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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한관계 전망(한·중수교/동북아 새 질서:3)

    ◎북 개방 앞당겨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대남경협 등 추구,개혁파 입지강화 예상/상호핵사찰문제서 윤통성 발휘 가능성 한중수교는 향후 개방이냐,아니면 체제고수냐의 선택을 강요할 것으로 보여 북한에게는 정권수립 이후 최대의 시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련및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단 몰락 이후 중국은 북한의 유일한 동반자였다.따라서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었던 「대형」 중국의 대한수교가 북한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리란 것을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북한이 받은 충격파의 지속기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오히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번의 한중수교는 북한으로 하여금 대외개방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해석이다. 북한은 기왕에도 원유와 식량난으로 대변되는 경제난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대미·일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온 터다.따라서 이런 시점에 이뤄진 한중수교는 북한에게 탈국제적 고립을 위해 적극적인 대외개방조치를 촉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중수교에 나선 중국도 이번 수교와 관련,북한에 대해 사전양해를 구하는 한편 미국과 일본에 대해 대북교차승인을 촉구하고 이의 성사를 위한 측면지원등 지원책을 북한에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권의 불안정을 초래할 북한의 고립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중국은 북한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과의 수교사실을 지난 4월 김일성주석의 80회생일 행사때 방북했던 양상곤 국가주석 등을 통해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 역시 중국이 의리를 지킬만큼 지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국을 비난하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며 구소련의 경우와는 달리 북한과 중국은 향후에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와함께 동북아지역 특히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놓고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 역시 한·중수교로 남한에 대한 부담을 벗고 대북수교를 촉진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환경의 변화와 함께 북한정권 내부에서도 남한과의 경협및 대서방 관계정상화를 이룩,실리를 추구하려는 개혁·개방세력의 입지가 강화돼 개방노선으로 방향타가 잡힐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이념이나 정책면에서 중국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한·중수교가 중국에서 개혁파의 정책적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같은 맥락에서 북한내 개혁파의 입지 또한 강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중수교 시점에 맞춰 북한은 한·미·일이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남북상호핵사찰이나 이산가족문제에서도 융통성을 발휘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즉 북한으로선 핵사찰수용 이외의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이들과의 관계개선이 불가능한데다 계속 버틸 경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과 경제난의 심화가 불을 보듯 뻔해 결국은 문제 해결에 나설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상호사찰을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핵사찰을 수용하더라도 한미 양국을 비롯한 서방측의 대북요구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남북한 상호 핵사찰요구를 그들의 「무장해제」로 해석,자칫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IAEA의 핵사찰이 끝날 때까지,또 남한과 미국의 대북 핵정책의 강도가 어느 정도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되는 양국의 대통령선거 이후까지는 태도변경을 유예할 것이라는 풀이다. 따라서 남북관계가 핵에 걸려 답보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이상 단기적으로는 관계의 급진전등 가시적인 열매가 맺힐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또 한·중수교=북한의 대외개방이라는 등식의 예단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은 남북한 교차승인 즉 분단의 고착화라고 해석,「하나의 조선」논리를 계속 주장해온만큼 이를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북한이 정권 창출전부터 모든 정책수립에서 중국을 모델로 삼았다는 점을 감안할때 그들 역시 한·중수교가 창출할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에 편입되지 않을 수가 없으리란 전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환경변화는 북한 내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남북관계에도 필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 참다운 광복을 성취하는 길(사설)

    우리에게 있어 8·15해방은 왜 다시찾은 빛이며 되찾은 정신이었는가.마흔일곱돌 광복절을 맞아 다시 생각해보는 일은 참으로 필요하다.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요컨대 8·15해방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 진지하게 묻고 대답해보자는 것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다가 당연한 대답일 터이지만 그것이 틀린답은 아니더라도 오늘에 우리가 구하고자하는 정답은 아니다.일본이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남북한이 통일의 예비작업을 다지고 있으며 세계가 탈냉전·긴장완화·새질서를 구가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8·15의 의미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만일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그러면 그 정답은 무엇이며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결론컨대 광복은 질곡과 인고 굴종과 타율로부터의 탈출 다시말해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의 계기였을 뿐 진정한 의미의 해방은 아니었다.그리하여 이제 우리가 할일은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다시 서는 일이다.강조컨대 그것은 지난47년의 세월동안 되풀이됐던 시련과 좌절 분열과 대결,도전과 실패의 악순환을마감하고 60·70년대 이땅에 충만했던 자신감과 성취욕을 되찾아 다시 한번 굳게서는 「자기확신」과 「자기확립」을 말한다. 노태우대통령이 광복절경축사에서 지적한바 긍지와 자신감을 갖지못한 민족이 위대한 시대를 열수는 없다.「새로운 힘과 용기」로 다시 달려갈때 광복47년,건국44주년의 의미는 더욱 뚜렷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러 이제 8·15는 우리에게 다음의 몇가지 의미를 새롭게 한다.첫째 참된 광복의 정신과 의의를 되찾는 일이요,둘째 한때 전력으로 질주하여 많은 것을 성취했던 자신감을 되찾는 일이며 셋째 민족통일의 당위와 의미를 되찾는 일이다.이것들이 없고는 8·15는 언제까지나 참다운 의미의 광복이 아니며 올바른 의미의 해방일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세계평화유지군의 명목으로 그들 군대아닌 군대의 해외파병이 이뤄지고 있고 공공연하게도 그들 왕과 각료들의 야스쿠니(정국)신사 참배가 이행되고 있다.그런가운데 일본군의 정신대 강제집행을 증언하고 참회하는 수많은 「요시다」들이 방한하고 있다.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일제수뇌들이 사전에 계획했다는 극비문서자료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한일간에 가로놓인 이 방대한 과거의 퇴적물들이 올바로 분석되고 극복되기전에는 광복의 참된 의미는 유보될 수 밖에 없다.그것이 바로 극일이다. 다시 한번 자신감을 되찾아 민족적 성취욕을 충족시키는 일 또한 중요하다.한동안 우리를 신바람나게 했던 「바르셀로나」의 영웅들이 개선했고 젊은 과학도들이 맨손으로 일군 「우리별1호」가 지금 지구궤도를 돌고있다.우리는 말하기좋아하는 외국인들의 비아냥대로 용이 되다만 지렁이가 절대로 아닌 것이다.다만 조그마한 성취로해서 빚어졌던 자만과 허세와 착각과 조급성만을 벗어버리면 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올림픽과 「우리별1호」를 통해서 믿게됐다. 그러고서 이제 통일이라는 민족 공동의 광장을 일구자는 것이다.그것은 남북한의 유엔시대,남북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시대가 부여하는 엄숙한 과제이다.47년간 미완의 광복을 완성의 광복으로 성취하기 위해서는 민족의 화해와 협력은 필수적이다.그것이 마흔일곱돌 맞는 광복절의 참다운 의미를 살리는 세번째 항목이다.
  • 반문명적 인간사냥(사설)

    『그것은 반문명적 인간 사냥이었다』이른바 정신대문제에 관한 최초의 우리정부보고서가 그렇게 쓰고 있다.한 나라의 정부가 국민 앞에 이런 보고서를 내기 위해서는 그나름의 의지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그것을 들추는 일조차 악몽이었던 시기를 우리는 그동안 지내왔다. 이 보고서가 이제까지 알려진 자료보다 획기적이거나 비장의 것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일본의 일부 언론이 비아냥거리듯 그것은 일본인들이 발굴한 자료를 『베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어차피 이에 관한 자료는 거의 모두 일본이 지니고 있고 끊임없이 감추려 해온 것도 일본이다.그런 가운데 신빙할만한 자료가 그들손에 있으면 그 자료를 인용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보고서를 내야하는 일이 왜 불가피했는가에 대해서 한일 두 당사국은 생각해야 한다.가해자측이 계속 책임회피를 하면 피해자측은 그것을 계속 입증해야 한다.한국정부의 「공식보고서」도 그런 결과의 하나다.처음에 그들은,「종군 위안부」문제가 민간업자의 한 짓이지,일군이 개입한 사실은없었다고 했었다.발부리에 차일만큼 많은 「증거」들이 그것을 무너뜨리자 그들은 다시 『모집 및 운영과정에서 일군이 개재된 것은 인정되나,동원의 강제성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그들이 못발견한 입증자료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데,그걸 부정하는 「관방장관」이 있는 나라와 이야기를 하려면 이쪽도 정부가 나서서 진상을 밝힐 수밖에 없다.그결과 「일본군의 각본에 의해 총독부가 집행한 부녀자 사냥」이었다는 보고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우리에게 아직도 살아 있는 악몽이고 낫지 않는 상처다.되도록이면 빨리 끝내고 더 거론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의 깊은 상처이다.우리로 하여금 그걸 계속 되뇌게 하는 것은 이웃의 도리가 아니다.가해당사국이 꼭 한발짝씩 흥정하듯 하는 태도 때문에 그들의 『반문명적인 인간사냥적』인 행적은 또다시 세계를 향한 확성기에 실리게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확고한 주도국이 되었고,유엔에서 안보이의 상임이사국이 되어 정치적으로도 세계의 지도국이 되고 세계평화유지활동으로 화려한 역할도 하고싶은 일본과 일본군에게는 『반문명적인 인신매매의 혐의』는 불명예스러운 상처다.한국이 아직도 전후의 시련속에 있는 가난하고 절박한 나라이고,일본이 미처 「대국」의 가능성을 못보이고 있을 때,또한 피차의 상처가,아직은 너무 생생하여 서로가 「처리」해버리고 끝내기에는 너무도 큰 상처일때 처리한 일은 다시 도진다.도질때마다 아무는 속도는 지연된다.한 뿌리에서 돋은 「죄의식」과「피해의식」이 서로를 황폐하게 상처입히며 도지고 또 도지는 악순환에서 두나라는 이제 벗어나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가 앞서야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아량은 큰나라다운 금도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대로 짓밟힌 민족 특유의 피해증후군을 스스로 치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치유할 기회를 미뤄가는 일도 어리석지만 그것이 자학의 빌미로 오래 남게 하는 일은 더욱 나쁘다.그러기 위해서는 당당하되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할것이다.
  • 외로운 노인 80여명에 점심도시락 대접 7년(이사람)

