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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장애인 공직 후보와 사회의 책임/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열린세상] 장애인 공직 후보와 사회의 책임/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말 많고 탈 많던 새 정부의 조각이 지난주 마무리됐다.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두 달여간 국무위원의 인선과 검증으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새 정부의 진용이 하루빨리 완비돼 탄탄한 국정운영의 시동이 걸리길 희망한다. 지난 일이지만 새 총리 후보였던 김용준 전 인수위원장과 관련해 필자가 가지고 있던 소회를 풀어보고자 한다. 김 전 총리 후보자의 입지전적인 삶은 국민 대다수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어머니의 등에 업혀 학교를 다녔다. 고교 2학년 때 검정고시를 치르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만 19세에 고등고시에 수석 합격해 22세에 최연소 판사 임용, 지체장애인 최초 대법관 임용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이분도 75세 고령이다. 연로한 분이 으레 그렇듯 청력 또한 좋지 않다. 지난 1월 총리 인선 발표 기자간담회 때 기자 질문을 잘 알아듣지 못한 듯 제대로 답변이 이뤄지지 못하고 다시 질문을 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해 국무회의 시 물리적 소통에 문제가 많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또한 총리실이 세종시로 이전해 서울에서 근무하는 기관장들과 ‘화상회의’로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국회에서 대정부 질의가 열리면 본회의장에 장시간 서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해야 하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성토도 쏟아졌다. 모 일간지에서는 ‘보청기 총리’에 대한 유감을 버젓이 시론화하기도 했다. 소위 인수위원장이라는 막중한 위치에 있는 분을 아무런 배려 없이 바로 검증이 시작되도록 촉발시킨 우리 사회의 현주소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영국의 경제적 번영기를 이끌어 3기 연속 집권에 성공한 토니 블레어 총리의 오른팔은 데이비드 블렁킷 장관이었다. 그는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으로 교육·고용 장관을 거쳐 가장 영향력 있는 내무 장관까지 역임했다. 그가 장관에 임명되었을 때 영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 혁신적인 인사라고 평했다. 그는 그와 한몸이라는 안내견 루시와 유서 깊은 의회며 웨스트민스트 사원을 자유롭게 출입했다. 그가 장관이 된 이후 영국 정부의 문서 결재와 운영시스템은 그에게 적합하도록 바뀌었다. 참모들은 매일같이 점자서류 작성과 육성 테이프 녹음을 통해 그가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보좌했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토니 블레어를 이을 후임 총리로 지목될 정도로 가장 정확하고 성실한 각료로 존경받았다. 17대 총선 때 시각장애인으로 국회에 입성한 정화원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 시 점자 원고에 의지하지 않은 채 윈고를 몽땅 외워 질의에 임했다고 한다. 점자 원고를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일문일답에 불편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에 더해 그는 국정감사에서 파워포인트 자료를 띄워 놓고 자신이 화면을 직접 보는 듯 도표, 그래프 등 시각적 자료를 설명했다. 발표 시간은 고작 25분이었지만 준비하고 연습한 시간은 보름 이상 걸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정 의원을 자신의 장애를 완벽하게 극복한 불굴의 정치인으로 치켜세울 만하다. 그러나 감동보다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미래창조과학부의 김종훈 장관 후보자의 사퇴도 애석한 면이 없지 않다. 평범하지 않은 성장 배경과 성공을 두고 여러 검증되지 않은 루머와 한국식의 무서운 신상털기 통과의례가 조국에 대한 헌신의 꿈을 접게 만들었다. 그의 서툰 한국말 또한 한몫을 했으리라. 19대 국회에 입성한 필리핀 출신 결혼 이주여성 이자스민 의원 또한 한때 퇴출운동에 시달려야 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140만명에 달하는 글로벌 한국의 현주소이다. 장애인과 외국인, 어찌 보면 이들은 우리 사회, 특히 공적인 영역에 쉽게 진입할 수 없는 비슷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신체적·언어적·문화적 장애를 가진 역량 있는 인사들의 검증과 공직 수행 시 그들이 수행해야 할 업무 프로세스의 변경, 문자 서비스의 제공, 보조 인력의 재배치와 같은 고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복지와 창의, 과학의 융합을 통해 희망과 화합의 시대를 꿈꾸는 새 정부의 비전이 다양한 인재의 등용을 배려하는 데서 그 포문을 열길 기대한다.
  • [시론] 박근혜 정부, 가계부채 해결 시간 여유 많지않다/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금융학회장

    [시론] 박근혜 정부, 가계부채 해결 시간 여유 많지않다/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금융학회장

    가계부채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중장기 위험요인으로 인식되었으나 어느덧 한국경제가 당면한 최대 도전으로 다가왔다. ‘하우스 푸어‘(내 집 보유 빈곤층)는 친숙한 조어가 되었고,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가계부채를 단순히 미시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자칫 환자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은 방치한 채 그 병세에 매달리게 될 우려가 있다. 거시경제 위험이 가계부채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은행권 가계대출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집값 하락이 확고한 컨센서스로 자리잡으면서 가계부채는 소비 위축이라는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가계부채가 과도할 때 집값 하락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4배 이상 소비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편으로는 집값 하락으로 자산이 감소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빚에 쪼들리게 될 때, 가계는 지출을 대폭 줄여 빚을 상환하거나 아니면 집을 처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산과 부채를 줄이는 가계부문의 디레버리지는 통계청의 2012년 가계동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에서 비소비지출을 차감한 소비지출, 즉 평균소비성향이 74.2%로 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처분가능소득 대비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흑자율 역시 최고치다. 특히 3분기보다는 4분기 소비성향이 연평균치보다 더 낮아 디레버리지는 하반기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물가상승분을 차감한 실질소비지출은 두 분기 연속 감소했다. 소득분위별로 볼 때 지난 한 해 모든 분위에서 평균 소비성향이 감소하였으며, 4분기에는 소비지출 수준이 감소(1, 3분위)하거나 정체(4분위)되었다. 소득이 높은 4, 5분위에서도 소비성향이 감소한 것은 이 계층이 가계부채의 70%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가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재무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동산시장은 더욱 침체되었고 내수가 위축되는 이른바 절약의 역설이 일어났다. 내수 침체는 관련산업뿐 아니라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읽을 수 있듯이 집값이 크게 하락한 수도권, 저소득분위, 60세 이상, 자영업에 종사하는 가계가 큰 타격을 받았다. 한편 디레버리지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해 비은행권의 가계대출이 빠르게 증가하였다. 통상 비은행권에 더 높은 대출금리가 적용되는 사실을 고려할 때, 신용위험이 높은 층에서 대출 수요가 늘어났으며 일부 가계부채의 질적 악화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현재 적어도 일부 가계 재무건전성 지표들은 다소 개선되거나 안정적인 수준이나 신용위험이 높은 특정 계층의 경우 악화되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해 11월부터 고용률이 전년 동월 대비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계부문 디레버리지로부터 피해를 보는 층이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음에 틀림없다. 정부는 재무건전성을 위한 가계의 노력이 국민경제에 큰 부작용 없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IMF는 ‘시의적절한’ 재정·통화정책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덧붙여 정부의 하우스 푸어 대책이 가져올 수 있는 함정도 경고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 가계부채 문제를 뚜렷이 개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많지 않다. 비록 그 시점이 언제일지 누구도 속단할 수 없겠으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출구전략이 가시화될 때 외국인들은 국내에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려 들게 되고, 환율과 금리는 높아지는 압력을 받게 된다. 만약 이때 여전히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곧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 [시론] 상설특검을 위한 6가지 제언/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상설특검을 위한 6가지 제언/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던 특별감찰관 제도와 상설특검 제도에 대해 지난주 국회에서 여야까지 합의하면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특별감찰관이 ‘경찰’이라면 상설특검은 ‘검찰’로 기능하면서, 기존 검찰이 수사할 경우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는 대통령 친인척 및 행정권력 고위층, 특히 고위 검찰간부들에 대한 수사를 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첫째, 수사와 기소는 국민의 생활을 철저하게 파괴할 수도, 든든하게 보호할 수도 있는 매우 강력한 공권력 행사이고 인구 5000만이 되는 나라에서 이 권력의 행사를 검찰총장이라는 1인의 통제 하에 둔 곳은 없다. 이 정도 인구가 되면 대부분 연방제나 지방분권을 통해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산되어 있다. 일부러라도 ‘분권’ 두 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 제2의 검찰’을 만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둘째, 진정한 분권은 단순히 검찰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제2의 검찰’을 행정권력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시켜야 의미가 있다. 검찰이 개혁대상이 아니라 검찰을 둘러싼 권력환경이 개혁 대상임을 잊지 말자. 유럽은 입법부가, 미국은 사법부가 행정권력을 견제하지만 이런 장치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이 시시콜콜 대통령편을 들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위에서 말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전일(全一)한 피라미드 구조의 진짜 수혜자는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이 검찰총장의 임명에만 적절히 간여하면 전국의 모든 검사들을 평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원, 경찰, 검찰, 국정원 등 사정기관을 아무리 만들어도 이들이 서로의 고위층을 사정한다거나 대통령 친인척을 사정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특별감찰관·상설특검이 “대통령 휘하의 제5의 사정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특별감찰관·상설특검의 임명에 대통령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질적인 임명권자는 국회가 될 수도 있고 사법부가 될 수도 있다. 국회에서 다수당이 전횡할 수도 있고 대법원장도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대통령이 안살림 챙기듯이 간여할 수 있는 상황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것이 될 것이다. 셋째, 검찰이 예외적으로 대통령 편을 적극적으로 들지 않던 때도 있었다. 노무현·김대중 시절이다. 한정된 숫자의 법률가 집단의 엘리트로 인정받는 검사들은 특권층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고 보수 성향의 대통령이 선출될 경우 과도한 충성을 하게 된다. 변호사 정원제 폐지를 전제로 도입된 로스쿨 제도가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도록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넷째, 상설특검은 실제로 ‘상설’(常設)이 되어야 한다. 상당한 기간의 임기가 보장되어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감사원장이나 대법원장처럼 대통령 임기를 횡단할 수 있는 정도의 임기가 보장되어야 상설특검 설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다섯째, 특별감찰관·상설특검제 성공의 핵심은 ‘인지수사권’이다.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 모두에게 인지수사 및 인지조사 권한이 있어야 한다.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진정한 ‘상설특검’은 인지수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상설특별검사제도는 이제 ‘특별’한 것을 ‘상설’한다는 형용모순이 거슬리지 않게 ‘상설’이란 글자는 빼버리고 ‘특별검찰청’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여섯째, 검사들을 설득해야 한다. 검사는 직업이다. 헌법이 정한 기소권과 수사권을 행사하는 직업이다. 검사들이 일할 정부기관을 작게나마 하나 더 만든다는 자세로 임하고 검사들도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평검사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다.
  • [시론] 전자책 흥행을 위한 조건/장은수 민음사 대표

