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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 vs 불참’ 시민단체 대립 본격화

    ‘참여 vs 불참’ 시민단체 대립 본격화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5일부터 무상급식 주민투표 부재자투표 신고가 시작된다고 4일 밝혔다. 5~9일 신고 후에 18~19일 투표를 하는 부재자투표는 반드시 주민등록지 투표소에서 투표해야 하는 본 투표와는 달리 신고할 때 부재자투표를 하려는 지역을 미리 정할 수 있다. 신고서는 9일 오후 6시까지 주민등록지 구청으로 직접 제출하거나 우편으로 보내면 된다. 우편요금은 무료다. 신고서는 구청이나 동주민센터에 비치돼 있다. 앞서 선관위는 24일 치러지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사용할 투표용지 문안 게재 순서를 확정했다. 투표용지 게재순서는 무상급식 찬반 입장의 대표 시민단체로 각각 지정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와 ‘나쁜투표거부시민운동본부’의 대리인이 참여한 가운데 추첨으로 정했다. 그 결과 투표용지에는 위쪽에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안이, 아래쪽에 ▲소득 구분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안이 차례로 게재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지하는 방안이 제1안이고, 서울시의회 민주당 측이 지지하는 방안이 제2안이다. 한편 야당과 진보성향 단체가 모인 나쁜투표거부시민운동본부는 이날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발대식을 갖고 ‘투표 저지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단체는 “서울시가 주도하는 이번 투표는 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만큼 시민들에게 불참하도록 알려 개표가 가능한 투표율(33.3%)을 넘지 못하도록 만들어 원천무효를 시키겠다.”고 밝혔다. 주민투표를 청구한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는 지난 1일부터 투표를 촉구하는 홍보활동을 펴고 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美 디폴트 면했다] 美정치주역들 엇갈린 성적표

    [美 디폴트 면했다] 美정치주역들 엇갈린 성적표

    부채상한 증액 협상이란 난해한 시험을 가까스로 통과한 미국의 정치 주역들이 협상 결과에 따라 엇갈린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위기를 기회 삼아 정치적 입지를 넓힌 정치인들이 있는가 하면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패자들도 있다. 가장 크게 웃을 승자로는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가 꼽힌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협상 과정을 지켜보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과 직접 접촉해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면서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워싱턴포스트는 1일 “공화당을 대표하는 이성적이고, 진실한 인물인 매코널 원내대표가 협상의 중심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보수주의 시민운동 단체인 티파티도 이번 협상 과정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티파티 진영의 공화당 의원들은 지난달 28일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2단계 부채증액안 표결을 연기시키면서 자신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줬다. 오바마 대통령도 지난한 협상과정에서 결단력과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지만 막판 극적으로 타결을 이끌어냄으로써 국민들에게 국정운영 능력을 보여줬다. 세금증액 없는 타협안에 대한 진보 세력의 불만이 깊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중도 성향 유권자에겐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줬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반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공화당 안에서조차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며 무능력한 모습을 보인 베이너 의장과 협상과정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상원 재정적자 감축안 협상단 ‘갱 오브 식스’ 등은 위신을 잃게 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대구 육상 한달 앞으로] “국민 46% 개최사실 몰라 안타까워”

    [대구 육상 한달 앞으로] “국민 46% 개최사실 몰라 안타까워”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화축제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캠페인을 준비하겠습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시민자원봉사단 명예단장을 맡고 있는 유진선 대경대 총장은 26일 “대회 성공을 위해 자원봉사단과 함께 대구지역 구석구석을 누비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자원봉사단을 이끄는 중책을 맡았는데. -대회에는 6000여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통역, 경기진행 등 11개 부문에서 활동을 펼친다. 이들은 경기장과 대구 곳곳에서 대회 진행의 첨병 역할을 하게 된다. 자원봉사자들은 전 세계인을 맞는 대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따뜻한 미소와 배려로 외국인 손님들에게 감동을 준다면 대구의 이미지와 도시 브랜드가 높아질 것이다. →자원봉사에 대학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했는데. -자원봉사자의 절반가량이 대학생들이고 전공도 다양하다. 이들의 전공을 자원봉사에 접목시키면 대회 참가자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또 예술·예능 특성화 대학인 대경대의 풍부한 문화콘텐츠를 적극 제공하겠다. 다른 대학들에도 이런 방안을 요청하겠다. 이렇게 하면 세계인들이 감동하는 자원봉사가 될 것이다. 그 첫 번째 행사로 28일 대구시민운동장 축구장에서 자원봉사 발대식과 대규모 콘서트를 연다. →대회가 아직 국민적인 관심을 끌지 못하는데.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46%가 세계육상대회 개최지와 개최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계올림픽 못지않은 큰 대회인데 국민의 관심 밖에 있다니 안타깝다.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자원봉사단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학 홍보단, 시민 봉사단 등을 통해 대회를 적극 알리겠다. 최근 일부 대학생들이 국토대행진 등 홍보활동을 벌여 고무적이다. →국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대구만의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적인 행사다. 유치 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대구 혼자 발버둥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국민 모두가 세계육상대회 홍보대사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적극 참여해 주길 바란다. 대구는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과 성원을 바라고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28일 대경대서 ‘세계육상 성공기원’ 콘서트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성공 개최를 위한 시민자원봉사단 발대식과 빅콘서트가 대회 D-30일인 28일 열린다. 행사를 주최하는 대경대는 대구시민운동장 축구장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붐 조성을 위해 ‘달려라 대경 빅 콘서트’를 무료로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행사에는 대회 공식 주제곡인 ‘레츠 고 투게더’(Let’s Go Together)를 부른 가수 인순이와 허각이 출연해 멋진 무대를 선보인다. 또 동부민요의 대가이자 대회 홍보대사인 박수관 명창과 트로트 가수 장윤정, 인기 걸그룹 씨스타, 소찬휘 등도 출연한다. 콘서트에 앞서 6000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단 발대식도 패션쇼 형식으로 열린다. 명예단장을 겸하고 있는 유진선 총장은 “이번 콘서트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준비를 시민들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짜임새 있게 준비했다.”면서 대구시·경북도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무상급식 투표, 찬반 아닌 선택 문제”

