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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지역 미술관 생존의 길/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시론] 지역 미술관 생존의 길/이지호 이응노미술관장

    최근 우리 사회는 디지털 문화의 발전으로 미디어 아트, 영상미술 등 새로운 형태의 예술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동시에 전통적인 것과 전위적인 것, 고전적인 것과 대중적인 것, 동양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의 영역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미술관에도 많은 과제를 안겨준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운영 전반에 도입해 관람객들의 감상과 이해를 돕고 더 나아가 관객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지가 현장 실무자들의 고민이다. 이응노미술관은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고암 이응노 화백의 예술세계를 중심으로 국내외의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단일작가 미술관으로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은 소장품들을 기반으로 2007년 대전시가 설립했다. 1904년 작은 시골마을 홍성에서 태어난 고암은 1958년 도불해 1989년 파리에서 작고하기까지 동양의 전통회화인 서화, 수묵화를 기초로 해 추상화, 콜라주, 판화, 오브제 등 서양 화법을 두루 받아들여 동양화를 세계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의 지치지 않았던 실험정신이 담긴 수많은 작품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이응노미술관이다. 하지만 서울에 비해 문화 수요가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지역 미술관의 한계 때문에 설립 초창기에는 미술관의 비전과 취지를 살리기가 수월치 않았다. 현재 미술관에서는 지리적 한계를 넘어 국제적으로 미술관을 홍보하고, 새로운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을 통해 찾아오는 지역미술관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미술관으로의 도입은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던 이응노 화백의 예술세계를 기리면서, 동시에 과학기술의 도시 대전 미술관의 특수성을 강화시키는 방법이라는 판단에서다. 대전은 19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여러 민간 연구소들이 함께 모여 있는 대덕연구단지가 있으며, 특히 과학기술중심대학 KAIST와 국내 최대의 종합 정보통신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경우 미술관에서 응용 가능한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전시 디자인에서 관람객의 흥미를 이끌어 내기 위해 오디오 가이드와 앱, 오디오 스포트라이트, 아이패드를 활용한 컬렉션 안내 전자책을 개발했다. 2014년 기획전 ‘서독으로 간 에트랑제, 이응노’에는 관객이 마주한 화면만 번역되는 인터액티브 인스톨레이션을 전시장 내에 적용했다.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ICT 활용 방식을 구축하고자 한다. 현재 제일 우선시하는 프로젝트는 소장품과 아카이브의 효율적인 정리와 관리를 위한 데이터 관리 프로그램 개발이다. 이를 위해선 우선 인력을 확보해 조직을 구성하고, 데이터 활용 방식의 하나인 작품 정보 검색, 작품 진위 감정, 작품 대여 관리까지 가능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이는 계획단계에서 일정 기간이 요구될 것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서로 다른 성격과 요구를 가진 사용자들(방문객, 관계자, 담당자)을 배려하기 위해서 개발과 활용단계에서도 지속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 미술관의 교육프로그램에서도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이응노 화백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기술이자 그의 도전과 실험정신에 따른 미래지향적인 교육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물론 그에 앞서 기존에 개발된 기술들에 대한 평가와 폭넓은 자료 수집을 통해 ICT의 활용방향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그 이후에야 각각의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에 적합한 기술을 단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지역 미술관은 서울중심이 아닌 국토 전반의 평준화된 문화융성을 위해 필수적인 인프라다. 지역의 한계만을 탓하며 수동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격변하는 시대에 뒤처지고 점점 더 고립될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고 관람객의 요구에 앞서서 읽고 대응해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 [시론] 야당, 이제 용기가 필요하다/황재옥 원광대 초빙교수·평화협력원 부원장

    [시론] 야당, 이제 용기가 필요하다/황재옥 원광대 초빙교수·평화협력원 부원장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출범했다. ‘돌고 돌아 문희상’, ‘계파인사 비대위’ 등 새정연을 비꼬는 듯한 말들이 대중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이 말들은 다분히 부정적이다. 보나마나 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비대위에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새정연이 예뻐서가 아니다. 잘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새정연에 대한 거듭되는 국민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우리 정치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하는 제1야당을 ‘파산’시킬까 걱정돼서다. 새정연이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면서 여당에 대한 견제세력 역할을 못하게 되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체제는 허울만 남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본의 자민당처럼 보수여당의 장기집권으로 국가의 동력(Dynamics)이 약화될지도 모른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데 새정연은 지금 당이 처한 위기의 심각성을 일반 국민만큼 알고 있을까. 만약 국민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새정연은 더 이상 제1야당으로 존립할 수 없을 것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작금의 사태를 ‘난파선’에 비유한 것으로 보아 문제의 심각성을 조금은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비대위 첫 모임 후 문 위원장이 공언한 ‘공정’과 ‘혁신’이 이뤄질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문 위원장은 지난 22일 언론 인터뷰에서 “정당에 계파는 있기 마련인데 문제는 계파가 아니라 계파이기주의”라고 했다. 옳은 문제의식이다. 계파의 이해관계가 그림처럼 그려지는 6인 6색의 계파 수장들이 비대위에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계파이기주의를 뛰어넘는 ‘당 바로 세우기’는 공염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새정연을 영영 버릴 것이다. 선량(選良)은 우선적으로 유권자의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인민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은 때로 인민의 불쾌한 반응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인이라면 나라 전체의 이익을 우선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일부 유권자의 뜻에 반하는 행동도 불가피하다. 토크빌의 말이 세월호 특별법 문제에서 야당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내겐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문 위원장이 지난 24일 세월호 유가족과의 면담에서 “여러분의 뜻을 100% 보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모자라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호소한 것이 그런 용기였으면 한다. 당내 강경파와 당 외 강경 세력이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야당이 대리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일부 계파가 아닌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재야세력을 중시했으며 강경한 목소리를 흘려 듣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김 전 대통령은 정책과 비전으로 당내외의 강경파를 설득하고 아우르면서 정권을 창출했다. 강경파와 온건파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난해한 국면 때마다 김 전 대통령이 견지했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를 현재의 야당 비대위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새정연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민주주의 발전을 갈망하는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주기 바란다. 여당과 1대1로 협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제1야당으로 거듭 나기를 원한다면 절체절명의 당을 바로 세워야 한다. 계파이기주의를 뛰어넘어 당을 공정하게 재정비하고 혁신해 나간다면 국민들은 다시 새정연을 지지할 것이다. 많은 것들을 손대려다 이전투구에 빠지지 말고 계파 간 화해와 통합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길 국민들은 기대한다. 야당의 계파싸움과 자중지란을 즐기려는 일부 야당 바깥의 사람들에게 굳이 그런 즐거움을 스스로 선사할 필요는 없다. 계파이기주의를 뛰어넘고 국민의 기대와 지지를 받던 시절의 야당 모습, 그 색깔을 보여줬으면 한다. 선거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위기의 심각성을 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국민은 그런 용기에 감동한다.
  • [시론] 어떤 세금도 공돈처럼 쓰여선 안 된다/김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장

    [시론] 어떤 세금도 공돈처럼 쓰여선 안 된다/김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장

