해 와 살고 있는 마을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리산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후 아이까지 낳고 생활했던 그가 이곳에 들어와 서당을 연 이유는 따로 있다. “청학동이 옛 문헌에 나와 있는 전설적인 마을로 알고 방송국에서 취재를 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온통 마을이 뒤죽박죽된 거야. 소 키우던 움막이 외지 사람들 숙소로 변하고, 욕심 없이 살던 사람들도 돈 맛을 알게 됐지, 농사도 잘 짓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급기야는 서로 의견 충돌로 싸움질이고…. 그래서 나오기로 결심했어요.” 99년에 지었다는 ‘명륜학당(明倫學堂)’. 서당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교와 동양사상을 가르친다. 사서삼경을 바탕으로 한 충효(忠孝)와 예(禮)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상범(17)이는 작년 여름방학 때 2주교육을 받고는 겨울방학 때 다시 들어와 눌러앉았다. “집에 가고 싶을 때가 더 많죠. 하지만 공부를 마칠 때까지는 여기 있기로 엄마와 약속했어요. 여기는 놀 것이 없어 공부만 해요.” 상범이는 이따금 밭일도 거들고 사슴에게 풀도 뜯어주면서 외로움을 달랜단다. 방학이 되면 ‘버릇 없는’ 아이들이 부모 손에 억지로 이끌려서 찾아오지만, 간혹 색다른 가치를 찾기 위해 오는 학생들도 있다.“단기간에 예절과 인성교육을 시키기 위해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들이 많지만, 쉽게 이뤄지지 않지요. 평소 부모부터 솔선해서 부부간, 가족간의 예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기마을도 다른 오지처럼 생활이 강퍅하기는 마찬가지. 농사 소득만으로 먹고 살 수 없어 날품일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이웃간에 홀로 된 노인들을 돌봐주며 욕심 없이 사는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는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만큼이나 아름답고 마을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웃 월곡마을 교회 이경재(60) 목사는 또래의 노인들로 구성된 가사 도우미들과 함께 신기마을 이서운(81) 할머니집에서 봉사활동을 한다.“혼자 사는 노인들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텃밭을 일구기는커녕 밥도 지어 드시지 못하는 노인들도 많지요. 한 달에 두 번 정도 방문해 밑반찬을 만들어주고 청소도 해주고 텃밭도 가꾸어줍니다.” 마을 어귀 비닐하우스에서 담뱃잎을 말리기 위해 잎을 엮고 있던 유근오(39)씨는 옆에서 돕는 아내를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단다. 지난 겨울 식을 올린 베트남 출신 아내의 정성스러운 시부모 수발이 고마워서다. 천사 같은 아내 덕에 일이 조금도 힘들지 않다. 한여름 따가운 햇살에 논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을 가르치는 도시의 학원숲 속에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팍팍한 모습이 어지러운 아지랑이 속에서 피어오르다 스러진다. 사진 글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강학중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생활비 보고받는 ‘짠돌이 남편’

    Q생활비를 남편에게 일일이 보고하고 받아 쓰는 게 너무 싫습니다. 아이들이 어쩌다 비디오라도 빌려보자고 하면 돈이 아깝다고 합니다. 비디오 한 편에 돈이 얼마나 든다고 그러는지…. 몇백원으로도 온 식구가 행복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어쩌다 좋은 일이 생겨 외식이라도 하자고 하면 집에서 먹자고 초를 칩니다. 뭘 위해서 돈이라면 그렇게 벌벌 떠는지 아내보다 가족보다 돈을 더 좋아하는 우리 남편,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 (정현지·40세) - A주어진 생활비 안에서는 아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는 부부가 많은데 일일이 남편에게 보고하고 그때마다 돈을 타쓰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셨을까요. 큰 돈 드는 일도 아닌 것까지 아이들의 욕구를 무시하니 어머니로서 지켜보는 마음도 무척 아팠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술값이나 도박으로 가정 살림을 망치는 남편, 자기는 돈을 펑펑 쓰면서 가족에게는 지나칠 만큼 인색한 남편에 비해서는 책임감이 강하고 절약이 몸에 밴 분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정도가 지나쳐 부부 사이의 화목을 깨는 ‘인색’이나 돈만 밝히는 남편으로 느껴진다면 균형잡힌 삶으로 보기는 어렵겠지요.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생존욕구’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그 생존욕구가 무척 강한 분이 아닌가 합니다. 왜 우리 남편이 돈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성장환경, 시부모님의 돈 씀씀이, 남편의 가치관 그리고 본인의 소비습관에 대해서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나를 지키는 힘은 돈이며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돈이 없으면 사람은 비참해진다는 생각을 남편이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남편에게 ‘돈’은 어떤 의미인지, 왜 그렇게 돈을 모으려고 하는지, 그리고 돈을 모아 나중에 어떻게 쓰고 싶은지, 나의 돈 씀씀이에 대해서 불만스러운 점은 없는지, 아이들에게는 어떤 가치관과 태도를 심어주고 싶은지를 얘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혼자 버는 살림에 이렇게라도 아끼지 않으면 돈을 모을 수 없다.’‘나중에 목돈 들어갈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만약 실직을 하거나 세상을 먼저 떠나기라도 하면 어떻게 살거냐.’하는, 남편 나름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그리고 깊은 배려가 깔려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대화의 첫마디는 부드럽게, 남편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얘기로 시작하면 더욱 좋겠지요. 남편의 얘기를 충분히 들은 다음, 아이들 심정을 대변해 주셔도 좋구요. 아이들이 대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나이라면 아이들이 아빠에게 직접 얘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본인의 심정을 솔직하게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날 무시하는 것 같아 자존심 상하고, 난 이 집에서 무엇인가 하는 자괴감으로 괴롭고 슬펐던 심정을 차근차근 부드럽게 전달하신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세상에는 돈, 넓은 집, 좋은 차 못지않게 중요한 재산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건강이고 가족이고 부부간의 애정과 믿음입니다. 물론 절대적인 가난 앞에서는 그런 가치들을 지켜 나가기도 어렵지만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을 잃거나 부부간의 사랑과 믿음이 깨지거나 가족이 해체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이 나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그리고 당신의 절약하는 태도가 얼마나 큰 미덕인지를 먼저 인정해 준 다음, 가족들의 기본적인 욕구를 배려할 줄 아는 지혜를 요청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 소장>
  • 유언·유서 등 사전 계약이 우선

    법무부의 민법 개정안대로라면 배우자는 무조건 재산의 50%를 상속받을 수 있을까. 아니다. 법적 상속비율 조정 내용을 문답으로 풀어 본다.Q:남편이나 아내가 사망하면 무조건 재산의 50%를 배우자가 갖나.A:아니다. 민법에선 ‘사적자치의 원칙’이 우선이어서 당사자의 의사나 양자간 계약이 가장 중요하다. 유언 등을 통해 재산 비율을 정했다면 그것이 우선 적용된다.Q:자수성가해 100억원대 재산을 형성한 남성이 결혼한지 1년만에 자식없이 사망했다면.A:유서나 계약이 없다면 법적 상속 비율로 분할된다. 아내가 50%를 갖고, 나머지 50%는 직계존속(시부모)에게 상속된다.Q:부부가 1억원짜리 아파트를 공동 명의로 갖고 있다가 남편이 사망하면.A:아내는 남편 소유의 5000만원의 50%인 2500만원을 상속받을 수 있다.Q:70대인 아버지가 50대 여성과 재혼한 뒤 1년 만에 작고했다. 그럴 경우에도 계모가 50%를 우선 상속받나.A:유서나 유언, 계약이 없다면 그렇다. 하지만 현행법에도 규정돼 있는 ‘혼인전 부부재산계약’을 통해 상속비율 등을 미리 조정한 경우에는 ‘50%룰’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Q:종중재산은 어떻게 되나.A:종중재산은 보통 장자 명의로 관리되는데 이를 상속재산에 포함한다면 당연히 ‘50% 룰’이 적용된다. 하지만 종중원들이 상속재산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면 상속에서 제외된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부부 시각 장애인 안마사의 삶

