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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G20 정상이 되새겨야 할 문화재 약탈/황규호 언론인

    [시론] G20 정상이 되새겨야 할 문화재 약탈/황규호 언론인

    서울 용산동 일원에 옹골진 둥지를 튼 국립중앙박물관은 가을이 한창 깊었다. 뒷자락 남산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이룬 단풍으로 물들었고, 앞자락으로 유유한 한강의 물고기는 맹사성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에 나오는 시어처럼 살이 올랐을 터다. 이 가을에 접어들어 마침 G20 정상회의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베풀어질 리셉션을 시작으로 서울에서 개막되는 모양이다. 세계 정상이 한국의 전통 풍수지리야 알 리가 없겠지만, 무르익은 가을과 세계 6대 박물관에 꼽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깊이는 알아차릴 것이다. 정싱회의 리셉션장으로 확정한 중앙홀에는 키가 훤칠한 경천사십층석탑이 붙박이 아이콘으로 들어앉았다. 대리석 돌덩이를 다듬어 목조건축 양식으로 쌓아올린 이 탑파(塔婆)는 누구나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걸작이다. 그러나 영국 대영박물관이 소장한 그리스의 ‘파르테논 마블스’에 못지않은 비운의 문화재라는 사실을 알면, 감상법이 사뭇 달라질 수도 있다. 신전을 장식했던 파르테논 마블스는 19세기 터키 주재 영국대사였던 엘긴이 주도한 약탈의 손길에 헐려 런던으로 실려갔다. 경천사십층석탑도 1906년 조선을 침략한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카(田中光顯)가 개성에서 허물어 인천을 거쳐 도쿄 자신의 집 정원으로 빼돌렸다. 지난 20세기,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그리스 문화부 장관 멜리나 메르쿠리는 파르테논 신전에서 영국이 뜯어간 대리석 미술품 반환운동에 평생을 매달렸다. 그러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경천사십층석탑은 약탈자 다나카와 일제의 몇몇 실력자 사이에 불거진 알력 때문에 만신창이의 몰골로 돌아와 이제야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를 정상들께 경천사십층석탑에 보내는 박수에 앞서, 걸작 미술품 깊숙이 스민 문화재 약탈의 역사를 곱씹어 보기를 간청한다. 유럽을 여행하노라면, 약탈 문화재 위용에 깜짝 놀라기가 일쑤다. 천연덕스럽게 내놓은 약탈 문화재에서는 정복자의 부도덕한 오만과 빼앗긴 쪽의 슬픈 사연이 함께 묻어난다. 세기적 보물 ‘로제타스톤’에는 빼앗고 나서, 다시 빼앗기는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 되풀이한 추잡스러운 권력이 점철되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별칭이 붙은 거대한 석조물 ‘오벨리스크’에 이르면, 유럽은 문화재약탈사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없을 정도다. 한국은 지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에 걸친 외세의 침략으로 숱한 문화재를 빼앗긴 최대의 피해 국가다. 아시아의 후발 제국주의 일본에 빼앗긴 문화재 가운데 돌아오지 못한 한국의 문화재가 6만 1000여점에 이른다. 지난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일본이 국가 소유로 분류한 1432점의 한국 문화재는 돌아왔으나,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민간이 소유한 문화재는 반환을 권고하는 선으로 느슨하게 풀어놓았기 때문에 매듭을 짓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은 국가가 소유한 문화재를 다 돌려주지도 않았다. 이번에 갑작스럽게 돌려주겠다는 문화재도 일본 궁내청 쇼로부(書陵部) 등 국가기관 소장품이다. 그나마 조선왕실의궤 167책을 포함한 1205책이 돌아온다는 소식은 반갑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유래한 도서를 인도한다.”는 말로, 반환이 아니라는 점을 애써 강조한 외교적 수사(修辭)가 씁쓸하다. 서울 도성 바깥의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는 지난 1886년 병인양요 때, 로스 제독이 이끈 프랑스 극동함대가 휩쓸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중앙홀에 내걸린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만큼이나 아름다운 섬을 포화로 공격하고, 도서 340여책을 프랑스로 실어갔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이들 도서의 반환 협상은 아직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약탈이 분명한 문화재를 원소유국에 일정기간 빌려주겠다는 대여 형식을 고집하는 프랑스의 발상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서울 정상회의에 참석할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기다리는 까닭도 여기 있다.
  • [시론] 중국도 스마트 외교를 배워라/김승채 서울평화상 기획·연구실장 고려대 겸임교수

    [시론] 중국도 스마트 외교를 배워라/김승채 서울평화상 기획·연구실장 고려대 겸임교수

    중국 차기 최고지도자로서 입지를 굳힌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지난달 24일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참전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서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했다. 뒤 이어 중국 정부도 “중국 정부의 정론 (定論)”이라고 못박고 나섰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학자들을 동원해 한국전쟁과 중국 인민의용군이 참전한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은 다르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인정과 지원 아래 이뤄진 김일성의 남침이라는 사실은 옛 소련 등에서 비밀해제된 다양한 문건을 통해 이미 규명된 것이다. 중국의 초·중·고교 역사 교과서는 한국전쟁에 대해 “6·25전쟁이 발발했고 미 제국주의가 침략했다.”는 표현으로 남침인지 북침인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중국이 자국의 평화·안전을 위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막으려 북한을 지원하고 입장을 두둔하는 것은 현실정치적인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국이 강대국으로 신뢰를 얻으려면 최소한 한국전쟁이 남침이었음을 인정하고, 한국전 개입은 1949년 건국한 신생 중국이 자국 보호를 위한 부득이한 결정이었다는 정도까지는 인정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면서 정작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면 누가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G2 시대에 걸맞은 국격을 갖춘 나라라고 인정할 것인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지각 있는 사람으로 강한 감정 절제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 시진핑 부주석이 격에 맞지 않게 중국의 힘을 과시하고 주변국들의 감정에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뒤에 국격 있는 중국을 만드는 데 앞장설 최고 지도자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2위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계층·지역·세대 간 불균형과 민족문제, 정치개혁 문제 등 내부 모순이 고조되는 와중에 외부 모순까지 만들려고 하는가.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대변되는 중국의 하드 파워는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최근 중국은 소프트 파워까지 증대시켜 선진국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 상하이협력기구(SCO) 같은 다자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 내뿐만 아니라 해외에 공자학원 등을 세워 유교문화 등 중국의 전통 문화를 적극 홍보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중심, 미국 표준의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항하는 중국적 가치와 규범을 세계 표준으로 하려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전파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결합하여 권위를 증대시키는 21세기의 종합국력인 스마트 파워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군사력과 경제력은 막대한 달러 자산과 전세계가 군침을 흘리는 거대한 소비시장, 세계 최대 규모의 제조공장으로 충족될 수 있다. 그러나 공자상을 세우고, 중국 전통 가치를 선양하고, 중국어를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중국의 가치와 문화가 우월하다고 느끼게 할 수 없다. 보편적인 행동 규범, 올바른 역사인식에 근거한 외교활동이 충족되어야 한다. 중국은 이미 평화로운 발전(和平發展), 조화로운 세계(和諧世界), 대국책임론이라는 훌륭한 말들을 만들어 냈다. 이 수려한 언어를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실천해 보여야 한다. 이미 30년 전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지도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코 패권을 가지려 하지 마라. 나서지 마라.(決不當頭)” 그의 말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행동 방침이 돼 왔다. 그것이 오늘의 중국을 있게 한 뿌리이다. 중국 지도부는 역사와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 있고, 국격을 갖춘 중국, 친해지고 싶은 중국을 만드는 길이다.
  • [시론] 디지털시대의 부자감세법/박남희 시인

