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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지방의원 존재가치 제대로 인식하라/한상우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지방자치연구소장

    [시론] 지방의원 존재가치 제대로 인식하라/한상우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지방자치연구소장

    지난 6월2일 실시된 제5회 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전국에서 3649명의 지방의원이 선출되고 각급 의회가 새로운 4년간의 의사일정에 돌입했다. 그러나 지방의원이 정작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잘 알거나 관심 있는 시민은 많지 않다. 자기 동네를 대표하는 지방의원의 이름을 알고 있는 시민은 20%가 채 안 되며 매년 지방의원의 의정활동비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설문조사에서는 ‘의정비 수준이 높다’는 의견이 다수이다. 다행히 지난 6·2지방선거의 투표율이 54.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이것도 대선이나 총선의 그것에 비하면 퍽 낮은 수준이다.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현 시점까지도 여전히 시민들의 지방자치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현실을 현대사회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 탓으로만 여기고 그냥 덮어둘 수 만은 없다. 왜냐하면 지방자치 과정에서 지방의회가 어떻게 돌아가느냐 하는 것은 당장의 시민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장래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울시만 하더라도 국가예산의 10%에 육박하는 시예산을 시의회가 심의의결하는데 이것은 곧 시민의 세금으로 거둬들인 방대한 예산을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쓸 것인가를 실질적으로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지방의원이 도로, 주택, 영업, 환경, 사회복지, 위생문제 등에 대해 조례를 제정하는 일과 시민들의 민원이나 청원을 소개하여 이를 처리하도록 하는 역할은 도시의 미래 모습과 시민들의 생활수준을 결정한다. 뿐만 아니라 지방의원은 한편으로는 집행부에 대해 행정의 감시자, 또 한편으로는 시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 있는 정책 아이디어의 공급자 역할을 수행한다. 흔히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표현되는 지방자치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훈련하는 ‘민주주의 학교’이다. 참다운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은 올바른 선거문화를 체득하며,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방의원은 책임 있고 유능한 정치지도자로 훈련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4년마다 선거를 치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집행부와 의회의 갈등을 감수하면서도 지방의회가 시민의 의사를 대표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의 역량을 키워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시민과 지방의원은 주인과 대리인 관계이다. 주인이 대리인을 고용하고도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과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집행부 입장에서도 지방의회의 존재를 ‘귀찮은 시어머니’쯤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과거와 같은 중앙집권 내지는 집행부 우월적인 사고의 발상이다. 우리가 아무리 지방의회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냉소적 입장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분권화를 특징으로 하는 역사발전의 수레바퀴를 결코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 선진국치고 지방자치가 잘 안 되는 나라가 없다. 지방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고 하는 말은 더 이상 허황된 구호가 아니다. 세상을 시끄럽게 한 호화청사 문제를 비롯해 지방재정의 낭비와 부실문제에 대해 시민들은 과연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동안 지방의회는 어디에 있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집행부가 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결정과 행위에 대한 감시와 견제기능이 의회 본연의 책무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시민의 지방의원에 대한 기대와 사랑은 지방의원이 그 역할과 존재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만큼 지방의원에게는 일반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규범과 정치적 대표로서의 성실한 노력이 요구된다. 동시에 시민의 지방의회에 대한 많은 관심과 애정, 그리고 지방의회가 자율성과 전문성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시론] 한·일 강제병합 100년, 일본의 선택/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시론] 한·일 강제병합 100년, 일본의 선택/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장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주 뱅커스클럽에서 열린 강연에서 현재 일본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출구전략으로서 일본인의 역사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문제만 분석할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재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어제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최근 일본 총리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의 한국지배를 반성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한·일 양국의 양심있는 지식인 각 1000명이 일본의 한국병합이 잘못된 것이라는 서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 총리는 일본의 한국합병이 전적으로 무효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본 내부의 반대여론을 의식해서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일본을 방위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일본의 식민통치는 그 당시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는 서구 열강이 다 같이 했는데 왜 일본만 가지고 그러느냐?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것은 잘못되었지만 합법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같이 반대 여론이 강한 것인가? 일본의 역사교육 탓이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는 일본의 역사는 성공한 역사, 여타의 아시아 제국의 역사는 실패한 역사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메이지시대부터 러·일전쟁까지의 역사는 긍정적인 것으로, 만주사변 이후의 역사는 잘못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동양평화를 위해 조선을 식민지배 했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니 작년부터 3년간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에 구름’이 일본의 공중파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거기서 이토 히로부미를 야마가다 아리도모 등 강경파를 제압하고 조선의 자치를 주장한 자치론자로 미화하고 있지 않은가? 원작자가 영화나 드라마로 방영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예(家)의 붕괴, 윤리의 타락, 경제의 불황 등 일본의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간의 역사만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사 전체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선 ‘이예’제도가 시작된 14~15세기 전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동아시아의 격변기였다. 12세기에는 유례가 없는 몽고의 세계제국이 건설되어 주자학을 관학으로 정착시켰다. 그래서 그 영향 하에 있던 명·조선·월남이 자의건 타의건 간에 주자학을 관학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중앙집권적인 문치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서로 싸우기보다는 서로 협력해 오랫동안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유교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가족·사회·국가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모색했다. 무사를 억압하고 군사를 기르지 않은 채 외교로 국가안보를 지키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 길을 따르지 않았다. 섬나라였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노력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계속 무사(사무라이)가 지배하는 분권적 무치주의 국가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일으켜 대륙진출을 하려다 조선·명나라 연합군에 패배했다(일본에서는 승리한 전쟁이라고 말하지만). 그리고 서세동점의 시대가 되자 일본의 분권적 무치주의가 서양의 그것과 같다고 해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동북아 제국을 식민지로 편입시키고, 이를 아시아 전체로 확산해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면 이러한 일본의 선택이 옳은 것인가? 지금까지는 그 때문에 아시아 제국의 희생 위에 열강에 편입됐고, 아시아의 선두주자로 호황을 누렸다. 그렇지만 서구 자본주의가 쇠퇴할 조짐이 보이는 현 시점에서 과연 일본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탈아입구를 버리고 아시아의 유교체제로 전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국과 협동해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전제조건은 아시아인에 대한 침략과 패악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것은 흔쾌히 배상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일본이나 아시아인의 새로운 번영의 기틀을 제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예(家)의 붕괴, 윤리의 타락, 경제의 불황 등 일본의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간의 역사만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사 전체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 [시론] 日정부에 ‘합방’ 조약 무효 선언 요구한다/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시론] 日정부에 ‘합방’ 조약 무효 선언 요구한다/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올해는 한·일 ‘합방’ 조약이 체결 100년이라 여러 가지 행사들이 추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일 양국의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합방’ 조약 무효가 선언된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그 선언에 참가한 한 사람으로서 그것이 민간 지식인들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적 의미는 물론 역사적 의미도 제대로 가질 수 없다는 점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1910년에 체결된 한·일 ‘합방’ 조약은 그것에 반대하며 투쟁한 전국적 의병투쟁에서 수만 명이 전사한 사실이 증명하듯이 당시 대한제국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능한 통치자들을 협박하여 강제로 체결한 조약이었으며, 최근 여러 측면에서 추진된 학술적 연구 결과에서 드러나듯 불법적으로 체결된 조약이었다. 그 조약으로 감행된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지배는 일반 식민지배와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유럽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들의 기준으로 봐서 ‘비문명지역’이라고 본 아프리카 지역이나 ‘타 문명지역’으로 간주한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을 지배한 것이 일반적 식민지배였다. 반면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중세문화 수준에서는 오히려 앞섰던, 그리고 근대문화 수준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던 ‘동양 3국’ 동일문화권 안의 다른 민족사회를 지배한 것이다. 따라서 후진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힘에 겨운 것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여느 식민지배와 다른 가혹한 민족 말살정책이 강행된 ‘강제지배’, 그것이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제지배’를 역사적 안목에서 보면 반드시 지적되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강제적·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합법적 조약으로 간주하면 그 조약을 근거로 강행된 조선총독부의 한반도 통치는 합법적인 것이 되고, 조선총독부의 통치권력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신성한 독립투쟁은 합법적인 권력에 저항한 불법적인 행동이 되고 만다. 반세기에 걸쳐 처절하게 전개된 이웃 민족의 신성한 독립투쟁을 불법적 행위로 간주하고도 앞으로 그 민족사회와의 평화적·우호적 협력관계를 말할 수 있는지 일본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와 냉전주의로 이어졌던 지난 20세기와는 달리 21세기 세계사는 다행히도 평화주의와 지역공동체주의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세계사적 지향에 앞장설 선진문명국으로 자처하는 일본이 간단없이 계속된 이웃 민족사회의 독립투쟁을 불법적 행위로 간주하고도 그 민족사회와의 평화적 공동번영을 말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건 국가건 대외적으로 떳떳하게 행세하기 위해서는 제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20세기 전반기까지의 세계사는 제국주의가 횡행했던 시기였고, 그때의 한·일 관계가 지배와 피지배관계로 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불행을 극복하고 21세기의 평화주의에 의한 공동번영의 한·일 관계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민간지식인 차원이 아니라 두 나라 정부의 합의로 ‘합방’ 조약 무효가 반드시 선언되어야 하며, 그 경우 세계의 평화시민사회가 찬양해 마지않을 것이다. 총리 차원의 유감 표시나 사죄보다 국가 차원의 ‘합방’ 조약 무효선언이야말로 앞으로의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특효약일 것이다. 1965년의 한·일 협정 때 이미 ‘합방’ 조약 무효가 선언되었어야 했지만 양국 집권자들의 역사의식 부족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앞으로 조만간 맺어져야 할 조·일 조약 때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도 일본 정부의 ‘합방’ 조약 무효선언이 절실히 요구되며, 장차 한반도가 통일되어 한·일 조약이 하나로 된 후의 양국 우호관계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한·일 ‘합방’ 조약 100년을 맞아 단행되는 정부 차원의 조약 무효 선언이야말로 앞으로 100년의 우호적 한·일 관계를 위한 중요한 담보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시론] 광화문, 이제 광장으로 역할하게 하라/김홍식 명지대 교수·한국건축문화연구소장

