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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대전후 최대 축하집회/걸프 승전 퍼레이드 이모저모

    ◎1,200만불 투입… 80만 시민 참가/장병 9,000명·장갑차 행렬 4㎞ 【워싱턴 UPI 연합】 걸프전 참전미군 귀국환영대회가 8일 워싱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요인과 시민 등 모두 80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려 제2차대전 종전 이후 최대규모의 승전축하집회라는 기록을 남겼다. 걸프전의 영웅 슈워츠코프 장군과 예하부대 장병 8천8백명이 일부는 도보행진으로,일부는 장갑차에 탄 채 백악관과 미모리얼교를 지나 컨스티튜션가에 이르는 4㎞의 거리를 행진하는 동안 군중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며 이들의 귀향을 축하했다. 시민들은 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성조기를 흔드는가 하면 「축 귀향」 「잘했다」 혹은 「댕큐」라고 쓴 포스터를 높이 쳐들어 열렬한 환영을 표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슈워츠코프 사령관과 악수하기 위해 사열대 계단을 내려오면서 감격적인 어조로 『오늘은 위대한 날』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사열에 앞서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걸프전 전사자 3백76명에 대한 추도식에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사람들은 우리들 개개인보다 더 커다란 원칙,즉 국가라는 심장의 근육과 힘을 동시에 형성해주는 원칙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저버린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하오 10시의 불꽃놀이를 포함,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계속된 이날 환영행사에는 모두 1천2백만달러의 경비가 소요됐으며 백악관 뒤편에서 열린 군인가족 야유회에서만도 핫도그 2만5천개,통닭 4만쪽,캔디 5만개가 소비되면서 3t의 쓰레기가 나왔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앨런 이터씨는 『베트남전이나 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해서는 이런 행사가 없었다』면서 『오늘의 행사는 승리의 축하며 모두를 위한 퍼레이드』라고 말했다.
  • 「범국민대책회의」에게(사설)

    금명간에 또다시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예고가 모든 국민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명분과 목적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시민이 만나고 부딪치는 것은 일상이 무너져 혼란의 소용돌이라면 좋아할 리가 없는 일이다. 가뜩이나 분주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이 끊이지 않는 집회와 시위의 돌개바람이 부담스럽고 성가시다. 정국을 장기적인 긴장국면에 몰아넣고 있는 운동권 세력에게 직접 볼모 잡혀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나날을 열심히 뛰며 살아가야 하는 일반 서민들이다. 이 점을 운동을 주도하는 세력은 잘 인식했으면 좋겠다. 특히 비상시국의 핵을 이루고 있는 운동권 지도부 「범국민 대책회의」에 시민의 삶을 이토록 불편하고 속상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돌연히 두드러진 치사정국이 침체기에 들어섰던 전체 민주운동권세력의 입지를 살려주는 좋은 계기가 되어 「범국민대책회의」가 크게 힘을 얻었다는 평판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 말은 시위와 집회로 거리를 혼란시킬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로도 들린다. 젊은이가 혈기에 차서 불의와 맞서는 분신을 하지만 분신이 있을 때마다 강화되는 것도 「범국민대책회의」로 국민에게 비춰진다. 그 죽음이 있을 때마다 「주검」을 「확보」하고 「민주국민장」의 의식을 집행함에 있어 거의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그 기민하고 일사불란한 조직력이 과시될 때마다 공포스런 분위기까지 번져 나온다. 이 「범국민대책회의」의 막강한 힘에 대해서 이제 의심을 품을 사람들은 없어진 것 같다. 시위의 규모를 자유자재로 동원하고 투쟁 이론을 주도하며 대학가에서 노동현장,노점상에서 철거민에 이르는 모든 갈등을 모아 자신들의 정치투쟁의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힘센 세력의 모습을 우리는 「범국민 대책회의」에게서 본다. 지식인도 있고 종교인도 있고 정치인도 있어서 또 하나의 공화국을 이루기에 손색이 없는 이 집단에게 시민들은 은연중 두려움과 경계심을 느끼고 있다. 모든 민주세력의 연합체이므로,정의롭게 민주발전을 주도해갈 주체인데도 그들에게서 느끼게 되는 이 두려움과 경계심의 정체는 무엇이겠는가. 분신으로 중화상 입은 동료가 생사의 기로를 헤매며 생명이 경각에 매달렸는데도 주치의의 허락도 없이 중환자실에서 그를 운동권현장 본부가 가까운 병원으로 끌고 가기도 하고 다시 멋대로 대학근처로 시신을 옮겨 싣고가 「민주국민장」 지내기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시민은 그저 「범국민대책회의」의 동향에 맡겨둔 채 아는 체도 안하게 되었다. 분신한 자식을 가족끼리 장사지내게 해달라고 외치다 졸도해버린 아버지가 생겼을 때도 그 결정권을 움켜쥔 주체는 「범국민대책회의」였다. 분신만 하면 열사 칭호를 주고 영웅으로 받들어 굿을 벌이는 주도세력도 같은 주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굿판이 또다른 죽음굿을 충동인다는 혐의를 마음속에 두고 제발 이제 그런 일을 고만 끝내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도 실은 이 힘센 주도세력을 향한 것이다. 정의롭고 아름다운 명분을 지닌 세력에게 희망과 기대대신 이렇게 두려움과 경계심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범국민대책회의」는 깨달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온갖 굿과 선동으로 부추김을 했지만 「신비할 만큼」 움직이지 않고 무관심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거리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혼란이 지겨워서 그것이 표방하는 어떤 구호에서 귀를 닫아버린 국민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예정된 시위를 강행할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 “열사로 부르지 말아다오”/김동진 제2사회부기자(현장)

    ◎안동대 김군 아버지의 오열 『영균이를 죽게 한 노 정권을 타도하자』 『민주화를 주장하는 학생들이 가족장을 막는 것은 독재가 아니냐』 안동대생 김영균군(20·민속학과 2년)의 장례식이 치러진 4일 상오 8시30분쯤 경북대병원 영안실 입구에서는 가족장을 저지하려는 학생 2백여 명과 재야인사 50여 명이 「노 정권 타도」를 소리높여 외쳐대고 또 한편에서는 김군의 아버지 김원태씨(54·서울시 지적관리계장) 등 유족들이 이들에 둘러싸여 가족장을 한사코 고집하고 있었다. 이날의 장례식은 결국 유족들의 뜻대로 가족장으로 치러지기는 했으나 이 과정에서 아버지 김씨가 「민주국민장」을 요구하는 범시민대책회의 학생들에게 멱살을 잡혀 한때 실신,응급실로 옮겨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아버지 김씨는 이동용 침대에 누워 링겔을 3개나 꽂은 상태에서 아들의 장례식을 지켜봐야 했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장례식은 어머니 박옥숙씨(46)와 고모 등 유족 30여 명 만이 참석한 가운데 불과 20여 분 만에 끝났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에도 학생 등 재야인사들은 「타도 노 정권」을 외치고 노래들을 불러댔다. 이처럼 쫓기듯 장례를 마친 김군의 유해는 하오 1시50분쯤 영안실에서 영구차로 옮겨져 동구 신천동 청구고등학교 앞에서 학생들 주관으로 간단한 노제를 가진 후 수성구 고모동 시립장의관리소로 운구돼 화장됐다. 김군의 유해가 영안실에서 영구차로 운구될 때에도 김군의 아버지는 이동용 침대에 누워 「마지막 가는 아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이렇게 되뇌었다. 『내 자식은 죽었지만 더 이상 나와 같은 슬픔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결코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구차 주변의 학생들에게 『학생들의 뜻을 수용하지 못해 미안하다. 영균이를 열사라 부르거나 영웅시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며 『다만 내 아들이 먼 훗날 의롭게 살다가 죽어간 한 젊은이로 남기를 바랄 뿐』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통을 참아내려고 입술을 깨무는 그의 부정에서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을 되새기게 했다.
