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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장고: 분노의추적자’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장고: 분노의추적자’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2년 전, 치과 의사에서 현상금 사냥꾼으로 전향한 독일인 슐츠와 그에 의해 자유를 얻은 흑인 장고는 함께 악당 사냥에 나선다. 장고는 백인들이 강제로 헤어지게 한 아내와 재회하기를 원하는데 현재 그녀는 미시시피 대농장의 악랄한 지주 캔디의 손아귀에 잡혀 있다.  언제나 장르를 뒤틀어 온 퀜틴 타란티노의 신작 ‘장고: 분노의 추적자’(사진·이하 ‘장고’)는 신선하지 않은 신선한 영화다. 예전에도 ‘장고’와 비슷한 영화는 있었다. 말을 탄 흑인 남자의 버디 영화라는 점에서 시드니 포이티어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벅 앤드 더 프리처’(1971)가 한 예다. 각각 남북전쟁 직전과 직후를 배경으로 한 두 작품의 주제는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흑인의 투쟁이다. 두 영화는 백인 사회의 선을 기본으로 하는 옛 웨스턴과 동떨어진 작품이며 두 영화에서 흑인 총잡이(둘 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배우가 연기한다)와 유별난 괴짜 동료는 흑인을 야만적으로 착취하는 백인과 싸운다. 하지만 ‘벅 앤드 더 프리처’가 미국 시민권 운동의 결과물처럼 보이는 반면 ‘장고’는 스파게티 웨스턴과 미국 서부극 영화 감독 샘 페킨파(1925~1984)의 영향 아래 놓인다.  영화의 제목을 가져온 오리지널 ‘장고’(1966)에 대해서는 장고로 분했던 프랑코 네로에게 한 줄 대사를 안겨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영화적 관계를 정리한다. 그 밖에 독일인인 슐츠는 독일산 ‘카를 마이의 웨스턴’에 대한 농담 같은 인용이다. ‘장고’가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가져온 중요한 코드는 ‘분노’다. 분노란 게 성난 인물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냥 우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타란티노가 모를 리 없다. 스파게티 웨스턴이 ‘계급과 빈부의 문제’에서 분노를 빚었다면 ‘장고’는 미국 내에 상존하는 인종 문제를 분노의 화구로 삼는다. 흑인의 인권 보장이 당연시되는 21세기에 흑인 노예의 열악한 삶을 보면서 피 끓는 감정을 분출하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타란티노의 연출력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으로부터 야만성, 폭력성, 잔혹성, 낭만성을 빌려온 한편 클라이맥스에서 폭발하는 응집력은 페킨파의 웨스턴을 떠올리게 한다. 슐츠 역의 크리스토프 발츠가 페킨파의 1970년 작품 ‘케이블 호그의 노래’의 주연인 제이슨 로바즈와 빼닮은 모습으로 분장한 건 타란티노가 페킨파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더불어 ‘장고’ 후반부의 유혈극은 ‘와일드 번치’(1969)의 총격전을 실내로 옮겨 온 것에 다름아니다. 이성적으로는 도무지 설명될 수 없는, 피가 철철 흐르는 총격전의 엑스터시는 페킨파(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홍콩 누아르)의 영혼이 아니고선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장면은 타란티노 특유의 대화에서 나온다. KKK단의 아둔함을 ‘눈이 네 개 있어도 앞을 못 보는’ 미시시피 주에 빗대 야유하는 장면이 초기의 수다 스타일을 대표한다면 남부 대저택의 식사 장면은 그것의 발전된 형태를 보여준다. 각 인물은 장황하고 거창한 대사들을 주고받는데 말과 말 사이에서 수없이 전개되는 ‘가식, 유머, 불안, 의심, 분개’의 겨루기는 거의 미학적인 수준에 다다랐다. 이전 영화에서 설득력을 위해 쓰이던 ‘대화의 기술’은 ‘장고’에 이르러 감정 흐름의 극적 표현을 위한 궁극의 예술 형태로 완성됐다. 21일 개봉. 영화평론가
  • 김종훈, 美국적 1년 유지땐 한국국적 상실

    ‘이중국적’ 논란을 낳았던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그의 국적 처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전 후보자는 1975년 미국 이민 뒤 시민권을 획득하면서 한국 국적이 자동 상실돼 미국인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김 전 후보자는 장관직을 제안받으면서 지난달 8일 법무부에 한국 국적 회복을 신청했고, 14일 국적이 회복되면서 이중국적자가 됐다. 현행 우리나라 국적법은 국적 회복일로부터 1년 내에 외국 국적을 포기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회복된 한국 국적이 다시 박탈된다. 김 전 후보자는 앞서 장관직 수행을 위해 미국 국적을 포기할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미 대사관에 국적 포기 신청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김 전 후보자가 미국 국적만 선택하려 한다면 별도의 한국 국적 포기 절차 없이 미국 국적을 계속 유지하면 된다”면서 “이미 미국 국적 포기 신청을 했더라도 포기 절차에 상당한 기간이 드는 만큼 도중에 포기 의사를 철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 전 후보자는 가족이 모두 미국 국적자인데다 생활 기반이 미국인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한국 국적을 버리고 미국인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현오석, 보충역 복무·대학원 기간 겹쳐… 병역법 위반 의혹

    현오석, 보충역 복무·대학원 기간 겹쳐… 병역법 위반 의혹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본격화한 가운데 병역법 위반과 ‘이중국적’ 논란이 뜨겁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보충역으로 복무하며 대학원 학위를 취득한 배경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은 22일 “현 후보자의 복무 기간은 1974년 11월부터 1976년 1월이었는데 그의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수업 주간 과정이 1974년 3월부터 1976년 2월로 겹쳤다”고 지적했다. 공익근무요원이 학교에서 수학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는 것이다. 현 후보자의 큰아들인 낙승(29)씨가 친척이 운영하는 업체에서 병역특례(산업기능요원)로 병역 의무를 마쳤다는 의혹도 새로 제기됐다. 낙승씨가 근무했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정보기술 전문업체인 N사가 그의 외가 친척이 운영하는 업체라는 의혹이 나와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수행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현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에서 태어난 낙승씨가 2008년 12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가 지난해 초 다시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것에 대해 국적 세탁 의혹을 제기했다. 또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국가기록원 확인 결과 현 후보자의 부친인 현규병씨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순사였고, 1960년 4·19혁명 당시 시위대에 발포를 명령한 경찰이었던 사실이 밝혀졌다”고 폭로했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현역기피 의혹에 대한 해명이 거짓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 후보자는 보충역 판정을 받은 이유에 대해 눈 질환과 턱관절 장애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박홍근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서 후보자가 밝힌 ‘하악관절 탈구’(습관적 턱빠짐)는 당시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 규정상 불합격 판정 기준이었다. 하지만 서 후보자는 1979년 당시 문교부(현 교육부) 사무관으로 임용됐다. 이는 서 후보자가 현역병 복무를 피하기 위해 병역 신체검사를 조작했거나, 질환을 앓고 있었다면 공무원 채용 과정에서 이를 숨겼다는 의미가 된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수백억원대의 부동산 보유가 도마에 올랐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김 후보자가 배우자와 장인, 처남 등의 명의로 강남 상가 빌딩 2채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며 “미국에서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알려졌는데 국내에서 부동산 투자를 많이 한 것이 상식에 비춰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이 받은 후원금을 당에 기탁금으로 낸 뒤 이를 기부금으로 신고해 수천만원의 소득공제를 받은 것으로 이날 확인돼 논란이 예상된다. 진 후보자는 뒤늦게 과다 기부금 공제 세금 1200여만원을 반납했다.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은 “이동필 농림축산부 장관 후보자가 2011년 10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에 임명된 뒤에도 농협 자회사(한삼인)의 사외이사로 활동해 ‘원장의 겸직 금지 정관’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위키리크스 설립자’ 어산지 호주 상원의원 출마·당 창당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42)가 오는 9월 호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것이며, ‘위키리크스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18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어산지는 호주의 뉴스 사이트 컨버세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위키리크스당을 곧 출범시키고, 이번 상원의원 선거에서 몇 개 주에 후보를 낼 것”이라며 “선거 공약 선언문 초안은 완성됐으며, 법정 ‘당비(를 내는) 당원’ 500명은 쉽게 모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산지는 빅토리아주에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호주 퀸즐랜드주 타운스빌에서 태어나 호주 시민권자인 어산지는 빅토리아주에 있는 멜버른대를 졸업했으며, 2010년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어 출마에 필요한 최소 거주 요건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상원의원에 당선되면 미국 법무부가 외교적 마찰을 무릅쓰고 자신의 스파이 혐의를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혀, 출마가 기소를 피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했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박근혜 첫 내각 인선 완료] 김종훈, 지명 사흘전 한국국적 회복… 美이익 대변 경력도 논란

