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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인간안보의 역동성과 정부/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열린세상] 인간안보의 역동성과 정부/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국가안전보장이란 국가의 존립에 대한 위협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의 존립 요소는 국가 구성 요소인 인구와 영토, 국가의 이념 및 통치제도를 포함한다. 전통적 국가 안보는 영토와 주권에 대한 군사·정치적 위협을 주로 다루었다. 인간(시민) 안보는 국가 안보에 의해 일치, 보장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핵, 인권, 환경 위협은 안보의 대상을 인간으로 확대시켰다. 1994년 유엔 인간개발보고서는 인간 안보의 개념을 식량 안보, 환경 안보 및 인권 안보를 포함해 다양하게 분류했다. 질병, 환경, 인권 문제는 초국가적 정치, 윤리 및 과학·기술 문제로 국제적 관리가 필요한 이슈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인간 안보와 국가 안보는 양립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보스니아와 르완다, 최근 리비아에서 벌어진 정부군과 시민군 간의 유혈충돌은 정부가 시민에 대해 폭력을 행사한 사례다. 이는 정부의 통치제도를 인권보다 앞세워 일어난 사태다. 유엔은 내정불간섭 원칙의 예외로 인권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개입을 허용하고 있다. 리비아 정부군에 의한 시민군의 대량학살이 국제 개입의 요인이다. 개입 목적은 국민 보호이나 통상 정권 교체로 확대된다. 수단은 외교·경제적 압박으로부터 군사적 개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다국적군은 카다피의 집무실을 공습했다. 프랑스군대는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그바그보를 체포해 정권 교체를 지원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정상들은 공동명의로 카다피 축출을 위한 연합작전을 지속할 것을 밝히고 있다. 반대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인권보다 주권을 앞세운다.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브릭스(BRICS) 5개국은 하이난 섬 ‘싼야(三亞)선언’을 통해 리비아에서의 무력 사용 배제 원칙과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해결을 주장했다. 일부 아랍 국가들은 유엔 결의에 따른 인도적 개입을 주권을 무시한 재생된 제국주의의 한 유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리비아의 내전 원인이 인권의 억압 이외에 권력 세습에 대한 시민의 저항에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철통 보안, 통제력 외에 정보화 수준과 시민사회의 성숙도가 낮아 당장 재스민 혁명의 파장을 차단할 수 있겠지만, 3대 세습을 추진하고 있는 김정일 정권이 중장기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북한은 핵을 포기한 카다피가 공격받자 핵에 대한 집착이 커질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 내정이 인도적 개입이 필요한 사태로 악화된다면, 핵 의혹을 가진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 개입 교훈으로 볼 때 위험 국가로 분류된 북한의 핵은 미국의 개입을 촉진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유사 시 정권 안보의 시녀가 된 군부의 주민 폭력을 차단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4·19혁명 때 침해된 인간 안보는 아직도 사회통합에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 인권 향상을 위한 법적·제도적 근간인 북한인권법은 국회 내에서 합의 부재로 제정이 지연되고 있다. 북한 자극과 인권 개선의 효과에 대한 회의가 반대 요인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한 일부 시민단체들의 전단 살포는 접경지역 주민들과 일부 종교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안보 불안감 조성이 반대 이유다. 정부는 북한의 결식 주민을 위해 식량을 지원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분배의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할 때 북한에 보내지는 식량은 김정일의 정권 안보를 도와준다는 이유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방사성물질로 인한 환경과 인명 피해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는 국내 원전의 안전은 물론 일본, 중국, 북한의 원전사고에 의한 피해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부산지방변호사회는 고리 1호기의 가동중지 가처분신청을 내놓고 있다. 철저한 안전진단을 위한 당국의 책임, 자연재해, 테러 대비 매뉴얼 제작, 한·중·일 협조체제의 필요성, 국내 원전정책의 재검토를 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인간 안보 행위자들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지혜롭게 관리해야 한다. 인간 안보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 해소는 관련 정책의 투명성 및 평시와 위기 시 관리능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있다.
  • [데스크 시각] 미스라타와 후쿠시마 단상/박찬구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미스라타와 후쿠시마 단상/박찬구 국제부 차장