  • 마약,너무 심각하다(사설)

    돈은 주체할 수 없도록 많고,하는 일은 없는 불건강한 상류층에서 광란의 환각파티가 성행하고 있음이 또 드러나서 사회를 다시 한 번 경악시키고 있다. 사회의 소중한 재화가 이런 불건강한 계층에게 몰려 있어서 사회를 파괴시키는 부패 바이러스의 온상이 되게 하고 있는 일이 통탄스럽다. 마약은 확실하게 멸망으로 가는 길을 이끈다. 돈이 있는 사람이나 권력·명예·인기가 있거나 재능이 있는 사람 모두를 예외없이 단기간에 썩여서 재생불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일부 타락한 상류층의 쓰레기같은 족속들의 마약놀이도 조만간 그들 자신을 자멸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런 자업자득에서는 일말의 연민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행악이 그들 자신을 멸하게 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마약 가는 곳에 범죄가 있고 그들을 접촉하는 지역이나 이웃에서 급속하게 멸망의 균은 번식을 한다. 처남 매부 동창들을 끌어들여가며 무차별하게 확산시킨 그들의 행태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상당범위가 그들에 의해 멸망으로 오염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하는일 없이 돈을 물쓰듯하는 원천적인 부도덕 계층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런 불행의 씨앗이기도 하다. 이런 부류를 싸고 재능있고 아름다운 연예인들이 끊임없이 연루되어 사회에 물의를 던지는 일이 용서하기 어렵다. 영웅이 없는 오늘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청소년들의 우상이고 장래의 본보기인 연예인들이 마약조직이 드러날 때마다 감자줄기처럼 딸려올라온다는 것은 슬프고 난감한 일이다. 이미 우리 사회의 마약연령이 10대 이하까지 내려가고 있고 주부·학생에게까지 번지고 있는 것은 환락지상주의의 분위기를 사회에 전염시키는 유명인·인기인들의 행적과 무관하지가 않다. 특히 이런 연예인들에게 까닭없이 관대한 전파매체의 처사가 시민과 청소년의 감수성을 마비시키고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의 마약범죄 확산은 일본의 마약정책이 강경해진 시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약을 제조하고 수출하는 거점으로만 이용되던 한국이 일본으로의 수출길이 막히자 국내에서 수요를 개척하게 된 것이 계기가되었다. 그렇다는 것은 공권력의 의지만 단단하고 지혜를 발휘하면 마약 확산은 막을 수 있는 실례를 일본이 보여준 셈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마약문제의 새로운 우려는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마약조직의 기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인들에 의한 마약운반조직이 빈번하게 한국을 드나들고 있고 기기묘묘한 수법으로 은닉,운반하는 현장을 잡아낸 실적도 있다. 또 한 가지 충격스런 일은,90년 한햇동안 미국에 있는 아시안마약남용방지기구(AADAP) 소속의 치료센터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아시아계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한국계였다는 사실이다. 상담하는 수도 가장 많고 기타의 통계로도 이런 현상은 나타난다고 한다. 중국계나 일본계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의지가 약하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듯한 결과다. 밀반입의 통로를 철저하게 차단하여 무기한 특별단속을 효과적으로 지속해가지 않으면 어떤 심각한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와 함께 범국민적인 의지로 대응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없는 젊은 층의 호기심과 환락에의 유혹이 주범이므로 그걸 막는 유효한 선전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처참하게 멸망해가는 실례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있는 선전이라는 이론도 나오고 있다. 어떤 부귀도 영화도 그리고 명예도 「마약」 앞에서는 멸망하여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하는 일,그것이 중요하다.
