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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진 요구 말도 안돼” 버티는 알아사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반군의 맹공으로 벼랑 끝에 선 가운데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서방국가의 퇴진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서방국가가 리비아 사태처럼 군사개입 카드를 꺼내들 경우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위협도 빼놓지 않았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현지 국영TV와 인터뷰를 갖고 “퇴진 요구는 말할 가치도 없다.”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리아 국민들에 의해 선택된 대통령에 대해 해서는 안 되는 언급”이라고 일축했다. 알아사드는 정치 개혁 로드맵도 제시했다. 오는 12월 지방선거를 시행한 뒤 이번주 새 정당법이 발효되면 내년 2월 의회를 다시 구성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반정부 인사들은 알아사드의 개혁 조치와 대화 요청을 전면 거부한 가운데 터키에 모여 이번 사태를 지원할 위원회 발족을 위한 회담에 나섰다. 대표단 중 1명인 와엘 메르자 교수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주말까지 위원회 명단 구성에 합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유럽연합(EU)은 시리아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새 제재안 채택을 위한 막판 협상에 나섰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사설] 마침내 비참한 최후 맞은 리비아 카다피

    리비아를 42년간 철권통치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 리비아 반군은 어제 수도 트리폴리 입성에 성공했다. 카다피의 장남은 투항했고, 차남과 3남은 생포됐다. 트리폴리는 카다피의 최후 거점 도시다. 이에 앞서 반군은 카다피 5남이 지휘해온 트리폴리 외곽의 친위 정예부대 기지를 접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휴가지인 마서스 비니어드섬에서 성명을 통해 “카다피 정권에 대항하는 힘이 정점에 달했다.”면서 “트리폴리는 독재자의 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6개월여간의 지루했던 내전은 미국, 영국 등 다국적군의 지지와 지원을 받은 반군의 승리로 사실상 끝이 났다. 지난해 말부터 아프리카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피플파워’는 24년간 통치했던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을 축출하고, 30년간 이집트를 강압 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쫓은 데 이어 카다피를 끌어내리는 데도 사실상 성공했다. 총과 대포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찾겠다는 시민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을 시작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카다피의 몰락에 따라 민간인들에 대한 유혈 진압도 서슴지 않고 있는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퇴진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 리비아에서는 ‘포스트 카다피’ 체제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반카다피 진영의 대표기구인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졌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리비아에 민주정부가 수립돼 하루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카다피 정권의 몰락을 가장 우려스러운 눈으로 볼 대표적인 정권은 아무래도 3대째 세습을 준비하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일 것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을 억압만 한다고 해서 제대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부와 군은 북한의 움직임을 보다 면밀히 점검해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또 정부는 교민 안전은 물론 카다피 이후에도 리비아의 건설사업에 우리 건설업체들이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차분하면서도 내실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 ‘벼랑끝’ 알아사드에 전방위 압박 통할까

    유혈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시리아에 대해 국제사회가 전방위 압박을 가하면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별로 없어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국가 지도자들의 요구대로 자진 사퇴를 받아들일지, 아니면 국제여론을 무시하고 무력진압을 계속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국제사회는 자산동결, 수출입 금지 등 시리아에 대한 경제 제재 강화를 통해 알아사드 정권의 숨통을 죄겠다고 하나 중동지역 전문가들은 ‘독재자의 딜레마’에 빠진 알아사드가 순순히 권좌에서 내려올지 속단하긴 이르다고 지적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 5개국 정상들은 18일(현지시간) 시리아에 제재 조치를 가하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AFP가 보도했다. 대시리아 결의안에는 시리아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와 자산동결, 여행금지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국도 시리아 제재 추가 조치를 내놨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알아사드의 퇴진을 처음으로 요구하는 한편 시리아 정부 소유의 모든 미국 내 자산 동결과 시리아 석유산업과 관련된 모든 거래 금지 등을 발표했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학살 혐의로 시리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안보리에 요청했다. 내비 필레이 인권위원회 대표는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증거를 유엔 진상조사위원회가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이런 노력이 알아사드의 하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부정적이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앤드루 타블러 연구원은 “알아사드는 이미 너무 많은 폭력을 자행했기 때문에 스스로 물러나기 어려운 ‘독재자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자진 사퇴한 뒤 재판을 받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사례가 그에겐 반면교사로 작용할 수 있다. 이집트 언론은 이날 무바라크 측근의 말을 인용해 무바라크가 알아사드의 퇴진을 조언했다고 보도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美 “북한에 9억여원 지원”