    오세훈 서울시장은 21일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찬반이 아닌 선택의 문제”라고 밝혔다. 오 시장은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강연에서 “다음 달 24일 전후로 치러질 주민투표는 ‘전면적 무상급식안’과 ‘단계적 무상급식안’ 등 두 가지 문안 중 하나에 대해 지지하는 것”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오는 25~26일쯤 주민투표 발의 공고를 하면 ‘선거운동’ 레이스가 시작된다.”면서 “본격적인 공론화를 통해 세간의 오해가 점차 해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민투표청구심의회는 시민운동 연합인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가 지난 20일 제출한 주민투표 청구에 대한 심의를 통해 대상과 취지, 이유 등을 존중해 전면적 실시나 단계적 실시를 선택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오 시장은 “서울형 그물망 복지 철학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만 줌으로써 미래에 들어갈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며 “무상급식 논쟁은 굶는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가 아니라 어느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느냐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결식아동의 경우 지금까지 수백억원을 들여 방학과 주말까지도 점심을 거르지 않도록 챙기는 정책을 폈다.”며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자들에게도 5만원씩 나눠주자는 정책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분단된 대한민국은 일종의 섬이다. 우리가 통일을 생각하면서 복지정책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복지정책이나 교육정책이 나올 때마다 단편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사고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개헌과 관련해서는 “국력 낭비를 줄이고 국가 안정성을 도모하려면 대통령 선거와 총선, 지방자치단체 선거 주기를 맞추는 정치선진화, 개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잘해야 본전” “민원 피하자” 구청장 부인들 꼭꼭 숨었다

    “잘해야 본전” “민원 피하자” 구청장 부인들 꼭꼭 숨었다

    대통령의 해외순방이나 국내 행사 등에는 영부인이 동반한다. 어린이집 사업이나 한식세계화 사업 등 ‘영부인 프로젝트’도 있었다. ‘동네의 왕’인 서울시 구청장 부인들의 활동은 어떠할까. ●“구정은 직원과”… 아내 활동 반대 다수 5대 민선 구청장들은 비교적 진보로 손꼽히는 민주당 출신들이 많지만, 부인들의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다. 대통령의 업무가 국책사업 위주이지만 구청장의 업무는 생활밀착적이고, 지역경제인들과 깊은 관련이 있어 소소한 이권이 얽힌 민원들이 많다. 그 때문에 구청장 부인의 대외활동은 ‘비공식 민원창구’가 될 우려가 있다. 또 부인들의 활동은 과거 ‘옷로비 사건’과 같은 구설도 만들어낼 것이라는 걱정 탓도 적잖다. 국회도서관장을 지낸 유종필 관악구청장도 도서관 사서 출신인 부인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공·사석에서 고백하지만, 부인이 구청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행사장에서 주민들을 만나게 되면 거절하기 쉽지 않은 민원들이 친구처럼 따라 들어오기 때문이다. 공식·비공식 구행사에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사진촬영이 취미활동인 부인은 남이 알아볼까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행사장을 방문해 남편 사진을 몇 장 찍고 홀연히 사라진다. 유 구청장의 주변에서 낡은 모자를 쓰고, 사진을 열심히 찍는 중년의 여성이 있다면, 그는 유 구청장의 팬이 아니라 그의 부인인 양욱미씨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구청장의 배우자가 움직이면 힘들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아내가 낮은 자세로 주민들과 만나고 활동해도 잘해야 본전이고, 조금만 어긋나도 ‘남편이 구청장이지 네가 구청장이냐’는 말이 나온다.”면서 “행사나 사업에서 구청장을 대리하는 사람은 부구청장이나 국·과장”이라고 말한다. 박겸수 강북구청장도 “새마을회, 적십자회, 각종 종교단체 봉사활동만 OK”라고 부인에게 일러놓았다. 그래서 부인은 지난해 ‘김장담그기 행사’에 자주 참석했다. 박 구청장은 “아내의 대외활동을 묶어 놓은 것은 보수적인 게 아니라 원칙적인 행위”라고 말한다. 취임식 때 딱 한 번 동부인한 이후로, 그는 구청장 부인과 국장·과장 부인들과의 봉사단체 결성도 반대해 서로 얼굴도 모르도록 해 놓았다. 박 구청장은 “구정은 구청장과 1000여명의 공무원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교사 등 자기 일 집중하기도 이성 구로구청장은 “선거운동을 할 때 아내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나서지 않고 다소곳하다는 게 이유였다.”면서, 나서지 않는 미덕을 강조했다. 서울시 고위 공무원 시절에도 부인은 국장부인 봉사단 활동에 간신히 참여할 정도였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입양한 두 아이까지 포함해 자녀 양육에 바빠 부인의 대외활동이 어렵다고 했다. 부인이 직업을 가져 구청장 부인 역할을 못하는 사례도 있다. 노원구의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마들주민회’의 이지현 대표는 김영배 성북구청장의 부인이다. 마들주민회는 상계어머니학교의 후신으로, 여성들의 문맹 퇴치에 힘써온 풀뿌리시민운동단체다. 최근 노원구가 노점상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마들주민회가 반대해 살짝 갈등을 빚고 있다. 성북구청장과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노무현 정부 때 4년 동안 청와대 행정관에서 비서관으로 각각 승진한 ‘절친 선후배’인 만큼 이 갈등에 서로 불편을 느낄 수도 있겠다. 김 성북구청장은 “아내가 ‘누구의 부인’으로 사는 것을 싫어하고, 독립적이기 때문에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때 사패산 터널공사를 두고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시민단체가 마들주민회였고, 당시 김 구청장은 청와대 행정관으로 정부정책을 지지한, ‘독립적’ 활동의 경험이 있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의 부인은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덕분(?)에 구청에는 취임식을 제외하고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 문소영·김지훈기자 symun@seoul.co.kr
  • [Q&A] “정치권에 오니 진보가 되더라”