  • “걸프 뉴스전의 영웅” 아네트기자/이창순특파원 암만서 인터뷰

    ◎“바그다드 곳곳 바리케이드… 검거선풍”/전기·수돗물 끊겨 주민들 40년 전생활/“친후세인”비난 받았으나 역사적 현장 취재에 보람 미CNN TV방송의 피터아네트기자(56)는 9일 요르담의 수도 암만에서 가진 서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지난 1월12일부터 바그다드에 체류하면서 이라크에 동조적인 보도를 했다는 일부 비난을 부인하고 자신은 있는 그대로를 보도했다고 말했다. 바그다드에 혼자남아 생생한 걸프전 보도로 전세계를 흥분시켰던 아네트기자는 그러나 『나는 결코 영웅이 아니며 단지 기자일 뿐』이라고 말하고 바그다드는 암흑의 도시라고 밝혔다. AP종군기자로 월남전에서 맹활약했으며 미군의 월남양민학살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바 있는 호주계 미국인인 아네트는 이라크 당국의 서방기자 추방 조치에 따라 바그다드를 떠나긴 했으나 『후회는 없다』고 밝히면서 암만에서 『심신을 재 충전하겠다』고 말했다. 역전의 종군 노장기자답게 다국적군의 공습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네트는 비교적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있었다.다음은 지난 2개월동안 걸프전을 취재하다 외국기자로서는 마지막으로 바그다드를 빠져나와 9일 0시30분(현지시간)육로로 암만에 도착한 아네트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바르다드를 떠날 때의 기분은 어떠했나. ▲나는 바그다드를 떠날 준비를 미리 하고 있었다. 나는 요르단에 무사히 도착해 행복하며 「구조」된 느낌이다. 나는 지난 2개월간 열심히 전쟁취재를 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났으며 지금은 쉬고 싶다. ­왜 이라크가 출국령을 내렸다고 생각하는가. ▲이라크에 대한 기사의 초점이 전재에서 국내 소요사태에 맞춰지면서 이라크 관리들이 외국인들에게 더이상 보여줄게 없다고 판단,출국령은 내린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인가. ▲지난 2개월간 찬물국 목욕을 하고 냉수만을 먹을 수밖에 없던 상황이 고통스러웠다. 온수는 구경조차 못했다. -바그다드 상황은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가. ▲이라크 상황이 심각한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현재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전쟁에 휘말렸던 바그다드는 암흑의 도시이다. 바그다드에는 전기도 없고 수돗물도 없다. 이라크는 30∼4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내가 9일 새벽 요르단에 도착해 보니 거리에는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고 주유소가 영업중이었다. 요르단의 밝은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는가. ▲나는 후세인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완전한 통제권의 장악을 시도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미 그러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이라크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후세인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바그다드 거리에는 많은 바리케이드가 설치되고 있으며 평상시검문이 없었던 곳에서 10여번의 검문을 받았다. 특수부대가 신분증을 철저히 검사하고 있으며 검거 선풍이 일고 있음이 분명하다. 바그다드는 그러나 시가지가 분주하고 시민들이 쇼핑을 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영웅이라고 하는데…. ▲나는 영웅이 아니다. 단지기자일 뿐이다. 나는 걸프전쟁이라는 대사건의 현장에 있게된 것을 뿐 영웅은 아니다. 기자로서 대사건을 취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된 것 을 더없는 행복으로 생각한다. -이라크에 동조적이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얘기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1년동안 취재활동을 했을때도 만족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된 미 해병대를 취재했더라도 만족했을 것이다. 나는 바그다드에 특파된 후 나의 일을 마치고 바그다드를 나왔을 뿐이다. 내가 사우디에 특파되었다면 후세인대통령과 이라크 사람들은 나를 다국적군에 동조적 이었다고 말했을지 모르고 암만에 주재했다면 비판자들은 나를 후세인 요르단 국왕과 친한 인사라고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기자들은 취재원과 섞이고 연계되기 마련이다. 나는 후세인대통령을 위해서 편향된 보도를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비판자들이 어떻게 얘기하든 별로 신경쓰지 않고 보도해왔다. -이라크 정부가 강요하는 일을 거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내 임무는 이라크가 원하는 기사를 보도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발굴한 기사를 보도하는 것이었다. 바그다드 취재는 힘들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강요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내가 이라크에 도착한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 승전무드에 들뜬 워싱턴/김호준특파원

    ◎“미국은 「월남전 신드롬」서 벗어났다”/“달 착륙뒤 국가적 자신감 처음 만끽” 흥분/기쁨에 찬 시민들,대대적 개선행사 준비/경제도 회복조짐… 92년 선거 부시 압승 확실 걸프전 참전 미군용사들이 개선하는 날 뉴욕 시민들은 꽃가루가 하늘을 뒤덮는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베풀 계획이다.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의 많은 도시들이 2차대전후 최초의 승전행사준비 얘기로 벌써부터 들떠 있다. 미국주도 연합군의 대이라크전 승리가 항후 중동 각국의 기상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는 아직 불분명 하지만 미국의 분위기는 이미 일신시켜 놓았다. 「사막의 히틀러」 사담 후세인에게 참담한 패배를 안겨 미국의 위대함을 보여 주었다는 승전의 쾌감으로 전국이 충만해 있다. 「거인」이 기껏 「골목대장」을 혼내줘놓고 왜 그리 흥분하는지 모르겠다 싶은 것이 기자의 심경이기도 하나 부시대통령이 승전을 선언한 27일밤 미국인들이 보인 반응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만세! 우리는 적을 격파했다. 아,위대한 미국! 이젠 아무도 미국을 깔보지 못할 것이다』 『조지 부시가 「약골」이라고요? 천만의 말씀. 그런 별명은 사막의 모래 밑에 묻어 버리시오. 지금 부시대통령이 하는 말은 아이비 리그 졸업장을 가진 존 웨인이 하는 말같소』 이번 전쟁중 미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이미지는 미국이 속구에 손을 못대는 늙은 타자가 아니라 「대담하고 지모있는 나라」라는 인식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은 유능한 전사이며 전략가이자 영웅적 해방자라고 믿게 되었다. 미국인들이 이처럼 국가적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져 보기는 1969년 달 착륙이후 처음이라고 언론들은 떠들고 있다. 경기 후퇴와 정치 불신으로 어수선했던 수개월 전에 비하면 이번 전쟁은 미국의 민심을 눈에 띄게 고양시켰다.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던 경제도 조만간 호전될 것이라는 조짐이 여러 면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부시 대통령은 벌써부터 92년 선거에서 압승이 예상되고 있다. 얼마전 에반스­노박 칼럼은 부시의 백악관이 평화협상을 두려워했던 것은 원유문제나 이라크의 팽창주의 때문이라기보다 월남전 패배의 쓰라린 유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소련 중재안을 거부하고 이라크에 무조건 철군의 최후통첩을 보냈던 지난주 백악관의 한 고위보좌관은 『이번이야말로 베트남 신드롬을 몰아낼 기회』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전쟁 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이러한 열망은 월남전 시대에 성장한 행정부내 젊은 관료들과 의회의 보수파 의원들 사이에 특히 강했다. 장년층 관료들도 국가 의지의 신뢰도를 일신하기 위해 이번에 미국인들이 생명을 바쳐 전쟁을 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물론 사상 유례없는 대대적인 공중폭격이 이라크군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는 신념이 워싱턴에서 주화론을 배격하고 주전론을 고무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사실 백악관은 사담 후세인이 조건을 다는 것을 환영했다. 이라크의 무조건 철수 동의는 미국의 세계 지도력을 퇴색시킨 월남전의 무거운 그늘을 제거할 미국의 새로운 의지와 용기를 과시할 기회를 앗아갈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사상 가장 인기가 없었던 월남전의 참전용사들처럼 귀국후 사회적응이 어려웠던 그룹도 없었다. 예컨대 1975년 월남전 종전후 3백만 참전용사 가운데 자살자수가 전사자(5만8천명) 숫자보다 많았다. 또 전체의 6분의 1인 약 50만명이 정신질환으로 고통을 받았고 참전용사들의 이혼율은 일반인의 2배에 달했다. 그러나 걸프전쟁을 둘러싼 환경은 월남전때와 달랐다. 이번 전쟁은 다수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반전여론이 없지 않았으나 애국집회와 성조기의 물결,그리고 무조건 단결을 외치는 소리가 압도했다. 1960년대처럼 사회불안도 없었고 싸움터엔 마약·알코올·심지어 로큰클롤조차 없었다. 월남전의 좌절을 다시 맛봐서는 안되겠다는 각성이 미국을 변모시켰다. 걸프전쟁은 미국에 새로운 신화를 창조했다.