    미국 정부는 최근 수해를 입은 북한에 90만 달러(약 9억 6700만원)어치의 긴급 지원을 결정했다고 18일(현지시간) 밝혔다. 국무부는 성명을 통해 “미 국제개발처(USAID)가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최고 90만 달러어치의 구호물품을 북한 강원도와 황해도에 전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번 지원은 북한 주민의 안녕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미국은 국제적 모니터링 기준에 부합할 경우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그러나 이번 수해지원이 대북 식량지원과는 무관함을 거듭 강조했다. 빅토리아 눌런드 대변인은 수해지원 물품과 관련, “텐트와 같은 인도적 목적의 물품”이라면서 “식량은 아니다. 식량지원은 이와 별개의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인도적 지원과 정치·안보적 우려는 구분한다는 게 미국의 오랜 입장”이라고 강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실제 미국은 북미관계가 더 좋지 않았던 지난해 9월에도 수해 물품을 지원한 바 있다. 한편 국무부는 이날 발표한 ‘2010년도 테러보고서’에서 북한을 3년 연속으로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제외했다. 쿠바, 이란, 수단, 시리아 등 4개국만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보고서는 또 국가별 테러상황 항목에서 북한과 한국을 제외했다. 2004년부터 발표된 보고서에서 북한 항목이 빠지기는 처음인데 특별히 테러와 관련한 현안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는 일본 적군파 잔류 등과 관련한 내용이 북한 항목에 포함됐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호주 등이 국가별 테러상황 항목에 포함됐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혼돈의 중동… 시리아·예멘·리비아 수장 3인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46), 예멘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69),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69). ‘아랍의 봄’ 이후 중동 불안의 중심에 선 3인의 운명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알아사드는 지난 3월 이후 반정부 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2000명에 이르는 자국민을 희생시켰다. 아버지 하페즈로부터 지난 2000년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알아사드는 1982년 아버지가 이슬람 폭동을 문제 삼아 3만명 이상의 자국민을 학살한 전철을 뒤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대공포와 장갑차, 군함 등을 앞세운 정부군의 유혈 진압으로 북서부 항구도시 라타키아와 홈스, 훌라 등에서 연일 수십명씩의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급기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8일 오전(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알아사드의 퇴진을 공식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시리아 주민을 위해 알아사드가 물러나야 할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알아사드 정권의 미국 내 자산 동결과 시리아산 석유의 미국 수입 전면 금지,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직간접 수출 금지 등을 포함한 강력한 추가 제재 방안도 발표했다. 그동안 미국은 “알아사드가 정통성을 잃었다.”며 개혁을 압박해 왔지만, 그의 퇴진을 요구하기는 처음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알아사드와의 통화에서 군사적 공격과 대규모 체포의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알아사드는 “시위대에 대한 군사 작전은 중단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에서는 살레의 귀국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33년간 집권 중인 살레는 지난 6월 반정부 세력의 공격으로 화상을 입고 치료차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러 왔다. 살레는 지난 16일 알아라비야 TV에 출연, “임기가 끝나는 2013년 이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넘기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미국과 사우디가 살레의 귀국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걸프협력위원회(GCC)의 ‘사후 처벌 면제 및 30일 이내 퇴진’ 중재안을 지지하고 있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는 6개월 남짓한 내전 끝에 비극적 종말로 치닫고 있다. 반군 대표기구인 국가과도위원회(NTC)의 무스타파 압둘 잘릴 위원장은 18일 “승리가 임박했다. 트리폴리를 에워싸려고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NTC는 어떤 협상도 없을 것이며, 카다피는 강제로 내쫓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카다피 퇴진 후 8개월 내 권력 이양을 위한 선거 실시’라는 로드맵도 공개됐다. 한때 반미 진영에서 추앙받던 카다피는 권좌를 지키려고 광적인 학살극을 벌이다 끝내 비참한 독재자의 최후를 앞두게 됐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이제는 공공외교다-세계인 좌우하는 미디어] (3회) 시선을 사로잡아라:미디어 외교

    세계 각국이 국제방송을 설립하는 것은 미디어를 통한 공공외교가 공공외교의 기본 목표인 상대국 국민의 이해와 공감을 직접 얻는 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BBC와 CNN을 시청하고 이 채널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영국과 미국의 입장이나 의제를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학습할 개연성이 높다. 중국이나 러시아, 아랍권, 남미 등이 새로운 국제방송을 설립하는 것은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국가가 세계인의 머리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벌어지는 ‘미디어 공공외교’의 경쟁을 추적했다. 베를린·파리·런던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아프가니스탄에서 성공한 인도주의 지원의 하나는 유니세프가 단 3주 만에 700만명의 어린이에게 예방 접종을 실시한 것이다. 