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시베리아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 분향소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 김주영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 북한 청년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 야외활동
    2026-01-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464
  • [언론인 김호준이 본 유라시아의 들꽃, 고려인의 파노라마] (상) 대륙 개척의 전위

    [언론인 김호준이 본 유라시아의 들꽃, 고려인의 파노라마] (상) 대륙 개척의 전위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8월 ‘유라시아 친선특급열차’가 아시아·유럽 두 대륙을 달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2년 전 발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따라 미리 가 보는 길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횡단 철도를 거쳐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장장 1만 4400㎞의 대장정이었다. 150년 전부터 우리 동포들은 그 길을 따라 디아스포라의 수난을 겪으면서도 근면과 교육열로 다시 일어섰다. 대륙 곳곳에 똬리를 튼 우리 동포들의 어제와 오늘을 ‘유라시아고려인 150년’의 저자이자 이 특급열차에 동승했던 언론인인 김호준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의 집필로 3회에 걸쳐 조명해 본다. 고려인은 구소련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려인이란 호칭은 한민족의장혈통을 지니고 있지만 남한의 한국인도, 북한의 조선인도 아니라는 함의가 크다. 과거엔 주로 ‘조선인’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냉전 종식 후 자신들의 호칭을 ‘고려인’으로 통일시켰다. 양분된 조국과 관련해 그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호칭이다. 고려인은 우리 민족사에서 ‘북상(北上)개척’을 선도한, 대륙 진출의 선구자다. 고구려·발해 멸망 이후 비좁은 한반도에 갇혀 살던 한민족의 지평을 저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으로 넓힌 주역이 바로 고려인이다.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는 제국주의 시대인 1863년에 시작되었다. 그때 기근과 봉건적 탐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의 콜럼버스’ 최운보 양응범이 이끈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두만강 너머 연해주로 이주해 정착했다. 1902년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태평양을 건넌 하와이 이민보다 39년이나 앞선, 우리 근현대사 최초의 국외 진출이다. 구한말 연해주고려인 사회는 만주, 용정과 함께 항일 구국투쟁을 선도한 해외기지였다. 조선 강점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한 곳이, 1919년 3·1운동 후 최초로 임시정부를 세운 곳이 연해주다. 고려인들은 연해주에서 70여년간 민족공동체를 운영하며 블라디보스토크를 주도(州都)로 하는 고려공화국 건립 운동을 벌였다. 비록 소련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이 운동 역시 역외 건국운동의 효시다. 1937년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는 해외 한인이 겪은 시련 가운데 가장 큰 아픔이다. 강제 이주에 앞서 스탈린은 고려인의 저항을 막기 위해 지도층 2500명을 무더기로 체포, 일본 간첩이란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 적성(敵性)민족으로 몰린 고려인 18만명은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내던져졌다. 그때 처형, 기아, 질병 등으로 희생된 고려인은 총 1만 6500여명에 달했고 그들이 원동에서 살던 606개 촌락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이런 참담한 역경 속에서도 중앙아시아고려벌들은 근면을 바탕으로 농업의 성공 신화를 쓰며 소련 제1의 소수민족으로 우뚝 섰다. 당시 소련이 세계에 자랑한 모범농장 폴리트오트젤과 김병화 농장 등은 모두 고려인이 운영한 집단농장이었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탄생한 15개 민족공화국의 소수민족 차별은 고려인의 이동을 촉발했다. 이슬람 문화권인 중앙아시아에 살던 고려인 10만 명이 슬라브 문화권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 그 결과 최대 20여만명을 헤아리던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수는 13만명 수준으로 격감했다. 내전이 터진 타지키스탄에선 고려인 사회가 무너져, 한때 1만 3000명에 달했던 인구가 이젠 60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현재 고려인 최다 거주국인 러시아의 고려인 인구는 공식통계상 15만명이다. 무국적자와 불법체류자를 포함하면 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카자흐스탄에 10만 3000명, 키르기스스탄에 1만 7000명, 우크라이나에 1만 2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총 48만명에 달하는 고려인은 유라시아 대륙의 대표적인 분산민족이다. 고려인은 대륙의 어디든 없는 곳이 없다지만 그렇다고 민족자치를 거론할 만큼 다수파로 밀집해 사는 곳도 없다. 광활한 대륙에 마치 하늘의 별처럼 점점이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이 고려인이다. 고려인들은 19세기 말 이래 시베리아철도를 따라 서진(西進)을 계속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꾸준히 넓혀 왔다. 최근에는 러시아 남부와 볼가 강 유역으로 뻗어나가 그곳에 새로운 고려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모스크바 등 대도시 지역의 고려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사안이다. 이렇게 우리 동포의 생활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려인들은 기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국 해방을 위해, 또 탄압과 차별 때문에 유랑을 계속했지만 그것만이 동인(動因)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려인에겐 일찍부터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진취성, 모험성, 개방성 등이 있었다. 그것이 고려인들로 하여금 광활한 유라시아를 떠돌며 한민족의 영역을 넓혀 나간 저력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 세계서 가장 오래된 목조상…피라미드보다 5000년 더 앞서

    세계서 가장 오래된 목조상…피라미드보다 5000년 더 앞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상인 ‘시기르 우상’(Shigir idol)이 당초 예상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기르 우상은 125년 전인 1890년, 러시아 시베리아의 한 늪에서 모습을 드러낸 목각상이다. 길이는 5.3m에 달하며 가장 상단에는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 한 조각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 목각상의 나이를 9500년 정도로 추정했고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상’이라는 수식어로 불러왔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 북부 스베르들롭스크 지역 자연사 박물관 측은 독일 민하임의 연구소화 합작으로 한 연구를 통해 이 시기르 우상의 역사가 기존 추측의 9500년에서 1500년이나 더 이른 1만 1000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시기르 우상의 역사는 세계의 주요 유물‧유적에 비해 상당히 길다. 예컨대 영국 스톤헨지에서 가장 오래된 돌 조각은 4614년 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50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시기르 우상은 인류의 미스터리이자 오래된 역사 중 하나인 피라미드보다 2배 이상 더 긴 것이다. 스베르들롭스크 지역 자연사 박물관 측은 시베리안타임즈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기인 탄소연대측정 기기(Accelerated Mass Spectrometry)를 이용해 시기르 우상의 숨겨졌던 나이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면서 “이번 연구에는 목조상의 작은 조각 7개가 이용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이는 신생대 제4기 후반부 지질지대인 ‘홀로세’에 제작된 것이라고 추정된다”면서 “돌 도구를 이용해 신선한 나무를 잘라 만든 것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시기르 우상이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형태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처음 발견된 늪 덕분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늪이 일종의 자연보호막 역할을 하면서 자연에 의한 훼손을 막아준 것. 한편 시기르 우상의 표면에는 불가사의한 코드가 새겨져 있으며, 현지 과학자들은 여전히 이 코드를 해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와우! 과학] 1만1000년전 인류의 ‘생김새’ 담은 목조상