    [시론] 디지털시대의 부자감세법/박남희 시인

    오는 2012년부터 법인세와 소득세의 세율을 각각 2%포인트 하향조정토록 한 이른바 부자감세법의 철회와 번복으로 여야가 매우 시끄럽다. 부자감세법이 성장 위주의 정책이 주효하던 제3공화국적 발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면, 분배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극빈층이나 저소득층에도 희망을 주려는 민주시민사회의 노력에 극심한 실망과 좌절을 안겨줄 소지가 있다.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해묵은 논리에 앞서서 이 법이 시대에 얼마나 맞는 법인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는 이른바 디지털화된 지식정보사회라고 말해진다. 우리의 경제가 불과 수십년 만에 100년, 200년 앞선 선진국 경제를 따라갈 수 있었던 것도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화된 경제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경제 고도성장의 표본이 되었던 제3공화국의 경제가 국가중심의 아날로그적 경제였다면, 현재의 경제는 기업 중심의 디지털화된 경제라고 말할 수 있다. 2005년을 기점으로 우리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일본의 유수한 기업들을 추월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의 아날로그 방식을 뛰어넘는 디지털 방식의 제품 개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재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고, 얼마 전에 골드만삭스에서 한국이 2050년에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것도 한국경제가 디지털화된 튼튼한 경제 기반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의 기조로 볼 때 부자감세법은 어떤가? 우선 그 발상 자체가 국가중심의 아날로그 방식이다. 현대 경제는 국가에 의해서 통제되는 시대에서 훨씬 벗어나 있다. 현대 경제를 글로벌 경제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앞으로 디지털화된 경제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기업이나 국가와 그렇지 않은 기업이나 국가 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양극화 현상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우리 사회에 이미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이에 비례해서 국민의 행복지수의 양극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1960년도에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이 현재는 2만 달러를 넘어섰고, 1964년도에 1억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이 재작년에 이미 4000억 달러를 넘어섰지만, 우리의 행복지수는 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얼마 전의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최빈국 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보다도 낮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있었고, 경제적 만족도를 기준으로 한 경제행복지수 역시 100%를 기준으로 50%에도 못 미친다는 연구결과는 경제발전이 국민의 행복감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지만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상대적인 빈곤감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행복의 추구에 있다면, 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이 행복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부유층과 극빈층의 소득 격차를 줄여서 상대적인 빈곤감을 해소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부자감세법은 서민층의 행복지수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디지털 시대를 특징짓는 화두 중의 하나로 노마드(Nomad)를 꼽고 있다. 이른바 유목민적 사유방식은 형식의 틀에 매인 아날로그적 사유에 대비되는 창의성을 강조한다. 유목민들은 고정된 집을 짓고 그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을 디지털 유목민이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집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많은 양떼를 먹일 기름진 초원이다. 양떼들은 그곳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고 물을 먹으면 된다. 부자감세법이나 4대강 개발사업 같은 것들은 초원에 축사를 짓고 그곳에 양떼들을 가두려는 것과 같다. 양떼들은 평등한 초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기를 원한다. 푸른 초원을 평화롭게 거니는 양들에게는 행복의 양극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 [시론] 안중근 유해와 국가 정체성 바로세우기/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시론] 안중근 유해와 국가 정체성 바로세우기/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지난 2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 국제 심포지엄’에서, 안 의사의 유해가 영원히 사라진 듯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 뤼순 감옥 부근에 있던 묘지가 아파트 단지 개발로 유실되었다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 중국과 북한에서 수차 유해 발굴을 시도했으나 성과가 없었고, 결정적인 단서를 쥔 일본은 자료를 내놓는 것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우리 정부도 2008년에 뒤늦은 발굴 작업을 벌였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안중근 의사가 어떤 분인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유형의 독립운동을 실행했고,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침략의 주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안 의사는 체포되어 조사와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거사했으므로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로 취급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무료 자원 변호도 허가하지 않았다. 그의 순국일은 1910년 3월 26일이다. 유언 가운데 한 구절은 이렇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그 ‘국권’이 회복된 지 65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유언을 지키지 못했다. 시대적 비극의 주인공이 된 그 가족들도 돌보지 못했다. 그 형제와 자녀들은 이용 당하고 박해 받으며 궁핍하게 살았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경고가 우리의 눈앞에 있다. 사실 안 의사의 유해를 찾는 일은 단순한 역사의 유물을 발굴하는 일과 그 등급이 다르다. 그것은 외세에 훼손된 민족정신을 복원하고, 그로부터 환기되는 공동체 의식과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과업에 해당한다. 미국이 무명의 미군 유해 1구를 발굴하고 인양하는 데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가를 목격한 사람이면, 국가에 목숨으로 공헌한 일개 국민을 어떻게 응대해야 할지 교훈을 얻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인식해야 할 것은 국가 정체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통렬한 반성이다. 독립 유공자를 기리고 유적지를 보존하는 노력이 외형적 전시(展示)의 방식이 아니라 민족혼의 계승이라는 본질에 닿도록 그 면모를 일신해야 옳다. 국민 다수가 이를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로 점검했으면 좋겠다. 국가 지도자들에게 이러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는 해상지도를 모르는 선장에게 배를 맡긴 꼴이다. 다다음 세대를 위하여 국사교육을 새롭게 검토해야 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자국의 역사를 학교 수업과 진학 시험에서 선택과목으로 둔단 말이며, 이는 도대체 어느 누구의 발상에서 비롯되었는가. 오늘의 교육 당국은 마땅히 후세의 사필을 두려워해야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막는 방법도 결국은 국사교육에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설명해도 우이독경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역사의식을 망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내년부터 고등학교에서 국사수업을 안 듣고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자란 세대가 안중근을, 윤봉길을, 안창호를, 그 애국정신을 알기나 하겠는가 말이다. 일제와의 타협이 전제된 기미독립선언서는 가르치면서 불의한 지배자와의 전면 투쟁을 내세운 조선독립선언은 교과서에 싣지 못한 것이 우리의 과거사였다.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며 교육하는 의지는 미래를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우선 과제이다. 민족의 자긍을 이끈 역사적 인물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 과거의 교훈을 현실 속에 받아들일 때, 비로소 국가는 변화하는 세대를 넘어 올곧은 정체성을 확립할 것이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영향력이 확대되어도, 이 정신적 영역의 자기 확신과 정립이 선행되지 않으면 선진 국가의 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 [시론]서울 유일의 신라석실고분 현장 보존을/이형구 동양 고고학연구소장·전 문화재위원

    [시론]서울 유일의 신라석실고분 현장 보존을/이형구 동양 고고학연구소장·전 문화재위원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글로벌교육시설 건축부지에서 신라 석실고분과 신라토기가 발굴됐다는 뉴스에 깜짝 놀라 눈을 의심하고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서울 4대문 내부는 조선 건국 이래 도시화가 이루어진 만큼, 신라 유적이란 큰 충격이고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번에 발굴된 석실고분 2기는 상부가 많이 소실되었다고는 하지만 무덤의 하부구조와 그 안에 시신을 안치했던 시상대(屍床臺)와 석실 벽의 축조 방법을 가늠할 수 있는 석벽의 일부가 남아 있어 중부지역에서 유행한 신라의 대표적인 묘제인 석실고분임을 알 수 있다. 석실 내부에서 고배(高杯), 고배뚜껑, 토기대접 등 전형적인 신라토기가 발굴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그동안 잃어버린 서울 역사의 중요부분을 복원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자료이기 때문에 기쁨을 넘어 감개무량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신라고분이란,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과 같이 서울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다. 1990년대에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에서 백제 왕궁유적이 발견되어 한성백제시대를 열었다. 또 2000년대 초에는 경복궁 안에서 흥경각터를 발굴하다가 고려시기의 건물 유구가 발견됐다. 12세기 초 고려 숙종이 천도를 위해 추진한 남경신궁(南京新宮) 유적일 것으로 추정되어 고려시대 서울이 실제로 ‘고려삼경’의 하나였음이 확인되었다. 이번 신라고분의 발견으로 백제시대와 고려시대 사이 비어 있던 서울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게 된 것은 서울역사의 행운일 뿐만 아니라 한국역사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삼국시대 서울은 500년 가까이 백제의 수도였다. 백제가 475년 공주로 내려가고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장악하지만 백제는 551년부터 553년까지 신라와 연합하여 서울을 탈환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진흥왕이 백제와의 연맹을 깨고 한강유역을 장악하면서 서울은 신라의 차지가 된다. 이로써 신라는 중국과 교류하는 해상교통로를 확보하여 삼국을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는 553년 이곳을 새로 개척하고 신주(新州)를 두었는데, 557년에는 이를 폐하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두었다. 태종무열왕은 659년에 한산주(漢山州)에 장의사(莊義寺)를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장의사는 창의문(彰義門) 밖 장의사지당간지주(보물 제235호)가 있는 오늘날의 서울 종로구 신영동이다. 이로 미루어 신주나 북한산주 혹은 한산주를 다스리는 주치(州治)는 오늘날의 서울 종로구 일대로 추측된다. 그렇기 때문에 종로구 명륜동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유적과 유물의 가치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굴된 서울의 신라 석실고분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보존되어야 한다. 유사 이래 서울의 유구한 역사를 증거하여야 하는 것은 물론 역사연구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 무수한 유적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개발이란 명목으로 사라져 갔음를 보아왔다. 경기·충청 일원에서 긴급구제 발굴되고 있는 한성백제의 중요한 유적들을 발굴하자마자 유적은 갈아엎고 그 자리에 건물을 짓고 기록만 남기는 이른바 ‘기록보존’으로 역사연구는 물론 역사 복원에 결함이 되는 통한의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마치 경주의 신라고분을 발굴조사한 뒤 고분은 없애고 사진만 보고 상상하여 역사를 연구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역사적 유적은 역사의 현장에 있어야만 한다. 서울에 단 한 군데밖에 없는 신라 유적이 어떤 방법으로든 현지에 잘 보존되어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서울 속 신라역사의 실체를 실감할 수 있도록 국가와 해당기관의 큰 용단이 있기를 바란다. 이번 성균관대학교 글로벌교육시설 건축부지는 굴착할 때 전문가가 입회조사하는 조건으로 발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서울의 모든 건축행위는 ‘착공 후 입회조사’를 지양하고 착공 이전에 발굴조사하는 ‘발굴조사 후 착공’ 방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시론] 백제의 요서(遼西) 경략을 역사에서 지우려하지 마라/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고대사 교수

