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시론
    2026-07-29
    검색기록 지우기
  • 시정
    2026-07-29
    검색기록 지우기
  • 역전
    2026-07-29
    검색기록 지우기
  • 덩크
    2026-07-29
    검색기록 지우기
  • 케이
    2026-07-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65
  • [시론] 우리 기업이 ‘일대일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경제학 교수

    [시론] 우리 기업이 ‘일대일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경제학 교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전 세계적인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대일로 전략이란 중국~중앙아시아~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실크로드와 중국~동남아시아~인도양~아프리카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 경제권 구축을 지칭한다. 육상·해상 교통망 연결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면서 인접 신흥국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중국 주도의 경제협력체를 만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나아가 미국 중심의 경제권에 맞서 중국 중심의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의도로도 여겨져 세계 경제의 판을 바꿀 파괴력이 주목된다. 일대일로는 어떤 목적하에 추진된 것일까. 첫째, 외교 전략 측면이다. 중국 정책 결정의 가장 큰 특징은 전략적 점진성이다. 중국은 당장 세계를 좌지우지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현 국력하에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최선을 통해 내부의 힘을 키우는 식으로 세계 지배의 꿈에 한 발짝씩 다가서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내정불간섭 원칙, 국경 지역 안정, 공고한 미·중 관계 등의 방법론을 구현하고 있다. 일대일로 전략은 경제를 고리로 민족 갈등이 이어지는 시짱(西藏·티베트)·신장(新疆) 등 변방 지역과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 남중국해 등 국경 지역 안정을 겨냥한 프로젝트로서 의미가 크다. 실제로 이 전략의 주요 발안지는 중국 외교부로 전해진다. 둘째, 경제적 요인이다. 중국의 현 경제정책 방향은 지속발전·친서민·혁신 등으로 집약된다. 특히 지속발전을 위해 성장동력 찾기에 온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세계 철강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내 건설 경기가 예전 같지 않고 고속철 시공도 과잉 상태가 되면서 철강 수요처 발굴이 난제로 떠올랐다. 과잉설비 문제 정리가 시급한 상황인 것이다. 일대일로의 한 축으로 중국 북부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지나는 노선(TCR)을 고속철화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 일대일로는 중국 경제 지속발전을 위한 돌파구인 셈이다. 셋째, 유라시아 통합이다. 과거 몽골은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단일경제권을 추구했다. 유명 팝송 ‘제나두’는 당시 몽골의 여름 별궁 상도(上都)를 말하는 것으로 전 세계 물산이 총집합하는 호화로운 파라다이스였음을 노래하고 있다. 결국 중국은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30~50년에 걸쳐 연결하고, 유라시아를 단일 경제권으로 묶으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의 기회와 과제는 무엇인가.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직접 이해 당사자는 아니다. 하지만 하기에 따라서는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챙길 여지는 충분히 있다. 그만큼 총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다. 우선 정부는 당장 중국 당국과 긴밀하게 접촉해 일대일로의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동시에 일대일로에 포함되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나아가 중국의 입장과도 비교해 봐야 한다. 포스코, 철도시설공단 등도 일대일로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 실제로 TCR의 고속철화가 시작된다면 철강공급, 시설감리 등의 굵직굵직한 사업참여 기회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자금 공급에서도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기왕 참여하기로 한 AIIB에 유능한 공무원을 파견, 초기부터 밑그림을 그려 나가는 데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아직도 실체가 불분명한 우리의 유라시아 프로젝트도 비즈니스 기회 확충만 이뤄질 수 있다면 일대일로의 틀에서 재검토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과거 중국이 고속철 사업을 시작했을 때 우리 철도시설공단이 수주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결국 일부 구간의 감리만 맡는 데 그치고 말았다. 따라서 이번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는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TSR의 고속철화를 통해 남북한 철도 연결도 이룰 수 있다. 논란이 있지만 유라시아의 진정한 통합은 일본까지도 연결해야 완성된다. 이런 점에서 두만강 유역 개발 등 관련 사업도 새판에서 점검하는 식으로 우리의 꿈을 꿔야 한다.
  • [시론] 이란 핵협상 타결과 중동 지형 변화/김중관 동국대 아랍아프리카센터 소장

    [시론] 이란 핵협상 타결과 중동 지형 변화/김중관 동국대 아랍아프리카센터 소장

    이란과 미국이 핵협상의 주요 쟁점에 대해 합의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석유 이권 관리, 이스라엘 안보 보장, 이란 견제 등 역대 미국 정부가 전통적으로 취해 온 중동 정책을 수정했고 대신 군사 작전을 최소화해 간접적으로 통제하면서 실리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오바마의 대외 전략 원칙은 도덕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인도주의, 그리고 이에 기반한 위대한 국가 설립으로 요약된다. 병법 중 최고 경지가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인데, 이란 핵협상 타결로 오바마가 선택한 양면적 중동 정책 기조의 실효성이 일정 부분 증명된 셈이다. 2011년 튀니지 시민 혁명은 아랍 각국의 내부 상황을 변화시켰다. 중동의 정치·외교 지형도 변했다. 특히 걸프 지역에서 수니파와 시아파 간 대립이 극한적으로 변화하는 가운데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 문제가 표면화됐다. 이라크에서 철수하고 시리아 반군 지원을 거부한 오바마의 중동 정책은 IS 세력이 확장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장기적으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기초를 공고히 만들게 될 것이다. 미국 정부에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은 균형적인 외교 관계를 실천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미국은 군사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안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석유 패권의 변화를 선택했다. 이제 중동에서 미국은 자국 이해관계뿐 아니라 중동 내부 관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란과 평화적 관계 맺기를 시작으로 팔레스타인, 이라크, 시리아 안정을 위한 정책도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다. 냉전 시대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은 적국 또는 테러 위협국에 대한 적대 행위를 이념과 대의로 포장했지만, 세계는 더이상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군사적 역량을 되찾고, 중국이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실리를 추구하면서 동맹과 적 모두에게 인도적 원칙을 내세우는 정책이 현실적으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방향이다. 중동 정세의 변화는 또 다른 문제다. 미국과 군사적 연대를 확고하게 맺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이란 핵협상을 파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핵협상이 타결되면서 사우디와 이란 간 이슬람 종파 패권 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미 시리아 내전, 이라크 분쟁, 예멘 사태를 겪으며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인 이란 간 적대적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다. 이란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의 핵 협상 타결을 기회로 국제적 입지 강화 기회를 잡게 되면서 사우디로서는 이란의 행보에 더욱 촉각을 세우고 새로운 정치적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협상을 강력히 반대해 왔던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전략적 가치가 평가절하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독단적 결정 행태와 돌출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고, 결국 네타냐후 총리는 오바마 정부가 추구하는 중동 정책의 걸림돌이 돼 왔다. 800기 이상으로 추정되는 핵무기를 보유한 이스라엘은 전투력에 기댄 대외정책을 수정하고, 장기적으로 동반자적 관계 구축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 무력시위보다 정상적인 국가로서 책임 외교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견제하겠다는 유일한 이유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수니파와의 종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이란에 가해진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까지 해제되면 중동에서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시에 확보한 시아파 이슬람의 세력화가 예측된다. 한편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북한의 그것과 상호 연동돼 있다. 이란은 북한의 핵무기 재료와 제반 기술을 공유할 수 있다. 이란과 북한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는다면 핵협상의 세부사항까지 완전 타결에 난항이 예상되고, 상황에 따라선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번 핵협상 타결은 수면 아래에 있던 이란의 핵개발 과정에 대해 실질적인 검증을 토대로 하고 있고, 이란의 위반을 조기에 확인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있어서 외교력에 바탕을 둔 미국 정부의 유연한 중동 정책의 가시적인 성과이자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 [시론] 법보다 도장값/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법보다 도장값/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화 이래 사법개혁은 우리 사회의 주요 개혁 의제였다. 최근 대한변협이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서를 반려하며 불거진 전관예우 문제는 그중 가장 치열하게 제기되는 의제다. 갓 퇴임한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해 법원·검찰의 결정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며 엄청난 수임료를 받아 챙긴다는 대표적인 사법 비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난다. 사법시험·사법연수원이라는 한솥밥 체제에다 ‘모시던 부장’과 ‘데리고 있던 배석’으로 엮이는 수직적 인간관계들, 여기에 십여 단계의 승진 사다리 속에서 벌어지는 적자생존 경쟁 등 우리 사법부만의 구조적 문제점들이 터져 나온 결과가 바로 전관예우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파행 속에서 공정성과 객관성이 생명이어야 할 우리의 사법은 알게 모르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억장 무너지는 현실로 병들어 간다.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사법 전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대법관이라면 사법부 최고 지위에서 무엇이 법이며 무엇이 정의여야 하는지 가장 권위적이자 종국적으로 선언하는 사람이다. 그러던 이가 법복을 벗자마자 수억, 수십억원의 수임료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에서 어느 누구도 사법을 신뢰하며 법치의 엄중함을 기대할 리 없다. 그것은 사법의 엄정함을 신뢰하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자 우리 법 체계를 우롱해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광대의 꼴과 다름없다. 여기에 하창우 변협 회장도 분노하며 전하듯 소위 도장값이라는 이름으로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천만원의 수임료를 거둬 가는 관행은 조폭들의 금품 갈취를 연상시킬 지경이다. 대법원에 상고할 때 그들이 개입하면 심리불속행이 되지 않고 이기든 지든 판결이라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이 도장값은 대법원으로 가는 일종의 통과세나 다름없다. 그들은 사건 전모나 변론 내용도 모른 채 상고장에 도장 하나 찍어 주는 대가로 가뜩이나 송사에 시달려 고통받는 소송 관계인들로부터 마지막 고혈을 짜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발은 정작 대법원 안에서는 단순한 진실게임으로 바뀌고 만다. 대법관이나 재판연구관들은 하나같이 전관예우란 없으며 세간의 오해라는 모범답안만 제시한다. 이들에게 도장값 3000만원 증언은 무지몽매한 소송 당사자의 무리수일 뿐이며, 그 도장이 찍힌 사건이 대법원에서 유리하게 취급되더라도 그것은 원래 그 변호사들이 뛰어난 재주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퇴임 대법관이 개업 후 3년 안에 100억원을 벌지 못하면 바보라는 속설은 적어도 우리 대법원의 정보망 바깥에서만 맴돌고 있을 뿐이다. 이 와중에 법치 이념은 개미굴에 둑 터지듯 무너진다. 가뜩이나 정치 권력이나 자본 권력에 취약해 극우화·계급화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대법원이 이제는 퇴임 대법관들의 탐욕이 만든 개미굴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모두 의심하는 데다 대고 ‘당신들의 의심은 무식한 소치이며 우리는 언제나 우리 식으로 올바르다’는 엘리트주의적 거만함이 그 위기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돼 지탄받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마저도 퇴임 뒤 변호사 개업 포기 서약을 해 달라는 변협의 요청을 거부했다. 사실 직업 선택의 자유 운운은 적어도 대법관이나 그 후보가 할 말이 아니다. 대법관이라는 명예는 물욕의 다른 표현인 직업 선택을 압도하는 최고의 사회윤리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관예우 의심을 떨쳐 버리고 사법부를 향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는 일은 그들에게 부여된 지엄한 헌법 명령이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대법원이라면 이 지점에서 전관예우 실태를 조사해 명명백백 밝히는 일에 나서야 한다. 도장값의 실태는 무엇인지 그것이 대법원 재판과정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래서 전관예우는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밝히고 또 설명해야 한다. 반성과 대책 마련은 그 다음의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대법원이 주도하는 사법개혁 작업이 의미 있게 펼쳐질 수 있게 된다. 사법을 향한 신뢰는 우리 국민이 헌법 충성을 실천하는 최우선적 첩경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시론] 사드·AIIB와 마주한 한국/조민 통일연구원 부원장