    리비아 서북부의 지중해 항구도시 미스라타가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불과 한두달 전만 해도 이름조차 생소했던 미스라타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친위대와 무장 시민군의 사활을 건 혈전과 카디피군의 무차별 학살로 외신의 국제면을 달구고 있다. 반군 근거지인 벵가지에서 긴급 투입된 지원병들이 채 48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철수할 정도로 전장은 처참하고 무자비하다고 외신은 전한다. 식품점 앞에서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이 포탄 세례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혁명의 ‘동력’인지, ‘도구’(툴·tool)인지를 두고 서방 언론에서 논쟁의 도마에 올랐던 소셜네트워크도, 전략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습도 유령도시의 잔혹성을 제어하지는 못하고 있다. 수주째 카다피군의 포위 공격을 받으며 최소한의 생존 조건도 보장되지 않는 곳, 포로로 붙잡힌 10대 카다피 병사가 ‘지옥’(hell)이라며 몸서리치는 곳, 그런 미스라타에서 무엇이 시민군의 저항을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 리비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미스라타의 시민들은 42년 독재를 청산할 정치체제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좋은지, 유럽식 민주주의가 바람직한지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카다피의 주장처럼 탈레반의 무장 세력이나 권력에 굶주린 폭도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반(反)독재와 체제 변혁을 향한 갈망과 의지, 행동하는 시민들의 정치의식이 수도 트리폴리의 길목에서 카다피군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해석이 그래서 나온다. 피로 쟁취한 반독재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한국 현대사도 갖고 있기 때문에 미스라타의 참상이 숙연하게 와 닿는다. 리비아의 향배는 여전히 불투명하지만, 미스라타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은 유럽에 또 다른 불씨를 던지고 있다. 바로 포화와 혼란을 피해 유럽으로 향하는 북아프리카 난민들의 엑소더스 행렬이다. 때마침 강경 우파의 부상과 맞물려 유럽 각국은 국경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유럽연합(EU) 이상주의자들이 설계한 다양성 속의 조화, 문화 이질성의 포용과 존중이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복지 시스템의 과부하에 허덕이는 유럽 각국에서는 말 그대로 ‘이상’에 그치고 있다. 저출산과 부족한 노동력의 틈새를 메우던 이민 정책도 더 이상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역사 진보의 염원과 민주화 투쟁의 이면에서 발생한 엑소더스 행렬이 불법 이민자로 전락하고, 선의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유럽연합의 이상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현 상황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북아프리카와 유럽의 사례에서처럼 한 지역의 격동과 위기는 이제 더 이상 지역적이지도, 제한적이지도 않다. 미스라타의 격전만큼이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전에서 새 나온 방사성물질이 한반도는 물론 지구 곳곳으로 퍼지고 있고, 대지진과 쓰나미로 생긴 ‘쓰레기 섬’은 태평양을 횡단해 하와이와 미국 서부 해안까지 이를 전망이다. 후쿠시마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저주 받은 땅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문명에 의존하는 강도가 높을수록 후과는 광범위하고 장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나 치명적이다. 관전자로 머문다면, 미스라타나 후쿠시마는 호기심이나 막연한 걱정거리, 아니면 무관심의 영역에 머물고 말 일이다. 반면 미스라타 시민의 의지와 후쿠시마 원전 근로자의 목숨 건 사투에서 실천과 행동의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반전(反戰)과 인도주의, 그린 에너지로 테제를 국한시킬 필요는 없을 듯하다. 지금 여기 나부터 작은 의지와 힘을 모아 지역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그 힘이 초(超)국경의 위기와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동력의 일부로 작용한다면, 적어도 지속가능한 지구 네트워크의 일원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라는 진부한 문구를 굳이 되새기지 않더라도…. ckpark@seoul.co.kr
  • [지금&여기] 리비아 사막에서 길을 잃다/강국진 국제부 기자

    [지금&여기] 리비아 사막에서 길을 잃다/강국진 국제부 기자

    지난 2월 15일 최초로 시위가 벌어지고 한동안은 모든 게 분명해 보였다. 시위는 ‘민주화시위’요, 반정부군은 ‘시민군’이었다. 민주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용감한) 민주시민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사악한) 독재자. 리비아는 1980년 5월 광주와 겹쳐졌다. 전형적인 ‘민주 대 반민주’로는 제대로 해석이 안 되는 구도가 보이기 시작한 건 3월부터였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넘어 무력 개입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거치지 않는 ‘인도적 개입’에 이르러서는 프레임 자체를 새로 구성해야 했다. 러시아투데이가 보도한 한 전직 영국 정보기관 간부 말마따나 “모든 인도적 지원 조치는 결국 대규모 침공을 위한 변명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위 당시부터 리비아 상황을 되짚어 보자. 벵가지 등에서 시위가 발생하고 경찰이 진압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총을 든 ‘시민군’ 일색이다. 국가임시위원회가 결성된 게 2월 27일이었다. 시위 발생 보름도 안돼 내전에 돌입했다. 카다피가 독재자인 것도 맞고 인권 탄압한 것도 맞겠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급변하는 데는 조직적인 부족 정치와 부족 간 갈등이 주요 요인이지 않았을까. 미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비밀정보국( MI6) 소속 특수요원들은 몇주 전부터 첩보를 수집하고 반군 지도부와 접촉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마이크 로저스 미 하원 정보위원장조차 “리비아 반군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며 무기 지원을 반대할 정도로 반군의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무엇을 근거로 이들을 ‘민주화 시위 지도부’와 ‘시민군’으로 간주할 수 있겠는가. 상황이 이런데도 다국적군은 목표가 카다피 제거인지, 민간인 보호인지도 모호한 무력 개입을 시작했다. 리비아의 미래는 셋 중 하나가 될 듯싶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혹은 21세기 최초의 분단국가. 이 글을 쓰는 필자나 오바마, 캐머런, 사르코지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리비아 사막 한가운데서 신기루에 홀려 길을 잃었다는 점이다.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갈수록 “이 길이 아닌가벼….”하는 소리만 가득하다. betulo@seoul.co.kr
  • 다국적軍 카다피 관저 폭격

    다국적軍 카다피 관저 폭격

    영국이 리비아 상공의 방공 시스템을 파괴하기 위해 20일(현지시간) 미사일 공습을 재개하는 등 서방의 다국적군이 2차 공습에 들어갔다. 다국적군은 카다피군의 병참 지원 라인을 끊어 놓는 것이 2차 공습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날 영국은 지중해에 있는 트라팔가급 잠수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을 전날에 이어 두 번째로 발사했다. 존 로리머 영국군 소장은 성명을 통해 공습 재개 사실을 확인하고 “영국과 다국적군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973호 결의안을 지지하는 작전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공습으로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관저가 대부분 파괴됐다. AFP 통신은 다국적군 관계자의 말을 인용, 카다피 관저에 있는 행정건물을 폭격해 카다피의 지휘통제본부를 파괴했다고 전했다. 다국적군은 리비아의 대공망 마비를 위한 공습이 일단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이와 관련, 아랍권 언론매체인 아라비안 비즈니스 뉴스는 카다피의 관저가 폭격당할 때 카다피의 5남인 카미스가 화상을 입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카미스가 이끄는 친위부대인 민병대 32여단은 ‘카미스 여단’으로 불리며 반정부 세력을 진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공습이 재개되기 전인 이날 오후 9시 카다피군은 2차 휴전을 선언했으나, 이후에도 반정부 시민군의 근거지인 벵가지 등에서는 정부군과 반정부 시민군 사이에 교전이 계속됐다. 톰 도닐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리비아의 정전 선언은 사실이 아니거나 또다시 위반될 수 있다.”고 일축했다. 이번 군사작전에 참여한 국가는 당초 5개국에서 13개국으로 늘었다. 아랍권에서는 처음으로 카타르도 서방 다국적군의 작전에 합류했다. 카다피 국가원수의 차남 세이프 알이슬람은 이날 “리비아에 대한 다국적군의 군사작전에 놀랐다.”면서도 카다피가 퇴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국적군의 군사작전에 유감을 표명했던 러시아 외무부는 서방의 공습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며 무차별적 무력 사용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다국적軍 리비아 공습… 카다피 “결사항전”

