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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소 찾은 ‘5·18 시민군’… “盧, 아들 통해 수차례 사죄”

    빈소 찾은 ‘5·18 시민군’… “盧, 아들 통해 수차례 사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27일 각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빈소가 차려진 오전 10시부터 조문객들을 맞았다. 영국 출장 중 급히 귀국한 아들 노재헌 변호사는 코로나19 검사를 마친 뒤 낮 12시가 넘어 빈소에 도착했다. 노 변호사는 이날 장례식장 앞에서 고인의 유언에 대해 “국가에 대해 생각과 책임이 컸기 때문에 잘했던 일, 못했던 일 다 본인의 무한 책임이라 생각하고 계셨다”면서 “5·18 희생자에 대한 가슴 아픈 부분이나 그 이후 재임 시절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본인의 책임과 과오가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길 바랐다”고 전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을 지낸 박남선씨도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박씨는 지난해 5월 29일 노 변호사가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노 변호사에게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조문을 가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이날 노 변호사와 함께 기자들 앞에서 “광주 학살에 책임이 있는 전두환을 비롯한 어떤 사람도 사죄의 말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아들인 노 변호사를 통해 수차례 광주 학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조문 이유를 밝혔다. 이어 “전두환씨가 돌아가셨으면 전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가장으로 치러지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재계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유족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오전에 빈소를 찾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도 발걸음을 했다. 한편 서울시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한 정부의 결정에 따라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28일부터 30일까지 운영된다. 노 전 대통령 분향소는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2015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때 서울광장에 설치됐던 분향소에 준해 설치된다. 대구시와 경북도 역시 분향소를 설치해 운영하기로 했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가장으로 결정됐지만 분향소 설치나 조기 게양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전북도는 도민 정서를 고려해 분향소 설치 여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용집 광주시의회 의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고인은 5·18 광주 학살의 주역이었고 발포 명령 등 그날의 진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진정한 반성, 사죄, 진상 규명 협조 없이 눈을 감았다”며 “광주시는 오월 영령, 시민의 뜻을 받들어 국기 조기 게양, 분향소 설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빈소 찾은 ‘5·18 시민군’… “盧, 아들 통해 수차례 사죄”

    빈소 찾은 ‘5·18 시민군’… “盧, 아들 통해 수차례 사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27일 각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빈소가 차려진 오전 10시부터 조문객들을 맞았다. 영국 출장 중 급히 귀국한 아들 노재헌 변호사는 코로나19 검사를 마친 후 오후 12시가 넘어서 빈소에 도착했다. 노 변호사는 이날 장례식장 앞에서 고인의 유언에 대해 “5·18 희생자에 대한 가슴 아픈 부분이나 그 이후 재임 시절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일에 대해 본인의 책임과 과오가 있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길 바랐다”고 전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을 지냈던 박남선씨도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박씨는 지난해 5월 29일 노 변호사가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노 변호사에게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조문을 가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이날 노 변호사와 함께 기자들 앞에서 “광주학살에 책임이 있는 전두환을 비롯한 어떤 사람도 사죄의 말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은 아들인 노 변호사를 통해 수차례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조문 이유를 밝혔다. 정·재계에서도 조문이 이어졌다. 유족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오전에 빈소를 찾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도 발걸음을 했다.
  • [포토] 노태우 빈소 찾은 박남선씨

    [포토] 노태우 빈소 찾은 박남선씨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오른쪽)씨가 27일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씨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인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왼쪽)과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이해영의 쿠이 보노] 아프간전쟁, 누가 ‘승리’한 전쟁인가/한신대 교수