    Q 누구를 통해 정치에 입문했나. A 손학규 대표가 통합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왔을 때 선배가 전북 지역 조직을 맡았다. 나에게 도와 달라며 손 대표의 책을 두고 갔다. 학생운동을 하다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붙잡혔다는 내용이 들어 있더라. 진정성 있는 사람 같아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Q 손 대표의 측근으로 불리는데 부담감은 없나. A 난 손 대표와 가까운 국회의원, 참모들과 개인적 인연이 없다. 세력화가 아닌 개인적으로 교감을 나눈다. 측근이란 표현은 좋다. 그 사람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고 교감하는 것도 상당하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나은 방향으로 갈 것이란 확신도 있다. 나의 행보에 손해가 있다고 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Q 정치권에 들어와 보니 어떤가. A 정치인들은 진정성이 없다. 매번 사람들의 어려움을 얘기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게 본인에게 유리한가를 판단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닐까. Q 본인은 어떤 정치를 하고 싶나. A 공감하는 정치를 해야 살아남는다고 본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해야 한다. 특정 정당에 휩쓸리는 것, 개인 정치를 하는 것에 문제를 느끼는 내 또래들이 정치 주류를 이룬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Q 이념적 성향은 어떤가. A 정치를 하기 전에는 한번도 내가 진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정치권에 오니 진보가 되더라. 대한민국 정치는 매우 보수화돼 있다. 민주당이 가장 애매하다. 더 진보로 가는 게 옳다. Q 대변인을 지냈다. 어떤 원칙으로 논평했나. A 적정 수준의 비판과 자기 주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적 성찰 없이 상대를 비방하고 폄하하는 건 당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공멸하는 것이다. Q 매형이 진보정당 연구소장, 형이 시민운동가라 야권 통합에 대한 느낌이 남다를 듯하다. A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 통합으로 가야겠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건 문제가 있다. 시점을 정해 2~3개월 야권 통합을 위해 노력하고 불가능하면 규정을 만들어 야권연대, 정책연합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가상 정당은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 Q 지난 4월 국회 사법제도개선특위에서 중도 하차한 이유는. A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검찰개혁소위에 있었는데 검찰의 권력을 견제할 공직수사비리처 신설 카드를 너무 쉽게 양보했다. 검경 수사권 개시는 국민 삶과 아무 관계가 없다. 기관 간 권리 다툼으로 허우적대는 사개특위는 본질이 왜곡됐다. Q 트위터에 ‘미래를 만드는 정치인’이라고 썼더라. 무슨 의미인가. A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기보다는 10년 뒤 비전을 내다보고 정치를 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이춘석 의원은 ▲1963년 전북 익산 출생 ▲전북 남성고·한양대 법학과 ▲사법고시 30회 ▲군법무관 ▲원광대 법학대학원 석·박사 ▲취미:영화감상 ▲롤모델 정치인: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이념정체성은 진보이나 좌우 포용해 생활정치를 함) ▲좌우명:타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원칙은 타협하지 않는다. ▲혈액형:B형 ▲가장 자랑스러운 스펙: 익산 무변촌 1호 변호사 무료법률상담 ▲최근 읽은 책: 위험한 경제학(선대인 저, 외형적 성장의 위험)
  • “44개 의약품 분류 기대 못미쳐 약사법 개정 입법청원도 펼칠것”

    “44개 의약품 분류 기대 못미쳐 약사법 개정 입법청원도 펼칠것”

    10년 넘게 계속되던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란이 44개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하는 것으로 일단 정리됐다. 사태가 일단락되기까지 약의 안전성과 소비 편의성 사이에서 무엇이 우선하는지 정부부처 간 또 이익단체 간에 치열한 논리 경쟁이 벌어졌다. 특히 이번 논란에서는 시민단체들이 강한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외곽에서 끊임없이 이슈를 제기해 온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 조중근 공동대표를 16일 만나 이번 약국 외 판매 결정과 향후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심야에 약 구하기 힘든 현실 조 대표는 “그동안 우리 비정부기구(NGO) 운동이 거대담론이나 정치 이슈에만 관심을 가져왔다.”면서 “국민생활과 연관된 것이 무엇인지 늘 고민해 왔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18년 넘게 일하는 등 경제단체와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했던 조 대표는 평소 느꼈던 ‘심야시간에 약을 살 수 없는 불편함’을 시민연대의 이름으로 해결해 내는 뚝심을 보였다. 그는 “가정상비약에 대해 소비자들에게도 자기결정권이 있다.”면서 이번 운동을 소비자운동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세무회계학과 교수로 알고 있다. 전공과 관련도 없는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혹시 개인적인 불편함이 계기가 된 것인가. -개인적으로 학교와 시민운동을 함께 하며 몸이 많이 피곤하고 아팠다. 주말에 약을 사러 나가 보니 아파트 단지 주변에 문을 연 약국이 하나도 없더라. 이때 문제의식을 느꼈다. 또 아들이 밤중에 몸이 많이 아픈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심야시간에 약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연대를 출범시킨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해 말 대통령이 부처 업무보고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시민운동이라고 아무 때나 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말을 듣고 이때다 싶었다. 주변의 NGO 관계자들에게 얘기했더니 반응이 좋았다. 처음 1월에 25개 단체가 함께해 시민연대가 출범했다. 이 운동에 공감하는 단체를 더 모으겠다고 약속했고, 지금은 100개로 늘었다. 또 이번 운동이 서울 중심으로만 이뤄져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해 부산, 광주, 전북, 인천 등으로 지역 시민연대를 확대시켰다. ●중앙약심 서민위한 리더십을 →44개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했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궁극적으로 약사법을 개정해야 한다. 물론 복지부는 그동안 약국 외 판매에 적극적이지 않았고, 특정 직역을 편든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러한 입장과 비교하면 큰 변화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이 기대하는 수준에는 못 미친다. 해열진통제가 한 사례다. 이번 의약외품 분류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44개 품목 중 절반이 생산되지 않는 품목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이번만큼은 예전과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다. →정책 추진 과정에 대한 평가는. -지난 3일 복지부가 발표한 첫 대책을 보면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고, 특수장소 확대는 약사회 반대 때문에 못한다고 했다. 약사회 때문에 못한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약사회의 당번약국제 실시를 함께 소개했다. 부처의 정책에 특정 직역이 제시한 대안이 포함되면 오해를 살 수 있다. 또 같은 사안을 계속 다른 단어로 얘기하면 국민만 혼란스럽다. →중앙약심이 다뤄야 할 다음 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원칙적으로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는 약사법 개정이 안 되면 어렵다. 전문·일반의약품 전환에 앞서 어떤 약을 약국 밖에서 더 팔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 약사법 개정안의 국회 상정이 우선이다. 전문·일반의약품 전환은 직역단체의 영역 다툼과 다르지 않다. 이를 우선하면 국민들이 어떻게 보겠나. 물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이익에만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 입장에서 회원들을 설득할 필요도 있다. 회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 ‘섬기는 리더십’을 보여 주기 바란다. ●“자기결정권 확대 소비자운동” →시민연대의 향후 계획은. -과연 약사법 개정이 잘 될지 지켜보겠다. 문제가 있다면 다시 나설 것이다. 이제 국민들의 눈이 국회로 향할 것이다. 약사법 개정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규탄집회도 논의 중이다. 또 입법청원도 진행할 것이다. 밤에 몸이 아파도 응급실에 못 가는 어려운 서민들도 있다. 약을 못 구해 병원에 가면 건강보험 재정에도 좋지 않다. 약국 외에서 가정상비약을 팔자는 것은 서민을 위한 정책이다. 나아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확대하는 소비자운동의 하나로 이해해 달라.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시론] ‘문화재 환수’가 겨레의 단합 계기되길/혜문 스님·조선왕실의궤환수委 사무처장