    [박근혜 첫 내각 인선 완료] 김종훈, 지명 사흘전 한국국적 회복… 美이익 대변 경력도 논란

    미국 국적자였던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흘 전인 지난 14일 한국 국적을 회복한 이중국적자로 17일 확인됐다. 국가안보와 기업 신기술 분야 등에는 외국 국적자의 공무원 임용을 제한하고 있어 김 후보자의 미래부 장관 임명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등에 따르면 미국 국적자로 알카텔루슨트 벨연구소 사장인 김 후보자는 1975년 이민 후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가 지난 8일 한국 국적 회복을 신청했고 14일 회복했다. 장관 지명 불과 사흘 전에야 갑작스럽게 한국 국적을 회복한 것이다. 김 후보자는 이와 관련, “이미 정리 절차에 들어갔다”면서 “나라를 위해 일하려면 한국 국적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미국 국적 포기 각서를 썼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2009년 벨연구소에 재직했던 윤종록 인수위 전문위원과의 인연으로 김 후보자가 미래부 장관 후보로 추천됐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 전문위원은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새 정부 핵심 가치인 ‘창조경제’의 주창자다. 미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성장한 김 후보자가 우리나라 장관으로 적절한 인사인지에 대한 지적도 있다. 1925년 설립된 세계 최고의 민간 연구개발 기관으로 꼽히는 벨연구소는 사실상 세계 시장에서 국내 대기업과 경쟁했던 곳이다. 김 후보자는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내게 기회를 준 미국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젊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미 해군 장교로도 7년간 장기 복무했다. 더불어 미국에서는 합법인 의회를 상대로 한 로비 등으로 성장한 그의 배경에도 의구심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 나스닥의 상장 청문 재심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은 관련 기업들에도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야당도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국가공무원법 제26조의 3항은 ‘국가안보 및 보안·기밀에 관한 분야’를 제외하고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미래부 업무는 보안·기밀 분야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은 “미국 기업과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 이해관계를 형성해 온 사람을 기술보안과 정보보호 업무까지 담당하는 부처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핵심 관계자도 “국무위원(장관)은 보안·기밀 업무를 함께 다루기 때문에 일반공무원은 몰라도 국무위원을 하는 것은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필 농림축산부 장관 후보자는 1977년부터 세 차례 신체검사에서 폐결핵으로 판정받아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 후보자 측은 “폐결핵 치료를 위해 요양까지 받은 만큼 병역 회피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연세대 교수 출신의 서승환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는 비관료 출신으로, 총리실 주도의 4대강 재검증과 KTX 민영화, 택시지원특별법 등 정책 현안을 얼마나 빨리 이해하고 정치력을 검증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안석 기자 ccto@seoul.co.kr
  • ‘반값 식당’ 포퓰리즘인가? 새 복지모델인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의 ‘반값 등록금’에 이어 반값 시리즈 2탄으로 ‘반값 식당’을 추진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취임 초 ‘밥 굶는 사람 없는 서울’을 만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2500~3000원으로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반값 식당을 대거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반값 식당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시민을 위한 정책이라며 반색한다. 김진형씨는 박 시장의 페이스북에 “아이디어가 좋다. 보편적이고 지속 가능한 복지 모델이라 여겨진다”면서 “이러한 단편적인 움직임들이 모여 정책적 전환이 조속히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댓글을 남겼다. 트위터 아이디 ‘@evian27**’는 박 시장의 반값 식당 정책 기사를 인용해 “이런 게 복지”라고 치켜세웠고 페이스북 아이디 ‘Seung Yong Spikey L**’는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분들에게 반값 식당은 반가운 소식”이라면서 “경제 논리로 보지 않고 나누고 베푸는 행복의 관점에서 우리의 복지 수준은 더 높아질 거라 믿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값 식당이 영세 상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인기 영합 정책이라는 반론도 적잖다. 트위터 아이디 ‘@zd**’는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반값 식당? 그럼 권리금에 보증금, 임대료 내고 장사하는 다른 식당들은 어떡하라고? 밥 굶는 빈민 위하고 재능 기부, 봉사 등 착한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 시민 혈세로 시장경제 체제를 흔들어 보겠다는 사회주의의 실험”이라고 비난했다. 박 시장의 페이스북 글에 댓글을 남긴 오세호씨도 “인위적인 시장 개입은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좋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서민과 시장 경제의 비효율 또한 걱정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시민단체들 역시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지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시민권익센터 간사는 12일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정책으로 보인다”면서 “반값 식당이 운영되면 서울 지역에서 비싼 월세에 인건비를 들여 영세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우리 주변에 7000~8000원이 부담돼 끼니를 거르는 어려운 이웃이 많다”면서 “독거노인, 결식 아동, 빈민층 등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에 저렴한 가격으로 밥을 제공하고 또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값식당은 일석이조의 기업 복지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美상원 이민법 합의…한인 23만명 ‘희색’

    1100만명에 이르는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에 한 발짝 다가섰다. 미국 연방 상원이 초당적인 이민개혁안에 합의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미국 내 한인 불법 체류자 23만명도 ‘희망’을 갖게 됐다. 민주당의 척 슈머와 공화당의 존 매케인 등 양당의 중진 상원의원들로 구성된 ‘8인위원회’는 28일(현지시간) 불법 체류자들에게 시민권 취득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민법 개혁안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에는 추가적인 밀입국을 막기 위한 국경 감시 강화도 비중 있게 포함됐지만, 이는 백인 강경 보수층의 여론을 의식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는 불법 체류자들에게 시민권 취득 기회를 부여하는 게 골자다. 범죄 전력이 없는 불법 체류자 가운데 벌금과 체납 세금을 납부한 사람은 시민권을 얻을 때까지 ‘임시 합법적 체류 지위’를 갖게 되고 직업을 얻을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혜택이 향후 밀입국자들에게도 적용되는지 등 세부적 내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슈머 의원은 “3월까지는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은 변수는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 통과 여부다. 이날 일부 강경파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상원 합의안에 대해 “사실상의 사면”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에서 소극적 이민 공약으로 히스패닉 유권자 잡기에 실패한 공화당으로서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개혁안에 찬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도 최근 “이민법 개혁을 위해 뭔가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커버스토리] 세계는 부자증세