    [시론] 전자책 흥행을 위한 조건/장은수 민음사 대표

    요즈음 한국에서 전자책이 엄청난 ‘유행’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전자책을 읽는 사람이 눈에 띌 만큼 많아졌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매출액 기준으로 볼 때 아직 한국에서 전자책은 종이책 대비 고작 1%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출판 산업에 대한 신규 개발투자는 대부분 전자책 관련 상품이나 서비스에 집중되고, 뚜렷한 실적이 부족한데도 자본시장 역시 기대감에 힘입어 움직이는 중이다. 가령, 인터넷서점 예스24의 주가는 종이책 시장의 불황에도 지난 두 달 동안 70%나 상승했는데, 이는 전자책 시장의 지속적 확장이라는 이슈 없이는 불가능했다. 소비자를 위한 혁신이 일어나는 곳에 돈이 몰리고 뉴스가 속출하는 것은 자본주의 속성상 당연한 일이다. 지난달 교보문고는 전용 단말기를 통한 회원 정액제 독서 플랫폼인 샘 서비스를 시작했고, 모바일 기업인 북잼은 한 출판사와 제휴해 앱 형태의 파격적인 가격 파괴 모델로 돌풍을 일으켰으며, 네이버는 만화의 생산 및 소비 형태를 뒤바꾼 웹툰에 고무돼 웹소설 서비스를 시작해 장르소설 생태계를 공략 중이다. 한편 카카오톡은 콘텐츠, 사진, 음악, 동영상을 결합한 짧은 분량의 콘텐츠를 쉽게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는 카카오페이지의 출범을 앞두었다. 스마트 기기의 광범위한 보급에 따라 책 콘텐츠의 디지털화를 둘러싼 물밑 흐름이 분출한 것이다. 전자책의 세계적 유행은 2007년 세계 최대의 인터넷서점인 아마존닷컴이 내놓은 흑백 단말기 킨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손쉬운 조작, 편리한 접근성, 획기적 사용성에 종이책 베스트셀러의 동시 제공, 출판의 역사가 만들어낸 10여만 종의 무료 전자책 및 저가 전자책의 지속적 확보 등은 소비자의 독서 습관을 크게 바꾸어 놓았으며, 웹상의 신뢰도 낮은 ‘쓰레기 데이터’를 읽는 데 지쳐 있던 독자들을 열광시켰다. 킨들은 1930년대 중반 문고본의 등장 이래 지난 80년 가까이 상대적으로 안정되게 유지되어 온 출판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했다. 책이 전자책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화하면서 책의 생산, 유통, 소비와 관련한 사업적 시도들이 폭발하고 있다. 자가 출판, 정액제 서비스, 책의 챕터 판매, 강의 결합 전자책, 게임화 학습서 등 전 세계 출판 뉴스는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책과 서비스로 뒤덮이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전자책을 둘러싼 움직임이 활발한 것도 그 영향이다. 그러나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상품 또는 유행이 문화로까지 정착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날마다 수천 종씩 쏟아지는 상품, 광고를 먹고사는 미디어의 과잉 신화화, 소비자의 무자비한 변덕 탓에 우리가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것들은 대부분 새벽이슬처럼 스러질 뿐 우리의 피와 살을 이루는 애호의 대상으로 승격하지 못한다. 책과 같이 비소비적 측면이 강한 상품은 더욱 그렇다. 책의 디지털화는 막을 길이 없는 게 확실하지만, 그 속도는 아마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느릴 것이다. 오랜 경험을 갖춘 출판사들이 전자책 사업에 답답해 보일 정도로 신중한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에게 책은 단지 읽을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난 후에도, 심지어 읽지도 않으면서 오랫동안 애지중지하는 애호의 대상이자 품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책 없는 집’이나 ‘서가 없는 사무실’ 풍경이 얼마나 천하고 끔찍한지 한번 떠올려 보라. 따라서 전자책은 특정 기업을 위한 상품이나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성찰돼야 한다. 소수 거대 자본에 의한 유통 플랫폼 독점, 값싸고 질 낮은 콘텐츠의 범람, 고급문화 지속 가능성의 파괴, 개인화를 빌미로 한 과도한 소비자 통제 등 산적한 문제를 차분히 해결해 가려는 노력이 없다면 현재의 유행은 자본 놀이를 위한 ‘거품’으로 변해 버릴 것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 봄 같지 않은 것은 오직 사람 탓이다. 전자책 관련 당사자들은 이를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 [시론] 대결에서 대화로의 대반전을/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시론] 대결에서 대화로의 대반전을/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한반도가 군사적 충돌이 우려되는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반도가 갈수록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에 빠지는 양상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 통과 이후 단기간에 북한과 국제사회, 남북한 간 강대강(强對强)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다. 사태 진전에 따라 전쟁으로 갈 것인가 평화로 갈 것인가, 갈림길에 들어섰다는 느낌이다. 북한이 말로써 대미, 대남 ‘벼랑끝 전술’을 펼치고 있다. 최근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와 한·미 연합 ‘키 리졸브’ 연습에 맞서 ‘서울·워싱턴 불바다’와 정전협정 백지화 및 남북 불가침 합의의 폐기를 선언하고 전면전 준비까지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 11일 대변인 성명에서 ‘땅과 바다, 하늘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날린다면 침략의 아성과 본거지를 무자비한 불벼락으로 벌초해 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우리 군은 ‘북한의 군사 위협에 대해 도발 원점과 도발 지원세력은 물론 그 지휘세력까지 강력하고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맞대응하고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키 리졸브 연습이 끝나는 21일 이후다. 그동안 북한이 한·미 연합 연습 기간 동안에 무력시위를 펼친 경우는 없었다. 키 리졸브 연습이 끝난 직후 북한이 대미, 대남 저강도 무력시위를 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의 추가적 행동이 나온다면, 한반도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한반도 위기지수를 떨어뜨리는 작업이 시급하나 뚜렷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유엔의 대북 제재에 찬성함으로써 중국의 중재 역할도 협소해진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방치하거나 방관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고 대화를 통해 대반전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결코 제재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반복되었지만, 북한은 3차 핵실험으로 대답했다. 남한과 미국, 중국 등 3개국이 협력과 공조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투트랙 전략’을 적극 펼쳐야 한다. 특히 중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남한, 미국, 러시아 등 국제사회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중 간 책임 있는 수준의 대화가 시급하다. 중국이 고위급 특사를 북한에 파견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국제사회의 입장과 우려를 정확히 전달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한·미와의 협력 속에 중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미국 역시 유엔 채널 등을 통해 북한과 직간접적인 대화의 틀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핵 개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보이면서도 북한이 의미 있는 조치만 취한다면 ‘진정한 협상’에 응할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주목한다. 북·미 간 대화는 핵문제에 국한하지 말고 평화체제, 북한과 관련한 전반적 문제를 포괄하는 자리가 되면 좋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국제공조를 강화하면서도 대화 창구를 열어놓는 자세가 중요하다. 북핵문제에 집중하면서도 인도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대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할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과 대북 영유아 지원문제 등을 중심으로 인도적 차원의 남북관계를 가동할 필요가 있다. 남북 상시 대화채널의 확보도 시급하다. 전쟁 중에도 상대 국가와의 대화채널 확보는 상식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가 고조될수록 돌발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대화채널은 매우 중요하다. 남북 당국, 적십자사, 민간 차원의 대화 채널 구축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키 리졸브 연습이 끝나기 전 대화의 모멘텀이 만들어져야 한다. 한반도에 고조되고 있는 대결의 열기를 식혀야 한다. 한·미·중의 긴밀한 협력 속에 양자, 다자간 대화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대결에서 대화로의 대반전을 통해 북핵문제와 북한문제 전반에 대한 새로운 해법들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대화를 시도할 때다.
  • [시론] 새 정부 금융산업의 비전/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시론] 새 정부 금융산업의 비전/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제를 보고 금융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규제는 보이나 비전이 안 보인다거나 가계부채 해결과 서민금융 활성화 과제가 제시되었으나 정작 금융산업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큰 그림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 등이다. 한국 경제가 현재의 부진을 털고 선진화하는 데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믿음에서, 그리고 이명박(MB) 정부 5년간 한국금융의 퇴보를 경험한 터에 금융인들은 새 정부 들어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증권화라는 금융 혁신을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퍼져나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초래했고 이것이 유럽 재정위기로 이어지면서 세계적으로 경제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과 일본이 양적완화를 통해 위기 탈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재정절벽 등의 악재로 아직은 출구가 잘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금융위기 동안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외화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이 진행되면서 환율이 급등했고 이것이 금융시장에 충격을 가져왔다. 정부가 선물환 규제 강화, 은행세 도입 등으로 시스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왔지만 이들 조치는 위험관리 차원의 방어적인 것이다. 한국 금융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혁신과 위험 부담을 살리는 방향으로 과잉규제 완화, 시스템 리스크 대비 및 소비자 보호의 강화 등이 필요해 보인다. 현 시점에서 한국 금융산업의 비전은 무엇일까? 한국 경제의 당면과제인 성장동력 부족 극복 및 지속성장에 필요한 금융서비스를 개발·제공하는 것을 금융산업의 목표라고 한다면, 이러한 목표의 성공적 달성을 위해 자생력을 지닌 산업으로 발전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금융산업의 비전이라 할 수 있다. 금융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그간 한국에서 금융 산업이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경제성장에 부수되어 성장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은행들의 관계금융 효과에 대한 연구도 크게 고무적이지 않다. 관계금융을 은행과 기업 간 금융거래를 둘러싸고 형성되는 관계 및 관련 서비스로 정의할 때, 이는 은행이 기업에 제공한 금융중개 서비스 내용이 부실하여 그 가치가 기업고객이 부담한 비용에 미치지 못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부실한 금융중개 기능의 일차적 책임은 과잉규제에 있어 보인다. 그간 금융당국이 금융기관 경영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한 까닭에 중개서비스 창출과 위험관리 능력 배양 등에 소홀했다. 물론 낙하산 인사도 한몫 단단히 했다. 최고경영층이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상황에서 실력 배양을 통한 후계자 양성이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조직에 업무성과 제고나 위험관리보다 줄서기에 신경 쓰는 문화가 자라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시장은 다양한 의견을 지닌 거래자들 간 자유로운 거래를 통하여 발전한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 만약 정부가 개입한다면, 무엇보다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쏠림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누구도 정부 정책보다 더 권위 있는 정보와 리더십을 갖지 못하였기에 자신의 정보에 우선하여 그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결국 시스템 리스크가 창출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 위험관리나 상품개발 노력은 뒷전으로 밀려나 위험이 확대되어 이것이 다시금 정부 개입을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투자은행(IB)이 자라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정부는 스스로의 역할을 금융산업 내 금융기관들 간 경쟁체제 마련, 쏠림현상의 예방 및 그 밖의 시스템 리스크 감독 그리고 금융소비자 보호 등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금융산업의 금융중개 기능이 활짝 피고 경쟁력이 살아나 미션을 달성함으로써 금융산업이 비전을 성취하기를 기대해 본다.
  • 최윤 아프로파이낸셜그룹 회장 “금융당국 감독 기꺼이 받겠다…저축은행 인수 9전10기 도전”

