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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쓰에법원 대동호선장 공소기각 판결문 요지

    일본 시마네(도근)현 마쓰에(송강) 지방재판소 하마다(빈전)지부의 대동호 선장 공소 기각 판결문 요지. “이번 사건의 해역은 96년 영해법개정으로 일본의 영해가 돼 원칙적으로 일본의 단속권과 재판관할권이 미치도록 됐다. 그러나 헌법 98조는 일본이 체결한 조약과 국제법규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들 조약과 국제법규는 성립 시점을 불문하고 항상 법률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해 일본의 단속,재판관할권이 미치는가의 여부는 (한일)어업협정의 해석에 따른다. 한일어업협정은 연안으로부터 12해리까지를 배타적 어업관할권이 미치는 수역으로 지정하고 있다.한쪽의 국가가 (어업협정상의 배타적 어업관할권) 수역의 외측까지를 영해로 삼음으로써 조약의 효력을 무의미하게 한다면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한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따라서 이번 사건의 해역은 한일어업협정에 규정된 배타적 어업관할권이 미치는 수역의 외측에 있기 때문에 피고가 한국 어선으로 어업을 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일본에 단속 및 재판관할권이 없다.
  • 일 법원,직선기선 불인정/“한·일 어업협정이 신영해법에 우선”

    ◎한국선박 나포는 불법판결… 대동호선장 공소기각 일본 시마네(도근)현 마쓰에(송강)지방재판소 하마다(빈전)지부는 15일 일본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나포된 제909 대동호 선장 김순기씨(35)에 대한 공소를 기각,일본정부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직선기선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관련기사 3면〉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한·일 어업협정은 연안으로부터 12해리를 배타적 어업관할권이 미치는 수역으로 지정하고 있어 그 외측의 ‘신영해’내에서 조업을 해도 일본에 단속권은 없다”고 공소기각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한·일 어업협정은 올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일본의 새영해법에 우선하기 때문에 일본에 재판관할권은 없다고 판시,일본이 한·일 협정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설정한 새로운 영해선을 적용,한국선박을 나포한 것은 불법이라는 한국측 주장을 사실상 받아들였다. 일본법원이 김선장에 대한 공소를 기각함에 따라 ‘직선기선 설정은 국제적인 규칙’이라고 주장해온 일본정부는 어려운 입장에 봉착하게 됐으며 특히 난항을거듭하고 있는 한·일 양국의 새로운 어업협정 교섭에도 적잖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마쓰에 지방검찰은 “이번 판결은 한·일 어업협정 등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받아들일수 없다”며 이날 즉각 항소했다.
  • 대동호 선장 김순기씨/일 검찰,징역6월 구형/벌금 12만엔 함께

    【도쿄 연합】 지난 6월 일본 시마네현 하마다시 앞바다에서 조업중 일본 해상보안청에 나포돼 외국인 어업규제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한국어선 제909 대동호(68t) 선장 김순기(35)씨가 11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6월과 벌금 1백20만엔을 구형받았다. 선고공판은 오는 15일 있을 예정이다.
  • 일,좌초 러 유조선 기름피해 심각

    ◎이시가와·후쿠이현 해안 덮쳐 어민들 절망/강풍에 속수무책… 23년만에 최악 유출사고 일본 서부 해안에 검은 기름이 덮치고 있다.동해에 면한 일본 이시가와,후쿠이현은 지난 2일 새벽 2시51분 러시아 프리스코 트래픽사 소속의 중유운반 탱커 나호드카호(1만3천157t)가 동강나면서 새나온 기름과 잘려진 선수가 1주일만에 해안가를 덮치면서 지역 어민들이 절망에 휩싸이고 있다. 사고지점은 시마네현 오키섬 북방 100㎞ 지점이었다.사고 당시에는 겨울철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쓰시마난류의 영향으로 기름이 북상할 것으로 기대됐다.하지만 강한 서풍의 영향으로 새나온 기름이 동진을 거듭,이들 현 연안을 덮치게 된 것이다.또 선수 부분도 동쪽으로 표류,7일에는 후쿠이현 앞바다 암초에 얹히게 됐다.선수에는 2천800㎘의 중유가 담겨 있는데 7일 해상보안청에 의해 새로 중유가 흘러 나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피해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는 지난 74년 세토나이카이에서 발생한 기름오염 사고 이래 최대의 해상오염사고로 기록되고 있다.전복,소라,돌김,새우,게 등 고급 해산물을 한창 걷어올릴 철을 맞아 끈적끈적하고 검은 기름덩어리들이 덮쳐오자 어민들은 『악몽이 현실로 나타났다』,『올해 일은 글렀다』면서 발을 구르고 있다. 피해가 커진 것은 지난 1주일 동안 전혀 손을 쓸 수 없었기 때문.겨울철 동해에 면한 일본 서부지역 해안은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세기 때문에 사고 선박을 처리하기도 어려웠다.선수 인양을 한차례 시도했지만 로프가 끊어지고 말았다.파도가 높아 오일펜스 설치도 무용지물.오일중화제는 다량을 준비하고 살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이제는 반경 200㎞의 해역에 기름이 번져 있어 처리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일본 해상보안청 등은 8일부터 중화제 살포와 기름흡입기 등으로 제거에 나서고 어민들은 양동이 등으로 기름덩어리를 떠내고 있지만 밀려드는 기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나호드카호는 기름유출 사고에 대비해 2억달러의 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하지만 피해액을 보상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 「동북아 자치단체협」 첫 출범/경주서 “상호교류 협력” 선언

