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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 대통령 귀국인사/전문

    유엔총회에 참석한뒤 멕시코 공식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여 국민여러분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운명을 남이 결정하는 타율의 시대는 끝났습니다.세계와 호흡을 함께 하며 하루하루의 생활을 영위하는 오늘의 국제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국외자로 국제무대의 바깥에 서 있어야 했던 비합리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는 유엔의 회원국으로서 우리 민족의 문제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복리를 위해 당당히 발언하고 이에 기여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저는 유엔총회에서 국제사회의 완전한 성원이 된 우리나라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이 세계의 화합과 번영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다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가져다 주었고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아온 냉전체제는 국제사회로부터 무너졌습니다. 저는 그동안 추진해 온 북방정책이 3년의 짧은 기간에 이처럼 큰 결실을 이룬데 대해 국민여러분과 함께 보람을 나눕니다.우리는 북방정책을 통해 소련과 동중부유럽의 모든 나라와 우호협력하는 관계를이루어 이제 온 세계를 우리 국민의 활동무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실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남북은 다함께 유엔의 헌장을 준수함으로써 공존공영의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그것은 7천만 겨레가 통일의 시대를 여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자유와 평화의 구현은 유엔헌장이 규정하고 있는 모든 회원국의 책무이며,사람과 물자,정보의 자유로운 교류는 이 개방된 세계에서 나라간에 통용되는 보편적 질서입니다. 남북은 이러한 바탕위에서 정치 군사문제를 포함한 대결의 요인을 자주적으로 해소해 가야합니다. 저는 아직 북한이 경직된 폐쇄체제에 매어 있으나 개방으로 전환할 날이 멀지 않다는 믿음을 새로이 하였습니다. 세계는 그 질서자체를 바꾸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소련과 동유럽의 모든 나라도 자유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전혀 새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세계는 서로를 갈라온 장벽을 허물어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있습니다.한반도는 이 지상에서 냉전으로 분단된 유일한 땅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며,이 세기안에 분단상황은 종식될 것입니다. 저와 부시 미국대통령의 회담은 이러한 나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해 주었습니다.미국은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려는 우리의 노력과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담을 통해 저는 우리나라가 미국의 중요한 동반자이며 한미관계는 그 어느때보다 긴밀함을 재확인했습니다. 케야르사무총장과 유엔의 각국대표,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와 볼저 뉴질랜드총리등 각국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도 저는 한국의 더 높아진 위상과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높은 기대를 확인하였습니다. 저는 멕시코를 공식방문하여 미국 캐나다와 함께 자유무역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이 나라가 우리의 남북 미주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관계증진의 기틀을 다졌습니다.살리나스대통령과 멕시코 조야는 우리 일행에게 극진한 환대를 베풀어 주었으며,태평양시대의 동반자로서 우리나라와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킬결의와 열의에 차 있었습니다. 이 세기에 들어 세계는 우리 겨레에게 남보다 더 큰 고난과 시련을 주었습니다. 세계는 우리의 활동무대로 바뀌고 우리 겨례의 앞날에 축복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없는 자리에서 남이 우리나라를 분단하는 역사는 더이상 없을 것입니다.동포형제가 총부리를 맞대고 수 많은 부모들이 젊은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극도 없어야 합니다.우리는 이 땅에 평화의 시대를 주도적으로 열어 나갈 것입니다. 부시 미국대통령은 해외에 배치한 모든 핵무기를 철수할 것을 발표하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공약은 『비윗돌과 같이 공고하다』고 굳게 다짐하였습니다.미국의 해외 핵철수는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안보 상황에도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입니다.우리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함께 다른 모든 핵보유국들도 핵무기를 감축,폐기토록하여 한반도를 포함한 이 지역에 핵의 위협이 없는 평화를 구축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무기개발 저지는 우리뿐만 아니라 온 국제사회의 긴급한 당면과제가 되고 있습니다.북한은 핵무기개발을 무조건 포기하고 국제사찰에 응해야 합니다.우리와 함께 북한은 이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성원으로서,또한 같은 민족으로서 한반도에 군사적 대결을 해소하고 평화를 구축시킬 구체적인 조치에 합의하고 이를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우리 앞에 열린 통일의 길을 넓고 탄탄한 대로로 닦아가야 합니다.이를 위해 우리는 자유와 번영의 힘을 한껏 키워야 합니다.통일의 기회가 언제 오더라도 온 국민과 각계가 단합하여 이를 맞을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우리가 하기에 따라 통일의 날은 앞당겨 질 수도… 미루어 질 수도 있습니다.우리는 자유와 번영을 향한 인간의 열망이 냉전체제의 높고 굳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동서독일의 통일을 이루게 한 것을 감동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세계를 바꾸고 있는 역사의 물결은 한반도에도 밀려와 오랜 교착상태를 깨고 남북한의 유엔 가입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물결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통일의 그 영광된 날을 향하여,더 넓은 세계를 향하여… 7천만 겨레 모두의 밝은 내일을 향하여 모두가 자신과 신념을 갖고 힘차게 전진할 것을 다짐합니다. 미주의 동포들도 유엔가입을 기쁨으로 맞으며 더 큰 희망에 넘쳐 있었습니다.국민여러분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장년 국군의 어제와 오늘

    ◎최고학력 정병,첨단 국산장비로 무장/합참본부 통합 지휘로 전력 집중화/일제 소총 창군서 유수의 강군으로 1일은 건군 제43주년 국군의 날.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과 함께 창설된 우리국군은 43년이 지나는 동안 세계유수의 정병강군으로 성장했다. 10월1일을 국군의날로 정한 것은 6·25동란때 낙동강까지 후퇴했던 국군이 50년 10월1일 동해안에서 마침내 38선을 돌파 실지회복에 나섰던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건국초기 국군의 총병력은 육군 5개여단 15개연대 5만4백90명,해군이 6천여명,공군이 1천6백여명으로 모두 합쳐 5만8천여명밖에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현역 65만5천여명 방위병 17만명 예비군 4백여만명으로 1백배에 가까운 양적인 성장을 했다. 낡은 일본소총과 20여대의 연락기,40여척의 작은 연안수송선등으로 출범했던 국군은 3년1개월간의 6·25동란을 겪으면서 온갖 역경을 이기고 전선을 현 휴전선에서 고착시키는데 성공했다. 50년대의 시련기,60년대의 확장기,70년대의 자주국방기를 거쳐 80년대 성장기를 지나 90년대의국군은 극동지역에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전위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창군당시의 초라한 장비와 임시 천막에서 구 일본군·만주군·광복군·중국군등 각기 다른 전통을 가진 장병들로 구성됐던 국군은 첨단과학무기와 현대식 막사를 갖춘 엘리트 기술집단으로 변모했다. 현대 국가의 국방력은 경제력과 직결된다. 80년대를 맞으면서 정부의 중화학공업육성과 주한미군감군에 따른 전력증강계획에 힘입은 국군은 5대양6대주에 걸친 경제성장으로 방위산업이 쏟아내는 각종 국산장비로 무장되었다. M16소총과 한국형탱크 중거리유도탄 국산 구축함 고속정 국산제트전투기 헬리콥터 각종 지상·함상포등을 갖춘 정예 현대군이 오늘의 국군의 모습이다. 현재 우리 국군은 어떠한 북한의 도발도 즉각 분쇄할 수 있는 전술·전략을 갖게 됐으며 북한의 군사력은 이미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에 차있다. 국군의 성장·발전은 무기·통신등 장비체제에만 두드러진 것이 아니다. 국민개별제에 의한 신성한 병역의 의무는 사병들의 평균교육수준을 고졸이상 대학재학생으로 높여 세계 최고의 학력자들로 구성되어 현대의 전자·과학전 운영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고졸이상 학력을 가진 장병들은 전군의 95%가 넘고 이들의 애국심과 사명감등 정신전력은 세계 어느나라 군대보다도 높다. 육·해·공군 각군 본부의 지휘관및 참모들의 수준도 50년대 사관학교를 졸업한뒤 월남전과 같은 실전경험을 익히고 미국·유럽등 선진국에 유학,교육훈련을 받고 현대적인 군사기술과 함께 선진과학기술·부대경영·행정능력을 배워와 국제감각을 익혔다. 민주화·개방화·국제화의 새시대 새질서가 시작된 90년대의 국군은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사적 성업과 민주복지국가건설의 선봉에 서서 새로운 민·군관계를 정립하고 있다. 지난해 10월1일에는 개정된 국군조직법에 따라 출범한 합동참모본부가 육·해·공군의 전투부대의 작전지휘권을 갖게 되어 명실상부한 국군최고사령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통제협 합참의 발족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각 군 참모총장이 갖고 있던 군령권을 합참의장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작전의 즉응성이나 효과·속도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게됐다. 90년대이전의 합참의장은 국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국방부장관→각군참모총장→군사령부에 이르는 군령계선에서 제외돼있어 국군의 지휘·참모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징적인 위치에 불과했으나 현재의 합참의장은 전군의 13개 전투사령부 국군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전투부대의 지휘봉을 잡게됐다. 합참본부가 3군을 통합지휘하게 됨으로써 국군의 정보·통신망을 일원화하고 유사시 육상·해상·공중의 모든 작전요소와 화력을 집중화 하게되어 전투효과가 2∼3배로 증가할 수 있게됐다. 또 각군본부의 인원도 작전과 정보분야에서 약40%가 감축되어 육군은 3∼4개사단을 신설하고 해군은 잠수함전단,공군은 F16 차세대전투기로 구성된 새로운 전투비행단을 창설할 수 있게됐다. 각 군 참모총장은 병력의 훈련·군수기능을 포함한 군정권(행정)만 행사함으로써 신병과 사관생도의 교육훈련·인사·예산·군사법·감사권·군기및 사기유지에 대한 책임과 권한만을 행사하고 있다. 정예 국군은 민족 자멸을 초래할 어떠한 전쟁도 사전에 억제하며 7천만 동포를 동족상잔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며 국가와 민족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국토방위와 민족수호의 임무에 여념이 없다. 원숙기에 접어든 장년국군은 겨레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첨병으로 사명을 다하고 있다.
  • 중국 정부수립 42돌/김일성,중국에 축전