    [시론] 사드·AIIB와 마주한 한국/조민 통일연구원 부원장

    한국은 큰 틀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전략구도 위에서 조화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동북아의 복합적인 역학구도로 인해 안보와 경제의 조화로운 선택이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 딜레마적 상황에 빠졌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서로 다른 사안이나, ‘제로섬’ 구도로 부각되고 있다. AIIB는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틀을 구축한 브레턴우즈 체제의 종언을 고하는 신호탄일 수 있다.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에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해 오면서 개도국의 지분 확대 요구를 계속 거부해왔고, IMF의 과도한 요구는 개도국의 원성을 샀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AIIB의 ‘지배구조 투명성’ 개선 등 다자개발은행의 원칙을 중국에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이 가입 의사를 밝힘으로써 미국 주도의 반(反)AIIB 전선의 대오이탈로 결정적 균열이 초래되었다. 이는 중국의 도전으로 워싱턴 중심의 세계경제권력 구조가 재편되는 상황에 유럽국가마저 실리 추구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이런 상황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한 미국과 일본과의 경제적 유대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 AIIB 창설로 ‘워싱턴 컨센서스’가 약화될 경우, ‘베이징 컨센서스’가 형성되면서 미·중 간 세력 전이의 한 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AIIB는 한국의 가입으로 새로운 활력을 얻었으며, 우리는 국제 금융외교 분야에서 보다 높아진 지위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의 입장과 지분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IMF에 당한 굴욕적인 경험을 돌아봐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11월 굴욕적인 온갖 의무사항 이행을 감수하며 IMF에 195억 달러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당시 11월 말 외환 보유액은 244억 달러였다. 그런데 195억 달러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치욕을 맛봤다. 발언권이 있었다면 이 정도의 굴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다자금융기구의 대주주가 되는 호기로 삼으면서 아시아의 대규모 인프라시장 개척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통일 한반도의 미래 구상과 관련하여 AIIB가 대북 개발자금 및 통일비용 마련의 창구로 활용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이에 지분율을 최대한 확보하고 서울에 지부 또는 하부기구 유치를 제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협의회, 이사회, 집행기구 구성 비율 등 여러 측면에서 우리의 입장을 적극 관철시켜야 한다. 사드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사드 문제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결례와 전방위 압박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한·중 양국 간의 신뢰가 훼손될 우려가 크다. 더욱이 한반도가 중국의 미사일과 레이더의 사정권 내에 놓여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일방적인 압박은 한·미동맹을 흔들려는 의도로 비쳐 대중(對中) 의구심만 키우는 역작용도 무시하기 힘들다.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이 미국과 직접 협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중국은 먼저 한국과 미국의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우려를 진지하게 이해하고,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다 강력한 의지와 역할이 오히려 사드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창과 방패’ 논리로 접근하는 미국의 전략은 미 국방부 강경파와 군산복합체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가 어렵다. 사드는 검증되지 않은 무기체계라는 지적도 주목되며,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위협을 근본적으로 해소시켜 줄 것으로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종심이 매우 짧은 한반도에 사드 배치의 필요성에 대해 관련 분야 전문가의 면밀한 기술적 검토와 보다 많은 논의 과정을 거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요컨대 북한의 대남 핵위협 해소에 명백히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배치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북핵 문제에 대한 피로감과 체계적인 전략의 부재 상황을 이해하면서 우리 스스로 북한을 관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의 지정학적·지경학적 위상은 예전과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도전적 국면을 우리의 위상을 재확인하고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때다.
  • [시론] 줄타기 외교와 동아시아 안전망/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

    [시론] 줄타기 외교와 동아시아 안전망/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전 외교통상부 동북아국장

    최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문제가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AIIB는 영국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자연스레 상황이 정리됐고 이제 초점은 사드로 넘어갔다. 또 하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지난 21일 개최된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다. 일본과의 역사 문제로 여전히 앞길이 험난하지만, 3년 가까이 멈췄던 한·중·일 협력의 모멘텀을 되살린 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다. 이 두 가지는 한국 외교의 애로(隘路)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 AIIB와 사드 문제에서는 한국이 줄타기 외교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동적으로 강대국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주도적으로 입장을 정하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너무 자조적(自嘲的)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안보의 기본이 한·미 동맹에 있으니 어느 정도 줄서기는 불가피하며,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균형을 잃지 않는 줄타기의 감각도 갖출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균형외교는 적절한 방향이다. 그러나 균형외교가 지속적인 안정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강대국의 권력정치 속에서 균형점 자체가 유동적이며, 국력에 따른 위계질서 속에 한국과 같은 비강대국의 입지가 매몰돼 버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자기 보전을 추구하는 양자관계 중심의 외교를 넘어서 동북아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게 잡는 외교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과거처럼 강대국의 전횡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므로 지역 차원의 다자외교에서는 비강대국도 의미 있는 역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이 양자관계 중심의 외교를 넘어서는 첫 번째 단계가 바로 한·중·일 협력이다. 한·중·일협력사무국(TCS)이 서울에 소재하고 있으며, 중·일 양국의 불편한 관계 덕분(?)에 한국이 3년째 계속 의장국을 맡고 있는 데서 보듯이 한·중·일 협력은 지역 강국 사이에서 한국이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동북아에 한정되기 때문에 본격적인 지역 협력의 판도로서는 너무 협소하다. 지역 협력의 범위를 동아시아로 넓혀 보면 한국에 좀 더 의미 있는 역할 공간이 열린다. 중국의 급속한 대두에 따라 동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이 변화하는 가운데 새롭게 형성되는 지역질서가 조화롭고 안정된 모습이 되도록 하는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이 지역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강대국들이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않도록 한국은 역내 비강대국들과 사통팔달의 네트워킹을 구사하면서 고민을 공유하고 공통된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현재 한국 정부가 운영 중인 중견국협의체(MIKTA)와 차별화해 동아시아 차원의 다양한 소다자(minilateral) 네트워킹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그물망 짜기 작업은 줄서기와 줄타기의 위험을 덜어 줄 안전망을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편 중요한 외교 현안에 대해 동아시아 질서라는 차원의 판단 기준을 추가하는 것이 유용하다. 예를 들어 AIIB가 동아시아에서 중화질서의 재래(再來)를 불러오는 일이 없도록 거버넌스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대북 억지력의 차원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긴장과 군비경쟁을 고조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오는 4월 다시 한번 관심이 집중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도 한·일 양자 관계의 차원보다는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라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동아시아를 넓게 조감하는 지역 협력의 외교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실용적이고 유연한 자세가 대전제다. 단호하게 대응할 사안과 실용적으로 협력할 문제를 분리해 대응해야 하고, 양자 관계와 지역 협력을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 우선 눈앞의 과제는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문제다. 역사 문제에 중점을 두는 중국은 아베 담화를 보고 나서 정상회의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정상회담과 역사 문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도 역사 문제에서 일본에 할 말은 많지만, 한·일 양자 관계와는 분리해 한·중·일 지역 협력의 모멘텀을 살려 나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한·중·일 협력은 한국 외교가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히기 위한 좋은 훈련장이기도 하다.
  • [격동의 한·일 70년] “위안부 문제 해결이 관건… 정상회담 통한 연대로 극복해야”

    [격동의 한·일 70년] “위안부 문제 해결이 관건… 정상회담 통한 연대로 극복해야”

