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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국아, 너 믿고 감독직 수락했어”

    “동국아, 너 믿고 감독직 수락했어”

    최강희(왼쪽) 축구대표팀 감독과 ‘비운의 라이언 킹’ 이동국(오른쪽·33·전북)이 한배를 탄다. 전날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이례적인 합동 기자간담회를 가졌던 최 감독은 4일 전화 통화에서 “이동국은 (대표팀에) 당연히 뽑는다. 그 아저씨 안 뽑으면 누굴 뽑나.”라고 되물으며 웃었다. “동국이 믿고 감독 한다고 한건데.”라고도 했다. 지난달 22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은 현 상황에서 첫째로 뽑아야 할 스트라이커”라고 했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애제자’에게도 이미 언질을 줬다고 했다. 최 감독은 지난달 30일 이동국과 만나 “내가 대표팀 감독을 수락한 건 너 때문에 한 거다. 네가 해결해라.”고 말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영광보다 시련이 많았던 이동국은 잔뜩 부담을 느끼는 눈치였다고. 그러나 최 감독은 “나하고 재미있게 하면 되지, 부담을 왜 갖느냐. 충분히 잘할 것”이라고 힘을 실어줬다. 그의 이동국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지난해 이동국을 불러 백업 멤버로 굴욕(?)을 안긴 조광래 전 감독에게 “동국이가 20살 신예도 아니고 땜빵용으로 쓸 거면 부르지 말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최 감독은 성남에서 퇴물 취급을 받던 이동국을 전북으로 불러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발 빠르고 힘 좋은 측면 자원들을 배치해 부담을 줄여줬고, 경기마다 풀타임을 뛰게 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이동국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부상을 당했을 때도 한결같았다. 이동국은 2009년 득점왕, 지난해 도움왕으로 보답했다. 전북의 트레이드 마크인 ‘닥공’(닥치고 공격)의 중심도 이동국이었다. 최 감독과 이동국은 3년간 호흡을 맞추며 두 번의 통합우승(2009·2011년)을 합작했다. 최 감독이 이동국을 대표팀 멤버로 점찍은 건 당연했다. 김상식(36·전북)도 다음 달 29일 쿠웨이트와의 월드컵 3차 예선 마지막 경기의 ‘해결사’로 뜬다. 최 감독은 “기본적으로 기성용-김정우인데 부상이나 변수가 있을 수 있으니까. 우리 식사마(김상식)를 원포인트로 부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동국·김상식 외에 ‘닥공 신화’를 함께 한 전북맨 2~3명을 더 발탁할 예정. 3일 신년간담회에서 밝혔듯 쿠웨이트전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어서 자신의 전술을 잘 아는 선수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다. ‘봉동 이장’에서 하루 아침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어차피 영웅 아니면 역적인데, 소신껏 해야죠.”라고 ‘쿨하게’ 말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김신재 출연 ‘한국농촌생활’ 발굴

    김신재 출연 ‘한국농촌생활’ 발굴

    식민지시대 스타 여배우 김신재(1919~1998)가 출연한 ‘한국농촌생활’(Korean Farm Life) 등 해방 전후의 희귀 영상자료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확인됐다. 냉전기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선전전략과 영화적 반영을 연구해 온 김한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는 최근 한국미국사학회의 미국사연구 제34집에 실린 ‘1945~48년 주한미군정 및 주한미군사령부의 영화선전’을 통해 이 사실을 밝혔다.  김신재는 최인규 감독과 결혼한 뒤 남편의 권유로 ‘심청전’(1937)에 출연하면서 18세의 나이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단성사에서 개봉한 ‘심청전’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도생록’, ‘애련송’ 등에서 거푸 주연을 맡는 등 당대의 톱스타로 군림했다. 큰 눈동자와 덧니가 보이는 웃음 등 앳되고 청초한 이미지로 ‘만년소녀’란 별칭도 얻었다. 한국전쟁 때 남편이 납북되고, 자식을 잃는 시련을 겪었지만 ‘낙조’(1978), ‘장마’(197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 등 만년에도 연기를 계속했다.  이번에 발굴된 ‘한국농촌생활’은 NARA가 소장한 작품 중 단독정부 수립 이후 미 공보원이 제작한 단 한 편의 문화영화로 추정된다. 1948년 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교포 2세인 이한근 미군 중위가 연출을 맡았다. 16㎜ 컬러 필름으로 촬영·제작한 다큐멘터리로, 하와이 교민 사회에 모국을 소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동안 해방기와 한국전쟁, 전후 재건기 한국영화사에서 미국의 영향은 중요하게 평가됐다. 특히 주한미군정과 주한미국공보원은 영화 제작과 배급에도 큰 역할을 했다. 다만 국내에 자료가 없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저자는 2010년 6~7월의 NARA의 현장조사를 통해 ‘한국농촌생활’ 외에도 1946년 미군정이 제작한 뉴스영화 ‘시보’(Korean Newsreel) 시리즈 제1편, 1948년 5월 총선거를 앞두고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원이 수입 상영한 ‘국도’(Nation’s Capitol), ‘11월의 화요일’(Tuesday in November) 등의 실체를 확인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신년사설] 격동의 임진년 대한민국 새 좌표를 세우자