    부부 시각 장애인 안마사의 삶

    “저희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21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라. 부부 시각장애인 안마사 고재민(50)·김덕자(48)씨의 신경은 종일 전화통에만 쏠려 있었다. 오늘도 안마사 찾는 전화가 한 통도 안 오는 걸까. 결국 밤까지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남편 고씨만 저녁 무렵 매일 나가는 안마시술소로 출근했다. ●안마 한 건에 2만 7000원 떨어져 집에 있다가 전화가 오면 호텔로 출장안마를 가는 김씨는 한번 일을 하고 나면 2만 7000원을 손에 쥔다. 손님에게서 4만원을 받지만 5000원은 호텔에 떼어줘야 하고 왕복 택시비로 8000원이 든다. 요즘은 그나마도 건너뛰는 날이 많다. 하루 서너건 정도 출장안마를 하던 때도 있었다. 대학생(21)·고등학생(18)·초등학생(12) 세 딸에 시부모까지 봉양해야 하는 김씨로서는 하루하루 힘겨움의 연속이다. 사는 집에서 호텔들이 가깝다고는 하지만 택시밖에는 교통수단이 없다. 딸들의 도움을 받거나 콜택시를 부른다. 대개 기본료 1900원이면 가는 거리지만 ‘맹인’이 가까운 데 가자고 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호텔 현관까지 쑥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두 배인 4000원을 준다.“안마사 찾는 사람이 없어 하릴없이 집에서 지낼 때가 많아요. 정말 죽을 맛이죠. 일본인 관광객이 많아야 하는데 독도 문제 등으로 일본과 사이가 나빠지면서 많이 줄었고 요즘은 월드컵까지 겹쳐서….” ●힘겨운 안마사 수련 과정 거쳐야 두 사람에게 안마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절박한 생존수단이었다. 부부는 각각 네살과 세살 때 뇌수막염과 홍역으로 시력을 잃고 맹학교에서 안마를 배웠다. 김씨의 회상.“맹학교에서 얼마나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는지 몰라요. 선생님들이 일부러 두꺼운 옷을 껴입고 저희들에게 안마를 시키거든요. 어지간히 힘을 주지 않으면 시원함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에 조금만 손에서 힘이 빠져도 불호령이 떨어졌지요.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안마뿐인데 이것도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였죠.” 해부학까지 배워 안마사 자격증을 따기까지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김씨는 1986년 큰 딸을 낳고 나서야 겨우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따고 호텔에서 일을 했다. 지하에서 밤새 기다리며 숙식을 해결했다. 손님의 요구에 따라 오래는 1시간 반이나 안마를 하다보면 온몸이 땀에 절고 손이 퉁퉁 부었다. 새벽 서너시쯤 걸려오는 안마주문은 정말로 받고 싶지 않았다. 호텔 시설물에 부딪혀 얻은 온몸의 상처는 지금도 곳곳에 흉으로 남아 있다. ●헌재결정 되돌리기전까지는 물러서지 않아 부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헌재 재판관들이 일주일만 눈을 가리고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씨는 “결정이 나온 바로 그날 친구 4명이 일하던 업소에서는 해고통지를 받았다.”면서 “헌재의 결정은 어렵게나마 사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우리를 완전히 수렁으로 내모는 꼴”이라고 말했다. 안마사 면허를 ‘시각장애인 면허’와 ‘비시각장애인 면허’로 나누고 업소 개설권은 시각장애인만 갖도록 하는 정부·여당의 보완책으로는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아무리 보완책을 마련한다 해도 비장애인들과 같이 경쟁해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희망을 찾기 위한 노력은 계속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궁리 끝에 집에서 안마를 할 수 있도록 집을 개조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매트리스도 깔고 집안을 단장해 손님들을 집으로 유치하면 벌이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에서다.“남들 다가는 학원 한번 못 보냈지만 밝고 명랑하게 커준 아이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시각장애인 취업실태 “사실 안마사 외에 취업 활동은 힘들죠.”시각 장애인들의 취업실태에 대한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시력을 잃은 장애인들의 생계책으로 안마사가 유일하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시각 장애인을 18만여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몸이 건강해 취업전선에 나설 수 있는 시각 장애인은 1만 3800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중 안마사로 활동하고 있는 시각 장애인은 5월 현재 5581명으로 대부분의 시각 장애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힘든 실정이다. 그림자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전맹(全盲) 장애인도 3만명이나 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각 장애인은 안마사가 거의 유일한 생계책이다. 맹인학교에서 침술교육도 하고 있지만 한의사의 의료활동에 속해 실제로 침술사로는 활동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도 안마사를 제외한 시각 장애인의 생계책은 생각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연합회 관계자는 “사무직으로 텔레마케터나 컴퓨터 속기사로 활동하는 시각 장애인도 있지만, 컴퓨터 화면을 볼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일자리를 찾기 힘들고, 컴퓨터 속기도 사무보조를 할 수 없어 취업이 힘들다.”고 전했다. 또 사무직 외에 전문직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고 단순생산직 역시 공장에서 사고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시각 장애인은 기피하는 분위기다. 때문에 안마사 외에 일자리가 없는 시각장애인 대부분이 기초생활대상자로 어렵게 생활한다는 것이다. 장애인 중에서도 특히 시각 장애인의 취업이 힘들다는 것은 노동부의 ‘장애인 근로자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1인 이상 사업장 295만 8000곳 중 장애인 고용업체는 모두 6만 4000여곳으로 12만 4000여명의 장애인이 고용돼 있다. 하지만 장애인 근로자의 대부분이 지체 장애인이고 시각 장애인은 단 7.8%에 불과하다. 또 시각 장애를 안고 취업한 6600여명의 경우에도 50% 이상이 한 쪽 눈으로는 앞을 볼 수 있는 6급 장애인이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관계자는 “시각 장애인이 취업하는 경우는 대부분 교정 시력이 어느 정도 나오는 분들이고, 완전히 시력을 잃은 분들은 취업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8년 잉꼬부부도 “조국 승리 먼저”

    8년 잉꼬부부도 “조국 승리 먼저”

    “주원이 너 큰일 났다. 한국이 스위스한테 6대0으로 질 텐데 어떡하냐.”“그만하지. 그러다 한국이 스위스 16강 못 나가게 만드는 수가 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잉꼬부부로 소문난 정주원(33·여·현지 여행사 직원)씨와 스위스인 필립 바그너(36·스위스항공) 부부는 24일 월드컵 한국·스위스전을 앞두고 요즘 매일 티격태격 설전을 벌인다.8년째 같은 이불을 덮는 사이지만 각자의 조국을 응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부는 사이 좋게 스위스와 한국을 응원했다. 하지만 두 나라가 승점 4점으로 피 말리는 16강 다툼을 벌이게 되면서 그런 분위기는 사라졌다. “축구를 주제로 말싸움을 하게 되면 절대적으로 여자가 불리한 게 사실이죠. 남편은 축구광인 데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축구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어요. 포백이니 스리백이니 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한국축구를 논하면 뭘 알아야 반박을 하죠.” 바그너의 말.“미안한 얘기지만 한국은 2002년에 비해서는 전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동안 토고와 프랑스전을 치르면서 운이 너무 좋았죠. 실력대로 간다면 큰 점수 차이로 스위스가 이길 겁니다.” 발끈한 주원씨의 반박.“당신네 나라는 4강까지 가본 적도 없잖아요. 기껏해야 8강에 낀 게 전부잖아요. 그것도 월드컵 초창기인 1934년,1938년,1954년으로 50년도 넘은 까마득한 옛날이고.” 두 사람의 인연은 10년 전 정씨가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싹텄다. 국제결혼을 하겠다고 나선 외동딸의 뜻에 미동도 않던 엄마 아빠는 결국 허락을 했다. 딸을 끔찍이 아끼는 바그너의 마음을 친정아버지가 읽어냈다. 부부는 1999년과 2000년 각각 스위스와 한국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요즘 부부는 축구 보는 재미에 산다. 한국·스위스전을 놓고 벌이는 말다툼도 이들에게는 사실 ‘놀이’다.16강이 결정되고 나면 삶의 재미가 줄어들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다.“유럽에서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이곳 스위스인들도 취리히·제네바 등 도심 광장에 모여 거리응원을 하면서 하나됨을 과시하고 있어요. 이런 적은 스위스에 온 지 11년 만에 처음이에요.”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게임. 정씨가 생각하는 최고의 해법은 토고·프랑스전에서 토고의 선전이다.“자꾸 놀려대는 남편을 생각하면 한국이 크게 이겼으면 싶지만 그렇게 되면 스위스가 떨어지잖아요. 결국 토고가 프랑스한테 이기거나 비겨서 한국과 스위스가 16강에 나란히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정씨 부부는 24일 경기를 프랑스에 사는 시부모와 함께 볼 계획이다. 몇몇 친구들은 독일 하노버로 직접 가서 응원한다는데 아쉽게 합류하지 못했다.“남편과 시부모님 등 스위스 쪽이 3명이어서 응원은 다소 불리하겠지만 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외칠 거예요. 시부모님도 저를 이해해 주실 테니까요.”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어이없는 ‘하늘이시여’

    어이없는 ‘하늘이시여’

    TV드라마의 ‘춘추전국시대’인 요즘 시청률 30%를 넘는 드라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여’(연출 이영희, 극본 임성한)는 지난해 9월 첫 전파를 탄 뒤 지난 2월 말부터 시청률 30%를 웃돌며 인기를 누려 예외다. 방송 전부터 ‘버린 딸을 찾아 며느리로 삼는다.’는 파격적인 소재로 논란을 빚은 만큼, 이에 대한 관심이 시청률에 반영된 것 같다. 그러나 제작진이 시청률을 너무 의식해서일까.SBS의 효자 드라마로 떠오른 이 드라마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회를 거듭할수록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반에는 주인공인 분장사 ‘자경’이 계모의 동생인 삼촌 ‘청하’와 사랑하다가 주위의 반대로 헤어진 뒤 방송국 앵커인 ‘왕모’와 새롭게 커플이 됐다. 자경이 어울리지 않는 왕모와 어렵게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은 왕모의 계모인 ‘영선’의 힘이었다. 자경은 바로 영선이 예전에 사랑했으나 억지로 헤어진 애인 ‘홍파’와의 사이에서 낳아 버린 딸이었던 것. 자경을 찾은 영선은 참을 수 없는 모성애를 발휘,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자경을 며느리로 맞이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파격인데 최근에는 영선이 홍파와 뒤늦게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 자경의 친부모인 그들이 다시 얽히고 설키면서 결국 자경의 시부모가 된 것이다. 이어 영선과 홍파, 자경의 비밀을 왕모가 알게 되면서 극의 긴장감은 더해졌지만 이 과정에서 영선과 자경의 관계를 알고 있는 자경 계모의 친구 ‘소피아’가 갑작스럽게 죽는다. 그동안 극중 양념 역할을 했던 소피아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일까. 앞서 홍파를 싱글로 만들기 위해 그의 부인 ‘은지’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것과 맥을 같이해 씁쓸하다. 드라마를 너무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을 만들어낸 것. 자경의 출생에 얽힌 비밀은 11일 방송에서 왕모의 동생 ‘슬아’가 “친언니와 오빠가 결혼한 거야? 그럼 오빠라고 해야 해, 형부라고 해야 해?”라며 울먹이는 상상신으로 이어진 데 이어 17일 방송분에서는 자경이 계모 ‘배득’ 때문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더욱 뒤틀린 앞날을 예고한다. 드라마의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극중 기자인 왕모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브리핑 장면 등이 방송돼 국정홍보를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같은 무리한 설정들은 드라마가 당초 50부로 기획됐다가 시청률을 의식해 4차례에 걸쳐 85회로 늘어나면서 횟수를 채우기 위해 자극적인 요소들을 억지로 만들어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종영까지 6회 남은 ‘하늘이시여’가 일그러진 가정의 화합을 그린 드라마로 평가될지, 시청률에 좌지우지돼 씁쓸한 논란만 남기게 될지 두고 볼 일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인디아 리포트](5)세계로 가는 인도영화