    서울신문은 올해 1월 2일부터 ‘격동의 한·일 70주년’ 관련 시리즈를 9회에 걸쳐 연재했다. 시리즈 마지막으로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와 이원덕 국민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등 일본 전문가들과 함께 바람직한 한·일 관계에 대한 방향을 모색했다. 지난 13일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이뤄진 좌담회는 정치부 이제훈 기자의 사회로 진행됐다. →한·일 간 현주소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양:한·일 관계가 상당한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는 국제공조화 측면에서 한·일 관계가 상호 간의 전략적 가치를 발견하기 힘든 지점에 와 있다고 본다. 미·일 동맹을 중시하는 일본의 입장과 한·중 관계 심화 속에서 한·미 관계를 강조하는 한국의 입장이 애매모호한 상태로 외교적인 위기 상태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한·일 간 위안부 문제가 가장 크며 이 문제가 국제쟁점화되면서 다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순환 구조에 와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가 미국과 유럽, 유엔에 가서 일본의 부도덕성을 고발하는 등 구조적인 긴장과 위기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복합골절’이라고 본다. -이:한·일 관계 50년사에서 최악의 상황에 와 있다고 많이 얘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 김대중 납치 사건, 문세광의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이 있을 때와 비교하면 그렇게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일본의 혐한론이 대두되는 상황이고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 무시론, 경시론 등 이런 것들이 새로운 풍조로 등장하고 있다. 최고 지도자의 소통이 부재된 가운데 여러 가지 오해와 불신이 정부 레벨에서뿐만 아니라 국민 수준에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일본대로 약간 전도된 피해 의식을 한국에 대해 느끼고 있다. 한국이 거듭된 사죄를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한반도 전략론의 부재가 오늘날 한·일 관계의 현주소다.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보는지. -양:위안부 문제가 쟁점화돼 있다. 한·일 간의 최대 문제고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진전은 없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정대협이라는 강력한 조직이 있다. 현재 문제는 위안부 건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타협이 부재한 상태에서 양국 정부가 최대의 현안으로 삼으면서 이 문제가 결과적으로 악화됐다.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를 수정한다든지 하는 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가 골대를 옮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본에서는 “도대체 어디까지 사과해야 하냐”고 말하는데. -이:일본 측에서 보면 그런 면이 있다. 한·일 관계가 전체고 역사 문제가 부분이고 여러 가지 이슈 중 하나가 위안부 문제다. 역사 문제가 한·일 관계 전체를 포섭하는 비대칭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국익이나 전략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대단히 이 문제를 잘못 다루고 있다고 본다. 개념 정리가 모호한 상태에서 일본에 공을 던지고 선제적 조치가 전제되지 않으면 해결이 없다는 논리로 접근한다. -양:입법 조치를 통해, 즉 특별법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일본은 위안부 배상에 대해서는 현재 고려치 않고 있다. 일본 국회에서 과감하게 특별법을 만들어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면 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렵다. 아베 내각에서 특별법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 때문에 독도 문제가 가려져 있는데. -이:독도 문제는 근본적으로 양국 간의 기본 입장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처방은 없다. 아베 정부 들어서 영토 인식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찰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실효지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의 행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대국적 견지에서 관리해 나가야 한다. →우리가 독도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양: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에 대해 집착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 이후 일본에서 한국을 지지하던 매체나 기반이 상실됐다. →원폭 피해자 2, 3세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국내 지원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양:지난 2월 국회에 원폭 피해자 보상과 관련한 법이 상정된 상태다. 일본은 1965년에 피해보상권을 다 인정했다고 얘기하면서 어떻게든 피해 보상을 하지 않으려고 회피했다. 한국 정부는 원폭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못 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 1, 2세보다 3, 4세에 대한 피해 보상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원폭 피해자는 매우 작은 쟁점이고 피해자들도 일본 정부와 시민단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일 간의 핵심 이슈는 아니다. 더 큰 이슈를 꼽으라면 강제 징용 문제에 따른 대법원 판결이다. →일본 기업이 우려를 표시하고 있는데 대법원 판결에 따른 압류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면 어떻게 봐야 하나. -이:대법원은 그 이유가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는 대일 역사 청산과 관련해 이미 1965년 피해보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관점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일본 해당 기업에 대해 몰수나 강제 집행을 하는 것인데 그것이 가져올 파장은 엄청나다. 외교부 당국자들이 고민하는 것을 볼 때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줄 돈이 1억원이라고 하면 30조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 것으로 나온다. 이것을 한국 정부가 지불해야 할 것인지, 일본 측에서 해야 할지 문제가 된다. 이럴 경우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넘어선다. -양:한국은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에서 강제징용에 대해 상당 부분 해결됐다고 얘기했다가 2012년 한국 대법원에서 일본이 불법 점거했던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일본이 한국이 골대를 바꾼다고 얘기하는 것은 바로 2012년에 2005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독일 같은 경우 기업이 재단을 만들어 계속 배상을 하고 있다. 포스코 같은 곳에서 돈을 내고, 일본 기업도 돈을 내서 재단을 만들어 보상하는 방법도 있다. →악재들만 있는데 문화재 반환 부분도 폭탄 중 하나인가. -이:한·일 관계의 최대 문제는 인식론에서 불균형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일 외교의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양국 간에 폭탄은 언제든지 있었다. 마치 한·일 관계는 이런 폭탄들만 보이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한·일 관계에서 무역, 인적왕래, 경제, 문화 또 문화교류의 미담도 있다. 그러나 한·일 관계의 관심이 온통 악재 쪽으로 가 있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 본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균형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시작이다. -양:문화재 문제는 쓰시마섬 불상 문제, 일본의 반한 감정이 이슈인 것 같지만 사실 잘 해온 것도 있다. 몽유도원도를 세 번 빌려서 전시한 적도 있고 의궤도 반환받은 바 있다. 문화재 반환을 쟁점으로 하고 하나씩 풀어 나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조선왕실의궤를 반환받은 것은 한·일 간 밝은 뉴스 중 하나다. 위안부 문제만 쟁점화하지 말고 위안부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한·일 관계 해결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재 반환이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본다. →8월로 예상되는 아베 담화를 어떻게 보나. 대일 외교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이:단기적인 해법은 정상회담이 가장 효과적이다. 한·일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한 방을 찾으라면 정상회담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가 구축돼야 이 문제를 풀어 갈 수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공동기구를 구성하고 양국 전문가가 모여서 합리적인 해법을 찾는 방식으로 가는 게 합당하다고 본다. 올해 중반까지 정상회담이 없다면 한·일 간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 일본 역대 정권 중 아베 정권은 가장 극단적인 정치적 DNA를 가지고 있다. 일본 국민과 정권을 분리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세력과 국경을 넘는 연대를 통해 한·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양:향후 한·일 관계를 비관적으로 보면 장기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은 중국과 협력할 수밖에 없고 일본은 중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이런 구조가 당분간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동북아 구조상 일본 헌법 9조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르는 것도 중요하다. 평화헌법을 그냥 두는 것이 한·일 양국은 물론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기재이기 때문이다. 정리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시론] 두려워할 것은 ‘제로금리’가 아니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시론] 두려워할 것은 ‘제로금리’가 아니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2.0%에서 1.75%로 인하했다. 정책 당국의 경기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실물경기 지표가 급락하며 상황이 악화된 데 따른 선택이었다. 0.25% 포인트 인하폭은 실물경기를 반등시키기에는 부족하지만, 경제의 급격한 추락을 막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통화정책은 금리의 변경 자체도 중요하지만 통화 당국이 이를 통해 시장에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즉 필요하다면 유동성 공급을 통해 디플레이션 심화를 막고 경기 침체와 강력히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이러한 선제적인 대응을 위해 금리 인하가 이루어졌다기보다 실물경기지표 악화가 여러 기간에 걸쳐 누적된 후 뒤늦게 금리를 일부 조정하는 상황이다. 기존에 통화 당국이 금리 인하를 반대한 논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현재의 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이 장기 수요 부진과 거리가 있는 일시적인 공급여건 변화에 기인하기 때문에, 여기에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이 2012년 7월 이후 계속 마이너스였고, 재고 누적이 심화되다가 최근에는 아예 생산 감소까지 이어진 현재 상황은 수요 부진에 따른 장기 침체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수요 부진이 아닌 공급여건 변화 때문이어도 이렇게 오랜 기간 침체가 지속된다면 대응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는 우리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니어서 금리를 낮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금융시장이 작동하는 대부분 국가들은 금리를 인하하며 디플레이션과 싸우고 자국 통화 강세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른 국가의 통화정책이 변화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원화는 가장 강세인 통화 가운데 하나가 됐고, 그 결과 최근 들어서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수출까지 무너지며 주요 대기업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달러를 제외하면 제로금리에 도달한 일본 엔화나 유로화의 경우도 국제적인 호환성이 원화보다는 높지만 기축통화가 아니다. 더구나 최근에 금리를 인하했거나,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달한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도 기축통화 국가가 물론 아니다. 따라서 유일하게 남은 금리 인하 반대 논거는 가계부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계부채는 주의해 관리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현재 상태에서 기존에 이미 발생한 가계부채의 총량 자체를 줄인다고 접근하면 자칫 주택을 비롯한 자산시장을 붕괴시키며 더욱 극심한 경기 침체에 돌입할 수 있다. 가계부채는 총량 자체가 아니라 부채의 분포가 얼마나 위험한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극단적인 경우로 대출금리가 ‘0’이라면 이자 상환에 따른 위험은 사라지고 원금 상환 부담만 남고, 원금 상환도 만기가 연장된다면 위험은 감소한다. 따라서 이자부담을 낮추는 가운데, 기존에 나가 있는 부채 가운데 상환 기간이 짧게 설정돼 있거나 상환이 만기에 몰려 있는 구조를 전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금리를 낮추면 추가 대출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없는 경제주체에게 대출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오히려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 결국 문제는 원리금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계층에 대한 대출이 증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금리 이슈가 아니라 대출이 적격자에게 이루어지는지 점검해야 하는 금융 감독 문제다. 결국 금리를 인하하되 적절한 금융 감독으로 건전한 적격대출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특히 원리금 상환 능력이 부족한 가계라면 대출이 늘어나지 않도록 규제하는 한편 재정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원리금 상환이 어려울 정도로 소득이 낮은 계층에 필요한 것은 대출이 아니라 직접적인 생계 지원이다. 즉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계층에 대해서는 대출 총액이 늘지 않도록 감독하며 오히려 금리 인하를 통해 기존 대출에 대한 이자 부담을 덜고, 궁극적으로는 원리금 상환을 위한 소득이 증가할 수 있도록 경기를 회복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제로금리’ 자체가 아니라 ‘제로금리’를 두려워하며 통화정책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다가 실물경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이 진행된 후에 그 결과로 ‘제로금리’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시론] 미겔 데 세르반테스 무덤의 진실/박철 전 한국외국어대 총장·한국세르반테스연구소 이사장