    정부가 인상을 작정하고 있는 담뱃세와 관련된 세수가 공돈처럼 쓰일까 걱정이다. 지난 12일 문창용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담뱃세와 주민세 인상이 증세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증세 목적으로 담배 가격을 인상했다는 데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 금연 정책의 하나로 담배 가격을 올린 것이고 담배 가격을 올리려다 보니 담배 가격을 구성하는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근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담뱃세 인상의 목적은 세수가 아닌 국민건강증진”이라고 강조했다. 세제를 관장하는 최고위직 정책담당자들의 이런 발언은 마치 담뱃세 인상으로 들어오게 될 세수 증가액을 공돈으로 인식하는 것처럼 들린다. 최 부총리는 “결과적으로 세수가 들어오겠지만 이 부분은 금연 활동과 금연 캠페인을 늘리거나 하는 예산으로 집중 지원하고 국민 안전과 관련된 지출에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부총리의 발언은 정부가 늘어나는 세수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계획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모든 세금은 국민 행복과 복리 증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곳에 최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 세금에 공돈이란 있을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담배 관련 세금에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포함시킨 안에 대해 비판한다. 건강증진이 담뱃세 인상의 진짜 목적이라면 늘어난 수입 대부분을 건강증진부담금으로 써야 맞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담뱃세 인상의 목적을 국민건강증진이라고 계속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담뱃세 인상이 세수 확보에도 목적이 있다고 하면, 서민증세라는 반대 여론이 거세질 것을 지나치게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정부는 이 부분에서 보다 솔직해져야 한다. 담뱃값을 2000원씩 올릴 때 추가로 더 걷게 되는 세금은 2조 8000억원에 이른다. 이 돈은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에 쓰여야 한다. 흡연자에게서 걷은 세금이니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논리는 세금의 본질에 비춰 옳지 않다. 소득에 대한 역진성이 강한 담뱃세와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이 양극화 문제의 해법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크게 비판받을 일임에 틀림없다. 정부가 이런 비판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음에도 이 시점에 담뱃세 인상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필경 세수 확보에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어렵게 걷어 들인 세수를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인 곳에 사용할 대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진심으로 설득해야 한다. 국민건강증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느라 금연 캠페인에 혈세를 쏟아 붓기보다는 부족한 복지예산 확충에 사용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선택이다. 현재 담뱃갑을 보면 앞뒤에 경고문구가 있다. 하지만 담뱃갑 어디에도 담배가격을 구성하는 담배공급가액, 담배소비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지방교육세, 부가가치세, 폐기물부담금이 표시돼 있지 않다. 2500원을 전부 담뱃값으로 알고 내는 것과 실제 담뱃값은 38%인 950원이고 나머지 62%인 1550원이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납세자가 담배를 살 때 자신이 부담하는 세금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아야 하는 것은 납세자의 권리이자 과세권자의 의무다. 정부는 담뱃세 인상의 근거로 한국의 담뱃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싸다는 사실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OECD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세전세후 가격을 동시에 표시하거나, 세금 내역을 구분 표시하는 가격표시제를 하루속히 도입해야 한다. 이번 담뱃세 인상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보건복지 쪽이 아닌 최고위직 조세정책 담당자들조차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국민건강증진이라는 명분만을 내세우기에 급급하다는 점이다. 담배에 붙여 걷든, 술에 붙여 걷든 모든 세금은 납세자의 피와 살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시론] 보호수용 도입, 편법적인 징역형의 연장일 뿐이다/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보호수용 도입, 편법적인 징역형의 연장일 뿐이다/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과거에 ‘보호감호’라는 제도가 있었다.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범죄자에 대해 징역형 복역 후에 최장 7년까지 다시 구금하는 것이었다. 그 목적은 위험한 범죄자의 재범을 방지한다는 것인데, 실제 보호감호의 집행 현실은 징역형과 전혀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중처벌이라는 비판에 시달리다가 결국 2005년에 여야 정당의 합의로 폐지됐다. 9년이 흐른 지금, 법무부는 보호감호제의 이름을 ‘보호수용’이라고 바꿔 재도입하겠다며 근거 법률을 입법예고했다. 인권침해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과거의 보호감호제보다 대상자의 범위를 축소해 살인과 성폭력범죄자로 그 대상을 한정하고, 접견이나 전화통화 등 구금생활 중의 처우를 개선하고 재범의 위험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사회복귀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시행하겠다고 한다. 그러니 과거의 보호감호제와는 다른 제도라고 강변한다. 접견이나 전화통화의 혜택을 징역형 재소자보다 더 많이 주고 작업에 대한 보상금을 더 많이 지급한다고 해서 보호수용이 징역형과 차별화된 제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흔히 보안처분의 일종인 보호수용과 형벌은 법 형식상 다른 제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보호수용의 목적은 실제 형벌의 목적과 같다. 보호수용은 전면적인 자유박탈, 즉 구금을 내용으로 하는 형사제재로써 재범방지의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징역형과 본질상 동일하다. 보호수용의 경우에 징역형 집행보다 생활상의 혜택을 조금 더 부여하는 것으로 보호수용과 징역형의 본질적 동일성이 부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 형법의 보호감호에 대해 유럽인권재판소는 2009년 판결에서 보호감호는 자유박탈이라는 점에서 형벌과 실제로 동일하고, 보호감호의 집행목적도 형벌목적과 중첩되며, 실제 집행에서도 징역형과 차별화된 처우가 없다는 점에서 유럽인권협약에서 규정한 ‘형벌’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보호수용은 결국 징역형의 편법적인 연장이며 따라서 이중처벌인 셈이다. 법무부는 단순히 범죄자를 장기간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획기적인 교정 프로그램을 시행해 범죄자의 원활한 사회복귀를 추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보호수용에서 획기적인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시행한다고 하는데, 교도소에서 먼저 시행할 생각은 왜 안 하는 것일까. 현재 교도소의 교정교화 프로그램은 열악하다 못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징역형 복역 중에 이렇다 할 교정 프로그램을 전혀 실시하지 않은 채로, 재범의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재차 구금하면서 그때 가서 ‘획기적인’ 교정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설득력이 없다. 교도소를 바꾸는 게 먼저다. 진정으로 범죄자의 교정교화를 고민한다면 징역형 집행 단계에서 효과적인 교정교화 처우를 실시해야 하는 것이지, 보호감호라는 이름으로 편법적으로 징역형을 연장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보호감호 재도입을 반대하는 것이 마치 치안불안을 방관하는 무책임한 주장인 양 오해돼서는 곤란하다. 위험한 범죄자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다각도의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 보호수용이라는 추가적인 형사제재를 부활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징역형 집행의 과감한 개혁, 즉 징역형 행형단계에서 전문적이고 효과 있는 교정교화 처우를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범죄를 유발하는 사회적, 경제적 현실에 눈을 돌려 범죄자에 대한 직업 알선이나 갱생보호 프로그램 등 범죄자가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한 노력을 등한히 한 채로, 보호감호라는 이름으로 범죄자를 장기간 격리하는 데에만 몰두한다면 이는 범죄자의 교정교화라는 국가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는 재범방지라는 형사정책적 목표를 달성할 수도 없다. 보호수용 재도입은 오직 억압적인 구금과 격리를 통해 국가형벌권의 확장을 추구하는 위험한 정책일 뿐이다.
  • [시론] 세월호가 보내는 징후를 읽어라/정우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시론] 세월호가 보내는 징후를 읽어라/정우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균열의 징후다. 우리의 현재적 삶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된 이 균열은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은 안전한가’라는 불안은 우릴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더욱이 ‘국가’라는 조직의 무능과 무기력이 백일하에 드러난 터라 균열의 틈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심저에 똬리 튼 천박한 탐욕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는 한 이와 같은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일상화된 위기의 한 징후를 나는 최근 곳곳에서 꺼져 내리는 싱크홀에서 본다. 섬뜩하지 않은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쑥 가라앉아 사라져 버린다면. 갑자기 늘어난 싱크홀 현상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망상인가. 사람들은 큰 위험으로 느끼지 않는 것 같지만 내게는 다르게 다가온다. 막개발을 삼가고 그 원인을 제거하면 그칠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연이 보내는 한 경고로 비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탐욕은 접고 사람과 자연이 두루 함께 어울려 살길을 도모하라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여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요청도 바로 이 관점이다.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함도 아니고 정권을 망치려고 음모를 꾸미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경고하는 우리 사회의 온갖 암 덩어리들을 이참에 깨끗이 제거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벌어진 균열의 간극도 메울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아마도 우리는 더 심대한 타격과 재앙에 노출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적당하게 타협하고 덮을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라. 수많은 재난을 겪고도 왜 비슷한 사례들이 반복되는가. 냉철한 원인분석과 책임자 처벌 같은 공정한 심판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썩은 것은 도려내야 하고 책임질 자는 처벌해야 한다. 물론, 정권의 입장에서 이는 참 난감한 노릇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피해가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벌어졌고 30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됐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이 정권은 이제 그만두라고 윽박지른다. 명확해진 사실이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그만두라는 말인가. 팽목항을 바라보며 흘리던 그때 그 눈물은 다 어디로 갔나.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으로 세월호 참사를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다시 탐욕으로 눈 붉히면 우리 모두는 공멸한다. 세월호 참사가 보여주는 징후를 제대로 깨우쳐야 한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정권의 안위를 위한 패거리 정치의식을 버려야 한다. 내가 아니라, 너와 우리를 어루만질 수 있어야 이른바 적폐니 관피아니 하는 곪은 종기들을 제거하는 공정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오해는 마시라. 나는 이 정권에 청원하는 게 아니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진실은 오늘이 아니라도 반드시 밝혀지게 돼 있다. 이번에 특별법을 제정하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는 다 드러난다. 다만 지치지 않고 느긋이 기다리면 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내가 두려워하는 건 정권에 호도된 이들의 적대감정이다. “사람이 어쩌면 저럴 수가!”하고 싶은 행태가 노골적으로 전면화하는 시점에 우리는 서 있다. 사람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기는커녕 조롱거리로 삼거나 심지어는 매도한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야차로 보인다. 나는 이 감정이 공포스럽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의 참사도 뼈아프다. 상식으로 쓰이던 말들이 저들의 입을 통과하는 순간, 기괴하게 뒤틀려버린다. 궤변이다.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기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궤변 치하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말들을 구할 것인가. 말의 수호단이라도 조직해야 할 것인가. 그러자 내 속에 잠긴 세월호가 속삭인다. 균열을 조장하는 저 패악부터 먼저 일소시키라고.
  • [시론] 이순신, 김영옥, 그리고 리더십/장태한 UC리버사이드대 소수민족학 교수

