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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의 정치참여 결과는 참담하다(사설)

    국민당이 정주영전대표의 탈당에 이어 소속 의원들의 탈당이 잇따라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다.국민당의 한 의원은 『정 전대표가 나라경제와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신한국 창조에 일조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히면서 탈당했다. 정 전대표가 정계에서 은퇴한 것은 본인의 말대로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서 참으로 잘한 일이다.우리는 92년 총선을 앞두고 그가 국민당을 창당할 때부터 재벌의 정치참여를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재벌이 정치에 참여하게 되면 정경유착보다 한단계 높은 정경일치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정치가 경제를 지배해서 안되는 것과 같이 경제가 정치를 지배해서도 안된다.그러나 정 전대표는 경제의 정치지배를 시도했던 것이다. 또 재벌이 재벌을 지배하는 현상이 생길 수있다.대선전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정치에 참여하려 했던 것은 바로 특정 재벌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던 것이다.특히 재벌의 정치참여를 계기로 한국의 경제계가 양분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느냐는 걱정도 강하게 나왔다. 사회적으로는 재벌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그렇지 않아도 문제가 되고 있는 물질만능 풍조를 확산시켰다.대선과 총선 때 『재벌 돈 안먹고 누구 돈 먹느냐』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이같은 금권타락선거에 그치지 않고 돈으로 권력과 명예도 얻을 수 있다는 망국적인 풍조를 정착시킬 위해마저 있었다. 한 재벌이 1년여 동안 정치에 손대면서 빚어낸 경제적 폐해는 그것만이 아니다.정치에 참여한 재벌 전 총수와 관련이 있는 그룹 임직원이 선거운동에 나서는 바람에 생산활동과 수출에 차질이 빚어진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그리고 다른 기업에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높여 많은 대기업이 시설투자를 늦추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한 일이 없는 재벌의 정치지배가 한국이라고 성공할리가 없다.이번 국민당 사태는 재벌의 정치참여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따라서 경제계는 이제 정경유착이나 정경일치에 한눈을 팔지 말고 오직 본연의 임무인 확대재생산에만 전념해야 할것이다.정 전대표는 『시련은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저서를 재 음미하면서 국가경제에 마지막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를 촉구한다. 이번 국민당 사태는 우리 정치인에게도 커다란 교훈이 될 것으로 보인다.줏대없이 이 정당 저 정당으로 철새처럼 옮겨 다니는 일이 자신은 물론 국가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가를 자성해 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재벌과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해야 할 정치인이 정경일치에 한 몫을 했다는데 대해 통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 6공화국 5년간의 부문별 발자취(민주­화합의 시대 열다:3)

    ◎경제기반 선진화/1인국민소득 3천불서 6천7백불로/실업률 줄고 수출 연 10^대 신장/치솟던 물가도 작년부터 안정세 6공화국 경제는 험난한 항해 끝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경제 선진화를 위한 전진을 멈추지 않았다. 각종 수치상으로 나타난 성과가 이를 입증해 준다.국민총생산은 지난 87년 1천2백89억달러였던데 비해 91년에는 2천8백8억달러로 2.2배 가량이 늘어나 지난해말 기준으로 경제규모는 세계 19위에서 15위로 뛰어올랐다.1인당 국민소득은 5년전 3천1백달러 수준에서 92년말에는 6천7백달러로 2배이상 향상되었다. ○수출신장률도 기복이 있기는 했지만 연평균 10.6% 수준을 나타냈고 순 외채 규모는 87년 2백24억달러에서 1백10억달러로 줄었다.88년 이후 치솟던 물가는 지난해부터 안정을 되찾아 4.5% 상승에 그쳤다. 실업률은 출범당시 3·1%수준에서 91년에는 2·3%로 떨어졌다.실질임금도 매년 10%내외씩 불어나 도시건 농촌이건 가구당 소비지출도 이 기간동안 2배로 늘어났다.주택보급률은 76%로 뛰어 올랐다.정부측은 민주화와 국제무역환경의 변화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같은 실적을 올린 것은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노태우대통령의 분야별 경제공약도 대체로 지켜졌다고 밝히고 있다. 노대통령은 『과거 정치적 민주화를 희생하면서 달성했던 경제성장보다도 비록 그 과정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민주화와 병행하여 이룬 지난 5년의 경제발전은 더욱 값지다』고 강조했다. 6공 경제가 겪은 혹독한 시련은 시대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격렬한 노사분규로 생산성은 급격히 떨어진 대신 임금은 한꺼번에 치솟았고 인력부족,도로·항만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태부족등으로 산업의 국제경쟁력은 떨어졌다.대외적으로는 후발국의 추격이 더욱 거세져 해외시장을 잠식당한데다 경제블록화 기술보호주의 환경보호등 새로운 무역장벽에 부딪쳤다. 6공의 경제운용은 근로자의 소득보상적 분배요구와 복지요구를 상당부분 충족시키면서 경제구조를 선진화하여 새로운 국제경쟁력을 창출해야하는 어찌보면 이율배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성장의 둔화,무역역조라는 어려움이 뒤따랐다.특히 국제수지면에서 89년 51억달러의 흑자가 90년 22억달러 적자로 반전됐고 91년에는 87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만큼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여기에는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과소비현상과 향락분위기 팽배가 한몫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다행히 92년 적자규모는 45억달러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일반인들이 피부로 실감했던 경제적 어려움은 주가폭락이었다.89년○투기 근본적 치유 4월당시 지수 1천을 돌파했던 주가는 경제탄력의 약화,주식공급물량의 압박에다 금융실명제파동까지 겹쳐 곤두박질쳤다.정부는 89년말 3개투신사에 은행돈 2조7천억원을 공급하는 긴급처방을 내렸으나 오히려 통화관리에 부담만을 떠안은 역효과만을 냈고 이후 증시문제는 6공정부를 두고두고 괴롭혔다. 주가문제에서 일부 드러났듯 비판론자들은 6공 경제 문제점의 근본원인을 일관성과 신뢰성의 결여에서 찾고 있다.경제팀이 바뀔 때마다 정채기조가 「성장」과 「안정」을 오락가락했다는 지적이다.이에따라 기업은 장기적인 투자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현상타파에만 급급했고 특히 중소기업은 극심한 자금난 속에 도산하는 경우가 속출했다는 것이다. ○거품현상 사라져 또 일부 분야에 있어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한 점도 반성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대표적인 치적으로 꼽히는 주택 2백만가구 건설의 경우 공약의 이행이라는 측면이 강조된 나머지 동시다발적인 투자로 인력난과 자재난을 부추겼고 무역적자 심화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것이다.물론 주택 2백만가구 건설은 결과적으로는 역대정권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못한 부동산 투기를 근본적으로 치유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훨씬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92년에 들어서면서 우리경제는 종전의 「거품현상」들을 걷어내고 서서히 안정궤도에 들어섰다.노사문제가 안정되면서 일하는 분위기가 되살아났고 기업의 기술개발과 경영개선 노력이 확산됐다. 노대통령은 91년까지의 경제운용의 전반적인 흐름을 구조조정기로 규정하고 『지난 5년은 우리경제의 구조를 고도화하고 체질을 선진화한 기간』이라고 설명했다.우리경제가 선진국 진입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지나온 셈이며 이는 다음 정부의 경제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볼쇼이극장 3중고/재정난에 시설 낙후

    ◎보수공사 3백불 엄두 못내… 단원들 출국 러시 세계최고 수준의 발레예술을 자랑하는 러시아의 볼쇼이극장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지난달 볼쇼이극장을 후원해오던 소련 문화부는 해체된지 오래고,러시아 문화부는 아직까지 볼쇼이에 재정적인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원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는 재능있는 단원들마다 서방의 돈많은 예술단에 팔려가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볼쇼이의 자랑이었던 많은 재능있는 예술가들,즉 바리시니코프·누레예프·마카로바 등이 서방에 망명,볼쇼이에 타격을 준 적이 있다.그러나 이들의 망명은 돈보다는 「예술적 환경」때문이었다. 지금은 재능있는 무용수들이 서방극단의 막대한 물량공세에 넘어가고 있다.이미 아틀란토프·셈슈크·무하메도프 등이 서방으로 이적했다.최근에는 이들의 자리를 메웠던 젊은 단원들마저 서방으로부터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무용수들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볼쇼이 발레와 함께 명성을 날리는 볼쇼이 오케스트라 단원·안무가들도 흔들리고 있다. 볼쇼이극장은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경제가 겪고 있는 혼란속에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다. 볼쇼이극장의 블라디미르 코코닌 총감독은 그러나 『우리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아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견딜만하다』고 말한다.2백16년이란 기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볼쇼이극장은 그동안 한번도 독립해 본 적이 없지만 소련의 붕괴로 이제 「예술의 자유」만은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러시아 제국시대에는 왕궁의 부속무대였고 소련공산당 통치 70년동안에는 소련문화부의 통제아래 있었다.소련당국의 통제는 무대위에 올려지는 공연내용에까지 보이지않는 손길을 뻗곤 했었다.스탈린이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조곡 「백조의 호수」의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을 해피 엔딩으로 바꾸게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볼쇼이가 맞닥뜨린 당장의 큰 일은 극장의 내부구조를 바꾸는 작업.지은지가 오래돼서 무대며 관람석 등이 모두 낡고 불편하기 짝이없기 때문에 개조가 불가피하다.이 보수공사에는 약 3억5천만달러의 엄청난 공사비가 필요하다.공사비만 마련되면 오는 95년에 착공,약2년만에 완공할 계획이다. 코코닌 감독에겐 이 2년동안의 공백을 어떻게 메우느냐 하는 것도 큰 걱정거리이다.『1천명이나 되는 우리 단원들은 장기간 무대를 잃게 된다.그동안 볼쇼이무대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는 말한다. 한가지 해결 방법은 해외공연을 계속하는 일이다.실제에 있어 볼쇼이는 그동안에도 해외공연을 상당히 많이,그리고 성공적으로 해왔고 그것이 볼쇼이극장의 가장 큰 수입원이기도 했다.그러나 볼쇼이가 해외공연에서 벌어온 수입은 정부가 모두 차지하고 이 가운데 얼마 안되는 일부만 볼쇼이극장에 돌려주었었다.이제는 해외공연에서 번 돈은 고스란히 볼쇼이의 수입이 된다. 볼쇼이는 지난해 해외공연으로 1백만달러를 벌었으나 정부지원이 거의 끊긴 것과 다름없는터라 악기와 출연자의 의상등 당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금세 바닥이 나고 말았다. 따라서 코코닌감독은 볼쇼이극장의 재정자립을 도울 상업적인 후원자를 찾고 있다.볼쇼이의 상표를 도서 레코드 기념품,심지어는 T셔츠에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상업화하기 위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했다.
  • 「외교정책 과정론」(화제의 책)