    ◎독립문공원서 남다른 경노 김종은씨/“셋방살아도 나누는 기쁨 더 크죠”/양복 원단 행상… 수입 60% 떼어 선행/고아원서 불우한 성장… 노모 굶주렸던 사연듣고 결심/보증 잘못으로 전재산 날리고도 돕기 계속해와 넉넉하게 가진 것도 없고 벌이도 시원찮은 한 소상인이 7년째 하루도 거르지않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정성을 다해 점심을 대접하고 있다. 양복원단을 마이크로버스에 싣고 다니며 기성복제조업체에 납품해 버는 수입으로 그날 그날 살아가는 김종은씨(44·서울 중구 순화동1의97). 그는 고달픈 떠돌이 장사를 하면서도 매일 낮12시면 어김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서울 독립문공원을 찾아 이곳에 나와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80여명에게 김밥이며 빵등을 담은 도시락을 대접한다. 행여 도시락사정이 여의치않아 음식을 미처 장만하지 못하는 날일지라도 어김없이 나타나 7백원씩의 음식값을 노인들의 손에 쥐어주며 마치 큰 죄라도 지은듯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그날그날 형편에따라 수입이 다르지만 김씨의 한달평균 벌이는 2백50만원 정도. 이가운데 하루 5만∼6만원씩의 도시락값 1백50만∼1백80만원을 빼면 80만∼90만원정도가 8순노모와 부인(43),고등학교에 다니는 두아들등 다섯식구의 생활비가 된다. 그나마 두칸짜리 셋방의 방세 20만원을 제하고 나면 김씨의 생활비는 5인가족 도시근로자의 평균가계지출비 1백만원수준에도 훨씬 못미치는 형편이다. 김씨가 이처럼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남달리 노인공양에 온힘을 기울이는 것은 어린시절의 불우했던 경험때문. 그는 충남부여에서 태어나 네살때 부모의 가정불화로 고아원에 보내졌다.그리고는 국민학교 6학년1학기만 마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수색근처의 농가굴뚝을 껴안고 잠을 자기도 하고 개천옆의 공중변소 한켠에 판자를 깔고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풍선장사·신문팔이등을 하며 겨우겨우 끼니를 이었다.그러다 61년 남대문시장의 한 봉제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우기 시작했고 16살이 되던 67년부터는 재단사가 됐다. 마침내 79년에는 18년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미싱 10대를 받아 독립했다.어엿한 「사장님」이 된 것이다.그리고 그의 이름은 자수성가의 대표적인물로 남대문시장 일대에 짜하게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경사가 겹쳐 어머니도 찾게 됐다. 성공한 아들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칠순의 백발노모를 반갑게 맞은 김씨는 어머니 또한 수도없이 배를 굶주리며 서러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며칠이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김씨는 이때부터 「기본생활비」만 떼고는 모든 수입을 털어 양로원과 고아원등을 찾아 김씨 모자처럼 서러운 사람들에게 옷과 음식을 선물하고 오는게 습관화됐다. 지난 85년말부터는 날마다 집에서 가까운 서소문공원을 찾아 외로운 노인들의 찬손을 어루만지며 김밥이나 떡 빵등을 대접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서소문공원의 지하주차장 건설공사로 이 노인들이 독립문공원으로 옮겨가자 함께 따라가게 됐다. 그러나 시련은 또 닥쳤다.지난해말 공장직원이 부탁한 한문투성이의 은행융자보증서에 흔쾌히 도장을 찍어줬다가 5천만원을 날린 것이다. 그는 이때 1천만원짜리 전세방마저 비워야 하는 빈털터이 신세가 됐지만 그래도 노인을 돌보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요즈음엔 고아원시절 이웃 불량배에게 돌로 얻어맞은 왼쪽다리가 부쩍 쑤셔 절뚝거리기까지 하는 김씨는 『부모같은 노인들에게 좀더 나은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데 수입이 크게 늘지않아 늘 안타깝다』고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다. 김씨에게 한달째 점심신세를 지고 있다는 진모씨(66·서대문구 천연동)는 『친부모도 나몰라라 하는 요즘 세상에 콘크리트숲사이에 버려진 늙은이들을 이처럼 보살펴주는 김씨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고맙다』고 대견해 했다.
  • 부천시는 참 잘하고 있다(사설)

    부천시가 이뤄낸 성과에 박수를 보낸다.기어코 담배 자판기를 철거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해놓은 것이다.청소년에게 담배피기를 부추기는 주범의 하나인 담배 자판기가 적어도 부천시에서는 제한받게 되었다는 사실이 대견하다. 우리가 부천시에 대해 관심과 성원을 보내는 것은 이런 일련의 결정들이 매우 합이적이며 세련된 방법의 과정을 거쳤다는 데도 있다.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형성된 여론이 지방의회와 업자·시민대표들의 합의과정을 거쳐 정책에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특히 담배자판기의 철거를 결의하기 위한 모임에서는 직접 이해당사자이기도 한 담배 소매상까지도 긍정적으로 승복하는 합의과정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님비현상의 심화로 집단이기주의가 창궐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태를 생각하면 부천의 이같은 성취는 시민의 성숙한 승리라고 할수 있다. 작은 지방도시가 그 나름으로 개성과 전통을 가꿔가며 도시의 면모를 이룩해가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특히 우리나라처럼 국민의 모든 삶이 서울중심이고,서울과 얼마나 떨어져있느냐에 따라 생활과 문화수준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인 나라에서는 작은 지방도시가 스스로 따로 서서 개성있고 살기좋은 고장으로 성장해간다는 것은 너무도 바라는 일이다.그런 하나의 가능성을 우리는 부천에서 본다. 큰 도시의 언저리에 위치한 신생도시들이 대도시의 구정물 처리장처럼 되어가는 현상에 우리는 유감이 많다.어제까지 순박하고 아름다운 전원이던 고장이 시로 승격하고 난 뒤에는 인접 도시의 환락과 공해만을 물려받듯이 타락하고 황폐한 지역으로 변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온다.그런 현상이 아주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것을 부천은입증하고있는셈이다. 부천의 그같은 성장이 시민의 능력에 의해서 성취되었음을 우리는 더욱 소중히 생각한다.부천은 쓰레기관리에 있어서도 전국의 모범도시다.분리수거가 제대로 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도시인 것이다.현대의 도시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자면 쓰레기 문제같은 것에서 자율적인 관리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부천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이 도시가 시립 관현악단을 가지고 있고 『복사꽃 축제』라는 이름의 축제행사를 만들어 해마다 열고 있다는 사실이다.도시가 기품있게 발전하려면 개성과 품위를 지닐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지녀야 한다.문화에 의해 순화된 도시의 정서를 시민의 심성에 심어야만 시민의식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특성도 정착한다.쓰레기의 분리수거가 부천에서 성공하기까지는 담당 공무원의 놀라운 헌신과 노력이 함께했다는 사실도 알려지고 있다.부천의 오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각성한 시민의 의식도 중요했지만 그런 시민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공무원의 보이지 않는 노력도 반드시 있었으리라고 우리는 믿는다.이같은 시민과 공무원의 일치된 노력을 결실시키기 위해 지방의회가 적절한 조례의 제정을 결의한 일도 좋은 예가 될 것이다.인구 70만인 부천은 서울과 인천 사이에 위치한 도시다.도시인구의 이동이 심하고 공단과 신도시 건설로 황폐요인을 많이 지닌 도시다.계속 좋은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과 도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신선한 시민정신의 유지로 이제까지의 성과를 잘 지키도록 당부한다.
  • 인 최대 금융스캔들… 정·재계 “휘청”

