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시련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100주년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갈라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화재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 유지
    2026-01-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383
  • 이 어려운 때 정치는 뭘하나(사설)

    국회의 정기회기가 시작됐으나 야당 의석은 텅비었고 여당의원들의 모습은 밝지가 않다. 여당만의 국회는 할 수 없이 열흘간의 휴회를 결의했다. 무엇을 하자는 국회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년 같으면 하한기를 넘겨 개회된 국회는 그야말로 정치의 계절을 맞아 붐빌 것이다. 국정감사가 시작될 것이고 지난 회기에서 못다한 의안처리,여야간 쟁점현안들에 대한 토의와 협상으로 바쁠 것이다. 조금 시끄럽더라도 그런 정치의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국가의 앞날에 대한 기대에 부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썰렁하기조차한 의사당 본회의장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매우 편치가 않다. 정국의 돌아가는 형편이 볼썽사납고 아예 이 나라에 정치가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다. 여당은 야당보고 무조건 등원하라고 하고 야당은 선행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계속 등원하지 않겠다고 장외에서 버티고 있다. 다수당에 의한 변칙과 소란,그로인한 야당의원들의 의원직 사퇴서 제출로 빚어진 파행정국은 무덥고 긴 여름을 낀 두달가까이나 지나고도 정상화될 기미가 없다. 등원을 거부하고 있는 평민당이 민생공동대책위를 구성하자고 해 민자당이 대화도 할 겸해서 선뜻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평민당은 무슨 속셈인지 후퇴하고 말았다. 오히려 여권의 사과및 인책,지자제 전면실시 등 그들의 이른바 5개 선행조건에 또 한개를 추가한 셈만 되었다. 갈수록 태산이다. 지금 우리는 외압에 내환을 겪고 있다. 중동지역의 전쟁적 상황이 강건너 불 만은 아닌 터에 남북문제 역시 뜻대로 돼가지 않고 있다. 원유사정이나 우루과이라운드 등 국내경제를 압박하는 국제경제요인이 결코 만만치 않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천재마저 겹친 것이다. 서울 중부지방에 기상관측이래 최대의 큰 비가 내려 안팎이 온통 물난리를 겪고 있는데도 우리의 정치와 정치인들은 꼼짝도 않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대개 소박한 성품이어서 정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워낙 그리 거창하지는 않은 편이다. 여야가 당리당략이나 소리에 집착하지 않고 싸움판만 벌이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보고 있다. 여야가 오순도순 하지는 못하더라도 큰 소리만 내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서 여러 정치적 현안이나 민생문제를 풀어나가주기만을 바랄 뿐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대다수 국민들의 그러한 순박하고 진솔한 기대와 소망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걸핏하면 싸움박질이고 뜻대로 안된다고 보따리를 싸메고 장외로 나가는 것이다. 여당은 야당이 왜 그렇게 투쟁적이고 사납게 됐는지를 이해하고 관용하려 들지 않는다. 야당은 그럴수록 더욱더 폐쇄적이고 고립화될 수밖에 없다. 세상이 어수선할 때일수록 정치의 역할과 힘은 큰 것이다. 정치야말로 안팎의 시련과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국민적 화합과 친화력의 원천이다. 정치인들이 시원하게 문제를 풀어나가지는 못하더라도 국민을 더이상 실망시켜서는 안된다. 여야는 당장 국회에 모여 물난리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 주가 폭락세 주춤… 6백선 유지/주말 2포인트 올라 「6백9」기록

    ◎대기물량 향방이 「장세의 변수」될 듯 주가가 소폭 상승했다. 종합지수 6백선의 재차붕괴가 우려된 가운데 문을 연 1일의 주말 주식시장은 개장지수가 마이너스 1.7이었으나 곧 플러스권으로 돌아서 전날보다 2.14포인트 오른 선에서 끝났다. 종합지수가 6백9.01로 상승함으로써 미약하나마 이틀간의 폭락장세가 반등,역전된 셈이다. 이날의 장세는 3일째를 맞는 부양책 실망매물과 지수 6백선 근접에 따른 저가ㆍ바닥 인식 세력간의 힘겨루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총 거래량이 7백10만주인 주말장의 상승 종가는 4백억원의 주문을 낸 증안기금의 「높은 호가를 통한 주가 떠받치기」작전의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반투자자의 「사자」가 부양책에 실망한 「팔자」에 우세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런 실정에서도 연일 20포인트씩 지수를 폭락시킨 실망매도세가 지수 6백과 맞닥뜨리자 그간 정신없이 쏟아내던 매물을 거둬들일 자세로 변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내주 증시의 주변여건을 살펴볼 때 이같은 「지수 6백」인식만큼 결정적인 단서는없다고 분석되고 있다. 루머상으로나마 추가 부양책이란 소리가 나오기는 아직 이른 형편이고 또 단기적효과가 결핍된 이번의 부양책이 내주에 구체적으로 진전돼 장에 다시 나타날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원칙만 거론됐던 미수금과 미상환융자금의 처리 건이 실무적으로 구체화될 경우 대기물량의 향방이 장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정도이다. 장외 요인으로는 국내의 남북고위회담(4일)이 호재로서,국외의 중동사태 장기화 가능성이 악재로서 짚여지나 지금까지의 투자심리동향으로 보아 중동사태의 악재적 힘이 더 클 것으로 예측된다. 중동사태가 현상황보다 다소라도 더 밝은 길로 들어설 모양을 갖추면 주가는 의외의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북고위급회담이 실제 개최되더라도 거기에서 웬만큼 큰 호재거리가 터져주지 않는 한 증시는 시큰둥할 것이란 이야기다. 내주에 지수 6백선이 유지된다고 전망하는 관계자들도 중동사태가 이번주 수준의 균형을 유지해야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한편 증시 내부만 들여다보면 이번주초의 반등국면과는비교될 수 없지만 지난주후반의 5백대지수 추락 당시보다는 투자심리가 분명호전되었다는 주장도 크다. 중간에 부양책에 의해 시련을 당하고 이를 어떤 측면에선 극복한 상태인 만큼 장세에 표출되고 있는 바닥권 인식이 어느때보다도 단단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외가 몹시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이번 주말장의 반등세가 조금씩 성장해갈수도 있다는 예상이다.
  • 통독과 서울회담(사설)

    서독과 동독이 진척시키고 있는 통일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브레이크가 터진 듯한 빠른 행보와 굳은 의지에 우리는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양독은 지난 7월 경제통일을 이룬 데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정치ㆍ법률제도 등 전반적인 사회체제를 단일화하는 두번째 통일조약을 체결했다. 남은 일은 오는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이른바 「2+4」회담과 10월 1,2일의 전구안보협력회의에서 이 합의를 보고 승인받는 절차뿐이다. 이것은 국제사회가 독일의 통일을 승인하는 요식행위가 될 것이다. 두 독일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다음날인 10월3일을 「통일독일 선포의 날」로 이미 정하고 전국에서 대대적인 국민축제를 벌일 준비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행사계획은 동서독 실무진이 협의중이나 학교 기업체 등이 참여하는 우정의 만남등 기념행사가 주요도시에서 거리축제와 함께 열릴 예정이다. 한달뒤 우리는 통일된 새 독일을 보게 될 것이다. 부러운 일이다. 독일의 통일이 예상보다 빨리 이루어지게 된 것은 동독측의 경제적인 위험수위에 정치적인 통일열망이 상승작용을 한 때문이다. 통화단일화로 「경제체제의 벽」은 베를린장벽처럼 허물어졌으나 경쟁력이 약화된 동독기업의 조업부진으로 실업률이 급상승하자 정치적으로 빨리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독일의 통일은 독일국민들의 숙원을 이루었다는 대내적 의미도 크겠지만 그것이 세계의 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막대하다는 데서 커다란 관심사가 되어온 게 사실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앞으로 독일의 경제방향이 특히 유럽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인 시련을 극복하려는 동구 여러 나라와 소련에 미칠 「동독경제의 시장화」를 우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독일 통일 통일후의 유럽질서를 구축하는 외교노력이 될 것이다. 독일통일의 움직임이 자체의 의지에 의해 추진되어오면서도 동서의 긴밀한 협조를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통일된 독일의 병력감축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적인 화해무드와 군축노력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쳐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통독으로 가는길에서 앞으로도 제거해야 할 장애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통일과정에서 드러난 양독 시민들의 심리적 괴리감과 동서독 주간의 갈등해소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드 메지에르 동독총리가 『우리는 앞으로도 산을 움직일 것』이라고 한 말에서 읽듯이 그것들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두 독일은 이번의 통일조약조인으로 통일을 향한 마지막 선,물러설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특히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그들이 「통일고개」를 넘었다고 우리는 이제 통일의 문을 두드리려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주초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한 총리회담에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사실에 있는 것이다. 동서독이 걸어온 통일행로를 잘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남북한 고위회담이 한두차례의 만남에서 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들을 쉽게 끌어내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울회담으로 시작되는 남북한간의 만남들이 끝내는 통일로 가는 길을 닦아줄 것으로 믿고 있다. 분단 41년에 걸친 독일 사람들의 통일노력도 만남에서 비롯된 사실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지구촌 평화와 「서울평화상」(사설)

    「서울평화상」의 첫 수상자가 결정되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씨가 영예의 수상자로 정해진 것이다. 그는 임기중에 두번의 반쪽대회를 치르고 마침내 평화라는 의미에서 극적으로 성공적인 「서울올림픽」을 이뤄낸 IOC위원장이다. 80년대를 통해 「평화」를 논의한다면 「서울올림픽」을 빼놓고 거론할 수 없다.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는 「평화」의 생명수가 고갈할 위기에 있는 제일 다급한 땅이다. 서울은 동서냉전의 가장 심각한 피해의 지역이고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제일 많은 희생을 겪은 땅이다. 산소가 결핍되는 것을 측정하기 위한 잠수함 속의 카나리아처럼,지구라는 이름의 잠수함 속에서 평화의 공기가 희석되어가는 것에 맨먼저 질식을 해야 하는 운명에 있는 이 한반도에서 「평화의 잔치」로 올림픽이 열릴 수 있도록 지원해온 사마란치위원장이 「서울평화상」의 첫 수상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세계는 평화의 위협속에 있다. 한 환상적인 아랍주의자의 광적인 전쟁놀이로 지구가족 모두가 긴장해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흔들리는 평화」의 시련속에 있는 것이 지구촌의 운명이다. 화해를 외면하는 침략주의자가 곳곳에 박혀있고 그중에서 악명을 제일 크게 떨치는 집단과 우리는 여전히 대결해 있다. 흔히 편향적인 국가주의자들중 전쟁예찬자들은 이길 수만 있다면 전쟁만큼 국력을 증강하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한가지 목표로 국민을 결속하고 보유한 모든 자원을 기울여 과학의 발전을 기하며 구성원 모두의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는 것이다. 과대망상적인 정치지도자를 착각으로 유혹하기에 적당한 이같은 평화파양의 충동은 끊임없이 지구위에서 거듭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인류 모두는 죽음의 공포를 공유해야만 한다. 올림픽은 환상적인 전쟁광들이 표방하고 있는 「이익」을 평화적으로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대체기능이다. 「규칙」을 따라 페어플레이를 하면서 국력을 총동원하고 발전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림픽은 평화를 지상의 목표로 한다.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에 분노한 중동 12개국은 새달에 열리는 북경 아시안게임에 이라크의 참가를 중지해주도록 나서고 있다. 만약에 이라크를 그대로 참가시킨다면 집단으로 출전을 포기할 것을 선언하는 듯하다. 주최국인 북경측이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는 느낌이다. 스포츠게임이 정치적으로 오염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인류가 마련하는 평화의 제전이므로 참가자격을 가진 누구에게나 참가의 문호는 개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평화적으로 결격된 나라의 출전을 제한한다는 논리에도 합당한 근거는 있다. 「서울」이후 첫번째 행사이 북경 아시안게임이 벌써부터 겪고 있는 이런 시련예고에 접하면서 더욱더욱 우리는 서울올림픽의 소중한 승리를 되새기게 된다. 서울평화상에 사마란치위원장이 정해진 것은 평화를 염원하는 인류의 뜻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살아 있는 한 포기할 수 없는 평화노력에 「서울평화상」의 큰 기여가 있기를 기대하며 첫 수상자 결정에 축하를 보낸다.
  • 서울평화상 첫 수상자 사마란치