    ◎카터 미 전대통령 철군정책 등 해부 미국의 대외정책결정과정을 심층적으로 해부했다.카터전미국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결정으로부터 철수결정의 취소에 이르는 시기동안 정책결정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변수와 변수간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춰 조망하고 있다. 특히 이를 통해 안보와 평화의 갈림길에 투영된 정책결정자의 세계,이상주의 정책기조전개와 좌절,전후 역대대통령의 정책결정스타일과 지도력을 비교해볼 수 있다.또한 카터의 철수정책과 코리아게이트사건에 따른 한·미관계의 시련과 변화를 외교사적 조명으로 알아봤다. 현재 한국학술문화진흥회회장으로 있는 지은이는 언론인생활을 거쳐 재미칼럼리스트로도 활약했다. 최규장지음 을유문화사 6천원.
  • 위성통신시대 이끌 무궁화관제소(사설)

    세계보호무역파고와 국내경제부진 그리고 대학입시부정파동의 시련속에서도 우리는 전진하고 있으며 전진해야 한다.우리나라최초의 통신·방송복합인공위성이 될 무궁화위성을 추적·감시·제어할 지상관제소의 3일 기공소식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말해주고 보여주는 마음 든든한 뉴스라 할수 있다. 총 5백73억원의 예산으로 94년말까지 경기도 용인에 세워질 인공위성관제소는 95년4월과 10월 적도상공 3만6천㎞의 정지궤도에 발사되어 통신및 방송서비스를 하게될 무궁화1,2호 등의 수명이 다할때까지 정상작동하도록 24시간 3백65일의 추적과 감시를 계속하게 된다.기공식에 참석한 노태우대통령 표현처럼 한반도와 우주공간을 잇는 우주통신고속도로의 관제탑이라 할수있다. 추격하고 내리누르는 선후진국 틈바구니의 탈출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선진개발도상의 우리에게 탈출구는 기술개발및 고도화·첨단화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현승종총리도 새해벽두부터 우리 기술개발의 필요성을 특별히 강조할만큼 정부도 이점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으며 많은 재원과 노력을 투입하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우주기술및 산업같은 것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선진국 놀음이라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위성통신정보는 TV·통신뿐아니라 기상·농어업·광업·해운항공등 우리생활과 직결된다.자동차산업이 불러일으켰던 엄청난 기술및 산업·고용파급효과를 무색케할 정도의 잠재력을 지닌 것이다.현대첨단기술의 집합위에서 가능한 동시에 그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다.우주기술산업에의 도전은 곧 그러한 첨단기술산업을 향한 도전의 일환인 것이다. 우리는 작년8월 첫우리기술 인공위성 우리별1호를 쏘아올려 세계25번째 위성보유국이 된바 있다.금년에도 대전엑스포기념의 2호를 발사한다.우리별 위성은 한반도상공을 지나는 10분간의 교신이 가능할뿐인 초보적인 것이다.그러나 젊고 명석한 두뇌들이 의욕적으로 도전하고 있어 우리우주기술개발의 앞날에 기대를 걸게하고 있다.95년발사의 무궁화호는 중형정지위성으로 24시간 교신가능의 발전되고 본격적인 상업용이다. 무궁화위성은 물론 인공위성의 설계재료및 시험과정에는 전기,전자,기계구조,재료,역학등의 첨단기술이 복합적으로 요구된다.무궁화위성사업추진의 한국통신은 자체기술팀은 물론 대한항공등 관련산업과의 공동기술습득및 개발개발노력을 서둘고 있다.지속적 연구개발투자를 통해 선진7개국수준의 첨단기술을 조속히 달성하겠다는 의욕에 차있다. 21세기를 향한 착실한 준비의 진전이요 의욕의 도전이라 생각한다.범국가적 지원과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것이다.
  • 통상외교 강화에 국제화 서둘러야(사설)

    강력한 통상보복내용을 담고있는 슈퍼301조 부활법안이 미의회에 상정됨으로써 미행정부 뿐만 아니라 의회가 보호무역주의의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슈퍼301조는 미통상법 301조로는 무역적자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이 불공정무역국을 특별히 지정,이들 국가의 무역관행을 무너뜨리기위해 89년과 90년 2년동안만 적용키로 한 한시법이고 따라서 91년 자동폐기된 통상법이다.이 법은 일본등 대미무역흑자국을 목표로 제정된 것으로 법 적용기간동안 미국으로서는 상대국의 통상장벽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거둔 반면 내외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이 때문에 부시행정부시절 부활시도가 실패됐다. 국제무역에 있어서 불공정요소는 배제돼야 한다.그러나 불공정의 판단이 어느 일방의 잣대로만 재어서도 안되고 더구나 국제무역질서가 힘의 논리에 지배되어서도 안된다.그것은 건전한 세계무역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클린턴행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19개국의 철강제품에 대한 덤핑예비판정을 내렸고 EC통신장비에 대한 미정부의 구매금지조치를 취해 세계를 보호무역주의의 한파속으로 몰아넣고 있다.여기에 슈퍼301조의 부활법안의 상정은 국제통상질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명백하다. 더구나 슈퍼301조 부활법안과 동시에 상정된 통상협정 준수법안은 과거 슈퍼301조에 또하나의 칼날을 단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이번의 슈퍼301조도 주목표가 일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그러나 슈퍼301조의 위력아래 우리도 지적재산권,농산물문제 등으로 커다란 시련을 겪었고 그 여파로 개방이 불가피했던 품목들도 있기 때문에 우리자신도 슈퍼301조의 목표권안에 들어있다고 봐야 한다.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강건너 불 만은 아닌 것이다.보호무역전쟁의 유탄이 우리에게 날아들 수도 있고 미국의 일방적인 잣대에 의해 우리가 직접목표물이 될수 있다는 점에서 통상외교의 강화와 함께 국제화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법제정에 왈가왈부할 입장에 있지 않다.다만 최근 미국의 통상정책의 흐름이 심상치 않을 뿐 아니라 세계무역질서에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는 금할 수 없다.대외무역에 있어서 불공정관행을 시정하겠다는 슈퍼301조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미국내의 여론도 없지않음을 미국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불공정무역을 시정하면서 상대국의 무역장벽을 낮추는데는 GATT(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규범에 따라 시행되는 것이 가장 소망스러운 방안이 될 것이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4)

    ◎소년시절:15/「화전」의 「ㅌ·ㄷ」날조 과정/최형우 전신진당간부의 「소사」근거로/결성장소서 시기까지 아전인수 조작/6·25때 암살후 명예회복도 안시켜 김일성이 화성의숙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을 결성했다는 회고록의 주장은 그가 「동급생」들보다 5살이나 어린 소년이었던 점과 재학기간이 3∼4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점을 생각해 보더라도 그 날조가 명확하다. ○인민군에 총살당해 그러나 김일성은 북한의 어용학자들을 시켜 명약관화한 이러한 유치한 날조에도 무슨 근거가 있는 것같이 만들고 있다.어용학자들은 그 「근거」로 해방직후 서울에 있었던 최형우가 쓴 다음과 같은 글을 자료로 삼는다. 「1926년이었다.김일성은 자기의 시련과 함께 이상 실현에 필요한 무대와 동지를 찾았다.이·회간(이통현·회덕현 양현의 사이)을 적지로 정하고 동반한 이·계 양인과 같이 이·회의 사회적 중견인 장기명,이정락,현균,김혁,최천,문시선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22∼23세의 청년으로 급진적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으며 신사회 건설에 적응한 학술,사상,문화를 연구하고 있었다. 전반적 환영리에 김일성은 이 동지들과 악수하였다.좌우익의 소아병적 경향을 배제하고 「ㅌ·ㄷ」즉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하였다」. 김일성은 1930년 9월부터 11월까지 장춘의 서쪽 근교에 위치하는 회덕현 오가자에 머문 일이 있었다.이 때 이 오가자에는 삼성학교가 있었는데 최형우가 교원을 하고 있었다.그는 거기서 김일성이 여기에 찾아오는 것을 목격하였고 2개월 정도 그의 동정을 지켜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갖고 있었던 최형우는 해방직후 서울에서 북한에 김일성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그래서 그는 마침 자기가 쓰고 있던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의 1권에 「ㅌ·ㄷ」과 김일성이란 항목을 설정하여 이상과 같은 문장을 실은 것이다. 최형우는 이명영교수에 의하면 해방후 서울에서 신진당 중앙위원이 된 일이 있었고 농림부에도 근무하였다.그러나 그는 6·25사변때 북한 인민군에게 총살당했다 한다.이것이 그에 관한 남한의 소식이다.한편 북한에서는 1985년 무렵까지 최형우란 이름 석자는 알려진 일이 없었다.그래서 필자는 최형우가 북한에서 명예회복된 일이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일본의 와다(화전춘수)교수는 이번에 그의 저서에서 1989년 4월 3일자 노동신문에 「태양과 일생­위대한 수령님께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의 저자인 최일천선생께 베풀어 주신 은정에 대한 이야기」란 기사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거기에는 최형우(일천은 별호)의 「소사」가 66년쯤에 비로소 북한에서 주목받게 되었고 그의 문장이 68년에 나온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에 반영되었다고 씌어 있는 모양이다. ○오기를 최대한 악용 그러나 이러한 기사를 뒤늦게 내게 한 김일성이지만 그는 그가 암살하게 한 최형우의 명예는 회복시키지 않고 있다.반대로 그는 66년부터 이번에는 최형우가 남긴 문장에 난도질을 가하여 그를 다시 한번 능지처참하고 있는 것이다.그 처참한 난도질의 광경은 아래와 같다. ⑴최형우는 타도제국주의동맹(ㅌ·ㄷ)의 결성장소가 이통현과 회덕현 사이 즉 이·회간이라고 하였다.그는 이 장춘 서교에서 교원을 하고 독립운동도 하고 있었다.그러한 그는 당시 목격한 바를 그대로 그의 책에 쓴 것이다. 그런데 김일성은 이 「ㅌ·ㄷ」의 결성장소를 제멋대로 이·회간의 동남쪽에 있는 화전현성으로 바꾸어 버렸다.장춘에서 철도를 타서 반석으로 3백㎞,거기서 다시 도로로 65㎞ 가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화전현성에 그는 「ㅌ·ㄷ」을 일부러 끌고 온 것이다. ⑵최형우는 위의 문장에서 「ㅌ·ㄷ」이 마치 1926년에 결성된 것처럼 쓰고 있다.그러나 그가 회덕현 오가자에 있었던 것은 1930년의 일이고 그가 이곳에서 김일성과 만난 해도 30년이다.한편 김일성은 26년에는 무송과 화전 이외에 간 일이 없었다.따라서 최형우가 쓴 26년이란 30년을 잘못 계산하여 적은 오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김일성은 이 최형우의 어쩌면 단순한 잘못을 최대한으로 악용하여 26년 그가 화성의숙에 있을 때 「ㅌ·ㄷ」이 결성된 것으로 사실을 왜곡하였다. ⑶당시 이·회간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사회적 중견의 한 사람이었던 최형우는 「ㅌ·ㄷ」를 결성한 인물은 장기명·이정락·현균·김혁·최천·문시선 등과 김일성·이·계 양인이었다고 증언하였다.그런데 김일성은 「화전의 ㅌ·ㄷ」을 날조하기 위하여 「이·회간의 사회적 중견」들을 모두 집어치워 버렸다. ○동지이름 처음 밝혀 김일성은 이 날조된 「ㅌ·ㄷ」에도 있어야할 「동지」의 이름에 대하여서는 그 발표시기를 가늠하고 있었다고 이번 회고록에서 처음으로 밝히게 되었다.최창걸 김리갑 이제우 강병선 김원우 박근원 이종락 박차석 등이 「화전의 ㅌ·ㄷ」성원이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이·회간의 ㅌ·ㄷ」을 소재로 하여 「화전의 ㅌ·ㄷ」를 날조하는데 있어서 이상과 같이 역사와 최형우에게 난도질을 하였다. ①「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1」46년 서울 동방문화사간 2천9백30면 ②「사인의 김일성」2천6백78면 ③평전 26면 ④「김일성과 만주항일무장투쟁」53면 ⑤「세기와 더불어 1」1백66면
  • 미「동성연애자 군복무」 쟁점화/대통령령 시행싸고 의회서 이의 제기

