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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모/79년 창업,베일속에 급성장

    ◎한강유람선 운항등 해운서 두각/16개사업부 운영… 유사장이 총괄 「오대양사건」의 배후에 주식회사 세모가 개입됐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날로 의혹이 증폭됨에 따라 이 회사에 세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세모는 그동안 독특한 경영방식 때문에 급성장한 기업의 하나임에도 「베일에 싸인 기업」으로 인식돼왔던게 사실이다. 세모는 지난 79년 3월22일 태양개발주식회사라는 상호로 출발,82년 10월 현재의 명칭으로 상호를 바꿨으나 그 모태가 된 것은 삼우트레이딩이라 할수 있다. 세모는 지난 76년2월 유병언사장(51)이 부친의 친구가 운영하던 삼우트레이딩을 인수,오늘의 모습으로 급성장시켰다. 삼우트레이딩은 종이비누 섬유 페인트 전자모니터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업계에 발판을 넓혀갔다. 삼우트레이딩은 이밖에도 지난 84년 세계에서 3번째로 고해상도 컬러TV모니터를 개발,정부로부터 훈장과 함께 대통령의 방문격려까지 받았다. 이처럼 발명·실용특허가 기반이 된 삼우트레이딩으로 사업을 확장해가던 세모는 지난 85년 9월 유사장이직접 도안·제작한 한강유람선모형이 서울시에서 채택됨에따라 86년 9월 코리아타코마등 유수업체를 물리치고 한강유람선 운항권을 따내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한강유람선사업자선정문제를 둘러싸고 「특혜시비」에 휘말려 86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동안 집중적인 세무사찰을 받아 31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했다. 이같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세모는 「오대양사건」이 발생한 87년을 전후한 86년부터 88년사이 30여억원의 자본금을 집중적으로 투자,사업규모도 식품제조업(세모스쿠알렌) 유람선제작 종합개발 컴퓨터주변기기 제약(피부미용제) 보일러제작등 16개 사업부로 급속히 성장했다. 이들 각 사업부는 독립적인 영업·생산활동을 통해 자체적으로 수입을 맞추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유사장이 사업부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 인천시 북구 십정동 558의10에 본사를 둔 세모는 인천·부천·경산·김포·칠곡등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미국 뉴욕과 독일 뒤셀도르프에 해외지사를 갖고있다. 2천6백여명의 직원을 둔 세모의 지난해 매출규모는8백30억원에 이르며 올해는 1천2백억원을 매출목표로 정해놓고 있다. 한강유람선으로 출범한 해운사업부는 지난 89년1월 부산∼여수간 쾌속정인 엔젤1·2·3호등 쾌속정 4척을 인수,불과 2년남짓만에 국내 최대의 연안여객사로 부상했다. 지난 41년 일본에서 태어난 유사장은 대구 성광고교를 졸업한뒤 네덜란드 선교사 케이스 글라스씨에게 「복음」을 깨닫고 대구공설운동장 맞은쪽의 「칠성예배당」을 중심으로 전도활동에 나섰다.겸손한 태도로 열성적인 활동을 해오던 유씨는 지난66년 대구 YMCA에 드나들면서 알게된 「구원파」지도자 권신찬목사의 큰 딸과 결혼했으며 지난 72년 권목사의 소개로 한때 극동방송국의 부국장직을 맡기도했다. 독실한 장로회 신자였던 유씨는 70년대 권목사가 벌였던 초교파운동에 동참했으나 80년대초 한국기독교침례회라는 교파로 자리잡게되자 이때부터 이 교파는 물론 다른 교회와도 발을 끊고 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동남아안보협 참가/중·소 포함 신중해야”/베이커,아세안에 촉구

    【콸라룸푸르 AFP 연합】 미국은 24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대해 동남아시아 지역안보협의체제에 소련과 중국을 포함시키는 문제를 신중하게 추진해줄 것을 촉구했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이날 콸라룸푸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세안의연례 지역안보협의회에 소련과 중국이 참여하는 가능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그같이 말했다. 베이커장관은 『아세안국가들이 누구와 협의하기를 희망하느냐는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성명을 인정하고 동의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아세안은 『시련과 시험을 거친 지역안보체제을 포기하는 문제를 서서히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과 중국은 말레이시아정부의 초청을 받아 이틀동안 열린 아세안 외무장관회의에 사상 처음으로 참가했다.
  • 정원식 총리 국정보고 요지

    ◎“지자제 정착·경제 재도약에 최대 노력” 지난 상반기동안 우리는 나라 안팎에서 밀려오는 도전과 시련의 격랑을 헤치며 당면한 국가적 과업을 하나하나 착실히 성취해 왔습니다. 6·29민주화선언의 마지막 약속인 지방자치를 실시하게 됨으로써 민주주의를 한단계 성숙시킬 수 있는 기틀을 다지게 됐습니다.두차례의 지방의회선거를 공명선거로 이끈 것은 값진 결실이 아닐 수 없으며 선거사에 빛나는 이정표로 기록될 것입니다. 지난 4월말부터 계속된 소요로 나라의 앞날마저 걱정되는 어렵고 안타까운 상황에까지 놓였으나 국민의 결집된 역량과 신념에 찬 행동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과 지방의회선거 결과를 통해 말없는 대다수 국민은 폭력과 혼란을 거부하고 사회의 안정을 희구하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게 됐습니다.정부는 국민여망이 실현되고 희망의 항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국민과 함께 하는 정부」를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지금 7천만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인 통일을 위한 결정적 전기가 언제라도 다가올 수 있는 상황을맞고 있으며 금세기 안에 통일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각은 앞으로 이 고무적인 상황을 소중히 가꾸어 첫째,30년만에 부활된 지자제를 정착시켜 민주화를 한층 더 꽃피우고 둘째,성숙된 통일여건을 최대로 활용해 남북관계에 새지평을 열고 평화통일을 앞당기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며 셋째,지속적인 물가안정과 성장을 통한 경제의 재도약및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넷째,도덕성회복을 위한 인간교육과 문화창달을 통해 실추된 윤리의식을 바로 세우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룩해 나가겠습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과 기능이 강화되도록 중앙부처가 갖고 있는 권한을 지방에 대폭 이양하고 지방행정능력을 배양하고 지방재정자립도를 높여 지역발전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 정부는 올가을 남북한유엔동시가입실현을 계기로 북한이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유도,북한사회개방을 추진해 나가면서 실질적인 남북관계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고위급회담 등 모든 남북대화에서 상호 합의가 용이하고 실행이 가능한 분야부터 우선 타결해 나가는 전향적이고 신축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며 7·7선언에 입각,민간차원의 인적·물적교류도 적극 활성화시켜 나가겠습니다. 특히 인적교류에 있어서는 지난 6일 대통령이 내각에 지시한데 따라 8·15광복절 경축행사,국토종단순례 및 통일학술토론회의 남북공동개최 등 남북인적교류의 확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빠른 시일내에 마련,북한에 제의할 방침입니다. 한미양국 정상은 특히 한반도 통일과정에서는 물론 통일후에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하는 한편 안보협력관계 강화,통상관계증진 등 미래지향적인 협력도 가일층 공고히 하기로 했습니다.정부는 전통우방인 미국·일본·EC 등과의 우호협력을 강화하고 소련·중국과도 실질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최근 우리경제는 국제유가안정과 세계교역환경 개선 등에 힘입어 안정의 실마리를 찾고 있습니다.금년에도 한자리 수 물가를 유지한다는 목표아래 통화를 17∼19% 범위에서 공급하면서 투자수요를 적정수준으로 관리하고 재정사업도 완급을 가려 투자시기를 조정하는 등 총수요를 철저히 관리해나갈 것입니다. 또 부동산투기가 근절되도록 세제 등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부실공사 아파트는 신속히 재건축토록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공사감리제도를 한층 강화해 나갈 방침입니다. 특히 경쟁력 있는 농업육성을 위한 장기적 농어촌 발전대책을 수립하고 도덕성회복을 위한 참된 인간교육이 되도록 장기적 안목에서 교육개혁을 추진하겠습니다.
  • 영 더타임스,「노 대통령 3년」 특집