    최윤 아프로파이낸셜그룹 회장 “금융당국 감독 기꺼이 받겠다…저축은행 인수 9전10기 도전”

    “대출금리를 20%대로 인하하기 위해서라도 저축은행 인수는 꼭 필요합니다.” 저축은행 인수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최윤(50) 아프로파이낸셜그룹 회장은 단호한 목소리로 ‘9전 10기’ 의지를 밝혔다. 아프로파이낸셜은 대부업체 러시앤캐시 등을 두고 있는 그룹이다. 언론 인터뷰에 좀체 나서지 않는 최 회장은 지난달 28일 서울신문과 만나 “서울·경기권 중대형 저축은행 인수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최 회장은 2007년부터 예한울·예쓰·중앙부산·프라임·파랑새·현대스위스4 등 9곳의 저축은행 인수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대부업체의 저축은행 인수에 대한 정서적 반감 때문이다. 언론사 개별 인터뷰에 응한 것이 “이런 세간의 오해를 벗고 싶어서”라는 최 회장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부업체와 개인이 운영하는 대부업체에 대해서는 다른 잣대가 필요하다”면서 “(대부업체 감독권을 갖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대신 금융 당국의 엄격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면 (러시앤캐시도) 기꺼이 받겠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인수에 왜 그렇게 매달리는가. -제도권 금융에 진입하게 되면 자금조달 비용이 대폭 싸진다. 그러면 대출금리를 낮출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동력이 확보되면) 소상공인 대출, 자영업자 전용상품 등을 내놓을 작정이다. 아직도 제도권 금융 문턱을 넘지 못해 고통받는 금융소외자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대부업체에 대한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시기상조 아닌가. -대부업체라서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굴지의 글로벌 기업인 GE(제너럴일렉트릭), 씨티, SC(스탠다드차타드) 등은 모두 한국 내에서 캐피털 업체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20~30%대 금리로 금융업을 하는 회사들이다. 캐피탈, 대기업, 저축은행이 하면 소비자금융이고 대부업체가 하면 사채라고 매도하는 시각을 이해하기 어렵다. →대부업체라는 것도 그렇지만 심지어 일본계 아닌가. -금융 당국이 이미 일본 대부업체의 국내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했다. J트러스트는 미래저축은행을, SBI는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각각 인수했다. 그런데 솔직히 두 회사는 일본인이 운영하고, 철저하게 일본에 기반을 둔 금융사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남’이다. 재일교포인 저는 굳이 비유하자면 ‘사촌’쯤은 된다. ‘남’에게는 (저축은행 인수) 기회를 주면서 ‘사촌’에게는 왜 계속 벽을 치는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한국에서 고금리를 받고 있다고 해서 러시앤캐시에 저축은행 인수 기회를 줘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럴수록 소비자의 권익을 더 잘 지켜줄 만한 곳으로 저축은행을 넘겨야 하는 것 아닌가.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러시앤캐시는 무조건 저신용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 결코 아니다. 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신용이 낮은 80여명 정도는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곳이다.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이 280만원, 평균이자가 한달 약 8만원 정도다. 제가 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택시론’이다. 택시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공공 교통 수단보다 비싸지만, 급할 때 요긴하고 또 반드시 서민에게 필요한 교통수단이다. 지갑에 택시비가 없는데 (상환능력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택시를 타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러시앤캐시는 채권을 발행하거나 기존 자본금을 활용하는 방법밖에 없어 택시비(금리)를 낮추기가 어렵다. 지난해 영업정지 이슈가 있었음에도 찾아오는 고객 수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자금 조달방식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 고통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제도권 문만 열어주면 엄청 잘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웃음) 큰소리 치는 건 아니지만 2002년 한국에 대부업법이 처음 생겼을 때를 생각해 보라. 제가 (아프로의 토대인) 원캐싱을 설립해 담보 없이 200만~300만원을 빌려주자 제도권 금융에서는 돈을 떼일 것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10년 만에 자산 2조원대의 대형 대부업체로 키우지 않았나. 저축은행은 원래 서민을 위한 금융기관이다. 그런데 부동산 파이낸싱프로젝트(PF) 등에 손을 대며 욕심을 내다가 망가진 것이다. 자영업자 전용대출 등 개척 가능한 상품이 굉장히 많다. →영업정지 처분과 관련해 1심 법원은 부당하다며 러시앤캐시 손을 들어줬지만 금융 당국이 항소해 2심 법원에 계류 중이다. 2010년에는 검찰의 압수수색도 받았다. -사정기관에서 여러 차례 조사받은 것이 사실이다. 횡령, 탈세, 배임은 기본이고 일본 야쿠자 자금을 세탁했다느니, 조총련을 통해 북한에 자금을 송금한다느니 별별 혐의가 다 있었다. 지금은 웃지만 당시에는 너무 억울했다. 결국 아무것도 나온 건 없었다. 오히려 러시앤캐시의 결백을 입증시켜준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도 항간에는 (러시앤캐시) 순익의 상당액이 일본으로 빠져나간다는 의심이 많다. -2002년 원캐싱을 설립해 운영하던 중 일본 법원에서 A&O(아프로파이낸셜그룹의 전신)가 매물로 나왔다. 그때 나고야와 오사카 재일교포 상공인들의 도움을 받아 J&K캐피탈이라는 법인 명의로 A&O를 인수했다. J&K가 서류상으로는 일본에 본사를 둔 페이퍼컴퍼니이기 때문에 일본계로 오해 받지만, J&K 지분 100%를 제가 다시 인수했기 때문에 사실 한국계 회사이다. 저는 알다시피 재일교포 3세다. 할아버지 때부터 100년이 넘게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1년 365일 중에 330일은 한국에서 산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10년 동안 저는 단 한 차례도 이익금 배당을 받지 않았다. 지금도 가장 억울한 오해가 국부 유출을 했다는 것이다. →공식석상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인지 국부유출설 외에도 유난히 루머가 많다. 모 여배우와의 소문도 끊이지 않는데. -그 여배우와는 회사 일로 딱 5분간 얘기한 게 전부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재외동포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도 났다.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겠다고 생각했다. 거듭 말하지만 어려서부터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는 교육을 수없이 받았다. 또 결코 잊은 적도 없다. 체계적인 고객정보(CB) 구축 노력 등을 통해 사채 수준에 머물렀던 우리나라의 소비자금융업을 어엿한 금융업의 한 축으로 양성화시켰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 노하우를 중국과 동남아시아에도 전파하고 싶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시론] 국민연금 논란의 해법/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시론] 국민연금 논란의 해법/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는 가입자 수가 2000만명을 넘어서고 적립기금도 400조원을 돌파하는 등 세계적으로 가장 모범적인 공적연금 시스템의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신정부의 인수위에서 제기된 기초연금 관련 논란의 불똥이 국민연금으로 옮겨붙는 과정에서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에 제기되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첫째,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현재의 젊은 가입자는 연금 수급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둘째, 이를 이유로 연금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연금 수급연령을 늦추지는 않을까, 셋째, 월 20만원 정도의 기초연금을 지급하면 연금보험료를 성실히 납입한 국민연금 가입자만 불리하지 않을까, 넷째, 40조원 상당의 기초연금 재원은 과연 조달이 가능할까 등으로 요약된다. 국민연금과 관련한 오해 중 하나는 적립기금이 없으면 국민연금을 못 받게 된다는 생각이다. 국민연금이 성숙된 대부분 유럽국가에서는 가계에서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듯, 적립기금 없이 매년 노년계층에 지급해야 할 필요 연금액을 그 당시의 근로계층이 보험료나 세금을 걷어서 조달한다. 선진국 방식으로 운영할 경우 인구구조가 고령화되면 미래 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보험료를 미리 적립하는 제도를 초기부터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진적이다. 다만, 우리나라도 연금급여에 상응한 만큼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기금 고갈 문제가 존재한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위해서는 연금 급여수준을 낮추거나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연금 수급 연령을 높이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지만 우리나라는 1999년에 이어 2007년에 이러한 조정 작업을 국민 합의 하에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향후에도 조정요인은 있지만 국민의 노후 대비 정도와 가계의 부담능력 등에 대한 고려가 선행될 것이고, 적어도 사적연금에 비해 유리한 구조는 유지될 것이다. 민간 금융기관에서 운영되는 사적연금은 가입하면서 국가가 책임지는 국민연금을 못 믿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보험료 납입 없이 수급되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도 왜곡된 측면이 있다. 기초연금의 도입 취지는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받더라도 과소하게 받는 어르신에 대한 노후 소득보장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공무원연금 등 직역 연금을 받고 있거나 국민연금을 일정액 이상 받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대상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도 국민 누구나 노인이 되면 최소한 월 20만원 이상의 국가 보장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한편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국민연금에 왜 가입하느냐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국민연금 수급자는 본인이 납입한 보험료에 상응한 소득비례 연금 외에 세대 간·세대 내 재분배적 성격을 가진 기초연금 상당액을 이미 받고 있음을 간과한 것에 기인한다. 국민연금이 늦게 도입되어 가입할 수 없었거나 혹은 소득이 없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했던 사람은 국민연금 가입자에 비해서 역차별을 받아온 측면이 있고, 기초연금 도입은 이를 시정하는 성격이 강하다. 더욱이 기초연금은 월 20만원 수준이기 때문에 보통사람이 노후에 필요한 생계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에 더 오래 가입해서 더 많은 연금을 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노후소득 설계전략임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40조원 내외가 필요한 기초연금 재원 조달이 걱정되지만, 박 대통령이 국민연금을 기초연금 재원으로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만큼 일단 안심할 수 있고, 기존의 정부지출 중 낭비 요소를 절감하고 세금 누수가 의심되는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하여 공약이행을 위한 135조원의 조달계획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 [시론] 미래창조과학부 논란에서 빠진 창조적인 것들/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시론] 미래창조과학부 논란에서 빠진 창조적인 것들/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논란의 중심이 된 미래창조과학부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론’이 담겨 있다고 한다. 언론통제 위험이 있는 부분만은 떼어 놓으라는 야당의 요구를 웬만하면 들어줄 만도 한데 4일 국민담화까지 하면서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고 한 것을 보면, 박 대통령 의지의 강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미디어는 정교하게 다루어야 할 영역이다. 독재정권이라면 이것을 예속시켜 선전수단으로 활용하면 된다. 하지만 민주정부는 이를 발전시켜야 함과 동시에 한 걸음 뒤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골치 아픈’ 의무를 갖는다. 정부가 직접 나서면 자원 분배 과정에서 부득불 언론통제 문제가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선진 각국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독립위원회 모델을 활용한다. 속속 변화하는 전자미디어 현상에 대응하기에는 관료 조직보다 위원회 조직이 더 유연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미국의 FCC, 영국의 Ofcom, 프랑스의 CSA 등은 모두 ‘규제’ 차원을 넘어 미디어 발전과 언론자유를 ‘진흥’하는 독립위원회들이다. 현재까지 여야 합의된 내용으로는 미래부가 방송통신기금을 관장한다. 방통위에 규제 기능을 넘기고 미래부가 진흥만을 맡는다는데, 유무형의 선택적 지원만으로 언론 통제력은 충분히 발휘될 수 있다. 