    [시론] 백제의 요서(遼西) 경략을 역사에서 지우려하지 마라/이도학 한국전통문화학교 한국고대사 교수

    우리나라 역사상 해외파병 하면 베트남 파병이나 고려말 이성계의 요동 동녕부 공격을 떠 올린다. 이와 관련해 백제의 요서경략설을 음미해 본다. 488년에 편찬된 중국 사서 송서에 보면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천여리에 있었는데, 그 후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는 요서를 경략했다. 백제가 다스리는 곳을 진평군(晋平郡) 진평현이라고 한다.”고 적혀 있다. 백제가 중국 랴오닝성의 서반부인 요서(遼西) 지역에 설치한 해외 식민지인 진평군을 언급했다. 이 기사는 민족주의 사학자들에게는 민족의 기상을 드날릴 수 있는 호재로 여겼지만, 신빙성 없는 기록으로 간주하는 이들이 많았다. 백제가 한반도 내에서 고구려와 전쟁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해외로까지 진출한다는 자체를 뜬금없는 기록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백제의 요서경략설은 양서를 비롯한 중국 사서에 명백히 적혀 있다. 이와 더불어 백제가 북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록이 삼국사기와 중국 정사인 남제서에 각각 보인다. 이 기사 역시 유목민족인 선비족이 세운 북위가 바다를 가로질러 백제를 공격했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백제가 해상으로 진출해서 북위를 공격했을 것 같지도 않다는 판단하에 오류로 간주되기도 한다. 또는 백제 동성왕이 북위의 앙숙인 남제(南齊)의 황제로부터 칭찬 받을 목적에서 만들어낸 허위 기록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혹은 백제가 북위가 아니라 고구려와 치른 전쟁으로 해석하거나, 고구려의 양해 하에 북위군이 육로를 이용해 백제를 침공했다는 기상천외한 해석도 나왔다. 모두 백제의 해상 진출을 부정하려는 저의가 담겼다. 이쯤 되면 해양강국 백제라는 말은 구두선이나 메아리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를 공간적 범위로 해서 고구려와 자웅을 겨루던 백제가 무대를 바꿔 요서 지역에 진출하게 된 것은 양국 간의 전쟁과 역학 구도가 국제성을 띠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광개토왕릉 비문에 보이는 신라 구원을 명분으로 한 400년 고구려군 5만명의 낙동강유역 출병도 기실은 백제의 사주를 받은 왜 세력의 신라 침공이라는 유인책의 덫에 걸린 것이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후연(後燕)이 고구려의 배후를 기습하여 서쪽 700여리의 땅을 일거에 약취하고 말았다. 고구려의 낙동강유역 진출은 이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당시 백제는 왜·후연과 연계하여 고구려와 신라에 맞서고 있었다. 400년 이후 후연과 고구려는 요동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사투를 벌였다. 그렇지만 후연은 고구려에 시종 밀리고 있었을 뿐 아니라 대릉하 방면의 숙군성까지 빼앗겼고, 심지어는 지금의 베이징인 연군(燕郡)까지 공격을 받았을 정도로 수세에 놓였다. 다급한 후연이 고구려의 앙숙인 백제에 지원을 요청함에 따라 백제군은 요서 지역에 진출해서 고구려의 서진(西進)을 막고자 했다. 그런데 그 직후 붕괴된 후연 정권의 후신이자 고구려 왕족 출신인 고운의 북연 정권은 408년에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돌변한 상황에 후연을 지원할 목적으로 요서 지역에 출병한 백제군의 입장이 모호해졌다. 결국 백제군은 기왕에 진출한 요서 지역에 대한 실효 지배의 과정을 밟게 되었다. 그 산물이 요서 지역의 진평군이었다. 그러고 보면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는 요서를 경략했다.’는 구절은 정확한 기록인 것이다. 488년과 490년에 백제가 북위의 기병 수십만의 침공을 격퇴하고 해상전에서 승리한 전쟁은 진평군을 에워싼 전투가 분명하다고 본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요서 지역의 진평군은 북중국을 통일한 북위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존속했던 것 같다. 진평군의 소멸 시기는 연구 과제로 남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해외파병이었던 백제의 요서 진출은 우리 역사 무대의 공간적 범위가 한반도를 뛰어넘었을 정도로 국제성을 지녔음과 더불어 해양강국의 위용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시론] LH 임대주택 부채 해결을 위한 제언/남창우 경북대 행정학 교수

    [시론] LH 임대주택 부채 해결을 위한 제언/남창우 경북대 행정학 교수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공기업은 공익을 위해서 민간영역에서 수행할 수 없는 비수익사업을 정부를 대행해서 수행하는 것이 본연의 업무 중 하나인 만큼 어느 정도의 부채를 안고 가는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문제는 그 정도가 과도하며, 이에 따른 문제가 기업 자체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공기업도 기업인 만큼 적정수준의 부채를 초과하는 경우 안정적인 경영활동이 어렵게 되고, 이 경우 국가신용도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국은 국가경제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LH 부채 증가의 원인은 무엇인가. 금융부채 75조원의 대부분은 임대주택건설·세종시·혁신도시 등 정부 정책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며, 그중 30% 이상인 27조원이 임대주택사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총사업비의 약 40%를 LH 자체 자금으로 투입하고도 30년간 회수가 불가능한 현재의 사업비 구조에서 건설물량의 증가는 곧 LH 부채의 증가를 의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대안으로 임대주택을 매각하거나 건설을 중단하면 LH 부채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수도권의 전세금 급등에서 보듯이 항상 불안요인으로 잠복해 있는 전세난에 완충역할을 할 수 있는 공공주택의 의미를 되새겨 볼 때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다. 일정수준의 공공주택을 유지하는 것은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고착화되는 자본주의체제의 사회안전망 구축차원에서도 정부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과제이다. 선진국의 경우 공기업에 사업비를 부담시키는 방법이 아닌, 정부 재정을 직접 투입하는 방식으로 많게는 전체의 30%를 공공주택으로 유지시키고 있다. 4.7%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6배이상에 해당하는 비율이며, 특히 우리나라처럼 인구 1000명당 주택수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나라에서 공공주택의 확보는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임대주택 건설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을 충당키 위해 LH가 일정부분 수익사업을 하여 손실을 보전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장여건은 이러한 방법의 한계를 보여준다. PF사업 등 수익사업과 쌓여 있는 미분양자산은 부동산시장 침체와 더불어 오히려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 LH에서 미분양자산의 전사적 판매촉진 등 부채 감축을 위한 각고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하루 이자로만 100억원 가까이 지출되는 반면 판매대금 회수뿐만 아니라 채권발행마저도 어려운 지금의 LH 상황을 정부에서 관망만 하기에는 너무 불안한 국면으로 보여진다. 사태가 악화될 경우 결국은 국가적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임대주택사업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적극 개입, 국민주택기금 융자금 출자전환과 충분한 재정지원으로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공기업이라는 손쉬운 수단을 통해서 공익사업 수행에 따른 부담을 회피해 온 정부가 본연의 책임을 원상복귀시키는 과정이며 또한 서민주거복지의 정책목적을 안정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것이다. 또 임대주택의 경우, 국가정책사업을 위한 자산으로 국가 자산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LH가 관련 종합부동산세와 취·등록세 등을 납부하고 있는데, 관련 법규를 개정하여 한시적인 세금 면제조치를 취한다면 법적 형평성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고 LH 부채 개선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재정 지원을 위한 근거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임대주택 사업에 대한 손익이 명확히 드러나도록 계정을 별도 관리하는 구분회계시스템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LH에서도 개발만 하면 돈이 되던 시절의 안이한 업무행태를 일소하는 한편 철저한 사업후보지 검증절차와 합리적인 사업관리 시스템 등을 포함한 획기적인 자구대책이 있어야 한다.
  • [시론] 북한 서한만 석유자원에 관심 가질 때이다/박흥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석유해저연구본부 초빙연구원

    [시론] 북한 서한만 석유자원에 관심 가질 때이다/박흥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석유해저연구본부 초빙연구원

    최근 국내 언론이 중국 양자만보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남중국해의 석유 매장 추정치는 230억t에 달하며 천연가스 매장량도 엄청나다고 한다. 또한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보하이(渤海)만과 동중국해 등지까지 해양 석유탐사를 벌여 2008년까지 2억 7700만t가량의 석유 매장량을 확인했으며, 보하이만은 상대적으로 석유 매장량이 많고 남중국해는 가스 매장량이 많다는 것이다. CNOOC 산하 연구소의 해양탐사기술 책임자가 한 말이라니 터무니없이 과장되었거나 사실무근은 아닐 터이다. 특히 보하이만은 북한의 서한만과 대륙붕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보하이만의 석유가스 부존 양태는 서한만의 부존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된다. 잘 알려진 대로 보하이만에서는 1970년대 이미 칭베이 유전이 개발되어 현재도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북한도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산유국의 꿈을 품고 서한만 지역을 중심으로 석유탐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가 북한 서한만의 석유자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서한만에서 남북공동개발이 이루어질 경우, 남북이 공존공영할 수 있는 우리 민족 최고·최대·최선의 남북경협사업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수십년 동안 서한만 석유개발을 위해 백방의 노력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열악한 투자환경과 폐쇄성에서 오는 자금·기술 부족 때문이다. 둘째로는 석유·가스 자원의 통일정책적, 국제정치적 의의를 주목해야 한다. 석유자원과 개발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을 넘어 국제정치적 역학 관계와 직결된다. 최근 남중국해 국제분쟁의 근본 원인은 그 지역의 석유자원 때문이라는 타이완 총통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중국해의 분쟁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서한만 석유자원 부존 여부는 한반도 통일환경과 우리의 통일정책 방향에 가히 핵폭발력 수준의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셋째는 북한의 서한만 석유개발을 중국의 손에 맡겨 둘 수는 없다는 점이다. 중국은 2006년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지질조사회의’에서 “북황해 지역의 석유·천연가스 전망 1차 평가를 완료, 석유·가스를 함유하고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과 지질구조를 선정하고 우선적으로 실시할 예비탐사 대상 유정·가스정 위치를 확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의 석유자원이 관심사라면,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에서 어떻게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우선, 북한의 석유·가스자원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집요하게 추적하는 조직이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우리 정부 당국과 석유공사 등 관계 기관이나 전문가들이 해야 할 몫이다. 북한의 석유 탐사개발 동향, 서방기업이나 중국과의 협력 동향 등에 관하여 정보를 입수하고 종합 분석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우리나라는 정부든 기업이든 조직과 사람을 줄이거나 심지어 아주 없애는 일이 다반사이다. 다음으로, 정부 당국은 북한 석유자원의 남북공동개발을 실현할 수 있는 전략과 정책을 지금부터 꾸준히 개발해 놓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남북경협 경험으로 볼 때, 석유자원의 남북공동개발에 합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최후의 경협과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럴수록 이 과제는 지금부터 철저한 연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외교이다. 서해상의 석유자원, 특히 서한만 석유자원 탐사 개발은 결코 남북한 양자가 추진하여 성공할 수 없다. 일찍이 서해상에 있는 한국의 2광구 탐사과정에서 1973년과 2001년에 있었던 중국의 무력시위와 방해, 제주도 남쪽과 일본 규슈 서쪽, 동중국해 북쪽에 위치한 해역의 7광구 한·일 공동개발구역(JDZ) 조사 당시 중국의 반응 등은 우리가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북한 서한만 석유자원에 대한 관계 당국이나 기업의 관심을 기대한다.
  • [시론]지방교육자치제도 새로 태어나야/육동일 충남대 교수·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