  • 종전 맞는 미·아랍권 표정

    ◎“알라신이 외면”… 허탈한 바그다드/“미국은 위대”… 반전시위도 사라져 전쟁은 끝났다. 아랍각국의 거리에는 종전의 환희와 좌절이 교차하고 있다. 이라크의 패배를 가장 기뻐한 사람들은 쿠웨이트인들이었다. 그들은 고국의 해방에 열광하며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승리의 기쁨은 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이집트 거리에도 나타났다. 리야드·다마스쿠스·카이로 시민들은 후세인의 패배를 「환희」로 맞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라크도 같은 아랍민족이기 때문에 이라크의 패배를 기뻐만 할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국적군에 참여했던 아랍국가들은 쿠웨이트를 다시 해방시키고 후세인의 야욕을 꺾었다는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특히 이라크까지는 침공하지 않아 아랍민족의 「형제애」를 발휘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을 지지했던 아랍인들은 이라크의 참담한 패배에 허탈해하고 있다. 그들은 후세인의 연설대로 「도덕적 승리」를 쟁취했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어둡다. 많은 아랍인들은 이라크의 승리를 알리는 후세인의 당당한 연설을 듣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들은 걸프전쟁의 마지막을 알리는 부시 미대통령의 연설을 듣지 않으면 안되었다. 부시대통령의 종전연설을 듣는 그들은 좌절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현실을 실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랍인들은 다국적군의 일방적 승리로 앞으로 중동에서의 미국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 팔레스타인인은 『우리는 후세인 대통령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줄은 몰랐다. 우리는 이라크의 공화국수비대를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후세인을 열광적으로 지지해 왔다. 그들은 후세인이 자신들의 빼앗긴 땅을 다시 찾아주겠다는 약속을 믿어왔다. 암만의 한 시민은 그러나 『종전은 반가운 소식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사업가라고 밝힌 안둘 아카라는 『걸프전쟁으로 요르단 경제는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르단인들은 마음속으로는 종전을 크게 반길 것이라고 말했다. 종전을 반기는 모습은 바그다드 거리에도 부분적으로 나타났다. 일부 바그다드 시민들은 후세인 대통령의 휴전제의를 환호했다. 그러나 바그다드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침울하다. 이라크인들은 걸프전의 패배를 받아들이려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후세인 대통령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와 당당히 맞선 최초의 아랍지도자라고 믿고 있다. 한 시민은 『이라크인들은 후세인 대통령의 「도덕적 승리」 선언에 공감하며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의 종전선언이 발표된 27일밤 백악관 앞은 이날 낮까지만 해도 시끄럽게 떠들던 반전시위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신 행인들은 승리와 자신에 찬 표정들이었다. 10여명의 부시지지자들이 몰려 성조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택시들을 세우고 승리를 축하하는 경적을 울리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백악관앞을 지나던 행인들은 종전성명을 발표하는 부시대통령의 모습을 보기 위해 철책 담장앞에 몰려들기도 했다. 한 청년은 『수많은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인에게 승리를 안겨준 대통령이 자랑스럽다』 『미국은 위대하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한 관광객은 베트남전에서의 패배를 상기시킨 뒤 『우리 세대에 값진 승리를 안겨준 인물』이라며 역시 부시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자숙하자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플로리다주 앨러처시 「평화를 위한 부모들의 모임」 창립자인 질 마셜씨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을 영웅시해서는 안된다』며 축배를 들 기분이 아니라고 말했다.
  • 대미 적대감 증폭되는 요르단

    ◎곳곳에 사담 후세인 초상화… 지지 열기/수송단·의료진 파견한 한국도 맹비난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중의 하나인 세이프웨이 출입문에는 후세인 요르단 국왕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있다. 그러나 슈퍼마켓에 들어서면 통로 한가운데에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사진만이 눈에 들어온다. 세이프웨이 슈퍼마켓에 있는 요르단 국왕과 이라크 대통령의 사진은 요르단 국민들의 성향을 말해주는 하나의 시사다. 요르단 국민들은 외형적으로는 자신의 국왕인 후세인왕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동격시 하고 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대부분의 요르단 국민들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더 존경하고 있는 것이다. 요르단 국민들의 이같은 성향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요르단 전체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만의 거리나 상점,호텔 등에는 요르단 국왕의 사진보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사진이 더 많이 붙어 있다. 암만거리를 달리는 영업택시 뒤에요르단 국왕 사진은 별로 없으나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사진은 많이 붙어있다. 호텔 레스토랑 종업원인 오마아카로바는 『나는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어느 누구 보다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이다. 아카로바는 요르단에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의 생각은 자신과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팔레스타인인」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암만거리에서 만난 팔레스타인인들은 실제로 아카로바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팔레스타인인은 「그는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라며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아카로바는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아랍지도자중 누구도 감히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정면대결하고 있는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우리들의 영웅』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요르단인(베드윈족)들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그들의 국왕인 후세인왕을 더 존경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은 대단했다. 요르단에서의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열기는 미국에대한 적대감으로 나타난다. 암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몇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들은 한결같이 미국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나타냈다. 미국에 대한 적대감은 다국적군이 바그다드에 있는 민간인 대피소를 공격한 후 크게 악화됐다. 요르단인들은 지난 14·15일 연이틀동안 이라크 민간인들에 대한 폭격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요르단인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다국적군에 참여하고 았는 다른 나라들에게도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시민은 『한국이 다국적군을 지원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람들은 환영하지만 한국정부의 결정은 환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 다국적군에 수송기와 비전투요원을 파견한다는 보도를 들은뒤 한국인들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더 높아졌다고 그는 덧붙였다. 다국적군의 이라크 민간인들에 대한 폭격에 항의하는 격렬한 반미시위의 폭풍이 지나고 3일간의 애도기간이 끝난 지금의 암만거리는 평온하다. 암만 중심가를 벗어나면 잘 정돈된 깨끗한 거리에는 자동차만 가끔 지나갈뿐 행인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아 적막감마저 느끼게하고 있다. 전쟁은 그저 먼나라의 이야기인듯 했다. 암만거리는 전쟁에 따른 공포는 없고 미국에 대한 적대감과 후세인의 열기만 있는듯 하다.