    2012년 임진년 새 아침이 밝았다. 해가 바뀌면 으레 하는 다짐이지만 올해는 더욱 각별하다. 나라 안팎으로 격동의 해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들어선 김정은 3대 세습체제는 앞날을 가늠하기 힘들다. 우리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라는 국가 대사를 앞두고 있다. 미국·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강국들 또한 권력 교체기를 맞았다.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남북관계를 재정립하고 양대 선거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한 해다. 그러나 날로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와 세대 갈등은 여전히 분열과 갈등의 골을 깊게 하고 있다. 유럽발 경제위기는 끝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만만찮은 도전과 시련의 시기를 우리는 하나가 되어 넘어서야 한다. 다 함께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소통과 화합, 변화와 혁신의 좌표를 새로 세우는 한 해로 삼아야 한다. 올해 대한민국호(號)가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적 격랑을 잘 헤쳐 나가려면 온 국민의 역량을 한데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립한 140여개 신생국 중 민주화·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무이한 나라다. 평화적 정권교체와 언론자유, 그리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 무역 규모 1조 달러 달성 등이 그 징표다. 정보화와 K팝 열풍에서 보듯 일부 문화지표에선 선진국을 앞선 단계다. 그러나 개발독재와 권위주의의 그늘 속에 십수년째 선진국의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더구나 지역 및 계층 간 갈등에다 이 정부 들어 세대 간 갈등까지 더해져 우리 사회는 ‘분노의 도가니’로 변한 느낌이다. 그것도 모자라 온·오프라인에서 진보와 보수가 사사건건 편을 갈라 삿대질하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 무상급식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등을 놓고 벌인 여야의 타협 없는 드잡이는 목불인견이었다. 이제 국력과 국격 신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정치권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청와대는 국민이 공감하는 정책과 소통 역량을 키워 임기 말을 잘 관리해야 한다. 여야도 ‘안철수 바람’을 교훈 삼아 당리당략에 함몰되지 말고 대화와 절충으로 ‘숙의 민주주의’를 꽃피움으로써 정당정치의 유용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시대는 사분오열된 우리 사회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양대 선거는 그런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는 인물을 뽑는, 축제의 장이 돼야 할 것이다. 여야의 무한 정쟁 대신,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대한민국을 선진복지국가로 업그레이드하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자신감을 갖고 남북대화와 교류를 새롭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국민적 컨센서스를 모아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고 북한 체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는 데도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인권 신장 등 모든 면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면서 신장된 국력에 걸맞게 공적개발원조(ODA)를 늘리는 등 국제사회 기여도도 높여 나가야 한다. 그래야 국제 무대에서 우리의 발언권도 커져, 6자회담 등을 통해 북한의 핵 폐기에 소극적인 중국에 대해서도 국제 사회의 보편적 기준을 지키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우리 경제는 낙관론보다 비관론이 우세하다. 설비투자의 격감 속에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는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3.7%로 떨어졌다. 취업자 증가 폭은 지난해 40만명에서 올해에는 28만명으로, 수출 증가율은 19.2%에서 7.4%로 주저앉을 것이라고 한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가계의 소비여력이 바닥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자칫 기업의 투자 위축-소득 감소-소비 위축-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반기 중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 재정위기, 20여년 만의 양대 선거, 북한 리스크 등 ‘3중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한다. 지난해부터 세계 경제를 불확실성 시대로 몰고 가고 있는 유럽 재정위기의 경우 2~4월 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 채권 8300억 달러 중 3300억 달러가 만기 도래한다. 유로존 채권국들이 유럽중앙은행(ECB)을 통한 국채 매입으로 금리를 통제하지 못하면 재정위기 심화, 실업률 급등, 성장률 둔화 등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들 수 있다. 양대 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이 ‘표(票)퓰리즘’ 경쟁에 나서게 되면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은 고사하고 우리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재정건전성이 돌이키기 힘든 손상을 입을 수 있다. 김정은 3대 세습체제 정착 과정에서 불안이 야기되면 한반도 리스크 증가로 금융 불안과 외국인 자본 이탈 등에 직면할 수 있다. 여기에 대처하려면 체력을 비축하는 길밖에 없다. 무엇보다 엄격한 재정 규율을 통해 나라 곳간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추경 편성과 복지 확충 등 정치권의 과도한 요구에 대해서는 ‘결사 항전’의 자세로 맞서야 한다. 위기가 집중되는 상반기에 지출 비중을 늘리는 등 탄력적인 재정 운용도 필요하다.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서민들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정책적 배려에도 결코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갈등 조정 기능이 미약하고 남에 대한 배려 등 공동체 정신이 자리를 잡지 못한 것도 올해는 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사회 안전판이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양극화가 심화돼 사회 통합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에 현재 가장 필요한 정책은 사회 통합이라고 지적한 것은 뼈아픈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 청소년들의 더불어 사는 능력이 최하위라는 조사도 절망감을 안겨 준다. 소통하기 위해서는 나만이 옳다는 독선적, 편향적 자세에서 벗어나 남의 권리와 주장도 수용하는 경청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공생하는 문화가 확립되지 않으면 소외와 단절의 골은 메워질 수 없다. 정부의 갈등 조정 및 중재 기능도 확립해야 한다. 소통을 통한 주민의견 수렴, 이에 바탕을 둔 정책 등으로 정부가 공정한 조정자·중재자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확실히 심어 주어야 한다. 특히 양대 선거를 틈탄 이익단체들의 ‘떼법’은 법과 원칙으로 엄정하게 다스려야 한다. 가정과 학교는 미래를 짊어질 신세대들이 ‘성공’이라는 단선적 가치에만 매몰되지 않고, 약자를 보듬고 살아가는 공동체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교육은 사회적 신분 상승의 통로다. 능력과 열정이 있는 학생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대학에 못 다니는 일이 없도록 등록금 실질 인하 등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권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지난해 확산된 고졸채용 정책을 착근시키고, 학력 간 임금격차를 해소해 묻지마 식 대학 진학에 따른 학력 낭비도 진정시켜야 한다. 대한민국호가 격랑을 헤치고 다 함께 행복한 나라를 향해 순항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2011년 한국 스포츠계 화제의 순간 BEST10

    2011년 한국 스포츠계 화제의 순간 BEST10

    2011년 우리나라 스포츠계에는 유난히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았다. 2전 3기 만에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라는 쾌거를 이뤄 냈고 대구에서는 전 세계 육상인들의 큰 잔치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치렀다. 미국프로여자골프(LPGA) 투어에서 한국계 선수들의 통산 100승을 일구는가 하면 프로야구 삼성이 한국시리즈에 이어 아시아시리즈까지 제패하면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봄부터 프로축구는 승부 조작 파문으로 전·현직 선수들이 무더기로 기소되는 최악의 시련을 맞았다. 큰 별들도 많이 졌다. 프로야구 레전드 장효조·최동원이 일주일 간격으로 별세했는가 하면 지난 10월에는 세계적인 산악인 박영석 대장이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다 실종되기도 했다. 서울신문 체육부는 올 한 해 화제를 모은 결정적 순간 10개를 정리해 봤다. 김민희기자·체육부 종합 haru@seoul.co.kr
  • [2011 키워드로 본 인물] 올해 사라진 국내 인물들

    ‘산 사나이’ 박영석 / 히말라야 꿈에 영원히 잠들다 ‘산 사나이’ 박영석 대장이 히말라야에 영원히 묻혔다. 안나푸르나(8091m)를 등반하던 박 대장은 지난 10월 18일 베이스캠프와 연락이 끊겼다. 열흘간 끈질긴 수색작업을 펼쳤지만 끝내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 안나푸르나 남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려던 꿈도 함께 묻혔다. 고(故) 박 대장은 세계 최단기간에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완등했고,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와 남극점·북극점을 탐사하는 ‘탐험 그랜드슬램’도 세계 최초로 이뤘다. ‘철강왕’ 박태준 /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지난 13일 타계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철의 사나이’, ‘철강왕’ 등으로 통한다.철강불모지에 사상 처음으로 일관제철소를 건설, 철강왕국의 입지를 다졌기 때문. 대일차관으로 제철소를 짓는 만큼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右向右)해 포항 앞바다에 빠져 죽자는 박 명예회장의 ‘우향우 정신’은 포스코 창업 정신의 밑거름이 됐다. 단 1주의 포스코 주식도 보유하지 않았고, 2000년에는 40년간 살던 서울 아현동 집도 사회에 환원했다. 고인의 좌우명은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였다. 불세출 투수 최동원 / 암과의 사투에 무릎 꿇다 그가 던졌던 불 같은 강속구는 그의 인생과 닮았다. 7전4승제 한국시리즈에서 전무후무한 4승을 거두며 1984년 프로야구 롯데의 우승을 일궈 낸 날카로운 추억. 지난 9월 14일 대장암으로 별세한 고(故) 최동원.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매년 200이닝 이상 던지며 10승 이상씩 거둔 고인은 1988년 선수협의회 결성을 시도하다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는 시련을 겪었다. 32살에 은퇴했지만 꿈은 지도자로 마운드에 서는 것이었다. 한화 2군 감독으로 꿈을 이뤘던 2007년 암 선고를 받았고, 생애 마지막 승부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노동운동 대모’ 이소선 / 마지막까지 한진重 농성 격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의 대모’인 이소선 여사가 지난 9월 3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 여사는 죽은 아들의 뜻을 이어 남은 삶을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하면서 민주화의 싹을 틔웠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옥살이를 하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번도 뜻을 꺾지 않았다. 이 여사는 마지막으로 병상에 누워서도 한진중공업 고공 크레인에서 농성 중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격려하기도 했다.
  • 멀어지는 한나라… MB ‘마지막 1년’ 국정 고심

