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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악가 김자경(인물탐구:86)

    ◎오페라와 결혼한 “영원한 프리마 돈나”/“독특한 릴릭 소프라노” 50년 미 카네기홀 진출/68년 자비로 「오페라단」 창단… 정기공연 49차례/지난 10월 국내 첫 야외오페라 무대… 최근 국악에 입문 「앵두나무 가지에 앉아 재잘거리던 파랑새가 방안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고 김자경을 낳았다」는 그 어머니는 「새소리가 어찌나 맑고 투명하던지 나의 딸 자경은 노래하는 사람이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딸은 지금도 독창회 무대에 서서 「불굴의 오뚝이」「작은 거인」 「분투의 또순」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할바와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의지의 원로다.얼핏듣기엔 드세고 거센 여장부의 이미지지만 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해맑은 미소와 화사한 「이팔청춘」의 마음씨에서 우리의 「영원한 프리마 돈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지난해만해도 희수기념 독창회를 비롯,올해도 불우이웃들을 돕는 호스피스 건립기금을 위한 독창회를 열었고 연말에도 자선음악회 스케줄이 잡혀있다.벌써 19번째다.지난 75년당시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손수운전을 하고 돋보기 없이 글씨를 읽고 쓸수 있는 눈과 귀를 주신 신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 그는 맹인들의 개안수술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개안수술 사람은 50여명이 넘는다.「두손을 모으고 마치 기도하듯,신을 찬미하듯 혼신을 다하는 그의 노래는 진심으로 그들이 눈뜨게 되기를 비는 순수함과 열정이 담겨있다」는 게 작곡가 김동진씨의 말이다. ○맹인 50명에 개안수술 만년의 그의 독창회중 가장 감명깊은 것은 4년전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결혼 50주년 기념」독창회라고 할 수 있다.수많은 자선음악회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 노래한 이 무대는 그의 부군이자 서양화 일세대였던 심형구화백을 추모하는 자리로 「그리움」「못잊어」「그대있음에」「청산에 살리라」등 「부군에 대한 사모」의 정이 절절히 넘쳐 청중에게 찡한 감동을 안겨주었다.「나의 일생을 맡긴지 21년,2남1녀와 함께 나의 수많은 연주를 자상하게 보살펴주시더니 청천벽력과도 같이 그는 예고도 없이 떠나가버렸고 29년이란세월을 혼자서 살면서 그 파란만장한 사연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그날 음악회 팸플릿에 쓴 글이다.그러나 『68년 성은 「오」씨이고 이름은 「페라」인 오페라와 결혼했고 이제는 김자경이가 오페라인지 오페라가 김자경인지 분별할 수 없이 일체가 되었다』고 일가를 이룬 예술가다운 의연함을 보이기도 했다. 김자경은 경기도 개성에서 약방을 경영하던 김영환씨와 백열소여사의 외동딸로 태어났다.3살되던해 서울에서 감리교 신학교에 다니게 된 부친을 따라 이사,이화유치원과 이화보통학교에 다니다가 다시 원산에서 루씨여학교를 나왔다.그는 노래 뿐만 아니라 운동에서 미술 수학 물리 화학등 못하는게 없었고 언제나 전교수석,어릴 때부터 오페라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아들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도쿄여의전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그러나 도쿄로 떠나기 전날밤 그는 어머니를 붙들고 「어머니가 동생하나만 더 낳았어도 나는 성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한탄한 것이 부모의 마음을 움직여 부친은 당장 「성악을할것」을 권해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성악공부는 이화여전을 졸업하던해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신인음악회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고 도미유학길에 오르기전까지 이화여고에 임시음악교사로 취직한 것이 심형구씨를 만난 계기가 된다.도쿄미술학교출신의 「멋쟁이화가」 심형구와 「만인의 애인」이자 「한국 최고의 소프라노」 김자경의 러브로맨스는 숱한 화제를 장안에 뿌리면서 41년 12월 드디어 결혼,「가정과 예술을 병행시키는 멋진 가정을 이루자」는 다짐과 함께 부군의 주선으로 김자경은 31세 되던해 오랜 숙원이던 줄리어드음악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그러나 의욕적인 출발과는 달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무대에서 세기적인 소프라노 릴리폰즈의 노래를 듣고는 자신의 음악적 자질과 소양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그는 한동안 심한 좌절감에 빠지고 말았다.단한번도 의심해 본적 없던 자신의 기량이 거대한 오페라가수 앞에서 무색해진 순간이었다.「메트로폴리탄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를 자책하며 밤새도록 흐느끼고 있을 때 어디선가 비몽사몽간에 「너는 왜 세계적인 성악가만을 고집하는가.열심히 노력하여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그들을 세계무대에 세우라」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때마침 미국에 다니러 왔던 김활란박사도 「나는 릴리폰즈보다 네 목소리가 백배 더좋다」고 격려해주었다. ○31세때 줄리어드 입학 『그래,나두 해내고야 말겠다』 그는 굳게 결심하고 그 길로 지도교수를 찾아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무대에 서겠으며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열겠다’고 선언했다.교수는 놀라서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하려면 먼저 학교측이 주최하는 오디션에서 통과해야 한다고 상기시켰다.그는 7명의 심사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벨리니의 「노르마」중 「카스타티바」를 열정적으로 불렀고 「독특한 음질의 아름다운 릴릭 소프라노」로 인정되어 1950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카네기홀 무대에 서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메트로폴리탄 가수들과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카르멘」에 출연,남부 60개 도시에서 80회연주를 비롯,한번 투어에 나서면 3개월이상 걸리는 전미순회공연에도 빠지지 않게되었다.그러나 좋은 일에는 흔히 마장이 생긴다고 한 것처럼 그가 「종달새처럼 푸른 창공을 마음껏 비상하며 노래부르고 있을 때」 그해 62년 여름,방학을 맞아 속초로 스케치여행을 떠났던 부군의 익사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때의 충격으로 전신마비 증세를 일으키는 등 긴 슬픔에서 헤어나기까지 실로 오랜시간이 걸렸다.그러다가 65년 봄,호화여객선 빅토리아호를 타고 세계일주 여행길에 오르면서 48세의 나이로 「퀸 오브 빅토리아」에 선발되자 당선 사례로 아르디티의 「일바치오」와 「오솔레미오」를 부르는 동안 그의 내부 깊숙이 움츠려있던 프리마 돈나의 기백과 보석 같은 기량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불굴의 투지” 여장부 유럽여행에서 돌아오자 그는 계획했던 대로 김자경 오페라단을 창단했다.그리고 그해 5월 창단기념공연으로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를 준비하면서 티켓을 들고 각기업체와 동창 후배들을 찾아다녔다.그러나 그들의 호의와 적극적인 협조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제작비 때문에 더이상 버틸 수 없이 창단 3년만에 문을 닫는 위기를 맞는다. 그는 자살을 생각했으나 「죽을 결심으로 뛰어들면 안될 일이없다」고 다시한번 자신을 일깨웠다.그때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진 고초와 수난과 시련」을 거치면서 후원회와 고정관객 확보로 그의 오페단은 서서히 기반을 잡아나갔다.오페라단창단 만27년에 정기공연 49회,4년전부터 이사장직에 머물면서 지난 10월에는 1만2천명을 수용하는 잠실올림픽공원 잔디마당에서 레하르의 3막 오페라 「메리 위도우(즐거운 과부)」로 국내 처음 야외오페라를 해냈고 내년도 제50회 「카르멘」 캐스팅을 위해 최근에는 뉴욕에 다녀왔다. 호는 심설,「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이루어진다(정신일도 김석가투)」는 그의 신조는 여전히 손수 차를 몰고 지난봄에는 한양대대학원 국악과에 입학,새로 우리「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줄기찬 한 흐름속에서 그는 불굴의 의지로 우뚝선채 음악성취 뿐 아니라 그늘지고 병든 이들에게 「이세상의 빛」을 실천하는 「천사」이며 그들을 위한 그의 목소리는 시들줄 모르는 「영원한프리마 돈나」로서 우리시대에 찬연한 빛을 발한다. ◇연보 ▲1917년 경기도 개성 출생 ▲40년 이화여전 졸업 ▲41년 제1회 독창회 ▲48∼50년 미 줄리어드음악학교 성악전공,「라 트라비아타」주역,뉴욕 카네기홀 독창회 ▲51∼58년 미남부 60개 도시순회공연,귀국독창회 ▲58∼83년 이대성악과 교수 ▲60년 오페라 「오델로」주역 ▲62년 국립오페라단 부단장 ▲65년 유럽지역 성악교육시찰 ▲68년 김자경오페라단창단,단장.베르디 「춘희」이후 49회 공연 ▲75년 제1회 「김자경 가곡의 밤」,국제음악인대회(IMC) 참가 ▲79년 김자경 오페라 관현악단창단 ▲81년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 ▲82년 한·미수교1백주년 기념독창회(워싱턴 케네디센터) ▲86년 김자경 오페라단 소극장 청소년부 창설기념 「노처녀와 도둑」 공연 ▲87년 뉴욕 카네기홀 독창회 ▲88년 뉴욕 카네기홀 독창회 ▲91년 결혼 50주년기념 독창회 ▲93년 홍난파선생 추모독창회 ▲94년 희수 독창회 ▲95년 호스피스 건립기금마련 독창회(19회),한양대대학원 재학중,김자경 오페라단 이사장 대한민국 예술원상·대한민국 문화훈장은관(74년)·중앙일보문화대상(76년)·국민훈장 석류장(83년)·세종문상(87년)·프랑스 문화예술훈장(92년)·문화공로패(93년)
  • “「창간 50돌」 남다른 감회” 최용규 부평구청장

    ◎“서울신문 배달하며 시련극복 의지 길렀죠”/국교 3년때 “인연”… 집안생활비도 보태/“어려운 이웃 돕는 삶”… 어릴적 뜻 이뤄내 최용규 인천시 부평 구청장(39).연간 8백36억여원의 예산으로 50만여 주민의 살림을 꾸려가는 그가 서울신문 창간 50돌에 느끼는 감회는 남다르다. 젊은 나이에도 주민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그는 코흘리개 시절인 국민학교 3학년 때 서울신문을 배달한 인연을 지니고 있다. 최청장은 지난 56년 충남 장항에서 3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경제다운 경제가 태동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손댄 건축업은 연거푸 실패했고 집안살림은 전적으로 어머니 몫이었다. 『대부분이 다 그랬겠지만 밥도 많이 굶고 추위에 떨어야 했습니다.월사금을 못내 교실 한켠에서 운 적도 많았지요』 장항의 중앙국민학교 3학년 때인 65년 최용규 소년은 서울신문 장항지국을 찾아 배달소년을 자청했다.『당시 서울신문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독자수도 다른 신문에 비해 월등히 많았습니다』 6학년 때까지 3년동안 계속한 신문배달의 대가로 받은 돈이 매달 1천원.쌀 한가마가 2천원이던 시절이라 집안에 제법 보탬이 됐다. 『수업이 끝나면 지국으로 가 신문을 자전거에 가득 싣고 주택가의 언덕을 오르내리던 기억이 선합니다.추운 겨울날 손을 호호 불면서 배달하던 그 시절이,시련을 극복하는 훈련기간이었던 셈입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족이 별연고가 없는 인천으로 이사했지만 생활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송도중학교와 경기상고를 거치는 동안 학비는 맏형(46)이 댔으나 제때 못내기는 마찬가지였다.공부를 잘했음에도 가난을 면하기 위해 상고를 택했고,졸업 후 은행에 들어갔다.밤에 국제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실력을 닦았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보다 법을 공부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더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77년 고려대 법학과로 편입했고 85년 제27회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곧이어 변호사로 개업,평소 뜻대로 어려운 사람을 대변하는 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해왔다. 최청장은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다』며 『인생의 난관은 약이 될 수도 있으므로,청소년이 강한 의지를 갖고 현실을 헤쳐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 서울신문사 성장사(서울신문 50돌 특집)