  • 외언내언

    자가용차량 10부제 운행이 시민들의 호응으로 잘 지켜지고 있을뿐 아니라 교통소통에도 큰 효과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차를 가진 사람이 열흘에 한번 자신의 차를 쉬게하는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은」이 제도가 에너지절약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실증도 제시 됐다. ◆그래서 사회일각에서도 차량 10부제를 걸프전이 끝난뒤에도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고 정부에서도 이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제도는 교통체증 해소나 에너지절약이라는 차원 이외에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사회의 시민의식을 고양시켜 준다는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언제까지나 지속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잘 지켜지는 것으로 믿었던 이 제도가 특권의식에 찌든 몇몇 공무원들과 일부 유력인사들 때문에 빚을 잃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정부는 차량 10부제 운행을 시행하면서 소방·응급구호·우편배달·언론보도용 등 특수기능을 수행해야할 공무차량에는 「제외증명서」를 발급하도록 했는데 일부 시·군에서는 이를 남발,특정인들의 개인 자가용에게 특혜를 주고 있다는 보도에 접했다. ◆경기도 안산시의 경우 1백장으로 제한된 제외증명서를 3백장이나 발급,이중 40여장을 이 지방의 유력인사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수원시는 2백95장의 제외증명서를 발급했는데 이중 88장을 특정인들에게 뿌렸다는 것. 이같은 사정은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전국적인 현상으로 믿어진다. ◆어떤 사회규범이든 조그마한 틈새라도 있으면 이를 비집고 나와 활개를 치는 소영웅적인 무리들이 있게 마련이나 차량 10부제 운행에까지 이런 몰염치한 일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노릇이다. 불법주차한 부총리차에 「과감하게」 주차위반 딱지를 붙인 여단속원들의 투철한 책임의식은 이런 부끄러운일 때문에 더 더욱 신선하다.
  • 타협과 기다림의 정치를/한국의 의회주의를 위하여

    ◎투쟁이 미화되는 풍토 청산해야 한국의회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소수의 야당은 물리적으로 여당의 입법의도를 저지했고 다수의 여당은 쟁점법안을 변칙적으로 전격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소수의 물리적 힘과 다수의 변칙적 입법을 본 적이 없다. 한국의회의 불행이다. 필자는 입법과정에서의 불행이 의회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새로운 의회문화가 절실히 필요하기에 그 새로운 문화를 위한 타협의 정치와 기다림의 정치를 제안하려 한다. 한국의회는 여야의 극단적 투쟁을 미화하는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것 같다. 극단적 대치,투쟁,물리적 투쟁은 전쟁에서의 영웅처럼 대접받는 문화가 있다. 한국문화 속에는 타협은 「치사한」 것이며 선명한 야당은 정의로운,양심의 정치라는 인상을 만들어 왔다. 의회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타협이 모멸을 받고 투쟁이 미화되는 그 문화의 씨에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야당이 다음 선거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박살을 내려는 듯하고 다음 선거에서 다수당이 되는 꿈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평화적 의회보다 파괴적 의회정치를 의도적으로 운영하려는 인상마저 준다. 다음선거를 기다릴 수 없는 야당의 태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타협은 어느 나라에서나 필요한 민주주의의 요소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나는 옳고 정의롭고 양심적이다』고 생각하는 사람(정치인)이나 집단(정당ㆍ이익집단)은 다른 사람이나 집단은 옳지 않고 정의롭지 않고 양심을 잃었다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야당은 그렇게 『자기만이 옳고 여당은 악의 씨』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거기서 타협의 정치는 이루어질수 없다. 타협의 정치는 『당신의 생각에도 좋은 것이 있고 내 생각에도 좋은 것이 있다』는 가정위에서 가능하다. 남을 존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남을 존경하려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존경받을 수 없다. 나와 타인이 이루는 사회에서 함께 사는 방법은 서로 형평과 공평성을 갖는 법이다. 민주주의의 나라에는 형평과 공평성을 이루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형평과 공평성은 논리적인,이성적인 사고의 문화에서 가능하다. 논리는 인과관계의 탐구에서 가능하다. 여야를 함께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간지들은 여야를 싸잡아 비난한다. 상당히 쉬운 비난이다. 야당은 소수당이다. 소수당은 다음 선거에 승리하기 위하여 최선의노력을 다 한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은 물리적이거나 파괴적인 것을의미하지 않는다. 야당이 파괴적이 되면 다음 선거 자체가 무의미하게 된다. 다음 선거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야당은 먼저 평화적이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야당은 다음 선거에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현재의 집권당이 계속 집권할 가능성이 큰데 대해 절망을 표시하려는 듯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시민의 선택을 평화롭게 받아들이려는 의도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시민의 선택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선택에 이미 절망적인 사람들은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의 집권당이 그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법안을 다수의 횡포로 통과했다면 그들은 국회법의 테두리안에서 최선의 평화적 저지행위를 보여야 했고 결국 소수이기 때문에 저지할 수 없었다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면 된다. 그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요 정치다. 그래서 다음 선거에서는 우리가 집권당이 되어야겠다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면 그것이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활동이다. 그때 시민의 다수가 그들에게 지지를 보이면 그들이 집권당이 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 계속 야당으로 남는다. 거기에 아무 이상함이 없다. 그것이 정치질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그래서 주기적 선거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늘의 야당은 극단적인 대치를 미화하려 하고 국회의 판을 깨려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국회 밖으로 나가 노태우 정부에게 신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노정부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노정부를 끝내려하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여당이 되었을때 어떻게 불안해 하며 정부를 운영할 수 있을까. 마음놓고 자기의 임기를 마치려는 정치인(대통령)이없다면 정치는 부재하게 된다. 정치도 사람의 일이다. 야당은 국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래야만 할까. 정치가 안정되어야 민주주의도 정착되고 경제도 제 궤도를 찾는다. 그보다도 또 한번 선거를 치러야 하는 「낭비」를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면 지난번 선거에서 차석을 한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면 좋을 것 같다. 그런 국회에서 국회의원 할 뜻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국회의 발전을 위한 아픔을 느끼기 전에 판을 깨려는 것이 아닌가 의아해 한다. 정치는 나라를 위한 것이다. 정치의 비용은 시민이 피땀흘려 내는 세금이다. 몇이나 시민의 피땀으로 운영하는 국회의 역할과 기능을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타협은 정치의 예술이며 기다리는 삶은 정치의 인고가 될 것이다. 한국국회는 새로운 문화를 어서 빨리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정치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 「신사고」 앞세워 동서데탕트시대“견인”/고르바초프 집권5년의 평가