    [시론] 광화문, 이제 광장으로 역할하게 하라/김홍식 명지대 교수·한국건축문화연구소장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3궐(闕)의 석축 홍예문을 가진 중층 누마루 집이 서울의 복판에 복원되었다. 그 규모는 중국의 천안문보다 조금 작지만 백악산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일제의 길에 맞춰 틀어 두었던 건물을 굳이 헐어내고 제자리를 찾아 복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의 상징물로서, 일제의 조선총독부 청사가 버티고 서 있는 것보다는 훨씬 우아하지 않은가? 광화문이란 무슨 뜻인가? 제갈량이 선조의 남긴 덕을 빛낸다는 말에서 나온(光以先帝之遺德) 바 훌륭한 말이다. 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이 되고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데, 그에 앞서 광복절에 광화문을 공개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비록 나무가 덜 말라서 단청을 다시 해야 하는 하자가 발생하더라도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비용이 조금 더 추가될 따름이다. 고종 때도 1867년 5월17일에 착공하여 9월18일에는 문루의 입주(立柱)를 하고, 같은 해 10월11일에는 상루(上樓)하여 완공했다고 하니, 무서운 속도가 아닌가? 일제도 총독부 앞에 눈엣가시 같은 조선의 상징물을 철거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기는 데 2년 이상을 소요하면서, 우리의 기록과 비교해 보고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는 2007년 5월에 기존 건물을 철거해서, 비록 발굴조사를 한다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2009년 11월27일에는 상량식을 했으며 이후 9개월 만에 완공한 것이 아닌가! 더구나 비지정문화재이므로 3개월 정도 앞당겨도 별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만 좀 늘렸을 뿐 야간작업도 하지 않고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또 다른 상징물인 숭례문(남대문)이 수리공사를 하고 있는데, 지정문화재 국보 1호이고 보물 1호는 흥인지문(동대문)이다. 만일 비지정문화재에 등록번호가 주어진다면 1호는 틀림없이 광화문일 것이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육축(석축) 이상은 파괴되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고, 복원도 콘크리트로 외형만 본떴기 때문에 지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문화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지정이 되지 않아서 문화재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할 따름이다. 한편, 광화문 앞에 설치되어 있던 월대(기단 아래 있는 축대)를 복원하지 못한 점이 광화문을 왜소하게 보이게 하는 다른 원인일 것이다. 교통의 흐름을 막는다는 이유로 복원하지 못했는데, 원래는 길이가 52m이고 그 앞 35m 지점에 해태상이 있었다. 이를 길이 10m로 줄이고 그 끝에 해태 상을 놓겠다니,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조그맣게 보일 수밖에…. 더구나 월대의 높이는 원래 75㎝ 정도였는데 지금은 광화문 광장 높이가 이것보다 높게 되었다. 얼마 전 광화문 광장을 발굴해 봤는데 조선 초기 지반은 지금보다 2.5m 정도 아래 있었고 매년 조금씩 토사가 쌓여서 고종 때 지반은 대략 80㎝ 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시각상 광화문을 받쳐주고 있던 육조거리, 곧 광화문광장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오세훈 서울시장은 광화문 광장을 만든다고 차선을 과감히 줄이고 우리나라 최고의 조경설계사를 부르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는데도 결론은 겨우 이 정도다. 광장(마당)이란 무엇인가? 정말 비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노자의 말처럼, 비어 있음으로 해서 필요하다면 무엇이라도 담는 마당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국가의 심장부를 거닐어 보기도 하고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대중 집회를 열기도 하며, 어떤 때는 최익현 같은 분이 도끼를 베고 앉아 나라님께 직소하기도 하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신문고를 울리던 곳이지 않던가? 촛불집회를 하면 무엇이 두려운가? 어울리지도 않은 세종대왕도 앉아 계시고 이순신장군도 노려보고 있으며, 분수·화분 등 너저분한 것이 많아서 진정한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시민들은 넓지도 않은 시청 앞 광장을 개방해 달라고 안달을 할까?
  • [시론]‘행정고시’제도 개편방안의 진단/백종섭 대전대 행정학 교수

    [시론]‘행정고시’제도 개편방안의 진단/백종섭 대전대 행정학 교수

    그동안 ‘성공의 관문’으로 여겨져 왔던 ‘고시(考試, 일명 高試)’제도가 많은 변화를 겪을 전망이다. 지난 12일 행정안전부는 60여년간 유지됐던 5급채용제도의 주요 방법인 행정고등고시를 개편하는 ‘공무원 채용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이 나오자 수험생을 비롯한 이해당사자 집단들의 찬반이 거세지면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5급 공무원은 행정고시 필기시험, 6급 승진, 서류와 면접을 통한 특별채용으로 충원된다. 5급부터는 일정한 근무연수가 되면 본인들의 다양한 능력과 역량에 따라 최고 1급까지 승진한 뒤, 장관도 될 수 있다. 정부안의 핵심은 5급 채용을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5급공채)’으로 명명하고 ‘5급 공채시험(기존의 행정고시)’과 ‘5급 전문가 채용시험’으로 선발하되, 전자는 현재처럼 필기시험으로, 후자는 서류와 면접으로 각각 선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행정고시 선발인원이 축소될 수 있다. 2009년은 전체 신규채용의 27.6%가 특채로 충원됐다. 여기에 기타 특채 인원을 조정하면 2011년 특채 비율은 30%에 달한다. 현재보다 특채비율이 3~4%포인트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방안은 세계화 등으로 급변하는 국내외 상황에 효율적인 대처가 가능한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의 선발, 경쟁 확대에 따른 공직사회의 역량강화 기대, 유사한 배경(명문대·인기학과·동기생 등)을 가진 고시 출신들의 의사결정과정에서 나타나는 집단적 사고 완화, 공직사회의 유연성 확대 등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 효과가 기대된다. 반면, 문제점은 면접 선발의 공정성과 타당성 논란, 행정고시 선발인원 감소로 인한 고시낭인의 증가 가능성, 정원 축소로 유능한 사회적 약자들의 성공기회 축소 우려, 채용 다양화로 인한 공직사회의 이질성 심화 등이다. 이 방안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단계적인 도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직무분석 등을 면밀히 해 전문가가 필요한 직무영역이 무엇인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둘째, 서류 심사와 면접심사를 엄정하게 해야 한다. 서류심사는 기본요건 충족 여부 이외에 공직수행계획서를 심층적으로 평가해 이를 통과하면 면접기회를 줘야 한다. 아울러 공무원의 자질과 적격성을 검증하고 면접 공정성 시비를 없애려면 최소한 현재 행시1차에서 실시하고 있는 공직적격성평가(PSAT)나 유사 시험평가 시행도 필요하다. 면접은 단순면접이 아닌 역량면접으로 5급 공무원에 적합한 역량지표를 개발해 최소한 전문능력, 발전역량, 공직자관 3부문으로 구성된 합리적인 하위 평가지표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면접 매뉴얼을 마련해 공정하고 타당한 면접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넷째, 중요한 것은 면접위원의 평가이므로 관련 학자·민간기관 전문가·고위공직자로 면접위원 인력풀을 구성하고, 면접위원 교육을 최소한 1일 이상 실시해 공정성과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다섯째, 시험공채자와 승진자 간 갈등 완화를 위해 채용 후 수습기간 및 재직기간 중 동시 교육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5급공채시험제도는 나름대로 장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계속 유지하되 과목, 출제방식과 평가방법, 특히 면접평가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 특채비율은 기존 수험생의 충격 및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점진적으로 확대 및 보완해 나가야 한다. 유능한 공무원이 열심히 일해 국민에게 우수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채용부터 퇴직의 전 과정이 합리적으로 운영될 때 가능하다. 인사행정의 전 과정에 비추어 볼 때 이번에 정부 개선방안은 주로 채용과정에 중점을 두었다. 좀더 총체적이고 종합적으로 공무원 인사행정을 점검해야 한다. 공정한 선발, 적성에 알맞은 배치, 공정한 평가와 보상체계, 유능한 공무원의 승진 기회 보장, 무능한 공무원의 퇴출 장치 등이 모두 마련돼야 선진 공무원 인사행정이 구현된다.
  • [시론] 통일비용과 통 일세 논의에 대하여/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시론] 통일비용과 통 일세 논의에 대하여/서재진 통일연구원장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 중에서 통일세 논의 제안을 계기로 통일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뜨겁다. 논의의 방향은 두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남북관계가 좋지 않은 시점에서 통일세 논의가 타당하냐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비용 규모 관련 논의이다. 통일세 논의가 필요한 이유는 시대상황 때문이다. 올해는 분단 65년, 6·25전쟁 60년이 되는 해이다. 분단 이후 두 세대가 넘게 지난 시점에서 통일의 비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은 통일된 지 20년이나 지났지만 우리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저하됐다. 통일세라는 화두로 통일의 비전을 고취하고 통일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통일비용 논의는 왜곡돼 있다. 통일이 되면 통일비용이 소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60여년 동안 지불하고 있는 분단비용은 통일비용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통일비용은 북한 주민들 복지 증진과 북한 재건을 위한 투자가 포함된 비용으로 통일 이후 투자라는 사실, 투자비는 반드시 이익을 창출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통일비용 은 통일 이득을 반드시 공제한 액수로 계산돼야 한다. 그리고 통일 이후 항구적으로 누리게 될 이득은 무한대이다. 즉, 통일은 비용도 소요되지만 엄청난 이익을 수반하게 되고 한국이 몇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분단비용, 통일비용, 통일이익의 개념을 균형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남북관계가 경색된 시점에서 통일 논의와 통일세 논의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은 단견일 수 있다. 통일은 하루아침에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가 순조로우면 통일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통일기반 조성을 위해 단기적으로 남북관계에서 밀고당기기식의 진통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도 있을 수 있다. 현 시점에서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전적으로 한국 정부에 돌리는 인식도 타당하지 않다. 북한의 권력투쟁 등 내부 변수,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천안함사태 등 북한 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평가이다. 남북관계가 나쁠수록 장기적 관점의 통일 비전이 필요하며, 통일과정에 소요될 비용, 통일이 가져올 경제적·외교적·안보적 측면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이해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단 65년이 된 시점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통일의 비전과 의지를 갖는 것이다. 독일이 통일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독일 민족이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의 후예라는 역사적 긍지, 비스마르크 재상이 일구어낸 통일국가의 역사적 전통,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민족적 자긍심이 통일 의지를 갖게 한 역사적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도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이다. 5천년 역사의 전통도 가지고 있다. 분단은 60년에 불과하며, 그것도 외세에 의해서 분단된 것이다. 우리 내부의 잠자는 거인을 깨우고 발현된 역량과 잠재역량을 집중하면 통일을 이룰 수 있다. 독일이 통일 이후 얼마나 국력이 신장되고 국격이 높아졌는지에 대해서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독일이 통일로 얻은 성과는 실로 눈부시다. 우선 통일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대국이 되었다. 독일은 세계 1위 수출국이다. 또 하나의 큰 성과는 유럽 통합과 유럽연합(EU) 출범이다. EU 출범으로 유럽 각국은 엄청난 경제적·정치적 시너지 효과를 거뒀다. 역으로 EU의 출범으로 독일이 얻은 성과는 EU의 중심국이 됐고,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허브 역할을 하게 됐다. 통일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국제적 위상을 누리고 있다. 북한을 자극할 것을 우려하기보다는 북한이 지금 핵포기와 개혁·개방의 전략적 결단을 내리도록 국민적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 [시론] 정부와 민선 교육감, 유혹에서 벗어나라/정영수 충북대 교육학과 교수

