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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산물개방은 시련 농민 자구노력 긴요/한 농협회장 강연

    한호선 농협중앙회장은 19일 우루과이라운드협상 타결과 농산물 수입개방은 피할 수 없는 우리농업 최대의 시련이라고 전제,개방유예기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이 기간중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농업구조조정에 집중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회장은 이날 서울힐튼호텔에서 도산아카데미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국농업과 우루과이라운드」라는 주제로 이같이 강연했다. 한회장은 수입개방에 따른 유예기간 동안에 농업기술의 개발과 농업경영의 개선에 힘써 최소한의 비용으로 고품질의 우수농산물을 생산하도록 농민 스스로의 자구노력이 요청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농협도 소득증가에 따른 소비자의 고품질 농산물의 선호경향에 맞추어 농민들이 우수농산물을 생산하도록 유도하고 소비자단체 등과 협조,우리 농산물 애용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덧붙였다.
  • 이라크 외국인인질 석방 시작하던 날

    ◎바그다드 미·영 인질,“이젠 자유다” 환호/서방인들,바그다드 집결… 출국 채비/영선 자국민 수송기 암만으로 급파 ○…이라크가 지난 4개월여 동안 「인간방패」로 억류해온 외국인인질들을 석방키로 결정한데 이어 이들 외국인이 8일부터 출국을 위해 바그다드로 집결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들과 동유럽인들,그리고 일본인 등 약 8천명에 이르는 이들 인질이 출국비자를 발급받을 것이란 즉각적인 시사는 나오지 않고 있으며 이라크정부 관리들은 출국수속을 밟는데는 며칠씩 걸릴 것이라고 밝혔으나 인질들은 시련이 곧 끝날 것이라는데 대해 기쁨을 표시했다.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관 관리들은 이라크 당국이 인질들의 조기 출국을 위해 출국비자를 면제해줄 것이란 공식 통고는 받지 못했다고 말했으나 시내 중심가의 알만수르 멜리아호텔에 모인 일부 미국인들은 이라크를 방문중인 존 코널리 미 전 재무장관으로부터 이날중 요르단행 항공기를 탈 준비를 갖추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날 41명의 일본인들은 매일 운항되는 암만행 이라크 항공기를 타기 위해 지난 1주일간 억류돼 있던 알 만수르 멜리아호텔을 떠났으며 2∼3명씩 작은 집단을 이룬 서방인들은 속속 이 호텔로 모여들고 있다. ○이라크,대형기 준비 ○…이라크 항공사는 8일 암만으로 떠나는 여객기를 소형 항공기 대신 점보제트기를 배정했는데 관측통들은 이같은 조치가 이라크당국이 출국수속을 신속히 진행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풀이. 이라크와 쿠웨이트에는 당초 총 6천6백89명의 외국인이 억류되어 왔으며 이들중 영국·미국 및 일본인 약 4백명은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이후 페르시아만에 파견된 미군주도의 다국적군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인간방패」로 이용되어 왔다. ○…이라크에 억류중인 1천1백50여명의 영국인 인질들의 본국송환을 위해 바그다드로 출발한 영국 항공의 한 여객기가 8일 새벽 바그다드 착륙이 거부돼 요르단의 암만에 대신 도착할 예정이라고 영 외무부가 밝혔다. 브리티시 에어웨이의 보잉767기는 이라크 의회가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인질 전원석방 결정을 승인한지 수시간만에 런던의 히드로 공항을 출발,8일 상오 4시30분(한국시간) 바그다드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라크는 당초 이 비행기의 입국을 허용키로 했으나 절차상의 문제로 대신 암만에 착륙할 것을 요청하고 이라크 항공이 외국인들을 요르단으로 수송할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단 공항은 비상 ○…요르단 관리들은 이라크내 외국인 인질들의 대량 출국을 돕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이브라힘 이제딘 요르단 공보장관이 7일 밝혔다. 이라크 관리들은 이라크 항공이 유엔의 대 이라크 경제봉쇄 조치 이후 이라크 유일의 외국 정기항로였던 바그다드­암만 노선의 운항횟수를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기 착륙 불허 ○…누레딘 사피 하마디 이라크 국영항공사 사장은 8일 이라크에 억류돼 있는 외국인들이 이라크 비행기 편으로 이라크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으나 외국인들을 수송할 비행기가 언제 처음으로 이라크를 떠날 지 정확한 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AF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라크 국영항공사가 모든 외국인들의 본국송환을 담당할 것이며 우리는 8일부터 필요한 비행날짜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히고 『어떤 외국 국적기도 자국민들을 송환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착륙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항공사 소식통들도 7일 이라크에 억류된 외국인 인질들이 이라크 비행기 편으로 송환될 것이며 영국 비행기가 이라크에 억류된 영국인들의 송환을 위해 이라크에 착륙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새로 출발하는 방송위원회(사설)

    불신과 의혹으로 가득 차서 단 반걸음도 옮기기가 힘에 겨운 것이 작금의 방송계다. 예산안을 비롯하여 산적한 국민생활 관계의 과제들을 밀쳐놓고 제대로 씨알도 박히지 않은 「설」만을 가지고 국회개회기간을 몽땅 소비해버린 것도 「새 민방」 때문이었다. 이렇게 일거수일투족이 모조리 「정부의 방송장악 음모」설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 구조개편기의 방송을 실질적으로 감시·감독하는 새 방송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기구 또한 정치권 일부와 방송계,사회일각에서 원인무효를 외치며 부정하는 새 방송법에 근거하여 구성된 기구다. 지난 임기 동안에도 온갖 시련을 겪으며 폭풍 속을 헤쳐오다시피 한 강원용 위원장이 새 기구의 위원장으로 또다시 선출되었다. 기대와 성원 속에 출발해도 힘에 겨울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재출발한 위원회가 앞으로 감내해 가야 할 일이 적이 걱정스럽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시대이므로 오히려 방송위원회의 기능은 더욱 중요하고 기여 또한 크리라고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그 하드웨어는 과학기술이 이룰 수 있는 최첨단의 수용기능을 갖고 있고 그 소프트웨어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가장 섬세하게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귀가 열리기 시작한 갓난 아기로부터 임종을 앞둔 노인의 베개맡에 이르기까지 방송은 따라다니고 전인미답의 정글,오지 탐색대도,사막에서 전투하는 국지전쟁 초소의 이름없는 병사의 품속에도 방송은 동반한다. 이 소중한 우리의 방송이 저항의 빌미로만 발목잡혀 헤어날 수 없는 불신의 늪으로 허우적거리며 빠져들려 하고 있다는 것은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일이다. 법이 정해준 방송위원회의 기능이 방송프로그램의 공정성과 공공성,질적 향상방안에 한정되는 것이므로 방송계가 오늘날 처해 있는 이 모든 문제들의 책임과는 직접으로는 무관하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탄생의 정통성부터 부정받아 만신창이가 되어 출발하게 될 민방의 앞날도 그들이 만드는 「방송의 질」로 심판받아야 하고 불화와 갈등으로 영일이 없는 기존의 방송은 방송대로 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으로 그 위상을 정돈·재정비해야 한다. 그것을지도·감독하고 주도하는 권한이 방송위원회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관장해야 할 영역이나 범주도 다원해져서 바로 전시대의 위원회보다도 훨씬 넓고 높아졌다. 방송사만 해도 평화방송·불교방송·교통방송을 포함하여 새롭게 민방과 교육방송도 추가되기에 이르렀다. 방송구조의 개편으로 외부제작의 방영의무화,유선TV시대까지 열릴 지점에 와 있다. 이 제2,제3의 방송구조들도 직접 간접으로 방송위원회의 영향을 입는다. 이 광활한 방송 영토에서 공룡보다도 거대한 힘으로 침투하는 방송상업주의의 보이지 않는 힘과 겨루어 국민들을 음란퇴폐의 정신적 퇴폐로부터 보호해야 할 최후의 저지선도 방송위원회가 지켜주어야 한다. 이 사회의 불신풍조의 원천이기도 한 정치권의 부조리와 방송이 유착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도 방송위원회의 임무이다. 그와 함께 부정과 저항만이 정의의 이름으로 활개짓을 하여 새로운 성역을 형성하는 역 매카시즘현상을 견제해야 하는 것이 방송위원회의 직무에 포함된다. 어떤 밀실공작도 유지되지 못하고 지구끝 끝까지 취재활동이 퍼져있는 개방시대의 방송에서 중심을 잡고 지도노선을 보여주어 방송시청자의 불만을 선처해주는 충실한 기능의 방송위원회로 그 소임을 다하도록 거듭 당부한다.
  • 온정나누며 검소하게(사설)