    ◎새로운 「자결원칙」 제시,동구 대변혁 “촉발”/강력한 대통령제 신설,개혁 가속화의 기틀 다져/“발등의 불”경제난ㆍ민족분규등 현안 “첩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겸 최고회의의장이 11일로 집권 5주년을 맞았다. 고르바초프는 그동안 사고의 대전환을 통한 대담한 개혁정책 추진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소연방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물결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경제난 때문에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고르바초프는 12ㆍ13일 열리는 인민대표대회에서 비상대권 등 막강한 권한을 지닌 소련 최초의 서방식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취임 5주년 기념일인 11일에는 리투아니아공화국 최고회의가 독립국가를 선포하기 위한 표결을 준비하는 등 그에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같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과 신사고외교를 성공리에 추진,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아니라 끝없는 군비경쟁으로만 치닫던 냉전체제에 종지부를찍으며 국제적인 데탕트 기류를 몰고 온 장본인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담하게 개혁 추진 지난 85년 체르넨코 서기장 사후 그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지난 88년말 유엔총회연설에서 일방적인 국방비삭감과 50만명의 소련군 감축을 선언,세계의 군비경쟁에 결정적 브레이크를 걸었다. 또 소련의 동구개입을 뜻하는 브레즈네프독트린을 폐기하고 이른바 시내트러독트린(프랭크 시내트러의 히트곡「My Way」처럼 각국이 제갈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결원칙을 제시,지난해 동구의 민주화변혁을 가능케 했다.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없었다면 베를린장벽의 제거와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몰락도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함께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을 철수시키는등 지역분쟁 해결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ㆍ재편)와 글라스노스트(개방ㆍ정보공개)를 세계적인 유행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평화의 위협자에서 수호자로,동구제국의 지배자에서 해방자로,혁명수출국에서 분쟁중재국으로 소련의 역할전환을 이룩해낸 것이다. 시사주간 타임지는 고르바초프를 지난 8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플라톤의 정치의 도를 터득한 사람』이라고 극찬하면서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지난달 미CNN방송이 고르바초프의 서기장직 사임설을 보도하자 뉴욕ㆍ도쿄등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 증권시장에서 주가폭락을 초래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전세계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군비경쟁에 쐐기 국내에서도 국제무대에서 만큼 가시적인 효과를 얻어내지는 못했으나 나름대로 소련의 정치체제를 뒤흔드는 일련의 개혁정책을 성공리에 추진하고 있다. 볼셰비키혁명이후 70년이 넘도록 유지돼온 공산당 권력독점을 포기,고질적인 관료제를 타파하고 정치적 다원주의의 물꼬를 텄다. 강력한 대통령직을 신설,개혁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인민대표대회의 권한을 강화,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변모시켰는가 하면 각급 선거를 복수후보경쟁에 의한 비밀투표로 실시토록 했다. 정치범 석방,언론ㆍ종교ㆍ출입국 자유화 등의 민주화 조치도 취했다. 경제적으로도 관료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의 비능률성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의 독립채산제를 채택하고 협동조합기업(코페라티브)설립과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는등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침체의 늪에 빠져든 소련 경제를 소생시키지는 못했다. 생산수단 사유화및 임금노동과 토지의 개인영구임대 및 상속을 허용하는등 보다 실질적인 조치들이 곧 입법화될 예정이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물자부족등 피부에 와닿는 경제혼란으로 인해 주민들의 불만과 급진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보의 공개와 언론자유에 힘입어 소수민족공화국들의 민족적 자각과 그에 따른 분리독립요구가 높아져 연방해체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같은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에 대해 고르바초프는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인간의 얼굴을 가진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발전을 위한 제2의 혁명이며 「보편적 인간 가치」를 위한 자본주의 국가와의 협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역 분쟁해결 앞장 일부 서방전분가들이 지적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의 재생이라는 주장이다. 개정된 공산당 강령은 레닌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여도 안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국유 또는 사회소유에 반하는 사적소유와 인간노동의 착취행위로 금지돼왔던 임금노동을 허용하는 문제들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던 것처럼 아직도 사회주의적 「사회정의」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상반된 개념중 어느 것을 취할 것인지 완전한 의견의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의 변혁이 일방적이 아닌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소련내의 개혁도 집권층과 국민들간의 상관관계속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에측불허인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개혁작업이 어떤 동기에 의해 추진됐건간에 전임자들도 똑같이 느꼈던 문제를 고르바초프만이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대담한 실천력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집권2기를 맞으며 앞으로 4년의 임기동안 실각의 우려를 덮어둔채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부분적 시장경제로 개혁을 가속화시켜 국민들로부터 계속 지지를 받게될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처럼 독재자로 변신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오는 94년의 2대 대통령은 국민들의 직접비밀투표에 의해 선출된다는 점에서 스탈린식 강권통치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유의 맛을 느낀 소련국민들도 두번다시 과거행 타임머신에 동승하기를 거부할 것이다. 강제이주 이전 거주지인 크림반도로 돌아가겠다는 타타르족등의 단순한 요구로부터 발트해연안 3국의 즉각 분리독립요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문제들이 고르바초프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 또 루블화의 태환성 부여,가격ㆍ금융제도의 개선,완전자유시장의 도입등 근본부터 흔들어 놓아야 할 경제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세기의 영웅 고르바초프가 70년동안 타율성과 의욕상실증에 찌들대로 찌든 국민들을 다독거려 이같은 난제들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취임5돌 고르바초프 공과 ■외교 정책 ▲동구 각국에 대한 불간섭정책을 선언함으로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등 동유럽에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핵전쟁 발발 가능성의 공포와 유럽 및 중국에 대한 소련의 선제공격 우려를 현저히 불식. ▲국방비를 삭감하고 병력 50만명과 탱크 1만대 감축을 일방적으로 선언 ▲중부유럽 주둔 병력의 철수를 미국과 잠정적으로 합의 ▲미국과 중거리핵미사일 폐기를 합의한데 이어 오는 90년까지 장거리 핵미사일도 절반으로 삭감한다는 목표를 협상중. ▲아프가니스탄에서 병력 11만5천명을 철수. ▲앙골라ㆍ나미비아ㆍ캄보디아ㆍ니카라과 등 분쟁국에 대해 협상을 종용 ■민주화 ▲지난 89년 경선제를 도입하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지도부를 설득,동의얻어냄. ▲강력한 대통령제 도입을 제안. ▲언론ㆍ집회ㆍ종교의 자유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법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 ▲정치범 수백명을 석방하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탄압을 종식 ■경제정책 ▲일반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생화수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 ▲당지도부가 공장의 개인소유제도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성공 ▲개인이 토지를 임대차하는 것은 물론 이 권리를 상속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으나 개인의 토지소유는 거부. ▲합작을 통한 외국자본의 유입을 대폭 완화. ▲90년도 적자가 1천5백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함으로써 재정적자를 처음으로 공개. ■국내정책 ▲발트해연안 3개 공화국의 독립요구 운동을 묵인.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등 일부 공화국에서 민족분규가 발생해 진압군 수십만명을 파견. ▲관료들의 부정 근절 실패,폭력범죄도 계속 증가.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환경개선에는 아직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음. ▲주택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성과는 별로 나타나지 않았음.