    멀어지는 한나라… MB ‘마지막 1년’ 국정 고심

    안팎의 난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이명박(얼굴) 대통령이 새해 벽두부터 시련의 시간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국내 정국 상황이 심상치 않다. ‘쇄신’을 외치고 있는 한나라당의 ‘탈(脫)MB’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구성한 비대위 일부 인사들은 이상득·이재오 의원 등 현 정권 ‘실세’의 용퇴를 요구하며 청와대와 드러나게 각을 세우고 있다. ●“어떤주장 나와도 지켜볼 수밖에” 29일 박 위원장이 직접 ‘수위 조절’에 나서긴 했지만, 이는 한나라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와는 확실하게 등을 돌리고 다른 길을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과의 정책 차별화를 주장하던 지금까지의 요구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당 일각의 목소리도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임기 5년 차를 맞는 이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상황이지만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고민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청와대가 섣불리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냐.”면서 “당내에서 어떤 주의·주장이 나오더라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다른 관계자도 “당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당에 처음 들어온 만큼 그 정도 얘기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도 “다만 정제된 요구가 아닌 것에 대해 청와대가 굳이 대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잠시 ‘휴지기’를 가졌던 대통령 친인척·측근 비리, 디도스(분산서비스거부) 사건 등이 김 위원장 영결식이 끝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청와대로서는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잘못한 것이 있다면 원칙적으로 털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오고는 있다. 하지만 이미 레임덕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칙론’만 고집하다가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대북정책 등 외교력도 시험대 대외적으로는 이 대통령의 외교력도 시험대에 올라 있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불안해진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할 책임도 이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다. 북한이 ‘유훈통치’를 내세우며 ‘김정은 체제’를 공식 선언했지만 북한 정세는 여전히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내년 1월 1일 신년공동사설 내용에 달렸지만 우리 정부가 유연한 대북정책으로 기조를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한편 이 대통령은 2012년 임진년(壬辰年) 신년화두를 ‘임사이구’(臨事而懼)로 정했다. ‘어려운 시기, 큰 일에 임하여 엄중한 마음으로 신중하고 치밀하게 지혜를 모아 일을 잘 성사시킨다.’는 뜻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내 이름은 ‘빅토르 안’

    내 이름은 ‘빅토르 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겠다.”고도 했다. 이제는 러시아인 ‘빅토르 안’으로 새 삶을 살게 된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26) 얘기다. 안현수가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러시아빙상연맹은 28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26일자로 올림픽 3관왕 안현수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안현수는 이중국적을 금지하는 국내 법률에 따라 한국 국적을 자동으로 상실한다. 내년 1월 러시아 여권도 받는다. 안현수는 “국적 취득과정이 끝나 마음이 편하다. 앞으로 운동에만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빅토르 최처럼 유명한 사람 되고파” 이제 안현수 대신 빅토르 안이다. 승리를 뜻하는 영어단어 빅토리(victory)와 발음이 비슷하고, 고려인 가수 ‘빅토르 최’처럼 러시아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당장 러시아 대표로 국제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다. 이미 러시아 대표 활동에 필요한 서류를 국제빙상연맹(ISU)에 접수한 상태. 1월 유럽 챔피언전(27~29일·체코)이 빅토르 안의 데뷔무대가 될 전망이다. 사실 안현수가 러시아로 떠날 때부터 귀화는 예견됐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으로 전성기를 누린 안현수는 이후 한국체대-비 한체대로 갈라진 파벌 논란의 중심에서 홍역을 치렀고, 부상과 소속팀 해체 등 잇단 시련을 겪어왔다. 재기를 노리던 지난 4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5위에 그쳐 태극마크를 다는 데 실패했다.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꿈이 무너질 위기인 것. 안현수는 개인 미니홈피를 통해 러시아 귀화의사를 밝혔고, 7월 29일에는 매달 받던 월 100만원의 연금을 일시불(4800만원)로 챙기며 한국과 ‘인연끊기’를 행동에 옮겼다. ●내달 유럽챔프전, 러 대표로 출격할 듯 막상 귀화가 확정되자 빙상계는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대한빙상연맹은 “본인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안현수는 ‘레전드’지만,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한 선수에게 특혜를 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성시백(24·용인시청)도 “진짜 (귀화를) 할 줄은 몰랐다. 잘됐으면 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워낙 친한 형이지만 국제대회에서는 러시아 대표로 나오는 거니까 경쟁자다. 아무래도 형보다는 한국팀을 응원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 박세우(39) 감독은 “상대로 만나는 건 당연히 부담스럽다. 경계대상 1호다. 세계정상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北 식량위기 심할수록 쿠데타 어렵다”

    ‘전쟁과 평화’(김영사 펴냄)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누구나 궁금한 북한의 미래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2009년 출간됐지만 김 위원장의 죽음으로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저자인 장성민씨는 김대중 정권 때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과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고 16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북핵과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강연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평양의 봄’과 같은 쿠데타가 북한에서 발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에서 아들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반동의 질서가 북한 내에 50%는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12%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가 없어 반정부 세력의 결집 기반 자체가 제로 상태인 셈이다. 반동질서의 리더, 즉 반체제 인사도 없다. 북한은 반체제 인사를 색출하고자 노동당, 정치보위부, 군을 총동원해 일반 주민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에서 반정이나 쿠데타를 시도하여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낮고 실패할 확률이 가장 높은 지구상의 두 나라가 있다면 미국과 북한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북한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봐야 성공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형적으로 쿠데타군의 평양 점령과 유지가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평양 중심부인 중구역과 모란봉 구역은 사실상 대동강에 둘러싸인 호리병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쿠데타군의 전차 등 대규모 병력이 평양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은 칠성문 승리거리뿐이다. 이 길목에는 호위사령부가 버티고 있다. 따라서 평양의 지형적 특성은 진압군 측의 방어에 매우 유리할 뿐 아니라 설사 쿠데타가 성공할지라도 평양 포위작전을 구사하면 쉽게 진압할 수 있다. 저자는 북한의 식량 위기가 국가 붕괴의 원인으로는 작용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 때문에 나라가 붕괴한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굶주림으로 움직일 힘조차도 없는 주민들이 무기로 무장한 국가를 상대로 저항한다는 것은 곧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필리핀이나 남미처럼 게릴라 반군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려면 최소한 장기적인 반군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식량과 석유가 비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김정은은 나이는 20대이지만 고혈압과 당뇨가 심하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해서도 치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장성택은 두 번에 걸친 정치적 시련에도 다시 복귀했고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을 후계자로 옹립하려 한 바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김정일-김정은 세습 구도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며 3~4년 김정은의 대리통치자 역할을 한 뒤 개혁개방의 설계자로 나설 것이란 게 저자의 예견이다. 2009년에 나온 만큼 김정은을 김정운으로 표기하는 등 오류가 있으나 곧 재판(再版)이 나올 예정이다. 저자는 “김일성 향수를 등에 업고 김정은이 등장한 지금, 북한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에서 미성숙한 지도력을 두게 된 최악의 형국”이라며 “현미경과 망원경을 함께 보는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북한을 직시하지 않으면 미래의 통일도 잃고 전쟁의 파편이 튈 수 있는 불안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만 8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쿠테타 실패 확률 가장 낮은 지구상 두 나라는…