    ◎“동서화합의 큰 마당” 서울올림픽 전폭 지원/정치오염 씻고 「평화의 새 장」 열어 근대올림픽중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서울올림픽의 이념과 한민족의 긍지를 선양하기 위해 제정된 서울평화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된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70)은 서울올림픽을 통해 동서냉전의 국제정치기류에 오염돼 온 올림픽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주역이다. 서울올림픽 유치에서부터 성공개최에 이르기까지 올림픽 주무기관인 IOC위원장을 맡아 모든 뒷바라지를 해냄으로써 「스포츠를 통해 인류화합과 세계평화에 이바지한 개인·단체에 주어진다」는 서울평화상의 취지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일찍부터 수상물망에 올랐다. 80년 모스크바올림픽 기간중 IOC위원장으로 선출된 그는 인종과 종교·이데올로기를 초월,인류의 평화와 우의를 다지는 올림픽정신을 주창했음에도 불구하고 5년후 84년 LA올림픽 때도 「반쪽올림픽」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에따라 그의 제1과업은 동서냉전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위기를 맞은 올림픽운동의 부활이었다. 8년간의 반쪽대회로 고사상태에 빠진 올림픽은 IOC위원장으로서 사마란치 개인의 위기이기도 했다. 자신의 위원장재임 초기인 지난 81년 바덴바덴 IOC총회에서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된 이래 사마란치위원장은 동서 양진영을 내왕하며 서울올림픽의 성사를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서울올림픽의 성패여부는 크게는 올림픽운동의 사활을 결정하는 문제이자 개인적으로는 위원장의 8년 임기를 반쪽대회의 불명예속에 마쳐야 하는 자신의 수모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서울올림픽을 성공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개최국인 한국 자체의 노력과 맞물려 마침내 동서이념의 벽을 허물고 사상 최대·최상의 올림픽을 서울에서 꽃피우게 했다. 탁월한 정치적 수완가이기도 한 그는 『정치적 동기의 올림픽 보이콧은 전체올림픽운동을 영원히 파괴하는 짓』이라고 호소하며 무엇보다 올림픽운동의 자생력 마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축구·아이스하키·테니스 등에서 프로선수의 올림픽출전을 제한적으로 허용,올림픽의 영역을 넓혔다. 최근그는 『서울올림픽은 한국의 경제기적과 함께 올림픽기적도 이루었다』고 감격했으며 『그러나 IOC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로서는 82년부터 7년간의 준비기간이 단꿈이 아니라 악몽의 시간이었다』고 털어 놓았었다. 「탈정치선언」,그리고 「프로의 문호개방」 등으로 올림픽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으며 무엇보다도 강한 리더십을 발휘,서울올림픽 개최를 주위의 반발에도 불구,계속 지원해 성공적으로 개최토록 지원해 주었다. 서울올림픽을 1년 앞둔 87년 한국에서의 열기가 한창이었을 때 시위사태를 다룬 외신이 연일 세계로 타전되자 불안을 느낀 일부 아프리카회원국과 동구권 국가들은 공공연히 개최지 변경을 거론,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를 곤경에 빠뜨렸었다. 그러나 『한국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올림픽 장소변경 불가론을 주장,불씨를 끄기도 했다. 그는 다채로운 경력을 지니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상경대학을 졸업한 뒤 경제학교수,은행간부,소련주재 스페인대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다. 192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생,어려서부터하키를 비롯,여러가지 운동을 두루 즐겨 스포츠광으로도 이름이 나 있다. 스페인올림픽위원장을 거쳐 지난 66년 IOC위원에 피선된 뒤 의전책임자로 취임하면서 IOC내에서 영역을 넓혔다. 이후 IOC홍보위원장등 주요 직책을 맡다가 80년 7월 IOC위원장에 압도적인 표차로 피선됐다. 55년 재벌기업의 딸인 마리아 테레사 로베여사와 결혼,1남1녀를 두고 있다. 활달한 성격에 두뇌회전이 빠르며 외교관출신답게 영어·불어·독일어·러시아어 등에 능통하다. 예술품및 스포츠 우표수집이 취미.〈이대행기자〉
  • 카바레 주인의 실종극(사설)

    조간에 난 두 건의 다른 기사가 한쪽은 우리에게 분노에 가까운 실망을 주고 다른 한쪽은 감동과 위안을 주었다. 사건 초기부터 어쩐지 좀 수상쩍던 카바레 주인의 볼보차 추락사건은 자작극임이 거의 드러나 농락당한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런가 하면 불치병의 젊은이가 가난과 병마의 시련을 이기고 대입검정고시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아름다운 승리를 거둔 기사는 우리를 위로한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더구나 유흥가에서 큰 사업가 노릇을 하자면 갖가지 기복이 심하리라는 짐작은 쉽게 간다. 그러므로 빚에 쫓기고 부도가 난 카바레 주인이 얼마나 궁지에 몰렸겠는가 하는 것에 동정이 가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일을 그렇게 해괴하게 끌고 간 소행은 여간 불쾌한 게 아니다. 싯가 10억이 예사롭다는 호화주택촌에 살면서 억대에 이르는 수입 외제차를 타고 보디가드를 몇명씩 거느리고 살아온 모습이 그에게서는 보인다. 이런 종류의 사업을 하자면 이렇게 다소 과장된 정도의 외형을 가꿀 필요가 있는 것인지는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또한 사업인데 건실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인가. 그랬다면 거액의 부도를 내고 파산하는 일을 예방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러나 그의 사업태도는 폭력과 불법을 동반하며 요란스럽게 사업을 벌이다가 여의치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망을 빠져나가 책임을 지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던 듯싶다. 그러길래 그 비싼 외제차를 쓰레기처럼 물속에 처박는 추락극을 자작하고 민생업무에 바쁜 일손들이 차를 인양하고 시체 수색작업을 벌이게 해 놓고는 현장을 유유히 수상스키를 타고 확인하고 몸을 빼돌렸던 모양이다. 세상을 이렇게 우습게 보고 조롱하는 행위는 사람들에게 많은 무기력감을 던져 준다. 이런 식으로 손쉽고 안일하게 살면서도 호강하고 영화를 누리는데 땀흘려 노력하며 사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범법행위를 옆에서 실컷 방조하고 도피처도 마련해주고는 수사당국에 허위정보나 주어 교란을 일으킨 「경호원」이란 사람의 행동도 세상을 우습게보았기는 마찬가지다. 저지른 것은 저지른 대로 수습하고 당해야 할 대가는 치른 뒤에 기회가 있으면 재기하는 정상적이고 떳떳한 생각을 하는 것은 사업하는 사람의 도리다. 이들의 행각처럼 세상을 함부로 생각하고 법망을 유유히 넘나들며 유령처럼 멋대로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할 만큼 우리 사회는 만만하고 허술한 것인가 하는 회의도 든다. 아버지는 경비원을 지내고 어머니는 청소원 노릇을 하면서 단칸 셋방에 사는 어려움 속에서도 신병까지 겹친 몸으로 포기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 비하면 갖가지로 해와 누만 끼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건전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고통을 참아가며 지키고 가꿔 놓은 땅을 불법과 타락으로 오염시켜 못쓰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조롱당하는 느낌에서 국민들은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 이웃과 사회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수천만원을 지닌 채 출몰하는 그의 도피행각부터 우선 차단하고 법질서의 권위를 회복해주기 바란다.
  • 냉전과 탈냉전의 격류속에서/이기탁 연세대교수(서울시론)

    ◎한반도·페만문제 중지 모을 때 한반도는 확실히 냉전과 탈냉전의 골사이에 놓여 있다. 중국의 천안문사태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환경에서 중국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 문제는 역시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환경에 적응할 능력이 모자라는 중국의 민도라는,서양정치 술어에는 없는 단어가 문득 떠올라서였다. 중국의 민도라는 수준과 한계를 절감한 것이다. 사실상 민도라는 단어는 특히 서양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정치술어에 속한다. ○새로운 질서 적응해야 한반도가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고비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특유한 두가지 문제를 보게 된다. 그 하나가 남북한관계며 또 하나가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으로 인한 석유문제라는 문제점이다. 전자는 냉전과 탈냉전에서의 냉전적인 문제이며 후자는 탈냉전이후의 우리 국가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될 탈냉전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 두가지 국제적인 우리의 시련에서 문제되는 것은 역시 저 천안문사태의 정치적인 민도라는 문제와 연상작용을 피할 수 없다. 확실히 냉전이 시작될 때 사회주의체제의 세계혁명적인 권력을 군사적으로 봉쇄해야 한다는 조지 캐넌의 전제를 결정했을 때의 목적은 사회주의체제의 대내체제가 「변질」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 문제되는 한반도문제의 기준은 전후 인민민주주의를 구축했던 북한사회의 대내체제가 과연 변질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유럽의 인민민주주의는 거의가 완벽하게 변했다. 서독이 동독을 편입통일하기로 한 10월3일 이후의 독일문제는 냉전의 문제가 아니라 「냉전이후」의 문제에 속하게 된다. 독일민족은 민도라는 각도에서 이를 잘 처리하고 있다. ○결국 석유문제가 본질 그러나 한반도문제를 냉전과 냉전이후라는 관점에서 비교해 볼 때 그 역이라고 보아진다. 우선 북한사회 자체가 변모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다는 점이며 더 나아가서 북한이 역으로 남한사회의 대내체제를 「변질」시키려 달려들고 있으며 우리가 이에 말려들고 있다는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북한의 대남제의에서 남한의 모든 체제적인 법을 고치라는 것이며 이를 옹호하는 한국내의 정치적 호응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문제점은 북한의 대내체제는 추호도 변하려는 징조가 없으며 북한의 체제적인 힘으로 역으로 남한의 대내체제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다. 또 남한의 많은 허점이 있다는 점에는 정치권마저 무관심하다. 정부는 자만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전문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는 북한은 동유럽 국가처럼 변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냉전이후적인 성격의 중동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점이다. 중동문제는 곧 우리 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석유문제가 그 본질이다. 이미 이 문제는 1981년 전두환­레이건 공동성명서에서 에너지자원에 대한 보장과 합의조항이 있었다. 고전적인 국제문제로서의 중동문제에서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동향을 우리는 냉전시의 과거보다 더욱 주시할 때라고 본다. 아마도 냉전이후의 문제로서 미소관계를 보면몰타 정상회담이후 처음으로 소련의 세계관 변화를 보여주는 일이 되며 미국이 비냉전적인 중동문제를 어떻게 다루어갈 것인가하는 중요한 문제점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이 중동문제를 다루어가는 비냉전적인 방식에 대한 일본의 반응도 흥미롭다. 일단 주춤했지만 일본은 중동에 법을 고쳐서라도 소해정을 파견할 문제를 토의하기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나 한국전쟁때 유엔군의 파견형식이었던 유엔에 의한 집단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냉전적인 문제에서 한미간의 동맹관계를 어떻게 형성시켜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리 정부는 그렇게 심각하게 한반도문제나 우리 남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중동문제라는 비냉전적인 문제를 다루어가는 과정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중동문제라기 보다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장차 한반도문제와도 깊이 관련할 수 있는 여러가지 중요한 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비냉전적인 상황과 새로운 문제의 전개에서 문제의 핵심은 우리의 에너지자원을 확보하는 데 어떤 세력과 협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게르만처럼 현명하게 우리는 지금 냉전적인 문제인 남북한관계의 개선이나 비냉전적인 문제인 중동문제라는 이중적인 문제를 안고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상황사이를 헤매고 있다. 아마도 해방이후 오늘처럼 높은 지혜와 특히 민족의 지혜를 집약한 정치적 지혜의 수준인 우리의 민도를 우리가 보다 높이 끌어올려야할 때는 없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의 총체적인 민도가 어느 수준인가 하는 것을 게르만민족처럼 발휘해야 할 때라고 보기 때문이다. 남북한관계가 지금처럼 좌절되고 현명하게 처리되지 못하고 새롭게 고전화하는 세계속에서 우리 이익을 현명하게 지킬 줄 알 때만이 좌절이 아닌 우리 민족의 민도를 인정받게되는 것이 아닐까. 또 이러한 민도의 수준의 한반도의 민족통합과정에도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닐까.
  • 우루과이라운드와 우리의 대응(사설)