    ◎국익·공익 우선의 정론 50년/반세기 달려 온 서울신문/최첨단 제작시설 구비… 제2의 도약기에/타블로이드로 출발 정간 49일 시련겪고 85년 새 사옥 준공/국내 첫 납활자 없애 서울신문 50년사는 곧 우리나라의 광복 50년사이다. 겨레가 광복을 맞아 국가의 독립을 다지는 시기인 45년 11월 22일 창간된 서울신문은 창간 이후 50년동안 국가의 발전과 민족이 겪은 영광과 고난의 길을 함께 해왔다.「해방조국의 진실한 대변기관」임을 밝힌 창간호는 타블로이드 양면으로 해방직후의 정국과 세태를 그대로 투영한 최고의 권위지였다.일간지 총발행부수가 50만부 미만이었던 당시 서울신문의 발행부수는 10만부였다. 좌익과 우익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울신문은 엄정 중립을 표방했다.서울신문은 1949년 5월 3일 공보처에서 내린 발행정지처분으로 정간되는 시련을 겪고 49일만인 6월22일자부터 다시 속간됐다.속간 직후 국내 언론사상 처음으로 4면 조·석간제를 도입,사세 신장을 꾀했다.6·25가 일어나자 서울신문은 28일 새벽 2시 반까지 12차례의 호외를 찍으며 전쟁상황을 알렸다. 1·4후퇴 당시 부산으로 피란했던 서울신문은 그해 4월 6일 중앙일간지중 가장 먼저 폐허가 된 서울로 환도,유일하게 진중 신문을 발행하는 신화를 남겼다.56년부터 60년까지 「한글판 서울신문」을 석간으로 발행하던 본사는 68년 11월 22일부터 국내최초로 전지면의 한글 전용을 단행했다. 서울신문은 세월과 역사의 아품을 겪으면서 중립지·정간사태·반공지,또 다시 정간·휴간·화재등 거친 풍파를 헤치면서 성장해왔다.65년 창간 20주년이 되던 해 서울신문은 활자를 개혁하고 국내 최초로 고속 윤전기를 도입했다.68년 11월 22일 본지 전지면을 한글전용으로 바꾸고 70년에는 6인승 취재용 경비행기를 도입했다. 80년 언론 통폐합 당시 서울신문은 12월 1일부터 종래 석간으로 발행하던 관행을 바꾸어 조간으로 발행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일대의 스카이 라인을 바꾼 현재의 서울신문사옥은 지난 85년 1월 1일 준공했다.새 사옥을 짓는 동안 서울신문은 82년 1월1일 을지로 5가 임시사옥으로 이전한 뒤 3년동안 그곳에서 신문을 만들었다.대지 2천35평위에 연건평 1만7천8백49평,지하 4층 지상 22층의 웅장한 모습으로 우뚝 선 서울신문 사옥에는 25개 국내언론단체와 5개의 주한외국언론기관이 입주해 명실상부한 프레스 센터기능을 하고 있다. 새 사옥 입주와 함께 서울신문은 85년 1월 1일자를 국내 일간신문으로는 처음으로 납활자 대신 전산제작방식인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로 발행했다.서울신문의 CTS 도입은 1백년의 한국신문사상 신기원을 이룩한것이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 서울신문은 컴퓨터를 이용한 기사작성과 입력·송고체제를 도입,90년 5월 국내신문사로는 최초로 기자입력 하드웨어를완비했고 93년 6월1일부터 편집국에 펜과 잉크를 없앴다. 95년 1월 16일 손주환사장은 『서울신문은 국내정상의 고급정론지로 거듭 태어나 정부와 국민의 가교역을 하는 신문으로 맡은바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제2의 창간을 선언했다.지난 8월에는 4백억원이라는 자본금 확충이 이루어짐으로써 대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증자를 통해 서울신문은 CTS체제 정비와 최신형 윤전기도입등 토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됐다. 특히 서울신문사는 광복·분단 50년과 창간 50돌을 맞아 95년 10월30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LG구룹 협찬으로 제1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을 개최,정론지로서의 위상을 한층 드높였다.「한민주 통합을 준비한다」는 주제로 열린 이 포럼에는 한·미·중·일·독·러시아의 세계적 석학 및 전문가들이 참석,한민족 통합방법에 대한 진지한 의견 개전과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통일준비 방안을 놓고 심도있는 토론을 벌였다. 한반도 통일문제와 관련해 신문사에서 대규모 국제포럼을 마련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앞으로 이같은 국제적인 학술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국가사회에 기여한다는 것이 서울신문의 방침이다. ◎스포츠·대중문화 발전 “선도”/언론 소명 다해 온 자매지/스포츠 서울­스포츠지 대명사… 정상 질주/QUEEN­여성·주부에 다양한 정보 제공/TV 가이드­X세대∼노년 모두에 사랑받아/뉴스피플­뉴스 분석·화제 인물 집중발굴 광복의 기쁨 속에서 태어난 서울신문이 지난 반세기동안 민족 정론을 이끌어 온 것과 더불어 서울신문사는 숱한 자매지를 내 언론의 소명을 다했다.이 자매지들은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선보였고 제 구실을 다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서울신문사가 서울신문 말고도 현재 발행하고 있는 자매지는 스포츠서울,TV가이드,뉴스피플,QUEEN(퀸)등 4종. 19 85년 6월22일 창간한 일간지 스포츠서울은 여섯달만에 경쟁지를 압도하고,스포츠신문 시장을 석권하는 「기적」을 이루었다.그러나 이는 「기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스포츠서울은 언론사에 남을 획기적인 방식을 몇가지 도입했기 때문이다.먼저 일간지로는 처음으로 전면 가로쓰기로 편집하고,1면등 주요 지면을 컬러로 제작했다.또 철저하게 한글만으로 지면을 채웠다.스포츠신문이라는 특성에 걸맞는 「보는 신문」「즐기는 신문」을 만든 것이다. 지난해 말 자체 조사에서 스포츠신문 가운데 스포츠서울을 첫손에 꼽은 독자는 56.6%였다.스포츠서울이 변함없는 정상임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TV가이드는 19 81년 7월「젊은 잡지,가족 잡지」를 내세워 창간됐다.본격적인 컬러TV시대에 발맞춰 나온 이 주간지는 10대에서 노년층까지 가장 폭넓은 독자층에게서 사랑을 받는 잡지로 꼽힌다.방송·연예계의 따끈한 뉴스,인기인에 관한 화제기사를 다루되 스캔들 보다는 건전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다른 주간지와 구분되는 장점이다. 전파매체인 방송과 시청자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구실을 성실하게 해낸 점도 인기 요인의 하나이다. 월간 여성지 QUEEN은 1990년 7월호로 출발했다.여성지가 범람하는 상황에서도 QUEEN이 5년여만에 정상권에 우뚝 선 원인은 무엇보다 흥미있고 유익한 기사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데 있을 것이다.변화하는 신세대 주부들의 문화 진단,화제인물의 숨은 이야기 공개,다이어트 비법,육아·부부 문제,건강정보등 QUEEN이 싣는 기사는 여성에게 정신적인 풍요를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사 주간지 뉴스피플은 1992년 12월12일 첫호를 냈다.20∼40대 중산층 지식인을 대상으로 한 이 잡지는 시사뉴스와 함께 화제인물 발굴에 주력했다.아울러 주간지라는 특성을 살려 시사뉴스를 깊이있게 분석한 특집을 발빠르게 처리했다.이같은 차별화에 힘입어 뉴스피플은 창간 3년만에 광고 신장률 6백%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제는 없어졌지만 간행 당시 제 구실을 톡톡히 한 자매지는 많다. 먼저 1968년 9월22일 등장한 「선데이서울」을 들 수 있다.이 잡지는 1991년 송년호(제 1192호)를 끝으로 폐간될 때까지 주간지의 대명사로 불릴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TV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60∼70년대 선데이서울은 국민에게 흥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하며 대중문화 발전을 이끌었다. 서울신문 간행 초기인 1940년대에는 월간지 「신천지」와 시사잡지 「주간서울」이 나와 독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했다.신천지는 서울신문 창간 석달 뒤인 1946년 2월에 나와 55년 63호로 마감했다.주간서울은 1948년 10월18일에서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50년 6월26일까지 맥을 이었다. 또 주간지 「소년서울」은 1953년 9월 첫 간행돼 54년 6월 중단됐다가 1970년 4월 같은 제목의 다블로이드판 주간신문으로 부활한다.다시75년 11월 286호로 막을 내렸다. 스포츠 잡지시장을 12년동안 선도한 「주간스포츠」는 1975년 3월30일 창간돼 87년 7월25일 632호까지 냈다.주간스포츠는 TV의 스포츠중계가 많아진데다 스포츠신문의 인기에 밀려 폐간됐다.하지만 간행 당시 스포츠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들었다. 1984년 봄호로 창간한 계간 비평지 「예술과 비평」은 비록 긴 생명을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문화는 있으나 비평은 없는」당시 문화 현실에서 「예술과 비평」은 단단히 한몫을 했다.3년여 뒤에 폐간됐다가 「계간 문예」란 제목으로 1991년 겨울 복간됐다. 이밖에 주간 「서울평론」이 1973년 11월4일에서 75년 11월6일까지 나왔고 1959년에는 「서울연감」을 간행하기도 했다.
  • 국내 인사 축하메시지(서울신문 50돌 특집)

    ◎“통일의 길 밝히는 등불 되라” □초일류국가 도약의 견인차로/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 서울신문의 창간 50돌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헌정수립 이후 현대사의 어려운 고비를 넘어오면서 언론문화 창달과 민주질서 확립에 끊임없이 노력해온 서울신문의 정론필봉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돌이켜보면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불법 남침으로 인한 한국전쟁과 경제적 어려움등을 이겨내기 위해 숱한 가시밭길을 헤쳐왔습니다.반세기에 걸친 대내외적 도전들에 슬기롭게 대처해온 국민의 역량으로 눈부신 경제발전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유엔가입 4년만에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할 정도로 국력을 키워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선진권 진입을 눈앞에 바라보게 되었습니다.이처럼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궈내는 과정에서 서울신문을 비롯한 언론매체들이 끼친 영향력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세기를 마감하고 2천년대를 바라보는 문턱에 서 있습니다.다가오는 새시대에는 겨레의 숙원인 통일과업 성취는 물론 정신문화를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에 꽃피워 경제력이나 생활의 질 면에서 세계 초일류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명제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넘어야할 장애물과 극복해야할 시련은 산적해 있다고 봅니다.이를 극복함에 있어 우리 언론계에 지워진 사명은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하다고 하겠으며,그 가운데서도 활자매체인 신문의 역할과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인생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한 공자의 말씀처럼 오늘 창간 50돌을 맞는 서울신문이야말로 그동안 쌓아온 원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나라의 내일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특히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소망하는 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성 회복과 민주 복지국가 건설에 보다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서울신문이 특정한 정파나 계층의 이익을 떠나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정론을 펴는 고품질의 신문으로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더욱분발,정진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다시 한번 서울신문의 창간 50돌을 축하합니다. □독자 입장서 필요한 정보 제공/이영섭 전 대법원장 한 나라가 진정한 민주화가 이룩되려면 첫째로 사법권이 독립되어야 하고 둘째로 언론이 창달되어야 한다.이것이 오랫동안 문화국민들 사이에서 내려온 정설이다. 서울신문이 창간 50주년을 맞는다 하니 감회가 깊다.이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수없이 넘고 꺾어온 쓰라린 탄압과 저항을 용케도 물리치고 오늘의 꿋꿋한 지위를 차지한 것을 생각하면 오직 감격이 앞설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언론에 종사하는 분들은 정말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움직여 주기 바란다.어떠한 외세에 대해서도 꿋꿋하게 항쟁할줄 아는 슬기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고,국민을 선도하고 국민을 감읍하게 하는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언론이 부패해서는 안된다.어떠한 유혹에도 의연하게 대처할줄 알아야 한다.신문이 쉬는 날은 허전한 삭막감 속에서 그 날을 보낸다.왜냐하면 신문이 주는 청신하고 달콤한 생명수가 끊기기 때문이다. 신문은 지면이 많다고 하여 반드시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지면은 적더라도 내용이 알차고 사회의 목탁이 될만한 기사를 많이 실어주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면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신문들이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이러한 피나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름대로의 노력과 근면이 필요하겠지만 국민에게 도움을 주는 기사를 많이 실어주어야 될 것이다. 언론이 숨을 죽이면 국민들은 생기를 잃는다.춘추의 필봉으로써 사회의 부정을 척결하고 국민을 선도할 때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언론이야말로 독재화로 가기쉬운 나라의 물줄기를 민주화의 방향으로 잡아줄 것이요,장한 민주화행렬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서운신문은 이번 창간 50주년을 계기로 하여 한층 분발하여 종전보다 몇곱 더 언론 본래의 사명에 충실하기를 빈다. 진심으로 뜨거운 축하의 말씀을 드리면서 몇마디 고언을 빠뜨리고 싶지않다. □서울신문만의 목소리 담아야/이광재 경희대 교수·언론학 지금은 변화와 개혁의 시대이다.세계화·개방화로 경쟁력이 중요시 되는 지구촌 시대이다.따라서 변화의 진행방향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신문계에서의 큰 변화는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경쟁의 바람이다.과거의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무한경쟁이다.새롭게 등장한 케이블 TV와 지역 민방,방송시간이 연장된 지상파 방송은 물론 비디오와 같은 영상물 그리고 신문·잡지 등과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되었다. 이러한 다매체·다채널 시대에 있어서 신문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첫째는 신문환경 변화에 걸맞은 경영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경영의 효율화와 질 높은 신문제작을 위해서 구성원들의 창의력과 추진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조직을 재정비해야 한다.위인설관 형식의 필요없는 자리는 없애고 정치·경제·사회·문화·체육과 같은 구태의연한 편집국 체제도 경쟁력 있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그리고 다각경영체제를 구축하여 경영의 합리화를 꾀해야 한다. 둘째는 질 높은 뉴스 생산에 주력해야 한다.질 높은 뉴스란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진실된 것을 의미한다.노 전대통령 비자금 취재 보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재벌이 경영하는 신문들이 불신을 받는 주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재벌관련 기사를 취급할때 편향적인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독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기자와 제작진이 필요하다.인력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전문기자도 새로 채용하고 기존 인력에도 대대적인 재충전을 해야 한다. 셋째는 색깔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제 목소리를 내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서울신문은 서울신문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독자들이 신문을 구독하는 이유는 습관적인 구독도 많지만 중요한 요인은 자기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 신문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넷째는 신문 제작의 방향을 「신문인의 입장」으로부터 「독자의 입장」으로 바꿔야 한다.신문인들은 국민(독자)의 알 권리를내세우면서 취재와 제작에 임하고 있는데 현실은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독자들이 선택할 매체와 신문이 많고 또 신문 기사 가운데서도 읽어야 할 기사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독자들이 읽기 쉽게 제작되지 않으면 독자들을 잃게 된다.한글전용,가로쓰기,활자 키우기,컬러 인쇄,기사 색인,새로운 뉴스 발굴에 각 신문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판단된다. 지금은 신문은 춘추전국시대이다.과거의 신문들이 갖고 있던 영향력이 감소되고 있는 시대이다.신문끼리는 물론 새로운 매체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이다.따라서 과거의 권위주의 신문의 사고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색깔이 불분명한 신문들은 오래 지탱할 수가 없게 된 시대이다. 끝으로 서울신문의 창간 50주년을 축하하며,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스포츠 진흥 지속적 성원 기대/김운용 대한체육회장 서울신문이 창간 반세기를 맞이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광복과 함께 창간된 서울신문은 늘 빠르고 정확한 보도로 언론의 정도를 걸어 왔습니다.50년동안 서울신문은 정부와 국민 가운데에 서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격동하는 현대사의 흐름을 명확히 분석하며 나아갈 바를 제시하여 주었습니다. 광복과 유엔창설 50주년을 맞는 올해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한 결과 이제는 세계의 중심을 향하는 비전있는 국가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우리 체육계는 실로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스포츠 선진국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해방후 단 한개라도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 국민의 바람이었던 그때와 동·하계 올림픽 5연속 세계 10위권 진입,태권도 20 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86·88 양대회의 성공적인 개최,각종 국제종합대회의 줄이은 한국유치와 굵직한 국제스포츠 회의개최 등 세계스포츠의 강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신문은 50년동안 한국스포츠의 영광과 좌절의 순간에 항상 함께 있으면서한국스포츠의 오늘이 있기까지 기여한 바 매우 큽니다. 60년대부터 70년대초까지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올해의 체육인상」을 만들어 체육인들의 사기를 높인 것을 비롯,사이클 야구 농구 배구 등 각 종목의 대회를 주관,한국 스포츠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특히 체육전문 일간지인 스포츠서울을 창간,체육 발전을 위해 선봉에 서서 체육입국을 향한 걸음을 재촉해주었습니다. 창간 50주년을 맞아 앞으로도 정론으로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하며 세계화에 앞장서는 신문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착한 마음 옳은 사회 이끌어야/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무의미하게 되어가는 사회다.그러나 나는 여전히 착하게,옳게,아름답게 사는 사회를 원한다. 낯가림이라는 말이 있다.아이가 태어나서 엄마의 얼굴 가림을 하게 되면 낯가림을 완료했다고 한다. 무엇을 가릴 때에 반드시 관여되는 것이 있다.가림의 「대상」과 가림을 하는 「당사자」다.엄마의 얼굴이 「대상」이고 아이가 「당사자」가 된다. 가림의완료를 위해 대상과 당사자는 많은 반복적 접촉을 해야한다.그래야만 아이의 마음 속에 엄마의 얼굴 생김새가 각인된다.각인된 후에는 눈을 감아도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인간 마음 속에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대상이 각인되어 있다.하늘 땅 바다 강이 각인되어 있다.대상이 없는 각인은 없다. 착한 마음,옳은 마음,아름다운 마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갓 태어난 아이의 마음이 태어나자마자 착한 마음일 수 없다.착한 마음 역시 인간 마음 속에 어떤 형식으로이든 각인될 기회를 가질 때 생긴다.베토벤 음악이 없는데 인간 마음 안에 베토벤 음악을 가릴 마음이 생길 수 없는 것과 같다.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그냥 산다」와 「잘 산다」라는 말이 있다.먹고 입고 자고 배설하면서,그냥 살아가는 것을 「그냥 산다」라는 말과 상관시킨다면 「잘 산다」는 말은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와 상관될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 전부가 잘 살았으면 싶다. 잘 살려면 물질적 풍요로움으로만은 안된다.마음의 풍요로움을 얻어야 한다.마음의 풍요로움은 착한·옳은·아름다운 마음이 있을 때 얻어진다.그러한 마음은 그러한 마음을 가능케하는 「가림의 대상」이 우리 주변에 상존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 주변에 상존하고 있는 서울신문이 우리의 마음을 착한·옳은·아름다운 마음일 수 있게 하는,「가림의 대상」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착함·옳음·아름다움과 상반되는,어떠한 것을 낳게 하는 기사도 싣지 않는 신문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뜻도 된다.
  • 특별정담 오늘의 서울신문을 말한다(서울신문 50돌 특집)