    ◎증권브로커­은행원 공모사기/주식 위장매매로 1조원 챙겨/상업장관 인책사임… 야선 내각불신임 공세 개방경제의 첫발을 내딛고 있는 인도에서 최근 독립이래 최대의 금융스캔들이 발생,정·재계 모두가 휘청거리고 있다. 모두 3백54억루피(한화 약1조원)에 달하는 이번 사기사건은 인도의 금융계를 뿌리째 흔들어 놓은것은 물론 모처럼 붐이 일기 시작하던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또 수천명의 주식투자가들을 「닭 쫓던 개」 꼴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인도 굴지의 국립주택은행(NHB)의 마노하르 페르바니 행장과 UCO은행의 마르가반투 행장등이 이 사건과 관련,사임했으며 스테이트 뱅크 오브 인디아(SBI)와 차터드뱅크,시티뱅크,그린들레이뱅크,뱅크 오브 아메리카등 외국은행의 많은 간부들이 교체됐다. 이 사건의 파장은 또 정치권에도 미쳐 지난해 6월 출범이래 비교적 무난하게 개방정책을 펴온 나라시마 라오 정권에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개방화정책의 중심인물의 하나이던 치단바람 무역·상업장관이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7월초 사임했음에도 야당측은 라오총리의 오른팔인 만모한 싱 경제장관등 2∼3명의 각료에 대한 추가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은행간부 대폭 경질 또 지난 15·16일 양일간 개최된 임시국회에서는 부결되긴 했으나 내각불신임안이 표결에 부쳐지기까지 하는등 야당의 거센 공세에 휘말리고 있다. ○18개월간 사기행각 그러나 이 사건이 더욱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 이유는 이 엄청난 사기사건의 주인공이 하르샤드 메타라는 37세의 젊은 증권브로커라는 사실에 있다.그가 본격적으로 사기행각을 편것은 지난해 2월부터 이 사건의 꼬리가 드러나기 시작한 올 4월까지 18개월 동안이다. 이 기간동안 그는 혼자 거래한 금액만 9백억루피(약2조4천억원)로 지난 2월 개인소득세만 2억6천만루피(약70억원)를 내 1년전까지만해도 재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가 일약 국내 최고액의 개인세 납부자로 부상했다.그는 봄베이 최고의 주택가인 월리해변에 9홀의 골프연습장까지 갖춘 대저택을 마련하고 재계의 총아로 군림했다. 미니극장과 당구장 연회장등이 완벽하게 갖춰진 그의 저택에서는 항상 초호화판의 파티가 벌어졌으며 봄베이 사교계에서는 그의 파티에 초대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였다.또한 그의 나들이에는 항상 최신형의 외제승용차들이 앞뒤에서 호위를 했고 어디를 가나 그의 전기출판을 계획하고 있는 홍보팀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려댔다.그래서 그는 재계의 「아미타브 바찬」(인도 최고의 영화배우로 현직 국회의원)으로 불렸다. 평범한 증권회사 직원이던 그가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벌수 있었는가의 수수께끼는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지금까지 밝혀진바에 따르면 머리가 비상한 그가 경제자유화에 따라 은행들이 정부보증의 채권이나 주식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고 봄베이 증권가에 「그로모어 리서치」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은행들을 상대로 통큰 사기행각을 벌인것. 즉 정부의 시장개방정책으로 주가가 연일 치솟고 있는것을 악용해 국립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주식이나 채권등을 허위로 빼돌려 증시에서 팔고사는 것을 조작,그 차액을 챙기는 수법을 써왔다.그러나 이같이 엄청난 사기극의 수사과정에서 현재까지 체포된 사람은 가공의 계좌를 만들고 가공의 입출금등에 협력해준 국립은행 간부등 15명에 불과할뿐 더이상의 배후는 밝혀지지 않고 있어 국민들의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전히 의혹 안풀려 지난 4월에 인지된 사건이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지고 있지 않는 것은 이 사건의 수사를 맡고 있는 인도정보국(CBI)에 경제범죄를 다룰만한 수사관들이 없어 더욱 애를 먹고 있기 때문.따라서 정부측에 주식및 금융 전문 관리들의 지원을 요청해놓고 있는 형편이다.CBI의 한 수사관은 『현재 인도 전역에 경제범죄전문 수사관이 5백여명 있는데 이들이 다 투입돼도 모자랄 지경이다.그나마 정교하고 복잡한 주식이나 금융관계를 다룰수 있는 수사관은 극소수』라고 실토하며 『따라서 영국의 잉글랜드은행과 미국의 연방은행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귀띰.
  • 양보와 타협의 정신 계승될길/나는 이렇게 평가한다/김석준

    ◎기득권·자기주장 고집 말아야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뒤이어 6·29선언이 있은지도 이제 5년이 지났다.당시 5공 권위주의 강권통치에 대항하여 일어난 전국적인 국민항쟁의 절정에서 정부와 국민간의 타협의 산물이 6·29선언이었다.대통령 직선개헌,공정한 대선경쟁보장,김대중씨등 사면복권,국민기본권 신장,언론자유 창달,지방자치제및 교육자율화 실시,정당활동 보장및 밝고 맑은 사회건설 등이 이 선언의 핵심내용들이다. 지금에 와서 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보니 참신하기 보다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당시로서는 강경한 정권이 국민들에게 「항복」한 것이고 이의 채택을 둘러싸고 강경세력과 온건세력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한 이 선언이 36·6%의 유효투표에 기반을 둔 6공화국 정당성의 요체로 원용되고 있다. 6·29이후 한국의 정치민주화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다소의 시행착오와 시련은 있지만 이 선언의 내용들이 대부분 현실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선언의 주체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지난 5년간 여야합의에 의한 헌법개정,17년만에 실시된 대통령직선과 후보자간의 치열한 경쟁,4·26총선에 의한 「여소야대」의 13대국회 등장,「5공 특위」와 「광주특위」등에 의한 청문회 개최,「5공비리」의 부분적인 척결과 전직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백담사 유배·지방자치제의 부분적인 시행 등은 정치민주화의 주요 실적들이다.또한 이를 가능케 한 것이 언론의 활성화,정당활동 보장,사면복권 등이므로 6·29선언이 직·간접의 방법으로 정치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6·29」가 비판되어 왔음도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선언주체를 둘러싼 논쟁,「야권분열 기도」,인위적인 정계개편에 의한 「여대야소」국회로의 복귀,대선공약인 중간평가의 포기 등이 주된 비판의 내용들이다. 무엇보다도 6·29의 내용중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최근의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와 교육자율화실시 문제이다.이 두 문제는 6·29선언의 실천을 공약해온 6공 정부 임기후반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정부·여당에는 큰 정치적 짐으로 남아 있다. 6·29선언은 기본적으로 국민과 정부간의 타협의 산물이다.타협의 정신은 상대방을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존중,인정함을 근본으로 한다.6·29가 한국의 참민주주의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기득권 세력이나 정부·여당이 자신의 이익이나 논리만 고집하지 않고 야당이나 재야세력의 주장을 포용·양보·타협하면서 정당성의 기반을 넓히는데 있다.정부·여당이 진정한 6·29정신인 타협정신을 회복하여 정치적·경제적 민주대개혁을 더욱 과감히 추진하길 기대한다.
  • 외언내언

    탈냉전이 시작되었을때 세계는 화해와 평화시대의 도래에 큰기대를 걸었었다.냉전시대보다는 훨씬 평화롭고 안정된 세계가 될것으로 기대했었다.그러나 그기대는 우선 걸프전으로 첫 시련을 겪었다.그리고 지난3년간의 탈냉전사는 다음의 세계가 결코 냉전시대보다 안정되고 평화롭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소련붕괴와 동구민주화에 이은 독일통일·한소수교·한중자유왕래실현등 세계는 이미 큰변화를 겪었다.그러나 그변화는 끝이 아니라 아직 시작일뿐.기왕의 것이 구질서파괴와 탈피의 변화였다면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새질서로 가는 본격적이고 실질적인 모삭과 정착의 변화라 할수 있다.그리고 그변화의 방향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것.◆탈냉전이후의 세계를 지배하게 될 가치는 종교와 경제 그리고 국익제일의 민족주의일 것으로 예고되어왔다.그대로 되어가고 있는 느낌.소련과 동구다민주국가들의 내적 분열갈등과 중동회교민족주의가 여전히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운 가운데 세계는 경제지상의 국익제일주의로 치닫는 대립갈등의 불안정을 노출하고 있다.◆더욱 불길해보이는 것은 바로 우리주변인 동아시아정세.구질서파괴와 탈피의 변화도 미처 달성되지않은 상태에서 새질서의 가치추구가 시작되고 있는 혼돈의 상황.북한이 구질서와 핵을 고집하고 일본이 파병법(PKO)을 성립시키는등 군사대국의 길을 서두르는 가운데 중국도 핵실험과 항모보유희망등 군사력증강에 나서고 있다.군축아닌 군확경쟁이 벌어질판.◆이러고서야 평화공존 공영의 새아시아 질서가 정립되고 정착할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북한이 한미일을 자극하고 일본이 남북한 및 중국을 불안케하며 중국이 다시 한일의 우려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의 상황이다.그가장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것이 북한의 민주화 개혁개방거부요 일본의 반성할줄 모르는 국익지상주의 아닌가.
  • 멕시코:1/나윤도특파원 현지리포트(중남미를 다시본다:11)

