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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평화 일본의 기회/박봉식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서울시론)

    ◎대 북한 수교협상을 지켜보며… 금년들어 캄보디아의 평화수립과정에 일본이 처음으로 정치적인 기여를 한 적이 있다. 캄보디아에 평화를 수립하는 문제는 현재 아시아에 남은 분쟁처리의 하나로 주목되고 있다. 1979년서부터,즉 미·중국의 관계정상화와 비슷한 시기에 월남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캄보디아를 침공,폴포트 정권을 추방함으로써 프놈펜에 친월·친소 정권이 세워졌다. ○과거에 대한 자성부터 이때부터 중 소 대립의 대리전이 캄보디아에서 진행되어 오다가 1989년 5월 고르바초프의 북경방문을 계기로 캄보디아내란은 화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캄보디아의 평화수립을 위해 아세안(ASEAN)을 중심으로 여러차례 분쟁정파가 참석한 회의가 열렸고 최근에는 유엔 안보리 5대 상임이사국들의 직접 참여아래 유엔이 캄보디아평화를 위한 선거관리에 직접 개입하게 되었다. 이같이 모든 아시아국가들 뿐만 아니라 강대국들도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일에 같은 아시아국가인 일본만이 그동안 구경만해온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판을 받아온 일본은 금년봄 도쿄에서 캄보디아평화를 위한 회의를 주재했다. 물론 큰 성과는 없었으나 일본이 아시아지역분쟁에 직접 간여한 최초의 일이라는 점에서 뜻이 있었다. 일본은 2차대전이 발발하자 곧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지반도를 독일과 동맹하여 점령해 오다가 패전과 함께 내놓은 바 있고 지금 월남에 경제적·기술적 지원을 상당히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일본은 경제대국으로서 이제 아시아만이 아니라 세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태국이 일본의 투자에 힘입어 경제성장을 크게 진척시키고 있는 일을 아시아사람들은 주목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파탄 직면 이러한 일본이 북한과 수교를 할 작정이다. 지난 9월 일본 자민당 가네마루(금환)를 단장으로 하는 정당대표들이 평양을 방문하고 김일성과의 면담에서 지난 45년간의 보상을 포함하여 북한·일본간에 국교를 맺도록 합의를 보았다. 지난 45년간의 일이 보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정부도 그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더 언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경제파탄에 직면해 있는 북한은 금년만해도 80만t의 곡물을 수입했고 소련과 중국이 1991년부터 교역에 있어 경화로 거래하기로 통고했기 때문에 일본으로부터의 돈이 급히 필요한 상황이다. 이와 같이 북한이 일본과 수교하겠다는 의사표시가 정상적 요인상태에서 선린관계를 세우고 두 나라가 우호적으로 지내기 위한 오랜 노력의 결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급박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충동적인 결정에 따른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원자력을 개발하면서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정체결도 다른 정치적 구실을 내세워 거부하고 있으며 패쇄된 동토의 사회속에서 백성들을 가두어 놓고 소위 일본인처의 행방도 알리지 않은 그러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같이 지구상에서 가장 비인도적인 통치체제를 가진 북한과 현 시기에 수교를 한다는 것은 이런 체제를 지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자 평화대국의 모습으로 우선 이웃한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기여할 기회가 왔다. 이미 앞서 지적한대로 캄보디아 평화교섭과정에 간여한 심기를 살려서 이 기회에 한반도평화를 위해 크게 기여해 주기 바란다. 물론 그동안 미국의 이 지역정책에 동조해서 안정유지에 기여한 바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북한과의 수교는 일본이 처음으로 독자적인 정책과 책임아래 진행시키는 중요한 외교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이 어떤 방법으로 북한과 수교하느냐가 한반도 평화구축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일본이 북한에 제공할 돈의 액수가 50억달러 정도라고 한다. 이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이 북한 사람들에 의하여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중대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체제유지용 배상 경계 일본인 처를 데려가고 소식도 전하지 않는 그런 정권이 지속되도록 그 돈이 쓰여지기를 일본 사람들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돈을 지원하지 않으면 지금의 북한정권은 가까운 장래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한 북한정권을 지속시키는데 일본의 돈이 쓰여진다면 일본은 이 지역의 역사에 또한번 큰 과오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대단히 드문 기회를 맞이하였다고 생각된다. 1991년 4월 고르바초프의 방일이 이루어진다면 소련과도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될 것이 예상되고 있는만큼 일본은 이 지역에서 거리낌없이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대 북한 수교야말로 2차대전 후 처음으로 정치력을 발휘하는 행사가 될 것이다. 일본 관민들의 역사를 의식하는 현명한 처사를 기대해 본다.
  • 「노동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로(서울시론)

    ◎김대환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대졸 취업난속 민주화외침은 “공염불”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대학의 졸업반들은 어수선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졸업을 앞둔 기쁨이나 영광보다도 졸업후의 진로를 놓고 고민 하는 것이다. 대학원으로 진학할 것인지 아니면 취업을 할 것인지에 우선 선택의 고민을 하게 되고,막상 취직을 하려할 경우 과연 자기가 원하는 직장이 자기 뜻대로 선택되느냐가 더 큰 골칫거리가 된다. 여학생의 경우는 더 어렵고 힘드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여대졸업생은 직장에서 마구 부리기도 힘들고 그 뿐 아니라 취업후에도 적당한 혼처가 나면 결혼해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옛날과는 달리 오늘의 여대 졸업생들은 졸업후 스스로 경제적 기반을 닦을 뿐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기술을 발휘하여 힘껏 일해보려는 생각만은 내남없이 단단함에도 취업의 기회는 그야말로 바늘구멍을 낙타가 통과할 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늘 우리와 좋은 대조가 되는 일본의 경우를 보자. 그들도 우리처럼 학제가 비슷하기에 9∼10월부터 취업문제로학교가 뒤숭숭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뒤숭숭과 우리의 어수선은 그 성격이 다른데 있다. 즉 그들 졸업반 학생들은 한사람 앞에 너댓군데서 취업의뢰가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 한자리도 오라는 데가 없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걱정이 태산 같은데 일본의 경우는 오라는 데가 너무나 많아 선택으로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같은 현실이란 우리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러운 일임에 틀림 없다. 그에 비해 우리 졸업생들은 너무나 딱하고 가엽기 조차 하다. 사람의 인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곧잘 그 경우 자유다 권리다를 내세운다. 물론 자유도 권리도 인권의 중요 항목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그 자유와 권리란 단순히 정치적인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당당히 스스로의 능력과 기술과 적성과 욕구에 따라 일하는 권리 즉 「노동할 인권」이 포함되어야만 할 것이다. 노동을 통해 정당하고도 응분의 대가 즉 보수를 받게 되고 그것으로 자기가 원하는 소비의 자유가 보장 되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즐겨 되뇌는 자유주의를 생각해 보자. 그것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금과옥조가 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같은 기본적인 이데올로기 마저도 역사적으로 크게 변질되어 왔다. 즉 시민혁명기에는 「타인에 피해 입히지 않는 한에 있어서의 일체의 자유」라는 주장하에서 그것은 절대왕정이나 절대주의에 대한 중심적인 무기가 되어 왔다. 시민혁명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기에서는 그것은 주로 경제상 자유방임의 요구로 나타났다. 그것은 그런 뜻에서 분명 생산력의 발전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산업혁명 후에는 자유경쟁이 생존경쟁이 되고 계급대립이 부각됨에 따라 자유의 구체적 내용이 점차 공허한 것이 되었다. 그것이 독점단계에서는 하나의 명목일뿐 실질적인 면에서는 자칫 형해화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케 되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의 덕목이 되고 있는 개인주의에 있어서도 그렇다. 도덕이나 교육에 있어서는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인격을 완성해야 하며 동시에 타인의 인격이나 권리를 자기의 그것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할 개인주의가 그 도덕성도 잃어버리고 인격의 완성이나 그 존엄성보다도 자유 방임적인 이기주의로 전락되어 가고 있음이 실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치적인 인권만 앞세운 나머지 소중하게 보장되어야 할 경제적인 인권은 소홀히 한 채 간과되어 왔다. 지금 이 시점에서 취직자리를 놓고 동분서주하면서 불안과 좌절을 겪고 있는 졸업생들에게 진정 정치적 민주화가 우선해야 할 것인지,아니면 개개인의 직장이 보장되고 생활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경제적인 산업화가 우선해야 할 것인지를 설문으로 물어보면 과연 그 회답은 뭣으로 나타날까. 오늘을 사는 현대인은 추상적이고 정치적 의미인 민주화의 명목보다는 구체적인 경제적 실리를 요구하게 된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데올로기보다 실질적인 테크놀러지 즉 과학과 기술이 인간의 행복과 편의와 안락과 평화를 실현시켜 준다고 믿고 있다. 2차대전후 올림픽을 치른 나라는 많다. 그들중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서독과 일본은 나란히 올림픽을 치른후 오늘날과 같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거기에 비해 올림픽개최 직전 스스로도 의기충천했고 다른 나라도 우리를 추켜세웠었던 우리지만 대회를 치르기가 무섭게 급전직하,오늘의 서글픈 꼴이 되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지고 사회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그 와중에서 세계 제2의 고진학률에다 고학력사회를 맞고 있는 우리의 대학사회는 갈 곳도 모르고 갈 곳도 없는양 헤매고 있다. 정치는 이 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지도자들은 오늘의 과제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묻고 싶다. 세계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그속에 살고 있는 인간 자체가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고전적이고 도식적인 민주화와 연관되는 글귀만을 되풀이 하는 속에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배신과 실망만 누적시키고 있음이 현실이다. 정치도 행정도 능률적이고 생산적인 것이 못 될때 조만간 국민은 고개를 돌리게 될 것이다. 그 논리는 민주주의건 사회주의건 똑같이 적용되어질 진리임이 분명하다.
  • 전환기 새 권력 창출의 조건/이기택 연세대교수(서울시론)

    ◎한반도 환경 변화에 취약점 없게 한국의 험난한 정치사에서 권력의 딜레마는 깊고 복잡한 흔적을 남겨놓으면서 내려왔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이승만은 거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국전쟁에 대처하고 능숙한 정치적 처리로 오늘의 민주주의와 경제의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어서 약체의 장면 정권을 넘어 등장한 박정희는 강력한 권력을 배경으로 주로 물질적인 근대화를 구축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권력의 딜레마를 낳은 것은 박정희 권력의 무책임함과 준비없는 돌연한 붕괴 직후부터였다. 전두환은 권력을 조직할 철학적인 준비나 정치권력에 대한 노력없이 인계받았다는 점과 동시에 헌법상 「단임」이라는 함정과 최종적으로는 「국민저항권」이라는 권력적인 틀과 벼랑에 서면서 권력을 운영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의 권력도 박정희가 남겨놓은 권력의 딜레마를 해결할 새 없이 역시 「단임」이라는 틀 이외에는 정치적 과정을 처리할 겨를조차 없이 이미 엄격한 현실적 권력후기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능에 가까웠던한국전쟁에 대한 대처나 근대화 속에서 우리 정치사에 맥맥이 흐르는 정치적 전통이 정치세력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이어져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실상 한국전쟁에서 민족의 자유를 구하는 일이나 경제적 「무」에서 근대화를 이루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정치작업이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처리에서 미국을 주무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또 미국을 한국전쟁에 끌어들여 오늘의 기초를 닦은 것이다. 박정희가 혁명 초기에 경제적인 황무지에 절망한 나머지 윤보선 대통령에게 별 하나만 더 달아주면 정치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웃지 못할 「정치적 순간」도 불가능한 근대화의 출발을 말해주는 일이었다. 이것이 한국의 정치전통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우리의 총체적 정치의 향방은 좋든 싫든 간에 세 가지 요인에 의해 지배되어왔다. 물론 첫째는 우리 정치문화,즉 우리의 대내정치이며 둘째로는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동맹국의 정치적 지원과 영향이며 셋째로 우리 정치사에서 보이지 않는 손인 북한의 대남정책이다. 이를 종합하여 요리할 수있을 때만이 건전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권력이 된다고 본다. 동시에 총체적으로는 지금까지 냉전이라는 국제환경이 한국의 지위를 강화시켜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국내정치와 국제환경,남북한 관계라는 한국정치의 요인이 크게 바뀐 상태에서 장래를 전망해야 할 중요한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 한국정치사에 중요한 전환기라는 말은 노태우 이후 권력의 임무와 책임의 핵심이 한반도문제의 새로운 해체과정과 해결에 대비하는 강력한 권력으로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해결은 한국정치의 정치적 전통 위에 구축되어야 하며 한국정치사의 완성과 관련되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미 긴 정치사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전통을 잇는 정치사를 다음 권력에서도 단절해서는 안된다. 다음 권력은 적어도 「당일치기」의 권력적 조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승만과 박정희,그리고 장면 정권의 권력조직의 특징과 허점 및 결함을 정치인은 깊이 연구하고 반성하면서 다음 권력을 조직해야 한다고 본다. 냉전이 끝나는국제환경과 중동사태에서 보여주듯이 미소간의 국제적인 협력체제는 한반도 해결에도 깊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낙관적인 전망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한국정치의 셋째 요인인 북한 대남정책의 성격이라고 본다. 북한의 대남정책은 새로운 성격을 강하게 가지면서 전개하고 있다고 본다. 북한은 주로 과거에 있어서는 기본적 혁명과제라고 말하는 「하나의 조선」정책,즉 「남조선혁명」을 기본으로 하여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추진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특히 광주사태 이후로는 지하에 「지휘부」를 두고 지하세력을 부추겨 한국정치의 딜레마를 창출하면서 한국정치의 혼란을 유도해왔다. 그러나 전두환 후기부터는 이러한 「밑으로부터의 혁명」정책으로부터 점차로 과감하게 「권력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평양은 도쿄를 경유하여 현대적인 통신수단인 팩시밀리를 통해 서울의 지하에 오늘도 매일같이 지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이러한 북한의 대남정책 특성은 현정치하에서 노태우 정부의 권력적인 약점을 활용하면서 더욱 「권력적인 접근」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는 점이다. 사실상 노태우 정부의 권력적인 약화도 이러한 북한 대남정책의 개입과 영향이 컸다고 보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단임」이라는 벼랑에 선 채 북한의 대남정책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2년을 전망하는 북한의 대남정책에서 권력적인 접근의 목표는 남한의 민주정치라는 권력계승 과정의 약점을 남한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최대 최후의 기회로 보고 있는지 모른다. 권력적 접근의 상징으로 전두환 대통령도 끌려다닌 남북한정상회담이 그 유혹의 정치심벌이었다. 실질적으로 김일성 권력의 기반이며 논리인 「남조선혁명」과 동일어인 「하나의 조선」정책에서 남북한정상회담에 김일성 스스로가 나설 경우 완벽한 자기부정이 되기 때문에 적어도 정치논리상 회담성사가 불가능한 일이다. 또 만날 수 없는 것이 북한의 정치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오늘의 북한을 외부에서 구출할 수 있는 정치는 없다. 북한 스스로가 해결할 일이라고본다. 노태우 정권의 후기에 들어서는 현시점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무겁고 엄격한 권력적 임무와 책임은 지금 개별적인 정책,그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3당합당을 최선의 기반으로 하면서 능력있고 건전한 다음 권력을 창출하는 작업을 사심없이 능숙하게 해내는 일이라고 본다. 「당일치기」라는 권력적 준비를 갖고서 다음 전환기를 대처해서는 안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험난한 정치적 위기가 닥쳐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제조업이 신바람나야 한다/안충영 중앙대교수ㆍ경제학(서울시론)