    ◎한·중·일·러 4국 29개 시도 참여 【경주=한찬규 기자】 우리나라와 중국·일본·러시아 등 4개국 29개 자치단체로 구성된 「동북아지역 자치단체연합」(NEAR)이 공식 국제기구로 출범했다. 자치단체로 구성된 국제기구가 창설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경북도를 비롯 중국 하남성·러시아 이르쿠츠크주·일본 시마네현 등 4개국 지방정부 최고 책임자가 참석한 가운데 12일 경북 경주시 힐튼호텔에서 열린 「96동북아 자치단체회의」에서 지방정부대표들은 『상호간의 교류·협력을 통한 공동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동북아 자치단체로 구성되는 국제기구를 창설한다』는 요지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또 이 회의의 명칭을 동북아시아 지역 자치단체연합으로 정해 2년마다 개최하며 회원 자치단체 대표로 구성되는 최고 의결기관인 총회의 의장은 총회를 개최하는 자치단체장이 차기 총회전까지 맡기로 결정,초대의장으로 이의근 경북지사를 선출했다.
  • 1888년 일 육군성 제작 「전국지도」 독도 일본령표기서 제외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명치시대 중앙정부가 제작한 일본전국지도인 「집제20만분1도」에 독도가 일본령으로 전혀 표기돼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14일 밝혀졌다. 일본 명치17년(1884년)이후 전국 측량과 지도제작에 있어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기관이 된 육군성 참모본부 측량국이 1888년 제작한 이 지도의 마쓰에(현재의 시마네현)와 사이고(서향·현 오키제도)지역 지도에는 독도가 포함돼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대 백충현 교수는 『집제 20만분1도에 독도가 빠져 있음을 확인한 것은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면서 『당시 일본이 독도를 자국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전국지도 제작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백교수는 이어 『일본이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이미 독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조선영토라는 점을 인정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막부정부에 이어 명치정부도 독도를 전혀 자국영토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집제20만분1도」는 명치유신후 반란군과 여러차례 전쟁을 치른 명치정부가 정확한 지도제작의 필요성을 절감,육군성 측량국을 발족시키면서 수년간에 걸쳐 지방별로 차례차례 제작한 지도로서 당시로서는 일본 전국지도의 기본이 됐던 중요지도다.
  • 독도와 대마도/한일관계사연구회 지음(화제의 책)

    ◎한일 영토인식의 편차 재검토 한·일 양국간 영토인식의 편차를 역사적으로 재검토한 책.「세종실록지리지」「숙종실록」등 한국측 사료와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태정관 지령」등 일본측 사료를 두루 검토,당시 우산도·송도 등으로 불리던 독도가 조선과 일본 양국 모두에 의해 조선 영토로 인정되었음을 밝힌다.또 일본은 독도의 군사적 가치에 눈독을 들여 「외국영해수산조합법」(1902년)을 제정,울릉도를 강제점령했으며 1905년에는 「시마네현고시」를 공포해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는 주장도 펼친다. 대마도 문제와 관련,이 책은 대마도는 고려 중엽부터 진봉관계에 의해 우리나라에 종속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조선측에서 대마도인들에게 관직을 제수했던 수직인제도도 양국관계를 규명하는 생생한 사례로 제시된다.이러한 종속관계는 대마도의 외교권이 메이지 정부에 의해 박탈될 때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이 지은이들의 견해.이밖에 조선시대에는 대마고토의식,대마번병의식,대마속주의식 등이 팽배했을 정도로 「대마도는 조선땅」이라는 인식이 확고했다는 점도 밝힌다.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마도가 조선땅이라는 주장은 일본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강변하는 데 비하면 역사적으로 훨씬 연원이 깊고 입증자료도 풍부하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지성의 샘,1만원.
  • 3년이상 정주외국인 일 사민당 입당 허용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사민당은 25일 「정주외국인에 대한 입당 규정」을 마련해 이날부터 18세이상으로 일본에 3년이상 정주하는 외국인의 입당을 허용키로 했다. 신당 사키가케가 도쿄와 시마네현 등 일부 지역에서 정주 외국인의 입당을 허용하고 있으나 당규로서 전국에 걸쳐 외국인 입당을 인정하기는 사회당이 처음이다.
  • 「독도」 분리협상 불용/일 시네마현 지사

