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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6자회담 ‘창의적 전략’ 필요하다/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시론] 6자회담 ‘창의적 전략’ 필요하다/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오는 27일을 전후해 베이징에서 개최될 6자회담은 13개월 만의 만남인 만큼 국내외의 관심이 높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발표는 북·미 양자간 합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미국과 북한, 중국, 한국의 인내와 노력의 결실임에 틀림없다. 특히 한국은 지난 연말부터 중재자를 넘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순방외교를 통해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국제사회에 호소하였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의한 한반도의 위기설을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진정시키기도 하였다. 부시 대통령을 끈질지게 설득해 ‘미스터 김정일’이라는 호칭과 함께 “북한은 주권국가”라는 언급을 이끌어 냄으로써 북한의 대미 접촉 실마리를 마련해 주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대북특사로 파견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전달하고 ‘중대한 제안’ 즉,‘핵을 포기하면 남한의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함으로써 북측의 전향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북한은 이번 제4차 6자회담 복귀 발표에 이르기까지 형식, 명분, 실리 등 모든 것을 염두에 두면서 결정하고 행동해 온 것으로 보인다.6자회담 개최를 북·미 양측의 수석대표 접촉에 의한 양자 합의형식을 취했고, 미국측 수석대표로부터 주권국가의 인정과 6자회담 틀 속에서 쌍무회담 개최를 이끌어냄으로써 핵문제 해결의 주요 당사자가 북·미 양자라는 명분을 확보하였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을 방문하기 전에 발표함으로써 3국 방문에서의 대북압박이나 제재보다 협상 진전의 대안마련을 유도하였다. 중국의 대북특사 탕자쉬안의 방북에 앞서 발표함으로써 암묵적으로 자주성을 내비치면서 중국의 압박을 우회적으로 사전 봉쇄하는 효과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중재하에서 북·미간 협의·결정하는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기도 하였다. 남북 경추위 시작 시점에 발표함으로써 남측의 대북식량지원에 대한 정치적 및 국민적 여론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도 예측한 것 같다. 김정일 위원장이 6·17 대북특사 면담에서 천명한 7월 중 회담 복귀 약속을 지킴으로써 남측 및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는 한편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의도한 측면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해 행동의 단계로 나아가는 느낌을 주고 있다.“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강조한 것은 북측 내부의 설득용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군부 및 인민들에 대한 설득은 시작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미국도 나름대로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국무부 관계자는 3차회담에서 내놓은 미국의 제안은 ‘요구’가 아닌 ‘제안’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북한의 어떠한 제안도 논의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제4차 6자회담은 중요하면서도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참가국들의 반응도 신중하다. 미국과 중국은 기대치를 낮추는가 하면, 북한은 신중함 속에서도 실질적 진전에 대한 기대를 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참가국 모두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의 원칙’ 하에서, 해결에 대한 ‘의지’와 ‘주고 받는 식’의 협상 자세를 가진다면 반드시 성과는 있게 마련이다. 한국의 적극적이며 창의적인 대응전략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한국은 미·일·중·러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남한의 전력 공급’이 해결의 접점 마련과 단계적 동시행동의 기본 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6자회담은 실무회의와 전체회의를 중심으로 운영해 왔다. 이러한 회담운영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안전보장을 다루는 정치분과, 보상과 경제협력을 다루는 경제분과, 핵사찰과 검증을 다루는 기술분과 등 분과위원회 설치를 제안해 본다. 특히 한국은 해결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되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최소한 6자회담의 모멘텀은 유지시켜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 [시론] 주택시장 안정대책, 정확한 진단부터/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론] 주택시장 안정대책, 정확한 진단부터/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8월 하순에 내놓을 주택시장 안정대책에 정부는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고, 여론과 주택건설업체는 무엇이 담길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런데 현재의 주택시장 안정대책으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 정부와 여론, 주택관련 전문가들의 진단과 처방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 문제해결의 대안모색을 더욱 어렵게 한다. 주택시장 외부에 저금리와 과잉유동성이 존재하고 주택담보대출이 주택의 구매력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견해가 일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주택시장 내부적 요인에 대해서는 커다란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는 주택시장에 가격이 급등할 특별한 이유는 없는데도 투기집단의 발호가 강남 등 일부지역의 집값을 올리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 즉 ‘저금리→주택시장 자금 유입 및 투기세력의 가격 조작→가격상승’이라는 도식으로 문제를 인식하는 듯하다. 이러한 인식이라면 나올 수 있는 대책은 강도 높은 투기억제와 세제강화라는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기대이익이 없다면 투기세력이 취득·등록세를 물고 고율의 보유과세 및 양도소득세를 내고 주택시장에 뛰어들 것인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 주택시장에서의 기대이익은 입지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지역에 대한 중대형 아파트의 수급불균형이 존재함에서 비롯된 것이며, 투기세력은 이를 노리고 주택시장에 들어온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주택건설업체가 신규 분양주택의 가격을 책정할 때 폭리를 취해 높은 가격으로 공급했기 때문에 집값에 거품이 형성되어 집값이 올랐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로 전세가격이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면서 이는 집값의 본원적 가치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주택건설업체의 폭리를 막아야 하며, 이를 위해 분양원가를 공개하고 주택건설을 전면적으로 공영 개발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가격의 거품은 본원적 가치(value)와 협상가격(price)의 현격한 차이를 뜻한다. 그러나 어떤 재화의 본원적 가치는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더욱이 전세가격이 주택가격의 본원적 가치라 말할 수는 없다. 시민단체에서는 주택건설업체가 투입원가(cost)에 근거한 일정한 이윤 이상을 얻는 것을 폭리라 규정하는 듯하다. 그러나 재화의 가격은 대체로 협상가격으로 결정되는 것이고, 주택건설업체는 주택을 분양하는 인근의 주택시장의 매매가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결정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신규분양가가 높아져 재고 주택의 가격이 높아지는 것은 인과관계를 거꾸로 파악한 결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주택건설의 전면 공영개발은 가격을 안정시킬 수 없으며,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주택관련 전문가들-일부에서는 시장론자라 칭하는데-은 전체 주택시장의 수급과 별개로 강남지역의 중대형 아파트의 거래가 이뤄지는 부분 주택시장에서 나타난 수급 불균형과 높은 구매력이 주택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고 진단한다. 문제의 원인을 고려할 때 강남인근에 중대형 아파트를 충분히 공급하는 대안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택지공급을 늘리고 재건축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도 도대체 어느 정도의 중대형 아파트를 공급해야 가격이 안정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규모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또 현실적으로 강남의 주택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택지개발의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며, 그동안 규제했던 재건축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정부로서는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8월 말에 정부가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기보다 또 다른 문제점과 논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대책 마련에 앞서 문제의 진단과 처방에 대한 이해집단간의 인식차이를 좁히고, 문제의 원인에 근거한 대책의 마련이 요구된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간의 열린 대화가 아쉽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책꽂이]