    [시론] 정부와 민선 교육감, 유혹에서 벗어나라/정영수 충북대 교육학과 교수

    정부와 민선 교육감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이어짐에 따라 주요 교육정책 추진에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국민의 관점은 다양하다. ‘민선 교육감이 선출되었으니 지방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이 마땅하고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의견이 있다. 역으로 ‘사태를 내버려 두면 교육감의 잘잘못을 차기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할 것이니 성급하게 권한 관계를 따지는 게 도리어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교육감 주민소환 제도 등이 있으니 그때 책임을 물으면 된다는 것이다. 최근의 사태를 정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교육정책의 공신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교육정책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만큼 국민에게 혼돈과 갈등을 안겨 주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제도의 권위와 개인 인격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정의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진정한 권위와 자존심은 서로 지켜 줘야 할 덕목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적어도 정부와 교육감이 공유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인간의 속성에 따른 정책변동 가능성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교육에 관한 결정을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이념에 따라 결정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교육감은 지역 주민의 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선출된 자리이지 특정 교원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둘째로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라는 점을 새겨야 한다. 지방교육자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진통과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발전 과정에서의 진통은 견제와 균형을 함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제되었을 때에 의미가 있다. 교육에 관한 한 여야나 보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셋째, 교육감이나 도지사가 정부와 이념 성향을 다르게 가진다고 해도 교육에 관한 한 초당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공통 가치를 마련하는 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정부와 하나가 되어 교육개혁을 일궈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교육감의 책임은 막중하다.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라면 수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율화의 이념과 배치되는 것이라면 그것도 수정해야 한다. 학생·교사 인격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정책이라면 그것도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주요 국가정책으로 정해졌다면, 당과 이념을 초월해 정책을 존중하고 도울 일은 도와야 한다. 넷째로 정부도 교육감을 ‘통제’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자율’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각이 필요하다. 깊고 높은 규범과 윤리적 차원에서 우리 자녀를 위해 해야 할 최우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다면 서로 협력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너와 내가 이제 기존 사고 방식의 틀과 통제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일이 중요하다. 자율과 자치는 신뢰의 근본이며 창조성의 원천이다. 나아가 교과부와 교육감이 정직하고 정의로운 교육적 판단에 따라 교육정책을 결정하고, 서로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다섯째, 정부의 판단과 정책이 언제나 옳고 공명정대한 것은 아니다. 오류가 있고 실패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판단을 따르는 것은 ‘제도’로서의 교육정책 결정에 관한 승복의 의미가 크다. 적어도 정부는 권위를 정당화할 만큼 적절한 합리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절차를 밟아 왔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감은 자신의 주장과 결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결정 과정에서 누구의 의견을 어떤 과정을 거쳐 청취했는지를 수긍이 가도록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어찌 하든 교과부와 교육감이 하나가 되어 교육개혁을 주도하지 않는다면 한국 교육의 앞날에 희망과 기대를 갖기 어렵다. 정부와 교육감 모두 스스로 변신하지 않는 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시론]다른 세대의 얘기에도 귀 기울여야/조일영 한국교원대 국어학 교수

    [시론]다른 세대의 얘기에도 귀 기울여야/조일영 한국교원대 국어학 교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얼마나 실제적인가.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 ‘매트릭스’나 ‘아바타’, 그리고 조작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우롱당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영화 ‘트루라이즈’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가상적이거나 조작된 세계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인간은 원초적 삶에서 멀어질수록 가상적 삶에 의지하여 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는, 비약해서 말하면, 인류 초기의 사람들보다 비사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의 체험을 토대로 현실에 대한 인식을 구성하고 또 미래의 일에 대해 예측을 하는 과정에서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실세계에 기초한 삶은 줄어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실세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타인에 대한 가상을 통해서 전개된다. 그런 가상들에 대한 확신과 타인과의 공유 정도에 따라 신뢰, 신념, 이념 등의 사회적 믿음들이 생겨난다. 또 그런 믿음들의 현실성에 따라 추정, 상상, 환상, 망상 등으로 변해간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순탄하게 지속되지 않을 때, 즉 혼자만의 헛된 믿음이었음이 분명해질 때 혹은 집단적인 환상에 불과했음이 드러날 때 인간들은 서로에 대한 놀람과 실망, 경우에 따라서는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개인 상호간에 일어나는 것은 일상의 다반사이고 여파가 개인 간에 그치지만 집단적인 가상으로 증폭되면 우리의 이성은 압도되어 종종 사실에 대한 검토나 추적을 포기하고 폭발적인 감정을 따르기 쉽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집단심리가 긍정적인 형태로든 부정적인 형태로든 폭발한 예가 많이 등장한다. 최근의 우리 한국 사회도 그런 유사한 경험을 했지 싶다. 민주화운동, 월드컵 응원, 촛불시위 등이 아마 그런 가상들에 대한 열광 혹은 분노가 표출된 예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정치권에서 간절히 편승하고 싶어 하는 경험들이기도 하다. 최근 평소 가깝게 느끼던 386세대 교수와 술 한 잔을 나누면서 오랜만에 세대 차이를 넘어 마음껏 논쟁을 펼쳤던 적이 있었다. 평소 잘 어울리긴 했지만 모든 걸 넘어서 그날만큼 솔직하게 의견을 격렬하게 주고받았던 적이 이전에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날 그가 쏟아 놓은 이야기에 약간의 서운함과 단절감을 느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앞선 세대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이 먹었다고 무조건 구세대로 치부하는 상황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그렇게 불신을 받을 만큼 잘못 살았던가 하는 생각에 허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얼마 후 또 바뀌게 되었는데 그 말을 한 세대조차도 다음 세대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또 다른 세대에 속하는 교수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대체적인 흐름이 ‘-는 무조건 싫다’, ‘-는 무조건 좋다’는 판단 준거의 압박 속에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최근의 선거에서 나타난 분위기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 무엇’ 때문에 싫은 것이야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그 무엇’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냥 인상이 싫어서’라든가 ‘하는 짓이 미워서’라든가 하는 감성적 평가가 어떤 중요한 결정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다. 하긴 필자부터도 그런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어떤 젊은 교수가 지난 정권 기간 내내 당시 최고 권력자를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었다. 물론 그것은 필자가 좋게 해석한 것일 뿐이고 말한 사람은 정반대의 의도가 있음을 모르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각각의 세대에 속한 이들이 다른 세대의 얘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요는 ‘환상 속의 그대’들로부터 ‘그대 안의 나’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 [시론] 신라기술자 구진천을 아십니까/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고대사 교수