    [이해영의 쿠이 보노] 아프간전쟁, 누가 ‘승리’한 전쟁인가/한신대 교수

    브레진스키. 카터 행정부 시절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다. 그는 5월 광주와도 인연이 깊다.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관계기관대책회의. 대통령 카터를 제외하고 미 행정부 관련 최고위 인물이 전부 모여 이렇게 결정했다. “단기적 지원, 장기적 정치발전 압박.” 무슨 말인가? 누구보다 브레진스키가 제안한 방식이었다.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을 ‘지원’한다는 말이다. 1980년 5월 전남도청 시민군의 운명은 이렇게 결정됐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1998년 브레진스키가 프랑스의 누벨 옵세르바퇴르지와 인터뷰를 했다. 미 CIA 국장이 회고록에서 아프간전쟁 공식 발발 6개월 전부터 CIA가 무자히딘에 무기를 공급했다고 밝힌 뒤였다. 사실 여부를 묻는 질문에 브레진스키가 답한다. “카터 대통령이 카불의 친소련 정권 반대파에 대한 비밀 지원 명령에 처음 서명한 날이 1979년 7월 3일이었다. 바로 당일 나는 대통령에게 메모를 보냈다. 나는 설명하기를 ‘제 의견으로는 이 지원은 소련의 군사 개입을 유도하게 될 것입니다’.” 덧붙여 말하길 “우리가 러시아인들이 개입하도록 민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그럴 확률이 커질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었다.” 다시 질문이다. “당시 소련이 아프간 침공을 미국의 비밀작전을 격퇴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이 어느 정도는 진실이었다는 것 아닌가. 지금 당신은 여기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가?” 답. “후회할 게 무엇이 있는가? 그 비밀작전은 탁월한 생각이었다. 그것은 러시아인들을 아프간 덫(trap)에 유인하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 소련이 공식적으로 국경을 넘는 날 난 대통령에게 이렇게 썼다. 본질적으로 ‘이제 우리는 소련에 소련의 베트남전쟁을 제공할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근 10년 동안 모스크바는 … 지속가능하지 않은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질문.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원한 것, 미래의 테러리스트에게 무기와 자문을 제공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단 말인가?” 답. “세계사에서 도대체 무엇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탈레반인가, 아니면 소련 제국의 붕괴인가. 일부 선동된 모슬렘인가 아니면 중부 유럽의 해방과 냉전 종식인가.” 이 인터뷰가 있은 몇 년 뒤 2001년 9월 11일 미 CIA의 첩보자산이자 미국이 체스판의 졸(卒)로 키운 오사마 빈라덴이 미국을 공격했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불법적으로 아프간을 침공해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소련은 그 생산력이 냉전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됐을 때 붕괴했다. 미국이 ‘유도’한 소련의 베트남전쟁이라는 덫이 붕괴를 가속화했다는 점에 크게 반론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미국이 소련의 아프간전쟁을 유도했듯이 오사마 빈라덴은 미국의 아프간전쟁을 ‘유도’했다. 미국은 스스로 아프간전쟁의 덫에 빠진 것이다. 지난 20세기 이래 이렇게 긴 전쟁이 있었나. ‘20년’ 아프간전쟁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자신이 세우다시피 한 탈레반 정권을 타도하고, 다시 20년에 걸쳐 이 집단에 쫓겨나기 위해 그 엄청난 자원을 투입한 것인지. 그래서 이 긴 전쟁은 하나의 세기적 부조리극이다. 미국이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탈레반은 과연 승리한 것이 맞는 것이며, 이로써 아프간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건가. 평화가 아니라면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계속 혹은 잘해야 ‘차가운 평화’가 아프간의 미래 아닌가. 아프간전쟁을 포함해 20년 테러와의 전쟁 사망자는 보수적으로 잡아 90만명 전후로 추정된다. 9·11테러 희생자의 300배에 달하고, 이 중 민간인 사망자가 3분의2에 달한다. 어떤 연구팀의 추산에 의하면 테러와의 전쟁에 우리 돈으로 1경가량 소요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 돈의 가장 큰 몫은 미국의 군산복합체(방산업체) 혹은 그 하청업자들에게 돌아갔고, 이들은 이 기간 동안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미국 자본주의를 지탱해 왔다. 이른바 ‘군사 케인스주의’라 할 수 있다. 이들이야말로 최장 전쟁의 최종 승자였던 것이다. 20년 전쟁은 20세기 미국의 외교와 그 인식론적 기초를 이루는 지정학적 사고가 초래한 예정된 파국이었다. 브레진스키의 대소 아프간전쟁 ‘유도론’이 그 하나의 전형이고, 광주의 유혈 진압 묵인·방조도 이런 사고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미국 패권주의에 편승한 우리 외교 역시 아프간의 진정한 평화와 재건에 일단의 책임이 있다고 해야 한다.
  • 명낙 ‘수박’ 논쟁 가열…“일베 용어” VS “일베도 몰라”(종합)

    명낙 ‘수박’ 논쟁 가열…“일베 용어” VS “일베도 몰라”(종합)

    이재명 ‘수박 기득권’ 언급 놓고 양측 충돌이낙연 캠프 이병훈 “호남 비하 일베의 언어”이재명 캠프 박주민 “12년 일베한 사람도 몰라”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가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2일 이 지사의 ‘수박 기득권’ 발언을 놓고 정면 충돌했다. 최대 승부처인 호남 경선을 앞두고 양 측이 전면전에 나선 것이다. 이 지사는 전날 밤 페이스북에서 “이젠 보수언론과 국민의힘 그리고 민주당 내 인사들까지 수익환수 덜했다고 비난하니 기가 찰 뿐”이라며 당내 특정 인사들을 향해 “제게 공영개발 포기하라고 넌지시 압력 가하던 우리 안의 수박 기득권자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이낙연 전 대표 측은 ‘수박’은 호남을 모독하는 표현이라며 발끈했다. 극우 네티즌이 몰린 일간베스트(일베)에서 ‘수박’은 5·18 당시 시민군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병훈 캠프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수박’이란 표현은 호남을 비하하고 차별하기 위해 만든 일베의 언어”라며 “이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고, 우리 당의 정체성과 연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자신은 피해자라는 생각을 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는 사실관계에도 맞지 않는다. 민주당 후보가 해서는 안 될 혐오 표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효은 캠프 대변인은 이 지사가 전날 이 전 대표의 총리 시절 부동산 책임론을 제기한 데 대해 “걸핏하면 총리 책임론을 펴는데 국정 경험이 부족한 탓이 아닌가 싶다”며 “경기도 판교 대장동 집값 폭등에 이 지사 책임은 없는가”라고 물었다.이재명 캠프도 대대적 반격에 나섰다. 박찬대 수석대변인은 오전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열린 주간브리핑에서 “수박이라는 표현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낙연 캠프의 대변인이 수박을 왜 호남 비하로 연결하는지 유감이다. ‘셀프 디스’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주민 총괄본부장은 “수박이 호남 비하라는 이낙연 측 주장에 대해 ‘일베 생활 12년째인데 그런 말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남국 수행실장은 페이스북에서 “이재명 후보가 기득권과 싸워온 날이 단 하루라면, 단 1년이라면 말도 안 되는 거짓 프레임이 먹힐지 모르겠다”며 “파크뷰 분양비리 사건부터 수년간, 수십 년간 민주당 내 기득권과도 싸워왔다. 그 기록들이 영상, 글, 기사로 남아 있기에 진실을 호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 5·18 민주화운동 여성 열사 소개 전시회 개최