    [와우! 과학] 1만1000년전 인류의 ‘생김새’ 담은 목조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상인 ‘시기르 우상’(Shigir idol)이 당초 예상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기르 우상은 125년 전인 1890년, 러시아 시베리아의 한 늪에서 모습을 드러낸 목각상이다. 길이는 5.3m에 달하며 가장 상단에는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 한 조각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 목각상의 나이를 9500년 정도로 추정했고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상’이라는 수식어로 불러왔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 북부 스베르들롭스크 지역 자연사 박물관 측은 독일 민하임의 연구소화 합작으로 한 연구를 통해 이 시기르 우상의 역사가 기존 추측의 9500년에서 1500년이나 더 이른 1만 1000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시기르 우상의 역사는 세계의 주요 유물‧유적에 비해 상당히 길다. 예컨대 영국 스톤헨지에서 가장 오래된 돌 조각은 4614년 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50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시기르 우상은 인류의 미스터리이자 오래된 역사 중 하나인 피라미드보다 2배 이상 더 긴 것이다. 스베르들롭스크 지역 자연사 박물관 측은 시베리안타임즈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기기인 탄소연대측정 기기(Accelerated Mass Spectrometry)를 이용해 시기르 우상의 숨겨졌던 나이를 알아내는데 성공했다”면서 “이번 연구에는 목조상의 작은 조각 7개가 이용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이는 신생대 제4기 후반부 지질지대인 ‘홀로세’에 제작된 것이라고 추정된다”면서 “돌 도구를 이용해 신선한 나무를 잘라 만든 것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시기르 우상이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형태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처음 발견된 늪 덕분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늪이 일종의 자연보호막 역할을 하면서 자연에 의한 훼손을 막아준 것. 한편 시기르 우상의 표면에는 불가사의한 코드가 새겨져 있으며, 현지 과학자들은 여전히 이 코드를 해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조선인 억류자 1만명선… 관련 자료 없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베리아에 강제로 억류됐던 일본군 포로의 귀환 자료가 빠르면 오는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부는 조선 출신 일본군 포로와 관련된 정확한 통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일본 정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일본군에 복무한 조선인 총수는 20만 9279명으로 이 중 육군 징병이 16만 6257명, 육군특별지원병 1만 6830명, 학도지원병 3893명, 해군 2만 2299명이다. 패전 당시 70만명 규모였던 관동군 중 60만명가량이 소련에 포로로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동군에 배치된 조선인은 대략 1만 8500명으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 정부가 옛 소련 내무성 포로억류자문제총국(GUPVI)을 통해 파악한 1945년 당시 억류자 중 조선인은 1만 206명으로 정부는 이 중 3000여명의 조선인 명부를 확보한 상황이다. 당시 포로 중 10%가량이 사망했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조선인 포로는 1000명 정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경우 러시아가 제공한 사망자 명부에 4만 6000명이 등재돼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현재도 유골 봉환을 위한 외교 노력을 계속하는 한편 이들에 대해 지속적인 지원과 보상을 해 왔다. 실제로 일본은 1988년 ‘평화기념사업특별기금 등에 관한 법’을 제정해 시베리아 포로 출신 일본군에게 위로금을 지급했다. 또 2010년 6월에는 ‘전후강제억류자특별조치법’을 만들어 25만~150만엔까지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한국을 포함한 외국인에게 위로금 지급을 거절했다. 외교부도 이 때문에 관련 법에 있는 국적조항 철폐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정부가 조선인 출신 일본군 포로 문제를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록물을 신속하게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정부는 억류 포로의 규모 및 사망 실태 등에 대해 이렇다 할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자료 분석이 이뤄져야만 포로 억류 당시 발생한 노임 잔액 문제나 사망자 유해 봉환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2013년 6월 이들 포로 유족이 제기한 민원에 대해 지원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지난해 10월 강제 노역에 따른 노임 잔액 평균 4400루블에 대해서는 제네바협약 불소급의 원칙에 따라 지불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남북한이 이 문제를 함께 풀어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인 강제징용자 중 한반도 북부 출신이 30%인 점을 감안하면 조선인 출신 일본군 포로 가운데 북한 출신은 3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19일 “정부가 그동안 확보한 자료를 북한과 공유해 이 문제를 함께 조사하고 공동 대응하는 방안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단독] 日, 시베리아 포로 귀환 자료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 임박

    조선인 강제노역의 한이 서린 일본 근대산업시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데 이어 2차 세계대전 당시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군 포로의 귀환 자료가 조만간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당수의 조선인이 일본군 포로로 억류돼 시베리아에서 희생됐지만 정부는 확보한 자료조차 제대로 분석하지 않아 우리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유네스코 산하 세계기록유산국제자문위원회(IAC)는 오는 10월 4~6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서 제12차 IAC를 열어 일본군 시베리아 포로의 귀환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한 본격 심사에 착수한다. 시베리아 포로란 일본의 2차 대전 패전 이후 소련에 의해 무장해제된 채 시베리아 등에 격리 이송돼 강제노역을 당했던 46만여명의 일본군 포로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1947~56년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이 조사한 사망자 명부에는 이들 중 4만 60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지난해 3월 일본군 포로의 시베리아 억류 체험기와 귀환 승선자 명부 등 약 570점에 대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려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심사와 권고를 거쳐 정부 간 위원회인 세계유산위원회(WHC)의 표결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세계기록유산의 경우 IAC의 검토를 거쳐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승인만으로 등재가 이뤄지기 때문에 강제 징용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옛 소련 내무성 포로억류자문제총국(GUPVI)을 통해 1945년 당시 조선 출신 일본군 억류자가 1만 206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 중 시베리아 각 지역에 설치된 포로수용소에 수감됐던 3000여명의 억류자 명부를 확보했지만 사망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조선인 피해자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일본이 러시아와 유해 봉환 협의를 진행 중인 만큼 우리도 러시아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협의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조선인 전우’ 위해 법정에 선 日 노병

    ‘조선인 전우’ 위해 법정에 선 日 노병

    일본 양심의 탄생/오구마 에이지 지음/김범수 옮김/동아시아/358쪽/1만 6000원 일본 게이오대 교수이자 역사사회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아버지의 일생을 조명해 일본의 지난 20세기를 그려낸 책이다. 책의 주인공은 오구마 겐지다. 올해 90세인 겐지에겐 특이한 이력이 있다. 조선인으로 전 ‘일본군’이었던 전우 오웅근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었다는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1945년 겐지는 스무 살의 나이로 일본군에 입대하자마자 소련군의 포로가 됐고, 3년간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된다. 수용소엔 그와 같은 ‘일본군’ 조선인도 있었다. 재중동포 오웅근이다. 만주 출신의 조선인이었던 그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고,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무기를 지급받지 못한 상태에서 전투에 참가했다가 붙잡혀 겐지가 있던 수용소로 오게 된다. 이후 중국으로 귀환한 오웅근은 의사가 되었지만, 중국 문화혁명의 혼란 속에서 ‘일본군 출신’이란 이유로 박해를 받는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나, 일본 정부는 ‘일본인 국적자’들에게 ‘위로금’ 형식으로 전쟁피해를 ‘위로’하는 애매한 보상 사업을 벌였다. 당연히 중국 국적자였던 오웅근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강제 징집 당시 오웅근은 ‘일본 국적자’였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1910년 경술국치일 이후 일방적으로 일본 국적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패전 이후 1952년 연합군 점령이 끝나자 일본은 일방적으로 조선, 대만 등 일본 호적 이외의 사람에 대한 일본 국적을 박탈했다. 국적선택권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인으로 징집됐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 국적을 상실해 연금이나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오웅근과 겐지는 1996년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 ‘당연히’ 패소했다. 손해는 “국민이 다 같이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피해”이기 때문에 보상할 수 없고, 공식 사죄는 “입법부의 재량”이라는 것이었다. 예상된 결말에 오웅근은 격분했지만 겐지는 시도 자체가 법원에 근거로 남으니 나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이들의 변호사도 국가(일본)에는 양심이 없어도 국가를 대신해 양심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고 평했다. 저자는 이처럼 아버지에게서 전쟁 전의 기억과 전쟁 중 시베리아 수용소에서의 기억, 그리고 전후의 기억을 끄집어내 샅샅이 추적했다. 그리고 사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아버지의 인생사를 각 시대의 사회적 맥락에 대입시켰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털매머드 멸종 이유는 고대 인류의 사냥 때문”