    [시론] 신라기술자 구진천을 아십니까/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고대사 교수

    8월이면 휴가철이라 산과 들로 가지만 그래도 바닷가를 찾는 인구에 비할 수 있을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역사지리적 환경에서 바다는 생활의 방편을 넘어 친숙한 존재이다. 이럴 때면 신라 장군 이사부가 512년에 동해의 거친 파고를 헤치고 나가 지금의 울릉도인 우산국을 점령한 사건이 의미 깊게 닿고는 한다. 울릉도에 갈 때마다 풍랑에 시달리곤 했던 필자로서는 신라인들이 어떻게 그 먼 바다까지 나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 경외감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 신라인들의 활동 권역은 우리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신라가 일본열도로 쳐들어가 왜왕의 항복을 받아냈다는 전승이 일본 측 문헌과 그곳을 다녀온 통신사들의 기행록에 함께 전해지고 있다. 5세기대 신라 고분에서는 타조나 구세계원숭이를 비롯해서 개미핥기 등과 같은 아열대 지역 동물들의 형상이 정확하게 묘사된 토우(土偶)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신라와 동남아시아 지역 교류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또 신라에서는 일찍부터 바다와 관련된 이름의 파진찬(海干)이라는 벼슬과 선부(船府)라는 관부까지 갖춰져 있었다. 그럴 정도로 신라인들은 일찍부터 바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더불어 상당한 해양 능력을 구비하였던 것이다. 당(唐)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이듬해 정월에, 주적이 바뀌어 일촉즉발의 험악한 관계가 된 신라에 자석을 요구하였다. 신라는 그해 5월에야 자석 두 상자를 당에 바쳤다. 자석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지남차라는 이름의 자석을 중국에서는 기원 이전에 이미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중국에서 일찍이 개발한 자석을 당이 신라에 요구한다는 자체가 의아하다. 그렇다면 이는 이미 신라가 나침반의 원리를 터득해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연안이 아닌 원양항해를 위해서는 현재의 자기 위치 파악이 중요하므로, 방향 감각은 망망대해에서 꼭 견지해야 할 일차적 전제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사부 항해의 의문이 풀릴지도 모른다. 나침반은 원양항해의 발전과 맞물려 있는 사안임을 생각하면, 백제가 동남 아시아 나라들과 교류했던 동력도 파악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당은 자석에 이어 쇠뇌(쇠로 된 발사 장치가 달린 활) 기술자인 신라인 구진천(仇珍川)을 자국으로 데려갔다. 그가 제작한 쇠뇌로 쏘면 화살이 무려 1000보를 날아갔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정 거리는 무기의 성능을 알려 주는 유력한 지표가 된다. 그런데 당은 구진천으로 하여금 쇠뇌를 만들게 하였지만 그가 만든 쇠뇌는 본국에 있을 때와는 달리 멀리 나가지 못했다. 고작 30~60보밖에 이르지 못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구진천은 갖은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는 조국에 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역량을 숨긴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수나라가 고구려에서 자국의 쇠뇌 기술자를 매수해 데려갔다며 힐책한 사건이 상기된다. 구진천의 행적은 고구려에 매수된 수나라 기술자와는 크게 대비되고 있다. 어쨌든 신라 자석을 통한 나침반 기술로 차질 없이 서해를 건너오고, 또 성능 좋은 신라 쇠뇌로 신라를 치겠다는 당나라의 속셈을 엿볼 수 있다. 이것도 이이제이(以夷制夷)인 셈이다.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빼어났던 선조들의 기술력과 그것을 지키려는 열정은 한국 현대 과학의 연원임을 생각하게 한다. 선조들은 발달한 항해술과 조선술을 기반으로 바다를 잘 이용해 광활한 세계를 체험했다. 이때 활발하게 이루어진 기술 교류를 통해 중국 일변도의 편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8세기 중엽에 신라인들이 제작한 인공산인 만불산을 보고는 중국인들은 “신라의 기교는 하늘이 준 것이지 사람의 것이 아니다.”라고 격찬했다. 중국도 탐냈던 신라의 과학 기술인 것이다.
  • [시론] 체벌금지 이후를 고민하라/윤용규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체벌금지 이후를 고민하라/윤용규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체벌 논란은 왜 잊을 만하면 터지는가. 문제가 될 때마다 미봉책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오장풍’으로 바뀌었을 뿐 이번에도 비등하는 비난 여론과 언론매체의 집중보도, 허용과 금지를 둘러싼 열띤 토론과 교육당국의 급조된 재발방지대책 등이 단골 메뉴처럼 이어졌다. 교사의 폭력이 파장을 일으키자 서울시교육청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하게 체벌 전면금지 대책을 내놓았고, 이에 대해 교총은 객관적 타당성을 갖춘 체벌은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공식처럼 진행되고 있어 그 결론 또한 뻔히 보이는 듯하다. 그러나 체벌 문제가 좀 떠들썩하다가 곧 잠잠해져도 좋을 일은 결코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 똑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실익 없는 논쟁으로 끝날 것이다. 교육당국의 대책이 성과를 거두기 바라는 마음에서 두 가지 의문을 제기 한다. 먼저, 서울교육청의 체벌 전면금지에서 금지되는 체벌이 과연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행 교육법규는 이미 체벌을 금지하고, 다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청의 조치는 이 예외적 허용조차 금지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예외적 체벌 허용에는 형법상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등에 의한 허용과 교육법규에 의한 것이 있는데, 전자는 형법의 일반적 정당화원칙이므로 금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면 후자의 경우만 남는다. 교육법규에 의하면 예외적으로만 할 수 있는 체벌에 대해 체벌 장소와 체벌시 제3자 입회, 매의 규격과 횟수 등에 대해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게다가 학생의 동의를 전제로 해서만 행해질 수 있게 했다. 즉, 학생은 체벌 이외의 다른 벌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동의에 의한 체벌은 그 자체로 아무런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지만, 그 이전에 위와 같이 지키기 어려운 조건 때문에 체벌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교육법규에 따를 때 체벌은 이미 완전히 금지된 것과 같다. 바로 이 점에서 교육청의 ‘전면 금지’ 조치가 갖는 실익과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교육청의 조치는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답으로 보기도 어렵다. 체벌은 법적으로 전면 금지된 것이나 마찬가진데 학교에서는 왜 여전히 교사의 폭력이 빈발하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물음이 아닌가. 그러므로 교육청은 어떻게 하면 체벌이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체벌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 체벌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안을 찾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청은 현행 체벌금지도 지켜지지 않는 마당에, 더 나아가 예외적인 경우까지 금지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치 체벌문제를 거의 이용되지도 않는 체벌 허용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발생하고 있는 폭력이 금지를 선언한다고 방지되는 것은 아닐진대, 교육청의 이 조치는 학생인권신장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체벌 발생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따라서 철 지난 체벌 허용·금지의 되풀이는 체벌논의를 퇴행시킬 뿐이다. 법으로 10년 이상 금지한 체벌을 다시 허용하자는 것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자는 것이며, 이미 금지한 체벌을 금지하겠다는 것은 열린 문을 또 열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체벌금지 이후의 대책 마련’이다. 오랜 세월 관습법적으로 인정되어온 체벌이 금지됨으로써 생겨날 수밖에 없는 학생지도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대책은 체벌을 금지한 초중등교육법의 제정(1998년)과 함께 만들어졌어야 했다. 교육당국이 이를 부작위함으로써 결국 그 짐을 일선교사에게 떠넘긴 셈이 되었고,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폭력의 피해자로 고통 받게 했던 것이다. 늦었지만 이번만큼은 학생지도와 제재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되기를 고대한다.
  • [시론] 4대강 듣고 싶은 목소리만 듣나/윤세의 경기대 토목공학 교수