    5·18 민주화운동을 이끈 여성 열사의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2일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 따르면 5·18 41주년과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마련한 ‘이 사람을 보라’ 세 번째 전시가 오는 6일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245에서 개막한다. ‘이 사람을 보라’는 숨겨진 5·18 주역을 발굴해 조명하는 전시로 경찰,사진기자에 이어 여성 열사를 중심으로 내년 1월 31일까지 진행한다. 1980년 5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박금희 열사와 박현숙 열사에 주목하고 헌혈증,생전 마지막 사진 등을 전시한다. 당시 여성들의 활동은 시민군,수습대책위원회,가두시위,시신 수습 활동 등으로 다양했으며 남성들의 활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간호사가 꿈이었던 박금희 열사는 헌혈에 앞장섰으며 작가가 꿈이었던 박현숙 열사는 시신 수습을 도우려고 관을 구하러 광주와 외곽 지역을 찾아다녔다. 전시장은 설날과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하루 5차례 정기 해설도 하고 있다.
  • 여성 사진에 검정 스프레이, 부르카 안입었다고 총살

    여성 사진에 검정 스프레이, 부르카 안입었다고 총살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20년 만에 재장악하자 여성의 얼굴에 검은색 스프레이를 뿌리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해 아프간 여성 인권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19일 아프간 수도 카불의 미용실 외부에 있던 여성의 이미자가 탈레반 장악 이후 훼손됐다고 전했다. 1996~2001년 탈레반이 아프간을 통치하던 시절, 여성들은 일하거나 학교에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집에서 벗어날 때도 항상 남성이 동행해야만 했고, 얼굴을 드러내면 처벌벋아 부르카라 불리는 천을 온 몸에 뒤집어써야 했다. 부르카는 머리와 목만 가리는 히잡과 달리 눈 분위에도 망사천이 달려있다. 탈레반은 이번에는 여성 인권을 보장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프간 여성들은 탈레반이 가져올 새로운 통치를 두려워하고 있다.게다가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에게 탈레반이 총격을 가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부르카는 무슬림 가운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여성들만 주로 입는다. 탈레반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가 아프간 여성 기자들과 가진 텔레비젼 기자회견에서 여성들의 인권은 존중될 것이며 교육과 취업을 보장하겠다고 한 날, 총격에 살해된 여성의 소식이 전해졌다. 탈레반은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만들어진 시민군으로 1996년 탈레반은 아프간을 점령해 9·11 테러 공격을 받은 미국이 침공할 때까지 통치했다. 탈레반은 특히 여성의 인권을 가혹하게 탄압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부르카 착용을 요구했다.
  • 반기문 만난 윤석열, 지지율 하락에도 독자 행보

    반기문 만난 윤석열, 지지율 하락에도 독자 행보

    尹 “潘, 당시와 지금 상황 다르다고 말씀”최재형 겨냥해선 “각자 판단·선택 존중” 내일 5·18 민주묘지 참배로 호남에 구애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5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며 독자 행보를 이어 갔다. 두 사람은 기존 양당 구도와 거리를 둔 채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반 전 총장이 지지율 1위를 기록하다 대권 도전 3주 만에 지지율 하락으로 중도 하차한 만큼 시기가 미묘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윤 전 총장은 이날도 당장 국민의힘에 입당할 의사가 없음을 다시 한번 못박았다. 윤 전 총장은 이날 반 전 총장을 예방해 외교와 안보 등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윤 전 총장은 이날 반 전 총장을 예방한 뒤 “(반 전 총장이) 갑작스러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이 있었던 사정이 지금과는 다르다는 말씀 외에는 없었다”고 했다. 입당과 거리를 둔 채 독자 행보를 걷는 윤 전 총장이 반 전 총장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거대 정당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있는 데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도 최근 하락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도 독보적인 지지율 1위를 기록하다 귀국 후 지지율 하락으로 대권 도전을 포기했다. 윤 전 총장은 ‘제2 반기문이란 비판도 나온다’는 질문에 “비판은 자유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에 입당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관련해 “정치하는 분들의 각자 상황에 대한 판단과 선택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불리를 떠나 손해가 있더라도 한 번 정한 방향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걸어가겠다고 말씀드렸다”고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은 17일 광주를 찾아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다. 이어 5·18 희생자 유족들과 차담회를 열고, 5·18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이 대치했던 옛 전남도청 청사 본관 앞도 찾을 계획이다. 대전에 이은 두 번째 지방 일정으로 호남 민심을 잡고 반전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전국민 지원금’ 선 그은 윤석열 “자영업자에 추경 초점, 세금 감면 검토”