    “털매머드 멸종 이유는 고대 인류의 사냥 때문”

    한 때 유럽에서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에 살았던 전설의 동물이 있다. 바로 긴 털과 거대한 엄니를 자랑하는 털매머드다. 시베리아에서는 약 1만 년 전, 북극해의 한 섬에서는 약 3,700년 전 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매머드는 그러나 어느순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멸종동물에 이름을 올렸다. 그간 학계에서는 매머드의 멸종 이유를 놓고 다양한 이론이 발표됐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학설은 당시 인류가 매머드를 사냥해 ‘씨’가 말랐다는 것.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운석 충돌의 영향으로 매머드가 멸종했다는 이론이 학계에서 힘을 얻어왔다. 이 가설을 세운 대표적인 학자가 캘리포니아 대학 제임스 케네트 교수. 그는 혜성 충돌의 영향으로 지구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매머드를 비롯한 거대 동물 멸종, 인류 문명이 소멸됐다는 이른바 ‘영거 드라이아스기 충돌 이론’(Younger Dryas impact theory)을 펼쳐왔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알렉산더 심스 교수 역시 약 1만 2900년 전 북미에 거대한 혜성 파편이 떨어져 매머드, 세이버투스(검치호·윗니 두 개가 휘어진 칼처럼 생긴 호랑이)등이 멸종된 것으로 보인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에는 다른 각도의 연구방법으로 매머드 멸종 이유를 분석한 흥미로운 논문이 나왔다. 최근 영국 엑시터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은 매머드의 멸종 이유를 밝히기 위해 통계 분석을 이용했다. 그 결과 고대 인류가 각 대륙과 섬으로 퍼져나가는 것과 맞물려 그 지역에 사는 매머드가 급격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곧 고대 인류가 매머드를 식량으로 사냥해 씨가 말랐다는 이론의 강력한 증거가 된다. 연구를 이끈 엑시터 대학 루이스 바렛 박사는 "마치 50년 논쟁에 못 질을 한 기분" 이라면서 "인류가 매머드 멸종의 주요한 원인이며 기후 변화 등은 이를 악화시킨 요인으로 보인다" 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인류가 매머드 등과 서식지를 공유하며 평화롭게 살았다는 일각의 주장은 그야말로 신화" 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광복70주년] 안중근 작사작곡 ‘옥중가’ 첫 공개

    “만주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교대 잠이 편안하여 누가 자며 콩둔 밥이 맛이 있어 누가 먹겠나. 때려라 부숴라 왜놈들 죽여라.”(옥중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뤼순 감옥에 갇힌 안중근 의사가 이듬해 사형 집행을 당하기 전까지 직접 작사·작곡해 부르며 울분을 달랜 옥중가가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노동은 중앙대 명예교수는 13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가와 항일가, 혁명가 등 일제강점기에 나온 항일 노래를 모아 언론에 공개했다. 노 교수가 새로 발굴한 노래에는 안 의사의 옥중가 외에 민족시인 김여제가 지은 ‘흥사단 단가’, 상하이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에 발표된 ‘독립군가’ 등 100여곡이 포함됐다. 노 교수와 민족문제연구소는 동학혁명 시기부터 1945년 해방을 맞을 때까지의 노래를 연대별로 정리한 최초의 항일 노래집인 ‘항일음악 350곡’을 발간할 예정이다. 노 교수는 “민족을 지키고 독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부른 모든 음악은 ‘항일노래’라고 불러야 한다”며 “연구도, 소개도 거의 안 된 사회주의 진영의 노래를 정리한 것이 ‘항일음악 350곡’의 의의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광복70주년] 안중근 작사작곡 ‘옥중가’ 첫 공개

    “만주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교대 잠이 편안하여 누가 자며 콩둔 밥이 맛이 있어 누가 먹겠나. 때려라 부숴라 왜놈들 죽여라.”(옥중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뤼순 감옥에 갇힌 안중근 의사가 이듬해 사형 집행을 당하기 전까지 직접 작사·작곡해 부르며 울분을 달랜 옥중가가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노동은 중앙대 명예교수는 13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가와 항일가, 혁명가 등 일제강점기에 나온 항일 노래를 모아 언론에 공개했다. 노 교수가 새로 발굴한 노래에는 안 의사의 옥중가 외에 민족시인 김여제가 지은 ‘흥사단 단가’, 상하이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에 발표된 ‘독립군가’ 등 100여곡이 포함됐다. 노 교수와 민족문제연구소는 동학혁명 시기부터 1945년 해방을 맞을 때까지의 노래를 연대별로 정리한 최초의 항일 노래집인 ‘항일음악 350곡’을 발간할 예정이다. 노 교수는 “민족을 지키고 독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부른 모든 음악은 ‘항일노래’라고 불러야 한다”며 “연구도, 소개도 거의 안 된 사회주의 진영의 노래를 정리한 것이 ‘항일음악 350곡’의 의의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도살된 멸종위기종 시베리아 호랑이 포착

    도살된 멸종위기종 시베리아 호랑이 포착

    러시아에서 멸종위기종 시베리아 호랑이가 도살된 채로 발견됐다.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 영자신문 시베리안 타임즈는 최근 러시아 극동부 하바롭스크 지역에서 자전거 여행 중이던 여행객들에 새끼 시베리아 호랑이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고 전했다. 여행객들에 따르면, 발견 당시 호랑이는 총에 맞아 죽은 듯 보였으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은 듯 몸은 따뜻했다. 하지만 여행객들은 별다른 연락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고, 주변에 있을 어미 호랑이의 공격을 염려해 재빨리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날 여행객들은 다시 그 자리를 찾았지만, 새끼 호랑이의 사체는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당국은 3km 떨어진 곳에서 벌목 트럭을 목격했다는 여행객의 증언에 따라 벌목꾼들이 호랑이를 도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아무르 호랑이, 한국호랑이라고도 불리는 시베리아 호랑이는 러시아 동부와 중국 북동부, 한반도 북부 지역에 분포하며 현재 야생에는 약 450여 마리만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영상=РИА Восток-Медиа/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朴대통령 “경원선 철길은 통일로 가는 출발점”

    朴대통령 “경원선 철길은 통일로 가는 출발점”