    [인디아 리포트](5)세계로 가는 인도영화

    |뭄바이 이석우특파원| 인도의 경제중심 뭄바이시 중심부에서 북동쪽으로 차를 타고 1시간30분 남짓 달리면 그레가온 지역에 위치한 ‘필름시티’가 나온다. 작은 도시를 연상시키는 61만평의 면적에 경찰서, 법원, 국회, 학교, 사원 등 각종 세트장이 펼쳐진다.16곳의 실내 촬영장, 인공 호수, 첨단 디지털 편집실…. 그린벨트 안에 자리잡은 이곳은 ‘볼리우드’, 인도영화의 심장격이다. 이런 데가 전국에 10여곳 더 있다. 해마다 볼리우드 알짜배기 작품 100여편이 여기서 만들어진다. 샤륙 칸, 아미차 바찬, 에슈와르야 라이 등 톱 배우들이 활약하는 주무대다. 30도 안팎의 화창한 4월 초. 필름시티 이곳저곳에서 촬영이 한창이다. 한달에 한 번, 두번째 주 일요일에만 문을 닫는다. 인도의 다른 지역은 40∼50도의 폭염에 시달릴 때도 이곳은 연안지역의 특성상 35도를 넘지 않는다. ●주 정부가 건설해 운영 기자가 방문한 날은 토요일인데도 촬영으로 장터처럼 붐볐다. 이날 하루 동안 TV시리즈 5편과 14편의 영화를 촬영 중이었다. 행정본부 앞 공터에서 연속극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마헤 찬드라 감독은 “고부 갈등을 주제로 한 가족사를 다룬 연속극을 찍고 있다.”고 설명했다. 급물살을 탄 사회 변화 속에 흔들리는 인도인의 마음을 가족극들이 어루만져 주고 있다. 파르워티란 며느리가 시부모 등 가족 울타리 안에서 겪는 애환과 갈등, 미움과 화해를 다룬 TV연속극 ‘사스비카비’(‘시어머니도 한때는 며느리였다’)가 대박을 터뜨린 것도 같은 이유라고 찬드라 감독은 말했다. ●저예산 제작의 경쟁력 “저렴한 비용으로 각종 시설을 이용하며 영화를 찍을 수 있는 필름시티 같은 곳이야말로 볼리우드 경쟁력의 산실”이라고 운영 책임자 부샨 가그라니 마하라슈트라주 관광청 국장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부가 핵심 산업으로 인식, 이같은 촬영시설을 전국 곳곳에 설치하고 지원한다. 이곳도 1977년 마하라슈트라 주정부가 만들었다. 인도 영화산업의 고용 인구가 50만명을 넘어선 것도 정부가 볼리우드 육성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인도는 해마다 1000여편의 영화를 찍어낸다. 미국의 600여편을 훌쩍 넘어섰다. 인도 영화발전공사에 따르면 지구촌 65억명의 절반이 넘는 36억명이 해마다 인도영화를 본다. 할리우드의 관객동원수는 26억명이다. 볼리우드의 성공은 이같은 시설이나 단순 저임금 인력에 기반한 저예산 제작만으론 설명되지 않는다.J 레만 칸 서인도영화제작자협회 사무총장은 “탄탄한 문화적 배경, 다양하고 풍부한 소재, 화려한 볼거리,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특징들이 결합해 성공을 이끌었다.”고 지적했다. ●관객 3억명의 힘 연간 3억명이 극장을 찾고 1만 2000여개의 극장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두꺼운 관객층도 볼리우드의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이다. 멀티플렉스가 있는 대도시뿐 아니라 장막으로 급조된 이동식 천막극장에 몰리는 농촌 관객층도 인도영화를 떠받치는 힘이다. 행정동에서 20여분 떨어진 야외촬영장 한 곳에선 음악소리가 요란하다. 수십명의 무희들의 흥겨운 율동에 뮤직비디오를 보는 느낌이다.“볼리우드 작품은 영화라기보단 뮤지컬”이라고 할리우드에선 비아냥대지만 노래와 춤은 인도영화에 활력소다. ●영화도 소프트웨어 산업 칸 총장은 “인도적인 것에 고집하는 볼리우드 특징이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서구영화처럼 매끈하거나 세밀하지도 못하고 감정에 치우친 비현실적이란 평도 받지만 볼리우드는 할리우드가 채워주지 못하는 틈을 파고든다. 향신료가 뒤범벅된 인도 음식처럼 각가지 극적요소를 뒤섞어 놓은 ‘마살라영화’의 매력을 강조했다. 가그라니 국장은 “영화도 넓은 의미로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머리(아이디어)와 풍부한 인력을 이용해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인도에 꼭 맞는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스타는 신이다 “스타는 민중들에게 신처럼 대접받는다. 스타시스템에 의존하다보니 전체수입의 60∼70%를 그들이 싹쓸이한다.”는게 제작자들의 지적이다. 최고 스타 샤룩 칸은 편당 100만달러 이상을 받는다. 윤곽 뚜렷한 서구적 외모, 유창한 영어와 세련된 매너 등 세계화된 배우들도 볼리우드의 매력 포인트다.“인도에서 현대차가 성공한 것은 샤룩 칸을 모델로 썼기 때문”이란 주장을 현지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스타와 인도 영화의 힘을 상징한다. N 비야스 영화발전공사 부사장은 “인도 영화산업은 해마다 20∼30% 성장을 거듭한다.”며 “세계인들이 할리우드보다 볼리우드를 더 좋아하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며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jun88@seoul.co.kr ■ 한국 첫 로케 무케시 바트 감독 |뭄바이 이석우특파원|“영화제작자는 꿈을 만들어 판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행복한 꿈을 꾸도록 하는 게 내 임무다.” 볼리우드 영화의 ‘흥행제조기’로 불리는 감독이자 영화제작자 무케시 바트는 인도 영화의 장점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월 말 개봉된 그의 최근작 갱스터는 인도 영화 가운데 한국에서 촬영한 첫 작품이다. 영화제작소들이 몰려 있는 뭄바이 북부에 위치한 그의 영화사 ‘비세시 바트’를 찾았다. ▶‘천하무적’ 할리우드 영화가 왜 인도에서 고전하나. -인도의 강한 정체성과 문화전통 속에 볼리우드 영화가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볼리우드 영화는 왜 늘 ‘해피 엔딩’인가. -현실에 찌들린 사람들이 영화에서까지 피곤함과 절망감을 맛봐야겠나. 많은 관객들이 해피엔딩을 원한다. ▶그게 당신 영화의 성공비결인가. -짜임새있는 각본 위에 적은 예산으로 신속하게 좋은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인도는 ‘11억명이 선거를 하는’ 다양하고 역동적인 정치체제를 갖고 있다. 영화의 좋은 소재인데 정치영화는 만들지 않나. -정치는 더럽다. 나는 가능하면 시궁창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다. ▶최신작 갱스터의 3분의2를 한국에서 촬영했는데. -내 영화의 변화를 주고 싶었다. 서울영상위원회의 도움에 감사한다. ▶한국영화를 평가한다면. -내용이나 기술면에서 국제적인 수준이지만 문을 열지 않고 보호에 안주해선 위기를 맞을 것이다. jun88@seoul.co.kr
  • 베트남서 시집와 부녀회장 된 오진주씨 농촌생활기

    베트남서 시집와 부녀회장 된 오진주씨 농촌생활기

    “처음에는 실수도 좀 했는데 지금은 한국생활이 익숙해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지 2년 반 된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삼남리 오진주(22)씨. 그녀는 올해 초 이 두메산골 마을의 부녀회장으로 뽑혀 5개월째 공무(?)를 수행 중이다. ●“내가 마을 현안의 전령사”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면사무소에서 열리는 부녀회장 회의에 참석한다. 농촌 폐비닐 수거, 마을청소, 군민체육대회 음식준비 등. 다른 마을 부녀회장과 이런 문제를 논의한다. 여기서 결정된 사안이나 면의 지시사항은 마을회의를 열어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전달한다. 오씨를 부녀회장으로 뽑은 것도 이들이다. 임기는 3년. 하지만 한국말이 서툴러 남편이 동행한다. 오씨는 “말 말고는 불편한 게 없다.”고 말했다. 시집온지 얼마 안된 2년 전 여름에는 남편의 ‘물 좀 달라’는 말에 방문을 닫아 웃음바다가 된 적도 있다. 남편 김정기(41)씨는 “한국말을 배울 수 있도록 새마을지도자 모임 등에 꼭 데리고 간다.”고 귀띔했다. 그는 마을 새마을지도자다. 아내가 한국말을 빨리 배울 수 있도록 노래방을 자주 다녔다. 장윤정의 ‘어머나’는 18번이다. ●한국농촌 일이 더 편해 “한국은 반년만 농사를 지으면 되잖아요.” 오씨의 얘기다. 베트남은 2∼3모작으로 1년 내내 일한다. 이앙기 등 농기계가 적어 수작업이 많단다. 그녀는 호치민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농촌에서 1남3녀의 큰딸로 태어났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14살 때부터 일을 하다가 2003년 10월에 시집을 왔다. 베트남 이름은 ‘응우옌테이 럽벗비취’. 남편의 선배가 이름 끝자가 보석 이름과 같다며 ‘진주’라고 짓고 성씨는 감탄사 ‘오∼’에서 따왔다. 지난 9일 오후 3시쯤 마을을 찾았을 때 그녀는 이웃 집 참깨밭 일구는 일을 돕고 있었다. 어려보이는 얼굴이지만 두루마리 비닐을 굴리면서 발로 고랑에서 흙을 퍼올려 비닐 양쪽을 덮는 솜씨가 능숙하다. 머리에는 밀짚모자와 같은 ‘농라’라는 베트남 모자를 쓰고 있었다.“농촌으로 시집오는 것을 알고 베트남에서 가져왔어요.” 밭주인인 70대 주민(여)은 “그냥 나를 도와주는 것”이라며 “착하다.”고 고마워했다. 오씨는 오토바이를 잘 탄다. 시어머니 전분혹(65)씨는 “오토바이는 선수여, 선수”라고 추켜세웠다.14살 때부터 탔단다. 부녀회 회의나 외출시 이용한다. 아내가 주로 운전하고 남편은 뒷자리에 탄다. ●한국음식 못하는 것 없어 오씨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한국음식을 잘한다. 김치도 잘 담근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 쉽게 배웠다. 하지만 된장, 청국장은 냄새 나서 싫단다.” 남편은 “처음에는 음식을 무조건 튀겨 돼지고기를 버린 적도 있다.”며 “지금은 매운 음식도 좋아해 향어매운탕을 먹을 때는 머리를 놓고 아버지와 다투기도 한다.”며 웃었다. 오씨는 남편을 ‘오빠’, 남편은 ‘여보’라고 불렀다. 오씨는 “시집 올 때는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빠가 잘해줘 마음이 편하다.”면서 “시부모께서는 ‘대전에 나가 살아라.’고 하지만 끝까지 모시고 살겠다.”고 했다. 그녀의 하루일과는 오전 6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오전 11시까지 농사를 지은 뒤 점심식사 후 오후 3∼4시부터 저녁 때까지 일한다. 논·밭이 모두 1만평. 밤에는 TV를 본다. 겨울에는 산골짜기에서 개구리를 잡아다가 굽거나 튀겨 먹곤 했다.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개구리 먹지마. 애 못낳아.”라고 소리를 쳤다. ●동생도 한국에 시집온다 주민이래야 고작 28가구에 47명인 마을에서 애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됐으니 애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 듯하다. 오씨는 결혼 2년이 지난 지난해 11월 귀화신청을 했다. 국적을 취득하면 자동차운전면허도 따겠다고 했다. 다음달 동생도 한국으로 시집을 온다. 부녀회장이 됐을 때 TV에서 오씨를 보고 대전에서 회사를 다니던 총각이 찾아와 “동생 좀 소개해달라.”고 해 맺어졌다. 오씨는 “한국 사람들 착하고 부지런해 좋다.”고 했다. 그녀는 밭일을 그만두고 옷을 갈아입은 뒤 집을 나섰다.“베트남에서 열리는 동생 결혼식에 가려면 돈이 필요하다.”면서 오토바이를 타고 6∼7㎞쯤 떨어진 면소재지 농협으로 떠났다. 글 사진 옥천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강학중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윗사람 대접 안해주는 동서 5년째 왕래 끊고 사는데…

