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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부정청탁 금지법, 이젠 국회가 나설 때/최진욱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시론] 부정청탁 금지법, 이젠 국회가 나설 때/최진욱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한국은 세계 15위권의 경제력을 보이고 있다. 1960년대 초반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채 되지 않은 최빈국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경제 성장을 한 것은 가히 기적과도 같다. 반면 2012년 정부의 부패 정도를 나타내는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는 세계 45위에 그쳤다. 최근 전·현직, 직위, 부처를 막론하고 연일 쏟아져 나오는 공직 사회의 부패 사건은 청렴에 관한 우리나라의 현 주소이다. 부패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공직자가 개입되어 있다. 공직 사회의 부패를 척결하지 않는 한 부패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부패가 발생하는 복잡성만큼이나 그 해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에 가담한 공직자에 대한 예외 없는 처벌과 함께 부패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부패 인식에 관해 선진국 수준으로 평가받는 홍콩과 싱가포르도 과거 극심한 부패를 그렇게 해결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부패 방지를 위한 중요한 법 제정을 추진하였다. 공직자가 알선·청탁이나 사적인 이익에 매몰되어 공직을 개인적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부정청탁 금지법)이 그것이다. 그렇게 추진되었던 이 법이 입법예고 이후 1년 동안 논의를 거쳐 드디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국회에 제출되었다. 입법예고 기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에 비해 과잉처벌을 우려하는 정부 부처와 협의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안이 원안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적 시각도 제기되고 있는 등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공직자가 금품을 수수할 때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다. 원안에서는 1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수수한 경우에는 형사 처벌, 1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과태료를 물리도록 하였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에서는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직위나 직책 등에서 유래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통하여 금품을 수수한 경우는 형사 처벌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그 외에 직무와 관련 없는 금품은 기부, 후원 등 명목 여하를 불문하고 과태료로 제재한다. 정부안은 무조건 공직자를 형사 처벌하는 것보다, 엄하게 처벌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기준점을 무엇으로 정할 것인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직무관련자가 제공하는 금품은 향후 청탁을 위한 일종의 ‘보험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100만원보다 적은 금액이라고 해도 엄격한 잣대로 처벌해야 하는 것이 옳다. 이번 정부안은 이러한 부분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원안에 비해 약화된 것만은 아니다. 후퇴, 반쪽짜리 논쟁보다는 우리 사회의 청탁 관행과 공직부패 근절을 위해 향후 국회에서 부정청탁금지법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고 국민의 기대를 담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할 때이다. 실제 이 법은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 금지만이 아니라 부정청탁의 금지,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라는 의미 있는 장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부정청탁 금지는 일반 공직자보다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조항이다. 최근에도 한 국회의원이 지역구 교육감에게 인사 청탁하는 문자를 보낸 것이 문제된 적이 있다. 이제 이 법의 통과는 국회에 달려 있다. 우리 사회의 불신 중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장 무겁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고 이 법의 통과에 나서야 할 때이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 제출된 부정청탁금지법이 국회의원의 손에서 온전히 그 초심을 지켜갈 수 있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희망해 본다.
  • [시론] 우리 역사 교과서 문제의 핵심은…/이호철 소설가·예술원 회원

    [시론] 우리 역사 교과서 문제의 핵심은…/이호철 소설가·예술원 회원

    내가 우리 작단에 소설가로 데뷔한 뒤 처음으로 특별 글 청탁을 받아 응낙했던 것이 바로 1956년 봄인가, 이 서울신문이었다. 그로부터 어언 60년 가까이 지나 모처럼 같은 서울신문에서 글 청탁을 받고 보니, 82세에 이르러 뭉클한 감회도 없을 수가 없고, 1970년대와 1980년대 두 번에 걸친 감옥살이를 비롯해 필자대로 파란만장하게 겪었던 숱한 일들이 새삼 한 아름으로 당겨온다. 그리하여 모처럼 기회가 닥친 이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 것인가. 오늘 2013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간곡하고 당면한 그리고 간절한 이야기를 내밀고 싶은데,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점을 두고 며칠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얻어낸 결론은 다름이 아니었다. 요즘 항간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우리네 중·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 문제였다. 그렇잖아도 지난 7월 31일자 어느 신문에도 ‘청와대, 새누리당, 교육부가 검토 중인 역사교육 강화 4개 방안’이니, ‘국사(國史), 국사학과 독점 안 된다’느니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 점을 한번 이 자리에서 필자대로 제기해 볼까 한다. 1945년 해방 뒤의 우리네 역사는, 우선은 남북 양측 권력의 실황(實況)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확실한 답이 나온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이를테면 남쪽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북의 권력자 김일성, 이 두 사람만을 놓고 정면으로 한번 마주 비교해 보자. 1947년에 이승만이 ‘정읍(井邑) 발언’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했을 때 당시 김구·김규식을 비롯해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반대의 물결이 회오리쳤었는데, 바로 그때 북에서는 그곳에 주둔했던 소련군 지휘하에 그 1년 전인 1946년 2월 8일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라는 단독정부가 이미 출범해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갖은 무리한 짓까지 서슴지 않으며, 좌익 쪽 스탈린의 졸개들인 박헌영 일당을 송두리째 탄압해 이 남쪽의 공산화를 막아냈던 것이었다. 1948년 4·19를 기해 북의 평양에서 북한 정권 주관으로 남북 협상이라는 것이 열렸을 때도 김구·김규식을 비롯한 남쪽 요인 여럿이 북으로 들어가지만 김구 일행은 그냥 돌아오고, 벽초 홍명희는 그대로 북에 남아 그해 8월에는 박헌영과 함께 북한 정권, ‘공화국’의 부수상이라는 자리를 맡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66년이 지난 현 2013년 시점에 와서 새삼 돌아보면, 그때 이승만이 거의 혼자 힘으로 해 냈던 그 일, 스탈린 휘하의 박헌영 일당을 무찌름으로써 우리 남한의 ‘공산화’를 막아냈던 그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리고 어떤가. 그 이승만은 지금도 그 뒤의 박정희·김대중과 함께 동작동의 묘소 속에 묻혀 있고, 부산 토성동 ‘이승만 기념관’이라는 곳에 가 보아도 그지없이 조촐하고 질박하지만, 북의 김일성과 김정일은 어떤가. 저들 부자(父子)의 시체는 엄청난 거금을 들여 보존, 온 세계에 유례가 없는 호화찬란한 사후 궁전까지 조성함으로써 전 인류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어찌 한 나라의 권력이라는 것이 저 지경까지 이를 수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바로 5년 전인 2009년에 우리네 남북이 겪어온 지나간 역사를 그 실상(實狀)대로 소설 형식으로 다룬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이란 책 한 권을 출간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교육부를 비롯해 관련 부처 담당자들이 관심을 가져준다면, 새로 책 제목부터 ‘손쉽게 읽을 우리네 근·현대역사’ 같은 것으로 고쳐 전국 중고생들부터 읽혔으면 싶다. 아무쪼록 관련 부처 담당자들부터 이 책을 한번 읽어주었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다.
  • [시론] 정치권의 의사결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시론] 정치권의 의사결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흐림, 폭우, 갬의 연속이다. 정치권이 마치 지루한 중부지방의 장마와도 같다. 장마는 다음 주에 끝난다지만 정치권은 도무지 서로 물러날 기색이 없다. 나누기나 뺄셈의 정치만 있지 덧셈의 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이다. 종이 위에서는 1 나누기 2는 2분의1이 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2분의1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한 개의 사과를 똑같이 2등분하여 나눠주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다. 이를 의사결정론에 결부시켜 2007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후르비치 교수 등이 메커니즘디자인이론으로 증명한다. 즉, 어느 한쪽이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때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대상 집단의 불만족 내지 반대에 의해 당초 의도했던 정책 효과가 달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을 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결정의 경우, 정책결정자는 자신의 의도와 다를 수도 있겠으나 대상 집단에게 우선적 선택권을 부여해야만 둘 다 만족하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는 정보의 비대칭성에 대한 연구 결과로, 201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의견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던진 ‘분열된 사회가 왜 위험한가’라는 화두는 우리 한국사회, 특히 정치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 야당이라는 한자말을 풀이하면 들판에 있는 도당이고 영어의 의미는 반대를 위한 도당이다. 야당이 여당과 정부에 반대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여당이 친정부적이고 청와대에 편을 드는 것 역시 당연하다. 경영자나 노조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탓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합의를 이루기 위한 갈등 현상을 나쁘게만 볼 수 없다. 문제는 합의를 위한 갈등이 아닌, 상호 간 질시(疾視)와 적개심의 정치로 인한 갈등이 난무해 합의 과정을 방해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본래 갈등이란 일상생활의 한 부분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며, 갈등의 현상 자체 역시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중립적인 것이다. 오히려 갈등이 생산적으로 다루어지면 사회관계에 순기능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다만 갈등이 비생산적으로 다루어지면 폭력과 같이 기존 사회 관계에 역기능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이든, 사회경제 영역이든 상호 간의 갈등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방법, 즉 갈등을 관리 내지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쯤 애기하면 명석한 우리 정치권이나 발 빠른 행정가들은 합의를 위한 제도 혹은 기구를 만들고자 하거나 기존의 것을 개조해 합의체 내지 협력기구를 만들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틀렸다. 지금까지 이들 기구나 제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문제는 갈등을 관리해 합의를 도출하려고 모인 참여자들 자체가 동기가 불순하다는 데 있다.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고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모두 정치권에서 합의에 의해 시작된 일이다. 국민은 정치권이 장마와 같이 맑음과 흐림이 반복되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합의는 당사자가 있는 게임이며 과정이지 산출물이 아니다. 즉, 합의가 끝이 아닌 시작인 것이다. 둘 이상의 당사자 간 합의의 과정은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며, 최소한 둘 이상의 주체가 갈등 당사자가 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소통이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합의를 통해 상대방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이 갖고 있는 강점, 그리고 상대방의 자원과 역량에도 의존하면서 나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다음 주에 끝나는 장마처럼 폭염도 좋으니 정치권의 맑음을 보고 싶다.
  • [시론] 일본과 성장률 비교나 하고 있을 때인가/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