    쿠테타 실패 확률 가장 낮은 지구상 두 나라는…

     ‘전쟁과 평화’(김영사 펴냄)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누구나 궁금한 북한의 미래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2009년 출간됐지만 김 위원장의 죽음으로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저자인 장성민씨는 김대중 정권 때 대통령 비서실 정무비서관과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고 16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북핵과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강연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평양의 봄’과 같은 쿠데타가 북한에서 발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에서 아들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반동의 질서가 북한 내에 50%는 형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12%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가 없어 반정부 세력의 결집 기반 자체가 제로 상태인 셈이다.  반동질서의 리더, 즉 반체제 인사도 없다. 북한은 반체제 인사를 색출하고자 노동당, 정치보위부, 군을 총동원해 일반 주민들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에서 반정이나 쿠데타를 시도하여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낮고 실패할 확률이 가장 높은 지구 상의 두 나라가 있다면 미국과 북한일 것”이라고 단언한다.  북한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봐야 성공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형적으로 쿠데타군의 평양 점령과 유지가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평양 중심부인 중구역과 모란봉 구역은 사실상 대동강에 둘러싸인 호리병 형태를 띠고 있다.  따라서 쿠데타군의 전차 등 대규모 병력이 평양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은 칠성문 승리거리뿐이다. 이 길목에는 호위사령부가 버티고 있다. 따라서 평양의 지형적 특성은 진압군 측의 방어에 매우 유리할 뿐 아니라 설사 쿠데타가 성공할지라도 평양 포위작전을 구사하면 쉽게 진압할 수 있다.  저자는 북한의 식량 위기가 국가 붕괴의 원인으로는 작용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적으로 식량 위기 때문에 나라가 붕괴한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굶주림으로 움직일 힘조차도 없는 주민들이 무기로 무장한 국가를 상대로 저항한다는 것은 곧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필리핀이나 남미처럼 게릴라 반군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려면 최소한 장기적인 반군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식량과 석유 비축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김정은은 나이는 20대이지만 고혈압과 당뇨가 심하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대해서도 치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장성택은 두 번에 걸친 정치적 시련에도 다시 복귀했고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을 후계자로 옹립하려 한 바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김정일-김정은 세습 구도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며 3~4년 김정은의 대리통치자 역할을 한 뒤 개혁개방의 설계자로 나설 것이란 게 저자의 예견이다.  2009년에 나온 만큼 김정은을 김정운으로 표기하는 등 오류가 있으나 곧 재판(再版)이 나올 예정이다. 저자는 “김일성 향수를 등에 업고 김정은이 등장한 지금, 북한은 역사상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에서 미성숙한 지도력을 두게 된 최악의 형국”이라며 “현미경과 망원경을 함께 보는 것처럼 눈 크게 뜨고 북한을 직시하지 않으면 미래의 통일도 잃고 전쟁의 파편이 튈 수 있는 불안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만 8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聖人 17명, 내 삶의 멘토가 되다

    가톨릭 교회에서 모범적이고 영적인 삶을 살았거나 순교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다면 최고의 명예로 여겨진다. 교황청에 명부가 없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가톨릭 성인은 대략 1만∼2만명 선으로 추산된다. 지금도 천주교 성당에선 어김없이 수호자 격으로 주보 성인을 정해 모시고 있고 그 성인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많은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로 자리매김되곤 한다. 그러면 천주교 성인은 일반인이 도통 범접할 수 없는, 그저 초월과 외경의 대상인 것일까. 일반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가톨릭 교회에서는 1000년간 공식적으로 성인을 인정하는 시성식을 갖지 않았다. 993년 교황 요한 15세가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주교회의 도중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울리히 주교를 성인으로 선언한 게 최초의 공식적인 시성식으로 통한다. 그러다가 1512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시복식과 시성식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하느님의 종’, ‘가경자’, ‘복자’, ‘성인’을 인정하는 절차와 규정을 법제화한 것은 1750년대 교황 베네딕토 14세 때에 이르러서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베드로, 바오로 같은 사도와 제자, 그리고 암브로시오며 아우구스티노와 같은 위대한 학자·교부들은 여전히 우뚝한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러면 그 성인들은 과연 누구일까. 미국 예수회 사제인 제임스 마틴의 ‘나의 멘토 나의 성인’(성찬성 옮김,가톨릭출판사 펴냄)은 그 성인들을 통념과는 다르게 접근한 책으로 눈길을 끈다. 성인을 단지 멀리 동떨어진 역사적 인물이 아닌, 생활 속에서 만날 수 있고 만나야 하는 영적 동반자요 멘토로 보고 있다. 저자 자신이 미지근한 종교인으로 머물러 있다가 직장 생활을 한 뒤 수도회에 입회해 부대끼면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성인 17명을 친근하고 가깝게 소개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대부분의 교회가 성인을 수호자로만 모시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 수호자는 늘 하느님 가까이 있고 아무것도 필요 없어 사람들이 그저 도움을 청하기만 하는 성인이다. 거기에 비해 초대 교회에서 성인은 수호자라기보다, 신자와 평등했고 동반자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런 성인을 동반자요 멘토로 보는 바탕엔 성인들 역시 이런저런 고통을 겪었고 우리가 비슷한 시련을 겪을 때 이미 그런 고초를 당한 그리스도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는 점이다. ‘성인을 철저히 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 말라.’고 경계한 저자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성인들은 공연하는 배우와 같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는 바로 복음이다.” 1만 8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鐵의신화’ 박태준 별세] 박대통령 제철소 특명 받아… YS와 악연으로 정치시련 겪어