이는 BBC 월드서비스가 파슈툰어(아프간의 공용어) 방송의 인기 있는 드라마를 통해 예방 접종의 중요성과 목적에 대해 홍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프간 예방접종 외교 모범 답안 마크 레너드 유럽외교관계협의회 이사는 아프간에서 일어났던 기적 같은 일을 사례로 들며 BBC 월드서비스의 효과적인 정보 확산 역할을 미디어 외교의 모범답안으로 꼽았다. BBC 월드서비스는 30년 동안 파슈툰어 방송을 해왔다. 아랍어방송은 1938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동 지역 BBC월드서비스 청취자는 주간 1000만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16%는 사우디아라비아, 18%는 요르단, 12%는 시리아에 거주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오래 전에 해가 져 버린 제국’으로 불리는 영국에서 여전히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몇 안 되는 것이 바로 BBC 월드서비스이다. 전 세계 대중의 마음 속에서 BBC 월드서비스가 누리는 품격과 신뢰는 곧 영국의 자산이다. 1932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BBC 월드서비스는 100% 영국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라디오방송이다. 전 세계에서 1주일 평균 1억 8800만명이 27개 언어로 송출되는 이 방송을 청취한다. 특히 BBC 월드서비스가 제공하는, 검열받지 않은 정보는 정보통제가 심한 저개발국 애청자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영국이 20세기에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격찬했을 정도다. 영국 정부가 BBC 월드서비스에 지원하는 예산은 연간 2억 4100만 파운드(약 4223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최근 영국 정부가 재정 감축을 밀어붙이면서 BBC 월드서비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장 지출을 16% 삭감해야 하는 처지다. 2014년부터는 외무부 예산지원이 없어지고 TV수신료에서 일부를 할당받게 된다. 결국 BBC 월드서비스는 앞으로 3년간 매년 20%씩 지출을 줄이고 알바니아어, 세르비아어, 마케도니아어 등 5가지 언어의 방송을 중단 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서 3000만명가량이 방송을 듣지 못하게 됐다. 또 전체 인력의 4분의1인 650명이 정리해고될 예정이다. ●독일·프랑스 등 후발 매체 주목 BBC 월드서비스의 예산 삭감과 서비스 축소에 많은 전문가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AFP통신은 “예산삭감은 영국의 소프트파워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BBC 월드서비스가 주춤한 틈을 노리는 곳은 독일의 도이체벨레(DW)와 프랑스의 프랑스24이다. 두 매체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공정 보도를 통해 신뢰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BBC 월드서비스의 계승자라 할 수 있다.
  • “대화 단절은 남·북 모두에 좋지 않아요”

    “대화 단절은 남·북 모두에 좋지 않아요”

    ‘전설적인’이란 수식어를 붙이기에 손색없는 명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69)이 27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1984년 파리오케스트라와의 내한공연 당시 불혹을 갓 넘겼던 그가 지휘자로서는 물론 인생의 황혼에 선 현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임진각 평화 콘서트와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라는 뜻깊은 프로그램까지 들고 왔다. 바렌보임은 9일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그중에 한국도 포함돼 있다. 대화가 불가능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음악이 갈등과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서로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공연을 결정한 이유도 임진각 공연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라면서 “원래 남북한 국민들 모두 참석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아쉽지만 비무장지대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만족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바렌보임은 “내가 평화의 메신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처럼 대중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에 대한 개인의 신념에 따른 것”이라면서 “한반도 정치 상황에 대한 코멘트는 하지 않겠지만 대화의 단절은 남·북 모두에 좋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렌보임은 전날 저녁 상하이 공연을 끝으로 나흘간의 중국 투어를 마치자마자 한국으로 날아왔다. 칠순을 눈앞에 둔 그에게는 피곤한 일정일 텐데 깔끔한 남색 정장에 타이까지 맞춰 하고 나타나 1시간여 동안 내외신의 질문 공세를 여유 있게 받아냈다. 바렌보임과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지난 13년은 얽힌 실타래 같은 중동의 상황을 함축하고 있다. 이들은 갈등이 한껏 고조됐던 2005년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중심도시 라말라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공연했다. 하지만 2006년 레바논 전쟁이 재발하면서 시리아와 레바논 단원들이 떠나는 등 좌절을 겪기도 했다. 이들은 10~12일, 1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기적의 4일’이라는 제목으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다. 15일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 공연장에서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선보인다. ‘합창’의 솔리스트로는 소프라노 조수미 등이 선택됐다.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는 5만~15만원, 평화콘서트는 3만 5000원. 1577-5266.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용어 클릭] ●웨스트이스턴 디반 1999년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석학 고(故) 에드워드 사이드가 의기투합해 만든 오케스트라. 뿌리깊은 갈등을 빚어온 이스라엘과 이란,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아랍 출신 연주자로 구성됐다. 독일 대문호 괴테의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에서 이름을 빌렸다. 사이드는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서동시집은 유럽인이 동양을 이해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수용하려 노력한 첫 시도”라고 평가했다.