산업적 가치에 따라 펼쳐질 미래의 길이 화려하게 보이는 만큼 미디어의 정치·문화적 가치 또한 여전히 생동적이다. 창조산업인 미디어는 본질적으로는 정체성의 표현 양식이며 소통(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 이 때문에 미디어를 통한 사회통합의 문제를 산업 부서인 미래부가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영국도 융합기구 Ofcom을 출범시키면서 정치·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것을 법에 정해 놓았다. 시장원리에 의해서만 미디어를 다루면 참 편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문화적 고려를 피하려는 것은 어려운 함수 문제를 놓아 두고 자신 있는 덧셈·뺄셈만 계속 연습하려는 대입 수험생과 같다. 그간의 논의는 공정성과 관계 있는 미디어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데 집중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시장 영역에서 성장시킬 영역과 공공 영역에서 육성해야 할 영역을 구분하는 일이다. 창조경제가 무형의 자산, 즉 아이디어와 지식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미디어를 떼어 놓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관련이 있다는 것과 미디어 영역 모두를 창조경제 추진 부서로 가져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관계 있으니 함께 모여야 한다”는 것은 창조적이지 않은 단순한 생각이다. ‘창조경제 구현’이라는 슬로건에 무조건 따라 달라고만 하는 방식으로 창조성은 계발되지 않는다. 창조경제는 기계, 정보통신기술(ICT), 농수산, 문화, 관광 등 모든 분야와 관련이 있는데 굳이 미디어만 ‘꼭 함께 가야’ 할 이유도 부족하다. 미디어 산업은 과학 및 ICT에 감히(?) 비할 수 없으리만큼 작은 규모이기도 하다. 미디어 영역의 창조경제론은 ‘개방, 공유, 제휴’라는 융합시대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신제도주의 이론’은 정부 조직도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으려는 내적·외적 동인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본다. 관성의 법칙을 깨기 위한 지난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조직 개편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이번처럼 선진국의 사례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생경한 패러다임 변화 수준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다. 자칫하면 다른 부서의 기능을 이리로 옮기고 저리로 옮기고 하는 것으로만 끝나 버리고 말 것이 우려된다. 여야 협상도 최종적으로 케이블TV 방송국(SO) 관련법 제·개정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의 단발적인 문제로 압축되고 말았다. 이제라도 ‘톱-다운’ 방식을 멈추고 사회 구성원들이 이에 대한 인식을 함께 고민하며 ‘미디어 미래창조’를 구성해 가도록 해야 한다. 과거 방송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들기 위해 각각 수년씩의 범사회적 논의를 펼쳤던 것은 결코 ‘쓸데없는 소모’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하겠다.
  • [시론]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갈등을 보며/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시론]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갈등을 보며/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어떤 조직도 고독한 ‘섬’일 수는 없다. 그래서 개방 협력의 역사에는 진화와 장수가 뒤따랐고, 폐쇄의 역사에는 후퇴와 단절의 비극이 따랐다. 개방은 이해 관계자들을 참여하고 협력하게 만들어 혁신의 동반자로 키우지만, 폐쇄는 이해 관계자를 적으로 돌려 전쟁의 상대자로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이해 관계자 사이는 폐쇄·대립적이고 ‘갑·을’ 관계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갑·을 사회의 가장 큰 폐해는 개천에서 용 나는 희망을 뺏아간다. 능력 있고 아이디어도 있는 ‘을’이 ‘갑’에 눌려 성장의 기회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처방의 하나가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정책이다. 이는 대기업의 개방적 태도를 요구하고 ‘나홀로’ 폐쇄성을 극복해 보려는 정책이다. 그런데 이 정책을 두고 중소기업인 ‘을’의 폐쇄성과 갈등이 수면 위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프랜차이즈 제과점 가맹점주가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을 두고 대한제과협회를 상대로 소송하는 등 갈등도 점입가경이다.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소상공인 진흥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 관련 연합회 간에는 법정단체 지정을 위한 기싸움이 도를 넘고 있다. 갑·을 간 상생협력 모델이 ‘을’ 간의 갈등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제 ‘을’의 개방적 태도도 필요하다. 갈등이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서로의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해 가는 분기점으로 만들 수 있다면 긍정적 갈등이 될 수도 있다. 우리도 이번 기회에 숨어 있는 ‘을’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것을 통해 한국 기업생태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도 중소기업 지원예산 관리를 기관 중심적 예산투입 정책에서 ‘임팩트 지향’적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책은 정부의 기획 및 예산 배정 그리고 배정된 예산을 특정 기관에 맡겨 정책을 위탁집행하는 방법이었다. 정책이 만들어질 때마다 기관 간 집행예산 배정 싸움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정책이 정치판이 된 경우도 많았다. 이번에도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소상공인진흥자금이 연간 5000억~1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 같다. 곧 이를 관리하는 진흥공단이 신설될 것이고 이 예산을 염두에 둔 관련 소상공인 대표단체들이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자리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예산 투입과 정책 집행보다 정책실효성 평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아기를 낳는 게 전부가 아니라 어떻게 잘 키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처럼 정책 그 자체보다 정책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평가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중소기업 정책은 지원하는 정책만큼 발굴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일본에는 100년을 넘긴 2만 1000개 장수기업들 중 1만 5000개 정도가 소상공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최고의 상품을 만들고 공급하겠다는 장인정신과 철저한 서비스로 고객의 신뢰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상공인 정책도 이러한 정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발굴하고 키워가는 ‘사람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 가칭 소상공인진흥공단은 이런 소상공인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기관이 되어야 한다. 단체에 열심히 출근하는 상인이 아니라 새벽에 맨 먼저 좌판을 닦고 단골고객이 많은 사람을 찾아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대기업의 개방뿐만 아니라 소상공인들의 개방적 사고도 필요해지고 있다. 상생협력을 통해 공정한 질서 회복이 중요한 과제이지만 소상인 내부적으로도 고객 신뢰를 위한 장인정신의 회복과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예산을 투입할 정책만큼이나 지금까지 실효성 없이 투입된 예산이나 설립 목적을 잃어버린 기관을 재정비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효성 없는 예산 투입은 낭비일 뿐이다.
  • [시론] 새 정부 경제정책의 과제/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시론] 새 정부 경제정책의 과제/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박근혜 정부 출범의 모양새가 썩 좋지는 못하다. 국무위원 임명절차가 늦어졌고, 새 대통령의 지지율은 저조하다. 대통령이 당선인으로서 지금까지 행한 중요한 통치행위는 국무위원 및 청와대 보좌진의 인선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지휘하여 국정과제를 정리한 것이다. 두 가지 모두 실망스러웠다. 핵심 선거공약이자 가히 시대정신이라고 할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그리고 국민통합의 정신이 후퇴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민생 안정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성공의 관건은 이러한 시대정신을 잘 구현해 내려는 진지한 노력이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추구해야 할 근본적인 과제는 누가 뭐래도 경제민주화여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지난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주요 정치세력과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국민적 합의사항이다. 이는 국민소득은 증가해도 대다수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는 모순된 현실의 산물이다. 일각에서는 경제민주화가 마치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성장과 배치되는 것인 양 얘기하기도 한다.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안정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 경제민주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경제력 집중과 마구잡이 규제 완화는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수위가 제시한 국정목표에서 경제민주화가 빠진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경제민주화 관련 세부 정책들이 추진과제에 포함되었으니 상관없다는 것은 매우 안이한 인식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과 모피아 등 거대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 싸우면서 추진해 나가야 하며 오랫동안 형성된 관행과 의식을 혁파하면서 이루어 나가야 하는 지난한 과제다. 입법과정에서의 각종 로비는 물론이고 성장우선론과 시장주의, 경제위기론과 속도조절론 등 수많은 반론을 뚫고 나가야 한다. 정부가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천명하여 힘을 싣지 않는다면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제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 경제팀의 면면을 보면 경제민주화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경제팀을 이끌어 나갈 현오석 경제부총리 후보자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규제 완화, 시장주의, 성장 중시의 경제관을 가진 인물들이다. 자칫 경제민주화는 시작도 하기 전에 폐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하게 된다. 그래도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항상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임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가 최우선 공약이었음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고 본다. 경제민주화처럼 저항이 만만치 않을 정책은 새 정부 초기에 강력하게 추진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대통령이 직접 경제민주화가 여전히 국정의 최고 목표임을 확인해 주었으면 한다. 한 가지 방법은 국민경제자문회의를 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로 개편하고, 김종인(경제민주화 공약을 주도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박사를 의장에 임명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외에도 새 정부가 주력해야 할 많은 경제정책 과제들이 있다. 몇 가지 중요한 것만 언급한다. 불확실한 세계경제의 파고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 환율 관리와 자본유출입 관리를 위한 정책수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토빈세 도입을 권한다. 가계부채 문제가 뇌관으로 남아 있다. 부동산 시장 붕괴를 방지하고 하우스푸어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인위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은 금물이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여 서민 주거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재정문제도 걱정이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공약 탓에 인수위는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재원조달계획을 내놓지 못했다. 부유세를 포함하여 증세방안을 준비할 것을 촉구한다. 박정희 시대에 무리한 고도성장을 추진하면서 왜곡된 경제구조를 박근혜 대통령이 바로잡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 [시론] 제대로 먹고 마시는 즐거움/최영미 시인