    [시론]지방교육자치제도 새로 태어나야/육동일 충남대 교수·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

    2010년은 조선왕조 멸망 100년, 6·25전쟁 발발 60년, 4·19혁명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1910년 망국으로 우리 민족은 처절하게 유린당했고, 1950년 동족상쟁은 처참한 비극을 낳았으며, 1960년 민주혁명은 젊은 학생들의 고귀한 희생을 남겼다. 참으로 애달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망국과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세계 유일 국가로 각국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저력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그 성공의 신화는 역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 선진 민주국가로 발돋움하고, 민족통일의 대과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교육개혁을 통해 우리 국민의 지적(知的) 역량을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시키는 일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은 국토, 적은 인구’의 여건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짊어진 고통을 과감히 덜어주고, 날로 추락하고 있는 교육경쟁력의 하락과 지역 간 격차 문제를 해결해야만, 대한민국이 미래를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개개인의 꿈과 가정의 행복을 막고 있는 동시에 국가와 지역의 발전에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학교 교실의 붕괴, 공교육 실패와 사교육 확대, 입시지옥, 인성 피폐, 지방교육 탈출, 기러기 아빠 등으로 인한 고통이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세계화, 지방화, 정보화,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표현되는 미래 교육환경의 변화는 지방교육 전반에도 예외 없이 새로운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인재를 차별없이 양성하고 활용해서 지역발전의 주역이 되도록 하는 일은 지역민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고 삶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지방교육은 국내·외적 환경변화에 부합하지 못한 채, 집권화된 교육의 틀 그리고 획일적인 교육 내용과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교육자치는 지방교육의 다양한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주민들에게 자신들의 교육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따라서 교육자 자치 내지 교육관료 자치로 잘못 이해·운영되고 있는 현 교육자치제를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이제는 지방교육이 ‘학교자치’의 기본틀로 완전히 새로 태어나야 할 때다. 문제해결의 출발은 지방교육의 토대가 되는 현 지방교육자치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교육행정의 의사결정기구는 지방의회로 통합되었지만, 집행기구는 시·도지사와 별도로 주민 직선으로 선출된 교육감이 담당하는 현 제도로는 지방교육에 대한 주민의 책임성 확보도, 지방교육재정의 자주성 달성도, 그리고 일반행정과 교육행정 간의 협력을 통한 교육서비스의 향상도 기대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중앙정치의 대리전으로 전락한 지방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교육감 직선제는 정치의 개입, 막대한 선거비용, 유권자들의 낮은 관심도 등 심각한 문제점들이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년째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지방자치와 교육자치의 제도적 연계와 조화를 모색하는 것을 비롯해서 교육자치의 틀을 재정비하는 일은 지방자치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과 신뢰를 회복하는 한편, 실질적인 교육분권을 통해 다양하고 창의적인 지방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대통령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에서는 그동안 ‘교육자치제도의 개선’을 주요 분권과제로 설정하고 심도 있는 연구를 계속해 왔다. 앞으로 또 다른 100년을 향해 미래 세대들 모두가 꿈과 희망을 갖고 마음껏 달려나갈 수 있도록 적정한 ‘지방교육자치의 모델’을 개발해서 제시하는 것이 위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 [시론] 기업가 정신을 상생으로 이끌려면/이승훈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시론] 기업가 정신을 상생으로 이끌려면/이승훈 서울대 경제학 명예교수

    사람들은 자영업에 종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업에 취업한다. 잘사는 나라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안정된 직장에서 높은 보수를 받지만, 못사는 나라에서는 저임금마저 수시로 체불되고 회사도 자주 망한다. 근로자들이 부지런해도 기업들이 저임금도 감당 못하고 자칫 도산할 지경이라면 나라가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다. 보수 좋은 마이크로소프트나 도요타 등 세계적 유명 기업들이 하나같이 선진국에만 속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부유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좋은 기업들을 많이 갖추어야 한다. 세계 최빈국이던 우리의 기적 같은 고도성장과정도 그 내용은 결국 좋은 기업 육성과정이었다. 높은 보수와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하는 좋은 기업의 특징은 생산제품이 지속적으로 잘 팔려 나간다는 것인데, 잘 팔리는 제품을 골라내는 것은 바로 기업가의 능력이다. 첨단 PC 시대에 수동식 타자기나 대량생산하는 기업은 당연히 망한다. 기업가가 상품을 잘못 선정하면 근로자들이 아무리 많은 땀을 흘리더라도 제품이 안 팔린다. 기업가의 잘못으로 인력과 자원을 자주 엉뚱한 사업에 몰아넣는 기업은 필경 파산한다. 반면에 유능한 기업가는 사업 선택을 잘 할 뿐만 아니라 합당한 평가와 보상으로 근로 기강을 확립하여 노동생산성까지 높여 나간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고 싶은 상품을 성실하게 생산하는 기업만이 근로자들에게 높은 급여와 안정된 직장을 제공한다. 이렇게 유능한 기업가와 좋은 기업이 많아야 민생이 부유해진다. 개인은 각자 필요한 물자를 얻으려는 이기적 동기로 일한다. 그런데 시장경제는 필요한 물자를 각자 스스로 생산하도록 몰아가는 경제가 아니라, 서로 남들에게 필요한 상품을 생산해 주도록 이끄는 상생의 경제다. 내 생업이 만든 상품을 다른 사람들이 사주지 않으면 나는 소득을 얻지 못하므로 필요한 상품을 구입할 수도 없다. 개인의 생업은 항상 시장이 사주는 상품을 생산하도록 적응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시장이 무엇을 사줄지 찾아내는 일이 쉽지가 않다. 신상품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지만 많은 경우에 참담한 실패로 끝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기업에 취업함으로써 일거리 선택의 위험을 기업가에게 떠넘긴다. 유능한 기업가란 이 위험에 도전하여 남들이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일거리를 발굴함으로써 시장의 호응을 얻어내는 사람을 일컫는다. 소비대중이 원하는 일거리는 항상 변하면서 현재의 일자리를 앞서간다. 새로운 일거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감당할지를 많은 기업들이 채 모르기 때문에 일자리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기업가의 도전은 이 잠재적 일거리를 발굴하여 현실의 일자리로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이 도전이 속속 성공하여 지금까지 모르던 일거리를 거듭 발굴하면 고용과 생산이 그만큼 늘고 국가경제도 성장한다. 기업가는 끝없는 이윤 창출을 원한다. 경쟁사업자를 몰아내면 시장을 독점하고, 협력기업을 압박하면 내 몫이 늘어난다. 새로운 일거리 발견에 성공한 기업은 경쟁사보다 더 좋은 상품을 더 싼 값에 공급하는데, 이 때 경쟁사업자가 입는 피해는 경쟁 패배에 대한 시장의 응징일 뿐이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협력기업을 압박하면 당장에는 내 몫을 늘릴 수 있으나 장기적 협력기반은 약화된다. 협력기업과는 상생해야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얻는데도 미래를 못 믿는 조삼모사의 단견에 빠져 눈앞의 작은 이익만 탐하여 협력기업을 압박하는 일이 적지 않다. 기업들의 이윤추구가 항상 ‘새로운 일거리 발굴’ 도전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하게 경쟁사업자와 협력기업을 압박하더라도 기업 이윤은 늘어난다. 또 지나친 규제는 특정 일거리의 발굴을 아예 금지한다. 경쟁질서 확립과 규제 정비는 기업의 이윤추구를 새로운 일거리 발굴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협력기업 간의 상생노력으로 공조체제가 공고해지면 일거리 발굴의 도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더 커질 것이다.
  • [시론] 스웨덴 진보정당의 실패/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턴대학 정치학 교수

    [시론] 스웨덴 진보정당의 실패/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턴대학 정치학 교수