    [커버스토리] 세계는 부자증세

    미국 의회는 2013년 1월 1일 연소득 40만 달러(약 4억 2700만원, 부부 합산 45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의 소득세 최고세율을 35%에서 39.6%로 올렸다. 미국의 ‘부자 증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 기간 중 공약한 것으로, 1993년 빌 클린턴 정부 이후 20년 만이다.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을 추월하는 바람에 국고가 바닥난 데다 각종 감세 혜택 종료와 정부지출 삭감 등으로 경기가 급락하는 ‘재정절벽’을 회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런 부자 증세 도입 움직임은 유럽에서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나라는 프랑스. 연소득 100만 유로(약 14억 5000만원) 이상 고소득층에게 최고 75%의 소득세율을 부과하는 공약 덕분에 대선에서 승리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일사천리로 증세 정책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지난 연말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제동이 걸렸다. 최고 소득세율의 기준을 부부 합산 소득 대신 개인 소득으로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프랑스 정부는 법안을 수정해서라도 올해 안에 75% 소득세율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프랑스의 이 같은 조바심에는 연간 재정 적자를 GDP 대비 3% 이하로 유지하라는 유럽연합(EU)의 ‘신 재정협약’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 국가들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조건을 맞추기 위한 해결책으로 부유세 정책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그리스 의회는 지난 11일 야당의 반발에도 증세를 골자로 하는 세제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혁안에는 2만 6000 유로 이상 고소득자에게 최고 45%의 소득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포함해 부동산 보유세와 법인세 인상, 모든 과세 대상자의 소득신고 의무화 등도 포함돼 있다. 서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인 포르투갈도 ‘정부가 무장 강도’라는 국민의 비난을 무릅쓰고 새해 들어 평균 소득세를 35%나 올리는 가혹한 긴축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최고 소득세율은 46.5%에서 48%로 높아지고, 여기에 적용하는 과세 기준은 연소득 15만 3500유로에서 8만 유로로 대폭 낮췄다. 유럽에서 가장 튼튼한 경제를 가진 독일에서도 200만 유로 이상의 재산을 가진 부자들에게 재산의 1%를 세금으로 내도록 하는 ‘임시세’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야당에서 제기됐다. EU와의 지위 재협상을 추진하기 위해 오는 2017년 EU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주장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정부도 올 들어 고소득층 자녀에 대한 육아수당 삭감 정책을 포함해 부유세 부과 방침을 추진 중이다. 부유세 바람은 아시아 지역의 일본에서도 불고 있다. 보수를 기치로 내걸고 복귀한 아베 신조 정권은 연간 소득 1800만엔(약 2억 2000만원)의 고소득자에 대해 적용하는 40%의 최고세율을 45%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은 경제 호황기의 절정인 1980년대 70%에 달했던 소득세 최고세율을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후 지속적으로 낮춰왔지만, 최근 GDP의 2배에 달하는 막대한 재정 적자 문제를 풀기 위해 다시 ‘증세 카드’를 빼든 것이다. 부자 증세에 대한 반발도 만만찮다.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2년 지구촌 부자 4위에 오른 프랑스 최고 갑부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 회장은 지난해 9월 벨기에 국적을 신청한 데 이어 86억 6300만 달러(약 9조 31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벨기에로 빼돌렸다고 25일 영국 데일리 메일 인터넷 판이 보도했다. 아르노 회장은 ‘가족에 대한 상속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사회당 정부가 추진 중인 부자 증세를 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게 프랑스 언론의 지적이다. 프랑스 ‘국민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도 아르노 회장을 따라 벨기에로 가려다 “단순히 세금을 피하기 위한 망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벨기에 정부의 반대에 부딪히자, 지난 5일 러시아로 귀화해 정식으로 시민권을 얻었다. 벨기에는 프랑스와 달리 부자를 겨냥한 세금이 없고, 상속세도 3%로 프랑스(11%)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프랑스 일간 르 몽드에 따르면 지난해 올랑드 대통령의 ‘부자 증세’ 방침에 반발해 벨기에 국적을 신청한 프랑스인이 지난 2011년보다 2배나 늘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부자증세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은 ‘성장 지상주의’를 내세우며 2004년 이후 지속적인 감세를 추진했으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깎아주면서 국가 재정이 크게 악화된 탓이다. 미 의회의 싱크탱크인 의회조사국(CRS)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율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결과 부자 감세가 경제에 미친 영향이 미미했다”고 밝혔다. 보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낙수 효과’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빈부격차만 늘렸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유럽발 재정위기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부채 문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과 유럽의 증세 드라이브는 한동안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위장전입·가짜이혼·서류위조… 부정입학 통로 된 특별전형

    최근 한 재벌가 아들의 국제중학교 입학 논란을 계기로 사회적배려 대상자(사배자) 등 특별전형의 자격기준과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특수목적 중·고등학교와 대학 입시의 특별전형이 부정입학의 통로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복잡한 입시 전형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특별전형에 대한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4일 일선 중·고교 진로진학 담당 교사들과 대학 입학처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고입 및 대입 특별전형의 허점을 노리는 꼼수 입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도시에 살면서 농어촌으로 주소만 옮겨놓는 사례는 약과이고 기초생활수급자 전형이나 한부모가정 자녀 전형에 지원하기 위해 위장이혼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특별전형의 허점은 대입과정에서 쉽게 발견된다. 대입 유형이 3000개가 넘는 등 전형이 세분화되면서 ‘구멍’을 찾기는 쉽다. 대표적인 방식이 지방 소도시로 위장전입한 뒤 농어촌 특별전형에 지원하는 경우다. 감사원은 지난해 2월 전국 대학의 농어촌 특별전형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결과, 55개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 479명의 부정입학사례를 적발했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의 입학처 관계자는 “각종 편법으로 재산을 줄이거나 주소를 옮겨 억지로 지원조건에 끼워맞춰 오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고 말했다. 2009년 대입전형에 도입된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전형’에 지원하기 위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꼼수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부모가 서류상 이혼한 뒤 소득이 없는 쪽이 자녀의 친권을 맡아 ‘가계가 곤란한 자’로 입증받는 경우다. 국가가 선정한 차상위계층에 포함되지 않으면 대학이 자체적으로 지원자의 건강보험료 납입금과 재산세를 살펴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꼼꼼한 검증이 되기 어렵다. 서울 유명 사립대의 입학본부 관계자는 “2009년 기초생활수급자 전형이 도입된 뒤 해가 갈수록 편부모 가정 지원자가 늘고 있다”면서 “2016학년도부터 농어촌 전형의 거주기간을 3년에서 6년 이상으로 늘린 것처럼 특별전형에 더 높은 진입장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교 입학에서도 이런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 강남의 한 입시컨설팅업체 관계자는 “특목고 진학을 노리는 학부모 상담을 하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우리 아이에 맞는 사배자 전형은 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약자와 사회 소수자에게 교육기회를 넓히기 위해 도입된 사배자 전형이 입시정보에 빠른 일부 계층에게 특혜로 악용될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기준 전국 자사고에 재학 중인 사배자 전형 대상자 가운데 53.4%가 비경제적 대상자 자격으로 입학했다. 다자녀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에 더 많아 저소득층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2010년 서울지역 외고, 자사고에 다자녀 가정 자녀로 입학한 학생이 전체 사배자 정원의 46.6%에 달했다”면서 “이후 다자녀 자녀에 30%의 상한선을 두는 등 제도를 개선했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정 전형도 미국 등 외국 시민권을 가진 한국인 부모의 자녀나 해외 주재원 자녀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지금&여기] 비참한 사람들(Les Miserables)/최재헌 국제부 기자