    ‘전국민 지원금’ 선 그은 윤석열 “자영업자에 추경 초점, 세금 감면 검토”

    “K방역, 자영업자 눈물로 세운 탑”“추경, 자영업자 손실보전에 초점 맞춰야”민주당 ‘전국민 지원금’에 반대 입장 표명與 “尹 세금 공부는 했나…초딩 후보” 공세윤석열, 17일 광주 5·18 묘지 참배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15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4차 대유행 사태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과 관련, “이번 추경은 자영업자 손실보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면서 “필요하다면 영세 자영업자의 세금 감면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K방역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눈물 위에 세워진 탑이다”라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당론으로 채택한 더불어민주당에 “추경 예산을 늘려 전국민 재난지원금으로 표를 쫓기 전에 생존 위기에 직면한 자영업자 지원책을 대폭 확대하기를 바란다”면서 “한계 상황의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데 예산을 쓴다면 국민들도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여당의 추진하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사실상 반대하면서 지원 대상을 영세 자영업자 등으로 특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윤 전 총장은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의 한 식당을 방문한 뒤 “2차 추경은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손실을 충분히 보상하고, 피해 계층에게 빈틈없이 두텁게 지원되도록 쓰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민주당은 이러한 윤 전 총장에 대해 국가를 책임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공세를 이어갔다. 특히 윤 전 총장이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대해 “세금을 걷어서 나눠줄 거면 안 걷는 게 좋다”고 말한 것은 ‘공부 부족’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김두관 의원은 이날 SNS에 올린 글에서 “어이가 없다. 공부를 하긴 한 것이냐”라고 꼬집었다. 이어 “중학생도 세금을 왜 걷는지는 아는데 이런 기본 상식을 모르는 야권 대선 후보라니 더 믿을 수가 없다”고 쏘아붙였다. 김 의원은 “중학생 대선후보라 부르면 중학생들이 항의할 것 같아 그냥 초등학생 대선후보라 부르겠다”고 비꼬았다. 김진욱 민주당 대변인도 서면 브리핑에서 “윤 전 총장이 조세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면서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을 위한 재난지원금을 반대하는 것”이냐고 물었다.반기문 만난 조언 들은 尹, 17일 5·18 희생자 유족과 차담회 한편 윤 전 총장은 이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예방해 정치참여 경험 등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윤 전 총장은 오는 17일 광주를 방문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다. 윤 전 총장은 이어 5·18 희생자 유족들과 차담회를 열고, 5·18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이 대치했던 옛 전남도청 청사 본관 앞도 찾을 계획이다. 윤 전 총장은 지난 5월 18일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5·18은 어떤 형태의 독재나 전제든, 이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이번 광주 방문은 윤 전 총장이 정치 진로에 관한 국민 의견을 두루 듣겠다며 ‘윤석열이 듣습니다’라는 타이틀로 기획한 민생 탐방의 일환이다. 지방 일정은 대전에 이어 두 번째로, 대전에서 ‘충청 대망론’에 호응한 것처럼 광주에서도 호남 민심을 끌어당기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 전 총장은 지난 6일 대전현충원에서 천안함 46용사 묘역 등을 참배하고, 카이스트에서 원자핵공학 전공생들과 만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 5·18 사적지 해남 우슬재서 행불자 추정 유골 발견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가 이뤄졌던 전남 해남군 우슬재에서 5·18 행방불명자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24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전남 해남군 옥천면 우슬재에서 무연고 묘지에 대한 발굴 작업을 실시했다. 군부대 인근 야산에 들어선 이 묘지에선 치아와 대퇴부 등이 발굴됐는데 20∼30대 남성 2구로 추정된다. 매장 당시 관을 쓰지 않았고, 알몸으로 매장한 듯 유류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1구는 5·18 당시 사망자 명단에는 들어있으나 시신을 찾지 못한 박모씨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조사위는 밝혔다. 앞서 조사위는 5월 항쟁 당시 가족이 행방불명됐다고 신고한 자료와 군 기록,생존자·목격자·가해자 등의 증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암매장 추정지를 특정했다. 우슬재는 강진쪽애서 해남읍으로 이어지는 고개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희생자가 발생한 5·18 사적지다. 광주에서 자행된 계엄군의 발포에 맞서 시민군들이 만행을 알리고 무장을 하기 위해 전남 지역을 돌아다니다 이곳에서 여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기록에는 계엄군의 발포로 인해 2명이 사망한 것으로 적혀있지만,당시 시위 참여자 또는 목격자들은 3∼4명 이상 숨졌을 것으로 증언한 바 있다. 당시 해남군청 사회과 공무원은 계엄군이 주둔한 우슬재와 상등리에서 가매장돼 있던 4구의 시신을 수습한 바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님을 위한 행진곡’ 시발지...광천 시민아파트 보존 될 듯