    ◎서비스업 비대는 “경제조로”의 신호 스무살이 갓 넘어선 청년의 얼굴 곳곳에 주름살이 괴고 신체에 탄력이 없이 굳어 보이면 조로현상이 있다는 표현을 쓴다. 지금 우리경제는 1인당 국민소득 5천달러 수준의 젊은 나이에 비교하여 벌써 늙어 버리는 조짐이 도처에 일어나고 있다. 작년과 올해를 고비로 우리경제는 신체의 탄력을 잃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활력의 재충전도 게을리 하고 있다. ○자금흐름의 왜곡 심화 우선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8년의 32.5%에서 89년에는 31.3%로 낮아지고 올해에는 더욱 낮아지고 있다. 이른바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은 경제의 대들보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 인력과 자금이 제조업을 떠나서 소비형 서비스 업종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으니 수출주문이 있어도 적기에 맞추지도 못해 손님을 잃어가고 있다. 올 1ㆍ4분기 취업자수는 전년동기에 비교해서 2.5%포인트나 감소한 반면 서비스업과 건설업의 취업자수는 각각 6.8%와 18.7%로 증가하였다. 지금 금형ㆍ주물ㆍ열 및 표면처리등의 부품생산 현장은 기능인력을 못구해 전자업계까지 부품조달에 어려움을 주고 있으며 이는 결국 수출에까지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관광ㆍ레저ㆍ유흥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고급화되고 번창하고 있다. 힘드는 생산현장을 떠난 근로인력이 소비형 서비스 산업으로 이동됨으로써 이제 우리의 전통적 근로관에도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편 자금의 흐름도 경제의 건강을 회복하기는 커녕 노쇠화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민간여신중 제조업에 대한 비중은 86년의 50%에서 90년 4월말에는 40.4%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동안 건설 및 서비스업에 대한 대출은 44.8%에서 48.5%로 높아졌다. 제조업의 수익률이 낮고 수면아래 잠복하고 있는 노사분규의 위험성은 기업가들로 하여금 제조업에 대한 확장이나 합리화 투자보다는 사업의 축소나 안전위주로 몸을 도사리게 만들고 마침내 「아직도 제조업을 하십니까」라는 시중의 유행어를 낳게 하고 있다. ○나라 망치는 과소비병 1인당 소득 5천달러에서 일고 있는 우리의 소비행동은 1인당 소득 2만달러 이상의 선진국형 소비행태에 못지않게 곳곳에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파리에서 목격한 승용차는 대부분 우리나라의 최소형 승용차보다 더 작은 것이었다. 우리는 어느 틈엔가 중형차 이상으로 승용차가 바뀌고 1가구당 두대 이상 보유가 늘어나서 대도시 길거리는 온통 주차장으로 바뀌고 있다. 옴짝달싹 못하는 정지된 자동차속에서 우리는 고가의 기름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수출품을 빨리 실어 날라야할 화물차들이 도로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꼴이다. 해외여행은 이제 저소득계층에로 불이 붙고 동남아 곳곳에서 싹쓸이 쇼핑에 여념이 없는 한국관광객을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 과소비와 함께 씀씀이가 헤퍼지면서 국내 저축률이 최근 크게 떨어지고 있다. 체너리와 쉬르킨 같은 경제학자들은 1인당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오늘날 선진국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산업구조 변화의 측면에서 분석한후 하나의 경험적 법칙을 도출하였다. 1인당 소득수준이 1천달러에서 2만달러에 이르는 동안 모든 경제의 선도산업들은 농업중심의 전통사회에서 노동집약 경공업→자본집약 중화학→기술ㆍ지식ㆍ정보집약의 첨단산업→제조업 연계형 서비스산업으로 발전해 갔다. 일본의 경우 1970∼85년동안 제조업의 비중은 GNP 35.8%에서 30.2%의 비율을 유지하면서 제조업의 기술심화를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 최대의 흑자국 위상을 만들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1인당 소득수준이 일본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은 일본보다 월등히 높아야 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일본수준과 비슷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경제가 성장의 정상궤도로부터 크게 탈선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으로부터 생산된 제품이 있기에 수송ㆍ통신ㆍ금융ㆍ보험ㆍ광고ㆍ음식 숙박업 등의 서비스산업이 파생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1인당 소득이 이제 3만달러대로 육박하고 있지만 아직도 제조업은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면서 새로운 상품을 값싸게 부단히 국제시장에 내어놓고 있다. 우리의 제조업이 위축되니 수출이 제대로 될리가 없다. 10월중 무역적자는 81년 이후 최대폭을 기록하여 8억6천만달러를 나타냈으며 올해 전체 무역적자는 5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는 이제 86년부터 반짝하면서 벌어 놓았던 무역흑자를 탕진했다. 외채가 올해 10억달러나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페르시아만 사태로 고유가가 촉발하는 고물가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제조업의 공동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인플레 경제체제 아래서 부동산이 최대의 고수익 투자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자금의 물꼬는 계속 제조업을 외면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근로자를 우대해야만… 국제시장에서 챔피언 상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기업가들의 사업의욕을 북돋워주는 정책을 이제 과감히 펴야 한다. 이 시대의 참된 애국자는 새로운 제품으로 국제경쟁에서 승리하여 외화를 벌어 오는 사람이다. 경제정책의 모든 초점은 제조업 부활로 모아져야 한다. 수출의 돌파구도 바로 제조업의 성장에서 가능하다. 자금의 물꼬가 제조업으로 가도록 모든 시책을 강구하고 제조업의 현장에서 일하는 기능 근로자들을 우대해야 된다. 제조업의 현장이 신바람나게 돌아가도록 각종유인정책과 함께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정치권이 하루빨리 앞장서야 한다. 우리경제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늙어가고 있는 경제를 이제 실기하지 말고 빨리 정상으로 복원하여야 한다. 경제의 조로화처럼 한나라의 운명을 퇴락의 길로 빠뜨리는 무서운 질병은 없다.
  • 지금이 권력투쟁 할 때인가/김민하 중앙대교수ㆍ정박(서울시론)

    ◎정치지도자의 「살신성인」아쉽다 여야 대립으로 인한 국회의 장기적 공전과 민자당의 합의각서 유출파동 등 오늘의 정국은 우리 국민들에게 적지않은 불안감을 안겨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대한 강한 불신감과 환멸감을 그 어느 때 보다도 증폭시켜주고 있다. 3당 통합 후에 계속되고 있는 민자당의 계파간의 갈등과 내분은 다음 정권의 재창출과 그 과정에 있어서 대권의 점유를 위한 권력투쟁의 모습으로만 우리 국민들에게 보여지고 있으며 현안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관계도 그 충정이야 어떻든간에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정권획득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저속한 당리당략적 싸움판으로 비춰지는 면이 없지 않다. 지금 전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윤리와 도덕을 기본으로 하는 인간주의 회복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탈이데올로기적 평화공존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이에 따라 우리의 남북관계도 새 국면으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각기 국가와 각기 민족들의 생존과 이익을 위한포화없는 열전이 세계 구석구석에서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민주화문제,복지의 문제,국민화합문제,도덕성과 윤리성의 재건문제,민족통합문제,민생치안과 각종 범죄척결문제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들이 우리앞에 산적해 있다. 오늘 이 시점에 서서 우리 모두는 진지하고도 냉철하게 한번쯤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져 볼 것을 감히 제의한다. 특히 정치권의 자기성찰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대적 상황이다. 첫째 우리의 기존 보수정당들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당운영에 있어서의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적 하향적 비민주적 타성으로부터 하루속히 벗어나 정당정치의 민주화를 정착시킴으로써 전반적인 나라의 민주화작업을 촉진시켜야 할 것이다. 독재정당의 조직원리는 집권성이고 폐쇄성이며 단일성이 그 특징인데 비해 민주정당의 조직원리는 분권성이고 공개성이며 다양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기존정당들은 어느 범주에 속하는가 하는 대답은 자명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목적과 명분을 가졌다 하더라도 비민주적 절차에 의한 당운영과 당론의 일방적 하향적 결정은 결코 당원들과 국민들로부터의 참다운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며 끝없는 내부 갈등과 불안으로 연결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참신한 신진 「엘리트」의 과감한 충원과 끊임없는 신진대사를 통해 정당이 늘 새롭고 젊은 패기가 넘쳐 흐르도록 문호를 개방하여야 하며 일부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나 아니면 안된다」고루한 아집은 떨쳐 버리고 새로운 지도자군을 육성하여야 한다. 중국 역사 초창기에 있어서 요왕은 순왕에게 순왕은 또 우왕에게 「나 보다 더 훌륭하다」는 이유를 들어 스스로 왕위를 넘겨 주었다는 미담은 역사적 교훈으로 의미있게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국민화합과 민주화의 과제를 더욱 더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3당통합의 목적과 명분은 아직까지는 거의 실현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화합을 기하겠다는 문제,여소야대의 국회의 비능률과 정치불안을 극복하고 정치안정을 통한 능률적인 정치운영을 하겠다는 문제,보수정당의 통합으로 서서히 보ㆍ혁 정치구도로 유도하고 남북관계에 있어서 「조선로동당」과 대화하고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한 보수정당을 창출하겠다는 문제 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정치불안,지역감정의 고조,비능률,보수정당의 분열,민자당 내부의 계파간 갈등의 심화 등 역기능을 노정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모든 정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마주 앉아 민주화와 국민화합을 위한 대 국민 단합의 장을 시급히 마련하여 남북 대화 교류협력 통일에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현안의 내각제 개헌문제와 지방자치제 문제,그리고 제반 민주개혁의 문제는 각 당이 신축성을 갖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속에서 민주적 절차를 밟아 당리당략적 차원이 아닌 국가이익의 관점에 서서 하늘을 두고 부끄럽지 않도록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스스로가 한 약속을 지켜야 하고 만약의 경우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는 납득할 만한 설명이 기필코 뒤따라야 하며 약속한 상대방과 국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 그약속이란 것은 결코 비민주적 절차에 의한 소위 「밀실약속」이어서는 안될 뿐 아니라 약속을 하였다 하더라도 급속하게 변화하는 내외정세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그리고 국민여론의 변화된 향배에 따라 바꿀 수도 있다고 하는 상황주의적 사태대응능력도 있어야 하며 변경될 사안들은 정정당당하고 솔직하게 그 정당성을 상대방과 국민들에게 호소하여 동의를 얻어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정치인들은 모름지기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 해야 한다는 기본적 자세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넷째 조국의 통일과 민족통합에 모든 정파들은 총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며 통일에 대비,우리 내부의 혼란과 취약점을 광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독일」과 「예멘」이 통일됨에 따라 이제 부끄럽게도 이 지구상에서 우리만이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게 되었으며 혈육들의 만남이라고 하는 기초적인 인도주의 문제마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에 사는 우리 모두는,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무거운 죄책감과 책임감을 갖고 민족문제 해결에 모든 힘을 다 동원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ㆍ민족ㆍ복지통일국가의 건설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취약점들,즉 지역간과 계층간의 갈등 해소,빈부 격차의 극소화,바람직한 정당정치의 구현,법질서의 확립,도덕사회의 건설,범죄와 퇴폐풍조의 추방,지속적인 정치발전과 경제성장 등을 범국민적으로 힘모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먼 훗날 우리의 역사는 민주주의와 국민화합과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한 살신성인적인 정치지도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 중산층이 목소리 높여야 한다/김대환 이화여대교수ㆍ사회학(서울시론)