    미국과 프랑스, 영국이 주도하는 서방 연합군이 19일(현지시간) 무아마르 카다피 정부군을 겨냥, 리비아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에 나섰다. ‘오디세이 새벽’으로 명명된 이번 작전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반정부 시민군에 대한 카다피군의 무차별 공격을 막기 위해 리비아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한 지 이틀 만에 이뤄졌다. 연합군의 첫 군사작전에는 프랑스, 영국,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 5개국이 참여했다. 프랑스 공군의 라팔·미라주 전투기들은 이날 처음으로 리비아 영공에 진입해 오후 6시 45분쯤 반군의 거점인 벵가지 상공에서 리비아 군의 탱크와 군용차량을 공격했다. 프랑스군의 공격에 이어 미국과 영국은 지중해에 배치된 해군 함정에서 리비아 방공망 시설들을 제압하기 위해 110여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했다. 윌리엄 고트니 미 해군 중장은 “리비아내 20곳을 목표로 미사일 공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서방의 다국적군 관계자들은 크루즈 공격으로 트리폴리 인근 해안의 방공망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국적군은 20일 오전 트리폴리 공습도 감행했다. 목격자들은 일부 포탄이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관저인 바브 알아자지야 근처에 떨어졌다고 전했다. 국영TV는 이날 서방 연합군의 공격으로 적어도 48명이 숨지고, 150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다국적군의 최초 공격 이후 이탈리아와 지중해 연안에는 비행금지구역 이행에 참여하려는 서방 연합군 전력이 속속 집결하고 있다. 이에 맞서 리비아 정부군은 대공화기로 서방의 전투기에 응사하는가 하면, 카다피 지지자들은 공습 가능성이 있는 군사 시설물 등에 ‘인간방패’를 구축하며 결사항전에 나섰다. 카다피는 국영TV를 통해 방송된 전화연설에서 다국적군의 군사행동을 ‘십자군 전쟁’이자 ‘식민지 침탈 공격’이라고 비난하며 결사 항전의 뜻과 함께 이슬람 국가들의 결집을 촉구했다. 영국측은 20일에도 리비아의 방공 시스템을 파괴하기 위해 미사일 공습을 재개했다다. 존 로리머 영국군 소장은 이메일 성명을 통해 “영국이 두 번째로 토마호크 미사일을 지중해에 있는 트라팔가급 잠수함에서 발사했다.”고 밝혔다. 로리머 소장은 “영국과 다국적군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973호 결의안을 지지하는 작전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트리폴리 관저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됐다고 리비아 국영TV가 보도했다. 미사일 1발이 카다피의 트리폴리 관저를 거의 완전히 파괴했으며, 이 관저와 함께 카다피가 사용하는 밥 알-아지지아 요새에서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편 안보리의 비행금지구역 선포 표결 때 기권했던 러시아와 중국은 외교부 성명 등을 통해 연합군의 리비아 공습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씨줄날줄] 아시아문화전당/노주석 논설위원

    1980년 5월27일 전남도청 별관에서 시민군과 대치 중이던 계엄군이 대대적인 진압작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신군부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시민군 14명의 꽃다운 생명이 쓰러졌고, 164명이 다쳤다. ‘마지막 싸움터’ 전남도청 별관은 점령됐고, 광주민주화운동은 그렇게 강제로 막을 내렸다. 옛 전남도청 본관, 민원실, 도 경찰청, 상무관 등 부속건물과 분수대 그리고 금남로로 이어지는 광주의 심장부는 대한민국 국민의 가슴속에 영원한 민주화 성지(聖地)로 새겨졌다. 정부가 전남도청 별관을 부분 보존하는 방식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키로 어제 결정했다. 설계원안과 10인 대책위원회, 5·18 시민단체의 의견 등을 절충한 조정안이다. 2002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에 의해 광주 문화수도 안이 대선공약으로 처음 제시된 지 8년, 2008년 공사의 첫삽을 뜬 지 2년 만의 진전이다.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은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하면서 공동화된 인권·예술·평화의 도시 광주를 살리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계획의 핵심이다. 7000억원을 투입해 올해까지 민주·평화교류원, 어린이지식문화원, 문화정보원, 예술극장 등 5개 건물을 짓는다는 계획이었다. 광주를 한국의 문화수도, 나아가 아시아 문화교류의 마루로 만들겠다는 정부 최대의 문화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계획이 틀어진 것은 전남도청 별관의 철거와 보존을 놓고 5·18 관련 단체와 갈등이 빚어졌기 때문. 국제공모에 따라 당선된 설계원안은 별관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진입로를 만들기로 돼 있다. 별관 외 다른 역사적 현장은 대부분 보존된다. 관련단체들은 상징성이 있는 별관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원형 보전돼야 한다며 “벽돌 한 장 뺄 수 없다.”고 반발했다. 대책위가 제시한 별관을 그대로 살리되 1·2층 중앙을 뚫어 통로화하는 게이트(오월의 문) 안 역시 안전진단결과 최하위등급인 E등급을 받아 수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길이가 54m에 이르는 별관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도심과 전당의 소통이라는 설계의 컨셉트가 무너진다는 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더 이상의 표류는 막아야 한다. 공은 관련 단체로 넘어갔다. 지역여론은 찬성과 반대를 놓고 사분오열돼 있다. 시민들도 지친 기색이다. 과거만 부둥켜안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가 양보안을 내놓은 만큼 관련단체들도 화답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살아 숨 쉬는 광주를 만들려면 소모적인 논란은 그만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7·28 민심 르포] ⑧ 광주 남구