    [지금&여기] 비참한 사람들(Les Miserables)/최재헌 국제부 기자

    아버지를 잃고 추위에 떨며 굶주리는 일곱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은 19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어린 딸 코제트의 병원비가 필요했던 미혼모 판틴은 머리를 자르고 생니를 뽑은 것도 모자라 몸까지 팔았다. 19세기 프랑스는 극심한 빈부격차로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리마다 넘쳤다. 사람들은 왕정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혁명의 노래를 불렀다. 1862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 속에서 이들의 영혼은 결국 사랑과 용서로 구원받는다. 21세기 프랑스는 세계 초강대국이 됐지만 나라를 버리는 ‘비참한 사람들’로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다. 프랑스 최고부자인 루이비통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지난해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부자 증세를 피해 벨기에 국적을 신청했다. 올 초에는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같은 이유로 러시아 시민권을 획득했다. 국민배우로 사랑받던 그의 도피성 국적 포기에 프랑스인들은 안타까움을 넘어 비난을 쏟아냈다. 서로 다른 시대 프랑스의 ‘비참한 사람들’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아이러니하게도 150년 전의 ‘그들’은 너무 못살아서, 지금의 ‘그들’은 너무 부자이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롭게도 드파르디외는 프랑스 TV연속극 레미제라블에서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었다. 드라마 속에서 당대의 비극에 분노하는 장발장 역을 맡았던 그가 마침내 현실에서 뜻을 이뤘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지난 연말 뮤지컬 형식의 영화 레미제라블을 관람하면서 지금의 현실과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법이 한 사람의 운명을 불행으로 바꾸어 놓는 일이라든지, 아무리 발버둥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서민의 현실 같은 것 말이다. 몇몇 지인들은 대선 직후 허탈감에 빠졌던 심신을 영화로 위안 삼았다고 했다. 물론 영화 속 메시지 가운데 어느 부분에 공감했는지는 관객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2013년 현재도 각 나라의 빈부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정부에 실망한 99%의 시민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150년 전 위고가 책 머리말에 적은 글귀가 문득 떠오른다. ‘이 지상에 무지와 비참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책들도 쓸모없지는 않을 것이다.’ goseoul@seoul.co.kr
  • [책꽂이]

    자본주의의 기원과 서양의 발흥(에릭 밀란츠 지음, 김병순 옮김, 글항아리 펴냄) 부제가 ‘세계체제론과 리오리엔트를 재검토한다’다.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안드레 군더 프랑크 양측 모두 비판하면서 넘어서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가닿은 지점은 중세의 복권이다.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토대를 형성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도시국가와 시민권 문제의 뿌리가 중세에 있어서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거대 자본이 아니라 그 자본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적 권력의 문제이고. 그 뿌리는 12세기 서유럽 사회에까지 소급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2만원. 고사성어 대사전(김성일 지음, 시대의창 펴냄) 고사성어를 총정리했다. 봉건왕조시대 정치상황에서 생성된 낡은 말글자 놀이, 괜히 있어 보이려 치장해대는 속물적 교양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사성어는 압축적인 맛 때문에 여전히 널리 쓰인다. 단순히 한자 뜻풀이만 한 게 아니라, 다양한 출전과 역사문화적 배경설명, 용례까지 곁들였다. 8만 5000원. 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 1·2(조광제 지음, 그린비 펴냄)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대표작 ‘존재와 무’에 대한 2년간의 강의 기록을 한데 모았다. 저자는 실존주의 대신 현존주의라는 표현을 제안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하나는 그냥 실존주의라 부르면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사르트르 간의 입장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존주의라는 단어가 도시, 개인주의, 자폐, 낭만 이런 표현들에 너무 침식되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권 3만 2000원, 2권 3만 3000원. 세계노동운동사 1·2·3(김금수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한국노총, 민주노총,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노사정위원회 등 평생 노동운동에 몸 바쳐 온 저자가 그간의 강의록을 총정리해 3권의 두꺼운 책으로 묶어냈다. 1·3권 3만원, 2권 2만 5000원. 식민지 유산, 국가 형성, 한국민주주의1·2(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정근식·이병천 엮음, 책세상 펴냄) 민족주의적 수탈론과 극우적 식민지근대화론의 대립으로 상징되는 식민지 유산 문제를 집중 논의한 결과물이다. 23명의 학자가 참가해 다양한 분야에 대해 논의했다. 1권 2만 3000원, 2권 2만 5000원.
  • [김문이 만난사람] ‘빈자의 등불’로 33년…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 신부

    [김문이 만난사람] ‘빈자의 등불’로 33년…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 신부