    [시론] ‘문화재 환수’가 겨레의 단합 계기되길/혜문 스님·조선왕실의궤환수委 사무처장

    지난 11일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축하하는 국민환영 행사가 경복궁에서 열렸다. 하루 앞선 10일에는 한·일도서협정이 발효돼, 일본 궁내청이 소장한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1205책의 도서도 조만간 귀국할 예정이다. 약탈 문화재의 연이은 귀환으로 ‘문화재 환수 운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정부도 ‘민·관 협력 문화재 환수 전담 기구’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이미 문화재청은 6명으로 구성된 ‘국외문화재팀’을 발족, 해외 문화재 반환을 위한 지원에 나서고 있다.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환수’ 문제는 아직까지 그다지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우선 어떤 문화재를 우선적으로 환수해야 하는지 문제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가 수십만점이라지만 모두 환수 대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환수 대상 문화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불법적 유통경로’를 추적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불법적 유통경로를 규명한 대상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직지심경과 같은 문화재는 안타깝게도 ‘불법거래된 문화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현재까지 문화재 환수 성적도 저조하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돌려받은 문화재를 제외하고 우리가 돌려받은 국보급 문화재는 2006년 일본 도쿄대학으로부터 환수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책이 유일하다. 그나마 귀국 직후 고궁박물관에서 두 달 동안 전시된 뒤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져 지금까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환수된 문화재의 관리 역시 부실하기 짝이 없다. 도쿄대로부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돌아오자 서울대 규장각은 겉 표지에 ‘규장각 장서인’을 날인, 국보 훼손이 아니냐는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6·25 당시 미군이 약탈했던 ‘명성황후 표범 카펫’은 1951년 미국 정부가 우리정부에 반환했으나 지난해까지 행방이 묘연했다.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가 관련 사실을 조사하고, ‘국민감사’를 청구하자 부랴부랴 소재 파악에 나섰고 그제서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60년 만에 발견되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 문화재 환수에 대한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몇 번 참석한 적이 있었다. 문화재 전문가라는 학자들과 정부 관료, 시민운동가들이 모여 앞으로의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분들의 발표와 주장을 들어보아도 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일단 ‘문화재 환수 운동은 상대가 있는 운동이고, 그 상대란 것이 대개 선진국이기 때문에 신중한 대응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응책의 골자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렇게 신중하고 예의바른 노력으로 인해 환수된 문화재는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검증된 적 없는 이론에 불과하거나 외국의 사례를 분석하는 초보적 수준에 불과한 이야기임을 증명한다. 이런 미숙한 상황에도 불과하고 침략으로 약탈당했던 문화재들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놀라운 변화이다. 이것은 우리가 먹고 살기 급급했던 시절을 넘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신호이다. 남북으로 분단된 민족이 ‘한마음’으로 단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문화재 환수’ 운동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외세에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는 문제에는 남북한과 해외동포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뭉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에 되돌아올 예정인 일본 궁내청 조선왕실의궤에 관한 소식을 일본의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북한에서도 의궤 반환문제를 중요한 소식으로 전하고 있다고 한다. 빼앗긴 문화재의 제자리 찾기가 분열된 우리 민족의 제자리 찾기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發願)한다.
  • [내 정치를 말한다] (6)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한다] (6)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대학에서 군사독재 반대를 외치다 제적당하고,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구속됐던 내가 시의원과 구청장을 거쳐 진보정당 최초의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됐다. 단 한순간도 편한 적 없었던 내 인생 한가운데엔 짠 바다 냄새와 메케한 화약 연기가 뒤섞였던 고향 울산이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운동의 메카, 진보 1번지가 된 울산. 이곳에서 나는 사회과학 서점을 차리고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 파견 철폐를 외치며 분신했던 봄날, 내 손을 잡고 “노동자는 하나.”라며 눈물을 글썽일 때 나는 다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진짜배기 진보 정치인으로 서 있겠다고. 진보정치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렇듯 내 정치의 굳은살이 됐다. 어린 시절 난 평소에는 조용한 편이었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앞장서 대드는 소년이었다. 그런 탓인지 동국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민주화 투쟁에 뛰어들었다. 군사독재를 반대하는 유인물을 돌렸고 1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뒤이어 인천에 있는 공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시 한번 징역(징역 10개월, 자격 정지 1년)형을 받게 됐다. 1988년 울산에서 인문사회과학 서점(신새벽)을 열고 당구장을 개업하면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울산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을 만드는 데도 참가했다. 활동을 할수록 ‘이제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32살의 어린 나이에 기초의원 출마를 결정했다. 1998년 최연소 구청장, 민주노동당 창당, 2004년 총선 당선. 조금씩 조금씩 진보 정치의 희망을 일궜다. 30대와 40대를 선출직 공직자로 살아가면서 한나라당, 민주당의 양당 구도가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8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못했다. 국회에서 에너지복지법,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사회복지세법을 만든 것은 작은 시작이다. 이제 진보정치를 향한 더 큰 꿈이 익어가고 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진보적 교수 단체 등과 오는 9월까지 새로운 진보 통합 정당을 창당하려 한다. 한국 정치 구도를 보수, 자유, 진보로 나누기 위한 첫 발돋움이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아들과 함께 ‘등록금 촛불 집회’에 앉아 있는 이 순간에도 ‘서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챙기는 정치’,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를 챙기는 정치’를 꿈꾼다. ● “참여당 한·미 FTA 반성 안하면 공조 못한다” →왜 정치를 하나. -(비정규직 노동자 등 어려운 이웃에 대한) 부채 의식 때문이다. 진보적 의제를 하나하나 이뤄갈 것이다. →최연소 시의원과 최연소(34세) 구청장이었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큰 선거에만 희망을 쏟지 말고, 지방선거에도 참여해 진보정치를 확산하자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핵심 지지 기반인 현대차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지역 핵심 기반과 정치 핵심 의제가 상충하는 것 아닌가. -현대차 노조의 지지는 노동자 권리와 진보정치를 지킨 데 대한 응원이 아닐까. 현대차 노조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의 산별 전환은 노동운동의 대의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다. 진보 전체의 책임을 개별 기업에 물어서는 안 된다. →진보 대통합 논의와 관련, 지난 11일 전국위원회에서 진통이 심했다. -독자파는 합의문 동의안을 상정한 뒤 기권했고, 통합파는 동의안이 성립 안 된다며 기권했다. 정치적인 의사 표현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합의문을 왜곡한다며 조 대표를 비판했다. -결혼식 날짜 잡아 놓고 바람 피우는 것 아니냐는 표현까지 당내에서 나왔다. 부적절한 동맹에 대해 언급한 것은 부적절한 언행이다. →그럼에도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국민 참여당 대표가 거리를 좁히고 있는데. -부부가 재결합하려는데 유랑극단 3류 가수가 추파를 던져 불편하다. 유 대표가 진보정치를 소수파 전략으로 폄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참여당이 신자유주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성찰하지 않는 이상 동행하기 어렵다. →진보 대통합이 실패할 경우, 다음 진로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실패를 가정하고 싶지 않다. →민주당은 진보정당과 합의할 정책이 많아졌다는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엔 샛강이 있지만 진보정당과 민주당 사이엔 한강이 흐른다. 시간 낭비다. →분당 때 선도 탈당파였다. 지금 통합에 앞장서는 이유는. -민주당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국민들이 많다. 진보 정치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정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은. -진보 진영 첫 광역단체장을 만들고 싶다(울산시장이냐고 묻자 부정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보스턴 마라톤에 도전하고, 목수가 돼서 내 집을 짓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노회찬·심상정 상임고문을 평가한다면. -노회찬 상임고문은 모든 사안을 대중적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심상정 상임고문은 당차고 친화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를 꼽는다면. -조국 교수, 노회찬·심상정 상임고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진보 인사들이 국민경선으로 단일 후보를 결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는 ▲1962년 울산 출생 ▲동국대 생명자원경제학과, 울산대 정책대학원 행정학 석사,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 수료 ▲울산·인천 등에서 현장 노동자 활동 ▲울산 사회과학서점 ‘신새벽’ 운영 ▲민중당·진보정당추진위원회 활동 ▲울산광역시의원, 울산참여연대(준) 공동대표 ▲울산북구청장 ▲진보정치연구소장·에너지정치센터 대표 ▲17·18대 국회의원 ▲(현) 진보신당 대표
  • 한국 찾은 히딩크 “박지성은 이제 유명한 선수다”