    [시론] 제대로 먹고 마시는 즐거움/최영미 시인

    음식을 만들 줄 아세요? 밥을 할 줄 아냐고 내게 묻는 한국남자들이 아직도 있다. 거 참. 기가 막혀 상대를 노려보다 내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그럼. 당연하지. 내가 안 하면 누가 해주나? 노상 밥을 사먹었으면 내가 이 나이까지 건강을 유지했겠어?” 내 입에서는 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려다 도로 들어간다. “시인을 뭘로 알아? 내가 집에 요리사라도 둔 줄 아나 보지?” 베스트셀러 시인의 약발은 십년 이상 가지 않는다. 시집은 팔려도 크게 돈이 되지 않는다. 첫 시집 이후에 크게 성공한 책이 없다. 정확한 계산은 안 해봤지만, 지난 십년간 내 평균소득은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에도 못 미친다. 여기까지 듣고도 ‘밥을 하는 최영미’가 안 믿어진다는 사나이들. 나의 여성성을 의심해 “요리를 잘 하세요?”라고 묻는 자들의 기를 죽이기 위해 내가 준비한 대답은, “(이날까지 살면서) 요리를 못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요”이다.스스로 ‘요리를 잘한다’고 자랑하는 것보다 ‘못하지 않는다’가 더 효과적인 자기과시임을 아시는지. 잘하지는 않지만, 못하지도 않는다. 되게 외교적인 고단수의 발언이다. ‘오버’하지 않고 사실을 말하자면, 이십대 초부터 삼십대 후반까지 나는 굶어죽지 않을 만큼,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먹고 살았다. 마흔 무렵에 몸의 여기저기에서 고장신호를 접수한 뒤에 식생활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혼자 사는 것도 억울한데 내가 더블들보다 못 먹어서야 되겠는가? 내가 작은 집에 살고 비싼 옷은 걸치지 못해도,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만은 부르주아지와 비교해 크게 처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음식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 다른 돈은 아껴도 먹는 돈은 아끼지 말자, 몸에 좋고 맛도 훌륭한 먹거리를 찾아다니며 내 입이 고급스러워졌다. 원래 내 입은 고급스러워서, 밥은 대충 해결해도 술은 늘 까다롭게 골랐다. 맥주나 소주가 대세이던 1980년대에도 실연당한 뒤에 혼자 마시고 죽으려고 동네가게에서 산 술은 ‘마주앙’이었다. 내가 가장 즐기는 주류는 코냑, 모스카토 와인, 기네스, 테킬라이다. 어쩌다 친구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할 때, 솜씨를 자랑하려고 매실 원액을 넣고 불고기를 재고 프라이팬을 뒤집으며 난리를 피우지만, 사실 난 시간을 잡아먹는 복잡한 요리는 질색이다. 재료 준비부터 차림까지 15분 만에 끝나는,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기 전에 후다닥 해먹는 요리라면 자신있다. 나는 달걀과 두부가 들어간 간편한 음식을 자주 해먹는다. 달걀에 호박이나 양파를 썰어 넣거나, 단백질을 보충하고 싶으면 굴이나 새우를 넣어 기름에 부친다. 커다란 접시에 따끈따끈한 오믈렛과 상추 따위의 잎채소를 담고, 옆에 잡곡밥을 곁들여 상을 차리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잡곡밥이 없으면 곡물식빵을 잘근잘근 씹으며, 축구중계를 보며 얼마나 많은 주말을 보냈는지. 이렇게 간단한 음식은 나중에 설거지할 그릇도 적어, 아~ 싱글이 편하구나 자족하며 우울하지 않은 저녁을 보낼 수 있다. 그가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식탁에 앉는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모르는 이를 만나 처음 식사 약속을 할 때,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할 때, 나는 그에게 식당 선택권을 넘긴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그가 권하는 음식을 먹어주며, 그의 됨됨이와 취향을 파악한다. 언론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아직도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대세라는 말을 들었다. 직업상 거의 매일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 술로 상대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그의 주정을 들으며 나는 절망했다. 술이 아니라 알코올을 들이붓는 음주문화, 조직사회의 접대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는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즐거움이 지배하는 서울의 밤을 보고 싶다. 룸살롱과 모텔이 사라지고, 포르노가 아니라 에로스가 지배하는 밤을 나는 꿈꾼다.
  • [시론]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우리의 대응전략/정진영 경희대 국제대학원장