    스웨덴의 총선이 끝났다. 우익 4개 정당의 연합정권이 정권을 유지했음에도 과반수의 표를 얻지 못하면서 정치의 불안정 요소는 더욱 커졌고, 좌익계열 3개 정당의 연합전선이 43%밖에 얻지 못하면서 정권탈환에 실패한 틈을 극우정당이 비집고 들어서 균형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익연합정권이 서브프라임사태에서 번진 경제위기를 어느 나라보다도 슬기롭게 잘 대처한 것은 선거 결과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프레드릭 라인펠트 정권이 재정위기에 발빠르게 대처하면서 스웨덴 경제는 큰 피해 없이 재정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 반면 좌익계열의 대안이었던 모나살린 사민당 당수의 인기는 라인펠트 총리와 비교해 40% 이상의 차이로 나락에 떨어지면서 고대하던 정권교체에 실패하고 말았다. 좌익계열이 집권에 실패한 또 하나의 원인으로 사민당의 지지기반 몰락을 들 수 있다. 전통적으로 40% 중반의 지지기반을 가졌던 사민당은 최근 두 차례 선거에서 다당체제 하의 평범한 정당으로 전락했다. 1932년부터 1976년까지 44년 동안 장기집권하며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했고, 1920년부터 2010년까지 90년 가운데 65년을 집권했던 세계 최우량 정당이 이제는 보수정당에 제1당 자리도 위협 받는 상황이 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보통선거제가 처음 실시된 1920년 이후 가장 낮은 30%의 턱걸이를 했다는 점은 이제 사민당 단독의 정권창출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민당의 몰락 원인을 찾다 보면 앞으로 스웨덴 정치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다. 사민당은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전통적 좌익정당의 정책만 남발하면서 두꺼운 표밭인 중산층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사민당은 부유세와 주택세 부활, 사회적 약자의 보조금 인상, 유류세 인상 등 기존 좌익정책으로 유권자를 공략했지만 스웨덴 전체 유권자의 4분의1이 밀집해 있는 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 등 3개 도시에서 큰 차이로 패배했다. 그중 심각한 것은 스톡홀름에서 보수당이 얻은 40%의 절반밖에 얻지 못하였고, 전통적 표밭이었던 예테보리와 말뫼에서도 1당 지위를 보수당에 내주었다. 이같은 결과는 곧 서비스업종과 정보기술(IT)과 연관된 신지식산업이 밀집해 있는 수도권과 2개 대도시에서 사민당이 전통적으로 펴온 사회적 약자 위주 세제정책이 더 이상 인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스톡홀름의 경우 최근 10년 동안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평균연령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변화하면서, 젊은 유권자의 녹색당 지지도 상승이 사민당의 몰락을 부채질한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위기에 대한 사민당의 해법은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경제활동에 복귀, 생산에 참여시키면 된다는 안일한 시각에서 출발했고, 분배정책에 있어서도 가진 자가 더 희생해서 복지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로빈후드 방식을 택했다. 반면 중산층은 좌익계열 정당의 세금폭탄 정책에 반대한다는 뜻을 선거를 통해 명확히 표현한 셈이다. 이제 스웨덴 정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우익정부의 지배체제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인지는 사민당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모나살린 당수를 중심으로 개혁을 이끌어 가되, 전통적 지지층을 끌어안으면서 신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책 어젠다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도부에 더 많은 젊은 층을 수혈하고 대도시 정책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도 주요 관심사다. 수도권에서 민심을 얻지 못하면 사민당의 재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녹색당 및 좌익당과 공조체제를 파기하는 것은 필수적일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사민당만의 독특한 도시개발 정책, 즉 젊은 유권자들의 일자리 창출, 중산층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분배정책이 아닌 사회 각계층의 자발적 복지기여 모델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4년 후 집권이냐, 아니면 제2당으로의 고착화냐를 가름할 것이다.
  • [시론] 北 3대세습에 정부 대응전략 마련을/장성호 배재대 정치외교학 교수

    [시론] 北 3대세습에 정부 대응전략 마련을/장성호 배재대 정치외교학 교수

    북한의 ‘3대 권력세습’이 시작됐다. 작년 1월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지 1년9개월여 만에 이루어지는 권력승계 구도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8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노동당의 제3차 대표자회의’는 김정일 위원장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공식화한 1980년 제6차 당대회 이후 30년 만의 최대 규모로,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에 대한 후계 구도를 공식화하려는 목적이 가장 컸다. 그러나 중세와 같은 전제군주제 국가가 아닌 이상 3대에 걸친 북한의 권력세습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혈맹이라는 중국조차도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다가 최근 들어서 마지못해 용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산주의 종주국이던 러시아와 중국마저 국가발전을 위해 시대에 맞는 체제로 변신했고, 개혁을 위한 개방도 전임지도자들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통해 기꺼이 수용했음을 상기해 볼 때 동족으로서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급격한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1세기 문명시대에 3대 세습체제라는 왕조적 전제정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도 한민족의 비극이다. 더구나 북한을 최빈국이자 인권 유린국, 마약을 비롯한 슈퍼노트(위조 미화 달러)의 제조국 등 ‘글로벌 악동’으로 떠오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김정일 세습체제가 이미 정치적으로도 참담한 실패를 가져온 정치체제라는 점에서도 이러한 세습체제의 연장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북한은 1980년부터 극심한 경기침체로 경제난에 허덕이게 되었고, 1992년부터 아사자가 대량 발생하기 시작하여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부터는 식량배급까지 중단되는 등 최악의 상황에까지 가는 등 지구상 유례 없는 폐쇄적인 세습체제로 입증된 바 있다. 특히 2012년 정치·사상·군사·경제에서 강성대국을 완성하겠다는 김정일 정권은 세습체제 유지라는 정치적인 목적과 극심한 경제적 빈곤의 탈출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핵무기를 보유했고, 이를 통해서만이 북한 세습체제의 안정화를 이룰 수 있다는 본말이 전도된 발상을 소유한 부도덕한 체제이다. 이 시점에서는 무엇보다도 북한정권과 주민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정치가 바로 북한주민을 살리고 우리민족을 살리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점을 하루속히 깨달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민주주의가 공동체 구성원의 정치적 평등을 지향한 제도였다면, 이미 실패한 이데올로기로 판명된 사회주의는 구성원의 경제적 평등을 이루어 보려는 공상적인 이데올로기였다. 김일성 주체사상의 성(城)으로 둘러싸인 북한사회는 모두가 잘살 수 있다는 경제적 평등의 이데올로기적인 사회주의 명분에 편승, 세계에서도 유례 없는 세습족벌체제라는 기형적인 정치체제로 오늘날까지 북한체제를 지탱해 오고 있다. 우리는 만민평등의 민주주의 정치발전의 상징적인 역사적 징표로 1776년 미국 독립선언, 1776년 버지니아 권리장전,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 등을 기억한다. 이 역사적 사건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던 계몽주의사상가 로크의 주권재민에 바탕을 두고 자연법적 권리인 저항권을 명시한 ‘신탁통치론’이나 생명·자유·재산을 위한 천부인권(天賦人權)에 대한 최소한의 욕구를 자연법적인 권리로 보았던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적 사실들은 오늘날 북한체제의 향배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발전 속에 북한 주민 스스로 그들의 권리를 지켜내고 회복시켜야 한다. 또한 우리 정부도 북한의 민주적 개혁·개방과 통일에 대비한 경제적 인프라 구축, 3대 세습으로 더욱 예측 불가능해진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치밀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21세기 세계화시대에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하고 당당한 세계 속의 일원으로 웅비하는 한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한다.
  • [시론]노들섬 예술마을 조성 갈등을 보며/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예술원 회원

    [시론]노들섬 예술마을 조성 갈등을 보며/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예술원 회원