    ◎클린턴,마찰 피하려 6개월 연기 결정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동성연애자의 군복무 허용방침을 의회와의 협의를 위해 며칠동안 발표를 연기한다고 27일 밝혔다.이는 그의 정치적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것임을 예고하는 불길한 조짐이라 할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의 법무장관 지명자인 조이 베어드가 상원에서 인준을 받는데 실패한데 이어 동성연애자 문제로 또 한번 정치적 시련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동성연애자 복무허용문제는 법개정 문제가 아닌 대통령의 행정명령권에 속하는 문제여서 클린턴 대통령은 당초 이일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것 같다.그러나 콜린파웰 합찹의장을 필두로 각군 수뇌부가반기를 들고 나선데다 의회에서까지 이의를 제기해 사태가 복잡하게 얽히고있다. 군내부의 반발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의명령으로 해결될수도 있으나 의회의 「반란」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클린턴으로서는 같은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다고는 하나 의회와의 마찰은 가능한한 피해야 할 입장이다.의회와잡음이 있어서는 그의 개혁정책들을 순조롭게 추진할수 없음이 자명하기 때문이다.민주당의 지미 카터 대통령도 민주당이 다수였던 의회와의 협조가 제대로 안돼 고전했었다. 토마스 폴리 하원의장등 민주당 지도부는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동성연애자를 금하는 군규정을 고칠경우 의회가 다른 대처를 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의회내의 상당수 유력 의원들은 또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공화당의 필 그램 상원의원은 『헌법은군의 육성과 운영에 관한 규정을 만들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민주당의 조지 미첼 상원원내총무도 『대통령의 어떤 행정명령도 의회가 입법을 통해 그 명령을 뒤집을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동성연애자 문제와 관련해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의원들은 민주 공화,보수 진보등 정치적 색깔과 관계없이 의회내에 폭넓게 자리를 잡고 있다.무엇보다 문제는 같은 민주당 소속으로 군문제에 상당한영향력을 갖고 있는 샘 넌 상원군사위위원장이 클린턴의 아이디어에 정면으로맞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성연애자의 군복무 허용을 반대하는이들 의원은 우선 민주당이 제출해 놓고 있는 가족휴가법과 건강법등에 수정안을 내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제동을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샘 넌 의원이 동조하게 되면 이 수정안의 통과는 확실시되고 있다.법률논쟁은 차치 하고라도 일이 이렇게 되면 새 출발하는 클린턴 정부가 입을 정치적 상처가 적지않을게 뻔하다. 사태가 이렇게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것은 국민들의 여론이 아직 정리돼있지 않다는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동성연애자의 군복무를 허용해야 하느냐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조사에서 47%가 반대했고 45%가 찬성한 반면 『동성연애자는 군복무에서 제외시켜야 하느냐』는 CNN방송 조사에서는 제외시켜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57%에 이르고있다.또 클린턴 대통령이 동성연애자들이 복무를 할수 있도록 정책을 바꿔야된다고 생각하느냐는 갤럽조사에서 응답자의 53%는 『노』라고 답변하고 있다. 클린턴정부가 어떤 대안을 갖고 의회와 타협하게 될지는 아직 알수 없는일이다.그러나 동성연애를 죄악시 하는기독교국가 군대의 오랜 전통과 관련돼있고 하나의 윤리의 문제이며 군의 사기와도 연관이 있는 이문제가 한 사람의 진보적 생각만으로 고쳐지기에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 “임란문학,전란문화사 연구에 큰 몫”

    ◎소재영·조동일교수 등 공저 「임진왜란…」서 주장/소설·시가·성화·실기문학 등 통해 조명/“상·하층 체험 사실주의 전통 마련” 평가/피란·피해상황·복구·포로귀환 등 소재 다양 지난해 92년은 임진왜란 발발 4백주년이 되던 해.임란 5년뒤에 일어난 정유재란은 오는 97년으로 4백주년을 맞는다.이들 대전란은 조선 봉건체제에 큰 변화를 안겨 주었다.그럼에도 이 전란의 문화사적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이러한 시점에서 당시 신분적으로 대립했던 상·하층의 공동체험문학기반을 추적한 「임진왜란과 한국문학」이 민음사에서 간행됐다. 이 연구에는 소재영(숭실대),정재호(고려대),설성경(연세대),김태준(동국대),조동일(서울대),신동욱(연세대),황패강(단국대)교수등이 참여했다.임란과 더불어 형성된 소설과 시가문학,실화,한시,실기문학을 주로 다루고 있다.이들 문학은 우선 처참하게 희생된 하층인의 처지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또 전쟁체험에서 우러난 소망이 상하공감의 사실주의적 문학전통을 마련한 것으로 해석했다. 소재영교수는 「임진왜란과 소설문학」을 통해 「임진록」을 비롯,「최척전」과 「남윤전」「이한림전」을 검토대상으로 삼았다.이밖에 봉유계열로 「달천몽유록」을 포함시켰다.「임진록」은 임란의 전승설화집의 성격을 지녔으나 소설적 격식을 갖추었기 때문에 역사소설(역사군담)로 보았다.「임진록」을 문헌과 기록문학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옴니버스형 작품으로 조명하면서 「최척전」에 주목했다.특히 조위한의 「최척전」은 소설주인공의 공간적 체험을 중시하고 있다. 「최척전」은 임란포로들의 체험적 사실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실존인물 노인이 남원에서 포로가 되어 일본에 잡혀 갔다가 중국의 복건성등지를 거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나 조완벽이 포로로 팔려 장기·안남등지를 전전하다 귀환한 사실과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이한림전」의 경우 조선에서 일본으로 갔다가 안남에서 부자가 상봉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내용의 소설구조역시 공간관념의 확대현상으로 지적했다. 정재호교수는 「임진왜란과 국문시가」에서 임란소재 현전 시가로가사 16편,시조 10수를 밝혀냈다.이들 시가의 내용을 임란의 피해현황,난에 대한 자아비판,피란,전쟁뒤의 평화,복구,포로의 시가및 귀환의 노래로 분류했다.그리고 이러한 임란의 묘사에는 관념적인 것이 있는가하면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것이 포함되어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이들 시가는 1592∼1640년까지의 시기에 몰려 있는 것으로 가려냈다.이같은 현상은 당대에 전란을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정교수는 주장했다. 그 가사의 하나가 무수히 죽어간 인명살상에 대한 「용사음」이다.「조종 구섭에 도적이 님재도여/뫼마다 죽기거니 골마다 더듬거니/원혈이 흘너나 평육이 성강하니/건곤도 뵈자올샤 피□□ 전혀 업다」라고 되어 있다.임란은 군인간의 전투가 아니라 전국이 초토화되고 문화가 야만에 의해 짓밟힌 것을 상징한 이같은 시가는 우리 가슴에 한이 되어 이루어진 임란문학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설성경교수는 임진왜란의 설화를 현실적 체험의 비극을 곰삭여 자아낸 인간적 여유의 문학으로 정의하고 있다.그는 「임진왜란 체험의 설화와 양상」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우회적으로 따뜻하게 덥혀낸 문학을 임란의 설화로 보고 그 유형을 다각적으로 검토했다.그것은 임진왜란에 대한 신격예시등의 임란이전의 사건설화로부터 임란때의 여성대응설화,임란종결과 보상설화까지 여러 갈래로 나타난다. 보상설화의 대표적 케이스로 「사명당 설화」를 꼽았다.임란에 대한 보복보상심리가 짙게 깔린 이 설화는 사명당이 왜에서 벌인 신통력있는 활동을 통해 7년간의 민족적 시련에 대한 정신적 보상의 명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 서양화가 도문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13)