    우루과이라운드 농업협상에 대한 국내 농업단체나 농어민들의 우려와 반발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농협과 축협이 정부에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을 거부할 것을 촉구한 데 이어 지난 20일부터 이틀동안 국립농축원에서 열린 제2회 전국농어민후계자대회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성토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농업관련 단체나 농민들이 이 협상에 대하여 불안해 하는 이유는 협상결과에 따라서 추곡수매제도,농산물가격안정대사업,비축사업,작목전환사업 등 정부의 농업보호정책이 철폐되거나 단계적으로 축소된다는 데 있다. 정부가 각종 명목으로 보조와 지원을 해주어도 도시에 비해 농촌이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있는 농촌현실에서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타결되면 우리 농업은 또 하나의 시련과 타격을 받게 된다. 그 때문에 농민들이 불안해하고 협상자체를 거부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협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외국과의 거래없이 고립주의 또는 폐쇄적 경제를 지향하지 않는 한 협상을 부인할 수가 없다. 국민경제의 약 70%가 무역에 의존하는 현실여건에서 경제의 고립적 사고는 발상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농업단체나 농민들의 협상거부의 소리는 우루과이라운드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에서 나온 반사적 반응으로 여겨진다.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농민들의 조건반사적 행동이나 주장이 우리 농민은 『살 길이 없다』는 패배주의적 사고로 이행되고 있는 점이다. 그동안의 농업을 둘러싼 환경이 악화일로를 거듭해 왔고 우루과이라운드라는 국제경제질서의 개편이 황량한 파고를 몰아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나친 패배주의적 사고나 행동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우루과이라운드의 농업협상 결과는 우리만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신다자간 무역협상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만이 농업에 대하여 보조금을 지급해 온 것이 아니다. 미국이나 캐나다,EC의 농민들은 우리나라 농민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받고 있다. 바꿔 말해서 협상결과에 따라 우리 정부가 각종 농업보호정책을 추진할 수 없게 되면 다른 나라도 그것을 할 수가 없다. 이는 현재 각국의 농민들이 같은 입장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사실은 우리 농민만이 더 비관적이고 패배주의에 젖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아울러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설혹 시한인 연말까지 협상이 끝나 내년부터 보조정책이 추진된다 하더라도 협상의 이행기간이 10년이어서 그 기간내에 대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정부와 농어민이 합심하여 우루과이라운드이후 대응전략을 짜내고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느냐에 있는 것이다. 농업구조 개선사업을 보다 앞당기고 보조금 감축에 대한 합의원칙 범위내의 가격지지와 소득보장정책의 개발,수출유망 농산물의 개발,농산물 유통구조개선,농외소득증대,농촌의 사회간접자본및 복지시설의 확충 등 현안과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농민연금제와 작물보험등 농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복지제도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간다면 우루과이라운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 90년대의 국제경제와 우리의 대응/오용석 대외경제정책연 연구위원

    ◎동구권의 「시장화」가속… 세계경제 “대통합”/서방지원 한계로 소등 경협상대 찾기 부심/잠재력 큰 시장 선점,선진진입 발판 삼아야/구상무역등 활용하면 값싸게 자원확보의 길 열수도 90년대 세계경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 변화요인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회주의권의 급격한 변혁이다. 과거 세계경제에 대해서 폐쇄적이었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안으로는 시장화 개혁을 추진하고 밖으로는 개방정책을 펴면서 세계경제에의 통합을 위한 노력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경제체제는 사회주의경제보다는 「신시장경제」(NMEs)로 정의되는 것이 타당하게 되었다. ○신시장화 경제 촉진 소련경제의 경우 시장경제화 개혁추진의 시간표는 90년을 준비기,91∼92년을 형성기,93∼95년을 발전기로 나뉘어 짜여져 있다. 이 시간표에는 가격과 금리를 현실화하는 것을 비롯하여 국영기업들을 쪼개어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독점을 금지시키며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고 소득세와 법인세를 부과하는 개혁의 내용들이담겨져 있다. 이 시간표대로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93년부터 소련경제는 본격적으로 세계경제에 통합되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왜냐하면 소련은 제2단계인 형성기간중에 에너지 철도ㆍ통신분야를 제외한 국영기업의 60%를 사유화하고 사유화된 기업들과 외국자본의 합작을 통해서 세계시장에 적극 참여한다는 경제의 국제화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련은 지금까지 시장화와 분권화가 이루어진 부문에서 적지 않은 혼란과 문제점의 야기로 시장경제로 급격하게 옮겨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헝가리의 저명한 경제학자 코르나이박사가 사회주의경제를 「부족의 경제」로 표현한 그대로 소련은 오랫동안 소비재 부족에 시달려왔다. 그 위에 금년 상반기에는 생산마저 감소한데다가 정부의 통제가 허술한 틈을 타서 사재기까지 성행,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화가 이루어져 민간저축 중에서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대기성 수요액 1천6백여억루블에다 기업저축까지 합한 약4천억루블에 달하는 돈이 일시에 구매력을 갖게 된다면 소련경제는 엄청난 인플레에 휩쓸리게 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또한 국내공급부족을 메울 수 있는 수입도 관리경험부족과 외환수요의 급증으로 수입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직면하고 있다. 지금 소련은 시장화 개혁을 서두르고 「우루과이 라운드」에 관심을 보이면서 GATT에 참여하고자 하지만 원하는대로 소련경제가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세계경제에의 통합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또한 소련이 경제적 난국을 벗어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서방의 경제적 기술적 지원이다. 그러나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초강대국이라는 소련의 국제적 이미지에 변함이 없는 한 서방국가들이 소련에 대대적인 경제원조나 기술지원에 제공하리라고 기대되지 않는다. 그러면 소련은 군사적 우월주의를 포기할 것인가. 경제적 난국을 벗어나기 위해서 군비축소를 단행할 것은 틀림없다. ○수출입경험도 부족 그러나 거기에도 한계는 있다. 우선은 소련군부의 불만이 폭발하지 않는 군비축소의 수준이어야 하고,연방내 공화국의 분리독립을 막는데 문제가 없어야 하며,소련의 국제적 위상을 지키기에 충분한 군사력은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은 90년대에도 군사적 강대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 이렇게 본다면 소련이 서방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경제적 기술적지원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경제는 동유럽경제의 움직임과 궤도를 같이 하면서 세계경제에 통합되는 범위를 계속 확대시킬 것이다. 앞으로의 고르바초프 진퇴나 페레스트로이카의 성패에 상관없이 이미 소련은 세계경제와의 관계를 갖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독일이 통일되고 경제적으로 소련과 관계가 깊은 동유럽국가들일수록 서둘러 시장경제체제로 옮아가고 있으며 발트 3국을 비롯한 소연방 내의 공화국들도 소련보다는 서방국가들과의 경제관계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또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경제적 유대를 맺어주었던 CMEA(또는 COMECON)의 존속도 불가능한 형편이다. 통일독일이 이 기구 회원국이 될 까닭이 없으며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은 오히려 EC회원국이 되는데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더욱이 지난 연말 이후 동유럽의 민주화와 시장화 개혁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서방국가들이 유럽부흥은행(EBRD)을 설립하고 「제2의 마셜플랜」이라고 할 「스트라스부르 플랜」을 세워두고 있다. 이러한 서방의 동유럽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개혁함정에 빠져 있는 동유럽 국가들을 돕는데 그치지 않고 동서간의 경제적 연대를 크게 강화시킴으로써 그들의 세계경제에의 통합을 더욱 촉진시키게 할 것이다. 한편 중국경제는 작년 천안문사태를 진압한 보수파들에 의해서 80년대의 개혁과 개방에서 야기된 경기과열,경제불균형,인플레,외채증가 등과 같은 문제들을 해소시킨다는 명목으로 긴축과 안정지향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코메콘 존속 불가능 그러나 보수세력이 주도하는 긴축정책은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게 됨으로써 개혁파들에게 비판과 더불어 개혁을 요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다른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앞서 개혁과 개방을 추진해 왔으나 아직도 후진상태를 못 벗어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중국정부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시대에도 역행하는 보수주의 정책을 계속해서 펴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중국정부는 작년 6월 천안문사태로 악화된 현집권층의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시키지 않고서는 그동안 대외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경제를 운용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국민과 정부 모두 중국은 과거처럼 문을 걸어잠그고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국도 개방 서둘러 중국국민들은 대부분 지난 10년전에 비해서 지금 더 잘살게 된 것을 개혁과 개방의 덕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관리들도 2000년 이전에 세계 10대 교역국이 된다는 목표를 달성하고 여전히 낙후상태에 있는 산업과 사회간섭자본의 개발에 더 많은 외국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혁과 개방의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개혁파 뿐만 아니라 보수파들도 모두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중국은 이미 IMF체제에 가입되어 있고 GATT의 옵서버국으로서 우루과이라운드와 각종 국제경제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상당부분 세계경제에 통합되어 있는 셈이다. 그밖에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중국은 대만과 경제교류를 확대함으로써 97년 홍콩이 본토에 편입되는 것을 계기로 대만과의 경제통합을 시도할 생각인 것 같다. 특히 중국은 남북한간의 긴장완화와 교류를 측면지원함으로써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북한의 부담을 더는 한편,소련 및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서 90년대 안에 동북아 지역협력체구축에 적극 나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남미 답습은 안될 일 신시장화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는 사회주의권은 우리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급격한 체제변혁에서 오는 내부적 갈등과 시행착오로 혼란과 불확실성이 큰 이 새로운 시장에 우리는 과연 모험을 걸 필요가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 아니면 남미경제처럼 성숙기로 들어서지 못한 채 좌절을 맛보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경제가 스스로 해주고 있다고 본다. 지금 우리경제는 높은 임금과 인플레의 압력 속에서 제조업에 대한 투자보다는 소비중심의서비스부문에 투자가 더 크게 늘고 있는가 하면,수출시장의 블록화로 무역장벽이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수출상품의 국제경쟁력마저 급격히 낮아져 무역적자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그 위에 중동사태로 석유값이 크게 오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비싼 수입원자재 값이 중동사태의 여파로 더더욱 오를 기세다. 이에 대한 적절한 돌파구가 미리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 결과가 고스란히 국내물가와 국제수지에 반영되어 우리 경제의 주름살이 엄청나게 깊어질 위기를 맞고 있다. ○과감한 승부 걸어야 우리 경제가 당면한 위기와 시련을 극복할 돌파구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NMEs이다. 이들 지역에 대한 개발투자가 잘만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당장 필요로 하는 자원을 값싸게 공급받을 수 있다. 또한 이들 지역은 우리상품의 수출시장으로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소련과 동유럽의 경우에 그들 정부의 긴급 수입물자를 파악하고 상담과 계약을 잘 진행시키거나 구상무역방식에 의해서 수출상품에 대응하는 수입상품을 잘 선택하여 교역을 한다면 수출대금결제에서 생기는 문제를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우리의 경쟁대상이면서 동시에 협력과 진출의 대상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들이 신중한 자세로 NMEs시장진출에 망설이고 있는 동안 우리는 결코 무모하지 않으면서도 그러나 과감한 승부를 거는 지혜를 총동원,우리 경제의 활로를 그곳에서 찾아야 할 기회를 맞고 있다.
  • 페만사태로 「정치대국」 꿈 깬 일본/엉거주춤 대응의 속사정