    [시론] 일본과 성장률 비교나 하고 있을 때인가/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

    한국의 분기별 전기 대비 경제성장률이 세 분기 만에 근소한 차이로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무슨 큰 성과라도 이룩한 것인 양 보도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지난해 4분기 한국과 일본이 똑같이 전기 대비 0.3% 성장한 후 금년 1분기에는 한국 0.8%, 일본 1.0%로 일본이 한국을 앞질렀으나 2분기 속보치로는 한국이 1.1%인 반면 일본은 0.8%에 그쳐 한국이 다시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년 동기 대비로 한국은 금년 1분기 1.5%, 2분기 2.3% 성장한 반면 일본은 전기 대비 연율로 보면 금년 1분기에 4.1% 성장하고 2분기에도 3.1~3.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어 여전히 한국을 앞지르고 있다. 연간으로 보면 한국과 일본의 성장률 격차는 2003년 이후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해부터는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2012년 한국은 2.0% 성장한 반면 일본은 1.9% 성장해 격차가 0.1% 포인트밖에 나지 않았다. 금년에도 한국은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2.1(언스트앤드영, BNP파리바은행)~2.8%(한국은행) 성장이 예상되는 반면 일본은 아베노믹스 덕분에 종전 전망보다 0.5% 포인트 높은 2.0% 성장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은 전망하고 있다. 결국 금년에도 한국과 일본은 공히 2%대 성장으로 큰 격차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은 2만 2721달러, 일본은 4만 6736달러였다. 일본 1인당 국민소득이 현재 한국과 비슷했던 시기는 1987년(2만 367달러)과 1988년(2만 4604달러)이었다. 이 두 해의 평균성장률은 5.6%였다. 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이 1987년에 처음으로 2만 달러대에 진입해 1992년에 3만 달러대로 올라섰다. 2만 달러대였던 1987~1991년 연평균 성장률은 5.1%였다. 말하자면 2만 달러대는 아직 역동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대에 진입한 1992년부터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장기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한국은 2007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대에 진입했다. 그 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2만 달러 이하로 내려갔다가 2010년부터 2만 달러대로 복귀해 지난해 2만 2721달러를 기록했다. 2007년 이후 지난 6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3.3%였다. 특히 문제는 2012년 이후 성장률이 2%대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라면 2010년대 말쯤에 가서야 겨우 3만 달러대에 진입하게 돼 2만 달러대가 13~14년간 지속될 전망이다. 아직 역동적으로 성장해야 할 시기에 성장동력이 약화되어 1인당 소득 4만~5만 달러대 국가나 경험할 수 있는 저성장의 늪에 빠져 조로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왜 이렇게 조로화하고 있나. 원인은 투자 부진이다. 2003년 이후 연평균 총고정자본형성 증가율은 1.7%에 그치고 있다. 1970년대 연평균 17.9%의 10분의1 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5월 이후 월평균 설비투자증가율은 -9.6%에 이를 정도로 최근 설비투자는 빙하기다. 2분기 성장률 1.1%만 하더라도 설비투자증가율이 -0.7%인 가운데 정부 지출이 2.4% 증가하여 이룬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투자 회복을 위한 전향적인 대책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금리 소폭 인하와 미온적인 기업투자 활성화 대책으로는 어림도 없는 실정이다. 반면 하도급법, 일감몰아주기법, 순환출자금지법, 금산분리 등 각종 경제민주화 관련법과 상법개정안에다 통상임금, 비정규직 등 노사문제도 갈수록 격화되고 있고 아베노믹스로 수출환경도 어려워지면서 기업투자는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1분기 성장을 주도한 정부 지출도 금년 중 20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세수 감소로 인해 지속성이 불확실한 실정이다. 저성장 고착화와 조로화 저지를 위한 전향적인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 [시론] 디지털 증거 조작의 문제점/김인성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시론] 디지털 증거 조작의 문제점/김인성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국가정보원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간첩과 종북주의자 색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고 있다. 국보법은 인간의 생각을 처벌하는 법이므로 그 어떤 법 조항보다 집행의 엄격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서울시 임시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탈북자 유우성씨는 지난 1월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국정원은 그가 지난해 1월 22일부터 3일간 북한에 잠입했다며 그의 하드디스크에서 찾아 낸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애초에 증거가 될 수 없었다. 북한이 아니라 중국 옌볜(延邊)에서 찍은 사진임이 사진 내부에 분명히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사진 내부에는 ‘호환 가능한 이미지 포맷’(EXIF)이란 메타 정보가 존재한다. 이를 살펴보면 언제 어떤 카메라로 찍었는지 알 수 있다. 위치 정보(GPS)가 기록돼 있다면 어디서 찍었는지도 알 수 있다. 유씨의 사진은 아이폰으로 찍은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아닌 옌볜에서 찍었다는 위치 정보도 기록돼 있었다. 디지털 포렌식(증거 조사) 작업자들은 법원에서 공인하는 디지털 포렌식 프로그램을 사용해 작업한다. 이 프로그램은 사진 파일의 모든 메타 정보를 보여 주므로 국정원의 작업자는 이 사진이 언제 어디서 찍혔는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치 정보는 사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컴퓨터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사진에 위치 정보가 들어 있다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더욱이 국정원은 정보를 은닉하고 암호화해서 적국에 전달하는 간첩들을 색출하는 기관이고, 디지털 수사관들은 다양한 수법으로 감춰진 디지털 자료를 해독하는 전문가들이므로 디지털 사진의 위치 정보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일반 형사 사건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건에서 이런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국정원은 디지털 증거 사진을 A4 용지에 프린트해서 법정에 제출했다. 물론 사진의 메타 정보도 함께 제출했지만 무료 사진 보기 프로그램을 사용해 찍힌 날짜와 카메라 기종 정도만 보여줬다. 변호인들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또 다른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의뢰한 끝에 이 사진이 찍힌 곳이 중국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정원이 피의자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사진을 증거물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이다. 이것도 변호인 측에서 다시 수행한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서야 겨우 밝혀낼 수 있었다. 국정원이 제출하지 않은 사진은 문제가 된 기간 중인 23일 저녁 유씨가 사람들과 함께 옌볜의 노래방에서 찍은 것이었다. 유씨가 22일부터 24일까지 북한에 있었다고 했던 공소장에 끼워 맞추기 위해 디지털 수사관들이 이 사진을 숨긴 것으로 판단된다. 변호인 측은 노래방 사진을 법정에 제출하고 국정원이 제출한 사진들도 모두 옌볜에서 찍은 사진임을 밝혔다. 이를 근거로 국정원이 조작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자 국정원은 변호인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이렇게 국정원이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국보법을 위반한 자는 수사에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어쨌든 처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원칙이 훼손되고 나면 법 집행에서 그 어떤 공정성도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디지털 증거를 가장 먼저 다루는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들이 국정원과 검경의 요구에 의해 증거를 조작해도 처벌받지 않는 현실이 개선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공안 사건과 국보법 사건에서 증거를 취사선택하고 왜곡과 조작까지 서슴지 않는다. 민간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들도 생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검경과 국정원의 뜻을 거스르지 못한다. 현재 한국에는 변호인이나 재판부를 위한 공정한 포렌식 전문가가 전무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범인의 지문을 바꿔치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같은 일이 디지털 포렌식 분야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한국의 정보기술(IT) 분야뿐 아니라 국가 신뢰성까지 무너질 것이다.
  • [시론] 종편 이제 원위치 찾아야/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시론] 종편 이제 원위치 찾아야/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미디어 관련법이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헌법재판소는 국회 개정 절차에 위헌,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그 해결의 공은 국회로 넘겼다. 날치기의 주범이자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이를 수용할 리 없었고 방송법과 신문법은 유지됐다. 최대 수혜자는 뉴스를 하는 방송에 진출하고 싶었던 신문사업자들이었다. 당시 방송시장의 환경을 고려하면 한 사업자도 버겁다는 학계와 업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4개 사업자를 새로 승인했으니 말이다. 물론 주요 신문사업자들이 대주주인 종편(종합편성채널)은 경영 성적표를 내세우며 자신들이 수혜자가 아니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종편의 현재 성적표와 무관하게 그 과정과 절차는 정확하게 따지고 넘어 가야 한다. 다시는 이 같은 무리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곧 종편의 재승인 절차가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자격 미달이면 취소도 불사해야 한다. 애초 방송시장 확대 명분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다. 방송시장이 성장잠재력이 있다는 이명박 정부의 초기 예측은 수치상 오류임이 곧 밝혀졌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지상파의 여론 독과점을 문제 삼았지만 사실 신문시장의 여론 독과점이 더욱 심했다. 더군다나 신문시장의 최강자들이 방송시장에 진출한다면, 전체 여론 시장의 집중도는 더 높아질 것이 분명했다. 종편의 승인 심사 과정도 문제였다. 공정성을 위해 유일하게 밝혔다는 심사위원장 이병기 교수가 당시 유력한 대선 예비 후보였던 박근혜 의원이 설립한 ‘국가미래연구원’에 이름을 올린 것이 알려졌다. 이것과 작년 대선 기간 종편이 끊임없이 공정성 시비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무관하지 않다고 하면 억울할까? 그렇다면 당시 심사위원장을 교체했어야 마땅했다. 또 묘하게도 종편 승인 과정에서 탈락한 사업자들은 정량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였고, 승인 사업자들은 비계량적인 정성 평가에서 결과가 좋았다. 이런 우연의 일치가. 승인 이후에는 사업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채널 배정에 대해 최시중 당시 방통위원장이 소위 황금연번채널을 주어야 하고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를 유예할 필요가 있다는 등 특혜를 언급하더니 그대로 시행됐다. 신규사업자만 들어오면 방송시장이 확대될 것처럼 주장하더니 승인 후에는 오히려 특혜를 준 것이다. 이미 법적으로 방송권역, 의무전송, 국내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비율, 중간광고 허용 등 동일 방송시장에서 경쟁하는 지상파에 비해 많은 혜택이 보장돼 있는 종편에 또다시 특혜를 준 것이다. 특혜의 백미는 방송광고를 미디어렙을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지상파의 경우 방송광고를 미디어렙이라는 판매대행사를 통해 판매하도록 하고 있다. 방송사와 광고주의 유착을 억제하여 방송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종편은 광고 판매에 유리하도록 공정성 장치를 풀어 주었다. 최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쾌거를 이루었다. 승인 과정의 의혹을 풀기 위해 오랜 재판 끝에 방통위가 공개를 거부한 승인 심사 자료 공개 결정을 받아냈다. 12만 쪽에 이르는 자료 분석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이미 공정성을 위해 사업계획서에서 제안했던 사안들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종편은 이명박 정부의 특별 관리 속에 탄생한 기형적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 승인 심사가 공정했는지, 승인 과정에서 법적 오류는 없었는지에 따라 별도의 조치가 필요할 뿐 아니라 재승인 심사에서 승인 시 약속 사항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엄격하게 따져 이에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또 동일 시장, 동일 경쟁 조건의 원칙에 따라 특혜 요소는 하루빨리 개선해야만 한다. 그것이 방송의 공정 경쟁을 보장하고 건전한 방송 체제를 유지하는 길이다.
  • 임진왜란 승전은 소나무 덕분?