    [시론] 미겔 데 세르반테스 무덤의 진실/박철 전 한국외국어대 총장·한국세르반테스연구소 이사장

    며칠 전 인류의 성서라 불리는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무덤을 발굴했다고 스페인에서 난리가 났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발굴 작업의 결과가 지난 17일 마드리드에서 발표됐다. 그러나 정작 발굴단장인 프란시스코 에체베리아 박사는 기자회견에서 법의학팀이 DNA를 비교 검사를 할 수 없어 100% 세르반테스의 유골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단지 지하 납골당에 함께 뒤섞인 16명의 유골들 중에 한 조각이 세르반테스의 유골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가능성이 있다’는 표현을 썼을 뿐 확실하게 세르반테스의 유골이라고 단정하지도 못했는데, 이를 영국의 BBC방송이 보도했고, 우리나라 언론도 외신을 받아 세르반테스 유골 발견이라는 뉴스를 내보냈다. 세계문학에서 차지하는 지명도가 너무나 크고 민감한 사항이라서 이 정도의 가능성만으로도 세계 언론의 주요 뉴스가 돼 버렸다. 필자는 좀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필자와 친분이 있는 스페인 왕립한림원 회원이자 돈키호테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자타가 인정하는 프란시스코 리코 교수가 당일 스페인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세르반테스 유골 발굴은 한마디로 ‘바보 같은 짓’이라고 폄하했다. 그는 “세르반테스에 대한 얘기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고 단정해 버렸다. 그는 차라리 발굴에 투자했던 10만 유로로 ‘돈키호테’나 여러 권 구입해 학생들에게 보내 주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고 했다. 리코 교수의 좀 괴팍한 성격을 아는 필자는 그의 혹평이 직설적이기는 해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세르반테스 연구자이기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2016년 세르반테스 타계 400주년을 앞두고 그의 유골을 찾으려는 스페인 정부의 노력은 관광 산업 차원에서도 관심을 끌었으나, 다소 무리하게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가 권위 있는 학자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것이다. 필자도 리코 교수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400년 동안 버려진 세르반테스의 무덤을 이런 식으로 찾아낸다는 것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작가는 평생 동안 두 명의 누이동생과 함께 살았다. 18살이나 어린 부인과는 별거를 했고, 그녀와의 사이에 자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혼전에 유부녀와의 사이에 얻은 딸이 유일한 혈육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그의 가족들이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으니, 이번에 발굴된 유골들을 가지고 DNA 비교 검사를 할 수 없었고, 에체베리아 발굴단장의 말대로 세르반테스의 유골이라고 확정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1613년 세르반테스는 절친이자 시인인 후안 하우리기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해 같은 해 출판된 ‘모범소설집’ 첫 장에 첨부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그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로 그 초상화 밑에 화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여기 여러분들이 보시는 이 사람은 갸름한 얼굴과 밤색 머리카락, 시원스레 넓은 이마, 유쾌한 눈 그리고 균형은 잘 잡혀 있지만 구부러진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습니다. 20년 전 금빛 나던 그의 수염은 은빛으로 변했고, 긴 콧수염과 작은 입, 크지도 작지도 않게 여섯 개밖에 남지 않은 이빨은 상태가 안 좋고 잘못 나 있어서 서로 맞물리지도 않습니다. 그의 체구는 거대하지도 왜소하지도 않고, 피부색은 갈색보다는 흰색에 가까우며 생기 있는 편입니다. 이것이 바로 돈키호테를 쓴 작가의 용모입니다.” 17세기 당시 귀족이나 부유층들이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후대에 남기려고 시도한 것처럼 세르반테스 역시 자신의 얼굴을 작품 속에 함께 남겨 영원히 기억해 주기를 갈망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4월 23일은 스페인의 국민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타계한 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역사의 우연인지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도 같은 해 같은 날 타계했다. 그래서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세계문학의 최고봉에 오른 두 작가의 타계 400주년을 맞아 전 세계 인문학자들의 바쁜 발걸음이 벌써부터 들려오고 있다. 라만차 지방의 모든 도시들이 돈키호테의 고향이라고 했듯이 그의 유골도 스페인의 모든 성당에 묻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현명할 듯싶다.
  • [시론] 지방자치는 자율과 책임의 논리로/한상우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장

    [시론] 지방자치는 자율과 책임의 논리로/한상우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장

    올해는 민선단체장의 지방자치단체가 출범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가 지방자치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율성에 기초, 지자체의 창의력을 극대화해 이를 국가경쟁력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데 있다. 그동안 지방 분권을 위해 국회와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많은 개혁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이 체감하는 사무 처리 권한과 조직 인사 자율권의 수준은 충분하지 않다. 전국 244개 지자체가 처리하는 단위 사무의 개수는 중앙정부 사무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임 사무가 포함돼 있으며 자치 사무라 하더라도 국가의 지시와 감독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지자체의 토지 이용이나 공간개발계획은 지자체 권한이지만 이는 그린벨트에 묶여 있어 제약을 받는다. 위임 사무가 어차피 지자체가 처음부터 책임지고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될 사무라면 차라리 자치 사무로 이양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자치 사무 처리에서는 국가의 관여나 제약을 없애거나 최소화해 지자체의 정책 결정과 집행의 자율성을 확대해 주는 게 바람직하다. 오늘날 행정 수요는 날이 갈수록 증가한다. 복지, 보육, 안전, 환경, 일자리 등 사무의 양뿐만 아니라 행정서비스의 질도 ‘고객감동’을 실현해야 한다. 이 많은 행정 수요를 중앙정부 혼자서 감당하기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지자체가 분업해야 한다. 다만 선택과 집중을 위한 분업이지 결코 결정권과 집행의 분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지자체 조직 운영의 자율성 문제다. 현재 지자체의 조직 구성과 공무원 정원은 법령으로 또는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조례와 규칙으로 정한다. 이때 재정 수입과 인구 규모, 행정 수요가 천차만별인 지자체가 각자 형편에 맞게 행정기구와 직위를 신설하거나 공무원 정원을 조정할 수 있도록 충분한 자주조직권을 인정해 주는 게 필요하다. 지난해부터 행정자치부는 지방공무원 정원을 지자체가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준인건비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여전히 시·도와 시·군·구 본청에 두는 실·국·본부의 수와 실장·국장·본부장·담당관과 과장 등 보조·보좌기관의 직급 기준 등은 규정에 따라 제한돼 조직 편성의 자율권 확대 조치가 필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당장은 지자체가 설치 운영할 수 있는 기구의 상한선이 법령으로 규정돼 있어 지역 실정에 맞는 조직 운영이 어려운 현실을 감안, 2004년에 도입됐던 여유기구제를 부활할 필요가 있다. 조직 운영의 자율성과 관련해 현재 부단체장의 정수와 권한도 재검토돼야 한다. 현행 지방자치법에서는 부단체장의 정수를 1~3명으로 제한한다. 부시장은 시장의 보좌기구로서 독자적인 정책결정 권한이 취약하다. 인구 1000만명의 서울시만 하더라도 1실 8본부 5국 14관·단의 사무가 실질적으로는 시장에게 집중돼 있다. 독일의 경우 인구 60만명 내외의 도시인 뒤셀도르프, 드레스덴 등은 주요 정책 분야별로 7~8명의 부시장이 어느 정도 독립적인 정책결정기관으로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와 정부 형태는 다르지만, 이러한 독일의 부시장 제도를 활용해 시장에게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완화하고 통솔 범위를 현실화해 의사 결정의 전문성을 높일 수 있다. 우리는 중앙집권적 정부 운영 방식에 익숙해 그런지 지자체 자율권이 확대되면 혼란과 파산이 속출할 것으로 우려한다. 선진국을 보더라도 전국이 우리처럼 통일적인 지방자치제도로 운영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과 독일만 하더라도 주마다 다른 내용의 자치 헌법에 따라 다양한 행정조직과 인사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혼란스럽거나 지자체가 파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제도의 실험들이 성공해 전국적으로 미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낳는다. 문제는 자율에 따른 책임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다. 중앙정부가 언제까지 법령으로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의회의 행정감시권, 공개행정, 시민과 언론의 비판, 사후 통제 수단과 선거에 의한 정치적 책임을 따지는 게 분권과 자율, 이에 따르는 책임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길이다.
  • [시론] 얄타, 몰타, 그리고 크림반도/제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장