    【내외】 북한 김일성은 30일 중국정부수립 42주년(10월1일)을 맞아 강택민공산당총서기등 중국지도부 앞으로 축전을 보내 사회주의 승리를 위한 공동보조를 강조했다고 북한관영 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김일성은 이날 강택민과 양상곤(국가주석)및 만리(전인대상무위원장)앞으로 보낸 이 축전에서 북­중친선이 『공동의 목적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 피로써 맺어지고 온갖 시련속에서 공고화된 친선』이라고 강조하면서 『현국제정세가 복잡할수록 전통적인 북­중친선이 더욱 강화될 것이며 사회주의 위업의 승리를 위해 언제나 함께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 노 대통령 멕시코방문 이모저모

    ◎“꼬레아 연호”… 멕시코 시청은 축제장/“한국 문화회관 건립 지원” 즉석 약속/여 가수 「베사메무초」 노래에 노 대통령도 합창/명예시민증 받곤 “우의의 증표로 간직하겠다” ▷교민초청 만찬◁ ○…노태우대통령 내외는 26일 하오(한국시간 27일 상오) 숙소인 카미로 레알 호텔에서 멕시코 교민대표 50여명을 초청,만찬을 같이하며 격려. 노대통령 내외는 교민들이 박수로 환영하는 가운데 만찬장에 입장,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좌정한뒤 『대통령으로 처음 중남미국가를 방문한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고 『동포여러분의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보니 기쁘며 앞으로도 여러분의 건강과 발전을 빈다』며 건배를 제의. 노대통령은 만찬이 끝난뒤 격려사를 통해 『86년전 이곳에 처음 이민을 왔던 한인의 후손여러분을 만나게 돼 뭐라고 말할수 없는 감격을 느낀다』고 전제,『조국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발전을 이루고 있는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다』며 『동포 여러분들도 더큰 긍지를 갖고 멕시코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해달라』고 당부. ▷김옥숙여사 박물관 방문◁ ○…대통령 부인 김옥숙여사는 26일 하오 3시(한국시간 27일 상오 6시)부터 약 1시간동안 멕시코시티 시내 「인류사박물관」을 방문. 김옥숙여사는 박물관장 세라푸체여사의 안내로 메소아메리카문명관으로부터 아즈테카문명관·마야문명관 순으로 박물관을 관람하며 스페인정복이전 멕시코문명의 발달사에 깊은 관심을 표명. ▷애국용사탑 참배◁ 노대통령은 26일 상오 11시25분(현지시간) 차플테팩공원안에 있는 애국용사탑을 참배하고 헌화. 노대통령은 카마초 멕시코시장의 안내로 애국용사탑에 도착,헌화한뒤 군악대가 멕시코국가와 애국가를 연주하는동안 잠시 묵념. 노대통령은 이어 방명록에 「멕시코 애국용사들의 호국정신에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1991.9.26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서명. 노대통령은 애국용사탑참배를 마치고 떠나기전 행사기간동안 도열해있던 멕시코소년군사학교 소속 어린학생들과 전문기술학교소녀들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격려. 이날 노대통령의 애국용사탑참배에는 우리측 공식수행원과 멕시코시장및 관계공무원들이 자리를 함께했고 때마침 공원을 찾은 관광객과 주민들이 행사를 지켜보면서 노대통령이 떠날때 박수로 환송하기도. ▷멕시코시청 방문◁ ○…26일 상오(한국시간 27일 새벽)노태우대통령에 대한 명예시민 증서전달및 행운의 열쇠증정식이 있은 멕시코시청은 축제장을 방불. 상오 10시30분 노대통령이 카마초 솔리스 멕시코시티시장의 안내로 시청청사로 들어서자 2층제단에 자리잡은 악단은 경쾌한 멕시코선율의 환영음악을 연주했고 청사내는 박수의 물결로 가득. 카마초시장은 명예시민증서와 행운의 열쇠,기념수장을 차례로 노대통령에게 전달한 뒤 『모든 시민의 이름으로 다시한번 각하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환영사. 노대통령은 답사에게 『멕시코시티 시민과 서울시민은 인류화합의 축전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숭고한 올림픽정신을 꽃피운 무한한 긍지를 갖고 있다』며 멕시코의 찬란한 문화를 극찬하고 『오늘 받은 명예시민증서와 행운의 열쇠는 한국민에 대한 멕시코국민의 우의의 징표로 소중히 간직하겠다』고인사. 노대통령이 이어 2층복도로 나서자 지붕없이 설계된 1,2,3층 복도 테라스를 가득메운 남녀중학생 수백명이 양국기를 흔들며 「멕시코」「코레아」를 연호,청사내는 갑자기 축제장분위기로 변모. 환호속에 파묻힌 노대통령내외가 카마초시장과 함께 1층홀로 내려와 간이무대앞에 서자 멕시코 제일의 란초음악(농가음악) 여가수인 마리아 데 루르데스가 민속의상을 차려입은 남녀중창단의 백코러스속에 「과달라하라」라는 축하노래를 열창. 노래가 끝나자 청사내는 「와」하는 함성속에 파묻혔고 노대통령내외가 간이무대에 올라 여가수의 손을 잡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순간 악단은 갑자기 노대통령의 애창곡인 베사메무초를 연주했고 여가수는 노대통령내외와 마주서서 다시 베사메무초를 열창하기 시작. 여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도중 간간이 마이크를 노대통령과 김여사앞으로 내밀었고 노대통령이 이에 몇소절 노래를 부르자 청사내는 박수와 환호로 가득했고 1,2,3층 복도테라스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학생들도 양국기를 흔들며 베사메무초를 합창,환영분위기는 절정에 도달. 노대통령내외가 여가수및 악단과 인사를 나누고 퇴장하자 청사내는 다시 「멕시코」「코레아」의 연호속에 파묻혔고 노대통령내외는 환호에 손을 들어 답례하며 몰려드는 남녀학생들의 손을 잡아주느라 분주. 이같은 열광적인 환영분위기때문에 노대통령은 예정보다 12분이나 늦은 상오 11시22분에서야 다음행사장인 애국용사탑으로 출발. ▷한국경제인 조찬간담회◁ ○…살리나스 멕시코대통령은 26일 상오 노태우대통령을 수행중이거나 한국상품전시회관계로 멕시코를 방문중인 한국경제인들을 대통령관저로 초청,조찬을 함께하며 한·멕시코경제협력 증진방안들에 관해 의견을 교환. 이날 조찬간담회에는 이봉서상공부장관,한·멕시코민간경제협력위원회 한국측위원장인 김상응삼양사사장과 정세영현대·김우중대우·최종현선경회장,조중건대한항공사장,신명수동방유량회장,최동규극동정유사장,금진호무역협회고문,최광수수출입은행장,김철수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사장등 30여명이 참석. 살리나스대통령은 『한국과 멕시코간의 상호협력가능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면서 『특히 투자부문에서 많은 협력사업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언급. ◎노 대통령 교민초청 만찬사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처음 멕시코를 방문하게 된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오늘 저녁 동포여러분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이곳에서 뵙게 된 것은 참으로 큰 기쁨입니다. 기후와 풍습,언어와 문화… 모든 것이 낯설기만한 머나먼 이국땅에서 이 분들이 겪은 고난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를 생각합니다. 우리겨레의 지난날은 시련과 수난의 세월이었지만… 여러분의 조국은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발전을 이루고 있는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습니다.한국은 이제 광섬유와 컴퓨터로부터 자동차와 거대한 선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상품을 만들어 온 세계에 내다파는 나라가 되었습니다.10년후면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5천달러의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한국은 6·29선언이후 자유와 자율이 넘치는 진정한 민주주의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이제 독일이 통일되고 동서의 세계가 하나가 되는 이 변혁속에 우리의 통일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남북한의 유엔가입은 한반도가 통일을 향해 나아갈 큰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저와 살리나스대통령은 긴밀한 동반자로서 우리 두나라 관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습니다. 한국과 멕시코는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가속화해 나갈 것입니다. 교역과 경제협력이 더욱 확대되고 특히 한국기업의 멕시코 진출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자유·번영·통일의 축복이 넘치는 밝은 내일에 대한 희망에 차 있습니다.동포 여러분도 더 큰 긍지를 갖고 멕시코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훌륭한 일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알뜰한 씀씀이」는 삶의 지혜다(사설)