    박근혜 대통령은 5일 “오늘 경원선을 다시 연결시키는 것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복원해 통일과 희망의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역에서 열린 ‘경원선 남측 구간 기공식’에서 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힌 뒤 “더 나아가 경원선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우리 경제의 재도약과 민족사의 대전환을 이루는 철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공식은 1914년 경원선이 부설된 지 101년, 1945년 남북 분단으로 단절된 지 70년 만이다. 서울과 원산을 잇는 223.7㎞의 경원선 철도 복원은 이날 남측 구간을 시작으로 본격화된다. 박 대통령은 “경원선이 복원되면 여수와 부산에서 출발한 우리 기차가 서울을 거쳐 철원과 원산, 나진과 하산을 지나 시베리아와 유럽을 연결하게 된다”면서 “정부는 긴 안목을 갖고 중국의 일대일로, 러시아의 신동방 정책, 미국의 신실크로드 구상과 우리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연계시키는 창의적인 협력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북한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면서 “북한은 우리의 진정성을 믿고 용기 있게 남북 화합의 길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또 “남북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희망의 통로를 열어나가면 DMZ(Demilitarized Zone)를 역사와 문화, 생명과 평화가 공존하는 세계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서 “비무장지대를 뜻하는 DMZ가 남북 주민은 물론 세계인의 ‘꿈이 이루어지는 지대’인 ‘Dream Making Zone’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기공식에 앞서 2012년 복원된 신탄리역~백마고지역 구간을 직접 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실향민과 탈북자, 유라시아 친선특급 참석자 등과 환담을 나눴다. 박 대통령은 백마고지역에 도착해 침목에 통일 염원을 담은 서명도 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특별기고] 통일의 길을 여는 경원선 복원/홍용표 통일부 장관

    [특별기고] 통일의 길을 여는 경원선 복원/홍용표 통일부 장관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관계라 할지라도 서로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거나 관계 개선을 위한 일을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어려울수록 관계 개선을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분단 70년, 광복 70년인 지금 남과 북의 주민들이 분단으로 겪고 있는 아픔을 하루속히 치유하기 위해 노력할 때다. 과거에는 하나의 민족으로 함께 살아왔지만, 지금은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없고, 고향이지만 멀리서 바라만 보아야 하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것이 분단의 현실이다. 70년간의 분단이 더이상 지속돼서는 안 되며, 분단 극복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 미래세대에게 분단의 아픔이 아닌, 통일이라는 축복된 삶의 터전을 물려주기 위해 실질적 통일 준비에 나서야 한다. 5일 첫 삽을 뜬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사업은 통일 준비를 위해 만남의 통로를 열어 가겠다는 의지를 실천한 것이다. 경원선은 예전부터 한반도의 동서를 가로지르며 사람과 물류를 수송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최단 거리로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는 철길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경원선 복원은 단순한 철길의 연결을 넘어 평화와 협력의 통로를 만든다는 것이며, 통일 한국의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 비록 우리가 먼저 남측 구간 경원선 복원을 시작하지만, 이것은 현재 상황에서 먼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이다. 앞으로 남북한이 평화롭게 지내기로 약속하고 철길과 함께 민생·문화·환경의 통로를 열어 사람과 물자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 오고 간다면, 한반도는 명실공히 하나의 생활 터전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나아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해 유라시아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가 복합 물류 네트워크로 연결돼 거대 시장이 만들어지고, 문화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북한이 아직 우리가 내민 협력의 손길을 잡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조하에 남과 북이 함께할 수 있는 분야부터 해 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먼저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해 북한의 망설임을 행동으로 변화시키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실천이 협력을, 협력의 반복이 신뢰를 가져올 수 있다. 이를 위해 서로 자주 만나 소통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으로 신뢰의 크기를 키워 나가야 한다. 두 개의 레일은 침목으로 연결돼야 튼튼한 철길이 된다. 통일 한국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기 위해 우리 정부와 국민이 마음을 모아 협력의 침목을 하나하나 깔아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전해져 북한이 손을 내밀 때, 그 손을 꼭 잡고 신뢰와 평화의 철길을 연결한다면 평화통일의 철마가 힘차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이러한 협력과 신뢰 형성의 길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마냥 멈춤의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용기 있는 북한의 모습을 기대한다.
  • 박대통령 “경원선 철길은 통일로 가는 출발점”

    박대통령 “경원선 철길은 통일로 가는 출발점”

    박근혜 대통령은 5일 “오늘 경원선을 다시 연결시키는 것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복원해 통일과 희망의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역에서 열린 ‘경원선 남측 구간 기공식’에서 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힌 뒤 “더 나아가 경원선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우리 경제의 재도약과 민족사의 대전환을 이루는 철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공식은 1914년 경원선이 부설된 지 101년, 1945년 남북 분단으로 단절된 지 70년 만이다. 서울과 원산을 잇는 223.7㎞의 경원선 철도 복원은 이날 남측 구간을 시작으로 본격화된다. 박 대통령은 “경원선이 복원되면 여수와 부산에서 출발한 우리 기차가 서울을 거쳐 철원과 원산, 나진과 하산을 지나 시베리아와 유럽을 연결하게 된다”면서 “정부는 긴 안목을 갖고 중국의 일대일로, 러시아의 신동방 정책, 미국의 신실크로드 구상과 우리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연계시키는 창의적인 협력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북한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면서 “북한은 우리의 진정성을 믿고 용기 있게 남북 화합의 길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또 “남북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새로운 희망의 통로를 열어나가면 DMZ(Demilitarized Zone)를 역사와 문화, 생명과 평화가 공존하는 세계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서 “비무장지대를 뜻하는 DMZ가 남북 주민은 물론 세계인의 ‘꿈이 이루어지는 지대’인 ‘Dream Making Zone’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기공식에 앞서 2012년 복원된 신탄리역~백마고지역 구간을 직접 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실향민과 탈북자, 유라시아 친선특급 참석자 등과 환담을 나눴다. 박 대통령은 백마고지역에 도착해 침목에 통일 염원을 담은 서명도 했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70년간 끊긴 경원선 기적소리 다시 들린다

    70년간 끊긴 경원선 기적소리 다시 들린다

    남북 분단으로 끊어진 경원선 철도가 70년 만에 남측 구간부터 복원된다. 정부는 5일 오전 11시 철원 백마고지역에서 경원선 남측구간 복원공사에 착수한다고 4일 밝혔다. 경원선은 1914년 8월 개통된 이래 용산∼원산 간 223.7㎞를 운행하며 물자수송 역할을 담당했으나 1945년 남북분단으로 단절됐고 6·25전쟁으로 남북 접경구간이 파괴됐다. ●백마고지~ 월정리역 1차 추진… 남은 구간은 北과 합의 정부는 2012년 11월 경원선 신탄리∼백마고지역(5.6㎞) 구간을 먼저 복원했다. 이번에는 1단계로 백마고지역∼군사분계선(11.7㎞) 복원공사를 확정하고 먼저 백마고지역∼월정리역(9.3㎞) 구간 공사에 착수한다. 다만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월정리역∼군사분계선(2.4㎞) 2단계 구간은 북한과 합의가 이뤄지고 나면 추진한다. 1·2단계 총건설사업비 1508억원은 전액 남북협력기금으로 지원된다. 경원선 북한 구간은 남북 협의가 이뤄지면 남측에서 자재와 장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복원하게 된다. 정부는 분단 70년을 맞아 통일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준비 차원에서 경원선 구간 복원을 추진했다. 경원선은 수도권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잇는 최단거리 노선이다. 과거 정부는 2003년 경의선, 2006년 동해선을 복구해 남북 철도망을 이었지만 현재 남북을 오가고 있지는 않다. ●경원선 운행 재개 땐 ‘유라시아 철도망 구축’ 기대 정부는 경원선이 남북 간 운행을 재개하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유라시아 철도망이 구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착공식에는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최문순 강원도지사, 미·중·일·러 등 외교사절과 실향민을 포함해 200여명이 참석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사설] 한반도를 달리는 유라시아 특급을 보고 싶다