    ◎증면경쟁 탁류속 「소신의 질경쟁」 호감/정보 홍수시대의 「알짜정보지」로 “우뚝”/상업성­선정성 배격… 「건강한 신문」 특화/“연재소설 등 작가 창작정신 존중” 정평/1950년대부터 한글신문­가로짜기 실험 선도 서울신문은 창간 50주년을 맞아 지난 2월 세계화를 선도하는 초일류 고급정론지로의 제2창간을 선언,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오직 독자를 주인으로 일체의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를 배격한채 언론의 정도를 걸어온 서울신문의 50년 역사는 그대로 현대사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시대의 영욕을 국민과 함께 나누며 성장해온 서울신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21세기에의 비전을 그려보기 위한 특별좌담회를 마련했다.정진석 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연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소설가 김주영씨가 자리를 같이 했다. ▲정진석 교수=서울신문은 구한말인 1904년 러일전쟁 특파원으로 와 있던 영국인 베델이 만든 대한매일신보가 그 전신입니다.대한매일신보는 한글과 영문판으로 제작돼 당시 최대의 독자층을 향유한 대표적인항일민족지였고 일본에게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지요.그러다 한일합방이 되자 일본 총독부는 이 신문을 매입해 「대한」이라는 제호를 떼고 총독부 기관지로 만들었습니다.1910년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논조가 1백80도 달라졌지만 지령만큼은 계속 잇게 했습니다. 또 서울신문은 일제 전 기간동안 한글로 발행된 유일한 신문이었습니다.해방직후 명칭을 서울신문으로 변경했는데 정부·여당을 대변하는 쪽이었어요.물론 신문이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방적인 비판 또한 경계해야될 일이죠. ○항일민족지가 전신 ▲김주영씨=서울신문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시대를 앞서간 신문이었습니다.지난 54년부터 7개월여 연재된 정비석씨의 「자유부인」은 장안의 화제가 됐었지요.또 60년에는 현상공모 사상 처음으로 5백만환이라는 파격적 고료를 내걸고 장편소설을 공모해 문단 안팎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죠.저의 대표작 「객주」를 탄생케한 신문도 바로 서울신문입니다.79년 6월부터 84년 2월까지 1천4백65회에 걸쳐 연재했는데 그당시 서울신문은 작가들의 창작정신을 최대한 존중해 「작품」이 잉태될 토양을 마련해주는 신문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하나의 예로 저는 「객주」를 쓰면서 『신문사쪽에서 언제쯤 주문이나 간섭을 해올까』했지만 5년동안 단 한번도 클레임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경영진의 판단보다 담당 데스크의 재량에 맡기는 문화풍토였죠.독자의 말초적 구미에 맞춰 일회용 흥미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매회 간섭을 일삼았던 타 신문에 비해 서울신문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곳이란 인식이 우리 작가들에겐 강했습니다.이는 여타 상업지들이 따라올 수 없는 서울신문만의 독보적인 영역이었다고 봅니다. ▲이연숙 회장=우리 여성단체협의회의 경우 넉넉치않은 재정형편에도 불구,지금까지 서울신문을 한번도 끊지않고 구독해오고 있습니다.소비자문제나 여성문제를 일관성 있고 성의있게 다루어주는 신문이기 때문이죠. ○서울만의 독보영역 ▲정교수=서울신문은 56년부터 4·19때까지 한글판 신문을 따로 낸 적이 있습니다.68년엔 한글전용으로 하고 글씨체와 편집방법에도 변화를 주는 등 선도적인 신문의 모습을 보였습니다.최근 한글전용이나 가로짜기를 시도하고 있는 신문들의 실험적 모델이었던 셈이죠. ▲이회장=저도 어릴때 서울신문이 한글신문이어서 굉장히 친근감을 가졌던 기억이 납니다.또 미국대사관에 근무할때 보니까 외국인들이 서울신문으로 우리말을 공부하기도 하더군요. ▲김씨=잃어버린 우리말 찾기운동을 지면을 통해 벌이기도 했습니다.지금도 박갑천씨의 컬럼은 시사문제에 대한 안목을 넓혀줄뿐 아니라 우리말의 맛깔스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독특한 컬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교수=사실 서울신문은 해방직후까지만 해도 인적 자원과 시설등의 면에서 가장 뛰어난 언론사였습니다.또 김진섭,김동리,장만영씨 등 유명문인들이 편집책임자로 있던 종합잡지「신천지」는 50년 「사상계」가 나올때까지 당시 지식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교양지였지요.「자유부인」같은 연재소설로 문학계에 더할나위없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4·19이전까지는 정치적인 영향력도 막강했습니다.그동안 역사적 격랑에 따라 시련을 겪으며 때로 침체되기도 했지만요. ▲김씨=역사도 역사이지만 우리의 의식과 감정도 지나치게 흑백논리에 감염되어 있는게 오늘의 현실입니다.요즘은 상업주의를 지향하는 신문들이 정부의 대변지 역할을 하는 측면이 더 강해요.서울신문은 오히려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회장=서울신문은 산간벽지 등 어느 지역 가지않는 곳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지요.또 요즘 신문들 가운데 면수가 가장 적습니다.증면경쟁으로 페이지가 늘어난 신문들을 보면 광고일색이에요.정보홍수시대에 알짜배기 정보를 섭렵하는데 편한 신문이 바로 서울신문입니다. ▲정교수=손주환 서울신문 사장은 올해 제2창간을 선언하면서 『물량경쟁을 지양하고 오로지 질적인 경쟁만을 벌이겠다』고 선언하고 증면경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젊은 기자나 언론학교수가 아닌 신문사의 최고 책임자가 이같은 한국신문의 「반사회성」을 과감하게 지적한 것을 두고 학계에서는 커다란 화제가 됐습니다. ▲김씨=굳이 신문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최근 신문들의 증면경쟁과 부수경쟁에 따라 지국으로 배달되는 신문이 곧바로 폐기장으로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국내 용지값을 기준으로해 1년에 무려 1천1백억원 이상의 돈이 낭비되는 이같은 폐단에 모두 비분강개하고 있지만 우리 언론은 스스로에 대해 비판을 가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회장=그런 점에서 서울신문이 신문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희망입니다.민간단체들은 비판을 하려고 해도 언론의 막강한 힘앞에 지레 겁을 먹고 독자들에겐 조직된 힘이 없고하니 이에 대해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교수=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역사를 통해 민족사의 험난한 굽이마다 이정표 역할을 해온 서울신문이 문민시대를 맞아 무한 물량경쟁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김씨=잘 알다시피 다른 신문은 모두 상업지입니다.그 틀에서 과감하게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은 서울신문만이 가질 수 있는 크나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한글 교과서 ▲이회장=저는 서울신문이 정부만 의식하지 말고 정부의 주인인 국민의 입장을 보다 많이 생각하는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이제까지는 다분히 오해받을 만한 역사도 없지 않았습니다.그런만큼 창간 50돌을 맞은 이 시점에서 대대적인 환골탈태의 노력은 한층 절실한 것이라고 봐요. ▲김씨=요즘 신문사간의 보도경쟁의식은 뉴스가치 여부를 떠나 거짓정보를 양산하는데까지 이르게 만들었습니다.일례로 최근 미국흑인남성대회를 주도한 인물이 유태인과 한국사람은 돈만 아는 민족이라고 말한 것으로 우리 각 신문이 보도했는데 실제로는 미국에 이민온 모든 이민족들을 향해 한 소리였어요.정확한 사실확인없이 일단 신문을 팔고 보겠다는 상업지들의 선정적 보도태도가 낳은 해프닝이었죠.상업주의를 배제하는 서울신문만은 이같은 폐해에서 벗어나 제대로된 정보를 취사선택해 독자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이회장=신문들이 국민의 세계관을 오도하는 경우도 많아요.언론인이 올바른 시각과 균형감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교수=한국언론은 한미관계나 한일관계 특히 대일문제에 있어서는 이성적이고 진지하게 접근하기 보다는 맹목적인 애국심에 호소하려는 성숙되지 못한 보도자세를 보이고 있어요.이 역시 국익과 공익을 앞서 생각하는 서울신문이 주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이회장=언론사간의 무분별한 보도경쟁에서 탈피,서울신문만이라도 반듯한 생각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야할 것입니다. ▲김씨=요사이 신문은 여배우의 아슬아슬한 사진을 실어대는 등 선정적이고 충동적으로 흘러 「읽는 신문」이 아니라 「보는 신문」이라는 얘기도 듣고 있습니다.그런 맥락에서 볼때 서울신문은 어느 신문보다 「정독하는 신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예를 들어 「두만강 7백리」「압록강 2천리」같은 기획시리즈를 들 수 있습니다.특히 이 기사는 그동안 접했던 단편적인 주마간산식 리포트가 아니라 현지 연변 조선족 작가의 눈을 통해 그려진 한폭의 세밀화라고도 할 수 있어요.저는 스크랩까지 해가며 읽고 있습니다. ▲정교수=「보는 신문」의 역할은 TV로 족합니다.신문성이 강화되어야해요.언젠가부터 각 신문들이 해외토픽란을 통해 지나치게 노출된 여성의 사진을 크게 다룸으로써 여성을 상품화하고 있는데 서울신문은 그렇지 않더군요.특별히 재미있고 눈길을 끌진 않지만 비교적 건강한 신문으로 온 가족이 함께 돌려 볼 수 있는 신문이라는 느낌이에요. ○딱한 이웃에 애정을 ▲이회장=요즘 신문들은 하지말아야할 일들은 하고 정작 해야할 일은 하지않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민간단체들이 주최하고 언론이 소개·지원해야 마땅할 행사를 신문사가 직접 나서서 벌이고 있어요.사세과시적 행사보다는 애정어린 보도정신이 중요합니다.AIDS문제나 가족파괴 등 절실한 현안을 유야무야 지나쳐선 안되죠.여성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언론이 좀더 충실히 보도해주었으면 합니다.서울신문은 반세기의 연륜이 있으니 타 신문보다 한발 앞서 갈 수 있으리라 여겨져요. ▲정교수=그렇습니다.영국의 「더 타임스」가 보수 대변지이고 그 독자가 따로 있듯이 서울신문도 그 색깔을 살리면서 타 신문과의 차별화를 이루어 나가야할 것입니다. ▲이회장=서울신문이 위치한 프레스센터는 모든 다양한 여론이 모아지는 자리입니다.그같은 의견들을 걸러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특히 서울신문의 「입법예고」라든가 「법령공포」같은 란은 정부와 국민의 가교역할을 자임하는 서울신문만의 특화지면이라고 할만해요.좀 더 알기쉽고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서울신문에 비친 사회풍속도 세태 50년(서울신문50돌 특집:Ⅰ)