    전국민 「씀씀이 줄이기 운동」이 정부에 의해 대대적으로 전개될 예정이다.이런 일을 정부가 나서서 서두르는 일이 효률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따르기는 하지만 일의 심각함이 국가적으로 긴장을 조성해야 할만큼 다급하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투기와 탈세 재산도피같은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고는 터무니없이 호화스럽고 분수없이 사치한 생활을 할 수는 없다.그럴수 있는 사회계층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으레 「사회지도층」이게 마련이다.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특혜를 받는 기업,의사나 권력의 비호를 받는 배경좋은 상류층이 아니고는,우선 능력이 없어서 그런 헤프게 흥청거리는 생활을 할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통념이다. 그러므로 「사정」차원의 서슬퍼런 단속이 앞서지 않으면 겁도 내지 않고,『피라미나 걸려들것』이라는 냉소적 분위기가 번진다.「근검하게 사는 기풍」을 국민의식으로 정착시키려는 능력이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만 여전히 이런 부정적 시각이 방해가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우리 서로가 반성해볼 일이다. 어쨌든지금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 망국적 호화 사치 낭비벽은 서둘러 바로잡지 않으면 안된다.문제가 나라차원으로 심상치않게 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성장률은 떨어지고 근로의욕이 상실되었으며 절약의 미덕은 빛바래고 제조업은 쇠퇴하면서 서비스업계만 비대해지고 퇴폐적인 도시화현상의 확산으로,화학비료에 산화한 토지처럼 사회가 황폐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일은 나타난 현상의 심각성보다 근원적 병소가 더 우려스런 상태에 있다.그것은 우리들의 마음 깊은곳이 병들었음을 뜻하는 것이다.의식의 밑바닥부터 치유하는 노력없이는 효과를 거둘수 없는 병이다.그러기위해서는 소수의 허영스런 상류계층을 먼저 다스리는 일도 중요하다.특히 뚜렷한 신고소득원도 없이 사치하게 사는 사람,불로소득으로 열심히 사는 이웃을 실의에 빠지게 하는 사람들은 범죄다스리듯 엄격하게 찾아내어 감시해야 한다.이런 일들은 다부지게 지속적으로 하지 않으면 내성만 강해져서 치유불능이 되어 버린다. 사회분위기가 건전한 곬을 찾기위해서는민간 특히 현대생활에서의 소비주역인 주부와 여성들의 활동이 참여해야 한다.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각별히 관심을 갖고 가정분위기를 바꾸고 그에 따라 사회도 정화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씀씀이를 자제하지 못하고 절제할 줄 모르며 성장하는 청소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불행하다.시련에 견딜 능력이 없어지고 사려깊게 행동하는 능력이 길러지지 않기때문이다.탈세나 재산도피같은 방법으로 축적해놓은 재산은 다음세대를 타락시키고 붕괴시키는데 기여할 뿐이다.부지런하고 알뜰하고 검소한 생활태도는 시대를 초월한 미덕이면서 현명한 인생의 무기가 된다.이 무기로,보이지않게 다가오는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 북한의 선택(사설)

    소련에서 솟구치고 있는 대변혁의 본질은 역사가 지금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그 흐름을 역류시키려 했을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보수강경파와 군부가 손을 잡고 일으킨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뒤 70여년을 이어온 소련공산당은 급속하게 붕괴되고 있고 연방제마저 해체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이러한 변혁은 소련의 노멘클라투라(붉은 귀족)가 역사의 흐름을 거슬러 무모한 모험을 저지른데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에서 이같은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데도 시대착오적인 낡은 틀속에서 계속 움츠러들고 있는 집단이 있다면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북한·중국·쿠바 등에서 그러한 집단을 보게 되는데 우리는 북한을 걱정스런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김일성주석을 비롯한 북한판 노멘클라투라의 운명이야 상관할 것이 없지만 이들의 그릇된 아집때문에 북한주민들이 겪어야할 시련이 가슴아플 뿐이다.북한이 앞으로 취할 태도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 몇가지를 예측하고 있다. 첫째,체제수호를 위해 내부단속과 주민결속에 부심할 것이란 점이다.이에따라 주민통제와 사상교육이 보다 강화될 것으로 짐작된다.평양방송이 지난 26일 「국내외의 적들로부터 사회주의를 수호하자」고 촉구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을 대변하고 있다.둘째,남북관계를 일단 냉각시킨뒤 시간을 갖고 대남전략을 재조정할 것으로 보인다.셋째,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소련의 변혁에 공동보조를 취할 것으로 생각된다.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직후 북한의 김영남외교부장이 급히 중국을 방문,중국의 전기침외교부장과 비밀회담을 가진 것은 이 예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소련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응급처방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김일성주석도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그러면 그가 선택해야할 바른 길은 무엇인가.두려워할 것도 없고 초조해 할것도 없이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다. 남북분단이후 반세기 가까이 북한을 강압적으로 통치해온 그가 지금으로서는 역사의 흐름에 발맞추기는어려울 것이다.그렇다면 점진적이나마 개방의 폭을 넓혀 나가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일부터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식대로 살자」는 폐쇄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유엔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식대로 살자」고 고집하는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일성주석은 주체사상이란 독창적인 이념을 스스로 창시했다고 자랑해 왔다.그러나 그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주체사상의 원전자체가 종주국에서 소멸되고 있는 이때에 그것을 놓지 않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동구 공산체제의 잇단 붕괴에도 고개를 내젓고 소련의 변혁에도 눈을 감는다면 그 종말은 불을 보듯 뻔하다.김일성주석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 수재민에게 용기를…(사설)

    태풍 글래디스호가 아랫녘을 강정하고 갔다.태풍치고는 그다지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어 다소 만심을 했다가 허점을 찌르듯 덮쳐온 폭우로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 말았다. 24일 낮까지 집계된 것만으로 92명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3만여명의 이재민을 냈다.인명도 컸지만 재산상의 피해도 막대한 것 같다.이미 2백억 이상의 손실이 집계되었고 몇개의 공단이 물에 잠겨 8백78개업체가 조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태풍은 천재지변이므로 불가항력의 사태였던것 만은 틀림이 없다.더구나 이번 태풍은 통상적인 태풍이 거치는 경우와도 어긋나 속도는 느린대신 엄청난 폭우를 동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결과적으로 조금 만심을 했던 탓으로 그 타격이 더 커진 셈이기도 하다. 다가올 재란에 대하여 이렇게 마음이 해이해 있을 때면 으레 불의의 큰 피해가 다가오곤 하던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예상되는 재난에 대해서는 항상 적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부산같은 큰 국제적인 도시가 아무리홍수가 졌다지만 도심에서 배를 띄울 만큼 물이 들었다는 것은 도시의 기반시설을 의심해보아야 할 일인 것이다.여전히 산사태,제방 무너짐 같은 일이 큰 피해의 원인이 되는 점도 재점검해서 알아보아야 할 일인 것이다.해마다 되풀이되는 상습지역에서 또 거듭된 수재가 적지 않았다는 것도 한심스런 느낌이다.예보가 빗나간 것으로 인해서 당한 피해도 좀더 줄일수 없었는지 의심스럽다. 어쨌든 지금 시급한 것은 재해를 복구하는 일이다.졸지에 재난을 당해 가재도구는 물론 삶의 근거와 이뤄놓은 전재산까지 모두 잃고 거리에 나앉아 있으면서 당분간 돌아갈 곳도 없는 이재민이 몇만명이나 된다.이런 이웃을 구호기관에만 맡겨두고 외면할 수는 없다.윗녘이 당했을 때는 남녘의 동포들이 달려왔듯이 이번에 무사한 지방의 이웃들이 함께 나서서 고통을 줄여주어야 허탈하고 실의에 빠진 그들에게 최소한의 위로라도 줄수 있을 것이다.재난처럼 공평한 것이 없다.오늘은 남의 일이었던 것이 곧바로 내일이면 나의 일이 된다.나의 일이 아닐때 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위로하면 그것이 저축되었다가 이후,내가 당했을 때 이자를 늘려 돌아오는 것이 삶의 오묘한 이치다. 특히 콜레라가 미처 소멸되기전에 수해가 닥쳐서 더욱 걱정스럽다.모든 전염병이 다 그렇지만 그중에도 콜레라는 수인성이어서 수해지가 유난히 위험하다.방역대책을 서둘러야 하고,수재민 스스로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식수를 공급하는 기업이 있다는 소식은 그나마 대견하게 느껴진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서 생업에 돌아가기까지 용기를 잃지 않도록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격려를 보낸다.시련을 극복하고 나면 틀림없이 더 큰 행운이 새롭게 다가올 것을 믿고 어려움을 참도록 간곡히 당부한다.
  • 소 쿠데타 실패… 그후의 세계정세/긴급대담