    어쩌면 꿈은 삶의 존재의미이자 역사 발전의 추동력이랄 수 있다. 개인이건 국가건 내일의 꿈이 있기에 오늘의 역경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극복해 간다. 피란시절 부산의 천막교실에서도 우리는 내일의 꿈씨를 심어왔고,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우리는 담대하게 고속도로를 뚫고 중공업에 투자하며 내일의 꿈을 가꿔왔다. 바로 이같은 꿈의 결실들이 어떠했는지는 오늘날 우리사회의 발전상이 웅변으로 증언하고 있다. 하루 세 끼 입에 풀칠하는 데만 연연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들이었다. 비록 온고(溫故) 없이 지신(知新)만을 앞세우고 법고(法古) 없이 창신(創新)에만 매달리는 세태가 되었지만, 진취적인 꿈(비전)이 얼마나 사회와 국가의 격을 탈바꿈시키는지를, 차제에 우리는 찬찬히 역사의 거울에 비춰볼 일이다. 유난히 길고 무더운 지난 여름, 그래도 한 줄기 꿈이 있어서 위안이 된 적이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한강예술섬 조성사업이 곧 그것이었다. 명색이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처지라서인지, 나는 노들섬의 예술단지 조성계획을 접하고 나서는 절로 동심으로 돌아가 동화의 나라를 들러보는 즐거운 공상에 빠져들곤 했다. 말하자면 오동씨만 보고도 제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었던 셈이다. 필경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여 볼까.’라는 귀에 익은 가사의 ‘노들강변’이나 ‘한강수 타령’ 등이 각인시킨 골수의 정서 때문이지 싶기도 하고, 물산이 한양으로 모이던 수운(水運)의 시절, 노들은 물론 마포와 서강 일대를 주름잡던 선소리(산타령패)패들의 낙천적인 풍류문화가 부러워서 더욱 그랬던 듯도 싶다. 역사의 전개엔 우연도 필연도 있을진대, 노들섬의 예술단지 조성은 영락없는 보본반시(報本反始)의 필연적인 인연의 끈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노들섬에는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퇴적층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금강산의 모래알이 북한강을 흘러 백사장을 이루고, 정선골 아라리가 남한강 뗏목을 타고와 노들에 가락을 풀었듯이, 기실 노들섬은 갖가지 시대적 애환과 민담들이 얼기설기 서려 있는 민족정서의 보물섬이자, 문화예술창조의 텃밭이 될 안성맞춤의 최적지이다. 이같은 유서깊은 장소에 멋진 예술마을이 들어선다는 것은 부푼 꿈이자 신명 나는 청사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같은 신명 나는 꿈단지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서울시와 의회 간의 시각차로 예술섬 조성에 큰 차질을 빚을 전망이라는 보도가 곧 그것이다. 한마디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동안 우리는 문화예술이 국가의 존망을 가르는 문화의 세기가 당도했다고 호들갑을 떨어왔고, 지금도 한류니, 스토리텔링이니, 콘텐츠 산업이니 하며 백가쟁명의 주장들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세상은 이처럼 쓰나 다나 문화의 시대로 재편되고 있는데, 아직도 한국의 대명사요 문화의 심장부인 서울시가 시대적 추세를 견인하고 선도하지 못하는 듯싶어 야속한 생각까지 든다. 세상만사에 절대진리란 없다. 각도와 판단에 따라서 주장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들섬의 예술마을 조성 문제는 실현을 위한 방법론의 주장들이어야지, 행여 그들만의 내적 갈등이나 유명무실로 연결되는 시시비비여서는 곤란하다. 노들섬 프로젝트는 그만큼 많은 국민들이 염원하는 꿈의 설계요, 문화대국으로서의 국격과 자긍심이 걸린 엄중한 현안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나 과감한 선각의 예지로 동북아의 문화, 아니 언필칭 아시아 시대라는 절호의 문명사적 조류를 향도하고 조율해갈 근사한 문화예술의 요람지 하나쯤 갖고 봄이 지당하지 않겠는가. 국사에 분망한 위정자들이시여, 꿈만 주면 더 바랄 게 없는 국민들에게 내일의 희망인 꿈이라도 제발 꾸게 합시다. 가뜩이나 세파에 시달리는 이웃들에게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개꿈이나 안겨줘서는 서로가 민망하니, 청컨대 ’청풍이 서래(徐來)하는 가을 밤‘ 노들섬에 배 띄우고 완월장취(玩月長醉)하는 꿈이라도 좀 꾸어보게 합시다.
  • [시론] 사할린 동포의 눈에서 눈물 멈추게 하라/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역사학 박사

    [시론] 사할린 동포의 눈에서 눈물 멈추게 하라/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역사학 박사

    연합군이 일본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은 날을 기념하는 제1회 ‘승리의 날’ 행사가 지난 2일 러시아 사할린 주 남사할린 시에서 열렸다. ‘제2차 세계대전의 교훈’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도 개최했다. 중국, 몽골, 그리고 한국의 학자와 러시아, 북한의 외교관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필자는 사할린센터 대회의장에서 ‘2차 대전 이후 사할린 주와 사할린 한인문제’를 발표했다. 사할린에는 한인계 2만 5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구분포다. 대부분 일제 말기에 일본의 총동원령으로 강제로 끌려가 탄광과 비행장 및 도로 개설에 동원된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강제동원 당시 일본 국적자였다. 송환의무는 물론 법률적, 도덕적 책임이 일본 측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소련과의 귀환협정에서 자국민 39만 명만 철수시켰다. 사할린 한인은 도쿄 연합군사령부와 일본정부에 귀환을 진정하는 호소문을 보냈다. 이 호소에 따라 연합군사령부는 일본인과 같은 방법으로 한인도 철수시킬 계획을 세우고 남한의 미국 점령군 사령관 하지에게 사할린 한인의 수용 여부를 문의하였다. 하지는 남한에 중국 등지로부터 귀환자가 넘쳐 수용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난색을 보였다. 그 후 1948년에 한국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소련정부에서 출국을 금지했고, 한국전쟁과 미·소 냉전이 격화되면서 발이 묶였다. 1972년부터 공산권에 대한 방송이 시작되자 사할린 한인은 10여년간 홍콩 KBS 사서함을 통해 편지를 보냈다. 공산권에서 온 1만 6000통의 편지 대부분이 사할린 한인들의 편지였다고 한다. 이들은 모진 고생 끝에 생활기반은 닦았으나 정치적 입지가 좁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실정이다. 사회단체는 분열돼 있었고, 한인 출신 시의원 한 명 없었다. 그래도 한글신문을 주 1회 발행하고 한인 TV도 주 2회 방영하면서, 지난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에는 2000여명의 한인계가 일본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일본은 한인을 귀환시켜야 했던 도의적·법률적 책임을 회피하고 교활하게 인도적인 지원이란 말로 2000년을 전후해 한·일 적십자사 합의로 일본이 자금을 지원하고 한국이 대지와 아파트를 제공하면서, 1945년 8월15일 이전 출생한 사할린 1세대와 함께 강제 징용 당한 분들을 한국으로 귀환시켰다. 3000여명이 귀국했다. 그러나 이들의 귀국으로 사할린 한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가족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사할린에 자녀와 함께 남아 있는 강제 징용 당한 분들과 사할린 1세대에 대해 일본정부는 한국에 귀국한 분과 같은 동등한 보상을 해야 한다.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일본 군경이 남부 사할린의 소련국경과 인접한 두 마을에서 한인 어린 아이와 여인을 포함에 45명의 무고한 한인들을 무참히 몰살시킨 사건은 규탄을 받아 마땅하다. 일본은 억울하게 학살 당한 분들은 물론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가 사망한 분들에게도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특히 강제로 시행한 우편예금을 비롯한 광산 노동자의 체불노임도 바로 지급해야 할 것이다. 그 돈은 지금 일본 우정성과 노동을 시킨 해당 회사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로 사할린 한인들은 일본에서 재판 중이다. 이달 말에 판결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일본 변호사 말로는 비관적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G20회의가 열린다. 정부는 동족의 눈에서 더는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 식민지시대에 노예처럼 끌려갔다가 버려진 것도 한스러운데 65년간 받지 못하는 예금과 탄광 노동자들의 체불노임이 지급되도록 정부차원에서 일본과 협의해야 한다. 얼마 전 미국은 한 명의 국민을 구출하려고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냈다. 사할린 한인이 외롭게 일본법정에 서서 투쟁하는 일을 조국이 방관해선 안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할린 한인은 러시아인이므로 러시아와의 외교적인 협력을 통해 공동으로 일본정부를 압박해야 할 것이다.
  • [시론]통일을 준비하는 ‘촛불’을 켜자/안영모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시론]통일을 준비하는 ‘촛불’을 켜자/안영모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아주 특별한 촛불을 켜자. 자유와 생명의 촛불, 병마와 배 곯음에서 벗어나는 촛불을 켜자. 이건 자유를 만끽하는 행복한 이들의 반정부 촛불이 아니다. ‘어린 소녀들의 죽음’을 핑계 댄 반미의 촛불시위도, 미국 쇠고기 광우병 규탄하러 유모차 끌고 광화문을 메운 그런 촛불시위도 아니다. 4대강 사업 반대 피켓 들고 나선 신부-수녀들의 정권규탄 촛불행진은 더더욱 아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서 도대체 존재할 수 없는 무자비한 속박, 헐벗음과 배 곯음의 생지옥에서 하루하루 생명을 부지하는 2500만 북한 동포를 구해내기 위한 ‘구원의 촛불’이요, ‘생명의 촛불’을 말함이다. 넉넉지는 않아도 하루 세 끼 배 곯지 않게 사는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창가에 켜 두고 북녘을 생각해야 할, 그리하여 매일매일 우리의 행복에 감사하고 형제의 불행을 기억하는 그런 촛불인 것이다. 그 촛불의 궁극 목표는 독재의 땅을 자유의 천지로 확대하는 ‘통일’이다. 통일이 되지 않고는 북녘의 동포를 온전히 해방시킬 재간이 없다. 쌀과 시멘트 몇 십만 톤을 보내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독재냐 자유냐, 억압이냐 해방이냐 양단간에 결판을 내야 북녘의 주민들을 확실하게 살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통일세를 거두면 어떨까 제안했다. 그런데 험담이 터져 나왔다. 북 정권 쓰러뜨려 흡수통일하자는 것이냐, 남북 긴장 더해 전쟁하자는 얘기냐…. 의심이란 의심들이 몽땅 얼굴을 내민다. 북녘 동포를 생각한다면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다. 통일세 걷어들이면 결국 서민들만 쪼들릴 터이니 가슴이 철렁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좀 색다른 제안을 하고 싶다. 큰 부담 없이 통일비용을 마련하는 방안이다.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의 가정마다 ‘통일 촛불’을 준비하자. 1개의 촛불 값을 1000원으로 해도 좋고, 넉넉한 이는 1만원을 내도 좋을 것이다. 2000만 가정마다 그리고 관공서, 기업, 학교, 상점, 방방곡곡에 통일 촛불을 장만하고 통일 촛대를 세운다면 제법 많은 씨돈(시드머니)을 모금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사적 당위성과 민족 최대의 숙원인 ‘통일사업’을 언론-공익-시민단체나 훌륭한 독지가에게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나는 청와대 창가에 통일 촛불을 당장 켤 것을 제의한다. 대통령 집무실에 장식된 통일 촛불은 통일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내외에 알리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성하의 녹음 우거지고 설한에 눈 덮인 청와대 상춘재에 비친 통일 촛불의 정경을 상상해 보라. 통일을 위해선 누구보다 대한민국 최고 통치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1981년 워싱턴 특파원으로 취재할 때, 미국의 ‘새로운 출발’을 내걸고 백악관에 진주한 로널드 레이건의 대소(對蘇)외교전략을 면밀히 지켜볼 수 있었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한 뒤, 레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제 마르크스·레닌주의 또한 역사의 잿더미 위에 던져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이런 투쟁에 있어 궁극적인 결정 인자는 폭탄이나 로켓이 아닌 우리의 의지와 신념입니다.” 헤이그 국무장관 같은 비둘기파의 반대마저 물리치고, 마치 마법사의 주술처럼 소련의 몰락을 반복해서 외쳐댔다. 1989년 11월9일, 드디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레이건의 ‘십자군 대장정’은 대단원을 맺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그래야 한다. 정상회담이나 열어 김정일과 포옹하고 나란히 기념사진 찍는 데만 목을 매는 몰역사적-정략적 욕망에만 사로잡혀선 안 된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총동원해 북한 공산주의를 단연코 거부하는 외교-군사-홍보전의 전사가 돼야 한다. 이 중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홍보전이다. 줄기차게 북한 체제의 몰락을 압박하는 자유의 메시지를 날려야 한다. 용기 있는 대통령만이 통일을 이룩한 위대한 지도자로 기록될 수 있다. 한 자루의 통일 촛불을 밝히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할 고귀한 몫이다.
  • [시론] 원로 사회학자에게 보내는 박수/황규호 언론인