    망년회니 동창회 등 정담의 모임들이 러시를 이루는 계절이다. 이맘때 쯤이 되면 이 혼미의 터널속같은 시기가 끔찍해진다. 시간에 쫓기고 술에 곯고 정신없이 보내게 되는 생활,덩달아 들떠서 어른흉내를 내며 방황하는 자녀들이 까딱하면 이 시기에 잘못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가족 걱정과 뒷바라지에 살림은 구멍이 뚫리고 주부는 지쳐서 짜증이 난다. 아직은 12월 초순인 지금쯤 송년행사를 어떻게 보낼지를 가족이나 주변과 더불어 정리해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난장판놀이를 몇번쯤 치러야 한해를 보내는 의식이 끝나는 것처럼 길들여진 우리의 송년 풍속이 온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게 되고 진정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될 것이다. 「세밑」은 한해중에서 가장 비장하고 쓸쓸하고 그리고 추운 계절이다. 그래서 슬픈 사람은 더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더욱 외로워진다. 없는 이에게는 더더욱 한기가 드는 철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계절을 덜 슬프고,덜 쓸쓸하고 조금이라도 따스하게 보낼 도리를 생각해 보는 것이 송년행사에 대응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그를 위해 제일 도움이 되는 것은 우리가 더불어 살고 있는 이웃의 불행과 불우를 함께 나누는 일이다. 이웃을 돕는 일로 위로를 받는 쪽은 도움을 받은 사람만이 아니다. 도움을 준 쪽에서 누리는 위안과,마음의 흡족함,그리고 평화는 더욱 크고 더욱 효과적이다. 그에 따라 사회악이 예방되고 청소년 비행도 조금이나마 막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실천하자면 실속없이 호화롭고 떠들썩한 행사를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비용도 줄여야 하고 규모도 줄여야 하고 시간도 단축해야 한다. 자동적으로 검소해질 수밖에 없다. 음주운전이 불가피해지는 위험도 줄어들고,부모의 무너진 자세를 보고 흉내내는 자녀들의 일탈행위도 막을 수가 있다. 향락성 망년회에 대한 유혹을 가장 강하게 받는 것은 사실은 청소년이다. 그들을 잘 다스리려면 부모부터 수범을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불행한 이웃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은 자녀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는 기능을 한다. 덕을 쌓는 생활을 하는 부모를 자녀들은 존경심으로 바라본다. 특히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고 그 여력으로 선행과 덕행을 실천하는 어른을 보면 조금 빗나간 청소년이라도 그런 어른의 모습이 뇌리에 새겨져서 자신을 함부로 굴리지 않는다. 그것은 막대한 유산으로도 대신할 수 없고 막강한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 또는 명성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능이다. 「진실로 훌륭한 인격」을 지닌 부모를 자녀들은 존경하기 때문이다. 송년행사의 뜻은 반성하고 새로 설계하는데 있다. 흩어졌던 것을 모으고 깨어진 것은 합쳐야 하며 기울어진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흥청거리며 들떠서는 그런 목적을 다할 수가 없다. 올해처럼 정치적으로,경제적으로,사회적으로 거칠고 혼란되고 불안한 해의 세모에는 더욱더 송년의 본래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가능한 최선의 대안을 생각하지 못하면 다가올 새해의 시련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려깊은 송년을 맞도록 노력할 때 라고 생각한다.
  • 「식량자급의 주역」 통일벼가 사라진다

    ◎내년부터 볍씨 공급 중단한다는데…/65년에 첫 등장… 한땐 「기적의 쌀」로 각광/10년 풍작에 재고늘자 “천덕꾸러기”로/“수확량 많고 내병성 강하다”… 일부선 아쉬움 표시 우리나라 식량자급의 주역이었던 통일벼가 「운명의 날」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동남아시아국가에 기적의 쌀로 녹색혁명을 가져다주었던 신품종 통일벼. 그러나 최근 국내에 쌀이 남아돌자 정부가 통일벼 수매량을 대폭 줄이는 것과 함께 내년에는 농가에 볍씨공급마저 전면중단키로 했다. 일반벼보다 최고 30%이상까지 수확량이 많은데다 병충해에 강해 식량부족에 허덕이던 10여년전만해도 이장들이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통일벼를 심으라고 아우성을 쳤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제는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린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통일벼중 85,86년산 고미에 대해서는 사료용으로 처분하는 방안까지 거론되는 비운의 처지가 됐다. 통일벼의 품종과 명칭이 생겨난 것은 지금부터 21년전인 69년. 그러나 이보다 5년전인 65년을 우리나라에 통일벼가 등장한 첫해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통일벼 모체의 하나인 키가 작고 수확량이 많은 품종 「IR8」이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로부터 시험도입된 것이 65년이기 때문이다. 인도형 열대성 작물에 속하는 IR8은 당시 기적의 쌀로 불려졌다. 이 품종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64년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우리 식량은 우리 힘으로 해결한다는 결의아래 범국민적으로 일대 증산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지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함께 62년 3월에 공포된 농촌진흥법에 따라 신품종 육성과 보급 및 기술개선을 위한 쌀농사 시험연구와 지도사업이 막 추진되기 시작한 것도 큰 작용을 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국민들이,미국이 무상으로 원조해주는 식량을 배급받아 연명했고 이른바 춘궁기인 보릿고개에는 절량농가들이 속출해 풀뿌리 나무껍질로 목숨을 이어가는 국민도 적지 않았다. ○「IR8」 비서 들여와 미국은 54년에 제정된 미공법 408호(농산물 교역발전과 원조법 및 상호안전보장법)에 따라 55년부터 매년 약 4백16만6천6백여섬의 잉여양곡을 우리나라에 지원했었다. 국민생활의 안정뿐 아니라 진정한 자주독립국가로 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식량자급이 시급했었다. 식량자급을 위해서는 품종개량이 앞서야 했으나 당시 국내 농업기술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같은 여건에서 IR8 품종의 볍씨에 이어 66년에 이와 비슷한 IR262등 2백여종의 씨앗을 들여와 국내에서의 적응 여부를 검토했다. 그 결과 IR8은 우리나라 기후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IR262는 적응성은 있으나 미질이 극히 나빠 장려품종으로도 채택되지 못했다. 농촌진흥청은 69년 6월 벼재배에 가장 문제가 되는 도열병에 강하고 키는 작지만 이삭이 많이 달리는 IR667을 보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선정한 IR667­98계통을 시험논에서 재배,지역 적응성등을 검토했다. 이 결과 IR667­98계통의 볍씨중 적응성에서 우수한 종자를 수원213호,214호로 이름을 붙이고 이어 수원213­1호를 추가,이들 3종류를 농가 장려품종으로 결정했다. 그 이름은 똑같이 「통일」로 정했다. IR8을 들여와 시험재배를 시작한지 5년만에 신품종 통일벼를 만들어낸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수원213­1계통 종자 10㎏을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에서 재배,종자를 4.3t(29섬)으로 늘렸고 이를 71년 전국 61개 지역에서 적응시험을 한뒤 전국 5백50여곳 2천7백50㏊에서 집단으로 재배했고 이듬해인 72년에 1만7천t의 종자를 전국에 보급했다. 이때부터 통일벼의 재배면적을 넓혀 쌀의 총생산량을 대폭 늘리기 위해 신품종벼와 일반벼에 대한 정부 수매가격에 차이를 두지 않고 또 수매가격도 크게 올리기 시작했다. 이같은 가격 지지정책과 기술보급에 의해 신품종벼의 재배면적은 급속히 늘어났으며 생산량이 일반벼보다 30%이상 증가하기에 이르렀다. 쌀 생산량도 이에 따라 60년대 2천4백30만섬에서 70년대 전반에 2천7백78만섬으로 늘었고 중반에는 3천4백72만섬을 기록,드디어 자급시대를 열었고 77년에는 4천1백67만섬으로 4천만섬을 돌파했다. 77년 대풍때에는 우리나라로서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에 쌀 48만6천섬을 현물차관 형식으로 빌려주기까지 했다. 이러한 쌀 생산량의증가는 재배면적 보다는 단위면적당 수확량 증가가 그 요인이었다. 50·60년대의 식량절대부족시대에서 신품종 벼의 도입,개발로 70년대 중반에 이룩한 자급시대의 도래에 대해 당시 국민들은 「산업혁명에 비견되는 금자탑」「녹색혁명의 기적」등의 찬사에 주저하지 않았다. ○외미도입 설움 씻어 해방이후 60년대 초반까지 쌀생산량이 2천만섬 안팎에 그쳐 해마다 봄이면 보릿고개와 아사자 기사가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했으나 10여년만아 재배면적은 15% 정도 늘었음에도 생산량이 2배로 증가,외미도입의 불명예와 서러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쌀의 자급을 이룩하는 데까지 신품종벼의 보급 및 재배를 둘러싼 시련도 적지 않았다. 신품종벼를 처음 전국에 보급한 72년에는 8월에 대홍수로 논농사가 실패하자 농사지도기관 및 신품종벼에 대한 농민들의 불신이 팽배했었다. 더욱이 계속된 품종개량으로 선보인 유신·밀양 22·23,수원 251·258,이리 327,통일찰벼 등이 하나같이 수확은 월등하게 많지만 밥맛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밥맛 뒤지는것이 흠 이 때문에 소비자가 잘 찾지않는 바람에 소득이 일반벼에 뒤질 수 밖에 없어 농가에서 신품종벼의 재배를 꺼리기까지 했다. 70년초에 농촌에서 나돌던 『보리밥맛이 통일쌀보다 낫다』는 유행어가 당시 신품종쌀에 대한 객관적평가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 때문에 신품종볍씨를 농가에 보급하는데 애를 먹었고 결국은 행정지시를 통해 개량볍씨의 재배를 강요했다. 이장들이 개량볍씨를 심으라고 집집마다 찾아다녔고 이미 심어놓은 일반벼를 뽑아버리고 소독을 위해 담가놓은 일반볍씨를 쏟아버리는 극성을 부렸다. 또 지도공무원들이 모판에 신품종볍씨를 심었나 확인·조사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반볍씨를 눈에 안 띄는 곳에 감추는 농가도 적지 않았고 담당공무원들은 강력한 상부지시를 따르기 위해 재배면적확보에 집착하다 보니 신품종 종자를 외상으로 공급,수확기에 풍작을 이루지 못한 경우 종자대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78년에는 또다른 신품종 「노풍」이 개발돼 장기간 시험재배도 없이 전국적으로 보급됐으나 많은 지역에서 극심한 병충해를 입어 낙심한 농민들이 논에 불을 지르는 사건도 있었다. 노풍피해는 결국 정부가 보상해 주었다. 이같은 우여곡절에도 당시 박정권은 강력하고 일관된 식량증산 정책을 추진,갖가지 보상책과 함께 개량볍씨를 보급해 78년에는 신품종 재배면적이 전체 재배면적의 76%까지 높아졌다. ○국제수지 흑자기여 이에 81년부터는 10년연속 풍년의 주역을 맡아왔고 그때부터 외미도입은 중단됐다. 국제수지흑자에 기여한 몫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푸대접을 받고 「퇴역」을 앞두게 됐다. 연속풍작으로 정부미 재고량이 현재 적정재고(7백만섬)를 6백만섬이나 웃도는 1천3백만섬에 이르는데다 이에 따른 관리비·2중곡가제 등으로 양특적자누계가 4조원을 넘어섰고 소비자들은 양질의 일반미만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날라오는 벼멸구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서해안등 일부 지역에서는 병충해에 강한 신품종벼를 아직도 선호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품종벼의 보급중단이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한다. 쌀농사가 하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데다 석유자원못지 않게 식량도 무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재계총수 누가 되나”… 하마평 무성