    [7·28 민심 르포] ⑧ 광주 남구

    역시 광주는 ‘정치 도시’였다. 지난 23일 광주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남구 백운광장으로 가자고 했다. 60대 기사 박건규씨에게 “남구에서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광산구에 사는 박씨는 “남구 사람뿐이겄소. 시민들이 모다(모두) 관심을 갖제. 야무진 인물을 골라야 쓰겄는디.”라고 했다. 백운광장 근처의 ‘투가리 해장국’ 여주인 김은화(50)씨는 공교롭게 대구 출신이었다. “광주와 대구는 좀 달라예. 국회의원 한 명 뽑는데 관심이 참 많다 아닙니꺼. ‘어느 신문은 누굴 지지하는 것 같드라.’ 뭐 이런 얘기도 마이(많이) 하고….” 정치 논쟁을 즐기는 광주 사람들이 특히 남구 재·보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민주노동당의 선전 때문이다. 민노당은 6월 지방선거에서 광주 광역·기초의원 17명을 배출한 기세를 몰아 사상 첫 광주 지역구 국회의원을 노리고 있다. 더구나 민노당 오병윤 후보는 진보신당·국민참여당·창조한국당과 시민사회가 총력 지원하는 ‘비민주당 단일후보’다. 오 후보는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광주 운동권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민주당이 전략공천한 장병완 후보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인정한 관료로 기획예산처 장관 출신이다. 두 후보가 박빙이라는 사실은 민주당도 인정한다. 민주당은 위태로워진 텃밭 사수를 위해 광주 지역 국회의원들이 모두 나서 표 단속을 하고 있다. 광주 북구갑 출신인 강기정 의원은 “초반에는 우리가 확실히 밀렸고, 이제 겨우 균형을 찾았다.”고 토로했다. 남구 구동에 있는 광주공원을 찾았다. 1980년 5월 계엄군의 발포에 맞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민군을 편성하고 사격 훈련을 한 이곳은 지금 노인들의 휴식처가 됐다. 서울에서 내려온 기자라고 하자 노인 네댓명이 모였다. “민주당이 40년을 해묵으면서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고 착각하는디, 이제 매를 좀 맞아야제.” 한 노인이 민주당을 호되게 비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노인이 발끈했다. “한나라당이 보통 센 게 아녀. 한 명이라도 더 보태야제. 눈물을 머금고 또 찍어 줘야하지 않겄소.” 광주공원과 큰 대비를 이루는 곳이 봉선동이다. 이곳은 학원 밀집지역으로 평당 700만원이 넘는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서울 대치동에 필적하는 곳이지만 표심은 결코 보수적이지 않았다. 유치원생 아들과 함께 영어학원 차량을 기다리던 유미숙(33)씨는 “광주에서 진보교육감이 탄생한 것은 학부모들이 나섰기 때문”이라면서 “이번에도 민노당 후보를 위해 학부모들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형외과 원장인 강인석(45)씨는 “민주당이 반성을 좀 해야 하는 것은 확실한데, 그래도 민노당 국회의원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가장 큰 변수는 민주당을 향한 ‘애증’이다. 남구에서 하루 종일 만난 유권자 대부분은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민주당이 이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촌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대촌동에서 만난 이윤구(67)씨는 “2번 찍는 습관 어디 가겄소.”라고 했다. 전남대 대학원에 다닌다는 한명환(28)씨는 “시대에 맞게 바꾸는 게 광주정신 아니냐.”고 말했다. 승패 예상이 무의미해 보이던 선거를 박빙으로 만든 광주의 최종 선택을 지켜보는 것은 이번 재·보선의 또 다른 묘미다. 광주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옛 전남도청 ‘절반 철거안’ 마찰 우려

    정부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하면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투쟁의 거점이었던 옛 전남도청 별관 건물의 절반을 철거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5월 관련 단체 등의 반발이 예상된다. 20일 광주시 등에 따르면 조만간 공개될 정부의 ‘별관 보존안’은 5월 단체 등이 요구했던 ‘게이트 안’과 달리 건물의 절반 정도를 철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은 강운태 광주시장이 최근 시의회 의장단과 가진 간담회를 통해 드러났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폭 54m의 전남도청 별관 가운데 24m 부분을 헐어낼 방침인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문화부·시민단체 간의 합의안과 달리 전체 건물 중 45%가량이 철거되는 것이다. 당시 합의안(일명 게이트 안)은 별관의 극히 일부만 헐어내고 ‘5월의 문’을 내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들어가도록 설계됐다. 이에 따라 이 문제가 또다시 지역사회의 갈등과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5·18 사적지 원형보존을 위한 광주전남시도민대책위’는 이날 성명을 내고 “문화부가 내놓을 것으로 알려진 ‘절반 철거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민여론과 합의정신 존중을 송두리째 부정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5·18유족회 정수만 회장도 “그 정도로 건물을 철거할 경우 5·18 사적으로서 가치도 없다.”며 “이 문제에 대해 다른 단체들과 공동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강운태 시장은 정부안 확정·발표로 지역내 논란이 재연될 경우 문화전당 공사 차질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고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문화부와 5월 관련 단체들은 1년여간 ‘보존’과 ‘철거’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다가 지난해 9월 어렵게 ‘부분 보존’에 합의했다. 유인촌 문화부장관은 당시 박광태 광주시장, 광주지역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된 ‘옛 전남도청 별관문제 해법을 위한 10인 대책위원회’의 의견을 존중해 당초 설계안(별관 완전 철거안)을 철회하고 어떤 형태로든 보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美 - 아프간 출구전략 신경전