    ◎신선한 감각으로 원색의 미 묘사/변화에의 열정으로 새 조형방법창출 온힘/「정적질서」 보다 동적 유동세계 표출 돋보여/부친 도상봉화백 그늘벗어나 독자적 예술세계 추구 그림속의 꽃들은 모든 꽃이 활짝 피어 꽃바다를 이룬다.캔바스의 한정된 공간이 아닌 드넓은 벌판에 얼마든지 펼쳐진 채 꽃들은 꽃이 파리 바람에 흩날리듯 꽃향기 퍼뜨릴 듯 꽃마다 싱싱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화가 도문희의 회화세계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유랑의 필치로 원근법과 사실적기법을 적절하게 원용하면서 큐비즘과 포비즘의 요소를 포함시킨 새로운 조형방법에 능란하게 반응하고 있다」는게 원로미술평론가 이경성씨의 말이다. 「언제나 신선한 속도감과 힘을 머금고 있는 그의 화면은 정적인 질서의 세계가 아닌 동적인 유동의 세계를 절제와 생략으로 탐구하면서 격동속에서 미의 원형을 찾아내고 있다고. 도문희씨는 과연 몸속으로부터의 열망과 열정이 끓어 넘치는 힘의 화가다. 그의 작품에서는 물론 그의 일상생활에서도 잠시도 한군데 오래 머물지 않는다.서울에 있는가하면 뉴욕에 샌프란시스코에 콜로라도나 산타모니카 라구나 비치에서 또는 괌도나 하와이의 빅아일랜드에서 화사하고도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지간에 그가 머물고 있는 곳에는 음악이 있고 음악의 흐름에 따른 경쾌하고 격렬한 사색적인 붓놀림이 그치지 않는다.자신의 예술의지와 방법을 위해 그는 자극적인 체험을 얻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한줄기 빛이 물체에 닿는 순간,그 빛은 물체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라고 말한 르노아르의 방법처럼 도문희는 꽃이면 꽃이라는 대상을 공간이동시키 듯이 생명감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화면속에 옮겨놓고 있다.그래서 그의 꽃은 어느때는 무복을 입고 회전동작을 하는 발레리너처럼 생기발랄한 율동적터치로 음악에서의 비오렌토와 알레그리시모의 리듬감을 팔팔하게 되살리기도 한다. ○생명감 화면에 담아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일상생활에서의 그는 될수록 그림과 연관시킨 일들 속에 참여하고 있다.그래서 공식적이거나 형식적인 행사자리보다연극이나 영화 한편 아르튀르 랭보의 「갈증의 희극」을 읽는 것이 그림에 대한 감동을 유발시켜준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없는 도문희란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다.클래식뮤직에서 디스코나 록뮤직,흘러간 닐다이아몬드나 젤리리에 이르기까지 그는 몸속의 세포 하나하나가 신들린 감흥에 물들여지기를 원한다. 아니면 그는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그랜드캐니언의 장엄한 황혼,달빛아래 사슴과 노루들이 뛰어노는 멕시코국경,크라이드강변의 성곽과 끝없이 불어오는 북풍 속에서 어디선가 「히드크리프!」를 부르는 캐서린의 목소리… 경탄과 감탄의 탄성이 절로 질러지는 눈부신 풍광을 찾아 또하나 새로운 여행계획을 세워야 한다. 초기에는 동양화에서의 삼원법과 같은 느낌으로 색채와 형태를 극대화시키면서 인물이나 꽃의 표현에서 몰골법을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극도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를 승화시켜 감각화된 화면효과를 과시해 보이고 있다. 이런 심적충만을 위해 그는 시간과 정열을 아낌없이 투자해 왔다고 할 수 있다.그리고캔버스와의 오랜 대결끝에 빛이 공간속에 흐르듯 몸속에 정제돼 있던 예술에너지를 이끌어 조형언어를 구축해 나갔다. 도문희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최상의 환경에서 자랐다.나혜석의 불우하고 외로웠던 말년의 생애를 뺀다면 그의 화려함과 정열과 적극적이고도 진취적인 창조의식은 초기의 나혜석을 연상시키는 구석을 많이 지니고 있다. ○초기의 나혜석 연상 그의 부친은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서 선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바로 도상봉화백이다. 부친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으나 화가로서의 열망·야망이 꿈틀거리는 순간 그는 그림으로 향하는 두껍고 높은 벽을 스스로 힘차게 꿰뚫었다.물론 한사람의 여성으로서의 행복이 아닌 화가로서의 대성을 목표로 정하자 시련과 고통을 감수하는데 그는 주저가 없었던 것같다.고통없는 성취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상봉화백의 그늘은 예상외로 넓고 컸다.동경미술학교 출신인 부친은 국전창설멤버에다 대한미협위원장 한국미협이사장 예총회장 문총최고위원 예술문화윤리위원 위원장 등등 화단의 중책을 두루거친 거봉으로 도문희는 언제나 「도상봉씨의 딸」로 불리워야했다.그는 부친의 이 후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화격도 특성도 다른 작품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그 역시 쉽지 않았다. 혜화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발레리너를 꿈꾸면서 송범무용연구소에 넘나들다가 엄격한 부친의 반대에 부딪쳐 경기여고 때 그림을 시작했다.대학에 들어가기전에는 부친의 친한 친구이기도 한 김인승씨에게 그림을 사사,「화가지망」을 굳게 결심하고 정확한 데생,탄탄한 기본실력을 닦아 나갔다. 그때는 동아음악궁전이며 종로의 쎄시봉·르네상스음악실에서 하루종일 살다시피 했고 클래식판 수집광에다 블라맹크와 칸딘스키 루오에 심취했었다고 한다. 본래부터 화려하고 솔직한 성격이어서 그는 무슨일에든 쉽게 좌절하거나 좌절해도 실망하지않았다.결과가 안좋을땐 「좋은 경험」으로 돌릴만큼 낙천적인 편이다. 그에게 그림그리기를 권유한 부친은 막상 그에게 붓한번 바로잡아준적이 없었다.오히려 대학재학중 국전에 출품하기위해 열심히 그려논 그림위에다 가위표를 해논적이 있을 뿐이다.도문희는 국전에 출품하고 싶었다.자신의 작가적 재능과 자질을 인정받을수 있는 미술관문이었으나 부친이 심사위원·운영위원·고문등으로 연루되어있어 작품을 자유롭게 낼수없는것이 불편했다.3학년과 4학년때 부친몰래 가명으로 출품해서 연2회 입선했을때도 주변에서 「부친의 후광」으로 아는 것이 억울해서 아예 국전출품은 포기하고 말았다. 부친에게 영향을 받았다면 어릴때부터 아틀리에가 있는 분위기에서 아버니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는 것뿐.오히려 동경여자미술학교 출신인 어머니 나상윤씨가 『나는 아버지때문에 그림을 포기했지만 너만이라도 나대신 열심히 하라』는 배려의 힘이 더 컸다고 할수있다. ○예술적 분이기서 성장 대학졸업후 대한미협과 이대출신그룹의 녹미회를 중심으로 그룹활동을 펼치면서 환상과 기억속의 사물들을 거칠고 대담한 야수파적인 축제분위기로 이끌어 화단의 주목을 한데 모았다. 그러나 기왕에 주어진 화가로서의 과정을 답습하는 형식에서 벗어난다는 차원에서 69년 첫번째 개인전을 연후 그는 미련없이 모든것을 떨쳐버리고 유럽으로 떠났다. 영국과 독일을 거쳐 스코틀랜드에 정착하여 그는 북구의 바다와 하늘의 변화표현에 현혹된 시기를 보냈다. 남청·담청·군청·감청·선록 보라와 옥색에 이르기까지 서로다른 수백가지 청색으로 출렁이는 바다와 천사의 날개 같은 구름의 흐름에 홀려 그는 마치 피카소의 청색시대를 연상케하는 청색조 시기를 이곳에서 거쳤다. 「시간따라 바람따라 하늘은 하늘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단 한장면도 같은 색조,같은 표정을 보인적이 없었다」는 것과 「줄이엣의 푸른얼굴,로미오의 푸른눈매」머리카락과 머리에 장식한 액세사리까지도 굵고 짙은 푸른 선묘로 보여준것이 그시기의 작품들이다. 터질듯한 원색이 분방하게 펼쳐진 그 아름다움이 독특하여 독일의 벰버그 스코틀랜드 그린옥등 지방신문들은 「푸른 잎에 매달린 빗망울처럼 투명한 기쁨이 깃든 경관등으로 크게 취급한바 있다. 그의 부친이 딸의 그림을 칭찬한것은 77년 조선화랑 초대전때다. 그때 전시오프닝에 왔던 여러 화가 평론가들이 도문희 그림의 「축제분위기」를 호평하자 단지 한마디 『마치 이 세상이 천국임을 아는것같다』고 했었다.같은해 도상봉씨는 타계했고 도문희로서는 그때 그 말이 부친에게 들은 유일한 「촌평」이 된셈이다.서울에서는 지난 30년동안 끊임없는 우정의 교분을 갖고있던 선화랑의 김창실씨(화랑협이사장)와 진화랑의 유진씨의 초대전에 응하고 있다. 누구보다 도문희의 신선한 감각과 번뜩이는 젊음의 화면을 아끼는 김창실씨는 도문희의 「장미를 곧잘 「살아있는 보석」에 비유하고 「하탄과 하화가없는 그러나 화치의 극치」의 작가라고 말한다.화단의 대선배인 천경자씨는 「그의 식을줄 모르는 정열」도 정열이지만 무엇보다 「화가의 얼굴을 하고있는 화가」라는데 호감을 갖기도한다. 그는 여전히 무엇에 구애되지도 소속되지도 않는다.자신이 한일을 후회하지않는다.서울에 오면 이제는 다자란 딸과 아들과 친구처럼 어울려다닌다. 그는 화려한 치장을 즐기고 여러층의 사람들과 다양한 교분을 트고있지만 의외로 보수적이어서 안하는것 가리는것 투성이다.자유분망과는 상관없이 「맥주 한모금」등에는 남의 눈치를 보는 면이 있다. 뉴욕에서는 소호를 중심으로 일릭 드라곤루드 그레고리비치 조각가 스티븐 래등과 작품활동을 펼치고 그중 일릭 드라곤은 오는 5월 조선화랑 초대전을 주선해주기도 했다. 그는 지금 비로소 「화가의 길」을 걷게해준 부친께 감사하고 있다. 언제나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어보이는 그에게 누군가 『무엇이 그리 행복하냐』고 물었을때 그는 오히려 『슬픔과 아픔은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축복받은듯 활짝 핀 그의 꽃들은 아마도 남이 모를 아픔과 시련을 딛고 피어난 것이기에 보는이에게 보는것만으로도 진한 감동의 빛을 전달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이 빛의 힘은 조금도 퇴색하는 기색없이 더욱 영롱하고 선명하게 그가 좋아하는 음악과 바람의 흐름에 실려 그의 화면속에서 기쁨의 빛으로 용해되고 있는것 같다. □연보 ▲1938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출생.서양화가 도상봉씨(77년 타계)와나상윤여사(87)의 1남 2녀중 막내 ▲57년 경기녀고졸업 ▲59·60년 국전입선 ▲61년 이화녀대 미대 서양화과졸업(김인승·이준·유경채·심형구사사) ▲80년 뉴욕 그래픽 버딘스 아카데미 ▲69∼72년 유럽체류(영국·옥일·스코틀랜드) 그린옥 아트갤러리·스코틀랜드 글래스코우 아트랠러리·렌프레쉬어 아트갤러리 등 개인전시 ▲73년 서울개인전(미술회관) ▲74년 아시아 련대작가전(일본 도쿄) ▲76년 세계여류미술전(인도네시아) ▲77년 서울 조선호텔 갤러리 초대개인전 ▲79년 진화랑초대 제4회 서울개인전 ▲80∼81년 미국체류(뉴욕맨해턴·버지니아 우드빌리지) 80년 비스비(Bisbe)전참가 ▲81∼8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벰버그(Bemberg)풀다(Fulda)빌트프릭켄(Wildfricken)개인전 ▲87년 서울선화랑 초대「장미」개인전 ▲89년 〃 진화랑 초대 개인전 ▲91년 〃선화랑 초대 개인전 ▲91년 〃정화랑〃 〃 ▲92년 MBC후원 부산호텔 미술관·아천미술관초대전 ▲93년1월 LA 앤드루 셔(Andrew Shire)갤러리 초대전 ▲한국미협·녹미회 회원 ▲작업실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국립현대미술관 간 한국서양화대관(작품수록)
  • 후세인,클린턴정부의지 시험말아야(사설)