  • 美 ‘디지털 외교’의 1인자 “北주민, 美 도움없이 인터넷 자유 찾을 것”

    美 ‘디지털 외교’의 1인자 “北주민, 美 도움없이 인터넷 자유 찾을 것”

    위기의 미국 외교가가 ‘e-외교’에 주목하고 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 아프가니스탄전 등 ‘전쟁의 덫’에 발목 잡힌 채 아랍권역의 ‘재스민 혁명’을 맥없이 바라보며 정보력과 영향력 상실을 한탄했던 미국은 인터넷과 새로운 소통 도구를 활용한 외교 가능성에 눈을 돌린다. 미국의 디지털 외교전 최전선에 알렉 로스(40) 국무부 장관 혁신담당 수석 자문관이 서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 뉴미디어로 무장한 그는 외교관 대신 외국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려 애쓴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인터넷 자유’를 끌어올리려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그는 워싱턴 국무부 내 사무실에서 국내 언론으로는 서울신문과 첫 인터뷰를 갖고 “북한 주민 스스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정교한 디지털 생태계에 접속할 것이며 끝내 인터넷의 자유가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국무부가 아랍 권역 등의 ‘인터넷 자유’ 보장을 위해 추진해 온 프로젝트는. -미국 정부는 최근 (인터넷 자유 보장을 위한) 12개의 프로그램 개발을 도우려고 모두 2800만 달러(약 300억원)를 투입했다. 그중에서 ‘여행가방 속 인터넷’(IIS)과 ‘패닉버튼’은 공개됐다. IIS는 (권위주의 국가 등에) 이동광대역통신망을 설치하는 것으로 거의 상용화됐다. 패닉버튼은 시리아 등에서 (반체제 인사 등이) 체포될 위기에 놓이면 비상 버튼을 눌러 체포 사실을 주위에 알리도록 고안한 제품이다. 버튼을 누르면 휴대전화 속에 저장된 모든 연락처도 함께 지워진다. 나머지 10가지는 기밀 사항이다. →북한에서도 ‘IIS’나 ‘패닉버튼’ 같은 기술이 활용될 가능성이 있나. -우리는 특정 국가를 겨냥해 기술을 개발하지 않는다. 미 국무부는 지구상 194개국에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인터넷 자유를 위한 기술도 모든 국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어떤 나라가 됐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북한에는 인터넷망이 거의 구축돼 있지 않다. 북한의 ‘인터넷 자유’를 돕기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북한 주변에는 활기 넘치는 ‘디지털 생태계’가 조성돼 있다. 북한의 인터넷 자유는 미국의 도움으로 얻어지지 않을 듯하다. 외부 세계와 연결할 방법을 찾는 북한 주민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북한 정권이 ‘정보 정전’ 상태를 지속하려 한다면 이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아랍의 봄’ 기간 동안 인터넷은 독재자 축출 도구로 활용됐지만 ‘반미감정’ 전파의 장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인터넷 자유’는 미국의 외교적 이익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물론 네티즌이나 언론이 미국에 대해 좋은 말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말할 권리’를 존중하며 이 같은 권리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예컨대 이집트와 튀니지 등의 혁명 과정에서 기술과 소셜 미디어는 큰 역할을 해냈다. 결성하는 데 몇 년씩 걸리는 정치운동 조직을 단박에 가능하도록 했고, 짧은 시간 안에 연대의 고리를 강화했다. 저소득층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며 (민주화 세력의) 리더십을 확산시켰다. 시리아나 이집트, 튀니지 등에서는 넬슨 만델라나 레흐 바웬사 같은 독보적 리더는 없다. 네트워크가 ‘혁명 지도자’가 된 것이다. →줄리언 어산지가 주장하는 정보의 자유와 미국이 강조하는 정보의 자유는 어떻게 다른가. -자유는 책임으로부터 나온다. 미국에서는 무기를 소지할 권리가 있지만 누군가에게 마음대로 쏠 권리를 준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말할 권리가 있지만 남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할 권리가 보장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인터넷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가 포르노물 등을 인터넷에 올릴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에서 사기를 칠 권리나 지적 재산을 훔칠 권리가 주어진 것도 아니다. →한국의 정보기술 환경을 평가한다면. -한국은 굉장히 수준 높은 디지털 환경을 구축한 것으로 안다.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는 미국보다 낫다. 다만 한국의 디지털 환경 중 인터넷 카페 등에서 인터넷의 자유로운 사용에 제약이 있는 것이 아쉽다. ‘디지털 지문’ 같은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클린턴 국무장관과 모두 일해 봤는데, 두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다. 두 사람 모두 ‘머리’와 ‘가슴’, 지능과 동정심이 조화를 이룬 지도자들이다. →‘디지털 외교관’이자 비정부기구(NGO)의 창립자이며 혁신가다. 당신과 같은 꿈을 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청년이라면 기꺼이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성공한 사업가들을 보라. 여러 번 실패한 이들이 많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해고됐다가 돌아왔고, 구글 회장인 에릭 슈미츠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지배당한 회사에서 일했었다. 미국을 강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실험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실패에서 배우라고 독려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시리아 ‘대국민학살극’에 아랍권도 등 돌려