    유라시아 대륙의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며 긴 여정을 달려온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어제 종착지인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200여명의 국내외 참가자들이 열차를 타고 16박 17일 동안 1만 4400㎞를 달렸지만 정작 피를 나눈 동족이 살고 있는 북한만은 통과하지 못했다. 국제사회의 일반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북한 당국이 남북 상생과 공동 번영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 같아 여간 안타깝지 않다. 이제 베를린에서 통일 기원 행진 등을 끝으로 친선특급 열차는 일단 멈췄다. 하지만 이번 행사가 통일 분위기를 고취하는 한낱 일과성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남북 간 합의를 전제로 남북종단철도(TKR)가 건설되고, 그것을 유라시아 대륙의 철도와 연결하는 원대한 비전과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분단과 함께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단절돼 ‘섬 아닌 섬’처럼 됐다.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을 잇는 천혜의 입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분단의 장벽에 막혀 발전 잠재력을 하릴없이 날려 보내 온 꼴이다. 비록 이번엔 북한을 제외하고 러시아와 몽골,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경유하는 데 그쳤지만 남북 화해와 통일의 당위성을 일깨우는 계기였다면 이번 대장정의 의미가 헛되지만은 않을 듯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짙은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친선특급 열차의 출발지가 부산이 아닌, 중국 베이징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였다는 대목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북한 당국만 통 크게 결단했다면 더 보기 좋은 그림이 가능했다는 차원에서다. 남북은 국민의 정부 때인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 철도 연결에 합의한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실크로드익스프레스’(SRX) 구상을 내놓았다. 부산에서 출발해 북한,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관통하는 철도 노선은 관련국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취지였다. 사실 러시아와 중국도 명시적으로, 혹은 내심 TKR과 시베리아횡단철도(TSR)나 중국횡단철도(TCR)와의 연결을 바라고 있다. 두 나라의 풍부한 자원과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결합하는 일은 그야말로 ‘플러스 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에도 진행 중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보다 더 큰 수익원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러시아 하산에서 북의 나진항까지는 철도로, 나진에서 부산항까지는 배로 러시아산 유연탄 등을 운송하고 있지만,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훨씬 큰 물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기왕 합의한 남북 철도 연결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더욱이 지난달 한국의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가입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찬성했지만 북한만 극력 반대해 무산됐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다. 한반도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점하는 유라시아 대륙과 환태평양 경제권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지역이다. 북한 당국은 TSR이나 TCR이 TKR과 연결돼 유라시아 특급 열차가 한반도를 통과할 때 큰 기회의 창이 열린다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 잃어버린 역사의 반쪽, 초원에서 찾다

    잃어버린 역사의 반쪽, 초원에서 찾다

    유라시아 역사기행/강인욱 지음/민음사/332쪽/1만 8000원 한국 고대사 관련 유적 중에는 그 계통을 알 수 없는 것들이 적지 않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신라의 적석목곽분(돌무지 덧널무덤)은 발굴 이후 100여년간 한국 고대사학계의 미스터리였다. 경주 지역 외에 한반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적석목곽분을 쏙 빼닮은 형태의 무덤은 놀랍게도 수천㎞ 떨어진 남부 시베리아 알타이 지역의 파지리크 고분군에서 발견된다. 그런가 하면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견된 황금 보검은 카자흐스탄 보로보예에서 발견된 것과 거의 같고, 화려한 세공기법을 자랑하는 신라 금관은 아프가니스탄 틸리아 테페에서 출토된 금관과 계통이 같다. 유라시아 맨 구석의 작은 나라 신라에서 이토록 많은 초원계 유물이 발견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라시아 역사기행’의 저자인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우리 고대사의 잃어버린 부분을 북방 초원 지역에서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러시아에서 북방 고고학을 전공한 저자는 유라시아 초원 각지에서 발굴되는 새로운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사의 한 축을 이룬 유목사회의 참모습을 살펴보고, 그동안 단편적으로 제시됐던 초원 문명과 한반도의 교류사를 보다 선명하게 그려 낸다. 유라시아 초원은 헝가리, 남부 러시아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거쳐 동쪽으로는 몽골에 이르는 거대한 초원 지역이다. 초원 문명은 기원전 3500년경 시작돼 스키타이를 거쳐 흉노 제국을 세웠고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으로 위세가 극에 달했다. 50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초원문명은 4대 문명의 북쪽에서 새로운 문물과 기술이 오가는 고속도로 역할을 하며 각 문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초원 민족에 대한 정착민들의 공포와 몰이해는 ‘야만’과 ‘미개’의 이미지로 탈바꿈했고 찬란했던 초원의 역사는 정착 문명의 의도된 침묵으로 지워졌다. 저자는 서문에서 “초원 지역 사람들은 독자적인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고 오랫동안 정착민과 대립했기 때문에 오랑캐나 야만의 대명사로 치부됐다. 그런 탓에 그들이 일군 세계사적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며 “초원문명이 기존의 주요 문명과 다른 패러다임에서 발생하고 또 발달했다는 점에서 4대 문명과는 다른 ‘제5의 문명’이라고 하고 싶다”고 밝힌다. 저자는 북방 초원의 역사와 문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와 초원문명의 교류를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 낸다. 말이 세 가지 마구(재갈, 안장, 등자)의 발명으로 인간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시점에서 출발하는 책은 유라시아 초원 문화의 역사를 개괄하고 동아시아 역사의 한 축을 차지했던 중국 북방 초원 민족의 역사를 다룬다. 이어 우리 역사에 남은 초원의 흔적을 추적한다. 신라는 화려한 황금 문명과 묘제를 받아들였지만 초원 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교류와 대결을 반복한 고구려는 무기나 마구, 전술 등을 들여왔다. 무용총 수렵도에 표현된 고구려 전사가 말 위에서 뒤를 돌아 활을 쏘는 사법은 스키타이 시대 초원에서 유행하던 것이다. 한반도 동남쪽 끝에 위치한 가야에서 출토된 철제무기와 마구는 흉노에 연원을 둔 모용 선비의 것이고, 구리솥은 흑해 연안과 알타이, 바이칼 등 초원 지역에서 널리 쓰이는 것이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700여년간 우리 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철릭은 초원 기마인의 옷에서 유래했다. 수천 년간 이어진 한반도와 초원의 교류가 끊어지고 왜곡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였다. 저자는 “식민 지배를 정당화할 논리를 찾던 일본의 식민 사학자들이 우리 역사에 남은 초원의 흔적을 한민족 북방 기원설로 둔갑시켰다“면서 “시베리아 철도 개통과 통일을 앞두고 유라시아 루트가 다시 주목받는 지금 초원과 한반도를 역사적으로 다시 잇는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중) 이르쿠츠크 ~ 모스크바