    [시론] 4대강 듣고 싶은 목소리만 듣나/윤세의 경기대 토목공학 교수

    인류 문명은 대부분 하천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지금도 사람들은 하천 가까이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과 인구 증가 및 집중으로 인해 하천은 심하게 오염되었다. 또한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에 따라 집중호우의 발생빈도가 증가하면서 홍수위험도가 날로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천의 물을 깨끗하게 만들고, 쉽게 접근해 이용하고, 즐기고, 다시 찾고 싶은 하천으로 만드는 일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기본방향이라고 본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수계별 특성에 따라 주요 목적이 다소 차이가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홍수대책, 수자원 확보, 수질개선 및 생태복원, 복합 여가공간 창조, 강 중심의 지역발전을 위한 것이다. 1987년에서 2006년에 이르는 최근 20년간 한강유역에는 모두 101회의 홍수피해가 발생했다. 평균적으로 1년에 다섯 번은 어김없이 홍수피해를 본 셈이다. 이에 따른 연평균 피해는 사망 79명, 이재민 7557명에 달하고 있다. 홍수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만만치 않다. 다소 이론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연간 홍수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규모는 무려 2조 7000억원에 달한다. 현재 남한강유역에서 홍수조절의 대부분을 충주댐이 담당하고 있다. 충주댐 유역면적은 소양강댐보다 2.5배 크나, 저수량은 29억㎥인 소양강댐보다 오히려 1.5억㎥가 적기 때문에 홍수가 발생하면 댐지역 상·하류 간에 댐 방류문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남한강 유역에서는 홍수를 조절하기 위한 공간의 확보가 절실한 실정이었다. 특히 경기 여주, 양평에서는 1990년, 1995년, 2002년, 2006년 등 최근까지도 계획홍수위를 상회하는 홍수가 발생해 큰 피해를 당해 왔다. 이러한 반복된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강 살리기 사업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한강의 홍수 피해 방지를 위해 제방 축조 및 보강 공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나 사유지 보상협의, 기존 교량의 숭상 및 이에 따른 도로시설 변경 등이 해결되지 않아 홍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서울 및 수도권 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는 한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하수처리시설의 확충 및 신설, 하수관거정비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지만 하천부지 내 경작지에서 흘러나오는 농약, 퇴비 등의 오염원 제거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따른 한강 살리기 사업의 특성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도 내의 퇴적구간을 준설해 하천의 통수단면을 확대하고, 기존 제방을 보강해 홍수를 방어하는 것이다. 둘째는 하천부지 내의 환경을 정비하고, 하천으로의 접근을 쉽게 하면서 생태를 복원하는 사업이다. 셋째로는 사업구간에 다기능 보(洑)를 설치해 수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 사업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인 한강을 “치수(治水)적으로 안전한 강, 이수(利水)적으로는 넉넉하고 깨끗한 강, 환경(環境)적으로는 생명이 살아 숨쉬는 강, 여가(餘暇) 측면에서는 문화와 휴식의 강”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효과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원인은 정부의 홍보 방법에도 문제가 있지만, 일부 반대론자들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검증되지 않은 어두운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도 있다고 본다. 이에 비해 찬성하는 국민들은 이 사업이 중단 혹은 크게 변경될까 걱정이 태산이다. 반대자들을 위한 설득뿐만 아니라 찬성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다. 따라서 정부는 이 사업의 효과를 체계적으로 제시해 국민들의 이해를 돕고 지속적인 대화의 창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건설적인 대안 제시가 필요한 때라고 본다.
  • [시론] 순리와 상생의 정치 복원해야/장성호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순리와 상생의 정치 복원해야/장성호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6·2지방선거와 7·28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여파로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저마다 자신의 처지에 따른 견강부회(牽强附會)가 한창이다. 말로는 통합과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를 외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분열의 허상뿐이다. 한국정치의 역사가 언제나 그랬듯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난 3년 동안, 정치권은 사방팔방 정쟁으로 서로의 불신과 적개심만 키워 왔다. 여당은 소통의 묘약이 필요한 곳에 참을성 없는 처방으로 불협화음만 키워왔고, 견제와 균형에 충실하여 국정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대안 없는 구태를 반복함으로써 한국정치의 퇴행적인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권력의 속성상 제한된 권한의 헤게모니를 위해 필연적인 경쟁과 다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분열의 정쟁만을 일삼는 정치권을 계속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안타깝다. 우리 정치의 양보 없는 권력쟁투의 이면에는 보스·계보정치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정치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과거의 잘못된 폐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선진정치를 실현하는 길은 민주정치의 원리를 원칙대로 실현하는 일이다. 여당이 여당다워야 야당도 야당다워질 수 있다. 집권당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정치발전을 도모하면 야당도 정쟁을 지양하고 무조건적인 비판과 반대가 아닌, 대안을 가진 정책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때마침 7·2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실시된다. 재·보궐선거의 원칙적 취지는 해당 지역발전을 위한 참신하고 능력 있는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라는 것을 유권자들은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지역 선거가 중앙정치의 다양한 돌출변수로 인한 여야 간의 치열한 정치공방과 변칙적인 양태로 민심을 왜곡해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바람정치로 변질돼 온 것이 우리 정치의 악습이었다. 민주주의의 힘은 통합 속에 견제와 균형, 권력분립, 다양성 등 각각의 원칙들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연결되어 하나로 발휘될 때 나오는 법이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우리 정치의 살 길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광범위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반환점을 맞는 시점에서 국정의 일대 쇄신과 탕평인사를 통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다양한 인사들을 중용할 것을 촉구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재 등용을 통해 우리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의 정치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 실현이다. 민주정치의 근본원리인 권력분립을 위해 정당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여당 스스로가 좀더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국민의 소리를 잘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한다. 정부와 여당의 엄격한 당정분리는 곧,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이를 통해 수많은 다양성이 확보되고, 자유로운 여당의 활동으로 대통령의 상처가 최소화되면서 과거 정권의 불행했던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게 된다. 특히 통합 속의 견제와 균형의 논리로 계파·보스정치를 타파하여 개별 결사체의 정체성을 살리고, 당내 갈등을 없앰으로써 국민들에게 지지정당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자발적인 정치 참여의 길을 넓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빠른 속도로 변하는 나노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에 과거회귀형의 20세기 정치는 배격되어야 한다. 집권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조속히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순리와 상생의 정치복원을 통해 갈택이어(竭澤而漁·연못의 물을 말려 고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일시적인 욕심 때문에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음)의 정치가 아닌, 내일을 위한 선진정치로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길 바란다.
  • [시론] 우리 쌀, 우리 막걸리, 우리 문화/정헌배 중앙대 경영학 교수