    미국의 클린턴대통령 출범에도 불구하고 후세인이라크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클린턴취임직후인 21,22일에 이어 23일에도 후세인의 미사일부대는 이라크비행금지구역정찰 미군기들에 대한 미사일추적및 요격등의 도발을 했으며 클린턴의 미군기들도 연3일째 응징을 사양치않는 강경대응의 응수를 보였다.예상했던대로 대통령직과 함께 골칫거리 후세인도 어김없이 클린턴에게 인수되었음을 확인하는 사태의 괴로운 전개라 하지않을수 없다. 미대통령이 취임한 20일 후세인의 조건부휴전 일방선언등 대클린턴 미소공세로 평화해결의 돌파구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성급한 기대도 있었으나 결국 불과 하룻만의 새도발로 그렇지않다는 사실이 판명되고 말았다. 후세인은 도발사실을 극력부인하고 있으나 그동안의 행적으로 미루어 진실을 말하고 있는것은 미국쪽인 것으로 보인다.부시의 대이라크강경책 고수를 선언한 클린턴의 의지와 강경도를 시험하고 있는게 분명하지만 그래선 안된다.클린턴은 변함없는 강력대응을 하고 있다.경고없는 즉각공격으로 부시 경우를능가 할정도의강경자세를과시하는인상마저준다. 클린턴은 희망의 경제등 국내문제전념에 앞서 대후세인대응의 대외정책에서부터 대통령직수행의 능력과 수완을 시험받는 시련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강력응징은 대응일수는 있어도 대안일수는 없다.변화의 그로선 후세인에 대해서도 부시의 답습아닌 변화의 새정책을 제시하고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야할 최초의 상황에 직면했다고 할수 있다. 클린턴에겐 후세인말고도 자신이 공약한 경제활성화등 국내문제를 비롯,유고유혈분쟁등 관심을 갖고 해결해가야 할 내외문제들이 산적한 상태다.무작정의 후세인 군사응징만 계속하고 있을수 없는 상황인것이다.서방동맹의 단합도 흔들리고 있으며 국제여론도 러시아·프랑스의 비판등 1차때의 일방적지지에서 후퇴하고 있다.후세인동정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취임하자말자 직면하게된 딜레마요 고민이 아닐수 없다. 이라크사태해결의 열쇠는 후세인의 제거냐 그와의 타협이냐에 달려있다고 할수있다.신임미국방 애스핀이 후세인의 제거와 이라크사태해결에는사실상 차이가 없다며 후세인제거를 공공연히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주목된다.클린턴의 강경책이 사실상 후세인의 존재를 용납했던 부시의 그것을 능가할수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것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세인제거에는 그만큼 큰 위험부담도 따른다.그다음의 대안도 없을뿐 아니라 외세개입에 대한 국제여론의 비판과 아랍민족주의반발의 위험등이 그것이다.결국 선택의 여지는 대화와 타협뿐이라 할수 있다.클린턴의 출범은 그 기회이며 후세인은 물론 클린턴도 이 기회를 낭비해서는 안될 것이다.
  • 도덕성의 회복/김상복 할렐루야교회 목사(굄돌)

    우리 민족 반만년의 역사중 이 시대 지금 살고있다는 사실을 나는 대단히 즐겁게 생각하고 있다.삼국시대,신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일제시대나 해방 전후 시대도 아니고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민족역사에서 가장 좋은 시대라고 믿는다.우리 부모님들은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시면서 고생만 하시다가 떠나셨거나 떠나실 날들을 며칠 안남기고 계시다.그 분들은 우리 민족의 고난기에 고통을 뼈속까지 체험하시고는 시련의 씨가 우리 때에 와서 드디어 꽃피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가셨다.그러나 우리 세대는 일제말기와 6·25를 지나며 가난의 고통을 경험했으나 그 고통을 딛고 일어나 오늘과 같은 새 시대를 맞게되는 그 과정에 깊숙이 참여해왔고 사실상 이 시대를 일으키는 한 원동력으로 살아왔던 것이다.그리고 그 수고의 열매를 다소나마 맛보며 살고있다.오늘 우리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가장 좋은 때에 살고 있다. 입고 있는 옷만 하더라도 반만년 역사 속에서 어느 시대에 우리 보다 더 좋은 옷들을 입고 산 적이 있었는가? 얼마전 어느 작은 시골 동네에 갔던 적이 있었다.마침 길거리는 퇴교하는 어린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활짝 웃으며 장난을 치는 아이들은 하나 같이 아름다운 갖가지 색깔의 옷들을 귀엽게 입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시골인지 서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우리들이 어렸을 때를 상기하며 「아,참 좋은 시대가 왔구나!」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최근 북쪽의 김주석은 백성들에게 「이밥에 고기국」을 먹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는데 남쪽에서는 「이밥에 고기국」시대를 지나 건강식을 찾아 주부들이 애를 쓰고 있다.미국 백악관 앞에서는 집없는 사람들이 어쩌다 겨울에 굶거나 얼어죽는 사람도 가끔 나타나지만 이 나라에서는 지금 굶어 죽지는 못한다.알려지기만 하면 정부든 사회든 이웃이든 간에 도움의 손길이 오기 때문이다.어디를 가도 자가용들이 너무 많이 길에 깔려있어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언제 우리 역사에서 지금처럼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본적이 있었나? 경제,사회,교육,문화,예술,체육,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해왔다.놀라운 일이다.이나라에서는 죽도록 공부하지 않고는 대학을 떨어질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그동안 정치와 도덕성 이 두가지가 큰 문제였는데 지난번 선거를 통해서 이제는 정치 세계마저도 또 한단계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정치와 함께 도덕성의 회복을 통해 우리가 내적 변화를 한번만 창출해 낼 수 있다면 우리 민족의 최선의 날들은 다가오게 될 것이다.이런 날들이 우리 시대동안에 오기를 바란다.
  • 어려운 환경 과감하게 극복한 인간승리/검정고시 출신들 수기집 출간

    ◎전국동문회 추진 5년만에 결실… 훈훈한 화제/교육자·변호사·의사·학생 등 27명 참여/힘겨웠던 과거 육필로 담담하게 회고 검정고시출신 27명의 수기모음집 「내삶의 가장 소중한 선택」(한빛지적소유권센터)이 출간돼 연초 출판가에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수기집은 김재규 현대고등학교 교장,이민영 변호사,신한동 한남대교수,장무호 한의사,권진수 교육부사무관,박영립 변호사,최복현 시인,이재선 공인회계사,홍대유 한국마사회기수회장,소설가 송영씨등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인사들을 비롯 교사,대학생,자영사업가등이 필진으로 참여했다.이들은 「눈물젖은 빵」과 그 빵이 준 교훈,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가시밭길을 수기를 통해 털어 놓았다. 소설가 송영씨는 이 책에 실린 「나의 길」이란 수기에서 『파고다공원옆에 종로시립도서관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8개월동안 무섭게 고교과정을 독습하고 가까스로 대학(외국어대 독어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하마터면 학력이 중졸로 끝날뻔했는데 간신히 턱걸이를 한것이다』고 자신의 대입검정고시시절을 회고했다. 수기집발간위원장을 맡은 황종환씨(변리사)도 「내삶의 중간지점에 서서」에서 『자신의 걸어온 길을 글로 표현하기까지에는 얼마간의 용기가 요구되는 것같다.그러나 나는 내 살아온 삶의 대부분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중략)그동안 알게 모르게 수많은 분들에게 받아온 고마움을 잊지 않고자하는 마음과 그 고마움의 빚을 되돌려 드리기 위해서…』라고 고백했다. 수기집은 전국검정고시동문회(회장 박영립)가 89년부터 추진,5년이 지난 지금에야 빛을 보게 된 것.지난16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변형윤 서울대명예교수는 『젊음과 고생과 성공은 불가분의 함수관계』라면서 『참담하기까지 한 숱한 고생과 쉽게 좌절할 수도 있는 주어진 환경을 과감하게 극복한 이 분들의 이야기는 인간승리의 참모습이다』라고 격려해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다. 이 책은 「그 춥고 매섭던 겨울이」「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자전거 페달을 밟듯이」「산넘고 산을 넘어」「참으로 힘들었던 외로운 싸움」「회상」등 6장으로 나눠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시련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육필수기로 가득차 있다.책말미에 실린 「이 책이 나오기까지」에서 편집책임을 맡은 권지현씨는 『집필의뢰를 받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자기가 지내온 과정을 한번쯤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막상 원고를 쓰는 일에는 난색을 표하기 일쑤였다』라고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특히 사회적인 지명도를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 「검정고시출신」이라는 숨겨온 과거를 털어 놓아야하는 어려움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 클린턴어록(외언내언)

    2차대전직후 미국에선 아이갖기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다.이른바 베이비붐이며 이때 태어난 아이들이 베이비붐어다.미소냉전속에 나고 자라고 성숙한 전후세대다.새 미국대통령 클린턴이 46세의 바로 그 베이비 부머.미국의 변화를 부르짓고 있다.그가 소련붕괴의 탈냉전 시대를 이끌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필연인지 모른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그 동안의 그의 어록은 그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아메리칸 드림(미국의 꿈)을 지키기위해 일하고 싶다.새로운 지도력이 요구되고 있다.의사나 예술가가 되려했으나 고교시절(63년)케네디와의 악수가 계기가 되어 정치에 뜻을 두게 되었다』출마선언의 변이요 회상이다. 『대일무역적자의 25%는 일본책임이지만 75%는 미국자신의 책임이다.독일과 일본은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에 포함되어야 한다.미국은 냉전종결후 시련에 직면해 있다.이를 계기로 미국을 다시 강하게 만들자.그것을 할수 있는 것은 우리 젊은 세대다』 『이것은 열심히 일해 세계의 경제경쟁에서 이기려는 미국민의 승리다.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에 살고 있다는 새인식을 필요로 한다.그런 인식이 없으면 아메리칸 드림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대선승리선언의 변이다. 『민주가치의 세계적 확산이 필요하다.미국은 인권의 개선을 계속 주장해야 한다.미국 정부의 강경한 인권자세는 문제를 개선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중국 관련 대목이다.『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은 크게 진전되고 개선되었다.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통일을 바란다.북한의 핵개발이 성공해선 안되며 미국은 한반도 안보유지 세력으로 계속 남을 것이다』노태우대통령과의 전화내용이다. 그리고 20일취임사에선 『우리의 결정적 이익이나 세계의 의지와 양심이 도전받으면 가능한 평화외교로,필요하다면 무력으로 임할것』이라 선언했다.의욕넘치는 그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비는 마음이다.
  • 우수교원확보는 가장 큰 교육투자다(사설)