    ◎해방후 판·검사 한글공부 진풍경 「서울신문으로 매신이 갱생」.45년 11월22일 서울신문은 이같은 1면 제목을 통해 창간을 선언했다.일제의 오랜 질곡에서 해방된 조국의 대변기관이 되겠다는 의지와 함께 첫발을 내디딘 서울신문의 역사는 바로 해방 50년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서울신문과 더불어 온 그 50년동안 서울신문 지면에 비친 우리의 세태도 세월의 깊이 만큼이나 변화무쌍 했다.해방의 감격과 환희가 묻어났던 창간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세태 변화를 연대별로 묶어 본다. ◎해방이후 40년대/“엉터리 기생을 일소 풍기 향상시키고저…” 이색 시험광고 눈길 창간 당시는 해방 직후의 어지러운 사회상이 지면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창간호 만큼은 특성상 각계의 격려와 기대의 말들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음 날인 23일자부터는 상해임정요인 귀국,미소공동회담,3·8선 긴장 등 해방직후인 당시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1면 톱은 「중경의 김구선생 일행께서 개인자격으로 23일 오후 4시 김포에 환국하며­」라는 기사로 임시정부요인들의 환국을 알리고 있다. 이같은 어지러운 정국 분위기와 함께 한동안 지면을 장식한 것은 이를 틈타 정치테러와 집단강도가 성행한다는 내용들이다.심지어 강도들이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이처럼 한동안 살벌하던 지면은 점차 민생 분야로 그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 46년으로 접어들면서는 판검사들이 토요일 하오 법원에서 한글을 배우는 진풍경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일제통치 36년이라는 세월속에 우리말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없지 않았던 것이지만 무식쟁이나 농민 보다는 유식한 사람이 오히려 더 우리말을 소홀히 했던 세태의 반영이었던 것이다. 모자 광고가 어느 것보다 많이 광고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당시는 모자를 안쓰면 행세를 못하던 때라 모자광고가 지금의 패션광고 만큼이나 많았던 것이다. 「엉터리기생을 일소하여 풍기를 향상시키고저­」라는 기생자격시험 광고가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50년대/연재소설 「자유부인」 장안의 화제/전쟁중 밍크·귀금속 걸치면 처벌/“갈아보자” “구관이 명관” 유행어로 50년대는 6·25의 발발로 인한 여파가 사회 모든 분야에 크고 깊은 영향을 미쳤던 시기였다. 6·25는 같은 겨레끼리 죽이고 죽는 민족상잔의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피란민으로 만든 가난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전시체제하에서 나온 「배급쌀」이라는 말도 잊을 수 없는 말이다.50년 10월에는 양곡배급이 시작됐다는 기사들이 사회면을 채우고 있다. 6·25는 또 전술용어와 투쟁용어를 양산해 내기도 했다.「진충보국」 「빨간딱지」(병역 기피자 등을 일컫는 말) 등 생소한 용어들이 생겨났고 의지할 데 없는 월남민들을 별볼일 없는 빈털터리의 대명사로 「38따라지」라 부르기도 했다. 마카오에서 밀수해온 외제양복과 구두를 갖춘 「마카오신사」들이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시중에는 마카오복지 등 사치스런 옷감이 범람해 당시 신문에는 「당신의 옷차림은 전시생활에 알맞습니까」라는 글이 실리고 「전시생활 개선법」이 만들어져 밍크목도리와 귀금속을 착용하면 처벌까지 당하기도 했다. 이무렵에는 전쟁이 심어놓은 퇴패와 성문화도 한껏 고조되고 있었다.서울신문에 연재되던 소설 「자유부인」을 놓고 벌인 유명한 논쟁은 그 세태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소설가 정비석이 쓰고 김영주화백의 삽화를 곁들인 소설 「자유부인」은 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6일까지 2백15회에 걸쳐 6·25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서울 수복 이후 여성들의 취업전선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계바람,댄스바람 등 만연한 퇴패적 분위기 속에 바람난 한 대학교수 부인의 이야기가 소설의 큰 틀이었다. 논쟁의 발단은 서울법대 황산덕교수가 3월1일자 대학신문에 『대학교수를 상대로 모욕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자유부인에게 드리는 말」이란 공개 비난문을 발표하면서 전개됐다. 이에 작가 정씨가 3월11일자 서울신문에 『황교수의 비난은 문학가에 대한 모욕과 감정적 흥분으로 일관돼 있다』는 반박문을 게재,반격을 가했고 여기에 홍순엽변호사가 3월21일자 지면을 통해 정씨의 입장을 지지하는 기고를 하면서 점입가경으로 빠져 들었다. 이같은 논쟁은 고정독자와 판매부수가 늘어나는데 크게 기여한 바가 있지만 당시 호사가들은 물론 국민들의 정서가 어디쯤에 있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혼란은 사회상에만 내비친 것이 아니었다.전쟁이 끝나자 자유당의 부패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정치판은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변해갔다.「막걸리선거」 「피아노선거」 온갖 부정을 저질러오던 자유당은 54년 11월29일 부결된 초대대통령의 중임제한 철폐 개헌안을 사사오입을 통해 가결시키는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야권이 집결,민주당을 창당했고 56년 대통령선거에서 자유당과 맞붙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를 들고나와 일반국민들의 정서를 파고 든 반면 이에 맞서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 수 없다.구관이 명관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희극적인 이러한 정치형태는 일반 모임이나 가정에서도 유행을 탈 수 밖에 없었다. 55년에는 국산 자동차 1호인 시발자동차가 등장,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6·25의풍파로 시작된 50년대는 마지막까지 국민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며 저물어 갔다.59년 9월16일 사라호 태풍이 영·호남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이 태풍으로 이 지역에서만 사망 8백30명,부상 2천2백여명,실종 3백4명,이재민 39만명이 발생했다. ◎60년대/“KS마크”는 출세보장… 과외열풍 불고 연탄가스·불발탄 사고 사회면 단골로 60년대는 전쟁의 상처로 인한 허무와 무력감속에 「빽」과 「와이로」가 난무해 「러키스트라이크」담배와 양주「조니 워커」가 민원인들에게 필수품이던 시절이다. 「조국근대화」를 내세우며 등장한 박정희의 혁명정부는 「우리가 살길은 수출이고 돈이 되면 무엇이든 판다」는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펴나갔다. 담배는 고급담배인 「신탄진」한갑에 50원,「아리랑」 한갑이 25원이었는데 당시 귀했던 쇠고기 한근이 1백58원이고 연탄 한장에 8원,소주 2홉들이 한병이 43원이고 보면 담배 권하는 인심을 마다하지 않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금 한돈쭝이 1천6백60원인데 결혼예물로 금반지 세돈쭝쌍가락지 끼고 「도고온천」이나 「경주」로 신혼여행을 가는게 보통이었다. 대학입시 열기도 대단해 대학생과외가 널리 유행처럼 번졌고 경기고(K)와 서울대(S)를 나오면 출세는 보장된다는 「KS마크」도 이때 등장 한다. 전후 서민들의 유일한 문화·오락 생활은 영화관에서 필름이 낡아 화면이 비가 내리는 듯한 영화속의 현실에 빠져 드는 것이다.이런 열기에 힘입어 60년대는 우리 영화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 중요한 시기가 된다. 최초의 컬러시네마스코프 「성춘향」을 비롯해 「빨간 마후라」「맨발의 청춘」「남과북」「저하늘에 슬픔이」등과 함께 68년「미워도 다시한번」은 장안의 돌풍을 일으켜 이후 속편이 4번이나 만들어진다. 당시 「한국의 제임스 딘」신성일은 뭇여성의 우상이었고 그가 빠진 영화는 흥행에 실패해 한해 50여편 이상의 영화에 겹치기출연이 보통이다.한편 문희·윤정희·엄앵란등의 「트로이카」여배우의 연기대결도 볼만해 그야말로 영화사에 꽃을 피운다. 그러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화는 61년 KBS-TV 개국에 이어 잇따라 등장하는 상업방송에 서서히 그 자리를 내주기 시작해 70년대 들어서는「아씨」「여로」등 TV연속극에 밀려 「안방극장시대」에 자리를 내준다. 겨울만 되면 연탄가스에 일가족이 몰사했다는 기사가 하루 걸러 지면을 메웠고 지방에서 한해 불발탄 폭발사고로 2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또 3월이면 보릿고개 때문에 「춘궁…농촌현장을 가다」등의 단골 시리즈도 있었다. 당시의 신문광고는 주로 약·영화·책 광고 등이 대부분인데 「원기소」「테라마이신」「개풍경옥고」등 요즘 세대들에겐 익숙지 않은 약이름과 「천지 캬바레 개업」「연말연시 선물엔 역시 신탄진」「벌꿀비누 애용자 사은 쇼 파티」「통신강의록 독학생모집」「경기중·이화중 학생 대모집」등도 이채롭다.
  • “86세 억만장자” 심플로트 “부의 비결”

    ◎끊임없는 노력/기발한 아이디어/잇따른 행운/감자 가공업서 마이크론 테크놀러지 총수까지/14세때 학업 중담… 말고기 삶는 기계 개발/술·담배 않고 70평생을 돈벌기에만 몰두 미국의 반도체 메이커인 「마이크론 테크놀러지」가 세계 반도체 업계의 새별로 등장하면서 이 회사를 이끄는 존 리처드 심플로트회장이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지난 2년동안 34억달러를 벌어 마이크론을 미국 굴지의 반도체 업체로 키운 심플로트회장은 70년동안 부를 차곡차곡 쌓아온 86살의 억만장자.특히 하루 아침에 「컴퓨터 황제」 자리에 오른 빌 게이츠와 대비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의 성공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끊임없는 노력,행운등 부를 쌓는데 필요한 「3박자」가 서로 어우러져 엮어낸 한편의 드라마이다. 그는 지난 20년대 아이다호주 남부지역의 스네이크 리버라는 조그마한 웅덩이에서 오늘날의 부를 쌓는 「대어」를 낚아올리는 발판을 마련했다.80년대 맥도널드사에 감자 프렌치 프라이(튀김요리)의 50%를 공급하는 「농업제국」을 건설한데 이어,90년대에는 세계 반도체 업계를 이끄는 첨단산업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론 테크놀러지 외에도 광활한 감자밭과 도축장·화학공장·광산등도 보유하고 있어 그의 연봉은 10억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심플로트회장은 1909년 미국 아이오와주 듀뷰케에서 태어났다.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4살때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기계 개발에 몰두했다.그가 개발해낸 기계는 감자와 말고기를 으깨 삶는 보일러.6개월도 안돼 7천달러를 벌었다.첫번째 행운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의 개발활동은 계속됐다.두번째는 자동 감자선별기.아이다호의 감자선별 작업을 독점,처음으로 1백만달러를 벌어들였다.세번째 행운의 기계는 음식물 건조기.40년 캘리포니아를 여행하던중 우연히 「낡아빠진」양파 건조기를 발견,바로 사들였다.당시 2차대전중이어서 군인들에게 감자를 공급,재산은 하루가 다르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네번째 작품은 감자 얼리는 기계이다.감자 냄새를 없애기 위해 데치고 얼리는 이 기계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착상이었다.60년대 중반 맥도널드사에 얼리는 프렌치 프라이 기술을 넘겨주며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마이크론 테크놀러지와의 인연은 우연히 이뤄졌다.마이크론은 법률가인 조 파킨슨과 쌍둥이인 워드 파킨슨의 동료 엔지니어그룹이 78년 설립했다.마이크론의 목표는 메모리반도체 칩인 64KD램을 향상시킨 새로운 형태의 칩을 개발하는 것.문제는 돈이었다.이들은 자금 조달을 위해 각자 자금을 내놓는 한편 심플로트에게도 자금지원을 요청했다.그가 선뜻 거액의 자금을 내놓은 것은 물론이다. 81년 그의 자금을 종자돈으로 마이크론은 1천만달러의 설비자산을 가진 반도체 생산체제의 골격을 갖추며 이듬해부터 64KD램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또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IBM과 마이크론을 제외한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D램의 생산을 중단할 참이었다.일본이 1년6개월만에 D램의 가격을 2달러에서 25센트까지 떨어뜨리는 덤핑전략을 구사하면서 물밀듯이 밀려온 탓이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심플로트의 편에 있었다.당시 레이건행정부가 일본의 반도체에 대해 3억달러의 긴급관세를 매겼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은 이후부터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마이크론은 올해 매출액을 29억5천만달러,순이익 8억4천만달러로 잡고 있다.마이크론의 급성장은 심플로트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다.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낙관주의자인 그는 대용량·저비용의 경영이념이 철저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심플로트는 이처럼 사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했으나 여러번 스캔들에 휘말리고 가정적으로는 불행했다.76년 상품 선물시장을 조작했다는 혐의로 피소됐다.감자의 현물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단기 감자선물을 투매한 것으로 드러나 5만달러의 벌금과 1백40만달러의 소송비용을 물었다.77년에는 1백만달러의 회사소득을 신고하지 않는등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2만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가정적으로는 알코올중독자이던 그의 아들은 당뇨병으로 죽었고 다른 자녀들도 제몫을 못하는 천덕꾸러기들이다. 이같은 역경도 심플로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그는 94년9월 당당히 마이크론 테크놀러지의 총수자리에올랐다.
  • 강택민 주석 방한 의의/조석흔 중국 인민외교협상무이사(특별기고)