    ◎갈등과 대립의 「안전판」 역할 맡을 때 「중산층의 반항」이라는 시쳇말이 곧잘 되뇌어진다. 이 말은 산업화ㆍ대중화하고 있는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중산층의 좌절과 불안 및 위기의식과 일맥상통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서둘러 결론부터 앞세운다면 산업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 중산층은 확산되고 건실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안정되고 건강한 사회가 된다. 왜냐하면 중산층은 문자그대로 자본가계층=지배층과 근로노동자계층=피지배층 등 이해가 상충되기 쉬운 대좌적인 두 세력사이에서 조정하고 중화하는 완충기능을 함으로써 산업평화를 통한 사회안정의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인종,다양한 문화,복잡다단한 이해관계로 얼킨 미국과 같은 거대한 대중사회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런대로 최소한의 질서는 유지되고 있다. 그것을 지탱시키는 힘은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바로 중산층의 비대와 온존이 그 밑받침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중산층 또는 중간계급이라는 낱말 대신에 곧잘 테크너크랫이라는 표현으로도 불린다. 우리는 그 말을 기술관리계층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들 미국인들은 산업경제 뿐아니라 심지어는 정치분야에까지도 과학과 기술과 조직관리 및 운영에 있어 능란한 테크너크랫들의 기능화와 합리화를 통해 그 능률화를 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곧 기술가정법치주의 및 제도를 뜻하는 테크너크라시이다. 데모크라시와 함께 즐겨 쓰여지는 이 낱말은 미국공황이 있었던 1920년대말의 경제위기와 사회혼란을 수습하고 극복하는 사조와 시류에서 연유된 것이며 그 구체화는 바로 뉴딜정책에서 음양으로 투영케 되었다. 이 말은 어찌보면 잔꾀만 일삼고 권모술수로 시종하는 등 적지않게 허망하기까지 한 우리의 정치작태와 견주어 생각해 볼때 많은 것을 시사받게 한다. 그같은 테크너크라시의 담당계층과 중심세력은 다름아닌 중산층 그들이다. 그런 뜻에서 우리의 중산층도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건전하게 육성 발전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건전한 생활기풍과 참신한 생산의욕과도 직결되며 국가사회의 명운과도 긴밀히 연관된다 하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중산층에 관한 마르크스 및 반마르크스주의의 진부하기도 한 계급이론의 당위성 여부를 다룰 겨를은 없지만,우리의 경우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차원에서 중산층의 지위가 포약화되고 있고 그 존재의미가 적지않게 희석화되고 있음이 현실이고 그 정도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의욕적이고 야심적인 산업화ㆍ근대화의 물결에 휩싸여 기업가와 더불어 중산층은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을 관리하고 시장을 개척하고 수출을 증대시키는데 큰 몫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는 상응하지 못했었다. 그 뿐더러 3년전의 6ㆍ29 이후,자유화의 거센 바람속에서 일기 시작한 열 띠고 뭉쳐진 노동운동은 중산층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것 아니더라도 정체적인 사회적 성격이 강한데다 적지않게 보수적이고 체제순응적이기도 한 것이 중산층이다. 그들 중산층은 대학교육의 대중화에 따른 고학력인력의 증폭과 함께 그 성향과 행동을 더욱 묘한 것으로이끌어 가게했다. 어쨌든 중산층은 관료행정사회에서 조직과 기능의 핵심이 되고 있고,경제산업사회에서 경영보조적인 위치에 있긴 하지만 실은 그들이 갖는 지식과 과학과 기술은 가히 중추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기에 상당하는 사회적인 인정감도 정신적ㆍ물질적인 보상도 받지 못하는 속에 아침부터 밤까지 혹사만 당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그들은 자기분열을 하면서 부동한채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실의까지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에의 반발로 그들의 의식세계는 때로는 급진화ㆍ과격화로 급선회하게 된다. 물론 그 반면 보수퇴영화의 성향도 적지않게 있다. 그 나머지 그들은 생산면에서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것보다는 소비면에서 쾌적ㆍ안이ㆍ향락을 추구하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의 존재의미에 대한 강한 자의식이나 주체적인 자각보다는 다만 돈을 많이 벌고 자기지위를 높이는데만 급급한채 치열한 경쟁속에 파묻히게 된다. 그들은 외형적인 면에서 한편으론 자본가계급을 뒤쫓아가면서 허탈해야 하고,다른 한편으로는 뒤쫓기는 위치에서 근로노동계층과 구별되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들은 그들로 하여금 지극히 소시민적인 소비성향을 조장시키게 되며 그같은 심의의 표출은 생활방식 즉,주택 자동차 생활용구를 통해 스스로의 심리적보상을 얻으려들게 한다. 중산층은 이율배반과 자기모순속에 회의에 빠진다. 남보다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하면서 쌓아올린 과학과 지식과 기술과 인격의 축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산층은 직장의 상하관계나 위계질서속에서 스스로의 능력과 기량을 짓눌린채 살아가는 수도 있다. 그들은 자본가처럼 흥청망청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그렇다고 해서 근로노동자처럼 조직력이나 단체교섭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행정 및 산업경영의 경우를 보자. 간부나 중역진은 윗사람이나 기업오너의 동정만 살피면서 무사안일하게 자리유지에만 시종 한다. 마치 다수의 병졸이 죽는 속에 얻어진 공로는 오직 장성 한 사람만 차지한다는 「일태장공 만골고」라는 개탄의 시구처럼 우리사회는 돼가고 있다. 그같은 행정 및 기업풍토속에서 어찌 자발적인 창의성이나 행정능력기술개발 시장확대가 기대될 수 있을까. 각설하고 중산층은 체질적으로 유약하고 조직적으로 취약하다. 그렇다고해서 대중 산업사회의 구조와 기능이 그들의 그같은 허약점만 악용한다면 중산층은 분노끝에 자위를 위한 반항을 시도케 될 것이다. 반항의 양태는 여러가지로 나타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되는 날 그것은 예상치 못한 그러면서 놀라운 사회불안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검찰총장의 고민/최홍운 사회부기자(오늘의 눈)

    김기춘 검찰총장의 심기가 요즘 몹시 불편한 것 같다. 노태우 대통령의 「10ㆍ13 특별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검찰이 전력을 다해 마련한 「흉악범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해 인권침해라는 반대여론이 의외로 컸기 때문이다. 첫 임기제 총장인 그로서는 오는 12월5일까지의 임기를 40여 일 남겨둔 막바지 시점에서 뜻하지 않은 도전을 받은 셈이다. 지난해 그런대로 「공안정국」을 무사히 넘기고 스스로 「민생총장」임을 자임해온 김 총장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할 것이다. 김 총장은 취임 이후 줄곧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민주화의 기본인 질서와 민생치안을 확립해야 하며 이에는 검찰이 흔들림 없이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해 왔고 그렇게 행동해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 총장이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김 총장 개인의 개성도 단단히 한 몫을 했지만 6공화국 들어 검찰에 대해 다른 곳(?)에서의 바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김 총장이 평소 생각해 왔던 민생치안 및 질서확립을 위한 방법이 지난 16일의 흉악범관련 입법건의안이었고 이 안이 인권보호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비난의 소리가 높자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김 총장 만의 고민이 아니라 차라리 검찰의 고민인 것처럼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세 차례 이상의 흉악범에 대해 법정최고형을 내리도록 한다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 법안대로라면 일부 법관의 재량권을 무시한 판결을 강요하는 셈이어서 위헌의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이 비난의 요지이다. 물론 이 논지는 범인의 인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형법개정시론」으로 서울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까지 받은 김 총장이 이러한 형사법 체계나 위헌 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입법을 추진했을까? 유괴살인ㆍ강도강간ㆍ집단성폭행 등 최근의 사례만 보더라도 이들 흉악범들의 범죄수법은 갈수록 흉포화ㆍ대담해지고 있다. 이들 범죄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리고 범인의 인권보다는 더 많은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흉악범에 강력히 대응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선진국에도 이같은 입법례가 있다. 또 특별법은 한시적인 법률인 만큼 일정기간 동안 시행하다가 그 입법목적이 달성됐을 때는 폐지되는 것이다. 『1백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법언은 사법시험을 통과한 정도면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와의 전쟁까지 선포할 정도인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한 주무검사의 이같은 한마디가 김 총장의 고민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 멀고도 먼「백두산 가는길」/이인복 숙명여대교수ㆍ국문학(서울시론)

    ◎이산보다 더 아픈 「이념의 벽」실감 40년 이산의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백두산 가는 길은 멀기도 합니다. 백두산행이 아버지를 만나는 상징적인 행위라는 의식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굳이 중국여행계획에 끼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20년전에 깃발을 들고 전세계를 여행하던 벼락부자 일본인들 같은 언행을 보이면서 우리 한국인들이 지금 중국을 휘젓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이 그때의 일본처럼 잘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때의 일본인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사실 잘 살지도 못하면서 잘 사는 척 기분을 내 보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중국이 실제 이상으로 못사는 척 일부러 궁상을 떨고 있는 것에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고 신이 나서 유치하게 「우쭐대 보는 것」이라면 우리는 중국인들의 음흉한 속셈에 놀아나는 것이 됩니다. 가이드들은 한결같이 『우쭐대는 일본놈들』이라고 말끝마다 입에 뇌었지만,그들이 조선족 가이드가 아닌 중국계일 경우엔 분명히 『우쭐대는 조선놈들』이라고 등 뒤에서 조롱했을 법도 합니다. 「우쭐댄다」는 말은「주제파악을 못하는 거드름」이란 말이니까요. 우리는 중국의 공항 화장실에조차 휴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중국인의 궁상을 측은히 여길 것이 아니라,오히려 음흉한 계책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펄벅의 「대지」에서 오랑은 태어난 아들을 몸으로 가리고 하늘을 우러러 궁상맞게 부르짖습니다. 『못생겼습니다. 못생겼어요. 별볼일 없는 애입니다』 세인의 주목으로부터 감추어 주어 위험을 없이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겸양이 전혀 없고 실제로 가진 만큼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가진 것처럼 거짓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중국인들은 잘 압니다. 우리는 서독의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소련으로부터 동독을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2백억을 건네주었다는 말이 있고,또 동독의 경제를 서독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하여 1천억을 투여하리라고 하고,동독의 돈을 서독의 마르크로 바꿔주기 위하여 천문학적인 손실을 감수하며 반허리의 동독민족을 해방시켰습니다. 정치가 동독을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서독 국민이 출자한 개인재산의 태산같은 돈덩어리가 동독을 매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은 정치로만 남북을 통일시킬 수 있겠습니까. 소련 하나만이 아니라 소련과 중국 두 나라의 간섭으로부터 북한을 구출하기 위하여는 2백억이 아니라 4백억이 필요하고,북한의 경제를 남한 수준까지 상승시키기 위하여는 우리도 1천억의 돈을 남한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추렴해야 할 것인데,옆마을에 사는 내 형제자매 부모가 원시상태의 기근속에 사는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가진 것 이상으로 가진척 하면서 중국여행에 돈을 퍼붓는 상황을 목격하며 나는 슬픔보다 짙은 분노에 떨었습니다. 북한 전역을 살 돈이 모금되어야 합니다. 훗날에 물건을 팔게 될 일을 위한 광고도 좋지만 지금 무조건 퍼주는 저자세 무역정책도 보기 싫었습니다. 상해ㆍ심양ㆍ장춘 등 내가 갔던 중국의 도시 어디든 공항의 짐 끄는 차와 텔레비전은 한국 것이었습니다. 일본 것이 아닌 한국의 것 뿐이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의 60%가 관광에서 오고 그것의 절반정도가 한국인이 쓰는 돈임을알아야 합니다. 나는 주는 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은 북한이 아니라는 것,중국에 쏟는 돈을 아껴 두었다가 언젠가 이북을 여행하게 될 때 마음껏 씀으로써 북한 동포를 돕자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북은 너무 가난하니까. 공항에서 우리는 이북의 교수님들과 25세의 통역관 여성을 만났습니다. 1920년대의 칼라 넓은 양복을 교수님들은 입고 있었습니다. 초라한 속에 거느린 내적 자긍심을 그들은 애써 과시하려 했습니다.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영어를 그처럼 잘하느냐고. 그는 평양 외국어대 영문과 출신인데 공부를 못하면 국비 장학금을 못타고 그러면 퇴교 당하니까 일단 졸업하는 사람은 통역에 부족함이 없는 일꾼으로 양성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한국의 외국어학과 대학생들을 생각하며 마음이 서늘했습니다. 국제 학술대회에서 북한을 대표하여 당당하게 통역을 한,영국계 캐나디언 영문과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는,유창한 영국발음의 북한 여성 통역관은 1만5천원으로 다 구비할 검소한 원피스,비닐 핸드백 비닐 구두로 당당히 최상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산의 아픔 중에서 제일 큰 것은 보고싶다는 감상적 애통 보다도 북한의 동포들이 못먹고 못입을까봐 그것이 피부를 깎는 애통』이라고 했더니,교수님과 통역관 여성은 나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닙성은 남조선만 못하고,먹는 것도 남조선만 못하지만,굶는 사람 얼어죽는 사람은 없으니 안심하시라요,그리고 우리는 허영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고 조국 건설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니까 안심하시라요』나는 그 말속에서 진실의 고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제일 불행을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외국 유학을 못가는 것 그 하나 뿐이라고. 그러나 나는 압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긍심을 가장해도 정녕 감출 수 없는 그들의 아픔ㆍ부끄러움ㆍ고충 그것은 그들이 하느님처럼 모시며 달고 다녀야 하는 김일성 배지,가슴에 번쩍이며 빛나는 사람의 배지 그것일 터임을. 다른 것 입는 것이나 먹는 것의 가난함,그것은 극복할 수 있을지라도 오직 하나,사람의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녀야하는 그 일은 지성인에게 있어서 정녕 고통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나는 그들이 정말 가엾었습니다. 교수님이 우리 일행에게 명함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기전에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 명함을 가루가 될 때까지 찢고 비비어 이름자의 흔적이 없게 만들어 쓰레기 통에 넣었습니다. 「국법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국가가 주지 않은 북한 사람의 명함을 나는 지녀서는 안되니까. 나의 아버지와 오라비들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를 나의 정부가 알아내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북한 교수가 나누어준 명함도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북한의 여성을 껴안으며 『딸아. 장하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훗날 영국과 캐나다에 유학해라. 서울에서 만나자』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백두산 가는 길은 아직 멉니다. 아버님 만나기 만큼이나 멀고 멉니다.
  • 「통일의 흥분」사라진 독일/박봉식 서울대교수ㆍ국제정치학(서울시론)