    임진왜란 승전은 소나무 덕분?

    신목(神木). 민간신앙에서 ‘신령이 강림하여 머물러 있다고 믿는 나무’를 뜻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는 소나무를 한반도 수호신의 반열에 올려놓는다는 얘기다. 소나무야 오래전부터 한국인에게 그 어떤 나무보다 친근한 나무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나무로, 전체 산림 면적의 27%를 차지한다. 혹한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과 옹골진 자태는 강인한 기백과 지조의 상징으로 즐겨 회자됐다.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에는 못 들어도 추운 계절의 세 벗인 ‘세한삼우’(소나무, 매화, 대나무)로 사랑받아왔다. 그런데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소나무가 조선을 구했다는 것이 저자인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의 주장이다. 나아가 소나무에 대한 이해가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까지 강조하니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소나무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기로서니 어떻게 조선의 생명을 지킨 주역으로까지 격상시킬 수 있을까. 먼저 저자의 이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남 창녕의 화왕산 인근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농사에 대한 애정과 역사에 대한 관심을 접목시켜 중국농업경제사를 전공했다. 이후 인문학과 식물, 특히 나무를 결합하는 공부에 몰두해 ‘세상을 바꾼 나무’‘나무 열전’‘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 등 나무로 역사와 문화를 읽는 저술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은 역사학자이자 나무 연구가인 저자가 소나무와 한반도, 그중에서도 조선의 역사에 얽힌 인연을 집중적으로 파고든 결과물이다. 시작은 소나무로 만든 전함에 대한 관심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검토하던 저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왜구가 한반도에 출몰한 이유 중 하나가 소나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내용이었다. 세종 3년(1421) 8월 24일 일지를 보면 전라도 관찰사가 임금에게 왜선 한두 척이 해도에 드나든다고 보고하면서 그 까닭으로 왜구가 소나무로 만든 배를 노리고 있다고 적시했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을 통해 저자는 신라때부터 한반도를 위협하는 존재였던 왜구가 조선 양민의 재산을 약탈하는 한편으로 소나무와 소나무로 만든 병선을 호시탐탐 노렸음을 처음으로 조명하고 있다. 소나무로 만든 조선의 전함은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조선 왕조의 핵심 국토방위 전략이었다. 일본 병선과의 성능 비교와 개선 노력은 조선 전기 내내 정부의 역점 사업이었다. 그러나 선박관리 소홀과 담당자들의 비리, 목재 공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민폐로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소나무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가장 큰 문제였다. 조선은 2, 3차 대마도 원정을 통해 왜구를 선제 제압하기도 했으나 삼포왜란, 을묘왜변 등을 겪으며 왜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이어갔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은 국가 최대의 위기였다. 저자는 임진왜란을 ‘조선의 거북선과 일본의 안택선 간의 싸움’이란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거북선이 승리한 이유로 전함의 재료인 소나무의 우수성에 주목했다. 왜군의 주력 함선인 안택선은 빠른 속도가 장점이지만 소나무보다 재질이 무른 삼나무로 만들어져 거북선과 충돌시 쉽게 부서졌다. 왜구 침입에 맞서기에 조선의 병선 체제는 충분치 못했다. 하지만 소나무라는 우수한 선박 재료, 전술적 우수성을 지닌 거북선과 판옥선, 그리고 뛰어난 전략과 리더십으로 해전을 진두지휘한 이순신 장군이 시너지 작용을 일으켜 막강한 병력의 일본 수군에게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책은 이 밖에 조선시대 소나무의 쓰임과 남용 사례 등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왕가의 관곽 제작과 궁궐 신축 및 보수, 사찰 건립과 목장 조성, 기근 시 구황식품으로 활용된 사례들을 사료를 통해 정리했다. 또한 조선 왕조가 대를 이어 수시로 정책을 보완하면서 소나무 보호 노력에 힘쓴 과정도 곁들여 다각적인 이해가 가능하도록 했다. 저자는 “역사학자들은 나무를 임학의 영역으로 생각했을 뿐 역사학의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역사학도 생태사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소나무만으로 조선시대의 산림 정책과 전함을 분석한 것은 생태사학에 대한 시론”이라고 말했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시론]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으며/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시론]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으며/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7월 27일 우리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는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바뀐 60년 세월, 정전협정 당시 갓 태어났던 아이가 회갑을 맞기까지 하루도 전쟁 위협에서 벗어나 보지 못하고 살아온 허망하고 억울한 세월 60년, 그 세월을 뒤로하고 또다시 60년의 ‘생의 주기’를 시작하는 지금, 우리는 아직도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60년간 우리가 겪은 수많은 사건들과 고통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최근에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을 겪었고, 지난 3~4월 키리졸브와 독수리훈련 기간에는 최근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고 실질적인 전쟁 위기를 경험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가 정전체제하의 삶에 익숙한 탓으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못된 짓을 하는 북한을 처벌하는 정책’에 국민들이 길들여져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정치적으로 손쉬운’ 정책인 ‘압력과 제재’를 선택한 탓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됨으로써 우리는 아직도 이 땅을 서성이는 전쟁의 유령과 함께 살고 있다.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한반도 문제’라는 ‘병’ 때문이고, 이 병의 연원은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분단시킨 데 있다. 이 병의 ‘근원’은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구조, 즉 전쟁의 구조, 불신의 구조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 미사일 문제, 로켓 문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생겨나는 남북한 충돌, 연례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인한 전쟁 위협 문제, 심지어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문제 등은 모두 병의 ‘증후’일 뿐이다. 따라서 모든 병의 치료가 그렇듯이, ‘한반도 문제’라는 병도 완치를 위해서는 대증요법만으로는 안 되며, 반드시 근치요법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는 군사안보적 성격 등 여러 성격을 갖고 있지만, ‘정치적’인 성격의 문제가 압도적이다. ‘아직도 전쟁 중’이라는 것보다 더 정치적인 성격이 어디에 있겠는가. 따라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련국들의 최고지도자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동안 그렇게 되지 못했다. 고도로 정치적인 성격의 문제가 테크노크라트의 손에 맡겨짐으로써 전혀 문제 해결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주인인 우리는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 정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정부차원에서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걸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북한 길들이기’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시동조차 걸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들과는 달리 ‘6·25 종전’과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달 초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모 재단이 개최한 정책포럼에서 설명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보면, ‘우선 추진과제’와 ‘중장기 추진과제’ 그 어디에도 평화체제 수립은 들어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평화체제 비전이 결여된 정책이 남북 간 신뢰 구축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추동에 큰 공헌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우리가 박근혜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평화 정착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구나 정부가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민주정치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차기 정부들이 모두 평화체제 수립에 노력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가 일종의 사회협약을 맺어 차기 대선에서는 여야 후보들이 모두 ‘평화체제 수립’을 공약하도록 할 수 있다면, 이는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하나의 구체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 [김종면 칼럼] 세종시 이대로는 안 된다