    ◎“한·중 전면협력 가속화 전기” 오는 13일 이루어지는 강택민 중국국가주석의 한국방문은 금세기 역사적 사건의 하나로 기록되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중국의 최고지도자로서는 첫번째 공식방문인 이번 방한은 중국정부의 한국에 대한 중시와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택민주석의 이번 방한을 통해 한국과 중국 두나라의 관계는 더욱 가속화 될 것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또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및 안정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도 이번 방문의 의의로 들 수 있다. 한·중 두나라는 수천년 유구한 문화전통을 갖고 있고 오랜 친선 및 왕래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근대에 들어 두나라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항쟁해온 같은 시련의 경험도 공유하고 있다.이러한 친선의 역사는 지난 92년8월 두나라 국교수교로 50년동안의 단절을 딛고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특히 두나라는 문화적·역사적 동질성과 국민들사이의 친선의 역사를 통해 두나라의 관계발전속도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두나라의 교류는 경제를 포함,정치방면에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무역·투자보호에서부터 과학기술협력·문화협력·항공기의 공동생산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의 민감한 분야에 까지 두나라의 협력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특히 두나라 정부는 경제무역 합작위원회를 설립,경제무역교류 촉진에 노력하는가 하면 세계 다른 곳에선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산업협력 위원회」를 설립,경제교류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고 있다. 94년말 두나라의 무역액은 1백17억2천만달러(중국측 통계기준).올해 상반기에는 이미 77억달러를 기록,연말까지 1백50달러 돌파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중국은 이미 한국의 제3의 무역 상대국이 됐고 94년말 현재 한국의 중국투자 역시 40억달러로 한국의 제일큰 투자대상국이기도 하다. 특히 두나라 경제협력에서 주목할 점은 전략적인 중점 산업에서 전면적인 협력을 들 수 있다.두나라는 「산업협력」이라는 두나라 정부가 틀을 만들고 민간이 참여하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경제공동체를 향한 거보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것이다.지난 3년동안의 협력사업을 통해 두나라 경제가 높은 보완성을 지니고 있다.또 앞으로도 상호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한·중 두나라의 협력은 경제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볼때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냉전이 끝난뒤 긴장완화와 협력증진은 전반적인 국제형세의 추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결코 세계가 안정돼 있다고 할 수 없다.오히려 각종 새로운 모순이 더욱 얽히고 설켜 더욱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세계 각국은 이러한 국제정치무대에서의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자국의 정책을 조정하고 새로운 국제관계와 질서확립을 모색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아래서 한·중 두나라는 사회제도가 같지 않은 두나라의 친선교류의 전형과 모범을 국제사회에 확립시켜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그 정도로 두나라는 급속한 친선협력관계를 이뤄나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어떤 기본원칙을 가지고 한국을 대하고 있는가.중국은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평등·협상,호혜 및 상호신뢰라는 기본원칙을 갖고 상대국을 대한다는데 변함이 없다.두나라의 관계발전과정에서 모순이나 의견 대치는 피할 수 없는 관계의 일부일 것이다.그러나 상호간에 이러한 원칙을 기반으로 문제에 접근한다면 모순은 결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관계발전은 두나라관계는 물론 동북아지역의 정세발전에 적극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현재 불행히도 한반도의 국제정세는 비정상적이며 긴장 및 위기의 잠재요인이 사라지고 있지 않다.지난해 미국과 북한사이의 제네바합의가 달성된뒤 일부 완화의 기미가 있었지만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선 관련 각국의 평등하고 인내성있는 협상만이 문제해결의 방법임을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을듯하다. 한반도와 관련,중국은 평화·안정유지와 남북이 당사자 대화를 통한 평화통일을 자주적으로 실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이다.중국은 한반도의 남과 북 양측과 모두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이는 한반도의 평화·안정과 지역의 안정·평화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강택민주석의 한국방문은 중·한 관계의 깊이와 폭을 한단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며 두나라가 전면적인 상호협력의 장을 펼쳐나가는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방문의 원만한 성공을 축원한다.
  • 라빈 이스라엘 총리 피살­워싱턴은 외교노력 강화를(해외사설)

    이스라엘은 수년동안 정치적 폭력의 몫이상을 인내해야 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이츠하크 라빈 총리의 암살로 경악스럽고 새로운 경험에 직면하고 있다. 외부의 많은 군사적 위협을 이겨낸 이스라엘은 이제 가장 심각한 국내 정치적 긴장을 이겨내고 진로를 잡아야 한다.이스라엘의 기본적 가치관과 국민들의 힘은 이같은 시련을 견뎌낼 수 있다. 중동평화협상은 미 백악관에서의 희망에 부푼 첫 서명식이후 26개월동안 후퇴와 위기상황을 되풀이했다.그러나 최근 몇주일동안 라빈은 협상과정을 성공적 결론으로 끌고가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더욱 굳건히 다졌다.두번째 백악관에서의 서명식이후인 바로 몇주전 이스라엘군대는 서안지역의 주요 팔레스타인마을들로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다음의 안건은 팔레스타인의 총선과 예루살렘및 유대인 정착문제등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한 협상의 시작이었다. 라빈은 요르단과의 정식평화협정과 함께 시리아와의 궁극적 평화를 규정하는 단계도 추구했다.그는 이스라엘은 결국 자신의 영토에서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명확한 비전을 갖고 이를 단계적으로 실현시켜 나갔다.그는 자신의 평화계획에 팔레스타인과 유태 극단주의자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어떤 위험이 있더라도 이를 계속 추진할 용기와 결단력을 갖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이 평화과정을 개척하는데 있어 그와의 전적인 동반자였다.그는 평화로 가는 길에서 라빈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친구였다.페레스는 라빈처럼 군사지도자로서의 경험은 부족하지만 외무장관을 역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외교와 안보이익을 보호하는데 노련할 것이다. 부시와 클린턴정부의 미국은 라빈을 특별한 우방으로 보고 평화의 길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워싱턴의 동정적 노력이 상처받은 이스라엘을 안심시키고 미묘한 이 지역의 외교가 제길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더욱더 필요하다.그것이 라빈의 기억을 영광스럽게 하고 그의 위대한 업적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 여권,국정운영 정상화 총력/김 민자대표 밝혀

    ◎새해 예산안처리·민생대책 다각 검토 여권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부정축재파문으로 국정운영과 새해예산안 심의를 앞둔 정기국회운영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이번 주부터 국정운영 정상화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와관련,민자당의 김윤환 대표위원은 6일 확대당직자 회의에서 『온 국민의 관심이 전직대통령 비자금문제에 집중돼 있다』면서 『모든 것은 검찰의 조사를 통해 한점 의혹없이 진상이 밝혀질 것이며 국민이 평상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당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표는 또 『집권여당은 어떤 시련속에서도 국정에 무한책임을 지기 때문에 이럴 때 일수록 중요한 일은 민생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노씨사건이 정부·여당의 국정운영수행에 더 이상 차질을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비자금 처리」 주목하는 미 언론/이건영 뉴욕특파원(오늘의 눈)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불법정치 비자금을 보는 미국언론의 시각은 한마디로 철저한 조사를 통한 엄벌로 요약된다.일본이나 동남아는 물론 유럽의 언론에 비해서도 이상할이만큼 사실보도를 자제해왔으나 논평만은 단호하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최근 사설에서 김영삼대통령은 노씨를 감옥에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부패관련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군사독재의 그늘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한국은 과거의 부정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사설은 특히 군사정권에 반대해온 김대중씨가 노씨의 정치비자금 수혜자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미국언론이 노씨의 비자금사건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5천억이라는 「천문학적」비자금의 규모와 도덕성의 파괴문제이다.의원대상 선물상한액이 50달러로 규정될 만큼 「공짜돈」이 없는 미국사회에서 이같은 비자금 규모는 별천지의 얘기로 들릴법도 하다.도덕성문제는 야당의 지도자인 김대중씨의 「자백」을 빗대면서 평생을 군사정권에 투쟁해온 김씨가 군사정권의 자금을 어떻게 받을수 있느냐는 뜻을 비치고 있다.일부에서는 김대통령의 「대선자금」도 거론한다.좋게 보아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풍토 관행상 「예스」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이라도 미국사회에서는 단연 「노」라는 대답이다.동시에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한국의 재벌」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의지도 미언론의 관심사다.과연 검찰이 한국의 경제적 파장을 의식하지 않고 재벌들을 다룰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 언론의 태도는 조용하면서도 들출 것은 다 들추고 있지 않느냐는 인상을 준다.그러면서 내심 한국의 정치사상 첫 문민대통령인 김대통령의 처리방식도 겨냥하고 있다.한국검찰의 독립성과 함께 한국의 「민주화」잣대로 삼겠다는 의도이다. 한국은 지금 세계에 너무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노출돼 있다.일종의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적 시련」이다.노씨의 사건이 국제사회가 납득을 못하게 매듭지어질 경우 우리나라는 또다른 부담을 안게될 것이다.우리가 가장 듣기 싫은 얘기는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된 나라이다.노씨의 사건이 이를 입증하는 계기가 돼서는 안될 것이다.
  • 대우 왜 노씨 비자금 실명전환 해 줬을까

    ◎“인간적 차원서 노씨 부탁 거절 못해”­대우/“파격적 조건의 괴자금 유혹 못떨쳐”­재계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이 노전대통령 비자금 파문의 대상인물로 떠올랐다.비자금 파문이 터지면서 각종 연루설에 등장했던 김회장이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에 이어 2번째로 비자금을 실명전환 해 준 사람으로 밝혀졌다. 재계에서는 김회장이 정치자금 제공이나 뇌물수수가 아니라 실명전환에 연루됐다는 점에 일단 놀랍다는 반응이다. 재계 3·4번째의 대기업을 이끄는 김회장이 무슨 이유에서 엄청난 위험부담을 안고 비자금을 실명 전환해줬냐는 것이다.6공 기간동안 반강제적인 분위기에서 낸 정치자금은 당시의 관행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대기업이 검은돈의 도피처를 제공해 줬다는 점에서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는 반응이다. 재계는 이런 관점에서 두가지 이유를 상정한다.하나는 노전대통령의 단순한 부탁으로 실명전환을 해줬을 것이라는 시각이다.6공정권과 인연이 있는 김회장이 인간적인 차원에서 노전대통령측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이것은 주로 대우그룹측 관계자의 말이다.대우측도 『89년까지 자금이 모자라 경영에 애를 먹은 적이 있지만 그후 90년대 들어 자금력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혀 이런 시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후자의 시각에 무게를 두고 있다.김회장의 치밀한 성격이나 당시 실명제 발표후의 살벌한 분위기에서 다른 대가를 기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실명제 후 금융가에 나도는 괴자금설과 연결짓는 시각이다.연리 6%와 5∼10년거치 상환이라는 파격적인 자금조건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김회장의 실명전환의 이유를 찾는 사람들은 대우의 공격적인 해외투자를 배경으로 꼽는다.2000년까지 2백만대의 자동차를 생산,베트남과 루마니아·폴란드·우즈베크 등 세계 곳곳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기 위한 자금조달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이 경우 1백2억원 이외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계좌가 아직도 대우그룹측의 실명전환을 거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노전대통령측이 굳이 다른 대기업들이 아닌 대우그룹을 실명전환 대상으로 삼은 것은 6공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대우그룹은 6공과 관련해 몇가지 눈길을 끄는 인연이 있다.본사 매각 등 5천억원의 장기저리 구제금융을 제공해준다는 조건으로 대우중공업과 대우조선을 합병해 놓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도 6공 정부가 묵인,톡톡한 재미를 봤던 적이 있다.수영만 땅의 토초세는 아예 면제를 받았다.2천억원이 넘는 안기부 본사이전 공사를 대우가 맡은 점과 국방부가 발주한 잠수함 사업을 따내 비자금 연루설에 시달리고 있다.89년부터 92년까지 한국전력의 원자력발전소의 발주 비리에 연루돼 김회장이 법정에 서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김회장은 2일 귀국일정을 돌연 연기,현재 폴란드에 체류중이다.따라서 검찰의 조사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김회장만이 실명전환 등 비자금 관련 사실을 알고 있다.28년만에 대우신화를 창조한 김회장이 어떻게 비자금 시련을 극복할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 노태우씨 비리 수사­외국의 실례는…