    [시론] 얄타, 몰타, 그리고 크림반도/제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러시아·유라시아팀장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1945년 2월 흑해 연안 크림반도의 휴양지 얄타에서 전후 세계질서를 논의하기 위한 연합국 수뇌회담, 즉 ‘얄타회담’이 열렸다. 얄타에서 그려진 밑그림에 따라 유럽은 미국과 소련의 영향권으로 분할됐고, 이렇게 탄생한 ‘얄타체제’는 냉전의 기초가 됐다. 그로부터 44년 후인 1989년 12월 지중해의 몰타에서 미·소 정상은 ‘냉전의 종언’, 다시 말해 ‘얄타체제의 해체’를 선언했다. 이른바 탈냉전기가 시작된 것이다. 몰타회담 이후 소련은 독일의 통일을 인정했으며, 나토에 맞선 공산권 군사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도 해체했다. ‘냉전의 종언’을 이끌어 낸 주체로서 이제 미국과의 건설적 협력을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소련의 패배로 냉전이 끝났다고 보는 미국이 탈냉전기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소련과 공유할 이유는 없었다. 따라서 나토는 해체가 아닌 확대의 길을 선택했고, 뒤를 이어 유럽연합도 동쪽으로 확대를 시작했다. 과거 소련의 영향력하에 있던 동유럽 국가들이 차례로 나토와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되면서 러시아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 갔다. 결국 러시아는 자신이 미국과 동등한 지위에서 탈냉전기 세계질서를 주도할 수 없고, 유럽의 안보·경제 통합 과정에도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면서 탈소비에트 지역 통합을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과거 소련의 국경선까지 확대된 나토와 유럽연합, 그리고 러시아 사이에 마지막 남은 완충지대가 바로 우크라이나였다. 러시아는 유럽연합과 사실상 자유무역협정에 해당하는 제휴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있던 우크라이나에 압박과 설득을 가했고, 그 결과 2013년 11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협정 체결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는 대중적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축출과 친서방적인 과도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 친러 지역이던 크림반도를 분리하기로 결심했다. 2014년 3월 16일 크림반도 전역에서 주민 투표가 실시됐고, 이틀 후인 3월 18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전격적으로 크림반도 병합조약에 서명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쓴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은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처럼 자신의 사활적 이익 침해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넘어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미국이 ‘강요하는’ 세계질서에 더이상 순응하지 않겠다는 견결한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크림반도는 러시아의 국가 체계로 완전히 통합됐다. 그렇다면 크림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일단 가장 강도 높은 대러 제재를 하고 있는 미국은 합병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얄타회담에서 소련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하면서 냉전이 시작됐다고 보는 ‘얄타 트라우마’가 정계 보수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양보의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 반면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푸틴 대통령은 의회교서를 통해 향후 크림반도의 지위 변경에 대한 어떠한 협상도 거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크렘린의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몰타회담 이후 진행된 탈냉전의 결과가 결코 공정하지 못했다고 보는 ‘몰타 트라우마’가 있다. 따라서 크림반도는 향후 우크라이나 사태의 전개와 별개로 오랜 기간 공식적 불인정 영토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세계질서는 불변이 아니다. 냉전을 잉태한 얄타회담, 탈냉전을 선언한 몰타회담처럼 새로운 계기를 통해 언제든 변할 수 있고, 또 변해 왔다. 이러한 변화에서 우리 역시 자유롭지 않다. 냉전은 우리에게 분단이라는 지정학적 한계를 주었고, 탈냉전은 대외 관계를 비약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어쩌면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또 다른 세계질서를 예고하는 서막인지도 모른다. 1980년대 말 탈냉전의 흐름을 재빠르게 읽고 북방정책을 추진했듯이 지금 우리에게도 보다 거시적이고 유연한 새로운 대외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 [시론] 이제는 우리 안의 분노를 생각해 볼 때

    [시론] 이제는 우리 안의 분노를 생각해 볼 때

    최근 자살을 시도하던 아버지를 발견하고선 홧김에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아들의 구속영장이 신청됐다고 한다. 이 외에도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 학대, 그리고 운전자의 과도한 보복 행동, ‘윤모 일병 사망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이모 병장 역시 ‘분노조절에 문제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소견이 나왔다. 논란이 끓이지 않았던 ‘갑질’ 논란의 주인공 조현아도 회사 직원에 대한 극단적인 분노 표출로 인해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항소 중에 있다. 극단적이게 되면 타인에 대한 살해를 부르는 강력 범죄로, 스스로에게 향하게 되면 자살과 같은 비극으로 끝나게 되는 분노. 그런데 갑과 을이라는 말이 유행하듯이 최근 우리나라의 경우 강자에게서 받은 분노를 담아 두었다가 자신보다 약자에게 표현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충동조절장애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최근 5년 동안 30% 이상 늘어나 2009년 3720명에서 2013년에는 4934명까지 증가했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분노로 물들이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좌절감의 무게가 점점 더 커지고 사회 구성원을 압박하고 있다는 방증의 하나일 것이다.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자본의 논리가 끼어들면서 점점 더 커지는 경제적 차이와 그로 인한 상대적 소외감,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출산, 결혼, 주거를 포기해야 할 지경이 된 사회 구성원들의 좌절감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듯도 보인다. 또한 조직 안에서는 태연히 정상인으로 행세하지만, 악성 댓글을 수천 개 단 부장판사의 경우처럼 익명성이 주는 커튼 뒤에 숨어 개인의 불만과 스트레스를 사회 전체에 뿜어 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는 분노를 흡수할 완충 작용이 점점 부족해지고 있다. 사회복지나 신뢰와 소통이 가능한 대인관계, 타인과의 다름을 수용한 관용성에 대한 교육 모든 것이 부족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생존을 높이기 위한 결단력과 심기 일전하는 어떤 동기 수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분노는 유용한 면이 없지 않다. 평소 적절한 분노를 느끼고 이것을 적확하게 표출하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을 막고, 일시적인 감정 정화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개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분노를 조절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화가 나는 맥락을 벗어나 보거나, 상담가와 함께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이 나의 열등감, 기대, 사랑, 관심, 인정 같은 마음속 깊은 욕구와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분노로 들끓으며 극단적인 행동화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작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이제 심각하게 우리 사회가 왜 이러한 집단적 좌절감에 빠져들고 있으며, 그 해법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점이 아닐까. 이러한 과정마저 사라진다면 분노는 그 모양새를 바꾸어 집단화된 익명성의 통로를 타고 번개같이 사람들 사이를 누비면서 증오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분노가 증오의 수준으로 넘어가게 되면 사람들은 아무런 대안이나 통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꼼짝없는 증오의 포로가 돼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게 증오심이 투사 될 수도 있다. 독일인들에게 유대인은 익명적인 집단, 즉 시온의 별이라는 단 하나의 기호로 표상화됐고, 마찬가지로 미국이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 순간 이슬람을 악이라 규정짓기가 더욱더 쉬워졌었다. 미셸 몽테뉴는 “분노는 기묘한 용법을 갖는 무기다. 다른 모든 무기는 인간이 이를 사용하지만, 분노라는 무기는 반대로 우리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분노라는 폭발적인 정서가 우리 사회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우리 사회를 감싸 안은 분노를 이해하게 되면 더 똑똑하게 항의하고, 분노를 사회적인 관점의 시스템 개혁으로 변환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질 좋은 양식인 분노. 분노의 뇌관이 타들어 가고 있는 지금 서로에게 증오의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분노를 치유하고 분노란 증상의 더 깊은 이면을 들여다볼 때다.
  • [대구·경북 세계 물포럼 D-30] “물산업 영역 확대 기회인데 국내기업 관심 적어 아쉬워”

    [대구·경북 세계 물포럼 D-30] “물산업 영역 확대 기회인데 국내기업 관심 적어 아쉬워”