    Q집안 일은 신경도 안 쓰고 나이 차가 9년이나 나는 저를 형님 대접도 안 하는 동서 때문에 속이 상합니다. 형님 대우는 안 하면서도 부모님 모시는 것, 명절 쇠는 것 등은 맏이로 의무를 강조하니 화도 나고요. 시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왕래를 끊은 지 5년, 남편은 술만 마시면 동생 얘기를 하지만 저는 화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1·3학년인 두 아들과 남편을 생각하면 나이 들어 후회하지 않을까 싶어 머리가 복잡한데 어찌해야 좋을까요? - 윤희자(가명·37세) A동서지간, 참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미묘한 관계이지요. 형제간의 남편 서열에 따라 여자들의 지위가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사이이면서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맺어지는 인간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동서의 학력이나 친정집의 사는 정도, 전업주부냐 맞벌이냐에 따라서 그리고 시부모님의 편애 때문에 갈등을 빚는 동서들을 많이 봅니다. 형님으로 대접은 안 하면서도 윗사람으로서의 의무만 들먹이는 이기적인 동서 때문에 속 끓이는 심정은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5년씩이나 왕래를 끊고 사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싶군요. 단절된 세월 속에서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요?본인은 정작 미운 동서 얼굴을 안 보니 큰 불편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남편은 형제간의 의를 끊고 살려니 편치만은 않았을 겁니다. 술만 마시면 동생 얘기를 꺼내는 남편 심정을 생각해 보셨는지요?부부란 어느 한 쪽이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한 쪽도 행복할 수가 없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고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된다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형제도 많지 않은 요즈음, 사촌끼리의 관계라도 회복시켜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먼훗날 둘뿐인 아들들이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낸다면 심정이 어떨까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하루 빨리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악화된 관계가 굳어져서 갈수록 회복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동서가 밉고 원망스러워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겠지만 인간관계란 상대적이어서 본인에게도 조금은 잘못이 있지 않을까요?화해나 사과는 누가 먼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시는지요?‘아랫사람이 먼저 잘못했다고 사과 안 하는데 내가 왜 먼저 연락을 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그런 생각이 두 분의 관계를 해쳤던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윗사람으로서 아무 조건없이 손을 먼저 한번 밀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연락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과의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형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동서의 마음이 봄눈 녹듯 풀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동서의 장점, 좋은 점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인 면이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일까요? 그동안 중간에서 남편이나 시동생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르지만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지혜로운 중간 역할을 부탁해 보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악화된 관계가 금세 좋아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명절이나 부모님 제사, 그리고 생일 같은 날에는 왕래 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中출신 아내들 “외로워요”

    |도쿄 이춘규특파원|지난달 17일 일본 시가현에서 유치원생 딸(5)의 친구 2명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중국 국적의 다니구치 미에(34)씨 사건을 계기로 2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일본내 중국인처들의 외로움, 부적응 문제가 집중 부각되고 있다. 다니구치씨는 중개업자의 소개로 2000년 일본인 남편과 결혼하기 직전 일본으로 건너왔다. 언어장벽 문제로 일본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딸의 유치원생활도 고심했었다고 한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04년 일본인 가운데 3만 9511명이 국제결혼했다. 이 가운데 80% 정도가 남성이었다. 그중에서 약 40%인 1만 1915명이 중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대부분 20대인 중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일본인은 40대 전후의 독신남들이다. 최근 10여년간 이러한 국제결혼이 급증,20여만명으로 추산된다. 연애결혼을 한 경우에는 문제가 적지만 400만엔(약 3300만원) 안팎의 중개료를 내고 알선결혼할 때가 문제가 많다고 한다.“주위로부터의 멸시받는다고 느낀다.”,“시부모로부터 음식맛이 없다고 구박받는다.” 등이 스트레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중국인처들은 “교류할 만한 이웃이나 중국인 친구가 없어 외롭다.”,“아이들이 집단등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인으로서는 스트레스다.” 등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일본인 남편도 의사소통 문제 등으로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 살고 있는 중국인, 타이완인 등의 고민상담을 하는 ‘간사이생명선’ 이토 대표는 “상담건수의 40%정도가 중·일간 국제결혼에 관련된 것”이라면서 “이국생활은 주위, 특히 남편의 도움이 필수”라고 말했다고 뉴스위크 일본판이 1일 보도했다. 한편 중국인과 일본인의 국제결혼에는 옛 만주지역에 집중된 잔류일본인 고아들이 깊이 관련돼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2차대전 패전뒤 현지에 남은 일본인들이 1980년대부터 일본으로 귀국, 이들이 중국내 친척 등과 연결돼 사업목적으로 국제결혼 알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taein@seoul.co.kr
  • 여성(女性) 도와 천당가겠네