    ◎노·사·정·농 「안정협약」이 재도약 동력/살리나스대통령의 경제개혁정책 주효/인플레국호명 벗고 올해 5%성장 낙관/수도 멕시코시티 공해 심각… 환경문제 급부상 「관광의 나라,유적의 나라,자원의 나라 멕시코」,「가난의 나라,재해의 나라,문맹의 나라 멕시코」.이같이 극단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멕시코를 단번에 이해하기는 무척 어렵다. 한반도 9배의 국토에 동서가 세시간의 차이를 갖고 있을 정도로 드넓은 이 나라는 은·형석·황화나트륨 생산량 세계1위,흑연·안티모니 세계2위,석유·아연·몰리브덴·비소 세계4위로 기록돼 있다.이런 수치를 대하면서 갖게 되는 첫 의문은 도대체 그 엄청난 부가 다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80년대 들어 고인플레로 인해 도시에서 더이상 살수가 없게된 수많은 빈민들이 교외로 나가 산비탈에 형성된 달동네 마을인 「시우다데스 페르디다스」(잃어버린 도시)는 급속도로 팽창해갔으며 그 인구는 전체인구의 60%에 까지 다달았다.「시우다데스 페르디다스」로 둘러싸인 수도 멕시코시티는 번영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절망과 시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국토 한반도의 9배 그러나 80년대말부터 멕시코는 경제회복의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최근 수년간 중남미에서 가장 활기찬 모범성장국으로 부상하고 있다.87년 1백69%에 달했던 인플레가 91년 18·8%로 잡혔으며 같은해 1천74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외채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91년에는 7백11억달러로 감소했다. 이같은 멕시코경제의 극적인 국면전환은 88년12월 카를로스 살리나스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살리나스트로이카」라고도 불리는 그의 개혁정책은 과감한 개방정책과 국영기업의 민영화,사회복지정책등이 골격으로 돼 있다. 특히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기업·노조·농민 4자간에 87년 12월에 체결된 「경제안정성장협약」(팍토 데 솔리다리다드 에코노미카)은 멕시코경제 재도약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다.정부 주도로 농민대표와 노조지도자,기업대표들의 합의하에 물가·임금·환율·공공요금등의 인상을 통제하는 이 협약은 현재 93년1월31일까지로 연장돼 있으며 노조활동의 자제를 가져와 살리나스트로이카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말부터 회복 이 협약에 대해 경제기획부의 여성국장으로 대외개방정책 실무담당자인 가브리엘라 토레스 대외협력국장(37)은 『이 협약은 정부와 국민 모든 분야와의 사이에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시작된 일종의 국민운동』이라고 설명하고 『인플레를 막아주는 반면에 봉급인상도 억제하게돼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각분야의 요구가 조금씩 반영되도록 하자면 동시에 조금씩의 희생은 어쩔수 없기 때문에 이해의 첨예한 대립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같은 안정화 추세에 힘입어 92년도의 5%성장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또 인플레도 향후3년동안 한자리수로 억제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민영화조치도 더욱 박차를 가해 금년중에는 전화회사인 「텔멕스」와 국영은행 그리고 국영신문인 「엘 나초날」등을 비롯 극소수 전략산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영화시킬 방침이다.과감한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지난해 걸프전때 일시적인 석유수출가 상승,해외유출자금의 국내반입등으로 지난해말 외화보유고는 1백70억달러를 기록했다. 대외경제에 있어서는 수출주도형의 개방정책을 채택,미국·캐나다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연내 서명및 미국과의 국경지역에 설치된 수출자유지역(마킬라도라)에의 적극적인 외국기업 유치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멕시코정부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환경분야.최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고 있는 「지구서밋」에서도 자국의 환경보호와 연관된 주장을 강력히 펼 계획이어서 미국등과의 의견충돌도 예상되고 있다. 이미 지난 4월초 멕시코정부가 미국 국경에 인접한 자국 영토에 건설키로 돼있던 미국화학폐기물처리회사(CWM)의 유독성쓰레기소각장 건설계획을 갑자기 취소,양국간 외교쟁점으로 부각될것으로 보인다.○수출주도정책 채택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최됐던 양국의 제10차 「국경주지사회의」에서 패트리시노 치리노스 멕시코 환경장관이 미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에서 계획하고 있는 멕시코 국경내의 4개의 유독성 폐기물소각장건설계획의 불허방침을 통보한것.미국의 4개주와 멕시코의 6개 주지사등 10개주지사가 모여 매년 개최하고 있는 이 회의는 양국간 국경무역관계가 주의제가 돼왔으나 앞으로는 환경문제가 주요관심사가 될것으로 보인다. 인구2천만의 거대도시인 수도 멕시코시티는 해발2천미터가 넘는 고원도시인데도 불구하고 분지로 돼있어 공해가 심하기로 유명하다.도시가 항상 뿌연 스모그에 차있는 것은 물론이고 차의 창문을 열고 달릴 경우 숨이 막히면서 금방 눈이 맵고 따가와지는 것을 느낄수 있을 정도다.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멕시코에는 환경보존및 개선이라는 또하나의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 정 대표 대선전략에 「비상」/탈당설로 위기맞은 국민당(진단)

    ◎서열 무시한 당직인선에 불만/현대출신 당료와 마찰도 큰 몫 국민당이 또한번 시련을 맞고 있다. 조윤형최고위원의 이탈이 가시화함에 따라 적지않은 수의 소속의원(당선자)들이 동요를 보이는등 당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당내에선 『이러다간 대선도 치르지 못하고 당이 와해되는 것 아닌가』라는 위기론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현재 조윤형국회부의장과 양순직고문,윤영탁·박희부당선자등 구야출신 인사는 물론 김찬우·송영진·정주일당선자등이 국민당을 이탈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부의장의 경우 이미 민자당으로의 이적결심을 굳히고 발표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문이다. 조부의장의 한 측근은 27일 『조부의장이 김대중 민주당대표의 집권을 막기위해 범보수세력의 결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미 민자당입당결심을 굳혔다』면서 『이에 따른 일부 비난은 감수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조부의장이 국민당을 탈당키로 한 직접적 배경은 정대표의 독선적 당운영에 대한 반발때문이라는 분석이다.사실 많은 국민당소속 당선자들이 정대표의 기업경영식 당운영에 적지않은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당직자는 ▲의외로 각박한 자금지원 ▲정치경력과 서열을 무시한 당직인선 ▲현대출신 당료들과의 마찰 등으로 인해 지구당위원장들이 국민당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한다. 이 당직자는 『이같은 불만해소대책 마련을 그동안 수차 당지도부에 건의했으나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신생정당으로서 가뜩이나 응집력이 부족한 터에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자칫 와해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최고위원 등의 이탈움직임에 대해 정대표 등 당지도부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사태가 의외로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뒤늦은 집안단속에 나섰다. 정몽준의원과 김광일최고위원을 각각 조윤형·양순직씨에게 보내 이탈방지를 설득하는 한편 이번주부터 최고위원·고문단연석회의를 정례화해 참여의식을 높이도록 하는 등 응급대책을 마련했다. 한 당직자는 『정대표가 독선적 경영스타일을 벗고정치에 대한 발상을 전환치 않는 한 언제든지 이탈사태가 재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부의장 탈당파문은 따라서 신생국민당과 정대표의 정치력을 시험하는 첫 관문이 될 전망이다.
  • 신뢰받는 정부상(사설)

    24일로 정원식총이가 취임 1주년을 맞았다.1년이란 별로 길지않은 시간이지만 그안에 갖가지 변화와 시련을 겪어온 우리에게는 짧지않은 기간이었다고 생각된다.개인적으로도 출발부터 온갖 어려움과 인내를 시험당하며 조심스런 행보를 해온 정총리에게는 특별히 쉽지않은 1년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총이회담을 비롯하여 나라 안팎으로 큰일도 많았고 그때마다 학구적이고 지성적인 온당성으로 어려운국면을극복해왔다는 사실도 평가받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내각 1주년」을 맞으며 우리가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불신받고 있는 인상을 지울수 없는 공직사회의 부정적인 인상이다.그것이 소위 「정권 말기의 무력증」과 떼어놓을 수 없는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를 뜻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국민의 위치에서는 그것을 납득할수도 없고 허용할수도 없다.「무책임」「무소신」「무기강」의 3무가 팽배하여 눈치만 보고 일은 하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질타하는 소리가 높다.이런 비판의 소리가 다소 과장되고 선입견에 사로잡힌 것일수도있을지 모르겠으나 상당부분 근거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공직사회를 보는 국민의 마음이 매우 불신에 차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총리를 수장으로 하는 정부는 이 불신에 차있는 국민의 실망을 치유해주어야할 책임을 지고 있다.정치적 변환기를 맞으며 표류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영향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각박하고 옹색해져가는 경제사회적 현실과 모순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행정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민생을 향상시키는 일이 공직자의 최고의 사명이고 가장 절실한 직무이다. 지난 22일 하오에 정총리주재아래 열린 「민원행정 쇄신」을 위한 관계장관회의에서는 범정부적 결의로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워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부상」을 구현한다는 다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이런 결의가 처음도 아니고,아무리 굳은 다짐도 실천의 성과를 동반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이날의 회의에서 총리는 『민원행정행태의 변화모습이 국민앞에 가시화』되도록 내각전체가 결연한 의지로 임할 것을 당부했다.총리가 국민사이에 만연한 불신을 인식하고 있는 증좌로 보이는 이같은 결의가,부디 잘 실천되어야 할것이다.정부가 아무리 비장한 각오로 노력을 해도 국민의 호응이 없으면 실천의지 그 자체가 공염불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국민이 따르려면 정부와 공직자의 실천의지와 성과에 국민의 신념이 따라야 한다.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30분 일더하기」의 공허한 구호보다는 단5%라도 공직자의 공무수행능력의 품질이 나아져야 하고 부정과 불조이의 의혹이 줄어야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민원인이 동회창구에서,어떻게든가 일이 되게해주려고 애쓰는 일선공무원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그러려면 과중한 업무에 지쳐서 민원인상대가 괴롭기만한 공무원의 현실도 해소되어야 한다.필요없는 제출서류의 고질은 민원인의 민원을 사고 일선공무원의 업무만 과중하게 만든다.그같은 근원적인 행정의 모순을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특별히 결연해 보이는 총리의 의지가 실효를 거두어 실의에 찬 민생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두고 새로운 기풍이 착실히정착해 갈수 있기를 당부하며 기대한다.
  • 「YS체제」구축 행보(대선정국:3)