    【도쿄 연합】 독도를 행정구역상 형식적으로나마 관장하고 있는 일시마네(도근)현 스미타 노부요시(징전신의) 지사는 6일 독도 영유권 문제와 어업협상을 분리해 협상키로 앞서 한­일 정상이 합의한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 1백58조원의 1백58조 배로도 안될…(박갑천 칼럼)

    일본에는 「땅 끌어당기기」신화가 있다.일본의 땅뺏기버릇은 그런 신화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한다.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신화다. 옛날 지금의 시마네켄(도근현)동 쪽 이즈모(출운)라는 나라에 야쓰카미즈오미쓰누노미코토(팔속수신진야명)라는 신이 있었다.나라를 둘러보고 조붓하다 생각하면서 늘릴 마음을 먹는다.바다저쪽은 신라땅.거기 길게 뻗쳐있는 곶에 밧줄을 걸어 잡아당긴 곳이 지금의 히노미사키(일어기),때려박은 말뚝이 산베산(삼병산),밧줄이 오야시로마치(대사정) 서쪽 해안으로 되었다.같은 방법으로 이웃나라(고지,좌기,농도)땅도 끌어당긴다.그렇게 면내어 넓힌 땅이 지금의 시마네반도라 한다. 신화에는 그 겨레의 마음이 어린다.섬나라여서 남의 땅에 개염부리는 걸까.그 괴상한 이름의 신은 신라땅부터 당겨갔다.신화의 발상지가 지금의 시마네켄이라는 점이 또 흥미롭다.오늘날의 땅뺏기라 할수있는 독도영유권 주장도 이른바 「시마네켄고시」라는 것으로써 하고있지 않은가.시마네켄은 예나 이제나 땅뺏기 전초기지로구나 싶어진다.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등 일본쪽 자료를 바탕으로해서 만든 논문이 나왔다.「식민지배기간 일본정부 수탈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그에 의할때 인력수탈·물자수탈·자금수탈…등을 합치면 요새 우리돈으로 1백58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다.하지만 결코 돈으로 갚아낼수 없는 수탈도 있다.그것은 35년 강점기간동안 입힌 마음의 생채기.온겨레가 기죽어 오금을 못편 세월이었다.그들의 땅뺏기에 맞서 싸우다 죽은 사람은 얼마인가.그 고결한 죽음을 돈으로 장사웃덮기할 수 있겠는가.멀쩡한 젊은이들 끌어다가 총알받이 만들었을때 흘린 유족의 눈물을 돈으로 갈음해낼수 있겠는가.이른바 「정신대」로 끌려가 한살이를 망친 여성의 한을 돈으로 탕감해 낸다고 할수도 없다.1백58조원의 1백58조배로도 보상해낼수 없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돈이 앞서가면 모든 길이 열린다』(셰익스피어 「윈저궁의 바람둥이 아낙네들」)고 했다.『황금이 말문을 열때 혀는 힘을 잃는다』는 말과 맥이 같다.그러나 돈으로만 따지려들때 『입에 이길수는 있을지 몰라도 마음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장자」잡편:천하).할퀴여찢긴 마음이 어찌 돈으로 아물겠는가. 그걸 아물리는 길은 참마음의 뉘우침뿐이다.하건만 저들은 어떤가.지금 오히려 독도에 밧줄걸어 영차 영차하려 하지않는가.
  • 일 지도도 독도 한국땅 표기/조선총독부 발행… 죽도로 기록

    ◎서지학자 이종학씨 「일 교과서부도」 공개 일제 치하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지도에도 독도가 한국땅으로 명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지학자 이종학씨(70)는 24일 1914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일본지리교과서부도」속의 지도에 독도가 죽도라는 이름으로 조선령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씨가 이날 공개한 「일본지리교과서부도」의 「중부조선」편에는 일본해로 표기된 북위 38도선 아래 동해상에 죽도가 표기되어있다.일본은 1905년 일방적으로 독도를 일본령에 편입시키면서 독도를 죽도로 명명했기 때문에 이는 독도를 한국땅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또한 1905년 일본에서 발행된 관보와 신문들을 공개하고 『일본은 1905년 2월22일자 시마네현보를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했다고 고시했지만 그이후 일본에서 발행된 1백여개의 관보와 신문들은 모두 독도를 리안코르도로 표기,한국땅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해 2월22일 이후 발행된 산음신문과 대판조일신문등 신문들이 독도를 리안코르도로 썼으며 5월29일과 30일 발행된 관보는 러·일전쟁중 일본 연합함대사령관이 보내온 승전소식을 싣고 있는데 여기서도 독도를 이처럼 표기했다는 것이다.리안코르도는 1849년 프랑스함대가 독도를 지나가면서 붙인 이름으로 당시 제3국에선 모두 독도를 이처럼 표기했다.
  • 20세기초 일 어부도“독도는 조선땅”인식/일 시마네현지 기록발표