    ‘이보다 나쁠 수는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출구전략이 파열음을 내고 있다. 내년부터 시작될 미군의 단계적 철수에 맞춰 가동하려 한 아프간 주민 자체방위 프로그램이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반대에 부닥친 것이다. 10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주 아프간 미군 사령관이 지난주 취임 뒤 처음으로 가진 카르자이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매크리스털 전 사령관이 도입, 시험적으로 시행해온 이 프로그램을 확대 실시하자고 제안했으나 카르자이 대통령은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날 면담장에서 두 사람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퍼트레이어스 사령관, 존 매케인 미 상원의원 등과 함께 한 만찬에서도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에게 프로그램 확대 방안에 대해 다시 생각할 것을 요청했다. 카르자이 대통령과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은 일단 이 문제를 13일 다시 만나 논의하기로 일단락 지은 상태다. 두 나라가 대립하고 있는 자체방위 프로그램은 아프간 주둔 미군의 핵심 전략으로, 현지 주민들에게 미군 특수전 부대의 훈련을 받게 하면서 군복과 월급도 지급해 자체 방위에 참여토록 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담고 있다.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은 앞서 이라크 전쟁을 지휘할 때에도 이라크 내 알카에다 세력과 싸운 전력이 있는 반군 출신들을 비롯한 시민군 수만명과 공조작전을 펼친 바 있다. 미군 측은 이 프로그램을 아프간 내 20여개 지역으로 확대해 시행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이러한 계획은 아프간 내 군벌주의 득세와 통제 불능의 반군 활동을 부추길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은 편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카르자이 대통령과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의 면담에 배석했던 한 아프간 고위관리는 카르자이 대통령이 미국 측 방안 때문에 사적인 민병대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는 2011년 7월부터 아프간에서 단계적인 철군을 계획하고 있지만 초기 단계부터 진통을 겪으면서 철군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30주년] 80년 5월의 광주…그날 무슨일이

    1988년 국회 5공청문회를 통해 5·18의 진실이 조금 드러났다. 명예 회복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도 이뤄졌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자는 아직껏 미궁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5월17~18일 17일 오후 9시40분 임시국무회의가 비상계엄확대 선포안을 의결했다. 신군부는 곧 전국 대도시에 군대를 투입했다. 7공수여단 2개 대대가 전남대와 조선대에 배치됐다. 18일 오전 10시쯤 전남대 정문에서는 휴교령이 내려진 줄 모르고 등교한 학생들이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구호를 외쳤다. 계엄군은 진압봉을 휘두르며 해산에 나섰다. 10여명의 학생이 다치고, 나머지는 시내로 진출했다. ‘5월항쟁’의 신호탄이었다. ●5월19~20일 광주는 전날 벌어진 공수부대의 ‘만행’으로 공포와 분노의 도시로 변했다. 19일 오전부터 금남로에는 대학생·시민 2000~3000명이 나와 군경과 대치했다. 11공수여단 3개 대대가 가세했고 젊은 사람들이 무차별 폭행당했다. 시내 병원들은 부상자로 넘쳤다. 20일부터는 3공수여단 1100여명이 추가 파견됐다. 하지만 전날과 달리 M16 소총에 착검도 하지 않았다. 말씨도 공손했다. 금남로에는 10만여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MBC방송국 등이 불탔다. 밤 11시쯤 광주역 부근에서 총성이 울렸다. 차량을 앞세워 저지선을 돌파하려던 시위대를 향한 첫 발포였다. ●5월21일 새벽이 돼도 군중들은 물러설 줄 몰랐다. 세무서·파출소 등이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전날 광주역 발포로 숨진 시체 2구가 시민들의 손에 넘어왔다. 오전부터 수만명의 인파가 금남로를 꽉 채웠다. 오후 1시 정각. 전남도청 옥상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때맞춰 계엄군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내뿜었다. ●5월22~25일 날이 밝자 광주는 ‘해방구’로 변했다. 사실상 무정부상태였다. 시민군은 치안유지를 맡는 등 ‘자치 활동’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주먹밥을 해다 날랐다. 각계 원로가 참여한 ‘5·18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됐으나 ‘결사항전’을 주장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았다. 이 기간 단 한 건의 범죄도 발생하지 않았다. ●5월26~ 27일 26일 새벽. 마침내 계엄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시내로 진입했다. 원로 수습위원들이 최후 담판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27일 새벽 4시쯤 도청 안에서 첫 총성이 울렸다. 특공대는 5시10분쯤 시민군을 완전 진압했다. 항쟁지도부가 머물렀던 상황실 등은 피로 물들었다. 열흘간의 항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30주년] “금남로·대학가 5월도 썰렁”…잊혀지는 그날의 함성