    한국 찾은 히딩크 “박지성은 이제 유명한 선수다”

    ”박지성은 이제 유명한 선수가 됐다.” 거스 히딩크(65) 터키 대표팀 감독이 11일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제자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만났다. 이 자리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도 함께 했다. 히딩크 감독은 14일 오전 울산시 동구 전하시민운동장에 있는 ‘히딩크 드림필드 풋살장’ 개장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히딩크 드림필드 풋살장은 6000㎡의 규모에 풋살경기장 1면, 족구장 2면, 주차장 29면 규모다. 그는 박지성의 지난 시즌 활약과 관련, “박지성은 존경받아 마땅한 선수이고 이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선수가 됐다.”며 그의 성장을 대견해 했다. 이어 “박지성은 겸손함을 지녔으며 훌륭한 인성을 갖췄다. 박지성을 볼때마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을 다시 만나게 돼 반갑다. 감독님이 아직도 건강하셔서 기쁘다. 히딩크 감독님은 내가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히딩크 감독은 또 “월드컵 이후에도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서 좋다. 드림필드를 여러 개 지을 수 있었던 데는 정몽준 회장의 힘이 컸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히딩크 감독은 잇따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사령탑 부임설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최근 물러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후임으로 거론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2009년 2월부터 6월까지 첼시를 이끌며 팀을 FA컵 정상에 올려 놓으며 지도력을 인정 받았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홍대 앞 ‘작은 용산’ 두리반, 531일만의 ‘희망가’

    무차별 재개발로 쫓겨날 처지에 놓였던 제2의 용산 ‘두리반’이 삶의 터전을 지켜냈다. 제대로 된 보상 없이 가게가 철거될 위기에 놓였으나 현 장소를 떠나 인근에 새 가게를 열 수 있도록 지원받으면서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다. ●이주대책 극적 합의… 인근에 새 가게 8일 낮 12시 서울 성산동 마포구의회에 있는 다목적실에서 서울 동교동 167-31에 있는 칼국수집 ‘두리반’이 건설 시행사인 남전디앤씨와 이주대책 및 민형사상 분쟁의 처리, 합의에 대한 위약벌 조항에 대해 합의했다. 두리반은 현 장소를 떠나 인근에 새 가게를 열게 됐다. 두리반은 2006년 3월 마포구의 지구단위개발계획 지구에 포함돼 2009년 12월 24일 강제철거가 시작됐다. 이후로 주인 안종녀(53·여), 유채림(51)씨 부부는 8일까지 531일 동안 농성을 해 왔다. ‘작은 용산’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두리반을 지킨 것은 인디 뮤지션, 대학생, 시민운동가 등이었다. 특히 인디 뮤지션에게 두리반은 없어져서는 안 될 마지막 보루였다. 홍대 인디문화를 형성한 2000여명의 뮤지션들이 공연할 클럽은 기껏해야 10곳 남짓. 그중에 절반 정도는 재개발 지구에 포함됐다. 갈곳 없는 뮤지션들은 쫓겨날 처지에 있는 두리반에 주목했다. 남편 유씨가 소설가라는 같은 예술 계통에 있다는 것에도 공감했다. 인디 뮤지션들은 이곳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이들과 함께 교대로 가게를 찾아와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가게를 지켰다. 그동안 두리반은 음악회, 영화상영 등이 열리면서 철거대상건물에서 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갈 곳 없는 인디 뮤지션들 힘보태 합의를 이루는 순간도 어려웠다. 이날 합의문 조인식은 오전 11시가 예정이었지만 두리반 대책위원회가 사전 조건으로 제시한 마포구, 마포경찰서 측 인사가 12시 가까이에 도착해서 한때 합의가 결렬될 위기까지 있었다. 남편 유씨는 “오랜 투쟁이 마무리되어 다행이다. 이제 다시 칼국수를 뽑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하며 두리반을 지지한 사람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정치이슈 Q&A] 6일 출범 선진통일연합… 가능성과 한계