  • 소에 반고르바초프 시위/수천명,“자본주의에 물들었다” 비난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최고회의 간부회의장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 여파로 최근 소련 각지에서 보수파 당지도자들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18일 모스크바에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을 비난하는 시민들의 대규모집회가 개최되는 등 개혁과 개방을 둘러싼 소련사회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최소한 2천명 이상의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18일 모스크바의 소련국영TV 송출탑 주위에서 집회를 개최,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사회주의를 팔아넘기고 소련을 빈곤과 서구적 퇴폐에 몰아 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동안 크렘린의 경제체제 전환과 소수민족들의 민족주의 운동을 비난해온 보수파 단체 러시아노동자 연합전선의 보리스 운코는 이날 대회에서 고르바초프를 가장 격렬히 공격하면서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은 소련에 록음악과 포르노를 만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한 볼셰비키혁명및 제2차대전의 영웅들을 「모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혜” 빼앗긴 러시아인 불만 폭발/보수파와 합세땐 개혁의 장애로(해설) 18일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반고르바초프시위는 소련의 「개혁」 추진으로 그동안 누려왔던 혜택을 빼앗기고 있다는 러시아민족의 상대적 불만이 정통사회주의로의 복귀요구로 폭발한 첫 사건이란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가시화하지 않고 있는 개혁의 성과,발트3국에서의 독립요구와 소수민족간의 인종분규등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는 소련의 사회불안에 소련 전체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인종인 러시아민족들의 불만까지 겹쳐 고르바초프의 고민을 한가지 더 추가하게 된 것이다. 물론 러시아민족주의가 바로 보수파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소집된 최고회의에서 대통령제도입을 위한 고르바초프의 인민회의소집 요구가 거부되고 사유재산 법안의 승인이 유보되는등 보수파들의 저항이 조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보수파와 이해를 함께하는 러시아 민족주의가 고개를 든 것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추진에 새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함께 고르바초프가 최근 유럽주둔 미소양국군을 19만5천명으로 줄이자는 미국의 제안을 전격 수락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과 ABM조약간의 연계에 대한 입장을 완화하는 등 군축문제에 있어 큰 양보(?)를 거듭한 것도 내연하는 국내문제의 해결에 전념하기 위해 어쩔수 없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으나 보수파에서 군축문제 양보를 놓고 고르바초프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가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민족주의 감정과 보수파들의 반개혁정책의 결합이 우선은 고르바초프의 입지를 어느 정도 곤란하게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반고르바초프시위도 아직까지는 「대안없는 반발」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페레스트로이카가 경제분야에서 얼마나 빨리 성과를 나타낼수 있을 것인지,또 그때까지 여기저기서 누출될 각 민족들의 불만을 고르바초프가 어떻게 무마시킬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수있다.
  • 동구 「피플파워」공산종주국에 역류/모스크바시위 배경과 파장

    ◎더딘 변화 불만… 중앙당에 개혁 압력 일당독재 폐지와 민주개혁을 요구하며 수십만의 시위군중이 일요일 하루 모스크바시내 중심가를 가득 메웠다. 지난 한햇동안 동유럽에서 민주화 「혁명」을 주도한 힘은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힘이 마침내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전체주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시민의 힘은 이제 거대한 하나의 시대정신이 돼 버렸다. 이번 일요일의 모스크바시위는 그 규모나 내건 요구사항들로 볼때 이전에 가끔있었던 소규모 개혁지지 시위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면이 많다. 개혁을 요구하지만 단순히 고르바초프를 지지하는 시위도 아니다. 공산당에 대한 조직적인 반대세력이나 지도적인 재야단체가 없는 가운데서 20여만명의 군중이 모였다는 사실은 고르바초프가 이끌고 있는 개혁의 정도와 현체제에 대해 일반시민들이 품고 있는 불만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89년 동유럽을 휩쓴 시민운동을 가능케한 것은 크게 보아 서구 복수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자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각을 가능케해 준 것은 직접적으로는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된 개혁과 개방의 새물결,간접적으로는 현대적인 매스미디어에 의한 여론형성,기술의 발달,물질적 욕구증대,그리고 인권의식의 신장등 여러 요인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시민혁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십년간 누적된 공산주의의 폐해라는 토양이 이 혁명의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시작된 이 혁명의 기운은 공산당 지도부내에서 동조자가 나오면서 재야지도자 일반시민들 사이로 급속히 번져 나갔다. 그리고 루마니아를 제외하고 동유럽의 구공산지도자들은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평화적으로 권력을 시민들에게 넘겨주었다. 덴마크의 언론인인 아스거 라슨씨는 이들을 진정한 용기를 가진 「영웅」으로 치켜세운다. 물론 이들이 무력을 쓰지 않고 물러난데는 소련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동독과 체코에서는 무력동원을 고집하는 완고한 지도자들이 소련의 설득으로 권력을 내놓았다. 소련군이 주둔하지 않는 루마니아에서 비극적인 유혈진압이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이런 설명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1년 전만해도 동유럽에서 이런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개혁파 지도자들이 스탈린주의 종식과 새로운 시장경제질서로의 편입을 위해 조심스런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독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에서는 타락한 구체제의 지도자들이 결사적으로 버티며 혼란의 씨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공산주의의 위기가 증대되기 시작한 80년대에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기운이 동유럽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75년에 체결된 헬싱키협정과 79년 교황요한 바오로2세의 폴란드방문은 이지역에 인권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비폭력ㆍ민주주의 이념에 기반을 둔 시민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를 처음으로 구현시킨 것이 폴란드의 자유노조였다. 자유노조는 81년 불법화된 이래 8년여를 인내와 타협으로 계엄이라는 구체제의 통치방식을 이겨냈다. 체코에서는 「7ㆍ7헌장」의 정신이 젊은 지식인ㆍ노동자들에게 자유와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심어 주었다. 역설적이지만 소련은 동유럽의 이러한 혁명을 시작한 장본인이면서도 상대적으로 가장 낙후된 정치체제를 유지해 오고있다. 소련지도부가 헝가리ㆍ폴란드의 뒤를 따를지 체코ㆍ동독,아니면 루마니아의 뒤를 따를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이번 당중앙위 총회에서 다루어질 내용은 사회주의의 근본원칙에 메스를 가하려는 작업이다. 앞으로 경제면에서 과감한 개혁이 추진되면 인플레ㆍ실업ㆍ임금동결 등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필요로 할 부분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선 우선 정치체제면에서 「제2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과감한 개혁이 이번 당중앙위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소련사회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진정한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모스크바의 「일요일 항의」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시민혁명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 오늘의 유럽 판도 어떻게 변화할까/아스거 라슨(해외 특별기고)