    희망찬 새해가 밝아도 한파는 계속되고 있다. 거리의 노숙인들은 얼마나 추울까. 쪽방촌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달동네 가족들은 따스한 온기라도 제대로 느끼며 살아갈까. 대체적으로 빈민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없으며 사법 체제에 권리를 요구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올바른 사회적 장치와 주위의 도움이 절실하다. 알다시피 도시 빈민은 경제 성장정책의 희생양으로 양산됐다. 주거권을 비롯해 고용, 의료, 교육 및 환경 등 여러 가지 구조적 모순에서 생겨났다. 가난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경제적 가난, 정신적 가난, 자발적 가난이다. 경제적 가난은 강요된 가난으로서 빈민, 또는 빈곤이라 한다. 정신적 가난은 청빈이라고 하고, 자발적 가난은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기 위한 투신이다. ‘빈민사목’이다. ‘빈민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가톨릭 사회 교리의 핵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의 사회 빈민운동은 1980년대 초 서울 목동 철거민 사태로 본격화됐다고 할 수 있다. 뉴질랜드 출신 안광훈(72·본명 브레넌 로버트 존)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33년째 빈민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발적 가난자’로서 도시 빈민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권리와 주장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 25살 때 한국에 와 청춘을 바쳤고 세월이 지나 70대의 할아버지가 됐다. 본격적인 빈민운동은 33년째이지만 한국에서의 47년 삶은 오롯이 가난한 자와 함께해 오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는 성골롬반 외방선교회 사무실에서 안 신부를 만났다. 그는 강북구 삼양동 달동네에 살면서 일주일에 두 차례 이곳에 나와 재정 담당 일을 보고 있다. 그 외에는 삼양동 재개발 지역 주민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통을 같이 나누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정진석 추기경의 허락으로 삼양동에 머무르면서 보좌 신부 노릇도 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직함은 ‘삼양 주민연대 대표’이지만 강북구 실업자사업단 주거복지센터 운영위원, 서울대교구 빈목사목위원 등 10여 가지 직함을 가지고 빈민을 위한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빈자의 등불’로 지난 보신각 제야의 타종 행사 때 시민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하여 먼저 제야의 타종 행사와 관련된 얘기부터 나왔다. 오랫동안 한국에 살아서인지 한국말은 비교적 능숙한 편이었다. 말쑥한 사제복이 아닌 편안한 평상복 차림이다.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였다. “뉴질랜드에는 종이 없습니다. 처음 종을 쳤습니다. 종 치는 행사에 참석해 보니 아주 재미있더군요.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절에 여러 번 가보았습니다. 고요하면서도 깊은 느낌이 있어 좋습니다. 제가 정선에 있을 때 스님들과 많은 대화도 가졌지요. 불교는 좋은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오신날에는 제가 절에 가고 성탄일에는 스님들이 교회에 찾아오곤 하지요.” 틈틈이 시간 날 때 불국사 등 큰 절을 찾는 즐거움 또한 각별하다고 말한다. 이어 빈민운동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가 달동네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1년 서울 목동 성당 주임신부를 맡으면서였다. 목동 신시가지 계획이 발표되고 안양천변에 살던 사람들이 용역 깡패들에게 쫓겨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면서 매우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아무런 보상도 없이 쫓겨나는 철거민들을 위한 철거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철거민들에게 본당 건물 사용과 함께 물적·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000만원을 선뜻 기부해 100가구 정도의 목동 철거민들이 시흥시 목화마을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러한 정신적 배경에는 자신의 첫 부임지인 강원도 삼척 사직동 성당에 있을 때 지학순 주교와의 만남이 있다. 그는 1966년 한국에서 뜻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처음 입국했다. 2년 뒤 당시 원주교구장이었던 지 주교는 안 신부를 가난한 탄광지대인 사직동 성당으로 파견했고 안 신부는 1년 동안 빈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지 주교와 만나 정신적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이후 정선 본당으로 옮겨 11년 동안 주임신부로 지내면서도 자주 만났다. 군사정권 시절 원주 시내의 주교좌 성당인 원동 성당 등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 가며 열었던 시국 관련 기도회며, 미사 중 주교회의 선언문 발표 때면 어김없이 지 주교가 옆에 있었다. 정선 본당 시절을 잠시 회고하던 그는 30명이 100원씩 출연한 3000원으로 1973년 정선신협을 설립했고 지금은 400억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농협이 있었지만 가난한 농민들이 대출을 받지 못해 치료비, 전기료, 아이들 교육비가 없어 고통받는 것을 보고 정선신협 설립을 결심했던 것이다. 이와 함께 1975년 정선 주민들을 위한 성프란치스코 의원을 건립했다. 정선 본당도 그가 세운 성당이다. 초대 춘천교구장 구(具)토마스 주교가 미8군에서 얻어 쓰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을 헐고 교인 바자회와 교구청, 뉴질랜드 주교들의 도움을 받아 성당을 세웠다. 당시 그는 “교회는 세상 사람과 지역 주민 전체를 위한 도구나 제도, 조직이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렇게 강원도 산골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빈민운동에 눈을 돌린 것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1년 안양천변의 목동 철거민 투쟁 때부터였다. 당시 목동 성당 앞은 거의 논밭이었다. 구로공단에서 흘러드는 폐수에 오염된 물로 길러낸 곡식으로 연명하는 철거민이 대다수였다. “철거민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거권이란 말도, 보상이란 말도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요. 저로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돈을 모금하고 종잣돈을 털어 그들이 살 만한 임시 시설이라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시흥에 목화마을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5년 동안 목동 성당 주임신부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이후 그는 성신여대 입구 부근의 골롬반 신학원 원장을 6년간 맡는다. 이때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빈민 사목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뜻을 전했고 그의 진심이 받아들여져 곧바로 미아6동 달동네에 전셋방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빈민운동은 순조롭지 않았다. 개발 바람이 불어 세 번이나 집에서 쫓겨났다. 미아7동, 정릉4동, 삼양동 등으로 집을 옮겨야 했다. 이때마다 달동네 주민들과 함께 살면서 철거반대 운동, 실직자 대책 마련 등에 앞장섰다. 또한 주거복지센터를 만들어 소액대출 운동을 함께 벌여 나갔다. 2000년에는 독거 노인과 새터민을 위한 봉사단체 ‘강북 자활센터’를 만들었다. “철거할 때면 대부분 용역 깡패들이 등장합니다. 그때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뭐하는 거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등의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집에 없을 때 우리 집에 불을 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9월 서울시 복지대상을 수상했고 10월에는 명예시민권을 얻었다. 내친김에 영주권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빈자의 등불로 한국에서 47년 동안 살아오는 동안 늦게나마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전화 기술자 아버지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집으로 배달되는 골롬반 선교지를 보며 자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입회했고 신학교를 졸업한 1966년 한국으로 온 그는 서울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운 다음 정선으로 향했다. 그에게 처음 입국 당시와 지금의 변화상을 물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올 때에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습니다. 서울 인구가 300만명에 불과하고 도시 전체가 전쟁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생활 수준이 올라갔지만 오히려 빈부격차는 심화됐습니다. 재벌은 성장하고 맨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은 더욱 소외됐습니다. 재개발한다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런 일이 아주 많았지요. 세상은 다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는데 말이죠.” 세월이 지나 10년 전부터는 복지의 중요성이 정책적으로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도 복지시설이 취약하고 특히 노인을 위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교육제도 또한 고쳐야 할 것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41년생 뱀띠”라고 웃으면서 올해는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또한 “빈자들은 나의 친구다. 함께 기쁨을 누리고 더 좋은 생활을 찾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왜 안광훈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느냐고 물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서울대 다니는 친구들을 사귀고 지냈는데 술자리에서 그들이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한국에서 활동한 선배가 ‘브레넌’이라는 성을 썼는데 그분이 ‘안’이라는 한국 성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안(安), 이름은 광훈(光薰)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당시 친구들과 만납니다.(웃음)” 뉴질랜드에는 93살 된 노모가 요양원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며 잠시 고향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새해에는 빈자들을 향한 따스한 손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안광훈 신부는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195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에 들어갔다. 1965년 시드니 신학대를 졸업하고 사제직을 받았다. 1966년 한국에 와 2년 동안 서울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1968년 원주교구 삼척 사직동 주임신부가 됐다. 1969~79년 정선 본당 주임신부로 활동했다. 1981년 서울 목동 성당 주임신부가 되면서 철거민들과 함께 투쟁했다. 1985~91년 골롬반 신학원 원장을 지냈다. 1992년 서울 강북구 미아5동 성당에 부임하면서 달동네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보신각 제야의 타종 행사 때 시민대표로 참석했다. 현재 삼양동 다세대 주택 전셋방에 살면서 도시 빈민을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삼양 주민연대 대표, 강북 주거복지센터 운영위원, 빈민사목위원 등의 직함을 가지고 있다.
  • [고시 Q&A] 캐나다 시민권자라도 한국 주민등록 있다면 응시 가능

    Q:저는 캐나다 시민권자로 한국의 공무원 시험에 관심이 있습니다. 변호사와 상담한 결과 캐나다인으로 한국에서 거주하는 데는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공무원 시험을 치를 수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캐나다 시민권자가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나요? (ankwonhee@ymail.com) A:원칙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가져야만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습니다. 현재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외국인과 복수국적자는 국가안보와 보안·기밀 등을 제외한 분야에만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습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공무원 시험은 한국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어야 응시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면 국내거소신고증 등을 발급받아야 공무원시험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공무원시험 신청은 사이버국가고시센터(gosi.go.kr)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해 인터넷으로만 가능합니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재외국민은 별도의 확인절차(국내거소신고증 등)가 필요하니 행정안전부 채용관리과(02-751-1325)로 전화하면 조치할 수 있습니다. ●공무원 임용 시험이나 국가기관이 시행하는 각종 자격시험에 대해 궁금한 내용을 이메일(gosi@seoul.co.kr)로 보내 주시면 매주 목요일자 ‘고시&취업’ 면에 답변을 게재하겠습니다.
  • “실현 가능한 민생공약 후보에 한 표”