    [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중) 이르쿠츠크 ~ 모스크바

    25년 전 한·러 수교가 있기 전까지는 이념이 다른 나라라는 관계 때문에 감히 우리가 러시아를 방문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교를 맺은 후에도 한동안은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나라였던 게 사실이다. 젊어서 열심히 벌어서 나이가 들면 정승처럼 쓰라는 평범한 인간 삶의 태도에 관련된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담이다. 나는 살면서 아내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서로 내가 옳다고 가끔은 다툴 때도 있지만 친구는 물론 후배, 제자들에게 그리고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누면서 살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아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행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열차를 타고 시베리아 대륙을 달리는 목적은 무엇일까. 통일과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하여 서울에서 유럽까지 수출물품을 운송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외교부와 코레일이 러시아 철도공사와 많은 협의를 거쳐 어려운 산고 끝에 실행하는 결과의 작품이다. 러시아는 대국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충족될 수 있는 철도 선로 공사의 많은 부분을 요청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경제도 경제려니와 북한과 동서 열강들의 이해 관계가 얽혀 단시간에 우리의 목표를 실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사회학적 관점이나 구조적 관점에서 보면 주변 열강과 북한 그리고 우리의 관계는 도면상에서 읽을 수 있는, 단순명료한 해답이 있는 기하학의 도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열심히 산업을 발전시키고 수익성 있는 제품을 팔아 경제 대국이 된다면 러시아 철도 선로를 표준화로 바꾸는 공사 비용도 도와 주고 북한에도 조건 없이 베풀기를 할 수 있을 때 통일과 유라시아 유통의 길이 열리는 시간이 조금씩 더 앞당겨진다고 기대를 해도 좋을 것이다. 경제가 튼튼해지면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들에 베풀 수 있을 테니까…. 우리 주변에서 경제 때문에 벌어지는 많은 현상을 바라보며 베풀면서 살라는 우리 조상들의 미담을 생각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하바롭스크에 도착, 역 광장에서 환영식과 환송식을 하루에 치르는 바쁜 일정을 마친 뒤 이르쿠츠크를 향해 다시 밤 11시 열차를 탔다. 다음날 새벽부터 지칠 줄 모르고 펼쳐지는 적송(우리나라 적송과는 다른)이 적당히 섞인 자작나무 숲이 차창으로 도망이라도 치듯 사라지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리면 다시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 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기온이 내려가기도 한다는 시베리아 대륙. 여름 계절인 지금은 녹색 지평선이 눈을 꽉 채워버리는 바람에 눈동자가 정지된 느낌이다. 바이칼 호수의 수평선이 스크린처럼 눈 안에서 잘려 나가는 아쉬움으로 가슴이 시릴 정도다. 바이칼 호수는 그 크기가 길이 1600㎞이고 폭이 80㎞, 깊이가 1.6㎞ 이상이나 되는 방대한 호수다. 그 넓이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영토의 3분의1에 해당된다고 한다. 대평원이 이어지다가 다시 바이칼 호수가 나타나기를 몇 번쯤 반복했을까! 하바롭스크를 떠나 40여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이르쿠츠크에서 1박을 하면서 바이칼 호수의 장관인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지루할 만큼 달려도 끝이 언제쯤 보일지 예측할 수 없는 시베리아 벌판, 그리고 자작나무 숲과 바이칼 호수 등 모두가 눈과 가슴, 그리고 뇌리에서 지워질 수 없는 환영 같은 또한 한편으로는 다큐 같은 소재들이다. 열차에서 내리자 이르쿠츠크 역 앞에 주 관계자들과 전통 옷을 입은 여자 등 많은 주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지사가 주재하는 환영 행사는 실로 러시아에서의 우리나라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매일 걸으면 삶의 철학이 보이고 스스로 철학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열차를 타고 러시아 대평원을 달리면서 보이는 것이 내 것이고, 해야 할 일이 많겠다는 창작 의욕이 솟아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평원과 자작나무 숲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을 갖지 않을까! 시베리아 대륙은 창의적인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중 반이 겨울인 점을 감안해도 러시아는 미래의 친환경 동력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보인다. 다시 만 하루를 달려 도착한 곳이 노보시비르스크이다. 이곳 역시 도착하자 주 관계자들이 역 앞에 나와 화려한 환영행사를 해 주었는데 한복을 차려 입은 고려인들이 함께 나와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들은 한국말도 못하는 고려인들이다. 노보시비르스크는 교통, 과학, 산업, 교육의 중심지로 국립철도대학이 있다. 여기서 유라시아 철도 사업의 필요성과 협력에 대한 심포지엄이 있었다. 하루를 지내면서 1945년에 레닌광장 앞에 건축되었다는 오페라 발레극장의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여름휴가 시즌만 제외하곤 공연을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여행지에서 콘서트나 오페라, 발레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감동의 효과가 배가하는데 불행히도 여름휴가로 공연이 없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인구 170만명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오페라, 발레뿐 아니라 음악, 미술, 그리고 여러 장르의 대중문화 예술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놀랐다. 러시아가 옛날부터 문화예술의 수준이 뛰어난 나라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철길 양쪽으로 늘어선 자작나무 사이로 지칠 줄 모르고 달리는 열차를 타고 다음날 노보시비르스크를 뒤로 한 채 예카테린부르크에 도착했다. 예카테린부르크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곳이다. 예카테린부르크는 러시아 2대 황제인 예카테리나의 이름을 인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와 2대 여제 예카테리나는 사연이 많은 왕들이다. 예카테린부르크 역에도 역시 환영 인파들이 몰려 있었다. 주지사와 시민들 그리고 악대까지 동원되어 일행을 맞이하였다. 아시아와 유럽의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는 기념비적인 모뉴먼트가 하늘을 찌른다. 이곳에서도 우리를 맞이하는 행사가 있었고 가수와 어린 무용수들이 모뉴먼트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춤 솜씨를 발휘하였다.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 브류소프 등은 하나같이 은유적으로 사랑하는 조국의 러시아를 시로 읊고 있다. 유라시아 친선특급 프로젝트가 넓은 시베리아 대륙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중심축에 던진 파장은 새로운 미래 창출의 시발점임에는 이의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나라 러시아! 문화예술의 깊은 느낌이 눈으로 읽혀지는 동시에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내일은 또 모스크바를 향한 시작이 기다린다.
  • 개 목줄하고 네 발로 뛰어다니는 소녀 영상 파문