    [‘鐵의신화’ 박태준 별세] 박대통령 제철소 특명 받아… YS와 악연으로 정치시련 겪어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철의 사나이’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병마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이 우리 근현대사에 남긴 족적은 뚜렷하다.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했던 1960년대. 모래 바람만 자욱하던 경북 포항에 일관제철소(제선, 제강, 압연의 세 공정을 모두 갖춘 제철소)를 세웠다. 당시 모두가 ‘무리수’라고 비난했지만 오로지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신념으로 포스코를 세계 최고의 철강기업으로 키워냈다. 이런 고인의 노력을 바탕으로 현재 포스코는 연산 3700만t 규모의 조강 생산을 기록하는 세계 4위권 철강사로 성장했다. 포스코가 현재와 같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와 국민의 성원도 있었지만 ‘박태준 명예회장’의 리더십이 보태지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로 평가받고 있다. 철강산업과 전혀 관련이 없던 박 명예회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으로 철강 왕국의 꿈을 품게 된다. 1927년 경남 동래군 장안면(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에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1948년 육군사관학교를 6기로 졸업했다. 이때 교수로 재직 중이던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인연을 쌓았다. 이것이 훗날 이 땅에 최초의 일관제철소 건설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19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후 경제인으로 변신, 1964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임명돼 1년 만에 대한중석을 흑자기업으로 바꾸었다. 1969년 박 명예회장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종합제철소 건설의 특명을 받았다. 당시 박 명예회장의 좌우명은 ‘제철보국’과 ‘우향우(右向右)정신’. 이 땅에 일관제철소를 건설, 경쟁력 있는 산업의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국가와 조국의 은혜에 보답하자는 ‘제철보국’. 또 ‘우향우정신’은 선조의 피값인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하는 일관제철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며,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제철소 건설부지에서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몸을 던지자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이었다. 박 명예회장은 공기업체제에 따르는 비효율과 부실의 여지를 막기 위해 조직의 자율과 책임문화 정립에 특히 중점을 두었다. 또 조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1977년 3기 설비의 송풍 설비 구조물 공사가 80% 진행된 상태에서 부실이 발견되자 구조물을 부수고 다시 짓기도 했다. 이와 함께 박 명예회장은 일찍부터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해 1986년 포항공대(포스텍)를, 1987년에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을 설립함으로써 포스코-포항공대-포항산업과학연구원 3개를 축으로 하는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정치인으로서도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1981년 11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3∼15대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민정당 대표위원, 민자당 최고위원, 자민련 총재에 이어 제32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러나 경제계에서와는 달리 그의 정치 역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박 명예회장은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국보위 입법회의에 경제분과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정권과 연을 맺은 데 이어 이듬해 11대 민정당 전국구(현 비례대표)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포스코 회장을 유지하면서 11, 13, 14대 등 3선 경력을 쌓았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으며 집권여당인 민정당 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민정당 대표 취임 후 며칠 만에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등 3당이 합당하면서 정치적 시련을 맞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의 악연 때문이었다. 결국 박 명예회장은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더 큰 난관에 직면했다. 같은 해 3월 포철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은 데 이어 수뢰 및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는 등 혹독한 정치 보복을 당해야 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1997년 5월 경북 포항 보선 출마를 위해 귀국할 때까지 4년여의 ‘망명생활’을 감수해야 했고, 같은 해 7월 포항 북구 보선에서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정치적 영욕의 세월을 거친 박 명예회장은 국민의 정부 때인 2000년 1월 ‘21세기 첫 총리’로 발탁되면서 의욕을 불태웠지만, 불과 4개월 만에 낙마해야 했다. 조세 회피 목적의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시 한번 불명예 퇴진을 감수해야 했다. 전광삼·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UEFA 챔피언스리그] ‘맨유 쇼크’…바젤에 충격패

    ‘맨체스터 쇼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맨유는 ‘별들의 전쟁’ 대신 한 단계 아래인 유로파리그에 나선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유로파리그는 ‘벌칙’이나 마찬가지”라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맨유는 8일 스위스 상트야콥파크경기장에서 열린 UEFA 챔스리그 C조 6차전에서 FC바젤(스위스)에 1-2로 졌다.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맨유는 승점 9(2승3무1패)로 벤피카(승점 12·포르투갈)·바젤(승점 11)에 이은 조 3위로 밀려나 유로파리그 32강 출전권을 얻었다. 맨유가 챔스리그 16강에 오르지 못한 건 2005~06시즌 이후 6년 만이다. 맨유 박지성은 선발 출전했지만 ‘부상병동’ 맨유를 살리지 못한 채 후반 36분 교체아웃됐다. 바젤 박주호는 풀타임을 소화하며 맨유의 공세를 적극적으로 막아 냈다. 맨유는 지난 5시즌 동안 무려 세 번이나 결승(우승 1번, 준우승 2번)에 오를 정도로 챔스리그의 ‘주연’이었다. 2009~10시즌 8강이 ‘충격’으로 여겨졌을 정도. 조 편성도 좋았다. 조별리그 6전 전승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마이클 오언, 톰 클레버리, 안데르손, 치차리토, 하파엘 다 실바 등 전 포지션 선수들이 신음하고 있다. 바젤전에서는 ‘수비의 핵’ 네마냐 비디치마저 부상, 4개월 진단을 받았다. 취임 25주년을 맞은 퍼거슨 감독이 유로파리그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민도 깊어진다. 유로파리그에 ‘베스트 11’을 내자니 프리미어리그(EPL)와 병행할 선수층이 부족하다. 이래저래 ‘시련의 계절’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탈레반’ 신기남의 귀환