    “세계 물 포럼 행사는 국격(國格)을 한 단계 올리고 국내 물산업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계 물 포럼 행사를 책임지고 있는 이정무 물 포럼 조직위원장을 만나 물 관련 이슈와 행사 준비 상황을 들어봤다. →행사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나. -준비는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국가 정상급만 10명 정도 참석하는 국제 행사라 바짝 긴장하고 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비즈니스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인데도 관심이 적어 아쉽다. 물산업을 단순히 물장사로 여길 뿐 포괄적인 물산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 속상하다. →이번 행사의 중점 논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번 행사의 메시지는 ‘실행’이다. 물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는 데 주안점을 뒀다. 실행의 도구는 과학기술이다. 우리가 과학기술 과정을 제안했는데, 물 관련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국민들이 물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물은 대체재가 없다. 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류가 살아갈 수 없다. 물 문제를 원활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평화도 위협받는다. 이미 세계 도처에서 물 문제로 인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만일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건 물 문제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물은 21세기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다. 물 문제를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물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 -아직 기후변화가 본격화되지 않았는데도 세계 각국이 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브라질은 가뭄으로 식수가 말라 가고 있다. 중국도 양쯔강이나 황허강 상·하류 지역 간 갈등이 시작됐다. 상하이시는 잠정적으로 사우나 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 도시화, 산업화에 따른 물 문제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댐 건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댐 건설에 대한 정책 변화와 함께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때다. 환경중시론자들은 무조건 댐 건설을 반대하는데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꼴이다. 작은 댐, 저수지를 개발해 수자원을 충분히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다목적댐 건설은 산림녹화사업과 견줄 만한 대단한 사업이다. 다목적댐이 없었다면 도시 발전, 산업화도 뒤처지고 풍요로운 삶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4대강사업도 부정적인 면만 들춰내지 말고 긍정적인 면도 인정해야 하지 않나.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다. -물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이 말은 물은 아무리 써도 계속 생산되는 풍요로운 자원이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또 자원을 개념 없이 낭비한다는 뜻이다. 이는 모두 물을 공짜 자원으로 보는 시각이다. 물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물값이 터무니없이 싼 탓이다. 물이 전기만큼 비싸면 절대로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현직 대학(한라대) 총장으로 포럼을 맡는 데 어려움이 따르지 않나. -오히려 학교에서 지원해 주고 있다. 학교와 포럼 사무실을 오가며 일을 봤는데, 올해 들어서는 아예 포럼에 상근하다시피 한다. 조직위에는 봉급은 물론 차량 지원 등을 반납했다. 국가 행사이고 국가와 정부, 지역에 도움이 되는 행사라는 점에서 재단과 학교가 위원장 활동을 도와주는 실정이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시론] 살아있는 정보 전시하는 미래의 박물관/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시론] 살아있는 정보 전시하는 미래의 박물관/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필자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지금 여기’를 어떻게 기록하고 수집해 미래의 문화재로 남길 것인가”, “대량생산·소비 시대에 무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할 것인가”, “수집한 박물관 자료를 어떻게 조합해 역사와 문화를 보여 주는 입체적 전시로 표현할 것인가”, “다양하고 방대한 박물관 자료(빅데이터)를 이용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정보화하고 서비스할 것인가” 등등의 화두를 갖고 매일 끙끙대고 있다. 기어오르지 못할 높다란 벽처럼 보이는 이들 난제는 우리 박물관의 미래를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다. 최근 통계는 이러한 문제 가운데 박물관 정보화의 중요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에 직접 찾아온 관람객은 327만명(외국인 221만명 포함)이며 홈페이지, 모바일, 민속영상 등 온라인 이용자는 185만명이다. 온라인 접속자가 매년 50% 이상 증가했다. 이제 박물관에 직접 오는 관람객 못지않게 온라인으로 박물관을 찾고 정보를 얻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하고 방대한 박물관 빅데이터를 이용자 입장에서 어떻게 정보화하고 서비스할 것인가’라는 화두부터 풀어 보자. 우선 박물관 자료의 수집 대상을 넓혀야 한다. 과거에는 유형 유산인 이른바 ‘물건’ 중심이라면 지금은 무형 유산인 음원·동영상 등 아카이브 자료까지 수집 대상에 포함돼야 하고 더 나아가 디지털 운영체계와 소프트웨어까지 확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필름, 인화사진, 디지털사진, CD·DVD, 테이프, LP(레코드), 설계도면, 음원, 패널, 액자, 엽서·스크랩, 정기간행물, 계약서, 협약서, PDF,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자료를 유물과 동일한 수준으로 수집, 정리, 관리, 활용하고 있다. 한 시기의 문화 표출은 단지 유형의 ‘물건’만이 아닌 인간의 소리, 몸짓, 주변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물관에서는 과연 빅데이터를 모아 놓기만 하면 그 임무가 끝나는 것일까. 더욱이 최근 관람객을 포함해 국민이 알고자 하는 욕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유물만을 수집하고 이를 전시·교육하는 박물관은 이미 과거형이 됐다. 대체로 박물관 전시에 활용되는 유물은 일반적으로 박물관이 갖고 있는 전체 유물의 5% 남짓으로 국민에게 공개되는 유물이 극히 제한적이다. 박물관이 축적한 지식과 정보는 박물관 직원들만의 것이 아니다. 모든 정보는 공개되고 공유돼야 한다. 미래 박물관의 성공 여부는 여기에 달려 있다. 박물관의 미래 전략은 소장 유물의 양과 질이 아니라 박물관 자료의 정보화와 공개, 공유, 활용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박물관 자료와 정보를 이용자에게 어떻게 효율적이고 맞춤형으로 제공하느냐에 박물관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이용자들은 누구나 그들의 성별, 연령, 위치, 국적 및 관심사와 관계없이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박물관 자료를 자유롭게 검색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박물관은 개개인의 다양한 요구와 취향에 맞춘 체험을 제공해야 한다. 새로운 정보기술을 통해 박물관 정보와 지식, 경험 등에서 개인화라는 혁명을 가져다주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문화의 보고인 박물관을 통해 창의적 인재가 길러지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소장품 검색, 민속 아카이브, 민속대백과사전, 민속현장 조사, 영상채널 등을 통해 구축한 박물관 자료는 모두가 국민의 것이라는 전제 아래 국민이 원하는 자료를 별도의 절차 없이 검색, 사진 복제를 무한정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또 현재 52%인 박물관 전체 자료 공개율을 올 하반기에는 73%까지 높이려고 한다. 여기에는 박물관이 갖고 있는 모든 유물 정보의 공개까지 포함된다. 이런 공개 수준은 아마 세계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공개 비율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 개개인이 요구하는 수요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일방적인 정보 제공이 아니라 이용자와의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정부3.0의 박물관’이며 내가 꿈꾸는 살아 있는 미래의 박물관이다.
  • [시론] 한·중 FTA, 미완의 성공/최원목 이화여대 교수·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시론] 한·중 FTA, 미완의 성공/최원목 이화여대 교수·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역사적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가 가서명돼 문안이 공개됐다. 정부의 자평에 따르면 미국·유럽연합(EU)에 이어 중국과의 FTA 체결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FTA 허브‘로서의 지위가 확보됐고, ‘아·태 지역 경제통합 과정에서의 핵심축(린치핀)’ 역할 수행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한다. 지난해 말 한·중 FTA 협상의 타결 선언 이후 FTA 혜택이 별로 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으나 이제 협정 문안을 공개할 수 있으니 ‘실체적인 이익’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불법 어획 수산물을 FTA 특혜관세 혜택에서 배제하고, 48시간 내 통관 원칙을 규정한 것은 한·중 상품교역 질서를 수립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중국 측이 애초 제시한 까다로운 원산지 결정 기준을 완화한 것(결합기준 적용축소, 역내 부가가치 요건을 40~50%로 하향조정)도 대중교역 확대를 위해 바람직하다. 상표권과 실용신안권 보호를 강화하고 지적재산권 관련 집행력을 강화해 우리 지재권 보호나 한류 콘텐츠의 대중 진출 확대를 꾀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중국 내 상사 주재원의 체류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한 것도 우리 기업인의 애로 사항을 다소 해소한 것이다. 환경보호 수준을 지속적으로 제고하고 환경 법규를 효과적으로 집행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중국발 환경악재 대처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실망스런 부분이 많다. 대중 교역 흑자의 효자 품목인 승용차, 자동차 부품, 대형 가전제품, 발광다이오드(LED) 패널 등이 중국 측 개방 목록에서 제외됐다. 상당수의 철강제품(아연도금강판, 전기강판 등), 기계류(굴삭기 등 건설기계, 고급공작기계), P-X, TPA 등의 석유화학제품, 화섬사와 같은 섬유제품 또한 제외됐다. 중국이 국내적으로 육성 중인 고부가가치 분야는 대부분 제외하고 저부가가치 품목 위주로 FTA 혜택이 발생토록 한 셈이다. 우리 측이 농수산 품목에서 극단적 보호주의(수입액 기준 60%를 개방에서 제외)를 택한 대가인 셈이나 양 부문의 교역 액수와 잠재적 교역 기회를 감안할 때 우리로서는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중국 내에 만연한 비관세 장벽 해소를 위해서는 강력한 비관세 조치 파악 및 대응 메커니즘이 마련돼야 하는데, 투명성 원칙과 공무원들 간의 협의 채널만 구축하는 데 그쳤다. 한국 원산지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개성공단 생산 제품의 범위를 역대 최다(310개 품목)로 확보한 것은 좋으나 ‘협정 서명 당시 존재하는 공단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에 한해’ 원산지 지위를 인정토록 해 남북한 경협이 개성공단 이외의 지역으로 확대될 경우에는 추가 합의해야 원산지 지위를 인정받게 되는 부담을 지게 됐다. 서비스 및 투자 분야에서 정부는 상하이 자유무역지대(FTZ) 내에서의 법률 및 건설 서비스 합작 자유화를 달성하고, 중국 내 한국 관광회사의 관광객 모집 영업이 허용됨을 성과로 내세운다. 그러나 FTZ에서의 적극적 자유화 정책은 이미 중국이 자체 필요에 의해 확립한 정책이고, 관광회사 영업 허가는 중국이 이미 진행하고 있는 관광업 자유화 파일럿 프로그램에 한국을 참여시키기로 한 방침을 재확인한 것일 뿐이다. 오히려 서비스 분야에서의 최혜국 대우 의무가 한·중 FTA에 규정되지 못한 것은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FTA 체결국 간에 차별적인 서비스 규제가 형성되는 것을 막는 최혜국 대우 의무 조항은 현대적 FTA의 필수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의 경우도 이미 뉴질랜드·스위스와 각각 체결한 FTA에서 이러한 의무를 인정한 바가 있다. FTA 글로벌 허브와 린치핀은 주요 경제권과 FTA를 많이 맺기만 하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상이한 FTA들 간에 초래되는 복잡성이 거래 비용을 증가시키기 마련이므로 이러한 비용 증가에 체계적으로 대처하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한·중 FTA에는 이러한 교역 복잡성을 줄이려는 의식적 노력이 반영돼 있지 않다. 협정의 전문을 보더라도 그저 양국 간의 양자조약을 맺는다는 선언에 그치고 있고, 아시아 지역의 통합과 평화에 파급효과를 미치려는 역사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양국 정부 모두 호랑이를 그릴 기회에서 고양이를 손쉽게 그려 내는 정치적 편의주의 함정에 결국 빠진 결과다.
  • [시론] 거버넌스, 문제는 참여가 아니라 ‘파트너십’이다/이형용 거버넌스센터 이사장