    ‘님을 위한 행진곡’ 시발지...광천 시민아파트 보존 될 듯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산실인 광주 서구 광천동 ‘광천 시민아파트’가 주변의 대규모 재개발로 한때 철거 위기를 맞았으나 지역사회가 힘을 보태면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다. 26일 광주시에 따르면 서구,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천동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조합과 협약을 체결하고 4자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시민아파트 보존에 협력하기로 했다. 시는 아번 협약에서 시민아파트 ‘나동’ 보존 및 광천동 성당 들불 야학당 복원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지원하기로 했다. 서구는 사업시행인가 등 행정처분 등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또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광천동 성당 교리실 복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키로했다. 조합은 이런 입장을 조합원에게 알리고 총회에 상정 논의할 방침이다.들불야학은 배움에 목마른 노동자와 함께 공부하고 세상을 이야기하기 위해 1978년 8월 설립됐으며, 광천동 천주교성당 교리실에서 시작해 학생 수가 늘어나자 인근 시민아파트로 학당을 옮겨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시민아파트는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거주한 곳으로, 박용준 등과 함께 5·18 당시 최초의 민중언론 ‘투사회보’를 제작했던 곳이다. 또 민주화의 상징곡이 된 ‘님을 위한 행진곡’의 사연도 이곳에서 시작됐다.1980년대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 김영철 5월항쟁 기획실장 등도 시민아파트에서 활동했다. 5·18의 역사적 공간인 시민아파트는 지역 최대 규모인 광천동 주택재개발정비사업지구에 포함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였다. 그 자리엔 53개 동 5611세대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었지만 광주시와 천주교 광주대교구 등의 협력으로 시민아파트 3개 동 중 ‘나동’을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역사적 공간인 시민아파트 보존에 필요한 모든 행정절차를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포토] 노태우 장남, 5·18시민군 최초 결성지 광주공원 찾아

    [포토] 노태우 장남, 5·18시민군 최초 결성지 광주공원 찾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가 25일 광주 남구 5.18시민군 최초 결성지 광주공원을 찾아 오월 관계자의 안내로 김군 동상을 살피고 있다. 독자제공·뉴스1
  • 5·18 최후 항전 기억… 내일 ‘자정영화제’

    광주 동구 광산동 옛 전남도청에서 5·18민주화운동 때 시민군의 최후 항전 마지막 날 밤을 기리는 ‘자정영화제’가 열린다. 25일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에 따르면 27일 밤 12시에 옛 도청에서 자정영화제를 열기로 하고 사전 신청 접수에 들어갔다. 이번 영화제는 ‘5·18 사적지, 영화를 품다’란 주제로 인권과 국가폭력 등을 다룬 영화가 상영된다. 5·18민주화운동 최후의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에서 27일 밤 12시에서 28일 새벽에 이르는 시간대를 기억하기 위해 마련됐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옛 전남도청서 시민군 최후 항전일인 27일 자정영화제 열려

    옛 전남도청서 시민군 최후 항전일인 27일 자정영화제 열려

    5·18민주화운동 41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시민군이 최후 항전을 벌였던 광주 동구 옛 전남도청에서 마지막날 밤 ‘자정 영화제’가 열린다.25일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에 따르면 27일 밤 12시에 옛 도청에서 자정영화제를 열기로하고 참여자 사전 신청에 들어갔다. 자정 영화제는 ‘5·18 사적지, 영화를 품다’란 주제로 인권과 국가폭력 등을 다룬 영화가 상영된다. 이번 영화제는 5·18민주화운동 최후의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에서 27일 밤 12시에서 28일 새벽에 이르는 시간대를 기억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도청정문 앞에 세워지는 스크린에서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인 ‘좋은 빛, 좋은 공기’(110분 가량)가 상영된다. 영화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신청을 한 50명을 대상으로 열린다. 신청은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 홈페이지에서 하면된다. 이 영화는 1980년 5월 18일 좋은 빛(光州, Good Light)이라는 뜻을 가진 ‘광주’의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무고한 희생을 당한 사건과 1977년 4월 30일 좋은 공기(Buenos Aires, Good Air)라는 뜻을 가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민 3만여 명이 실종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지구 반대편인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어머니들이 교차되면서 국가 폭력의 기억은 이제 시대를 넘어 우리 다음 세대에게 전달돼 추모와 애도의 현재적 의미를 다지고, 나아가 더 좋은 빛과 더 좋은 공기가 될 것 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영이 끝나면 참석 소감 나누기 등의 행사도 곁들여진다. 이번 행사는 ‘광주영화영상인연대’가 주관하고 ‘광주여성영화제’, ‘문화콘텐츠 그룹 잇다’ 등이 참여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113일 만에 첫 외출… “수치, 미얀마 유혈사태 몰라”