    ◎유 전경련회장 고사로 후임논의 활발/오너출신의 1세원로가 가장 유력/2세 잦은 모임… 체질개선 목소리도/조중훈·최종현·박용학·김우중회장 등 물망에 유창순 전경련회장이 최근 차기회장직을 고사할 뜻을 명백히 밝힘에 따라 후임회장 선출이 재계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 올랐다. 유회장은 지난 19일 전경련주최로 롯데호텔에서 열린 「메드베데프환영만찬」에서 『차기회장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히고 차기회장은 오너출신의 1세 원로 가운데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내연상태였던 차기회장선출 논의가 급속히 표면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재계의 움직임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후임회장 선출에는 정·재계의 관계 재편,2세총수들의 발언권 강화,전경련의 위상 재정립 및 재벌간의 갈등등 여러 변수들이 얽혀 있어 쉽게 결말이 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총리」로 불리는 전경련회장직은 국민과 정치권에 재계의 얼굴로 비춰져 왔다. 지난 5공화국시절에는 정경유착이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양쪽은 전경련을 중심으로밀월관계를 유지했지만 6공 들어서는 재벌총수들이 「청문회」에 출두하는 등 재계도 엄청난 시련을 감수해야 했다. 이와 함께 각종 경제개혁조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계는 늘 피해를 입어왔다는 불만이 쌓여 있는 상태이다. 더구나 차기회장의 재임기간인 오는 93년 2월까지는 정치권에서도 지자제선거·총선·대통령선거 등이 잇따라 치러질 예정이어서 재계는 어느때 보다도 자체의 대표를 선정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또 내부적으로는 2세 총수들이 최근 자주 모임을 갖고 그동안 원로들이 전권을 휘두르다시피한 재계풍토를 개선해야 한다며 체질개선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 회장선출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는 평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차기회장 선출과정에서 원로들과 2세들이 합일점을 찾지 못한다면 전경련자체가 깨지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자천·타천의 인사들이 후보로 떠올라 하마평에 오르고 있지만 아직은 뚜렷한 회장감을 점칠 수 없는 실정이다. 다만 그간의 사정을 고려,오너출신·60세이상의 원로중에서 나올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밖에 10대 그룹내에 들어야 한다든지,전경련의 활동에 평소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드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제1의 후보군으로는 현재 전경련회장단간친회 참석멤버인 부회장·고문·명예회장·상임이사등이 꼽힌다. 이들의 숫자는 모두 51명으로 재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총망라된 셈이다. 이 가운데 자주 거론되는 인사들이 조중훈 한진회장(70) 박용학 대농회장(75) 김우중 대우회장(54) 최종현 선경회장(60) 박성용 금호회장(58) 이건희 삼성회장(48) 등이다. 한진 조회장은 그룹 규모나 연배가 적당하지만 주력업종이 제조업이 아니라는 점이 약점으로 꼽히며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과의 잦은 불화설등 핵심원로들의 의중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 반면 대농 박회장은 재벌2세들을 잘 거느리는 흔치 않은 1세고 성격이 적극적이며 원로들과도 친분이 두텁지만 그룹규모가 작고,그동안 무역협회 일에 적극적이어서 전경련 내의 기반이 약한 것을 약점으로 본다.선경 최회장은 작고한 형의 사업을 이어 받았지만 선경그룹을 현재의 규모로 키웠다는 점에서 창업 1세나 다름없는 예우를 받고 있으며 그룹규모·연령·인품 등에서 회장감으로 적격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더구나 2세 총수들이 그에게 「재계풍토 쇄신」등을 내세워 회장직을 맡아 줄 것을 간청한 적도 있어 기반도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태우 대통령과 사돈간으로 본인이 정경유착의 오해를 받기 싫다고 완강히 거절하고 있어 그의 회장취임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대우 김회장은 대우조선 등 그룹내부에 어려움이 많아 전경련회장직을 맡기 힘든 실정이며 원로들과의 관계도 원활치 못하다는 평이다. 이밖에 금호 박회장,삼성 이회장은 2세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원로들로부터는 견제를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어쨌든 「킹메이커」인 정주영회장과 2세들간에서 어떤 형태로든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지만 결렬될 경우 「전경련 해체」라는 최악의 상황도 가능하다고 예측하고 있다.
  • 본지 창간기념일에 초대된 조성수화백의 “자화상”

    ◎“「애환 45년」 딛고 서울신문처럼 거듭 났죠”/“45년 11월22일생” 동갑내기의 「인생역정」/부산 피난시절의 역경 패기로 극복/「총 2백만부 성장」,오늘의 나와 비슷/“정상의 신문답게 사회 발전의 밑거름 되길” 조국이 광복되던 해인 45년 11월22일에 창간된 서울신문은 1만6천4백36일 동안 지령 14169호라는 굵직한 나이테를 새기면서 영향력 있는 장년신문으로 성장했다. 급변하고 소용돌이치던 지난 45년동안 서울신문은 갖은 풍상과 기복속에서 영광과 좌절,시련과 희망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왔다. 서울신문과 같은해 같은달 같은날에 태어난 사람은 현재 전국에 6백27명(남자 3백57명,여자 2백70명). 그들도 서울신문과 똑같은 역사의 궤적속에서 혼란과 전쟁,가난의 아픔을 이겨내고 이제 우리사회의 성실하고 믿음직한 장년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인 화가 조성수씨(45·서울 강동구 명일2동 240의4·소화미술학원장)는 21일 서울신문을 찾아 온갖 어려움을 딛고 최신시설과 영향력을 자랑하며 국내 정상에 우뚝선 서울신문의 성장에 흐뭇해했다. 서울신문이 해방을 계기로 새로 창간되었듯이 만주의 장춘에서 태어난 조씨는 이듬해인 46년 초 만주 철도회사에 근무하던 아버지 조석창씨(75)가 귀국하게 되어 서울에서 자라게 됐다. 조씨가 미처 철이 들기도 전인 6살일때 6·25가 일어나 조씨의 누나와 여동생 및 남동생 등 일가족 6명은 피란길에 올라 부산으로 갔다. 아직 서울생활에서 제대로 터전을 닦지 못한 조씨 가족들이 전쟁때문에 피란길에 올라 온갖 곤욕을 치른 것처럼 창간한지 5년이 채 못된 서울신문도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서울신문 직원들은 당시 북괴군의 포성이 코앞에서 울리고 있는데도 전쟁발발 3일째인 28일 새벽2시30분까지 무려 12차례나 호외를 발행하다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사회부장 이종석씨 등 7명이 납북되었고 유일한 한국의 종군기자였던 한규호씨가 인민군에 납치되어 살해됐다. 또한 인쇄시설 등이 2차례나 파괴·해체당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란살이 속에서 모진 고생을 겪었듯이 조씨 일가족은 처음 영도 남항동의 등대 근처 바닷가에서천막을 치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며 지내야 했고 조씨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이끌고 초량동과 부평동 등으로 옮겨 다니며 날품팔이와 행상을 하며 힘겹게 연명했다. 그러나 서울신문 사원들은 이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51년 4월3일 서울에 상경,중공군의 전쟁 개입으로 다시 전선이 밀리기까지 6일부터 24일까지 19일동안 아직도 한국언론사에 전설적인 기록으로 남아있는 진중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조씨는 피란지인 부산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60년 다시 서울로 상경했으나 조그만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61년까지 2년동안 온 식구가 굶기를 밥먹듯 하는 가난에 시달렸다. 서울신문도 60년 4·19 학생의거의 와중에서 윤전기와 사옥이 불탄 뒤 극심한 재정난으로 4월26일부터 7월25일까지 휴간할 수 밖에 없었고 계속되는 후유증으로 이듬해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기 1주일전부터 12월19일까지 장기간 휴간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서울신문은 60년 7월27일 조·석간제를 실시하고 67년 3월13일부터는 활자를 새로 교체하며 전면적인 지면개혁을 단행했으며 68년 11월22일부터는 모든 지면을 한글전용으로 제작했다. 또 창간 25주년을 맞던 70년에는 최신고속 자동윤전기 2대를 도입하여 종전의 시간당 5만부 인쇄에서 12만부를 인쇄할 수 있는 최신 시설로 끌어 올렸다. 서울신문이 이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사세확장에 땀흘릴 무렵 조씨는 그동안의 실의를 떨치고 중동고교에 수석으로 입학,장학금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으로 탈바꿈했다. 서강대 경영학과에 진학한 조씨는 전공보다는 어릴 때 부터의 꿈이었던 미술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80년 초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5년동안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했다. 서울신문은 그 사이 발전을 거듭하여 80년 12월2일부터 조간신문으로 바뀌고 85년 1월에는 숙원이었던 지상 22층의 새 사옥을 마련,한국언론사상 최초의 컴퓨터로 신문을 발행하는 시스템(CTS)을 갖추었고 같은해 6월22일에는 자매지인 스포츠서울을 창간,더욱 사세를 떨치게 됐다. 서울신문이 제2의 도약을 하던 해인 85년 조씨는 미술공부를 마치고 귀국,명일동에 미술학원을 열고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으며 2년6개월 뒤에는 같은 동네에서 4층 건물을 짓고 새로 이사하여 학원운영과 창작활동을 하며 딸 셋과 부인 등 5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조씨는 『서울신문의 발자취와 나 자신의 행로가 닮은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면서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우리 사회를 밝고 살기좋게 만들어가는 횃불이 돼달라』고 기원했다.
  • 새 민방의 출범에 부쳐(사설)