    ◎엄청난 통일경비ㆍ실업증가로 고심 작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때 모든 독일인들은 흥분의 절정에 있었던 것 같다. 금년 10월3일로 다시한번 통일국가가 된 독일은 많은 사람들,특히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간여한 나라들의 축복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뒷마음에는 서로 다른 그림자를 감추고 있는 것 같다. 독일통일에 대해 외국인들의 태도는 차치하고 독일 사람들 자신­서독은 서독대로 합병당한 동독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심각한 새로운 현실에 어리둥절한 상태에 있다. 서독은 동독의 재건을 위해 향후 근 10년에 걸쳐 수천억달러의 돈을 투입해야 하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통일독일의 콜 수상은 서독 사람들에게 통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동독으로 부터 철수해야 할 37만명의 소련군을 위해 1백억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이러한 재정적 부담외에도 동독 사람들을 맞이하는 서독 사람들은 결코 즐거운 표정들이 아니다. 서독 기업인의 기준에서 본다면 동독 근로자들은 기능이나 노동의 질에서 수준미달로 보이고 있다. 한편 동독 사람들에게 통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것을 빼앗긴 허탈한 심경에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루아침에 생활의 모든 틀이 바뀌어진다. 설혹 실업을 면하는 사람들도 서독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동독인 1천6백만명중에 4백만명이 조만간 실업자가 된다고 한다. 모든 학교의 교원들은 그들이 가르치던 과목이 없어지거나 재조정되는 데에 따르는 재훈련을 받아야 한다. 동독의 공무원들은 어떻게 되는가? 서독에서는 공산당원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 서독이 동독을 합병했기 때문에 동독의 모든 관청은 원칙적으로 폐지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동독 공무원은 채용되더라도 심사를 받아야 하고 대체로 기술직 이외에는 채용이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동독 외무부직원 2천명중 1천8백50명이 해고되었고 나머지 1백50명도 임시계약으로 복무하는 상태다. 65만명에 달하는 동독 공무원이 모두 해임되는 상태다. 이들은 새로운 직장을 위해 재교육을 받는다. 그들의 심경은 어떠할까 짐작이 간다. 나라를 서독에 넘긴 동독 수상은 통일로 인해 동독인의 생활에 별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통독 국회의원이 된 1백40여명의 시한부의원과 동독 수상을 위시해서 통독정부의 각료가 된 몇사람들은 갑자기 거액의 세비를 받아 새 천지를 만난 것 같을지 모르나 동독에 남은 백성들은 앞날이 캄캄할 지경이다. 특히 전쟁전에 동독지역에 토지를 두고 서독으로 피해온 사람들은 옛 재산을 찾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동독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주거로 부터 쫓겨나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도 있다. 전 동독 수상 한스 모드로는 『우리는 서로를 알 시간이 더 필요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동서독간의 교류가 있어 온지 오래다. 그러한 과정을 겪었는데도 막상 통일을 하고보니 서로를 너무 모르고 지냈다는 뜻이다.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독에는 정신병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군대 경찰 학교 관청 심지어 교회까지 서독에 합병당하고 말았다. 동독의 법관들은 더욱 쓸모없는 인간들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얼마씩 1대 1로 바꿔주는 서독돈을 가지고 일용품을 구입하는 기쁨도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태에서 벌써 잃어버린 동독 생활에 대한 노스탈자가 일고 있다. 12월에 있을 총선거에서 이들의 표의 방향이 어디로 갈까? 이들이 정치적으로 집단행동으로 흘러갈때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할수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10월3일,독일통일의 날을 동 서독의 적지않은 민족주의자들은 경축하지 않았다. 특히 지금의 통일독일의 영토에서 제외된 옛 독일땅을 고향으로 하는 백여만명으로 구성된 단체의 사람들은 이번 통일로 일차대전후 독일영토의 4분의 1이 잘려 나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잃어버린 땅들이 8백년간 독일 사람들의 고향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이 지금의 역사상황에서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동독의 거의 전역에서 아파트 월세가 갑자기 10배로 늘어나는 생활 현실에서 터져나오는 아우성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이다. 통일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것은 유태인이다. 나치정권이 출범하기 전에 50만명이었던 독일의 유태인은 지금 약 3만∼5만명이라 한다. 이들은 분단과 4대강국의 지배체제가 그들에게는 가장 안전한 체제였다. 통일에 따라 4대강국의 간섭권이 사라지는 것은 그들에 대한 보장체제가 없어지는 것이 된다. 그들에게는 동독에서 군국주의적 생활과 외국인에 대해 증오로 길들여진 1천6백만 동독인 모두가 두려운 존재이다. 이러한 국내외 복합적인 상황은 물론 통일에서 오는 독일의 새로운 활력으로 용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폴크스바겐 자동차회사는 크게 활기를 띠고 있으며 마르크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로 동독이 서독의 수준으로 향상되면서 안정화되어야 하겠지만 그동안 동서독의 모든 사람들은 통일의 흥분을 가라앉치고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요구하는 현실이 존엄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통일이 아직도 요원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준다. 동 서독은 그동안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적 동질성을 확보해 왔다. 그러나 막상 통일을 실현한 현재 그들은 너무도 서로 다른데 대해 당황하고 있다. 그래도 서독은 경제력으로 소련을 꼼짝못하게 묶어 놓고 동독을 합병해내는 능력을 가졌다. 동독 사람들은 스스로 2등 국민임을 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당대가 아니면 다음세대에는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통일의 내면을 보면서 우리가 겪어야 할 일이 아득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 노벨문학상 옥타비오 파스의 생애와 작품세계

    시각적 언어로 폭넓은 세계관 표현/20여년 외교관생활… 동양문학서 영향받아/“인간의 실존』에 관심,초현실주의 수법 구사 금세기 중남미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중의 한사람인 옥타비오 파스는 스웨던 한림원이 그의 노벨상 수상결정과 함께 밝혔듯이 넓은 세계적인 전망을 지닌 지성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멕시코 태생으로 스페인 내란때 직접 전쟁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20여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에서 프랑스 미국 영국 인도 일본 등 세계각지의 영사 및 대사로 근무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폭넓은 시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동양문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남미작가로 중국시나 일본시의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기도 했고 공간시ㆍ실험시로 불리는 시각적 이미지의 난해한 시를 쓰기도 했다. 멕시코 국립대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1931년 바란달(Barandal)이라는 잡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여 시그룹 타예르(Tallero)를 주도하기도 했다. 1937∼1938년에는 스페인에 거주하면서 라파엘 알베르티,루이스 세르누다,기옌 데 카스트로,파블로 네루다,세사르 바예호 등 당시의 유명시인들과 교분을 맺었다. 그후 1943년에 구겐하임(Guggenheim) 장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공부한 파스는 파리 주재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초현실주의자 및 실존주의자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멕시코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정부의 유혈진압에 항의하여 외교관직을 사임한 후 귀국하여 오로지 시작에만 전념하였다. 제네바 주재 유엔대표 시절에 국제시상을 수상하였던 파스는 1985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옥타비오 파스는 외교관으로서의 공직생활과 시인으로서의 예술가생활을 조화있게 영위하였다. 그는 인도와 파리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으며 특히 인도에서의 장기간에 걸친 대사생활을 통해 결정적으로 동양적인 시세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모든 인간의 행위와 예술을 주재하는 것이며 시의 목적은 언어와 사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해방시켜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려보내는 것이다. 그가 시의 사회적ㆍ역사적 관점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초현실주의를 포함한 현대의 시경향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초기작품 「언어밑에서의 자유」는 인간의 실존과 시간의 문제에 눈을 돌린 형이상학적인 시세계를 보여주며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시 「태양의 돌」이나 「독수리 혹은 태양」은 남미의 아즈텍 문명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초현실주의 수법을 드러낸다. 우리가 죽은 후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아있는 지금의 눈으로 관찰하면서 인간실존의 절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시집 「불도마뱀」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꿈과 비논리의 세계를 들어가는데 언어사용의 새로운 국면을 시도한 이 작품집은 파스의 가장 난해한 시가 실린 책으로 꼽힌다. 이 시인의 시어탐구는 「동쪽기슭」에서 절정에 이르며 구조주의 언어학 연구에 영향을 받아 글자배치 및 시의 공간적인 표현방식까지 보인다. 파스의 가장 큰 관심은 시간으로 그의 모든 작품에서 시간에 대한 그의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시간적 이미지를 배치한 「토포에마스와 시간적인 음반」을 냈을 정도다. 이 시각시는 여러가지형태의 판독을 가능하게 할 뿐더러 독자가 직접 작품구성이나 창작에 참여하게 한다. 최근 그의 시는 회화적이고 음악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시의 본질은 잔치의 본질과 비슷한 것으로서 달력속에 들어있는 날짜와 달리 그것은 시간의 단계적인 진행을 깨뜨리는 한 파열이며 어제나 내일없이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한 현재의 돌입이다. 모든 시는 잔치이며 순수한 시간의 응결이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론이다. 그는 또 『역사 없이는 시가 있을 수 없으며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 이외의 시의 다른 사명은 없다』고 믿고 있다. 지난 85년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그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국내에서도 그의 시선집 「태양의 돌」(민용태 옮김)이 발간됐으며 「문학사상」 「외국문학」 「작가세계」 등 문예지에 그의 시론 및 작품세계 등이 소개된 바 있다. □옥타비오 파스연보 ▲1914년 3월31일=멕시코 멕시코시 교외에서 출생. ▲1931년=아방가르드잡지 「바란달」을 창간,자작시를 발표하여 작품활동 시작. ▲1933년=첫 시집 「안개속의 달」 출판. ▲1937년=멕시코대에서 문학을 전공했으나 학위수여 거부. 스페인 내란당시 공화파 적극 지지. 초현실주의 입각한 제2시집 「인간의 기원」 출판. ▲1938년=문예지 「타예르」 창간. ▲1944년=미국 구겐하임 문학상 수상. ▲1946년=외교관 입문,파리에 첫 부임. 카뮈,사르트르,브레튼 등 실존주의 작가들과 교우. ▲1962∼68년=일본 등을 거쳐 인도대사 역임. ▲1971년 이후=미 텍사스대 하버드대 영 케임브리지대 등 객원교수 역임. ▲1981년=스페인어권의 최고권위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 수상. ▲1982년=미 노이스타트상 수상. ▲1985년=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름. ▲주요작품=「야생의 달」(1933) 「돌과 꽃 사이로」(1941) 「세계의 기슭에서」(1942) 「말 아래서의 자유」(1949) 「태양의 돌」 「격렬한 계절」(1958) 「불도마뱀」(1962) 「완전한 바람」(1965) 「공백」(1967) 「동쪽 산기슭」(1969) 「선회」(1976) 등 다수. ○독백 허무와 꿈 사이, 부서진 기둥들의 밑에서, 나의 불면의 시간을 가로질러 가는 너의 이름의 음절들 붉으레한 너의 긴 머리칼, 한여름의 번갯불이 밤의 등 뒤에서 달콤한 횡포의 불빛으로 떨리고 있다. 폐허에서 솟아나는 꿈의 어두운 물살, 허무로부터 너를 벼루어내는 물에 젖은 밤의 해변이여 거기 눈 먼 바다가 밀려와 미친 듯 후려치고 있다.
  • 허리띠 졸라매야「고물가」넘는다/안충영 중앙대교수ㆍ경제학(서울시론)