    ◎“미국주도 동·서 협력관계 강화된다”/개혁·민주화는 이젠 역류할 수 없는 대세/북한,「핵사찰 수용」등 남북대화 나설 것/부시,대소경협에 박차… 고르비 입지 제고 시켜야 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 실패는 소련의 개혁과 민주화가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임을 전세계인에게 일깨워 주었다.이제 세계는 종전보다 더욱 굳건한 협력과 공존의 바탕위에서 평화시대를 구가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또 쿠데타가 성공했을 경우 한동안 정체될 것으로 우려됐던 남북한관계도 국제적 화해 분위기에 발맞춰 대화와 교류를 가속화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이용필서울대교수와 서병철외교안보연구원교수의 긴급대담을 통해 쿠데타실패의 배경과 소련정국의 향배,국제질서및 동북아정세,남북한관계의 전망등을 진단해 본다. ▲이용필교수=소련의 쿠데타가 실패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련정치체제의 특성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소련에 있어 정권교체는 평화적인 모양새는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권력투쟁이라는 노골적 행태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권력의 계승과 교체가 제도화되지 못했던 것입니다.이번의 쿠데타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해 그동안 기득권을 누려왔던 사람들이 위협을 느꼈다는 점을 구체적 배경으로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쿠데타 실패의 원인을 서너가지 요소로 분석할 수 있겠습니다.우선 쿠데타주동세력들이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을만한 명분을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그들은 거사후 발표한 성명에서 어떻게 소련을 이끌어가겠다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둘째로 쿠데타 주동세력들이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도 중요한 실패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그동안 보도에서도 나왔습니다만 혁명결행 몇시간 후에야 군이 투입됐다는 사실등이 이를 반영합니다.셋째로는 옐 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용감하고도 단호한 저항의지와 모스크바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상들의 쿠데타에 대한 비난과 옐친등 개혁지도자들에 대한 확고한 지지태도도 중요한 실패원인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병철교수=이미 시작된 민주화나 평화정착의 큰 흐름이 일부 강경보수세력에 의해서 쉽게 저지될 수 없었다는 데서 이번 소련의 쿠데타실패의 대국적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소련내부의 엄청난 변화,즉 역사의 큰 흐름을 억지로 막으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했다고 보면 정확하겠지요. 물론 쿠데타추진세력등 강경보수세력이 준비를 허술하게 한 점도 실패의 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즉 옐친등 개혁세력을 그대로 둔 채 형식적 쿠데타를 시도한 것 자체가 안이한 발상이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소련 국민들이 개혁및 평화정착에 엄청난 지지를 보냈지만 쿠데타세력엔 전혀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미 실패가 예견됐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교수=이와함께 쿠데타의 주도세력들이 모든 통신망을 완전히 봉쇄하지 못한 점을 꼽아야할 것입니다.그만큼 소련의 통신시설이 방대했던 것이죠.주요 매체들은 장악됐지만 모스크바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외부세계에 그대로 전해졌고,외부세계의 반응이 역으로 전파됐던 것입니다.쿠데타 주도세력들은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서방의 압력이 전해졌음에도 불구,이에 대응할 만한 묘책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스스로 경제적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서교수=이번 쿠데타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남에 따라 비온 뒤에 땅이 더욱 굳어지듯이 고르바초프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전망입니다.고르비는 자신의 위치가 확고해진 만큼 이제는 급진파와 보수파의 가운데에서 추진해온 개혁정책을 더욱 자신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도 기왕의 높은 국민적 지지에다 반쿠데타투쟁의 선봉에 나서 탱크 위에서 대중연설을 하는등 커다란 용기를 보여줘 고르바초프를 능가할 정도로 정치적 기반을 구축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옐친과 고르바초프가 즉시 권력투쟁을 개시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오히려 개혁추진이라는 같은배를 탄 두사람이 힘을 합치면 지지부진했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교수=고르바초프가 즉시 착수해야할문제는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이 됐던 신연방조약의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여기에는 독립을 선언한 발틱연안의 3개 공화국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가 우선적인 관심사항입니다.적정 수준의 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와해가 불가피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어려운 문제들은 산적해 있습니다.식량난등 경제적 위기를 쉽게 극복할수는 없을 것입니다.서방의 지원에 의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겠지만 말입니다.비록 거사에는 실패했지만 특권적 위치에서 혜택을 받아온 사람들의 반발을 어느 정도 상쇄시키느냐도 숙제입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군과 KGB등 쿠데타관련 세력들을 일시에 도려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집니다.주요인물들은 물론 거세하겠지요.반대세력들의 감정을 진정시키면서 그들을 자기편으로 부분흡수하는 식으로 세력을 약화시켜 나가는 방법을 택할 것입니다. 소련권력 속성상 최고권력자가 주변에 자기사람을 포진시키기 위해서는 10년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브레즈네프가 대표적인 경우죠.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그럴만한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서교수=고르바초프가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동서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기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이제 고르바초프가 시련을 극복하고 권좌에 복귀할 경우 동서 화해무드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지난해 11월 체결된 재래식무기감축협정이라든가 금년초에 본격협상에 들어가 7월말 조인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이행하는데도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이번 쿠데타에 의해 고르바초프가 한때 실각 위기에 빠졌을 때 서방진영 지도자들이 「고르바초프를 좀더 도와줬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이제는 고르바초프의 국내적 위치가 불안할 때 소극적인 자세를 견지했던 일본및 일부 서방국가들도 적극적으로 고르바초프를 도와서 대소경협을 강화하리라 예상됩니다. ▲이교수=이번 소련사태에 직면해 미국과 유럽선진국들은 생각보다 민첩하고 강도높은 조치들을 취했습니다.특히 미국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런 맥락에서 앞으로의 세계질서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주축으로해서 구축되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미소간의 우호관계도 더욱 돈독히 유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소련의 입장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혁·개방·민주화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서교수=고르바초프가 한때 권좌에서 밀려났을 때 우리 입장에서는 고르비가 건재하고 있는 동안 국교수립 등 대소접근의 기본틀이 마련된데 대해 안도감을 가졌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고르바초프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게 됨으로써 북방정책을 통해 설정해 놓은 우리 외교노선에 일단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교수=만약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동북아의 세력균형은 미묘하게 변화됐을 것입니다.우선적으로 일본이 재무장하는 데 촉진적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북한의 지도자에게는 쿠데타의 실패가 큰 경종이 됐을 것입니다.북한의 기자들이 쿠데타주역들의 비상위원회 회견장에 대거 몰려갔다는 보도등에 비추어 볼 때 대세역전에 따른 북한의 곤혹스런 입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서교수=이제 고르바초프가 더욱 힘을 갖고 재등장했으므로 북한은 좋든 싫든 과거보다 개방화에 더욱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북측이 당장 태도를 바꿔 남북고위급회담을 열자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시기를 봐가며 남북대화와 핵사찰수용문제 등에 있어 보다 유연성 있는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이용필 ▷약력◁ ▲1933년생 ▲미국 시카고대(정치학박사) ▲자유아카데미 교수부장 ▲서울대교수(현) 서병철 ▷약력◁ ▲1939년생 ▲독일 본대학교(정치학박사) ▲한독사회과학회 회장 ▲외교안보연구원 교수(현)
  • 소 쿠데타 61시간만에 왜 실패했나