    새 민방 「서울방송」(가칭)이 초대 사장에 윤세영씨를 선출하고 대소주주로 이사진을 구성함으로써 창업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태동의 순간부터 온갖 억측과 비난으로 얼룩져서 온전히 출산될 가망에 불안을 느끼게 했던 민방이어서 그 앞날을 낙관하는 일은 아직도 완전히 허락되어 있지 못하다. 「6공 최대의 비리」를 공공연하게 장담하면서 무효화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적대세력을 눈앞에 두고 출범을 해야 하는 일이 당사자들에게도 많이 짐스러울 것이다. 그런저런 저간의 사정 때문에 새 민방에 대한 국민의 시각도 적잖이 굴절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래저래 그 출범 자체가 위태위태하게 여겨진다. 그렇기는 하지만 잉태 과정에서부터 이렇게 혹독한 시련을 겪는 것은 「새 민방」에 얽힌 관심과 기대가 그만큼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상수익이 연간 5백억원을 상회할 것이라는 추측 때문에 경쟁상대들이 벌이는 갈등이 치열했던 것이 첫째 요인이고,둘째 요인은 「방송」이라는 매체가 지닌 그 막대한 영향력에 기인한다. 새 민방 「서울방송」은 이제 겨우 그 첫 고개를 오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등정 자체를 부인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발목이 감긴 채이기는 하지만 출발은 했으므로 이 고갯길을 착실하게 오르기만 하면 이제부터는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비리의 억측이 근거가 없는 것이라면 모든 오해도 석명되고 떳떳하고 당당한 앞날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 고개다. 방송은 온 세대와 전체국민에게 일방적으로 투입되는 정신의 식품이다. 좋은 품질의 방송을 제조하여 공급하지 못한다면 공해물질에 중독되는 인체같은 화가 돌아온다. 시청자들인 국민들이 새 민방에 대해서 의구심과 불안 가득한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때문이다. 새 민방이 비록 수도권만을 커버하는 전파매체라고 하지만 그것은 전체인구 40%를 장악한다는 뜻이 된다. 산술수치로만 40%지,실질적인 영향력은 그 배 이상의 효과를 낸다. 초대 사장 윤세영씨는 「공익위한 공정방송의 지향」을 내걸고 있고,수익금의 공익위한 사업까지 약속하고 있으므로우선 신뢰를 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약속이므로 여전히 애매한 기대감밖에는 가질 수가 없다. 새 방송의 존재가치는 누가 뭐래도 「고품질의 방송」에 있다. 운영주체가 온 심혈을 기울여야 할 일도,품질 높은 방송만들기에 있다. 새 방송이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게 하는 데는 기성방송인의 협조도 있어야 하고 시청자의 견제와 성원도 필요하다. 당연하게 당국의 감시와 지원도 있어야 한다. 의혹과 불신으로 부정만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동시대를 산 사람들로서의 부재증명도 되지 않는다. 특히 인적 구성에 대해서 「대국적 차원의 도움 요청」을 하는 새 민방 주체의 호소에는 친화의 메아리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새 방송도 기존의 방송과 함께 우리의 공동자산이다. 이 정신적인 식품이 독의 되지 않게 하는 노력을 다함께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각변동과 흡수하게 다가올 엄청난 방송구조 개혁을 성공적으로 선도하는 계기를 만들게도 할 것이다.
  • 10대의 우상과 마약(사설)

    12일 저녁의 일이다. 7시 TV뉴스에서 가수 이승철이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된 사실이 보도되었다. 그러고 나서 30분도 채 안된 시간의 같은 TV에서는 코미디프로를 통해 한 개그맨이 「이승철의 인기」을 빗대어 우스개를 펼쳤다. 그러자 10대로 가득찬 방청석에서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단지 그 이름만 들먹여도 만당한 10대들이 기성을 질러가며 열광하는 가수가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로 마약사범의 혐의로 구속이 된 것이다. TV프로의 녹화시간과 속보시간의 시간차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마약사범으로 잡혀간 가수를 10대가 열광적으로 따르고 있는 현상을 TV가 긍정적으로 비친 것 같은 결과를 보인 것은 안방에 있는 시청자들을 당황시켰다. 문제는 이렇게 환호하며 따르는 10대의 우상이 환각제에 취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잖아도 10대 팬들은 저희들의 우상이 하는 일거수일투족을 흉내내고 싶어한다. 흉이나 흠까지도 좋아보이고 모든 행동이 흠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가 환각제를 사용한다면 그것까지 미화시켜 생각할 적지 않은 10대 팬들이 있을 것이다. 12일 구속된 13명의 마약상습자 중에는 이승철 말고도 가수와 작곡가가 더 있다. 택시운전사ㆍ부동산업자ㆍ식당의 여자종업원까지 있다. 마약인구가 얼마나 보편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인적 구성이다. 마약은 그것에 빠진 개인을 멸망시키고야 만다. 그리고 그가 속한 가정과 가족을 멸망지경에까지 끌고가고,그 고통 때문에 시련을 당하게 한다. 그것이 번져 사회를 되살릴 수 없이 썩어가게 만든다. 어제 오늘 우리를 환멸과 좌절의 늪으로 끌어들이듯 충격을 주었던 일가족 생매장사건의 범인들도 환각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그들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강력범ㆍ폭행범들이 예외없이 횐각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범죄의 필수불가결한 소도구가 되고 있는 환각제가 이렇게 무차별 확산되는 일이 걱정스러운데,그것들이 청소년들에게 선망과 환상의 형태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흔히 연예인들에게는 마약같은 정신촉진제가 부득이하게 필요하기도 한 것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환각에 의존하는 삶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파멸로 끝나는 인생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런 유혹이 상존하는 분야의 사람들일수록 그 유혹을 극복해야 마침내 승리할 수 있다. 연예계가 합심하여 방호벽을 쌓고 감시와 견제로 풍토를 개선하고 지켜야만 다함께 파멸하지 않는다. 이승철의 경우 보석으로 풀려난 지 몇 달도 안되어 청소년 팬들 앞에서 버젓이 무대에 서게 하고 재범으로 구속이 되는 과정을 10대 팬들이 보는 앞에서 재연하게 한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10대에게 준 악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반성해보아야 한다. 범죄에 대한 불감증현상 때문에 환각범죄는 오히려 무관심 속에서 더욱 창궐해가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모든 범죄의 죄질을 더욱 죄깊은 쪽으로 몰고가는 것이 환각범죄다. 지속적으로 뿌리뽑는 노력이 없이는 좀처럼 줄이기도 어려운 것이 이 범죄다. 사회 전체가 공조체제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 소련의 「사회주의」 국호 삭제(사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그의 국제적인 성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데 반해 국내적으로 봉착하고 있는 시련을 우려하는 소리가 높았다. 소련이 맞고 있는 위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불안과 경제난 해결이 2대 과제이며 어느 것도 풀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지난달에 발표된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8일 밝혀진 새 연방조약 초안이 바로 이들 난제의 「해결사」를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이 두 가지 개혁안을 동전의 양면에 비유하면서 새 연방체제가 이룩되지 않고서는 시장경제도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연방조약 초안에서 국명을 「주권공화국」으로 명시하고 「사회주의」를 삭제한 것만 봐도 시장경제에 부응하고 이데올로기 색채를 일소하겠다는 의지를 읽게 한다. 새 연방조약안은 「연방주권은 가맹공화국의 주권으로부터 나오며 각 공화국은 평등의 입장에서 가맹한다」고 규정해 자유화 바람으로 날로 거세지는 공화국들의 이탈움직임을 방지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공화국이 연방에 이양한 권한에 대해 연방법이 공화국법보다 우선하고 공화국이 연방에서 이탈할 권한은 갖되 이탈절차는 연방법이 정한다는 애매한 부분을 남겨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소련연방내 15개 공화국 중 14개가 중앙정부에 맞서 독립 또는 주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독립보장이지만 1922년에 체결된 구연방조약에서 법률적으로 이들 공화국의 위치가 불분명한 데다 지나치게 모스크바 중심적이어서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레바논화 현상」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주권선언의 속출은 결국 고르바초프의 권력기반 약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특히 고르바초프가 수레바퀴의 한 쪽으로 보고 있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은 다른 한쪽인 공화국들의 지지없이는 굴러갈 수 없을 만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것이다. 공화국이나 그 이하 수준에까지 경제운영의 권한을 양도해야 한다는 것이 고르바초프의 기본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공화국의 지도층은 개혁에 있어서 급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고르바초프의 온건정책에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련 최대의 공화국인 러시아의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미 고르바초프의 「완만한」 경제개혁방침에 반기를 들어 독자행동을 선언한 바 있다. 고르바초프가 공화국들의 반발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데 대해 『공화국지도자들,특히 러시아공화국의 옐친이 정치적 야심 때문에 현실을 무시하고 국민들의 인기에 영합,급속한 개혁만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이 비난은 옐친 없이는 문제해결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옐친은 소련에서 정치비중이 가장 크고 경제중심인 거대 공화국을 통치하고 있다. 때문에 고르바초프가 정치ㆍ경제현안을 풀려면 우선 옐친과 손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이들의 협력여부가 소련의 장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게 우리의 시각이다.
  • UR협상과 「할복」(사설)