    [김종면 칼럼] 세종시 이대로는 안 된다

    세종시 출범 1년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효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연 명실상부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중앙부처 기능 이원화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점은 충분히 예견했던 바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애당초 경제논리로 출발한 도시가 아닌데 효율성만을 따지며 냉소를 보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우리 스스로 국토 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 해소라는 대의를 위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세종시를 택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와서 단추를 갈아 끼울 수도 없다. 가야 할 길이면 깨어지고 부서지더라도 가야 한다. 세종청사 중심의 국정운영 시스템을 확립하고 세종시를 국가 균형발전의 상징도시로 만드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수도권 공화국’이라고들 한다. 수도권 헤게모니는 그만큼 강고하다. 지방식민지론까지 나오는 판이다. 이런 형편에 지방에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세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균형발전에 대한 신앙 수준의 의지와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꿈도 꿀 수 없다. 중앙집권 문화에 길들여진 정부와 특권의식에 젖은 국회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 없이 세종시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휴전선을 사수하듯 세종시 건설에 매달린 행복도시론자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가. ‘세종시 패배주의’에라도 빠져 나몰라라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세종시에는 이미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등 정부 핵심부처들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도 아직 행정의 중심이 세종시로 옮겨 왔다는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지 못하는 공무원들이 없지 않다. 크고 작은 일들이 변함없이 서울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허구한 날 130㎞나 떨어진 서울을 오가며 일을 봐야 하는 세종시 공무원들로서는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잖아도 ‘기러기 특별시’에 사는 유목민이라고 자조하는 그들 아닌가. 무작정 공복(公僕) 의식만을 강조하며 불편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쯤 되면 청와대와 국회가 움직여야 한다. ‘권력 중의 권력’ ‘갑 중의 갑’부터 솔선하는 모습을 보일 때 냉소적 분위기도 불만의 목소리도 잦아들 것이다. 세종청사 안에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장을 만들어 시범 운영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세종청사에서 국회 상임위 활동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회 분원(分院)을 설치해야 한다. 국회법을 개정해 국회 분원 설치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다. 국회는 이제라도 특권을 내려놓고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야 마땅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정치생명을 걸고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해 지금의 ‘세종시 시대’를 열었다. 그것이 단지 표심을 향한 제스처가 아니었다면, 세종시가 속병을 앓고 있는 이때 뭔가 통치권 차원의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세종시가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처럼 ‘선거의 산물’이 아니라 진정한 ‘국가철학의 소산’임을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수도를 멀리 지방으로 옮긴 브라질이 그로 인한 비효율과 낭비로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렀는지 우리 국민은 잘 알고 있다. 그런 걱정을 덜어주고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아무리 감동적인 영화도 세월이 지나면 생각나는 것은 고작 한두 장면이다. 박 대통령은 무엇으로 기억되는 대통령이길 바라는가. 세종시로 상징되는 국토 균형발전의 기틀만 확고히 세워 놓아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배터리가 부실한 세종시는 지금 점프 스타트가 필요하다. 세종시에 대통령 제2 집무실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 기득권’ 내려놓기와도 무관치 않은 일이다. 대통령 집무실 분소(分所)를 둔다면 그 상징적 효과만으로도 세종시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대통령이 몸소 용의 눈에 눈동자를 찍어야 한다. 행복이 강물처럼 흐르는 ‘약속의 땅’ 세종시는 언제쯤 볼 수 있으려나…. jmkim@seoul.co.kr
  • [시론] 달라진 막걸리의 지형도/허시명 막걸리학교장