    [시론] 이순신, 김영옥, 그리고 리더십/장태한 UC리버사이드대 소수민족학 교수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명량’이 한국 영화의 모든 기록들을 경신하는 최고의 히트작이 됐다. 영웅이 없고 강한 리더십을 갈구하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명량에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순신의 리더십은 최전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지휘하는 희생정신과 힘없고 가난한 백성을 보살피는 인간애다. 한국 사회의 현주소는 우울하고 침체된 분위기에서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으며 양극화가 심해진 분열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탈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순신의 리더십은 한국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고 있다. 영화 속 이순신의 리더십을 보면서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인 김영옥 장군을 떠올리게 됐다. 재미 한국계 2세인 김영옥은 일제의 조선 침탈 시기에 부모가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에 전념했고 김영옥은 미국 사회에서 소수인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면서 성장했다. 일제강점기 김영옥은 미군에 입대해 일본계 미국인 병사들로 구성된 100대대의 지휘관으로서 유럽 전선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전쟁 영웅으로 퇴역한다. 퇴역 후 김영옥은 적지 않은 연금과 사업가로 성공해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미군에 자원 입대했다. 미국에서 편히 살 수 있었음에도 조국을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해 싸우다가 그는 장애인이 됐다. 이런 그의 헌신과 애국심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헌신과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2011년 미국의 유명 포털 사이트인 msn.com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전쟁영웅 16명을 선정했을 때 조지 워싱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등과 함께 김영옥이 포함됐을 만큼 그의 리더십은 미국에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의 리더십은 일본계 미국인들마저 추앙하고 칭송할 정도다. 김영옥은 자유, 평등, 인권 등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위해서 자신을 바쳤고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물론, 다른 인종을 위해 피를 흘렸다. 그는 퇴역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자신을 바쳤다. 결국 이순신과 김영옥은 탁월한 지략과 용기 그리고 부하들을 아끼며 솔선수범함으로써 불패의 신화를 남겼으며 기본적으로 인간애가 충만한 리더들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현재 한국의 정치인과 지도층이 보여주고 있는 리더십의 현주소는 암담하다.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에서는 부동산 투기, 병역면제, 전관예우, 논문표절 등의 의혹이 단골로 제기되면서 지도층의 도덕성 부재와 부패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당시의 관행”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리더로서의 올바른 모습을 전혀 보여주고 못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지도층이 솔선수범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미국 정치의 유명 가문인 케네디가(家)는 네 명의 아들이 모두 미군에 입대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이다. 특히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형인 조 케네디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영국의 윌리엄과 해리 왕자도 공군에 자원입대했으며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최전방에 자원해 파병되기도 했다. 현시대 한국 지도층이 보여주는 암울한 리더십에도 불구하고 이순신과 김영옥 등 불세출의 영웅들이 보여주고 있는 헌신적 리더십은 침체되고 분열된 한국 사회에 희망과 용기를 던져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기주의와 책임회피 그리고 병역회피가 만연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한국 사회에 이순신과 김영옥 같은 리더들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본래 DNA가 결코 이기적이지 않고 희망적이다는 사례일 수 있다. 이 같은 긍정적 DNA를 본받고 양성해서 앞으로 더 많은 이순신, 더 많은 김영옥을 배출하는 게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의무라 하겠다.
  • [시론] 경제살리기 급하지만 장기전 펼쳐야/오문석 LG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

    [시론] 경제살리기 급하지만 장기전 펼쳐야/오문석 LG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 살리기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초반 분위기는 조성했지만 ‘최노믹스’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한둘이 아니다. 우선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고 세계 경제도 미국을 제외하면 대부분 회복세가 미약하다. 여기에 200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설비투자 둔화, 신성장 사업 부진 등 공급 부문의 문제들은 장기화될 조짐이다. 즉 노동과 자본을 결합해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공급 과정이 원활치 않은 것이다. 국내외 수요 부진과 공급 부문의 구조적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대로 앉아 있다가는 정말 일본과 같이 장기 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 내수 심리를 회복하기 위해 수요 확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한 순서였다. 경제는 생물과 같아서 성장하려는 거스를 수 없는 힘이 내재해 있다. 재정 확대와 금리 인하, 부동산 규제 완화 등 수요를 부추겨 경제 회복의 모멘텀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수요 확대 정책은 효과나 지속성 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2000년대 초중반 산업경쟁력 약화를 저금리로만 대응한 나머지 결국 부동산 거품 붕괴와 금융위기를 겪어야 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도 강력한 수요 정책으로 성장률을 높이고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올해에는 소비세 인상 등의 여파로 약효가 떨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 경제의 침체가 단순한 수요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청년 실업은 수요 부족으로 일자리 자체가 없다기보다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능력이 모자라거나 벽에 막혀 있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아도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은 투자수익률이 그만큼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제조업 투자가 확대되면서 과거 우리 기업들의 강점인 신속한 설비투자만으로는 수익을 창출하기 어려워졌다. 성장의 기회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지식과 기술을 다양하게 결합하고 활용해 선진 기업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업들에 국한되고 있다. 따라서 경제를 살리려면 장기간에 걸쳐 공급 부문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은 기본이지만 이 시점에서 특히 시급한 것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려 나가는 것이다. 그동안 서비스업은 다소 방치됐던 일종의 금맥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욕구가 커질수록 이에 필요한 서비스 상품에 대한 수요가 의료, 교육, 법률서비스, 관광,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 사람과 기기, 기기와 기기가 서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도 새로운 서비스 수요를 예상케 한다. 이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공급 부문의 막혀 있는 활로를 열어준다면 서비스 산업은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의 원천이 될 것이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통과가 중요한 이유다. 세부적으로 논란이 있겠지만 서비스산업을 경제 활성화의 주요 축으로 삼고 규제와 진입장벽을 제거해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취지는 살려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이 법이 시행되면 2020년까지 35만개의 청년 일자리가 창출되고 국내총생산도 1%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법 통과뿐 아니라 정부도 민간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과 조직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경제 활성화 노력이 결실을 얻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 나가는 정치적 리더십이 절실해졌다. 과거에도 서비스산업을 육성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익집단들의 거센 저항에 막혀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개혁으로 피해를 보는 집단의 반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끝까지 소통하고 끈질기게 설득하며 때로는 타협하며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당장 효과를 봐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문제 하나하나를 풀어가는 장기전을 펼쳐주길 바란다.
  • [시론] CCTV, 개인정보 보호와 공익 사이의 딜레마/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시론] CCTV, 개인정보 보호와 공익 사이의 딜레마/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인터넷 웹사이트 회원 가입 때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거나, 은행 계좌를 열고 신용카드를 신청할 때 직접 서명하는 것처럼 개인정보보호법의 가장 큰 원칙은 정보주체 동의로 개인정보 처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원칙은 1대1로 정보 수집과 처리가 이루어지는 통상적인 상황을 전제한 것이어서 폐쇄회로(CC)TV와 같이 확정되지 않은 다수 개인정보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촬영, 수집되는 방식에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물론 CCTV를 길가에 설치하고 찍히는 모든 사람을 상대로 사전 동의를 받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연유로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는 별도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공개 장소에서 CCTV를 촬영하는 것에 대하여는 안내판을 통해 촬영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정보주체 동의를 대신하도록 하고 있다. CCTV에 관한 개인정보보호법의 규정이 만들어진 이후 추가 규제의 시급성에 비해 논의 진전은 그다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논의의 지지부진함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공익 확보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차가 커서 접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보면 CCTV에 내 영상이 찍히도록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원하면 언제나 자기 영상을 삭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 중 일정 시간을 어디에서 보냈는지, 어느 교통수단을 이용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타인이 쉽게 알 수 있게 되고 또 영상이 범죄수사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공익성에 주목하는 관점에서 보면 CCTV의 설치, 운영으로 얻는 공익이 크기 때문에 운영을 확대하고, 수집된 정보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관련 정보들을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견지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가장 큰 이슈가 되는 통합관제만 하더라도, 현행법으로는 법적으로 엄밀하게 다른 주체인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이 정보를 공유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정보 수집과 정보 이전을 명확하게 구분해 정보 이전에 대하여는 CCTV에 관한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는 대신 개인정보보호법의 일반 규정이 적용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런 법적인 불안정성은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도록 한 개인정보보호법의 태생적 한계와도 맞닿아 있다.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자체와 경찰의 통합관제 문제는 전혀 별개의 두 민간 기업의 개인정보 통합과 동일선상에서 해결돼야 한다. 두 기업이 각각 수집한 개인정보를 개별 기업의 목적을 위해 공유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생각한다면 통합관제의 문제는 법률적인 측면에서도 무시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법적 불명확성에 대한 주장을 잠시라도 접어두려면 통합관제로 얻는 효율이 그 탓에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의 침해 가능성과 비교해 더 커야 한다. 그런데 통합관제가 효율적일 것이라는 막연한 분석 이외에 과연 통합관제를 통해 범죄예방과 사회적 분쟁 해결의 효과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인지, 행정기관이 관리하는 정보와 수사 당국이 관리하는 정보가 합쳐지게 되면서 얻게 되는 시너지가 통합 행위의 법적 불명확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것인지도 단정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질수록 보호 범위는 확대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CCTV 활용을 통한 공익 확보라는 목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과제다. 상충하는 과제의 원만한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합의를 통한 결론을 이끌어 내려는 장이 꾸준하게 마련돼야 할 때다.
  • [시론] 예술공론장과 큐레이터정신/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시론] 예술공론장과 큐레이터정신/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민주와 인권의 도시 광주가 표현의 자유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광주정신이라는 고유명사를 내걸 정도로 광주는 한국현대사를 견인한 위대한 정신적 자산을 가진 도시다. 서울정신이나 부산정신에 비해 광주정신은 선명하게 도시 정체성을 대변한다. 하지만 광주정신이라는 굴레가 오히려 광주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인구 100만명이 넘는 거대 도시 광주의 정체성을 단일한 그 무엇으로 설명하는 것은 일견 자긍심이나 선명성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은 그 명성에 걸맞은 역동적인 사유와 실천의 두께를 더하기보다는 빛바랜 훈장처럼 퇴행적인 진영 논리를 반복 재생산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전시 철회를 선언함으로써 일단 봉합 수순에 접어든 홍성담 걸개그림 ‘세월오월’ 사건은 광주의 속살을 들춰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는 도시 광주에서 광주정신이라는 것은 확정 불가능한 허상이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만약 광주정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역사가 부여한 안정적인 기표가 아니라 역사의 유훈을 호명해 현재의 시대정신으로 재생산하는 역동성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광주는 역동은커녕 역사적 유산마저도 퇴행시키고 있다. ‘세월오월’과 함께 유폐된 것은 비단 표현의 자유만이 아니다. 그것은 광주정신의 실종과 함께 예술적 공론장의 파국을 불러왔다. 예술적 소통이 매개하는 공공영역, 즉 예술공론장은 개념이자 제도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표현의 자유다.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는 그 자체로 예술의 전제이자 존재 이유다. 근대적 개념의 예술은 종교와 권력의 요청에 부응해 주문생산을 하던 화공과 석공, 도공들이 스스로 작품 생산의 주인임을 선언하면서 예술의 자율성을 확립한 데서 출발했다. 따라서 예술의 자율성에 근거한 표현의 자유 없이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 광주비엔날레가 홍성담 걸개그림을 전시하지 않은 것은 그 장을 온전한 예술공론장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데 제한을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에 비할 바 아니지만, 필자가 일하고 있는 미술관에서도 표현의 자유 문제로 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해당 작품은 지난 대선 운동 기간에 특정 후보 이미지를 담은 포스터를 부산의 거리에 부착해 선거법 위반으로 법정계류 상태였다. 작가는 민감한 부분에 ‘사정상 이미지를 보여 줄 수 없다’고 쓴 A4 용지를 부착했는데, 이에 대해 시민과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작가가 직접 손글씨를 써 붙인 것이어서 논란이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사안의 민감성을 실감했다.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 프로젝트의 윤범모 책임큐레이터는 광주정신을 성찰하는 기획전 ‘달콤한 이슬 1980 그후’의 파행을 맞아 개막행사 이틀 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우여곡절 끝에 복귀했다. 그가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키지 못한 큐레이터의 자괴감 때문이었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직위가 아니라 정신이자 명예였다. 출품작에 관한 비평적 논의나 대책 없이 행정관료의 잣대에 먼저 노출된 소통 경로와 책임큐레이터에게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N분의1로 출품 여부를 결정하는 의사결정 구조는 큐레이터 정신을 병들게 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느냐 제한하느냐 하는 해묵은 논쟁은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더욱이 진영 논리에 빠져드는 정치적 의제와 표현의 자유 문제는 생산적인 논쟁을 기대하기 어렵다.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큐레이터 정신이다. 첨예한 논점으로 사회를 일갈하는 예술가와 다양한 관점이 공존하는 대중 사이에 선 큐레이터의 판단력은 예술공론장을 지탱하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한다. 큐레이터는 예술의 개념과 제도를 지탱하는 매개자이자 생산자이며, 한 시대의 정신문화를 갈무리하는 지식인이자 실천가다. 파국 이후의 지혜가 필요한 이 시점에 큐레이터 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 [시론] 2015년 동북아, 분리대응·다자협력이 열쇠다/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