    제네바의 가트본부에서 할복자살을 기도한 한국농부 이경해씨의 심경을 우리는 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농어민후계자협의회가 밝혔듯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농산물 수출국들이 UR 농산물협상을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의도에 정부만으로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임을 인식하고 할복이라는 극한적 방법으로 한국 농어민 1천만의 뜻을 나타낸 것』임을 우리도 이해하고 있다. 국내에서 정부만을 상대로 UR협상 타결을 지켜보며 그로써 예상되는 타결 이후의 생존문제를 속수무책인 채 받아들여야 하는 막막한 처지를 적극적으로 개선해보기 위해 그는 농민대표로 협상공간에까지 진출했던 한 사람이다. 그가 국제협상 무대의 대책없는 높이와 엄청난 파고에 절망을 느꼈으리란 것도 짐작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협상꾼들의 귀에까지 울리는 우리 농어민의 「소리」를 외치고 싶었을 것이다. 비록 행동은 너무 극단적이고 원색적인 것이었지만 농수산물 수입이 전면개방될 경우 죽음과 진배없는 파탄을 만난다는 생각에 한국의 1천만 농민이 사로잡혀 있는 것은 사실이다.세계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최전선에 배치되어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며 그래도 어느 정도의 번영을 누리고 살도록 싸워온 극동아시아의 크지 않은 나라 한국에는 이런 농어민이 1천만이나 있다. 그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한국정부가 파고높은 UR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이라는 현실을 거인나라 협상 상대자들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보다 분명히 해야 할 일은 국제협상에 대한 본질적 인식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라와 나라까리 국제간에 통용되는 문법과 질서로 조정하고 결말을 내야 하는 일이다. 정서적 대응으로는 한치의 진전도 기대할 수 없는 냉혹한 이성의 겨룸자리인 것이다. 오늘의 세계는 교역과 경제교류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어느 나라도 문을 닫고 혼자서만 살 수 없다. 특히 우리는 수출로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다. 가트에 가입하고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 적극 참가하는 것이 생존과 직결된 나라다. 할복을 기도한 이씨도 우리가 처한 이런 형편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는가 하는 심경도 든다. 그러나 우리가 아닌 남들,특히 협상에 참가한 협상대표들에게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착잡한 느낌도 든다. 어느 나라건 남다른 사정과 애로가 있기 마련인데,한국만 유독 극한 행동을 펴는 것은 국내문제의 수습미흡으로 빈축을 살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일면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협상자리에 나가 있는 정부대표의 운신을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면 우리에게 이로울 게 없다. 「UR협상」이라는 검은 그림자에 시달리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이웃 일본도 겪고 있는 일이고 실제로 너무 많은 이견과 복잡한 사정들의 얽힘 때문에 협상 자체가 난항을 겪고 있다. 이경해씨에 의해 던져진 충격을 빨리 수습하고,이를 계기로 우리의 국론도 모으고,협상전략도 가다듬어 슬기롭게 대처하는 기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입상품이나 사치성 소비재에 탐닉하는 생각없는 소비자의 자성까지도 함께해야 할 것이다.
  • 깊어가는 가을에/송정숙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10월31일 저녁 관훈토론에는 강영훈 총리가 나왔다. 군출신에,한때 준망명기를 지냈고,권력의 부근에 복귀하여 비바람 심한 자리를 무난히 견디고 있는 고희가 멀지 않은 현직 총리인 그가 아직도 우등생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모범생같은 공직자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기대이상의 일이다. 그런 총리가 이날 저녁 꼭한번 넥타이를 푼 것 같은 「맨얼굴」을보였다. 플로에서 던진 「전적으로 농담차원」의 질문에 응답했을 때였다. 많은 어려운 시기와 시련도 무난히 끝냈으니 이제 아예 정치일선으로 나와 대통령에 출마해보는게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파안이 되어 손을 홰홰 저으며 『큰일날 소리 말라』고 받아 넘긴 그는 자신의 「정치불가론」을 몇가지 꼽았다. 그중의 한 대목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나는 이북출신입니다. 그러니까 정치는 못해요』 이 말은 처음에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 말은,출신구역이 없으니 어디서 출마를 하겠는가,통일이나 된다면 『나도 내고향에 가서 한번 출마를 하고 고향사람들께 표좀찍어 달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한국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자처하는 이북출신 사람들의 약간 자조적인 분위기까지는 안갔지만 그것은 확실히 진솔함을 띤 목소리였다. 특히 바로 이튿날 조간에서 본 「고향」에서의 김영삼 민자당대표 최고위원의 모습이 소급해서 그 정서를 확인해주었다. 거물 정치지도자라도 거기를 근거로 출마하고,답답하고 혼미할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고향이다. 더구나 김 최고위원에게는 그곳에 노부도 계시다. 국가의 운명을 손안에 쥐고 천하를 경영하는 큰 정치인이라도 시골에 묻힌 조그마한 부친 앞에서는 그냥 아들일 뿐인 것이 「고향의 조건」이다. 김 최고위원의 서양식으로 포옹하는 모습은 조금 생소했다. 그보다는 좌정한 노인아버지 앞에 공손히 무릎 꿇고 엎드려 절하는 모습이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의 부자는 대개가 나이들수록 덤덤하고 무뚝뚝하다. 나이들수록 부친은 아들 앞에서 먼산을 보는게 보통이고,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 앞에서는 고개를 반쯤 꼰채 웃목이나바라보면서 딴청을 한다. 선산이야기,어렵게 사는 동기간 걱정따위를 아버지가 「잔소리」처럼 늘어놓으시면 묵묵히 들어 드리다가 요긴한 대목에서 우물우물 대답을 한다. 그런 아들이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든든하고 소중한만큼 어려워서,알아서 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서 옛날 할머니 어머니들은 나이든 부자는 되도록 겸상도 차려주지 않았다. 서로 불편하여 식사를 누리기 어렵다는 배려때문에 조손이나 손자만큼 어린 아들이 아니면 겸상을 해주지 않는다. 아무튼 출세를 많이 하거나 크게 된 아들이 소박한 귀향길에 촌로로 보이는 아버지에게 공손히 절하는 모습은 보기가 좋다. 흡사 이름은 없지만 꼿꼿하고 당당한 서민앞에 겸손하게 절하며 하명을 기다리는 검박한 정치인의 모습같은 것을 발견하게 하는 모습이다. 분당 소용돌이의 안개정국이 한치 앞도 제대로 비쳐주지 않는 이런 혼미한 계절에 「고향」 타령이나 하고 절의 「정서」를 늘어놓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목소리 가다듬어 꾸짖기도 지쳤고 정국을 탐색하기도이제는 성가셔졌다. 다만 순하고 소박하고 겸허한 정서의 총체인 「고향」을 지녔다는 것이 우리의 정의적 자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향이 이렇게 각별히 느껴진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또 지금이 깊은 가을철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난감하고 무력감이 드는 이 느낌이 겨울로까지 연장되지 않도록 순하고 겸허하며 현명한 가을의 감성을 발휘해 주었으면 좋겠다. 영국의 왕중에서도 가장 신사도의 덕목을 지녔던 조지 5세의 「행장전범」이 있다. 침대 머리맡에 새겨놓고 기도하듯 외웠다는 이 전범을 20세기의 현인 임어당은 추천한다. 「게임의 룰에 순종할 수 있게 하옵시고, 칭찬할 정서와 타기할 감상을 분별할 수 있게 하시며 값싼 칭찬을 하지도 말고,받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지도 말게 하소서. 만일 나에게 수난을 요구하면 그것을 묵묵히 받아서 순종하는 동물처럼 되게 하소서. 이겨야 할때는 이기는 법을,져야 할때는 멋진 패자가 되게 하소서. 달을 향하여 읍소하지 말게 하시고 쏟아진 우유에 미련을 갖게 하지 마소서」 이 전범중에서도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그 첫 항인 듯하다. 「게임의 룰」에 순종할 수 있게 해달라는 뜻을 기도로 되뇌며 일상을 지냈다는 일이 매우 인상적이다. 군왕조차도 지키기가 쉽지 않아서 이렇게 간절하게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이 아니었겠나 싶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든다. 그 다음으로는 네째항인 「수난을 요구하면… 순종하는 동물처럼」 되게 해달라는 대목이 좋다. 수난이란 동물처럼 맹목으로 묵묵히 당하는 것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는 철학을 터득한 전범이기 때문이다. 「멋진 패자」란 말이 좀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정치인에게는 특히 정상급 정치인에게는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일 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맑은 마음으로 여러번 반추해볼만한 이 전범을 모든 힘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 민자당의 갈등을 우려한다(사설)

    우리 정치권의 정치력 복원을 위한 정국정상화 전망이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 지방자치제 실시문제를 중심으로 한 여야간 등원협상이 벽에 부딪치더니 여권내에서 일고 있는 이른바 내각제 각서 파동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국의 경색도를 더 깊게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때 국민의 관심사로 되었던 야권통합 문제는 뒤로 밀려난 셈이 됐다. 야권통합이 다시 혼미상태를 거듭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그것이 정치수준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여겨져 우리 정치의 앞날을 더욱 걱정하게 된다. 그렇다고 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우선 당장의 관심사가 내각제 각서 파동이다. 우리는 그런 사태가 야당도 아닌 집권여당에서 빚어진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작금의 자민당 내부동향을 살피면 지금 우리 정국의 혼미상태가 민자당에 의해 더욱 심각해지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민자당은 현재로서 엄연한 집권여당이다. 본래의 여당이었던 민정당과 공화당이 연합하고 거기에 민주당이 합세함으로써 후발 여당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민자당이 집권당이 아닌 것은 아니다. 처음엔 거대여당이니 해서 그 운신에 대해 우려의 소리도 없지 않았으나 차츰 여당의 자세를 갖춰가는 듯했다. 그러나 작금의 그 내부양상은 단순한 내분이나 갈등양상을 넘어 집권당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성을 보이고 있음에 틀림없다. 보도된 대로라면 당초 3당통합 당시 3인의 대표가 내각제에 합의한 것은 사실일 터이다. 3인의 합의는 그들 정치인의 개인적 욕구나 희망사항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합의를 토대로 천하의 공당,아니 집권여당의 구도가 형성된만큼 지금와서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민자당은 앞서 내각제를 올해 안에는 공론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합의사항에 대한 공론화의 문제는 정확히 말해 정치적 기술이나 정략에 속하는 것인만큼 얼마든지 신축성을 가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합의사항 바로 그것이다. 이는 공인간의 약속이요 더 나아가 집권여당의 정체성에 대한 근거 요인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각제 그 자체가 의회민주주의의 내용과 명분에 가장 근접한 권력구조 형태라는 사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또 개헌 자체를 두고 된다느니 안된다느니 할 일은 물론 아니다. 어떤 제도든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고 현행제도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시기에 집권여당이 장기적인 권력구조의 개편문제를 놓고 그것도 내분양상마저 빚어가며 혼미에 빠져드는 것을 우리는 우려하는 것이다. 지자제 역시 지금와서 그것을 어떤 협상의 대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여야간 당초의 합의사항을 최대로 살리면서 그 정신에 따른다면 해결의 길이 찾아질 것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과 실망은 작금에 걸쳐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 민자당은 그럴수록 정치적 주도력을 갖춰야 한다. 지금 민자당은 중대한 기로에서 시련을 겪고 있다. 내각제 파동으로 빚어진 자체내 갈등과 혼선을 우선 조속히 수습해야 한다.
  • 일본 「자위대 파병」뜨거운 찬반 논쟁