    [시론]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우리의 대응전략/정진영 경희대 국제대학원장

    국제사회의 회유와 압박에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주요 국가들은 북한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추가제재를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 핵실험에 나설 태세다. 우리 안보, 나아가 한민족의 생존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핵무장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줬다. 경제난으로 위기에 처한 전체주의 세습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핵 보유에 있다고 북한은 믿는다. 핵무기를 갖게 되면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공격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공격이 곧 한반도에서의 핵전쟁과 한민족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또 핵무기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 한·미동맹도 약화시킬 수 있고 남북관계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대규모 경제 지원 등 이른바 ‘퍼주기’로 북한을 막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지배집단이 원하는 것이고, 우리 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 대북제재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국제적 공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대응전략은 세 가지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첫째, 대북 군사적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 핵무기를 재래식 군사력으로 억지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징후를 포착하고 어떠한 도발에도 강력히 응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북핵 실험으로 더욱 치열해질 동북아 군비 경쟁의 상황에서 우리도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둘째, 전략적 협상력을 증대시켜야 한다. 특히 중국에 대한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감싸고 보호하는 한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조치는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런데 중국이 가장 꺼리는 것이 주변국들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하며 미국과 더욱 가까워지는 상황의 전개이다. 한·미동맹의 강화가 역설적으로 중국에 대한 우리의 협상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또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북핵에 대항해 스스로 핵 개발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우려한다.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해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재처리 능력을 갖추어 나가고, 우리 내부에서 핵주권론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중국으로 하여금 대북정책을 재고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우리의 협상력을 배가시켜야 한다. 북한 핵에 대한 한·미 간 입장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북핵을 용인할 수 없지만, 미국은 북한 핵 자체보다 북한이 핵을 확산시키는 것을 더 신경쓰고 있다. 한·미방위조약은 북한이 우리를 공격할 때 미국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돕도록 규정돼 있지 않다. 미국 내의 헌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북한이 미국을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때에도 미국이 선뜻 우리 방위를 위해 나서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때문에 미국 핵무기를 다시 우리나라에 배치하거나 미국 주도의 동북아 미사일방어체제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의 내부를 더욱 튼튼하게 하고 국제적 위상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야 한다. 경제력도 더 커져야 하고, 민주주의도 더욱 발전해야 한다.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가 더욱 높아져야 하고 대한민국 국민임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돼야 한다. 국제적 기여와 다양한 국제적 역할을 통해 많은 나라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매력적인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 이것이 곧 북한에 대하여 완전히 승리하는 길이고 통일의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다.
  • [시론] 박근혜 정부의 대일 균형외교 방향/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시론] 박근혜 정부의 대일 균형외교 방향/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박근혜 정부의 외교를 생각하면 미국과의 관계는 한·미동맹의 심화, 중국과의 관계는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의 업그레이드로 이전보다 순조로울 가능성이 높다. 단지 한·일관계는 어떠한 상황이 될지 불투명하다. 우익 성향인 아베 정권의 등장으로 한·일관계는 처음부터 인내의 시험에 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정책이 처음부터 어렵게 된 것은 한·일관계의 토대가 바뀐 것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많다. 지금까지의 대일정책은 과거사 문제를 전략적인 카드로 사용하면서 일본을 압박할 수 있었다. 일본도 일제강점기 시대의 잘못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짙었다. 그 결과 도덕적인 우위의 한국과 이를 용인하는 일본의 타협이 한·일관계에서 존재하였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5년 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과거사에 대한 용인과 가진 자의 여유는 일본에서 사라져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내셔널리즘밖에 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일본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한국과 협력할 수 있는 접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의 전략적인 중요성이 높아졌다. 센카쿠열도 영토 갈등이 진행되면서 일본은 한국을 무시하고는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더욱이 미국이 아시아로 복귀할 만큼 중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일본에 한국의 전략적인 위치는 더욱더 중요해질 수 있다. 또한 국제관계에서도 한국의 위상 강화와 더불어 일본이 한국과 협력하여 윈윈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졌다. 우리의 대일외교는 ‘과거사 문제로 충돌하는 일본’과 ‘전략적인 협력 상대로서 일본’이라는 양면성을 적절히 조화시키면서 ‘균형 외교’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당장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박근혜 정부의 5년을 생각하는 단계적이고 기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의 여론을 감안하면 과거사 문제(특히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밀어붙여야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우선 과거사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교섭을 하면서도 민간교류를 활성화하여 한·일경제생활권을 확대시키는 기능적인 접근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청소년의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한·일 간 장벽을 허무는 일을 차근차근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점차 경제협력, 안보협력도 구체화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다. 둘째, 한·일 협정 50주년을 맞는 2015년을 계기로 새로운 한·일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현재 한·일 양국의 불만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을 둘러싼 인식의 차에서 기인하는 부분이 많다. 한국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 불충분하다고 보는데 비해, 일본은 1965년으로 과거사 문제는 더 이상 거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불만을 남겨둔 채 한·일관계를 논의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양국이 우호적인 관계를 증진시켜가기 위해서도 지금까지 한·일관계가 이룩해온 성과를 객관적으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가칭 ‘한·일미래위원회’를 만들어 과거사문제를 포함하여 한·일이 어떻게 인식을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소통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동아시아 국제질서 변화라는 틀 속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일본이 집단적인 자위권 해석을 변경하고 헌법 개헌을 시도한다고 해서 일본을 무조건 우경화된 국가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일본의 안보에 대한 조바심’은 중국과 북한을 의식한 측면이 많다.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 동북아의 불안을 줄이는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구체화하여 일본을 동아시아 화해와 번영의 틀 속에서 묶어내는 대일외교가 되어야 한다.
  • [시론] 명분도 목적도 없는 북한 핵개발/예종영 가톨릭대 국제학부 국제정치학 교수

    [시론] 명분도 목적도 없는 북한 핵개발/예종영 가톨릭대 국제학부 국제정치학 교수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한다는 소식에 국제사회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이미 장거리 로켓 발사와 관련한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확대 결의안에 찬성했을 뿐 아니라 3차 핵실험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핵개발이 고유한 권리 행사라고 주장하며 일관된 국제사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있다. 주체정신을 생명처럼 여기는 북한정권 차원에서는 타국의 왈가왈부가 부당하다고 항변할 것이고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국내에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가 갖지 못한 핵무기를 북한이 대신 보유한다는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의 핵개발 명분은 설득력이 있는 것인가.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핵을 통한 자위의 목적 달성은 가능한 것인가. 세계화와 더불어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국제관계가 복잡해질수록 국가 간에 약속과 규칙을 필요로 하게 되고 동시에 공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존중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국가 주권행사의 영역 또한 상당 부분 축소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의 이러한 국제관계를 부정한다면 국제질서와 평화의 유지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핵무기 개발과 관련한 국가 간 약속은 일례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찾아볼 수 있다. NPT에는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북한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엔 회원국이 참가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핵 확산 방지는 국제사회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가치로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NPT 성립 당시 이미 핵무기개발을 마친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불평등한 측면이 있는 점은 사실이나, 더 이상의 핵확산은 인류에게 재앙을 의미하며 기존의 핵보유국도 궁극적으로는 핵을 폐기하겠다고 하는 원칙에 절대다수의 국가들이 수긍하고 이를 공동의 가치로 받아들인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사회에서 명분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렇다면 과연 핵무기는 북한의 주장처럼 적어도 국가의 안보를 보장해주는 것인가. 즉, 핵 보유는 전쟁억지력을 갖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답은 “아니다”이다. 아니 오히려 “북한의 안보는 더욱 불안해진다”가 정답이다. 오래전에 이미 정리가 끝난 핵전략이론에 따르면, 핵억지력의 관건은 핵무기의 보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적국이 설사 선제적인 기습공격을 통해 자국의 핵무기 제거를 시도하더라도 이 공격을 고스란히 피해 남아 있는 핵무기로 적국에 보복을 가할 수 있는 핵 보호능력의 확보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번에 북한은 미국을 겨냥해 높은 수준의 핵실험을 하겠다고 공언하긴 했으나 군사력과 첨단정보 기술력의 차이를 고려하면, 미국에 의한 선제적 핵제거 시도는 가상적·이론적으로 상존하는 반면 북한의 핵보호능력은 기초적 수준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즉, 핵을 보유하는 순간부터 북한은 가상의 기습공격으로부터 핵을 보호하기 위해 핵보유 이전보다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를 제거당할 가능성이 두려워 그전에 차라리 먼저 핵을 사용할 수도 없다. 설령 그런 결정을 하더라도 오히려 적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키울 뿐이다. 요컨대 애초에 핵을 개발한 이유도 목적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결국 핵은 북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애물단지가 되고 마는 것이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미국을 포함하여 중국, 러시아도 유엔안보리를 통해 보다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을 시사하고 있는 반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적극적인 경제·식량지원을 할 것을 밝히고 있다. 통합과 화해는 국내정치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명분도 설득력도 당위성도 없는 핵 개발 시도를 도대체 왜 하는 것인가. 핵 포기야말로 북한과 북한정권 스스로를 돕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 [시론] 통상조직 개편, 첫 단추부터 다시 꿰라/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통상조직 개편, 첫 단추부터 다시 꿰라/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 정부 조직의 윤곽이 잡혔다. 경제분야의 성장과 민주화라는 쌍두마차를 이끌고 나갈 기수로 경제부총리제를 신설한 점은 불가피하다.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해 성장동력을 창출하려는 것도 미래지향적이다. 해양수산부의 부활은 해양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그 필요성이 예견된 바 있다. 식품의약품안전 관리기능을 강화한 것도 진정한 선진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필요조건을 달성하자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통상기능을 산업자원 기능과 합쳐 산업통상자원부를 탄생시킨다는 구상은 이해하기 힘들다. 국익을 위해선 “산업을 잘 아는 부서가 통상교섭 업무를 수행해야”하고, “통상교섭과 그에 따른 대책을 한 곳에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게 인수위의 논리다. 업무 효율성 증진에 방점을 뒀다. 이는 변화된 대외통상 교섭의 현황을 간과한 것이다. 1970~80년대처럼 산업진흥과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서 발생하는 통상 마찰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통상 교섭이 진행되던 때에는 산업 지원 부처에서 통상기능도 함께 수행하는 것이 필요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제조업 분야에 대한 집중 지원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며, 대외적으로 방어해야 할 분야는 농수산업 지원정책들이다. 미국과의 소고기 시장 완전자유화 문제는 대표적 통상 현안이고, 2014년 말로 예정된 쌀 시장 개방은 다가오는 최대 현안이다.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우리의 주된 관심은 공산품보다는 민감한 농수산물에 주어진다. 인수위 논리대로라면, ‘산업통상부’가 아니라 ‘농업통상부’를 탄생시켜야 마땅하지 않은가. 물론 주력수출 공산품을 위해 해외 시장의 교역 장벽을 해소해 나가는 일도 통상업무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은 외국 정부의 수입규제 정책에 대한 현황 파악과 국제통상규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일이다. 산업전문가보다 국제변호사의 영역이라는 말이다. 우리 현실에선 산업부도 농림부도 아닌 제3의 기관이 통상 교섭을 담당하는 것이 옳다. 지금은 개방을 통해 국내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글로벌 스탠더드로 정부와 산업의 관계를 맞추는 시대다. 산업 지원 부처의 정책들이 이러한 수준에 맞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해 분쟁을 예방하도록 자문하는 기능이 중요해진다. 산업 지원 부처는 국내 수혜산업의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산업 지원과 통상기능이 결합된다면 같은 부처 내에서 중점적으로 진행되는 지원 정책의 국제적 타당성을 객관적 잣대로 평가해낼 수 있겠는가. 논란이 일자 인수위는 “국제경제 외교”는 외교부에 잔류시킨다고 확인함으로써 외교부 달래기에 나섰다. 실무 조정 단계에서는 통상 현안 중 FTA 정책 및 협상 기능 위주로 산업자원부로 이관시키는 것으로 또 한발 물러섰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을 계속 눌러 입히려는 모양새다. 같은 이슈가 FTA 협상에서 논의되면 산업통상부장관이 나서고, 다른 경제통상 채널에서 논의되면 외교부장관이 나서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말인가. 시대를 역행해 1970~80년대에 맞는 통상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재검토돼야 한다. 외교부로부터 통상기능을 떼어내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차라리 미국의 무역대표부(USTR)처럼 대통령 직속으로, 아니면 총리 직속의 독립기관을 신설해 대외통상경제 기능을 통합적으로 담당케 하는 편이 낫다. 그래야 농림부, 해양수산부와 대조적인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산업자원부가 FTA 정책을 세우고, 협상에서 농수산물 시장 개방을 밀어붙이는 어색한 모양새도 발생하지 않게 되고, 우리나라처럼 외교력이 대외통상 교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에서, 외교적 지원 없이 통상 교섭 부처가 고분분투하는 사태도 일어나지 않게 된다. 국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는지 정부조직법 개정 과정을 지켜볼 차례다.
  • [시론] 250조 넘는 LNG 도입계약, 국민 몰라도 되나/김수덕 아주대 시스템에너지학부 교수