    ‘탈레반’ 신기남의 귀환

    신기남 민주당 상임고문이 여의도 정가에 귀환했다. ‘난 항상 진보를 꿈꿔왔다’라는 제목의 책을 들고 3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신 상임고문은 “나는 일관되게 진보정치 노선을 주장해 왔다. 진보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진짜 진보주의 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민주당의 정체가 ‘중도실용주의’ 때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과 2004년 의장직을 맡았던 당시 ‘탈레반’으로 불리며 개혁 노선을 강조했다. 2005년엔 당내 ‘신진보연대’를 만들어 진보 노선 강화에 주력했다. 지난해부터 안희정 충남지사가 세운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더연)의 이사장직을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통합 중재안을 제시하며 당내 논란을 봉합했다. 중재안은 절차적 문제를 해소하고 통합에 속도를 내자는 것이다. 그는 “8년 전 창당 당시 낡은 정치를 청산하려면 새로운 조직과 인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득권을 버리는 당 쇄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상임고문은 2004년 부친의 친일 행적 논란으로 최단기(3개월) 의장직에서 물러나고 18대 총선(서울 강서갑)에서 낙마하는 등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29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밤 7시 30분) 캄보디아댁 네이준은 전북 진안의 또순이이자 똑소리 나는 아내, 그리고 아이들 한글 교육까지 직접 하는 두 아이의 엄마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바로 미용사가 되는 것인데…. 틈틈이 잡지를 보며 미용 공부도 하고 열심히 연습도 한다. 진안 읍내 미용실에서 꿈을 향해 즐겁게 살아가는 캄보디아댁 네이준을 만나 본다. ●1대 100(KBS2 밤 8시 55분) 배우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변한 탤런트 송채환, 전곡을 프로듀싱한 부산 사나이 가수 쌈디가 각각 1인에 도전한다. ‘연예인 퀴즈 군단’, ‘건전지 전문가’, 나눔으로 행복한 지구촌 ‘KOICA 해외봉사단’, ‘리조트 디자이너’, 부산경남고, 부산여고 학생회 ‘E&A’, 그리고 72인의 예심통과자들이 함께하는 불꽃 튀는 승부가 펼쳐진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MBC 밤 7시 45분) 고아원 행사에 가게 된 진희와 계상은 아이들에게 마술을 보여 주기로 한다. 열심히 마술 연습을 하는 계상과 진희, 하지만 마술을 보여 주다 큰 실수를 하고 만다. 한편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싸우는 종석과 수정을 보다 못한 지석이 용돈을 압수해 버린다. 안 남매에게 닥친 최대의 시련. 과연 둘은 용돈을 찾아올 수 있을까. ●진실게임 가짜를 찾아라(SBS 밤 8시 50분) ‘진실게임’은 1999년부터 약 9년 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진실게임’이 시즌 2로 돌아왔다. 3명의 진짜 출연자와 1명의 가짜 출연자가 등장하여 더욱 시청자들의 흥미를 끈다. 진실을 가려낼 ‘진실판정단’과 함께하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게임. 과연 판정단은 진짜를 찾을 수 있을까. ●EBS 다큐 프라임(EBS 밤 9시 50분) 멸종은 비극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였다. 그 주인공은 공룡시대가 막을 내린 자리에 등장한 작은 포유류들이다. 포유류가 주인공인 시대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멸종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지구 곳곳에서 진행된다. 남극대륙과 호주 리버슬리를 찾아가 5만 년 전 번성했던 거대짐승 메가포나들을 조명한다. ●멜로다큐 가족(OBS 밤 11시 10분) 밥 차 한 대로 전국을 누비며 방송 촬영현장의 맛있는 식사시간을 책임지고 있는 강승민·우연단 부부. 우연히 한 유명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밥차 아저씨·아줌마로 출연해 프로그램의 감초 역할을 해내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지은 밥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가장 행복하다는 이들의 일상을 함께한다.
  • [한·미FTA 통과 이후] 민주 “野통합 힘드네”

    민주당의 야권 대통합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23일 야권대통합 여부를 표결에 부치기 위해 영등포 당사에서 중앙위원회를 열었지만 거센 반발에 부딪쳐 결론을 내지 못하고 조만간 중앙위를 다시 열기로 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17일 전당대회를 목표로 추진하던 통합 프로세스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반발 세력은 안건 상정을 반대하며 표결 시도를 봉쇄했다. 박지원 의원은 “표결해선 안 된다.”며 “다음 달 17일 꼭 전당대회를 열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조경태 의원도 “밀실통합절차는 무효”라며 “오늘 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손학규 대표는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회의장 안팎에서는 ‘합당은 무슨 합당인가.’, ‘이런 회의 하지 말자.’라는 고함과 욕설, 심지어 몸싸움까지 난무했다. 이들은 중앙위 소집 자체가 당헌·당규 위반이며 통합은 독자 전당대회를 개최, 별도로 지도부를 뽑은 뒤 ‘혁신과 통합’ 등 나머지 세력을 흡수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대표는 “내 욕심 때문에 성과를 내려고 한 면도 있지만, 아무것도 이뤄지지 못하면 안 되는 게 아니냐는 조바심도 있다.”며 “과감하게 자기를 털고 나가는 민주당이 될 수 있도록 뜻을 모아 주시기 바란다.”고 머리를 숙였다.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몸싸움을 불사한 한·미 FTA 처리 저지’와 ‘일괄 전당대회’를 통한 야권 대통합을 밀어붙이던 손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안팎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내부에서는 지도부가 무기력하게 한·미 FTA 비준안 기습처리에 당했다며 전날에 이어 거듭 사퇴를 요구하고 있고, 야권 대통합에 반발하는 당내 세력은 지도부의 열세를 계기로 단독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하며 대립각을 더 세우고 있다. 다음 중앙위에서 후속 협의를 진행하더라도 통합 결의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독자전대를 추진하는 원내외 인사들의 모임인 ‘임시전대추진위원회’는 대의원 4600여명의 서명을 확보하고 단독전대 소집 요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통합 결의를 벼르던 당 지도부가 한발 물러섰지만, 이날 발언한 31명 가운데 5~6명을 제외한 나머지 위원들은 모두 대립각을 세워 민주당의 시련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 “反공산 내세워 인권자유는 박해 이승만·박정희 정권 反자유주의적”

    “反공산 내세워 인권자유는 박해 이승만·박정희 정권 反자유주의적”

    한국에 자유주의 바람이 거세다. 가장 최근 사례는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둘러싼 ‘자유’ 민주주의 논쟁이다. 그런데 모순이 드러난다. 4·19혁명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내걸었다.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는 김재규(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범) 역시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내걸었다. 뒤집어 말해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은 ‘장기집권 등으로 인해 독재화의 시련을 겪었다.’는 표현을 집어넣은 것이다. 참 고약한 표현이다. 다른 문제는 없고 장기집권이 조금 문제됐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데다, 그나마도 독재가 아니라 독재‘화’다. 이런 ‘자유주의’적 인식은 멀리 갈 것 없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선두주자인 후지오카 노부카쓰 도쿄대 교수의 논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95년부터 ‘좌파의 자학 사관과 코민테른 사관’(한국으로 치자면 종북좌파 사관)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자유주의’ 사관을 내걸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이승만·박정희 정권도 말년에 가서야 장기집권으로 인한 독재화 과정을 겪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일본의 극우세력은 일제 침략이 초반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후반에 가서 ‘전략상의 실수’를 저질렀다고 본다. 한국 자유민주주의자들이 10년 전 일본 극우세력의 논리를 ‘베끼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 이유다. 한·일 양국의 자유주의는 왜 이리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까. 혹시 진보진영에서 자유주의를 부르주아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폄하하고 무시했기 때문은 아닐까. 해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내건 자유주의의 마력을 진보가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기에 관심 있다면 문지영(정치학 박사)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이 낸 ‘지배와 저항-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후마니타스 펴냄)을 눈여겨 볼 만하다. 페미니즘 연구 프로젝트 때문에 영국에 머물고 있는 문 연구원은 22일 서울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진보는 자유주의를 비껴가는 게 아니라 통과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자유주의를 부정할 게 아니라 그 바탕 위에서 상상력을 키우는 게 진보라는 얘기다. 그는 “(존) 로크나 (존 스튜어트) 밀이 남긴 자유주의의 고전들을 읽다 보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진보적인 힘을 갖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자유주의에 대한 연구가 지나치게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주의에 대한 자신의 탐구작업은 “자유주의에 대해 잘 모르면서 진보를 자처하기 위해 자유주의에 비판적이고 적대적이었던 한때를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한다는 의미”라고 ‘고백’했다. 그가 생각하는 자유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말 그대로 ‘개인의 자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엄격한 계획경제 나라에서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이, 요즘처럼 지나친 시장자유로 서민들의 삶이 핍진해지면 거꾸로 ‘큰 정부, 작은 시장’이 곧 자유주의다. 자유주의는 무조건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고 믿는 것은 “미신에 불과하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그렇기에 “자유주의를 진보적으로 해석해내지” 못한다면 “자유주의는 ‘그들만의 자유’에 만족하고 말 것”이라고 충고한다. 이런 주장은 반공주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견해에서도 잘 드러난다. 문 연구원은 ‘자유주의=반공주의’라는 도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자유주의에는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와 더불어 ‘기본적 인권을 향한 자유’가 뒤섞여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를 내세워 기본적 인권을 향한 자유를 박해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가 볼 때, 문제의 핵심은 “무엇이 공산주의를 이롭게 하거나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독점해 온” 상황이다. 문 연구원은 “여러 가치들 간의 충돌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자유주의 사회의 관건인데 사회적 가치의 우선순위를 국가가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것 자체가 반자유주의적”이라고 꼬집었다. 역사교과서 논란을 주도한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가리켜 ‘홉스적 자유주의’라고 평가했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1588~1679)가 사회계약에 의해 탄생한 강력한 국가, 즉 ‘리바이어던’을 그려낸 인물임을 감안하면, 이승만·박정희의 반공독재도 그러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 연구원은 “홉스에 대한 오독이자 자유주의의 남용”이라면서 “웬만해선 설득력 있다고 보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자유주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자유주의라 볼 수 있느냐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다.”면서 “리바이어던의 탄생 과정이 자유주의적 원칙을 포함하고 있으나, 확립된 이후의 리바이어던은 자유주의적이기 어렵다고 보는 게 일반적 평가”라고 말했다. 이어 “리바이어던이 기초하고 있는 가정은 외면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강력한 주권독재적 현상만 가지고 홉스적 자유주의를 말한다면, 나치즘도 홉스적 자유주의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섬 떠날까 했는데 포격 뒤 맘바꿔…신도 수도 더 늘었죠”