    [시론] 달라진 막걸리의 지형도/허시명 막걸리학교장

    최근 막걸리의 수출량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막걸리 생산량이 줄었고, 막걸리 인기도 떨어졌다는 기사들을 요즘 자주 본다. 몇 해 치솟던 막걸리의 인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 걸까? 2009~2012년까지 한국 사회에서 막걸리는 생동감 있는 아이콘이었다. 김치·비빔밥과 더불어 한류음식의 표상이 되고,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던 분야에 젊은 인력이 돌아오고, 수출량이 늘어나 일본에서까지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들이 생겨났다. 막걸리를 통해 한국민들은 전통 알코올 음료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됐다. 88올림픽 이후 개방화와 수입자유화 물결 속에 맥주에 속절없이 밀렸던 막걸리가 존재감을 회복하게 된 것이다. 이 달콤한 시기를 거치면서 막걸리의 위상과 지형도가 많이 달라졌다. 서울의 느린마을양조장, 전주의 시, 부산의 청춘주가처럼 대도시에 미니양조장이 생겨났다. 함평의 자희향, 홍천의 만강에비친달, 강릉의 방풍막걸리처럼 술 빚기를 좋아하는 가정주부나 변호사, 시인이 작은 양조장을 차려 즐겁게 수제 막걸리를 만들게 되었다. 태인막걸리와 철원초가막걸리처럼 무감미료 막걸리도 생겨났다. 야구장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맥주타입의 캔막걸리로 가평 우리술의 미쓰리와 국순당의 아이싱이 등장했다. 당진 신평양조장, 단양 대강양조장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어 관광과 양조산업을 접목시키고 있다. 막걸리양조업자들이 주축이 된 막걸리협회와 우리술협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막걸리가 수출품으로 당당히 거론되는 것도 달라진 막걸리의 위상이다. 동네 양조장에서 주전자로 받아 마시던 막걸리가 백화점과 호텔에 들어가고, 외국인들이 찾는 한국문화의 상징이 됐다. 수출은 막걸리의 다각화에 기여해 살균 막걸리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생막걸리의 유통기간을 늘리는 시도로 이어졌다. 세련된 디자인의 병막걸리가 등장하고, 한 병에 1만원 안팎 하는 프리미엄 막걸리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막걸리와 전통술이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막걸리 바람이 우리 술의 자부심으로 확대되지 못한 채, 오히려 전통 약주와 전통 소주의 존재감이 옅어졌다. 막걸리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재인식한 게 아니라, 유행상품 목록 하나만 추가된 느낌이다. 한류 열풍을 타고 막걸리 수출의 90%가 일본에 집중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막걸리가 일본 시장을 전초기지로 삼아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점검해 보는 기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막걸리는 일본시장에서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막걸리는 일본에서 새로운 주류 품목으로 자리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한국 업체들끼리 저가 경쟁을 벌여 막걸리의 가치를 향상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제값 또는 더 좋은 가격으로 팔기 위해서는 한국 막걸리업체들 간의 수출 연대 전략이 필요하다. 막걸리를 빚는 일본 양조장이 등장하면서, 이들이 일본 내 막걸리의 흐름을 주도하려 하고 있다. 조만간 막걸리의 정체성을 놓고 한·일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김치와 기무치의 경쟁구도가 막걸리와 마코리 사이에서 재현되지 않게 하려면, 막걸리 정체성을 확립하는 표준화와 규격화 작업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아스파탐 등의 감미료가 들어간 술은 고급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양조장들은 무감미료 막걸리를 만들어 내면서 감미료 막걸리의 약점을 지적해댄다. 무감미료 막걸리가 국내 막걸리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여 한국 막걸리 경쟁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상품이든 인간이든 성장만 할 수는 없다. 막걸리는 쌀문명권의 저알코올탄산음료로서 액체밥이라 할 정도로 쌀의 영양가를 잘 간직한 기호음료다. 알코올의 소비량은 한 사회의 스트레스양과 비례하지만, 막걸리 소비량은 한 사회가 흘린 땀의 양과 비례한다. 막걸리를 통해 수출증대만이 아니라, 한국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장치들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은 막걸리 수출 감소를 우려하기보다, 막걸리 문화의 왜소함을 우려해야 할 때다.
  • [시론] 국정원 사건에 대한 헌법기관의 책무/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국정원 사건에 대한 헌법기관의 책무/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국회의 국정조사가 위원회 구성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국회가 조사를 해야 하는 까닭은 그 헌법적 임무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정조사권은 국회가 입법권을 올바르게 행사하기 위해 필요하다. 검찰은 법 위반의 내용을 다뤄 직접관련자를 처벌하는 데 그친다.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국회의 몫이다. 헌법은 국가의 주요 사항을 반드시 국회가 법률로 정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국회가 입법조치를 필요로 하는 사태의 진상을 직접 규명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답을 낼 수 없다. 국정조사의 실시 자체는 여야 간에 다툴 문제가 아니다. 국회가 입법기관으로서 헌법적 책무를 다하는가의 문제이다. 다만, 제도 개혁의 내용과 범위에 대해서는 여야 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국정원 개혁을 놓고 수사권을 폐지하자는 점에 합치하되, 국내 보안정보 업무 중에서 대북 업무를 남길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여당의 태도는 직무유기다. 대통령과 입을 맞춘 듯이 ‘전 정부의 일’이라고 외면했다. 정권은 단속적이지만 국정은 연속적이라는 상식이 없었다. 대통령제에서 여당과 대통령의 관계는 가깝다. 그렇지만 여당이 청와대와 한통속이 된다면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무시하는 것이다. 여당이 국회의 입장에서 견제의 책무를 다할 때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민주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여당이 청와대에 충성을 다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로 변질이 일어난다. 한편 국회가 국정원을 개혁하는 법률개정안을 만들어 내는 일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금 상황에서 국정원 개혁은 정보권력 분립의 문제이다. 각종 정보기관의 업무가 비밀리에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국정조사의 범위는 국정원만이 아니라 경찰과 검찰, 군의 정보기구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국회는 이 기관들의 예산·업무 등에 대해 필요하다면 비공개로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국가안보 차원의 비밀을 유지하면서 각 정보기관을 법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국회가 국정조사 및 입법 활동을 하는 동안 대통령은 할 일이 따로 있다. 집행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국정원 개혁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헌법 제66조 제2항)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 직속기관이며, 국정원의 조직은 국가정보원장이 대통령 승인을 받아 정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절망스럽다. ‘국정원 개악’의 지침이다. 국정원법은 국내 보안정보를 ‘대공, 대정부 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은 국정원이 “대북정보 기능을 강화하고 사이버테러 등에 대응하고 경제안보를 지키는 데 전념”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테러와 사이버테러는 다른 개념이다. 경제안보로 표현한 기업의 비밀은 국가기밀과 다르다. 이는 법이 정한 국정원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국정원은 법을 어기고 정치 및 선거에 개입함으로써 본연의 의무를 위반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했다.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고려하면, ‘3·15부정선거의 사이버 버전’이라 부를 만한 중대한 사건이다. 대통령은 인사권자로서 관련자들에게 지휘감독의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정보기관은 비밀주의 속성 때문에 인권 또는 민주주의와 친할 수 없다. 최소한의 업무와 권한만을 주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헌법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의 공정성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다. 헌법을 경시하는 국회와 대통령의 행태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국가기관이 헌법적 책무를 저버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때에는 유책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관련 기관은 그 무책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유권무책 무권유책’이라는 분노의 신조어를 만들어내려 하는가.
  • [시론] 뮤지컬보다 재미있는 창극을 위하여/안호상 국립극장장

    [시론] 뮤지컬보다 재미있는 창극을 위하여/안호상 국립극장장

    새 정부가 문화융성을 4대 국정기조로 선포하면서 현재 약 5조원인 문화재정(국가재정의 1.47%)을 2017년까지 7조 8000억원, 즉 국가재정의 2%로 늘리겠다고 한다. 문화계 종사자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소망하던 일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유례 없는 세계적 호황을 누리며 문화의 파급효과에 대한 체감지수를 높이고 있으니 ‘문화융성’에 방점을 찍은 것은 무척 적절해 보인다. 반가운 소식에 대한 흥분과 기쁨은 잠시 접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얼마 전 유럽 출장길에서 만난 한 여성을 잊을 수가 없다. 독일에서 폴란드로 넘어가는 완행기차 안. 금발의 한 젊은 여성이 옆자리에 앉는데, 손목에 ‘믿음’이라는 한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폴란드에 오래 거주한 한국문화원 여직원의 말로는 요새 K팝의 인기 덕분에 그쪽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글 문신이 소위 ‘쿨’한 것으로 여겨져 유행이라고 한다. 우리도 서양문화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 가수 엘튼 존, 문워크의 마이클 잭슨, 지금도 화제의 중심인 마돈나, 섹시 디바 머라이어 캐리 등은 1970~1990년대 한국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그들의 음반은 구입 목록 1위였고, 운 좋게 공연 비디오라도 구하는 날에는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감상할 정도였다. 서양 대중문화에 대한 이러한 뜨거운 관심은 이후 발레나 오페라, 혹은 뮤지컬 등 소위 고급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확대되었다.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가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오페라를 감상하는 게 교양인의 필수코스처럼 여겨졌다. 그 나라에서는 상업적인 장르에 속하는 뮤지컬이 우리나라에서 고급 예술로 간주되는 분위기도 분명 존재했다. 나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지금의 열광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 고급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지난 6월 14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런던 공연은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국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인 국립국악관현악단이 해외문화홍보원이 주최하는 런던한국음악축제의 개막공연을 맡아 런던의 자부심인 바비칸센터 무대에 올랐다. 백발의 유럽인 약 1500명이 공연장을 찾았는데, 마지막 연주가 끝나자 객석은 정말 뜨겁게 달아올랐다. 두 팔을 어깨 위로 들며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가 하면, 기립한 관객도 많았다. 덕분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두 번이나 앙코르를 해야 했다. 한국에 대한 일종의 ‘동경’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K팝과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 한국의 대중문화는 이미 쉽게 무너지지 않을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었다. 이제 그 다음을 원하는 세계인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영국은 뮤지컬, 중국은 경극, 일본은 가부키의 나라다. 우리도 한국 하면 떠오르는 창극·판소리를 육성해야 한다. 우리는 아직 마이크 없이 공연할 수 있는 국악, 창극 전용공연장도 하나 없다. 이런 인프라 구축은 기본이고 예술가 양성, 관객 저변 확대 등 우리 문화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본부터 다시 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먼저 우리의 고급문화를 알고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음악 시간에 서양음악만 접해온 기성세대가 국악을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지 모른다. 이런 문화적 비극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전통예술을 접하게 해야 한다. 전문가를 양성해 교과과정 중 어떻게 하면 전통예술을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나 연구해야 한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단소나 장구 등을 가르친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단순한 연주를 넘어서는 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통예술에 대한 시각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 [시론] 하늘 궁전과 땅의 학교/ 김영환 국회의원·전 과학기술부 장관