    18대 대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난 12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어느 후보를 지지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도 전체 유권자의 10% 선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표심을 굳힌 유권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했을까.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고 투표권을 현명하게 행사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들어 봤다. 회사원 남지은(26·여)씨는 “실현 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내놓는 후보, 정치 경험이 풍부한 후보”를 선택 기준으로 꼽았다. 남씨는 “오랜 세월의 정치 경험이 있어야 신뢰가 간다.”면서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 웅장하거나 혁신적이지 않더라도 당장 현실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민생 공약을 중시하는 유권자도 많았다. 자영업자인 박정철(59)씨는 ‘서민이 최우선인 후보’를 내세웠다. 박씨는 “선거운동 때야 ‘서민을 떠받들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하지만 청와대로 가고 나면 다들 입을 씻더라.”면서 “서민 민생을 챙기고 공평 과세를 실현하고 특권층, 재벌에게 특혜를 주지 않는 공정한 후보가 최고”라고 강조했다. 3년차 직장인 원준모(33)씨는 “반값 등록금, 주택정책 같은 민생 정책을 잘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우선순위를 제시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 구조로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유영민(46)씨는 “사회 전반적인 의식 개혁이 중요하다.”면서 “기회의 평등 같은 사회정의 원칙을 정착시킬 수 있는 인물을 찍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수지(25·여)씨는 “과정으로서의 소통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행정의 효율성이 아니라 결정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절차를 강조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예산안 날치기 처리, 제주 해군기지 사태 때 보여줬던 정부의 모습은 앞으로 안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혁(33)씨는 “도덕성이 후순위로 밀린 후보를 선택해 지난 5년 동안 시민권이 퇴보한 것 같다.”며 한 표 행사의 기준을 나름대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미래 비전이 구체적인 후보를 선택할 것과 지지하는 이유를 분명히 정리할 것, 최악의 선택은 피할 것 등을 투표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황영민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이고 역시 중요한 시대정신은 경제민주화, 사회복지 실현, 검찰 개혁, 정치 투명성 확보 등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비전과 리더십이 확고한 후보를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김상혁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입법팀 간사는 “후보 이미지가 아니라 국정 운영을 어떻게 펼칠지, 야당·국민과 어떻게 소통할지 등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분명히 적어 보고 투표장에 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러·中 큰손들 英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백만장자들이 영국으로 대거 이주해 ‘큰손 투자자’로 떠오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외국인 부호들이 영국의 ‘1급 투자이민비자’를 발급받은 건수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419건으로 전년 동기(235건) 대비 78% 이상 급증했다고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08년 도입된 1급 투자이민비자는 영국에 최소 100만 파운드(약 17억 4000만원) 이상을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발급된다. 영국 이민국(UKBA) 집계에 따르면 이 가운데 24%가 러시아인, 23%가 중국인으로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미국인은 5%에 불과하다. 이들은 주로 런던에 정착해 자녀들을 영국 시민권자로 키우고 있다. 러시아, 중국 부호들이 런던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뭘까. FT는 유럽의 관문으로 다른 나라로의 이동이 쉽다는 점, 안정된 부동산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점, 우수한 사립학교가 많다는 점 등을 부유한 외국인들을 런던으로 이끄는 기본적인 배경으로 꼽았다. 법률회사 핀셋메이슨의 사이먼 호스필드 기업이민팀장은 “외국인들은 런던의 안정된 정치체계와 투명한 법률 시스템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지난 3월 재벌 탄압이 심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하면서 유럽, 그중에서도 영국을 ‘최고의 피난처’ 삼아 비자를 발급받는 부자들이 늘고 있다. 주식, 채권 투자를 위험하다고 여기고 부동산 등 안정형 투자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은 런던의 부동산 붐에 일조하고 있다. 영국 부동산 업계는 해외 투자자들의 런던 부동산 투자 건수가 대폭 증가했다고 입을 모은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나이크프랭크의 리암 베일리 주택리서치팀장은 “200만 파운드가 넘는 부동산 매입의 60% 이상이 해외 구매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오바마 집권 2기] 푸에르토리코, 美 51번째州 될까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미 카리브해의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되는 것을 선택했다. 푸에르토리코는 지난 6일(현지시간) 미 대선과 동시에 치러진 주민투표를 통해 국가 지위를 현재의 미국 자치령에서 미국의 주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AP·AFP통신이 보도했다. 투표 결과 ‘미국 주 편입’ 의견이 61%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자치권이 허용되는 ‘자유연합’은 33%, ‘독립국가’는 5%에 각각 그쳤다. 국가 지위에 관한 푸에르토리코 주민투표는 이번이 4번째로, 이전에는 자치령 존속 의견이 높았다. 투표결과가 이전과 다른 것은 실업률이 무려 13%에 이르는 등 경제 침체가 지속되는 탓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미국의 주에 편입되면 지역경제 활성화 및 범죄 예방 등을 위해 연방정부로부터 매년 200억 달러(약 21조 7000억원) 이상의 각종 지원을 받게 된다. 당장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지는 불투명하다. 미 의회의 승인과 미 대통령의 추인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 의회 내에서는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아 진통도 예상된다. 1493년 콜럼버스가 발견한 푸에르토리코는 1508년 스페인령으로 편입됐지만 1898년 스페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뒤 114년 동안 미 자치령으로 운용돼 왔다. 푸에르토리코 주민은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대통령 선거권은 없다. 연방의회에는 하원의원 1명을 뽑아 파견하지만 표결권은 없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오바마 집권 2기] ‘지한파’ 초·재선 의원 대거 낙선… 韓외교 ‘빨간불’

    [오바마 집권 2기] ‘지한파’ 초·재선 의원 대거 낙선… 韓외교 ‘빨간불’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하원의원 선거에서 지한파 의원 상당수가 낙선해 한국 외교에 ‘빨간불’이 켜졌다. 거물급 다선 의원들은 상당수 살아남았지만 초·재선 의원들은 대거 낙마해 ‘한국통’ 발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현지시간) 미 의회와 각 선거구에 따르면 대표적인 지한파인 플로리다주 27선거구의 일리애나 로스 레티넨(공화·왼쪽) 하원의원이 60%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2010년부터 하원 외교위원장을 맡아온 그는 북한의 천안함, 연평도 도발 때 대북 규탄 의회 결의안을 주도하는 등 대북 정책과 한·미 관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후임 하원 외교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에드 로이스(공화) 의원도 지한파로, 캘리포니아주 37선거구에서 당선됐다. 로이스 의원은 탈북 고아 입양 법안을 발의했으며 한·미 방위협력 강화 법안 등도 제안했다. 한국전 참전 용사인 찰스 랭글(민주·오른쪽) 의원도 뉴욕주 13선거구에 출마, 90.8%의 압도적 득표율로 승리해 무려 22선 고지에 올랐다. 뉴욕주 11선거구, 19선거구에서 각각 승리한 마이클 그림(공화) 의원과 크리스 깁슨(공화) 의원도 지한파로 분류된다. 그림 의원의 선거구는 한인과 한국전 참전 용사 집단 거주지로, 아내도 한국인이다. 이 밖에 유타주 4선거구에서는 지한파로 분류되는 짐 매드슨(민주) 의원이 49.3%를 얻어 어렵게 승리했다. 그는 남북 이산가족 재결합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의회협의회 창립 회장을 맡는 등 한인 시민권자들과 친분이 두텁다. 반면 하원 군사위 소속 초선 의원으로 지한파인 일리노이주 17선거구 바비 실링(공화) 의원은 낙선했다. 캘리포니아주 30선거구에서는 지한파인 하워드 버먼(민주) 의원이 고배를 마셨고, 수년간 한국을 강력히 지지해 온 캘리포니아주 52선거구 브라이언 빌브레이(공화) 의원도 낙마했다. 또 대규모 한인 거주지가 있는 일리노이주 10선거구 로버트 돌드(공화) 의원도 북한 이산가족 재결합 안건 등에 적극적이었으나 재선에 실패했다. 이와 함께 지한파 의원 10여명이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거나 정계 은퇴를 선언해 의회에서 볼 수 없게 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입학 비리’ 재벌가·고위층 며느리 등 47명 기소