    ●시간의 쪽배(오세영 지음, 민음사 펴냄)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해온 시인의 신작 시집.‘나무’ ‘번개’ ‘낮달’ ‘돌멩이’ 등 자연을 시적 주체로 삼은 시들과 ‘둔황에서´ ‘고비 사막’‘아, 타클라마칸’ 등 이상적 자연 안에서 서정적 자아의 발견을 노래하는 시들이 수록돼 있다.7000원.●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가지 사건(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공저, 권영주 옮김, 북하우스 펴냄)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의 선구자인 보르헤스와 카사레스가 함께 쓴 추리소설.살인혐의로 14년째 복역 중인 이발사 이시드로 파로디가 감옥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오직 뛰어난 추리력만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흥미진진한 여섯편의 이야기를 실었다.9000원.●시의 근원을 찾아서(허만하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1957년 등단한 의사 출신 원로 시인의 첫 시론집. 그동안 틈틈이 문예지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은 것으로, 니체, 릴케, 하이데거, 김춘수, 김종길 등 그의 시 인생에 영향을 미친 작가와 철학자들을 탐구했다.시인은 그 사유의 끝에서 ‘물이 없는 땅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물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시의 힘’(313쪽)이라고 고백한다.1만원.●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막스 프리슈 지음, 이문기 옮김, 책세상 펴냄)영화 ‘사랑과 슬픔의 여로’의 원작자이자 전후 독일어권 문학의 대표작가인 프리슈의 마지막 소설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가공한다는 소설의 전제를 뒤엎고, 소설속 인물과 이야기가 허구임을 독자에게 분명히 인지시키는 방식이 낯설면서 묘한 매력을 발휘한다. 전2권, 각권 6900원.●아이러니와 딜레마(박유희 지음, 여름언덕 펴냄)소설과 영화 평론을 두루 쓰고 있는 저자의 서사비평집. 아이러니의 다양한 효과에 대해 논의한 ‘아이러니의 얼굴들’, 화자가 어떻게 말하는가에 주목한 ‘고백의 수사학’, 서사물속의 사람과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글을 모은 ‘서사의 리얼리티’ 등 총 3부로 구성돼 있다.1만 2000원.
  • [시론] 삼순이표 심리학/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시론] 삼순이표 심리학/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좌충우돌 파티셰 삼순이에 대한 수백만 시청자의 호응과 응원은 세상의 모든 재수없는 인간들에 대한 ‘유쾌·상쾌·통쾌한’ 복수심에 기원한다. 애인이 있는데 버젓이 바람피우는 남자들,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여피들, 똑똑해 보이지만 차갑고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보내는 삼순이의 촌철살인 카운터펀치…. 그 ‘재수없는’ 인간들에게 꿀리지 않고 직격탄을 날리는 삼순이를 보며,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 점에서 삼순이는 힘 없고 백 없는 시청자들의 명을 받아 이 땅에 재수없는 인간들을 박멸하는 유쾌한 킬러라 할 만하다. 복수의 심리가 비장하거나 엄숙하지 않고, 코믹하고 즐거운 예식을 통해 감행되는 것, 이것이 ‘내 이름은 김삼순’의 인기 비결이다. 삼순이가 이렇듯 즐거운 킬러가 돼주길 바라는 것은 그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성의 심리이다. 여성시청자들이 삼순이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은 그녀가 백마탄 왕자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신데렐라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분수도 모르고 왕자님과 맞장을 뜨고, 이건 아니다 싶으면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는 그녀의 솔직한 용기에 여성시청자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신데렐라적 상황에 놓여있지만, 신데렐라 사랑방정식의 모든 인습을 버리는 삼순이식 사랑에 새로운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래서 ‘삼순이’는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금순이’의 당찬 여동생 같아 보인다. 그러나 김삼순을 바라보는 연인으로서 남성시청자의 심리는 조금 다르다. 나이 삼십의 뚱뚱하고 평범한 여인이 나름대로 멋진 남자에게 인위적이지 않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희박하지만,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 단 한가지 가능성은 바로 여인의 콤플렉스가 매력으로 다가올 때다. 남자들에게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할 수 없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훨씬 더 미묘할 때가 있다. 어느 구석을 살펴봐도 확 끌리는 구석은 없지만, 특별히 어느 구석하나 밉지 않은 일종의 ‘감정의 스펀지’가 형성되는 사랑의 전선에 남자들은 묘한 매력을 느낀다. 삼십살 연상의 노처녀, 돈 빌려간 채무자, 뚱뚱한 몸매. 이미 판세가 기운 게임에서 쉽게 이기지 못하는 사태가 올 때 삼식이 같은 남자들은 이 예외적인 상황에 당황하게 된다. 이 당혹스러운 경험에서 사랑의 감정은 시작된다. 더욱이 어이없게도 사랑전쟁의 주도권이 삼순이게 넘어갈 때, 삼식이는 ‘자존심’과 ‘자기애’ 사이에서 감정이 뒤죽박죽된다. 지난 6일 방영분에 삼순이가 단 1분만이라도 머리 굴리지 말고 너의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라는 말에, 결국 자꾸 네가 생각나서 미치겠다고 고백하는 삼식이는 전형적으로 솔직담백한 삼순이식 사랑 게임에 빠진 남자이다. 물론 솔직담백하다 해서 모든 여성이 백마탄 왕자에게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모든 백마탄 왕자가 삼순이식 사랑 게임에 빠지지는 않는다. 여성 시청자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도 그만큼 삼순이식 사랑이 현실에서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희박하지만 이러한 사랑이 이루어진 경우를 간혹 보게 된다. 이 예외적 사랑의 방정식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비대칭 추에서 요동치는 솔직한 감정의 에너지이다. 비대칭적인 조건을 훌쩍 뛰어넘어 감정이 사랑을 지배하는 것, 이것이 삼순이식 사랑방정식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었을 법한 예외적 사랑이 현실화되는 열쇠는 바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매력 포인트로 바꾸는 솔직한 감정의 심리학에 있다. 연인들이여 감정에 솔직하자.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시론] 영화계 문제점 다룰 테이블 마련을/이효인 한국영상자료원장·영화평론가

    [시론] 영화계 문제점 다룰 테이블 마련을/이효인 한국영상자료원장·영화평론가

    지난주 강우석 감독이 배우들의 개런티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동시에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이 문제를 더욱 공론화했다. 이에 현재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들인 최민식·송강호씨는 이튿날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며 강 감독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고, 강 감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공식사과를 했다. 자, 그러면 문제는 다 해결된 것인가? 보기에 따라 문제가 봉합되어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사건은 현재 한국영화계의 본질적인 문제와 연관된 한 지점을 건드린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터트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덮어둔다고 해서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사실 한국영화계는 중요한 쟁점에 대해 본격적인 토론을 벌이지 않았다. 스크린쿼터제만 해도 그렇다. 스크린쿼터제는 문화적, 산업적 측면에서 그 당위성을 인정받는 편이었다. 하지만 스크린쿼터제가 지켜지는 동안 한국영화 산업의 지속성과 건강성을 보장할 토대를 만들어가고 있었느냐는 질문은 스스로 하지 않았다. 아니, 질문은 어떤 형태로든 제기되었지만 충실하거나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부당하거나 불필요한 질책을 받곤 했다. 예를 들면 스타급 연기자들의 외국산 자동차에 대한 비난이나,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인 동시에 산업 발전에 어느 정도 필요한 기획영화에 대한 지나친 비판이 그런 것들이다. 또 투자자본이 제작비로 형성되는 과정의 합리성과 제작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 지출의 합리성 문제 또한 본격적으로 토론되지 않았다. 그리고 배급구조와 이윤의 배분구조 문제 또한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물론 거대 매니지먼트사의 과중한 요구 등은 협의하에 조정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문제 또한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거대 투자자본과 매니지먼트사와의 협력 혹은 흡수의 징후 또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자본력, 배급라인, 스타 등을 소유한 통칭 투자 자본과 제작사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을 마주한 양 세력간의 이해관계로 귀착되고 만다. 물론 모든 경제적 행위는 경쟁과 더불어 합종연횡의 협력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윤의 극대 추구를 목표로 하는 투자 자본의 행위는 정당한 것이며, 문화적 차원의 공생을 주장하는 제작사들의 요구 또한 당당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투자측의 행위와 제작측의 요구가 다른 차원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다. 제작가협회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배우 개런티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상황의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한 단초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점에서 강우석 감독은 정말 시의적절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배우들 역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하게 밝힌 것이다. 그러니 구태여 화해를 할 필요도 없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이 지점에서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는 테이블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좋은 화해 방법으로 보인다. 그동안 영화 제작을 통하여 쌓은 그들간의 우정과 연대감은 몇푼의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영화의 진정한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 테이블에는 상승 기운을 타고 있는 한류에 대한 공동의 이해관계가 고려되어야 하고, 정책적 개입 또한 있었으면 한다. 또 조감독 등 현장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 문제와 함께 현장 인력의 합리적 운용 문제 또한 고려되었으면 한다. 저예산의 다양한 영화 제작 환경과 영화 문화 인프라 조성 문제 또한 고려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하기 앞서 그간 부지불식간에 각자가 누려왔던 독점적 지위에 대한 반추 또한 있었으면 한다. 상황은 언제나 역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효인 한국영상자료원장·영화평론가
  • [발언대] 저소득층 의료급여 꾸준히 확대/이원희 보건복지부 의료급여과장