    [정치이슈 Q&A] 6일 출범 선진통일연합… 가능성과 한계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주도하는 ‘선진통일연합’(선통련)이 6일 출범한다. 국내 300개 지부, 해외 30개 지부를 목표로 발기인만 1만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조직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선통련은 ‘선진’과 ‘통일’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 떠오르는 전국적인 조직이어서 한나라당 등 정치 지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선통련의 성격과 활동 방향을 둘러싼 정치권 안팎에서의 논란을 Q&A로 정리한다. Q 정치단체인가, 시민운동 단체인가. A 시민운동을 표방한 정치단체 선통련은 스스로를 ‘선진과 통일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국민운동 단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선통련에 참여하는 의원들은 선통련이 필요할 경우 정치조직으로 변환할 수 있으며, 내년 총선에서 후보를 낼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일부 의원은 선통련이 한나라당, 자유선진당과 통합할 가능성도 부인하지 않는다. 선통련 자체적으로도 국민운동으로 확산된 요구를 정치현실에 담아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치 참여 자체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고 있다. 박세일 이사장과 선통련 관계자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선통련은 이미 정치적인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Q 뉴라이트 운동과 다른점은. A 뉴라이트보다 대중적인 조직과 운동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반감, 자기 혁신이라는 출발점은 같다. 박세일 이사장이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러나 뉴라이트 운동이 소수 전문가 그룹별로 차별화 전략을 통해 전개됐다면, 선통련은 범국민이 참여하는 상향식 개혁을 모색한다. 뉴라이트보다 외연을 넓혔다고 볼 수 있다. Q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 A 정치이슈 선점과 전국 조직화 정치 이슈화와 조직 확대를 병행해 갈 계획이다. 기존 정치권에서 내년 총선·대선의 최대 이슈로 복지를 꼽고 있지만, 선통련은 더 큰 가치로 선진과 통일이라는 화두를 내걸었다. 새로운 정치이슈 선점과 함께 차별화를 통한 중도진영 껴안기라는 측면도 포함돼 있다. 앞으로 정치제도 개편, 정치지도자 교육·양성 운동도 벌일 계획이다. Q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가. A 십시일반? 선통련은 국민운동에 맞게 자력갱생 원칙을 세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발기인 대회는 박 이사장의 개인 재산 출연과 발기인들의 모금으로 치렀다. 발기인에 참여한 1만여명의 회원들이 형편 껏 회비를 낸 자금으로 운영해 간다는 방침이다. 회원별로 월 1000원, 5000원, 1만원 단위로 회비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지역별 조직들도 지역 내에서 모금된 회비를 가지고 독립채산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방대한 국내외 조직을 운영하는 데 회비 납부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선통련의 자금 출처에 대한 의혹이 정치권 일부에서 계속 나오며, 이 부분을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선통련이 안착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될 수 있다. Q 한나라당과의 관계는. A 관계없다 vs 예비군 or 보완재 박 이사장은 올해 초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과 통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선통련을 한나라당의 대체재 또는 보수연합을 위한 매개체로 여기는 경향이 크다. 일각에선 선통련이 전국조직으로서 본궤도에 오를 경우 독자 정당화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선통련 핵심 관계자는 이런 정치권의 시각이 하나의 ‘바람’일 뿐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Q 친박계가 바라보는 선통련은. A 친이계에 가까운 조직? 친박계는 선통련이 기본적으로 내년 대선을 겨냥한 친이계 성향의 조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선통련을 이끄는 박세일 이사장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 부상할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선통력의 파급력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한다. 이미 ‘박근혜 대세론’을 꺾기에는 시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대권 경쟁 과정에서 의외의 변수가 될 가능성은 있기 때문에 경계의 끈을 늦추지는 않는 분위기다. Q 친이계가 바라보는 선통련은. A 마지막 변수 박근혜 전 대표 및 친박계의 독주를 달가워하지 않는 친이계 측에서는 선통련이 ‘박근혜 대세론’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마지막 변수로 인식하고 있다. 친이계 측도 이미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박근혜 전 대표가 내년에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선통련이 규모와 참가자 면면으로 볼 때 박 전 대표의 전국 조직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범여권 측 조직이기 때문에 친이계의 새로운 후보가 등장하는 등 변수가 생길 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Q 박세일 이사장은 정치적 야망이 있나? A 본인은 ‘없다’… 외부선 ‘있는 것 같다’ 박 이사장은 선통련의 활동이 통일을 위한 순수한 국민 운동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통일 자체가 한국에서는 ‘큰 정치’를 상징한다. 따라서 박 이사장의 개인적인 뜻과는 무관하게 이미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오게 된 셈이다. 선통련 관계자들은 박 이사장이 보수진영의 ‘이론가’에서 ‘활동가’로 변모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3)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한다] (3)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나의 정치 역정은 ‘내면의 민주화’로부터 시작됐다. 긴급조치 시대에 학생운동을 시작한 나는 ‘독재 타도’를 꿈꿨으며,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감옥에서 맞이했다. 광주의 처참한 희생 위에 등장한 전두환 정권이었기에 ‘절대로’ 평화적인 정권 교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민들이 해냈다. 투사의 힘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세상의 곡절을 안고 살아가던 시민의 힘으로 6·29 선언을 이끌어낸 것이다. ‘넥타이 부대’ 이야기나 시위대에 김밥을 건넨 노점상 이야기 등 창살 밖 세상의 변화는 나에게 낯설었다. 국민이 주권자임을 나는 처음으로 실감했다. 6월 민주항쟁은 나라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경직된 나의 내면을 민주화시키는 계기가 된 셈이다. 재야의 한 흐름이었던 민중당에 참여했다가 실패한 이후 나는 허기진 마음으로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새롭게 찾자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정치 개혁 시민운동에 몸담기도 했다. 그리고 1997년 대선 직전 내가 속했던 ‘꼬마 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을 통해 탄생한 한나라당의 옷을 입게 됐다. 참 어색한 옷이었다. 그러나 야당이 된 한나라당이 나에겐 정치적 둥지이자 개혁 대상이었다. 한나라당에서 줄곧 쇄신파의 길을 걸어 온 것은 숙명과도 같았다. 내 지역구는 야당의 텃밭이자 진보적인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관악구갑이다. 보수가 건강하고 정의롭고 민주적이지 않으면 수구일 뿐이며, 민생을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존재의 이유를 부정당한다는 것을 예민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곳이다. 두 번 낙선 끝에 2008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나는 홈페이지 대문에 ‘바르게 소신껏’이라는 슬로건을 걸어 놓았다. 권력에는 정의를, 시장에는 공정을, 국민에게는 기회의 사다리와 안전망을 줄 수 있는 21세기 정책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등원 이후 경제정책과 입법 중심의 의정 활동에 진력했는데, 해마다 ‘최우수 의원’으로 평가받는 보람을 얻기도 했다. 여당 의원이지만 무리한 감세에 반대했고, 경쟁력과 사회적 안전망 강화를 조화롭게 추진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진정 국민 통합을 생각한다면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시 부르게 하라고 대정부 질문에서 총리와 보훈처장을 질타하기도 했다. 뜻을 같이하는 초선의원들과 ‘민본21’을 만들어 정의롭고 절제된 권력의 사용과 진정한 친서민 정책을 주장했다. 감히 말해, 내가 정치를 하는 것은 정치의 질을 높여 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정치 개혁은 일거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스스로 현실 정치의 모순을 안고 한 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거듭 체감하게 된다. 그래도 다짐한다. 늘 성찰하되 주저앉지는 않으리라. 언젠가는 대한민국 정치에 희망의 신주류를 만들어 보리라. 건강한 보수를 추구하며 진보와도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정치 말이다. ■ 김성식 의원은 ▲1958년 부산 출생 ▲부산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민주화 시위로 1978년, 1986년 두 차례 투옥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나라정책연구원 정책기획실장 ▲CBS 시사자키 시사평론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경제·예산 담당) ▲경기도 정무부지사 ▲18대 국회의원 ▲초선모임 ‘민본21’ 대표 간사 ▲한나라당 정책위부의장(경제 담당)
  • [나와 통일] (14) 강원철 탈북 시민운동가