    [시론] 2015년 동북아, 분리대응·다자협력이 열쇠다/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

    내년은 광복 70주년이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다. 밝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지만 일본을 둘러싼 마찰 때문에 동북아의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10년 전인 2005년에도 동북아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때문에 지금 같은 대립구도 속에 있었다. 중국이 고이즈미 정권에 대해 5년이나 정상 간 상호방문을 거부할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였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동아시아 지역통합이나 6자회담과 같은 다자협력의 움직임이 상당히 활발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일변하여 동아시아 다자협력의 기운은 쇠퇴하고 대신 편협한 내셔널리즘이 횡행하고 있다.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놓고 찬반양론이 백중했던 일본에서는 지금 동아시아 담론이 자취를 감추었고, FTA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지역협력을 가속화했던 중국은 금년 5월의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보듯이 미국과 일본을 배제하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동북아시대위원회를 설치할 정도로 다자협력 구상에 적극적이던 한국의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 이대로라면 2015년 동북아의 전망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종전 70주년’을 맞아 일본이 역사수정주의로 분식한 ‘아베담화’를 발표하고, 이에 대해 중국이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내세우며 맞대응하면 한국도 조용히 있을 수 없다. 동북아가 또 한 차례 역사마찰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다자협력의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다. 이름에 비해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비판은 따져보면 꽉 막힌 남북관계와 한·일관계에도 그 원인이 있다. 따라서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이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구체 과제를 제시하고 북한과 일본에 대해 국면전환의 의지를 보여준 것은 적절했다. 우선 북한에 대해서는 환경, 문화, 생태 통로를 제안했다. 너무 실무적이고 스케일이 작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부담이 적은 실무급 협의부터 추진하면서 대화와 협력의 관행을 쌓아 나가는 ‘과정’ 자체가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납득이 간다. 그렇다면 한발 더 나아가 핵·미사일 문제 등 군사·정치적 분야에서 단호한 대응을 계속하는 대신, 한편으로 교류·협력 분야는 ‘분리’해 좀 더 과감하게 나설 필요가 있다. 명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실현할 아이디어를 조속히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이 한반도 문제에서 이니셔티브를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동북아의 모순적 상황을 타개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일본에 대해서는 올바른 역사인식과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집권 자민당의 고노담화 수정 요구 등 최근 움직임을 볼 때 아베 정권의 통 큰 결단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인식이나 위안부 문제에서 원칙을 굽히지 말고 단호한 대응을 계속하면서, 한편으로 안보나 경제분야는 ‘분리’해 실용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한·일 간에 실무차원의 협조 분위기가 되살아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정상회담 개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서울이나 도쿄에서 정식으로 외교장관 회담을 갖는 것을 당면 목표로 해 실무적 협력을 다져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경축사에서 제안한 동북아 원자력 안전협의체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다. 동북아 다자협력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이 기회에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한 중재자 역할에도 나서기를 바란다. 2008년 시작된 한·중·일 정상회담은 동북아 지역통합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으나 안타깝게도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때문에 작년부터 중단돼 있다. 역사 문제와 분리하는 지혜를 내서 그 명맥을 이어가야 한다. 남북관계와 한·일관계에 숨통을 열고 다자협력으로 동북아의 대립을 완화하는 능동적 외교, 그 열쇠는 분리대응의 발상에 있다.
  • [시론] 소득분배의 구조개선 없이 경기 활성화 어렵다/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시론] 소득분배의 구조개선 없이 경기 활성화 어렵다/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최경환 경제팀이 추진하는 경제 정책의 방향과 효과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경기 회복의 신호탄이라며 부푼 기대감을 나타내는 평가도 있고, 되레 양극화만 가속화할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연 어떤 평가가 적절할까. 지난달 24일 발표한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 방향’을 자세히 보면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은 대체로 적절한 것 같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어긋나 보인다. 새 경제팀은 지금의 경제 상황을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한 경기 회복의 부진’으로 진단했다. 구체적으로 임금상승 둔화와 고용 불안정, 그리고 과도한 가계부채로 인한 내수 부진, 기업가 정신 쇠퇴에 따른 투자 부진과 서비스산업의 낙후를 구조적인 문제로 분석하고 있다. 이런 진단은 정확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적절해 보인다. 더 엄밀하게 진단한다면 소비 부진의 원인을 고용 불안정, 가계부채와 함께 실질 임금의 감소와 소득분배 악화에서 찾았어야 했다. 또 투자 부진의 원인도 기업가 정신의 쇠퇴가 아니라 수요 부족에 따른 가동률 부진에서 구하는 것이 정확했을 것이다. 실제로 실질 임금은 2007년 이후 5년간 2.3% 뒷걸음질쳤다. 이와 함께 국민소득 대비 가계소득 비중도 1998년 대비 12% 포인트 떨어졌다. 여기에 소득 분배도 크게 악화돼 평균 소비성향이 지난 10년간 무려 4.6% 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런 소득 감소와 소득분배의 악화가 결국 소비 부진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 신규 투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투자조정 압력은 저조한 가동률로 인해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낮은 실질 금리와 적절한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부진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은 바로 수요 부족에 기인한 낮은 가동률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당연히 가계부채를 줄이고 고용 안정을 제고시키면서 동시에 실질 임금과 가계 소득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소득 분배의 불균형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책들이 필요한 것이다. 또 가동률을 높일 수 있도록 내수가 살아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소득분배의 구조개선 정책을 써야 할 타이밍인 것이다. 그러나 최경환 경제팀은 가계소득을 늘려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소득분배 개선보다 이를 악화시키고 투기적 행동을 초래할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가계소득을 늘리기 위한 3대 세제 가운데 근로소득 증대세제를 빼고 나머지는 실질 임금 상승이나 소득분배 개선에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는 대책이기 때문이다. 배당소득세제와 기업소득환류세제는 부자들의 자본소득 증가에 더 기여할 뿐, 실질 임금과 전반적인 가계소득 향상, 소득분배 개선에는 효과적이지 못하다. 또 부동산 금융규제 완화, 주택 구입과 임대주택 지원이 핵심을 이루는 부동산 활성화 정책은 가계부채 완화보다 가계부채 증가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어떤 사람들은 배당주 중심의 주가 상승과 서울 강남의 주택거래 증대를 새 경제팀의 경제 정책 성공 신호라고 흥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필요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소득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투기적 행동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부채 조달을 통한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가 경제를 개선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가져다 준 사례는 없다. 역사의 경험은 항상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만을 낳았다. 우리 경제는 현재 회복세가 다소 부진하다고 할지라도 경기침체의 상태는 아니다. 