    지난 6월24일자 서울신문 시론 ‘의료보호제도 왜 안 고치나’에서는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인데도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보호제의 미비점은 개선하려 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제 의료급여(보호)제도가 저소득층에 대한 시혜적 성격에서 국민들의 권리로서 변모하고 있음을 널리 알리고 싶다. 큰 변화 중 하나는 2000년 이후 한해에 20∼30% 이상 예산을 증액하고, 약 6000억원의 추가예산을 투입하여 의료기관들의 숙원인 체불진료비를 해소하고 의료급여 환자 진료기피 현상이 줄었다는 점이다. 또한 법령과 관리 시스템의 개선으로 2003년 이후에는 의료기관이 진료비를 청구한 후 심사를 완료하고 지급하는 기간을 한달 이내로 단축해 현재는 건강보험과 비슷하거나 다소 짧은 기간인 평균 27일만에 진료비가 지급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가족 중에 질병이 생기면 의료비 부담을 감당하기에 어려움이 큰 차상위계층까지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진료비가 비싸거나 자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차상위 가정의 희귀·난치성질환자와 6개월 이상 질병을 앓고 있는 만성질환자에 대하여 의료급여를 적용하여 가계부담을 줄여 주었다. 또한 올해에는 미래 성장동력인 아동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질병이 없는 아동이라도 차상위계층인 것이 확인되면 시·군·구청에서 의료급여증을 발급해주고 있으므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는 일에 국민 모두가 참여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의료급여 대상자를 확대하고 급여의 수준을 올려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라는 강력한 요구가 있는 반면, 국민 각자가 내는 보험료와는 달리 세금으로 운영하는 의료급여 제도는 급여의 차이를 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정반대의 요구가 혼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선한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국민들의 믿음에 답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안아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원희 보건복지부 의료급여과장
  • 고 김춘수시인 문학·삶의 궤적 만난다

    “널 날려보내고 누가/울고 있다./밖으로는 나가지 못하고/운다는 말의 울타리 안에서 울고 있다./널 날려보내고 울고 있는/저 하늘, 어쩌나/제 혼자 저렇게도 높은,”(김춘수의 ‘홍방울새’) 지난해 11월 타계한 김춘수 시인을 회고하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오는 7∼22일 서울 장충동 한국현대문학관(이사장 전숙희)에서 열리는 ‘김춘수 시인의 문학과 삶’은 시인이 평생 일궈낸 문학적 성과를 반추하고, 생활인으로서 시인의 생전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다. 전시회에는 대표시집 ‘꽃의 소묘’(1959)‘처용’(1974), 시론집 ‘시론’(1970)‘의미와 무의미’(1976)‘시의 표정’(1979), 동화 ‘통영소년’(2003) 등 초판본 도서와 ‘이상(李箱)의 죽음’ 등 육필 원고가 전시된다. 아울러 양복, 모자, 안경, 나비넥타이, 펜을 비롯해 가족, 문인들과 찍은 흑백사진 등 시인의 체취가 묻어나는 유품이 공개된다.또 시인이 생전에 가려뽑은 시를 모아 시화집 ‘꽃인 듯 눈물인 듯’을 출간한 최용대 화가의 시화도 함께 선보인다. 7일 오후 4시 개막식에서는 시인 정진규씨와 소설가 윤후명씨가 고인의 문학과 인생을 돌아보고, 시인 조영서·노향림·류기봉씨는 ‘꽃을 위한 서시’‘내가 만난 이중섭’‘처용’‘달개비꽃’ 등 고인의 시를 낭송한다.(02)2267-4857.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시론] 서울대 입시, 그들만의 리그인가/최재식 서울 배화여고 교사

    [시론] 서울대 입시, 그들만의 리그인가/최재식 서울 배화여고 교사

    얼마 전 수시 1학기 전형에 지원하려는 학생들과 면담을 마쳤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논술시험이 부담이 돼 수시 1학기에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다.2학년 때부터 체계적으로 논술을 준비한 학생은 거의 없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지난 겨울방학동안 지금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술·구술반을 운영했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지만 계속하기는 어려워 지금은 외부에 맡기고 있다. 그만큼 학교에서의 논술 교육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서울대에서 발표한 2008학년도 입학전형은 현장의 교사로서 큰 허탈감과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전형 유형의 다양화’와 ‘전형의 특성화’를 기본 원칙으로 내세웠는데, 결국 특수목적고 학생들과 강남 8학군의 우수 학생들을 독점하겠다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특기자 전형은 노골적으로 특목고생들을 유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어서 국립대로서 공적 책임감을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논술·문학·외국어 능력 우수자는 외국어고 학생들에게, 수학·과학·정보능력 우수자는 과학고 학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같은 특기자 전형의 비중을 30%로 늘리고 동일계 전형을 무시한다면 그만큼 일반고 학생들의 몫은 줄어든다. 이는 동일계 전형을 통해 특목고 학생들이 전공과 관련 없는 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막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을 무시하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논술시험의 강화다. 내신 비중을 상대적으로 낮추고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면서 당락을 논술로 가리겠다는 전형 방식은 일부 계층들만의 ‘리그’인 셈이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은 특정 교과목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논술고사를 통해 수학 능력을 판단하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본고사의 부활과 다름이 없다. 현재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논술고사만 하더라도 정상적인 학교교육만 받은 학생들이라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출제된다. 솔직히 교사인 내가 봐도 매우 어렵다. 하물며 오랫동안 양질의 논술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않은 학생들이 영문혼합형 논술, 철학적 사유를 요구하는 논제, 논술과 과학의 통합교과적 문제 등에 제대로 답을 쓰기란 더더욱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더욱 심화된 논술을 실시하겠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고가의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을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일부 유능한 학생들의 경우 논술학원을 다니지 않고 꾸준한 독서교육을 통해 서울대 논술시험을 감당할 수 있겠지만 과연 그 수가 얼마나 될 것인가. 기회의 평등이 주어져 있지만 과정의 평등이 확보되지 않은 ‘시합’은 본질적으로 공정하지 못하다. 어느 사회에서나 경쟁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나는 경쟁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경쟁 시스템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역균형선발제를 통해 국립대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특목고에 유리한 특기자 전형과 정시모집에서의 논술 비중 강화는 재고되어야 한다. 가뜩이나 일선 교육 현장에서 전인교육의 가치를 구현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이번 서울대 전형은 학생들에게 더 큰 경쟁심과 위화감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파급 효과가 연·고대 등 상위권 대학으로 이어져 일선 학교의 진학지도는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유명 대학 합격생 수로 학교를 평가하는 현실에서 서울대안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결국 교육의 본질적 기능과 역할을 무시하는 것이다. 과연 학교 교육의 몫은 공동체 의식은 상실한 채 능력만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인가. 이번 서울대안은 대학의 서열화와 학벌지상주의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이고, 우리 사회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더욱 견고하게 할 것이다. 최재식 서울 배화여고 교사
  • [시론] 공공기관 이전, 후속대책이 더 중요/권용우 성신여대 도시지리학 교수

    [시론] 공공기관 이전, 후속대책이 더 중요/권용우 성신여대 도시지리학 교수

    176개 공공기관 이전이 발표됐다. 비수도권은 대체로 받아들이나, 수도권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공공기관 이전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함께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해소라는 명분이 있다. 문제는 공공기관 이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후속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첫째로 공공기관은 집단화해 계획입지하도록 해야 한다. 계획입지의 패턴은 기성시가지를 재개발하거나, 신시가지를 조성하거나, 아예 신도시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각 패턴은 해당 지자체의 형편에 맞게 정하면 될 일이다. 계획입지의 예로 1997년 9개 청이 집단화해 함께 있는 대전청사를 들 수 있다. 대전청사는 부근에 대덕연구단지가 있어 집적의 효과가 배가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의 질적 수준이 매우 양호해 서울의 웬만한 학군보다 학력 수준이 높다. 당연히 학생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처음에 대전청사를 만들면서 청사 주변에 양질의 주거환경을 조성하고 서울에서 이주할 수 있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대전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 수가 4100여명이 되는데 이들 중 4000여명이 현지에 정착했다. 근무처가 주거지 근처이기 때문에 걸어서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토요일 휴무가 실시돼 생활 양식이 변화됐다. 전국과의 접근성이 좋은 대전청사 공무원과 그 가족들은 주말 ‘휴(休)테크’를 즐기는 동호인 모임을 만들어 삶의 질을 구가한다. 공공기관을 집단화해야 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광역시장과 도지사들이 여러 이유로 공공기관을 관할 시·군·구에 따로따로 ‘섬’처럼 분산 배치하면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둘째로 적절한 수도권 대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신(新)수도권 정책은 물류·금융·정보화 기능을 특화해 수도권을 세계적 경쟁력을 발휘하는 지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환경친화적인 지역을 꾸며 수도권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대안도 제시한다. 그러나 1970년 이후 수도권에 유입된 순(純)전입인구가 800여만명이 되며, 이들 대부분은 수도권에서 제공하는 일자리 특히 제조업의 흡인력 때문에 몰려든 사람들이다. 수도권에 있는 제조업은 계속해서 인구를 끌어들이는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물류·금융·정보화 기능을 특화한다면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이 가속화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수도권은 체질개선을 통한 지역기능변화를 도모하면서 특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수도권에 있어 빛을 발휘할 수 있는 기능은 더욱 살려 특화시키고, 단순히 인구유입만을 야기하는 기능은 충분한 인센티브를 줘 비수도권으로 이전시키는 작업을 진행해야 공공기관이전의 참 의미가 살아난다. 셋째로 투기세력은 원천 봉쇄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입지하는 곳이나 그 주변지역에는 어김없이 한탕하려는 투기세력이 들어설 것이다. 지자체와 정부가 합의하여 공공기관 이전지를 확정하면 최우선적으로 이전지와 그 주변지역을 투기관리지역으로 정하는 한편, 합법적인 여러 장치를 통해 불로소득을 노리는 투기세력을 근원적으로 뿌리뽑아야 옳다. 또한 공공기관 이전으로 개발이익이 과다하게 발생했을 때 원칙에 따라 개발이익을 환수해 사회에 되돌리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된다.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의 여러 나라에서 공공기관 이전 정책을 구사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전면적으로 또 대규모로 실시한다는 차별성이 있다. 더욱이 공공기관이전과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그리고 신수도권 정책 등의 이른바 분산·분업·분권 등 3분(分)정책을 한꺼번에 진행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들 정책이 성공하려면 국민 모두가 조금씩 양보해 서로가 상생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권용우 성신여대 도시지리학 교수
  • [시론] 의료보호제도 왜 안고치나/장일태 나누리병원 원장