    ◎“북한 유엔가입 결정은 북방정책의 결실/중도·점진주의 노선으로 극단주의 포용”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28일 「한국 특집」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 정부의 정치·외교·경제 성과 및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더 타임스지는 이날 장문의 특집기사를 통해 우선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중도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의 변혁기를 이끌어온 노 대통령의 3년반 재임기간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군사독재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심각한 사태를 피해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중함」을 슬로건으로 내건 노 대통령은 좌우로 치우치는 수많은 극단주의자들을 적대시하지 않고 중도의 길을 택해 왔으며 이제 그의 점진주의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시작한 것 같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최대의 시련은 국내정치였다」고 전제한 가운데 최근 과격학생들의 자살소동은 이들 학생들과 일반대중을 격리시키고 또 중산층으로 자부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법과 질서를 준수,안정을 택하고 있으나 3당 통합 이후 민자당의 인기가 20% 이하로 하락하고 60% 이상이정치무관심을 표명하는 등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반면 외교면에서 북방정책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고 더 타임스는 평가하면서 북한의 유엔동시가입 결정을 그 최대 성공사례로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통일의 날까지 국민의 일부 성급한 기대를 억제하면서 정치·사회변화를 위한 투쟁에서 인내로 임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방향없는 지도자」라고 비판하고 있는 이 「점진주의자」는 색깔없는 접근으로 한국에 가장 큰 선물을 안겨준 인물로 기록될지 모른다고 더 타임스는 논평했다.
  • 외언내언

    연방군의 진격으로 수도사수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유고의 슬로베니아공화국 수도 루블랴나가 걱정스럽다. 드리나 강을 끼고 있는 인구 35만의 이 아름다운 도시가 내전에 휘말려 황폐해진다면 어쩌나 싶어서 가슴이 아파온다. 온순하디 온순하면서도 「유럽인의 교양」을 체질깊이 지닌 시민이 있고 문화적 향취가 높은 중세의 전통깊은 이 도시는 그 자체가 문화재감이다. ◆이 도시에서 순둥이처럼 부글부글하게 생긴 대학생 애리시라는 청년을 만났었다. 아직도 그곳이 『갈 수 없는 나라』였던 1986년 1월의 일이었다. 어렵게 찾아간 한국인을 육친처럼 도와주던 그 청년은 어느 날 아침 뛸듯 기뻐하며 달려 와서 알려줬었다. 『…드디어 마유미 여인이 입을 열었다』는 소식이었다. 마유미 행세를 하다가 잡힌 김현희가 말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여행을 떠나온 우리에게는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이 소식을 그토록 기뻐하는 그의 태도였다. 대체 그 소식을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았는가 묻는 말에 그는 대답했었다. 『…그야 물론,신문에 보도됐기 때문에 안다. 이런 뉴스를 이렇게 제대로 보도하는 나라는 이 동구에서는 우리 유고슬라비아밖에 없다』 그들의 「언론자유」에 대해 자부심에 차서 말하던 애리시 청년의 모습이 「내전」의 비운 속에서 얼마나 불행해질지 마음이 아프다. ◆주민 95% 이상이 카토릭 신자인 이 공화국 수도에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성당들이 있던지…. 비록 연로한 사제밖에 없고,합창단도 없었지만 성탄장식이 고전의 위엄을 그대로 지닌 채 장식된 성당에는 새벽미사를 위해 찾아오는 시민들의 발길이 새벽 안개 속을 헤치며 이어졌다. 그들의 그 높은 자유사랑의 자부심이 마침내 「내전」의 시련에까지 이르는 것이리라. 사랑하는 루블랴나여 이 위기를 부디 슬기롭게 극복하라.
  • 대학가에 스며든 좌경세력(사설)

    대학생들이 젊은이다운 순수한 열정으로 학원민주화를 부르짖고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투쟁에 나선다면 그들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생의 본분이 학업에 있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지만 학원이나 사회의 비리를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평가할 수는 있다. 4·19의거 때 학생들이 보여준 평화적인 시위는 국민의 폭넓은 공감을 얻었고 그 후의 학생운동도 그 나름의 명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명분과 목적이 옳다고 해도 이를 위한 의사표시나 행동에서 폭력이 수반된다면 비난과 질책을 면할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의 대학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시위는 명분이 떳떳치 못할 뿐 아니라 시위 때마다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때문에 시민생활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으며 이를 질책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늘의 학생시위가 어느 수준에 있는가는 외대생들의 총리 폭행사건에서 여지없이 드러났고 이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시위현장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학생들을 꾸짖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그런데도 운동권학생들은 일말의 반성도 없이 적반하장의 논리로 정권타도만 외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진실로 우려하고 있는 것은 대학가에 스며든 좌경세력의 준동이다. 지금 각 대학의 총학생회는 전대협이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속해 있는 학생들의 수는 전체학생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이 선량한 학생들을 길거리로 몰아내 화염병을 던지게 하고 정권타도와 민중정부 수립을 외치도록 조종하고 있다. 정부는 그 동안 대학가에서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해온 운동권학생단체의 배후에 체제전복을 노리는 불순세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척결하기 위한 전면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정부가 지목하고 있는 전대협내의 불순세력은 이른바 「정책위원회」이다. 이 조직은 북한의 대남혁명 강령에 따라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고 혁명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암약하고 있는 「자민통」과 연계되어 있으며 투쟁지침은 북한의 「구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시달되고 있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정책위」는 또 전대협의 모든 활동을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정부와 가진 자에 대한 불만이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갈등과 시련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혁명정부를 수립하려는 좌경세력의 준동은 철저히 차단되어야 한다. 북한은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엔가입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대남전략에서는 추호의 변화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며 북한의 언론매체에 나타나고 있는 최근의 논조에서도 변화의 징후는 찾아볼 수가 없다. 북한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북한의 대남전략을 추종하고 있는 좌경세력이 대학가에서 준동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구권 사회주의국가들도 이미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고 이를 확산시키려는 시대착오적인 불순세력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대학의 좌경세력은 뿌리뽑아야 한다.
  • 교직원 집단구타에 교수 삭발까지(학원폭력:상)

    ◎학내문제에 불만,보직교수 칼로 위협/폭언은 예사… 「총장사진밟기」 운동도 3일 저녁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발생한 정원식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운동권 학생들의 집단폭행사건은 국민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정 총리서리가 총리로서의 공무를 마친 뒤 교수자격으로 고별출강을 나갔다가 당한 어이없는 일이어서 사태수습에 나선 정부의 각 부처도 망연자실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처럼 비통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우리의 학원은 과연 병들고 말았는가. 그 동안 계속된 학원폭력의 실상과 배경,문제점,대책 등을 점검해본다. 우리 사회에서의 학원폭력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올 들어서는 이번 사건 말고도 총장사진밟기운동,교수폭행사건 등 신성해야 할 대학구내에서 반인륜적,반도덕적 행위가 서슴없이 자행돼 왔다. 이와 함께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총학장실 점거는 이제 다반사가 되었으며 또 이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게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스승에 대한 폭행은 단순한 교권침해의 차원을 넘어 군사부일체의 정신을 중시해온 전통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지난 3월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차량통행 문제로 시비를 벌인 끝에 학생이 교수를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 사건으로 김정탁 교수(36)는 김두선군(23·체육교육학과 4년) 등 3명을 고소했으며 검찰은 들끓는 여론을 감안,김 교수의 고소취하에도 불구하고 3명 가운데 김군을 일단 구속했다가 얼마 뒤 기소유예로 석방했었다. 이때의 국민 여론 또한 일반적으로 스승에게 잘못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제자가 불손한 언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 교수와 멱살을 맞잡고 폭언·폭행까지 서슴지 않는 행위는 어떤 전제와 명분을 내세워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4월에는 광주 호남대에서 학생과 교직원 사이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져 2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들은 교직원들이 추모비 건립공사를 막으려 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쇠파이프와 각목·화염병 등으로 무장을 하고 학교 숲속 등지에 숨어 있다 교직원들이 나타나자 쇠파이프 등을 마구 휘둘러댔다. 학생들은 이와 함께 본관 1층에 있는 재단이사장실과 학생회장실 등 10여 곳의 보직교수실에 들어가 집기류와 유리창 등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또 같은달 대구 계명대에서도 학생들에 의한 교수폭행사건이 벌어져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등 교권이 유린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건국대에서는 신규 임용교수의 퇴진 등을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던 일부 학생이 학교측과 학생대표 사이에 합의된 내용에 불만을 품고 학과 조교를 구타하는가 하면 학생처장을 칼로 위협하기까지 했다. 또 부산대에서 한동안 계속됐던 「총장사진 밟기운동」은 그 뒤 동문들의 권유와 학생회측의 결정에 따라 철회되기는 했지만 폭력행위나 진배없는 반인륜적 행위로 뜨거운 지탄을 받았었다. 지난해 대전 목원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장을 볼모로 붙잡아두고 협상을 벌이다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그 교수를 삭발까지 시킨 적도 있었다. 사태가 이처럼 계속 악화되고 대학에 대한 국민들의 지탄의 소리가 높아지자 전국 1백35개 대학 총학장의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박영식 연세대 총장)는 지난 4월16일 「전국대학총학장 간담회」를 갖고 교권침해방지대책을 숙의했다. 총학장들은 간담회가 끝난 뒤 발표문을 통해 『교수폭행이나 총장모욕 등 일련의 사태들이 최고의 지성사회이며 가르침과 배움의 장인 대학에서 발생한 것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집단폭력』이라고 규정하고 『대학의 교권확립 차원에서 엄중한 조치를 강구함과 동시에 대학인 모두가 바람직한 사제관계를 정립하는 데 가일층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학원폭력이 계속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 총리서리에 대한 이번 집단폭행사건은 수사결과 명명백백히 드러나겠지만 학생들이 계획적으로 정 총리를 「목표」로 삼고 폭행을 자행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정 총리,「스승의 착잡한 심경」 토로