    ◎함선 파견못해 「선언적대응」일관/“우린 어차피 마이너리그”자조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불법점령한 직후 부시 미국대통령과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사이에 오간 전화협의 내용은 중동사태에 대한 일본측의 대응자세와 입장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부시 미대통령=일본이 페르시아만연안의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일본ㆍ이라크사이에 채권ㆍ채무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로 일본의 행동이 제약받지 않기를 희망한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용서하면 또다른 행동을 취할 것이다. ▲가이후 일본총리=일본으로서도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서방제국이 취하고 있는 조치와 같은 입장에 서서 가능한 수단을 강구하려하고 있다. ▲부시=총리의 말을 듣고 큰 힘을 얻었다. 후세인을 용서해서는 안된다. 일본이 유엔 안보리결의를 기다리지 않고 이라크ㆍ쿠웨이트로부터의 석유수입금지를 포함한 4대 경제제재를 결정하게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지난 4일의 이같은 미일 수뇌전화회담의 결과였다. 지난 79년 테헤란에서 미대사관원 인질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본이 대 이란 비난성명을 발표하는데만 1개월이 걸렸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일본의 대응은 재빨랐다. 일본정부가 취한 제재의 내용은 ▲이라크ㆍ쿠웨이트로부터의 석유수입의 금지 ▲양국에의 수출금지 ▲양국에의 투ㆍ융자 기타 자본거래를 정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 ▲이라크에의 차관공여등 경제협력의 동결의 4가지였다. 일본은 이라크ㆍ쿠웨이트의 석유에 전석유수입량의 12%정도를 의존하고 있다. 이라크에는 재벌급 상사를 중심으로 약 6천억엔의 채권도 갖고 있다. 석유공급이 핍박되고 대 이라크채권을 회수 못하게 될 염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는 유럽공동체(EC)를 능가하는 대이라크 경제제재를,그것도 유엔안보리결의를 기다리지 않고 결정한 것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부시 미대통령도 그후 가이후총리가 전화를 걸었을 때 『일본의 조치는 세계전체에 고무적인 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순조로웠던 것은 여기까지였다. 미국을 위시한 영국ㆍ프랑스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맹국 및 나토에 가맹치 않고 있는 오스트리아 마저 함정ㆍ항공기 등의 군사력을 페르시아만에 투입했으며,이라크가 국내주재 외국인의 출국을 인정치 않고 「인질작전」을 펴기 시작하자 일본정부의 대응은 엉거주춤 하게 되어 버렸다. 거기에는 「경제대국」은 될지언정 「정치대국」은 될 수 없는 일본의 「현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첫째로 일본은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할 수 없다. 기껏 재정지원의 형식을 취하게 되지만 유엔의 평화유지활동(PKO)이외의 다국적군에의 재정지원은 야당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이 역시 힘들다. 둘째로 일본은 중동지역에서 「손이 더럽혀지지 않은」(외무성간부의 표현) 대신 외교적인 축적도 없다. 아랍제국자체가 분열돼 있는 현상에서는 조정국의 역할을 맡거나 화평에 공헌하는 것 등 실제문제에서 불가능하다. 『중동문제에서는 어차피 일본은 마이너리그의 멤버일 뿐』이라고 외무성간부는 자조적으로 말한다. 취임이래 외교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또 그 때문에 공전의 지지율을 받고 있는 가이후 일본총리가 15일부터 예정되었던 사우디아라비아ㆍ이집트 등 중동5개국 순방을 10월중순으로 연기하고 대신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외상을 특사로 17일부터 파견키로 결정하고 상대국에 통지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고육책이었다. 급변하는 중동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공헌책을 내놓을 수가 없으며 오히려 미지의 위험부담만 크다는 판단이 섰던 때문이다. 일본총리의 외유가 이처럼 각의 결정후 취소된 것은 처음이며,이로인한 가이후 총리자신의 이미지 해손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방문예정국 뿐만 아니라 미국등 서방제국으로부터의 기대,휴스턴 서미트(선진국수뇌회의)에서 「세계에 공헌하는 일본」을 제창했던 외교적 입장도 포함된다. 이번 가이후총리의 중동순방을 놓고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적극론도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역시 실제로 방문했을 경우 구미와 중동제국이 이미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 가운데 「다국적군」에의 지원등 구체적협력을 요청받게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럴경우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과연 이해를 얻을 수 있는가. 구제책을 내놓지 못하고 대신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컸다. 일본은 현재 중동지역의 평화와 질서 회복에 대한 구체적인 공헌을 위해 정부의 기본방침을 마련하고 있다. 그 내용은 헌법상의 제약에 따라 군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대 이라크 제재의 영향으로 경제적 타격을 받은 중동 각국에 경제지원을 행하며,기타 국가에도 경제면 이외의 지원책을 검토한다 ▲다국적군에의 자금원조에는 신중히 대처하며 함선의 파견은 해상자위대는 물론 해상보안청도 포함해 행하지 않는다 ▲인원 파견은 의료관계를 중심으로 검토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세계평화에 공헌하는 구체책일 수는 없다. 이번처럼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이루어야 할 것인가라는 상황은 일본에 있어서는 이례의 시련이다. 경제대국 답게 유류파동에 대처하기 위해 관공서의 냉방을 28도로 유지하고 전등의 3분의 1을 소등하며 고속도로는 80㎞주행,이같은에너지절감책을 민간에도 유도하는 것(13일 에너지절약대책추진회의 결정)만이 일본의 대책일 수 만은 없기 때문이다.
  • 광복 45주년/통일,대화·교류이외 다른 길 없다(사설)

    다시 광복절을 맞는다. 감격과 통한이 표리를 이루는 광복 45주년이다. 돌이켜보면 45년전 우리 민족의 광복은 지상의 환희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국토의 단절과 민족분단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민족적 시련과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이 국권을 상실하고 주권을 빼앗겼던 시기는 일제 36년 뿐이었다. 참으로 그것은 민족사의 오점이었다. 그 오욕의 흔적을 지우고 광복의 역사를 시작하려 할 즈음 민족분단은 다가온 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은 무엇인가. 광복의 의미를 다시 살려 분단을 극복하는 오늘이어야 한다. 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민족화합의 경축일이 되려면 우리는 먼저 민족적 대결과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을 열어야 한다. 아니 파괴해도 좋다. 이 광복의 달에 판문점에서는 남과 북이 제각기 체제와 이념과 색깔을 달리해서 벌이는 집회가 빈번하다. 저쪽에서는 이른바 범민족대회의 백두산 출정식이 있었다고도 들린다. 이쪽에서는 북쪽으로의 행진을 가로막는 철조망을 절단하는 모습도 비쳐졌다. 그 뿐이었다. 남북간의 인적 교류를 통해 통일을 앞당기려는 「민족대교류」 기간인 데도 실질적인 교류는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이 오갈 수 있는 길목에 임시 세관과 환전소가 차려졌지만 세관을 통과할 선물보따리도 없고 동전한닢 바꾼 실적도 없다. 무엇보다 단 한사람 오고가지 못했다. 임진각 망배단 앞에 세운 망향우편함엔 이산가족들의 한맺힌 사연편지가 가득한데도 그것을 전해줄 우체부의 발길이 막혔다. 남북의 자유왕래야말로 민족문제 해결에 있어서 최우선의 중요과제이다. 통일은 해야한다. 반드시 이뤄야할 민족적 과업이다. 통일없이 우리 민족은 평화로울 수 없고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통일은 자유와 민주,평화의 이념아래 이룩돼야 한다. 남북한의 완전개방과 자유왕래야말로 그 통일에 이르는 지름길인 것이다. 쉬운 것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남북 양쪽 모두 정치적인 이기심이나 「선별」을 자처하는 개인 단체,그리고 「영합논리」를 앞세우는 극우,극좌의 행동으로 독점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통일이다. 8·15가 민족화합과 통일의 경축일이 되려면 민족성원 모두가 참으로 겸손하고 진지해야 하는 것이다.○통일추진의 과제와 미래상 광복 45년은 실은 우리민족에게 영광과 환희의 길이 아니라 기나긴 인고의 세월이었다. 민족간의 적대적 대결과 증오를 증폭시킨 기간이었고 시련의 연속이었다. 민족적 시련은 3년에 걸친 동족전쟁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20세기에 들어와 계속되는 내외적 격동기를 살아왔으며 어느 하루인들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없었다. 이제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고 우리가 쌓아온 역량을 바탕으로 통일된 근대적 민족국가의 확립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안에서 국민적 역량을 한데 모아 그것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내부적으로는 민주화 정착과정에서 의회주의와 법치주의가 확립돼야 하고 다원주의가 존중돼야 한다. 그러한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분명하게 실천하는 문제는 통일추진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가 된다. 또한 오늘의 냉엄한국제관계속에서 민족이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북이 대화를 통하는 길밖에 없다. 일찍이 남과 북이 합의한 7·4 공동성명의 정신이 그것이었다. 대결하는 상대가 아니라 공존해야 할 한민족임을 천명한 7·7 특별선언이나 무조건 개방하고 왕래하자는 민족대교류 선언이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남북의 대화는 첫째 서로가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둘째 남북이 전쟁이 아닌 평화주의적 해결방식에 동의한다는 것이며,셋째 분단이 외세에 의해 강제되었음을 인식하면서 남북의 당사자가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데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자주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광복의 날,다시 시작하는 마음 다시 강조하건대 광복의 의미를 되살리는 길은 통일 말고 달리 없다. 한반도 우리민족의 통일은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세계질서속의 마지막 동참자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하고 교류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다시는 전쟁을 말아야 한다.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따위 비현실적이며 소모적인 대결의식과 민족분쟁을 지양하고 평화만을 추구해야 한다.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인식하는 첫단계는 민족전쟁으로 인해 남북으로 갈라진 이산가족들이 재회하는 일이다. 남북이 대화하고 민족이 교류하며 그로서 다시 손잡고 화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북한의 고립과 혼란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북한의 개방을 바라는 것은 그들 체제와 이념의 와해를 염두에 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의 변화와 개방을 통해 남북대화와 교류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신뢰를 유도하고자 하는 충정에서인 것이다. 오늘의 우리 역사 현실이 혼돈과 좌절이 엇갈리는 고난의 시기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민족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광복 45주년을 기한 민족대교류나 또는 전민련이 발의하여 북한측이 주도해온 범민족대회가 모두 무위로 끝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또 한번 깊은 회의와 좌절감을 갖게 된다. 민족의 역량이 고작 이 정도여서는 안된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남과 북이 배타와 이기와 아집과 편견을 버리고 민족적 대의앞에 다시 서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가 그에 더하여 자성의 목소리를 다듬을 때 역사는 그의 편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는다.
  • 상항 차이나타운이 시들어간다(세계의 사회면)