    [시론] 의료보호제도 왜 안고치나/장일태 나누리병원 원장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의료보호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노숙자 및 국내거주 외국인 근로자에게 국가가 입원 및 수술비 등을 무료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즉, 복권기금으로 거둬들인 돈 중 46억 원을 8도 인구에 맞게 각각 배분키로 했다. 예산이 한정된 탓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미약한 시작이나마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그러나 정작 기존 의료보호의 영역에 있는 이들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보강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뿌듯한 생각도 주춤거리게 된다. 의료보호제도는 공공의료를 강조하는 우리 정부가 돈이 없어 건강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 만든 의료보험제도의 일환으로, 소득의 재분배 기능을 갖고 있는 복지정책 중 하나다. 그러나 누누이 지적돼 왔듯이 이 제도는 소외계층에게 외려 서러움을 줄 뿐더러 의료기관에는 재정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의료보호환자는 의료보험환자의 20%에 육박한다. 단순 확률로 보자면 환자 다섯 중 한 사람은 법적으로 무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호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병원에는 정작 의료보호대상자의 발걸음이 뜸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병원에 가봤자 푸대접에 눈물짓고 돌아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병원을 야박하다 하기에는 속사정이 깊다. 의료보호제도는 의료보호대상자에 대한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병원이 의료보호대상자를 치료하고 치료비를 청구하면 정부가 이를 지불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병원에는 전혀 하자(?)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상 의료보호대상자에 대한 치료비에 대해 국가는 ‘미루기’로 일관한다. 의료보호대상자에 대한 진료비를 지급받기까지 평균 3개월에서 길게는 10개월까지 소요된다. 일반 의료보험 환자는 1개월이면 모든 처리가 끝나는 데 비해 너무 긴 시간이다. 의료보호환자의 경우 가산율이 낮게 적용된다는 것도 문제다. 같은 치료를 받은 경우, 의료보험 환자에게 100만원을 국가가 부담했다 치면 의료보호 환자는 60만원만 부담하는 형식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가뜩이나 낮은 수가로 진료를 하는 병원으로서는 의료보호대상자를 반가운 마음으로 맞을 수 없게 돼 버린다. 눈물바람으로 돌아선 가난한 이들은 ‘국가가 보장하는데 병원이 홀대한다.’며 ‘차라리 아프다가 죽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인심은 국가가, 굴레는 병원이 쓰는 형국이다. 정부는 병원의 항의에 ‘예산이 부족해서’라며 ‘면죄부’를 꺼내 든다. 그러나 올해 건보 재정은 1조 3000억원이라는 당기 흑자가 예상되고 있다. 재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국내 10대 기업 안에 들어갈 만한 수준이라 한다. 정부는 이 가운데 7000억원을 자기공명영상(MRI)이나 분만비 지원 등에 쓰기로 했다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8000억원은 어디로 갈 것인가? 시민단체들은 이 비용을 암이나 고액 중증 환자의 치료비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일부 의원은 ‘중질질환 완전 보장제’ 도입 제안까지 내 놓은 상태다. 아픈 사람 도와주는 데 경중을 따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많은 목소리 중에 시민단체에도 끼지 못하고 실력행사도 하지 못하는 의료보호대상자들을 위한 목소리는 왜 없는지 통탄할 노릇이다. 이에 앞서 기존 의료보호제도의 보강을 위해 정부가 스스로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데에 이르면 이 나라가 진정 ‘공공의료 보장 국가’가 맞는지 의심까지 들 지경이다. 정부는 이번 건보 흑자의 쓰임새에 있어 의료보호환자도 의료보험환자와 동일하게 진료비를 지불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병원과 가난한 이들을 함께 죽이는 기존 의료보호제도의 미비점을 보강하는 데에 적극적인 검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장일태 나누리병원 원장
  • [시론] 그들을 슬프게 하는 것들/김용호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외박과 휴가제도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 다음으론 박탈감의 치유다. 우선 명령사회이기 때문에 당연시되는 반말부터 고쳐야 된다. 아까운 목숨들이 안타깝게도 스러져갔다. 아무리 바빠도 군대 간다고 인사오는 학생들에겐 술 한 잔 따라주며 더 건강한 몸으로 만나자곤 하지만 마음 한 편에 이런저런 걱정이 든다. 좀 여성스러운 학생이면 혹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내성적인 학생이 잘 견뎌낼까, 게다가 행동이 느린 학생이면 더더욱 염려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확실히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우선 바쁘다. 건성건성 공부했다간 진학도, 취직도 여의치 않은 경쟁속에 커온 그들이다. 학점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과목마다 조모임, 발표 준비 등에 매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알바(아르바이트)로 용돈은 자기가 벌어 쓴다. 그러다 보니 웬만큼 친해지지 않고선 술 한 잔 사달라며 찾아오는 넉살을 찾아보기 힘들다. 바빠서인지 통화 끝나고 어른이 끊기 전에 먼저 끊어버리지 않는 젊은이를 찾는 건 더더욱 힘들어졌다. 이번 총기사건의 책임 소재와 잘잘못은 군 당국의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이 사건에 내재하는 원인들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유사한 사건이 또 일어날 수 있다. 먼저 군 입대는 바쁜 일상과의 단절로 인한 박탈감을 가져온다. 분초를 쪼개 쓰던 바쁘신 몸을 송두리째 바쳐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가장 견디기 힘든 대목이다. 게다가 군대를 안 가는 친구들이나 여자동기들이 먼저 졸업해 직장에서 선배로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조바심마저 난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면 강할수록 획일화된 군 생활에 적응하기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라크에 더 많이 파병해야 한다, 북한핵 문제가 터지면 일전을 불사해야 한다는 사람 중에 더러 자신들은 군대를 빠진 이들이 있다는 사실, 이유야 어쨌든 군 복무 때문에 국적을 포기하는 행렬, 군대 갈 나이에는 외국 나가 있다가 유창한 영어를 앞세워 귀국한 뒤 우리 사회의 리더로 자리매김한 인사들. 그들을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개혁적’으로 얘기해 보자. 우선 외박과 휴가제도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 군복무의 가장 큰 애로인 얽매임을 풀어주자는 얘기다. 요즘엔 철원에서 서울을 거쳐 부산까지 KTX에 몸을 실으면 늦어도 5시간이면 갈 수 있다. 인생의 황금기를 국가에 헌납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KTX 몇 량 정도 못 내준대서야 동북아 균형자 국가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비현실적이라고 푸념하기보다 복무기간 단축을 동결해서라도 한 달에 2박3일정도 숨쉴 공간을 줘야 한다. 다음으론 박탈감의 치유다. 우선 명령사회이기 때문에 당연시되는 반말부터 고쳐야 된다. 사회는 군대보다 더 엄격한 명령사회다. 상사의 눈에 벗어나면 2년 남짓의 군 생활이 꼬이는 게 아니라 인생 자체가 꼬일 수 있다. 하지만 반말을 처음부터 하지는 않는다. 지내다 보면 트고 지내게 되고 자연스레 나이와 직급이 조화되어 나름대로의 질서가 자리잡게 된다. 존댓말로 부드럽게 말해도 추상같은 명령이 되는가 하면 상말을 섞더라도 들을 필요가 없으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우리 군에도 이런 프로페셔널리즘을 도입할 때가 됐다. 이번 사건에서도 보듯 일병과 상병이 전부 22세이다. 사회라면 처음부터 반말은 엄두도 못 낼 사이다. 또 한 가지 고쳐져야 하는 게 있다. 여성에게도 군복무와 같은 기간만큼 공익근무를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입사시 가산점을 받지 못한다거나 국민의 의무가 자동 면제되는 것이 개운치 않다는 여학생들이 적지 않다. 무슨 사건만 터지면 인력 부족을 이유로 들 만큼 공무원들의 일손이 달린다면 우수한 여성 인력을 공익근무요원으로 활용하여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또한 공익근무요원의 양적 증대로 인한 예산 문제를 도외시했다는 비현실성을 지적하기보다는 기회와 의무의 균등이라는 원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김용호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 [시론] 한·미 정상회담 무얼 남겼나/유찬열 덕성여대 교수· 국제정치학박사