    ◎불 검찰 집권당 불법 정치자금 조사/대선·총선전 비자금 조성 포착/현 대통령 측근도 수사선상에 날카롭기로 소문난 프랑스의 에리크 알펭검사가 정치권에 대한 사정의 칼날을 다시 곤두세웠다. 알펭 검사는 지난해 프랑스의 대표적인 부정의 온상으로 알려져 있는 서민주택(HLM)과 관련된 정치권의 비리를 파헤쳐 더욱 유명해진 인물.그는 당시 정치권의 실세이던 샤를 파수콰 내무장관의 한 측근을 서민주택건설 허가와 공급 과정에서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조사했다. 서민주택과 관련한 정치자금이 여야에 들어갔다는 소문으로 프랑스가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그런데 알펭 검사의 정치권 비리 조사가 한창일 때 그의 장인이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파리시내 병원의 정신과 의사인 그의 장인이 파스콰 내무장관의 측근으로부터 공항에서 1백만프랑(1억5천만원)이 든 돈가방을 받다 현행범으로 잡힌 것. 경찰은 「사위에게 수사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해달라」는 부탁과 이를 응낙하는 두사람의 은밀한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 테이프를 증거로 제시했다.이처럼 문제있는 장인을 둔 알펭 검사의 수사가 공정한지에 대한 문제도 당연히 제기됐다.경찰 지휘를 맡고 있는 내무장관의 측근이 지위를 이용해 경찰을 동원,도청및 녹음을 해 수사에 차질을 빚도록 「공작」을 벌인 것이라는 비난 여론도 거세게 일었다.법원은 녹음테이프가 경찰권을 넘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증거 채택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 뒤 서민주택과 관련한 정치권의 비리 수사는 흐지부지됐다.이같은 시련을 겪은 알펭 검사가 이번에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소속한 집권여당인 공화당연합(RPR)의 비리를 파헤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알펭 검사는 지난주부터 공화당연합의 비밀 회계원 2명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르몽드지가 1일 보도했다.공화당연합은 비밀회계원을 고용해 자금을 빼돌려 지난 5월 대통령선거의 선거비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공화당연합은 같은 방법으로 돈뭉치를 93년 총선에도 사용한 것으로 당시 관계자들이 증언했다.이 과정에서 시라크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미셀 루셍씨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루셍씨는 지난해 가을 개발지원장관을 지내다 서민주택건설허가와 관련해 기업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자 장관직을 내놓은 적이 있다. 알펭 검사는 공화당연합의 회계책임자 루이스 카제타 여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지난해의 좌절에도 불구,정치권의 비리를 파헤치겠다는 의욕을 포기하지 않은 프랑스검찰이 이번에는 비리의 꼬리를 어디까지 파헤쳐낼지 관심을 모은다. ◎미국­국제금융 이체로 검은돈 세탁/사람손 안거치고 돈만 이동… 흔적 없어/매일 3억달러선 합법자금으로 둔갑 더러운 돈을 깨끗하게 만든다는 돈세탁은 알 듯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모르고 궁금한 점이 더 많은 이상한 기술이다.이를 미국의 경우를 중심으로 좀 더 자세히 알아본다. 돈세탁은 격정의 범죄와 대별되는 금전이득을 위한 범죄에 전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불법적 행동을 통해 마련된 뭉칫돈은 마음대로 쓰거나 다른 곳에 투자하기 전에 합법적으로 보이게 하는 세탁 과정을 꼭 거쳐야한다.그냥 놔두면 꼬리가 잡혀 불법이 들통나기 때문인데 합법적으로 번 돈을 세금을 피하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가장하는 것도 돈세탁에 속한다.미국 연방기관의 추산에 따르면 1년에 세계적으로 약 3천억달러가 돈세탁을 거치며 이중 1천억달러가 마약밀매에 관련돼 있고 나머지는 탈세,증권범죄 관련이다.미국인들은 매년 불법마약 구입에 5백억달러 정도를 쓰며 이 달러는 국경선 반출을 통하든 국제간 금융전자이체로든 해외공급책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돈세탁은 대충 세가지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은행 등 금융기관에 현금을 가지고 오는 운반 과정,다수계좌 사이를 이리저리 옮겨다니거나 여행자수표 및 자기앞수표로 바꿔 돈의 불법적 유래를 희석시키는 덧칠하기,합법적인 돈과 섞는 통합 과정 등이다.마약·도박·공갈·매춘 등 조직범죄의 이득은 대개 소액단위 현금 형태다.길거리 마약밀매는 대체로 5∼20달러선인데 20달러짜리 지폐로만 1백만달러를 만들면 50㎏이나 나간다.이런 뭉칫돈은 보관에 큰 문제가 있어 자기앞수표로 바꾸거나 다른 곳으로 이체시킬 필요가 생긴다.또 1만달러 이상의 현금거래자는 은행이 반드시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뭉칫돈을 1만달러 이하로 수없이 쪼개 입금하는 작업이 필요하다.이 작업을 왔다갔다 반복하는 하수인을 만화영화의 「스머프」라 부르는데 이 스머핑 작업도 불법에 속한다. 미국달러는 아직도 현금형태로 국경선에서 밀반출·입되기도 하지만 전자금융이체가 돈세탁의 압권인 덧칠하기의 핵심이다.어마어마한 합법적 전자거래량이 돈세탁의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방패막이 노릇을 해준다.미국에서 하루 전자이체량은 70만건에 달하며 이중 0.05∼0.1%가 돈세탁용으로 추정된다.이 하루 전자이체 총액은 적어도 2조달러에 달해 최대 3억달러로 생각되는 돈세탁 이체를 「새발의 피」 쯤으로 소홀히 여기기 쉽게 한다. 전자이체량이 이처럼 엄청나고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개입없이 전자동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첨단 인공지능을 이용해 돈세탁 기미가 있는 전자이체를 추려내 보려는 시도도 당분간은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왔다.돈세탁이 한층 융성하리라는 결론인 것이다.◎아르헨­해외도피 재산 추적 안간힘/세금혜택 주고 국내반입 유도/200억달러 이상 유출… 중앙은 외환보유고의 2배/미국과 세무협약 통해 과세 추진… 성과 미지수 아르헨티나 정부가 해외도피재산 추적과 과세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불황이 시작된 지난해부터 미국 등 해외로 밀반출된 개인재산이 되돌아올 줄 모르는데다 현재 미정부와 체결을 추진중인 세무협약이 부유층의 반발로 무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자료를 인용한 아르헨티나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행에 예치된 멕시코와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브라질 등 중남미 주요나라 국민들의 개인예금액수는 7백60억달러에 이른다. 특히 멕시코 금융파동 이후 각국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대되면서 중남미 부유층의 재산도피가 급증,아르헨티나만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와 맞먹는 1백18억7천9백만달러로 치솟았다.멕시코(1백67억7천7백만달러)와 베네수엘라(1백29억4천6백만달러)에 이어 3위를 차지한 것이다. 여기에 금년들어 우루과이 비밀은행으로 빠져나간 자금을 보태면 1백60억∼1백70억달러에 이른다.또 유럽의 은행에 보관된 금액까지 더하면 총도피액수는 2백억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당국은 국민들의 재산도피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이미 멕시코 환율파동 이전부터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도피자산 추적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뜻한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밀반출 재산을 산업자본으로 흡수할 목적으로 지난 91년에 개정된 소득세법은 해외재산에 대한 신고 의무화와 함께 보유재산에 대한 세금도 국내에서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더 이상의 자산유출을 막고 도피재산을 끌어들이기 위한 일종의 「해외도피재산 실명제」인 셈이다. 그러나 세법개정 후 2년간의 의무신고기간에 신고된 도피재산액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그러자 아르헨티나 당국은 미국과의 세무협약 체결이라는 묘안을 다시 내놓았다.협약안은 아르헨티나에 진출한 미기업들에 세무상의 혜택을 주는 대신 아르헨티나 당국의 요청이 있을 때 미정부는 세무당국에등록된 특정인의 재산현황에 대한 과세자료를 넘겨주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세무협약 체결도 일부 정치지도자와 금융·기업인 등 부유층의 반대로 진전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이들은 또 해외자산 전체를 「도피자산」으로 간주하는 발상 자체가 무모하다고 역공세를 펴고 있다.
  • 창간 50주년 기념 제1회 서울신문 국제포럼 토론내용­Ⅰ

    ◎“남북이념 통합돼야 통일 가능 서울신문 창간50주년을 기념하여 3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에는 국내외의 저명한 교수와 한반도전문가들이 모여 한민족 통합을 위한 여러가지 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제1주제(정치군사통합)와 제2주제(사회경제통합)로 나누어 상·하오에 걸쳐 벌인 이날 토론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나웅배 통일부총리 기조연설 요지/“핵 반드시 저지… 교류는 단계적 확대” 화해와 협력을 통해 민족의 앞날을 열고자 하는 우리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냉전적 대결노선을 고수하고 있다.우리측이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에 대해 15만t의 쌀을 지원했으나 북한측은 우리측에 무장공비를 남파했다.북한이 이러한 대결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안팎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을 맞고 있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핵개발을 카드화하는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 대외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는데서 북한의 절박한 위기감과 고립감을 엿볼 수 있다.북한은 또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난을 겪고 있다.식량사정은 매년 2백50만t 내외가 부족량이 누적되어온 상황에서 지난 여름에 발생한 수재로 한계상황을 맞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개혁·개방밖에 없다.그러나 북한은 체제유지에 역작용을 일으키지 않을까 이를 우려하고 있다.북한이 세차례의 남북회담에서 우리로부터 많은 것을 얻으려 하면서도 당국간 정상적인 대화를 기피하고 우성호선원 송환 등 인도적인 문제에까지 경직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그러나 북한은 개방과 개혁 및 화해하고 협력하는 역사의 대세를 언제까지 외면하고만 있을 수 없다.분단을 강요했던 냉전체제가 사라짐으로써 통일은 민족의 자주적 역량에 달린 문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점진적인 방향의 통일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화해협력의 단계에 진입하는 것은 절실하고도 시급한 당면과제다.우리가 1천8백50억원에 상당하는 쌀을 북한에 지원한 것은 순수한 동포애적 차원에서 취해진 조치다.우리는 남북간 경제협력과 사회분야의 교류도 단계적으로 넓혀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민족통합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며 이를 위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현재 한반도에서는 40여년간 평화를 유지해온 정전협정체제가 도전을 받고 있다.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당국간에 협의·해결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남과 북은 기본합의서를 통해 이 문제에 관한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신뢰는 모든 관계의 기초인만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에 대한 성실한 이행이 중요하다. ◎손주환 서울신문 사장 개회사 요지/“국제정세 급변… 지금이 통일준비 적기” 21세기의 한국을 내다보는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오랜 연구끝에 마련한 한 장기정책보고서는 『21세기에는 한민족의 통일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며 민족공동체의 구상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물론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 남북관계의 객관적인 현실에비추어 볼때 다소 앞선 기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제정세의 급변과 한반도 내외정세의 역동적인 변화에 힘입어 예기치 못한 「어느 한 시기」에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본다.더욱이 객관적인 측면,즉 북한 사회주의체제가 세계 사회주의권의 전반적인 변화의 흐름에서 궁극적으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위에 설때 지금이야말로 시급히 그리고 가장 현실적으로 통일을 준비해야 할 때다. 한반도 한민족의 통합,다시 말해 남북한지역의 주민을 하나의 관계구조로 묶는 작업은 결국 새국가의 국민적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확립하는 일이다.국민적 정체성 확립의 근간은 통일한국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새국가의 일원으로서 「우리」라는 동질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통일한국에서의 정치·사회적 갈등양태가 보통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정도로 심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더욱이 북한지역의 경우 그들이 통일 이전에 자유화 또는 다원화로의 체제변동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새로운 체제의 구축보다는 구체제의 파괴로부터 발생하는시련을 겪게될 가능성이 더욱 클 것이다.따라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을 준비하는 작업은 민족공동체를 형성하고 운영함으로써 민족발전사의 공백기간을 메워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이다. 남북한의 통일은 정치·군사적 대결에 따른 어느 일방의 승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는 우리민족 전체의 이해와 화합과 희생적인 협력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또 한민족 통합의 과정에서 우리는 개인적 차원에서나 국가적 차원에서 많은 고통과 희생,그리고 경제적 부담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세계의 지도자상」(사설)

    「유엔 헌장의 원칙과 정신에 따라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세계적 지도자」에게 주어지는 상을 대한민국의 김영삼대통령이 탔다.유엔에 의해 식민지상태에서 해방되어 근대국가를 건설하고 전쟁의 폐허에서도 유엔의 도움으로 회생한,아직도 완전한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잔존 분단국 대통령이 차지한 이 명예를 우리는 대견하게 되새기지 않을수 없다. 김대통령이 수상연설에서 밝혔듯 『지난 반세기에 걸친 한국의 국가건설과정은 유엔과 한국과 미국이 힘을 합쳐 유엔의 이상을 구현한 역사』였다.그런 한국이 이제 세계와 인류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유능한 나라임을 인증한 것이 「세계의 지도자상」에 담긴 뜻이기도 하다. 수상에 앞서 김대통령은 유엔연설을 통해 유엔의 「변화와 개혁」을 위한 제언도 한 바 있다.효율적인 유엔의 기능을 위하여 유엔정상회의 정례화를 촉구하고 새 국제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신선하고 능동적인 대응을 일깨운,그의 제언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곤살레스 스페인 총리,라빈 이스라엘 총리,라흐마노프 타지키스탄 대통령,레 둑 안 베트남 국가주석등 10여 나라의 정상들과 가진 마라톤정상회담은 시간이 모자라 요청을 못다 수용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유엔의 무대에서 실감한 우리의 위상은 이렇게 탄탄해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걸맞은 외교의 지혜를 다하기 위해 국가 최고지도자가 촌음의 시간을 별러쓰며 애를 쓰고 있는 같은 시각,국내의 사정은 혼미와 소요의 극을 치닫고 있다는 일은 좀 유감스럽다.그것도 지난 시대의 상처가 국민의 분노를 새삼 유발하고 있는 「비자금 정국」의 혼미는 너무 안타깝다. 그래도 지금 이런 시련을 마련한 역사의 의지는 따로 있을 것이다.언제고 되살아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옛날의 과오를 이 기회에 충분히 척결해야 할 것이다.더는 지난날에 미래를 볼모잡히고 허덕이는 일이 계속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지혜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 김 대통령 세계 지도자상 수상 연설에 담긴 뜻