    [시론] 원로 사회학자에게 보내는 박수/황규호 언론인

    어떤 이들은 서구 열강이 세계를 마음대로 나누어 차지했던 영토제국주의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고 말한다. 그 대신 문화제국주의라는 새로운 침략 수단이 빈자리로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제국주의는 이 시기에 국한한 현상만은 아닌 듯하다. 오늘날 중국이 주권국가인 우리네 역사를 무시한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속내를 들여다 보노라면, 더욱 그렇다. 이같은 중국의 역사 왜곡은 자기네를 세계 한가운데 놓고, 다른 이웃을 전적으로 얕잡아 보는 역사를 쓰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니까 기원전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악명 높은 지배 이데올로기 중화주의(中華主義)가 오늘의 21세기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 며칠 전 한국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중국인 유엔 고위직 외교관이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는 말을 떠올리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땅 한 뼘이 삶보다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을 곱씹을 때, 지금 중국은 영토제국주의와 문화제국주의가 맞물려 돌아가는 시대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네 자존에 올가미를 씌운 중국 동북공정에 맞설 뚜렷한 학술적 이론은 정녕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믿음을 심어줄 저술 한 권이 최근 세상에 나왔다. 이는 역사학자의 저술이 아니거니와, 역사학과 아주 가깝다는 고고학 전공도 아닌 사회학자가 썼다는 점에서 펴뜩 눈길을 끈다. 그동안 고고학계가 밝힌 여러 편린의 학술적 성과를 모아 한국상고사(上古史) 실체에 접근한 저술이고 보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번에 원로 사회학자 신용하 교수가 내놓은 ‘고조선 국가 형성의 사회학’에 박수를 보낸다. 사회사로 온통 일관한 저술로 여길지 모르지만, 지은이는 먼저 고고학 쪽에서 한국상고사의 실마리를 찾는다. 이를테면 인류가 혹독한 추위의 구석기시대 빙하기를 용케 버틴 지역을 북위 40도 이남으로 보고, 이때 살아남은 무리가 신석기인으로 진화한 최초의 한국인 원류에 해당하는 한(韓·桓·馬于)부족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원전 1000년쯤부터 한반도에 나타난 신석기시대 유적에 주목하면서, 경기도 양평 앙덕리 등지의 한강 유역에 분포한 덮개돌식(蓋石式) 고인돌을 들추었다. 이와 더불어 남한강 유역의 신석기시대 집자리 출토품인 뾰족밑 빗살문토기에서는 수확한 곡물을 갈무리할 만큼 생산기반을 갖추었던 농업구조 흔적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들 농경문화 주체의 근거지는 한강 분수령을 경계로 물길이 남하한 금강 상류까지를 싸잡아 한강문화권에 넣었다. 그 경제기반으로는 일찍 벼를 심기 시작한 금강 상류의 충북 청원 소로리를 비롯, 한강 하류인 경기 고양 가와지와 김포 가현리 등지의 고대 볍씨 출토 지역을 꼽았다. 어떻든 남성 군장(君長)을 우두머리로 삼은 부계공동체 사회였던 한강문화권의 ‘한’ 부족 주체세력은 북으로 올라가 대동강 유역에 새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맥(貊)’부족 및 ‘예(濊)’부족과 서로 어울려 선돌에 덮개돌을 얹은 덩치가 큰 탁자식 고인돌을 지었다. 탁자식 고인돌은 왕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거석문화(巨石文化)인데, 이를 축조할 무렵인 기원전 30세기~기원전 24세기쯤에는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건국되었다. 이 때 고조선 왕을 배출한 ‘한’부족은 혼인동맹을 통해 ‘맥’부족을 건국세력으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중국이 마냥 자랑하는 대릉하 유역의 우하량(牛河梁) 유적 출토 토제여신상(土製女神像)은 여자를 부족장으로 삼았던 ‘맥’부족의 모계사회를 상정한 유물로 풀이했으니, 중국은 허탈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더구나 논픽션의 기자(箕子)동래설을 앞세워 한국상고사의 고조선 실체를 얼버무린 중국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한국을 착한 이웃으로 생각한다면, 동북공정 같은 악성 문화정책보다는 남을 존중하는 상대문화주의의 길로 나오기를 바란다.
  • [시론] 2000년전 왕성유적을 저주하게 만드는 나라/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전 선문대 대학원장

    [시론] 2000년전 왕성유적을 저주하게 만드는 나라/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전 선문대 대학원장

    지난 2004년, 수도 이전 문제로 전국이 떠들썩할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의 서울이 한성백제 수도로 시작하여 정도 2000년에 이른 세계적인 수도이기 때문에 ‘천도’는 역사적으로도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연장선상에서 기원전 18년에 서울에서 건국하여 500년 가까이 도읍했던 한성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데 모아 전시하고 교육하는 한성백제박물관을 서울에 건립하겠다고 천명했다. 그 결과 오늘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한성백제박물관 건설공사가 2012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진행되고 있다. 한성백제박물관이 문을 열면 아직은 서울시민조차 잘 모르는 한성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려 보여주고 알려주는 훌륭한 장소가 될 것이다. 필자는 1980년대 서울 강남이 개발됨에 따라 도로가 나고 주택이 들어서면서 한성백제 시기의 왕릉과 유적이 파괴되고 있는 것을 보고 보존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가 한성백제 유적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519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것은 1985년 7월1일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잘려나간 석촌동 백제왕릉을 지하도를 파서 연결하고, 사라질 뻔했던 방이동 고분군도 다시 역사공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1990년대에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 재개발되면서 성 내부의 유적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자 관계기관에 건의서를 내고 주민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여기에 많은 사람의 노력이 더해졌고, 결국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후손들이 조상의 귀중한 유산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백제가 남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자리 잡은 근거지였는지를 확실히 파악해 후회하지 않도록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풍납토성 내부의 재건축은 사실상 전면 중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풍납토성은 학계의 노력이 뒷빋침되면서 한성백제의 왕성으로 확실하게 규명되었다. 그러나 풍납토성 내부에서 살아가는 5만명 남짓한 주민들은 이때 공포된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에 묶여 낡은 집을 재개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웃 동네에 비하여 부동산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등 재산상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꼭 5년 전 정부가 ‘8·15부동산대책’으로 송파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했을 때 문화재 보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풍납토성 주민의 이주계획도 함께 세우도록 당시 국무총리에게 건의했다. 하지만 이 건의는 당시 건설교통부로 넘겨졌고, 송파신도시는 주민 이주대책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앞으로 일부 행정기관이 세종시로 옮겨 간다고는 해도 서울은 수도의 정통성을 이어 나갈 것이다. 지난 광복절에는 광화문이 제 모습을 찾았고, 내년에는 남대문이 아름답게 재건된다. 서울은 풍납토성을 비롯하여 몽촌산성, 석촌동과 방이동의 백제고분 등이 조선시대 수도 유적과 함께 공존하면서 2000년 수도로 명실상부하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 이렇듯 500년에 이르는 한성백제의 왕경유적은 경주나 공주·부여와 다르지 않은 역사적인 도시유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185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에는 유적보호와 관광개발에 수조원의 국가예산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그 뿌리인 한성백제의 왕성인 풍납토성 내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주 문제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풍납토성의 한성백제 왕경유적은 풍납동 주민의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유적이다. 보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풍납토성 주민들에게만 고통을 안겨줄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조금씩 고통을 분담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더 이상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땅 밑에서 2000년 전의 왕성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을 축복은커녕 저주로 받아들이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한성백제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명박 대통령이 풍납토성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고, 그래서 한성백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통큰 결단을 다시 한번 내려줄 것을 기대한다.
  • [시론] 4대강 살리면서 내수면 어업도 키워야/권영호 부국환경포럼 상임고문·인터불고그룹 회장