다만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장기 저성장 체제가 구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그래서 최경환 경제팀이 구조 개선 없는 단기 부양책만을 들고 나온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분배의 구조 개선 없이 이뤄지는 경기부양 정책은 경기 활성화를 지속시키지 못하고 부자들의 소득만을 증대시킨다. 또 투기를 부추겨 한국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 [시론] 평시의 군사법원은 폐지해야/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평시의 군사법원은 폐지해야/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병영 안팎에서 자주 불리는 ‘진짜 사나이’라는 군가에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라는 가사가 있다. 할 일 많은 젊은이의 조국애 덕에 부모 형제가 편히 생활하고 잠잘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는 부모 형제도 잠 못 들고 군대 간 우리의 아들들도 편치 않은 사건의 연속으로 충격에 휩싸여 있다. 전우가 겨눈 총부리에 아까운 목숨이 사그라져 가고, 동료의 주먹과 험한 말에 온몸과 마음이 멍들고 지쳐 급기야 죽어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병사들도 한둘이 아니다. 병영 참사는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가혹행위와 성추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진실이 밝혀져 처벌받아야 할 자에게 엄한 형벌이 가해지고 책임을 져야 할 지휘관들이 물러나거나 징계를 받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돼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면 유사한 일들이 또 발생하고 만다. 처벌받고 책임져야 할 자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모습을 보는 한 일벌백계의 효과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군대 내에서 폭행·가혹행위가 끊이질 않는 이유는 발각되지 않았거나 발각됐어도 처벌되지 않은 경험이 있어서 그렇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는 일은 검찰과 법원의 임무다. 군대라고 다르지 않다. 군사법이 그 몫을 해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군사법은 어떠한가. 헌법 제110조에 따라 특별법원으로서 설치된 군사법원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조직상 군사법원의 독립성이 보장돼 있는가. 군사법원의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하고 있는가.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군사법원은 헌법 제5장의 법원 편에 속해 있지만 조직상 행정부인 국방부에 설치돼 있다. 군사법원법에 따라 보통군사법원의 재판장(심판관)은 비법률가인 일반 장교가 맡아 재판을 진행한다. 심판관과 군판사(법무관)는 범죄 사건이 발생한 해당 부대 지휘관(관할관)이 임명한다. 그러니 승진과 영전을 바라는 지휘관에게 수사 과정에서부터 사건을 은폐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권한이 법적으로 부여돼 있는 셈이다. 부대 지휘관인 관할관은 자기 부하인 심판관을 통해 재판에 개입할 수 있어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장치가 없다. 관할관은 판결이 나면 형량을 감경할 수 있는 권한, 즉 확인조치권도 갖고 있다. 대법원의 양형 기준을 무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다. 이처럼 사건이 발생한 부대의 지휘관인 관할관은 수사 단계에서부터 재판부의 구성과 재판 결과의 확인까지 모든 과정의 결재권자이기 때문에 군 사법제도는 전문성과 공정성을 팽개친 제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을 원님 재판’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것이다. 이처럼 군 사법제도는 법치국가의 사법체계라고 부를 수 없는 치명적인 제도적 결함을 안고 있다. 독립성이 보장된 법원과 법관에 의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는 전근대적인 사법제도다. 이런 미개한 군 사법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문명국가는 없다. 그럼에도 군은 전쟁 상황을 대비해 일사불란한 사법체계가 필요하다며 군사법원의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군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상 권리를 박탈하고 있지만 군 전투력 보존과 군기유지라는 미명하에 현재의 군 사법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군인도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당연히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군사법원에서 관할하고 있는 전체 사건 가운데 군형법범은 15%에 불과하고, 나머지 85%는 폭행·절도, 성범죄와 같은 일반 형사사건이라니 군사법원이 평시에 특별법원으로서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사법개혁의 대상이었던 군 사법제도가 군의 조직적 저항으로 살아남았지만 이제 군은 반대의 명분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평시의 군사법원 폐지만이 우리 군을 살리고 병영의 젊은이들과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근본적인 혁신방안이다.
  • [시론] 기득권 버리는 진정한 리더십이 그립다/전찬일 영화평론가

    [시론] 기득권 버리는 진정한 리더십이 그립다/전찬일 영화평론가

    이쯤 되면 ‘신드롬’이니 ‘현상’ 등의 의례적 수사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흥행 광풍을 설명하기엔. 개봉 이후 연일 신기록을 수립한 영화는 15일째인 지난 13일 1200만명 선마저 가뿐히 넘고 1300만명대를 향해 질주 중이다. 개봉 3주차란 점을 감안하면 ‘아바타’가 보유하고 있는 1330만명의 역대 흥행작 1위 기록을 깨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관심은 그 질주가 과연 어디까지 이를 것이냐 여부다. 걸작이든 범작이든 졸작이든, ‘명량’의 기념비적 흥행의 결정적 요인은 장수 이순신이요, 그의 독보적 리더십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나라의 무능한 고위 지도층을 향한 백성들의 불만이 장군의 헌신적, 실천적 리더십에 열광하고, 그 열광이 영화의 기록적 박스 오피스로 표출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진단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의문들이 밀려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왜, 돈이 되는 소재라면 혈안이 돼 달려들기 마련인, 대한민국의 숱한 기획·제작자들은 그 호재를 방치해 오다시피 한 것일까. 2005년 선보인 박중훈 주연의 ‘천군’ 같은 변종을 제외하면, 김진규 주연 장일호 감독의 1977년 작 ‘난중일기’ 이후 진지한 이순신 영화는 부재했었기에 던져보는 물음이다. 예의 그 영화들이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 못하고, 이순신 이야기는 돈벌이감이 아니라고 판단해 왔기 때문 아니겠는가. ‘명량’이 걸작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나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그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등 허구라지만 최상의 극적 효과를 발휘한 명대사들이 없이도, 대장선이 ‘회오리 바람’에 휘말려 침몰하기 직전 민초들이 작은 배들을 타고 자발적으로 나서 갈고리로 그 큰 배를 끌어 구해내는 결정적 드라마가 없어도,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을, 류승룡이 적장 구루지마를 연기하지 않았어도, 때론 전면에 나서고 때론 후면에 머물러 있으면서 제 본분을 톡톡히 해내는 수준급 음악이 없더라도, 영화 속 ‘울돌목’처럼 정중동의 영화 리듬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최상의 연출이 아니라도 ‘명량’이 지금과 같은 역사적 성공을 일궈낼 수가 있을까. 그저 이순신 스토리만으로? 그럼에도 이순신 변수가 ‘명량 광풍’의 으뜸 인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장군은 리더십이 무엇인지,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리더십은 어때야 하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경영대가적 리더십을, 목숨까지도 버릴 용단의 서번트 리더십을, 희대의 심리적 전략·전술로 절대 열세의 물적 토대를 극복하는 승부사적 리더십을, 일국의 장군이 일개 촌로의 조언을 경청해가며 작전을 구사할 줄 아는 소통·공감의 리더십을…. 상기 리더십 면 등에서, 4박5일간의 일정으로 14일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순신 장군과 연결된다. 역대 세 번째로,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에 방한하는 ‘빈자의 벗’이다. 390여년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웅’과 ‘성자’로 일컬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도 닮은꼴이나, 무엇보다 기득권을 훌훌 떨쳐버리고 백성들, 즉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편에 서서 살다 갔고, 살다 갈 거라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이란성 쌍둥이의 모습이다. 지금 이 시점 바닷속에 잠겨 있는 세월호처럼 참혹하게 표류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이나, “이게 나라더냐!” 등의 자괴감·절망감을 안겨주고 있는 ‘윤일병 사건’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간절히 체감하고 싶은 리더십이기도 하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으며, 고통받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는 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짜 리더십’을 배우지 못한다면 영화의 흥행도, 교황의 방문도 그저 요란하고 허망한 이벤트로 그치지 않을까 걱정될 따름이다.
  • [시론] 야당은 변화와 쇄신을, 여당은 겸손을/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원광대 초빙교수