    여성(女性) 도와 천당가겠네

    성하(盛夏)를 맞은 한 남성이 내건「캐치·프레이즈」가『찌는 여름입니다. 피곤하시죠, 여성 여러분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수퍼·페미니스트」는 무엇을 어떻게 도와준다는 것일까. 궁금하다. 알고보니 7월 1일부터 시작한「허니문·센터」의 신종(新種)사업「캐치·프레이즈」. 그리고 그 남성은 대표 김현(金炫)씨. 『저는 애처가로 자처하지만 워낙 우리 집안은 공처가 3代를 지내 오고 있읍니다』 소박하게 웃는 안경 너머의 안광(眼光)이 아니었던들 둥글한 동안(童顔)은 나이를 가름하기 힘든 생김이다. 31세-작달만한 키의 젊은 사장이다. 지리한 여름 하오 탁자위에 벌여놓은 낙서지를 흘끗보니『대한민국 제일의 부자(富者)가 되어…』『돈은 벌면서도 만인에게「서비스」하게 되니 돈벌고 천당 가고…』. 7월1일부터 여성을 위한 본격적인「서비스」에 나설 완전 채비를 끝내 놓고 잠깐 한가한 틈을타 낙서를 끄적이던 참이다. 『여성을 지치게 하는 것은 남성들의 책임입니다. 그들을 늘 아름다운 채 두기 위해 그들의 힘든 일을 대행하려는거죠』 어느집 맏며느리는 시부모 회갑연(回甲宴)을 맞아 장소 물색에서 헌주(獻酒)를 하고 놀아줄 기생을 부르는 일까지 도맡아 동분서주하다가 잔치가 끝나면 며칠 앓아누울 마련까지 해가며 애를 쓴다. 잔치가 끝나면 뭐가 빠졌다느니 뭐는 결례(缺禮)였다느니 타박을 받는 것도 며느리다. 이때 며느리는 잠깐 이「센터」에 들러 상담을 하면 그뿐. 일체를 대행해 준단다. 사회자, 국창(國唱), 가수,「밴드」를 지정하는 대로 불러주는 일에서 자가용을 빌려주고 촬영을 해주고, 녹음을 해주는 잔일까지 어떤「파티」건 도맡아 그 분위기까지를 책임지고 이끌어 주는 일에 자신을 갖게 됐고『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는 이 기발한「서비스」업의 착상은 우연한 연줄로 모 국영기업체의 이사회를 속리산에서 개최해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닉슨」각료회의만큼은 호화롭지 않더라도 부부동반으로 명승지 찾아 벌인 이사회의「레벨」은「세단」은 전원 소유하고 있을 정도. 번저 최고의「딜럭스」한「버스」를 빌어 각자앞에 일체의 사무도구와 수건, 머리빗, 거울등을 세밀히 갖춘 간단한 사무용「백」을 놓아두었다. 「팀웍」조성을 위해 전원을 태우고「세단」은 빈차로 뒤따르는 여행에서부터 전원을「위밍·업」시켜 나갔다. 이사회가 진행되는 동안 조명,「백·뮤직」등을 적절하게 조절해오다 끝날때는「핑크·무드」를 조성하는 일까지「성공적인 연출」이었다고 흐뭇해한다. 『사실 5년동안 TV방송국 PD로 있으면서 배운 연출 솜씨 발휘였죠』 분위기에 약한 현대인의 약점을 파고든 연출법이 성공한 셈. 침실로 돌아 가기 직전에「핑크·무드」를 조성했다는 비결을 물었다. 『어느 노신사에게「선생님이 제일 처음 여성을 느낀 나이는 몇살때였읍니까」하고 묻습니다. 앞뒷집 단발머리 소녀, 같은 국민학교 여학생의 기억을 안가진 사람은 드물죠. 금방 노신사는 몇십년을 치올라가 소년인듯 얼굴이 붉어지죠. 그때「옆에 계신 부인을 돌아봐 주십시오」라고 얘기할 뿐이죠』 남성을 위한 모임이었더라도 끝에 가서는 여성 편에 서서 여성을 위하는 모임이 되게 하도록 매사를 매듭짓는다고 했다. 어느 회사의「파티」건 주최자는 집으로가서 그 부인과 한번쯤 의논하게 될 것은 뻔하다. 그렇다면 기막힌 상혼(商魂)에 안놀랄 수가 없다. 『그렇죠, 「서비스」를 파는 장중심으로 벌이는 장사가 잘된다는 것은 뻔하죠. 누구 만큼 돈을 벌 작정입니다』 이「바캉스」철을 맞아 내건 또다른「캐치·프레이즈」가 『여름휴가는 가족과 함께』. 남자들 끼리 가는 여행에 「가이드」를 하거나 「서비스」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장담도한다. 직원은 전부가 애처가여야 한다는 남다른 경영 방침도 쓰고있다. 전 직원이 도시락을 지참할 것도 솔선 수범하고 있는 사장이다. 도시락을 먹는 한낮의 한때 멀리서 아내의 정성을 음미하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연애 1년만에 결혼한지 1년이 지났지만 김(金)사장은 맞벌이 부인(조동현(趙東賢)·27)을 서울여상 영어교사로 내보내는 것도 경제적 뒷받침을 위해서가 아니라 흐트러지고 「루즈」해지기 쉬운 부인들의 행동에 미리 요(要)경계하기 위해서란다. 이 철저한「페미니스트」가 벌인 여성을 위한 사업이란 신부로서 신경을 써야 할 결혼준비 일체. 부인으로서 남편의 상담에 응할 수 있도록 직장 야유회「가이드」및 주관. 며느리나 부인이 주관할 각종「파티」대행. 그리고「패션·쇼」기획 및 진행이 그것. 여자가 준비해야할 일체를 자신이 애를쓰고 다녀도 못할 정도의 염가알선이 가능한 것은 직매처와 직접 손을 잡고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 외에 부정기적인 비상직원으로 「카메라·맨」, 녹음기술자들을 세사람씩 채용해놓았고 유명한 사회자, 일류 연예인 들과의 쉬운 「컨텍트」가 방송국 출신인 김(金)씨로서는 어렵지 않은일이라는 것. 2만원 짜리 옷한벌 보다는 20원어치 콩나물 값에 애착을 보이는 부인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계산서에는 몇십원까지 정확하게 거스름을 붙이고 또 정확하게 거스름하는 계산방법도 쓰고있다. 고대(高大) 국문과 재학시에는 현역 연극인들과 연극을 했고 졸업후에는 KBS-TV, TBC-TV에서 사회교양「프로」PD로 일해오면서 익혀온 기막힌 연출 솜씨가「파티·디렉터」라는 국내 신종 직업에 눈을 돌리게 만든 것. 『한여름 큰일을 치러야하는 여성은 (75)3135로 전화「다이얼」을 돌리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거죠』 [ 선데이서울 69년 7/6 제2권 27호 통권 제41호 ]
  • “시부모님 아니었으면 판사 꿈 못꾸었죠”

    “노서영 예비판사에 임명함.” 20일 오전 법관 임명식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으로부터 직접 임명장을 받은 울산지법 노서영(32) 예비판사는 방청석에 앉아 있는 시부모 강영철(57)씨와 박종숙(53)씨에게 활짝 웃어보였다. 시부모가 없었으면 판사가 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노씨는 원준(7)·원찬(5) 두아들을 둔 어머니이자 4대가 함께 사는 집안의 맏며느리다. 간호학과 출신으로 간호사 자격증을 소지한 드문 경력도 갖고 있다. 남편 강지용(35)씨는 산부인과 전문의다. 노 판사는 연세대 간호학과 93학번이다. 간호학생 실습 때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의료사고가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다.“의료 사망사고가 났는데 환자가족들은 의사들을 탓하고 의사들은 또 간호사들을 탓했습니다. 이때부터 법을 아는 사람이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간호사 자격증까지 딴 뒤 복수전공으로 법학공부를 시작해 1999년에야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후 본격적인 사시 공부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간호실습 기간에 만난 남편과 졸업하던 해 결혼하고 시부모님을 모시며 두 자녀까지 낳아 기르는 1인 3역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정생활과 공부를 같이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줬다. 그는 “시아버님이 날마다 새벽에 신림동 고시학원으로 통학시켜주셨고 시어머님도 육아를 책임져 주셨다.”면서 “가정이 안정돼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지만 며느리와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해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두 아들에게서 ‘책만 보는 엄마’로 통했던 그는 사시 합격 후에야 아이들과 함께 있을 시간이 나 ‘진짜 엄마’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달 큰아들 유치원 입학식에는 참석하지 못한다. 첫발을 내디딘 법관 업무 때문이다. 그는 “간호학이나 법학 모두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옹호하는 학문이니 앞으로도 사람을 이해하고 귀기울이는 태도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는 전임 시군판사 3명, 신임 판사 111명, 예비판사 92명 등 신임 법관 206명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명장을 받았다. 이 대법원장은 종전과 달리 206명 전원에게 일일이 임명장을 수여했다. 가족도 초청하고 임명식 뒤에는 소연회도 열어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테이블을 돌며 사진 촬영도 했다.글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서초구 가정지원센터 온갖 고민 풀어줍니다

    서초구 가정지원센터 온갖 고민 풀어줍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데 이혼해야 하나요.” “우리 아이가 00행위를 하는데 어떻게 하죠.” “혼수 문제로 시부모님과 갈등이 생겨 결혼생활에 위기가 닥쳤어요.” 2일 오후 서울 서초구민회관 2층에 위치한 ‘서초 건강가정 지원센터’. 한국가족상담교육단체협의회에 위탁해 운영하는 이곳에는 하루종일 상담전화와 상담을 원하는 구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혼 위기와 고부갈등, 육아문제 등 자신의 고민들을 진솔하게 쏟아냈다. 건강가정 지원센터는 지난해 7월 서초구를 비롯해 용산·강북·동대문·동작·관악·송파구 등이 문을 열었다. 올해에는 2007년 운영예정인 중랑·강서·양천·강동구 등 4곳을 제외한 14개 구청에 추가로 설치된다. ●가정의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따르릉∼, 따르릉∼’ 오후 4시, 센터 전화 상담실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SOS’. 하수민(30) 상담팀장이 ‘전화상담일지’를 챙겨들고 곧바로 1평 남짓한 밀폐된 전화 상담실로 들어갔다. 상담시간 내내 전화를 통해 상담을 진행하는 하 팀장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기를 1시간. 이마가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하 팀장은 빼곡하게 쓴 상담판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이혼 문제를 상담한 전화였다.”고 짤막하게 말했다. 상담내용과 피상담자의 신원이 철저하게 비공개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센터 상담원은 모두 15명. 전화 상담은 가족학을 전공한 석사 이상의 전문 상담원이 맡고, 면접 상담은 현장 상담 경험이 풍부한 석사 이상 전공자나 박사학위 소지자가 맡는다. 하 팀장은 “센터는 우선 답답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속시원하게 들어주는 것”이라면서 “특히 (감정에 복받쳤던 사람들이)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내 문제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상담은 전화와 방문, 인터넷 등을 통해 이뤄진다. 전화 상담은 센터(576-2852)로 전화를 하면 되고, 방문 상담은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한 뒤 지정된 날짜에 방문하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상담은 보통 6∼10회 정도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이혼 위기 상담 가장 많아 센터가 문을 연 이래 지난해 말까지 6개월 동안 220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이 신원 노출을 꺼리는 탓에 전화상담이 131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직접 센터를 찾는 상담자도 80명이나 됐다.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상담도 9건이었다. 상담내용은 전체 상담 건수의 48%가 이혼과 남편의 외도, 재혼 등 부부갈등이 가장 많았다. 이어 자녀양육문제(19%), 고부간 및 친정부모와의 갈등(11%), 본인 성격문제(9%) 등의 순이었다. 나머지는 형제자매와의 갈등, 경제적인 어려움, 애인과의 이별 등이었다. 상담사례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녀를 해외로 입양 보내려 한다.’거나 ‘혼수 때문에 결혼한 지 1년이 안돼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있다. 남성들의 방문도 적지 않다. 방문자의 23%가 남성이었다. 남성들의 고민은 아내와 어머니 간의 갈등으로 인한 고민이 주를 이뤘다.“아내와 어머니를 모두 사랑하지만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내 자신이 무능해 보인다.”는 한 남성은 10번에 걸쳐 대화법과 중재법 등을 단계적으로 상담 받은 뒤 자신감과 대처 능력을 회복한 사례도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가생활 마련 센터에서는 사후 상담 뿐만아니라 원만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 있도록 여가 지도도 끊임없이 이뤄진다. 부모와 자녀, 부부 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각종 놀이 등을 전수해 준다. 지난해 9월부터 ‘가족과 함께 즐기는 예술이야기’를 주제로 매월 미술·음악·크리스마스 파티를 주제로 행사를 개최했다. 오는 15일과 17일에는 ‘우리 아이 사춘기 극복하기’라는 집단상담프로그램과 함께 23일에는 거창고 전성은 교장을 초청, 청소년 부모 자녀특강을 실시한다.28일 오후 3∼5시에는 ‘우리 가족 실내 정원 가꾸기’를 주제로 환경교육과 건강 교육을 실시한다. 올 가을에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데이트 코칭’ 프로그램을 준비할 예정이다. 데이트 매너와 대화법 등에 대해 조언을 해 줄 예정이다. 김은정(35) 교육팀장은 “놀이법과 대화법 등은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부모가 직접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효과가 크다.”면서 “자녀지도와 부부갈등, 고부갈등, 이혼 위기 등 여러가지 가정 문제는 사후 치료적인 것이 아니라 사전예방적인 다양한 가족활동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미안해” 한마디면 家和萬事成 ‘가정은 항상 건강한 것이 아니라, 노력해야 건강한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간의 노력이 필요하다.80년간의 결혼생활로 기네스북에 오른 영국인 퍼시애로스미스(105)와 플로렌스(100) 부부는 오랜 금실의 비결이 ‘미안해’라는 한 단어였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결코 미안해라는 말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최근 신혼부부에게 바람직한 가정생활 운영을 위한 지침서로 마련한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라는 책자를 통해 부부간 의사소통과 좋은 부모되기 등에 대해 알아봤다. ●성공하는 부부싸움 5계명 부부간에 대화를 할 경우에는 상대에 대한 존경과 배려하는 태도가 있어야 하며, 더 좋은 결혼생활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또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도 갈등과 싸움을 할 경우가 생기면 ‘함께 잘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이뤄져야 한다. 솔직한 감정을 나타내돼 유머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며 상대방의 언어적 메시지와 비언어적 메시지를 잘 들어 줘야 한다. 성공하는 부부싸움 전략으로는 (1)갈등에 신속하게 대처한다.(2)한번에 한 가지씩의 문제에 대처한다.(3)구체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다.(4)같은 편이 되어 본다.(5)폭발은 절대 금물임을 명심한다. ●좋은 부모되기 10계명 효율적인 자녀 양육법은 부모와 아이의 개인적인 특성, 기질,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의 특성이 무엇이든 모든 양육 방식의 기초를 이루는 기본적인 틀은 있다.10계명은 자녀를 키우면서 우리마음에 항상 명심해야 한다. (1)무엇보다 자녀와의 좋은 관계가 우선이다.(2)안정되고 평화로운 집안 분위기를 만든다.(3)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4)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5)훈육의 효과는 원칙이 중요. 부모의 감정에 좌우되지 않도록 한다.(6)자녀 때문에 희생한다고 말하지 말자.(7)칭찬과 격려를 해준다.(8)책과 친해지도록 노력한다.(9)실패를 허용하고 비난하지 않는다.(10)‘너를 사랑하고 믿는다’라는 말를 자주해준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안귀옥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시어머니가 자꾸 흉보는데…