    ◎정부에 “렵어위해 임대” 청원/“일 측이 10리 더 가깝다” 거짓 측정도 드러나 【도쿄=강석진 특파원】 20세기초 독도를 일본땅에 편입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본인조차 당시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발견됐다. 일본명 다케시마인 독도를 관할한다고 하는 일본 시마네현 교육회(교육위원회)가 1923년 펴낸 시마네현지는 『1903년 호키출신의 나카이 요사부로(중정양삼랑)가 이 섬(리앙쿠르바위·프랑스의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붙인 이름)의 어렵을 기해 일장기를 세웠다.다음해 각 방면으로부터 경쟁어렵이 있었다.여러가지 폐해가 있었다.이에 나카이는 이 섬을 조선영토라고 생각해 상경해서 농상무성에 말해 대하(조선으로부터) 빌려서 이용하도록 허용함)청원을 냈다』고 말해 당시까지 나카이처럼 독도를 이용하려던 일본인조차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으로 편입한 후 관찬자료에서 일본인조차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은 매우 드문 케이스다. 시마네현지는 이어 『일본 해군수로부가 리앙쿠르바위(독도)의 소속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한·일 양국으로부터의 거리를 측정했다』고 적어 당시 일본정부는 독도를 자국령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지에 따르면 일본 해군수로부가 측정한 결과 일본쪽이 10리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 당시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을 편입하기 위해 엉터리로 측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는 6백90쪽 제5장 독도편 첫머리에 일본령 오키섬에서 85리,조선령 울릉도에서 50리라고 기술해놓고 있다. 현지는 그뒤 나카이가 다시 독도의 영토편입과 대하를 내무·외무·농상무성 3성에 청원했으며 이에 일본정부는 독도를 1905년 2월22일 자국령에 편입시켰다고 기술,독도의 영토편입조치가 엉터리측정에 근거해 일방적 조치로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지에는 일본정부가 독도의 영토편입에 대해 조선정부와 협의한 흔적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 분토지언… 역시 왜구의 핏줄인가(박갑천 칼럼)

    『도자이,도자이!』하고 외치는 일본말이 있다.가령 술자리에서도 누군가 일어나서 『조용조용,자,지방방송들 끄고 날 좀보소』하는 뜻으로 쓴다.가부키(가무기:연극)와 스모(상복:씨름)등에서 나온 말이다.웅성웅성 잡담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진행자가 외쳤던 소리.「도자이」는 동서라는 뜻이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쳐있는 구경꾼 여러분』하는 말을 줄인 셈이다. 지구촌 구석구석의 일들이 금방 전파를 타는 세상이기는 하다.그래도 지구촌에 대고 계속 『도자이,도자이』 외치고 싶어지는 심정이다.이쪽 입술에 눈길들이 모아지면 『동네방네 사람들아,독도를 자기네 영토라 억지쓰는 일본사람들의 야살스런 분토지언 들어보소』하고 이을생각.분토지언이란 말은「춘추좌씨전」(양공14)에 나온다.「썩은 흙같은 말」이니 이치에 닿을리가 없다.터무니없는 개다리질이다.저퀴들어 마땅할 넋나간 소리다.「맹자」(등문공상)에 나오는바 왜가리같이 흉악한 소리 내뱉는 남쪽오랑캐의 말(남만격설)이 곧 분토지언.사람이 제정신으로 할수 없는 괴 불알 앓는 소리다. 엉뚱한 일을 가지고 떠세하며 말썽일으키는 분대질이 꼭 과붓집 수코양이 같지않은가.이는 그 조상들이 바다를 갈고다니는 왜구(위구)로 이름을 떨쳤다는 반증일 뿐이다. 이런 그들의 생트집은 우리로 하여금 한번 더 대마도를 생각하게 한다.「패관잡기」뿐아니라 「지봉유설」(병정부)에도 대마도는 신라땅이었는데 언제부터 왜놈들이 차지하게 되었는지 알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마도를 거점으로한 왜구가 하도 극성을 부리니까 조선조 세종원년 정벌에 나선다.그러고서 이듬해 정월 경상도관할로 편입한다고 도주에게 통고한다.안방에서 활개치듯한 이른바 시마네켄(도근현)고시라는 것에 비기자면 얼마나 어연번듯한 「영토확인」인가.옛날의 내땅을 내것으로 한다는 뜻이었으리라.그런일 말고도 일본이 「대마」를 「쓰시마」라 읽는 것부터가 「조선식」.「두섬」의 일본식 발음이기 때문이다.대마도는 위아래 두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909년 간도협약으로 간도를 청에 넘겨준 것이 우리 외교권을 뺏은 일제였다(양태진 「한국변경사연구」).그 일만 생각해도 한이 서리는 판에 『심심한데 좌수볼기나 치자』는 식으로 남의 가랑이 그러안으면서 제 가랑이라니.『개구리새끼는 개구리』라는 그들의 속담이 있다.『왜구의 핏줄은 왜구』와 통하는구나 싶어진다.
  • 「독도망언」은 식민주의 오만(특별기고)