    ◎“스스로 내 종아리 때리고 싶은 심정”/“진실 받아들여주지 않는 것이 야속/공직 물러나면 교단에 다시 서겠다” 『책임이 있는 우리들이 잘못 가르쳐 그런 일이 생겼다는 심정에서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 채찍을 들어 내 종아리를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정원식 국무총리서리는 4일 상오 기자간담회를 자청,외국어대생들에게 당한 집단폭행의 경위와 「스승」으로서 느끼는 착잡한 심경을 15분여에 걸쳐 털어놓았다. 정 총리서리는 이날 평소와 같이 상오 8시40분에 출근해 국무위원과 총리실 간부들의 위로인사를 받은 뒤 침통한 표정으로 소접견실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정 총리서리는 『노교수로서의 순수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것이 야속하고 서글펐다』고 솔직히 토로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채찍을 들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을 몇 차례 되뇌었다. 그는 그러나 『어떤 시련을 겪는다 하더라도 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고 공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강단에 서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계속 강단에 서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믿고 가르치는 제자와 따르는 제자,나를 존경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학생들에 의해 운동장으로 끌려나왔을 때도 때리는 학생보다는 말리려는 학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외국어대 출강경위에 대해서는 『지난 3월4일부터 시간강사 자격으로 교육대학원 강의를 맡았으며 아프리카순방을 떠나기 전인 지난 5월에 종강날짜를 잡아놓았었다』면서 『비록 정부에 들어왔으나 학생들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서 출강을 했던 것』이라고 설명. 『계단으로 끌려내려 올 때는 자칫 쓰러지기라도 하면 더 큰 불상사가 날 것이라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연하게 대처하려고 애를 썼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총리서리는 간담회 후 사과차 찾아온 이강혁 외국어대 총장 등 대표 3인을 면담한 후 심신의 충격을 우려한 비서진들의 권유로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고 삼청동 공관으로 직행,휴식을 취했다.
  • 재일동포의 뜨거운 민주통일 염원/이명영 성대교수·정치학

    ◎도쿄 평화통일촉진대회 참관기 재일동포들 속에서 통일운동단체인 재일본 한국인·조선인 민주통일연맹이라는 새로운 조직이 생겼다는 기사를 본 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금년 3월 하순에 그들의 기관지인 「통일연맹」 창간호 및 제2호와 접할 기회를 가진 필자는 당장에 그 단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 기관지에 「조총련의 지식인 및 청년학생에게 고함」이란 장문의 글을 투고했다. 이 글은 그 제3호에 전문이 실렸다. 나와 그들과의 관계는 이렇게 하여 시작됐다. ○평양 개방·개혁 요구 그 민주통일연맹이 지난 9일에 도쿄의 한복판에 있는 풍도송회당이란 곳에서 「조국의 평화통일촉진 전국결기대회」란 것을 열었다. 나도 초청되어 대회를 참관할 수 있었다. 검소하고 질박한 대회였다. 해외에서 살면서도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그들 자세의 진지함과 통일을 실현하는 데 있어 무엇이 결정적인 장애요소인가 하는 데 대한 그들 인식의 투철함이 나로 하금 머리를 숙이게 하는 그러한 대회였다. 이 단체는 명칭 그대로 국적을 한국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과 국적을 조선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합쳐서 만든 단체이다. 말하자면 민단계와 조총련계 사람들의 합작조직이다. 그들에게는 공동의 목표와 인식이 있다. 그것이 조국의 민주통일이며 민주통일을 방해하는 자에 대한 준엄한 분노이다. 무엇이 민주통일을 방해하는가. 북한의 폐쇄정책이다. 그래서 그들은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김일성 정권이 버티고 있는 한 결코 북한은 개방될 수도 없고 개혁될 수도 없음을 뼈저린 과거의 체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김일성 정권의 퇴진 없이는 조국의 민주통일은 결코 성사될 수 없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 단체의 대표자인 이광이란 사람만 하더라도 부모형제와 숙부모가 몽땅 북한으로 간 사람이다. 가서는 소식불통이 되었다. 그의 숙부는 종전 직후에 일본 공산당이 재건되었을 때 그 중앙위원 후보였던 유명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 송성철이며 그의 숙모는 여운형의 장녀 여난구이다. 난구의 동생 연구는 지금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다. 그 단체의 부대표자인 임성굉이란 사람은 또 동지사대학 입명관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철학자이다. 그의 저서 「배신 당한 혁명」은 유명하다. 조선의 사회주의혁명이 김일성에 이르러 완벽하게 배신 당했음을 밝힌 책이다. 그러나 그 저자는 조선적을 버리지 않고 있다. 풍도 공회당의 대회에서는 멀리 모스크바에서 재소고려인협회의 허진 부회장이 참석했다. 그는 의미심장하 축사를 했다. 하나의 민족인 우리에게 세 종류의 명칭이 있음을 그는 환기시켰다. 한국인 조선인 그리고 고려인. 이것이 다 조국이 통일되지 못한 데서 오는 비극이라고 그는 통탄했다. 그래서 통일은 우리 세대의 최대의 과업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어떤 통일을 이룩하느냐. 그것은 단연코 민주통일이어야 한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7천만이 다 주인이 되는 민주통일이어야 하지 특정인·특정집단이 주인이 되는 통일은 민족과 역사에 대한 반역이므로 재소고려인도 모두가 민주통일을 염원한다고 하면서 그는 재일민주통일연맹과의 깊은 유대를 표명했던 것이다. 이 대회에 참석한 일본인 중엔 아주 이색적인 사람이 한 분 있었다. 기곡계차란 84세의 노인이다. 그는 「나의 청춘 조선」 「좋은 날이여 어서 오라­북조선 민주화에의 나의 유서」란 책으로 유명하다. 일제시대에 그는 함경남도의 흥남 비료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조선사람들과 같이 공산주의운동을 하다가 잡혀서 10년이나 옥살이를 했다. 그는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인민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사람이다. 그는 그와 같이 투쟁했던 옛 동지들이 김일성에게 다 숙청 당하고 만 것에 비애를 금치 못하며 조선인민이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채 일인독재에 시달리고 있음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사람이다. 북한이 개방되고 민주화되기를 갈망하는 그의 간절한 염원이 두 권의 책임을 낳았고 그 대회에도 참석하게 만든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그의 손을 잡고 그에게 최대의 경의와 감사를 표했다. 민단의 간부들은 테러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통일연맹의 간부들은 테러와 모략 중상의 어려운 시련 속에 있음을 내 눈으로 보았다. 조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광씨를 전과2범의 사기꾼이며 안기부의 앞잡이라고 중상했다. 명예훼손죄로 고소되었음은 물론이다. 「통일연맹」의 편집위원장인 김원봉씨는 자기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방해하는 파렴치한으로 매도된 비라를 내보이면서 그것이 자기집 주변의 주민들에게 숱하게 살포되었다고 하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모든 간부들이 전화협박 때문에 아예 수화기를 내려놓고 있는 실정이라 했다. 내가 그들 본부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이에도 괴전화는 수없이 걸려왔다. 조총련 쪽의 사람들이 민주통일연맹이 발족한 이래로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해주는 현상들이었다. 동요는 왜 오는가. 기관지 「통일연맹」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나 조총련으로서는 도저히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문제와 사실 폭로가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간부들에 협박전화 남북한 당국이나 국내의 각 사회단체들은 물론 재일민단이나 조총련도 다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국내의 재야세력은 결사적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후세의 역사는 증언하리라. 재일본 한국인·조선인민통일연맹의 통일노선과 그 운동방향이야말로 가장 과학적이며 애국적인 운동이었다고. 그들은 향후 5년 동안 그 운동을 지탱해나갈 재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해놓고 싸우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5년까지 필요없다. 2년이면 승부가 난다』고. 민주통일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 꾸짖을 수 있는 용기를 내시오/장석영 사회부장(데스크시각)