    113일 만에 첫 외출… “수치, 미얀마 유혈사태 몰라”

    지난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줄곧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아웅산 수치(76) 미얀마 국가고문이 24일 사태 발생 이후 11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도 네피도의 특별법정에 출석하면서다. 수치 고문은 쿠데타 이후 미얀마 전역에서 벌어진 유혈 상황은 물론 현재 가택연금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정보 통제’를 받아 온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뇌물수수 등 7가지 죄목으로 기소된 수치 고문은 이날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법정에 나와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들을 반박했다. 법정 부근에는 경찰 트럭들이 도로를 차단하는 등 경비가 삼엄했다. 테 마웅 마웅 변호사는 “수치 고문이 공판 전 30분에 걸쳐 변호인단과 대면회의를 가졌다”고 말했다. 군부는 그동안 변호사와의 직접 면담을 금지하고 화상 접견만 허용했다. 면담 뒤 변호인단은 수치 고문이 현재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미얀마 시민들이 저항 시위에 나선 사실부터 반군이 군부세력에 무장저항 태세를 갖추고 있는 정황까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처지에서도 수치 고문은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은 국민을 위해 창당됐으며, 국민이 있는 한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변호인단은 전했다. NLD 관련 언급은 군부가 임명한 인사들로 구성된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21일 NLD에 대한 강제 해산 방침을 밝힌 데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NLD는 수치 고문이 1988년 민주화 항쟁 당시 야권 인사들과 함께 창당한 정당으로,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해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으나 지난 2월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겼다. 이런 가운데 군부세력에 저항하는 시민군의 대응이 갈수록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쿠데타에 저항하다 군경에 목숨을 잃은 민간인이 818명에 이르는 가운데 동부 카야주에서 지난 23일 카렌족 시민군과 정부군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벌어져 40명 이상의 정부군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관총과 자동소총, 수류탄, 유탄발사기까지 동원해 진압에 나서는 정부군을 상대로 시민군은 19세기 방식으로 집에서 만든 엽총, 사제폭탄 등으로 맞서고 있다. 김태균 선임기자 windsea@seoul.co.kr
  • [포토] 옛 전남도청으로 달리는 민주택시

    [포토] 옛 전남도청으로 달리는 민주택시

    ‘제41주년 5·18민중항쟁 민주기사의 날’을 맞은 20일 오후 광주 북구 유동사거리 일대에서 태극기를 단 70여대의 민주택시노동조합 관계자들의 택시가 차량행렬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택시노동조합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옛 전남도청 탈환의 기폭제가 됐던 택시 기사들의 차량행렬 시위가 있었던 5월20일을 민주기사의 날로 정하고 1997년부터 매년 이날 차량행렬 시위를 재현해 왔다. 2021.5.20 뉴스1
  • 문 대통령 “광주의 진실, 마지막 향해 다가가고 있어”

    문 대통령 “광주의 진실, 마지막 향해 다가가고 있어”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인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SNS를 통해 “희망의 오월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으로 열린다”고 말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지난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과 암매장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올해 3월에는 계엄군이 유족을 만나 직접 용서를 구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지난주에는 시민을 향해 기관총과 저격병까지 배치해 조준사격을 했다는 계엄군 장병들의 용기있는 증언이 전해졌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렇게 우리는 광주의 진실, 그 마지막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시민군, 주먹밥, 부상자를 실어나르며 이웃을 지키고자 했던 마음이 민주주의”라며 “그 마음이 촛불을 지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가 되고 코로나를 극복하는 힘이 됐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5·18 당시 손글씨로 광주시민 소식지인 ‘투사회보’를 만든 박용준 열사의 필체를 본뜬 ‘투사회보체’가 제작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계엄군의 총이 앗아간 그의 삶이 ‘박용준체’를 통해 우리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며 “미래 세대들을 위한 오월의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오늘 미얀마에서 어제의 광주를 본다. 오월 광주와 ‘택시운전사’의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기자정신이 미얀마의 희망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며 “민주, 인권, 평화의 오월은 어제의 광주에 머물지 않고 내일로 세계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누구는 아들 주검 보이고 싶었겠소… 그래도 이 참혹한 5·18 알려야 했소”

    “누구는 아들 주검 보이고 싶었겠소… 그래도 이 참혹한 5·18 알려야 했소”