    [시론] 야당은 변화와 쇄신을, 여당은 겸손을/황재옥 평화협력원 부원장, 원광대 초빙교수

    7·30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11대4로 압승했다. 한때 6대9로 이길 수도 있을 거라던 야당은 불과 4석에 그쳤다. 참패 이후 야당의 ‘궤멸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언론들은 여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야당이 워낙 잘못해서 그리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여당에 반사이익을 안겨준 야당의 잘못은 무엇인가. ‘교자필패 애자필승’(驕者必敗 哀者必勝)이란 말이 있다. 한 번 싸움에서 이겼다고 교만해지면 그다음 싸움에서는 지고, 패배의 비애 속에서 전략을 재정비하면 다음에는 반드시 이긴다는 뜻이다. 비교적 법칙성도 있는 이 원리가 요즘 야당에는 안 통하는 것 같다.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내리 패배한 야당이 지난 6·4 지방선거는 선방(善防)에 그쳤고 7·30 재·보선에서는 ‘궤멸론’이 나올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야당은 오늘날 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한마디로 야당은 지난 대선 때도 그랬지만,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앞으로 이런 일을 하겠다”거나 “그 문제는 이렇게 풀겠다”라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당내에 싱크탱크나 태스크포스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선거에서 그런 건 필요 없다는 입장인지는 몰라도 전략도 안 보이고 대안도 없다. 대신 2012년 대선 때부터 단골메뉴가 되다시피 한 정권심판론으로 일관했다. 그나마 6·4 지방선거에서 선방한 이유는 세월호 참사에 따른 정치적 반사이익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은 비상체제하의 야당이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과감한 변화와 쇄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공천을 둘러싸고 당내 정치공학적 계산이나 하다 선거에서 참패하고 궤멸가능성까지 나왔으면 이제는 대오각성하고 여당과 싸워 이길 전략을 세우고, 정당문화를 바꿔가야 할 것이다. 전략 부재, 대안제시 미흡이라는 비판을 그 정도 들었으면 이제는 외부 두뇌 영입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필자가 야당의 장래를 걱정하는 것은 야당 편을 들거나 여당을 반대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다. 민주주의 국가들이 정당정치를 기본으로, 선거를 통해 집권연장이나 정권교체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여야가 서로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권력의 독주를 막으려는 것이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정책대안을 경쟁적으로 개발해 국정에 반영하라는 것이다. 이건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가 현대의 간접민주주의-대의정치로 발전해 오는 동안 인류의 지혜가 축적, 결집된 결과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당도 안심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된다. 일부 언론에서는 “쓸개 빠진 야당, 간이 부은 여당”이라는 격한 표현도 쓰고 있다. 여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야당의 헛발질 때문에 반사이익을 본 여당이 어느덧 교자(驕者)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당이 세월호 문제를 놓고,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야당을 휘두르는 감이 없지 않다. 이럴 때일수록 세월호법과 관련해서 여당이 먼저 유가족의 비통함을 같이 나누고 통 크게 나간다면 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한층 높아질 것이다. 최근 일본 산케이 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한 것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외국 언론에까지 그렇게 비쳐진 것에 대해 여당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현 시점에서 여당은 야당과 공존공영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이 너무 취약해지면 여당도 불행해진다. 여야는 경쟁 관계지만 야당이 없으면 여당도 똑바로 설 수 없다. 맘 놓고 권력을 휘두르며 독주하다가는 국민들로부터 퇴출당한다. 여당은 모순(矛盾)의 고사, 즉 창이 없으면 방패가 필요 없고, 방패가 없으면 창이 필요 없게 되는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시론] 차분한 경제개혁이 답이다/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시론] 차분한 경제개혁이 답이다/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대통령은 경제부총리로부터 ‘내수부진, 수출호조, 재정흑자’를 보고받았다”라고 신문 기사에 나오는 대통령은 누구일까? 1977년의 박정희 대통령이다. 내수부진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경환 경제팀 역시 내수진작→투자활성화→고용확대→내수확대의 선순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목표는 달성될 것인가. 내수확대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가계소득이 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맞다. 그러나 재정과 금융으로 돈을 푸는 ‘반짝’ 내수 증가에 투자를 늘릴 기업은 없다. 그렇다고 계속 돈을 푸는 것은 나라 경제를 거덜내는 일이다. 그나마 기업소득환류세제가 지속성이 있는데 고소득층에 대한 배당은 늘어날 것이나 투자는 별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내수진작이 필요하다. 내수부진의 배경은 가계부채, 고용 없는 성장, 고령화, 과도한 사교육비다. 가계부채에 뾰족한 방책은 없으나 상환능력에 따른 차별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뻔하지만 규제 완화가 답이다. 고령화에 대해서는 정년연장과 인력수입을 고려해야 한다. 사교육비 감축 대책도 빠져서는 안 된다. 아울러 정부간섭을 줄이고 시장경제 원칙을 살리는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싶다. 퇴출돼야 할 좀비 기업들이 한정된 내수시장을 잠식하면 성장 기업의 발목을 잡고 새로운 기업의 진입을 막는다. 새로운 내수창출 기회도 사라진다. 실세 경제부총리의 시대적 소명은 이런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것이다. 돈 푸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경제개혁을 위해 경기부양으로 개혁의 고통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993년이 생각난다. 당시 한국은 1986~89년의 무역흑자, 88올림픽에 힘입은 활황세가 꺾이면서 경기침체를 보이고 있었다. 구조조정과 정부간섭을 축소하는 개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의 필요성을 놓고 목욕탕 수리론과 내과 수술론 논쟁이 벌어진다. 목욕탕 수리는 손님이 없는 여름철에 하듯이 경제개혁은 경기 하강기에 추진해야 하므로 경기부양은 필요 없다는 논리가 하나였다. 반면 내과 수술을 위해서는 환자 건강이 좋아야 하듯이 개혁도 호경기에 해야 하므로 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후자를 택했다. 취임 직후인 1993년 3월 초 경기부양을 위한 신경제 100일 계획을, 7월에는 개혁을 위한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결국 개혁은 별로 이뤄지지 않았고 경기부양으로 거품만 더 커져 1997년 경제위기를 맞는다. 당시 내과수술론이 간과한 점이 있다. 환자 건강이 반짝 좋아지면 수술이 필요 없다는 착각이 의사(정부)에게 든다는 점이다. 환자 역시 이를 핑계로 수술을 피하려 한다. 필요성은 공감해도 모두가 피하고 싶은 일, 그게 개혁이다. 이번 경기부양책이 최 부총리의 개혁 추진을 약화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쉬운 일은 아니나 우리도 이제는 저성장을 차분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3.7%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예측한 세계의 올해 평균성장률 3.4%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선진국 대비 너무 빨리 성장률이 떨어졌다는 걱정도 있는데 사실 선진국은 1인당 소득 2만 달러가 되기 훨씬 전부터 성장률이 4% 이하로 떨어졌다. 주요7개국(G7)은 대부분 1990년을 전후해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는데 1980년대의 평균 성장률이 4%를 넘긴 나라는 하나도 없다. 1970년대를 봐도 일본과 캐나다 정도만 4%를 넘겼다. 전경련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한 22개국이 3만 달러를 달성하기까지 기록한 평균 성장률이 바로 3.7%다. 한국의 기초체력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도 잘 봐줘야 4.0%인 점을 감안하면 3.7%는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물론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차분한 경제개혁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지 3.7%에 놀라 돈을 푼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 [시론] 수학강국 대한민국을 기다리며/최영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시론] 수학강국 대한민국을 기다리며/최영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옛 서독의 수도 본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수리과학연구소를 처음 방문한 것이 1990년도 초였다. 내가 평생 몸담을 학문에서 최고로 꼽히는 연구소로부터 초청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갓 학위를 받은 난 너무나 설렜다. ‘기라성’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수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의 열정과 기를 한 공간에서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연구소에 들어선 순간, 동양인을 그린 커다란 초상화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은 일본인 수학자 다카기 데이지(1875~1960)였다. 20세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수학 후진국이었던 일본이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메달 수상자를 3명이나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다카기 같은 선배 수학자들의 공이다. 다카기는 당대 수학 최강국인 독일 괴팅겐에서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해 정수론 분야의 근간이 되는 이론을 완성했다. 또 활발한 저술활동과 교육으로 일본에 본격적인 현대 수학을 전파하게 된다. 그는 은퇴할 무렵(1936년) 세계수학자연맹 부회장이 돼 제1회 필즈메달 수상자를 선정하는 수상위원회에 참여했다. 일본인 필즈메달 수상자가 나온 것은 이로부터도 약 20년이 지난 1954년이었다. 결국 교육을 통해 뚜렷한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수학과가 생긴 것은 해방 이후다. 한국 최초의 현대수학자는 이임학(1922~2005) 교수를 들 수 있다.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한 그는 서울대 수학과 교수로 선출된다. 1947년 어느 날 남대문 시장 부근에서 미군이 버린 쓰레기 더미 속에서 미국 수학회지를 줍게 되었고 그 안에 제시된 미해결 문제를 해결해 저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는 당시 논문을 어떻게 투고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지속적으로 외국 수학자와 교류했고,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의 초청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Ree군’이라 불리는 군(群·수학 분류의 한 종류)이 존재할 정도로 이 교수는 핵심 수학이론을 발전시켰지만, 캐나다에서 교수로 영구 재직하게 된다. 주변인들과 이 교수가 다카기처럼 귀국해 국내 후학 양성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오늘날 한국 수학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었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지금이야 대다수 국내 대학이 연구와 교육 모두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포스텍이 1987년 개교할 때만 해도 국내 최초 연구중심대학이란 모토를 내걸었을 정도로 국내 연구 환경은 척박했다. 늦은 출발을 했던 한국 수학계는 이제 전 세계 수학자들을 초청해 함께 즐기는 세계수학자대회(ICM)를 13일부터 9일 동안 서울 코엑스에서 열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국제수학연맹이 개최하며 전 세계 수학자 5000여명이 참가하는 기초과학 분야 최대의 국제학술대회이자 축제다. 개회식이 열리는 첫날에는 개최국의 최고 통치자가 직접 수여하는 필즈메달 시상식이 열린다. 필즈메달은 뛰어난 수학 업적을 이룬 40세 이하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상이다. ICM은 189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첫 대회가 시작된 이후 1,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하고는 4년마다 개최됐다. 유럽에서 19회, 북미에서 4회가 열렸다. 특히 제2회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 ICM에서는 당대 최고 수학자인 힐베르트가 100년을 이끌 23개의 힐베르트 문제를 제시해 현대 수학의 물줄기를 바꿨다. 최근 들어 세계수학계에서 아시아 수학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학강국 일본(1990)을 시작으로, 중국(2002), 인도(2010)가 세계수학자대회를 개최했고 한국은 아시아에서 4번째로 개최지가 됐다. 서울 ICM은 과학강국을 꿈꾸는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하는 축제이며, 한국 수학계가 한 단계 전진하는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다. 20년 전 내가 독일을 찾은 것처럼 빠른 시일 내에 세계 최고 수학자와 젊은 학자들이 한국의 수학 연구소를 찾아 감탄하는 날을 꿈꾼다.
  • [시론] 한국인의 통일 열망과 단계적 통일론/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과정부 교수