    ◎“세계평화에 공헌… 파견 마땅” 찬/“명백한 위헌,전면 철회해야” 반/“경제력 업고 군사대국화 노린 도박”비판도 전쟁의 포기,전력 및 교전권을 부인한 현행 일본 헌법하에서 사실상의 군대인 자위대를 해외에 파견할 수 있는가. 이것이 가능하다면 무기 휴대는 어떻게 되는가. 「중동국회」로 불리는 일본의 제1백19회 임시국회는 자위대의 중동파견에 근거법이 될 「유엔평화협력법안」의 심의를 위해 지난 12일 소집됐으며,16일부터는 각 당 대표질문이 시작돼 본격적인 논전에 들어간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는 임시국회 개회에 즈음한 소신표명 연설에서 『냉전후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중동위기에 「평화국가」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전후 최대의 시련』이라고 지적하고 『유엔이 목표로 하는 「공정한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은 인적ㆍ물적 양면에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세계평화에의 공헌은 당연하고도 필요불가결한 코스트(비용)』라고 밝히고『법체계의 정비를 위해 유엔평화협력법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야당측은 자위대의 해외파견은 있을 수 없다며 전면대결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사회당은 『이 법안은 자위대의 해외파병의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서 헌법과 국회결의에 위반된다. 무장ㆍ비무장의 어떠한 형태로든 자위관의 해외파견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편 자민당 내에서도 자위대파견에 대한 신중론이 뿌리깊게 깔려 있어 이 법안의 통과여부는 가이후 내각 자체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전문 32조 6장 부칙으로 구성된 이 법안은 비무장 원칙을 선언하고 있으나 호신용 소화기의 휴대를 인정하고 있다. 초점이 되고 있는 자위대의 유엔평화협력대에 참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제22조에 『본부장(총리)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부대 및 자위대원의 참가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그 신분은 「협력대원」과 「자위대원」을 겸임한다고 밝혔다. 이 법안의 문제점은 다음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미군을중심으로 한 중동의 다국적군은 유엔 그 자체의 활동은 아니다. 그래도 일본은 지원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유엔의 평화유지활동(PKO)에 대해 정전감시,선거감시 등 4건에만 외무성 직원 등 요원을 파견,협력해 왔다. 88년의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의 이행감시,이란ㆍ이라크 정전감시,89년 나미비아 선거감시,90년 니카라과 선거감시가 그것이다. 자금협력은 17건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유엔헌장규정에 따른 것이었으나 이번 경우는 유엔결의 그 자체가 아니라 유엔결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각국이 취하는 자주적 활동에 협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의 폭이 보다 넓다. 다국적군도 유엔헌장 제42조를 근거로 한 「평화유지군」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그런데도 일본은 여기에 군대를 보내 협력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둘째는 자위대의 해외파견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금지한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점이다. 일본 헌법 제9조는 『①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포기한다. ②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이해 육 해 공군 기타 전력은 보유치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법상 집단적 자위권은 자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외국에 대한 무력공격을,자국이 직접 공격받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실력으로 이를 저지하는 권리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을 지키는 개별적 자위권과 함께 유엔헌장에서 독립국가가 갖는 것을 인정하는 권리라고 보면서도 『헌법 제9조에서 허용하고 있는 자위를 위한 필요한 최소한도의 무력행사의 범위를 넘는 것』이라며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는 허용할 수 없다는 해석을 지켜왔다. 그러나 15일부터는 돌연 「해외파병」과 「집단적 자위권」은 별개의 문제이며 국제평화유지활동은 헌법의 정신에 부합된다는 확대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세번째는 분쟁주변지역에서 공격을 받았을 경우 자위대는 무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는가 라는 점이다. 자위대원은 분명 군인이다. 군인이전쟁터에서 아무 무기도 갖지 않고 도망만 다닌대서야 국제적인 웃음거리밖에 더 될 게 없지 않는가라고 많은 일본인들은 우려한다. 어쨌든 이 법안은 경제대국인 일본이 군사ㆍ정치적인 면에서도 1등국이 되어 보자는 「초조감」에서 나온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파병지역이 중동이니까 망정이지,일본의 군사력강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한국과 동남아지역에 파병할 문제가 생길 경우 일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염려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든 이번 법안의 국회통과 여부는 일본 정계를 당분간 시끄럽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고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 “재판 한번 없이 7년간 옥살이”/후지산호 선장 일 귀환 회견