    최근 일본 정부의 수상과 외상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망발을 감행했다.그리고 독도가 자신의 영토임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사실임을 강변하고 있다.이와 같은 강변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망언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를 다시금 확인해보고,그 국제법적 문제점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한다. ○역사적 연고 확실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는 확실한 것이다.원래 독도는 울릉도에 딸린 섬이다.울릉도는 이미 6세기초 신라시대때부터 한반도의 역사에 편입되기 시작했다.그러나 독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5세기에 편찬된 「고려사」의 지리지의 울진현에 관한 설명에서 시작된다.이 기록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고문헌 내지 고지도에서 독도는 울릉도와 확연히 구별되어 우산도 삼봉도 자산도 가지도 등으로 기록되어 왔다.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지명이 변동되는 사실은 항용 있어온 일이며,독도의 명칭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예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울릉도 주민들은 바위섬인 이곳을 「돌섬」 또는 돌(석)의 방언에 따라서 「독섬」으로 불러왔다. 여기에서 독도라는 오늘날의 명칭이 유래됐다.1900년 구한국 정부에서 지방관제를 개칭하여 이 곳에 군을 설치하고,그 관할 구역으로 울릉도 전도와 「석도」를 명시했다.이 석도는 「돌섬」의 한자 표기였다.그리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불리는 독도는 「독섬」이라는 방언 명칭에서 각기 그 음과 뜻을 취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이와 같은 과정을 살펴보면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권은 확고부동한 것이며,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일본의 시마네현은 1905년 2월에 고시 40호를 통해서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로 명명하고 자신의 관할구역으로 비밀스럽게 편입시켰다.이 편입 조처는 일본 내각이 1905년 1월에 단행한 독도에 대한 영토 편입 결정을 따른 것이었다.대한제국 정부는 이와 같은 사실을 1906년 4월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이에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그해 5월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그렇지만 당시는 이미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접수된 이후이므로 독도문제에 관한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은 불가능했다.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한제국 정부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독도에 대한 고유한 권리를 천명하는 데에 그쳤다. ○이르조선영토 표기 1905년 이전에는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일본도 인정해 왔다.일본의 대표적 지리학자였던 하야시(임자평)가 1785년에 제작했던 「삼국통람도설」에는 독도를 조선의 소유로 표시했다.일본이 개항한 이후 명치 연간에 육군성에서 제작한 군사지도에서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로 분명히 표기되어 있다.한편 1877년 일본 명치 정부의 최고 각료의견기관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었다.여기에서 제시된 몇몇 사례 이외에도 1905년 이전 일본에서 독도가 조선의 소유임을 인정했던 기록들을 더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이처럼 일본의 조야에서는 독도에 대한 조선의 역사적 연고권을 인정해왔다. 한편 일본 정부는 독도가 자신의 영토라는 사실이 『국제법적으로도 명확한 사실』이라고 강변하고 있다.그들이 이와 같은 억지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는 이른바 국제법상의 영토 획득 방식인 무주지에 대한 선점의 법리에 있다.그러나 독도는 결코 무주지가 아니라 엄연히 조선왕조의 영토 중 일부였고,종전에는 일본 자신도 이를 인정해 왔었다.울릉도 및 그 부속도서에 대한 신라시대 이래의 역사적 연고권은 분명한 사실이다.백보 양보한다 하더라도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이미 1900년에 독도를 자신의 영토에 분명히 편입시켰다.그러므로 독도에 대한 시마네현의 고시는 무주지에 대한 선점이 될 수 없으며,제국주의적 영토 약탈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일본이 1905년 이곳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었다.즉 일본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러일전쟁을 일으켰다.일본은 러시아와의 해전을 앞두고 동해 일원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비로소 제기하게 되었다.그러므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설정은 그들의 제국주의 침략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반성없는 일 태도 일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청산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그리고 이는 지난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방자한 자세임에 틀림없다.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망발에 대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 그릇됨을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독도는 엄연히 우리의 땅이기 때문이다.
  • 일의 「영유권 망발」을 반박한다/신용하서울대교수·사회학