    ◎범여권결속이 대선승리의 최대과제/14대 원안전운용위해 무소속영입 본격화/「33%의 반대표」 끌어안기에도 포용력 발휘 어렵사리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자리를 획득한 김영삼민자당대표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범여권의 결속일수 밖에 없다. 40년 가까이 야당생활을 해온 정치지도자인 그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12월 대선에서의 정권재창출과 직결되는 바로 이같은 절대절명의 과제를 위해 김대표는 후보로 결정된 5·19전당대회직후 최규하·전두환두전직대통령과의 단독회동을 비롯,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김후보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이미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33%에 달하는 반란표 즉,「반YS세」를 껴안지 않고는 대선승리가 어렵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당내에서조차 절대적 지지를 못받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야당과의 정권싸움에서 총력전을 펼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이종찬의원이 33%의 대의원표를 등에 업고 대중적 이미지의 강점을 살려 끝내 독자출마를 감행할 경우 김대표의 대선승리는 커다란 암초에 부딪칠수 밖에 없다. 따라서 김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당지지로 드러난 반민자당분위기를 어루만지는 작업과 함께 범여권의 두터운 신뢰를 쌓아나가는 벅찬 일을 병행해야하는 어려운 입장에 놓여있는 셈이다. 우선 김대표는 지난 21일 최전대통령을 사저로 방문,여당대통령후보로서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예를 갖춘데 이어 22일에는 전전대통령의 사저를 예방,범여세력의 단합과 응집력을 강조하면서 협조를 요청했다. 김대표와 전전대통령간의 이날 단독대좌는 집권당의 정권재창출문제를 비롯,5·6공화해 등에 관해 폭넓은 의견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특히 전전대통령과의 만남은 5공세력과의 화해에 일단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볼수 있다.사실 김후보측은 지난연말부터 자신으로의 집권당 대권후보를 상정,연희동캠프와 꾸준한 관계개선 노력을 기울여왔다. 김후보가 끝까지 공천을 고집했던 박희도전육참총장과 고명승전보안사령관이 충실한 가교역할을 떠맡았으며 최근에는 전전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권익현구민정당대표가 김후보추대위의 공동위원장직 제의를 수락,양쪽 진영간의 「밀월」얘기까지도 나돌았다는 것이다. 김후보진영은 따라서 민정계원류의 정신적대부격인 전전대통령측과의 관계개선이 급속도로 진행될 경우 33%의 반란표 대부분을 흡수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여기에다 이미 김후보와 지난21일 단독회동을 가진 정호용당선자를 비롯,허화평·김상구당선자 등 무소속 5공인사들의 대거 민자당입당이라는 망외의 소득까지 바라볼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후보는 이처럼 범여세력의 결집에 도움이 될수 있는 인사라면 과거의 성향이나 친소관계를 떠나 어느누구라도 만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비추고 있다. 이와함께 지난 79년 신민당총재제명사건 당시 YS제명에 앞장섰던 유기준의원에게도 공천을 준 김후보의 포용력을 예로 들며 반대파의 마음돌리기에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일련의 작업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하는 선결과제는 바로 이의원의 처리문제다. 이의원처리 문제에 따라 김후보의 포용력 크기가 드러날 것이고 이는 범여결속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와관련,청와대측의 강경노선에 비해 김후보 측은 『전당대회 이전 상황은 불문에 부치겠다』는 유화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김후보의 한 핵심측근은 『전당대회에서 표로 나타난 비주류를 포용해야 한다는 김후보 입장과 이의원이 과연 협력할 수 있을 것인지를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징계방침이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혀 전당대회 직후 조기제명 등 강경분위기가 수그러들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의원이 기어이 독자출마의 수순을 밟을 경우 그의 중징계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며 이 경우에도 이의원 동조탈당인사를 극소수에 국한시켜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복안이다.아울러 이의원 주변인사에 대한 회유와 설득등 「가지치기」도 계속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의원진영이 이날 14대당선자 8명을 비롯,지구당위원장 30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실상 신당 결성추진을 뜻하는 「새정치모임」발기인대회를 가져 김후보의 주류측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귀추가 주목된다. 이와함께 무소속 당선자중 친여성향을 가진 인사들과의 물밑 맨투맨 접촉을 강화,원내의석 1백60여석 정도를 확보해 집권당의 안정기조를 유지함은 물론 범여세력의 결집에도 한몫을 기대하고 있다. 이승무(점촌·문경)김길홍(안동시)최돈웅(강릉)하순봉(진주)당선자등 4명이 이날까지 입당을 완료했고 정필근(진양)박헌기(영천)성무용(천안시)당선자 등도 다음주중으로 정식입당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무소속 5공인사까지 합치면 무소속영입은 당초 기대치를 뛰어넘는 10명이상이 될 전망이다. 이밖에 김후보는 과거 범여세력의 충실한 받침대였던 관계·재계의 분위기가 지금은 자신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고 판단,동원 가능한 채널을 풀가동해 이들에게 대선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다는 계획이다. 결국 여권 체질화를 위한 김후보의 이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물리적 통합에 그쳤던 3당합당을 화학적 통합으로까지 끌어올리고 3공이후의 자신에 대한 거부정서를 순화시켜 대통령선거에서의 승리를 기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볼 수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당대회에서의 경선 거부파동은 그에게 닥친 첫번째 시련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범여권 결속을 다지기 위한 하나의 희망적 계기가 되었다고도 해석되는 것이다.
  • 공장절반 “스톱”… 북한경제 붕괴 위기/NYT기자가 본「92평야」

    ◎육류배급 중단… 대중·소 교역열차도 격감/생존위해 시장경제 도입·외자유치 애써 뉴욕 타임스지는 21일 극심한 연료와 식량난으로 북한경제는 붕괴직전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김일성은 그가 몰아냈던 일본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을 직접 돌아보고 쓴 1쪽 전면에 걸친 르포기사에서 데이비드 생거기자는 북한이 새로운 경제시대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이웃 독립국가연합과 중국의 남부지방에서 실험되고 있는 폭넓은 시장경제체제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그렇다고 그들의 철권통치체제를 바꾸려는 의도는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생거기자는 북한이 이번달 1백45명의 일본 중국 미국 한국의 학자 경제계인사들의 입국을 허용한것이 바로 북한이 더이상 홀로 살수없다고 판단한 명백한 증거라고 말하고 그가 만난 북한관리들은 김일성정권이 6·25이후 40년래에 가장 어려운 시련에 처해 있음을 솔직히 시인했다고 전했다. 김달현 부총리는 「왜 서방자본을 유치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제 지구상에는 불과 몇개의 사회주의 국가가 남아있을 뿐이다.우리는 그중의 하나다.그러나 우리는 기술개발을 원한다』면서 『그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답변했다. 슬쩍 슬쩍 지나가는 여행자의 눈으로도 평양이외의 북한경제는 크게 휘청거리고 있음이 분명했고 농촌지역 공장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는데 대체로 50∼60%의 공장만이 가동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보도했다. 1인당 GNP 1천달러 미만의 북한이 언제라고 풍족했던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위기는 옛 소련이 지난 89년 무역대금의 경화결제를 요구한 이래 결정적으로 심화됐다면서 한 외교관의 말을 인용,한달에 배급받기로 된 2.2파운드의 육류공급마저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생거기자는 북한에서는 북한의 실정을 파악할 어떤자료도 구할수 없었다고 밝히고 그러나 중국 독립국가연합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동북부 한 두만강 철교의 경우 수년전까지만 해도 하루 5∼6대의 기차가 화물과 근로자를 실어 날랐었으나 지금은 하루1대가 될까말까하다는 한 철도원의 말을 인용했다. 북한의 고위관리들은 누구나 외국의 투자 유치를 강조했는데 특히 동북아경제포럼의장인 조리재씨는 『일본사람들이 잠시 관망하고 있으나 그들이 곧 북한에 오는것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그는 그 이유로 『그들은 전에도 여기 있었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생거기자는 그와 동행한 한 일본인 실업인(그는 16세때까지 북한에서 살았었다)은 『북한을 다시 보게 돼 매우기쁘다.그러나 한번이면 족하다.다시 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고 기사의 끝을 맺었다.
  • 개혁과 화합이 필요하다/김영삼대통령후보의 과제(사설)