    [시론] 거버넌스, 문제는 참여가 아니라 ‘파트너십’이다/이형용 거버넌스센터 이사장

    “대표님, 민관 협력이란 말은 알겠는데, 거버넌스는 뭐죠?” ‘파트너십 그리고 새로운 거버넌스’를 모토로 2003년 창립한 민관협력포럼 회원이던 중앙 부처 간부 공무원이 살며시 던진 질문이다. 당시 거버넌스는 꽤 낯선 용어였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어땠는가? ‘로컬거버넌스’ ‘참여행정’ ‘민관협력’ ‘협치’ ‘연정’…. 거버넌스 캠페인 구호와 공약은 봇물 수준으로 넘쳐났다. 오죽하면 거버넌스 초기 연구자로 손꼽히는 중진 교수가 ‘거버넌스 신드롬’이라는 표현까지 썼을까. 거버넌스가 대세다. 현 정부는 출범과 더불어 ‘정부3.0’을 주창했다. 핵심 키워드가 ‘협치’, ‘협업’이다. 4대 가치로 표방하는 ‘개방’ ‘공유’ ‘소통’ ‘협력’도 모두 거버넌스 패러다임 연관어들이다. 최근 주요한 국가적 이슈가 되고 있는 재난안전 거버넌스,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사회적 대화나 사회적 대타협 기구도 마찬가지다. 이러다가 거버넌스가 공동체의 문제 해결을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유가 있다. 거버넌스는 정보, 자원, 과제, 경쟁 등이 국경 너머를 포함해 다양한 영역에 두루 산재하고 유동·교직하는 다원화·글로벌화·민주화 시대에 능히 조응할 수 있는, 부문 영역 간 수평적 연대와 협력을 통한 국가사회 공동체 운영 패러다임이다. 그런데 과연 거버넌스가 잘되고 있는가? 전문가들의 진단은 ‘글쎄요’다. 정책 집행 현장으로 갈수록 ‘아니올시다’ 하는 소리가 높아진다.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은 거버넌스 하면 ‘머리 아파요, 골 때려요’ 한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당(未堂)의 절창을 빌려 말하면 거버넌스가 부진한 원인의 팔 할은 거버넌스를 단순한 ‘참여’로 이해하는 데 있다. 좀 더 분명히 표현하면 ‘참여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 있다. 거버넌스의 요체는 개별 참여의 확대가 아니라 ‘파트너십’, 기관 간, 부문 간, 영역 간의 파트너십에 있다. 협치를 말하면서 기업들을 국가 경영의 동등한 파트너로 바라보지 않고 정부가 ‘시키는 대로 참여’할 것을(그것도 돈 많이 들고) 주문하고, 거버넌스를 말하면서 자율적인 주민 조직을 발굴하고 지원해 대등한 파트너로 삼기보다는 주민들이 단체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참여’할 것만(그것도 표 많이 모아서) 기대한다. 이렇게 해서는 1회성 ‘무늬만 거버넌스’가 될 수밖에 없다. 수평적 연대와 협력의 기초는 자율과 책임이다. 그리고 파트너십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하다. 그래서 거버넌스의 또 다른 요체는 ‘성찰’이다. 성찰은 상대방을 헤아림과 동시에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거버넌스를 잘하려 한다면 나만 정의롭고 나 홀로 잘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간다는, 끌고 가도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대신에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강화한다는 관점을 확고히 해야 한다. 파트너십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파트너의 지금까지 속내와 현재의 형편과 처지를 헤아려야 하고, 동시에 내가 가진 것, 내가 부족한 것을 돌아보고 상호 관계의 과거와 현재의 신뢰 수준을 살펴야 한다. 파트너십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자율과 책임의 토대에서 실정에 맞게 참여와 합의, 실천과 협력을 꾸준히 수행하고 그 수준과 범위를 확대해 가야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될 때 신뢰가 쌓인다. 그와 같은 과정이 겹겹이 축적돼야 비로소 공동체 전체가 성숙해지고, 경제 체질 강화를 이야기하듯 국가의 공동체적 체질도 강화되는 것이다. 거버넌스는 본성적으로 시간을 요구하는 과정적 패러다임이다. 과정 없이 협치, 거버넌스 주창만으로 금방 달콤한 성과를 찾는다면 연목구어일 수밖에 없다. 거버넌스는 행정에서의 민관 파트너십만이 아니라 정부·기업·시민사회, 중앙과 지방, 행정과 의정, 여와 야, 좌와 우 등 국가사회 공동체의 모든 부문, 영역에 걸쳐 적용되고 작동될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영역 간의 거버넌스가 활성화하고 공동체 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 갈 때 국민 모두가 바라는 경제 활성화, 사회 통합의 전망도 훨씬 가까워질 것이다. 그래야 21세기 다원적인 선진 문명국가로서 ‘거버넌스 국가’의 전망 또한 구체화할 수 있다.
  • 셔먼 “한·중·일, 과거사·영토 갈등 모두의 책임”

    셔먼 “한·중·일, 과거사·영토 갈등 모두의 책임”

    미국 정부 고위당국자가 한·중·일의 과거사·영토 갈등은 3국 모두의 책임이라고 지적해 논란이 일고 있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카네기국제연구원 세미나에서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동북아 역내 국가들이 과거사 갈등을 빚고 있는 데 대해 “한국과 중국이 소위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논쟁하고 있으며 역사교과서 내용, 심지어 다양한 바다의 명칭을 놓고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며 “이해는 가지만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셔먼 차관은 “동북아에서 민족감정이 여전히 이용되고 있으며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일본의 역사 왜곡 움직임을 비판해온 한국과 중국을 겨냥하며 책임을 전가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셔먼 차관은 “스스로가 만든 역사의 덫에 갇히는 국가의 위험스러운 이야기를 멀리서 살펴볼 필요가 없다”며 일본을 간접적으로 지적했지만, 형식적 언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셔먼 차관의 이 같은 언급은 동북아의 과거사 갈등에 대한 미 정부의 다소 모호한 입장을 정리해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방한해 “위안부는 끔찍한 인권침해”라고 밝힌 뒤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강조해 왔지만 한·중도 책임이 있다는 ‘양비양시론’으로 다시 기우는 모습이다. 특히 4월 말 또는 5월 초로 예정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에 앞서 입장을 정리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미·일이 중국 견제를 위해 과거사 문제를 봉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시론] 선순환 경제의 첫 출발은 고용구조 개선부터/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시론] 선순환 경제의 첫 출발은 고용구조 개선부터/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우리 경제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고용을 늘리는 것이다. 일자리가 늘어나야 서민 생활이 안정되고 경기도 살아날 수 있어서다. 청년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고 설사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공공부문에 있지 않으면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에 조기 퇴직해야 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대기업 임원의 평균 퇴직 연령은 53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25년 학교를 다닌 후 25년 일하고, 그 후 30년을 소득 없이 쉬어야 한다는 얘기다. 조기 퇴직은 연금이 없는 경우 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리나라에서 충분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직종은 공무원, 군인, 교사밖에 없다. 나머지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연금과 복지 체제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성장과 고령화 시대를 맞고 있다. 소득 없이 조기 퇴직을 하면 결국 가계부채가 늘어나든지 혹은 복지 수요가 증가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연금이 없는 국민 대부분은 모두가 잠재적인 복지 수요자가 된다. 미래가 불안해지면 소비가 줄면서 일본처럼 장기 침체 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유럽 선진국은 이런 문제들을 인식하고 이미 고성장 시기에 연금과 복지체제를 구축해 놓았다. 비록 저성장으로 들어가도 복지지출 때문에 큰 문제에 봉착하지 않도록 미리 둑을 쌓아 놓은 셈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고령화와 저성장이 함께 오는데 연금 체제를 구축해 놓지 않으면 가계부채가 늘어나거나 혹은 복지수요 폭발로 재정적자가 확대된다. 가계부채와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늘어나는 복지 지출을 보전하기 위해 증세를 꼭 해야만 하는 걸까. 물론 경기만 안정되면 세수를 늘리기 위해 증세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증세만으로 앞으로 폭발할 복지수요와 복지지출을 감당해 낼 수는 없다. 해법은 복지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복지수요를 줄이자면 먼저 고용구조를 개선해 조기 퇴직을 막아야 한다. 정부는 조기 퇴직을 막고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년을 연장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58세 이상으로 정년을 보장받고 연금도 있는 공공부문 종사자나 공무원에게만 이득이 되는 제도이지 민간 기업에 일하는 근로자에게는 실제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민간 기업에서 조기 퇴직을 막는 방법은 지금의 임금과 고용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취업 기간 동안에만 조금 많이 받고 40대 중반부터 조기 퇴직을 시작하는 잘못된 고용구조를 선진국처럼 생산성에 따른 임금 구조와 평생 직장 개념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연금 체제도 신속히 구축해야 한다. 우리는 국민연금액이 충분치 않아 국민연금만으로 노후 생계를 보장받기는 부족하다. 정부는 젊은 세대부터 국민연금을 보완하는 민간연금에 가입하도록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퇴직연금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충분한 연금소득이 있으면 복지수요를 줄여 저소득층이나 병약자들의 복지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수요를 줄이는 또 다른 해법은 경제를 활성화시켜 일자리를 만들어 취업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다. 일자리가 있으면 소득이 생기면서 복지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 고용구조를 바꾸는 것과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모두 임금 구조와 연관이 있다. 임금이 생산성보다 과도하게 높으면 기업은 조기에 퇴직시키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고용을 줄인다. 임금이 높은 것은 생활물가와도 연관이 있다. 전세 가격이 높고 교육비, 의료비, 식품가격 등 생활 물가가 높으면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기업은 임금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주택 가격이나 전세 가격을 안정시키고 생활 물가를 낮게 해 임금을 안정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또 노조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억제해 조기 퇴직하는 고용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우리 경제는 임금이 안정되고 고용이 늘면서 노동자와 기업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다. 복지수요도 줄어 재정도 안정되는 선순환 경제로 들어가 재도약할 수 있다.
  • [문화마당] 디지털 감수성/김경주 시인