    [나와 통일] (14) 강원철 탈북 시민운동가

    내 고향은 함경북도 무산이다. 1998년 중국을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산광산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돈을 벌 생각으로 중국에 갔고, 거기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들었다. 17년간 북한에서 배운 것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탈북을 결심했다. 남한의 많은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한 부담을 크게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게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통일이 두렵고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탈북자들은 중국에서 수개월 혹은 수년에 걸쳐 자본주의나 시장을 경험하고 들어오지만 대다수가 힘들게 산다. 하물며 평생을 폐쇄된 공산주의에서 살아온 북한 주민들이 겪을 혼란은 얼마나 클까. 통일이 돼서 남북한 주민들이 섞였을 때의 혼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탈북자 중에서도 통일에 굉장히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통일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것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통일이 아름다운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아무 준비도 없이 통일만 외친다면 통일 이후의 한반도는 어떻게 책임질 수 있을까. 남북 통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물리적 국토 통합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산가족이나 군사적 대치 등의 문제는 통일이 아니어도 해결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 가듯 북한 왕래가 자유로워지고, 전화와 이메일이 자유로워지면 그것 자체가 통일이다. 물론 이렇게 되려면 북한이 문호를 개방하고 국제사회로 걸어나와야 한다. 남한의 통일 정책이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통일에 대비해 통일세를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북한 사람들이 시장경제를 경험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통일세가 마치 북한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한 준비로 비치곤 한다. 이런 시각은 북한 사람으로서는 자신들을 무능력하고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다루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이 생활력은 훨씬 강하다. 조금이라도 시장을 열어 주고 살 수 있는 틈을 준다면 북한 사람들도 자력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하다. 쌀을 지원하는 것도 설사 주민들에게 쌀이 전달된다 하더라도 나는 반대한다. 일하지 않아도 쌀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통일 후에도 그들이 게을러지는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지원도 좋지만 북한이 경제협력이나 국제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북한인권단체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북한을 알리기 위해서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 문제나 통일에 관심이 없는 이유가 북한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고, 고향 땅에도 언젠가는 돌아가게 될 것이다. 남한에서의 활동이 쌓이면 고향 땅에 가서도 친척, 친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탈북자 친구들끼리 그날이 머지않았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하곤 한다. 북한은 지난 10년 동안 통제와 억압 속에서도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10~15년 후면 고향 땅에도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 시간을 앞당기느냐 늦추느냐는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잘 컨트롤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북한이 남한처럼 민주화와 시장경제가 잘 정착된 나라였으면 좋겠다. 통일은 북한이 남한만큼 경제가 성장한 다음 남북한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통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후손들에게 맡길 일이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여수엑스포 D-365일] “청결·친절·질서·인사 4대운동 추진”

    [여수엑스포 D-365일] “청결·친절·질서·인사 4대운동 추진”

    여수세계박람회는 낙후된 지역의 개발과 지구보존 문제를 공동관심사로 부각시켜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 여수 시민들은 이번 행사의 큰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세계박람회의 성공적 개최는 여수 시민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준비하고 있다. 역대 박람회의 개최 도시를 보면 시민들의 성원과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2007년 열린 독일 하노버 박람회는 시민 참여 부족으로 실패했다. 반면에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활동한 일본 아이치 박람회(2005년)와 중국 상하이 박람회(2010년)는 성공한 박람회로 평가받고 있다. 개최 1년을 앞두고 여수에서는 시민운동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바로 4대 시민운동이다. 깨끗한 거리를 만들고 차례를 지키며, 먼저 인사하고, 친절을 베풀며 배려하는 아름다운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시민 모두가 4대 시민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 [프로축구] 데얀 해트트릭… 최용수 연승쇼

    [프로축구] 데얀 해트트릭… 최용수 연승쇼

    최근 프로축구 K리그에 ‘수비 축구’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승강제 시행을 앞두고 팀 존폐의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일부 시·도민 구단들이 승점을 쌓기 위해 ‘선수비 후역습’의 전술을 펼치면서 골이 터지는 횟수가 줄어서였다. 수비 축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쯤 올 시즌 가장 잘 나가고 있던 포항 황선홍 감독이 “좋은 팀들은 수비 축구를 깰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줘야 진정한 좋은 팀”이라고 일침을 놨다. 그래도 필드 플레이어 10명 모두가 자기 진영에서 전진할 생각 없이 수비진을 치고 버티는 축구는 재미있는 축구가 아니다. 경남FC의 ‘역전노장’ 골키퍼 김병지는 이런 축구를 ‘나쁜 수비 축구’라고 했다. 김병지는 “그러면 좋은 수비 축구는 무엇인가. 상대 진영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거는 수비, 그러면서 상대의 진격에 따라 내려와 지속적인 압박을 펼치는 축구가 좋은 수비 축구”라고 정의했다. 이런 관점에서 8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벌어진 상주와 FC서울의 리그 9라운드 맞대결은 좋은 축구 경기였다. ‘독수리’ 최용수 감독 대행의 취임과 함께 2연승을 달리며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을 회복해 가는 FC서울은 시종일관 ‘공격 앞으로’였다. 올 시즌 스트라이커 변신에 성공한 김정우가 최전방에서 상승세를 이끄는 상주는 좋은 수비 축구로 맞섰다. FC서울은 중원에서부터 짧은 패스로 빈틈을 노렸고, 상주가 공을 잡으면 바로 압박에 들어갔다. 상주는 전방부터 압박을 시작했고, 공의 소유권을 확보하는 순간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전진했다. 후반에는 양 팀 모두 경기장 끝과 끝을 무수히 오가는 공방전을 거듭했다. 그 사이 무려 7골이 터졌다. 상주는 전반 18분 FC서울 박용호의 자책골을 시작으로 후반 1분 최효진, 후반 29분 김정우의 시즌 8호골로 한 걸음씩 앞서가는 FC서울을 꾸준히 따라갔다. 전반 9분과 35분, 후반 28분 데얀의 해트트릭에도 거듭 동점골을 허용했던 FC서울은 교체 투입된 현영민의 후반 42분 그림 같은 프리킥이 골망을 흔들면서 짜릿한 4-3 승리를 맛봤다. 리그 2연승 및 최 감독 대행 취임 뒤 3연승이다. 제주는 대구에 3-0 완승을 거뒀다. 인천은 대전 박은호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박준태의 동점골과 김재웅의 결승골로 2-1 역전승했다. 경남은 광주를 1-0으로, 부산은 포항을 2-1로 각각 꺾었다. 강원과 성남은 1-1로 비겼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영호남 천주교의 뿌리’ 대구대교구 100돌