    [시론] 4대강 살리면서 내수면 어업도 키워야/권영호 부국환경포럼 상임고문·인터불고그룹 회장

    필자는 경북 울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국민소득 50달러에 지나지 않았던 지난 1960년대 원양 어업 개척 첫 줄에 섰던 사람으로 스페인을 거점으로 사업체를 일구어왔다. 이제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 원양어업에 종사하면서 열망했던 선진 조국의 꿈은 여전하다. 특히 오랜 기간 물과 함께하는 어업에 종사해 4대강 사업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적잖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반드시 성공적으로 마무리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사업을 통해 기후변화 시대를 대비해 가뭄과 홍수 피해를 근원적으로 막고, 수질을 개선하며, 생태계를 복원하고 주민들이 수상 레저와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는 친수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업 내용을 보면 내수면 어업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빠져 있다. 물이 마른 4대강에 물을 채우면 물고기가 살기 마련이고, 이를 어업으로 연결하면 지역 주민의 일자리가 생기고 국민 건강을 지키는 양질의 식품이 될 것이 분명한데 언급조차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일본 다음의 생선 소비국이다. 1인당 연간 55㎏을 소비하며, 총소비량은 450만t, 금액으론 약 9조 5300억원에 달한다. 이 엄청난 양 중에 국내 총생산량은 330만t이고 나머지 120만t, 즉 3조 2000억원에 해당되는 수산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생산량의 많은 부분은 양식이나 연근해 어업으로 잡은 것이지만, 일부는 오대양 망망대해로 나가 원양어업으로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원양어업도 한계 상황에 달했다. 공해상에서의 치열한 경쟁, 무분별한 남획,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수산물이 고갈돼 가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제는 수산물이 줄고, 잡을 공간도 줄어들어 또 다른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통해, 해수면의 한계를 내수면에서 보완하면 수산업에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본다. 4대강의 내수면 어업은 지역 주민의 생계 수단이 되고 농촌경제를 살리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크다. 이웃나라 중국은 세계 1위의 수산물 생산국으로, 세계 총생산량의 3분의1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상당 부분이 내수면 어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매년 그 비중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개혁·개방 이후 가장 급속히 발전하는 산업 중 하나로, 특정 지역에서는 농어촌 경제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농어촌 산업구조 개선과 지역민의 수입증가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80년 27.6%에 불과하던 중국의 내수면 어업 비중이 2006년에는 44.5%(2400만t)로 증가했다. 일본, 러시아, 동남아 국가 등에서도 경쟁적으로 내수면 어업에 많은 투자와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대강 사업을 내수면 어업으로 연결하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검토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물이 가득 찬 4대강에서 낚시나 그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4대강 물을 인근 논과 밭으로 끌어와 양식장을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현재 중국에서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농작물 경작 때보다 경제성이 뛰어날 때 선택해야 한다. 4대강 내수면 어업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게 환경문제다. 맑은 물과 건강한 생태계는 4대강 살리기의 핵심이자 고품질의 수산물 생산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특히 4대강에서 직접 물고기를 기르는 경우 수질과 생태계 관리에 신중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일부 호수나 강에서 이뤄지는 가두리 양식과 사료 투입은 금물이다. 적절한 시기에 허용하는 어종에 한해 치어를 방류하고, 잡는 시기와 방법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 이런 방법을 택할 경우 물고기를 잡는 것은 수중의 유기물을 제거하기 때문에 수질 개선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 30년 정치담당 기자 촌철살인 글쓰기

    1999년 11월부터 2010년 7월까지 11년 가까운 시간이니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을 모두 아울렀겠다. 1490편의 칼럼을 모았으니 분량도 방대하다. 500쪽 분량의 두툼한 책이 모두 세 권이나 된다. ‘정치? 통탄한다’(윤창중 지음, 해맞이 펴냄)는 언론사 정치부 기자, 정치담당 논설위원 등으로 꼬박 30년 세월동안 대한민국 정치의 안팎을 넘나들었던 저자가 기록한 한국 현대정치의 생생한 역사다. 책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이 지나간 자리는 어제의 자리에 의해 가능한 것임을 목도한다. 1권은 2010년 7월12일 자 ‘어느 정치인의 병역 스캔들’ 제목의 시론으로 시작한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의 병역기피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이명박 정권에 만연한 부도덕함에 대한 질타를 쏟아낸다. 이렇게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가며 정운찬, 한명숙, 이명박, 박근혜, 이재오 등 유력 정치인을 하나씩 호출해간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노무현 정권을 거쳐 3권에 실린 마지막 글 ‘차기 그룹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 주변의 보신주의를 비판하며 마무리짓는다. 책을 읽다 보면 한국 정치의 흐름은 물론, 그의 문장과 문체, 정치적 입장이 점점 더 거침없어져 가는 흐름 또한 확인할 수 있다. ‘MB정권의 실질적 주주’를 자처하며 보수 우파의 육성을 대변하는 그의 필치는 때로는 중도실용론을 표방하며 갈팡질팡하는 이명박 정권을 오른쪽으로 거세게 밀어붙이기도 하고, 때로는 대구·경북 인사가 아닌 새로운 인물을 중용하라든가, ‘박근혜와 대타협하라.’는 구체적인 제안을 던지기도 한다. ‘좌파’에게 결코 정권을 내줘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글 곳곳에 묻어난다. 1~3 각권 1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시론]다문화소통 가능성 보인 ‘다문화꾸러미’/김인회 연세대 명예교수·혜곡최순우기념관장

    [시론]다문화소통 가능성 보인 ‘다문화꾸러미’/김인회 연세대 명예교수·혜곡최순우기념관장

    근대 이후 대부분의 박물관은 유형 문화유산의 수집 보존과 전시업무를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의 명성과 가치는 소장유물의 양과 내용으로 판가름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몇몇 국가의 대표적 박물관은 ‘약탈유물전시관’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기왕에 수집한 유물들에 집착한다. 나와 남들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지배하는 국가역량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국민의 마음이 살아 있는 한 박물관들의 유물수집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에 없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는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박물관을 찾는 젊은 부모세대 인구가 급작스럽다고 할 정도로 많아진 것이고, 둘째는 박물관 이용자의 유물을 접하는 자세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진품 문화유산 앞에서 피동적으로 압도당하거나 감동하거나 경건한 자세를 갖고 감탄하는 옛날의 박물관 모범생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너도나도 문화유산과 어떤 식으로건 접촉해 보고 싶어 안달하는 능동적 태도를 감추려들지 않는 자유분방한 인구가 많아진 것이다.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21세기 나름의 새로운 문화욕구의 발로라고 할 법한 현상이다. 문화유산을 통한 소통과 체험의 욕구이다. 지금 자라나는 어린아이들 세대의 문화욕구인 것이다. 싸우고 경쟁하고, 비교하고 지배하는 것만을 제일로 알던 20세기형 인간들의 문화욕망이 아니라 소통하고 체험하며, 사귀고 즐기면서 공존하려는 21세기 다문화시대 인간들의 새로운 문화욕구가 지금 박물관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한국의 박물관이 이렇듯 관람객의 새로운 문화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만족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데 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도 국내거주 외국인 인구가 100만명이 넘는 다문화사회에 진입했다. 세계 10위권의 무역거래 규모만 보더라도 더 이상 ‘우리끼리’만을 되뇌는 따위의 배타적 자민족중심주의 속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실제로 단군신화와 주몽신화를 비롯한 우리의 국조신화나 심청전, 토끼전 같은 민담 설화를 보아도 우리의 문화적 전통은 원래가 다문화 친화적 토대 위에서 생명력을 발휘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다문화사회 초기에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문화적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했을 우리 박물관, 특히 국책 박물관들이 분위기를 주도하지 못한 채 문제의식을 갖는 데 그쳤을 뿐 소극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31일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에서는 관람객의 새로운 문화욕구를 풀어주면서 다문화 갈등이라는 우리 사회의 현안을 동시에 해결하고자 하는 놀랍고 즐거운 행사가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 박물관 100년 역사상 처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재미와 의미를 겸한 참신하고 창의적인 기획이 돋보인 자리였다. 어린이들이 여러 이웃나라들의 문화를 보고, 듣고, 만지면서 느끼고 놀 수 있는 체험 자료를 담아 ‘다문화꾸러미’라고 이름 붙인 상자를 처음 열어 보이면서 설명하는 이날의 축하행사에서는 몽골과 베트남 두 나라의 문화꾸러미가 열렸다. 금년을 시작으로 어린이박물관은 해마다 다른 이웃나라의 문화꾸러미를 만들어 갈 모양이다. 어린이박물관 학예사들이 몽골과 베트남 현지에 가서 직접 수집해 온 꾸러미의 내용물은 결코 값비싸고 희귀한, 이른바 보물에 속하는 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만지고, 입고, 쓰고, 듣고, 냄새를 맡아가며 놀면서 자라나는 오늘의 우리아이들은 어른세대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다문화시대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가했던 몽골대사의 덕담처럼 앞으로 수십, 수백 개의 마술상자와도 같은 다문화꾸러미가 나타날 것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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