    K교수님! 지금 우리는 크나큰 시련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하늘은 혼돈의 먹구름이 뒤덮힌 채 좀처럼 개일 줄을 모릅니다. 전국을 휩쓸고 있는 돌풍도 아직까지 잠을 자려들지 않고 있습니다. 교수님. 착잡하고 암울한 마음을 한동안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얼마전 교수님과 제가 만났을 때 우려했던 바대로 위기국면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병인진단 시급 교수님 그렇다고 이번 사태를 두고 교수님이나 제가 그대로 앉아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수님 우리가 오늘의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먼저 정확한 진단을 해야 하듯이 원인 분석을 빨리,그리고 정확하게 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먼저 왜 젊은이들이 죽음을 택했는가를 깊이 반추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병인을 알아냈다면 치료도 서둘러야 되겠습니다. 며칠전 강경대군의 죽음에 이어 젊은 대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르자 교수님은 우리의 사회병리를 모두가 정치권의 잘못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옳은 말씁입니다. 그때 저는 교수님의 분석에 동감을 표하면서 그밖에도 많은 원인이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저는 당시 저의 시각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만 최근 독자들로부터 신문사 데스크로 걸려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접하고 더욱 저의 시각이 맞는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저에게 걸려온 전화내용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큰 아들은 전경으로 근무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대학 1학년에 다니고 있다고 밝힌 한 어머니는 눈물 머금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도 잠을 편 히자는 날이 없습니다. 대학생과 전경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모두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봅니다. 정치지도자들이 대권에만 정신을 팔고 정쟁만 일삼아 왔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무슨 문제가 생겨 정치권에서 풀어야 할 일인데도 방관하거나 일부에선 문제를 더 부풀리고 있어요. 참으로 한심한 작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독자는 문제의원인을 대학자체에 있다고 했습니다. 『대학이 그동안 제기능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 아닙니까. 대학은 지식교육만 했지 어디 지성교육을 했습니까. 더욱이 이번 학생들의 죽음이 몰고온 소용돌이가 전국을 진동시키자 일부이긴 합니다만 학생들의 눈치만 살피는 교수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학생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이를 꾸짖고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 교수들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용기없는 교수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소신있는 교수」 절실 교수님. 이 독자는 민교협에 가입되어 있는 교수들의 동조농성행위에 대해 격한 어조로 힐책했습니다. 『교수들이 학생들의 농성에 가담해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 독자는 경찰의 시위과잉진압에 대해서도 힐책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학내문제에 경찰이 학교안까지 들어가고 달아나는 시위학생을 끝까지 추적해서 폭력으로 진압하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시위양태도 문제입니다. 화염병은 무기입니다. 민주화를 위해 싸운다는 지성인들이 반민주 행위를 하면 되겠습니까.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고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발 대학생들은 이성을 갖춘 지성인의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수님. 마지막으로 전화내용을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안타깝고 답답해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말씀을 드린다는 이 독자는 학생들의 자살행위를 영웅시하는 일부 사람들의 저의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자식을 잃은 부모만큼 마음 아파할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강군이 사망한 지 벌써 열하루째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화를 부르짖다가 젊음이 죽어갔는데 이를 정치투쟁에 이용하다니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그런 일은 마땅히 규탄 받아야 합니다. 언론은 또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물론 모두 잘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교수가 학생들의 잘못을 꾸짖자 학생들이 이를 야유하는 대자보를 붙였는 데 언론이 한낱 웃음거리로 취급했더군요』 교수님. 독자들의 전화내용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그렇다고 또다른 병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만능주의의 팽배라든지 호화사치 풍조라든지 하는 망국병들은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사회에 정신세계를 도덕적으로 지탱해줄 지주가 없다는 점입니다.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가치규범이 붕괴된 지 오래됐습니다. 쓰러져 없어진 이 가치관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고서는 이 암담한 수렁 속에서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모든 것을 알면서도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적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당국자도 교수도 언론인도 학생도 이제는 침묵을 지켜서느 안됩니다. 역사의식을 갖고 난국을 풀어나가는 데 중지를 모아야 합니다. ○새 「정신지주」 세우자 토인비가 말했듯이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긴장된 역학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역사는 제공합니다. 우리들이 풀어야 할 숙제는 지금 못풀면 다음 세대에서라도 풀어야 합니다. 민주화의 숙제,분배 정의의실천이라는 숙제,남북통일이란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숙제는 목청을 높이거나 폭력을 써서 풀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풀어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먹구름을 걷어내고 찬란한 5월의 태양을 맞이해야 겠습니다.
  • “한국에 「공산주의 불감증」 확산”/성대 이명영 교수,일지에 기고

    ◎엄존하는 통혁당… 당국선 실체 부인/서울에만 지하당원 2만여명 추산/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에 거의 무방비 상태 【도쿄=강수웅 특파원】 『현재 한국의 민중심리는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빼앗기고 있으며,남한에 존재하는 지하공산당에 대한 당국의 무감각,북한의 통일전략에 대한 무지,나아가 북한과의 비밀흥정 등의 문제가 힘을 빌려주고 있는 우려할 만한 현상을 빚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일본의 학술지에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측 전략에 무지 일본 타쿠쇼쿠(척식)대학 해외사정연구소가 발행하는 「해외사정」 4월호에서 이명영 교수(성균관대)는 「북측에 힘을 빌려주는 남측의 무지」라는 글을 통해 한국정부와 국민의 북한에 대한 무지 또는 무관심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 논문에서 남한에는 여러 가지 정세에 비춰볼 때 북한의 「통일혁명당」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당국은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한국정부는 지난 68년 8월 통일혁명당 관련자 수십명이 체포됐다는 사실을 들어 통일혁명당은 준비과정에서 완전히 깨졌다고 보고 있으나 사실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70년 11월의 조선노동당 제5차대회에 통일혁명당 대표들이 참가했다고 발표했으며,80년대에 들어서는 이미 한국의 혁명정세에 대해 낙관적인 기대를 공공연히 표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들었다. 80년 10월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에서 북한측은 『공화국 남반부에서는 이미 반공방파제가 붕괴,국내외에서 용공통일의 강력한 조류가 넘치고 있다』고 호언한 것도 근거의 하나로 꼽았다. 통일혁명당은 85년 7월 「한국민족 민주전선」이라고 개칭,「한국민족자주선언」을 발표하고 남조선혁명의 당면과제는 반미자주화와 반파쇼민주화 등을 상정하고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자료를 제시한다. 매일밤 서울지역에서만 송출되는 암호전파가 1백40회 정도 있다는 것이다. 1개월이면 4천2백회에 이르며,공작원 1명이 한달평균 2번 정도 무선을 친다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지구에는 2천1백명 정도의 공작원이 있는 셈이라고 밝혔다. 서울에는 7백여 개의 동이 있기 때문에 1개동 평균 3명 정도의 공작원이 있는 꼴이다. 3명이라는 숫자는 공산당조직의 기본단위인 세포의 구성요소라고 볼 때 1개의 동에는 적어도 1개의 세포가 있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또 세포는 30명 정도가 상한이며,세포구성원 모두가 무전을 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3명은 30명의 존재를 연상시키기에 족하다. 이렇게 계산해 볼 때 서울에는 적어도 2만1천명의 지하당원이 있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추산했다. 1955년에는 5백여 명에 불과했던 공작원이 지금은 2만명을 넘었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평양의 심리전 가열 『조직은 선전을 선행시키지 않고서는 될 수 없다. 특히 혁명적 선전은 하나의 전쟁,즉 정치심리전이다. 남조선혁명을 노리는 북한측의 심리전은 이론도 실천도 실로 능란하다. 그런만큼 북측의 선전에 넘어가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북측의 심리전 이론은 5개 부문으로 구성된다. 첫째 한반도 분단은 누구의 책임인가. 둘째 한국전은 누가 일으켰는가. 셋째 남북정부 어느 쪽에 민족적 정통성이 있는가. 넷째 한민족에 의해 내세워야 할 사상적 원리는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다섯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 어느 쪽이 우월한 제도인가. 이에 대한 북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분단의 책임은 미국과 남측 정부에 있다. 지금도 통일을 거부하고 분단고착화를 노리고 있는 것은 미국과 남한정부이다. 미국은 대소 전진기지로서 한반도를 자신의 세력 아래 두기 위해 한국전을 도발했다. ○비공식 대화는 위험 북한은 대일 투쟁의 승리자인 김일성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이다. 한국은 친일·친미파 등 민족반역자들이 세운 국가이기 때문에 정통성은 북측에 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만이 항일투쟁의 험난한 시련 속에 성장한 민족영원의 생활원리이다. 사회주의의 길만이 진리이며 그것을 실현한 북한은 남을 부러워할 아무것도 없는 낙원이다. 이상과 같은 것을 교묘한 레토릭으로 쉬지 않고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지식이 없는 자는 곧 정신을 배앗겨 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민족민중혁명을 부르짖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은 당초부터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국가라고 하는 자가 상당수 있다. 이것은 특히 젊은층에 많다. 이 사고방식은 북한에 의한 통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과 연결된다. 때문에 지하당은 세력을 뻗고 있으며 지상에는 선전부대가 버젓이 행세하게끔 되었다. 북한의 대남공작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논문은 또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폭넓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은 역대 정권의 책임이라고 지적하고 이 때문에 정보기관의 깊이 없고 무책임한 견해가 한 골수로 폭을 감시하는 상황을 만들어 왔다고 밝혔다. 이밖에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실력자에 의한 비공식대화는 북한 페이스에 말려들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물론 외교 또는 교섭에서는 경우에 따라 어느 시기까지는 비공개로 교섭을 진행시키는 것이 좋을 때도 있으나 이것도 시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느 시기에 가서는 국민에 보고하고 중지를 모아야 하는 데 남한은 그렇지 못하다. 북한은 이러한 중지를 배제한방식으로 남한을 자신의 페이스로 유도하려고 한다. 나아가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위계를 써서 남한으로부터 여러 가지 양보를 쟁취하려는 술책을 쓰고 있다고 이 논문은 경고하고 있다.
  • 한·일 관계발전과 한반도(사설)