    ◎「부친사망」 한달 지나서야 알아/「석방요구 단식」 “정치문제라 소용없다” 7년간의 억류 끝에 풀려난 제18후지산(부사산)호의 베니코 이사무(홍분용ㆍ60) 선장은 13일 고향인 고베(신호)에 돌아와 시청에서 약50분 동안의 기자회견을 갖고 나포 당시의 상황과 북한 억류생활에 대해 소상히 증언했다. 베니코 선장은 정규재판을 한번도 받지 않았으며,형무소에서 석방을 요구하며 몇 차례나 항의단식을 했고,집에서 보내온 책은 성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각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억류중 어떻게 생활했는가. 어느 형무소에 언제까지 있었는가. ▲형무소에는 88년 4월26일부터 90년 9월18일까지 있었다. 어디있는 형무소인지는 모르겠으나 입항했던 남포와 가까운 곳은 아니었다. 평양 어디였다. 나는 3명과 함께 있었다. 그 가운데 일본어를 잘하는 조선사람이 있었다. 무슨 죄로 들어 왔는지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간수의 지시 등을 통역했다. 형무소에서 강제노동을 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책은 성서밖에 없었으며 그밖에 들여보내준 책은 전부 소각명령을 받았다. 차중에서 거리를 본 일은 있으나 밖을 걸어 본 일은 한번도 없었다. ­재판은 어떤 것이었나. ▲재판은 없었다. 단지 2층 건물에서 조선말로 고지되어 통역이 일본말로 설명했다. 우리는 돌아갈 수 있으려니 했는데 실제로는 형무소에 들어갔다. 구리우라(율포) 기관장과는 체포되어 5백52일째부터 함께 있었다. 꽤 항의하고 단식하며 『보내달라』고 말했다. 단식은 하루 반나절 또는 이틀씩 했다. 그때마다 취조담당 대장이 『그러지 말아달라. 당신들에게 죄는 없다. 일본정부와 조선정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가족으로부터 편지는 몇 통 받았는가. ▲형무소에 들어가기 전에 22통 왔다. 형무소에서 받은 것까지 치면 37∼38통 된다. 빠른 것은 1개월 만에 받은 것도 있으나 늦을 때는 7개월 걸린 것도 있다. 부친 사망소식도 처로부터 편지로 알았다. ­북한의 겨울은 어땠는가. ▲밖은 영하 30도나 되는데도 방에는 히터가 없었다. 양말 2켤레,장갑 2켤레를 겹쳐 끼고 면 내의를 입었다. 수건으로 볼을꽉 싸고 생활했다. 『고문이다』라고 말했더니 히터를 넣어 주었다. ­식사는 어땠는가. ▲형무소를 나와서는 좋아졌으나 그때까지는 콩밥,엄지손가락만한 고기,닭고기,계란 등 4∼5가지였다. ­1987년 11월의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을 알고 있었는가. ▲일본의 뉴스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으나 KAL기 사건은 알고 있었다. 『조선이 한 것도 아닌데 일본정부는 우리가 했다고 한다』라는 것과 같은 말을 감시인이 영어로 말했다. ­스파이 혐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자신이 말하지 않더라도 신이 알고 있는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가르쳐 줄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어떤 지시가 있었는가. ▲그것은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베니코 선장에게 있어 북한억류 7년은 무엇이었는가. ▲좋은 시련이었으며 전보다 인내력이 길러졌다고 느끼고 있다.
  • 사회악과의 전쟁/승리하지 못하면 함께 멸한다(사설)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의 병리가 공동체의 존폐를 위협할 만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인식아래 통치권을 걸고 사회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각오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전쟁」을 공식 선포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현실은 아주 절박하다 대통령의 선언은 그래야 할 절박함이 우리 앞에 닥쳐 있음을 내포하고 있다. 통치권의 후반기를 보내고 있는 정치지도자가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통치구조의 공동화의 부담을 감내하기도 쉽지 않은 터에 과감하게 「칼을 빼는」 모험을 해야 할 만큼 우리 사회는 범죄와 폭력과 무질서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뜻이다. 정부의 이같은 현실인식이 과장도 아니고 허구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한 대통령의 분석 또한 타당하다. 민주화 코스트로 통칭되는 지난 2,3년의 전환기적 상황을 이제는 매듭지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호소도 소구력이 있는 말이다. 사회 안에서는 이미 냉철한 성찰의 움직임이 태동되었고 국민적 합의아래 공감대도 확산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회라는 생체는 어느 정도의 자생력이 있어서 위기가 극단에 이르면 생이지지한 현명함으로 자구노력을 보이게 된다. 우리에게서도 그런 능력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점에 공권력을 주도하는 통치의 중심부가 각성의 「칼을 빼어들고」 생사를 건 전쟁을 선언했다는 것은 우선 반갑고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당한 진단과 적절한 처방을 전술전략삼아 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신뢰부터 회복해야 이 「전쟁」이 소기한 전과를 어느 정도라도 거두지 못한다면 대통령의 통치권에 부질없는 흠을 남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모두의 발밑이 무너져 나가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이 찾아올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엄포가 아니다. 이미 그런 현상은 상당히 가시화하고 있다. 우선 급선무는 불법과 무질서의 최대의 피해자인 국민을 구출해야 한다. 법대로 사는 사람이 탈법으로 잘 사는 사람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무질서하게 날뛰는 사람들이 저지른 과태료를 질서를 지키는 시민이 갚아주는 오늘과 같은 현실에서는 온당하고 순리적인 삶은 어리석은 짓이 되어 버린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고 근검하게 사는 것은 못난짓으로 보인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래가 지금보다 더욱 암담하다는 것을 예측시키는 일이다. 불행하게도 관계 법령이나 제도적 장치들을 추적하기 쉬운 봉급생활자나 근검한 소시민을 감시하는데만 단호하고 굵고 힘센 계층은 법의 그물코를 능히 찢고 빠져나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른바 선진사회를 구축한 나라에서는 관공서를 상대로 뇌물이 통하고 대학입학이 「부정」으로 가능하거나 교직을 돈으로 사고 파는 일이 항다반사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선진한 사회이므로 그런 일이 없어진 것인지 그런 일이 없으므로 선진한 것인지는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선후를 가리기가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런 병리를 상존시킨 채 좋은 사회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업화나 산업화사회가 경제적으로 다소 잘살게 해준다 하더라도 공해로 오염되고 환경이 파괴되면 질식해 버리듯이 우리의 삶이 물질적으로 다소 기름지고 호화스러워진다 하더라도 악이 선보다 승하고 도덕이 타락해서 품위없이 산다면 행복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후손이 살아갈 우리의 미래가 그렇게 되어간다면 물질적 유산이 별 소용이 없다. 타락한 자녀가 마약이나 도박으로 선대의 유산을 파탄시키듯 그런 후손은 유산을 지탱하지도 못한다. 참답게 잘 사는 국민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에 국가적 목표를 두고 총력을 기울이는 길 밖에 없다. 그 길은 쉽게 성과를 이루기도 어렵고 노력은 한없이 들여야 한다. 그것을 포기해서는 아무런 효과도 거둘 수 없다. 무엇보다도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 눈가림으로 구호나 내걸고 시민단체가 이룬 공을 차용하여 위기나 모면하려는 속셈이라면 누구도 속지 않는다. 공직자ㆍ정치지도자들의 피나는 자정 노력을 보지 않으면 국민은 절대로 신뢰감을 갖지 않을 것이다. ○승리를 위한 동참을 사회 내부의 부조리로부터의 도전에 과감히 대결하기를 선포하는 정부의 의지에 시민도 동참해야 한다. 모든 성과는 「국민의 변화」로 만들어낼 수 있다. 민주화의 격렬한 시련을 통해 우리에게는 조금 잘못된 체질이 배어버렸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을 마치 「게임」을 관전하듯 사시적 시각으로 즐기는 태도이다. 『어디 한번 잘해 보렴!』하고 비딱하게 냉소하는 것을 멋부리기 삼아서 흉내내는 듯한 부정적 시각이 만연해 있다. 근년에 이르러 우리에게 베어진 가장 좋지 않은 속성이 이것이다. 정부가 이번 「사회악과의 전쟁」에서 진다면 그 불행은 바로 우리 국민에게 돌아온다. 시한부로 고용된 공복일 뿐인 대통령이나 그밖의 공직자ㆍ정치지도자는 실패와 더불어 물러나면 그뿐이다. 그러나 패전으로 인한 채무는 우리가 갚아가야 한다. 이기적인 방법에서 다소 재화를 모은다고 해보았자 자식들이 빗나가고 가족끼리 불화하거나 황폐하게 타락한다면 그 집안은 결코 행복한 게 아니다. 우리는 흥청망청 쓸 만큼 부자나라가 된 것도 아니지만 설사 부자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일하지 않고 적절하게 아끼며 참을성이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우리 몇배로 합리적이고 근검하며 무섭게 일하고 산다. 능력을 발휘하여 일하고 낭비하지 않고 아끼며 어려움을 참는 기능만 있다면 어떤 세상에서도 온당한 삶을 살 수 있다. 법을 안지키고 질서를 파괴하고 책임질줄 모르는 사람은 악인에 속한다. 그런 사람이 옳게 인정받는 사회란 없다. 팔짱을 끼고 관망만 하면서 유리한 성과만을 차지하려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이기행위는 노력의 성과에 동참할 자격을 얻지 못한다. 대통령의 「새질서 새생활실천」의 호소에 충실히 귀기울여 옳은 것에는 동참하고 잘못가는 것은 제동하여 이 전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그래야 우리는 이 짙은 안개속같은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범죄수법같은 부정입학(사설)

    신입생을 부정입학시킨 한 대학이 수사를 받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올해인 90학년도 신입생중 94명이 1인당 3천만∼4천만원씩을 내고 입학권을 샀고 그렇게 받은 32억원을 학교측에서는 예금도 하고 과학관 신축 등 학교운영에 쓴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는 과정에서 「관련 교직원의 위로금」도 1억원이 쓰여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원의 13%나 되는 신입생을 부정으로 입학시키기 위해서 학교와 재단측이 행한 비리가 실로 대담하다. 교수나 교직원들이 사전에 「부정입학 지원자」를 모집하고 그 명단을 받은 사무처장 교무과장 등은 전산기에 미리 입력하고 답안지의 수정작업을 한 뒤 명단을 소각해 버렸다. 정밀하게 완전범죄를 기도한 그 수법이 여간 숙련된 게 아니다. 솜씨나 규모로 보아 한해 두해 해온 짓이 아닌 듯한 비리가 바로 금년에도 저질러졌다는 것이 더욱 충격스럽다. 지난해에는 한 대학의 입학부정으로 현직의 성직자 총장이 구속까지 되는 사태가 일어나 진통을 겪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여타의 대학에서는 「부정지원자」를 물색하고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수면 밑에서는 유사한 비리가 또 다른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쉽게 해보게 한다. 대학의 교수와 핵심 운영멤버들이 마치 범죄집단처럼 부정을 합작하는 일이 의연히 중단되지 못한다는 것은 서글프고 정떨어지는 일이다. 한성대학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부정입학은 어떤 개인의 착복을 위해 저질러지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모아들인 돈은 거의 그대로 「학교를 위해」 쓰여지고 있다. 이미 개인규모로는 학생을 부정입학시킬 수 있는 능력이나 재량권이 거의 없어졌다. 다만 사립대학들의 재무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에 이런 일도 피치 못하다는 빌미로 대학들이 구조적으로 부패해가는 것이다. 그 점이 심각하다. 오랜 세월동안 불법과 비리 운영을 거듭해온 사학이 종당에 가서 겪게되는 시련의 비극적인 상황을 우리는 최근까지 한 대학에서 보아왔다. 수법이 놀랍도록 세련되고 발달한 사학들이 조만간 같은 시련을 겪게되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에 진작부터 암담한기분이 든다. 항간에서는 이런 소문이 꾸준히 나돌았고 지망자를 물색하는 「선」이 가까이까지 접근해 오는 것을 겪었다는 경험담이 심심찮게 들리기도 해왔던 게 사실이다. 이런 소문이 고약한 것은 전체 사학이 빠짐없이 오염된 듯한 인상을 심는다는 점이다. 『국공립 빼놓고는 어디든지 가능하다. 돈만 가져와라』고 흰소리를 치는 아마추어 사기꾼까지 합세하여 대학의 신뢰성을 마구 추락시켜 왔다. 막상 이런 대규모의 비리 현장이 들춰지고 보면 그런 소문들이 강력하게 뒷받침되어 버린다. 감독기관이 그처럼 속수무책이었다는 일도 실망을 가중시킨다. 분명한 것은 이런 병든 사학은 그것으로 인한 생사의 고비를 치르게 되고 마침내 불치의 선언도 받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학이란 그렇게 운영될 수는 없는 곳이다. 이른바 「기여입학제도」를 적극 검토해 보는 일도 서둘러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암거래가 끊일 수 없는 일이라면 햇볕에 내놓고 그나름의 질서에 의해 행하도록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 미 「예산싸움」에 국민들만 “골탕”/의회­행정부 줄다리기 언저리