    [시론] 한국인의 통일 열망과 단계적 통일론/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과정부 교수

    남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 ‘통일’만큼 인기 높은 용어가 없어 보인다. 대북 정책은 실제 내용과 무관하게 ‘통일정책’이라고 주장하고 대북정책을 관리하는 기관은 남북관계부나 북한문제부보다 ‘통일부’라고 부른다. 북한도 비슷하다. 북한에서는 이남으로 파견된 공작원들까지 ‘통일일꾼’으로 알려졌다. 통일에 대한 한국인의 이 같은 관심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통일’이라는 개념의 구체적인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에게 1980년대까지, 즉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 통일은 ‘멸공통일’을 의미했지만, 일부 좌익 인사들은 공산주의 지상천국을 가져올 적화통일을 꿈꾸었다. 1990년대 말 흡수통일에 대한 담론이 많이 사라지게 되면서 남북 회담과 협력 그리고 타협을 통해서 이루어질 단계적 통일론이 주류가 되었다. 남한의 단계적 통일론은 남과 북 양측 정부가 회담을 통해 경제와 인적 교류를 점차 활성화시키고 남북의 문화, 경제, 정치의 고립과 대립을 극복함으로써 통일 국가의 기반을 쌓는 것이 통일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비참한 북한 경제 실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독일식 흡수통일이 가져올 천문학적 비용에 대한 우려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비교적 값싼 방법으로 보이는 단계적 통일에 대한 희망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희망은 별 근거가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단계적 통일에 대한 시도는 북한 정권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단계적 통일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김정은 정권은 제일 먼저 남한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이산가족 상봉, 우편물 교환 등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남북 기술 협력, 남한 자본의 투자 유치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같은 정책은 북한 경제의 발전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북한내에서 불가피하게 남한의 경제 수준과 생활양식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이 잘산다는 사실은 15년여 전부터 막연하게 알고 있지만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어느 정도로 클지는 자세히 모르고 있다. 남북한 일인당 소득 격차가 적어도 15배에 달하기 때문에 북한 민중들에게 남한의 일상생활은 낙원처럼 보일 것이다. 독일 통일 이전 동독 붕괴에 결정적 요인이 됐던 동서독 일인당 소득 격차는 2~3배뿐이었다. 남북한 교류가 활성화되면 남한의 번영을 훔쳐보게 된 북한 주민들은 자신의 경제생활이 남한보다 얼마나 빈곤함을 알게 된다. 그들은 북한 경제 몰락에 대한 책임을 김정은을 비롯한 세습 엘리트에게 돌리고 1980년대 말 동독 주민들처럼 남한과 단일 국가를 만들면 남한 주민과 똑같은 생활을 누릴 것이라는 환상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단계적인 통일의 첫걸음으로 볼 수 있는 남북 교류의 활성화는 북한내에서 정권 정당성의 위기와 정치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다. 정통성 위기에 직면한 북한 정권은 단속과 감시를 강화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소식은 남한 주민들의 인식에 악영향을 미치고 단계적 통일의 상대인 북한 정권에 대한 적대감이 커질 것이다. 북한에는 지금도 10만명의 정치범이 있다. 하지만 그 불쌍한 사람들의 이름도, 모습도 알 수 없으니 이 통계는 추상적 지식일 뿐이다. 1989년 중국의 톈안먼 사태나 1980년 남한 광주 민주화 운동처럼 평양 거리에서 태극기를 휘두르고 통일이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북한 청년들이 경찰이나 군인에 의해서 피살된 모습이 남한 텔레비전에 방영된다면 북한 정권을 그대로 통일의 상대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가설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단계적 통일의 필요 선제 조건인 남북 교류의 자유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아는 북한 정권은 단계적 통일을 시작할 이유가 없다. 단계적 통일은 바람직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는 한반도 현대사 비극의 또 하나의 측면이다.
  • [시론] 삶의 지혜를 주는 자연 체계/이창석 서울여대 생명환경공학과 교수