    민자당이 교원의 처우를 국영기업체수준으로 보장하는 등 교원지위향상을 위해 「우수교원 확보법」을 제정할 방침이라고 한다.이는 「교육대통령」을 약속한 김영삼차기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전교조」파동을 비롯한 갖가지 정치적 시련 속에서도 본연의 위치를 지키며 피치못한 홀대속에서 교직의 사명을 다해온 교직자들에 대한 중요한 약속이다. 또한 우수한 인력을 교육요원으로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도 교원의 지위는 향상되어야 한다.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인재를 기르는 길이 최선이다.인재를 기르려면 대학 과정의 전문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라나는 싹의 시기부터 가꿔야한다.피아제같은 교육심리학자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린이의 지능은 3살때부터 발달을 시작하고 6살이면 일생의 85%이상이 완성된다는 것이 정착된 이론이다.6살이면 이미 늦다고 할 만큼 어린이의 지능은 일찍이 개발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활이 걸려있다고 할 수있는 경쟁력강화를 위한 과학기술 발달의 요체도 실은 기초교육에서 좌우된다.어린 세대의 기초교육을 맡을 교원의 질이 우수한 인력으로 충원되지 못한다면 인재의 초기제조과정에서 실패하는 것과 같다.「우수교원 확보법」이 그같은 기저에서 출발한 제도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전국의 40만 교원의 모임인 한국교총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사명감으로 참을성있게 연구하고 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현실의 불만과 욕구가 쌓여 운동권적 발상에 동조하는 교원을 양산시킨것도 지난날의 실패에 의한 부산물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교원의 처우가 적어도 국영기업체 이상은 되어야한다는 것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이는 국가가 배려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처우를 교사에게 보장하려는 국가의 의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나라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인력이 교직자라는 메시지를 유지한다는 뜻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교원에 대한 처우가 봉급수준으로만 머물지 않아야 한다는 일도 함께 당부한다.국민학교마다 사환직제가 없어서 교감선생님은 전화당번이 되기도 하고,일선학교의 재량권이 아직도 많이 제한적이며 교과 전담교사에 대한 배려가 별로 개발되지 않는등 현실은 교사에게 품위있는 직업인으로서의 긍지를 못살려주고있다.「선생님」들에게는 대우도 중요하지만 교직의 길에 대한 자존심도 중요하다.또한 사립학교에 대해서도 공립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도록 정책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은 거듭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우수교원 확보가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교육투자임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 스티븐 호킹의 삶과 그의 이론 등 다뤄(화제의 책)

    ◎「새로운 우주이론…」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이라는 희귀불치병에 시달리는 아인슈타인이후의 최고 과학자 스티븐호킹이야기.전기도 아니고 딱딱한 과학이론서도 아닌 열정적인 한과학자의 삶이 감동적으로 담겨 있다. 「시간의 역사」를 통해 과학계의 전설적 인물이된 호킹이 유명해지기까지의 역경과 유명해 지고 난뒤의 시련,그리고 블랙홀연구이후 그의 새로운 업적인 「TOE이론」(모든 것의 이론)을 설명해 준다. 이 책을 통해 호킹과 함께 시공간을 헤치면서 우주의 신비를 찾는 모험여행에 빠져 들다보면 인간에게 있어서 신체적 장애란 하찮은 것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닭게 된다. 키티 퍼거슨지음 도서출판 대흥 4천5백원.
  • 작가 황석영(외언내언)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이 범민련과의 결별을 선언했다.『국내의 정치적 변화등이 범민련을 결성할 당시와는 많이 달라져 범민련의 시대적 사명은 끝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 결별선언을 접하며 생각나는 일이 있다.범민련의 이름으로 북한을 드나들며 화려하게 「진보적」행보를 펼치던 91년께 한 인터뷰에서 그는 김지하씨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이념의 토대나 문학적 전제를 공유한다고 평해져온 김지하씨의 「좌절」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어려운 시련을 겪은 김씨의 심신이 건강하기를 바랐는데….일제시대 변절한 문인들을 두고 「조문」을 썼던 사람들처럼 할수도 없고.김씨에 대해선 논리적 답변을 피하고 싶다』 김지하씨의 「변절」에 조문을 쓰고싶어했던 그때의 심경과 지금 범민련에 「결별」을 선언하는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 잠시 궁굼증이 들었다. 당시에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들어가(귀국)구속되기 보다 명망성을 유지하며 밖에서 통일운동 분야의 해외 파견임무를 수행한다는 조직의 결정에 따라 여기(베를린)에 머무를 뿐이지 나는 망명작가는 아니다』여기서 말한 「조직」이 「범민련」임을 우리는 안다.「임무」가 잘 수행되어 다른 세상이 되었더라면 미국에서 영주권을 얻고 주저앉는 생활은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궁굼하다.김일성주석과 정다운 표정을 지어가며 선택받은 사람처럼 우쭐해보이던 그의 얼굴도 우리는 기억한다.범민련과 굳이 결별까지 선언한 것을 보면 「상황의 변화」로 사명을 끝냈기 때문이라는 그의 변해도 부자연스럽다. 그렇기는 하지만,우리는 이 작가를 잃고 싶지는 않다.다소 나대지만 재능이 빛나는 보배로운 이 작가를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이다.그도 필경 돌아오고싶을 것이라고 믿는다.범민련과의 딱부러지는 결별이 그런 심리적 정돈의 선언이라고 보인다.모국어라야 빛날 수 있는 소중한 우리 작가가 그만 유랑을 끝내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 부문별 새해풍향 예측과 대응처방

    ◎민주화·자율화·지방화 가속… 93년 변화의 흐름 빨라진다/정치/문민정치 원년… 「강력한 정부」 출범/불법엔 단호대처… 국민엔 편안한 정부로 금년은 정치민주화가 정착되는 해가 될 것이다. 권위주의의 낡은 틀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87년 6·29선언이후 부터이다.직선에 의해 6공정부가 구성됐고 민주화 조치가 착실히 이행되어 왔다. 6공 5년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고 과연 민주화가 지고지선이냐는 회의도 낳을만큼 혼란도 겼었다. 그러나 지난12월 대선에서 다시 직선으로 새 대통령이 뽑혔다.정부가 중립을 선언한 가운데 대선이 치러졌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정통성을 확보한 대통령이 선출된 셈이다. 나아가 민간인 출신이 민선대통령이 됨으로써 군의 정치개입문제라는 오랜 시비를 불식시켰다. 올 2월에 출범하는 새 정부는 그런 점에서 홀가분하다. 6공 정부는 탄생초기부터 5공이전의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봇물터지듯 나오는 민주화욕구,근로자들의 임금투쟁 등으로 일부 사회혼란도 일었다. 하지만 이번 새 정부는 명실상부하게 민주화를 착근시키는 역할을 수행할게 틀림없다.6공 정부의 시련이 새 정부 출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00년대를 바라보는 새 정치는 돈 안들고 깨끗해야한다.행정이 보다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능률적이어야 한다. 국민·기업 등 민간부문에 대한 간섭을 줄이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정치가 펼쳐져야 한다.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돈안드는 정치가 필수적이다.제도적·심리적으로 불법정치자금은 안 쓰고 못 쓰도록 하지않고는 이권,정경유착,부패에서 나오는 「검은 돈」을 막을 수 없다. 행정도 이제까지의 양태에서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권위시대에서 민주사회로 넘어오는 과도기에는 다소 법에 어긋나는 요구라도 강제로 제어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합법성·정통성이 완전히 확보된 지금 어떤 탈법에 대해서도 과감히 대처할 토대가 충분히 마련됐다고 볼수 있다. 정부는 불법에 대해 단호하면서도 국민을 편하게 하고 봉사해야 한다.능률적이고 생산적인 정치와 국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행정이 정착되는 원년으로 금년이 기록되어야할 것이다. 국회나 정당도 파벌싸움을 끝내고 건전한 정책대결을 벌이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특히 야당은 대안도 없이 정부·여당을 무조건 비판하는 독선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토론문화가 꽃필 수 있다. 중앙정치·행정의 민주화와 함께 지방자치시대도 본격화될 것이다.이미 구성된 지방의회활동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지방자치단체장선거도 곧 실시되면 명실상부한 지방분권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경제/“고통분담” 경제주체의 각오 필요/UR 슬기롭게 대처… 선진국 웅비 준비를 새해 우리나라 경제는 타결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우루과이라운드와 권역주의 태풍을 온몸으로 맞아야한다.미국의 클린턴 새행정부가 어떤 강도의 무역압력을 행사해 올것인지도 가늠키 어렵다. 새해에 등장할 외적장벽들은 대처방법에따라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악재로 작용할수 있다.수출로 살아가는 우리경제가 다시 일어설 것인가가 올해 결정될것이며 따라서 각경제주체들의 비상한 각오를 요구하는 특별한 한해가 될것이다. 우리경제는 지난 2년여에 걸쳐 이른바 거품을 빼는 구조조정노력을 경주해왔다.기업부도가 느는등 고통도 따랐지만 노력은 어느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수지가 예상보다 낮은 적자를 기록하고 연말물가가 4%대를 지켰다.설비투자가 심리불안으로 위축되고 있지만 자동화설비로의 전환과 연구개발비투자확대추세등도 구조조정노력의 성과로 볼수 있다. 새해 우리의 경제전망은 7%성장이 어려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저물가와 국제수지안정기조는 계속해 유지될 전망이다.새정부는 어느정도일지는 알수 없으되 경기부양책을 쓸것으로 짐작되고 있다.쌀개방 압력을 앞에두고,또 새정부 출범에 온국민이 동참할수 있는 분위기조성을 위해서라도 어느정도의 경기부양책사용은 불가피해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경제가 구조조정의 완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면서 또 외적장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면서,동시에 새정부출범에 따른 경제외적논리를소화해야한다는데 있다.말하자면 물가안정과 국제수지안정을 유지하면서 경기활성화를 도모해야하는 것이다. 유럽시장은 단일화됐다.권역주의가 활개를 칠것이 확실시된다.그런속에서 권역주의를 거부하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의 조기타결이 우리경제에 유익하지만 쌀개방문제가 앞을 막고 있다.이문제는 어쩌면 보다 철저한 경제논리로 국민을 설득해가면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부분적인 경제활성화도 필요하다.그러나 그러한 경제활성화는 구조조정노력,안정화시책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집행되어서는 안될것이다. 이문제의 해답은 쉽다.설비투자와 연구개발투자에 재원을 몰아주되 민간소비는 억제해가는 것이다.총액임금제도 계속해 추진되어야할 사안이다.모두가 각 경제주체의 고통분담을 위한 비상한 각오를 전제로 해야한다. 새정부는 왜곡된 금융관행과 산업지원정책을 과감히 손댈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다.새정부출범이란 시기성과 산업정책이 바뀌어야한다는 국민적공감대가 동시에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위주로의 실질적인 정책방향 수정,국민의 합의를 바탕으로한 안정화노력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올한해를 구조조정을 완료하고 다시 일어서는 한국경제를 보는 기회로 삼을수 있다. 대내외 경제여건은 어렵다. 정부의 경제관련제도 개혁이 필요하고 국민의 고통분담의지 확인이 필요하다.그속에서 우리경제는 새로운 도약을 기대할수 있을 것이다. ◎외교/전방위외교 펼쳐 통일환경 조성/북한 점진 개방… 김 부자체제 당분간 지속 새해 국제질서의 중심무대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이 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남북한,그리고 이를 둘러싼 미국,일본,중국,러시아등 4강의 역학관계에 의해 국제환경의 변화가 가늠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중에서도 핵심은 남북한관계이며 최대이슈는 남북한상호핵사찰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에도 이론이 없다. 그만큼 새해는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더욱 높이고 남북한공존공영의 기틀을 마련하는 「도전과 응전」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 8월 중국과 수교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전방위 외교체제를 갖추었고 한반도안정과 평화통일을 위한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통일을 위한 외적 장애를 제거하는 한편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촉진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말에는 남아공,베트남과 잇따라 국교를 맺어 수교국은 1백70개국으로 늘어났다. 이제 우리외교는 외형적 풍요에서 내용과 질적인 면의 성숙과 심화의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미국,일본등 전통우방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면서 러시아,중국과의 선린우호관계를 증진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외교역량과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를 통해 우리의 통일방안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획득하는 「통일외교」를 적극 추진해 나가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지역을 동북아로 축소시켜 볼 때 예상되는 변수는 클린턴행정부의 출범에 따른 미국의 대외정책의 변화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그러나 한·미관계에 있어서는 상호 호혜적이고 동반자적인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클린턴당선자는 주한미군이 계속될 것이며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막기 위해 한·미 두나라가 계속 협조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이미 분명히 했다. 우리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는 통상분야를 중심으로 더욱 발전돼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 국가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복병으로 지목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한층 심각해 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군비증강이 역내 국가들의 경계의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러시아간의 영토분쟁,대만문제 등도 이 지역 평화와 안정에 대한 불안요인으로 꼽힌다. 북한은 점차적으로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설 수 밖에 없겠지만 현재의 김일성­김정일체제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국제적 압력에 따라 남북상호핵사찰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계적으로 시각을 넓히면 경제이기주의,지역주의의 확산에 따른 「생존을 위한 경쟁」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데는 정부당국의 힘과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온 국민의 적극적인 호응과 참여,이를 통한 민간외교자원과 능력의 최대 활용이 절실한 시점에서 우리는 새해를 맞고 있다.
  • 계유년 정국 어떻게 펼쳐질까/정치부기자 방담