    [시론] 우리 쌀, 우리 막걸리, 우리 문화/정헌배 중앙대 경영학 교수

    우리 막걸리의 본격적인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제조·유통업체 수가 크게 늘고 전국 방방곡곡에 주점이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2000억원에 불과하던 막걸리시장이 금년에는 5000억원의 매출 달성이 무난할 전망이다. 불과 1년 만에 2.5배에 이르는 규모적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일본 열도가 한반도로 보낸 막걸리 열풍을 1년도 안돼 태풍으로 확장시킨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쌀소비 진작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농식품부의 마케팅 활동이다. 농식품부가 막걸리시장 활성화의 일등공신임은 틀림이 없다. 두 번째는, 발 빠르게 시장상황에 대응한 제조업체 활동이다. 막걸리업체들은 과거 100년간 출시했던 브랜드 수보다 많은 신제품을 지난 1년간 출시했다. 디자인, 병 모양, 사용원료도 바꾸고 시대감각에 맞는 다양한 이벤트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세번째는, 언론과 의견선도자, 전문가 집단의 적극적 홍보활동이다. 언론이 소나기처럼 쏟아낸 막걸리 예찬론은 소비자를 세뇌시킬 만했다. 자칭 타칭, 막걸리 전문가와 연구자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런데 정작 막걸리시장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 우리가 막걸리산업의 활로를 결정할 전략적 기로에 섰다는 점이다. ‘소비자보호’와 ‘대기업의 시장진입’이란 과제를 풀어야 한다. 막걸리도 술인 만큼 홍보에 소비자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은 막걸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 국민건강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모처럼의 시장활성화 분위기를 냉각시킬까 두려워 우물쭈물 시간을 보내왔다. 이는 진실을 알게 된 소비자들이 일시에 등을 돌릴 수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대기업의 막걸리시장 진입 여부는 기존 막걸리 업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전통주 산업에 무심했던 대기업들이 막걸리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 중견업체들의 지방시장 공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농식품부 주관의 막걸리산업 지원정책이나 마케팅 이벤트의 최대 수혜자 역시 대기업이나 기존 중견기업이 되고 있다. 우리 술 산업을 외면해 왔던 대기업이나, 막걸리시장에서 배타적 이권을 누리면서도 연구개발은 게을리했던 중견기업들이 영세 전통주업체들의 시장기반을 밟고 일어섬은 정당하지 않다. 프랑스의 포도주 산업이나 코냑지역처럼 다국적기업, 대기업, 중견기업, 영세기업이 공존공영하는 시장 메커니즘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영세한 지역업체들도 문화 싸움, 술맛 싸움에서는 대기업과 겨뤄볼 만하다. 술맛은 원료와 발효, 증류, 숙성방법에 따라 결정된다. 천연원료를 사용하고 향료, 색소를 첨가하지 않아야 하며 물이나 성상이 다른 술을 섞지 않을수록 좋다. 이렇게 만든 술은 자연스럽게 지역특성을 반영하게 되고 시장경쟁력을 갖게 된다. 대기업은 이러한 특화된 술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원료 쌀의 품종에 따라 술맛은 아주 달라진다. 품종이 같더라도 경작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일본처럼 주조용 쌀을 전문적으로 경작하지는 못해도 일본의 청주산업처럼 쌀 도정률과 경작지, 품종을 따지면 살 길이 생긴다.. 독일맥주의 성공사례처럼 ‘막걸리 순수령’ 발동을 제안한다. 1516년 독일 빌헬름4세는 맥주원료 통일과 품질향상을 위해 보리·홉·물의 3가지 원료 외엔 쓰지 못하도록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을 공포, 맥주 품질 보장과 함께 독일 맥주의 세계시장 주도를 이뤘다. 쌀 소비 촉진에 있어서도 문화적 접근방법이 훨씬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결과를 줄 것이다.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은 분명 중앙 및 지방정부의 몫이다. 대를 이어온 양조장이나 지역 원료를 특화한 양조장이 우리 문화와 사회의 일부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막걸리 르네상스의 최후 승자는 우리 막걸리가 되어야 한다. 막걸리가 쌀을 사용하는 재화로서만이 아닌, 문화적 가치를 가진 지역 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시론] 美·中 절충외교의 진실 직시해야/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시론] 美·中 절충외교의 진실 직시해야/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한국과 미국정부가 이달 실시하려는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의 반발 직후에 한·미연합훈련 계획이 서해에서 동해로 조정되는 과정에서 보인 미국의 태도 역시 ‘힘을 앞세운 강대국 정치’의 오늘과 내일을 절감하게 한다. 한미연합훈련을 연결고리로 하여 중국과 미국이 보이는 ‘힘겨루기 외교’ 속에서 글로벌 코리아의 안보적 위상과 입장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서해에서 한·미연합훈련을 하려던 우리 안보·국방정책의 의도는 명료하다. 북한이 천안함 사건과 비슷한 도발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엇보다 북한지도자의 도발 의지를 소멸시키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 정부당국이 인정하고 있듯이 우리 정부는 ‘군사적 인내’를 축으로,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응징 대신에 강력한 군사적 메시지를 만드는 차원에서 서해 군사훈련을 추진한 것이다. 서해에서 북한의 추가도발을 막기 위한 군사적 조치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국가이익에도 부합한다. 중국은 일관되게 한반도의 안정을 대(對)한반도 정책 목표로 제시했고, 군사적 상황 악화를 막기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한·미군사훈련은 중국의 우려대로 중국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의 또 다른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조치인 것이다. 중국이 한국정부의 이러한 전략의도, 한·미연합훈련의 목적을 모를 리 없다. 중국은 천안함 침몰 원인의 진실은 물론 한·미연합훈련의 목적을 잘 알면서도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우려를 명확히 했고, 미국의 태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미국에 대한 ‘중국식 압박외교’라고 할 수 있다. 중국식 압박외교를 통해 중국이 얻으려는 전략적 이익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정세에 중국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미국-일본, 미국-한국의 양자동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감추지 않음으로써 향후 동북아에서 최대 이해상관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말 서해에서 비슷한 훈련을 실시한 미국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입장이 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 훈련에서 중국은 특별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국제수역에서 동맹국들이 연합훈련을 하는 것은 주권사항으로 중국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세계 도처에서 진행되는 안보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중국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현실을 외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 핵문제, 중동 가자지역 문제 등에서 중국의 협력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인근해역의 한·미연합훈련이 장애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 미국이 입장을 조정한 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미·중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한·미훈련과 관련해 한국의 안보이익을 절충시킨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역사적 사건이 대중에게 준 충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힌다. 어느 심리학자에 의하면 전쟁이 일어나도 70여일이 지나면 대중들은 전쟁상황을 망각하고 일상생활을 한다고 한다. 천안함 침몰사건도 예외가 아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120여일이 지나간 현 시점에서 천안함사건의 교훈을 찾고, 후속대책을 세우는 것은 정부와 전략가들의 몫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한국정부와 순직한 장병들에게 위로를 보내고 있다. 위로를 보낸 뒤에 안보리 회원국가들이 취하는 조치는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그들 각국의 전략적 이익’이다. 1885년 청나라와 일본은 ‘톈진조약’을 맺어 ‘장차 조선 내에 어떤 변란이 발생하여 청·일 혹은 어느 일국이 파병하면 먼저 양국이 문서를 통해 연락을 취하도록 약속했다. 이 조약 때문에 동학혁명을 도화선으로 청·일전쟁이 발생했다.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한 미국과 중국의 ‘절충외교’가 북한 급변사태 등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를 우리 지도자들과 전략가들은 밤을 새워 고민해야 한다.
  • [시론] 동심에 상처는 이제 그만/임나라 동화작가

    [시론] 동심에 상처는 이제 그만/임나라 동화작가

    최근에 소설 한 권을 읽었는데, 주인공 여자에 대한 표현이 너무 어두워 중간에 읽기를 포기해 버릴까 하다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 인내심을 갖고 계속 읽어 나갔다. 그리고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야 여자가 어린 시절에 성폭행 당한 어두운 기억의 소유자라는 걸 알았다. 나는 성급하게 판단해 버린 데 대해 주인공에게 연민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하, 그랬구나! 현재를 살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향해 불신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불신은 너무도 당연한 당위성으로 우리의 삶을 온통 지배해 가고 있는 듯하다. TV를 통해 히말라야 오지의 한 마을에서 유기농 커피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남녀노소가 한데 어울려 열심히 커피농사를 짓는데, 그중 이십대의 젊은 부인은 네 명의 자녀와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다큐 프로를 보면서 내용의 취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엉뚱한 불안에 내내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방문도 제대로 여닫히지 않는 작고 허름한 집에 살고 있는 젊은 부인과 천진스럽기 짝이 없는 어린 딸들이 혹여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 싶어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커피농사가 잘되어 남녀노소 마을사람들이 커피자루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진 채 판매소를 향해 다같이 희희낙락 산비탈길을 내려가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들과 아무 관련도 없는 이역만리에 살고 있는 내가 감사한 생각까지 갖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어둠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때 묻지 않은 밝은 그들의 모습에서 피안의 딴 세상을 보는 듯했기 때문일 것이며, 한편으론 아직 그 어디에라도 희망을 두고 싶은 간절한 염원 때문일 것이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 부른다고 한다. 이들은 전두엽 기능이 일반 정상인들의 15%밖에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성범죄를 되풀이한다고 한다. 전에 심리 상담 치료를 하는 몇 개의 그룹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모두 어린 시절에 대해 발표하는 기본과정이 있었다. 놀라웠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어린 나이에 겪은 성폭행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의 밑바닥을 허우적이고 있었던 것이다. 몸만 걸어 다닐 뿐이지 영혼을 그릴 수 있거나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면, 그들의 내면이 온통 가시덤불로 덮여 있는 처참한 광경을 보게 될는지도 모른다. 잘못된 자유가 수많은 피해자를 낳고 있다. 아동 성범죄 처벌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처벌 수위가 매우 경미하다는 통계가 84%나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회는 큰 생각으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다양한 대책이 시급하다. 학교나 여러 단체에서 방어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미래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을 불특정 대상 아동들을 위한 올바른 인지교육도 반드시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인격 장애는 성인이 된 다음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부모의 부재, 환경의 열악함, 대화가 단절된 결손 아이들에겐 정부가 앞장서서 인성을 치유할 수 있는 예술 문화의 전문단체와 종교계 등을 통해서 그들의 고통을 따뜻이 감싸안을 수 있는 사랑의 체험교육이 지속적인 정책실현으로서 뿌리를 내렸으면 한다. 또한 가정에서도 부모와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면 자기만의 폐쇄적인 사고의 사슬에서 풀려나 좀더 힘차게 저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나는 어느 수도자들과 함께 사는 결손가정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10여년 동안 보아 오고 있다. 이 땅에 그런 곳이 여기저기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즐겁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힘겹지만, 언젠가는 물장구 치고 가재 잡으며 티 없이 환하게 뛰노는 어린 시절의 낙원이 올 것을 꿈꾸어 본다.
  • [시론]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자살/하규섭 서울대의대 교수·한국자살예방협회장

    [시론]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하는 자살/하규섭 서울대의대 교수·한국자살예방협회장