    [5·18민주화운동 30주년] “금남로·대학가 5월도 썰렁”…잊혀지는 그날의 함성

    5·18 민주화운동이 30돌을 맞았다. 민주운동의 새 지평을 열었지만 단순 역사적 사건으로만 기억할 뿐 그날의 의미는 뇌리에서 점점 잊혀가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했던 가해자들이 함구하면서 그날의 핵심 진실 규명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국내 민주화 운동에 큰 획을 그은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 과제를 짚어본다. 1980년 5월 피로 물들었던 광주는 지금 화려한 ‘꽃’으로 부활했다. ‘폭동’ ‘사태’ 등 갖가지 누명도 벗었다. ‘광주의 5월’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동남아 등 제3세계 국가의 인권운동가들은 ‘5월’을 배우러 광주로 몰려든다. 5·18은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에겐 꿈이자 희망이다. 시민들의 머릿속에 또렷이 기억되는 ‘짧은 시간’이 있었다. 계엄군을 몰아내고 연출했던 일주일간의 ‘대동세상’이 그것이다. 시민들은 주먹밥을 나누고 부상자들에겐 피를 보탰다. 내것·네것도 없었다. 원시 부족사회처럼 운명 공동체였다. ‘시민군’은 최후의 순간까지 총칼에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전남도청 상황실을 끝까지 지켰던 이모(50·공무원)씨는 “죽었더라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겉으론 ‘실패한 항쟁’이었지만 그 실패는 오래가지 않았다. 5·18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군부통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1988년 국회 5공청문회가 열리면서 ‘살육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학생들은 분신과 거리 투쟁 등을 통해 보다 수준 높은 민주화를 요구했다. 5·18은 결국 문민정부의 책임자 처벌 등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을 끝으로 일단락됐다. 전두환 등 신군부의 몰락과 함께 사실상 30여년간의 군부통치는 막을 내렸다. 실패한 항쟁이 아님이 증명된 것이다. 격랑의 현대사 속에서 고비고비마다 민주화 투쟁에 불을 지핀 화수분이자 발전소였다. 5·18은 민주·인권·평화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했다. 세계 민주항쟁사에서도 돋보일 만큼 그 위상이 확고해 졌다. 그러나 30년이 흐른 지금은 기억의 저편으로 가뭇없이 사라져 간다. 망각과 무관심 탓이다. 금남로에서 만난 김현석(49)씨는 “5·18 기념일이 돌아와도 항쟁 직후처럼 뜨거운 감정이 일지 않는다.”며 “1990년대 이후 피해자 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뤄지는 등 5·18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뒤부터 먼 과거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다. 광주 지역 대학을 둘러보면 1980년대의 대학 풍경과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다. 5월 행사를 알리는 플래카드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어쩌면 이게 정상인지 모른다. 전남대 정다정(22·여·영문과 3년)씨는 “친척 중에 5·18 때 다친 분이 있어서 당시 상황은 대충 안다.”며 “그러나 의미 등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선대 총학생회의 한 간부는 “학내문제로 가끔 집회가 열리지만 일반 학생들의 참여는 거의 없다.”며 “취업난 등 현실적 고민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영태 전남대 사학과 교수는 “항쟁 과정에서 실재한 ‘영웅적 죽음’ 등을 예술작품으로 만들면 젊은 세대들도 자연스레 그 정신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30주년] 끝까지 도청 사수한 정해직씨

    [5·18민주화운동 30주년] 끝까지 도청 사수한 정해직씨

    “5·18의 진정한 가치는 ‘대동(大同)정신’이죠.”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정해직(59)씨는 “자발적 ‘투사’로 변해가던 시민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며 30년 전의 기억을 되살렸다. 정씨는 시민군 항쟁지도부 민원부장을 맡았었다. 그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것은 우연이었다. 전남 보성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고 있던 정씨는 휴일을 맞아 18일 광주에 올라왔다가 금남로에서 못볼 것을 봤다. 계엄군이 시위대를 쫓아가 곤봉으로 머리를 내리치고, 쓰러지면 군홧발로 짓밟는 것을 코앞에서 목격했다. “19일 학교로 돌아왔으나 수업이 제대로 안 됐습니다. 선혈이 낭자한 시민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죠.” 그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광주행 버스를 탔다. 자연스레 거리 시위에 합류했다. 집단 발포가 처음 있었던 21일 오후 장동 로터리에서였다. 앞서가던 시민이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이를 본 정씨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맘먹었다. 금남로는 시가전 현장으로 변했다. 그는 장례준비와 거리청소, 사망·실종자 신고 접수 등의 업무를 맡았다. 26일 자정 무렵 도청 전화가 모두 끊겼다. ‘사수파’들은 최후를 맞을 준비에 들어갔다. 총탄을 나눠 챙기고 민원실 건물 1·2층 복도에서 군부대와 대치했다. 새벽 4시를 지나 복도에서 총소리가 콩볶듯했다. 정씨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꼈다. 그 순간 “부모님과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 생각이 퍼뜩 스쳤다.”고 말했다. 그는 군 수사관들의 고문에 못이겨 자술서를 썼다.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다. 다음해 3월 대법원 확정판결을 거쳐 4월 초 잔여형기 면제로 풀려나 복직했지만 2005년 스스로 교단을 떠났다. 지금은 한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한다. “민중이 모든 것을 공유했던 그 힘은 어디서 나왔는지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요. ‘야만 상태’에서 그들이 보여준 힘은 놀라웠으니까요.”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광주 5·18은 신자유주의와의 싸움?

    그 시절 광주에는 단 한 곳의 금은방, 은행에서도 절도 사건이 없었다. 전남도청에는 시민학생투쟁위원회가 꾸려졌고,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있기까지 시민군은 시민들의 격려를 받으며 자치의 근거들을 하나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었다. 당시 언론들이 보도했던 ‘폭도들에게 점령당한 1980년 5월 무법천지 광주’의 모습이었다. 미국의 사회정치학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 웬트위스공과대학 교수는 이렇게 얘기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민중의 자발적 통치 능력을 보여 주는 두 개의 사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1871년의 파리코뮌과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이다. 파리와 광주에서 비무장 시민들은 각자의 정부에 맞서 도시의 통제권을 장악했고, 법과 질서를 회복하려는 중무장 세력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민중권력을 유지했다.’ ‘공통도시’(조정환 지음, 갈무리 펴냄)는 카치아피카스 교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1980년 이후부터 셈한다. 그리고 5월 광주의 항쟁은 군부독재와의 싸움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맞선 싸움이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신자유주의로 이행하는 자본주의에 맞선 전 지구적 투쟁의 일환이자 초기적 양상이었으며, 이후 국내외 투쟁들에 커다란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고, 오늘날까지도 광주가 제기한 근본문제가 생생한 현재성을 갖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밝혀 나간다.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되며 학술적 논의조차 그리 활발하지 않은 상황에서 1980년 광주를 바라보는 낯선 해석이다. 다중네트워크센터 대표인 저자는 “오늘날 1980년 광주를 다시 얘기하는 것은 미래사회를 상상하는 전지구적 다중들의 세계사적 과제”라면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짓기 위해 전남도청을 철거하는 것은 광주의 기억을 삭제하려는 신자유주의적 조치라고 비판한다. ‘공통도시’(common city)라는 말은 1980년대의 노동자연대와 조직된 공장의 이미지를 현대의 계급구성에 맞게 발전시키고 혁신하겠다는 취지로 저자가 만든 용어다. ‘제헌권력의 절대공동체’ 정도를 의미한다. 1만 2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5·18 30주년 기념 말러의 ‘부활’ 서울공연 퇴짜 ‘유감’