    [시론] 한·미 정상회담 무얼 남겼나/유찬열 덕성여대 교수· 국제정치학박사

    2005년 6월11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의 수장으로 취임한 이래 네 번째 열리는 회담으로서 세간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는데, 예컨대 북한의 지속적인 핵개발 추진과 6자 회담 거부, 그동안의 첨예한 한·미 갈등,1박3일의 초단기 일정 등을 포함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비롯해서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회담은 한·미 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그 귀추에 궁금증을 더하는 이유였다. 다행히도 이번의 양국 수뇌회담은 외형적으로는 성공적으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두 정상은 몇 가지 사항에 합의했다. 북핵 문제는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6자 회담은 필수적이며, 한·미 동맹은 공고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고, 북한 주민의 인권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 경우, 관련국들의 ‘다자 안전보장’, 장기적 차원에서 미·북 수교의 추진, 핵 포기시 에너지를 포함하는 경제지원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결과적으로,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지난 수년간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오던 것을 또 다시 수용했고, 평양의 6자 회담 복귀를 위한 외교적 명분을 제공했다. 한·미 동맹의 경우, 그동안의 갈등을 봉합하고 양국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정상회담의 낙관적 평가에 대해 다소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그 이유는 북핵 문제의 경우, 평화적 해결의 원칙과 6자 회담으로의 복귀라는 공통 목표에는 일치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있어서는 한·미간에 커다란 견해차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의 경우에는, 양국 외교, 국방 장관간의 협의 과정에서 유사시 주한 미군의 해외 차출과 관련한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북한 붕괴시에 대비한 작계 5029의 구체화에 대한 합의 도출에 있어서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이 절반의 성공을 더 완전한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 정부의 전향적 자세를 요구한다. 우리 정부는 이 순간에도 북한의 핵개발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의 핵 보유를 시인하고, 김계관 외무 부상이 평양의 핵개발은 계속 추진되고 있다고 국제적으로 공언하며 전 세계가 북한 핵보유를 우려하는 상황에서, 유독 우리 정부만이 북한 핵개발은 아직 기정사실화되지 않았고, 더 나아가 정치, 경제적 보상을 유도하기 위한 외교적 카드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해결 방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해결책이 제네바 합의 이후 계속 정치, 경제적 보상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 공개된 상황에서의 협상은 평양으로부터 어떤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고 성공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우리는 지난 10여년간 북한이 추구해 온 외교 전략에 대해 익숙해 있다. 그것은 전쟁을 불사하는 벼랑외교, 지연 작전을 통한 핵개발의 시간벌기, 교묘한 협상을 통한 반대 급부의 최대화라는 부정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은 6자 회담 복귀 이후에도 과거의 부정적 행동 양식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협상 전략도 모든 경우를 상정하여 모든 옵션을 고려하는 신중한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또 한·미 동맹이 공고할 경우에만 평양에 대한 설득력이 현실성을 띤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워싱턴과의 긴밀한 협력이다. 사실 지난 몇 년간의 한·미 안보 관계는 위기의 연속으로 점철되었다. 이제 제4차 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양국은 서로에게 더욱 신뢰있고 미래 지향적인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유찬열 덕성여대 교수· 국제정치학박사
  • [시론] 박주영 신드롬/신문선 SBS해설위원·한국축구연구소 책임연구원

    [시론] 박주영 신드롬/신문선 SBS해설위원·한국축구연구소 책임연구원

    지난해 말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직후 불기 시작한 박주영의 바람은 한마디로 태풍이다. 몇몇 축구인들은 광풍(?)으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올 시즌 초반 박주영이 FC서울에 입단한 직후 마케팅 전문분석기관인 SMS KOREA는 박주영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100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당시 구단이 이런 자료를 언론에 돌렸을 때만 해도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박주영신드롬’은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박주영이 컵대회 때 출전한 11경기의 관중은 31만명. 이 숫자는 컵대회 총 관중 97만명의 약 3분의1 수준이다. 박주영 출전 경기당 평균관중은 2만 8248명이었다. 전체 경기당 평균관중 1만 2406명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지난해 프로축구 평균 관중이 1만 2000명 이었던 점에 비추어 약 1만 6000명 이상이 늘었음을 알수 있다.SMS KOREA의 최근 자료에 의하면 2000년 한국축구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동국, 고종수의 경기당 관중 동원력은 4000∼5000명이었고 이로 인한 연간 경제적 파급효과는 350억∼400억원이었다. 반면 박주영으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는 당초 1000억원을 돌파하여 무려 1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장 입장료, 식음료비, 교통비 등을 더해 산출한 비용에 생산, 소득, 부가가치 등을 토대로 계산한 금액이다. 이뿐만 아니다. 계수화하긴 어렵지만 광고 효과만 해도 어림잡아 3000억원(FC서울 입단 관련 광고 효과 32억원, 컵대회 광고 효과 400억원, 올시즌 36경기에 대한 연간 광고 효과 등이 1600여억원)이 훌쩍 넘는다. 또 있다. 방송을 통한 홍보, 광고 효과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큰 ‘박주영효과’는 3년전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 열기가 다시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끝이 안 보이는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지만 국민들은 박주영이라는 ‘천재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며 잠시나마 일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축구에서 위안을 얻고 있다. 사실 일부 언론과 팬들은 축구는 11명이 하는데 너무 박주영만 띄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론과 스포츠가 상호보답적인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주영 신드롬을 생산해 내는 미디어를 이해하게 된다. 박주영 신드롬에 대해 경제계나 언론계가 동의를 하는 이유도 있다. 박주영으로 인한 산업간 경제적 파급효과 때문이다. 박주영으로 인해 야기된 직접효과, 즉 축구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 소비한 지출액과 다른 산업에서 유입된 식자재나 공산품 등의 소비로 조성된 간접 효과 등은 박주영으로 인해 유발된 타 산업으로 연쇄 파급돼 기하급수적인 효과를 발생시키게 된다. 경제적 용어인 ‘생산승수’의 효과는 실로 엄청나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올해 전격적으로 프로에 뛰어든 박주영 신드롬의 종착역은 어딜까. 필자의 예상으로는 내년 독일월드컵 때까지는 박주영의 열기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본다. “입으로 훅 불면 날아 갈 것 같다.”고 혹평했던 요하네스 본프레레감독이 대표팀에 선발하기에 이르렀고 우즈베크, 쿠웨이트전 연속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상품 가치를 잔뜩 끌어 올려 독일월드컵은 박주영을 위한 대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주영의 신드롬은 과거 김남일, 고종수, 이동국 때와는 분명 다르게 팬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언론이 무조건 나서서 박주영을 스타화하는 것이 아닌 박주영으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적 파급효과로 인한 상업적 스포츠 가치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스포츠가 발달한 미국에서 ‘언론과 스포츠는 공존하며 상호 보답적인 관계로 발전한다.’고 강조해왔던 교과서적 이야기가 한국프로시장에도 본격 접목되는 계기가 바로 박주영 신드롬이다. 신문선 SBS해설위원·한국축구연구소 책임연구원
  • 儒林(366)-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66)-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불사가(不俟駕). 이는 유가에서 말하는 오륜 중의 하나인 군신유의에 관한 중요한 내용이었다. 이 구절은 논어의 향당(鄕黨)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의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리키고 있음이었다. “병이 들었을 때 임금이 문병오시면 머리를 동쪽에 두시고 조복을 위에 덮고 큰 띠를 그 위에 걸쳐놓고 맞으셨다. 임금이 오라는 명이 내리면 수레가 준비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셨다.(疾 君親之 東首加朝服 拖紳君命召 不俟駕行矣)” 지금까지 퇴계는 공자의 가르침을 본받아 임금이 오라는 명이 있으면 물러가기를 청하였다가도 어쩔 수 없이 수레를 타고 기다리지 않고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죽령을 넘어 풍기군수를 끝으로 퇴계는 더 이상 임금의 부르심이 있다 하더라도 유의(有義)에 매달려 벼슬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퇴계는 죽령을 넘기 전과 죽령을 넘은 후를 ‘앞과 뒤’로 나누고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의 인생에 있어 나아가고 물러감에 있어서 ‘앞과 뒤(前後)’가 다른 듯하다. 전에는 임금의 명령을 듣기만 하면 곧 달려갔으나 뒤에는 부르시면 반드시 사양하였으며, 가더라도 굳이 머무르지 않았다. 자리가 낮으면 움직임이 가벼우므로 한번 나가볼 수도 있지만 벼슬이 높으면 책임이 큰데 어찌 가벼이 나갈 수 있겠는가. 옛날 사람들은 벼슬을 받으면 곧 가서 ‘임금의 은혜가 하늘처럼 무거운데 어찌 물러가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만약 나아가고 물러가는 대의(大義)를 돌아보지 않고 임금의 사랑만을 따를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을 예의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작록(爵祿)으로 하는 것이니 그 어찌 옳겠는가.”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퇴계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맞게 한다. 그전까지 퇴계는 공자의 ‘학문을 하면 녹이 그 가운데 있다.(學也祿在其中)’라는 말과 자하(子夏)의 ‘벼슬하고 여유 있으면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해서 여유 있으면 벼슬한다.(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라는 말에 충실하여 벼슬과 학문을 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퇴계는 마침내 단양군수를 떠나는 죽령 고갯마루에서 그것이 불가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어차피 작록이란 벼슬과 학문 사이에 개재해 있으므로 전념할 수 없으면서도 임금의 사랑을 이유로 해서 벼슬을 하는 것은 곧 작록을 훔치는 도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때의 결심이 퇴계의 인생을 ‘앞과 뒤’로 나누며 퇴계의 학문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는 분기점이 되는 것이다. 후반기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제자들은 다소 의아해하였다. 제자들은 스승이 사직원서를 내고서도 회보를 기다리지 않고 무단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사실이 국법을 어긴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갖고 있었고, 특히 명종이 승하하였을 때 인산(因山)도 마치기 전에 서울을 떠나 귀향에 나서 시론이 분분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산’이란 임금이 승하하였을 때 하는 국장으로, 신하는 마땅히 장례가 끝날 때까지 서울에 머물면서 조의를 표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였기 때문이었다.
  • [시론] 한미정상회담, 6월위기설 잠재워야/박태우 타이완국립정치대학 객좌교수·국제정치학박사