    ◎“서기 512년부터 독도는 우리땅”/일의 주장은 제국주의 논리에 불과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옛 우산국의 땅이었다.서기 512년에 우산국이 신라에 귀속됨으로써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로 확정된 것이다. 이 사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에 실려있다.1808년에 편찬된 만기요람 군정편에도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땅이라고 정의돼 있다. 태종 16∼17년(서기 1416∼17년)사이에 왜구의 침략과 노략질 때문에 태종은 울릉도에 공도정책을 실시했다.공도정책도 당시에는 영토관리 정책의 하나로 태종은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 영토였기 때문에 이같은 정책을 편 것이다. 성종 12년(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중종 26년(1531년)에 편찬된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도 울릉도와 우산도를 조선왕조의 영토로 규정하고 지리적 설명을 싣고 있다. 일본측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에서 최초로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문헌에 기록된 것은 1667년에 재등풍선이 편찬한 은주시청합기가 처음이다.여기에도 울릉도와 독도(송도와 죽도로 표기)가 일본영토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7세기 말에 대마도주는 공도정책을 악용하여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하는 활동을 시작했다.울산어부 안용복등이 일본에 건너가 구속되면서까지 투쟁하여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명백히 한 것도 이때였다. 후에 일본의 덕천막부 관백(왕이 아닌 통치자)이 1696년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재확인 함으로써 대마도주가 일으킨 영유권 분쟁은 해결되었다. 그 결과 덕천막부 시대에 일본·조선·중국의 구분을 그린 대표적 지도인 일본학자 임자평의 「삼국접양지도」(1785년 간행)와 18세기 일본지도 「총회도」에는 울릉도와 독도(우산도) 두 섬이 조선 영토임이 색깔까지 칠해서 명백히 표시됐을 뿐 아니라 독도(우산도)의 위에는 일본말로 「조선의 것으로」라는 문자까지 적혀있다. 근대국가가 성립된 뒤 일본 내무성은 1876년 각 현에 영토의 지도를 그려 올리고 지적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그때 일본 시마네(도근)현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해서 지도를 그리고 지적을 조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일본내무성은 6개월간 조사한 뒤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영토이며 일본과는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이에 따라 일본 해군성이 작성한 「조선동해안도」와 육군성 참모국이 만든 「조선전도」등 당시 모든 일본의 지도에 독도가 한국영토로 표기돼 있다. 그뒤 개항 후 조선왕조는 공도정책을 폐지하고 울릉도에 대한 주민이주 정책을 실시하였다.1900년에는 대한제국정부 칙령 제41호로 울릉도를 군으로 개편한 뒤 군수를 임명하고 울릉군의 관할구역을 울릉도,죽도,석도라고 규정하였다.독도를 의역하여 「석도」라고 표기한 것은 독도가 바위만의 돌섬이라는 뜻이다. 1904년 2월8일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울릉도와 독도에 러시아군함을 감시하는 해군망루를 설치하려고 했다.이 무렵 중정양삼랑이라는 일본 어업가가 한국정부에 한국영토인 독도에서 물개를 잡을 것을 허용해 달라는 청원서를 내는데,일본정부가 중간에서 대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정부는 이 기회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침탈하고 독도에 해군망루를 설치하기위해 중정에게 독도가 무주지이므로 일본영토에 편입시켜 물개잡이 독점권을 허가해 달라고 신청하도록 청원내용을 바꾸게 했다. 그리고 일본정부는 1905년 1월28일 내각회의에서 슬그머니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 한국정부와 한국민들은 이러한 내용을 1년 뒤에야 알았고 강제로 체결된 「을사5조약」 때문에 외교권이 박탈되고 일제통감부가 서울에 설치됐던 때였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더 이상 항거할 능력이 없었다. 그 뒤 일제가 패망하고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SCAPIN(연합국 최고 상부지령)677호로 독도가 일본영토로부터 분리되었음을 선언하고 이를 한국에 반환했다. 이같은 역사적 진실에 비춰 독도는 서기 512년부터 한국의 불가분의 고유영토이며 한국정부가 일관되게 주권을 행사해온 것이 명백하다. 국제법적으로 볼때 무주지 선점에 의한 일본영토 편입이라는 주장도 1905년 1월 당시 무주지가 아니라 엄연히 대한제국의 영토였기 때문에 어불성설이다. 독도는 국제법을 위반한 일본이 대한제국 정부와 대한민국 국민 모르게 슬그머니도둑질했다가 들켜서 뒤늦게 한국에 반환한 것일 뿐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에 있어서나 국제법상으로 한국의 영토임이 명명백백한 독도에 대해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논리의 연장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 정부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국민들도 일본의 독도침탈 의도에 경각심을 더욱 높여야 한다.
  • 한·일 독도 영유권분쟁 약사