    ◎석유절약형으로 산업구조 개편해야 내과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에게 의사는 제일 먼저 체온을 측정한다. 만성적 중병인가 혹은 급성 이상증세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 경제의 건강은 무엇보다도 물가에 의해 진단될 수 있다. 지금 우리경제는 치유하기 힘드는 지병의 증상을 물가를 통하여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대증요법으로는 다스리기가 힘들며 근원적이고 장기적 대응이 필요하게 되었다. 올들어 9월말까지 소비자 물가는 9%,도매물가는 5.5%나 상승했다. 9월 한달동안만도 소비자 물가는 0.8%나 뛰었다. 페르시아만 사태로 인한 나프타 석유화학 핵심제품가격이 급등하고 중부지방의 수재와 추석특수가 함께 작용한 것이다. 한편 개인서비스요금은 올들어 12.8%나 올랐으며,쇠고기 및 돼지고기 등 농축산물은 25%나 뛰어 소득계층에 따라 체감물가는 훨씬 높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자리수 인상」 불보듯 석유의 평균도입단가가 27달러 수준에 이를때까지는 인상요인을 석유사업기금과 추경편성 등으로 흡수할수 있지만 현재와 같이 국제현물시장 유가가 35∼37달러 이상 지속되면 이나마 손을 들고 만다는 것이 전문연구기관의 예측이다. 금년도의 물가상승이 두자리 숫자대로 접어 든다는 것은 불을 보듯 이제 뻔하게 된 것 같다. 우리경제를 이끌어 오던 제조업과 수출은 부진한채 국내건설과 소비형 서비스산업으로 성장의 견인차가 바뀌어진 지금의 경제체질에 물가마저 급등하게 되면 일파만파의 부작용과 함께 경제는 명실상부하게 총체적 위기국면으로 몰입될 것이다. 우선 공무원 봉급을 두자리 숫자로 인상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여기에 물가가 두자리 숫자로 뛰면 내년 봄의 노사간 임금협상은 20% 미만대의 두자리숫자로 낙착될 공산이 크다. 임금이 오르면 기업의 채산성은 더욱 악화되고 이는 또 제품가격으로 전가되어 우리상품의 대외경쟁령은 더욱 떨어지게 된다. 물가인상→임금인상→물가상승의 가장 악성적 경제체질이 점차 굳어가게 된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국제경쟁력 약화와 더불어 또하나의 두려운 사실은 인플레경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물선호 풍조이다. 인플레경제에서는 부동산등 실물자산의 보유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부동산투기를 만연케 하고 집값과 전세값을 올리게 된다. 그동안 노사갈등의 근원적 원인이 되어 왔던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이의 분배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작금 진행되고 있는 물가상승은 국지적이고 일과성 대책으로 다스릴 수 없다. 물가안정에 대한 통치권적 차원의 확고한 의지로 물가를 근원적이고 입체적 차원에서 다스려가야 한다. 물가가 한나라 경제상태를 종합적으로 표현한다는 말 속에는 실물과 금융에서 수급불균형을 입체적으로 다스릴때 물가가 안정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비축생필품의 추가공급,매점매석의 발본색원 등의 일과성 응급대책으로 지금의 인플레체질 징후를 교정할 수가 없다. 경제적 변수는 물론 비교경제적 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재의 물가불안은 다각적 경제대책 이상의 처방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통화관리와 총수요관리를 확고하게 동시 추진하여야 된다. 생산부문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보장이없이 올들어 월평균 22% 이상이나 되는 총통화 증가율에 또다시 돈을 더 풀게 되면 직접적으로 물가상승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국민의 인플레 심리를 자극하게 된다. 이와 같이 당장 물가문제가 심각한 만큼 돈을 추가로 풀기보다는 비생산적 부문에 잠겨있는 돈이 생산쪽으로 흘러들어 오도록 물꼬를 트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1986년에서 작년까지 지속한 국제수지흑자로 늘어난 자산증대에 힘입어 정부소비는 물론 민간소비가 크게 헤퍼져 수요견인의 물가상승을 부채질 하고 있다. 수입자유화의 진행과 더불어 고가수입품이 점차 일상재로 바뀌어 가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일상거래용 현금보유가 높아지고 있다. 시중에 돈은 풀었는데 돈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 시키고 있다. 들뜬 소비풍조를 진정시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운동이 민간소비에서 일어나야 한다. 과열 민간소비를 자제시키는데는 정부가 솔선수범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내년도 총예산 규모는 올해 예산대비 28.6%로 정부는 확정하여 놓고 있다. 팽창예산으로 정부사업이 가져오는 플러스 효과보다 총수요확대가 부추기는 물가상승의 부정적 효과가 이 시점에서는 더욱 크다. 정부의 전시형사업은 당연히 연기되거나 취소되어야 한다. 과열된 국내건설이 지금 자재난과 건설인력의 인건비를 크게 올리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불요불급한 토목사업으로 물가의 고삐를 풀어서는 안된다. 과소비와 해외여행 등으로 지금 잔뜩 부풀어진 민간소비를 진정하는데 정부의 솔선적 절약과 긴축재정이 효험을 발휘할 수 있다. 경제의 공급측면에서 볼때 이미 제조업의 공동화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데 인플레 무드 아래서 제조업은 활력을 찾을 수 없다. 물가가 오를 때일수록,그리고 제조업이 저성장에 잠겨 있을 때일수록 기업으로 하여금 합리화 투자와 기술개발에 전념하여 생산성 증대를 도모할 수 있는 정책유인에서 물가를 궁극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궁리를 하여야 된다. ○정부도 예산팽창 자제를 특히 제2차 석유파동 이후 일본의 절대 석유소비량은 13%나 축소되었으나 우리는 33%나 늘어났다. 그동안 석유절약형 산업구조 개편에 게을리 하였던 결과 페르시아만 사태의 파장에 우리는 누구보다 전전긍긍하고 있다. 산업조정의 과제 또한 물가수속과 직결되어 있다. 경제적 요인 못지않게 사회적 분위기도 인플레를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당리당략에서 혼미를 거듭하는 정국불안,흩어진 민심,극단의 이기주의가 불러오는 질서의식의 실종,떼강도ㆍ인신매매 등의 사회불안이 제거되어야 한다. 정부ㆍ기업인ㆍ근로자ㆍ소비자 모두가 자기욕구를 자제하고 경제의 내실을 다진다는 결의가 없다면 우리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긴 터널속에 방황하고 말 것이다. 추석의 긴 연휴가 과소비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자성하면서 물가 오름세를 극복해가야 할 것이다.
  • 「인본」이 흔들리면사회가썩는다/김대환이화여대교수ㆍ사회학(서울시론)

    ◎물질만능ㆍ찰나주의가 「인면수심」 날뛰게 얼핏 생각하면 정치가 엉망이라는 것도 큰 문제 같고,경제가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도 예삿일이 아님은 분명하다.그러나 그 보다 몇백갑절 더 염려되는 문제는 바로 사람들이 못쓰게 될 지경까지 정신적으로 병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다. 왜냐하면 정치나 경제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아니라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병들어가는 사회 우선 매사에 그 중심이 되는 사람이 성실하고 정직하고 근면하고 진지해야만 할터인데 그렇지가 못할 때 정치가 제대로 될 까닭이 없고 경제가 제구실을 할 까닭 또한 없다. 그러기에 옛사람들은 사람 기르는 것을 가리켜 백년대계라 했었다. 그같은 성현의 말씀은 물론 지금도 여전히 유효타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예부터 전통적으로 인본사상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인간본위ㆍ인간중심으로 생각하고 다루는 한국적 인간주의가 곧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치자가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도 그랬고,윗사람이 아랫사람을,그리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접하는 경우에도 그랬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사람을 돈으로 되바꾸어 생각하는 나머지 인권보다 물권을 앞세우는 세상이 됐다. 돈 때문에 철없는 아이를 유괴살해하고도 인간적인 고통의 그림자조차 엿보이지 않는 인면수심의 모습하며,죽어간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흥정하는 세정이 되고 말았다. 조석으로 대하는 끔찍끔찍한 사건으로 온 국민들은 흉악한 범죄앞에 노출되고 있다. 그렇듯 병든 징후는 어찌 범죄에 한한 것만일까? 모두가 성실함도 정직함도 책임감도 둔탁해지고 있다. 매사를 그저적당히 얼버무리면서 시간이나 때우고 눈가림이나 하는 등 그때 그 장소만 모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젖어들고 있다. 그같은 것의 단적인 표출은 이번 물난리에서 익혀 보고 온바 그대로이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실세 아닌 허세나 부리면서 살아간다. 내일도 한달 후도 그리고 일년 뒤란 더더욱 생각지 않고 다만 그순간 순간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같은 찰나주의적인 생각이나 태도는 분명 우리를 하루살이 인생으로만들어 가고 있다. 그곳에서 성실과 정직과 책임이 있을 수 없고 거기에선 신의가 발붙일 수도 없다. 어떤 경우엔 부자간에도 부부간에도 그 모양이 되어가고 있으니 정말 기막히는 노릇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모두가 일 하려 들지 않는다. 하나같이 모두가 편하기만 생각하고 쓰기만 좋아한다. 그렇듯 노동을 기피하고 경시한다. 사실 모든 생산도 생활도 노동없이는 하나도 이루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맹탕 놀려고만 든다. 일하지 않는 곳에 돈이 생길 수 없다. 보는 것 듣는 것 그 모두가 하나같이 돈 없이는 뜻대로 되지않는 세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놀고 있자니 먹고 싶고,입고 싶고,하고 싶은 일은 더 많아지게 마련이다. 거기에 따른 잡념도 유혹도 매양 더 해질 수 밖에 없다. 노동도 하지 않고 거기다 머리까지 텅 비어있는 못난 젊은 남녀가 돈이 아쉽게 될때 선택을 유혹받는 길은 무엇일까? 남자는 폭력이고 여자는 정절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하루살이 인생에게 가장 손쉬운길이란 그길이 고작이라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취학률에다 대학 진학률로는 세계 두번째의 고학력 사회,거기에다 즐비하다 할 예배당과 사찰 등이 산재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토록 사람다움을 잃어가고 있는지? 그동안 도시 위정자도 정치지도자도 지식인도 성직자도 정치 경제에 관해서는 이러쿵 저러쿵 말도 많았지만 정작 그 바탕이 될 인간상을 기르는데는 너무나 소홀했었다. 민주화다,산업화다 목청을 높여 외쳐대면서 그것만 이루어지면 당장에라도 만사가 형통될 것처럼 되뇌이곤 했었다. 그 발상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을까? 세상사란 그렇게 단순치는 않을 터인데 말이다. 약간은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지금 겪고 있는 정치에의 실망과 경제에의 좌절은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에겐 좋은 교훈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람은 스스로 당해봐야 깨닫게 된다는 속설을 믿는 한에서 적어도 그렇다. 이를 시행착오로 치기엔 너무나 값비싼 대가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제쳐놓고 지금부터라도 참사람을 만드는 작업,즉 교육혁명부터 다시 함이 어떨까? 그동안 선생은 있었지만 스승은 없었다는 함축성있는 말에서부터 교육행정은 있었지만 교육철학이 빈곤했다는 일부 경세가들의 충고도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은 흘려보내기 일쑤 였다. 거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인간교육 부재의 맥락에서 보면 오늘의 인간사 세상사는 어찌보면 자업자득의 인상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절망이란 없다. 사람이 많다 보니 그중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의 기둥과 뿌리는 아직도 썩지 않고 건전하다. 큰 웅덩이에서 피라미나 미꾸라지 등이 구정물을 일으키고 있는 것 처럼 얼핏 보기엔 잔고기만 물가에서 판을 치고 있는 듯 보일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큰 고기는 기척없이 깊은 물속에서 있는둥 마는둥 하지만 여전히 연못을 지키고 있다. 지금도 두메에서 땅을 파며 고장을 지키는 젊은이가 있고,공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면서 일손을 놓지 않는 근로자가 있다. 그런가하면 도서관에서 등화가친하며 독서삼매에 빠져드는 학생도 많다. ○민주화뒤엔 인간소외가… 얼마전 섬강버스 추락사고때 다섯살짜리 외아들을 구하려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진 어느 여교사의 애틋한 모성애하며,죽어간 아내와 자식을 생각다 못해 스스로 전신주에 목을 맨채 뒤따라 죽음을 택한 어느 남교사도 있었다. 이 풍진세파 속에서도 그토록 눈물겨운 인정비화가 바로 우리 주변에 있었다. 우리의 근본과 본질은 의구하다. 다만 몇 안되는 인간공해가 그토록 어질고도 착한 사람들을 하나 둘 찌들리게 하는 독버섯이 되어 있다. 위정자도 정치지도자도 이 안타까운 현실을 똑바로 보고 파악해야 할 것이다. 정권연장도 정권장악도 이젠 식상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성 발언은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민주화란 「수술」은 성공했지만 끝내 환자는 죽고 말았다는 식의 우를 제발 다시는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간절한 사연 어찌 필자만의 심정이라 할 수 있을까?
  • “공해없는 거리”… 중국의 자전거 행렬(서울시론)

    ◎출퇴근때 장관… 또다른 삶의 생동감 자가용에 사람 많이 들어가기 경연을 했는데 28명이나 탔다고 합니다. 중국을 말하자면서 무슨 이야기냐 하시겠지만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백두산 천지행을 위하여 중국을 여행하면서 누구나 하룻밤은 머물게 되는 상해의 하룻밤은,이조 17대 임금 인조의 둘째 아드님 효종이 8년간 볼모로 가있던 심양으로 다음날 여행일정이 잡혀 있다는 안내인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마음을 상심과 불면으로 쓸쓸히 해 주기에 넉넉했습니다. 중국기행이 가히 시론이 될 만큼 중국의 호텔로비나 엘리베이터나 관광지에는 한국사람과 한국어만 판을 치고 있으니 삼태기로 쏟아 붓듯이 중국으로 한국의 금쪽같은 외화가 유입되는 것이 정녕 눈에 보였습니다. 국가정책을 담당한 분들은 어떤 기상천외의 복안이 있으시기에 이러한 사태를 관망만 하시는지,아니 심지어는 정부예산으로 숱한 사람들을 중국에 보내기까지 하시는지,더욱이 90년 북경아시아올림픽에 우리가 가져다 퍼부을 외화를 생각하면서 나는 중국을 여행하고 있는나 자신에 대해서까지 끈끈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이산 40년을 만들어 놓은 전쟁가해국인 중국의 음흉한 속셈에 이렇게 놀아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민간차원의 개방을 가장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외화를 쓸어 모으고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공룡이 낮잠 자는 시늉을 하면서 작은 생명체들로부터 생존의 기력을 흡수해 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고성능 흡입기로 우리의 재화를 빨아들이고 있는 곳에 우리가 무방비의 자세로 자진해 다가서고 있으니,옛날 효종의 볼모는 강요받은 볼모였지만 오늘 우리의 무절제한 중국행은 자기선택의 정신적인 볼모됨이 아니겠습니까. 알루미늄 새시로 테를 두른 통유리창 하나 볼 수 없는 상해에서 제일 고급에 속하는 곳이 홍교호텔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티스푼은 갈신스런 양은 조각이었고 음식그릇이나 커피잔은 이빠지고 금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부산대학교 C교수는 쇼핑 할 때에 거스름 돈을 덜 받았고,나는 시종일관 그들을 의심하며 끝까지 사기 안 당하려고 조심했는 데도 드디어 눈속임에 넘어가 역시 손해를 보았고,연세대의 N교수는 환금 후 돈을 세어보니 부족하여 따졌는데 마치 준비나 하고 있었듯이 『죄송합니다』하며 손에 쥐고 있던 돈을 내 주더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사람들의 무서운 나라입니다. 「민간 차원의 개방 및 여행 자유화」라는 슬로건으로 민주화의 냄새를 풍기면서 실은 여행객의 돈주머니 달러화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이 친근해 보일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땅도 아닌 중국땅을 마치 북한으로 착각하고 우리 남한인들이 외화를 생각없이 마구 씁니다. 봉황호텔은 심양에서 최고라고 하지만 치약에서는 6ㆍ25 직후에 우리가 쓰던 박하와 석회 냄새와 떫은 풋딸기 맛이 나서 나는 미리 준비해 간 한국산 치약을 썼습니다. 수건은 얇고 갈신스럽고 전날 묵은 손님의 땀냄새가 밴 채 다시 접어만 놓았으니,그곳의 실정을 가히 짐작할 수 있으시겠지요. 그러나 중국약과 비단과 발모제를 사라고 충동 구매욕을 부채질하던 상해의 한족여인가이드와는 달리 심양의 조선족 여인 가이드는 유창한 모국어로 우리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며 조선 여인의 슬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풍 곽씨 곽태순이구요,저의 남편은 김수영입니다.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합니다. 이곳 여성들은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남성,남편을 좋아합니다. 저의 조선어가 부족하더라도 여러분은 교수님들이시니까 제자나 후배로 여기시고 잘 배워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아버님이 일제 때 이곳으로 오셨기 때문에 저는 심양에서 태어나 심양에서 자라났습니다. 여기서는 목수나 기술자나 운전수들이 벌이가 좋습니다. 선생질 하는 교수는 월급이 눅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돈은 적게 벌어도 모든 인민들이 교수를 존경합니다. 기술이 제일 높은 사람을 일류 공정사라고 부르는데 교수님은 바로 일류 공정사입니다.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누구든 대학을 필업해야 좋은 직업을 얻습니다. 고등학교를 필업하면 70%가 대학을 가는데 그중에서 조선족이 제일 많습니다. 우리 요령성 인민은 3천6백만명이고 심양 교구민은 5백70만명입니다. 소수민족이 40만명인데 그중에서 조선족이 9만명입니다. 조선족은 농사를 잘 지어 개인기업을 합니다. 정부가 농민에게서 벼 5백g을 20원 주고 사서 가공해 입쌀 5백g을 18원60전에 배급합니다. 그러나 야미로는 입쌀이 80원입니다. 농작물을 내다 파는 것은 큰 개인 기업입니다. 조선족은 부지런하기 때문에 입쌀을 배급받고 게으른 사람은 옥수수 가루를 배급 받습니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백성입니다. 7군부 지도자 중에서 한명 꼴이 조선족입니다』 이렇게 가이드하는 조선족의 딸은 모국어로 일을 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도시에서 만난 조선족의 딸 가이드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부디 서울에서 한국어 문학과를 필업할 수 있도록 입학허가를 구해 주세요. 북경대학교 조선어학과 교수가 되는 것이 저의 인생 목표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조선의 딸은 미래 첨단사회의 좌표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이 아닌 중국에서 조선의 딸이 말입니다. 그러나 야바위꾼들이 설치는 나라 중국을 여행한 후,그래도 내가 다녀오기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도시의 장관을 보고 깨달은 감동 때문입니다. 출퇴근 시간에 볼 수 있는 자건거의 행렬과 무궤도 전기버스는 12억 인민이 사는 중국을 거의 공해 없는 나라로 유지해 주고 있었습니다. 중국에 다녀온 후 요즘 나는 갈등하고 있습니다. 나도 자전거를 탈까? 나부터 자가용을 없앨까? 한사람 출퇴근하자고 구르는 저마다의 차들이 서울거리를 메우고 있으니 서울의 공해를 어찌하나. 자가용을 타면 지각하고 자전거를 타면 지각을 안할 만큼 극심한 서울의 교통지옥을 어떻게 치유한단 말인가. 이 노릇을 어찌하나. 사람 28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자가용을 내몸 하나 태우고 끌고 다니다니. 그래서 요즘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환상의 꿈을 꿉니다.
  • 자가당착에 빠진 「하나의 조선」/이기택 연세대 교수(서울시론)