    ◎동구개혁 새 지도… 희망과 혼란 공존/「고도」 알바니아 붕괴는 “시간문제”/민주에 목말랐던 시민들,새 지도부 불신/민족갈등 표면화… 불확실성으로 치달아 『다음 차례는 어느 나라일까』 지난 6개월동안 전세계 언론인들은 바로 이러한 심정으로 소련과 동유럽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들을 지켜보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남은 스탈린주의의 요새는 인구 3백50만의 소국 알바니아 뿐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이나라는 유럽의 최후진국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유럽에서 벌어지는 이 혁명의 속도에 놀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지난해 12월22일자 서울신문 기고문에서 작가인 인권운동가 바클라프 하벨을 체코의 차기 지도자로 부각시켰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 글을 쓴 뒤에 하벨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경제건설등 난제로 현재와 같은 속도로 사회주의와 마르크시즘이 붕괴돼 간다면 지금 쓰는 이 글이 신문지상에 실릴때쯤 알바니아도 온전치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놀라운 변화의 속도는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새로이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바로 어떤 모습의 세계가 새로 만들어질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자유가 인류의 궁극적인 선이라는 서구민주주의적인 입장에서 볼때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붕괴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붕괴 사실만 가지고 최고의 이상적인 세계질서가 성취되었다고 할 수 는 없다. 새로 자유를 되찾은 모든 동유럽국들에 있어서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비록 이들 나라에 공산주의가 또다시 통치제도로 도입되리라고 믿을 사람은 없지만 아직은 불안하다. 풀어야 할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해야 하고 건전한 경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민족간의 갈등과 반목을 푸는 문제이다. 동유럽과 소련내 많은 국가ㆍ공화국이 이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위태위태한가는 1월초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공식적인 외교일정을 취소했을 때 그대로입증되었다. 그 일로 인해 세계 최대의 도쿄증권시장에서 주가급락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소련에서 진행되는 자유화 과정이 어느 때라도 반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국제 재계의 우려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동독과 루마니아에선 새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넓게 자리하고 있다. 한달전 니콜라이 차우셰스쿠 부부의 처형으로 루마니아의 압제정치는 일시에 막을 내린것 같지만 이와 관계없이 새 지도부에 대한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는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민과 강제이주ㆍ전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종교적인 대립과 관련돼 있다. 1월 한달동안 소련내 많은 지역이 정치적 불안상태에 놓여 있었다. 가장 심각한 곳은 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3개 공화국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공산당이 모스크바 중앙당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가 하면 주민 모두가 소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소연방에서의 분리독립 요구가 거세지면 그것은 분명 고르바초프의 개방ㆍ개혁정책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소연방의 약체화라는 것은 공산당내 보수파들에게 개혁주의자 고르바초프를 타도할 수 있는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연방공화국들의 불만은 수세기전 구차르왕정의 전제정치 때부터 계속된 러시아인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가 시작된 이래 72년간 알게 모르게 당해온 폭압과 테러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 러시아제국을 지배한 러시아 민족은 소연방 곳곳에서 여전히 지배 이민족으로 간주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발트해 3국뿐이 아니고 몰다비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멘 우즈베크 타지크 키르기스 그리고 카자흐 공화국 등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러시아인 지배체제에 항거해 주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어떤 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도 공산주의세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고 서반구에서 현재 마르크스주의 정부가 유지되고 있는 곳은 쿠바와 니카라과 뿐이다. 그외에 공산주의를 통치원리로 고집하고 있는 나라들을 손꼽자면 베트남ㆍ중국ㆍ아프가니스탄ㆍ몽고 그리고 북한 정도가 있을 뿐이다. ○후퇴론은 거의 없어 세계지도는 이제 다시 그려지고 있다.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극적인 저항은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새 희망은 혼란과 불확실성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과거 선명하게 실체를 드러내던 「적」이 사라짐으로써 서구의 지도자들은 이제 누구와 함께 정치ㆍ경제적인 문제들을 논의해야 할지 알기 힘들게 되었다. 2백여년 전 독일의 군사전략가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모든 작전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후퇴」라고 말한바 있다. 독일의 작가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씨는 클라우제비츠의 이 후퇴론을 동유럽의 변화에다 적용시켰다. 그는 군사작전에서 후퇴와 꼭 필요한 경우 패배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짜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클라우제비츠의 후퇴론을 이런식으로 공산정권 변혁기의 인물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스스로의 권력을 내놓는 사람보다는 권력을 잡기위해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게 우리사회이다. 그런 점에서 엔첸스베르거 식으로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쁠것은 없다고 본다. 이런 「고차적」인 정의론에 화답하듯 몇몇 독재자들의 동상과 기념물들이 철거되었다. 스탈린의 대형동상이 곳곳에서 부서졌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상징인 낫과 망치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직도 일반국민들의 희생을 디디고 전체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 정권을 세워놓고 개인숭배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독재자들이 있다. ○하벨 신망 본받아야 이들 모두 언젠가는 스탈린의 동상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일생동안 개인숭배를 강요한 절대 독재자일수록 그의 몰락은 더욱더 돌연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다시 한번 바클라프 하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고통과 겸손속에 원하지 않는 사이 권력에 접근해간 사람이다. 엔첸스베르거가 말한대로 스스로의 권력을 포기한 영웅은 물론 아니다. 그는 항상 뛰어난 용기로 자유를 위한 투쟁을 일관되게 전개해 왔다.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력보다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더 귀하게 여긴 사람이다. 1968년부터 1989년말까지 하벨의 작품은 그의 조국 체코에서 금서로 묶여 있었다. 하지만 서구에서 그의 희곡작품 「선전」(1967년작)은 거의 20년간 공연돼왔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관료주의와 권력의 횡포에 대한 신랄한 풍자는 끊임없이 화제에 올랐다. 「선전」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관료주의가 묘사되고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은 신종 인공언어를 개발해 모든 사람을 혼란에 빠뜨려 놓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말을 해독하기 시작할 때쯤이면 또다시 새 언어를 개발한다. 그리고 권력자들의 작위성이 법을 대신할 때 이 언어는 권력자들의 좋은 동지가 된다. 이 작품의 정신이 앞으로 체코의 새 대통령 바클라프 하벨을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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