    민자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이 차기대통령후보로 선출된데 대해 우선 축의를 표한다.비록 경선에 의해 축제의 분위기를 이루는데는 실패했더라도 집권당으로서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매듭지었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민자당과 김후보는 오늘을 계기로 보다 결연한 각오와 결의로 경선무산의 상처를 조속히 치유하고 나아가 수많은 내외의 도전과 시련을 이겨냄으로써 정권재창출이라는 당면 최고목표를 이루어 나갈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이를 위해 민자당은 먼저 겸허한 자세로 그간의 잘못된 점을 스스로 반성하고 특히 그동안 국민이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분명히 가려내는 노력을 배가시켜 나가기를 당부한다. ○시급한 당내수습과 화합 민자당은 우선 경선무산으로 빚어진 당내의 여러가지 문제들부터 조속히 수습하는 일이 중요하다.화합과 단결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거나 그 결과가 별로 신통치 않을때 당이 지금까지 입어온 상처가 제대로 치유되기 어렵고 따라서 대통령선거전에서의 입장도 좋아지지않을 것임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이 반금계의 박태준최고위원을 만나는등 직접 수습전면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며 김후보도 정치력을 발휘하여 단합의 방법을 가시적으로 강구해 나가야할 것이다. 그렇다고 단합이 어려운 부분까지 싸안고 가면서 시간을 끌어서는 안된다.이종찬씨의 출당이 불가피하다면 서로를 위해 하루빨리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집권당의 갈등으로 인한 혼란과 불안은 정국전반과 국정의 혼미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에 결단이 필요하다.다만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상대편에 섰던 사람을 최대한으로 포용하고 화합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는 것이다.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록 상처는 줄어들고 당력은 신장될 것이다. 아울러 이번 전대를 계기로 3당통합이후 지분에 얽매여 비효율성을 보였던 당의 체제를 보다 능률적인 것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서둘러야 마땅하다.집권전략이 당공식기구를 통해 보다 유기적으로 세워지고 집행되는 체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미지제고와 정책 청사진 다음은 김후보자신의 이미지제고가 필요하다는 점이다.그는 3당통합을 구국적 결단에 따른 것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그 이후의 모습에서는 국민의 기대에 걸맞는 역할을 좀더 강력하게 해낼 필요가 있다.과거 수십년간 반독재와 민주화투쟁으로 쌓아온 정치적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게 여당내에서의 김후보는 많은 사람이 기대하던 안정과 개혁의 어느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할것이다. 또 대권을 둘러싼 당내의 싸움으로 흐트러진 당을 정리하고 이미지를 쇄신하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것이다. 이제 김후보는 과거의 좋은 이미지를 회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개혁과 결단,그리고 자신있는 국정수행능력을 보여주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해 내도록 힘써야 한다.특히 중요한 것은 비전과 정책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점이다.다음 정권이 담당할 5년간은 국내외정세로 보나 국민적 욕구로 보나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특히 21세기에 들어서기까지 경제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그 기반을 확고히 마련해야할 기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삼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방법으로 생활의 질이 얼마만큼 향상되는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가 아직은 없다.따라서 말로만 민주화·선진화를 외칠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하루빨리 만들어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당정간에 보다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획기적이면서도 실현가능한 정책청사진이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동조받도록 하는 일이 시급하다. ○국민편에서 정면돌파를 끝으로 민자당과 김후보는 6개월여간의 길다면 긴 대통령선거까지의 기간중 정치안정에 극력 노력해야할 것이다.이미 국민당이 정주영후보를 확정했고 민주당은 김대중후보로 기울고 있으며 이종찬씨의 행보도 심상치 않아 여러 후보간에 극한적 대립상이 표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특히 여당에 대한 사사건건 시비가 그치지 않을 것이며 야당들의 집중공세도 예상된다.또 돌발적인 정치·사회적사건이 발생해 쟁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여당은 국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이다.경우에 따라서는 정치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국민의 입장에서 사안을 살펴보고 원칙과 순리로 정면돌파를 해나가는 것이 오히려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어설픈 말싸움과 소모적인 맞대응으로 선거정국을 조기과열시킨다면 전략적으로도 불리함을 인식해야 한다. 또 선거때를 맞아 흐트러지기 쉬운 사회기강을 다잡는 문제에도 역점을 두어야 한다.이권부서 공무원의 부조리가 만연하고 그린벨트훼손과 무허가 업소나 가옥이 선거 때마다 늘어난 것이 집권당의 표에 손해가 되면 되었지 득이 될 수 없다.당이 단결하여 중심을 잡고 정부와 협력하여 민생을 돌보고 국정수행면에서 신뢰를 받을 때 집권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분발을 촉구한다.
  • 뚝심과 결단의 역정40년… “정치거산”/김영삼후보가 걸어온 길

    ◎한번 만나면 “내사람”… 뛰어난 친화력/반독재투쟁 선봉… 숱한 박해 받기도/요즘도 아침조깅으로 건강다지고 경제공부에 열중 김영삼대표는 이제 출발점에 섰다. 「불굴」과 「좌절」이 교차됐던 기나긴 영욕의 정치터널을 지나 이제 명실상부한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로 우뚝 선것이다. 긴세월,대권을 향한 「김영삼집념」은 이제 실현됐다. 그가 집권여당의 대권후보로 거듭나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없었다. 이것은 역사는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사실,또 내부적으로 극적인 반전효과를 지닌다는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중학시절 하숙방에 써 붙였다는 대망대로 그는 꾸준히 걸어왔다.특유의 뚝심으로 목표를 향해 밀어붙였다. 따라서 그는 격변하는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 항상 출발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목표와 그를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물론 집권당의 대통령후보가 됐다고 해서 곧바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장 유리한 고지에서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가 이자리에 이르기까지는 핍박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단단해졌고 또 그의 표현대로 『결과에 승리가 있을뿐 패배를 생각해본적 없다』는 자기 암시가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40대기수 김영삼」「독재타도 김영삼」「군정종식 김영삼」「문민정치 김영삼」「큰정치 김영삼」. 그의 40년 정치역정을 대표하는 수사들이다. 「40대 기수론」도 그가 제창했던 구호였다. 또 반독재투쟁을 벌이면서 여러차례의 가택연금,23일간의 단식,국회의원직 제명,야당총재 직무정지등 숱한 고난을 겪었다.심지어는 가택연금중 자신의 장남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등 인간적인 비애도 감수해야 했었다. 집권여당 대표로 변신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내부의 경쟁자들과 싸워왔고 이제 승리자로 남겨졌다. 그의 정치적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타고난 감(감)의 정치인」「뛰어난 결단의 승부사」라는 그의 별칭에 그 기원을 둘수 있다. 또 40년 정치역정중 남달랐던 친화력을 꼽을수 있다. 여야로 나뉘어상대방 헐뜯기에 열중하던 시절,야당총재이던 YS를 남보다 앞서 비난했던 한 여권인사는 『가까이에서 보니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그의 정치적 투쟁과 소신이 새삼 돋보였다』고 지지로 돌아선 배경을 밝혔다. 무엇보다도 그의 화려했던 정치경력은 그가 정치 거목이었음을 입증한다. 의정사상 최연소인 26세로 3대국회의원 당선(54년 경남 거제)이후 5·6·7·8·9·10·13·14대 당선 기록은 현존하는 정치인중 최다선이다. 그의 정당생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화려하다.의정단상에 오른뒤 원내총무 5회,대변인 2회,4차례의 야당당수,13대대통령후보,여권의 2인자 등을 거치면서 「최연소 의원」「최장수 원내총무」「최연소 당수」등 거듭 신기록을 경신했다. 야당시절 투쟁경력도 그의 무게를 뒷받침하고 있다. 유신반대,80년이후 두차례에 걸쳐 2년간 가택연금,83년 5월18일부터 6월9일까지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87년 6월항쟁의 선두에 나섰던 것이 대표적인 투쟁이다. 그가 당시 인용했던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말은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지식인들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화려했던 야당시절,70년 신민당 대통령후보 경선전과 87년 대통령선거 낙선,88년 4월총선 패배등 뼈아픈 좌절의 시기를 맞기도 했다. 신민당 대통령후보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했던 그는 후보경선 전날밤 승리를 낙관,후보수락 연설문을 다듬다가 마지막까지 대의원 포섭을 벌였던 김대중씨에게 2차결선투표에서 역전패하는 쓰라림을 맛보았다. 또 87년 대선에서 후보단일화 실패후 대통령선거에서도 낙선했고 뒤이은 총선에서도 제1야당의 자리마저 평민당에 넘겨주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는 결국 민정·평민·민주·공화등 4당구조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아래 3당통합을 결행,집권당 2인자 자리를 확보했다. 지난 89년 6월 당시 민주당총재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한데 이어 90년 3당통합후 민자당대표자격으로 미수교국이었던 소련을 다시찾아 고르바초프대통령을 면담,한소수교의 물꼬를 트는등 정당외교사에 새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듣기도했다. 그는 여당으로 변신한후 「감각과 이론」을 겸비한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특히 경제전문가들로부터 거의 매일 경제강의를 받는등 국가의 경제활력제고에 남다른 관심을 쏟고 있다. 27년 12월20일생으로 금년 65세인 그는 요즘도 새벽 5시30분부터 6시30분까지 상도동자택 인근 야산에 올라 4㎞씩 조깅을 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는데 조깅을 시작한지 25년동안 비가오나 눈이오나 해외출장중일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고 있어 그의 끈질긴 승부근성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 늘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하지만 그는 유신직후 가택연금을 당하자 양주 두병의 주량과 하루 서너갑씩이나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을만큼 「독기」도 있다. 김대표는 6남매중 외아들로 부인 손명순여사와의 사이에 2남3녀를 두고 있으며 마산에 거주하는 부친 김홍조옹(81세)에게 매일 아침저녁 문안전화를 드리는등 극진한 효자로도 알려져 있다. 아무튼 김대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과거도 현재도 중요하다.그러나 어제보다 오늘,오늘보다는내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제 더 중요한 내일을 위한 출발인 것이다. ○김영삼후보 연보 ▲54∼58년 제3대 민의원 ▲60∼61년 제5대 민의원 ▲63년 신민당 부산시 당위원장 ▲63∼67년 제6대 국회의원,민정당 선전부장,민중당 원내총무겸 대변인 ▲67∼72년 제7대 국회의원,신민당 원내총무,정무위원 ▲71∼72년 제8대 국회의원,한국문제연구소 소장 ▲73∼79년 제9대 국회의원,신민당 부총재,정무회의 부의장,총재겸 지도위원회 의장,정무회의 의장 ▲74년 미타우슨 주립대 명예문학박사학위 수여 ▲76년 신민당고문 ▲79∼80년 제10대 국회의원,신민당총재 ▲79년 총재직무집행 가처분,의원직제명 ▲80년 정치활동규제 ▲81년 민주산악회 결성 고문 ▲82∼83년 2년동안 가택연금 ▲83년 단식투쟁(23일간) ▲84∼87년 민추협 공동의장 ▲85년 민족문제연구소 고문 ▲86∼87년 신민당 상임고문 ▲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고문 ▲87년 통일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 ▲87∼88년 통일민주당 총재,대통령후보 ▲88년 제13대국회의원 ▲88∼90년 통일민주당 총재 ▲90년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91년 윤봉길의사 의거 제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장 ▲92년 제14대 국회의원 ­40대 기수론(71년) ­정직과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87년) ­민주화 구국의 길(87년) ­나의 결단(87년) ­지도자의 길(몽고메리저) ­생을 뜻있게 보내려면(윌리엄 J 래이리 저)
  • 비 총선과 서구민주주의(사설)