    ◎지난해 강진후 달라진 사정을 보면/도로등 복구 미비… 관광객들 큰 불편/상점 수입도 절반으로/파산 상인들 이주 러시 올해는 중국인들이 사업과 금전운이 가장 좋다고 믿고 있는 말띠해. 그러나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 사회에서는 정작 말띠해임에도 불구,사업부진으로 파산하는 상인들의 숫자가 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지금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그동안 가격과 독특한 기념품으로 전 세계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이 도시의 명소였다. 그러나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고있는 많은 중국인들은 『차이나타운은 이제 종말을 맞고 있다』며 자조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30년동안 차이나타운에서 일반잡화상을 경영해 왔다는 제임스 디아씨는 『최근 몇달동안 수입이 35%나 줄어들었다』고 울상을 지으며 『이젠 더 이상 버틸힘이 없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고 현재의 상황을 토로했다. 차이나타운이 이처럼 존립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한 지진때문이다. 이 지진으로 차이나타운의 동맥역할을 해오던 고속도로(프리웨이)가 완파되고 이에 따라 교통사정이 나빠지면서 차이나타운을 찾는 관광객의 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만신창이가 됐던 고속도로는 지진발생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완전복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 그런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뛰어오른 건물 임대료는 차이나타운의 침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지난해 지진이후 차이나타운의 여건이 나빠지자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중국인들은 지금 차이나타운을 벗어나 이웃 오클랜드나 샌호제이 등지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다 화교사회가 이렇게 위축되자 본토인 중국 상공회의소의 로제팍씨는 『비록 현재의 상황이 어렵다 할지라도 선조들의 정착 초기시절을 생각하며 차이나타운을 지켜달라』고 설득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같은 만류에도 불구,정든 이곳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자신들의 사정때문에 차이나타운을 등지는 중국인들 수는 계속 늘고만 있다. 자유와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중국인들의 이상과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형성된 차이나타운. 그러나 차이나타운도 이제는 더이상 이들에게 꿈과 이상은 주지못한채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속에서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다.
  • 이산가족 기대 외면한 북한(사설)

    남북한을 왕래하는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보험상품이 개발,판매된다는 보도가 있던날 북한측은 방북신청자 명단접수를 거부했다. 그들은 또 북측의 남쪽방문희망자 명단전달도 역시 거부했다. 이는 북한이 우리쪽의 민족대교류 의지와 제의를 총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라 할 것이다.이제 남북한간 대화와 교류는 다시 커다란 시련과 난관에 봉착했다. 북한 방문신청서를 결코 종이한장의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거기에는 분단의 아픔과 이를 극복하려는 전민족적 열망과 기대가 가득 담겨 있다. 닷새동안 6만여명이 방북을 신청했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6만여명의 신청자들은 고향방문의 가능성과 가족친지들과 재회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열일 제치고 접수창구를 찾았을 것이다. 그 확신은 북한 당국자들에 대한 막연한 신뢰에 근거했을 것이다. 그들도 한 핏줄을 나눈 같은 민족일터이니 결코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기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과 기대는 다시 한번 외면당한 것이다. 우리는 북한측의 계속되는 거부의 몸짓을 지켜보면서 남북한 대화가 분단극복과 갈등해소,그리고 민족화해와 통일이라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으려면 어떠한 구조와 방법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남북의 갈등과 모순은 반드시 대화를 통해서만 풀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현실속에서 추진되고 있는 남북대화로서는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어느 한쪽이 상대를 이해하려 하지않고 인정하지 않으며 신뢰하여 하지않기 때문이다. 대화와 교류의 원칙이기도 한 이해와 인정과 신뢰의 측면에서 보면 북한의 거부적인 자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또 하나 북한측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일관된 대남전략은 남북한 대화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다. 북한은 먼저 이해를 넓히고 신뢰를 회복하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함과 동시에 그들 스스로 대남전략차원의 장애요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지금단계에서 우리는 북한측에 다시한번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대화에 나서줄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자한다. 우선 쉬운 문제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대화와 교류의 폭을 넓혀 가자는 것이다. 예컨대 최근 한국방송공사(KBS)가 제의한 이산가족찾기 남북 공동방송사업 등을 들 수 있다. 방송매체가 갖는 특유의 사실성과 전달성,또 지속성으로 하여 매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알듯이 통일논의처럼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하면서도 또 그때마다 실망만 안겨준 것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럴수록 현실적으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이 서로 머리 맞대고 손을 잡는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또한 상대가 없는 통일논의는 무의미하고 상대방이 호응하지 않는 제의는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남북한 관계가 지금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북한의 거부자세가 언젠가는 변하리라고 확신한다. 그때까지 민족대교류의 노력도 계속될 것이다.
  • 소,대북한 군원등 축소/당 국제부장

    ◎“석유공급은 이미 줄여”… 관계 급냉 시사 【도쿄=강수웅특파원】 소련 공산당 외교정책의 핵심인물인 발렌틴 M 팔린 당국제부장은 지난 30일 일본 산케이(산경)신문과 가진 단독회견에서 『소련이 북한에 대한 석유공급을 이미 삭감했으며 장차 군사원조도 축소할 방침』임을 고르바초프정권의 외교책임자로서 처음으로 밝혔다고 산케이신문이 31일 모스크바발 기사로 보도했다.〈관련기사5면〉 팔린부장은 또 소련은 무기수출을 외화획득원으로는 간주하지 않는다는 새로운 방침을 밝히고 극동군사력에 대해서는 소련 태평양함대를 지금이상으로 삭감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그는 한반도문제에 언급,『북에서도 남에서도 상황은 움직이고 있다. 오랫동안 한반도정세를 특징지어온 얼음은 급속히 녹을 것이다. 양측 국민들은 20세기에 그들이 겪은 모든 시련으로부터 보상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남북대화등 한반도의 해빙무드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는 또 지난 6월초 사상최초의 한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알력과 함께 관계가 냉각된 것으로 전해진 대북한 경제원조의 실상에 대해 『소련은 북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석유의 공급·수출을 줄였다』고 밝히고 이는 『소련의 정치적 의도에서 취해진 것이 아니라 소련의 석유생산과 채굴량이 감소된 경제적 이유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출용으로 책정됐던 6백만t의 석유는 국내의 농업용으로 전용중이라고 밝혔다. 산케이신문은 끝으로 북한이 소련에 의존하고 있는 석유와 무기의 삭감을 소련의 외교담당자가 명백히 밝힌 것은 두나라 관계가 일층 냉각화되고 있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쿠바 북한 소 경원 줄자 「공산경제」허덕인다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으로 쿠바가 상당한 경제혼란에 빠진 것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소련의 대북한 석유공급이 이미 감축됐으며 앞으로 군사원조도 축소될 것이라고 팔린 소공산당 국제부장이 밝힘으로써 북한도 쿠바와 같은 경제혼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소련은 이같은 석유공급 감축이 국내생산 감소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탈냉전 조류를 도외시한 채 사회주의 고수를 외치는 북한과 쿠바에 대한 우회적인 압력수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으로 북한이 겪게 될 어려움,소련과 쿠바의 사정등을 알아본다. ◎원유수급 차질 북한/소의존 높아 30% 줄면 “산업휘청”/전력난 겹쳐 공장에도 제한송전 소련이 최근 북한에 대한 원유공급을 삭감한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소련의 이같은 대북한 경제원조 축소가 북한경제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소련이 지난 7일 쿠바와 동구에 대해 국제시세보다 3배가량 싸게 공급해온 「대외원조용 원유」를 30% 삭감키로 결정한 이후 이들 나라들이 심각한 「오일쇼크」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대소 경제의존도가 이들 나라보다 결코 낮지 않은 북한이 겪을 경제적 타격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은 원유수입량의 약 30∼40%를 소련에 의존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를 삭감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소련이 비록 「정치적」이유에서 원유공급을 삭감키로 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해 있는 북한으로서는 이번 조치로 인해 심상치 않은 경제적 시련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경제의 대소 의존도는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지만 지난해 3월 소련당국이 발표한 대북한 경제지원 내역에 따르면 소련은 54∼60년 사이에 13억루블을 원조했으며 소련상품이 북한의 총수입상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7%나 됐다. 특히 북한의 대소무역의존도는 절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무역진흥회(JETRO)가 지난 87년 북한과 거래했던 세계 33개국의 무역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대외수출은 14억6천만달러,수입은 20억7천만달러이며 이중 북한과 소련간의 왕복무역 규모는 총 19억5천만달러(전체대비 55%)로 2위인 중국과의 교역액 5억2천만달러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또한 북한의 대외 채무액은 88년말 현재 약 52억달러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1채무국 또한 소련이기 때문에 소련이 대북 경제압력을 가할 경우 북한으로서는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소련의 원유공급 삭감이 미칠 영향과 관련,북한의 에너지 공급현황을 보면 석탄 70%,석유 30%로 비교적 석유의존율이 낮기는 하지만 현재 석탄의 생산실적이 목표량인 1억2천만t에 크게 밑도는 4천70만t에 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소련의 이번 원유삭감 조치는 설상가상의 어려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전략생산부문에 있어서도 오는 93년까지 1천7백만㎾의 발전설비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현재까지의 추진실적은 6백90만㎾에 불과하며 연간 발전생산량 역시 목표량 1천억㎾H에 크게 못미치는 3백억㎾H로 심각한 전략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소련은 북한의 전력생산을 증가토록 지원하기 위해 93년까지 총 1백76만㎾의 원자력 발전소(44만㎾급 4기)건설을 지원키로 합의했으나 북한의 핵안전협정체결 거부로 인해 소련이 원자로 4기의 대북판매를 일단 중단했음이 지난달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이사회에서 확인됨에 따라 이 계획 역시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결국 동력원료 연료로서 주된 에너지를 공급하는 전력ㆍ석탄부문의 저조한 실적은 현재 북한의 공업생산과 경제건설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을뿐 아니라 「제한송전」등 주민생활에도 엄청난 불편을 입히고 있다. 따라서 연간 80만∼1백만t 규모(전체대비 40% 정도)로 알려져 있는 소련의 대북 원유공급량중 그 삭감량이 30% 정도만 되어도 북한경제는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교역길도 막힌 쿠바/연료 할당량 줄어 국민불만 팽배/에어컨 가동중지ㆍ버스운행 단축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발표한 대통령포고령을 통해 『제3세계에 제공되는 소련의 대외원조는 재정적으로 궁핍한 소련경제에 비춰볼때 감당하기 어려운 「사치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고르바초프는 또 향후 『동구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 회원국과의 무역관계를 완전히 태환성을 갖는 통화로 국제가격에 따라 거래되도록 보장함은 물론 이같은 방침을 COMECON 이외의 국가들에게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포고령이 발표된지 5일 후인 지난달 30일 발렌틴 팔린 소련공산당 국제부장은 일본 산케이(산경)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소련이 북한에 대한 석유공급을 이미 삭감했으며 앞으로는 군사원조도 축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외교책임자인 팔린의 이같은 발언은 고르바초프의 포고령이 이미 실시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소련경제가 대외 군사ㆍ경원까지 감축해야 할만큼 악화됐음을 시사한다는 점과 소련의 대북한 군사ㆍ경제원조의 감축이 경직된 사회주의체제의 유지를 고집하는 북한에 얼마만큼의 압력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두가지 측면에 서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추진 5년동안 전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소련경제는 지금 글자 그대로 파탄 일보직전에 놓여 있다. 유일한 희망이라곤 고르바초프의 권좌유지를 희망하는 서방으로부터의 경제원조인데 그것도 소련경제의 탄력성에 회의를 품고 있는 서방기업들의 망설임때문에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력의 낭비를 최대한으로 억제하겠다는 고르바초프의 의지표명이 제3세계에의 경제원조 중단으로 나타났다는게 소련관측통들의 분석이다. 동구 각국과 쿠바는 이미 소련의 석유공급감축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는데 자유시장경제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시도하고 있는 동구국들과는 달리 사회주의경제체제를 고집하는 쿠바가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동구 각국은 가격인상등을 통해 미약하나마 수요를 억제할 「장치」가 있는데 비해 쿠바에선 연료할당량의 감축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는 사무실에서 에어컨 가동 중지령을 내렸으며 일부 지역에선 트랙터 대신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일이 다시 등장했고 자칫하면버스운행마저 중단될 위기에까지 이를 수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제ㆍ군사적으로 대소의존도가 높은 북한 역시 쿠바와 마찬가지로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이 오랜동안 계속될 경우 상당한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달 25일 고르바초프의 포고령이 세계적인 탈냉전 분위기를 외면하고 있는 쿠바와 북한을 의식했든 안했든 결과적으로 그것이 두 나라에 상당한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련의 석유공급 감축은 한사코 마르크스주의의 수성을 고집하는 쿠바와 북한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지는 못하겠지만 대소 의존이란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개방촉구의 압력수단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 “「민족대교류」 정신을 살리자”/정종욱 서울대교수(세평)