    [시론] 250조 넘는 LNG 도입계약, 국민 몰라도 되나/김수덕 아주대 시스템에너지학부 교수

    우리 경제는 1년 전 수출입 규모가 1100조원을 돌파했다. 그중 총수입액의 3분의1이 에너지 분야에서 발생했다. 우리는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고, 다른 데서 열심히 번 돈의 상당 부분을 털어야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우리가 주방 취사와 한겨울 난방을 위해 소비하는 도시가스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한 것이다. 1986년 시작된 LNG 수입은 2011년 한 해만 3669만t, 금액으로는 약 27조원이라는 막대한 규모로 커졌다. LNG는 2년마다 수급계획을 세워 가스공사가 독점 공급하고 있으며, 도입 계약의 특성상 20년 단위의 상당히 긴 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이 85% 이상이다. 가스공사가 2011년 초부터 1년 반 동안 체결한 LNG 중장기 계약규모는 총 3억 7000만t이 넘는다. 3년 후인 2016년부터 매년 1774만t이 들어올 것으로 추산된다. 3년 후까지의 계약만료 물량 676만t과 과거 10년 평균 소비증가율 7.1%를 고려해도 너무 큰 규모다. 게다가 전 세계가 셰일(shale)가스의 등장으로 향후 가스시장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기에 이런 엄청난 규모의 계약을 진행한 사실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2011년 평균 도입단가 기준으로는 260조원이 넘는다. 최근 한 해 현물시장 도입물량 약 500만t, 북한 경유 예정 러시아 파이프라인 천연가스 700만t, 모잠비크 LNG 420만t, 파푸아뉴기니 800만t, 그 외 북미의 프리포트(Freeport), 캐머런(Cameron), 코브 포인트(Cove Point) 프로젝트 등은 여기에서 빠져 있다. 이를 모두 고려한다면 전 세계 어디에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LNG는 도시가스뿐 아니라 전력, 지역난방용 열병합발전, 상업용 가스냉방, CNG(압축천연가스)자동차, 연료전지용 수소생산, GTL(가스액화연료), 냉동창고, 기타 산업분야에서 다양한 가치사슬(value chain)을 갖는 탄력적인 에너지다. 특히 전력 생산에서도 전기요금의 도매가격을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전체 에너지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이 기대된다. 하지만, 활발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가스공사가 국내 LNG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 때문에 가스시장은 물론 다른 관련 에너지 시장도 경쟁시장의 효율성을 거의 누릴 수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동안 에너지 공기업이 수행한 역할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국내 LNG 도입은 2011년 기준으로 전 세계 25개 LNG 소비국가 중 두 번째이고, 이를 독점 공급하는 가스공사는 단일 LNG 수입사로는 단연 세계 최대다. 그런데도 평균 도입단가가 2010년 이전까지는 항상 세계 최고가격이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계약 결과가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오는데도 가스시장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소비자들이 상세히 몰라도 될까. 적절한 수급분석 아래 도입계약이 체결되었는지, 최소한의 공개적 절차나 논의구조를 거쳐 진행되었는지, 또 1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에 서둘러 그 많은 계약을 체결해야 했던 급박성이 있었는지, 그 구체적 필요성은 정당화될 수 있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셰일가스로 인해 앞으로 싼값에 가스를 도입할 수 있게 되면 우리나라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공약 추진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해마다 반값등록금에 3조원, 5세 이하 무상보육에 7조원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한두 사람의 펜대에서 계약이 체결되는 순간 발생하는 도입단가 차이로 앞으로 20년간 가구당 수백만원, 전체 국민경제로는 수십조원에서 100조원 이상 추가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에너지 전문가라고 자임하는 필자가 신문지상을 통해서만 관련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두렵기까지 하다.
  • [시론] 기본에 충실한 대입제도의 개혁을 바라며/정끝별 명지대 교수·시인

    [시론] 기본에 충실한 대입제도의 개혁을 바라며/정끝별 명지대 교수·시인

    “교과서는 왜 그리 많고 전형은 또 왜 그리 많은 건데? 우리 땐 교과서 하나에, 학력고사 하나면 됐잖아. ‘그것만 하면 된다’고 확신하는 순간 공부할 놈들은 공부하게 되는 거 아냐? 가난하거나 놀았던 놈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고.” “그러게. 그렇게 ‘다양하게’ 뽑아서 대학에서 가르치는 건 뭔데? 대학 나와 취직할 때 입사기준은 또 뭔데? 결국은 출신학교와 영어점수 아냐?” “어떻게 해도 똑같아, 서연고-서성한이-중경외시, 이렇게 대학서열을 외워야 하는 한 학연이 ‘빽’이고 학벌이 모든 척도가 될 수밖에 없어.” 2013년 대입전형이 끝나가는 이즈음 고3 학부모들의 안부(!)를 물으며 동병상련했던 얘기들이다. 뭐든 하나만 잘하면 대학에 간다? 3000개가 넘는 대입전형들이 내세우는 명분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간다. 3년간의 학생부(내신), 수능, 구술면접, 논술/적성평가, 자기소개서(자소서) 및 추천서와 그에 부합하는 스펙들 중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수시 6회, 정시 3회나 응시할 수 있는데 특정 전형에 ‘몰빵’하는 것은 도박과도 같다. 입시를 ‘선도’하는 서울대의 경우 정원의 80%를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수시로 뽑겠다고 한다. 학생부, 자소서 및 추천서와 그를 입증하는 증빙자료들을 제출하고 수능최저등급이 있으니 그것들을 죄다 반영한다는 것일 테고 그것들의 반영비율이나 기준 또한 안갯속이다. 설상가상 수능성적 발표 후 구술면접을 실시하다 보니 수능점수까지 본다는 괴담이 도는 실정이다. 다양한 전형과 여러 번의 응시 기회를 통해 대학에 간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많은 전형들 중 자신의 조건에 적합한 전형을 찾을 수 있는 정보자료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거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가려면 입시컨설팅 ‘전문가’의 상담은 물론이고 전형에 맞는 사교육이 필수가 되었다. 입시에 ‘정보’ ‘전략’ ‘첩보’ 등의 꼬리표가 붙고 있으니 걸음걸음이, 단계단계가, 전형전형이 죄다 돈싸움이다. 여기서 밀리면 자칫 맞는지 안 맞는지, 붙을지 떨어질지 암중모색인 채로 선택하기 십상이다. 결과적으로 수험생 스스로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당락 결과를 납득하기 어려워하다 보니 애꿎은 재수생들만 양산하게 된다. 기회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입시는 찐 고구마나 삶은 호박이 아니지 않은가. 여기저기 찔러 보다 떨어지면 정보 부족의 탓으로 돌리게 되는 ‘입시로또’, ‘입시도박’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수시의 전형 수, 선발비율, 응시 횟수 및 기간 등을 대폭 줄여야 하며 평가기준 또한 선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과과정을 넘어서는 논술/적성, 다기다종의 스펙들이 평가기준이 되는 전형들은 전면 재고해야 한다. 이렇게 많은 전형들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학이 수능최저등급을 두거나, 수능성적 발표 후 전형을 실시하거나 합격자를 발표하는 걸 보면 결국은 수능을 중시한다는 방증이다. 이럴 바에야 메인 입시는 정시가 되어야 하고, 그 기준은 수능성적이 되어야 한다. 수능성적이야말로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객관적인 평가기준이자 선택기준이 아니겠는가. 너무 많은 대학, 너무 많은 대입전형과 기준, 너무 많은 응시 기회가 오히려 독이다. 피로한 미로 같고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 같다. 대학이 그렇게 많으니 나만 못 가면 낙오자고, 전형과 응시 기회가 그렇게 많으니 나만 떨어지면 전략 실패거나 불운이다. 대학과 사교육 시장의 배만 불리는 이 혼란스럽고 변덕스러운 대입제도가 개혁되지 않고는 세계 출산율 최하위, 학교폭력, 청소년문제, 부동산 거품, 지역발전의 불균형과 같은 고질적 문제들 역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바라건대 백년대계는 차치하고 십년대계로라도 기본과 근본에 충실한 대입개혁정책이 모색되기를 희망해 본다.
  • [시론] 혁신 주도자가 되기 위한 대학의 선택/이우일 서울대 공대학장