    ‘입학 비리’ 재벌가·고위층 며느리 등 47명 기소

    외국인학교 부정입학에 연루된 재벌가 며느리 등 학부모 47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건을 수사 중인 인천지검 외사부(부장 김형준)는 6일 위조 여권 등을 통해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킨 권모(36·여)씨를 업무방해 및 사문서 위조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재벌가·의사·로펌 변호사·전 국회의원 딸 등 사회 부유·특권층 학부모 46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재판에 넘겨진 인사 가운데는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삼녀 박모씨, 이정갑 현대자동차 전 부회장 며느리, 김기범 롯데관광개발 회장 며느리,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 며느리 등이 포함됐다. 이 중 박씨는 김황식 국무총리의 조카며느리다. 남편인 허재명(일진그룹 2세)씨가 김 총리 둘째 누나의 아들이다. 충청지역 유력 기업 며느리인 권씨는 2009년 브로커 박모(45)씨에게 의뢰해 불가리아, 영국 위조 여권을 발급받은 뒤 딸을 서울의 한 외국인학교에 부정입학시킨 혐의다. 권씨는 또 과테말라 위조 여권을 만들어 딸을 서울의 다른 외국인학교로 편입시킨 혐의도 받고 있다. 다른 학부모들도 브로커에게 4000만∼1억 5000만원을 주고 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위조한 뒤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입학시켰다. 수법 또한 교묘하고 다양했다. 백모(36·여)씨는 자녀 3명을 모두 미국에서 원정출산해 첫째와 둘째 자녀는 미국 시민권자 자격으로 외국인학교에 입학시켰으나 셋째 자녀는 법이 바뀌면서 부모의 외국국적이 필요하자 브로커를 통해 과테말라 여권을 취득하기 위해 비행기로 30시간이나 걸려 원정을 다녀오기도 했다. 오모(46·여)씨는 에콰도르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한국인 남편과 위장이혼한 뒤 에콰도르 사람과 위장결혼을 한 끝에 자녀를 부정입학시키는 데 성공했다. 조모(38·여)씨는 과테말라 여권을 취득하기 위해 과테말라에 갔으나 브로커가 뇌물을 주고 매수한 공무원이 출근하지 않자 체류기간 내내 기다리다가 결국 위조 여권을 받아냈다. 자녀의 부정입학은 대개 어머니가 주도했으나 모 기업 대표 등 아버지 2명도 직접 가담했다. 검찰 관계자는 “생면부지의 외국인과의 위장결혼, 원정출산, 현지 공무원 매수 등 자녀의 외국인학교 입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동원됐다.”고 혀를 찼다. 외국인학교는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자녀와 해외에 장기간 체류한 내국인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된 학교이지만 조기 유학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외국인보다 한국인이 많은 외국인학교가 12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서울·경기·인천·대전 등에 있는 9개 외국인학교에서 56건의 부정입학 사례를 적발했다. 검찰은 부정입학자 명단을 교육과학기술부와 교육청에 통보해 조치토록 할 예정이다. 교과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국인학교 입학업무 처리 가이드라인을 수립, 시행하고 외국인학교에 대한 정기적인 조사·감사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외국인학교 내·외국인 비율, 국적별 외국인학생 현황 등에 대한 정보공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진경준 인천지검 2차장은 “사문서 위조 혐의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면서 “죄명이 여럿이면 가중처벌 대상이니 형량 자체가 너무 낮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은 부정입학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외국인학교 관계자의 공모 여부도 수사할 계획이다. 또 박씨 등 부정입학 알선 브로커 4명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중남미 현지 브로커 2명을 지명수배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한국식 경제모델 벤치마킹하고 싶다”

    “한국식 경제모델 벤치마킹하고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몰락한 세르비아 카라조지 왕가의 알렉산더 카라조지(67) 왕세자 부부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알렉산더 왕세자는 옛 유고슬라비아 왕국 카라조지 왕가의 마지막 왕 페테르의 아들로 1945년 망명지인 영국에서 출생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관계자는 22일 “알렉산더 왕세자 부부가 23일부터 5박6일 일정으로 방한한다.”면서 “알렉산더 왕세자 부부의 방한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알렉산더 왕세자는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이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진 세르비아의 경제발전과 번영을 이룰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이를 모국에 적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자주 표명해 왔다.”고 말했다. 알렉산더 왕세자는 방한 기간에 한국의 경제발전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유관기관과 주요 산업 지구를 둘러보고 판문점과 비무장지대(DMZ), 경복궁 등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영국군 장교로 복무하기도 한 그는 그리스와 이스라엘, 이집트, 영국 등지를 떠돌며 망명 생활을 하다 1991년부터 유고슬라비아를 오가며 당시 반체제 인사들을 지원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이 축출되고 친서방 개혁파들이 왕족의 시민권과 재산을 박탈한 법령을 철폐한 2000년 모국에 영구 귀국했다. 그는 2001년 옛 공산 정권에 의해 거부된 국적을 회복하고 몰수된 재산 일부를 돌려받아 현재 옛 유고슬라비아 왕궁에 거주하고 있으며 세르비아 왕실의 복원을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선택! 역사를 갈랐다] (31)서재필 vs 윤치호