    ◎고종이 「울릉군소속」 칙령 발표 1900년/일 시마네현,영토편입 첫 고시 1905년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시골 지방정부의 고시에 근거하고 있다.한반도가 사실상 일본의 지배아래 있던 1905년 시마네(도근)현은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라고 부르고,본 현의 소관아래 편입한다』고 발표했다.일본은 1906년 4월 이 사실을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는 외교권을 박탈당한 채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일본은 이어 1907년 각의에서 『독도가 주인없는 땅으로 어느 나라의 주권도 미치지않는다』며 독도의 일본 편입을 멋대로 결정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매년 적절한 시기를 골라 의회답변 형식을 빌려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90년대를 전후해서는 매년 8월쯤 우리 정부에 『독도가 일본영토이니,한국은 철수하라』는 구상서를 보내고 있다.또 매년 가을 순시선을 독도 근해에 파견,우리 영해를 침범하고 독도를 한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어가는 행위를 되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일본측의 터무니 없는 주장에 비해,정부는 독도가 법률적·역사적으로 우리 땅임을 증명해주는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독도는 512년에 신라의 이사부가 정복한 우산국즉 지금의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1천5백년 가까이 우리 영토였다.울릉도 어민들은 독도 부근까지 나가 고기를 잡으면서 이 섬에 10일 정도 머물기도 했으므로 무인도였지만 주인은 있는 땅이었다.이러한 사실은 「고려사」「세종실록」「성종실록」등에서 입증된다.일본이 내세우는 시마네현 고시에 앞서 1900년 고종황제가 칙령 41호를 통해 독도를 울릉군의 부속도서로 강원도에 공식 편입시키기도 했다. 「근대사 자료연구협의회」가 지난 78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8천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연구를 시작,84년 발간한 「독도연구」에 따르면 1694년 삼척 첨사가 조정 명령으로 울릉도 순시를 나가 독도를 발견했다는 기록을 발굴했다.뿐만 아니라 역사학자나 서지학자들의 노력으로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명기한 일본 정부 문서와 지도도 상당수 발굴됐다. 지난 83년에는 독도가한국령이라고 표기된 일본 해군성 수로국 발행 지도 원본(1857년 러시아 해군 제작,1876년 일 해군 재발행)이 서울대 규장각도서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또 일본 정부는 이미 1945년 항복문서에서 강제로 빼앗은 영토를 포기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여기에는 물론 시마네현 고시에 의해 멋대로 편입시킨 독도도 포함된다.
  • 일본은 「국가 폭력」 핏줄을 잇는가(박갑천 칼럼)

    어느 겨레고 역사는 영욕으로 엇결린다.특히 우리처럼 힘이 약했던 겨레에겐 굽잡혀지낸 아픈 자국이 더 많을밖에 없다.고려때 원나라에 여자를 바쳐야했던 일도 그것이라 하겠다. 고종때 쳐들어온 그들은 동남동녀를 요구한다.그후로도 까딱하면 여자를 바치라 을러대므로 고려조정에서는 「과부처녀 추고별감」이라는 이름의 희한한 관아를 만들어 그일을 맡게 했을 정도다.충렬왕∼공민왕때까지의 80년동안 그 문제로 사신이 50여차례나 갔다왔다 했다지 않던가.원제국을 뒤집어놓은 요화 기황후도 끌려갔던 공녀아닌가 생각되고 있다.쓰린 역사는 근대에 들어서도 더 살똥스럽게 되풀이된다.태평양전쟁때 일제가 군대위안용으로 조선처녀들을 강제로 그러모아 일선으로 보냈던것 아닌가.원나라때는 그래도 왕실이나 귀족의 후궁·궁녀·시첩·시비로 되었다.한데 일제는 불특정다수인의 욕구배설에 충당했으니 버력입어 마땅할 무도함이었다. 제1차 십자군원정(1096∼99)에 따라간 여자가 5천명이었다 한다.또 알브레히트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 슈트라스부르크에 입성했을때(1298)는 8백명이,스페인 알바공의 네덜란드원정때(1567)는 말탄 여자 4백명과 걷는 여자 8백명이 따라갔다.그러나 그들은 매춘부.한데 일제가 끌어다 망가뜨린건 우리 처녀들이었다. 일제는 그들을 일러 정신대라 했고 지금도 그리 부른다.하지만 「정신」이란 말뜻은 고약하다.소동파의 유후론등에 의할때 『남보다 앞서 자진하여 나아감,솔선함』같이 쓰이니 말이다.끌려간 것도 분하고 억울한데 앞장서 자진해 간 걸로 표현되다니.「조선조」를 「이조」라 하는 따위 독소섞인 그들의 말을 무심코 쓰는 사례가 「정신대」.달리 갈음됐으면 한다. 오는 3월께 유엔인권위가 『이른바 정신대는 국가에 의한 폭력이자 비인도적 전쟁범죄』라 규정한다고 들린다.보상도 「위로금」 아닌 「법적배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한다.그러나 배상으로 된다해서 짓밟힌 한살이가 보상되겠는가.참으로 잔인한 「국가폭력」이었다. 민주화했다는 오늘의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의 미화등 국가폭력의 맥을 잇는 작태를 곧잘 내발려온다.독도를 자기들땅이라 우기는 것도 침략주의 조상의 핏줄을 이은 떼거리.이웃으로 생각하려는 마음을 쓰렁쓰렁하게 만드는 그들이 아닌가.시마네켄(도근현) 고시보다 3백60여년이 앞선 「패관잡기」에는 대마도가 우리땅이더라마는.
  • 유산균/암 증식 억제 효과/보건협회 주최 국제심포지엄서 발표