    “나 높이 날아 오르리라. 사랑 날개 타고 나 높이 날아 오르리라. 살기 위해 죽으리. 살기 위해 죽으리….” 구자범 광주시립교향악단(광주시향) 상임지휘자가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와 번역한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의 합창 부분이다. 구 지휘자와 김 교수는 광주의 한 카페에서 작품을 번역하면서 두 시간이나 펑펑 울었다고 했다. 가사의 마지막 부분이 1980년 5월 광주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던 까닭에서다. 두 사람은 올해 광주 민주화 항쟁 30주년을 맞아 5·18 기념 공연으로 말러의 ‘부활’을 선택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구 지휘자는 “가사를 보라.”고 짧게 답했다. “부활교향곡 합창의 가사가 당시 광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번역 과정에서 종교적 색채를 뺐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마침 올해는 말러 서거 100주년이어서 ‘30주년 광주’의 의미에 힘을 더 보탰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합창 부분을 시민들의 목소리로 채운 점이다. ‘아마추어’인 시민들이 우리말로 번역된 가사를 부르며 5·18 정신을 되새기자는 취지에서다. 광주 시민이 아니더라도 5·18 정신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오디션 지원(2월3일 마감)이 가능하다. 시민과 함께하는 ‘부활’은 5월17일 전야공연과 5월18일 본 공연으로 구성된다. 18일 공연은 시민군과 진압군 사이의 접전이 가장 치열했던 전남도청 앞에서 할 예정이다. 애초 서울 공연도 추진했다. 하지만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대관 심사에서 잇따라 퇴짜를 맞았다. 해외공연단과의 경합에서 밀린 것이다. 지방단체 공연이 외국 공연에 밀린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고 공연계는 자조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구 지휘자는 독일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386세대’로 80년 광주를 직접 경험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광주시향이 상임지휘자 자리를 제안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 구 지휘자는 “5·18은 광주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다. 서울에서 그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해웅 예술의전당 사업본부장은 “외부인사 5명으로 구성된 심의위원들이 공연 의도와 교향악단의 실력 등을 철저히 검증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면서 “대관 심사에서 탈락한 것은 요건(과반 찬성)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광주 아시아 문화전당 건립 무산 위기

    정부가 추진 중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사업이 ‘옛 전남 도청 별관 보존 문제’에 부딪쳐 장기 표류 또는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13일 광주시 등에 따르면 광주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등이 참여한 ‘10인 대책위’는 최근 회의를 열고 시민·사회 단체의 별관문제 절충안인 ‘오월의 문’ 안과 ‘3분의 1’ 존치안에 대한 정부 수용을 건의하기로 했다. ‘오월의 문’안은 옛 도청 별관 1, 2층을 뚫어 터널식 입구를 만드는 방안으로, 지역 12개 시민사회 단체 대표로 구성된 ‘시민사회원탁회의’가 제시했었다. 3분의1 존치안은 기존 별관 중 5·18 당시 시민군이 머물렀던 공간은 그대로 두자는 방안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두 방안 모두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혀 이 문제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병훈 문화중심도시 추진단장은 13일 “10인 대책위가 제시한 두 개 방안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추진단은 그동안 5월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마련한 국책사업인 만큼 계획을 수정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따라 1년 넘게 현장 농성 사태가 이어진 사업이 장기 표류하거나 아예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연극·뮤지컬

    ●들소의 달 7일까지 마방진극공작소. 1980년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오해받아 계엄군에게 붙잡힌 이후 인생이 망가진 40대 남자의 궤적을 통해 폭력의 일상화를 고발. 고선웅 작·연출. 1만~1만 5000원. (02)3676-7849. ●환상동화 5일~8월16일 이다2관. 세명의 광대가 극중극 형식으로 들려주는 눈이 먼 무용수와 청력을 잃은 음악가의 사랑 이야기. 무용, 음악, 마임, 마술이 어우러져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무대를 선보인다. 2만~2만 5000원. (02)762-0010. ●총각네 야채가게 30일까지 바다시어터. 잘나가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야채 가게를 하는 다섯 총각의 꿈과 우정을 그린 뮤지컬. 3만 5000원. (02)325-4177.
  • “광주정신 권력·상품화 안돼”

    “광주정신 권력·상품화 안돼”

    판화가 홍성담(54)씨는 ‘5월 광주’를 대표하는 판화가이자 당시 문화선전요원으로 활동했던 시민군이었다. 홍씨는 5월 광주를 겪는 동안 법원 앞에 있던 화실의 커튼을 뜯고 종이를 있는 대로 모아 시민군들과 함께 활동했다. 홍씨가 기억하는 광주 정신은 ‘대동세상’이었다. 홍씨는 광주민주화운동 29돌을 하루 앞둔 17일 “당시 시민군에게 6000여점의 총이 지급됐지만 단 한 건의 총기사고도 없었다.”면서 “높은 도덕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먹을 것을 내줬고 차량들은 시민군을 태우기 위한 공용차량이었다. 서로를 지키면서 한편으로 뭉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홍씨의 광주 관련작 50여점 가운데 ‘대동세상’ ‘횃불행진’, ‘사시사철-봄’ ‘깃발’ 등만 봐도 총칼이 난무하거나 핏빛으로 얼룩진 그림은 거의 없다. 홍씨는 “광주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겐 악몽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행복한 기억이었다. 그래서 내게는 광주가 믿음과 연대의 마당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런 홍씨에게 최근 전남도청 별관 철거를 둘러싼 충돌은 안타까운 일로 다가온다. 그는 “정부가 가장 큰 국가 폭력의 비극인 ‘80년 광주’의 교훈을 잊은 듯 행동한다.”면서 “5·18이라는 숭고한 역사적 사건을 권력화해 상품으로 이용하려는 일부 단체들의 행동도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5월 판화’ 연작으로 광주를 세계에 알리고 민족해방운동사 그림사건으로 고문과 옥고를 치른 뒤 홍씨는 광주를 떠나 1997년 서울로 올라온 뒤 현재는 경기도 안산에 자리를 잡았다. 5월 광주를 둘러싸고 분파가 생기고 계보가 생기는 등 점점 변질되는 과정이 그에겐 기득권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국가 폭력이 낳은 비극의 현대사를 형상화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2007년 11월부터 일본 도쿄와 제환 등을 순회하며 ‘안티 야스쿠니전’을 벌여왔다. 오는 8월15일 서울 인사동 평화박물관 전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이제 내년이면 30대 청년으로 접어드는 5월 광주.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지향적인 사고 탓에 구성원간 믿음이 무너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5·18이 남긴 용기와 신뢰, 연대의 의미를 되살려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서민들은 연대를 통해 불합리한 현실을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뒤숭숭한 광주’ 5·18을 기념하다