    [시론] 삶의 지혜를 주는 자연 체계/이창석 서울여대 생명환경공학과 교수

    3년 전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엄청난 재산피해를 가져왔던 우면산은 서울의 산 가운데 드물게 땅이 깊고 물이 많아 생태적 수용능력이 큰 산이다. 그러나 주변이 도시화돼 잠재된 생태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산이다. 산자락에서 드물게 보이는 오리나무숲, 갈참나무숲으로 변화 중인 아까시나무숲, 중턱 이상을 덮고 있는 신갈나무숲 정도가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자연의 요소다. 그 밖에 대부분의 지역은 외래식물 아까시나무, 잡종식물 은사시나무, 우리 영토에 자생하지만 제 땅이 아닌 곳으로 옮겨져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잣나무 등으로 덮여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교란된 장소를 선호하는 팥배나무와 담쟁이덩굴이 무더기로 나타나며 다양한 식물들을 몰아내고 숲과 숲 바닥을 온통 자신들만의 세상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명품으로 태어난 우면산을 이처럼 한낱 보잘것없는 도시공원으로 전락시킨 것은 우리들의 무지 탓이다. 3년 전 산사태 피해 발생 직후 직접 현지답사를 해보았다. 홍수로 넘어진 나무들은 아까시나무, 잣나무, 은사시나무, 일본잎갈나무 등이었고 졸참나무, 갈참나무, 물박달나무, 신갈나무 등은 그곳에 함께 자라고 있었지만 거의 넘어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전자의 나무들은 우리가 심은 나무들이고 후자는 그곳에 자연적으로 자라는 나무들이다. 그러면 왜 우리가 심은 나무들만 넘어진 것일까? 나무는 물론 모든 생물은 그들이 사는 생태적 위치가 있다. 기후, 토양, 지형, 다른 생물과의 관계 등이 그 위치를 결정한다. 생태학자들은 다양한 생물들 사이의 관계와 그 생물들과 그들의 환경 사이의 관계를 분석해 자연의 체계를 읽어내 왔다. 그리하여 어떤 환경에는 어떤 생물들이 살고,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는 장소는 어떤 조건을 가진 환경인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들이 조화로운 관계를 이뤘을 때는 우리 인간에게 주는 혜택, 즉 생태계서비스 기능도 크다는 것을 밝혀 이를 기후변화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문제 해결은 물론 재해방지 수단으로까지 삼는 단계에 와 있다. 그러나 우면산은 어떠한가? 이러한 자연의 체계를 무시하고 사람들 마음대로 식물을 심다 보니 그들은 그곳에서 목숨은 유지하지만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3년 전 홍수 시에 자신들의 생명 터를 지켜내지 못하고 속절없이 넘어져 쓸려 내려가며 자신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갔던 것이다. 나는 최근 우면산 피해 복구현장을 돌아보았다. 그 현장을 보며 3년 전 피해 현장을 볼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시 한 번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수백명의 젊은 생명을 일시에 잃고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안전만큼은 지켜내자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 그런 엄청난 피해를 겪고서도 우면산의 관리 수준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됐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골짜기에서 물 흐름을 조절하며 홍수 피해를 줄여주던 돌들은 모두 걷어 내 석탑으로 쌓아놓고, 골짜기는 마치 동계올림픽 경기장의 봅슬레이 코스가 연상될 정도로 출처를 알 수 없는 돌과 콘크리트로 발라놓았다. 이 거대한 인공배수로 주변에 도입된 식물들을 보면 더욱 한심하다. 일제 강점기 철로 변에 심던 족제비싸리가 주를 이루고, 어떤 곳은 목초로 도입된 오리새로 겉만 살짝 덮어 놓은 곳도 보인다. 이들이 이 땅의 주인인가를 따져보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그러나 안전 불감증에 만성 중독돼 안타까운 생명을 계속 잃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들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대홍수 시 그들의 뿌리로 이 땅을 움켜잡고 지켜줄 것인가를 물어야 할 것 같다. 인공배수로가 아무리 튼튼해도 자연과 달리 수명이 정해져 있다. 더구나 그 주변이 깎여 나가면 그들의 역할은 거기서 바로 마무리될 수 있음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삶의 지혜 공급원인 자연의 체계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시론] 돌파하라 일본식 장기불황/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시론] 돌파하라 일본식 장기불황/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불황의 구조화를 막는 노력은 정부의 첫 번째 과제가 돼야 한다. 먼저 기존의 막연한 경기 낙관론에서 벗어나 소비와 투자 부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여기에 대응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한데, 신임 경제팀이 이런 쪽으로 정책의 기본 방향을 잡은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경제가 지나치게 침체되는 것을 막고 구조 개혁의 여력을 마련하는 방법으로는 금리 인하를 포함한 완화적인 통화정책과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재정정책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고려하면 재정정책 사용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지출이 확대되면 현재의 원화 강세를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고, 이로 인해 수출마저 무너지면 대외 경제 취약성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추가적인 재정지출 증가에 따른 국채 발행은 신용도가 낮은 회사를 중심으로 회사채 시장을 포함해 자금조달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적극적으로 사용 가능한 부분은 금리를 낮추면서 원화 강세 부담도 더는 완화 통화정책이다. 그런데 이런 통화정책은 본질적으로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행정부 경제팀이 아닌 한국은행의 소관이다. 따라서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현실적인 인식에 기초해 완화 통화정책이 이뤄지도록 한은과의 원활한 정책 조율이 요구된다. 물론 완화 통화정책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물가 상승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한은의 중기 물가관리목표 하단(2.5%)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물가하락 속에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일본식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커지고 있어, 현재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즉 금리 인하를 통해 가계와 기업의 이자비용을 감소시켜 소비와 투자를 확대하는 가운데 소득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이런 정책은 추가적인 부채 확대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의 경기 회복 사례와 같이, 저금리와 양적완화로 상징되는 대규모 완화 통화정책의 기저에는 다양한 채무 위험을 관리하는 금융감독 강화도 동반돼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개혁의 핵심이었던 ‘도드-프랭크’ 법안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명했던 2010년 7월부터 4년이 경과한 지금까지, 미비한 점도 있지만 투자자를 보호하고 금융기관의 안정성을 높이는 미국의 금융 감독 강화는 계속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 이런 통화 정책과 금융 감독과 더불어 정부 재정의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경기부양 효과를 높이면서도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재정수요가 증가하면 재정지출의 총량 증가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세수 및 지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은 소비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계의 가처분소득 확대’ 목표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를 위해 근로소득을 통한 세원 조달 비중은 줄이고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는 강화하며 지출은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저소득층에 집중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경기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화정책 정상화 명목으로 급격히 단행된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경제를 구조적으로 침체시켜 ‘잃어버린 20년’ 장기 불황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이에 대한 대응으로 비효율적 재정지출이 확대되면서 1990년대 초반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내외였던 일본의 정부부채 비율은 최근 거의 240%대에 이를 정도로 악화되며 구조화된 장기불황에 빠졌다. 일본의 정책대응 실패와 그로 인한 장기 불황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뼈아픈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적극적인 통화정책과 금융감독 강화, 그리고 조세 체계와 재정지출의 구조 개혁을 모두 아우르는 신임 경제팀의 비상한 노력이 절실하다.
  • [시론] 표절과 중복 게재가 관행이었던 적은 없었다/이덕환 서강대 교수·탄소문화원장

    [시론] 표절과 중복 게재가 관행이었던 적은 없었다/이덕환 서강대 교수·탄소문화원장

    교수들의 논문 표절과 중복 게재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공직 후보자로 지명된 교수들은 과거의 관행이었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거의 관행에 대해 오늘날의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동정론도 있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에서 논문 표절이 용납된 적도 없었고, 중복 게재가 관행으로 인정된 적도 없었다. 다만 정보 공유의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표절이나 중복 게재를 정확하게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윤리적으로 부끄러운 일이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학문 윤리 위반에 대한 처벌 시효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 교수들의 표절과 중복 게재로 우리 교육계가 비정상이라는 지적은 대다수 성실한 교수들에게 모욕일 뿐이다. 물론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사실 다른 논문에서는 전혀 사용한 적이 없는 독창적인 문장만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표절 판별 소프트웨어가 개발됐다고 하지만 완벽한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정말 독창적인 표현이 요구되는 시(詩)의 경우에도 획일적인 표절 판별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분명히 표절 논란은 현실적으로 논문의 핵심 부분으로 한정해야 할 필요는 있다. 그렇다고 전문 학술단체가 청문회의 인사 검증에 공개적으로 일일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청문회에서 제기되는 표절 문제는 학계의 상식만으로도 충분히 가릴 수 있는 수준이다. 중복 게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술적으로 중요한 논문의 내용을 다른 독자층을 위해 수정·보완하는 경우가 있다. 학술 논문의 내용을 일반인을 위해 일상 언어로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해설을 논문의 형식으로 발표할 수도 있고, 우리말로 쓴 논문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연구 자료나 방법을 수정·보완해서 새로운 결론을 제시하는 논문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원전(原典)과 수정·보완한 내용을 분명하게 밝혀야만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 노력을 소홀히 했다면 윤리적으로 비난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논문을 연구 업적으로 인정받아 보상을 받거나 승진했다면 더욱 그렇다. 제자의 학위 논문에 대한 논란은 일견 애매할 수 있다. 만약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에 참여한 제자의 이름을 완전히 빼버렸다면 문제가 된다. 학위 논문에서 제자의 이름을 뒤에 넣었다면 제자의 업적을 가로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제자의 학위 논문이 정당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술 논문의 저자 순서에 대해 시비를 걸기는 쉽지 않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저자 이름의 배열 순서나 교신 저자에 대한 일반적인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1 저자나 교신 저자의 역사는 생각처럼 오래된 것이 아니다. 표절과 중복게재 논란이 인문사회계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우리 인문사회계의 윤리 수준이 다른 분야보다 뒤처져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고위 공직을 기웃거리는 인문사회계 폴리페서들에게 한정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명예와 권력에 눈이 멀어서 스스로 망신을 자초한 소수의 폴리페서들의 부끄러운 행태를, 성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인문사회학자들에게 확대·적용해서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전문가의 사회 참여를 핑계로 학술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윤리 기준을 무시했던 동료를 말없이 용납했다는 비난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언론의 무차별적인 폭로와 의원들의 신상 털기가 과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청문회 제도를 탓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의 인사 검증을 외면하고도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청와대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교수들의 표절과 중복 게재를 확인하는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평소 자기 관리에 신경 쓰지 않다가 망신을 자초한 폴리페서들의 책임도 무겁다. 스스로의 경솔한 선택이 동료 학자들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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