    ◎장속 중간숙주 면역능력 높여/20주 투여땐 발병 37%P 낮춰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유산균이 암의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결과는 대한보건협회가 25일 개최한 제9회 「유산균과 건강」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됐다. 유산균이 암발생을 예방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암발생이 억제되는 이유는 유산균이 대장속에 살면서 음식물로부터 유래된 발암전구물질(암을 발생시키는 직접원이 되는 물질의 바로 전단계 화학물질)을 발암물질로 변화시키는 대장내 해로운 미생물효소의 활동을 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가 주목을 끄는 것은 암의 예방차원이 아닌 이미 발생한 암이 더이상 번지는 것을 억제시킬 수 있다는 데 이점이다. 발표자인 배리 골던 미 터프츠의대교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유산균이 생쥐에 이식된 암세포와 쥐에서 화학적으로 유도된 암의 증식을 억제하는 작용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다른 동물실험모델에서도 유산균은 숙주의 면역능력을 증강시키는 것으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이 발표에 따르면 발암전구물질인 DMH(다이메틸하이드라진)이 발암물질로 변화되는 곳은 대장인데 여기에 유산균인 락토바실러스 에시도필러스를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입을 통해 투여한 결과 발암효소의 활성이 눈에 띄게 감소한 사실이 확인됐다.또 실험경과 20주후에 유산균을 투입하지 않은 쥐에게는 대장암이 77% 발생했고 투여한 쥐에게는 40%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골딘교수는 또 최근 건강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유산균을 우유에 첨가해 사람에게 먹인 결과 모두 같은 종류의 유산균이 실험대상자에게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이 결과를 바탕으로 역시 쥐를 대상으로 DMH를 투여한 쥐와 유산균과 DMH 모두를 투여한 군으로 나눠 실험했다. 결과는 DMH만 투여한 실험군은 1백% 대장암이 발생했으나 유산균을 함께 투여한 군은 71.4%에서만 암발생률을 보였다. 최근의 연구결과와 함께 이번 실험결과는 유산균과 유산균함유제품이 대장암발생의 예방과 증식억제효과를 다시 한번 실험적으로 입증해주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이밖에도 유산균이 ▲장기이식·열상·AIDS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미생물감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일 하지메 사이토교수·시마네의대 교수) ▲우유·육류 및 야채의 발효 등에서 식품의 보존성을 강화한다(헤라르드 베네마교수·네덜런드 그로니겐대) ▲현대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혈중 콜레스테롤의 농도를 낮춘다(김현욱 교수·서울농대)는 등의 연구결과 발표가 있었다.
  • 일,경차보급 19년째 증가/2.63가구당 1대

    【도쿄 교도 연합】 일본에 경차(미니카) 보급이 19년째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미니카 보급은 지난 3월말 현재로 2.63 가구당 1대로 작년말 2.67가구당 1대에 비해 크게 늘었다. 미니카 보급은 도쿄나 가나가와,오사카를 비롯한 대도시를 끼고 있는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며 지방도시에서는 아주 높은 편이다. 특히 지방도시들의 경우 가구마다 제2의 차로 미니카를 선호하고 있는데다 농가들도 미니트럭을 애용,미니카의 보급이 계속 늘고 있다. 일본에서 미니카 보급이 가장 많은 지역은 도토리현으로 1.23가구당 1대로 거의 가구당 1대꼴이며 다음은 시마네현,야마가타현의 보급률이 높은 편이다.
  • 일,외국인에 지방참정권 부여/사키가케 시마네현

    ◎정당으론 첫 입법추진/재일동포 포함 5년이상 거주 대상 【도쿄 연합】 일본 연립여당중 하나인 신당 사키가케의 시마네(도근)현 본부(대표 금직순중의원의원)는 12일 현재 일본 국민에 한정되어 있는 지방참정권을 재일동포등 정주 외국인에게도 인정하는 법안을 의원입법으로 추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사키가케 시마네」는 이날 이즈모(출운)시에서 열린 공개토론에서 국적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한 「공생사회를 위한 결의」를 표명했다. 정주외국인의 참정권은 자민당과 사회,공명,민사당 등 일각에서도 검토할 문제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으나 기존 정당에 의해 구체적인 법제화 움직임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키가케는 지방참정권을 인정하는 대상으로 일본 국적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중 출입국관리법과 외국인등록법 등에 근거해 5년이상 일본에 거주한 정주 외국인으로 상정하고 있다. 사키가케는 법개정안을 마련한뒤 뜻을 같이 하는 의원들을 초당파적으로 규합해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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