    어중간한 민족공조 논리를 버리지 못하고 중재자로의 역할을 언급하는 자리가 된다면 우리의 위상을 더 악화시키는 외교적 자충수를 초래할 것이다. 10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의 무게와 중요성에 전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의 급박한 상황전개를 반영, 통상적인 의전을 초월하여 계획된 이번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운명을 상당부분 결정하는 역사적 회담이 될 것이다. 한·미동맹의 포괄적 성격 및 주한미군의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유연성을 놓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단호한 어법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외교안보정책의 큰 그림을 제시할 것이다. 특히, 북핵 해법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외교적 해결을 위한 북한의 회담복귀를 주문하면서 북한측에 복귀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평화적 해결의 기본원칙을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선에서 재확인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외교적 수사(修辭)에 기반한 원론적 합의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핵 보유국을 향한 북한의 위장전술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이른 미국 부시 행정부가 최종적으로 마련한 ‘북핵 독트린’을 우리 정부가 어떻게 조율하고 수용하느냐 여부일 것이다. 이미 북한도 이번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지난 6일에 미국의 조지프 디트라니 북핵 대사 및 국무부의 한국과장이 북한 유엔대표부를 방문해 협의하는 과정에서 6자회담 복귀가능성에 대한 북측의 의도를 일정부분 보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외교적으로는 국무부의 라이스 장관 및 한반도 담당 참모들을 통해 북한의 회담 복귀 및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명시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최근 북한 제재를 위한 무언의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미국의 속내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외교부가 이론적 적실성이 현실적인 국내외 상황과는 동떨어진 ‘변형된 동북아 균형자론’을 이야기하면서, 미국 정부의 최근의 민감한 움직임에 대해 국내언론의 과민반응 운운하고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있는 것처럼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점이다. 군사제재에 앞서서 일단은 부시 대통령의 단계적 북핵 해법 제시에 대해 노 대통령은 어떻게 대응할 것이지 온 국민이 숨 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미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 및 해상 봉쇄와 유엔의 안보리에 상정하는 결심을 굳힌 것 같다. 이번 회담은 우리의 입장에선 한반도의 현실성을 담아낸 진일보한 북핵 해법을 설명하고 우리의 한·미동맹관(觀)을 전달하는 자리도 되겠지만, 이보다는 부시 대통령의 단호한 결심을 노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이의 수용여부를 물음으로써 균열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미동맹에 대한 우리정부의 진정한 의도를 묻는 확인 장(場)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일 정권의 교체까지 생각하고 있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어중간한 민족공조 논리를 버리지 못하고 중재자로의 역할을 언급하는 자리가 된다면, 변변한 ‘고위급대북대화채널’도 확보하지 못한 정부로서는 미국의 장기적 동아시아전략의 운영 축에서 동맹국으로서 입지가 일정부분 흔들리고 있는 우리의 위상을 더 악화시키는 외교적 자충수를 초래할 것이다.21세기의 새로운 지구촌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한국의 위상을 한·미동맹의 틀에 반영하고 과거의 양국간 불평등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만들어서 담아내는 정부의 주장은 당연한 것이고 모든 국민들의 바람을 담는 당연한 노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들의 생존과 안위가 걸린,50년 동안 지속되어온 동맹체제 및 한반도의 불안정한 안보상황의 주범인 북핵 문제 해법을 다루는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검증되고 확실한 노선을 미국과의 공조 틀 내에서 우선 선택하고, 인도적 차원의 민족의 문제와 연관된 우려와 견해 피력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끈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태우 타이완국립정치대학 객좌교수·국제정치학박사
  • [시론] 전문대학, 폴리테크닉으로 개편을/백형찬 서울예술대학 교육학 교수