    ◎강여 재출범속 야재편 변수로/민자,문민정부 맞춰 단일체제로 전환/DJ 빠진 야권,세대교체바람 거셀듯/UR·통상압력 새 정부 지도력 첫 시험대/올 정치쟁점 없어 민생국회 운영 기대/교착 남북대화 국제여건 변화 활성화 전망 희망과 기대로 가득찬 계유년 새해가 밝았다.국민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한 문민정부의 출현을 앞두고 「안정속의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소망은 뜨겁다.지난해 총선·대선과정을 거치는 동안 정계는 어떤 변혁을 겪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신년에는 정국판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현장에서 취재한 정치부 기자들의 방담으로 역어본다. ­해가 바뀔때마다 지난해는 다사다란했다고 이야기들 합니다.그러나 92년 지난해는 정치사적으로 볼때 정말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헌정사상 가장 공명했다고 평가되는 대통령선거를 치름으로써 성숙된 국민역량을 과시했지요.또 통치차원에서 볼때 노태우대통령이 중립내각을 구성해 정통성있는 차기정권창출을 도왔습니다.외교문제에 있어서도 6공정부의 최대역작이라고 할수있는 북방외교가 중국·베트남과의 수교로까지 이어지는등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올림픽에서는 최초의 금메달을 여갑순선수가 따냈고 마지막 날에는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금메달도 황영조선수가 따냄으로써 우리민족의 능력과 자신감을 세계에 떨친 해였습니다. 따라서 지난해의 이같은 국가적·국민적 성취감을 바탕으로 계유년 올해는 희망찬 문민정치시대가 개막되고 현안인 경제회복등에 국민역량이 모아져 통일기반조성의 원년이 될것으로 기대됩니다. ­올해는 김영삼대통령당선자의 새정부출범으로부터 사실상 시작됩니다.지난 연말 구성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4일부터 본격 가동,정권인수인계작업에 들어 갑니다.김당선자는 일단 역대대통령중 가장 좋은 조건에서 출발한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무엇보다 42%라는 역대선거사상 최다의 지지율로 당선돼 국민적 공감대가 높습니다.또 직선을 통한 최초의 문민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정통성시비도 없습니다.청산해야할 과거도 없으며 부정시비도 없습니다.따라서 김당선자는 역대대통령들보다 걸림돌이 없는 상황에서 신한국건설이라는 자신의 개혁의지를 펼칠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통성시비 없어져 김당선자가 평소에 늘 주창해왔듯이 「인사가 만사」라는점에서 우선 새정부 구성멤버의 면면이 국정방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겠지요. ­정치권은 새정부출범과 함께 새로운 여야관계도 정립될것으로 봅니다.야당들은 체제정비를 끝내고 대정부·대여당공세수위를 높일것입니다.그러나 연초까지는 뚜렷한 정치이슈가 부각되지 않고있어 여야는 주로 민생문제·경제문제·국제관계등에 초점을 맞춰 공방을 벌일것으로 예상됩니다.올해는 선거도 없어 여야는 진정으로 민생을 위한 국회를 운영하겠다고 서로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정치상황은 특정이슈가 없어 다소 평온한 가운데 출발하겠지만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2월중 타결되면 국제통상압력과 어려운 국내경제가 맞물려 우리 정치권의 지도력을 시험하는 첫 시련요소가 될것으로 전망됩니다.UR협상타결결과 개방여파는 전례없이 강하게 밀어닥칠것으로 보입니다.따라서 김당선자나 새정부는 무엇보다 우선해서 통상문제에 대한 모종의 결단이 불가피한 셈이지요. ­올해는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전방위외교를 펼칠수있는 기반이 확립될 전망입니다.올해중 이집트와 수교가 예정되어 있으며 시리아 라오스 캄보디아등과도 수교협상이 마무리될것입니다.미국의 클린턴 민주당정권이 들어서면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전망됩니다.교착상태에 빠진 일·북한간의 수교 교섭도 진전될것으로 보입니다.지금 핵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대화채널도 국제여건변화등에 발맞춰 활성화될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한마디로 총선에서 대선에까지 이르는 「정치의 해」였습니다.연초부터 민자당에서는 총선전 대권후보결정문제를 놓고 계파간 알력다툼이 시작됐지요.또 이미 야권통합을 했던 민주당은 전열을 가다듬고 대여공세수위를 높여나갔습니다.이런 와중에 정주영씨가 현대그룹조직을 바탕으로 국민당을 창당,정계에 파란을 일으켰지요.그러나 정씨는 재벌의 정치참여및 기업동원문제로 두고두고 구설수에올랐습니다. ­3·24총선결과 민자당은 1석이 모자라 과반수의석획득에 실패했습니다.반면 국민당은 창당2개월만에 31석을 얻어 원내교섭단체로 등장했지요.총선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국민당의 약진과 무소속의 대거 당선이었습니다.이후 각정당은 무소속영입작업을 경쟁적으로 벌여 곧 여대야소의 균형을 유지하게 됩니다.이때 개인적이해에 따라 이당저당으로 옮겨다닌 인사가 많아 철새정치인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한 예로 모의원은 민주당에서 국민당으로 옮겨가 전국구로 당선된뒤 대통령선거에 앞서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가기도 했지요. ­지난해의 정당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할수 있는것은 집권당의 대통령후보경선이었습니다.경선전후에 다소간 잡음은 있었지만 헌정사상 최초인 집권당의 후보경선은 이미 대통령선거의 정통성까지 담보하는 일이었지요. ­그러나 민자당은 경선후유증으로 상당기간 몸살을 앓기도 했습니다.김영삼당선자의 경쟁자였던 이종찬의원이 마지막 순간 경선을 거부해 당내파문을 일으킨 것입니다.이종찬의원은경선후 김영삼당선자와 만나 당내잔류를 결정했다가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탈당했습니다.그후 이의원은 대선에 앞서 새한국당을 창당,대통령후보에 출마했다가 또 중도사퇴하고 국민당과 합류하는등 우여곡절을 보여 주었습니다. ­민자당의 경선후유증은 이의원쪽을 도왔던 일부의원들이 탈당,민자당의 반대쪽에 서 대선을 치르기도 했고 박태준최고위원의 경우는 탈당과 의원직사퇴로 사실상 정계를 떠났습니다.결국 민자당은 내부진통을 겪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계파가 와해되고 대선승리라는 최대목표를 달성한셈이 됐지요. ­정당들이 대권경쟁을 공개적으로 시작한 10월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대통령출마설이 정가의 화제로 떠 올랐습니다.김회장의 일련의 정치적 발언과 그룹차원의 준비움직임이 거의 김회장의 출마가 기정사실화된 상황까지 갔습니다.그러나 현대에 이은 대우그룹의 정치참여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고 김회장자신도 민자당을 탈당한 이종찬·김용환·장경우의원등과의 신당창당문제·대권후보결정문제등에대한 논의결과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려 걸국 불출마선언을 하게 됐습니다. ○북방외교 마무리 ­6공의 최대치적중의 하나로 꼽히는 북방외교는 지난 8월 중국과의 수교로 사실상 마무리되었습니다.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외교적 협력체제를 완성하여 한반도 안정과 평화통일을 위한 국제적 여건조성에서 획기적 진전을 이루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중단기적으로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북한저격수들의 북경잠입 첨보가 있기는 했지만 노태우대통령의 방중때 중국측이 경호문제등에 있어 보여준 각별한 배려는 인상적이었습니다.한국의 높아진 위상과 더불어 북방외교의 구체적 성과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방문에 앞선 노대통령의 유엔방문에 대해서는 외화낭비라는등 처음에는 말도 많았지요.그러나 노대통령이 유엔출발 이틀전에 9·18결단을 내리면서 시비자체가 사라져버렸습니다.노대통령이 출국하고 귀국하는 날에는 3당대표가 함께 공항에 나오는 이채로운 모습도볼수있었습니다.노대통령은 유엔총회연설을 통해 북방외교완성과 더불어 고양된 우리의 외교적 역량과 위상을 국제무대에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공명선거 기반조성 ­노대통령은 지난해 1월 방한한 부시미국대통령,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가졌고 9월 중국방문을 통해 중국지도자들을 만났으며 11월에는 옐친러시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등 한햇동안 한반도주변 4대강국의 정상과 회담을 갖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노대통령이 지난 10월 하루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일정상회담을 가진 것도 정상의 실무방문이라는 새로운 외교패턴의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북방외교는 지난 22일 베트남과의 수교로 대미를 장식했습니다.우리의 수교국수도 이에따라 1백70개국으로 늘어났지요. ­차기정부는 국제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지지,협조할 수 있는 국제적 통기반을 조성하는 「통일외교」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노대통령의 6공정부는 결국 대통령의당적이탈과 중립내각출범이라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공명선거기반을 조성하고 문민시대의 정통성확보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후 출범한 현승종총리의 중립내각은 대통령선거를 공명하게 주도했고 6공정권마무리작업에도 열심히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현총리는 40여년간 교육계에만 헌신해온 존경받는 학자로서 노대통령의 「삼고초로」에 끝내 총리직을 수락하게 되는 아름다운 일화를 남기기도 했지요. ­이번 대선과정에서 정치권은 상당히 구태를 벗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유권자들의 의식수준도 높아졌다는 긍정적인 점수를 받았습니다.무엇보다도 공명선거풍토가 정착되었고 과거처럼 폭력과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원인을 제공했던 관권·부정선거시비가 사라졌지요. ­대통령선거결과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42%라는 선거사상 최다득표율로 당선됐습니다.이같은 선거결과에 대한 정치적 의미는 크게 문민정치시대의 도래와 30년간 계속돼온 양금정치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것입니다.지명이 아닌 경선을 통해 후보로 선출된 김당선자가 집권당의 프리미엄없이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는 사실은 차기정권의 정통성을 확고히 했다는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양김정치시대 종언 ­또 선거결과에 대한 경쟁자들의 승복은 국민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졌지요.당락이 결정되자 김대중·정주영후보는 김당선자에게 따뜻한 축하를 보냈습니다.김대중후보는 김당선자에 대한 축하뿐 아니라 정계은퇴를 선언해 그의 민주화과정에서의 업적을 기리는 많은 국민들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30여년간 민주화투쟁대열의 동지로,경쟁자로 양대산맥을 이루었던 양금씨가 이제 한사람은 새시대의 주역으로,한사람은 역사의 평가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정치의 무상함을 느끼게 했지요. ­김당선자는 이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출범시켜 새정부의 개혁구상을 구체화 시키고 있고 정부도 정권인계작업에 부산합니다.김당선자의 깨끗하고 강력한 정부출범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도 큽니다.김당선자는 「신한국건설위원회」를 발족,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분야에서 나라발전을 저해하는 한국병을 진단,이를 치유하는 것으로 「신한국」을 건설한다는 구상입니다.또 강력한 정부를 뒷받침하기 위해 민자당도 단일지도체제로 개편할 방침이지요.그러나 김당선자는 강력한 정부의 힘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깨끗한 지도자로부터 비롯된다고 강조하고 있어 부정부패추방에도 앞장설 것으로 기대됩니다. ­93년초반은 새정부출범과 야권재편등으로 새로운 정치판도가 형성되리라는 전망입니다.민자당은 집권당으로서 더욱 체제정비를 확고히 다질것으로 보이며 민주·국민당도 서서히 선거후유증에서 벗어나 전열을 가다듬을 것입니다.특히 민주당에서는 김대중대표이후의 당권경쟁및 지도자부각이 최대현안으로 떠올라 있어 새대교체바람이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지요.국민당도 정주영대표가 당무에 복귀했지만 새로운 지도체제확립등 숙제가 산전해 있습니다.민주·국민등 야권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야권통합문제가 거론되고 있기도 합니다.42%의 지지와 원내과반수를 훨씬 넘는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자당의 독주를 견제할수 있는 강력한 야당이 출현해야 된다는 논리이지요.그러나 아직까지 김대중전대표나 정주영대표의 영향력에 필적할 만한 지도자그룹이 선뜻 부각되지 않고 있어 야권은 체제정비과정에서 당분간 진통을 겪을 전망입니다. ­올해의 정치적 과제는 무엇보다 균형있는 여야관계가 재정립,의회가 국정을 뒷받침할수 있느냐 하는데 있습니다.14대국회가 출범한지 3달이 넘도록 원구성도 못했던 「의정실종」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지난해 정기국회도 대권정국에 휘말려 제기능을 못하지 않았습니까.김당선자가 야당도 국정의 동반자로서 수시로 협의토록 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타협과 생산적인 정치관행이 새정부 출범초반 어떻게 뿌리내리느냐에 따라 신년정치풍향도가 결정될 것입니다. □참석자 김만오차장 채수인기자 김명서〃 김경홍〃 황진선〃 이목희〃 양승현〃 유상덕〃 한종태〃 구본영〃 유 민〃 문호영〃 윤두현〃 김현철〃 이도운〃
  • 1993년의 지구촌 정세 본사 특파원들의 분석