    ‘뒤숭숭한 광주’ 5·18을 기념하다

    5·18민주화운동 29돌 기념행사가 광주·전남 일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옛 전남 도청 별관 철거 문제로 단체간 갈등이 지속되면서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4일 5·18민중항쟁 29주년 기념행사위원회(이하 행사위)에 따르면 이날부터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5·18 어린이학교 개교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행사에 들어갔다. 행사위는 앞서 이번 기념행사의 슬로건을 ‘민중의 뜻대로!다시 오월이다’로, 주제어는 ‘공감’과 ‘저항’으로 결정했다. 전교조 광주지부의 어린이 학교가 4일 광주 방림초교와 광산구 운남동 근린공원, 전남 담양 등지에서 열려 5월 행사의 서막을 알렸다. 작은 운동회와 각종 체험활동이 펼쳐진다. 9~24일 열리는 5·18역사기행은 버스를 타고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외지 참배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올해도 계속된다. 항쟁의 현장을 돌며 계엄군에 맞서는 시민군 역할과 상무대 감옥 체험 등을 통해 당시 피해자의 고통을 함께 나눈다. 행사위 관계자는 “5·18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현대사의 비극인 5월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5월 정신계승에 앞장서야 할 5월 단체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설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 문제를 놓고 사분오열이다. 시민들은 행사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5·18 유족회 등은 매년 5·18묘지에서 치렀던 추모제(17일)를 올해는 농성 중인 옛 전남도청 안 천막 앞에서 치르기로 했다. 18일 열릴 29주년 기념행사는 전국적인 행사인 만큼 참석하기로 했다. 안성례 행사위원장은 “5·18 기념행사 중 가장 의미 있는 행사인 추모제 장소를 놓고 유족회 대표 등과 몇차례 만나 설득했으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며 “29주년 행사가 옛 도청 별관 철거문제로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5·18 청소년 역사체험 캠프 새달 23~24일 200명 참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5·18기념재단,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다음달 23일부터 24일까지 전국 200여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2009 청소년 민주주의 역사캠프’를 연다. 캠프 참가자들은 금남로, 국립 5·18민주묘지, 5·18자유공원 등 1980년 당시 계엄군과 시민군 사이 접전 현장 등을 불러본다. 캠프 참여 희망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나 부산민주공원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이메일(man2002@kdemo.or.kr 또는 hana0619@demopark.or.kr)로 신청하면 된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옛 전남도청 별관 해법없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 부지에 포함된 광주시 동구 옛 전남도청 별관의 철거 여부를 놓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5월 단체는 “1980년 당시 ‘시민군’의 마지막 항전지였던 별관을 존치해야 한다.”며 6개월째 현장 농성 중이다.‘문화전당’ 건립 주체인 문화관광체육부의 ‘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은 “설계대로 전당을 짓고,5·18사적지 보존은 다른 방법을 통해 찾아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광주시는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강건너 불구경’하는 식이다.문화중심도시 추진단은 최근시민대토론회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이에 따라 2012년 예정인 문화전당 개관은 차질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광주시·시민단체 어정쩡… 개관 일정 차질 불가피  5월 단체 등으로 구성된 ‘전남도청 원형보존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문화전당 착공 직후인 지난 6월 말부터 현장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공대위’는 “별관을 철거하면 도청 앞쪽 건물의 대부분이 사라져 역사성·상징성·장소성이 훼손된다.”며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원형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이들은 별관의 벽돌 한 장이라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추진단이 공사를 강행할 경우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막겠다.”고 말했다.문화부는 문화전당 설계 때부터 5월 단체들의 동의를 받았는데 뒤늦게 발목을 잡는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중심도시 추진단 관계자는 “18개월 동안 220억원을 들인 설계안을 바꾸려면 이와 맞먹는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며 “설계 변경에 따른 미관 훼손과 공기 차질,예산낭비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추진단은 최근 열린 시민토론회에서 ▲해체 뒤 건물 파편을 전국에 분산 보존 ▲랜드마크에 해체된 별관의 역사성 표현 ▲본관 내부에 별관 축소모형 전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문화부,축소 모형 등 대안 제시 건축가인 정기용씨는 “건물의 보존보다는 향후 문화전당의 운영을 통해 5·18정신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며 “별관을 철거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Gate) 개념으로 만드는 것도 창조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광주시는 조만간 새로 구성될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통령 소속인 위원회 새 위원이 위촉될 경우 광주시민들의 입장을 모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도 지금껏 5월 단체들에 지지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부담스러운 사안인 만큼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관망하는 분위기이다.  한편 옛 전남도청 일대에는 2012년 5월까지 국비 7984억원이 투입돼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 들어설 예정이다.지난 6월 착공식에 이어 터 다지기 공사가 한창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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