    “섬 떠날까 했는데 포격 뒤 맘바꿔…신도 수도 더 늘었죠”

    “1년 동안 섬을 지키면서 절망도 고생도 참 많았습니다. 악몽을 딛고 새 희망을 찾는 주민들을 보니 가슴이 뿌듯합니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 연평장로교회 송중섭(45) 목사는 17일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교회 앞에 서서 지난 시간을 돌이켰다. 섬 주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기도했던 송 목사에게 지난 1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북한군의 포탄이 쏟아진 다음 날인 지난해 11월 24일. 교회에서 열린 수요 저녁 예배 시간에는 미처 섬을 탈출하지 못한 주민들이 속속 모였다. 피난길에 나서지 못한 주민 수십명의 두려움과 고립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송 목사는 주민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잠깐만 떠났다가 꼭 다시 돌아옵시다.” 다음 날 주민들을 이끌고 인천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인천의 한 찜질방에 머물면서 주민들을 돌보다 열흘 만에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다시 찾은 마을은 ‘유령의 섬’이었다. “포격으로 예배당의 유리창이 깨져 도리 없이 비좁은 교육관으로 예배 장소를 옮겨야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섬에 남은 주민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예배를 보러 오는 주민이 4~5명에 불과할 때도 있었다. 송 목사는 섬에 남은 주민과 뭍에서 온 자원봉사자, 복구 인력, 공무원 등에게 교회의 문을 열어주었다. 주민들의 외로움을 달래 주고 공포감을 덜어 주는 일은 송 목사의 몫이었다. 송 목사는 주민들에게 “마을 주민 모두가 무사한 건 기적입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렇게 연평교회는 섬에 남은 주민들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지난 2월 김포에 머물던 주민 800여명이 섬으로 돌아오면서 현재 연평교회를 찾는 주민은 70여명에 이른다. 포격 이전보다 더 늘었다. 송 목사는 “예전에는 안 보이던 분들도 교회를 찾는다.”고 말했다. 송 목사는 “포격 전에는 ‘자연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자’는 말씀을 드렸으나 지금은 ‘포격이라는 시련을 겪었지만 두려움을 잊고 담대하게 살아가자’고 당부한다.”고 했다. 포격 사건은 송 목사의 목표도 바꿔 놓았다. 지난해 3월 연평교회에 부임한 송 목사는 때때로 섬을 떠날 고민을 하곤 했다. 그러나 포격 이후에는 은퇴할 때까지 섬에 남겠다고 결심했다. “연평도를 지키는 게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글 사진 연평도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으로 100번째 작품 무대 올리는 ‘연출인생 50년’ 김정옥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으로 100번째 작품 무대 올리는 ‘연출인생 50년’ 김정옥