    ◎세금 늘리고 복지예산 깎은게 화근/반대여론 높자 선거 앞둔 의원 “부표”/“공공업무 중단은 국민모독”… 시민들 거센 비난 가을의 절정으로 일컬어 지는 콜럼버스 데이 연휴 기간중 (10월6∼8일) 미 전역에서 주요 관광명소가 일제히 폐쇄되는 이변이 벌어졌다. 적자감축예산안이 의회에서 부결된데 부아가 치민 부시대통령이 「예산부재」를 이유로 연방정부의 기능을 정지시키면서 관계 공무원들이 휴업에 들어간 때문이다. 예산문제로 인한 미 정부의 기능 마비는 레이건 집권시절인 1986년 10월17일에도 수시간 계속된 바 있다.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찾았던 수많은 관광객들,그리고 쉐난도아 국립공원을 찾았던 등산객들은 굳게 닫힌 문앞에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정부기관의 휴업을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국립공원의 산행 안내지나 박물관 경비원에게까지 문제가 파급되리라고는 믿지 않고 나들이에 나섰다가 허탕을 친 이들은 「이건 국민을 모독하는 처사」라면서 분노를 터뜨렸다. 이번 연휴중 문을 연 유일한 연방기관 건물인 의사당에는 갈 곳을 잃은 관광객이 6일 하루만도 1만2천여명이 몰려들어 주변에 큰 교통혼잡을 빚었으며 정숙해야 할 회의장내에선 정부 휴업을 둘러싼 의원들의 열띤 찬반토론에 방청객들의 환호와 야유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국방ㆍ치안ㆍ우편ㆍ항공통제 등 연방정부의 필수업무를 제외한 모든 공공업무의 수행을 정지시킨 이번 조치는 부시대통령과 의회가 지난 1일부터 시작된 1991 회계연도의 가예산이나 본예산안에 합의할 때까지 계속된다. 연방정부의 1백10만 공무원들은 연휴가 끝나면 9일 아침에 일단 평상시처럼 출근하지만 만일 그때까지 합의 예산안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필수 요원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람은 출근후 3시간내에 퇴근 조치된다. 이번 조치로 워싱턴 일대에선 스미소니언 박물관 13개소가 모두 문을 닫았고 포토맥 남쪽 강변의 피크닉시설,포드극장,알링턴 국립묘지사무소,국립동물원의 동물사 등이 폐쇄됐다. 의사당과 링컨기념관 사이의 수㎞에 이르는 광활한 잔디광장에 배치된 관리요원은 단 4명에 불과해 이 일대의 공중변소가 폐쇄됐다. 적자 감축문제와 관련해 수주전부터 정부기관의 폐쇄 가능성이 어렴풋이 예상되기는 했었지만 정작 그 유명한 국립박물관들의 문이 닫힌 것을 보고 관광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관광객은 2백달러나 들인 워싱턴 여행이 무위로 돌아갔다며 「국민들이 잔뜩 화가났다고 부시에게 전하라」고 소리쳤다. 이번 사태는 지난 6개월동안 백악관과 민주 공화 양당 지도자들이 끈질긴 협상끝에 마련한 적자감축합의 예산안을 5일 새벽 하원이 2백54대 1백29표로 부결시킨데서 발단됐다. 향후 5년간 총 5천억달러의 적자 감축계획을 담은 이 예산안은 세금 신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 공화당 보수파와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예산이 너무 깎인다고 생각한 민주당 진보파의 결합으로 부결됐다. 그후 하원은 경과조치로 향후 1주일간의 연방정부 운영비를 책정한 잠정지출 법안을 서둘러 성안,통과시켰으나 부시는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한편 6일 새벽부터 연방정부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하원은 부시의 거부권 행사를 무효화하려고 했지만 투표결과(찬성 2백60ㆍ반대 1백38) 번복에 필요한 3분의 2에서 6표가 모자라 실패했다. 의회의 양당 지도자들은 연휴중 철야협상끝에 의료보험 수혜폭의 삭감을 완화하고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늘리는 내용의 새로운 타협안 마련에 성공,정부 휴업의 확산위기를 넘겼다. 이번 사태는 부시의 적자 감축 호소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의원들이 대거 반란표를 던졌다는 점에서 부시의 권위와 지도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동시에 페르시아만 사태와 더불어 부시에게 내우외환의 양상이 겹친 집권이래 최대의 정치적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잠정예산안에 대한 부시의 거부권 행사는 의회의 예산편성 실패를 부각시키려는 강공책의 일환으로 분석되고 있다. 부시는 의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의원들의 무능 때문에 정부 업무 중단이 야기됐다고 주장하면서 의원들이 국가이익과 선거구 정치를 혼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지난번에 하원이 거부한 합의 예산안은 「증세없는 적자 해소」를 다짐했던 부시의 1988년 선거공약과는 대조적으로 각종 세금인상과 복지예산 삭감을 통해 재정적자의 감축을 추진하는 내용으로 돼있다. 이 예산안에 담긴 유류ㆍ담배ㆍ주류 등 각종 소비세의 인상과 의료보조금ㆍ농업보조금ㆍ학자금융자 등의 삭감은 단기적으로 모든 미국인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계획은 또 고소득층 보다 중산층의 세 부담을 늘림으로써 조세형평의 원칙에 배치된다는 지적도 받았다. 얼마전 이 예산안의 내용이 보도되자 여야의원들에게는 유권자들로부터 반대와 항의전화가 빗발쳤고,오는 11월6일의 중간선거를 목전에 둔 의원들은 재선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에 대해 여론은 「근본적으로 부시의 공약 파기가 초래한 결과」라고 비판적인가 하면 「외교에 치중하고 내정에 소홀했던 부시의 자업자득」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 외언내언

    통일독일을 경축하는 1백만 독일인들의 함성과 환호. 베를린시 의사당앞 광장의 감격이 화면으로,활자로 전해져 온다. 통일독일을 두고는 피해당사국들 사이에 우려의 시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민족으로서는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다. ◆『…헨델,라이프니츠,괴테,비스마르크…,그들은 독일류의 강력한 전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독일은 온갖 대립 사이를 의념없이 살아 나오고 유한 강을 터득한 가운데 신념이나 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그를 서로 접합ㆍ이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자유를 보전하고 있다.…』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884)에서 하고 있는 말. 오늘의 동서독일 하나됨도 니체의 이런 지적에 연유함인가. ◆지금부터 5년전쯤,헬무트 콜 수상을 실랄하게 꼬집는 「농담집」 4권이 서독을 휩쓸었다. 동서독이 대치한 상황 아래서 서독의 방첩책임자 티트게가 동독으로 망명하고 심지어 총리의 여비서 부부까지 망명하자 서독국민들은 울화가 치밀었던 것. 「농담집」은 그 분풀이를 하면서 콜 총리를 완전히 「바보 천치」로 묘사한다.그것을 읽은 콜 총리는 『너무 재미있어 나도 웃었다』는 여유. 그럴 수 있는 체제 속의 대기였기에 오늘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 아닐까. ◆통일이 되었다 해도 안팎의 시련은 지금부터라 하겠다. 중요한 것은 「거인」이 된 독일이 세계평화에의 길에 어떻게 이바지해 가느냐 하는 점. 특히 주변 피해 당사국들은 거기 주목한다. 그 점에서 독일인의 심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비판했던 독일인 하이네의 경고도 재음미해야 겠다.­『프랑스의 애국주의가 전문명국을 포용하는 데 비해 독일의 애정의 실체는 이렇다.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냉기 속의 가죽과 같이 수축하며 외국 것을 증오하면서 세계시민도 유럽인도 아닌 편협한 독일인이기를 원할 뿐 이다』(「로망파」제1장). ◆누가 뭐라해도 오늘의 결과는 게르만족의 예지와 애국애족정신에 기인하는 것. 우리의 남과북­예지도 애국애족정신도 없다 할 것인가.
  • “제2의 비스마르크”헬무트 콜 총리

    ◎결단력 갖춘 “통일의 설계사”/12월 전독총선서 압승 확실 통일독일의 초대 총리자리를 차지한 헬무트 콜(60)에게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던 콜은 20세기 후반 최대의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통독을 솜씨있게 요리해 냄에 따라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에 비견되고 있다. 비스마르크가 1871년 분열된 독일을 힘으로 통일시킨데 반해 콜은 분단된 독일을 빈틈없는 외교능력으로 통일시킨 것이다. 독일이 통일된 요인으로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등장한 이후 무르익은 동서 데탕트와 지난해 가을 동구를 쉽쓴 민주화혁명 등 외부적인 요소를 물론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호기를 놓치지 않고 통독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콜 총리를 중심으로 한 서독 지도자들의 능력 때문이었다. 콜은 동독이 지난해 11월9일 베를린장벽을 민주화의 열풍으로 붕괴시킨 뒤 곧 통독 10개항을 발표,통독을 국제무대에 핫이슈로 부각시키면서 기정사실화 했다. 또 콜은 독일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던 미ㆍ소ㆍ영ㆍ불 등2차대전 전승국 지도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외교노력을 겐셔 외무와 함께 강화했다. 그는 지난 7월16일 소련을 방문,고르바초프로부터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허용』이라는 양보를 얻어냄으로써 통독에 대한 최대의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었다. 콜은 지난 82년 총리가 된 것도 행운이었다. 당시 집권사민당과 연정을 이룬 자민당의 일부 의원들이 슈미트 전총리의 정책에 대한 반발로 콜 진영으로 합세,불신임안을 제출함으로써 13년간의 중도 좌파연정을 붕괴시켰기 때문. 그러나 지난 47년 기민당에 입당한뒤 69년 라인란트 팔츠주의 최연소 지사,73년 기민당 최연소 총재 등 화려한 기록을 세우기도 한 역사학박사인 콜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는 지난 76년 총선에서 총리에 도전했으나 실패했으며 80년에는 동맹관계에 있는 기사당의 슈트라우스에게 총리후보를 빼앗겼으며 76년ㆍ83년 총선시에는 출신지역구에서 탈락,비례대표로 구원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었다. 신장 1백92㎝ 체중 1백30㎏의 거대한 체구를 지닌 그는 경제ㆍ국방전문가인 슈미트 전총리에 비해 특별한 전문분야도 없으며 정치력도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의 인기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30%선을 밑돌아 집권기민당 내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높았었으나 통독을 이룸으로써 그의 위치는 확고해져 57년만에 치러지는 오는 12월2일의 전독총선에서도 라이벌인 라퐁텐 사민당 총리후보(46)를 물리치고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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