    Q어머니 친구의 중매로 결혼을 했는데, 결혼 하기 전에는 시어머니가 성격도 화통하고 친정 어머니처럼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남편보다 시어머니 때문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막상 결혼을 해보니 시어머니는 제 앞에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지만, 어머니 친구들과 통화를 할 때는 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저한테 직접 말씀을 해주시면 고칠 수 있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흉을 보시는 것을 들으면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시어머니와 사이가 더 나빠지기 전에 원만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 김민녀(34·가명) A결혼 전에는 딸처럼 지내자고 하던 시어머니가 막상 결혼한 뒤에는 전과 달리 심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예전에 어떤 인터넷 사이트 설문조사에서는 고부간 갈등을 느낀 적이 있다는 응답이 84.3%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고부간 갈등 때문에 고통을 받는 여성들이 특별히 포악한 시어머니를 만나서라든지 며느리에게 어떤 잘못이 있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옛말에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했습니다. 장인·장모가 사위를 어려워하는 것처럼 새식구인 며느리도 시댁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어려움을 표출하는 방법이 어떤지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질 뿐입니다.20∼30년 이상을 다른 문화와 환경속에서 살던 남녀가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생활을 공유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연애기간이 길더라도 연애할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용을 결혼하고서야 발견하고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그런데 결혼 전에는 서로의 생활이나 성격을 파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가족들과 어울려 살 때에는 문화와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결혼을 통해 배우자 가족들과의 사이에 이루어진 친족관계를 인척이라고 합니다. 인척은 단지 배우자의 부모인 것이지 내 부모가 아닙니다. 내 부모와 같아지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욕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친정 어머니와도 서로 뜻이 맞지 않아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만, 모녀 사이는 피를 나눈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 큰 소리를 내고도 시간이 지난 뒤에 서로 푸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부모와의 사이에서는 서로 의가 상한 뒤 화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친정 부모와 시부모의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꾸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를 비교하고 스스로 서운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 관계는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잘못과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며느리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는 것이 당신이 며느리를 어렵게 생각해서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김민녀씨가 시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시어머니와 속을 터놓고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서로의 견해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마련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계속 시어머니의 행동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이 또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직접 이야기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며느리 흉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풀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나서서 푸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가족갈등 해결문제로 고민이 있으신 분은 피플원 부설 가족상담교육연구소(02-6677-7703/www.pp1.or.kr)또는 사단법인 한국행복가족상담소(032-867-7119/www.e-happyhome.com)에서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 [서울 이야기] (35) 보육시설