    한국과 일본은 지금 여러 각도 제반 분야에서 분명히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은 오랜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하고 민주화 기반을 착실히 다져나가고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많은 고통과 시련을 안겨준 유인시대를 뒤로 하고 평성시대를 맞고 있다. 한일 두 나라는 또한 새롭게 전개되는 세계질서 재편 속의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한일 관계구조가 떠맡아야 할 역할과 책무를 조정해야 하는 공동의 과제를 안고 있다. 올해초 일본의 가이후(해부준수) 총리가 방한했을 때 두 나라 지도자들은 양국간 현안과 세계정세 전반에 걸친 폭넓은 의견교환을 한바 있고 실무당국자들의 꾸준한 현안 타결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한일간 이같은 관계 전개는 현재 일본이 북한과 수교협상을 진행중인 것과 관련,한반도 변화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다. 새로운 여건과 분위기 속에서 최근 양국 정부는 동북아질서 재편움직임 등에 대한 외교협력을 더욱 긴밀히 다지기 위해 한·미·일 3국간 고위정책협의회를 구성하는 문제를협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상옥 외무장관의 방일을 계기로 한 한일간 이같은 새로운 유대관계의 전개는 바로 일본측이 올 가을 유엔 총회에서 한국의 단독가입을 지지하겠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천명한 것과 함께 한일 관계의 앞날,더나아가 전통적인 한·미·일 삼각협력관계의 발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측은 지난 번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일을 맞아서 협력관계를 다지는 가운데 함께 한국의 유엔가입을 지지했고 북한의 핵사찰 수용을 권유했으며 남북한 총리회담의 재개를 희망한 바 있다. 물론 일본측의 이같은 대한반도 문제 인식은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국익과 국제관계 위상확보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이 북한과 수교협상 중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대 한반도 인식과 평가가 매우 현실적으로 바뀌면서 한반도 문제해결의 가능성 토대 위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한·미·일 3국간 고위정책협의기구 구성문제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3국간에는 한일,미일 등 쌍무적인 정책협의체만 있을 뿐 3국이 같이 참여하는 구조가 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 발전방향을 주시하게 된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전통적인 미일의 협조와 지원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간에는 아직도 무역불균형·기술이전·재일교포 법적 지위문제 등 미해결 과제들이 가로 놓여 있다. 이런 현안들은 일본의 대 한반도 인식의 유연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양국간 불협화의 불씨가 될 수 있는 것들이다. 심한 경우 바로 그 미해결의 문제들로 하여 일본의 한반도 정책의 저의가 의심받게 된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또한 이 기회에 일·북한간의 수교를 원칙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코자 한다. 그러나 그에 부수되는 제반 조건들이 남북한간의 민감한 균형관계를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되리라는 점도 일본측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 사라지지 않는 핵누출의 악몽/소 체르노빌원전 폭발사고 5주

    ◎기형돼지 속출,사망자 5천 넘어/생태계 복구 불능… 음식물 여전히 외부반입 26일로 소련 우크라이나공화국 체르노빌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5주년이 됐다. 유례없는 핵누출사고로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체르노빌사고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아직도 핵누출사고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환경론자와 핵관계자들은 사고의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한반도의 비핵화 논의와 북한에서 3∼4년 안에 개발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핵무기로 인해 핵문제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는 우리에게도 체르노빌사고는 더 이상 강건너 불이 아니다. 체르노빌에는 원래 원전 4기가 가동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4호기에서 86년 4월26일 새벽 1시23분 정비과정에서 냉각계통에 이상이 생기면서 거대한 핵누출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원자로에서는 반감기가 4시간에서 38만년까지 되는 방사능물질 6∼7t이 화산처럼 터져나왔다. 소련당국은 현장에서 31명이 죽고 그 뒤 2백6명이죽었다고 발표했으나 많은 환경전문가들은 적어도 5천명 이상이 죽었으며 그밖에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는 정확하게 측정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후 반경 30㎞ 이내에 거주하던 주민은 소개됐으며 원전 부근의 프리피아트시는 유령의 도시로 바뀐 채 버려져 있다. 지금은 나머지 3기의 원전을 운용하는 1만3천명의 기술자와 당국의 만류를 무릅쓰고 죽어도 고향에서 죽겠다는 원주민 1천2백여 명만이 30㎞ 이내 지역에 살고 있다. 하지만 사고 발생 뒤 기형돼지가 태어나고 나뭇잎이 커지는 등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이상현상이 나타났던 터라 모든 음식물,심지어는 물까지도 외부에서 일일이 들여다 먹는 실정이다. 사고 발생 후 소련당국이 문제의 원자로를 콘크리트와 철골구조물로 관을 짜듯이 봉쇄하고 부근에 10층 높이의 콘크리트벽을 쌓았지만 체르노빌은 무엇 하나 안심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지하수와 토양의 오염으로 그곳에서 나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 또 원자로를 봉쇄한 콘크리트관 안에는 핵물질들이 남아 있어 다시폭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핵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사고 원자로 속에 다시 콘크리트를 부어 넣거나 제2의 콘크리트관을 뒤집어씌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체르노빌 주변 지하수의 오염을 막기 위해 원자로 주변에 길이 20㎞의 벽을 지하 30m 깊이로 설치하는 작업도 진행중이지만 결국 원전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치지 않고 있다. 체르노빌의 시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있다. 사고원인이 소련이 개발한 원자로가 밀폐용기시설이 없으며 흑연으로 핵분열을 조절하는 구식 VVER형이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독일은 통일 후 동독에 세워져 있던 4기의 원자로를 가동 중지시켜놓은 상태다. 이런 유형의 원자로는 불가리아에 4기,체코에 2기가 더 있다. 또 핀란드 체코 헝가리 등에도 다소 개량된 형이기는 하지만 거의 비슷한 VVER형 원자로가 다수 있다. 서방의 원전 관계자들은 이밖에 전문인력 부족과 교환부품 부족 등 불충분한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는 동구원전의 안전상태를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련내에서의 영향도 적지 않다. 사고 당시 실상을 숨긴 채 어물어물 넘기려 하고 자기 자식들은 도피시키고서 5월 메이데이행사에는 어린이들을 동원했던 우크라이나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환멸이 주민들을 분노케 했고 소련 공산당 지도부가 사태의 부담을 우크라이나공화국에 지우면서 민족주의 감정도 부채질했다. 소련정부는 지금도 사고로 인한 피해의 규모를 87년 공식발표한 이상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신 체르노빌을 찾는 외국기자와 환경론자의 주머니를 노리면서 안내코스를 마련하고 호텔을 지었다. 비록 그렇다 해도 인류 역사상 가장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체르노빌은 해마다 봄이 오면 핵안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사고 5주년을 맞아 『체르노빌의 비극은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가지 않는다. 그로 인한 문제는 이제 인류가 겨우 깨닫기 시작했을 뿐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 이그나텐코 소 대통령궁대변인(인터뷰)