    개 목줄하고 네 발로 뛰어다니는 소녀 영상 파문

    러시아의 한 공원에서 개 목줄에 매여 네 발로 뛰어다니는 소녀의 모습이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4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 시베리아타임스 등에 따르면, 예카테린부르크에 사는 알렉세이 블라스킨(Alexey Vlaskin)은 지난 20일 오후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 소녀가 개 목줄을 맨 채로 여성의 손에 이끌려 네 발로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 알렉세이는 “다섯 살로 보이는 소녀가 네 발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10분 정도 봤다. 아이는 매우 능숙해보였다”면서 “다른 아이들은 손에 든 빵을 먹이로 주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알렉세이는 “소녀 자신이 즐기는 것처럼 보여 자세한 경위는 물어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알렉세이는 당시 상황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온라인 상에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개 목줄이 채워진 소녀의 모습이 담겨 있다. 목줄을 든 여성은 네 발로 뛰어다니는 소녀를 따라 가방을 끌며 함께 달리고 있다. 한편 해당 영상이 온라인 상에 퍼지며 파문이 일자, 경찰은 아동학대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에 착수했다. 사진·영상=Alexey Vlaskin/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北 시장경제화 대세… 한민족 평화 공존 적극 모색해야”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北 시장경제화 대세… 한민족 평화 공존 적극 모색해야”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서울&평양, 지난 1월부터 게재된 서울&평양 경제리포트 기획이 이달 말을 끝으로 긴 연재를 마친다. 그동안 연재를 맡았던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느꼈던 소회를 밝히고 뒷얘기도 풀어낸다. 북한이 발표하는 정확한 통계가 없어 추정치만을 갖고 외환보유고를 산정한다는 말에 낙담하기도 했다. 250만명이 넘는 북한 주민이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외부와 소통한다는 소식에 북한이 더이상 고립해서 살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후 관광지 개발과 경제특구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한다는 시도도 알게 됐다. ●남북 자원협력 후퇴 실감… 北 희토류 일부 과장도 밝혀 현재 북한 내에서 어떤 비즈니스와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다뤄 보자는 의도로 시작한 서울&평양 경제리포트가 마무리되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시리즈 시작 전 고민했던 것은 북한 경제·산업 분야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기사가 구름잡는 내용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다만 올해로 집권 3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판단에 기초해 경제 관련 기사를 다루는 것이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그렇게 시작한 기획기사의 첫 회로 북한의 희토류가 선정됐다. 사실 북한의 희토류는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중국만큼이나 많다는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6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 묻혀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지만 취재 과정에서 일부 과장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북한 전역에 있는 지하자원 개발을 다룬 1월 17일자 ‘북 자원매장 현황과 상생의 길’ 편에서는 한때 활발했던 남북 간 자원협력이 남북관계 경색에 따라 얼마나 후퇴했는지를 조명했다. 일부 보고서에서는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경우 파주와 철원, 고성 등에 새로운 산업단지를 조성해 윈·윈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기도 했다. 북한의 외환보유고 얘기를 다룬 4월 11일자 ‘북 중앙은행 외환수급 기능 사실상 붕괴’ 기사도 인상에 남았다. 한국은행조차도 북한 외환보유고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어 취재가 매우 힘들었다. 최근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북한 화폐 대신 달러화나 중국 위안화로 거래된다는 소식을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은 더 커져만 갔다. 북한의 휴대전화 사용 실태(3월 21일자)와 경제개발구 문제를 다룬 기사(7월 4일자) 역시 관심을 끌었다. 특유의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250만명 이상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북한이 외부와 단절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후 외화 유치를 위해 관광산업증진과 경제개발구 건설에 매진하려는 모습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고통받고 있는 북한이 어떻게 해서든지 이를 탈출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으로 볼 수 있었다. 이번 연재를 통해 하루빨리 북한이 핵과 경제개발을 함께하는 병진노선을 포기하고 정부도 좀 더 유연한 대북정책을 통해 한민족이 평화롭게 공존, 번영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전문가 그룹·탈북자 중심 취재… 설에 휘둘리지 않고 진중한 분석·판단 노력 지난해 9월 서울&평양 리포트 연재를 시작할 때는 경색된 남북 관계가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정부가 연초부터 ‘통일 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으로 대표되는 청사진을 제시했고 10월 초에는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등 고위급 대표단이 방문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는 북한 경제가 앞으로 남북한 상생을 촉진할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북한의 경제 개혁과 개방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서울&평양 리포트를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로 개편했다. 하지만 그동안 대북 전단 살포를 비롯해 남북 관계에 장애가 되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고, 지금도 남북 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연재는 그동안 탈북자와 전문가들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의 광물자원, 농업, 수산업, 장마당에서부터 통일 시대를 내다본 시베리아 횡단열차, 한·일 해저터널의 가능성까지 다양한 주제를 망라했다. 취재 과정은 북한이라는 제한된 취재원과 한정된 정보를 두고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렸는지를 자문자답하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이 시점에서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지 못하는 선구안으로 안타를 칠 수 없듯이 떴다방 식의 북한 보도로는 통일에 다가가기 어렵다”고 한 한 선배의 말씀이 떠올랐다. 난무하는 북한 관련 설에 휘둘리기보다 진중한 분석과 판단을 제시하고자 했으나 정부가 대북 정보를 독식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탈북자들의 진술과 소위 ‘북한 전문가 그룹’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중국과 베트남처럼 지속적 경제 개혁은 추진하지 않았지만, 북한 사회의 시장화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이다.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공식 인정하진 않더라도 ‘장마당에는 고양이뿔 빼고 다 있다’는 우스갯소리는 북한 주민의 ‘비공식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정은 시대로 접어든 북한은 국산화와 관광산업을 강조하는 등 나름의 자구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2010년 5·24 대북 제재 조치 이후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남북한 교역이 중단된 현 시점에서, 북한이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게 하려면 남북 관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5·24 대북 제재 조치 해제는 결국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사과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남북한 모두에게 풀기 어려운 과제다. 이를 위해 남북한 당국은 끊임없이 ‘솔로몬의 지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北 자력 갱생 가능성 낮아… 남북 협력으로 경제 부흥시켜야 올 1월 서울신문 정치부 외교안보팀은 ‘산업계의 다이아몬드’인 희토류와 관련된 북한 자원 기획기사를 시작으로 산업, 시장, 물류, 인력, 금융 등 북한 경제 전반을 조명했다. 북한 지하경제, 무역, 소비시장 등 다양한 시각으로 작성된 논문, 기사, 관련 정보, 탈북자의 증언, 전문가의 진단 등을 취합해 재구성했다. 또 다가올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고 이에 따른 경제 공동체 실현과 사회 통합에 초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서울&평양 기사를 작성하며 주제와 이야기가 강한 ‘가독성’있는 기사를 만들고자 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 전반에 확장된 ‘시장’을 주제로 한 기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지하경제’로 인식되기도 하는 ‘시장’은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양성화가 상당히 진척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을 경험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사의 ‘현장감’을 살리고 실제 발생했던 사례·사건을 객관적으로 담으려고 애썼다. 일부 북한 관련 기사들은 취재와 확인을 거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뒤늦게 발견된 경우도 있다. 특히 북한 희토류와 관련된 취재 중 국제 사모펀드로 알려진 ‘SRE 미네랄스’와 북한과 호주의 합작회사인 ‘퍼시픽 센추리’가 유령회사란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신문의 취재 결과 정보당국은 이 두 회사가 약 3년 동안 ‘휴면’상태에 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희토류 개발과 관련해서 국제 자본시장으로부터 어떤 자금도 조달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추가로 확인됐다. 북한의 일방적인 주장과 발표로 희토류의 매장량과 개발 계획이 ‘뻥튀기’ 됐다는 것이 취재 후 내린 결론이다.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한 세계 어느 국가로부터 자본 조달이나 개발 협력은 어렵다. 러시아와의 협력도 제자리걸음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울&평양 경제리포트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북한 경제가 자체적으로 소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북한이 자력으로 경제를 살릴 수 없는 수많은 이유가 존재하고 있다. 오히려 남북이 협력해 경제를 부흥시킬 방법이 더 많이 보였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체제 선전, 김일성·김정일 부자 우상화, 핵·미사일 개발 등 비경제적인 분야에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북한의 미래는 없어 보인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광복 70년 기획-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상)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