    “누군 참혹한 아들의 죽음을 공개하고 싶것어. 그래도 여러 사람이 알아야 해서 마음을 비웠어.”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총상을 입고 쓰러진 아들 문재학(당시 광주상고 1년)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한 어머니 김길자(81)씨는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김씨는 “‘엄마, 나 그냥 여기서 끝까지 남기로 했어’란 생전 마지막 말이 41년 동안 가슴을 후볐다”면서 “그래도 41년 만에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니 이제는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작가 한강이 5·18 민주화운동의 당시 상황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인 문군의 마지막 모습이 지난 6일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 공개한 외신기자의 사진 속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1980년 5월 27일 ‘시민군’으로 끝까지 전남도청에 남았다가 계엄군의 최후 진압 작전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그는 효심이 깊고 꿈 많은 소년이었다. 다섯 식구가 어렵게 살던 형편 때문에 문군은 대학 진학보다 상고를 택했다. 고등학교 입학 3개월 뒤인 5월 21일, 시내는 계엄군의 첫 집단 발포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김씨는 “집에서 절대 나가면 안 된다”고 단단히 타일렀으나 아들은 24일 점심 이후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김씨는 다음날부터 25~26일 전남도청으로 찾아가 아들을 만났으나 “곧 집으로 간다”는 말만 믿고 되돌아서야 했다. 26일 오후 7시가 넘어 아들은 전화에서 “차가 끊겨 못 갈 것 같아. (계엄 상황이라 저녁 7시 통금) 계엄군이 쳐들어오더라도 학생들은 풀려나니까 나 여기 남기로 했어”라고 말했다. 이어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 작전이 시작된 27일 오전 2시 30분~3시쯤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도심에 울려 퍼졌다. 한숨도 못 자고 발을 동동 구르던 김씨는 “어제 억지로라도 끌고 데려오는 겐데…” 하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그래도 살아만 있어 다오’라는 어머니 김씨의 바람과 달리 며칠 뒤 아들은 사망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계엄군이 사망자를 광목으로 둘둘 감싼 뒤 묘역에 가매장한 상태였다. 김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으로 몸져누웠다. 김씨가 ‘정신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해 가을쯤부터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이 된 이후 각종 항의 시위와 집회에 찾아다녔다. 아들의 ‘폭도’ 누명을 벗기기 위해 주부로서의 일상은 사라지고, 투사로 변신했다. ‘단 한 번도 아들을 가슴속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보고 싶다’는 그는 밤이면 문을 잠그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다. 재학이가 찾아왔다가 문이 잠겨 되돌아가 버릴까 봐서다. 김씨는 “5·18 민주화운동이 41주년을 맞았지만, 나의 가슴에 든 멍은 그대로”라면서 “우리 재학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발포명령자 처벌 등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꿈많던 17세 소년 재학 어미의 오월은...서러움 그 자체

    꿈많던 17세 소년 재학 어미의 오월은...서러움 그 자체

    “여러 사람이 알아야 해서 아들 시신 사진 공개를 허락했습니다” 1980년 5·18때 아들 문재학(당시 광주상고 1년)을 잃은 어머니 김길자(81)씨는 최근 ‘옛 도청복원 추진단’이 공개한 외신기자의 사진 속에서 처음으로 교련복을 입은 채 도청 복도에서 숨져있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했다. 김씨는 “웬만하면 잊어불것도 같은데 그럴수록 더 힘들다”며 깊은 한숨을 토해 냈다. ‘엄마,나 그냥 여기서 끝까지 남기로 했어’란 생전 마지막 말이 가슴을 후빈다. 1980년 5월 27일 ‘시민군’으로 끝까지 전남도청에 남았다가 계엄군의 최후 진압 작전에서 총을 맞고 사망한 문재학은 효심이 깊고 꿈 많은 소년이었다. “엄나, 나 상고 갈래요” 어머니 김씨는 당시 남편의 사업 실패로 광주 북구 중흥동에 셋집을 마련해 다섯식구가 어렵게살던 터라 고교 졸업후 “취직하겠다”는 아들을 만류할 수 없었다, 고교 입학후 3개월도 안돼서 이런 일이 닥쳐올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그해 5월 21일, 시내는 계엄군의 첫 집단 발포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그날 이후 재학이는 시내에 나갔다가 밤늦게 귀가하곤 했는데 목소리가 쇠서 말을 못할 정도였다. 김씨는 “집에서 절대 나가면 안된다”고 단단히 타일렀으나 24일 점심 이후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샌 김씨는 다음날인 25~26일 전남도청으로 찾아가 아들을 만났으나 “곧 집으로 간다”는 말만 믿고 되돌아서야 했다. 그날 오후 7시가 넘어 아들은 전화를 통해 “차가 끊겨 못간다.(계엄상황이라 저녁 7시 통금)계엄군이 쳐들어 오더라도 학생들은 풀려나난다. 나 여기 남기로했어”라고 말했다. 이어 계엄군의 도청 진압 작전이 시작된 27일 새벽 2시30~3시쯤 콩볶듯한 총소리가 도심에 울려퍼졌다. 한숨도 못자고 발을 동동 구르던 김씨는 “어제 억지로라도 끌고 데려오는 겐데...”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그래도 살아만 있어다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은 머지 않아서 였다. 같은해 6월초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역 신문에 사망자 명단에 재학이 이름이 들어있어요” 김씨는 곧바로 선생님과 북구 망월동 묘역(구 묘역)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선생님의 교무수첩 속 재학의 사진과 시신을 검안한 검사가 찍은 사망자 사진이 똑같았다. 김씨는 그자리에서 기절하고 말했다. 계엄군이 사망자를 광목으로 둘둘 감싼 뒤 묘역에 가매장한 상태였다. 김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으로 몸져 누웠다. 겨우 물만 먹으면서도 3개월을 버텼다. “저러다 재학이 엄마도 제정신으로 살긴 힘들거야”란 이웃의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정신 차려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그해 가을쯤 부터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이 된 이후 각종 항의 시위와 집회에 찾아다녔다. 이 과정에서 항의하다가 팔목뼈가 탈골됐고, 머리 등을 경찰이 휘두른 무전기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아들의 ‘폭도’ 누명을 벗기기 위해 주부로서 일상은 사라지고, 투사로 변신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그렇게 살았다. “단 한번도 아들을 가슴속에서 내려 놓은 적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보고 싶다”는 그는 밤이면 문을 잠그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다. 재학이가 찾아왔다가 문이 잠겨 되돌아가 버릴까 봐서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민주화 위해”… 죽음 공포 속 ‘5·18 주먹밥 투혼’