    「피플스 파워」(민중의 힘)로 지난 86년 민주화혁명에 성공했던 필리핀이 또다시 정치혼돈의 큰시련에 직면하고있다.3개월간의 선거운동기간을 통해 30여명의 사망자와 6천여명의 부상자를 내는 진통끝에 지난11일 실시된 총선이 대통령선거개표를 둘러싼 시비로 극한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번엔 독재타도가 아니라 민주화정착의 시련이다. 개표초반의 선두에 섰던 산티아고 후보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아키노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라모스후보에 역전당하면서 먹구름이 드리우기시작한 것이다.부정부패척결로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산티아고후보는 개표및 집계과정에서 대대적인 부정이 자행되고 있으며 자신의 승리가 강탈당하고 있다고 주장,대규모 반정부시위에 나서기 시작했다.1,2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근소한 표차가 화근이다.라모스후보가 패배해도 그냥있을 것같지는 않다.현상황으론 어느쪽도 상대방의 승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같지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있다.또한차례의 큰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마르코스독재축출과 아키노민주화이후 처음실시된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필리핀총선이다.질서있고 성공적인 총선을 통해 필리핀민주화가 정착되고 발전하기를 세계는 물론 우리도 기대하고 있으며 그만큼 혼돈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도하다.동시에 민주정치를 발전시킨 구미와 다른 문화와 여건의 개발도상국들이 서구민주정치를 수용하고 정착시켜 발전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도 생각하게 된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는 가장먼저 민주주의를 접한나라라 할수있다.1898년부터 미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42년에 민주국가로 독립,민주정치체제정착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부정부패와 폭력,공산반란과 독재의 소용돌이로 얼룩진 나라다.마침내 안정된 민주발전의 길로 들어서는가 했으나 쿠데타소용돌이의 혼돈이 이어졌으며 이제 총선의 파국위기인 것이다. 사회주의정치는 몰락했고 해가고있다.민주정치의 승리가 구가되고 있는 오늘이지만 서구민주정치는 정말 만국공통의 만병통치제도인가.구소련과 동구등의 민주화 진통과 함께 필리핀의 혼돈을 보면서하게되는 반성이다.한때 신생아시아에선 토착민주주의란 말이 유행한적이 있었다.우리경우엔 한국적민주주의가 강조되었었다.그런주장들이 독재와 장기집권및 탄압의 방편으로 이용됨으로써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실패 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실험된 최상의 정치제도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문제는 그 제도를 일률적으로 적용 운영하는데는 적지않은 부작용이 있음을 우리는 오늘의 필리핀사태에서 새삼 실감하고 있다.깬 시민의식이 있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유권자가 있고 민중의 힘을 두려워 할줄아는 위정자가 있을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그 진가를 발휘 할수 있다. 우리는 현재 개표가 진행중인 총선결과에 주목하면서 필리핀의 국민이 원하고 유권자의 뜻이 제대로 반영된 대통령이 선출돼 민주제도가 하루속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 가정을 생각한다(사설)

    5월에는 어린이날이 있고,어버이날이 있고,스승의날이 있고,그리고 성인의날(18일)이 있다.가정과 관계된 모든 날들이 몰려 있는 달이므로 5월을 우리는 「가정의 달」이라고도 부른다.「계절의 여왕」인 이 푸르고 싱싱한 달에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어린이를 생각하고 어버이의 은혜를 기리고,어버이 같은 스승을 존경하고,자식들의 성인을 선언해 주어 독립된 인격체로 서게 하려는 뜻에서 「5월의 날」들은 정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5월은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한다.어른 세대는 비틀거리고,아이들은 혼미속을 헤맨다.가정을 구성하는 모든 계층이 집안팎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과 위협을 받으며 살고 있다.세대간은 서로가 딴 인종이기라도 한 것같이 생소하여 대화가 안되고,기성세대를 바라보는 젊은이의 눈은 불신에 차 있다.문밖은 자녀를 노리는 온갖 함정투성이고,입학시험의 가학적인 공세를 받는 자녀들이라 시련을 이기는 인품을 길러주는 일은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고3도 되기전에 입시에 실패할 것이 두려워 투신자살하고 순진한 여학생이 분신자살도 서슴지 않는 5월을 당장 이달에 우리는 겪었다. 물신숭배로만 치닫는 풍조속에서 가치관의 기준은 무너지고 옛날의 미덕이 오늘은 거추장스러워진 일들 투성이다.어떻게 해야 실패한 부모가 안될지 자신이 없고 어떤 미래가 자식의 참 행복일지도 전혀 알수가 없다.모든 가장들은 불효의 가책속에서 살고 있고,자식들에게 버림받아 서러운 노인들은 끔찍한 죽음으로 한맺힌 생을 끝내기도 한다.어떤 세대도 행복하지 않은 것이 오늘의 우리가정이 지닌 특성이다. 가정에 대한 기대도 확신도 없으므로 가정을 부수는 일에 아무런 주저도 하지않는 젊은부부가 점점 늘어간다.이런 현상은 우리만의 것은 아니다.세계적 추세이고 시대적인 특징이다.온전한 가정보다는 결손되고 상처난 가정이 더 많은 사회가 이른바 선진국들이고 우리도 그런 추세에 합류되고 있다. 보다 잘사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인류의 소망을 역행하는 이런 현상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영육간에 오염되고 부패해가는 현실속에서 사람을 구할수 있는 삶의 단위는 가정이다.인간의 자생력의원천인 사랑과 평화의 근원은 가정이다.개개의 가정이 건전하게 존재해야 아이들은 제대로 자라서 국가사회의 동량이 될수있고 그로부터 사회를 지탱할 원동력인 희망이 창출된다. 제대로 된 인간을 형성하는 시기를 입시준비로 차단하고,절제와 근면 성실한 노력으로 도야해야 할 체질을 과보호와 무관심으로 일그러뜨려 질서도 몸에 익히지 않고 참을성도 키우지 못한 자녀들은 사회를 위해 기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저자신을 힘들고 불행하게 만든다.다소의 풍요를 물려준다고 해도 그런 아이들은 자기 인생을 꾸려나가기가 고달프고 힘들다.긍정적인 사고와 성실한 품성을 길러주는 것은 그런 가치관과 철학을 지니고 노력하는 부모와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불길한 예측과 위기만 예고되고 있는 오늘의 가정문화를 깊이 성찰하여 5월에 걸맞는 싱싱하고 건강한 가정으로 바로 세우는 길을 겸허하게 모색해야만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더 늦출 수는 없다.
  • LA폭동이 교민들에 준 교훈/문애리 미캘리포니아대 교수(특별기고)