    [시론] 하늘 궁전과 땅의 학교/ 김영환 국회의원·전 과학기술부 장관

    지상 340㎞에 떠 있는 중국의 우주정거장 텐궁(天宮), 즉 ‘하늘 궁전’에서 하는 강의와 물리학 실험을 땅의 학교에서 6000만명의 학생이 시청했다. 실시간으로 중국 전역에 생중계된 우주 강의에서 학생들과 강사는 직접 화상통신으로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수업을 마치면서 여성 우주인 강사 왕야핑(王亞平)은 ‘과학에 대한 꿈을 키워 위대한 중국의 꿈을 실현하자’고 말했다. 강의를 시청한 학생들은 재미와 신비의 요소가 뒤엉켜 환호했고, 우주에 대한 꿈을 확실하게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 뉴스를 접하고 너무나 놀랍고 부러웠다. 딱딱한 과학 수업이 얼마나 생생하고 신기한 체험 학습이 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재미없는 과학 수업에 질려 있고 이공계를 기피하는 우리 청소년을 생각할 때 너무나 부럽고 부끄러웠다. 지난달 중국에서 시현된 한 편의 드라마는 참으로 놀랍고 감동적이다. 국민들에게 과학기술 강국의 위용을 과시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일으키는 데 이처럼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중국은 연구개발(R&D)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중국의 R&D 투자는 1043억 달러로 한국(380억 달러)의 3배 수준이다. 지난 15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연평균 7.8%씩 늘어나 한국(3.3%)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증가했다. 1년에 3000억원의 예산이 없어 겨우 우주에 한 번 발사체를 올려놓고는 독자적인 발사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아닌가. 우리가 만약 과학기술에서 중국에 뒤떨어진다면 우리 경제는 조만간 중국에 추월당하고, 우리 상품의 경쟁력은 시장에서 빛을 잃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 경쟁력의 기초는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과학기술인을 존중하는 정부와 국민의 관심에 달려 있다. 과학기술계의 척박한 풍토 속에서 어떻게 국가발전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1960년대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중국 과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천쉐썬(錢學森)을 비롯한 과학자들을 “홍위병들로부터 보호하라”고 군에 지시했다. 중국의 핵심권력층 대부분은 이공계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7%만이 이공계 출신인 것과 크게 대비된다. 게다가 중국은 2008년부터 세계적 수준의 과학인재 2000명을 국내로 영입하는 ‘천인(千人)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도 이렇게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다.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과학기술자들의 사기를 북돋울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 저성장, 저소비, 고실업을 특징으로 하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자원 빈국인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공계 출신에 대한 병역특례를 대폭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원하는 사람은 모두 병역특례를 받도록 해 중소기업으로, 연구소로, 생산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 특히 과학인재 양성과 군복무를 결합하고 제대 후 벤처 창업과 신기술 개발로 연결시키는 대한민국의 ‘탈피오트’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과학기술인들의 창업과 취업을 지원하고 과학기술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점점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과학 교육을 전반적으로 개편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지식 암기식 교육으로부터 체험과 실험 중심의 교육을 통해 과학에 관심과 흥미를 북돋워야 한다. 이를 위한 대학입시제도의 개선을 검토할 때이다. “과학기술 강국이 되려면 차세대 과학기술인을 키워내는 것이 관건이다. 국가와 사회가 (과학기술에) 관심을 갖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우주 강의를 지켜본 중국인 교사의 말이 귓가에 쟁쟁하다. 하늘 궁전에서 대한민국 땅의 학교에 보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 [시론] 관치금융 청산은 금융위 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시론] 관치금융 청산은 금융위 개혁에서부터 시작해야/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관치금융 청산은 이번 정부가 해결해야 할 해묵은 숙제다. 관치금융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금융감독에서 모피아가 손을 떼고 공적 민간기구가 금융감독을 담당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산업정책 차원을 신경쓰면 된다. 그런데 사태가 참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금융감독체제 개편이 핵심은 제쳐 두고 부분적인 논점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대략 이러하다. 우선 지난 3월의 정부조직법 개편에서 금융위원회의 조직 개편은 제외되었다. 따라서 ‘자리 보전’에 성공한 모피아는 남은 과제인 ‘금감원 쪼개기’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금감원에서 분리·독립시키자는 것이다. 금감원을 쪼개면 금융위가 조금 더 확실히 금융기관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설사 실패해도 큰 문제는 없다. 어차피 쪼개기를 반대하는 금감원은 금융소비자 보호보다 조직논리를 앞세우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각인되고 말 것이니까. 꽃놀이패가 따로 없다. 이런 배경 속에서 금융위원장이 위촉한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태스크포스(TF)는 지난 6월 21일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방안: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중심으로’라는 감독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개편 방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감독체계 개편은 ‘사회적 실험’이어서 조심해야 하고, 금융소비자 보호는 너무 과도하게 하면 “금융산업의 발전이 저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나중에 또 이런 논의를 할 것이니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자는 것이다.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감원의 조직 분리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서야 조금 가닥이 잡혔다. 그렇다면 이제 다 잘된 것인가. 여기가 바로 “묘한” 부분이다. 사실 금감원 쪼개기는 지난 2009년 하반기부터 금융위가 추진해 온 사업이었다. 그 첫 번째 가시적 표현이 당시 정무위원장이었던 김영선 의원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감원을 쪼개는 내용의 법안을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금융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에 금융 안정의 책무와 감독권한 강화를 부여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던 시기였다. 금융위의 전략은 지급결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쏴서 한은법 개정을 법사위에 묶어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분리하는 법률을 제안토록 해서 금감원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전략은 적중했다. 당장 통과될 것 같던 한은법 개정안은 2년의 세월이 지나고 ‘영선 대 영선’의 결투를 거쳐 당초보다 후퇴한 기형적인 모습으로 2011년 8월 말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그 후 다시 2년이 지난 지금 남은 반쪽의 과제인 금감원 쪼개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난 4년의 계산서를 뽑아 보면 비록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약간 체면을 구기고 TF에 참여한 교수들은 왕창 체면을 구겼지만, 이익집단으로서의 모피아는 잃은 것은 하나도 없이 얻을 것을 다 챙긴 모습이 됐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물론 해야 한다. 그리고 필자는 이를 위해 금감원을 건전성 감독 부문과 행위규제 부문으로 쪼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큰 그림을 고치지 않은 채 변죽만 울려서는 전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모피아의 관치금융과 이권 추구를 통제하지 않은 채 그 밑에 금융소비자 보호 부서를 붙이건 분리하건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금융감독체계는 그 밑바닥부터 제대로 다져야 한다. 그 출발은 금융위를 해체하고 정부가 할 산업정책과 공적 민간기구가 해야 할 금융감독 업무를 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 [시론] ‘튀기’에서 ‘코피노’까지/하성란 소설가