    ◎“공산회귀는 불용”… 국민이 등돌렸다/명분없는 거사에 군수뇌부 적전분열/경원동결등 서방의 강경대응도 큰 몫 전세계에 충격을 던진 소련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이유로는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강렬한 저항 ▲저항선봉장으로 나선 옐친에 대한 미온적인 대응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 ▲군장악의 실패등을 들수 있으며 그외에 간접적인 원인으로는 소련에 대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압력도 들수 있다.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소련국민들의 호응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 쿠데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그것은 또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국민들의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하게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뜻이기도 하다. 3일간의 짧은 기간동안이긴 하지만 탱크로 무고한 시민을 깔아뭉개는 무자비한 무력탄압 앞에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시위금지령과 통금령을 무시하고 20일 하룻동안에만 80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한편 육탄으로 탱크를 저지한 소련국민들의 용기는 진정 놀라운 것이었다.과거 수차례에걸친 소련에서의 정변때마다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소련국민들이 이처럼 용기있게 변한 것은 바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방정책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수준을 크게 향상시킨 결과라고 할수 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난 것은 결국 쿠데타 주역들이 고르바초프의 신병은 체포할수 있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이 국민들의 가슴속에 불어넣은 자유정신마저 가둬둘수는 없었던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지난 3일간의 쿠데타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쿠데타의 주역들이 처음부터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일부터 일으키고 보자』는 형태로 상황이 벌어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이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지난 20일 체결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저지해야겠다는 초조감에서 쿠데타 성패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군장악과 국민동향,지도부내의 결속등을 사전에 치밀하게 점검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사전준비가 미비된 상태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과거처럼 무관심으로 나타나지 않고 적극적인 저항으로 나타나자 비상위는 당황할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의 절대적 동조세력으로 생각했던 공산당이 중앙위원회 성명을 통해 쿠데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은 비상위에 결정적인 정신적 타격이 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타격은 비상위내부의 적전분열로 나타났다. 쿠데타 발생 이틀이 안돼 비상위의 8인 멤버중 3명이 『건강상의 이유로』사임했다는 것이 쿠데타 지도부의 내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도부내의 분열과 함께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것도 쿠데타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다.비상위는 당초 군부내에 냉전종식에 따른 군위상 축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판단,일단 쿠데타가 일어나면 군 대다수가 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물론 군부가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자 평소 「국민의 군」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소련군은 『우리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돌릴수는 없다』는 쪽으로 급선회함으로써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됐다. 이번 쿠데타에서 서방이 보인 대응도 쿠데타실패를 간접적으로 도운 한 원인이 됐다고 할수 있다.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지자 서방측은 한결같이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요구하며 서방의 경제지원을 갈구하는 소련에의 원조를 동결시켰다.서방세계는 또 반쿠데타 저항세력의 선봉에 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보냄으로써 옐친으로 하여금 국민저항을 극대화할수 있도록 했다. 결국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조속한 개혁의 완결이란 점을 무시하고 오히려 개혁을 지연내지는 후퇴시키는 쪽으로 기치를 들고 시작됐다는 점에서 소련에서의 쿠데타는 처음부터 실패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고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 앞에선 무력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할수 있다. ◎“3일천하” 쿠데타 일지/비상위 구성→불복선언→서방 경원동결→유혈충동→비상위 분열→병력 철수→고르비 귀환 소련의 강경보수파가 21일 소련역사상 처음 「월요정변」으로 기록될군사쿠데타를 야기한지 3일만에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해체됨으로써 이들의 꿈은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모스크바정변 소식이 전해진것은 19일 상오4시.소련전역에 6개월시한의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언론과 출판물의 검열이 시작됐다.방송국들도 쿠데타군에 접수되어 방송이 통제됐다. 타스통신은 크리미아반도 휴양지에서 휴가중이던 고르바초프가 실각되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직을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이 승계하고 8인으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그러나 기세 좋게 몰아 붙이던 쿠데타세력들은 옐친의 시민 불복종운동촉구와 총파업선동으로 시작부터 예상치않던 장애물에 직면했다. 보수파들에 의해 야기된 쿠데타가 시련을 맞기 시작한것은 정변이 발생한지 8시간만인 19일 정오.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포고령을 무효라고 선언하며 반쿠데타 봉기를 부추기자 모스크바 시민들은 이미 모스크바시내에 진입했던 중무장 소련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휴가를 중단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연뒤 기자회견을 갖고 하오5시 소련의 군사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했으며 대소원조를 보류할것임을 시사했다. 이튿날 쿠데타세력들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상오6시 일류신76 수송기 60대를 동원,모스크바로의 병력을 증강했으나 이에 맞서는 소련국민들의 시위는 세를 더해갔다. 그후 러시아공내에 주둔하고 있던 무장병력들은 러시아공 의사당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으며 21일 새벽 급기야 유혈충돌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처음의 상황과는 달리 쿠데타세력이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주춤거리고 서방세계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이날 최후의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군내 강경파인 모이셰프군참모총장이 전면에 나서고 그로모프중장(전아프가니스탄 주둔군사령관)과 바렌니코프 지상군총사령관이 실세로 급부상한 것이 그것이다. 쿠데타 지도자들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듯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으며 무력충돌도 불사하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뒤 10시간만에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한듯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고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루키아노프 소연방 최고회의의장이 크림반도로 고르바초프를 만나기 위해 떠났으며 소련 국방부는 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에 배치됐던 병력들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이어 모든 포고령이 무효화되고 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 귀환길에 오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주연한 「쿠데타」드라마는 61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 「퍼스컴」 탄생 10년/연 매출 1천억불(경제화제)

    ◎1981년 개발이후의 추이/「노트북」등 초소형 PC도 속속 등장/지난해 국내생산 14억불… 절반 수출 20세기들어 인류생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이기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퍼스널컴퓨터(PC)가 탄생한지 만10년이 됐다.81년 8월12일 미국의 IBM사가 처음으로 선보인 퍼스컴은 사무실에서 타자기와 잡다한 서류뭉치들을 몰아냈고 가정에서 회사일을 보는 것은 물론 시장보기까지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기능도 점점 발달해 노트만한 크기의 PC를 서류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캐비닛만한 컴퓨터가 하던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있게 됐고 사무실 한개를 가득 채울만한 장부들을 거뜬히 외고 있기에 이르렀다. 퍼스컴을 처음 개발한 IBM자신도 예측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를 이 조그마한 컴퓨터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엄청난 성공과 함께 PC의 판매량도 급증하여 10년만에 연간 판매액이 1천억달러를 넘어 컴퓨터관련산업의 대표적 제품으로 부상했다. 그동안 컴퓨터업계를 석권해온 대형컴퓨터는 PC에 밀려 소프트웨어와 주변기기의 판매액을 모두 합쳐도 연간 5백억달러정도로 선두자리를 완전히 내주고 말았다. 앞으로 10년이내에 PC가 전가정에 보급되고 현재와 같은 추세로 발전한다면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에 더 놀라운 변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IBM이 PC를 개발한지 10년이 지난 현재 그동안 PC업계의 라이벌이었던 IBM과 애플이 극적으로 전략적 제휴를 했다.또한 후발주자들인 일본업체들이 신기술로 시장석권을 노리고 있다.PC시장의 국제경쟁이 점점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4년 IBM에 맞서 매킨토시를 개발,실리콘밸리의 신화를 창조했던 애플컴퓨터의 창업자인 스티븐 P 잡스와 PC 소프트웨어 분야를 장악한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창업자인 윌리엄 H 게이츠는 조만간 필사물(손으로 쓴 글)을 읽을 수 있고 영상을 편집,작동할 수 있는 퍼스컴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PC이용자들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PC를 매개로 의사전달을 할수있게 되고 사진·기록물·도안·필름클립(방송용 영화필름)서류등도 PC로 교환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70년대말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중소업체들의 조립생산으로 시작된 국내 컴퓨터 산업도 지난해말 현재 14억1백만달러어치의 PC를 생산해 이중 6억3천5백만달러어치를 수출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복제 생산으로 출발한 국내 PC산업은 83년 삼보·삼성전자·대우통신등이 16비트짜리 퍼스컴의 개발에 성공,84년부터 본격적인 수출에 나섰다. 이후 88년 32비트기종을 생산한데 이어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노트북PC도 생산,국내보급은 물론 수출도 활발히 하고 있다. 지난해말 현재 국내 업체별 수출비중은 삼성전자가 28.6%로 가장 크고 대우통신이 26%,현대전자가 13.8%,금성사가 9.2%,대우전자 7.2%,삼보컴퓨터가 5.1%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89년 17억5천5백만달러 어치를 생산,9억7천6백만달러어치를 수출했던 국내 PC업계는 지난해 기술개발을 못한 결과 외국의 새로운 제품들에 밀려 수출이 크게 부진해 생산도 감소하는 시련을 겪고 있다.32비트위주로 점차 용량이 커져가고 있는 세계PC시장의 변화추세에 적응하지 못한데다 노트북PC의 경우 주요 부품의 80%를 일본에서 들여다 쓰고 있는 실정이다.특히 세계 PC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일본·미국과는 엄청난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는것은 물론 주요 경쟁국인 대만에 비해서도 기술수준이 1∼2년정도 뒤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를 극복하기위해 상공부는 PC산업의 재도약을 위한 3개년 계획을 수립,핵심부품의 조기국산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 알마아타의 「한국교육원」(사설)

    소련의 카자흐공화국 수도 알마아타에 최초로 「한국교육원」이 개설된다고 한다.8월23일 개원될 이 교육원은 재소 동포들이 열망하는 민족교육의 지원기반 구축이 우선 목적이다.이때를 즈음해서 윤형섭교육부장관도 현지를 방문하여 한소교육및 학술 협력도 활발하게 하고 재소동포들의 고국에 관한 관심도 높일 것이라고 한다. 소련은,지난 7월하순에 마련된 수정조항들까지 포함시킨 연방협정의 첫조인식을 오는 20일 크렘린에서 갖게 된다.이 협정에 따라 소련은 국호에서 「사회주의」가 없어지고 『소비에트 주권 공화국연방』이 된다.15개공화국 중에서 첫번째로 조인하는 것은 러시아·카자흐·우즈베크 3공화국이다.러시아 말고는 두 공화국이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다. 그중 하나인 카자흐공화국의 수도 알마아타에 한국교육원이 개설되는 것이다.이 교육원의 개설이 매우 시의에 맞고 적절한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그 이유로는 우선 그곳에 우리의 재소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통칭 50만으로 추산되는 소련의 한민주중 40만명이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고 그 중에서도 우즈베크공화국에 20만명이,카자흐 공화국에 15만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적으로도 많지만 이곳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유난히 깊은 민족의 한을 지닌 사람들이다.1937년,스탈린의 잔혹한 강제이주명령에 의해 「유랑하는 가축」처럼 화차에 실려가 버려지다시피 했던 조선인을 그 1세로 하고 그 후에 태어난 자손들이다.그 숱한 시련과 고통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동포에게 조국인 대한민국이 이제 비로소 모국의 구실을 시작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한국교육원의 개설은 그것만으로도 뜻이 깊다. 그러나 의미가 그것만으로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연방 국호에서 「사회주의」를 떼고 새로 출발하는 소비에트연방국 중에서도 중앙아시아의 여러 공화국은 더욱 심각한 이유로 개혁의 필요성에 당면해 있다.이미 카자흐·우즈베크·타지크·키르기스·투르크멘 공화국들은 5개국 경제협력협정을 엊그제인 14일에 체결했다.새로운 공화국 건설의 의지로 경제개발을 해나가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에놓여 있는 것이다. 40만명의 한민주이 자리잡고 사는 이들 중앙아시아 5개공화국에서는 그들의 경제개발의 파트너로서 한국과의 협력을 절박하게 염원하고 있다.그러기 위해서 그곳의 소수민족인 한인들을 소중한 매개체로 생각하고 있다.대학에 한국어과를 둔 것은 물론 「한국경제과」를 독립시키고 한인계만을 입학허가한 공화국도 있다. 사회주의국가의 쇠퇴에 희생되어 현재는 궁핍하지만 자원이나 문화여건으로 보면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평가되는 이들 공화국들에서 우리동포를 척후병삼아 양국간의 협력을 진전시키는 일은 서로를 위해 얼마든지 유익한 일이다.그러기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하고 집중해야 할 일은 민주교육이다.그밖에 민족어신문 민족어방송도 확대해 가야 할 것이다.알마아타에 새로 열리는 한국교육원이 그 출발의 뜻깊은 첫걸음을 탄탄히 내딛기를 당부하고 기대한다.
  • 소 ML주의 포기와 한반도 파장/최평길 연세대교수