    ◎“어려움 있지만 시장경제 성공 확신”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제주정상회담에 대해 소련측은 매우 만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연내 공식방한이 이뤄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공식수행원 12명 중에서도 핵심측근으로 손꼽히는 비탈리 이그나텐코 대통령궁대변인은 20일 이번 제주회담의 전반적인 평가를 이같이 내리고 『시장경제로의 전환에서 오는 소련내 경제상황의 악화는 궁극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먼저 제주정상회담에 대한 소감을 밝혀 달라. 『대단히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짧은 기간에 양국 관계가 급속히 발전돼 왔고 해마다 교역량이 2배씩 급증하고 있다. 특히 10개월만에 양국 대통령이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갖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덧붙여 한국민들의 우의적인 친밀함에 다시 한 번 매료됐다. 제주도의 풍물도 인상적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주로 논의된 의제는 무엇인가. 『지금까지는보통 폭넓은 문제들이 전반적으로 논의됐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양국 관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토의가 있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오랫동안 모셔왔는데 「인간 고르바초프」를 어떻게 평가하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위대한 분으로 역사의 장에 기록될 인물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기울여주고 이들의 얘기를 언제나 진지하게 들어주는 성격을 갖고 있다. 때문에 고르비는 교제하기가 매우 쉬운인물이며 그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을 즐겁고 행복하게 생각한다』 ­소련은 현재 심각한 경제난과 개혁파·보수파간 갈등을 비롯,산적한 국제문제에 직면하고 있는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들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으로 보는가.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이 쉽지 않다. 따라서 엄청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할 때부터 이같은 시련의 각오가 돼 있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러한 시련을 결국 이겨내 시장경제를 실현하리라 확신한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연내에 다시 한국을 공식방문할 것으로 보는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지만 매우 가능성이 높은 얘기라고 본다』
  • 한 사학재단의 퇴진선언(사설)

    성균관대학교의 재단인 봉명그룹이 성대운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해서 재단과 학생간의 심각한 갈등이 최악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대책 없는 극한 갈등의 노정이 해당 대학을 위해서나 사학에 미칠 파급효과를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은 사학의 학내문제가 재단비리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사실이다. 성대의 경우도 학생들은 재단으로 하여금 학교운영 전입금을 늘리고 학사행정에서 대학측이 자율성을 확보하도록 요구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재단측이 이행해야 할 의무에 엄격하기를 요구하고 비리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차단하려는 의지가 상당히 강력하게 작용했던 것은 우리도 이해할 만하다. 이 같은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3년 동안 순수투자액으로 3백억원을 내놓고 재단의 기본재산을 공개하는 요구까지 순순히 응하기로 했던 재단측이 어느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생각을 바꾸어 재단 자체의 퇴진을 선언하고 말았다. 재단측이 느닷없이 「퇴진」이라는 원인무효의 극한 처방을 선택해 버린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질 우리는그것을 확실히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학생들과의 면담을 진행하던 재단상무이사가 털어놓았다는 한마디 말에서 사퇴를 결의한 재단측의 심경을 읽을 수가 있다. 3백억원이나 되는 신규투자를 약속한 재단측에 그 약속을 보장하는 담보를 제시하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듣고 『재단을 믿지 못할 만큼 도덕이 떨어진 상황에서 학교에 어떤 투자도 못하겠다』며 2주일 안에 이사회를 소집하여 이사 전원이 사임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학과 그 재단은 점령군과 피점령군의 관계가 아니다. 건전한 건학이념을 가지고 육영의 뜻을 살려 부의 사회환원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사학을 탄생시키고 그 학교가 잘 커갈 수 있도록 오래오래 지원하는 상부상조의 사이인 것이다. 갖가지 비리와 부조리를 낳은 일부 사립이 있기는 하지만 근대 이후 우리 교육의 근간을 지탱해온 것도 이런 이념에서 출발한 사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학에서 학생들이 재단을 마치 점령군 세력처럼 바라보는 시선이 보편화하여온 일은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학생들에게 죄인처럼 의심을 받아가며 운영을 지원하는 일에 깊은 회의를 느낀 결과 퇴진을 결심하게 된 것이 성대재단인 것 같다. 재단이 성실하게 재단 전입금을 확충하여 대학재정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재단 형편상 또는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뜻한 만큼 되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이 그러하므로 성실히 신규투자를 약속하고 이행해가는 재단에 대해서는 학교측이 그에 합당한 평가도 해야 하고 노고에 대한 치하로 보상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화합하는 관계여야 사학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 힘에 의해 지원을 받는 입장에 있는 학생들이 채권자처럼 군림하면서 재단측에 수모를 준다는 것은 온당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마침내 그 수모가 감당하기 힘들어 재단 사퇴라는 극한 결정을 내리게 한다는 것은 학교의 기본을 흔들리게 하는 일이다. 교수폭행이라는 불상사로 교생조차 거부당하는 시련을 겪은 성대가 또다시 재단사퇴라는 돌풍까지 만나는 일은 불행한 일이다. 총장 등 학교관계자들이 재고를 간청했지만 『즉흥적인 생각만은 아니다』고 완강한 반응을 보였다는 재단측의 태도가 불길하게 여겨진다. 「봉명그룹」이 손을 뗐다면 다른 「그룹」이라고 선뜻 손을 내밀 리가 없다. 이 불행한 일이 잘못 수습되어 또 다른 표류를 겪게 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스럽다. 또한 이런 사태가 새로운 풍조로 사학계에 번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 외언내언

    미·소 양극의 동·서대립과 견제속의 세계평화가 냉전시대의 시대적 특징이었다면 탈냉전시대의 특징은 어떤 것이 될까. 새로이 형성되어 가는 세계질서는 또 어떻게 될까. 미·소와 동·서의 협조와 공존속의 태평성대가 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기대요 희망이지 현실은 아닌 것 같다. 냉전의 상징이던 베를린장벽 붕괴후 불과 9개월만에 걸프위기가 닥쳤고 세계는 엄청난 전쟁을 겪었다. ◆소련이 건재했던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만류되었을 것이고 미국 등의 일방적 승리도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걸프전은 탈냉전의 시대가 겪은 첫 시련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의 새질서가 태평성세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세계에 실감시킨 불길한 사건인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새질서 향방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 걸프전의 결과에 안도와 박수만 보내고 있을 일은 아니라는 우려의 소리도 들리고 있다. 다국적군의 승리를 주도한 미국의 독주가 현저해지고 있는 것도 그러한 우려를 갖게하는 요인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전후 45년의 동서냉전에서이기고 걸프전쟁에서도 이긴 미국은 월남전 패배의 열등감을 완전히 씻은 듯 자신감에 차 있다. ◆미국이 자신감을 회복한 것은 환영할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과잉되고 자기도취와 오만을 부르며 독주를 가져온다면 세계를 위해서도 미국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일 것이다. 소련의 걸프전 중재를 무시해 버린 것도 생각해볼 일이지만 전비부담 약속을 빨리 이행치 않으면 제재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빚쟁이처럼 우방들을 닥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이라크편을 들었다고 요르단 원조도 중단한 단다. 부시의 일본 방문도 취소되고 대우방 경제압력의 강도도 훨씬 높아질 기세다. ◆소련이라는 강적이 없어진 지금 미국의 독주를 견제할 세력은 없다. 그러나 작용은 반작용을 낳게 마련. 불안해진 중·소의 접근이 현저해지고 있다는 소식이고 일·유럽 등 우방들의 단합된 압력과 견제가 필요하다는 소리도 들리는 것을 보면 새질서의 향방이 더욱 불안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 소 학자가 밝힌 중공군 파병 경위