    [시론] ‘튀기’에서 ‘코피노’까지/하성란 소설가

    그 애가 지나가면 우리는 ‘튀기’라고 수군댔다. 좁은 양미간과 오똑 솟은 코, 고수머리와 흰 피부 등 그 애는 한눈에 띄었다. 몇몇 어른들은 ‘아이노쿠’라고도 불렀다. 나중에야 일본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 족’을 일컫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내뱉던 그 말이 암소와 수탕나귀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을 뜻한다는 것도 알았다. 노새와는 달리 튀기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암소와 수탕나귀의 형질을 반반씩 닮았을, 그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형질이 툭 발현되었을지도 모를 그 모습, 기괴했을 듯하다. 한국 전쟁 직후 서양인들의 외모와 피부를 닮은 채 태어난 아이들의 모습에 놀란 한국인들의 모습도 쉽게 그려진다. 얼마나 신기했으면 ‘튀기’란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그 애는 김치볶음을 좋아하고 우리말도 우리만큼 잘하는, 다 같이 웃어야 할 때를 놓치고 한 박자 늦게 웃은 적도 없는 ‘우리나라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 애는 우리와 섞이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았다. 전쟁이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전쟁의 그림자는 너무도 넓고 깊었다. 어디 살고 있을까. 어쩌면 김치볶음의 붉은 기름이 반지르르 묻은 야무진 입술을 벌려 전상국 선생의 소설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의 수지처럼 한국과 제 어머니를 부정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지금 필리핀에는 ‘코피노’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있다.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필리핀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튀기’처럼 모욕적인 말이 아니지만 이미 그 말 속에는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주의의 한 단면과 함께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야만성이 들어 있다. 그 애들은 축복 받아야 할 탄생의 순간, 이미 아버지로부터 버려졌다. 초창기 그들의 아버지는 물가와 교육비가 싸다는 이유로 어학 연수를 온 학생들이었다. 한순간 일탈에 빠져들었던 그들은 필리핀 애인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한국으로 줄행랑을 쳤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누구도 그 애들에게 책임을 따져 묻지 않았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한국 사업가들의 현지처가 된 여성도 있었다. 코피노 수의 증가에는 피임과 낙태를 철저히 금하는 가톨릭 문화의 영향도 있었다. 낮에는 골프 여행, 밤에는 환락가. 필리핀을 찾는 한국의 남성 수가 급증했다. 단순히 쾌락과 욕망만이 남았다. 그들 중에 피임 기구를 착용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있고 그 때문에 나이 어린 10대 여성을 찾는 추태가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아예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코피노들도 급증했다. 많은 코피노들에게 아버지란 자신을 버린 사람일 뿐이다. 한국은 더 이상 아버지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인들에게 반감을 가지는 필리핀인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이 다음 돈을 많이 벌어 한국의 아버지를 찾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의 꿈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 듯하다. 한 사회단체에서 코피노들의 아버지 찾아주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코피노들 대부분이 극빈층이다. 어머니가 돈을 벌러 집을 떠나 있는 동안 학교에도 가지 못한 코피노들이 거리를 떠돈다. 돈을 벌기 위해 제 엄마처럼 윤락가로 흘러드는 아이들도 있다. 악순환이다. 한국의 아버지를 찾아 최소한의 의무를 지도록 하는 것이 취지이다.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정부는 개인의 사생활이란 생각으로 방관하고 있었다. 하룻밤 대가치고 너무도 큰 대가라고 억울해할 남성이 많을는지 모른다. 필리핀 여성들이 돈을 노리고 일부러 접근해 임신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한동안 책임 공방으로 시끄러울 듯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한국의 아버지를 찾아주기로 했다는 소식에 가슴 한쪽이 내려앉았을 당신. 그렇다. 당신이 진작 느꼈어야 할 죄의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으로서의 양심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지금까지도 일말의 거리낌이 없이 잠잠한, 이미 죽어버린 건지도 모를 당신의 양심이다.
  • [시론]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개혁의 성공 조건/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시론]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개혁의 성공 조건/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약속했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여야 대표가 18일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관련 법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최우선 처리키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서도 국회 폭력 예방, 국회의원 겸직 금지, 연로 국회의원에 대한 연금 지급 폐지, 인사청문회 대상 확대 등에 합의했다. 특위가 합의한 사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국회 폭력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 조항이다. 국회의원들이 의사당 내에서 저지른 단 한 번의 폭행으로도 의원 배지가 날아갈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선거의 역사는 정치 쇄신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모두가 정치 개혁에 대해 입에 발린 공약을 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법을 지키고,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약속을 국민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국회는 거짓말만 일삼는 ‘양치기 국회’라는 오명을 갖고 있겠는가. 이번에도 정치 쇄신에 대해 어정쩡한 시늉만 내며 국민을 기만하면 국민 불신이 거세지면서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따라서 여야가 합의한 ‘특권 내려놓기’가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국회의원들이 자기 혁신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 우선, 정치 쇄신 법안을 국가정보원 대선·정치 개입 의혹 국정조사와 분리시켜 이번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여야 대표는 최근 조찬 회동에서 최대 현안인 국정원 국조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여야가 이미 검찰의 국정원 댓글 수사가 종료되는 즉시 국조를 하기로 합의한 만큼 즉각적인 국조 이행을 여당에 촉구하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여야 협력관계의 마감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또다시 국정원 국조를 둘러싸고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과거 국회에서 파행이 길어지면 정치 쇄신안은 물 건너 간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시간을 질질 끌면 정치 쇄신안은 누더기 법안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 정치 쇄신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9월 정기 국회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특권 내려 놓기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헌법에는 의원의 자주적·독립적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특권과, “현행범이 아닌 한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는 불체포 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특권들을 교묘하게 악용해 정치 불신과 국회 파행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점이다. 대정부 질문에서 면책특권에 기대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막가파식 발언으로 본회의장을 여야 정쟁의 장으로 전락시킨 경우가 많았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는 최근 부패 비리나 선거법 위반의 경우에는 ’불체포 특권‘을 제한하고, 의원 체포나 석방 동의안 표결 시에는 공개 투표하도록 했다. 또한 명예훼손 및 부패 관련 발언에 대한 ’면책 특권‘을 제한하여 기준을 위반한 경우에는 윤리특별위원회의 결정으로 본회의에서 징계할 수 있게 했다. 국회 정치개혁 특위가 깊이 유념해볼 만한 사항들이다. 셋째, 국회의원 윤리심사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의원 윤리 사항을 담당하기 위해 국회의장 산하에 전원 외부 민간인으로 구성되는 의원윤리조사전담기구 설치를 검토해볼 만하다. 그래야만 윤리위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이 사라지고 의원들은 자신의 행동에 무한 책임을 지게 되는 풍토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제 국회의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특권이란 오직 법을 만드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각오로 기존의 모든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더 이상 미완의 정치 쇄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 [시론] 서민금융시장의 기능 회복을 위한 과제/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시론] 서민금융시장의 기능 회복을 위한 과제/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새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을 통한 부실채무 정리를 핵심 정책의 하나로 제시했다. 지난 정부에서 시작된 희망홀씨, 햇살론, 미소금융 등 소위 ‘서민금융 3종 세트’에 또 하나의 대규모 서민금융 정책이 더해진 것이다. 이들 정책이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기반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지만 2003년 신용카드 위기 이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서민금융 시장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들 서민금융 정책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정부가 주도해 시행한 이 정책들은 긴급한 필요에 의해 시행된 단기적이고 대증적인 조치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지금부터는 자생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서민금융 시장 구조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공기업을 동원해 개인의 부실채무를 정리하는 비상 조치를 앞으로도 반복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은행이나 기업의 ‘자발적인’ 기부에 재원을 의존하는 대출이 장기에 걸쳐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응급처방을 통해 급한 대로 증상의 악화를 막는 데는 성공했으나 서민금융 시장이 기초체력을 회복해 원래의 기능을 하는 중요한 과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우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서민금융 기관의 역할과 위상이 회복돼야 한다. 특히 신협이나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기관의 활약이 기대된다. 상호금융기관은 협동조합의 한 형태로, 조합원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하여 구성된 조직이다. 따라서 저축은행 등 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주식회사 형태의 금융기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목적과 행동준칙을 가지고 있다. 주식회사 형태의 금융기관에 비해 안정적 경영을 추구하고 무엇보다 광범위한 계층을 대상으로 금융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토대를 갖추고 있다. 상호금융기관은 비대칭적 정보의 만연과 높은 신용위험으로 인해 신용할당이 일상화돼 있는 서민금융시장에 보다 적합한 조직 원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현재 상태로는 상호금융기관이 서민금융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가 없다. 조합원의 이익 증진을 최우선시하는 협동조합 본연의 정신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함은 물론 금융기관으로서 역량을 강화하는 데도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동일한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는 상호금융기관들을 통합적으로 관리·운영하여 경쟁력을 높이고 단위조합의 지배구조 강화를 통하여 금융기관으로서 당연히 기대되는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에 더하여 중앙회의 단위조합 감독 역량 강화를 통해 금융기관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편 저소득 계층의 부채 문제를 금융적 관점으로만 접근할 경우 근본적인 해법 도출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약 400만에 달하는 저소득 가구 중 150만 가구가 빚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65세 이상 노인 가구, 국민기초생활대상 가구, 영세 자영업 또는 일용직 종사자 등으로 극히 취약한 소득기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부실채무를 정리하고 추가적 자금을 공급한다고 하더라도 취약한 소득기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금융 애로 해소를 추구하는 정책은 반드시 이들의 소득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고용 및 복지 대책과 병행하여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재무상황을 진단하고 지출구조를 파악하여 채무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는 재무상담 서비스를 정부가 비용을 부담하여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시론] 역사지식 아닌 역사를 생각하는 교육이 돼야/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시론] 역사지식 아닌 역사를 생각하는 교육이 돼야/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역사교육이 또다시 논란이다. 5·18 민주화운동 때 북한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는 일부 누리꾼의 발언은 청소년의 역사인식 문제뿐 아니라 학교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음을 한탄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한편에선 뉴라이트 활동을 했거나 보수우익 학자들이 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심사를 통과한 것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각에선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 교과서 내용을 추측하며 우려하지만, 이들은 반대로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는 그간의 주장을 되풀이한다. 