    [시론] 전문대학, 폴리테크닉으로 개편을/백형찬 서울예술대학 교육학 교수

    고등교육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시장을 단순화하면서 동시에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에 가장 적합한 형태가 바로 폴리테크닉이다. 얼마 전 전국의 전문대학 보직교수 500여명이 서울 태평로에 모여 ‘직업교육에 헌신해온 전문대학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이는 교육부가 15개 대학만 세계적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고 ‘나머지’ 대학들인 300여개의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은 취업중심대학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발표와 함께 최근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의 ‘직업교육 혁신방안’ 발표에서 전문대학이 제외됐기 때문이다. 경제전문가가 교육부장관으로 임명된 것을 우려해왔더니 드디어 일(?)이 터진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경제원칙에 입각하여 교육문제를 ‘확실하게’ 풀어보자. 경제원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고등교육 시장에 이 원칙을 적용시켜보자. 우리나라 고등교육 시장은 너무 방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등교육기관의 종류만 해도 일반대학, 산업대학, 교육대학, 방송대학, 전문대학, 기술대학, 기능대학, 사내대학, 사이버대학, 학점은행제를 적용하는 전문학교 및 전문학원 등 참으로 많다. 정부도 이러한 구조적 심각성을 깨닫고 개혁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신통치가 않다. 고등교육의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시장을 단순화하면서 동시에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이 전문대학을 비롯한 직업교육기관을 통합하여 새로운 고등교육체제로 개편하는 것이다. 이에 가장 적합한 형태가 바로 폴리테크닉(Polytechnics)이다. 폴리테크닉은 변화하는 산업사회에 재빠르게 적응토록 만들어진 대학이다. 특히 유럽의 폴리테크닉은 경쟁력이 뛰어난 시스템을 자랑한다. 교육목표는 ‘산업사회 전문인력 양성’으로 명료하며, 교육프로그램도 수업연한에 따라 다양하게 그리고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교육과정도 산업현장과 매우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교수진도 산업체 유경험자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과 핀란드의 폴리테크닉이 대표적이다. 특히 핀란드처럼 작은 나라가 노키아같이 세계 일류의 제품을 만들며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있는 것도 바로 폴리테크닉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 선진국은 이미 1980년대부터 고등교육제도를 개혁하여 일반대학과 폴리테크닉의 단순화한 이원적 시스템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또한 많은 나라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전문대학을 업그레이드하는 교육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존의 낡은 교육 시스템으로는 국가간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의 전문대학인 단기대학(短期大學)은 대부분 일반대학으로 흡수되어 버렸으며, 미국의 주니어 칼리지(Junior College)도 기능이 약화되는 추세이고, 캐나다도 전문대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3의 교육형태인 UC(University College)라는 새로운 고등교육제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대학은 지난 개발연대에 국가의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며 산업발전에 기여해왔다. 그런데 평생교육이 활성화되고, 국민들의 학사학위에 대한 열망, 수업연한 제한이라는 전문대학 제도상의 치명적 결함, 그리고 전문기술자(technician)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감소 등으로 전문대학 교육목표인 ‘전문직업인 양성’은 점차 퇴색되고 있다. 이제 전문대학은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운’ 폴리테크닉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전문대학은 변신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지난 수십년간 직업교육을 실시한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으며, 교수진도 고급학위를 소지한 현장경력자가 대부분이다. 또한 정부의 꾸준한 재정지원으로 시설과 설비도 산업현장에 못지않게 갖춰져 있고, 지역 산업체와 긴밀한 산·학협동체제를 구축해놓고 있다. 전문대학이 업그레이드되면 분명 대한민국은 업그레이드된다. 이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개혁이 절실히 요구된다. 백형찬 서울예술대학 교육학 교수
  • [시론] 중국 버블 붕괴에 대비해야/김익수 고려대 경영학 교수

    [시론] 중국 버블 붕괴에 대비해야/김익수 고려대 경영학 교수

    중국 매스컴과 학자들이 앵무새처럼 전하는 장밋빛 전망만 믿고 중국에 올인했다가는 버블 붕괴의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실물·금융 부문의 쌍둥이 버블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각종 행정규제와 금리인상 조치에도 불구하고 식음료, 가전, 철강, 시멘트 등 공급과잉 업종에 대한 지방 투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리스크가 큰 사회간접자본과 골프장, 호텔, 오피스 빌딩 건설에도 필요 이상의 돈이 몰리고 있다. 도시 중상류층 가계는 장기저리의 주택구입 담보대출(모기지 론)을 받아 아파트 등을 구입하고 있으며, 외국인 투기 세력도 위안화 절상을 예상하고 핫머니를 유입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번 달부터 부동산 거래 실명제, 미등기 전매 금지, 단기 전매시 양도소득세 부과 등 ‘한국식 투기대책’을 도입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자산 버블을 잡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상하이시의 경우 1년 미만 보유 부동산 매매시 양도차익의 5.5%를 과세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대책 발표 이후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고 부동산 거래가 한산해지고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중국 시중의 유동성이 너무 많다. 저금리, 침체된 주식시장 상황 하에서 경제주체는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평가절상, 투자 프로젝트 취소 등 근본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행정적 억압만으로 외국인 투기 세력의 기대심리와 민간인의 불로소득에 대한 유혹을 억누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의 통제가 약해지면 불건전한 투자행태는 언제든지 다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도 근본적 조치의 채택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상황 하에서 외국인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주길 꺼리기 때문이다. 각급 도시 지방정부로서도 고유의 재정수입을 확대해야 하고,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청년들에 대한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 하기 때문에 중복투자를 계속 억제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보자면, 중국 경제는 2010년 전후까지 거품을 안고 고성장을 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거품이 언제 터지느냐는 것인데, 그 가능성은 2010년 이후가 가장 크다고 본다. 국가적 이벤트가 소진되고 자산가격 상승 기대심리가 한풀 꺾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히도 고금리 상황이 연출된다면 급매물 증가로 인해 주택가격은 폭락할 수 있다. 문제는 중국 은행권 대출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 담보 대출이라는 점인데, 부동산 가격 폭락은 금융 부실화로 비화될 것이고, 이는 다시 사회적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연결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이나 개인들의 대중 투자는 중국 경제가 2010년까지 8%의 속도로 고성장을 지속하고, 그 후에도 최소한 7%대의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하에서 다소 공격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작년의 경우만 봐도, 한국은 홍콩, 버진아일랜드, 대만을 빼고 나면 사실상 최대 투자국이었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것은 2010년의 중국 경제는 위안화 가치의 변동성, 자본시장의 부분 개방 때문에 지금보다는 불확실성이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점이다. 2010년을 5년 앞두고 있는 현 상황 하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베이징 올림픽 효과가 아니라 중국의 자산버블 붕괴에 대한 대비책이다. 개인들로서는 베이징, 상하이 등 아파트를 구입해 떼돈을 벌겠다는 뒤늦은 생각은 접는 것이 좋고 이미 투자한 개인은 일시적 가격 조정 이후 재폭락 전에 매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도 미래의 자산버블 리스크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중국 내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각하고 중국 내 사업구조를 수익성 위주로 내실화하는 것이 절실하다. 중국 매스컴과 학자들이 앵무새처럼 전하는 장밋빛 전망만 믿고 중국에 올인(all in)했다가는 버블 붕괴의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 위기는 항상 모든 경제주체들이 조심하는 불경기 때보다도 낙관과 확신에 차 있는 호경기 뒤에 불시에 찾아온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김익수 고려대 경영학 교수
  • [시론] 인터넷 뉴스와 저널리즘의 위기/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시론] 인터넷 뉴스와 저널리즘의 위기/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기존 신문사의 온라인매체들은 치밀한 전략 수립 없이 무료제공, 과열경쟁으로 뉴스사업모델을 스스로 붕괴시켰다. 뿐만 아니라 주력상품의 유통을 몽땅 헐값에 넘기고 있다. 한국인의 뉴스 취득경로가 바뀌고 있다. 문화방송의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을 읽는 비율이 2001년에는 97%였으나, 작년에는 83%로 감소했다고 한다. 반면 인터넷 신문을 읽는 사람은 한 해만에 20%에서 40%로 두 배가 늘어났다. 작년 8월에 인터넷 사이트의 순위를 매기는 한 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6대 포털 사이트의 뉴스 페이지를 찾은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이미 10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하루 한 번 이상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봤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기간인 같은 해 8월 한 달 동안 5대 신문사 인터넷사이트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 합계는 그 5분의1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지금 뉴스 소비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주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은 신문과 방송이 제공하는 1만여건에 달하는 뉴스를 매일 편집해서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싣고 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신문독자층이 신문에서 인터넷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 모든 뉴스는 포털에 집결되고, 그곳에서 재가공·재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뉴스 소비문화가 기존의 저널리즘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뉴스는 무료다. 따라서 독자들이 구독료를 내고 종이신문을 볼 이유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신문사들은 스스로 만든 유일한 생산품을 거대한 직접유통망에 터무니없는 헐값에 넘기고 있다. 포털의 뉴스파워는 점점 강해지고 있으며 기존 매체의 브랜드파워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신문사들은 과거의 명성에 취해 아직도 폼을 잡고 있지만 현실은 비참하다. 생산규모나 유통력 면에서 포털은 이미 신문사보다 커져버렸다. 대형포털이 온라인 뉴스시장을 독점하면서 신문사들이 이들 거대 포털에 뉴스를 제공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해버린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문 산업 종사자뿐인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포털의 매체영향력 확대에 비례해서 저널리즘 역할이나 사회적 책임감도 제고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포털들이 나름대로 선정해서 초기화면에 걸어놓은 뉴스 제목은 대개 흥미 위주이거나 선정적이다. 북핵이나 경제문제가 톱뉴스에 오르는 일은 참으로 드물고, 연예인의 스캔들과 같은 가십성 기사나 생뚱맞은 정치적 주장처럼 자극적인 기사들을 눈에 띄게 배치하는 일이 많다. 이는 포털이 추구하는 뉴스 서비스의 목적이 기존매체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민주적 시민을 위한 정보 제공이나 사회 환경의 감시가 아니라, 접속수와 방문시간을 늘리기 위한 목적이다. 길게 말할 필요 없다. 수천명의 오프라인 언론인들이 만든 기사를 단지 몇 명의 ‘전문적으로 훈련받지 않은’ 온라인 편집자들이 좌지우지하고, 그 편집행위에 하루 1000만명의 독자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널리즘의 위기다. 한국 뉴스 시장에서 포털의 영향력이 이처럼 비대해진 것은 우선 기존 신문사들의 대응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존 신문사의 온라인매체들은 치밀한 전략 수립 없이 무료제공, 과열경쟁으로 뉴스사업모델을 스스로 붕괴시켰다. 뿐만 아니라 주력상품의 유통을 몽땅 헐값에 넘기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현상이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의 신문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콘텐츠에 대해 과금(課金)을 하거나 아니면 자사 사이트에 접속해야 그것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한국 신문들처럼 내일 종이신문에 나올 기사를 사전에 노출하는 일도 거의 없다. 한국의 언론종사자들은 포털뉴스의 비대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어떻게 되겠지’식 안일주의와 자기만 이익을 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가 신문산업을 공멸의 길로 몰고 가는 첨병이다. 지금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대한 뉴스 콘텐츠 판매의 현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개별 신문사 차원이 아니라 신문업계 전체의 공동노력이 절실하다. 김무곤 동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 [시론] 정부,스스로 개혁해야 살아남는다/이홍 광운대 경영대학장