    올해로 연출 50년을 맞은 한국 연극계의 대부 김정옥(79) 연출가. 우리 나이로 팔순인 그가 요즘 ‘젊음의 거리’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오는 23일부터 새달 11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에 100번째 연출 작품이자 50주년 기념작인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 (이하 ‘흑인 창녀’)을 올리는 것. 공연 준비에 한창 바쁜 그를 지난 16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트레이드 마크인 베레모를 멋지게 눌러쓰고 나타난 그는 국내 아이폰 최고령 사용자로 조사됐을 만큼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즐기는 이다. 그런 그가 100번째 작품에서는 유난히 고집을 피웠다. 여주인공 캐스팅을 두고서다. 그는 배우 김성녀(61)를 고집했다. ‘템플’은 과거에 얽매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는 30대 중반의 여성이다. 그런데 환갑을 넘긴 김성녀라니, 주위에서 곤혹스러울 만도 했다. ●美 포크너 소설을 佛 카뮈가 희곡으로 각색 “내가 인생을 80년 살았지. 그중 50년을 연극했고…. 그런데 겪어 보니까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한 50~60대 배우들밖에 없더라고. 젊은 연기자들은 매력적으론 보일 수 있지만 성숙한 재미를 보여주지 못해. 인생의 전성기는 예순부터야. 안팎으로 성숙함이 깃드는 시기거든. 여배우도 50~60대 때 가장 아름다워. 무대 위에서 아주 빛나고 우아하지. 그런 면에서 김성녀만 한 적임자가 또 어디 있겠어.” 그렇다면 왜 하필 ‘흑인 창녀’를 100번째로 선택했을까. “99개의 작품을 연출해 봤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문학과 연극의 만남에 있어 가장 원초적인 작품이지. 배역도 중요한데 작품에 등장인물이 너무 많으면 산만해져. 배우 구하기도 어렵고…. 알맹이가 있으면서 압축된 무대를 만드는 데 이 작품이 제격이었어.” ‘흑인 창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소설가 월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상류층 백인 여성 템플이 자신의 아기를 죽인 흑인 하녀 낸시를 구명하기 위해 자신의 치욕스러운 과거를 고백하는 내용의 추리극이다. 1969년 국내 무대에 처음 소개한 이가 다름 아닌 김정옥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과 동아연극상을 받았다. 이후 1978년까지 배우를 달리하며 여러 번 무대에 올렸다. 당시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제목이 다소 파격적이다. “원작 제목은 ‘한 수녀를 위한 진혼곡’이었지. 그런데 작품에 수녀는 나오지 않아. 포크너와 카뮈는 작품 속 흑인 창녀를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수녀라고 생각해 그런 제목을 붙인 거 같아. 하지만 연극은 흥행성도 생각해야지. 문학 작품을 읽는 것과는 다르거든. 그래서 고민 끝에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이라고 제목을 바꿨지.” 그 과정에 ‘시련’도 많았단다. “서슬이 시퍼렇던 1960년대 말 아니야. 어느 날 검열에서 창녀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 ‘흑인 수녀를 위한 고백’으로 바꿨지. 그랬더니 관객이 확 줄더라고. 그래서 그 다음 공연땐 ‘흑인 O녀의 고백’으로 고쳤어. 검열에 대한 내 나름의 저항 의미도 있었지. 하하.” 당시에는 유명한 작품이었지만 1978년 이후 무대에서 사라진 만큼 지금의 젊은 관객들에겐 다소 생소하다. 노()연출가는 그런 관객들을 위해 관전 포인트를 친절하게 짚어줬다. “사랑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이 결코 겉치레가 아니라는 게 주제야. 난초는 추위를 겪어야 제대로 꽃을 피운다고 하지 않나. 인간도 고통과 고뇌를 겪음으로써 향기를 갖게 되지. 주변을 보게나. 사람들이 점점 거짓에 포장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어. 이 작품은 그런 것들을 되돌아 보게 해줘.” 그는 여러 번 연출한 작품이지만 할 때마다 새롭다고 했다. 그때마다 연극의 성숙한 맛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고도 했다. ●국내 최고령 스마트폰 애용자?… 베레모 즐겨 써 그에게 있어 연극은 ‘삶’ 그 자체이자 ‘종합예술의 결정체’다. 1932년 광주광역시의 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때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서울로 올라와 수도극장 등에서 영화와 쇼를 보며 예술에 대한 꿈을 키웠다. 서울대 문리대 재학 때는 문학 동인회에서 활동하며 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영화도 공부했지만 최종 종착지는 ‘연극’이었다. “내 유년기는 일본강점기 때였어. 광주에선 동맹 파업, 좌익 독서회 사건 등 많은 일이 있었지. 나름대로 그때 내가 건방졌어. 서울에 와서 혼자 공부도 하고 그랬지. 연극을 하나 만든다는 건 한 세계와 한 인생을 만드는 거잖아. 영화는 스폰서가 있어야 했지만 연극은 동호인들끼리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극을 하게 됐지.” 중앙대 연극영화학부 학장을 거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지낸 그는 국제극예술협회 세계본부 회장을 세 차례나 연임했다. 예술가에서 예술경영인으로, 그리고 다시 예술가로 돌아온 그다. 그래서일까. 공연을 향한 열정이 무척이나 뜨거웠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올 국가직 7급 공무원 공채 467명 최종 합격] 국가9급·지방7급·국가9급·7급… 4번 합격

    [올 국가직 7급 공무원 공채 467명 최종 합격] 국가9급·지방7급·국가9급·7급… 4번 합격

    올해 국가직 7급 공무원 공개채용시험의 최종합격자 467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윤명수(53·선관위 장애)씨는 공무원시험과 인연이 깊다. 공무원시험 합격만 이번이 네 번째, 시험을 본 것은 열 번이 넘는다. 처음 공무원 시험을 본 건 35년 전인 1976년, 고등학생 3학년 때다. 어려서 집 주변 면사무소 공무원을 보며 막연하게 공무원의 꿈을 키워 오던 윤씨는 어려운 집안 사정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시험에 도전했다. 계속되는 낙방에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제조업체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다 1978년 국가직 9급에 합격, 1979년 총무처로 발령을 받아 근무했다. 그러다 1983년 충북 지방직 7급에 도전해 합격했다. 행정주사까지 진급했지만, 윤씨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97년 1월, 사무관이 되려고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 했던 시련이 닥쳤다. 곧이어 찾아온 외환 위기로 정부가 공무원시험 응시 가능연령을 낮춰 마흔이 넘은 윤씨가 갈 곳을 잃은 것이다. 어려서 발목을 심하게 다쳐 지체장애 6급인 그를 받아 주는 곳은 드물었다. 얼마 전까지 공무원 신분이었지만 당장 제조업체 비정규직 생산직으로 근무하기도 어려웠다. 때로는 거리 노점상도 마다할 수 없었다. 당시 대학 입학을 앞둔 두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해야 했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공무원시험 응시연령을 없애라는 판결을 했다. 관련 기사를 읽어 보고, 윤씨는 수험서를 다시 들었다. 자식들에게 더 떳떳해지기 위해서였다. 1년 남짓 공부한 끝에 국가직 9급에 합격, 지난해부터 충남 아산우체국에서 근무했다. 12년 만에 돌아온 공직에서 그가 1년 남짓 맡은 일은 방문택배 업무였다. 다른 동료보다 나이가 많았고 몸도 불편했지만, 윤씨는 “공직에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고 돌이켰다. 그는 “다른 일도 해봤지만 공무원으로서 일을 마무리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공무원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퇴근 뒤 틈틈이 공부한 끝에, 그는 15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올 국가직 7급 공채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국가가 경험 많은 50~60대들을 그냥 놀리지 말고 좀 더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남들이 저를 보고 50대 전체를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한발 뺀 국사편찬위 “5·18민주화운동 안 뺀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중학교 역사교과서 새 집필기준에서 중요한 현대사 사건들이 대거 누락된 것에 대한 반발이 확산되자 교과서 검정심사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진화에 나섰다. ‘5·18 민주화운동’과 ‘장기집권에 따른 독재’ 부분이 반영되도록 했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11일 기자들과 만나 “집필 기준은 구체적인 사건을 나열하지 않고 교육과정 구현을 위한 서술 수준과 범위, 유의사항을 압축해 제시하는 ‘대강화’(大綱化) 원칙에 따라 작성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내용은 집필자가 자율적으로 쓰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집필기준에는 ‘4·19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치 변동과 민주화운동 등 중요한 흐름을 설명한다’는 부분과 ‘자유민주주의가 장기집권 등에 따른 독재화로 시련을 겪기도’라는 부분이 관련 내용을 교과서에 서술하도록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논란을 의식한 듯 “친일파 청산 노력과 관련, 국회에서 반민특위법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나 부연설명은 당연히 교과서에 넣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서술범위를 검정기준에 명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교과부 측은 “5·18 민주화운동처럼 당연히 들어가야 할 상황들이 빠진다면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밖에 볼 수 없고, 그럴 경우 검정 통과는 당연히 안 된다.”고 밝혔다. 교과부와 국편은 내년 1월 검정심사 기준을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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