    ◎남북 경협 「주고받기」로 전환/북 태도 변하지 않는한 무상원조 없다/민간 기업 교류채널은 열어 “유연한 대응”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미국 유엔협회가 선정한 세계지도자상 수상연설을 통해 남북한 경협 추진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평화문제에 있어서는 정전체제 준수,남북 당사자간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평화체제 교섭,대화를 통한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라는 기존 3대 방침이 재천명됐다.또 한반도 통일은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며 점진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점이 거듭 강조됐다. 남북경협에 대해서는 새로운 표현들이 등장,앞으로 정책추진의 원칙을 정리한 느낌을 주었다.김대통령은 연설에서 『남북간의 경제협력은 궁극적으로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상호이익이 되는 거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이 언급한 「시장경제원칙」이 갖는 첫번째 의미는 무상원조를 지양한다는 것이다.더이상 국민세금에 바탕을 둔 대북 지원은 불가능함을 확실히 했다고 볼 수 있다.쌀지원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북한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무상지원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우선은 민간기업 차원에서 경협의 물꼬를 터 가겠다는 설명이다. 둘째,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무조건 떼를 쓰는 식으로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기 힘들다는 점을 느끼게 하자는 취지다. 일반적 국제경협처럼 남북관계도 「주고 받는(give and take)」 관계로 진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김대통령은 그런 맥락에서 「시장경제원칙」과 함께 「상호이익이 되는 거래」를 강조했다.북한이 이러한 교류패턴에 익숙해진다면 그들의 개방정책 추진에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게 당국자의 설명이다. 셋째,북한과의 경협추진을 완전중단하지 않고 민간채널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그들을 궁지로 몰 때 어떤 행동을 할 지 예측불허인 탓이다.김대통령도 캐나다의 CBC­TV와의 회견에서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죽을 것 같은 처지에 처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도 할 수 있으며 북한도 그럴 수 있다』고 우려했다.이와 관련,최근 잇따른 무장침투및 무장간첩 사건도 유의할 대목이다. 청와대의 고위당국자는 시장경제원칙에 따른 남북경협 추진에 있어서도 전제는 있다고 밝혔다.우리 기업인이 안심하고 북한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신변안전및 투자이윤에 대한 보장이 선행돼야 한다.통행·통신의 자유가 확보돼야 함은 물론이다.궁극적으로는 이중과세방지협정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런 전제들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당분간 정부 당국간 채널의 경협추진은 물론 민간 차원의 남북경협도 의미있게 이뤄지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김대통령을 수행한 외교당국자들은 남북 경협의 앞날을 비관만은 않고 있다.한 고위관계자는 『북한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들을 진정 도울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기 때문에 멀지 않은 장래에 북한도 변화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계 지도자상」이란/「유엔이상 실현」 공세운 지도자에 시상/김 대통령 네번째 수상… 아주국선 처음 김영삼 대통령이 받은 「세계지도자상(GlobalLeadership Award)」은 미국유엔협회가 「유엔헌장의 원칙과 정신에 따라 인류사회의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세계적 지도자」를 선정해 주는 상이다.지난 92년 제정돼 매년 시상되고 있다. 미국유엔협회는 김대통령을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국제협력 강화와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김대통령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라고 이유를 밝혔다. 제1회 세계지도자상의 영예는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이 차지했다.이어 차기 미국대통령후보감으로 주목되고 있는 파월 전미합참의장과 살리나스 전 멕시코 대통령이 수상했다. 김 대통령은 제4회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이다. 특히 시상식장에서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이 김대통령을 소개함으로써 국제적 지도자로서의 성가가 더 부각됐다는 평가다. ◎김 대통령 세계 지도자상 수상 연설문 요지 오늘 미국 유엔협회로부터 「세계지도자상」을 수여받은 것은 나의 무한한 영예입니다. 오늘의 영광은 지난 반세기동안 온갖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자유와 번영을 꽃피워 낸 위대한 한국 국민들에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 유엔이 창설 50주년을 맞게 된 것은 참으로 경하스러운 일입니다.유엔은 그동안 여러가지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 크게 이바지해 왔습니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한국의 국가건설 과정은 유엔의 이상을 구현하는 역사였습니다.한국은 유엔의 창설과 같은 시기에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그후 한국정부는 바로 유엔의 결의에 의해 수립되었습니다. 1950년 북한의 남침 때 유엔의 집단안보에 대한 단호한 의지가 최초로 행동으로 옮겨진 무대도 바로 한반도였습니다.전쟁이 끝난 후에도 유엔은 빈곤과 분단으로 고통받는 한국 국민에게 여러가지 지원을 베풀었습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던 한국은 이제 세계 11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로 도약했습니다.한국은 산업화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민주화를 통해 유엔헌장이 담고 있는 자유와 인권 그리고 정의를 실현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폭넓은 개방하에 국제협력을 가속화하기 위한 세계화 정책을 본격 추진하고 있습니다.아울러 지구적 차원의 문제해결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소말리아에 이어 서부 사하라,그루지야,앙골라에서 유엔의 숭고한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오늘도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우리 정부가 내년부터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것도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 시각에도 유엔의 기치 아래 미국의 젊은이들이 휴전선 최전방에서 평화를 지키고 있습니다.최근에는 유엔이 서명한 정전협정체제가 북한에 의해 위협받고 있습니다.한반도의 평화정착은 세계사적인 시각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나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우리의 기본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히는 바입니다. 첫째,한반도의 정전체제는 영구적인 평화체제로 대체될 때까지 확고히 유지,준수되어야 합니다.둘째,정전체제를 대체하는 평화체제는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책임이 있는 남북한 당사자간에 교섭되고 합의되어야 합니다.셋째,남북한은 상호관계를 대화를 통해 정상화함으로써 군사적 대치상태를 해소해야 합니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는 유일한 길은 평화통일에 있습니다.나는 멀지 않은 장래에 한반도가 반드시 민주주의 방식에 의해 통일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한반도 통일은 평화적이고 민주적이며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반세기에 걸친 남북간의 단절을 메우고 불신을 극복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남북간의 경제협력은 궁극적으로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상호이익이 되는 거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일된 한국은 분단된 한국보다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에 더욱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 기업들 “산업활동 위축 불가피” 긴장/금융권·재계 움직임

    ◎은감원,실명제 위반점포 자체조사 착수/6공때 대형공사 업체 수사방향에 촉각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중은행과 돈을 준을 기업들로 확대됨에 따라 관련은행들과 재계는 수사 대상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더욱 긴장하고 있다. ○…은행감독원은 검찰조사가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자체조사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다 뒤늦게 실명제 위반 점포와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체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20일 하오 7시쯤 홍재형 부총리가 김용진 은행감독원장에게 실명제 위반부분을 조사토록 지시하면서 자체조사가 본격화됐다고 관계자가 전언 편원득 은감원 부원장보는 『박계동 의원이 공개한 잔고증명서가 서소문지점에서 나간 것으로 보고 먼저 서소문지점을 뒤졌으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며 『본점 전산부에서 전산기록을 뒤져보니 수지지점에서 자료를 출력한 것으로 나타나 김신섭 차장을 소환했다』고 조사과정을 설명. 김원장은 『홍부총리가 실명제위반 조사를 요구했을 때 사건의 본말이 바뀔 수 있다며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말하고 『서석재 전 총무처장관의 4천억원 비자금 발언파문때 인지차원에서 수사했던 검찰이 부담을 덜기 위해 은감원이 고발하면 입건형식으로 수사에 착수하는 수순을 선택한 것 같다』고 분석. ○…실명제 위반혐의로 간부 2명이 고발된 신한은행은 창립 13년만에 최대의 시련을 겪게 될 전망. 영업위축은 물론 지난 90년 이후 5년 연속 은감원의 경영평가에서 최우수은행이었다는 이미지에도 상당한 손상을 줄 것라는 분석. 신한은행은 사건이 표면화된 지난 19일부터 나응찬행장 중심으로 연일 대책회의를 갖고 있으나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력한다는 것 외에는 뽀족한 대응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간부들이 실명제 위반으로 고발됨에 따라 행장까지 문책될 위기. ○…재계 일각에서는 국민 여론 등을 감안할 때 어차피 기업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럴 경우 2∼3개 그룹 정도가 「희생양」이 되지않겠느냐는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 한 경제단체의 관계자는 『모그룹은 26일로 예정했던 사장단 인사를 연기하는 등 이번파문이 벌써부터 기업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면서 경영부재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파문이 조기에 수습되기를 희망. ○…월성원자력 3·4호기를 수주하면서 김우중 회장이 안병화 전한전사장에게 2억원대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2심 판결에서 징역 8개월,집행유예 1년의 판결을 받았던 대우는 이번 파문에 아주 민감한 반응. 대우 관계자는 『김회장이 이미 처벌을 받은 이상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지만 주가하락 등 간접적인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 역시 전한전사장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최원석 회장이 유죄판결을 받았던 동아그룹도 『이미 매를 맞은 입장이라 특별히 걱정할 것은 없다』고 밝히면서도 정부의 수사방향을 조심스럽게 관망. 한보,삼성,대림 등 6공 당시 1천억원대의 대형 공사를 수주했던 건설업체들도 업종 특성상 비자금 조성이 쉽다는 일반적인 인식 때문에 의심의 눈초리를 받자 곤혹스런 표정들.
  • 비 새는 해인사 경판고/반영환 논설고문(서울논단)

    국보 52호 해인사 경판고에 누수현상이 생겨 천장의 회칠 일부가 떨어지는 사고가 최근 보도됐다.지붕기와의 교란으로 인한 누수현상으로 밝혀졌다.임시방편이지만 이를 막기위해 절에서는 비닐로 방수막을 씌우기까지 했다고 한다.경판고에는 세계 유일 최대의 불교경판인 고려시대의 8만대장경판이 소장돼 있다.한방울의 물은 물론,사소한 습기조차 배어나서는 안될 최적의 공간이라야만 한다. 경주 석굴암과 더불어 유네스코의 세계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장경판과 경판고가 아닌가. ○남대문 녹색안전 띠를 문화재관리국은 최근 이탈리아의 세계적 보존과학자 조르주아 크로치박사를 초청,국내 중요문화재의 안전진단을 실시한 일이 있다.국보1호 남대문과 보물1호 동대문도 대상이 되었다.남대문·동대문은 70년대초 지하철1호선 공사때 「진동에 의한 훼손우려」때문에 논란이 많았던 건조물이다.크로치박사의 진단결과는 『현재로서는 보존상문제가 없으나 주변의 극심한 차량통행과 매연때문에 앞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그는 남대문에서는 차량의 근접통행을 막기위해 폭5m 정도의 녹지 안전띠를 설치하도록 건의했다.오늘의 붕괴위험이 아니라 10년·20년뒤에 올 유적의 수명단축을 우려한 지적이었다.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고 할 경주 첨성대가 기울어 경주시는 얼마전 인접 도로를 폐쇄한바 있다.현명하고 적절한 조치였다.1천3백년의 풍상을 겪어온 첨성대가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은 것이다. ○개발과 문화재의 충돌 유적의 도시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차량의 배기가스에 의한 유적의 훼손을 막기위해 지난 봄 모든 자동차의 도심진입을 금지시켰다.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아황산가스 배출을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석조물,특히 대리석 유적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대기오염,산성비등은 문화재의 부식을 급속도로 촉진시킨다.문화재의 보존관리가 그만큼 더 어려워졌음을 뜻한다. 문화재는 민족문화의 유산이며 인류문화의 총체적 자산이다.그러나 전쟁과 개발,무지와 무관심에 의해 문화재는 파괴되고 훼손된다.지난 60∼70년대 우리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은 한심한 정도로 수준이하였다.통영 세병관입구의 돌 벅수(중요민속자료)의 얼굴에 수염과 붉은 입술을 그려 넣었고 한산도 제승당의 오래된 현판은 대통령친필 현판에 밀려났다.서울 석촌동 초기백제시대의 거대한 적석총의 돌을 캐내 서울시가 샛강 둑을 쌓을 정도였으니까. 70∼80년대에는 대대적인 문화재 보수사업이 추진된 반면,개발과의 상충으로 문화재보호에 시련을 겪었다. 국토개발과정에서 적절한 발굴조사없이 유적지가 파괴되고 교란된 사례가 허다하다. 경부고속철도 노선의 경주 도심통과를 둘러싸고 건설교통부와 학계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도 개발과 보존의 대표적 충돌이라 하겠다.이런 충돌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우리는 문화재보존이 언제나 개발에 밀려났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해인사 경판고 누수는 당장 경판에 피해를 주지는 않을지 모른다.그러나 5년이나 10년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 될 가능성은 있다.최근 문화재보존은 오늘의 붕괴·파손위험이 아니라,내일의 위험을 예방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사실 오랜 세월의 이끼가 묻은 문화재는 허약할대로 허약한 노약자나 어린이와 다름이 없다.그냥 내버려두면 조만간 수명을 다하거나 혹은 수명이 단축될 운명을 지니고 있다.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막기위한 예방적 진단과 손길이 필요한 것이다.「설마 무슨일이 일어나랴」고 방심하다가 문화재에 치명적 손상을 끼치는 경우가 많았다. ○적극적 보호의지 필요 올해 문화재관리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보·보물 보수는 57건 65억원에 불과하다.그동안 보수정화사업이 많이 진행됐다 하더라도 이는 너무 빈약한 예산규모다.문화재는 훼손의 정도가 눈에 띌 정도면 이미 늦은 것이다.지속적이고 과학적인 정밀진단을 통해서 위험의 징후를 사전에 발견하고 적극적인 예방대책을 세워야 한다.
  • 소환 6명 “침묵”… 전주규명 지연 가능성