    고귀한 생명을 자살로 잃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최고다. 게다가 자살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에 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운 탄식과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자살 예방의 책임을 맡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과 책임감이 크다. 우리나라의 자살은 몇 가지 측면에서 특징적인 성격과 추이를 드러내고 있다. 첫째는 최근 10여년 동안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이유에 관한 명확한 분석은 없지만 전문가들은 IMF 경제 위기 이후의 사회변화에서 원인을 찾는다. 사회 전반에서 지나치게 효율만을 강조하는 데다 고강도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일부는 여기에 잘 적응해 오히려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사는 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보다 더 힘들게 일해야 하거나 실직 등으로 전보다 훨씬 극악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사회 전반의 불안정성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또 다른 특징은 노인 자살률의 급증이다. 다른 연령대도 자살률이 증가하지만 그 정도가 완만한 반면, 노인 자살률은 급증세를 보여 60대는 평균의 2배, 70대는 3배, 80대는 4배에 이르고 있다. 이는 자살률이 높고, 노인인구 비율도 높은 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 현상이다. 현재의 노년층은 개발 연대를 살아오면서 부모 봉양과 자녀 양육에 자신의 삶을 내던진 세대다.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할 여유도 없었을뿐더러 이 세대가 활약했던 60~80년대는 고령화라는 사회적 어젠다도 형성되지 않았다. 당연히 노후 준비가 절실하지도 않았고,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개인이나 가정, 사회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고령화와 맞닥뜨리게 되면서 특히 저학력이면서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노년층은 노후의 삶에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됐다. 그들이 병들고 외로운 노후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라는 추정이 어렵지 않다. 자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세 번째 특징은 ‘외면’이다. 모든 국민이 높아지는 자살률을 걱정하지만 “이 문제가 곧 내 문제이기도 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뭔가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늘어가는 자살 사례를 접하면서 “세상이 왜 이러지.”라고는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내 일이 아니라고 여겨 방관하고 외면하기 일쑤다. 한 번 본질에서 멀어진 마음이라 ‘자살은 예방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도 이내 외면하고 만다. “저 죽겠다는데 그걸 누가 말리느냐.”는 식의 방관자적 사고가 팽배하다. 우리 사회의 이 같은 자살에 대한 집단적 몰지각은 우울증 등 정신장애와 자살의 관련성을 쉽게 부정하기에 이른다. 대부분의 자살이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 밝혀졌음에도 우리 사회는 애써 자살과 우울증을 전혀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안전벨트가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이나 사망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음에도 한사코 안전벨트와 교통사고 사망률의 상관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인식도 자살을 예방하고 대책을 세우는 일을 힘들게 한다. 여기에다 자살을 대하는 언론도 문제다. 높은 자살률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대책을 위한 여론 조성에는 관심이 없고, 자살을 스캔들 다루듯 해 모방자살을 부추기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언론이 적지 않다. 자살 예방대책은 효용만을 따지는 경제 논리와 “산 사람도 어려운데 죽는 사람까지 어떻게….”라는 논리에 밀려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우리 사회의 자살 문제에서 드러난 실상이 실은 가감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교통 사고가 많아지면 당연히 교통법규를 잘 지키자는 사회적 합의가 뒤따른다. 그런데 자살은 그렇지 못하다. 도대체 얼마나 더 죽어야 범국가적으로 자살 예방에 나서자는 합의가 이뤄질까. 자살 문제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이며, 모든 사회 문제의 끝에 있다.
  • [시론] 불안정한 간(菅)정권/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시론] 불안정한 간(菅)정권/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7월11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는 민주당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인 동시에 간 나오토 총리에 대한 평가의 의미를 가졌다. 이번 선거의 관심은 일본 민주당(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느냐에 집중되었다. 그 결과는 간 총리가 장담한 54석에 훨씬 못 미치는 44석에 그치면서 민주당은 참의원의 개선 의석에서 자민당에 제1당을 내주는 참패를 했다. 이번 민주당의 참패로 간 정권의 미래는 풍전등화의 기로에 선 것임에 틀림없다. 정권교체를 이룩한 민주당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참의원 선거 참패로 인해 간 정권은 앞으로 ‘정국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번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왜 참의원 선거에서는 참패하게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소비세를 쟁점으로 한 간 총리의 선거 전략 실패로 설명하기도 한다. 소비세 증세를 먼저 주장한 것은 자민당이지만, 간 총리가 맞불작전으로 소비세 증세를 거들면서 선거의 쟁점이 되었다. 이로 인해 간 총리의 소비세 발언에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결국 소비세 문제는 여당의 반대표로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민주당 참패를 소비세 문제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단편적인 분석이다. 민주당의 참패는 하토야마 정권 시절부터 나타난 민주당의 한계를 간 정권이 극복하지 못한 것에 그 원인이 있다. 우선 하토야마 총리가 보여준 리더십의 문제가 간 총리에서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을 국민들은 주목한 것이다. 간 총리는 소비세를 쟁점으로 삼은 것이 패배의 원인이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소비세에 대한 간 총리의 우유부단한 발언이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당이 예산을 이유로 매니페스토(정권 공약)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만들었다. 그 예로 1인 선거구에서는 자민당이 22석을 획득하였는 데 비해 민주당은 8석밖에 획득하지 못하는 큰 패배를 했다. 즉, 지방에서는 민주당의 개별농가소득보전정책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민주당의 공공투자 삭감으로 인한 경기 악화는 민주당 정책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지방과는 달리 도시의 무정당파들은 민주당이 개혁을 철저히 하지 않는 것에 비판적이었다. 그 예로 도시 지역구인 3인과 5인의 도쿄 선거구에서는 자민당이 아닌 민나노(다함께)당이 약진을 해 공명당을 앞서는 10석을 획득하였다. 이번 선거의 결과로 간 총리가 즉각적으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간 총리 자신이 패배에 대한 책임을 말하면서도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며 총리직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당 내에서도 당분간 선거가 없는 상황에서 총리를 자주 바꾸는 것에 대한 비판이 강해 간 총리의 책임은 에다노 간사장에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간 정권은 불안정한 정권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우선 국회에서 야당과 ‘부분 연대’를 하지 않으면 민주당의 정책이 통과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쟁점이 되지 않았던 미·일관계(특히 후텐마 문제), 외국인 참정권, 부부 별성 등의 정책은 상당한 마찰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간 정권은 민주당 내 오자와그룹의 반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도 과제로 남아 있다. 오자와 전 간사장은 9월 대표 선거에 직접 출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은 반 오자와 대 친 오자와 대립이 격화돼 정계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존재한다. 간 정권의 장래는 9월 대표 선거까지 잠시 연기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불안정한 간 정권의 지속은 한·일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간 정권이 한·일관계를 우호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말’보다는 ‘행동(정책)’이 우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간 정권의 불안정이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 [시론] 교육비리 이번이 마지막 되길/김성규 성남중앙초등학교장·교육학박사

    [시론] 교육비리 이번이 마지막 되길/김성규 성남중앙초등학교장·교육학박사

    교육비리로 사회가 온통 시끄럽다. 선거로 덮어 두었던 일들이 다시 거론되면서 교육이 온통 비리의 온상인 양 보도되고 있다. 다른 사건들에 비해 교육비리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같은 사건이라도 교사나 교장 등 교육 공무원이 저지른 비리에는 우리 사회가 한 치의 용서도 없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가 가장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직업별 청렴 수준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서도 가장 청렴한 직업으로 교사를 꼽은 응답자가 47.8%로 가장 높았다. 이번에 불거진 교장들의 비리는 크게 인사, 시설·납품, 수학여행, 자율형사립고 입학 등과 관련되어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유형별로 구조적인 문제점이 보인다. 예컨대 인사비리는 승진 과욕과 교육감 직선제에 따른 문제가 맞물려서 터져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시설·납품, 수학여행 업체 선정 비리의 경우에는 교장이 한순간 실수로 30년 동안의 교육에 대한 헌신을 무너뜨린 결과로 이어졌다. 안타깝다. 사실 학교장은 학교관리·교육과정·수업지도·학교회계·시설관리 등 너무 많은 업무를 맡는다. 이 가운데 교장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업무가 학교회계와 시설공사라 할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로 처음 이 업무를 맡는 교장은 대부분 선배 교장들에게 자문하기 마련이다. 관련된 업자들이 방문해 자문하고 이들의 권모술수에 일부 교장들이 넘어갔을 수도 있다. 교원들이 다른 직종 사람보다 남의 말을 잘 믿고 넘어가는 특성도 있다.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요즘처럼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부끄러울 때가 일찍이 없었다. 제자들 보기에도 부끄럽기 짝이 없다. 때로는 교원이 된 것이 후회도 되고, 자괴감도 든다. 흔히 교원은 명예로 살아간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를 길러낸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청렴한 삶을 고집해 왔다. 요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원도 일반인처럼 경제생활과 문화생활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과거에는 교원들이 일반인보다 학력이 높았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교원을 군사부일체라고 해 높이 평가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학부모가 고학력이고 경제적으로도 월등히 우월한 분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학부모에게 교원이 무시당하는 일이 있다. 그렇더라도 이런 사정이 교육비리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이번 교육비리가 제발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 부끄러운 일들이 터질 때마다 수많은 제자들의 눈과 귀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경찰이 교장실을 뒤지는 사태도 이제 더 있어서는 안 된다. 교육을 교원들에게 믿고 맡길 수 있도록, 교원들이 새로운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 교장들은 깨끗하고 투명한 학교경영으로 교직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교육 공동체가 함께 이끌어가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교육의 수장이 비리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건을 보면서 우리 교육이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반성도 해본다. 교육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미국이나 영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 정책만은 일관성 있게 지켜간다. 지금 미국의 오바마 정부도 과거 부시 정부의 ‘어떤 아이도 뒤처져서는 안 된다.(NCLB)’는 교육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어 왔다. 대학입시 정책은 조변석개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5년마다 새로운 입시정책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제 입시정책뿐이 아니다. 교육수장을 뽑는 교육감 선거와 교육위원 선거가 또 하나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정치에 휘둘리다 보니 교육 주체자들까지도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여론에 따라 비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근본적인 처방이 아닐 것이다. 학생들에게 쾌적하고 안전한 교육환경과 양질의 교육과정을 제공해 미래에 행복한 삶을 갖도록 하는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불거진 비리에 대한 처벌을 할 때 명심해야 할 기준이다. 이번 교육비리가 제발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 부끄러운 일들이 터질 때마다 수많은 제자들의 눈과 귀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경찰이 교장실을 뒤지는 사태도 이제 더 있어서는 안 된다.
  • [시론]어린이 성범죄, 정의와 형평성을 위하여/소병희 국민대 교수