    ◎모택동,사흘 밤샘끝에 6·25참전 결정/김일성 긴급요청 하룻만에 3개군에 동원령/주은래 모스크바에 급파,공군지원 설득 나서/“미군의 압록강 진격 우려”… 당중앙위,신중론 일축 한국전에 관해서는 지금껏 비교적 많은 양의 사료와 비사들이 공개되고 발굴돼 온 편이다. 그러나 1950년 10월 UN군측에 유리하던 전쟁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뒤바꾸어 놓은 중공군의 개입에 관한 중국측 자료들은 좀체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전 참전 중공군 장성들이 쓴 회고록과 중국 내부에서 공개된 사료,중국 언론에 보도된 자료들을 토대로 중국의 한국전 참전배경을 밝힌 글이 최근 소련에서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극동연구소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극동의 제문제」 최근호에 실린 소련 역사학자 빅토르 유소프의 글 「누가 중국지원군을 한국에 보냈나」는 당시 한국전을 보는 모택동 등 중국 지도부의 시각과 파병결정과정에서 있었던 중소의 갈등 등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1950년 10월1일,모택동은 김일성으로부터 긴급 전문 한통을 받았다. 「미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남조선 괴뢰정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자신에게 중공군을 보내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모택동은 즉시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찬반 양론이 개진됐다. 임표은 파병 반대를 주장하며 『중국정부는 수립된 지 얼마 안됐고 전국 각지에서 지금도 반혁명 잔당들이 설치고 있다. 국내외에서 동시에 적을 상대하기엔 아직 벅차다』라고 말했다. 고강도 같은 의견이었다. 『우리는 20년 이상 전쟁을 했고 아직 정상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무기는 모두 낡았다. 미군은 대포 1천5백문을 실전배치할 수 있는데 비해 우리는 3백문밖에 배치할수 없다. 탱크도 우리가 훨씬 적다. 미군이 압록강 너머로 진격해 온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 것인가. 북동쪽 국경의 수비를 강화하고 자중하는 것이 최상책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고강은 주장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참전쪽을 지지,이튿날인 10월2일 당중앙위원회는 한국파병을 결정했다. 같은날 당중앙위는 모택동이 서명한 파병결정전문을 스탈린 앞으로 보냈다. 지원군의 지휘책임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놓고 회의가 열렸다. 처음에는 임표가 적임자로 지목됐으나 그의 건강이 문제가 돼 팽덕회에게 넘어갔다. 10월4일 모택동은 서안에 있는 팽덕회를 북경으로 불렀다. 모는 이렇게 말했다. 『덕회 동지,결정은 내려졌고,3개군에 동원령을 내렸고 수십만명이 움직일 것이오. 잘못하면 우리는 큰 시련을 맞게 될 것이오. 확대 정치국 회의석상에서도 모두들 신중론을 제기했소. 하지만 김일성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데 우리가 이를 방관하면 사회주의국은 모두 한 진영이라는 말은 헛말에 불과하게 되오』 팽덕회가 소련과의 군사 협조에 대해 묻자 모는 스탈린이 공군지원 약속을 했으며 따라서 중공군이 지상작전을 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1950년 10월8일,모택동은 팽덕회를 중국지원군사령관겸 정치장교로 정식 임명했다. 팽덕회는 이튿날 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조선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의무이다. 미국은 압록강 너머에 군대를 배치하는 즉시 구실을 붙여 침략전쟁을 도발해 올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10월11일 팽덕회는 새벽 기차를 타고 안동으로 갔다. 그리고는 압록강을 넘는 병력수송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10월12일 하오8시,모주석이 보낸 긴급 전문 한통이 팽덕회 앞으로 날아들었다. 지원군의 월경작전을 중지하고 즉시 북경으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팽덕회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소련이 당초 약속과 달리 공군을 한국전에 보낼수 없다는 내용을 모스크바 주재 중국대사관에 통보해 왔다는 것이다. 주은래는 이같은 사실을 즉시 모에게 보고했다. 그 보고를 받고 모는 안색이 변하면서 담배를 문채 10여분동안 방안을 서성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출정명령은 이미 내린 상태였다. 이틀뒤 모는 정치국회의를 열어 파병을 연기시킨뒤 주은래를 모스크바로 보내 중국이 처한 어려운 입장을 설명하기로 했다. 10월15일 팽덕회는 심양으로 가서 모주석의 교시와 정치국의 파병연기 결정을 알렸다. 10월16,17일 이틀간 팽덕회는 김일성이 보낸 특사를 만났다. 주은래는 스탈린을 찾아갔으나 아무런 소득도 얻어내지 못했다. 스탈린은 한번 내린 결정은 번복치 않는 사람이었고 소련 공군이 참전 가능성은 없었다. 모는 꼬박 사흘을 뜬눈으로 새웠고 수면제 수십알을 먹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모는 결국 파병키로 결정을 내렸다. 모스크바의 주은래 앞으로 모의 전문이 전달됐다. 소련 공군의 오든 안오든 중국은 싸운다는 내용이었다. 같은날 주은래는 다시 스탈린을 찾아갔다. 스탈린은 주를 보고 『아직 떠나지 않았던가』라며 딴청을 부렸다. 주은래는 결연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모주석으로부터 조선 파병결정을 내렸다는 전문을 받았습니다』 스탈린은 한동안 침묵을 지킨끝에 『중국 동지들이 정말 훌륭해』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1950년 10월19일 하오8시,팽덕회의 지휘아래 중공군 지원군은 마침내 압록강을 건넜다.
  • 「포철=박태준」 등식 어찌될까

    ◎14일 주총… 퇴진여부 관심/「정치전념」 관련,「명예회장」 맡을지 주목/“광양 4기 완공까진 겸임” 강한 애착심/“아직 이르다”… 여권 공감속 개인의존 체질 개선론도 「포철왕국」의 대폭적인 물갈이가 이루어질 것인가. 오는 14일로 박두한 포항제철의 정기주총에 예년과는 달리 경제계는 물론 정계일각에서도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대부이자 집권 민자당의 민정계를 대표하는 박태준 최고위원이 그동안 겸직해 온 포철회장직 임기가 만료되는 것을 비롯,정명식사장 등 모두 24명의 포철임원 가운데 8명의 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특히 포철이 지난해 주총에서 명예회장제와 부회장제를 신설,부회장에 박회장의 측근인 황경노상임 고문을 선임해 놓고도 명예회장제는 공석으로 남겨 놓았던 만큼 박회장이 정치전념을 위해 회장직을 내놓고 자신은 「섭정」정도의 역할에 그칠 수 있는 포철 명예회장으로 물러날지의 여부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현상황을 종합해 보면 박회장은 이번 주총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단연 우세하다. 포철 관계자들은 박회장의 포철에의 집착과 철강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데다 박회장 없는 포철은 아직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 89년 박회장이 민정당 대표위원에 임명된 뒤에도 그대로 포철 회장직에 머물러 왔으며 그후에도 여러차례 광양4기 설비가 완공될 92년까지는 회장직을 겸임하겠다는 의사를 강력히 천명한 사실을 포철측은 상기하고 있다. 평소 일생을 철강인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온 박회장이 자신의 평생과 피땀을 바쳐온 포항·광양 양대 제철소 건설사업이 마감되는 내년 10월 광양4기 설비의 준공시점까지는 그대로 포철 회장직에 남아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권 내부에서도 박회장이 아직 포철 회장직에서 떠날 시기가 아니라는데 어느 정도 공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주총에서 그가 포철 회장직을 떠난다면 이는 바로 차기 대권도전으로 인식될 소지가 많을 뿐 아니라 민자당내의 복잡한 계파관계상 공연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 당내 불안요인을 만들필요가 없다는게 박회장 측근들의 얘기다. 그럼에도 정·재계 일각에서는 앞으로 시기가 문제일뿐 박회장이 언젠가는 회장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는 자연스런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관측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가 민자당내 민정계를 대표하는 최고위원으로 정계에 이미 발을 깊숙이 들여놓은 상태에서 더이상 포철 회장직을 맡는 것은 무리이며 조만간 정치에서 해방되지 않는 이상 정치전념을 위해 언젠가는 포철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포철내부의 사정도 박회장의 경영일선 퇴진을 점치게 만들고 있다. 박회장의 정치·경제겸직에 대해 어느 하나만을 택일해야 한다는 세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치쪽 일이 바빠지면서 그가 포철과 국내 철강업계 업무에 별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고 사업다각화와 노사관계의 복잡성 등 경영여건의 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 인물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20여년간 박회장의 카리스마에 의존해 온 포철의 경영이 박회장 없이는 제대로굴러갈 것인지가 문제다. 국민을 주주로 한 국영기업인 포철의 운영이 한 개인의 힘에 너무도 안주하는 타성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포철임원 24명이 대부분 지난 60년대말과 70년대초부터 포철에 몸을 담아온 사람들인데다 임원이 된 다음에도 대부분 중임을 거듭,「단임정신」과는 거리가 먼 배타적 체질이 굳어졌기 때문에 박회장 이후의 포철을 걱정하는 시각이 많다. 올 주총을 앞두고 박회장의 유임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으나 이에 관계없이 포철이 과거의 신화를 유지하려면 한 개인의 카리스마에 따른 운영에서 벗어나 조직과 제도에 의한 경영으로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발암물질 시비로 빚어진 노사갈등과 최근의 노조원 집단노조 탈퇴,경영난 악화 등으로 시련기에 접어든 포철이 올 주총에서 어떤 쇄신의지를 보일 것인지 주목된다.
  • 국제그룹 재기 알루미늄개발에 걸었다.