이런 논란 가운데 학교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도 으레 포함된다. 집중이수제 폐지와 한국사 수업시간 확대, 수능에서 한국사 필수화 등과 같은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새삼스럽지 않다. 이명박 정부 때도 한국사 교육의 약화 우려가 나오자 일련의 역사교육 강화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고등학교에서 한국사가 필수과목이 됐고, 각종 공무원 시험에 한국사가 포함됐다. 올해부터 교원 임용시험에 응시하려면 국사편찬위원회가 주최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급에 합격해야 한다. 역사수업이나 역사교사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을 통해 한국사를 가르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왜 학교 역사교육이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일까. 문제는 역사교육 강화 정책이 역사지식의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있다. 학교 역사교육은 온갖 사실들을 외워야 하는 암기 위주의 교육이라는 비판을 받은 지 오래다. 학생들은 역사적 사실을 망라한 역사교과서를 보고 질리곤 한다. 역사지식 확대라는 역사교육 강화 정책은 이런 문제점을 학교 밖의 역사교육으로 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시험을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사람들 외에는 역사 공부에서 멀어졌다. 아동이나 청소년을 위한 대중용 역사책, TV 사극,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이 이런 역사교육을 대체하는 현상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역사교육에서 다루는 지식의 양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에 비해 역사를 생각하는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비판하며 이를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경험은 제공되지 않는다. 온갖 사실들을 망라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역사교육은 수준이 결코 높지 않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뿐이다. 역사지식을 간소화하는 대신 역사를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런 역사교육이 이뤄진다면 뉴라이트 교과서의 출현은 그리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다. 역사가 누구나 똑같은 눈으로 보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다양한 관점을 가진 교과서가 나오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2년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 때부터 사실상 모든 교과서를 심사에서 통과시키고 있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방향이다. 검정 의견을 통해 교과서 내용에 간섭하는 일도 가급적 줄여야 한다. 관점이나 해석을 달리하는 역사교과서들에 대해 서로 비판하고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면 된다. 학생들이 교과서 내용을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 핵심이다. 아울러 역사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교실 수업뿐 아니라 특별 활동이나 방과 후 활동을 활용하거나 중·고교에서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동아리를 활성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왜 우리의 특기 적성은 꼭 예능이나 체육 같은 종류에만 한정하는가. 인문학도 훌륭한 특기 적성교육이 될 수 있으며 학생들의 클럽 활동이 될 수 있다. 그것이 학생들의 역사 경험을 풍부하게 해 역사적 사고의 기회를 넓히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길이다. 나아가 역사교육을 되살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는 실용적 지식만을 강조하는 사회 정책과 교육 정책의 전환이 전제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 [시론] 로맨스 판타지/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시론] 로맨스 판타지/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작가 황석영은 지난달 23일 대한출판문화협회 4층 강당에서 ‘출판계에 만연한 사재기 행태 근절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사재기 관련법의 개정과 검찰 수사 등을 촉구했다. 작가는 출판사가 자사의 책을 구입해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사재기’는 주가 조작과 같은 범죄이자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공공도서관 1년 도서구입비가 미국 하버드대학 1년 도서구입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까지 적시한 작가는 “출판사들의 ‘서점을 통한 도서 기증 행태’와 ‘정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할인 판매’, ‘다른 도서 끼워 팔기’와 ‘과도한 경품 증정’ 행위 등도 공개적인 사재기의 일종”이라고 규정했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가제)의 선(先)인세가 국내 최고액인 16억원을 넘었을 것으로 예측하는 기사가 터져 나왔다. 자신의 책을 펴내는 외국 출판사마저 직접 간택한다는 하루키가 꼭 최고액을 쓴 출판사를 낙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고액의 선인세 기록을 경신했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유사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에 공통점은 없을까? 있다. 우리 책 시장에서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의 양극화가 극심하다 보니 출판사들이 팔리는 책 만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출판시장은 기본 10만부를 넘긴다는, 한 손가락으로 꼽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왔다. 2011년 1월 작가 박완서가 타계한 이후에는 신경숙, 공지영, 황석영, 김훈 등 ‘빅4’에 모든 것을 거는 행태를 보여 왔지만 이들마저 최근에는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7년의 밤’의 정유정이나 ‘두근두근 내 인생’의 김애란 등 차세대를 이끌 주자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이들에게는 평단의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올해 초 한국문학을 주도하는 문학계간지들이 ‘소수의 문학’이나 ‘사상으로서의 문학’이라는 새로운 기치를 들고 나온 것은 의외였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자신들이 상업주의 문학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애써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이나 ‘사재기’나 ‘선인세’ 파동에서 보듯 한국문학 전체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문학의 영역을 축소시켜 유폐생활을 즐기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15년 동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카드대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커다란 위기를 5년 주기로 겪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위기가 찾아와 위기 극복에 힘만 쏟다가 주저앉곤 했다. 신자유주의가 승자독식사회 체제를 강화해 나가는 사이에 대중의 심성은 ‘열정’에서 ‘냉정’으로, 다시 ‘냉소’로, 급기야 최근에는 ‘멘붕’의 정서로 급격하게 빠져들었다. 그러나 우리 문학시장의 기획자들은 정신마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개인이 어떤 이야기에서 위안을 받을까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그저 팔리는 작가나 작품에만 붙어서 목숨 줄이나마 이어가 보려는 얄팍한 행태를 보여줬다. 한편 정보기술(IT) 혁명은 ‘고용 없는 성장’을 낳고 있다. 일상에서 한순간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글이나 네이버,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과연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는가를 살펴보라. 이들 신기술은 저작권마저 무용지물로 만들며 지식노동자들을 처절하게 빈곤층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세계 시민은 이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로맨스 판타지’에 깊게 빠져들고 있다.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주부들이 누구나 시간만 투자하면 실력과 점수 앞에 평등한 카카오톡의 각종 게임 같은 가상현실에 중독되어 가는 것처럼. 이들이 ‘늑대소년’이나 ‘7번방의 선물’ 같은 로맨스 판타지 영화에 웃고 울었다. 드라마 또한 ‘로맨스 판타지’가 아니면 발을 붙이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제 문학 기획자들도 우리 문학이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부터 깊게 궁구해야 마땅할 것이다.
  • [시론] ‘탈북동포의 날’이 필요하다/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탈북동포의 날’이 필요하다/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탈북자 처리하는 꼴을 보니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묘비명이 생각난다. 우왕좌왕, 엉거주춤, 어정쩡…. 뭐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 사후 대책은커녕 라오스에서 북송된 9명을 놓고 책임 전가하기에 바쁘다. 늘 일어나던 일인데 마치 처음 보는 양, 엄청난 인권 문제가 터진 것처럼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지난 수년간 수천명이 이보다 더 험한 꼴을 당하면서 질질 끌려 북송됐다는 사실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이 사건으로 라오스 통로로 목숨 걸고 탈출을 시도하던 또 다른 이들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걱정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가슴을 에는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터질 수밖에 없다. 2만 5400명. 갖은 고생 끝에 대한민국에 온 탈북자 숫자다. 한 해 3000명씩 들어오던 규모에 맞춰 화천에 제2하나원을 만들어 놨는데, 요샌 반의 반으로 줄어들어 안 하던 걱정이 하나 더 늘어났다. 탈출을 못하게 국경통제를 강화하고, 재입북 기자회견으로 북한주민들의 한국행 기대심리를 꺾어놓은 결과다. 남한 가면 멸시받는다는 소문이 북한 당국의 심리전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퍼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탈북하면 거의 모두 한국행을 원할 거라고 믿고 있다. 들어오면 집도 받고 돈도 받아 본인만 열심히 일하면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열 명 중 둘셋 정도가 한국행을 맘에 두고 있을 정도며, 들어와서 만족하는 숫자도 그리 많지 않다. 한국이 싫어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을 떠난 ‘탈남’ 숫자도 벌써 1100명이 넘는다. 상황에 맞춰 탈북자 정책을 수정해 오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한국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 맘에 안 든다고 불만이다. 숫자가 급증하고 정착 후유증이 발생할 때마다 정착금을 줄이고 정착을 제도화하는 방안에 주력했다. 그 결과, 이젠 안정된 프로그램도 작동하고 지역마다 탈북자를 위한 기구도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탈북자들은 캐나다, 영국, 미국행을 꿈꾸고 있다. 뭐가 문제인가. 한마디로 탈북자 정책이 너무 차갑다. 탈북자를 위한다고 만들어 놓은 정책에 사랑이 담겨 있지 않고 통제와 경쟁이 지배하고 있다. 능력 없는 사람은 가산금도 못 받는 정착금 제도가 작동하고 있고, 영어 잘하는 사람만 어학연수 갈 수 있는 이상한 제도를 외국대사관들이 부추기고 있다. 영어 잘하는 탈북자가 진짜 평범한 탈북자일까? 수능성적이 안 되면 안 뽑는 대학도 부쩍 늘고 있다. 모자라는 학생을 뽑아 잘 가르쳐 ‘든 사람’으로 만드는 게 교육기관인데 학교수준 떨어질까 봐 외국인 전형에 포함시켜 탈북자를 뽑는단다. 처벌이 싫어 도망 나온 사람들에게 정착교육 시작부터 벌점을 부과하는 정착제도를 습관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만점에서 점수를 까 나가지 말고 기본점수에서 시작해 잘하면 점수를 얹어줘 칭찬하는 제도를 병행했더라면 수많은 초기 탈북자들이 새 삶에 더 많은 기대를 했을 것이다. 탈북 미녀만 짧은 치마 입혀 출연시키는 방송만 없었더라도 정착금 받자마자 성형수술 비용으로 날려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었을 게다. ‘자연도태 적자생존’, 이것이 탈북자 정책의 현주소다. 북의 눈치를 보느라 ‘새터민’이란 용어도 조작해 냈다. 당사자들이 그토록 싫어하는데도 말이다. 그럼 우린 ‘헌터민’인가. 이참에 ‘탈북동포의 날’을 만들자. 두 다리로 대한민국 땅에 온 사람들을 기려, 두 다리 모양새 닮은 ‘11월 11일’을 탈북동포들과 함께 살아가는 날로 하자. 기념일을 만들면 특집방송도 하고 기념식을 통해 두루 칭찬도 할 수 있다. 방송작가와 연출자들은 알려지지 않은 탈북동포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줘 우리 사회에 이들이 정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통일 예행 연습을 위해 먼저 온 우리 반쪽을 이제부터라도 동포애로 맞자. 땅의 통일도, 화폐의 통일도 필요하지만 사람의 통일, 마음의 통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북한 주민의 꿈이 ‘아랫동네’에서 살아보는 것이란 얘길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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