    시리아 독재 정권의 대국민 학살극이 절정에 달한 가운데 침묵을 지켜 온 아랍권의 주요국과 기관마저 등을 돌리면서 시리아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그러나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탱크 등 중화기를 앞세운 유혈진압을 멈추지 않는 등 강대강으로 맞설 태세다. ‘중동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7일(현지시간) 압둘라 국왕의 명의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폭력 진압) 행위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시리아는 스스로 현명한 길을 택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혼란의 가장 깊은 곳까지 끌려 내려가 패배할 것”이라고 규탄했다. 지난 3월 자국 내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았던 사우디 정권이 다른 아랍국 정세를 비난한 것은 드문 일이다. 사우디는 성명 발표와 동시에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주재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또 다른 중동국인 바레인과 쿠웨이트도 시리아 주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해 시리아 사태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아랍연맹과 걸프협력협의회 등 아랍권의 주요 기구도 알아사드 정권을 향해 포문을 열며 사우디와 공동전선을 구축했다. 아랍연맹의 22개 회원국은 시리아 규탄 성명을 채택하고 폭력 사태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 단체가 시리아 사태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걸프협력협의회도 논평을 통해 시리아 정부의 과도한 무력 사용을 규탄하고 즉각적인 폭력 중단을 촉구했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도 시리아 규탄 대열에 합세했다. 이집트의 이슬람 최고 지도자인 알아즈하르의 셰이크 아흐메드 알타예브는 “우리는 오랫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민감한 시리아 상황에 대한 발언을 피해 왔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악화됐다.”면서 “유혈사태 종식을 위해 시리아 지도자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국으로 구성된 입사(IBSA) 회원국들도 시리아의 폭력 사태 중단을 촉구하는 등 국제사회의 압박 수위가 높아지면서 알아사드 정권의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이 전했다. 하지만 시리아군은 나라 안팎의 규탄 목소리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민 학살을 계속 자행했다. 시리아 전국인권기구의 아마르 쿠라비 대표는 7일 군이 탱크와 불도저를 동원해 시위대 진압에 나서면서 서부 홈스 주 훌라 등 전국 각지에서 100여명이 숨지고 인권운동가와 기자 등 수백명이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시리아 수만명 가두시위… 러시아도 개혁촉구

    5개월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시리아에서 당국의 강경 진압으로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수만 명이 5일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에 나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AFP 통신 등 외신은 수만 명의 시위대가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은 금식 성월(聖月)인 라마단이 시작되고 나서 무슬림이 처음으로 금요 예배를 하는 날이다. 현지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이후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숨진 시리아 국민은 많게는 250명에 이른다. 전날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인 중부 하마시에서 정부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숨진 37명을 포함한 수치다. 외신들은 정부군의 보복을 우려해 익명을 요구한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 “4일 아침에도 하마에서 기관총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고 민간병원을 겨냥한 저격수들이 배치됐다.”면서 “통신과 전기, 수도가 끊기고 식량마저 부족하다.”고 보도했다. CNN은 저격수들이 일반인들을 조준 사격하면서 피해자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하마 시내 곳곳에 시신이 임시로 매장됐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알아사드 대통령이 복수 정당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진정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는 진정성 있는 제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급기야 미국은 물론 러시아까지 알아사드 대통령을 비난했다. 유엔의 단호한 조치에 반대하고 있는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즉각적인 개혁을 요구하며 “그러지 않으면 슬픈 운명이 기다릴 것이며 결국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으로 알아사드 대통령은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고,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알아사드가 물러나면 시리아는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악화일로 시리아… 안보리 ‘때늦은’ 개입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시리아 정부군의 강경진압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3일(현지시간) 정부의 유혈진압과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지난 3월 중순 시리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국제사회가 내놓은 첫 공식조치다.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지난 6월 시리아 규탄 결의안 채택을 추진했지만 러시아, 중국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라마단 첫날인 지난달 31일 하마시를 비롯한 전역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탱크를 동원한 강경진압으로 시위대 140여명이 숨지자 지난 1일 결의안 채택을 재차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이날 뒤늦게 결의안보다 한 단계 낮은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유엔 안보리는 성명에서 시리아 정부에 즉각 무력진압을 중단하고, 시리아 국민이 평화적인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포괄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성명에는 시리아에 대한 제재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처벌 요구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은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알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 정정 불안의 원인”이라며 “미국은 시리아에 알아사드 대통령이 머물길 원하지 않는다. 비무장한 반정부 시위대에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유엔의 규탄 성명에 4일 1963년부터 집권해 온 바스당 외에 야당의 설립과 정치활동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법령을 발표했다고 관영통신 사나가 이날 보도했다. 이는 시위대의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였다. 