    [서울 이야기] (35) 보육시설

    서울이야기는 34회 ‘도시마케팅’을 끝으로 문화분야 이야기를 마무리했다.35회부터는 보육시설을 시작으로 서울의 보건복지분야를 다룬다. 산후 휴직기간이 끝나는 3월부터 직장에 복귀해야 하는 K(29세)씨에게 가장 큰 고민은 아이 맡길 곳을 찾는 것이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아이를 돌봐줄 곳을 찾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다. 먼저 집으로 와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것을 고려해보았지만 월급의 절반 이상을 비용으로 감당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다.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홀가분하게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바라보자니 몸이 불편하셔서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드릴 수 없는 친정부모님과 지방에 계신 시부모님이 원망스럽기조차 하다. 바라 보고 있자면 한없이 소중해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는 내 아이. 도대체 이 아이를 어디에, 누구의 손에 맡길 수 있을까.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K씨는 1년의 산후휴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회사측의 매우 특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보육시설을 찾느라 이리저리 다니는 동안 K씨는 직장 내에 혹은 직장과 가까운 곳에 회사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이와 함께 출·퇴근하고 혹시라도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언제라도 아이에게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아이를 두고 있다면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접으면서 K씨는 먼저 집근처의 놀이방과 어린이집을 수소문해보았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로부터 괜찮다고 소문이 나 있는 어린이집과 놀이방을 몇군데 방문해보았지만 딱히 마음 편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을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린이집 실태 ‘00 어린이집’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육시설은 설립주체에 따라 국공립보육시설, 법인 및 민간보육시설, 직장보육시설, 가정보육시설과 부모협동보육시설로 구분된다. 일반적으로 어린이집은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 아이들을 돌보지만 오후 9시 반 이후까지 운영되는 어린이집(시간연장형 시설)과 일요일 및 공휴일에도 운영되는 어린이집(휴일보육시설)이 있다. 또한 0세부터 36개월 미만의 영아만을 보육하는 영아전담보육시설과 장애아동을 보육하는 장애아전담보육시설, 그리고 3명 이상의 장애아를 비장애아동과 통합하여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아통합 보육시설 등 부모와 아동의 필요와 여건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보육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2005년 6월 현재 서울시에는 총 5,323개의 보육시설이 있다. 시설유형별로는 민간 개인어린이집이 2364개로 가장 많아서 서울시 전체 보육시설의 44%가량을 차지한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 가정보육시설(놀이방)로 총 2079개이며, 국공립시설은 전체 시설수의 약 10%에 해당하는 544개이다. 전체 보육시설을 숫자상으로 보았을 때 적은 숫자는 아니다. 실제로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운영되는 시설(특히, 민간시설의 경우)이 다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많은 부모들이 입을 모아서 아이 맡길 곳이 없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일까. ●내 아이를 맡길 만한 곳이 없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부터 아이를 어디엔가 맡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서인지 신문이나 TV에서 ‘어린이집’에 관련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K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일부 어린이집의 비위생적이고 불량한 급식, 안전사고, 영유아 학대 등 일련의 사건들이 떠오르면서 불안과 의심에 가득찬 시선으로 시설들을 돌아보는 K씨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정말로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만한 시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K씨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구립어린이집이다. 젖먹이 아이들을 돌보는 영아반이 있고 시간연장형 보육시설로 지정된 곳이어서 퇴근시간이 늦은 K씨에겐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지금은 정원이 다 채워져 있다는 말에 아이의 이름을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으며 돌아와야만 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민간시설보다는 국공립어린이집을 선호한다. 국공립어린이집이 민간어린이집에 비해 보육료가 저렴하기도 하지만 정부에서 관리·감독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보육의 질이 더 나으리라는 기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국공립시설의 숫자는 시설에 대한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 다음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만족할 만한 수준의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시설을 찾는 것이다. 서울시에는 다양한 규모의 다양한 보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민간보육시설이 있다. 때문에 한마디로 민간보육시설을 특징지어 말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 민간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조사대상 민간시설의 45%가 보육환경으로 적합하지 않은 상가건물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서울시정개발연구원,2005). 더욱이 조사대상 시설 중 60%가 임대시설이었고,40%가량이 시설설치, 운영과 관련하여 부채가 있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민간보육시설에서 질적으로 수준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이에 따라 보육서비스의 질적인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모가 참여하는 보육서비스 평가를 실시하여 전체적인 보육의 질을 높이고 우수 보육프로그램을 발굴하여 보급하고 있다.2004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서울시 보육시설 서비스 평가는 2006년을 마지막으로 서울시에 소재한 전체 보육시설 5000여개에 대한 서비스 평가가 완료된다. 특히 서울시 평가는 건강관리와 안전에 대한 집중적인 질관리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보육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보육교사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보육교사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보육교사 처우수당을 지급하고 우수보육교사를 선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간보육시설에 대해 환경개선비도 지원하고 있다. ●어린이집 선택은? 보육시설은 아이가 안전하고, 행복하고, 사랑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곳, 아동이 재미있게 학습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보육시설은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중앙보육센터는 좋은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요령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첫째 정보를 수집한다. 좋은 보육시설을 찾는 것은 숙제를 하는 것과 같다. 가능하다면, 보육시설을 선택하기 전에 여러달에 기본적인 정보를 얻도록 한다. 우선 보육정보센터에서 집에서 가까운 보육시설의 명단을 알아본 후 그 중에서 동료나 주위사람들로부터 추천을 받는 것도 요긴한 방법이다. 둘째, 추천을 받은 보육시설이나 집주변의 보육시설 중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최소한 3곳 이상의 보육시설에 연락을 취해서 방문 일정을 잡는다. 셋째, 전화로 연락을 취한 보육시설을 직접 방문하도록 한다. 보육시설을 방문해 따뜻하게 맞아주는지, 아이와 부모에게 보육시설에 대한 짧은 소개를 하는지, 보육료와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하는지를 눈여겨보도록 한다. 원장님과 면담 시에는 아이들의 생활지도는 어떻게 하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는지, 식단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차량은 운행하는지 등을 물어보도록 한다. 넷째, 참고할 만한 사람을 알아본다. 아이의 선생님을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각 시설의 보육교사에게 그 곳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님의 연락처를 최소한 두 군데 이상 부탁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다른 부모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다섯째, 수집한 정보를 다시 한번 검토하고 질문이 생기면 다시 연락을 해서 알아본 후 결정한다. 만약 보육시설에 오고자 하는 아이들이 많으면 입소대기자 명단에 아이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둔다. ●보육료, 얼마나 내나 어렵게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매달 시설에 내야 하는 보육료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서울시의 보육료 수납한도액은 연령별, 시설유형별로 산정돼 있다.3세 이상 아동의 경우 국고보조시설 15만 3000원, 민간보육시설 19만 8000원, 가정보육시설은 22만 5000원으로 상한선이 정해져 있으며 보육시설의 시설장은 수납한도액 범위 내에서 부모와의 협의하에 수납액을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신고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부모가 기대하는 양질의 보육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수준의 보육료 산정방식과 보육료 자율화에 대한 논의 등 보육료를 둘러싼 논쟁이 최근 계속되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는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차등보육료 지원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보육료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저소득층 가구에 대한 보육료 지원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60% 이하인 가정의 아동에 대해 부모의 소득에 따라 연령별 정부지원단가를 기준으로 100%,80%,60%,30%로 차등 지원하고 부모는 그 차액을 납부하도록 한다. 이외에도 도시근로자가구의 평균소득 이하인 가정에서 두 자녀 이상을 보육시설에 보내는 경우 보육료의 일정부분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즉, 연령별로 각각 20%에 해당하는 보육료를 지원받고 나머지 차액만을 시설에 납부한다. 또한 도시근로자가구 평균소득 80%수준 이하인 가정의 만 5세아가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경우 정부지원단가인 15만 3000원을 100% 지원받는다. 장애아의 경우는 부모의 소득이나 장애의 정도와 관계없이 정부지원단가를 100% 지원받을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서울시에서는 서울시민의 셋째 이후 자녀(2002년 3월1일 이후 출생자)의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고 있다. ●보육, 누구와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보육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서핑하던 K씨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시보육정보센터 홈페이지(http://children.seoul.go.kr/)를 발견했다. 원하는 지역 내에서 원하는 유형의 보육시설을 찾아주는 맞춤형 보육시설 검색서비스인 인포맵(Info-Map)서비스를 발견하고 가까운 곳의 영아전담시설을 찾아 먼저 살펴보고 몇 개 시설의 전화번호를 메모해두었다. 서울시보육정보센터는 서울시의 보육시설을 지원하고 부모들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교육과 상담, 보육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보육정보센터에서 운영하는 녹색장난감도서관은 아동발달에 적합한 장난감 및 교재교구를 각 가정에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다. 또한 놀이프로그램과 함께 실시하는 부모모임과 부모상담을 통해 자녀양육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가족상담을 통한 부모역할을 지원하고 있다. 많은 젊은 부모들이 아이를 양육하면서 정확한 정보, 전문적인 정보의 부재로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우 보육정보센터의 부모상담은 매우 유용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 2005년 현재 서울시에는 서울시보육정보센터와 관악구보육정보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 성동구보육정보센터가 문을 열었다. 온라인을 통한 정보제공뿐 아니라 지역사회차원의 육아지원으로 그 기능을 확대해가는 보육정보센터는 부모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설치돼 이용할 수 있게 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퓰요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모들은 영유아의 교육이나 학습에 대한 관심은 지나친 반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연령별 교사 대 아동 비율은 얼마인지, 아동 1인당 어느 정도의 공간을 확보해야 하는지, 어린이집에서 부모와 아동의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모의 참여와 관심은 보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2004년 개정된 영유아보육법은 개별 보육시설 내에 부모와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운영위원회의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성부가 발표한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어린이집 중 운영위원회를 설치하고 있는 경우는 16.4%에 불과하다.‘향후 설치하겠다.’는 의사 또한 35.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믿을 수 있는 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순간 부모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부터 부모에게는 시설의 보육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역할과 책임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은 정부와 지역사회 그리고 부모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다시 한번 기억해두자. 김선자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부 부연구위원
  • 마포구민 효행상 수상 임헌순 주부

    마포구민 효행상 수상 임헌순 주부

    시아버지(97세), 시어머니(89세), 친정어머니(85세) 등 3명의 노인을 모시고 17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한 여인이 효행상을 받아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난해 마포구 구민상 효행부문에서 효행상을 받은 임헌순(51)씨가 그 주인공이다. 친정아버지마저 살아계셨다면 임씨는 시댁과 친정의 부모를 모두 모시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 마포에서 30여년째 살고 있는 마포 토박이 임씨의 가족은 부모님 세 분과 남편, 그리고 혼기가 찬 딸 둘을 합해서 모두 7명이다. 게다가 임씨는 7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돌봐왔고 지난해부터는 신장에 이상이 생겨 중환자실에 입원한 시아버지의 병수발도 마다하지 않는다. 임씨는 “나라고 왜 어렵지 않았겠어요. 부모님 모시며 속상한 일도 많지만 이젠 이분들 덕택에 제가 복받고 살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활짝 웃는다. 임씨가 부모님을 모두 모시고 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친정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충남 조치원이 고향인 임씨는 복잡한 가족 관계를 차마 다 말하진 못했다. 다만 임씨가 태어났을 때 친정아버지는 62세였다고 했다. 친정집이 워낙 가난했던 터라 임씨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14살 되던 해에 서울에 올라와 지금의 남편을 만난 21살 때까지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고 한다. 식모살이를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워 남앞에서 10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임씨는 불광동의 한 부잣집에서 생활했던 17살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오신 아버지에게 임씨는 주인 몰래 돼지고기를 넣어 된장찌개를 대접했다. 아버지는 “딸 덕에 고깃국을 맛본다.”며 너무나 좋아하셨다고 한다. 임씨의 아버지는 임씨가 25살 되던 해,8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임씨는 마포에서 양고기 전문점을 경영하고 있다. 임씨는 “이제야 아버지께 실컷 고기를 드시게 할 수 있는데 아버지는 안 계신다.”며 눈물을 훔쳤다. 젊은 시절 아버지에게 효도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다. 결국 임씨는 결혼 뒤 서울에 정착하면서 조치원에 있는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를 서울로 모셔왔다. 친정어머니는 임씨와 한집에, 시부모님은 걸어서 3분 거리에 집을 얻어드렸다. 시부모와 친정어머니를 함께 모시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부터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7년 전부터 기억력이 감퇴하기 시작한 시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물건을 보따리를 싸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춰뒀다. 그렇게 감춰둔 물건을 임씨 친정어머니가 훔쳐 갔다며 억지를 부렸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불렀고 이러한 일들은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다. 임씨는 최근 시어머니를 치매 전문기관에 모셨다. 임씨는 “시부모님 병원비 대기도 만만치 않지만 시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 수 있어 현재 경영하는 양고기 전문점도 흑자를 내고 있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임씨가 말하는 효도는 거창하지 않다. 부모에게 부모 대접을 해주는 것이다.“부모를 존경하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효도”라는 임씨는 “나이가 든 부모일수록 오히려 내 자식을 챙기듯 세심하고 아기자기하게 사랑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미스도 여대생도 거짓말