    ◎유엔가입ㆍ대일 외교서 수정 불가피 오늘날 북한의 최대 관심과 문제점은 「하나의 조선」정책을 수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도에서 보듯이 김일성이 심양을 비밀리에 방문했다면 북한이 무엇을 갖고 중국을 설득하려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북한이 「하나의 조선」정책으로부터 「두개의 조선」정책으로 이행할 수 있는 「수정」이 가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다. ○김일성 권력기반과 직결 사실상 지금까지 북한에게는 「하나의 조선」정책이 거의 강력적인 원칙인 것이다. 북한의 모든 권력의 논리는 이 「하나의 조선」정책으로부터 기원하고 발원하기 때문이다. 「조선」이 「하나」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포기하려 할 때에는 김일성이 해방직후부터 견지하여 온 「하나의 조선」정책이라는 기치를 내려 놓는다는 것으로 곧 권력의 기반을 잃게 되는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김일성은 권좌에서 물러나야할 정도의 근본적인 문제고 또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북한의 딜레마는 북한의 체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김일성의 권력의 논리인 「하나의 조선」정책의 논리가 수정될 것인가하는 문제가 우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남북한 총리회담에서도 북한의 최대의 관심사는 한국이 유엔에 가입할 외교적인 조건을 사전에 봉쇄해야 한다는 것이 밑바닥에 깔린 목적이었다. 그 이외의 것은 설혹 우리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얘기를 연형묵총리에게 했다 하여도 북한은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유효하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와 달리 북한은 확고한 원칙에 의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하나의 조선」정책에 가장 급박한 문제점은 우리 외무부가 꾸준히 추진하여 온 한국의 유엔가입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독가입」이나 「동시가입」일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그냥 한국의 유엔가입인 것이다. 「단독가입」이라는 말은 잘못된 어구인 것이다. 한국은 해방이후 유엔에 의해서 독립되었으며 안전보장면에서 북한도 인정해온 휴전협정의 당사자의 하나인 유엔에 의해서 지금도 한반도의 안전체계가 유지되고 있으며 북한도 참가하는 유엔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엔가입은 국가체제를 수정하지 않는 이상 기본적인 문제로 내려온 것이다. 1949년에 북한이나 남한이나 모두가 각기 유엔가입을 신청하였었으나 거부권으로 가입이 중단되었었다. 그러나 오늘날 국제환경이 본질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9월11일자 이즈베스티야논설에서 한소관계가 외교적으로 성립될 수 있다는 내용을 보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엔가입을 1949년에 거부하였던 소련이 한국을 승인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으로 북한은 지금까지 「공작외교」를 전개해 오던 대일정책에서 이번 방문할 가네마루사절단을 계기로 정책을 전환하여 일본의 돈과 기술을 도입하고 싶으나 북한이 대일정책을 「공작외교」에서 「공식외교」로 전환하는 순간 북한은 「두개의 조선」정책으로 나가야 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를 공식화하기 시작하는 순간 「하나의 조선」정책이라는 기치는 깊은 상처를 받게 되며 수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이 일본과의 국교를 남한이 1965년에 설정하였던 패턴을 따른다면 이는 곧 「하나의 조선」정책의 포기를 의미하며 「두개의 조선」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에게 있어서 유일한 「숨돌리기」는 천안문사건이래의 중국이었다. 사회주의 4원칙을 지키겠다는 정치적 입장과 함께 북한에게 동유럽의 개혁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유일한 바람막이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도 한반도정책을 수정해야 할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의 「하나의 조선」정책은 마지막 거점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문제점과 자유의 바람은 정치적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남한으로부터가 아니라 동유럽과 특히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오고 있다는 점에 북한의 딜레마가 있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꾸준히 수십년동안 전개해 온 대남정책을 총점검하였으리라 추측된다. 김일성이 심양에서 강택민과 회담을 했으리라 본다. 사실상 「하나의 조선」정책은 북한의 남한에 대한 「해방」정책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남한정치의 사분오열과 정치전통의 붕괴 등을 분석하면서중국을 설득하리라 예측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조선」정책은 북한을 통치해오고 또 해가고 있는 김일성의 북한의 대내통치의 권력적인 기반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것이다. 이제 소련과 중국이 「두개의 조선」으로 이행하면서 북한의 「남조선공산화」정책이 불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릴 때에는 김일성은 북한의 대내정치를 수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것이다. 1945년이래 김일성은 남조선을 「해방」해야 한다는 이론적인 기반을 갖고서 북한을 통치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김일성권력의 논리인 「하나의 조선」정책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게 될 조건이 성숙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김일성의 통치이론에 대한 손상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조선」정책의 전환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며 북한은 중국이라는 가느다란 선을 잡고 「숨돌리기」를 하고 있으며 그 근거가 남한이 지금도 대남정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근거를 갖고 중국을 설득하리라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제정신을 찾기 바랄 뿐이다.대한민국을 다 만들어 놓고 우리 스스로가 흔들지는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 의지,숨돌리기 앞으로 북한은 스스로의 모순을 스스로 해결할 길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확고하게 우리의 전통적인 입장에서 우리의 길을 가면 곧 북한에게도 큰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에 적응한다고하여 북한이 대남정책을 수정하리라는 망상은 일찍 버려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게 남한사회의 없는 허점까지 과장되게 보여주어서는 남북한 관계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오늘의 대내정치의 모순을 역으로 우리의 대내정치를 수정하면서까지 북한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 대북협상 “양보할 일 못할 일”/박봉식 서울대교수(서울시론)

    ◎전향적 대응 좋으나 북이 오판 말게 서울에서 열린 제1차 남북 총리회담은 서울이나 평양에서 모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는 북측이 결국 총리회담을 당국간의 회담으로 받아들였다고 해석하고 또 평양에서의 제2차 회담이 확실하게 되어 당국간의 접촉이 공식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고 보는 것 같다. 평양측은 서울회담에서 3가지 「긴급의제」를 내세워 그 의제의 선결을 요구하는 자세였다. 그들은 서울회담의 결과 이 세가지 선결요구가 거의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즉 「단일의석의 유엔가입」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이 유엔 단독가입을 일단 보류하고 북측의 제안을 논의하자고 했다. ○변화없는 북대표들 그리고 「밀입북관련 구속자 석방」과 관련,그들을 면회하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선물은 간접적으로나마 가족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끝으로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에 대해 신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측에서 시사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또 미군철수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연형묵 북한총리는 그들의 정권수립기념 연설에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가 가능하다고 연설하였다. 이 정도면 북측으로서는 서울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북한의 국가주석이 서울회담에 임한 연형묵총리등의 「서울활동」을 칭찬할 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로의 해석에 문제는 없겠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낙관론자이기를 바랄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 보면 남북한관계를 낙관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남북한관계를 궁극적으로 낙관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서울에 온 북측 대표단의 공식 비공식 태도에는 종래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객관적인 세계정세의 흐름을 분석하고 그결과 새로운 정책을 마련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종래와 같이 김일성의 교시 등을 그대로 가져 나온 것이다. 북측 대표가 우리측 총리를 총리라고 부르기를 꺼릴 정도였고 만찬연설에서 주체사상을 강조하며 그들의 정치체제가 가장 우수한 것임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당국간 회담에 나온 사람들이 회담과 관계없는 일에 더 열중하려는 자세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세가지 긴급의제라는 것도 엄격히 말하면 정상적인 경우 당국간의 의제로서는 적절치 않은 것이다. 그러한 북측의 요구가 거의 받아들여졌다는 관점을 되씹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들의 기본자세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자세도 가다듬지 않고 회담에 나온 사실이 8월까지의 태도로 보아 다소 의외의 면이 없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들이 영향받기를 거부하는 국제관계의 변화,그리고 그결과 한국의 유엔가입 가능성의 증대 등이 그들로 하여금 「긴급의제」를 들고 나오게 한 이유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총리회담이 열리기 2일전에 소련의 외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였고 한소간의 연내 국교수립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동서독관계의 변화는 소련의 대서독정책의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도 소련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소련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울브리히트 동독공산당 당수를 해임시켰으며 작년의 동서독 결합의 과정을 위해 호네커 동독국가원수를 물러나게 하였다. 이와같이 양독은 70년대이래 소련정책의 변화에 맞추어 교류를 해왔기에 오늘의 통일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북한의 정치에 동독에서와 같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북한도 소련에 군사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면이 많기 때문에 그 영향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소련도 그들의 사회주의 동맹국을 불명예스럽게 팔아넘기는 일은 하기 싫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다면 우리가 북측의 명분을 어느 정도 만족시켜가면서 회담과 접촉을 시작하고 하나하나 축적해 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 그러나 시기를 놓치지 않고 명백히해야 할 것은 함으로써 그들의 변화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서울회담이 평양에서 성공이라고 생각케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이냐하는 문제도 있다. 우리가 분위기를 위해 조절하는 것을 그들이 그들의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것으로 오판케 해서는 안될 것이다. 유엔가입문제만하더라도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스스로 고칠 시간을 주자는 것이지 이로써 유엔가입을 저지할 수 있다고 오판케 해서는 안될 것이다. ○유화제스처 구분해야 주한미군만 하더라도 그것은 한미간의 문제이지 그들과 협의할 문제가 아닌 것임을 명백히해야 하지 않을까? 이와관련,미국측에서도 3자회담에 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니 이 문제도 명백히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회담­외교적인­이 그렇지만 특히 남북한관계는 분위기를 위한 유화적인 제스처와 기본입장의 변화를 혼돈해서는 안된다. 때로는 분위기가 다소 경색되는 일이 있더라도 북의 비현실적인 정책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백히해야 할 것이다.
  • 「경제연합」은 지구촌 현상이다/안충영 중앙대교수ㆍ경제학(서울시론)