    ◎크렘린의 변화를 보고/북한 개혁파 입지 넓어져 체제변화 촉진(특별기고) 소련은 현재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고르바초프가 54세의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된 것 자체가 이변이었다.1985년 3월11일 서기장이 되면서 그는 『소련사회를 경제적으로 능률이 있고 사회적으로 자율성이 있는 진정한 인간적 사회주의로 탈바꿈하자』고 주장했다.그래서 90년까지만 해도 인간적 사회주의,즉 스탈린시대의 유물을 청산하고 레닌시대로 회귀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의 르네상스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정의되고 제창되었다. 90년에 들어오면서 이같은 애매한 어휘는 다당제·시장경제로의 전환·탈냉전시대에서 방위에만 전념하는 소수 정예군·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핵무기 감축·각 공화국의 자율권보장등 서방세계에서나 관행이 되는 보다 구체적 개념으로 소련 사회개혁의 표상이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91년 오늘에는 소련사회의 가장 근본적 토대였던 공산당 계급성을 포기하고 말았다. 헤겔의 변증법,상시몽의 사회주의개혁론,영국의 복지경제 이론에 힘입어 1백25년 전에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저술한다.대부분의 임금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에게 일한 만큼의 대가는 받지 못하고 항상 착취하므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은 폭력으로 응징되어야 한다는 자본론의 논리는 상당한 매력이 있었다.인류 역사를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의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는 공산당 이론은 척박한 땅 소련사회에 적응되어 74년이 지나왔다. 그러나 개인의 재산소유가 인정되지 않는 소련은 소수의 공산당 지도층과 관료가 거대한 재산을 통제하면서 공산혁명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시하는 민초에게는 생존권 마저 박탈하는 전제정치를 하였다.여기에 미국과의 대결에서 생산비의 우위개념도 없이 군수용의 중공업정책을 추진한 나머지 이제 소련국민은 생필품의 절대 부족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전체 근로자·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소련공산당은 국내외의 압력에 눌려 이제는 더이상 무산자계급을 위해 투쟁하고 그들을 대표한다는 강령을 스스로 포기하고 만것이다. 출발당시에는 개혁진보파였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어느새 집권정당의 대표로 중도파가 되었고 공산당을 탈당하여 대중정치로 위상을 확보하려는 옐친주도의 민주강령파,그리고 토지를 포함한 사유재산의 인정,주식형 기업의 인정등을 통하여 빠른 시간안에 민주적 사회주의,사회적 민주주의사회로 탈바꿈하고자 하여 야코블레프와 셰바르드나제에 의해 조직되는 공산당내의 온건개혁파가 나오고있다.이것은 바로 공산 일당의 당우위국가는 와해되고,공산당은 다당제 속의 일개 보수정당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민주국가의 다당제 정치로 변신하는 신호탄이 된다. 공산당이 무산자계급을 대표하지 않겠다는 것은 계급정당에서 대중정당,국민의 이익표출을 결집시키고 직업적 정치단체로 체질변경을 하겠다는 표시이다.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연방조약과 신헌법이 올해안에 최고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연방대통령도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될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광범위한 국민지지기반을 가진 대중정당을 조직하지 않을 수 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현재 소련 공산당에는이념적 해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물론 당의 주요간부가 속속 당을 떠나 대통령실과 정부기관으로,혹은 옐친 진영으로,각 공화국 정부로 일자리를 옮기고 있다.이같은 공산당 해체작업과 다당제의 부상,그리고 대중정당의 지지기반에 근거한 직선제대통령이 지방공화국과 연방공화국으로 확산되고 시장경제가 신속히 정착되게 하려는 일련의 노력은 소련이 서방세계에 현재 요청하고 있는 사회주의 피해 복구를 위한 마셜플랜 지원에 서방이 동정적이게 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이제 고르바초프는 사회주의 르네상스를 부르짖던 초반기의 개혁을 공산당은 무산자를 대변하는 정당임을 포기하는 공산주의 이상향으로 가는 사회주의 자체를 포기하는 2단계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일단계의 와중에서 동구권은 민주화가 되고 시장경제 원리에 따르는 사회가 되었다. 일단계에서 잘 버텨낸 중국·북한·쿠바의 집권당이 공산당 해체라는 이단계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주화 요구의 시련을 이겨내고 고립과 보수회귀를 계속 고수할 수 있는 역행적 체제능력이있을지는 의문이다.천안문사태 이후 실물정치 개혁파인 50대인 천진 시장 이서환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그리고 상해 시장 주용기를 부총리로 배출한 상해·천진에서 만났던 일부 공산당 간부들은 말하기를 『공산당은 변화되고 개혁은 직속되며 공산당이 변모되어 다당제가 되어도 겁날 것이 없다.경제·정치개혁의 업적을 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까지 말하기도 하였다. 북한에는 50년 전후에 소련·헝가리·체코 등에 유학후 경제기업소·지방행정 분야에서 민생 실물정치로부터 정치위원이 된 50∼60대의 개혁파 지도계층이 있다.총리 연형묵,강성산,당 국제부장 김용순,당 재정경제기획통 박남기 등은 남북경제교류를 주장하고 있다.한편 대외무역,경제협력,외교분야에서 국외사정에 정통한 중간관리계층은 북한 대외고립 탈피를 일상 업무처리과정에서 요구하고 있으며,최근 모스크바·부다페스트·동백림에서 유학했거나 유학중인 20대의 대학생,초급 군간부들은 그들이 체험한 동구권의 민선대통령,민선수상을 보고 북한의 차세대 지도자는 다당제에 의해 직전제로 선출되기를 주장한다. 이같은 흐름은 소련의 공산당 해체와 다당제에 의한 직선대통령 선출,여야당이 있는 의회제 정치를 가속화시킬 것이다.북한은 이같은 정치개혁 압력과 시장경제 도입,대외고립 탈피,남북경제교류의 복합적 압력에 놓이게 될 것이고 합리적 자기개혁에 바빠질 소련은 비합리적 체제보존의 들러리는 안할 것임이 확실하다.
  • 세모/79년 창업,베일속에 급성장

    ◎한강유람선 운항등 해운서 두각/16개사업부 운영… 유사장이 총괄 「오대양사건」의 배후에 주식회사 세모가 개입됐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날로 의혹이 증폭됨에 따라 이 회사에 세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세모는 그동안 독특한 경영방식 때문에 급성장한 기업의 하나임에도 「베일에 싸인 기업」으로 인식돼왔던게 사실이다. 세모는 지난 79년 3월22일 태양개발주식회사라는 상호로 출발,82년 10월 현재의 명칭으로 상호를 바꿨으나 그 모태가 된 것은 삼우트레이딩이라 할수 있다. 세모는 지난 76년2월 유병언사장(51)이 부친의 친구가 운영하던 삼우트레이딩을 인수,오늘의 모습으로 급성장시켰다. 삼우트레이딩은 종이비누 섬유 페인트 전자모니터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업계에 발판을 넓혀갔다. 삼우트레이딩은 이밖에도 지난 84년 세계에서 3번째로 고해상도 컬러TV모니터를 개발,정부로부터 훈장과 함께 대통령의 방문격려까지 받았다. 이처럼 발명·실용특허가 기반이 된 삼우트레이딩으로 사업을 확장해가던 세모는 지난 85년 9월 유사장이직접 도안·제작한 한강유람선모형이 서울시에서 채택됨에따라 86년 9월 코리아타코마등 유수업체를 물리치고 한강유람선 운항권을 따내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한강유람선사업자선정문제를 둘러싸고 「특혜시비」에 휘말려 86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동안 집중적인 세무사찰을 받아 31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했다. 이같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세모는 「오대양사건」이 발생한 87년을 전후한 86년부터 88년사이 30여억원의 자본금을 집중적으로 투자,사업규모도 식품제조업(세모스쿠알렌) 유람선제작 종합개발 컴퓨터주변기기 제약(피부미용제) 보일러제작등 16개 사업부로 급속히 성장했다. 이들 각 사업부는 독립적인 영업·생산활동을 통해 자체적으로 수입을 맞추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유사장이 사업부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 인천시 북구 십정동 558의10에 본사를 둔 세모는 인천·부천·경산·김포·칠곡등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미국 뉴욕과 독일 뒤셀도르프에 해외지사를 갖고있다. 2천6백여명의 직원을 둔 세모의 지난해 매출규모는8백30억원에 이르며 올해는 1천2백억원을 매출목표로 정해놓고 있다. 한강유람선으로 출범한 해운사업부는 지난 89년1월 부산∼여수간 쾌속정인 엔젤1·2·3호등 쾌속정 4척을 인수,불과 2년남짓만에 국내 최대의 연안여객사로 부상했다. 지난 41년 일본에서 태어난 유사장은 대구 성광고교를 졸업한뒤 네덜란드 선교사 케이스 글라스씨에게 「복음」을 깨닫고 대구공설운동장 맞은쪽의 「칠성예배당」을 중심으로 전도활동에 나섰다.겸손한 태도로 열성적인 활동을 해오던 유씨는 지난66년 대구 YMCA에 드나들면서 알게된 「구원파」지도자 권신찬목사의 큰 딸과 결혼했으며 지난 72년 권목사의 소개로 한때 극동방송국의 부국장직을 맡기도했다. 독실한 장로회 신자였던 유씨는 70년대 권목사가 벌였던 초교파운동에 동참했으나 80년대초 한국기독교침례회라는 교파로 자리잡게되자 이때부터 이 교파는 물론 다른 교회와도 발을 끊고 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동남아안보협 참가/중·소 포함 신중해야”/베이커,아세안에 촉구