    ◎통일문제엔 정부­재야 공동보조 바람직 끝내 무산되고 만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우리 모두를 이렇게 실망과 허탈감에 빠지게 하는 것은 그것이 7·20 민족 대교류 제의에 이은 민간차원의 첫 교류시도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 글자 그대로 자유왕래를 허용하겠다는 노태우대통령의 제의는 북측의 반응과 관계없는 우리측의 일방적 자유왕래의 실현의지를 담고 있었기에 대단히 신선한 것이었다. 특히 이번 대회를 주관한 단체가 전민련이였기에 우리는 정말 이제는 뭔가 되겠구나 하고 잔뜩 기대했었다. 전민련이 정부와는 다른 입장에서 통일문제를 접근해왔다는 점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북한측이 내세우는 전민족적 통일전선에서 남쪽의 핵심세력이 전민련과 같은 재야단체라는 사실도 부인할 필요가 없다. 그런 조직이 정부와 합의해서 우익단체들까지 포용하여 범민족대회를 준비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우익은 고향방문단에나 끼이고 반정부 인사들은 정부 몰래 평양축전이나 참가하는 비극이 이제는 되풀이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흐뭇해 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세한 사정을 잘 모르는 국민들에게는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 때문에 분단의 벽을 뚫어놓을 역사적 기회를 놓쳐버렸으니 통탄할 수밖에 없다. 정부측에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북측의 웬만한 트집은 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7·20제의의 기본정신이였다고 보면 정부의 태도는 국민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북측 대표가 우리측의 안내를 받아야한다는 점은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는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주최자인 전민련에게 모든 절차의 주도적 역할을 맡겨야 했었다. 북측 대표의 안전과 무사귀환을 요청한 총리간의 서신을 얘기하지만 이것이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우리를 실망하게 만든 것은 숙소와 회담장소문제이다. 주최측에서 아카데미하우스를 정했으면 정부가 이에 협조하면 그만일터인데 굳이 현대식 호텔인 인터콘티넨탈로 고집한 것은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북측 사람들을 1류 호텔에 투숙시켜 우리의 앞선 경제를 보여주겠다는 계산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이는 큰 잘못이다. 우리의 장점은 잘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서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빈부의 격차가 공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북에게 공개와 개방을 요구하는 마당에 우리 스스로는 반쪽의 공개만 고집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카데미하우스는 전민련이 주관하는 행사에는 적합한 장소이다. 경호상 문제가 있다고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당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정부가 갖고 있지 않는가. 이번 일에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정부와 민간간의 긴밀한 협조체제의 정립문제이다. 5명이 오건 백명이 오건 북한측 대표가 남한을 방문하는 일은 절차상 많은 문제들을 제기한다. 차량문제가 그렇고 숙소문제가 그렇고 경호문제가 그렇다. 이번 일은 전민련과 같은 단체가 혼자서 이런 엄청난 일들을 도맡아 준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결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앞장서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지원을 어떻게 해주느냐는 것이다.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해당 민간조직들간에 충분한 협의가 사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에도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해결의 방안은 정부와 민간사이에 협의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서로 책임을 미루지 말고 미리 미리 서로 상의하고 협조하는 상설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둘째,북의 대남전략에 관한 문제이다. 이번 일에서 북한의 통일문제에 대한 기본 시각이 다시한번 확인되었다. 북은 지난 5월24일 김일성의 시정연설에서 분명히 밝힌 것처럼 남북대화를 정부차원과 민간차원에서 동시에 추진하려 하고 있다. 고위급 회담을 통해 정치군사문제를 다루면서도 범민족대회와 같은 민간모임을 통해 민족문제를 논의하려는 이원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른바 전민족적 통일전선의 구축을 노리고 있으며 동시에 정부주도라는 남쪽의 입장을 약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남한의 다원적 체제성격을 역이용하려는 낡은 전략이다. 이에대한 남쪽의 대응은 정면돌파밖에 다른 길이 없다. 북측의 계산이 눈에 보인다고 해서 정부차원의 대화를 중단시켜서도 안될 것이며 민간차원의 교류를 막아서도 안될 것이다. 그들의 계산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원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원적 접근이라해서 정부와 민간조직이 서로 평행선을 긋거나 불협화음을 내는 병존관계가 아니라 협조하고 협의하는 유기적 공존관계속에 이루어져야 한다. 북이 단기적 안목에서 전략적 접근을 하더라도 우리는 거시적 안목에서 원리적 접근을 해야 한다. 원리원칙을 고집하는 경직된 자세가 아니라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의식하는 가운데 전민족의 자유와 복지를 위해서라면 사소한 일에는 구애받지 않는 의연함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번의 범민대 예비회담의 무산에서 느끼는 점은 하루빨리 정부가 앞장서서 전민련과 같은 재야단체들과 협력관계를 다시 회복하라는 것이다. 이번 일에서 우리가 입은 가장 큰 손실은 모처럼 성사된 통일문제에 관한 정부와 전민련의 협조관계가 불신과 비난으로 점철된 지난날의 불행한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성과이다. 통일문제에서 정부와 재야가 갈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지난 오랜 역경과 시련을 거쳐 정부와 재야사이에 통일문제에 관한 한 불신과 반목의 요소가 차츰 사라지고 신뢰와 협조의 새로운 관계가 싹트고 있는 것을 대단히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 보았다. 이 점이 바로 6공이 이룩한 최대의 업적이랄 수 있다. 북방외교와 7·20제의가 안과 밖의 단기차액을 노린 국내 정치용이라는 비난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6공의 통일정책을 지지해 왔던 게 사실이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함몰되어 가는 재야와의 신뢰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통일문제에서 여와 야가 갈라지고 정부와 재야가 나뉘면 민주화도 없고 한반도평화도 없고 21세기의 청사진도 허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깊이 인식하고 보다 과감한 결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본사 논평위원〉
  • 자유인 김현희 서울신문과 첫 단독인터뷰