    ◎서울 「총리회담」을 보고 민족분단 이후 45년만에 처음으로 대좌한 남북 총리의 환한 모습을 보면서 틴버겐교수의 「동서체제수렴론」과 런던대학의 모리시마교수의 「기술과 체제수렴론」을 다시 생각케 한다. 그들에 의하면 20세기를 통해 인간이 영위해 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가지 기본적 삶의 틀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기초로하는 공동체형 이익사회로 결국 수렴될 것이며 만약 이것에 실패한다면 인류는 자멸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논거로 모리시마교수는 오늘날 체제를 막론하고 전개되고 있는 통신과 수송수단의 발달,생산라인의 자동화,그리고 산업화에 따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지구촌 규모의 공해문제 등을 들었다. ○공동체형 사회로 수렴 오늘날 정보유통의 세계적 동시화 현상과 수송수단의 지속적 진보는 종래의 국가나 국경이라는 개념을 허물기 시작하고 있으며 체제를 막론하고 수개의 국가가 경제적으로 연합되는 현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EC의 92년 목표의 경제통합을 현재 목격하고 있으며 여기에 동구까지 포함된 「우랄」까지의 유럽공동의 집 구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 경제적 국경의 광역화 현상은 틀림없는 지구촌 현상이다. 한편 생산공장의 자동화 및 로봇화 현상은 기업의 개념을 자본주의위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다같이 바꾸어 가족단위 소규모 공장을 출현시키게 되며 생산의 잉여가 자본가와 근로자에게 배분되는 양식을 변모시키고 있음을 본다. 오늘날 일본과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보너스가 생산설비의 소유자와 근로자에게 동시에 지급되고 있는 현상에서 두 체제의 수렴현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한편 체제를 막론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생산활동은 에너지의 사용과 함께 공해를 배출하여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에 두 체제는 상호조율된 생산활동을 전개해야 되며 필요에 의한 국가간 상호의존은 깊어 갈 수 밖에 없다. ○분단 40년은 아이러니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체제를 초월하여 국가간 경제협력은 앞으로 필연적 과정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제 국가별 경제단위의 연합화 현상은 앞으로 계속 확대심화되어 노동력ㆍ원료ㆍ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이 회원국들 사이에 일어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공동의 선을 향한 지구촌의 지역적 경제연합은 자연스러운 역사의 추세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사회주의는 교조적 획일주의를 벗어 던지고 노동력을 포함한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는 다원주의로 지향케 되고 자본주의는 새로운 분배윤리를 모색케 되어 두 체제는 같은 모습으로 접근하게 된다. 모리시마교수는 체제수렴을 통한 상호의존의 지역적 경제통합은 아시아에서도 멀지 않아 일어날 것으로 예단하고 있다. 특히 극동의 유교문화권은 교육중시의 전통적 덕목을 지니고 있으며 가족중심의 사회적 기초단위는 새로운 기술진보 속에서 공동사회 건설에 서구보다도 훨씬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한반도에서 일어난 민족분단 40여년의 세월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피비린내나는 동족상잔의 적대감정만 역사의 뒤안길에 남북이 다같이 묻어 버린다면 우리는역사ㆍ문화ㆍ언어ㆍ풍습에서 민족공동체 형성에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가장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 체제수렴론의 차원에서 볼 때 남북한은 민족공동체의 자유사회로 통합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협력은 가장 실질적이고 가장 빨리 민족통합을 촉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남북 고위당국자의 공식대좌는 이제 상호실체를 인정한다는 것을 뜻하며 장기적으로 체제수렴의 긴 도정에 우리도 들어설 수 있음을 뜻한다. 중국의 개방화와 연해경제 특구건설에 따라 상당한 규모의 공해물질이 벌써 한반도로 몰려오고 있다. 남북한 중국의 공동대응이 당장 필요한 부문이다. 한반도의 영해오염을 예방하고 생태계를 보전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국토를 배달의 후손들에게 몰려줄 궁리를 남북은 당장 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의 쌍방 교역량이 연간 30억달러를 벌써 넘어섰다. 한소간의 교역도 불과 최근 몇년의 역사에 불과하지만 벌써 연간 10억달러 규모에 이르고 시베리아의 자원개발에 참여할 채비를 우리는 갖추고 있다. 사회주의의다른 종주국들과도 경제교류가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데 상호물자 교류가 허용된 88년 이래 남북 교역규모가 불과 3천만달러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제3국을 통한 간접교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세계인에 대한 배달민족의 자존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몇년전 남쪽에서 물난리가 났을때 북은 남쪽에 긴급 구호품 전달을 제의해 왔으며 남쪽은 이를 받아들였다. 남북이 전술전략의 차원이 아니라 진실로 동포애에서 출발하여 자연재해의 아픔을 같이 나누었다면 상호보완의 교역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경협은 통합의 촉진제 이번 남북 총리회담에서도 몇가지 합의점은 있으나 정치ㆍ군사ㆍ경제적 측면에서 남북한의 기본적 시각에는 아직도 현격한 차이가 있음이 발견된다. 간접적이나마 이미 시작된 남북간 경제교류는 반드시 증폭 가속화 되어야 한다. 민족경제공동체 형성의 과정에서 남북 쌍무거래가 흑자냐,적자냐는 따질 필요가 없다. 당장 직교역 확대→공동자원개발 및 기술교류→공동사회 간접자본개발→공동해외진출의경험을 쌓으면서 정치ㆍ군사적 문제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체제수렴론의 차원에서 볼때 남북이 역사의 순리에 따라 조국통일의 성업을 달성하려면 경제교류의 확대와 함께 체제의 내부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북은 개방화와 함께 다원주의의 정착을,남은 고도성장과 함께 새로운 분배윤리를 정립시켜 가야 한다. 지구촌의 개방시대,2000년의 문턱에 서서 남북은 세계사의 진운에 너무나 둔감했던 구한말의 역사적 과오를 또다시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냉전과 탈냉전의 격류속에서/이기탁 연세대교수(서울시론)

    ◎한반도·페만문제 중지 모을 때 한반도는 확실히 냉전과 탈냉전의 골사이에 놓여 있다. 중국의 천안문사태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환경에서 중국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 문제는 역시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환경에 적응할 능력이 모자라는 중국의 민도라는,서양정치 술어에는 없는 단어가 문득 떠올라서였다. 중국의 민도라는 수준과 한계를 절감한 것이다. 사실상 민도라는 단어는 특히 서양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정치술어에 속한다. ○새로운 질서 적응해야 한반도가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고비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특유한 두가지 문제를 보게 된다. 그 하나가 남북한관계며 또 하나가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으로 인한 석유문제라는 문제점이다. 전자는 냉전과 탈냉전에서의 냉전적인 문제이며 후자는 탈냉전이후의 우리 국가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될 탈냉전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 두가지 국제적인 우리의 시련에서 문제되는 것은 역시 저 천안문사태의 정치적인 민도라는 문제와 연상작용을 피할 수 없다. 확실히 냉전이 시작될 때 사회주의체제의 세계혁명적인 권력을 군사적으로 봉쇄해야 한다는 조지 캐넌의 전제를 결정했을 때의 목적은 사회주의체제의 대내체제가 「변질」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 문제되는 한반도문제의 기준은 전후 인민민주주의를 구축했던 북한사회의 대내체제가 과연 변질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유럽의 인민민주주의는 거의가 완벽하게 변했다. 서독이 동독을 편입통일하기로 한 10월3일 이후의 독일문제는 냉전의 문제가 아니라 「냉전이후」의 문제에 속하게 된다. 독일민족은 민도라는 각도에서 이를 잘 처리하고 있다. ○결국 석유문제가 본질 그러나 한반도문제를 냉전과 냉전이후라는 관점에서 비교해 볼 때 그 역이라고 보아진다. 우선 북한사회 자체가 변모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다는 점이며 더 나아가서 북한이 역으로 남한사회의 대내체제를 「변질」시키려 달려들고 있으며 우리가 이에 말려들고 있다는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북한의 대남제의에서 남한의 모든 체제적인 법을 고치라는 것이며 이를 옹호하는 한국내의 정치적 호응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문제점은 북한의 대내체제는 추호도 변하려는 징조가 없으며 북한의 체제적인 힘으로 역으로 남한의 대내체제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다. 또 남한의 많은 허점이 있다는 점에는 정치권마저 무관심하다. 정부는 자만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전문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는 북한은 동유럽 국가처럼 변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냉전이후적인 성격의 중동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점이다. 중동문제는 곧 우리 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석유문제가 그 본질이다. 이미 이 문제는 1981년 전두환­레이건 공동성명서에서 에너지자원에 대한 보장과 합의조항이 있었다. 고전적인 국제문제로서의 중동문제에서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동향을 우리는 냉전시의 과거보다 더욱 주시할 때라고 본다. 아마도 냉전이후의 문제로서 미소관계를 보면몰타 정상회담이후 처음으로 소련의 세계관 변화를 보여주는 일이 되며 미국이 비냉전적인 중동문제를 어떻게 다루어갈 것인가하는 중요한 문제점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이 중동문제를 다루어가는 비냉전적인 방식에 대한 일본의 반응도 흥미롭다. 일단 주춤했지만 일본은 중동에 법을 고쳐서라도 소해정을 파견할 문제를 토의하기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나 한국전쟁때 유엔군의 파견형식이었던 유엔에 의한 집단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냉전적인 문제에서 한미간의 동맹관계를 어떻게 형성시켜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리 정부는 그렇게 심각하게 한반도문제나 우리 남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중동문제라는 비냉전적인 문제를 다루어가는 과정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중동문제라기 보다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장차 한반도문제와도 깊이 관련할 수 있는 여러가지 중요한 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비냉전적인 상황과 새로운 문제의 전개에서 문제의 핵심은 우리의 에너지자원을 확보하는 데 어떤 세력과 협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게르만처럼 현명하게 우리는 지금 냉전적인 문제인 남북한관계의 개선이나 비냉전적인 문제인 중동문제라는 이중적인 문제를 안고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상황사이를 헤매고 있다. 아마도 해방이후 오늘처럼 높은 지혜와 특히 민족의 지혜를 집약한 정치적 지혜의 수준인 우리의 민도를 우리가 보다 높이 끌어올려야할 때는 없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의 총체적인 민도가 어느 수준인가 하는 것을 게르만민족처럼 발휘해야 할 때라고 보기 때문이다. 남북한관계가 지금처럼 좌절되고 현명하게 처리되지 못하고 새롭게 고전화하는 세계속에서 우리 이익을 현명하게 지킬 줄 알 때만이 좌절이 아닌 우리 민족의 민도를 인정받게되는 것이 아닐까. 또 이러한 민도의 수준의 한반도의 민족통합과정에도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닐까.
  • 중국까지 가서 과소비 해야하나(서울시론)

    ◎한약등 마구 매입… 외화낭비 한심 말하기가 창피할 만큼 참 많은 사람들이 중국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가야 한국에서 못 만나던 사람들을 만난다』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갑니다. 필자도 그중의 한사람이 되어 중국을 돌아본 연후 도무지 혼자 소화해 버릴 수 없는 어떤 위기같은 것을 느꼈기에,앞으로 계속 중국행 여행계획을 세울 사람들에게 당부해 드리고 싶어서 이 글을 몇번 쓰고자 합니다. 내가 상해로 가는 비행기를 타던 날 4백80명의 여객은 거의 전원이 한국인이었습니다. 비수교 국가요 사회주의 국가이며,저 한많은 6ㆍ25동란 때에는 중공군을 밀물처럼 투입시킴으로써 우리 조국의 40년 분단을 초래케 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우리가 왜 그렇게 정신없이 찾아가는 건지,이산의 슬픔속에서도 결코 가볼 수 없는 북한방문에의 그리움과 갈망을 중국여행이라는 것으로 대체해 보려는 감상적 보상심리같은 것이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정당화 해 보아도 우리가 뿌려놓는 막대한 여행비는 결코북한의 이산 가족에게 가는 것이 아니어서 슬픔과 분노를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더 우울했던 것은 강렬한 수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가진자가 갖지 못한 자에게 보이는 우쭐함과 으스댐 같은 것을 한국인 여행자들에게서 확인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쇼핑으로 뿌려지는 돈의 씀씀이가 마치 홍수진 한강물이 하류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연상시킬 만큼 엄청났습니다. 중국에서 내가 배우고 온 것은 중국에다 우리의 돈을 퍼부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쓰지 말고 아끼고 저축해서 어느날 북한을 방문할 때 돈을 홍수처럼 퍼부어 쓰자는 그 하나 뿐입니다. 중국은 그날이 오기 전에 선수를 쳐 개방을 내세우고 우리의 돈을 포크레인으로 미리 쓸어담고 있는 것입니다. 무섭고 걱정스럽습니다. 상해 공항에는 입국서류를 기입할 책상하나도 없었습니다. 공항 청사는 그나라의 경제수준을 말해준다는 차원에서 김포공항의 청결과 정돈을 가늠할 때 웽웽 소리를 내며 구차하게 돌아가는 상해 공항의 낡은 선풍기와 청사 천장의 더러운 얼룩이며 그을음들은 버틸 수 있는한 돈을 안 쓰고 외화를 벌어들이자는 정부시책을 잘 반영해주었습니다. 공항 화장실에는 오물이 가득하고 어디에도 휴지는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공항을 지키는 경찰관들의 가슴에 영어로 「폴리스」라 적혀 있으니 그들의 개방정책은 오직 외화를 벌어들임 그 하나임을 알만 합니다. 중국 여인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60이 넘은 그 여인은 35년전에 북경대학교 동방언어학과를 졸업한 사람인데 함경북도 사투리로 우리말을 했습니다. 가이드의 첫 말은 중국에서의 화폐 사용에 관한 주의사항과 쇼핑해도 좋을 물건들의 명세였습니다. 중국은 두가지의 화폐를 쓰고 있습니다. 백성이 쓰는 인민폐는 미화 1백달러에 중국돈 팔백원까지 암거래로 얻을 수 있으나 다시 미화로 바꾸지 못하는 돈이고 호텔이나 백화점에서 외국인에게 바꾸어주는 태환권은 미화 1백달러에 4백59원25전인데 밖에 나가면 인민폐와 동일하게 사용될 뿐만 아니라 태환권을 주고 쇼핑했을 경우 상인들은 인민폐로 거슬러 주기 때문에 결국은 외국인의 화폐유통에서 중국정부가 부당 이득을 취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을 떠날 때 돈이 남았을 경우 인민폐는 아무 것이나 구입해 써야 하고 또 태환권이라 하더라도 즉시 미화로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일단 홍콩 달러로 바꾸어 준 후 다시 홍콩에 가서야 미화를 얻게 되니 그 2중3중의 횡포는 더이상 언어로 설명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거리에서 가이드여인은 쇼핑 안내를 했습니다. 일행중에서 어느 분이 특산물이 무어냐고 묻자 가이드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웃었는데,정말 그렇다고 수긍할 만큼 12억의 사람들이 중국을 지키며 인해전술의 위력을 어느 때고 행사할 저력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여자의 쇼핑 가이드 좀 들어 보십시다. 『비단,공예미술품,그리고 약을 사세요. 편자환ㆍ우황청심환은 간장보호치료에 좋습니다. 여러분의 나라가 우리 중국보다 공업발전국가이기는 하지만 공업으로 인한 숱한 폐기물이 여러분의 간장을 해쳐 모두 병들어 있습니다』 이쯤 되고 보니 복사판에 물감칠만 몇군데 했을법한 조잡한 그림들과,어느 가정에서 침을 탁탁 뱉으며 나무뿌리들을 갈아 섞어서 둥글게 빚었을 청심환이나,성분이 무언지도 모르고 간장에 좋다고 선전하는 편자환이란 정체불명의 가짜 약품을 사기 위해 너무 많은 한국인이 너무 많은 외화를 퍼붓게 됩니다. 중국의 10개 대도시의 상점에 있는 그 유명한 약이라는 것들의 포장이나 설명문이나 가격들이 모두 틀렸으니 하나도 진짜는 없는 것입니다. 중국약 안사기 애국운동을 전개할 때입니다. 윤봉길의사의 숨결이 담긴 옛 홍구공원을 돌아본 후 우리는 상해 임시정부가 있던 마당로 306의 4호에 있는 집을 살피고 그 댁의 주인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집 주인도 여행객들이 주는 돈으로 치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그 집을 사서 옛 모습을 보존해야 할 시점에 우리는 와 있습니다. 옛날에 타국의 외교관이나 상인들이 쓰던 집들은 모두 압수되어 그 내부가 칸칸이 나누어져 방 한칸씩 인민들에게 배급되어 있는데 관광코스를 버스로 달리면서 들여다 보이는 단칸 방 방마다 마르고 더러운 몰골의 웃통 벗은 사람들이 처량한 표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상해 정장」이라고 이름지어 주었습니다. 손가락으로만 세게 때려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더러운 집들의 거리,포로수용소 같은 집단거주의 가난이 풍기는 거리,옛날의 풍요와 서구세계의 위세를 자랑하던 유럽식 가옥의 모습들이 칸칸이 쪼개져 배급된 슬럼가의 세계,그것이 상해입니다. 전세계가 모두 눈부신 발전들을 했는데 오직 세계의 한 귀퉁이 중국만이 발전을 멈추고 깊이 잠자다가 이제 기지개를 켜며 깨나는구나 하는 위기의식과 공포를 주는 곳,그곳에 우리가 돈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약 사지 않기,중국에서 돈 쓰지 말기를 결심할 때입니다.
  • 빛바랜 범아랍주의 깃발/박봉식 서울대교수(서울시론)