    ◎미서 불어오는 신상업주의 바람/연해주 등 한­러합작개발 본격화/북경/시장경제 본격 적용,경쟁체제로/최두삼특파원 중국에서는 올해 국가경영의 대권이 혁명원로들의 손에서 혁명이후 세대로 넘어가게 된다.오는 3월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구성된뒤 출범할 새 행정부에는 혁명원로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그동안 정치일선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온 양상곤·진운·만리·송평·부일파·요의림·진기위등 혁명원로들이 지난해 10월의 제14차 당대회에서 당직을 그만둔데 이어 올봄의 전인대에서는 국가기관에서 맡아온 직책마저 벗어던지고 은퇴생활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이를 계기로 강택민 당총서기와 이붕총리를 정점으로 한 이른바 강·이체제는 원로들의 간섭없는 살림을 꾸려갈수 있게 된다.일부에서는 보수파로 분류되어온 이붕총리가 수족들이 모두 잘려나간 현 상황에서 총리직의 재신임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그러나 당내 제2인자인 그가 총리직을 계속 맡는게 당연하다는의견도 강력하다. 어쨌든 오는 봄철 새 행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중국 사회에는 새로운 활력이 일어날 것 같다.지난번 당대회때 채택된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본격적으로 적용되면서 경쟁체제에 불이 붙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새로운 자유경쟁시대가 막을 열게 된다.이와함께 그동안 잠자고 있던 중화인의 상혼도 다시 깨어날 것에 틀림없다. 그러나 서구 열강들의 압력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고되고 있어 외교적으로는 새로운 시련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는 물론 인권문제를 트집잡고 있는 미국의 새대통령 빌 클린턴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에 영국의 젊은 정치가로 얼마전 홍콩 총독이 된 크리스 패튼이 홍콩의 민주화를 내세우며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의 새 지도층은 이같은 서방측의 움직임들이 대중국봉쇄정책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되도록 정면대결을 회피하면서 주변국가들과의 유대강화에 주력해 나갈것에 틀림없다. ◎파리/사회당 총선거 패색,「동거」 불가피/박강문특파원 프랑스는 새해 정치분야에서 큰 변동을 맞게될 것이다.3월의 총선거에서 사회당이 참패하리라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정치자금 불법조달,국립혈액원 오염혈액 공급사건등 스캔들과 인기 하락으로 고전해온 사회당과 미테랑 대통령에게는 시련의 한해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당은 총선에서 과반수 획득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92년 지방선거에서 급부상한 환경주의자 정당과의 연대를 꾀하고 있다. 그렇게 해도 과반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좌파인 사회당의 대통령이 우파 야당에서 총리를 맞는 「동거」가 불가피하다.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전총리)이 이끄는 공화국연합과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대통령의 프랑스민주연합등 우파 두 야당은 총선에서 연합전선을 펼 것이며 사회당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두 우파 야당의 당수는 19 95년으로 연임 14년의 임기가 끝나는 미테랑대통령의 조기퇴진을 요구하면서 다음 대통령자리를 노리고 있다.따라서 미테랑대통령이 조기퇴진하든 어떻든 총선이 끝나자마자 다음 대통령선거에 대비하여 우파 단일후보 통합작업이 활발히 전개될 것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공동체 사이에 맺어진 농산물 협상안에 대해서는 총선때까지 미뤄보다가 결국 양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그렇게되면 프랑스농민들의 격심한 반발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또한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프랑스는 유럽 통합 노력의 중심적 역할을 계속 수행하게될 것이다.그밖의 대외정책에도 별로 수정이 없을 것이며 한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고속전철 건설에 프랑스의 테제베(고속전철)가 채택된다면 두 나라 관계는 기술교류와 통상 부문에서 매우 긴밀해질 것임에 틀림없다. ◎모스크바/보혁대결속 아태국과 협력 강화/이기동특파원 러시아국민들도 우리같이 섣달 그믐날 밤은 잠을 자지 않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자정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영하 20도 안팎의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덮인 아파트단지 빈터나 시내공원등지로 몰려나가 새해소망을 이야기하며 서로 덕담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러시아국민들에게 있어 93년 새해는 그렇게 희망찬 설계나 설레임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모든 게 너무 급변하고 불안정해 자기들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또 한해를 맞는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이런 일반의 분위기와 관계없이 정부차원에서는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굵직한 개혁작업들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옐친정부로서는 보수파와의 일대 격전을 치르는 어려움 속에서도 가격자유화,토지 및 국유기업사유화,군수공장의 민수전환을 위한 중장기 계획들을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에 틀림없다.이와함께 92년 그 절정을 이루었던 인플레·생산하락·분배구조의 혼란등도 어느 정도 진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보혁대결의 어려움과 함께 남부 코카서스 지방을 비롯,중앙아시아 등지에서 계속되고 있는 공화국간·민족간의 분쟁들도 평화의 전기를 쉽게 찾기 힘들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대외적으로는 당장 경제원조가 걸려있는 미국·유럽등 서방국가들과의 관계증진과 함께 한국·중국·일본등 아태지역국들과의 보다 실질적인 협조관계 강화도 적극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특히 극동지역의 개발계획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한국·일본등의 이 지역진출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논의될 전망이다. 이런 여러 계획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내정치의 안정이 필수적이다.그러나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정치불신및 무관심과 이에 따른 사회전반의 무기력 증세를 치유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 새해의 과제라는 것이 일반론이다. ◎베를린/유럽통합 부진·경제침체로 고민/유세진특파원 유럽인들에게 있어 93년은 희망의 해여야 했다.그러나 새해를 여는 콜 독일총리의 가슴속은 그리 밝지 못하다.기대했던 유럽통합은 부진하고 독일경제가 침체의 늪속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통일의 부담은 예상보다 훨씬커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독일경제로서도 93년까지 그 부담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됐다.이 때문에 새해를 맞는 독일전체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세계가 새로운 경제전쟁 시기에 돌입했음을 증명하듯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미국간에 무역마찰의 파고가 높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뚜렷한 블록화추세를 보이는 세계경제동향에 비춰볼때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유럽통합을 빨리 제 궤도에 올려놓는게 유럽으로선 시급한 과제다. 독일은 빠른 유럽통합의 실현을 위해 2단계 유럽통합을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이를 위해선 프랑스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독일과 프랑스가 손을 잡아 클린턴의 새 미국에 대항하는 유럽의 주도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오는 3월 프랑스총선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를 지켜봐야 분명한 것을 알수 있다. 동구난민들에 대한 반발로 유럽각국이 극우주의 확산등 여러 사회문제에 직면한데서 알수 있듯이 유럽의 안정을 위해선 먼저 동구가 안정돼야 한다.그러나 동구의 어려움역시 93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경제부진이 가져온 자국이익우선주의로 서구로부터의 지원이 기대에 못미칠게 확실시되기 때문이다.시장주의경제를 자력으로 얼마나 접착시키느냐가 동구각국이 서구진영에 접근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각국간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유럽통합 또한 목표보다 상당히 지연될 전망이다.몇몇나라들이 배제된 소규모 통합이 먼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93년은 유럽에 있어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힘든 협상의 한해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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