    ◎“시장서 쇼핑해도 저를 알아보는 사람 없어요”/김일성 기만 깨닫고 증오감 느껴 자백/남해안 바닷가ㆍ제주도 가보는 게 소원/성경ㆍ이야기국사 등 읽으며 사회적응 노력/통일 앞당겨져 부모ㆍ형제 빨리 만나봤으면… 김현희는 역시 예뻤다. 그녀에 대해서는 두가지 측면에서의 관찰이 가능하다. 하나는 북한의 선발된 특수공작원으로서 1백여명이 넘는 무고한 KAL기 승객과 승무원을 무참하게 살해한 테러리스트였다는 점. 또 하나는 만일 그녀가 이같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지 않았던들 그녀 또한 양가의 맏며느리로서 남편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아내이며 주부로서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한 여인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유족들에 용서빌어 따라서 「테러리스트」와 「미녀」를 동시에 만나 『당신은 스스로를 미인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무차별 질문공세를 펴야만 하는 기자의 심정은 착잡했다. 『저는 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부족한 점이 많고 평범한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큰 죄인을 살려준 것은 과분한 은혜입니다. 대한민국과 인민들이 살려주신 의미를 바로 알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김현희는 지금 용서를 빌고 있다. 하나님의 용서를 기구하며 유족들의 용서를 바란다. 그러나 그 용서는 힘든 것임을 그녀 자신이 너무도 잘 안다. 『성서를 읽지 않고 하나님을 모를 때는 왜 나만 이렇게 기구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기구한 운명을 비관하고 생의 의욕을 잃고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와서 하나님을 알고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성서를 읽음으로써 이런 시련속에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다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흰 칼라를 받친 보라색 투피스에 머리를 묶은 김현희는 화장기를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분만 가볍게 바른 얼굴이었다. 특별회견이 진행되는 2시간30분 동안 그녀는 때로는 입술을 깨물며,때로는 미소짓는 여유를 보이며 최근의 일과 신앙생활,앞으로의 생활계획과 소망,자신의 의식변화,북한에서의 공작원선발과정 및 훈련내용,김일성체제에 관한 인식,북한의 체제변화예상 등에 관해 또박또박 답변했다. 회견도중 어느 대목에서는 긴장이 되는 듯 심호흡을 하기도 했으며 대담하는 기자를 바라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눈을 약간 아래로 깔고 깜박거렸다. 현재 김현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에의 적응문제이다. 본인의 표현대로 『사면은 됐으나 저지른 죄는 가셔지지 않았으며 유가족의 슬픔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며,직업선택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또 그럴 상황도 아니다. 『지금 생활면에서 불충분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북에서 성장했으며 큰 죄를 지은 사람을 인민들이 어떻게 받아주실지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면에서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에게는 역시 문제가 있었다. 우선 어휘의 문제이다. 김현희의 말씨가 이북 사투리라는 점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인민들이 어떻게 생활하는가를 보기 위해 새벽에 남대문ㆍ동대문시장에 가 본 일이 있다』 『남한 자본주의 사회는 창발성을 발휘하는 사회』,또는 『저도 조선사람이기 때문에 된장국ㆍ김치를 좋아한다』라는 등 때때로 튀어나오는 생경하거나 북한전용의 어휘는 얼마간거부감을 일으켰다. 이날 김현희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5번,「조선」이라는 표현을 3번이나 썼다. ○수영장 아직 못가봐 김현희는 아직 지방까지는 돌아보지 못했으나 서울근교는 거의 다 구경했다. 민족역사에 관심이 많아 덕수궁ㆍ창경궁ㆍ비원은 물론,독립기념관ㆍ현충사도 둘러보았다. 그녀가 시장ㆍ백화점 등에 외출할 때 처음에는 『아,김현희가 아닌가』라고 알아볼까봐 겁이 났었으나 특별히 변장은 하지 않았다. 『여기는 남에게 신경쓰는 일이 없는지 물건파는 사람이 한번도 알아본 일이 없었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김현희가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은 남해안 바닷가와 제주도이다. 『북한사람의 소망은 거의 그렇지만 저 역시 남해안과 제주도에 가보는 것이 꿈입니다. 제주도에 가는 것은 「언니들」과 의논해 본 일이 있으나 아직 실현되지 못했으며,남해안에서는 수영을 하기보다 그곳 경치를 보고싶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수영실력은 공작원훈련을 통해 2㎞까지 헤엄칠 수 있는 정도지만 남한에서는 아직 수영해 본 일이 없다. 김현희의 사회적응에 있어서 다른 하나의 문제는 의식의 순화이다. 그녀는 아직도 명곡보다는 행진곡을 더 좋아한다. 이날 회견에 앞서 서울신문사의 협조에 의해 동석하게 된 일본도쿄(동경)신문과 아사히(조일)신문 기자들이 강아지 인형들을 선물했을 때 그녀는 『감사합니다』라며 기쁜 표정을 짓기도 했으나 28살이라는 그녀의 나이 때문이었는지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통일을 저해하는 88올림픽을 반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일했습니다. 그것은 전투임무였으며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중앙당을 위해,통일을 위해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테러의식이 순화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침상의 베갯머리가 썩도록 눈물을 흘리고 참회해야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엄청난 결과를 빚은 KAL기 격추범행에 대해 비록 비행기가 떨어지는 현장을 목격했다거나 시체의 참상을 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결과를 충분히 실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었다. 『제가 실제로 격추현장을 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무고한 동족을 죽이는 잔인한 행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형제가 잘못될까봐 두려워 자백도 안했으나 진상이라도 바로 알려드려 유족들에게 사죄하고 다시는 지구상에 이같은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자백하게 되었습니다』­그녀는 바레인에서 검거된 후 자살할 생각도 했었다. 또 법정에서 유족들에게 매도당했을 때도 『왜 그때 바레인에서 죽지 못했는가』라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레인에서의 자살생각은 검거에 따른 「공작실패」가 그 원인이었으며 사실상 기회가 없어 실행을 못했던 것 뿐이었고 법정에서의 괴로움은 『사람의 죄는 하나님이 판정해 주신다』고 목사님이 많이 위로해 주어 견딜 수 있었다. 김현희의 하루 일과는 대개 아침 6시30분 기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어나면 성경을 공부하고 청소ㆍ식사준비를 한다. 체조도 거르지 않는다. 8시부터는 식사,9시부터의 오전시간에는 수사기관 또는 다른 곳에서 의뢰하는 북한실태에 관한 원고를 쓴다. 오후에는 사회적응을 위해 역사소설ㆍ간증소설ㆍ교과서 등을 읽는다. 요즘 읽고있는 책은 간증소설과 김동길교수의 「너와나의 사랑을 위하여」이며,시리즈로 된 「이야기 국사」도 본다. 오후에는 지난날을 반성하는 수기를 쓰고 있으며 TV를 보거나 소설을 읽는다. 가끔 외출도 하지만 정해진 것은 아니다. 오늘(6일)아침 읽은 성경구절은 잠언 3장 5ㆍ6절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그녀가 매일 읽고 있는 성경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야고보서 제1장 2절로부터 4절까지이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하려 함이라』 ○부모생존 위해 기도 김현희의 신앙생활은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되었다.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수사관들이 성경과 불교서적 등을 갖다주며 읽어보도록 권고했다. 성명말씀은 처음 대해본 것이었는데,잠언중에 좋은 구절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과 모르는 단어가 많던 차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목사님을 소개받게 되고 지정된 장소에서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김현희가 이날 회견에서 잠시 입술을 깨물다 대답한 대목은 이런 질문 때문이었다. ­혹시 꿈에 부모형제나 고향산천을 보는 일은 없습니까. 『그거야 뭐,누구나 다 부모형제 그리워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도 꿈속에서 자주 봅니다. 범행을 자백하기 전에는 부모형제가 큰 영향을 받지 않을까 고민해 왔습니다. 지금은 수용소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저로서는 다만 기도로써 남북통일이 되어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때까지 살아있기만을 바라는 바입니다』 김일성에 대한 김현희의 인식은 「위대한 수령」으로부터 「가장 증오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그에 대한 인식은 검거 후 8일만에 자백할 때부터 달라진 것입니다. 자백하게 된 동기는 북한에서 남한에 대해 「미국의 식민지」이며 「군사파쇼정권」이라고 교육받았으나 그것이 아니며 김일성이지금까지 인민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때문이었습니다. 자백을 하고 나서는 한때 김정일의 지시를 잘못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혹은 한국의 일면만 보고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회의도 했었으나 날이 가면서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또 「미제」는 조선전쟁을 일으켰고 남한을 강점했으며 통일을 방해하는 철천지 원수라고 교육받았고,「일제」도 36년간 조선을 강점하고 학살ㆍ강탈을 일삼은 원수라고 해서 적대감정을 가졌으나 여기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계는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 식민지가 아니고 서로 하나가 되어 도와가며 발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8살 때 공작원으로 18살 때 공작원으로 선발됐던 김현희는 「통일을 위해 중앙당에 의해 선택된 사람」이라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통일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고 각오했다. 육체적ㆍ정신적으로 많은 단련을 받았다. 그녀를 감상적으로 「미녀」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산이다. 위장된 일본공작원화 훈련을 위해 81년과 82년 1년6개월에 걸쳐 일본인화교육을 받았으며,중국인화 교육도 받은 전문테러리스트였다. 그녀는 「이은혜」라는 일본인 여선생과 생활하면서 언어 뿐만 아니라 일본생활ㆍ풍습ㆍ지리ㆍ역사를 익혔다. 태이프를 통해 야마구치 모모에,가토 도키코,시마쿠라지요코의 노래를 배웠으며 지도를 놓고 신주쿠(신숙)의 이세탄(이세단)백화점은 어떻고,유락조(유락정)는 젊은이들의 영화관이 많다는 것도 배웠다. 따라서 선생 「이은혜」로부터는 거의 일본인처럼 되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신문과 「문예춘추」같은 잡지도 술술 읽게 되었다. 김현희가 「이은혜」를 일본에서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으로 생각하는데에는 근거가 있다. 은혜 자신이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라고 말했고,조총련계 학생들이 까만 치마에 흰저고리를 입은 것을 보고 부러워 어릴 때 그것을 해달라고 어머니에게 졸랐더니 『그것은 조선사람만이 입는 것』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는 것이다. 또 은혜는 「조선사람」의 흉을 많이 보았다. 『조선사람은 밥먹고 물로 울럭울럭하며 입가심을 하지않나,국에 밥을 말아 훌훌 먹는다. 또 크기를 표시하는데도 일본사람들은 동그렇게 표시하는데도 조선사람들은 팔뚝을 내밀고 길이로 나타낸다』고 흉보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일본여인이라고 단정했다. 대학에 다닐 때에는 엄격한 통제로 인해,그뒤 공작원이 되어서부터는 사회와 동떨어진 생활을 해와 이성교제의 기회가 없었다는 김현희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와 악수했다. 그녀의 손은 부드러웠으나 감춰진 힘이 느껴졌다. 역시 그녀는 웃어서는 안되는 테러집단의 예쁜 인형의 그림자였다.
  • 연내 정치통합으로 가는 길(이제 독일은 「하나」:6ㆍ끝)

    ◎4전승국등 이해관계 조정이 과제/대국화 경계… 미ㆍ소,「세력권 묶어두기」고집/파도 국경문제 의구심,새 조약체결 요구/콜,주변국 불안 씻기 분주… 내주 방소땐 거액 차관 『아직 근무수칙이 바뀐게 없기 때문입니다』 「7ㆍ1경제통합조치」를 계기로 용도폐지된 검문소에 소련군초병이 남아 근무하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져 다가가 물어 봤으나 이 병사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서베를린과 동독의 포츠담을 이어주는 글리니케다리 검문소의 서방측 검문요원들은 모두 철수했으나 소련군측은 계속해서 근무를 시키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미ㆍ영ㆍ불ㆍ소등 승전 4개국 외무장관들의 박수를 받으며 철거된 베를린 장벽의 체크 포인트 찰리 검문소 자리에도 건물은 없어졌으나 미국의 성조기가 여전히 펄럭이고 있었다. 달라진게 없다는 소련군병사의 얘기나 베를린 하늘에 나부끼고 있는 성조기는 바로 동서독의 통일문제에 얽힌 복잡한 국제관계의 일면을 증명해 주는 것들이다. 경제ㆍ사회통합협정의 발효로 지난 1일부터 실질적인 통일상태를 구현한 양독은 올해안에 완전통일을 이룩한다는 공동목표를 설정해 놓고 마지막 일정인 정치통합작업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금년내에 통일완수를 위한 전독총선을 실시하자는 서독측의 제의에 확답을 피해 오던 동독은 지난 2일 서독측의 요구를 받아 들이면서 오는 12월2일 총선을 실시하자고 제의,해가 가기전에 통일독일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될 것이 거의 확실해졌다. 그러나 정치통합일정에는 국제관계 조정이라는 필수적이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들어 있다. 동서독의 통일문제가 대두되자 유럽 정치지도자들은 『독일민족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라면서 짐짓 관대하고 아량있어 보이는 태도를 나타내며 관여치 않겠다는 말을 해 왔다. 그러나 양독의 통일을 단순한 독일민족 내부문제로만 보는 유럽사람들은 거의 없다. 분단된 동서독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은 바로 「거대독일」의 탄생을 의미하며 그것은 국제정치역학의 대변혁을 초래한다는 것이 유럽사람들의 시각이다. 게르만민족의 팽창주의에 숱한 시련을 겪어온 주변 나라들은 단단히 죄였던 고삐가 풀리는 상태로 밖에 볼 수 없는 통독에 환영의 박수만을 보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에 대해 찬성하고 축하하기는 커녕 분단상태가 가능한 한 더 오래 지속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데 더 솔직한 그들의 심정일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과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분은 2차대전전승국들과의 관계. 이들의 승인이 없으면 통일국가로서의 독일의 주권회복이 불가능하며 결국 통일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미ㆍ영ㆍ불 등 서방 측 전승국들은 통일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소련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서방측의 입장은 통일독일을 NATO에 묶어 둠으로써 행동의 제약을 가함과 함께 집단통제의 수단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이 빠진 NATO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소련은 어떤 경우라도 통일독일이 소련의 안보에 위험을 주어서는 안된다는게 기본 입장이며 이의 해결책으로 NATO 및바르샤바 조약기구에의 동시가입 방법을 제의하기로 했었다. 역사의 유물로 밀려난 동서독 국경검문소에 계속해서 근무자를 배치하고 있는 소련은 병사의 말대로 통독문제와 관련하여 아직 결정적인 자세의 전환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평소 『소련을 무시한 통일은 안할 것』을 강조해온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다음 주중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그의 방소길에는 이례적으로 테오 바이겔 재무장관이 수행한다. 서방언론들은 『바이겔장관의 가방에는 미국이 알래스카를 살 때 보다는 훨씬 많은 돈이 들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며칠전 서독정부가 소련에 3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일방적인 발표를 했던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아마도 본정부는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의 돈을 통일승인의 값으로 소련에 지불하려는 것 같다고 현지 신문들은 전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NATO 개혁용의 표명이나 이미 정치기구로 탈바꿈하기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개혁결정등은 통독을 위한 호재로 작용할 것임이틀림없다. 통독작업 진행과정에서 걸림돌 역할을 해오던 오데르 나이세 국경문제는 지난달 22일 동서독 의회가 『동서독은 현재 또는 미래에 영토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일단 표면적으로는 잠잠해 졌다. 그러나 당사국인 폴란드는 조약체결을 희망하고 있는데다 그동안 동서독이 보여온 애매한 태도때문에 주변나라들은 의구심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밖에도 통독은 결국 동서독간의 「국경선을 변경」하는 것이므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합되므로 해서 동독지역은 자동적으로 EC(유럽공동체)가입효과를 취하게 되지만 동독과 코메콘(동구경제상호원조회의)과의 관계는 미묘한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이에 대해 현재의 동서독 정부는 의무와 약속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으나 통일 뒤 그 약속이 과연 지켜질 것인가에 대해 당사국들이 확신감을 가지고 있는지가 문제이다. 이와 같이 소련을 포함한 전승국들의 입장,주변나라들의 이해와 협조등 국제적인 이해관계의 조정이 앞으로 남은 통독완결작업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 수령 5백년 은행나무 고사위기/서울 사당동 은행나무골 동작구 나무