하지만 알아사드 정권은 지난 3월 15일 시위 시작 이후 1700여명을 숨지게 한 데 이어 시위대에 대한 유혈진압을 여전히 강행하고 있다. 지난 1일과 2일 이틀새 34명이 사망한 데 이어 3일에는 시위 거점 도시인 하마에서 30명이 숨졌다. 런던에 있는 시리아인권감시단에 따르면 2일 숨진 사망자 중에는 저격수의 조준 사격에 희생된 9세 소녀도 포함돼 있는 등 사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시리아군 탱크 진압… 30명 사망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로이터통신은 1일(현지시간) 알아사드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대에 대해 유혈 진압을 강행하면서 권좌를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정부군은 지난달 31일 140명에 가까운 시위대를 숨지게 한 데 이어 라마단 기간이 시작된 1일과 2일에도 탱크 수십대를 동원해 시위대에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현지 인권운동가들은 탱크 공격과 군경의 발포로 1일 하루 동안에만 모두 24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수십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원유 중심도시인 동부의 데이르 에즈 조르시에 80여대의 탱크가 진격하는 등 대규모 군사작전이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2일 새벽에는 경찰이 다마스쿠스 동쪽 교외 에르빈 지역에서 라마단 특별기도를 마치고 이동하던 군중을 향해 무차별 사격했으며, 이로 인해 적어도 6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리아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국제 사회의 비난 목소리도 고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로버트 포드 시리아 주재 미국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너무나 충격적”이라고 말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 비공개회의를 열어 결의안 채택 문제 등을 논의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광범위한 우려와 비난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는 시리아 정부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을 규탄하며 시리아 주재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다만, 프랑스 외무부는 “아직 (서방사회에서)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로이터 통신은 “매일 군중이 모스크에 모이는 라마단 기간을 맞아 반정부 시위가 더욱 격렬해질 것을 우려해 당국이 무력 진압 강도를 높이고 있다.”면서 “유혈 진압이 오히려 반정부 시위대의 반발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재스민혁명’ 월드컵 예선 최대변수 되나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혁명의 무기”라고 했다. 반면 이탈리아의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는 “축구 경기가 열리는 일요일에 혁명이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전두환 독재 시절 광주 무등구장에서 목포의 눈물을 목 놓아 불러 본 사람들, 스페인 프랑코 독재 시절 레알 마드리드를 맞이한 FC바르셀로나를 죽어라 응원했던 사람들은 누가 옳은 이야기를 한 건지 판단할 자격이 있는 걸까. ●요르단 등 중동국가들 4개조 배정 의외로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 그 답을 얻을 수도 있다. 올 초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시작돼 중동으로 번져간 민주화 바람 때문이다. 이른바 ‘재스민 혁명’은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바레인, 시리아 등에도 영향을 줬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진 반정부 시위에 각국 정부는 약속이나 한 듯 강경대응으로 일관했다. 그런데 이들 나라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는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 진출했다. 조 배정 결과 요르단과 이라크는 중국과 함께 A조에 속했다. 시리아는 일본과 북한이 있는 C조에, 사우디아라비아는 호주가 있는 D조에, 바레인과 이란은 E조에 포함됐다. 특히 반정부 시위가 최고조에 이른 시리아에서는 홈 경기 개최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미 지난 6월 올림픽 2차 예선과 7월 월드컵 2차 예선 개최를 허가하지 않았고, 경기는 중립지인 요르단에서 열렸다. 3차 예선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민중의 민주화 요구는 폭력에 억눌려 수면 아래로 잠시 가라앉았을 뿐, 언제든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가운데 수만명의 군중이 밀집하는 축구 국가 대항전은 정권 입장에서 엄청난 부담이다. 음주와 말초적 쾌락 추구를 죄악으로 여기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축구는 그야말로 ‘삶의 유일한 낙’이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 축구 경기장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행동이 앞서도 되는 공간이다. 경기장 안팎에서의 작은 마찰이 불똥으로 작용, 사그라진 민주화의 불길을 다시 살릴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홈 경기 개최가 가능한 나라라도 돌발 사태를 대비해 경기장 주변에 군대와 경찰을 빼곡히 배치해 공포분위기를 조성할 것이 뻔하다. 경기를 시원하게 이긴다면 에코의 말이 맞아떨어질 공산이 크겠지만, 이기든 지든 소요가 발생한다면 게바라의 말처럼 될 것이다. 어쨌든 원정팀에는 마이너스 요소다. ●C조 3차 예선 첫 경기는 北·日 맞대결 C조는 다른 문제도 안고 있다. 북한과 일본의 맞대결이다. 일본은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독자 제재의 일환으로 북한 국적자의 입국을 금지했다. 원칙대로라면 경기를 열지 못한다. 제3국에서 해야 한다. 지난해 1월 이 같은 이유로 일본과 마찰을 빚던 북한은 여자축구 동아시아선수권대회 출전을 철회했던 전례도 있다. 공교롭게도 다음 달 2일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리는 C조 3차 예선 첫 경기는 일본과 북한의 맞대결이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시위… 암살… 내분… 중동 ‘핏빛’ 라마단

    시위… 암살… 내분… 중동 ‘핏빛’ 라마단