    [시론] 혁신 주도자가 되기 위한 대학의 선택/이우일 서울대 공대학장

    정부조직 개편의 핵심은 효율성을 추구하되 지속 가능한 국가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대학 발전을 위한 제도 및 정책 수립과 재정지원 역시 효율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인재 양성을 할 수 있도록 동일 부처에서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즈음 세간의 가장 큰 관심사 중의 하나는 인수위원회 활동이다. 특히 정부조직 개편은 향후 정부 예산의 효율적 집행을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의제다. 하지만 사안이 중대한 만큼 신중한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개편에 대한 전략이 명확하지 않고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다행히 변화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개편한다는 소식인데, 올바른 방향이다. 이런 저런 안들이 단편적으로 보도되고 있으나 그 가운데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인 듯하다.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래 먹거리를 마련한다는 뜻에는 모든 국민이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에 따라 예상되는 부처 간 소관 업무의 정비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개진되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든 확실한 것은 소관 업무의 정비 역시 지속적으로 국가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명확한 목표와 전략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 경제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과학기술 지식의 창출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의 성장 전략은 ‘중간진입’으로 요약되는 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이었다. 원천 기술의 확보보다 이미 알려진 기술의 개선으로 승부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우리의 강력한 생산기술을 기반으로 이러한 전략은 성공을 거두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세계 1위인 제품들이 생겨났고, 몇몇 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애플의 삼성전자에 대한 소송처럼, 국제사회는 우리를 더 이상 만만한 추격자가 아니라 강력한 경쟁상대로 인식하는 상황이다. 선진국가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은 우리가 꿈에 그리는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한 과정이다.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세상에 없던 제품과 기술을 우리의 손으로 창조해 내는 혁신 주도자(leading innovator) 역할을 해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우리 경제의 과도기적 도약단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요소 중의 하나는 혁신을 주도하고 지식을 생산할 인재 양성이다. 대학의 교육 및 연구 역량의 제고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월드뱅크의 고등교육조정관인 자밀 살미가 지적한 것처럼 세계 수준의 대학을 육성하기 위한 3대 요소는 우수한 인적자원(교수·학생), 풍부한 재정, 적절한 제도 및 지배구조이다.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요소들이다. 우수한 교수의 확보를 위해서는 풍부한 재정이 필수적이며, 잘 정비된 제도가 우수한 교수 및 학생의 유치를 견인할 수 있다. 대학들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반값등록금 정책이 현실화되면 정부 의존도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재정 지원을 비롯한 각종 정책들은 일관된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일 부처에서 담당해야 하며 그래야 정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정부는 직접적인 재정지원 이외에 국가장학금, BK사업 등 각종 사업을 운용해 왔고 앞으로도 이에 준하는 재정 지원을 해야 할 것 같다. 만약 재정 지원 사업들이 사업별로 담당 부처가 다르다면 국가의 인재 양성 철학과 정책 기조에 혼선이 생길 우려가 매우 크다. 대학 입장에서도 사업별로 다른 평가 기준과 지표를 맞추느라 평가 준비에 불필요한 행정력을 투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장기 발전 방향 수립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조직 개편의 핵심은 효율성을 추구하되 지속 가능한 국가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대학 발전을 위한 제도 및 정책 수립과 재정 지원 역시 효율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인재 양성을 할 수 있도록 동일 부처에서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 재정 지원과 관련해 효율적인 정책 집행을 위해서는 사업별로 부처마다 나눠 갖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시론] 안보 위협에 무덤덤한 국회/김열수 성신여대 교양교육원 국제정치학 교수

    [시론] 안보 위협에 무덤덤한 국회/김열수 성신여대 교양교육원 국제정치학 교수

    한국 국방비는 지난 10년간 GDP의 2.8%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올려주어도 모자랄 판에 국회는 오히려 국방비를 깎았다. 국방비 삭감에 대한 진지한 토의도 없었다. 2013년도 예산이 해를 넘겨 국회에서 통과되었다는 뉴스 자막이 나왔다. 그 다음 자막은 국방비가 대폭 삭감됐다는 내용이었다. 차기 전투기, 대형 공격헬기, 해상 작전헬기 등 구매 사업 비용이 2000억원 이상 삭감됐고 전차, 장거리공대지유도탄, 장거리대잠어뢰 사업 등에서 1231억원이나 깎였다. 무려 3000억원 이상의 전력증강비가 삭감된 것이다. 숨 고를 시간도 없이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도 발표되었다. 그는 “군력(軍力)이 곧 국력이며, 군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길에 강성국가가 있고 인민의 행복이 있다”고 했다. “첨단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이 군사력을 강화하자고 발표한 날, 한국 국회는 국방예산을 대폭 깎은 것이다. 지난해 12월 미 의회도 2013년도(2012년 10월~2013년 9월) 국방예산을 통과시켰다. 재정절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를 두고 여야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던 때라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해 1월 페네타 국방부 장관은 향후 10년 동안 4879억 달러(약 516조 1982억원)의 국방비를 감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2013년도 국방비가 대폭 감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초 2013년 국방비를 약 6130억 달러 수준으로 계획했다. 그러나 의회에 제출할 때 이보다 100억 달러 이상 늘어난 6238억 4800만 달러를 요청했다. 당연히 의회에서 국방비 삭감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미 상원은 지난해 12월 ‘2013년 국방수권법’을 통해 정부가 제출한 국방비가 안보상황 대처에 미흡하다고 판단해 오히려 1억 5200만 달러나 증액시켰다. 한국 국회가 깎은 반 이상을 올려주었던 것이다. 일본도 방위비를 늘리고 있다. 일본의 전통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1%를 넘기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최근 10년 동안 일본의 방위비는 거의 정체되었다. 그러나 아베 정부가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국의 위협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4월부터 시작되는 2013년도 방위비가 늘어난다. 지난해에 비해 1200억엔(약 1조 4329억원) 늘어난 4조 7700억엔이 편성될 전망이다. 아베 정부는 그것도 모자라 추가경정예산안에 방위비 2124억엔을 편성했다. 패트리엇(PAC3) 미사일 도입, 초계 헬리콥터 도입, 중거리 지대공 유도탄 구입 등을 위한 예산이다. 정규예산과 추경을 통해 늘리는 예산이 무려 3324억엔이다. 한국 국회가 깎은 국방비의 약 10배 이상을 증액시킨 것이다. 북한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 의회나 일본 의회에 비해 한국 국회는 태평하다. 한국이 처한 안보 환경을 낙관적으로 보는 것도 그렇고, 자기들 스스로 여유를 즐기는 것도 그렇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고위험 국가’로 분류된다. 굳이 세계로부터 평가를 받지 않더라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을 통해 얼마나 위험한 국가에서 살고 있는지를 깨닫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매년 두 자릿수의 국방비를 증액해 나가는 중국을 이웃에 두고도 이를 못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주변국의 위협을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는 이스라엘은 GDP의 6%를 국방비에 투입한다.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못할 것 같은 싱가포르도 GDP의 4% 이상을 국방비에 투입한다. 그러나 한국 국방비는 지난 10년간 GDP의 2.8%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올려주어도 모자랄 판에 국회는 오히려 국방비를 깎았다. 국방비 삭감에 대한 진지한 토의도 없었다. 수많은 민원성 쪽지가 폭탄이 되어, 예산을 깎아도 불평할 것 같지 않은 국방부를 정조준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최근 한 달 사이에 미국, 한국, 북한, 그리고 일본에서 일어났다. “국방예산을 깎아 죄송하니 우리 외유비를 없애 국방비에 보태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웃음 짓는 모습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국가안보엔 원래 감정이 없다. 심해도 너무 심한 것 같아 해 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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