    미스도 여대생도 거짓말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 가서 살고 싶어요』-「미스·코리어」진(眞)을 자퇴한 김지연양은 이마를 짚었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녀의 경우는 가인박복(佳人薄福)이라고나 할까. 거국적인 미녀뽑기에서 아무튼 제1위를 차지한 여자다. 진을 자퇴하고 주최자로부터 자격을 박탈당한 이유가 응모자격에서 결격사유가 있다는 것이지, 그 자태나 용모에 있어서 모자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 본명 김정혜(金正惠), 마감 이틀 전 미장원 마담 권유로 응모 세상을 놀라게 하고 이러쿵 저러쿵 풍문이 시끄럽게 나돈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요즘 자택(서울특별시 갈월동)에서 바깥 출입을 일절 금하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방 한구석에 박혀 산다. 일이 모두 수습이 되고 잠잠해질 때까지 얼굴을 내놓기가 싫은 심정이다. 자퇴한「미스·코리어」김지연양의 본명은 김정혜. 1949년 6월 30일 생이니까 만 20세.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287의 1. 평소 자주 드나들던「센추리」미용실「마담」의 권유로「미스·코리어」서울 예선에 응모한 것이 대회 이틀 전인 4월 25일. 응모자「프로필」난에 소개된 金양은 - . 『 … 현재 숙대(淑大) 가정과에 재학 중인 金양은 서울 태생으로 올해 나이 20세 … . 결혼문제엔「아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면서 엉뚱하게도「40세가 되면 생각해 보겠다」고. 신장 166, 무게 51, 36-23-36』으로 되어 있다. 4월 27일 상오 10시 대한체육회관에서 열린 서울예선대회에서 金양은「미스·서울」9명 중에 뽑혔다. 전국 결선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은 것이다. 운명의 5월 1일 밤 9시 35분. 장충체육관에서 1만여 관중들의 갈채를 받으며「미스·코리어」진으로 선발되는 순간 金양은 정신이 아찔했다. 당선의 감격은 벅찼는데 그날부터 소문나기 시작 『뜻밖의 영광에 뭐라 할 말을 잊었다』며 감격에 벅차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감격은 잠깐, 다음날부터『「미스·코리어」진은「미스」가 아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입이 빠른 미용실, 양장점 사이로 소문은 삽시간에 확산. 이렇게 되자 金양은 5월 7일자로「미스·코리어」진 사퇴서를 냈다. 심사위원회의 재심이 있고 5월 9일자로 주최측 지상을 통해『1969년「미스·코리어」진으로 당선된 김지연양은 본 대회 선발규정에 의하여 그 자격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으며, 이에 따라 본인이 자퇴하였으므로 당선을 취소합니다』로 정식 발표되었다. 金양은 감격 9일만에「미스·코리어」의 왕관을 되돌려 주어야 했던 것이다. 취소되자 숙대선 “그런 학생 없다” 공한(公翰) 이렇게 되자 金양의 출신교로 알려진 풍문(豊文)여고와 숙대측에서도 해명공한을 냈다. 金양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다닌 사실이 없다는 것. 먼저 숙대측이 재학한 사실이 없음을 10일자 공한으로 각 신문사에 밝혔다. 다음은 숙대측 공한 전문. 『1969년「미스·코리어」당선자에 대하여 금년「미스·코리어」진으로 당선되었다가 그 자격이 취소된 김지연양에 대하여 그가 자칭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이라고 보도된 바 있으나 본 대학교에서는 그의 학적을 둔 사실이 전혀 없사옵기 이에 알려드리오니 보도에 정확을 기하는데 협조하여 주시기 바라며 선에서 진으로 당선된 임현정양은 본명이 임희선으로서 본 대학교 영문과 3학년에 재학 중임을 확인하는 바입니다. 1969년 5월 9일. 숙명여자대학교 학생처장』 당사자인 金양과 그 가족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 역시 공한 낸 풍문여고엔 고3까지 다닌 것은 사실 그러자 이번엔 金양이 다녔던 풍문여고측에서도 공한을 띄웠다. 다음은 공한 전문 - . 『「미스·코리어」진 김지연의 학력사항 정정의 일 - 금번「미스·코리어」진에 당선되었다 취소된 김지연이 본교 졸업생인양 보도된 바 있으나 본교 졸업한 사실이 없음을 통보하오니 학력사항을 정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69년 5월 10일. 풍문여자고등학교장』 알고 보면 金양이 풍문여고를 다닌 것은 사실. 그러다 고3 되던 해인 67년 5월 가발을 쓰고 어떤 군인과 극장에 갔다가 여선생에게 적발되어 자퇴형식으로 제적을 당한 것이다. 한편 金양은 여고시절부터 사귀어오던 김태문(23·무직)씨와 그 해(67년) 10월 31일 서울 동원예식장에서 화촉을 밝혔다. 金양이 정식으로 김태문씨의 호적에 결혼신고 된 것은 그 이듬해인 68년 10월 28일자. 이런 金양은 왜「미스·코리어」선발대회에 출전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9일만의 여왕」金양이 밝히는 그 전모는 다음과 같다. 요정 나간다는 건 뜬소문, 그 집 마담과 친한 사이뿐 - 추천자인「센추리」미용원의 유숙자「마담」과 알게 된 것은? 『제가 그곳을 단골로 다녔거든요. 「미스·코리어」이야기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그 집에 다니고 있었어요』 - 소문으로는 거의 매일 다녔다는데 그럴 필요가 있었나요? 『1주일에 한 번 아니면 두 번이었어요. 매일 나갈 돈도 없었구요』 - 듣기로는「바」에도 나갔다느니 혹은 한남동에 있는 간판 없는 고급요정에 나갔다는 말도 있는데.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취소가 되니깐 별의별 말이 다 나오는 거예요. 그 집「마담」과 개인적으로 친해서 잘 어울려 다녔어요. 그 소문이 난 것이겠죠. 저의 집은 그런 장소에 안 나가도 괜찮을 만큼은 삽니다. 무슨 필요가 있어서 술을 따르러 나가겠어요?』 그녀의 조부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있는 일간신문 C일보의 초대편집국장을 지냈다. 아버지 金씨는 현주소에 대지 280평의 4층짜리「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땅값이 평당 10만원은 되는 곳. 그 부동산 값만 해도 2천 8백만원은 된다. 딸에게 충분한 용돈은 안 주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궁색하게 딸의 벌이로 살아나가야 하는 그런 가정은 아니다. -「콘테스트」에 나가는 것을 부모님들이 알고 있었어요? 『전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예선에 당선된 뒤 신문을 보고 부모님이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최자측은 제가 고아가 아닌가라고 몇 번이나 묻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결승날에 겨우 2백원짜리 표를 사서 입장했습니다』 막상 진으로 뽑히고 보니 미녀를 낳은 모정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취소가 되었을 때의「쇼크」와 집안 체면 걱정이 컸을 것이다. 金양의 어머니는 지병인 고혈압이 도져 요즘 매일 병원에 다니고 있다. - 이미 기혼자이고 숙대에도 다니지 않았는데 어떻게「미스」로 둔갑하고 숙대 재학 중이라고 학력을 속였습니까? (응모요령 중의 자격규정에는「1951년 7월 1일 이전에 출생한 미혼여성」으로 되어 있다) 『처음부터 저는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서울 예선이 박두해서 미용원측에서 자꾸 나가라고 부채질 했어요. 저는 숙대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콘테스트」가 있기 훨씬 전에 미용원에서 직업이 뭐냐고 묻기에 어물어물 숙대에 다닌다고 했구요, 여자가 또 자기가 기혼여성이라고 미용원에서 밝힐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딱 잘라 말하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었어요. 「마담」이 다 적당하게 적어 넣으면 된다기에 맡겨버렸죠』 - 학교관계는 결격이유가 안되겠지만 호적에 버젓이 기혼녀로 되어 있는 것을 몰랐나요? 『호적에까지 그렇게 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결혼을 한 일은 있었죠. 그렇지만 입적은 하지 않았고 사실상 별거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법률적으로는 미혼일 줄로만 알고 있었어요』 -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저는 67년 10월 31일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4개월 뒤에는 친정으로 돌아왔어요. 그 이후 계속 별거 중입니다. 그리고 저와 김태문씨와는 이혼하기로 서로 서약서까지 쓴 것이 있어요』 그 서약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다. 『1968년 10월 21일 이후에 본인 김태문은 김정혜와 해어질 것을 약속함. 21일까지 김정혜는 김태문과 같이 있어야 됨. 만약 이 약속을 이행치 않을 시는 모든 것이 무효임. 헤어지지 않을 시는 내 목숨을 끊음. 1968년 10월 18일. 본인 김태문(지장), 김정혜(지장)』 이러한 서약서를 교환한 뒤 10월 28일에 남자쪽이 멋대로 입적시켰다는 것이며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냈다는 것이다. - 학력관계는 어떻든 결혼문제에서는 법률적으로「미스」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군요. 『네, 그런데 제가 호적상 기혼자로 되어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 호적을 펴 보니 정말 그렇게 되어 있어요.』 -「미스·코리어」로 당선되면 외국에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다는 소문인데. 『별의별 소문이 다 나죠. 세상사람들 마음대로 지껄이는 것이겠죠. 그렇지만 지금 심경은 외국에 나가고 싶습니다』 - 진으로 뽑혔다는 자부 같은 것은 있겠죠? 『네, 거기 나온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제가 진으로 뽑혀 이렇게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어요』 - 세상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과 배운 점이 있다면? 『저를 뽑아주신 주최자에게 감사드리고 싶구요. 그 다음에는 어린 제가 앞으로는 만사 행동을 신중히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찮은 저로 인해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점을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 시아버지는 “며느리 잘못 둔 덕에 기막혀” ◇ 김태문씨 아버지의 말 창피해서 더 말하고 싶지 않다. 며느리 한번 잘못 둔 덕택에 얼굴도 제대로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둘이 서로 알기는 우리애(태문)가「카투사」로 미8군에 근무할 때부터다. 둘이 좋다는데 부모가 어쩔 도리가 있는가? 정혜가 학교를 그만두던 해인 67년 가을에 서울 동원예식장에서 식을 올려주었다. 혼인을 끝내곤「벌리」에 있는 우리 집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그 이듬해(68년 2월) 둘이 따로 나가서 살아보겠다기에 다 큰 애들을 굳이 시부모 밑에 잡아둘 생각도 없었기에 살림을 내보냈다. 처음 저희들 말로는 신촌 어디다 전세방을 얻는다기에 그런 줄만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정집에 가서 같이 산 모양이다. 「미스·코리어」로 뽑힌 다음 친정집 두 처남이 찾아와『제발 이혼을 해주어야 이번 일이 무사해진다』면서 이혼하자기에 너무 어이없는 일이 되어서 돌려보냈다. 그 다음날은 어떤 회사에서 찾아와 또 그런 이야길 하길래『며느리한테 속은 것도 괘씸한데 당신네 사업을 위해 이혼하라니 무슨 소리냐?』고 호통을 쳤다. 호적만 해도 그렇지 양가 부모가 다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까지 올려놓고서 시집에서 결혼신고한 게 뭐가 잘못이냐? 오히려 결혼식 직후에 호적에 안올린 것이 차라리 글렀지, 안그래요? 사람이 결혼하고 이혼하고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니 서로 마음잡고 잘 살기를 빌 뿐이다. 지금 우리 아들은 자살하기 직전의 상태이니 그 애를 만나야 더 충격을 줄 뿐이다. 제발 애비로서의 부탁이니 우리 아들을 만나는 것만은 그만둬 주시오. [ 선데이서울 69년 5/18 제2권 20호 통권 제3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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