    정부 혁신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부 환경이 가혹해지고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념의 해체와 관련이 있다. 과거 국가간의 경쟁은 그렇게 가혹하지는 않았다. 경쟁은 있었지만 이데올로기라는 우산 속에서 이루어졌다. 공산이냐 자본이냐라는 큰 대립이 우선시되면서 같은 이데올로기에 속한 나라끼리는 봐주는 경향이 있었다. 한 예로 한국이 좀 못마땅해도 미국은 드러내 놓고 성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데올로기 경쟁이 끝난 시점에서 이 규칙은 무너졌다.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서로 잡아먹기 식의 무한경쟁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경쟁의 형평성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을 규정짓는 단어가 글로벌 경쟁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국민들의 까다로운 입맛과 관계가 있다. 한국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민족이다. 이 까다로움을 극복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제품이 애니콜이다. 모토로라가 한국의 휴대전화 시장을 완전 장악하고 있을 때 애니콜이 등장한다. 하지만 애니콜의 등장은 순탄치 않았다. 까다로운 한국 고객들에 의해 집중포화를 맞았다. 하지만 애니콜은 끈질기게 여기에 대응하였다. 품질이 급격히 향상되었고 이로 인해 전 세계를 제패하는 밑바탕을 다지게 된다. 문제는 오히려 모토로라에서 발생했다. 미국 국민을 만족시키는 정도의 품질이면 한국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의 입맛은 이들의 상상을 넘어섰다. 결국 애니콜은 모토로라의 모든 것을 빼앗고 만다. 이 까다로움이 이제는 한국 정부로 향하고 있다. 과거 정부의 힘에 억눌려 있던 욕구들이 한꺼번에 분출하면서 정부의 정책품질과 서비스에 까다로운 입맛이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에는 정치적 이유 이외에 정부조직이 흔들린 예는 찾기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민의 입맛 때문에 흔들리는 정부조직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국민의 입맛에 맞는 정책서비스를 내놓지 못하는 정부기관에 대하여는 여지없이 무용론이 등장하는 것이 방증이다. 이 무용론이 정부조직을 흔들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도 하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밝히면서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끝까지 살아남는 종은 강하고 머리 좋은 종이 아니라 환경변화에 가장 잘 대처하는 종이라는 것이다. 정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정부도 하나의 유기체라고 보아야 한다. 유기체는 생존을 위해 환경에 순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환경은 변하지 않는 유기체에게 가혹한 벌을 준다. 두 가지 벌이 있다. 하나는 변화를 거부하는 정부 때문에 글로벌 경쟁에서 국가 자체가 낙오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까다로워진 국민의 입맛이 채찍을 들어 정부를 강제로 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벌을 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부 스스로 먼저 변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를 보면서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혁신의 싹이 트고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관에 따라서는 혁신성과들이 매우 쏠쏠하다. 관세청은 과거 10일 걸리던 수입통관절차를 절반으로 줄였다. 조달청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조달방식을 채택하여 유엔이 주는 공공서비스 상을 수상하였다. 행정자치부는 팀제와 균형성과표에 기초한 전혀 새로운 공무원인사평가제도 도입을 시도하였다. 중앙인사위원회는 공무원의 철밥통을 인정하지 않는 직무성과계약제를 도입하였다. 국세청은 친절기관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속도나 범위로 글로벌 경쟁의 파고와 까다로워진 국민의 기대를 다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혁신에는 정도가 없다.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이다. 혁신에 참여하는 정부와 공공기관들의 애로와 고통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국민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또한 글로벌 경쟁에서 대한민국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이홍 광운대 경영대학장
  • [시론] 광주의 역사적 진실 규명해야/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시론] 광주의 역사적 진실 규명해야/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가해자의 참회와 사과도 없는데, 어찌 무턱대고 용서와 화해로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은 응어리를 풀어헤치란 말인가.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모두 요란스레 찾아들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당시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달랜다며 짙푸른 5월의 광주에 발길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고 난 뒤 허탈감에 온몸이 뒤틀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광주를 찾은 386정치인들이 도우미가 딸린 단란주점에서 유흥 잔치를 벌였다던 소식에 분노를 삼키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건만 뇌리에서 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권을 꿈꾸는 서울시장이 5·18국립묘지 유영봉안소에서 참배하고 나오다 파안대소했다는 보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사소한 문제로 본질을 흐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달래기 위함이라면 광주시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기게 한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역사적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적 이해관계로 요란을 떨며 다들 희생당한 영령들의 사연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5·18 묘역을 순회한다지만 정녕 광주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누구에 의해 짓밟히고 뭉개졌는지 ‘용서와 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아직도 규명이 되지 않고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광주의 5월정신은 그 숭고한 역사적 의미가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가 가고 정권이 바뀌었건만 여전히 소외받고 낙후된 지역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광주시민들이 어떤 특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국토균형발전’이라는 현 정권의 정책에서 우선권을 부여받으려 한다거나, 혹은 핍박받았던 역사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광주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생각해 보라. 아직도 밝혀야 할 진실이 남아 있는데 망월동 5월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 가해자의 참회와 사과도 없는데, 어찌 무턱대고 용서와 화해로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은 응어리를 풀어헤치란 말인가. 제6회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인도네시아의 와르다 하피즈 여사는 “광주는 아시아의 등대와 같은 곳으로 어둠 속에서 수많은 배와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하며 “광주정신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외에서도 5월의 정신을 잊지 않고 그 가치를 배우고 민주주의의 성지인 광주를 추앙하고 있건만 광주시민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분노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군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실미도 사건’과 대학생들의 강제징집을 야기한 ‘녹화사업’을 대상으로 진상규명에 임한다는 공언을 반복해왔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면 그 위원회에서 발표할 안건이라며 결정을 유보해왔다. 드디어 군 관계자 5명과 민간인 8명 등 총 13명으로 군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하는데, 과연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위원회에서는 당연히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며 하루속히 성역 없는 진상조사에 착수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국방부에서 직접 망월동 5·18묘지의 관리를 맡겠다고 나서서 광주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아직 진상의 배경과 최초발포명령자가 명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방부가 국방부장관 명의로 국회에 ‘국립묘지에 관한 기본법안’을 제출, 입법예고한 것이다. 그런 후 4·19나 3·15 묘지와 함께 공동관리를 추진하고 있다는데, 군 관련 희생자들과 민주영령들 묘지의 성격을 동일시하여 관리하겠다니 어느 나라에 있을 법한 일인가. 그보다 국방부는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매캐한 최루가스와 김밥을 눈물로 삼키며 항거하던 민주영령들과 광주시민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말이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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