    이슬람권의 성월(聖月)인 라마단을 맞은 중동 정세가 다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금식과 금욕 등으로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라마단 전날인 31일(현지시간)에 이어 1일에도 유혈진압을 이어갔다. 시리아 정부군은 하마에 탱크를 투입하고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해 139명이 숨졌다. 세계 주요국이 합법 정부로 인정한 리비아 반군 내에는 알카에다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무차별 발포로 최소 139명 숨져 이틀에 걸친 정부군의 유혈진압으로 지난 3월 15일 시위 개시 이후 최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는 반정부 시위의 거점인 하마를 비롯해 주요 도시에서 139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하마에서만 100여명, 동부 원유도시인 데이르 에조르에서 19명, 남부 헤락에서 6명 등이 사망했다. 로이터는 하마 시민들의 말을 인용해 하마 북부를 에워싼 탱크들이 1분에 4번꼴로 포격하는 동안 정부군 저격수들이 국영 전력회사와 교도소의 옥상에 오르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시리아 전문가 앤드루 테블러는 “라마단 기간 동안 시위대를 해산시켜 주요 시위 지역을 장악하려는 것이 정부의 속셈”이라면서 “라마단 전날 이런 행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종파 간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위 기간 4개월 남짓 동안 사망자는 1634명, 실종자는 2918명에 이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 국제사회는 시리아 정부의 민간인 살상을 규탄하며 추가 제재를 경고했다. 유럽연합(EU)은 시리아에 대한 추가 제재의 구체적인 대상과 내용을 2일 발표한다. EU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측근 5명에 대한 EU 입국금지, 자산동결 등의 제재를 가할 것이며 시리아군이 시위진압에 이용할 수 있는 무기 및 장비에 대한 수출금지 조치 등도 제재안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AFP가 보도했다. 하지만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시리아에 리비아식 군사개입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EU, 시리아 추가 제재 오늘 발표 리비아에서는 지난달 28일 사망한 반군 사령관 압델 파타 유네스 장군이 아군인 반군에 암살됐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반군 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리암 폭스 영국 국방장관이 반군 내 이슬람 무장대원들이 활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반군이 이끄는 국가위원회를 합법 정부로 인정한 미국, 영국 등이 혼란을 겪게 됐다. 폭스 장관은 이날 BBC 라디오4와의 인터뷰에서 “누가 유네스 장군을 암살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배후에 이슬람 무장단체가 있을 수 있다.”면서 “리비아 내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리비아 반군 세력의 존재를 명확히 밝히고 리비아에 대한 각국의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리비아 반군은 벵가지에서 유네스 장군을 살해한 의혹을 받고 있는 친정부 조직의 은신처를 급습해 5명을 죽이고 6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정대세 “北·日, 월드컵 최종예선 갈 것”

    “왜 조선대표가 4번 포트에 들어갔는지 의문이다.” 북한 축구대표팀 공격수 정대세(27·VfL보훔)가 지난달 31일 국제축구연맹(FIFA)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조편성 결과에 강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조편성 결과가 나온 뒤 개인 블로그에서 “왜 조선대표가 4번 포트에 들어갔는지 의문”이라면서 “일본과 우즈베키스탄, 시리아와 같은 조에는 약한 팀이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지난해 남아공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북한이 아시아 3차예선에 참가하는 20개국 중 최하위 5개국(4번 포트)에 포함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FIFA는 예전처럼 조 추첨 시드가 아닌 7월 랭킹에 따라 20개국을 4개 포트로 분류했다. 115위인 북한은 톱시드(1번 포트)를 배정받지 못했다. C조에 속한 일본이 16위, 우즈베키스탄이 83위, 시리아가 104위다. 또 A매치를 치르지 않는 북한에 FIFA 랭킹을 기반으로 실시되는 조편성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정대세 역시 “FIFA 랭킹이 믿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19위(6월 랭킹)가 우리 실력에 맞는 순위는 아니다.”라면서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A매치에 돈을 쓸 수 없어 순위가 높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대세는 북한의 최종예선 진출을 자신했다. 그는 “일본과 함께 북한이 최종예선에 진출할 것”이라면서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부터 월드컵 본선, 아시안컵 본선에 이어 이번에도 ‘죽음의 조’다. FIFA 랭킹은 낮지만 일본, 우즈베키스탄도 상당히 초조해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20개국이 5개조로 나뉘어 펼치게 되는 3차 예선에서는 각 조 1, 2위팀이 최종예선에 나가게 된다. 아시아에는 남아공월드컵 때와 마찬가지로 4.5장의 출전 티켓이 배당됐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시리아軍 발포… 시위대 121명 숨져

    시리아 군이 31일 반정부 시위의 중심 도시인 하마에서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발포해 적어도 95명이 숨졌다고 AFP 통신 등 외신들이 인권단체들의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시리아 인권을 위한 국민기구’의 암마르 쿠라비 대표는 이날 “정부군이 오늘 오전 하마에 진입해 민간인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바람에 최소 95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면서 “사망자 가운데 62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고 AFP 등이 전했다. 또 동부의 데이르에조르 시에서도 시리아 군의 공격에 의해 19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쳤고 남부 데라 지역에서는 3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치는 등 이날 시리아 전역에서 적어도 121명이 사망했다고 쿠라비 대표가 덧붙였다.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인권 운동가 오마르 이들비는 “오늘 새벽 군인들이 탱크를 동원해 하마를 습격하고 북부 지역에 포격을 가했다.”