    【콸라룸푸르 AFP 연합】 미국은 24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대해 동남아시아 지역안보협의체제에 소련과 중국을 포함시키는 문제를 신중하게 추진해줄 것을 촉구했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이날 콸라룸푸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세안의연례 지역안보협의회에 소련과 중국이 참여하는 가능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그같이 말했다. 베이커장관은 『아세안국가들이 누구와 협의하기를 희망하느냐는 스스로의 결정에 달려있다는 성명을 인정하고 동의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아세안은 『시련과 시험을 거친 지역안보체제을 포기하는 문제를 서서히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련과 중국은 말레이시아정부의 초청을 받아 이틀동안 열린 아세안 외무장관회의에 사상 처음으로 참가했다.
  • 정원식 총리 국정보고 요지

    ◎“지자제 정착·경제 재도약에 최대 노력” 지난 상반기동안 우리는 나라 안팎에서 밀려오는 도전과 시련의 격랑을 헤치며 당면한 국가적 과업을 하나하나 착실히 성취해 왔습니다. 6·29민주화선언의 마지막 약속인 지방자치를 실시하게 됨으로써 민주주의를 한단계 성숙시킬 수 있는 기틀을 다지게 됐습니다.두차례의 지방의회선거를 공명선거로 이끈 것은 값진 결실이 아닐 수 없으며 선거사에 빛나는 이정표로 기록될 것입니다. 지난 4월말부터 계속된 소요로 나라의 앞날마저 걱정되는 어렵고 안타까운 상황에까지 놓였으나 국민의 결집된 역량과 신념에 찬 행동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과 지방의회선거 결과를 통해 말없는 대다수 국민은 폭력과 혼란을 거부하고 사회의 안정을 희구하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게 됐습니다.정부는 국민여망이 실현되고 희망의 항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국민과 함께 하는 정부」를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지금 7천만 겨레의 한결같은 염원인 통일을 위한 결정적 전기가 언제라도 다가올 수 있는 상황을맞고 있으며 금세기 안에 통일의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각은 앞으로 이 고무적인 상황을 소중히 가꾸어 첫째,30년만에 부활된 지자제를 정착시켜 민주화를 한층 더 꽃피우고 둘째,성숙된 통일여건을 최대로 활용해 남북관계에 새지평을 열고 평화통일을 앞당기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며 셋째,지속적인 물가안정과 성장을 통한 경제의 재도약및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넷째,도덕성회복을 위한 인간교육과 문화창달을 통해 실추된 윤리의식을 바로 세우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이룩해 나가겠습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과 기능이 강화되도록 중앙부처가 갖고 있는 권한을 지방에 대폭 이양하고 지방행정능력을 배양하고 지방재정자립도를 높여 지역발전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 정부는 올가을 남북한유엔동시가입실현을 계기로 북한이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도록 유도,북한사회개방을 추진해 나가면서 실질적인 남북관계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해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고위급회담 등 모든 남북대화에서 상호 합의가 용이하고 실행이 가능한 분야부터 우선 타결해 나가는 전향적이고 신축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며 7·7선언에 입각,민간차원의 인적·물적교류도 적극 활성화시켜 나가겠습니다. 특히 인적교류에 있어서는 지난 6일 대통령이 내각에 지시한데 따라 8·15광복절 경축행사,국토종단순례 및 통일학술토론회의 남북공동개최 등 남북인적교류의 확대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빠른 시일내에 마련,북한에 제의할 방침입니다. 한미양국 정상은 특히 한반도 통일과정에서는 물론 통일후에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하는 한편 안보협력관계 강화,통상관계증진 등 미래지향적인 협력도 가일층 공고히 하기로 했습니다.정부는 전통우방인 미국·일본·EC 등과의 우호협력을 강화하고 소련·중국과도 실질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최근 우리경제는 국제유가안정과 세계교역환경 개선 등에 힘입어 안정의 실마리를 찾고 있습니다.금년에도 한자리 수 물가를 유지한다는 목표아래 통화를 17∼19% 범위에서 공급하면서 투자수요를 적정수준으로 관리하고 재정사업도 완급을 가려 투자시기를 조정하는 등 총수요를 철저히 관리해나갈 것입니다. 또 부동산투기가 근절되도록 세제 등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부실공사 아파트는 신속히 재건축토록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공사감리제도를 한층 강화해 나갈 방침입니다. 특히 경쟁력 있는 농업육성을 위한 장기적 농어촌 발전대책을 수립하고 도덕성회복을 위한 참된 인간교육이 되도록 장기적 안목에서 교육개혁을 추진하겠습니다.
  • 영 더타임스,「노 대통령 3년」 특집

    ◎“북한 유엔가입 결정은 북방정책의 결실/중도·점진주의 노선으로 극단주의 포용”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28일 「한국 특집」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 정부의 정치·외교·경제 성과 및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더 타임스지는 이날 장문의 특집기사를 통해 우선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중도정책을 추진해 왔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의 변혁기를 이끌어온 노 대통령의 3년반 재임기간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군사독재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심각한 사태를 피해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중함」을 슬로건으로 내건 노 대통령은 좌우로 치우치는 수많은 극단주의자들을 적대시하지 않고 중도의 길을 택해 왔으며 이제 그의 점진주의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시작한 것 같다고 논평했다. 이 신문은 「최대의 시련은 국내정치였다」고 전제한 가운데 최근 과격학생들의 자살소동은 이들 학생들과 일반대중을 격리시키고 또 중산층으로 자부하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법과 질서를 준수,안정을 택하고 있으나 3당 통합 이후 민자당의 인기가 20% 이하로 하락하고 60% 이상이정치무관심을 표명하는 등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반면 외교면에서 북방정책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고 더 타임스는 평가하면서 북한의 유엔동시가입 결정을 그 최대 성공사례로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통일의 날까지 국민의 일부 성급한 기대를 억제하면서 정치·사회변화를 위한 투쟁에서 인내로 임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방향없는 지도자」라고 비판하고 있는 이 「점진주의자」는 색깔없는 접근으로 한국에 가장 큰 선물을 안겨준 인물로 기록될지 모른다고 더 타임스는 논평했다.
  • 외언내언

    연방군의 진격으로 수도사수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유고의 슬로베니아공화국 수도 루블랴나가 걱정스럽다. 드리나 강을 끼고 있는 인구 35만의 이 아름다운 도시가 내전에 휘말려 황폐해진다면 어쩌나 싶어서 가슴이 아파온다. 온순하디 온순하면서도 「유럽인의 교양」을 체질깊이 지닌 시민이 있고 문화적 향취가 높은 중세의 전통깊은 이 도시는 그 자체가 문화재감이다. ◆이 도시에서 순둥이처럼 부글부글하게 생긴 대학생 애리시라는 청년을 만났었다. 아직도 그곳이 『갈 수 없는 나라』였던 1986년 1월의 일이었다. 어렵게 찾아간 한국인을 육친처럼 도와주던 그 청년은 어느 날 아침 뛸듯 기뻐하며 달려 와서 알려줬었다. 『…드디어 마유미 여인이 입을 열었다』는 소식이었다. 마유미 행세를 하다가 잡힌 김현희가 말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여행을 떠나온 우리에게는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이 소식을 그토록 기뻐하는 그의 태도였다. 대체 그 소식을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았는가 묻는 말에 그는 대답했었다. 『…그야 물론,신문에 보도됐기 때문에 안다. 이런 뉴스를 이렇게 제대로 보도하는 나라는 이 동구에서는 우리 유고슬라비아밖에 없다』 그들의 「언론자유」에 대해 자부심에 차서 말하던 애리시 청년의 모습이 「내전」의 비운 속에서 얼마나 불행해질지 마음이 아프다. ◆주민 95% 이상이 카토릭 신자인 이 공화국 수도에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성당들이 있던지…. 비록 연로한 사제밖에 없고,합창단도 없었지만 성탄장식이 고전의 위엄을 그대로 지닌 채 장식된 성당에는 새벽미사를 위해 찾아오는 시민들의 발길이 새벽 안개 속을 헤치며 이어졌다. 그들의 그 높은 자유사랑의 자부심이 마침내 「내전」의 시련에까지 이르는 것이리라. 사랑하는 루블랴나여 이 위기를 부디 슬기롭게 극복하라.
  • 대학가에 스며든 좌경세력(사설)