    ‘영호남 천주교의 뿌리’ 대구대교구 100돌

    흔히 한국 천주교회의 시작은 1784년 사신 일행으로 중국 베이징에 갔던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돌아온 무렵으로 인식된다. 천주교 일각에선 이승훈의 출국 전 천진암에서 이미 공동체 형태의 교의연구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어 한국천주교회의 역사를 그 이전으로 거슬러 잡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한국 천주교회의 태동은 이승훈의 귀국 시점이란 게 통설이다. 한국에 교구가 생긴 건 그로부터 50년쯤 후인 1831년. 로마 교황청이 조선교구를 설립해 초대 교구장에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한 게 한국천주교 교구의 시초다. 조선교구는 설정 80년 만인 1911년 서울교구와 대구교구로 분리되어 대구교구는 경상·전라·제주지역을, 서울교구는 나머지 지역을 관할했다. 대구교구가 영호남 지역 천주교의 뿌리로 인정받는 이유다. 대구교구는 1937년 광주·전주교구, 1957년 부산교구 분리에 이어 1962년 대교구로 승격됐으며 1969년 또 한차례 안동교구가 분리된 역사를 갖는다. 한국 천주교는 그래서 대구교구의 설정을 놓고 ‘한국 천주교회의 본격적 성장을 알리며 근현대 교회사를 개막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한다. 이 ‘영호남 천주교회의 뿌리’라는 대구교구가 교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오는 7일부터 15일까지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갖는다. 경축행사 주제어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로 루카복음 10장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조건 없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며 참되게 살자는 의미에서 택했다는 게 대구대교구 측의 설명이다. 100년 전 2만여명이었던 교구 신자는 지난해 말 기준 45만 8000명으로 늘어났다. 대구광역시와 김천, 구미, 포항, 경주, 경산 등 경상북도 남부지역을 관할하고 있으니 남방교구의 위상을 여전히 지키고 있는 셈이다. 대구교구는 특히 초기부터 파리외방전교회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교구의 도움을 받아 활발한 사회복지활동을 펼치는 교구로 이름나 있다. 그래서인지 경축·기념행사도 대부분 생명나눔과 복지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게 특징이다. 경축대회의 대미는 마지막 날인 15일 대구 시민운동장 축구장에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3만여명이 참가해 열리는 100주년 감사미사. 주한 교황대사와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한 천주교 주교단이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와 함께 미사를 공동집전한다. 미사가 있을 시민운동장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사제서품식과 미사를 집전한 곳. 미사에는 파리외방전교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교구, 타이완 대중교구, 일본 나가사키 교구 등 해외 자매협력교구 인사들이 초청될 예정이다. 지난달 8일 대구 계산주교좌성당에서 막이 오른 제2차 시노드도 중요한 부분. ‘새 시대, 새 복음화’를 주제로 수차례의 총회와 협의를 통해 대구교구의 새로운 100년의 길을 모색하게 되는 만큼 다른 교구들도 주목하는 행사다. 대구대교구 교구장인 조환길 대주교는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가 모두 제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 진정한 복음화가 이뤄지고 복음이 멀리 퍼져 나가므로 각자 삶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프로방스서 전해온 감성·사유

    너나없이 쓸 수 있는 일기 또는 여행기다. 하지만 이 평범한 형식의 산문은 예술의 공간과 인물을 넘나들며 금세 몸을 뒤튼다. 알베르 카뮈의 글과 흔적과 접속하며 문학의 향기를 잔뜩 피워내나 싶더니 빈센트 반 고흐의 공간 안으로 들어가서는 빛과 색의 만찬을 한상 가득 차려낸다. 본업인 사회학적 사유 역시 빠질 수 없다. 경계짓기에서 자유로운 산문이 예술의 일부분이자 학문의 영역에 속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문학동네 펴냄)은 재불 사회학자이자 ‘전문 산책자’를 지향하는 정수복(57)이 발걸음을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로 옮겼다. 프랑스의 공간에 대해 쓴 세 번째 책이다. 정수복은 1980년대 프랑스에서 유학한 뒤 돌아와 1990년대 환경운동연합, 사회운동연구소 등에서 시민운동을 했다. 그리고 2002년 ‘정신적 망명객’으로서 프랑스로 터전을 옮겨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객원교수를 지냈다. 그는 2005년 여름 꼬박 한달 동안 프로방스 지역의 몇몇 작고 한적한 마을들에 머물렀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행자가 아닌 정주자(定住者)가 돼 느릿하고 단조롭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햇빛과 바람, 문학과 미술을 만끽하며 가진 성찰과 사유를 매일 기록으로 남겼다. 일기 중간마다 사람 냄새 가득한 ‘예술로서 사회학적 사유’의 글들이 들어 있다. 이는 ‘정수복식 글쓰기’를 완성케 하는 대목이자 그의 책이 단순한 여행기 또는 산문집을 넘어 예술과 교감하는 인문학적 산문집으로 자리매김되는 이유이다. 카뮈가 마지막에 살았던 루르마랭,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무대가 된 뤼베롱 산, 고흐가 말년을 지낸 아를 등의 기억은 이미 전작(前作)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과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과 또 다른 감성을 건넨다. 파리에서의 치열했던 지성이 조금 누그러진 느낌이다.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프로방스는 완전한 휴식의 시간과 공간이니까. 그는 “한국은 빨리빨리 병으로 인해 획일화됐고 그런 모습들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삶에 대한 영감을 메마르게 한다.”면서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느림의 가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청바지 입고 함께하는 문화 만들어가요”

    “청바지 입고 함께하는 문화 만들어가요”

    청바지를 입은 청년·장년들이 한데 모였다. 공통 문화코드인 청바지를 입고 ‘새로운 문화’에 머리를 맞댔다. 사회에 만연한 ‘자신만 생각하는 문화’를 넘어 ‘함께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신봉승 작가 강연… 인디밴드 공연 한국청년유권자연맹이 24일 오후 6시 30분부터 3시간동안 서울 홍익대 인근 롤링홀에서 ‘제4회 청연 비전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날 콘서트에는 에세이스트 신봉승 작가가 공개강좌를 진행했다. 인디밴드 ‘좋아서 하는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다. 이연주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운영위원장은 “‘제4회 비전콘서트’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청년 리더십을 주제로 한 총 3부작의 콘서트 중 1부에 해당한다.”면서 “추후 6월과 10월에 개최될 비전콘서트에서는 기존의 닫힌 공간을 넘어 현장을 찾아가고 청년문화를 창조하는 더욱 진화된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청연 비전콘서트는 ‘세상을 바꾸는 힘’, ‘우리가 대한민국의 주인입니다.’, ‘청년, 정치에 도전하다.’를 주제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이 강사로 나선 바 있다. ●청년 회원 4000여명… 멘토 100여명 한편, 한국청년유권자연맹은 2004년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산하 청년조직으로 출범해 활동해오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청년들이 책임지는 참여를 통해 사회변혁 및 미래를 창조하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지난해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독립을 추진, 지난해 1월 27일 창립하게 된 청년 시민운동단체다. 현재 20∼30대 청년회원 4000여 명과 40∼50대 각 분야 전문가 100여명이 지도회원(멘토)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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