    [시론]어린이 성범죄, 정의와 형평성을 위하여/소병희 국민대 교수

    며칠 전, 대구에서는 초등학생이, 부산에서는 여중생이 또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생각하기만 해도 어린 피해자의 장래가 안타깝다. 가해자의 행위가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어린이 대상 성범죄가 이젠 자주 일어나는 범죄유형으로 굳어가고 있는 듯하여 걱정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 교수는 일찍이 범죄와 처벌에 대한 논문을 써서 경제학이 법분야에서도 유용한 연구방법과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분야의 실증분석적 연구결과는 모두 처벌의 강도가 높으면 범법률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범죄행위는 범법자의 선호의 현시라고 할 수 있다. 즉, 법을 지키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않느니보다는 법을 범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압이나 폭력, 혹은 사기를 통해서 취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비용과 편익을 비교해서 기대되는 편익으로부터 예상되는 비용을 뺀 자신의 순편익이 가장 커지는 행위를 선택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전제 중 하나이다. 잠재적 범죄자가 범죄행위를 선택하기 전에 하는 비용-편익 분석에서 자신의 편익은 당연히 범죄행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여 얻는 만족감일 것이다. 예상되는 비용은 여러 가지로 구성될 수 있으나 가장 큰 비용은 아무래도 범법 후 체포되면 받게 될 처형의 종류와 양일 것이다. 예상되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통해 얻을 이득이나 만족감이 예상 처벌보다 훨씬 더 크다고 판단하면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눈에는 눈’이라는 율법이 엄격한 나라에서는 도둑질을 하면 손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단순히 벌금형이나 가벼운 금고형을 받는 나라와 손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게 되는 나라 중 어느 나라에 도둑이 적을지는 자명한 일이다. 범죄 중에도 타인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폭력범죄 중 특히 성범죄는 타인의 신체를 강점하는 특성이 있어서 두 가지 형태의 제도적 실패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법구조적 실패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시장의 실패이다. 성공적인 법체계라면 법을 준수하게 만드는 법적 제도, 즉 준법이라는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적절한 처벌조항이 포함된 유인장치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법구조가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동일한 법을 어기는 재범, 삼범자가 나오고 새로운 범법자가 증가하는 법제도는 구조적으로 실패한 제도이다. 성범죄의 대상인 성 서비스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성매매특별법(2004년 제정)에 의해 합법적인 시장이 형성될 수 없으므로 시장 형성이 실패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시장이 실패하면 암시장이 생길 수 있으며, 서비스 가격은 올라가게 된다. 시장에서 서비스를 구입할 수 없는 잠재적 범법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형벌이라는 비용에 비해 본인의 성적 충동이 너무 커서 성범죄를 선택하게 된다. 성공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 있도록, 범법자들이 범죄의 대상으로 저항력이 가장 작은 유약한 어린이나 노쇠한 노인을 선택하게 되어 최근 어린이 성폭력이 증대일로에 있는 것 같다. 성폭력 대책은 위의 두 가지 실패 중 하나 혹은 둘 모두를 보정해주는 데 있다. 둘 중에서 성 서비스 분야 시장의 실패를 보정하는 것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라 하여 여성인권단체들의 강력한 반대에 의해 무산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결국 다른 한 가지 실패, 즉 법구조적 실패를 보정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현실적인 대책이 된다. 법제도적 실패를 보정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데, 특히 어린이 대상 성폭행자는 극단의 가중처벌로 화학적 거세 혹은 물리적 거세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이 피해 어린이에게 끼친 명예의 손상, 영구적인 정신적 그리고 신체적 불구와 행동의 부자유 등 평생동안의 이중, 삼중의 가혹한 ‘형벌’을 생각한다면 범죄자의 인권보호와 이중처벌이라는 반대여론은 논리뿐 아니라 정의와 형평성도 잃은 처사라 할 것이다.
  • [시론] 한·일간 승부차기는 끝나지 않는다/김화섭 산업연구원 스포츠 산업담당

    [시론] 한·일간 승부차기는 끝나지 않는다/김화섭 산업연구원 스포츠 산업담당

    한국과 일본 양국은 남아공월드컵에서 자존심을 건 승부차기를 했다. 선축으로 나선 한국이 성공(첫승 및 16강 진출)하면 일본도 성공하고, 한국이 실축(첫패 및 8강 실패)하면 일본도 실축했다. 특히 뒤에 나선 일본이 ‘8강 공’을 실축하자 한국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일본은 가슴을 쳤다. 한국은 일본이 8강고지에 일장기를 꽂을까봐, 일본은 일장기를 꽂으려고 가슴을 졸였기 때문이다. 양국은 왜 남아공에서 피 말리는 승부차기를 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과 일본은 적어도 축구에서만큼은 상대방이 잘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앙숙이다. 우리가 앞으로 치고 나가려고 하면 일본은 우리의 뒷다리를 잡았고, 일본이 튀어 보려고 하면 한국이 이를 눌렀다. 상호 자존심 건드리기는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형성되었다고 하지만 현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예는 많다. 1983년 청소년 대회에서 4강에 들었다고 신화니 뭐니 하면서 도취되어 있는 동안 일본은 1999년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해 우리 자존심에 소금을 뿌린다. 우리가 프랑스에 0-5로 대패한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일본은 준우승을 일구어 냈다. 우리 속이 편할 리가 없다. 우리 속만 뒤틀렸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 변방이었던 일본 축구가 1986년 마침내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멕시코)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 꿈은 우리에 의해 산산조각난다. 그것도 안방인 도쿄에서. 절치부심한 일본은 1994년 미국 월드컵 예선에서 기어이 우리를 이겼지만 본선 티켓은 우리 손에 있었다.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에서는 일본은 먼저 16강에 올라간 후 짐짓 여유 있는 척하는 동안 우리가 뜻밖에도 4강까지 치고 올라가 일본의 뒤통수를 쳤다. 일본이 우리를 배아프게 하면 우리는 분발했고, 우리가 일본의 머리꼭지를 누르면 일본은 엄청난 투자와 시스템 개조를 통해 칼을 갈았다. 양국 축구의 역사는 서로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되풀이였다. “아시아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양국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는 양국 축구 관계자의 발언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공식적인 석상에서나 하는 솔직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질투, 남이 잘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시기, 양국은 ‘돈이 모이면 땅을 사는 사촌’관계! 이러한 지독한 라이벌 의식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서로의 축구발전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질투와 시기 그리고 이에 따른 자극과 대응이 양국 축구 발전의 원동력 구실을 했다는 뜻이다. 결국 질투와 시기가 양국을 경쟁자 관계로 만듦과 동시에 동반자 관계를 만든 셈이다. 남아공 대회에서 동시 16강 달성이라는 쾌거 또한 이러한 상호 질투(?)의 결과일이지 모른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이 피 튀기며 싸울 때 쾌재를 부르는 이도 있다. 유럽 축구(경우에 따라 FIFA도 포함)이다. 한국과 일본이 기를 세우고 싸우면 싸울수록 양국 축구팬은 축구산업의 기술 및 시장 중심인 유럽 축구에 더욱 매료된다. 이때 유럽 축구는 중계료를 비롯한 각종 수익활동을 통해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 산업인 K-리그 시장과 일본 축구산업인 J-리그 시장의 상당 부분이 이미 유럽축구에 잠식된 것은 기정 사실이다. 앞으로도 한·일 양국은 자존심을 건 승부차기를 지속할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양국의 축구시장을 유럽 축구의 침투로부터 보호·확대하는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 이를테면 리그 간 잦은 교류 및 통합운영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한·일 양국이 세계 수준과의 기술격차를 많이 줄였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남아공 대회에서 양국은 이를 증명했다(게다가 최근 실력을 부쩍 키운 중국마저 서로 물어뜯기 대열에 합류하겠다고 나서니 여건은 더욱 좋아지고 있다). 한·일 양국의 승부차기 대상에 유럽축구(시장)도 포함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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