면서 군인들이 하마의 대형 병원들을 에워싸 부상자 이송도 막았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시리아 군의 장교 한 명이 반정부 시위대 진압을 거부하고 정부군과 맞서 싸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아드 알 아사드 대령은 AFP와의 전화통화에서 자신이 시리아 자유군의 사령관이라며, 군 당국이 동부도시 데이르에조르에서 군사작전을 멈추지 않으면 자신 휘하의 군인 수백 명과 맞서 싸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중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시리아 군의 유혈 진압으로 1500명 이상의 민간인과 360여명의 군인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 얘기 들어보니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지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 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러운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벨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 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은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 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 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 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힌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러운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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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제이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런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밸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이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 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의 머릿 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 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혀진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런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 서방 출구모색 다각화 속 지지부진 중동사태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아랍권의 교착 사태를 풀기 위해 다양한 카드를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은 돈줄을 틀어막으며 파키스탄 등 사이가 틀어진 대테러전 파트너를 압박하고 있고 리비아 공습을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는 카다피 정권과의 대화를 통해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반면 시리아 등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정정 불안 속에 반정부 시위와 강경 진압이 되풀이되고 있다. 내전 양상으로 번진 북아프리카·중동 국가들의 무력 충돌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국제 사회가 본격적으로 ‘협상 카드’를 빼들기 시작했다. 리비아 군사작전의 선봉에 섰던 프랑스는 100일 넘는 공습에 지친 듯 협상을 통한 출구전략을 찾고 있고 미국도 6개월째로 접어든 예멘 사태를 끝내려고 ‘독재자 설득 작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은 알제리 신문인 ‘엘 카바르’의 11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프랑스 정부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리비아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냈다.”면서 “프랑스 측은 우리 리비아 정부가 자신들과 (휴전을) 합의한다면 반군 측에 ‘전쟁을 중단하라’고 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알이슬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카다피 축출’을 목표로 줄곧 공습에만 매달려 온 프랑스 측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프랑스 측은 카다피 정부와의 직접 대화 사실을 부인하면서도 향후 협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제라르 롱게 국방장관도 10일(현지시간) 현지 TV에 출연해 “카다피군과 리비아 반군이 서로 대화하고 (전쟁 중인 리비아) 군인들이 막사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포격을 중단할 것”이라면서 “(카다피군과 반군) 양측이 정치적 타협을 위해 테이블에 둘러앉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존 브레넌 백악관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10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과 회동했다. 브레넌 일행은 국민적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살레 대통령에게 “걸프 국가들이 마련한 권력 이양 중재 방안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고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 미국 정부는 대테러 작전의 동맹국인 예멘이 6개월째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대화…시리아 알아사드 대통령 국민 달래기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참여하는 범국민대화가 10일(현지시간) 주요 야당의 불참 속에 시작된 가운데 북서부 항구도시 라타키아에서는 길이가 16㎞나 되는 초대형 국기가 등장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라타키아 시민들은 이날 정부의 개혁조치와 범국민대화를 지지하고 시리아 국내 문제에 대한 외국의 간섭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현하기 위해 국기를 치켜들었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범국민대화에는 집권 바스당과 무소속 의원 등 약 200명이 참석해 1963년 이후 처음으로 다당제를 실시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반면 야당 주요 인사들은 정부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는 데 항의해 회의 참여를 거부했다. 파루크 알샤라 부통령은 개막 연설을 통해 50년간 계속된 비상사태를 끝내는 등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범국민대화에 참가한 반체제 작가 타이옙 티지니는 “아직도 정부가 유혈 진압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수감자를 풀어 주는 것이 국민과 대화하기 위한 선물이 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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