    [광복 70년 기획-설치작가 전수천 철의 실크로드를 가다] (상)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아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가 지난 14일 시작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시범사업의 하나로 외교부와 코레일이 공동주최하는 이 행사는 중국 횡단열차(TCR)와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이용해 러시아, 중국, 몽골,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 등 6개국 1만 4400㎞를 19박 20일간 달리는 대장정이다. 독립유공자 후손, 정치인, 문화예술인 등 각계 인사 300명과 함께 열차에 동승한 설치작가 전수천(68)씨가 ‘철의 실크로드’를 달리는 심경을 글과 그림, 사진에 담아 서울신문으로 보내왔다. 총 3회에 걸쳐 싣는다. 날개를 펼치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 7년 전쯤이었을까. 해군 함정을 타고 독도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100여m나 되는 크기의 함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높게 밀려오는 파도에 가끔은 흔들려가면서 독도에 도착했다. 정상에 올라 팔을 벌린 채 실눈을 뜨고 주위를 바라보았던 감회를 가슴만으로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저 사방에 보이는 바다가 아름다워서였더라면 오죽이나 좋았겠는가? 우리 국민 대부분이 감성적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며 마음에 담고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해양을 터전으로 삼고, 대륙을 앞마당으로 여기며 뛰놀았던 민족의 시원(始原)이 가슴 한편에서 꿈틀거렸고, 마음은 또 다른 경계를 향해 치달았다. 광복 7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유라시아를 내달리기 시작한 특급열차는 지난 15일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석양빛이 블라디보스토크의 숲과 평야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도로 양편으로 펼쳐지는 차창 밖 풍경은 푸르다 못해 검은색에 가깝다. 검푸른 숲이 시야 속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흔히들 시베리아 연해주를 동토의 땅이라고 말하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풍요롭게만 보이는 여름의 대지가 눈 안으로 파고들었다. ●항일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 생가 등 방문 연해주 하면 우리는 무엇을 연상할까. 독립운동을 하며 말을 타고 달리던 독립운동의 선구자들을 연상하게 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연해주는 겨울에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가 몰려오는, 그야말로 동토의 땅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이곳은 봄, 여름, 가을에는 숲이 우거지고 목초지가 끝도 없이 펼쳐지는 기름진 땅이다. 나라를 찾겠다고 숨어 살며 싸우던 독립운동가들에게 망명지나 다름없는 타국이 과연 내 나라처럼 편한 가슴으로 품을 수 있는 나라였을 수는 없었을 터다. 우리는 그 시대적 배경을 그저 상상하는 감상의 차원에서 가볍게 한 페이지를 읽고 지나치며 그리는 스케치 같은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연해주에서 버스를 타고 우수리스크에 가서 항일운동의 대부였다는 최재형 선생의 생가를 방문했다. 옛날 한인의 고택으로는 놀랄만한 저택이었다. 그는 어려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연해주에 이주한 한인의 아들이었다. 12살 나이에 러시아인의 양자로 들어가 공부를 하였고 러시아 정부가 인정하는 사업가로 돈을 벌었으며 그 돈으로 항일 운동을 하는 독립군에게 활동자금을 지원했지만,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더욱이 그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는 죄로 일본군에게 잡혀 처형된 인물이다. 특급열차를 탄 일행은 안중근 의사의 활동 안내 비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보며 위령제를 지냈다. 유허비를 바라보는 뚫려버린 것 같은 가슴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 앞에는 아무르강(흑룡강) 물이 흐른다. 죽으면 화장해서 흑룡강에 뿌려달라는 그의 유언 때문에 유골의 재를 흑룡강에 뿌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근래에 유허비를 세웠다고 한다. 우수리스크는 안창호 선생, 김규식 선생 등등 많은 분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 희생한 연해주 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혁명광장에는 혁명용사들의 동상들이 있고 우수리스크에도 레닌의 웅장한 동상이 높이 서 있다. 동상들은 하나같이 동쪽을 바라보며 동쪽을 향해 손을 들어 가리키고 서 있다. 레닌의 동북 정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형물들이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블라디’는 정복이라는 뜻의 단어이고, ‘보스토크’는 동쪽이라는 뜻의 단어다. 동쪽을 정복한다는 의미로 레닌이 붙인 지명이다. 그는 결국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를 정복했다. ●광복 70주년 기념 일환… 정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시동 우리는 다시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여 하바롭스크를 지나 이르쿠츠크를 향해 달리고 있다. 몇 시간을 달리다 보면 가끔 조그만 간이역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외에 거의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저 허허벌판이다. 눈이 쌓여 있을 숲을 머릿속에 상상할 뿐이지만 며칠 전에 별세한 오마 샤리프가 주연했던 영화 ‘닥터 지바고’가 기억의 풍경으로 내 머릿속에 잠시 자리 잡는다. 한편으로는 푸시킨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살아 있는 눈 덮인 자작나무 숲의 그림들이 상처처럼 흔적으로 다가온다. 끝없는 자작나무 숲이 철길을 따라 그림을 그린다. 문득 수년 전 그 독도가, 그 감회가 기억의 한 공간에서 슬며시 떠오른다. 막연하게 인지하고 있던 독도가 자작나무 숲 철길 위에서 현실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넓이는 창의적 상상을 확장시켜주는 공간이다. 땅은 국력의 원천이다. 광복70주년 기념의 일환인 정부의 유라시아 친선특급 프로젝트는 유라시아 인접 국가들과 상호 간 이해증진의 실질적인 관계를 모색하는데 새로운 싹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갖게 했다. 시작에 불과하지만 횟수를 늘려 간다면 물류-교통 노선을 여는 일이 꿈만은 아닐 것이며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도 했다. 크든 작든 북한을 포함하는 유라시아 정책에 있어서 정부는 정부대로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교류를 확대할 필요가 요구된다. 또한 개인을 포함한 민간적인 문화예술 활성화 사업도 적극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을 출발하여 5일째 자작나무 숲과 낮은 구릉 사이를 쉴 틈 없이 달려 하룻밤을 새고 나면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갑자기 한인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한 ‘만일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면 과연 누가 나를 대신하여 내가 될 것인가?’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 스스로가 풀어야 할 국가적 프로그램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대신하여 줄 것인가! 멀리서 바이칼 호수가 희미하게 눈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전수천 작가는 1947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와코대 예술학과와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석사를 마쳤고, 일본 도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1995년 설치작품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 기차로 횡단하는 ‘움직이는 드로잉 프로젝트-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1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