    “민주화 위해”… 죽음 공포 속 ‘5·18 주먹밥 투혼’

    전남도청서 시신 보고 오열… 연대 결심“이거 먹고 민주화 이뤄라” 밥·국 보내 광주 여성 이야기 ‘구술기록집’ 남기기로“인자 한 풀어… 미래세대 역사 기억하길”“학생들이 금남로를 차로 댕김서 ‘전두환 물러가라’ 해서 (당시 보안사령관) 이름을 알았당께. 우린 요로코롬 살지만 애들이 민주화를 이뤄서 좋은 세상을 봐야제 했어.” 16일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만난 이영애(79)씨는 41년 전인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주먹밥을 만들어 학생들을 비롯한 시민군에게 보낸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시장을 찾은 시위 학생들이 “엄마, 목마르고 배가 고파요”라고 하자, 이씨 등 130여명의 노점상인들은 급한 대로 물도 떠다 주고 빵이나 우유를 쥐여 줬다.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긴박하게 흘렀다. “전두환이 계엄군을 보내 광주시민의 3분의2를 죽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설마 했지만 소문은 학살로 이어졌다. 노점상 염길순(85)씨는 21일 찾아간 전남도청에서 태극기와 흰색 당목을 덮은 학생과 시민들의 시신들을 목격했다. 죄 없는 아들과 딸의 주검 앞에서 광주는 함께 오열했고 또 연대했다. 염씨는 “오메, 그걸 우쩨 잊어. 엄마들이 전남도청에서 죄다 울고 있었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옥순(75)씨는 “다 학생들 편이 돼부렀지”라며 “우리도 셋방에 살았는데 1000원, 2000원씩 걷어서 4만원 하던 쌀 한 가마 사서 주먹밥을 만들었어”라고 했다.과일을 팔던 노점상인들은 지금의 양동행정복지센터 자리에 있던 방앗간에서 쌀을 찐 뒤 손수레에 밥을 실어 날랐다. 감`귤 박스에 몰래 빚은 주먹밥을 가득 넣어 학생들에게 “이거 먹고 힘내서 민주화 이뤄라”며 건넸다. 전남대병원 영안실로도 밥과 국을 보냈다. 옛 영동파출소에 학생들 11명이 잡혀 가자 최루탄을 뚫고 가 “학생들이 뭔 죄냐. 내놔라”며 아우성을 쳤다. 어미의 마음이었다.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도운 사실을 상인들은 수년간 꼭꼭 숨겨야 했다. “(노점상인들은) 다 빨갱이다. 저 X들 다 죽여야 한다”며 계엄군이 눈을 부라렸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노점상인들을 향한 탄압이 더 거세지자, 전남대 학생들이 “엄마들 때문에 살았습니다. 쪼까 보답을 해줘야 께”라며 연달아 과일을 사 가기도 했다.41년이 흘렀다. 잰 손놀림으로 주먹밥을 만들었던 130여명의 노점상 대부분은 나이 들어 시장을 떠나거나 눈을 감았다. 남은 이들은 여전히 노점에서 채소와 튀김, 과일 등을 팔아 생계를 꾸린다. 양동시장을 지키는 이씨, 오씨, 염씨와 김정애(74)·오판심(76)·나채순(80)·박금옥(77)·이정순(70)씨는 이날 양동행정복지센터에서 41년 전 그날처럼 주먹밥을 만들었다. 광주 서구청은 이르면 내년 주먹밥 역사관을 만들고,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구술기록집으로 남기기로 했다. “우리가 인제 뭘 바라긋나. 미래 세대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길 바라제. 인자 한 풀었다.” 광주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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