    서재필(1863~1951)와 윤치호(1865~1945) 두 사람은 개화파의 막내들로서 10대 후반부터 일본 유학을 거쳤고, 1884년 갑신정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당시에 거의 유일하게 미국에서 정식 대학교에 진학해 근대 서구문명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근대적 지식인의 대표적 인물들인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 크게 엇갈린다. 서재필은 독립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된 반면 윤치호는 친일파의 대표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무엇이 두 사람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만들었을까. ●갑신정변 행동대장 vs 美 공사관 통역관 서재필은 19세였던 1882년 별시 문과에 합격했으나 무관으로 과감히 변신해 일본의 도야마(戶山) 육군학교를 나온 후 갑신정변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정변 과정에서 고위 대신들을 살해하는 행동대장이었다. 따라서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 망명 길에 올랐다. 한편 윤치호는 16세였던 1881년 일본에 파견된 조사시찰단의 수행원으로 파견되었다가 남아서 도진샤(同人社)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그는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미국공사 푸트의 통역관으로 발탁돼 귀국하였다. 윤치호는 갑신정변 주도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정변에 반대했고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치호는 당시 김옥균 일파로 인식되고 있었기에 중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정변 실패 후 일본에서 냉대를 받고 미국으로 떠난 서재필은 홀로 서기를 감행하였다. 그는 워싱턴 DC에서 야간 의과 대학을 나와 마침내 1893년에 의사 면허를 받았다. 1890년에는 미국인으로 귀화해 이름을 필립 제이슨으로 바꾸고, 4년 뒤에는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는 미국 주류사회에 완전히 편입되어 살아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원조였다. 한편 윤치호는 1885년 초 중국 상하이 중서학원에서 유학을 시작했으며 1887년 세례를 받았다. 그는 1888년 미국 남감리교의 후원으로 밴더빌트와 에모리 대학에서 신학과 인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였지만, 시민권 취득이나 국제결혼을 생각하지는 않았고 유학을 마친 후 중국 중서학원으로 돌아가 교사가 됐다. ●서재필, 의사 되며 ‘원조’ 아메리칸드림 이뤄 서재필은 1894년 갑오개혁 정권의 귀국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마침내 1895년 12월 귀국했다. 그는 미국인으로서 중추원 고문관에 취임하였고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또한 그해 7월에는 독립협회를 조직하는 데 고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서재필은 1897년 후반 러시아의 만주 침략과 조선 진출 정책이 강화되자 반러적 입장을 드러내다가 중추원 고문에서 해고됐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당시 철저하게 미국인으로 행세해 이름을 서재필이 아닌 필립 제이슨으로 사용했다. 굳이 한글로 표현할 때는 제손 박사 또는 피제선(皮堤仙)이라고 하였다. 한편 윤치호는 갑오개혁 이후 귀국하여 학부협판이 되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으나 ‘정동파’로 분류됐고 을미사변으로 미국 선교사와 공사관에서 피신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그는 고종의 특사로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다녀왔다. 따라서 독립협회 창립에 참가할 수 없었지만, 귀국 후 부회장에 취임하면서 독립협회를 계몽단체로 개조했다. 그는 서재필이 떠난 후 독립신문을 운영했고, 이완용에 이어 1898년 8월부터 독립협회 회장을 맡아 이후 전개되었던 정치개혁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달리 만민공동회가 폭력화되어 결국 강제 해산되자 지방관으로 떠남으로써 독립협회 회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서재필은 미국으로 돌아간 후 대한제국으로부터 받은 자금을 바탕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 후 20년 동안 조선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서재필은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연합대회를 개최하고 의장직을 수행하였다. 그 후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며 독립 의지를 표현하는 잡지, 책자를 발행했다. 1921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태평양 군축회의에서 조선 문제를 상정하려고 노력하였다가 실패하자 항일활동을 마감하였다. 윤치호는 대한제국이 보호국으로 전락한 후 다시는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계몽운동에 나섰다. 그는 대한자강회의 회장이었고 개성에 한영서원을 설립했으며 안창호와 협력해 대성학교 교장과 청년학우회 회장을 맡았고 YMCA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12년에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어 3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당시 윤치호에 대한 조선인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그는 3·1 운동을 전후하여 파리 강화회의 대표, 임정 참여, 워싱턴 군축회의 참가, 미국 망명 등 모든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열강이 조선을 도와 일본과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이를 반대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일본의 통치정책에 대해서는 반감을 품었지만 조선인들이 독립을 쟁취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설령 독립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민족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형태의 독립운동을 부정하고 민족성 개조를 통한 민족역량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으로 산 서재필 vs 일본인 된 윤치호 서재필은 1922~1927년 갑자기 국내 일간지와 잡지 등에 다시 등장하여 식민지배에 순응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식민지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대한제국 지배층의 무능과 민중의 무지에서 찾았고, 독립운동과 같은 정치적 활동보다는 경제적 활동에 주력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그가 1937~1938년에 미주 한인 2세를 위해 ‘신한민보’에 영문으로 기고했던 ‘MY DAYS IN KOREA’(나의 조선 시절)를 보면 대부분 조선왕조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고 개화파를 정당화하면서 오히려 일본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그러던 그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맞서 싸우는 미국 시민으로서 반일로 돌아섰다. ●윤치호, 日전쟁 승리를 백인인종차별 극복 간주 한편 윤치호는 일본의 대륙 침략이 시작되고 내선일체 정책이 강화되는 시기에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일본 국민’이라는 전제하에서 한국 기독교의 ‘일본화’를 주도했으며 대표적 친일단체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1945년에는 마침내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에까지 선임되었다. 그의 친일은 일제의 탄압에 의한 강요라기보다는 당시의 조건 속에서 조선 민족의 현명한 선택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본이 구미 열강에게 승리하는 것을 황인종이 백인의 인종차별주의를 이긴 것으로 열광하였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서 일본이 소련에 승리하기를 기원하였다. 나아가 내선일체를 통해 민족차별 정책이 철폐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서재필은 점령국 미국의 시민으로서 미군정 고문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그는 이승만의 단정 노선에 대해 반대하면서 통일국가 수립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결국 고국에 머무르기보다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윤치호는 더는 공적 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죽기 몇 달 전에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거기서 그는 한국에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며 공산주의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 그리고 조선의 해방은 항일민족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연합국의 승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친일파를 사면하여 민족단결을 이루자고 호소하고 있다. 윤치호가 1945년 12월 사망하여 1947년 7월 미군정 고문으로 귀국한 서재필과의 재회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말년 볼 것인가 vs 인생 전체 평가할 것인가 서재필은 전 생애에 걸쳐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는 어느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들 만큼 도전과 성취를 이루어낸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은 안전지대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투쟁과 희생을 요구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에게서 민족의 지도자가 지녀야 할 희생적 자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실 서재필이 서재필로 산 것은 불과 27세까지였고 나머지는 필립 제이슨으로 살았다. 그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린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해방 후 부모의 묘소조차 참배하지 않았다. 그의 묘지명에는 분명히 필립 제이슨이라고 적혀 있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 택한 필립 제이슨의 유해를 억지로 국내로 모셔와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은 분명히 그가 원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반면에 윤치호는 모든 판단을 함에 지나치게 신중했고 근대 시민윤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국내에서 교육과 종교 활동을 통해 조선인들의 민족성을 개조하여 근대 국민으로 발전할 것을 희망했다. 그는 안창호를 누구보다 아끼고 후원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필요로 한 민족 저항의 지도자가 되는 길을 거부하고 본격적인 친일 활동을 통해 결과적으로 친일파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두 사람은 함께 활동했던 기간이 합해서 5년이 안 되지만 대체로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같은 입장에서 행동하였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았지만, 두 사람이 식민지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과 일본에 대한 선망과 동경도 비슷했다. 그러나 서재필은 긴 세월을 자의에 의해 미국인으로서, 윤치호는 타의에 의해 일본인으로 살았다. 그 결과 오늘날 서재필은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반면에 윤치호에 대해서는 매도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윤치호의 친일을 옹호할 마음은 없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인생을 단죄하기에는 안타까운 연민의 심정이 든다. 하지만 그의 친일을 ‘협력’ 또는 ‘친일 민족주의’라고 정당화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한 인물의 굴곡에 찬 긴 인생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역사학자로 살아가면서 점점 마음속으로 느끼게 된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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