    ◎「한민족」이되 「미국인」이어야 한다/「아메리카의 모순」아닌 「나의 문제」 일깨워 4월29일에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미국 한인교포들에게 많은 것을 확인시키고 더불어 많은 교훈을 남겨 주었다.피해입은 교포들과 같이 울며 아파하고 일부 언론의 편파적인,또는 한흑갈등을 유도하는 보도에 같이 분개하며 대응하는 우리의 수많은 모습에서 유일한 공통점은 한민족이라는 단순한 사실이었다.그것은 경제·사회적 위치나 나이·이민연도를 초월한,특히 2·3세들에게는 한민족이라는 뿌리에 대한 확인이었다. 근 10만명이 동참한 평화시위행진,이재성군의 장례행렬을 따르는 수많은 차들,폭동피해자들과 한인타운 재건을 위해 모여드는 성금·구호물자·자원봉사자들­.이 모든 것은 한인 이민역사상의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끊임없는 시련 속에서도 극복해 내고 마는 한민족의 기질,그리고 우리도 뭉칠 수 있다는,분열속에 잠재하고 있던 한인교포들의 응집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4·29폭동은 또 한인교포들에게 「응집력과 조직력」은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무기임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음은 물론,이를 한인교포사회의 앞날을 위하여 중요한 과제로 재조명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 이번 일로 그동안 한인사회에서 소외되어온 듯한 미국문화와 영어에 익숙한 1·5세대와 2,3세대들은 미국속의 한인교포 대변인으로서 열성적으로 활약함으로써 마치 뜻밖의 「숨은 보물(?)을 재발견 한듯 많은 1세 한인들에게 용기와 위로가 되어 주었다.미국속의 한인사회의 권익신장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더 이상 제외해서도,뒷줄에 서게 해서도 안되겠다는 대다수 교포들의 여론이 4·29 폭동사건을 시발점으로 하여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미국 텔레비전의 나이트 라인 프로그램의 편파적인 진행에 분노한 한인들의 항의전화로 다음날 그 방송국의 전화선이 모두 마비되어 긴급회의를 열고 한인들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는 방송국의 뒷얘기는 숫자의 열세를 응집력과 영어에 능숙한 1·5세대와 2,3세대들의 합작으로 극복한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물론 이번 사건으로 모아진 한마음을 어떻게 보존하고 더욱 결속시켜 가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 미국사회속의 한인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제일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그래서 아직은 『4·29폭동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았다』라고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 먼 훗날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 보았을 때 분열과 비방이 팽배한 교포사회의 모습,개인만의 이익을 위해 한인단체를 이용하려는 감투싸움의 추태 등은 없어야 하겠다.이를 위해서는 결속력과 사명감이 넘치는 단체들과 진정한 봉사·희생 정신으로 의욕에 찬 단체장들이 우리 교포사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사리사욕이 없고 진정한 봉사가 있는 곳에 세대간의 배척이나 갈등은 있을 수 없다.서로 밀어주고 이끌어줘야 하는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아닌가. 4·29폭동은 미국이 부르짖는 자유 평등 정의의 원칙에서 스스로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가에 대한 재확인이었다.뿌리깊은 인종차별,지역에 따라 사립도 아닌 공립학교의 학생당 교육비가 3배씩 차이가 나는 제도적 모순만 보더라도 쉽게 알수 있다.그러나 4·29폭동 이전의 많은 한인교포들은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제 등에 남의 나라 정치,남의 나라 문제인양 무관심한 방관자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할 때 4·29 폭동은 미국의 정치,사회문제가 나의 문제로 느껴지기 시작한 전환점이 되었다.죄없는 많은 교포들이 미국의 오랜 제도적,사회적 모순의 직접적인 희생양이 된 것이다.또,예산적자라는 이유로 보상부담을 회피,생색내기 또는 입으로만 형식적인 차원에서 마무리지으려는 미국정부의 태도는 힘없는 미국속의 우리의 실상을 절감하게 했기 때문이다.「힘」은 곧 경제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의미한다. 미국의 한인교포들은 지금까지 너무 「한국 사람」이었다.그러나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 「미국인」이 되어야 함을 일깨워 주었다.「미국인」이란 곧 한국이 아닌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제 등 여러분야에 적극 참여하여 교포들의 힘을 미국방식으로 미국에서 축적해야 한다는 뜻이다. 끝으로 이번 사건으로 우리는 한민족의 문화와 전통을 미국내 다른 민족에게 알리고 싶은 만큼 우리 역시다른 민족의 「다름」 그 자체를 존중하고 그들의 것을 배우는 데 힘써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이것이 필연적으로 다수 민족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미국속에서 슬기로운 한민족의 선택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먼저 웃어주고 손 내밀어 오해를 줄이고 화합하는,진정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교훈의 의미는 적극적인 정치참여 못지 않게 중요하다.
  • 「당을 걱정하는 모임」 토론내용

    ◎“예선서 내출혈 빚고 본선 이길수 있나”/개인야망위해 당이 희생돼선 안돼/인신공격·당흠집내면 단호히 제재 민자당 경선과정에서 비교적 중립을 견지해온 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81명이 김영삼·이종찬후보진영에 상호비방과 인신공격 자제를 촉구한 것은 양측에 모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의 행동은 1주일여 남은 경선이 현재 상태로 진행된다면 당의 분열만 가속돼 향후 정권 재창출은 물론 경선후 당이 온전히 보존될 수 없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날 「당을 걱정하는 모임」에서 전개된 토론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춘구총장=지금 우리당은 합당이후 가장 어려운 시련에 직면해 있다.당초 자유경선의 취지는 집권여당이 먼저 민주정당으로 탈바꿈함으로써 사회 각 분야 가운데 가장 낙후된 것으로 비판받아온 정치권을 한단계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고 그 과정에서 모든 당원의 단합을 이뤄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한 커다란 한발을 내딛자는데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작금의 현실은 당원의 뜻과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게 나가고 있어 당이 앞으로 하나가 되기 어렵다거나 자유경선이 시기상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그래도 냉정하게 중심을 잡고 당이 파멸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드는 세력이 있어야 하겠기에 늦었으나마 이같이 모였으니 5·19전당대회가 화합과 축제의 분위기 속에 치러질 수 있도록 좋은 의견을 제시해 달라. ▲박정수의원=경선만이 목적이 아닌데 양후보 진영의 경선 운동양상은 우려할만한 상황이다.누가 대선에 임하든 어려울 것 같은 걱정이 든다. 양후보 진영의 인신공격을 중단시키고 선관위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력히 촉구하는 의견을 모아야 한다.어느쪽이든 인신공격으로 당에 흠집을 내고 선관위 규정을 어길 경우 선관위가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결의를 해야한다. ▲윤태균당선자=선관위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양측에서 협조하지 않고 있으니 양측 대표간사와 참모들을 불러 설득,현사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도록 하고 무겁게 충고하는 방법을 만들자.당이 있기 때문에 후보가 있는 것인데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당을 위태롭게 한다면 후보자격이 없고 당선돼도 마찬가지다. ▲이광로의원=현재 후보들이 당원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사람들인가.그렇지 않기 때문에 경선양상이 과열되는 것 아닌가.몰려다니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박완일당선자=지는 싸움을 하지 않으려는 사생결단의 자세로 나오기 때문에 전당대회가 가능할지 걱정된다.선관위에서 중재하거나 자제시킬 힘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으나 대선에 흠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박세직당선자=당과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뜻에서 나왔다.경선은 좋은 것이나 페어플레이를 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규칙이 있으니 규칙위반에는 제재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경선을 할 때는 이성을 잃게 되는데 위반시에는 불이익이 있어야 규칙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유경현위원장=총력을 기울여야 할 곳은 12월 본선인데 5월 예선에서 이미 내출혈 현상을 빚고 있다.우리당을 보는 국민의 인식과 시각에 유념해야 한다. 공존을 위한 예선인가 공멸을 위한 예선인가 반성해야 한다. ▲이상회의원=당총재가 수차례 페어플레이를 당부하고 선관위도 같은 취지의 경고를 여러차례 했음에도 경선양상이 상당히 위중한 상태에 이르러 이미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지 않았나 생각된다. ▲박준규국회의장=보름전부터 이같은 모임이 있기를 바랐다.이 모임은 어느 후보에 대한 지지를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기 모인 우리들이 선관위의 규칙을 안따르는 후보에 대해서는 지지를 철회할 수 있다는 각오가 없으면 당의 융화는 이뤄질 수 없다.
  • 재향군인들의 긍지와 자부심(사설)

    계절의 여왕이라는 싱그러운 5월은 꽃과 나무,훈풍의 풍성함에 못잖게 각종 행사로 더한층 풍요롭다. 어린이날이 지나 어버이날이 왔고 부처님 오신날을 지나면 스승의 날로 이어진다.그러다보니 오늘 8일은 제40주년 재향군인의 날이다.6·25동란 중인 52년,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제대한 장병들을 중심으로 창설된 재향군인회가 국가안보를 위한 후비군사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오기 40년에 이른 것이다. 지난달 26일의 일이었다.서울 목동 종합운동장에서는 얼룩무늬군복의「관중」들이 하나같이 박수를 치며 경쾌한 군가를 합창하고 있었다.무대위에서는 해병대 팔각모에서 삐져나온 흰머리의 군인들의 춤판이 한창이었다. 그들도 역시 재향군인들이었다.해병전우회중앙회가 전현직 장성 서른한명과 예비역장병 가족등 7천여명을 초청해서 벌인 해병대사령부창설기념 모임이었다.우리 국군중 어느 군의 기념모임이어서 라기보다 국가안보의 후비군으로서는 물론 한사람의 성실한 시민으로서,또 훌륭한 산업역군으로서 재향군인들의 오늘의 모습을 볼수 있는 장면이어서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됐다. 나라와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한번 국민이면 영원한 국민이듯이 나라가 지켜지고 안보가 유지되는한 이 나라 국민 누구나 한번 군인이면 영원한 군인일수 있다.그 재향군인회는 지난 40년동안 과도기적 전환기 속에서 온갖 시련과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연면히 이어져 지금은 4백60여만명의 전국적 조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여 나라와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국민들은 불혹의 연륜에 이른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와 우리들의 재향군인들에게 경하를 보내는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건 군의 현역을 물러나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생업에 종사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재향군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된다. 미국의 경우 해마다 그들 재향군인의 날엔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한 역전의 용사들이 현역복장으로서 거리에 나와 시가행진을 벌인다.지난날 용사답게 가슴에는 훈장들이 번쩍이며 더러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에 의지한 용사들의 얼굴도 그렇게 밝고 자랑스러운 모습일 수가 없다.지난날 조국수호의 대열에 앞장서 싸웠고 오늘엔 국가발전과 사회공익에 기여함으로써 그 긍지와 자존심을 유지하는 재향군인들은 그야말로 모두가 하나같이 일등국민이라 아니할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년전부터 재향군인의 날에 시가를 행진하는 예비역장병들의 모습을 볼수 있다.장령출신이건 사병출신이건 가릴것 없이 그들 각자가 이 나라 이사회의 손색없는 지주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그들을 가리키는 베테랑 뜻 그대로 그들은 고참이고 숙련자들이다.재향군인들의 존재의미는 그래서 더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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