    [문화마당] 디지털 감수성/김경주 시인

    인문학 운동이 열풍이다. 디지털 생태계에서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으려면 매일 최신 버전을 찾아야 한다. 눈을 뜨면 보안 시스템을 확인하고 결제 시스템을 통해 생활과 감수성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업데이트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개발 능력은 세계에 흩어진 정보의 교환 체계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의 일상과 환경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본질인 인간의 영역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이웃에게 달려가 한시라도 업데이트를 놓치면 인간의 영역에서 소외되고 인간의 문제에 불감증을 겪을 수 있으니 늘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가들 역시 시대의 징후에 불감증을 가져서는 안 되는 자들의 창조적 에너지와 다르지 않아 자신의 창작물에서 동시대성을 찾기 위해 분주하다. 인류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문제들을 우리는 디지털 공동체 ‘SNS’ 안에서 밤새도록 털어놓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우리는 현실보다 더한 실감으로 현실을 체험하고 소통하는 듯하다. 20세기 초 SF소설에 등장하던 ‘증강현실’이 일상화돼 있는 것이다. 사회와 환경 문제 역시 인류는 시스템으로 그럭저럭 해결하고 있는 듯하다. 하루의 일상은 간단하게 요약하면 휴대폰 충전에서 방전까지의 시간이며, 잠들기 전 다시 충전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눈을 뜨고 일어나 ‘보안’과 ‘결제’와 ‘업데이트’를 하다 보면 잠자리에 든다. 이 정도면 하루를 잘 구축(업데이트)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친절한 환경에 얼마나 교감하고 있을까? 분명 우리의 현실은 디지털 생태계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영역까지 확장됐고 조밀하게 서로에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성이 그만큼 증대됐을까? 그 현실성은 인간의 생명과 닿아 있는가? 증강현실은 분명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할 만큼 우리와 교감하고 있을까? 이러한 디지털 감수성이라고 부를 만한 교감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주창하는 것이 인문학 운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편리와 속도는 오히려 우리의 교감 신경을 파괴하며 우리의 정신 능력을 파괴할지 모른다는 묵시론적 세계관을 깔고 있다. 왜 디지털 시대에 인문학적 성찰이 중요한지를 역설하는 일은 이제 도시 전체에 바이러스처럼 뻗어 가고 있다. 전후 엉망이 돼 버린 세계의 질서를 바꾸고자 새롭게 역사의 반성을 고찰했던 68혁명의 혈류엔 인간의 문제에 대한 세 가지 지평이 공유돼 있다. ‘첫째, 시민은 평생 세계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둘째, 시민은 평생 정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셋째, 시민은 평생 문화의 새로움과 창조적인 다양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정한 공동체는 인간의 문제를 함께 고백할 수 있어야 하며 상실된 언어를 복원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세계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삶의 현장에서 분투했고 고답과 질서에 투쟁했고 건강한 운동을 만들어 갔다. 그들에게 인문학 운동은 고급 독서와 지적 허영을 채우고 오피니언 리더가 돼 지배력을 갖는 수단이 아니었다. 감각과 속도는 인류를 진성보다 가성의 시대로 더욱 몰아가고 있다. 키보드 워리어들이라고 부르는 자들의 진정성은 SNS에 넘쳐나지만 그들에게 시대의 건강성을 공유할 만한 자세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들은 종이로 된 책의 질감보다 아이패드의 터치 감각을 빠르게 익혀 간다. 우리가 설계한 디지털 감수성을 수혈받은 아이들은 또 다른 괴물이 돼 어느 날 우리 앞에 등장할지 모른다.
  • [시론] 민심과 감통정치/문순태 소설가

    [시론] 민심과 감통정치/문순태 소설가

    노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치대국약팽소선)고 했다. 작은 생선을 굽고 지질 때는 살이 부서지지 않도록 창자를 긁어내지도, 비늘을 벗기거나 휘저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살이 부스러지고 검게 타서 옹글게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심을 대할 때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말이다. 바람 부는 날 불조심하듯 민심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말 한마디나 몸짓 하나에 민심은 춤을 추게 된다. 을미년 설 연휴에는 총리 인준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지율 추이에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대에서 출발했으나, 청와대 비선 실세 국정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40%로 급락해 한때 20%대까지 추락했다. 4주째 변동이 없다가 2월 둘째 주부터 상승해 30%대로 진입했다. 청와대가 레임덕 마지노선인 30%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 40%는 유지하여야 하는데 가능할지 의문이다. 승부수로 이완구 국무총리 카드를 내놓았으나 절반의 실패로 끝났고 설맞이 개각도 감동을 주지 못했다. 남은 반전 카드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후임 인사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면 국면 전환의 모멘텀이 되겠지만, 역풍을 맞으면 국정 동력을 상실할 것이 뻔하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게 된 것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탓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고 했던가. 귀를 기울이면 마음을 얻는다는 말이다. 정치인은 민심의 소리를 귀담아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훌륭한 제왕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민심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당나라 조유가 중국 제왕들의 통치술에 대해 쓴 ‘패권의 법칙’을 보면 한나라 고조 유방도 민심을 얻는 것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했다. 고려시대에도 여항(閭巷)의 풍속을 알기 위해 패관(稗官)이라는 임시직 사관으로 하여금 시사나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수집하게 하였다. 왕들은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미복잠행(微服潛行·군주가 민생을 살피기 위해 평상복 차림으로 다님)도 잦았다. 김주영의 장편소설 ‘상도’를 보면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보부상들을 관리했는데, 이는 민심을 수합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민심은 바람난 며느리 심보와 같아서 한번 떠나면 되돌아오기 힘들다. 그러기에 수원수구(誰怨誰咎), 떠난 민심을 두고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민심은 물과 같아서 순풍일 때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역풍일 때는 뒤엎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성난 민심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발톱을 숨기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민심무상(民心無常)이요, 민심변심(民心變心)이라는 말도 있다. ‘천심은 일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선하고 바르면 천명을 얻고 올바르지 않으면 천명을 잃는다’고 한다. 민심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이반이 오기 전에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 민심 이반에는 7단계가 있다. 열광과 기대에서 출발하여 실망-혐오-분노-폭발-무관심-체념이 그것이다. 혐오의 단계에 이르면 반전 가능성이 없다. 소통만으로는 민심이 살아나지 않는다. 열린 사회에서 소통은 정치의 기본이다. 민심을 움직이려면 이제 소통을 넘어 감통(感通) 정치가 필요하다. 서서 차 마시고 재래식 시장에 가는, 보여 주기식 이벤트만으로는 안 된다. 말과 문자를 매개로 하는 소통 없이도 생각이나 느낌이 서로 통하는 마음의 상호 공명이 있어야 민심이 움직인다. 혼자 우는 것만으로도 안 되고 같이 울고 다가가서 위로의 눈물을 닦아 줄 때 감응과 감통이 가능하다. 이 시대에 감성적 리더십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가식 없이 보여 주고, 진심으로 만나고, 서로 웃고 울고, 소리치며 마음의 벽을 허물 때, 비로소 공감의 과정을 거쳐 감응으로 마음이 열리면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단계인 감통에 이른다. 민심은 보이지 않는 국민의 힘이다. 국민의 힘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직심(直心)이다.
  • [시론] 독도를 지키는 보다 실효적인 방법. 박찬홍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독도전문연구센터 책임연구원/전 부원장

    [시론] 독도를 지키는 보다 실효적인 방법. 박찬홍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독도전문연구센터 책임연구원/전 부원장

    22일은 일본이 제정한 ‘다케시마의 날’이다. 올해 일본은 ‘다케시마의 날’ 제정 1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등 독도 영유권에 대한 도발 수위를 갈수록 고조시키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국민은 이런 일본의 만행에 다양하게 대응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일본의 공세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고 있어 보다 현명한 대책이 요구된다. 역사적, 국제적, 정치적 등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겠지만, 과학기술적 접근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도 관련한 기초연구 자료부터 정밀한 현장 관측자료까지, 독도 인근 수역과 해저영토 관련 자료는 우리 땅 독도를 더욱 우리 땅이게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영토에 대한 과학기술적인 접근은 가장 실효적이며 확실한 정책이다. 정부는 2005년 독도지속가능이용법 제정에 이어 발표한 2006년 시행령에 따라 기본계획을 잇달아 수립하였고,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독도연구를 전담할 독도전문연구센터를 설립하고 독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한 바 있다. 독도에 대한 새로운 과학 정보를 생산하고 널리 보급하는 것은 독도의 실효적 지배국으로서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일이며, 이는 독도를 실질적으로 수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다. 이런 차원에서 2006년부터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을 주축으로 국내 유관 연구기관, 대학, 산업체 등 많은 기관을 참여시킨 가운데 독도에 대한 입체적이면서도 정밀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해왔다. 또한 해상의 연구소인 온누리호, 이어도호 등 연구선 및 첨단조사장비, 하늘의 연구소인 해양관측위성, 심해의 포터블 연구소인 심해잠수정, 그리고 고정된 연구소인 다목적 관측부이 등으로 우리는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조사방법을 총동원하여 독도에 숨겨진 많은 것들을 샅샅이 찾아내 왔다. 이를 통해서 역사상 가려졌거나 막연히 알았던 독도 관련 사실들이 새롭게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것들이 우리 자신이 독도의 재산권을 행사하는 확실한 주인임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단적으로 말해, 독도는 바다 위에 솟은 작은 섬이 아니다. 독도는 바다 속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우리의 영토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독도를 빼앗기면 심해를 포함해 우리나라 면적 60%을 웃도는 해양영토의 일부를 타국에 내어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해양과학기술은 드러나지 않은 독도의 많은 중요한 것들을 찾아냈다. 바다 속에 숨겨진 독도의 대륙붕 면적은 드러난 육지 면적의 400배가 넘고, 그 높이가 한라산보다 높다. 그뿐 아니라, 공간자원인 토지가 있고, 수산자원과 광물자원도 풍부하다. 또한 바다 속의 수려한 경관은 세계적인 수중관광 공원의 품격을 갖추고 있으며, 깊은 독도 바다는 해양학자들에게도 신기한 독특한 해양현상들로 가득하다. 독도에 대한 과학조사연구 결과는 독도에 대한 이용 및 관리에 중요한 자료로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수준의 세계적인 논문과 국제학회 발표로도 대거 이어졌다. 그 한 예로 독도 주변 심해에 살고 있되 세상에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생물을 발견하여 우리 고유의 이름을 붙여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고, 독도 주변을 흐르는 심층해류의 특이한 움직임을 밝힌 사례는 국제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냈다. 한편, 이런 연구 성과를 토대로 ‘독도 3차원 영상물’과 ‘독도 4차원 시뮬레이터’ 개발이 이루어졌고, 국민들에게 독도의 육지 뿐만 아니라 수중 깊은 데까지 실제보다 더 세세하고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수많은 성과확산과 활용은 독도의 영토 주권국인 우리가 주권 행사를 확실히 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공개적으로 알린 것이고, 이것이 곧 독도 영토주권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의지와 명확한 증거였던 것이다. 물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독도’가 더 많다. 수천 미터 깊이의 심해 독도까지 샅샅이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해양과학기술력의 증진이 더욱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도가 지닌 중요성과 가치에 비해, 또 해양과학기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비해, 우리가 준비한 실질적인 투자는 아직 충분치 않은 수준이다. 과거를 잊으면 미래의 희망까지 잃고, 시기를 놓친 투자는 뒷날 아무리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도 회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독도는 우리가 염원하는 희망과 미래의 바로미터다. 박찬홍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독도전문연구센터  책임연구원/전 부원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