    ◎미·소의 공동대응으로 설 자리 잃어 미국과 소련이 국제분쟁을 맞아 공동행동을 취하기는 이번이 세번째인 것 같다. 1941년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을 때,1956년 수에즈운하 전쟁,그리고 이번의 대이라크 제재조치가 그것이다. 이번의 미소간의 협조는 유엔 안보리의 결정이란 형식에서 수에즈운하 전쟁때와 비슷하다. 1956년에는 미국이 전통적인 우방인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을 유엔 총회에서 침략자로 규정하여 이들을 배격하는 데 소련과 협력하였다. 중동에서 식민주의의 마지막 잔재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유엔 역사상 완벽 조치 이번에도 미국의 외교적 이니셔티브와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는 점에서는 비슷한 상황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번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는 수에즈운하 전쟁때와 달리 유엔 안보리의 전 이사국의 찬성으로 안보리의 결의로 제재조치가 결정되었다는 면에서 1950년 한국전쟁 때와 비슷한 점이 있다. 물론 한국전쟁 땐 소련이 불참했지만. 이렇게 보면 이번 유엔의 이라크에 대한 제재조치는 유엔 역사상 가장 완벽한 형식과 실질을 갖춘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소련이 군사적으로 얼마나 협력할는지는 불분명하나 1988년 12월7일 고르바초프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유엔의 평화유지기능의 강화를 강력히 촉구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소련은 오늘날 국내 사정으로 군사적으로 실질적 협조는 어려울 것이나 소련이 이라크와 그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실에서 본다면 유엔을 통해서이나 이라크제재에 소련이 처음부터 참여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라크 후세인대통령이 쿠웨이트 합병조치가 그의 메소포타미아제국 수립이 목적이었는지 경제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국제사회의 한 주권국가를 합병해 버리고도 무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형제국 내세우며 분란 그런데 후세인을 비롯하여 아랍사람들의 서로간의 관계개념은 보통 국제관계와 다른 데가 있다. 그들은 유독히 형제국가임을 강조하고 범아랍주의를 주장한다. 그래서 1958년엔 이집트와 시리아가 합하여 통일아랍공화국을 만들었다가 3년 만에 또 분리되고 말았다. 아랍은 하나이다라는 구호를 항상 내세우면서 그들간의 분쟁은 끊일 날이 없다. 이라크는 대산유국이면서 6백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으며 쿠웨이트에도 1백여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는데 이번 합병조치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합치면 세계석유생산의 4분의1을 차지하며 세계산업을 위한 85%의 석유가 이 지역에서 수출되기 때문에 세계석유시장의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 중동지역의 분쟁은 그 사이 강대국의 큰 관심표명없이 간간이 일어나고 있었다. 8년간 계속된 이라크­이란전쟁은 그 대표적인 것이었고 레바논에 대한 시리아의 침공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한 것은 그 지역 군주국들에게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으며 이미 군사대국이 된 이라크의 위협을 견딜 나라가 이 지역엔 없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마저 미국의도움없이는 그 안전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쿠웨이트는 70만명의 인구인데 연간 소득이 1백40억달러로서 1인당 2만3천달러이다. 합병직후 1인당 1천여달러의 소득밖에 안되는 요르단은 쿠웨이트에 대해 불평하면서 요르단 사람에 대한 차별대우를 비판하였는데 합병당한 것은 같은 알라신의 자손으로서 혼자 번영을 누린 데 대한 질투심의 작용도 큰 것 같다. 걸프연안국들은 공통적으로 근대국가의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인구의 반 또는 3분의2가 외국인이고 같은 아랍족인 경우라도 국민으로서 동화시키는 일이 없다. 항상 전근대적인 왕족간의 거래와 세력다툼이 벌어지며 국민의식이나 국가의식이 약한 곳이다. 따라서 외부 강대국의 보호없이는 이라크의 공화주의적 아랍내셔널리즘은 이곳 민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1961년에 이라크가 처음 쿠웨이트를 장악하려 했을 때 군대는 7만5천명 뿐이었으며 화학무기도 갖지 않았다. 지금은 아랍의 어느 나라도 여기에 대적할 나라가 없다. 시리아와 이집트가 합쳐도 이라크를 당할 수 없다. 이란과의 전쟁에서 잘 단련된 군사대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호없이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의 공격앞에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아랍왕족들은 알라신이 내려준 석유 득으로 일하지 않고도 잘 사는 생활을 해왔다. 이것이 석유가 없는 아랍국들의 반감을 사왔다. 이제 석유의 현상보존과 지역적 현상유지를 위해 강대국들은 유엔의 이름으로 아랍의 왕족들의 보호에 나선 셈이다. 설혹 이라크의 침공을 물리친다 하더라도 쿠웨이트는 물론 걸프연안의 제후들은 정치적 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열강의 압력 못 견딜 것 그런데 후세인이 쿠웨이트에서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다. 강대국들은 후세인의 영웅주의에 의한 남의 영토합병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태도이다.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의 경험으로 본다면 최강국이 아닌 나라에 의한 영토변경은 최강국들이 이를 허용하려 하지 않았다. 걸프연안지역에 민족 또는 국가개념이 확실치 않아 이라크에 의한 아랍내셔널리즘의 성공가능성은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이라크에 의한 석유의 지배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는 열강들의 압력을 이라크가 배겨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미소가 같이나서는 일이라 이라크가 다른 활로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 「이념의벽」도 초월하는 한핏줄/김대환이대교수·사회사상사(서울시론)

    ◎조선학 국제학술토론회를 다녀와서 실로 40여년 만에 남북한 학자가 4박5일동안 한자리에 회동한 역사적인 학술모임이었다. 이번 토론회는 그동안 단절을 깨고 서로 만났다는 데에만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금 물어가고 있는 화합과 통일을 위해 학문적인 기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가능성의 타진과 그 실천의 방책을 모색하는 전향적인 의미도 분명히 있었다. 재미·캐나다 교포 학자를 비롯하여 일본 영국 소련 중국 동독 등 15개국에서 온 전문학자와 함께 한국측에서는 1백53명의 교수와 그외의 전문가등 2백여명이,11명의 북한대표 그리고 3백여명의 재일민단·조총련계학자 등 1천2백여명이 대판국제교류센터에 모여 성대하게 그리고 엄숙하게 치른 지난 3일날의 개회식은 세계인과 더불어 당사국인 남북한 모두의 통일에의 열망과 열기가 충만한 그대로이었다. ○학문적 기여방법 모색 오정달실행위원장의 『남북의 학자가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한 데 큰 기쁨을 갖는다』는 개회사와 함께 김철명 조선사회과학자협회 제1부위원장은 『종교·사상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 솔직하게 토론하고 대화합시다』라는 인사말이 있었다. 그에 이어 한국측을 대표하여 본인은 『민족·이데올로기의 갈등문제를 극복하고 남북의 학자들이 공동연구를 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하고 그러기 위해 『서울에 오십시오. 우리도 평양에 가겠습니다』라고 인사말을 맺으면서 북한측의 김단장앞으로 걸어가 악수를 청했을 때 장내에는 그야말로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가득 찼다. 그렇듯 남북한의 화합과 통일은 우리들 당사자 뿐 아니라 세계인 모두의 공동의 관심사의 한 초점이 되고 있음이 현실이다. 우리들 한국측의 학자들은 문자그대로 자유주의·개인주의사회에서 생활해 온 그대로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을 전제로 학술토론회에 임하는 행동거지로 일관하였다. 이는 동대회에 참가하는 11개 분과위원회의 간사교수들의 합의사항이었지만 북한측의 대표들은 그야말로 일사불란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가 굳었던 장벽도 무너지듯 웃음 띤 얼굴로 이야기가 오가는 분위기 속에서「민족의 동질성」을 체감케 하는 듯했다. 학문의 순수성·중립성을 표방하면서 이번 학술회의를 탈정치화해야 한다고 우리측은 표방하고 나섰지만 이에대해 마치 남북한 학자들이 모두가 묵시적인 사전 합의라도 하고 나선 듯 뜻과 행동을 함께 하였다. 본대회는 남의 땅 일본에서의 개최였다. 남의 나라인지라 남북한 대표들이 각자 손이 안으로 굽는다는 식으로 자기 체제옹호에 급급하거나 감정에 치받쳐 싸움판이라도 벌인다면 이는 우리 민족 스스로의 자존심을 손상시키게 되리라는 염려에서도 비롯됐겠지만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끝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그 점은 이번에 참가한 남북한의 학자들을 비롯하여 1천2백명의 전문가들의 큰 학문적인 책임성의 발로이었다 할 수 잇다. 초점은 역시 남북한의 체제에 관한 학술토론이었지만 그것을 다루는 정치경제학 분과뿐 아니라 법학·종교·언어·사회·교육 그리고 심지어는 의학·과학분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발표되었으며 각 분과마다 자리가 메워지는 성황이었다. ○탈정치화 묵시적 합의 그러나 약간 욕심같은 말이 될지 모르지만 수준은 조금 미급한 듯했고,발표자의 논문준비도 충분치 못한 면이 있어 한국학의 학술토론회라기 보다는 학술올림피아와 같은 인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기회는 어디까지나 시발이고 과정이지 종착은 아니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발전을 기약함이 마땅타 생각되어졌다. 토론에서 시작하여 토론으로 끝을 맺자는 우리측의 주장에 북한측도 동의한 듯 「조선학」국제학회결성 문제는 후일의 과제로 미룬 속에 해외학자들만이 모인 고려학회 창설로 끝을 맺었다. 그리하여 그 회장으로 북경대학·조선학연구소의 최응구소장(조선족)이 피선되었다. 남북한이 다같이 불참속에 회결성및 회장 선출과정에서 갑론을박이 있긴 했지만 그러나 미국·캐나다·소련쪽에서 온 학자들이 회의진행과 표대결에서 깨끗이 승복하는 자세는 역시 학자다움을 보여주어 뒷맛이 개운했었다. 끝으로 다음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비록 우리가 40여년의 단절과 외면속에서 사는동안 각기 틀리는 체제·이념·사고·생활을 해왔었지만 함께 만나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술잔을 나누다보니 그것이 공식적인 행사이긴 했지만 우리 민족의 본질에 있어서는 크게 변한 것이 없고 뿌리와 바탕은 같구나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피는 이데올로기보다 진하다고나 할까? 둘째는 우리는 곧잘 개성과 권리와 다양성을 들어 우리 사회의 특징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것은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결정에 대한 자발적인 협력과 자기책임을 다하는 도덕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유주의·개인주의는 곧 무정부주의가 되고 말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에 참가한 교수들의 언행은 훌륭한 시범을 보여주게 되었다. ○남북체제 토론이 중심 어쨌든 많은 것을 발견하고 배우고 느끼고 온 학술토론회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사상과 이데올로기와는 관계없이 북한측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면에서 성실과 진지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우리체제 우리들 자신에게 소중한 교훈이 되리라 믿는다. 폐막식은 민족의 감정이 폭발한 그것이었다. 모두가 거나하게 술에 취한 듯 흘러나오는 꽹과리·북·장구소리에 맞추어 남북의 노래,통일의 노래가 울려퍼졌고 북한대표들도 그동안 약간은 굳었던 얼굴들이 활짝 편 듯했다. 특히 마지막 그 누가 부른 「두만강」의 노래는 한 순간 장내를 숙연하게까지 하면서 꿈과 가능성을 간직한 대회의 막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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