    ◎“공중분해 6년”… 야심의 청사진/김덕영 전 부회장등 발판용 8개회사 운영/9억불 투자… 베네수엘라에 제련공장 추진 지난 85년 공중분해됐던 국제그룹의 전 임직원들이 김덕영 당시 국제그룹 부회장(양정모회장 사위)을 중심으로 활발한 재기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국제그룹의 전 임직원들은 국제그룹의 붕괴와 함께 뿔뿔이 흩어졌었으나 그룹해체 2∼3년 뒤부터 양회장의 다섯째 사위이자 당시 그룹 부회장으로서 그룹내 2인자 자리를 굳혔던 김덕영씨를 중심으로 다시 모여 그동안 꾸준히 재기의 의지를 다져왔다. 김덕영씨는 경복고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실력파 「히틀러」라는 별명이 말해주는 강력한 추진력,그리고 두둑한 배짱 등이 높이 평가돼 일찌감치 국제그룹의 후계자로 지목됐었다. 여기에 부친 김종호씨가 신한투자금융의 소유주라는 재력적 배경까지 가미돼 국제상사 부사장에서 곧바로 그룹 부회장에 올라 제2인자의 자리를 굳혔었다.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된 후 김전부회장은 큰 시련을 겪었으나 재기노력을 계속해 그룹붕괴 만 6년이 지난 현재 비록 규모는 작지만 종합상사인 두양상사를 비롯해 두양금속,신발회사인 남성,와이어로프 제조업체인 영흥철강과 대흥산업,골프장을 건설중인 두양산업개발 및 정일개발,그리고 내셔널항공 등 모두 8개의 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이들 회사는 따로따로 떨어져 사업을 벌이고 있고 김덕영씨 역시 영흥철강 회장외에 다른 직함을 갖고 있지 않지만 언제든지 한지붕 밑에 모일 수 있는 김회장의 회사들이다. 두양상사의 사장을 맡고 있는 윤성원씨는 국제그룹 해체직전인 지난 84년 호주 알루미늄사업을 총지휘했던 김전부회장의 오른팔 격이며 그룹종합조정실 전무였던 유기형씨가 영흥철강 사장,국제상사 영업담당 부사장이던 배정운씨가 두양금속 사장,국제종합기계 부사장이던 윤익수씨가 남성사장,그룹건설담당 상무였던 박근재씨가 두양산업개발 사장 등을 각각 맡고 있다. 이들 국제그룹 사람들은 최근 국제그룹이 해체되기 직전인 지난 84년 사운을 걸고 추진했던 대규모 해외알루미늄 제련사업을 다시 추진하고나서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덕영 전 부회장이 직접 진두지휘에 나선 이번 사업은 베네수엘라의 과야나공업지역내 60여만평의 부지 위에 총 9억달러를 투자,오는 93년말까지 연산 23만t짜리 대규모 알루미늄제련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동력자원부로부터는 이미 지난해 12월6일 사업허가를 얻어냈으며 이달말로 예정된 베네수엘라 정부로부터의 허가도 거의 확실한 것으로 알려져 국제그룹이 사운을 걸고 추진했던 마지막 해외사업이 곧 부활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지난 84년 15억달러를 투자해 서호주 위슬리지역에 연산 22만t짜리 현지 알루미늄회사를 세우려다 무너진데 대해 두고두고 미련을 가진채 『언젠가는 다시 알루미늄 제련사업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연간 알루미늄수요가 40여만t에 달하는 국내에는 알루미늄 제련시설이 전혀 없어 전량수입해다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연산 23만t 규모의 베네수엘라 알루미늄 합작사업이 성공할 경우 연간 매출액만도 4천여억에 달하고 연간 10여만t의 알루미늄을 국내에 판매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국제맨들은 이 사업만 잘 되면 국제그룹 당시의 업종을 거의 갖춰 공식적인 재출발을 선언함으로써 사라진 국제그룹의 마지막 해외사업과 꿈을 다시 재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아래 재기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 또,법정 난투극(사설)

    법정소란 사건이 또 있었다. 4일 열린 전대협 전 의장 송갑석피고인 등과 관련된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5차 공판정에서 방청객과 경찰관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두번씩이나 재판이 지연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운동권 세력이 법정에 설 경우 법정소란은 으레 따르는 다반사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송갑석피고인과 관계된 법정은 거의 예외없이 소란으로 점철되고 있어서 지난 1월말 열린 공판때에는 법정소란을 이유로 감치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 2월28일 열린 이른바 사노맹 사건의 공판정에서의 피고인이 참여주사석을 밟고 재판대 위로 뛰어올라가 『노정권 타도』의 구호를 외치다가 교도관에게 끌려내려오기도 했다. 이렇게 잦은 법정소란들에 대해 일반시민이 느끼는 것은,이런 소란들이 단순하게 격정적인 방청인이나 열혈 학생들이 일으킨 우연하고 즉흥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정을 효과적인 투쟁마당으로 설정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타격을 주기로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계획적으로 집단이 되어 법정 안팎을 점거하고선동적인 구호와 노래,시위들을 짜고 외치는 일을 조직적으로 또 기능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행동들이 날로 대담해져서 마침내는 재판대에까지 뛰어오르는 일을 서슴지않게 되었다. 법정이 이렇게 유린되고 모독되는 것을 우리는 용인할 수가 없다. 국가의 권위와 질서,존재의미까지를 파괴해 버리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민가협 회원들까지 합세하여 날로 극렬해지는 양상을 띠는 일이 우리로서는 더욱 유감스럽다. 소중하고 귀한 자녀와 육친이 불행을 겪고 있고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직면하면 그 가족들이 모여 함께 대응한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당사자들처럼 흥분과 환상에 들떠 과열된 행동을 벌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시련을 겪는 자녀나 가족을 위해서도 좋은 해결방법이 아니고,그들이 속한 각각의 가족이나 가정을 위해서 온당한 행동이 아니다. 시민의 눈에 비치기에도 아무런 설득력이 없고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런 행동은 법정에서까지도 합리적인 행동과 논리로 대처할 수 없어서 극단적인 구호와 시위만으로 임한다는 인상을 줄 뿐이다. 어쩌다 한두번이라면 권력을 상대로 불가항력을 느낀 피고의 억압된 감정이 노출된 것이라고 이해도 할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럽게 법정소요가 행동전략의 하나로 굳어져가는 듯한 지경에 이르고 보면 누구도 공감하기가 어렵다. 자녀나 육친들이 불행한 시련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가족」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런 가족이 극렬하고 폭력적인 행동으로 외면당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면 끝내는 시련당하는 당사자의 불행만 깊어진다. 그 불행을 가속시키는 쪽으로 부추긴다는 것은 그들을 위하고 돕는 일이 안된다. 가족들만이라도 젊은이들의 병적으로 편향된 시각에 휩쓸려 불행을 가속시키지 말고 마음을 차분히 식히고 주변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렇게 하면 분명 잘못 치닫고 있는 자신들의 행적이 얼마나 불행을 부르고 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법정소란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승산없는 행동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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