    ◎검찰 「3백억 비자금설」 수사 전망/이 전 지점장 「입」 안열어 단서 확보 애로/입금 수표추적 병행… 조기매듭에 자신 신한은행에 예치된 3백억원의 전주를 밝히기 위한 검찰수사가 언제쯤 매듭지어질까. 검찰은 다음주중 수사를 종결한다는 계획아래 21일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위반혐의로 고발된 이우근 전신한은행 서소문지점장 등 6명을 소환,밤샘조사를 벌이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결정적인 대목에 이르면 「입」을 서로 짜맞춘듯 굳게 다물고 있어 당초 계획보다 늦어질 공산도 크다. 하지만 검찰은 이전지점장 등이 「돈세탁」을 했더라도 「수표추적」을 병행하고 있는 만큼 이 돈의 전주 및 입금경위를 밝혀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자신하고 있다. 또 「비자금」문제가 나올때 마다 「뜸」을 잔뜩 들이던 정부가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조사 또는 수사의지를 강조하는 데서도 이같은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의 「요체」는 차명계좌에 예치된 3백억원의 전주를 먼저 밝힌 뒤 과연 그 돈이 민주당 박계동의원이 폭로했던 「노태우 전대통령의 4천억 비자금」가운데 일부냐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있다. 그러나 금융권과 검찰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4천억원 비자금설」에 대해서는 그 돈이 누구의 돈이든지간에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게 사실이다.박의원이 주장한대로 그렇게 많은 돈이 한 은행(상업은행 효자동지점)에 예치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4천억원을 한꺼번에 인출하는 것 역시 금융권의 생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는 얘기다. 섣부른 판단인지 몰라도 문제의 「3백억원」은 노전대통령의 「비자금」과는 무관하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정치권과 금융권에서도 이같은 말들이 심심찮게 흘러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3백억원의 전주만 밝혀지면 향후 수사가닥은 자연스레 잡혀질 것으로 보인다.이 전주가 노전대통령 및 전·현직 고위공직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비자금」에 관한 더 이상의 수사는 의미가 없다.이 경우 전주의 자금조성경위 및 탈세 등 범죄혐의유무만 문제될 따름이다. 그러나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위반혐의로 고발된 이전지점장과 김신섭 수지지점차장,우일종합물류대표 하종욱씨 등 3명은 사법처리가 불가피한 실정이다.이전지점장은 3백억원의 차명계좌가 있다는 내용을 공개하고 김차장은 예금계좌 명의인인 「우일양행」의 서면동의 없이 하씨에게 예금잔액을 조회해줬으며 이러한 사실들을 박의원에게 맨처음 귀띔해준 하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김차장에게 「예금잔고조회표」를 떼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의 이러한 행위는 『금융기관 종사자는 명의인의 서면요구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는 그 금융거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해서는 안되며 누구든지 금융기관 종사자에게 그 정보제공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제4조에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 돼 3년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김무길 은감원 국장 1문1답/“금융거래 내용 요구 하씨 실명제 위반”/예금의뢰 “40대 남자” 밝혀진 것 없다 김무길 은행감독원 검사 6국장은 21일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계동의원이 폭로한 전직 대통령 비자금설과 관련,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위반자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다음은 김국장과의 일문일답. ­언제 조사했나. ▲20일 하오7시쯤 재정경제원으로부터 실명제 위반부분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고 곧바로 조사에 착수해 21일 상오5시까지 계속했다. ­3백억원이 입금된 차명계좌도 조사했나. ▲금융부조리나 사고와는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조사하지 않았다.현재로서는 조사할 계획도 없다. ­부친의 회사인 우일양행을 인수한 하종욱씨가 우일양행의 잔고증명을 요구한 것을 적법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계좌개설 당시 하씨의 부친인 하범수씨가 소유한 우일양행의 사업자번호를 사용했으나 기업명은 (주)우일양행으로 돼 있고 대표자명의는 없었다.우일양행과 (주)우일양행은 별개의 회사이므로 우일양행을 인수한 하종욱씨가 (주)우일양행의 금융거래 내용을 요구한 것은 분명히 실명제를 위반한 것이다. ­그럼 (주)우일양행으로 기업금전신탁에 가입한 계좌가 합의차명 계좌가 아니라 가명계좌란 뜻이냐. ▲좀 더 검토해봐야 알겠지만 가명계좌에 가까운 것으로 본다. ­이우근 전지점장이 예금의뢰인이라고 말한 「40대 초반의 남자」나 전주에 대해 밝혀진 것이 있나. ▲이 전지점장을 조사해 본 결과 모른다는 답변만 들었다. ­통장개설 당시 인감이 하범수씨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 누구인가. ▲밝힐 수 없다. ­김신섭씨가 왜 하종욱씨의 부탁을 받고 금융거래 내용을 빼줬나. ▲두사람은 서소문지점 근무 당시 거래관계로 절친한 사이라고 들었다.하씨가 수지지점에 근무하는 김씨를 찾아와 내년에 종합과세가 시행되면 세금이 부과되는 문제로 부친이 걱정한다고 하자 김씨가 화면조회를 통해 우일양행과 (주)우일양행은 상관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그 증거로 조회내용을 건네줬다고 진술했다.(은감원 관계자는 하씨가 대출문제로 김씨에게 신세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명의를 대여한 것 같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이모저모/수색영장 동화은 포함… “수사확대” 추측/명의대여자 소환조사에 한가닥 기대 대검중수부(안강민 검사장)가 21일 하오 이우근 전신한은행 서소문지점장 등 「3백억 차명계좌 예치설」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조사에 나섬으로써 수사에 활기를 띠고 있다. ○…안중수 부장은 이날 상오 이전지점장 등 관련자들에 대해 조사를 먼저 한 뒤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을 예정이라고 말했으나 하오 수사브리핑에서는 상업은행·동화은행·신한은행 본점 전산부 등 6곳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압수수색을 벌이기로 했다고 말해 긴박함을 그대로 표출. 특히 압수수색 영장에는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이 들어 있었다」는 상업은행 효자동지점 뿐만 아니라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을 조사했던 함승희변호사가 제기한 동화은행도 들어 있어 『수사가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이날 하오1시50분쯤 승용차편으로 대검찰청사 현관에 도착한 이전지점장은 검찰에 출두하기 전 이미 은감원측의 밤샘조사를 받은 탓인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 이전지점장은 『차명계좌에 입금된 돈의 주인을 아느냐.돈을 맡긴 40대 남자는 누구냐』는 질문에 『40대 남자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고 은감원조사와 마찬가지로 부인. ○…민주당 장기욱 의원은 상오11시쯤 대검찰청 기자실에 들러 『우리당 박의원의 폭로내용은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하라는 취지였는데 엉뚱하게도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을 준 하종욱씨등이 고발돼 조사를 받는 등 수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검찰수사를 맹비난. 장의원은 『검찰이 하씨등을 사법처리한다면 이는 분명히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검찰은 즉각 3백억원의 전주가 누구인지와 비자금 총규모,조성과정의 불법이 없었는 지를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흥분. ○…이날 상오부터 대검중수부가 위치한 10∼11층이 모두 폐쇄돼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한 느낌. 대형사건 수사 때마다 중수부 검사실의 외부인 출입을 통제해온 검찰은 관련자소환이 이날 하오로 임박하자 내부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특수시정장치의 본격가동에 들어간 것. ○…수사 총사령탑인 안중수부장은 이날 관련자 소환일정만 밝힌 채 이들을 상대로한 조사내용과 방법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하는 등크게 몸조심. 안중수부장은 『누구를 상대로 무엇을 어떻게 조사하는 지에 대해서는 수사기법상 보안이 필요하다』면서 『앞으로도 구체적인 수사진행상황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미리 쐐기. 그는 또 전임 이원성 중수부장(현 대구고검장)이 최락도의원등 수사와 관련,국민회의측에 의해 피의사실 공표혐의로 고발된 사실을 상기시키며 『자꾸 캐물으면 나까지 고발당한다』고 뼈있는 농담. ◎금융권 표정/은감원 “계좌 독자추적 계획없다”/신한은 창립 13년만에 “최대 시련” ○…은행감독원은 당초 비자금설에 대한 규명보다 실명제 위반자에 대한 조사나 처벌이 앞설 경우 「사건축소」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며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했으나 20일 하오7시쯤 홍재형 부총리가 김용진 은행감독원장에게 실명제 위반부분을 조사토록 지시,갑작스레 조사가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은감원은 이에 따라 이미 퇴근한 검사 6국의 직원들을 급히 불러들이는 한편 이우근 전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장과 김신섭 수지지점 차장에 대한 조사도 밤12시가돼서야 신병이 확보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편원득 은감원 부원장보는 『박의원이 공개한 잔고증명서가 서소문지점에서 나간 것으로 보고 먼저 서소문지점을 뒤졌으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며 『본점 전산부에서 전산기록을 뒤져보니 수지지점에서 자료를 출력한 것으로 나타나 김차장을 소환했다』고 조사과정을 설명했다. 김원장은 『금융사고나 부조리와 관련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계좌추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만약 다른 기관의 요청이 있으면 기술적인 자문에는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명제 위반혐의로 간부 2명이 고발된 신한은행은 창립 13년만에 최대의 시련을 겪게 될 것같다. 영업위축은 물론 지난 90년 이후 5년 연속 은감원의 경영평가에서 최우수은행이었다는 이미지에도 상당한 손상을 줄 것으로 보인다.신한은행은 사건이 표면화된 지난 19일부터 나응찬행장 중심으로 연일 대책회의를 갖고 있으나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력한다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응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
  • 20일 본회의(의정초점)

    ◎“일 총리 망언 성토” 갈수록 고조/한일관계 전면 재검토 촉구 잇따라/“을사조약 무효 남북공동 결의” 주문 20일 국회 본회의 통일외교 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총리가 『한·일합방 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된 것』이라고 망언한 것을 놓고 한·일관계의 전면재검토를 요구하는 의원들의 강경발언이 주조를 이루었다. 여야의원들은 특히 일본 정·관계 지도자들의 잇단 망언이 신군국주의화라는 구조적 경향속에서 나오고 있다는 데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시했다.그러나 정부의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소속당에 따라 시각차를 드러내기도 했다. 박근호 의원(민자)은 먼저 『신은 어찌하여 2차대전의 도발국이며 한민족을 식민통치한 간악한 일본을 갈라놓지 않고 선량한 우리 민족에게 이렇게 가혹한 시련을 주시는 것이냐』고 울분을 토로했다.박의원은 『일본측의 잇단 침략 합리화 발언은 경제력증대와 군사대국화라는 군국주의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한뒤 『일본수상의 한·일합방조약 합법발언으로한·일관계 악화는 물론 한·미·일 삼각관계의 균열과 남북분단의 고착화가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수상과 외상등의 망언이 일제 식민지지배등 한·일과거사 청산문제를 놓고 너무 「어정쩡하게」 대응해온 정부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도 신랄하게 쏟아졌다. 임채정 의원(국민회의)은 『94년과 95년 2년사이에만도 모두 7건의 망언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정부는 기껏해야 해명을 촉구하고 유감표명에 그쳐왔다』고 안이한 대응을 꾸짖은 뒤 남북공동으로 일본에 망언해명을 요구할 의향을 물었다. 망언에 대한 정부의 「늑장대처」도 도마에 올랐다.이세기의원(민자)은 『외무부의 대처가 왜 그렇게 한가하냐.평양방송 보도를 전해듣고 알았다는 게 사실이냐』고 따졌다. 정부의 강력한 대응과 적절한 조치,새로운 한·일관계 설정등에 대한 다양한 처방도 나왔다. 박근호 의원은 『외무부장관은 유엔에서 일본의 악랄함과 강제력을 행사한 을사보호조약,정미7조약,한·일합방을 성토하고 식민통치동안의 모든 비행과 징용,정신대문제등을 낱낱이 세계만방에 알리라』고 요구했다. 김원웅 의원(민주)은 『남북공동으로 을사조약 원천무효 결의안을 채택하자』면서 대일문제에 대한 남북한 협조문제를 거론했다.김의원은 또 『제2의 을사조약으로 불리는 한·일조약체결에 앞장선 당사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제2의 이완용이 나온다』면서 민족반역자 처벌특별법 마련을 통한 사법처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시영 외무부 차관은 답변에서 『한·일관계 재정립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에 정부도 인식을 같이한다』고 전제한뒤 『한·일합방조약은 강압에 의한 것으로 원천 무효라는 입장을 바탕으로 한·일기본조약 2조의 올바른 재해석등 강력한 조치를 각종회담과 외교경로를 통해 추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차관은 『모든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일역사 관계의 재정립을 위해 의원외교 차원의 뒷받침도 부탁한다』고 거국적 대응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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