    ◎마구잡이 건축공사에 파헤쳐지고 잘리고…/「4m간격」어기고 1m거리에서 신축/“공사에 방해된다” 가지 2개 잘라버려/주민들 “시정”탄원 구청서 묵살… 보호책 시급 재개발사업 등 각종 건설사업으로 자연환경이 잇따라 훼손되고 있는 가운데 수령5백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행정관청의 관리ㆍ감독소홀과 한 건축업자의 무분별한 이기심 때문에 고사할 위기에 처해있다. 서울 동작구 사당4동 281의1 「은행나무골」에 우뚝 서있는 밑둘레 3.2m,높이 20m인 문제의 은행나무는 지난81년 10월27일과 82년10월 동작구청과 서울시에 의해 각각 「동작구 나무」 1­14­34호와 「서울시 지정보호수」57호로 지정됐으나 아무런 보호를 받지못하고 가지가 잘린채 흉한 모습을 하고있다. 수백년동안 「은행나무골」의 수호신처럼 받들어져 오던 이 은행나무가 날벼락을 맞게된 것은 지난 5월10일쯤. 나무밑둥에서 불과 1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지하1층 지상3층 연건평 2백50평 규모의 콘크리트 연립주택 건축공사가 시작되면서 시련을 겪게된 것이다. 공사를 맡은건축업자 최모씨(33)는 이 나무앞에 세워져있던 보호수표지판은 물론 나무를 보호하기위해 나무주위에 설치해놓았던 시멘트 보호벽마저 포클레인으로 깨끗이 치워버렸다. 이에 주민들은 「건물경계선은 지정보호수의 수관폭을 벗어나 나무줄기에서부터 최소한 4m이상은 떨어져 시공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건축공사를 원칙대로 해줄것을 요구하는 진정서와 탄원서를 서울시청과 동작구청에 수십차례나 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답신을 받지못하고 있다. 서울시가 펴낸 「90년도 주요업무계획 추진지침」에 따르면 「보호수는 천연보호림을 보호관리하는 요령에 따라 보호하고 특히 주택지에 있는 보호수는 관리를 철저히 해 뿌리주변이 붕괴되는 일 등이 없도록 하고 노후ㆍ훼손된 보호수표지판은 우선적으로 교체ㆍ보수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탄원과 진정은 아랑곳없이 공사는 계속 진행돼 지상1층까지 콘그리트작업이 계속됐고 지난달 1일에는 건물 1층으로 뻗어나간 직경 50㎝,길이 4m가량의 나뭇가지 2개가 공사장 인부에 의해잘려나가고 말았다. 지난 68년 7월3일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사당리에서 서울시로 편입된 뒤에도 사당4동보다는 수백년전부터 유래된 「은행나무골」로 잘알려진 이곳 주민들이 이 은행나무에 쏟는 애정과 정성은 남다르다. 해마다 촛불을 켜놓고 각종 고사와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물론 은행나무와 관련된 각종 모임도 구성돼 있다. 10년전 회원 20명으로 「행우회」를 구성했고 3년전에는 「은행나무 친목회」를 2년전에는 역시 20여명으로 「은행나무계」를 만들어 한달에 1∼2번씩 만나 친목을 도모하고 은행나무를 잘가꾸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또 파출소의 명칭도 「은행나무골」의 유래를 이어가기 위해 2년전에 「사당5파출소」에서 「은행파출소」로 바꾸기까지 했다. 이 동네 20통 통장 신석철씨(45)는 『주민들이 계속해서 건축업자에게 건물경계선이 나무밑둥에서 4m이상 떨어지도록 다시 공사를 하고 보호벽을 원래대로 세워줄 것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면서 『업자도 업자지만 수십차례에 걸쳐 민원을 냈는데도 나몰라라하고 있는 행정관청이더 원망스럽다』고 분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대해 『현재 서울시에 1백97그루가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돼 특별관리되고 있으나 이같은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앞으로 재개발사업 등에 따른 보호수의 훼손사례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보호수 실태조사를 실시한뒤 적절한 보호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대통령의 천시론/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그것이 벌써 한달전의 일이다. 지난 5월말과 6월초 불과 두주일 사이에 노태우대통령은 연이어 한일,한소,한미 정상회담을 가져 우리 북방외교의 단계적성과를 그 극점에 이르게 했다. 세차례 연이은 정상회담은 각 회담과 관련된 일련의 배경과 과정및 회담내용을 살필때 모두가 썩 유쾌한 감정을 갖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한소 정상회담의 경우 소련쪽에 의해 의도적으로 야기된듯한 의전문제와 회담후 소련쪽의 계산된 의미축소등은 우리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지나간일,문제는 「그이후」이다. 일련의 국내외적 흐름은 한반도통일에 대한 우리내부의 기대와 관심을 고조시키는 한편으로 그 준비태세에 대한 성찰을 새삼 제기하고 있다. 과연 우리내부에서 효율적인 한반도 및 북방정책추진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각계의 태세가 갖춰져 있느냐 하는 물음이라고 해도 좋다. 다시말해 오늘 우리의 내정이 과연 그 화려한 외교적 성과에 걸맞을 만큼 잘돼 나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노대통령이 한소 정상회담을 위해 길을 떠날 무렵 국내 사정은 매우 번잡했다. 이른바 거여인 민자당의 세련안된 짜임새가 불안했다. 그들의 방황과 분파성은 국민신뢰를 얻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그들 스스로 시국을 가리켜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할 정도였다. 바로 그 무렵 이 나라 정상과 한반도 유관 강대국 정상들과의 만남은 형식면에서는 국내적 침체국면과 부정적 요소들을 일소해 버린듯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국가지도자의 정력적인 외교추진력과 성과를 크게 평가한 국민들이지만 내정면에서의 현실인식은 매우 냉정했다. 집권층이 내세운 외교의 성과에 비추어 내치는 크게 개선 발전되는 추세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상회담들을 마치고 귀국한 즉시 노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하늘이 내린 때(천시)를 맞고 있다』고 했고 『우리가 지금 시급히 해결해 나가야할 과제는 외교면의 성과를 내치로 연결하는 일』이라고 강조 했었다. 국가 지도자로서 그가 이룩한 외교적 성과에 자만하지 않고 우리가 처한 현실과 지향할 바 장래를 통찰해야겠다는 원려이었을 것이다.대통령이 지적한 바 무릇 인간사에 있어 천시란 무엇인가. 맹자 공손축하편에는 천시불여지리,지리불여인화라 쓰여 있다. 한나라 한인간 사회에 있어 하늘이 주는 시간과 방위라는 조건은 그 토지가 요해 견고하다는 지리적 조건에 미치지 못하고 또 그런 자연조건들은 백성들의 순조로운 화합에는 미치지 못함을 이른 것이다. 시일 간지ㆍ주야ㆍ한서 등 인간의 행동과 관련된 때가 천시라면 공성 또는 수성에 적합한 이점을 지리라 한다. 인화란 글자 그대로 인민의 화합으로서 천시와 지리를 넘어서는 힘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도를 얻은 군주는 천하의 백성이 따르게 되어 인화를 이루지만 도를 잃으면 백성의 인화와 지지는 커녕 일가친족까지 이반하게 된다. 우리 정치사회의 과거가 그랬다. 오늘의 대통령도 국민적 의사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택됐다는 정당성과 정체성으로 볼때 그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에 더하여 막중한 책임을 갖는다. 외교와 내치를 포괄한 모든 국정운영에 있어 대통령이란 직책은 다른 누구에 미룰수 없는 「책임의끝자리」를 의미한다. 그러니 지금 문제는 무엇인가. 화려한 외교적 성과를 거둔 대통령은 이제 그 내정의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천시를 맞고 있다고 확신한 노대통령은 아울러 지리와 인화의 조화라는 고전적 지혜를 터득했을 터이다. 그 인화는 사회정의가 구현되고 경제적 배분이 실현되며 정치적 균형이 유지되는 내치에 연유함을 알아야 한다. 일련의 정상회담을 고비로 집권 민자당은 그들의 인기와 입장이 상승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러한 거여의 모습은 과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민자당이 먼저 했어야 했던 일은 외교적 성과를 바탕으로 내정을 다지는 정책적 노력을 보이는 일이었다. 그런점에선 노대통령이 훨씬 냉철한 현실인식을 보였다. 그는 그무렵 당정회의에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한소ㆍ남북관계에 너무 들떠있고 금방 무슨 경천동지할 결과가 나올 것처럼 조급해 있다.』면서『이제 우리는 우리를 짓눌러온 구조를 변화시키는데 시발을 한것 뿐』이라고 지적한바 있다. 우리의 과거 그 숱한 시련과 시행착오를 뒤로하고 지금 우리는 진실로 우리의 힘,정신과 도덕,정치력과 규범,경제기술력 문화력 군사력 등 내치요인의 모든힘을 총 점검해야 할 때이다. 그리하여 내정에서의 쇄신과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외교가 결국 내치의 연장이라면 또 그 화려한 외교적 성과가 진정 빛나고 내실한 것이 되게하기 위해서는 비록 역순이라 하더라도 내정을 인화와 발전의 방향으로 개혁하고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내정개혁의 방향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총체적 포괄적이어야 하며 수구적ㆍ내향적이 아니라 진취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집중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최근의 강력한 사정활동이 지나치게 공직사회의 긴장감을 조성한다는 우려가 당국자들로부터 나오고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안해도 좋다. 국민들은 오히려 정부의 사정의지가 흐트러지거나 퇴색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대통령이다. 예스런 표현으로 만기친각하되 책임도 거기서 그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내치와 외교는 한줄기이다. 그것은 동전의앞뒷면일 뿐이다. 제 6공화국과 노태우대통령정권의 존립근거라 할 수 있는 「6ㆍ29선언」 3년을 보냈다. 그래서 대통령은 지금 어디쯤 서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