    대학생들이 젊은이다운 순수한 열정으로 학원민주화를 부르짖고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투쟁에 나선다면 그들을 나무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생의 본분이 학업에 있는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지만 학원이나 사회의 비리를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평가할 수는 있다. 4·19의거 때 학생들이 보여준 평화적인 시위는 국민의 폭넓은 공감을 얻었고 그 후의 학생운동도 그 나름의 명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명분과 목적이 옳다고 해도 이를 위한 의사표시나 행동에서 폭력이 수반된다면 비난과 질책을 면할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의 대학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시위는 명분이 떳떳치 못할 뿐 아니라 시위 때마다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때문에 시민생활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으며 이를 질책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늘의 학생시위가 어느 수준에 있는가는 외대생들의 총리 폭행사건에서 여지없이 드러났고 이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시위현장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학생들을 꾸짖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그런데도 운동권학생들은 일말의 반성도 없이 적반하장의 논리로 정권타도만 외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진실로 우려하고 있는 것은 대학가에 스며든 좌경세력의 준동이다. 지금 각 대학의 총학생회는 전대협이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속해 있는 학생들의 수는 전체학생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이 선량한 학생들을 길거리로 몰아내 화염병을 던지게 하고 정권타도와 민중정부 수립을 외치도록 조종하고 있다. 정부는 그 동안 대학가에서 불법·폭력시위를 주도해온 운동권학생단체의 배후에 체제전복을 노리는 불순세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이를 척결하기 위한 전면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정부가 지목하고 있는 전대협내의 불순세력은 이른바 「정책위원회」이다. 이 조직은 북한의 대남혁명 강령에 따라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고 혁명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암약하고 있는 「자민통」과 연계되어 있으며 투쟁지침은 북한의 「구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시달되고 있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정책위」는 또 전대협의 모든 활동을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정부와 가진 자에 대한 불만이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갈등과 시련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혁명정부를 수립하려는 좌경세력의 준동은 철저히 차단되어야 한다. 북한은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엔가입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대남전략에서는 추호의 변화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며 북한의 언론매체에 나타나고 있는 최근의 논조에서도 변화의 징후는 찾아볼 수가 없다. 북한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북한의 대남전략을 추종하고 있는 좌경세력이 대학가에서 준동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구권 사회주의국가들도 이미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고 이를 확산시키려는 시대착오적인 불순세력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대학의 좌경세력은 뿌리뽑아야 한다.
  • 교직원 집단구타에 교수 삭발까지(학원폭력:상)

    ◎학내문제에 불만,보직교수 칼로 위협/폭언은 예사… 「총장사진밟기」 운동도 3일 저녁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발생한 정원식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운동권 학생들의 집단폭행사건은 국민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정 총리서리가 총리로서의 공무를 마친 뒤 교수자격으로 고별출강을 나갔다가 당한 어이없는 일이어서 사태수습에 나선 정부의 각 부처도 망연자실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처럼 비통한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우리의 학원은 과연 병들고 말았는가. 그 동안 계속된 학원폭력의 실상과 배경,문제점,대책 등을 점검해본다. 우리 사회에서의 학원폭력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올 들어서는 이번 사건 말고도 총장사진밟기운동,교수폭행사건 등 신성해야 할 대학구내에서 반인륜적,반도덕적 행위가 서슴없이 자행돼 왔다. 이와 함께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총학장실 점거는 이제 다반사가 되었으며 또 이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게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스승에 대한 폭행은 단순한 교권침해의 차원을 넘어 군사부일체의 정신을 중시해온 전통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지난 3월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교수와 학생이 차량통행 문제로 시비를 벌인 끝에 학생이 교수를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 사건으로 김정탁 교수(36)는 김두선군(23·체육교육학과 4년) 등 3명을 고소했으며 검찰은 들끓는 여론을 감안,김 교수의 고소취하에도 불구하고 3명 가운데 김군을 일단 구속했다가 얼마 뒤 기소유예로 석방했었다. 이때의 국민 여론 또한 일반적으로 스승에게 잘못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제자가 불손한 언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또 교수와 멱살을 맞잡고 폭언·폭행까지 서슴지 않는 행위는 어떤 전제와 명분을 내세워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지난 4월에는 광주 호남대에서 학생과 교직원 사이에 집단 난투극이 벌어져 2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학생들은 교직원들이 추모비 건립공사를 막으려 한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쇠파이프와 각목·화염병 등으로 무장을 하고 학교 숲속 등지에 숨어 있다 교직원들이 나타나자 쇠파이프 등을 마구 휘둘러댔다. 학생들은 이와 함께 본관 1층에 있는 재단이사장실과 학생회장실 등 10여 곳의 보직교수실에 들어가 집기류와 유리창 등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또 같은달 대구 계명대에서도 학생들에 의한 교수폭행사건이 벌어져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등 교권이 유린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건국대에서는 신규 임용교수의 퇴진 등을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던 일부 학생이 학교측과 학생대표 사이에 합의된 내용에 불만을 품고 학과 조교를 구타하는가 하면 학생처장을 칼로 위협하기까지 했다. 또 부산대에서 한동안 계속됐던 「총장사진 밟기운동」은 그 뒤 동문들의 권유와 학생회측의 결정에 따라 철회되기는 했지만 폭력행위나 진배없는 반인륜적 행위로 뜨거운 지탄을 받았었다. 지난해 대전 목원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대학장을 볼모로 붙잡아두고 협상을 벌이다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그 교수를 삭발까지 시킨 적도 있었다. 사태가 이처럼 계속 악화되고 대학에 대한 국민들의 지탄의 소리가 높아지자 전국 1백35개 대학 총학장의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박영식 연세대 총장)는 지난 4월16일 「전국대학총학장 간담회」를 갖고 교권침해방지대책을 숙의했다. 총학장들은 간담회가 끝난 뒤 발표문을 통해 『교수폭행이나 총장모욕 등 일련의 사태들이 최고의 지성사회이며 가르침과 배움의 장인 대학에서 발생한 것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집단폭력』이라고 규정하고 『대학의 교권확립 차원에서 엄중한 조치를 강구함과 동시에 대학인 모두가 바람직한 사제관계를 정립하는 데 가일층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학원폭력이 계속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 총리서리에 대한 이번 집단폭행사건은 수사결과 명명백백히 드러나겠지만 학생들이 계획적으로 정 총리를 「목표」로 삼고 폭행을 자행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정 총리,「스승의 착잡한 심경」 토로

    ◎“스스로 내 종아리 때리고 싶은 심정”/“진실 받아들여주지 않는 것이 야속/공직 물러나면 교단에 다시 서겠다” 『책임이 있는 우리들이 잘못 가르쳐 그런 일이 생겼다는 심정에서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 채찍을 들어 내 종아리를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정원식 국무총리서리는 4일 상오 기자간담회를 자청,외국어대생들에게 당한 집단폭행의 경위와 「스승」으로서 느끼는 착잡한 심경을 15분여에 걸쳐 털어놓았다. 정 총리서리는 이날 평소와 같이 상오 8시40분에 출근해 국무위원과 총리실 간부들의 위로인사를 받은 뒤 침통한 표정으로 소접견실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정 총리서리는 『노교수로서의 순수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 것이 야속하고 서글펐다』고 솔직히 토로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채찍을 들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을 몇 차례 되뇌었다. 그는 그러나 『어떤 시련을 겪는다 하더라도 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고 공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강단에 서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계속 강단에 서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믿고 가르치는 제자와 따르는 제자,나를 존경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학생들에 의해 운동장으로 끌려나왔을 때도 때리는 학생보다는 말리려는 학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외국어대 출강경위에 대해서는 『지난 3월4일부터 시간강사 자격으로 교육대학원 강의를 맡았으며 아프리카순방을 떠나기 전인 지난 5월에 종강날짜를 잡아놓았었다』면서 『비록 정부에 들어왔으나 학생들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서 출강을 했던 것』이라고 설명. 『계단으로 끌려내려 올 때는 자칫 쓰러지기라도 하면 더 큰 불상사가 날 것이라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연하게 대처하려고 애를 썼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총리서리는 간담회 후 사과차 찾아온 이강혁 외국어대 총장 등 대표 3인을 면담한 후 심신의 충격을 우려한 비서진들의 권유로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고 삼청동 공관으로 직행,휴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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