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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創軍(대한민국 50년:14)

    ◎해방 직후 좌우익 군사단체 60여개 난립/“치욕 되풀이 말자” 강력한 군사력 국민적 열망/미군정 견제속 육군·해군·해병대·공군 순 창설 대한민국 국군은,1948년 9월5일 남조선경비대가 육군으로 개편됨으로써 정식 출범했다.정부 수립 21일만이었다.해군도 곧이어 발족했고 해를 넘겨 49년에는 4월15일에 해병대가,10월1일 공군이 창설돼 초창기 4군체계를 확립했다. 나라를 세운 뒤 곧바로 창군(創軍)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그러나 대한민국 국군이 탄생하기까지에는 간단치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해방이 되자 우후죽순처럼 난립한 것은 정치단체만이 아니었다.각종 사설·유사 군사단체가 곳곳에서 깃발을 올렸다.이에는 까닭이 있다. 먼저 35년만에 국권을 되찾은 한민족에게는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함께 강력한 군사조직을 갖추어야 한다는 열망이 불타올랐다.아울러 해방정국에는 독립군 출신을 비롯해 일본군·만군·학도병·공산군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군을 경험한 인적 자원이 풍부했다.좌우 이념대립에따라 군을 선점하려는 양쪽의 경쟁이 작용한 것도 군사조직 난립에 큰영향을 미쳤다. ○사설 군사단체 끼리 충돌 해방 이틀 뒤인 45년 8월17일 서울 교동국민학교에서 귀환장병대(후에 국군준비대로 개편)가 발족한 것을 필두로 그달 말에는 일본 육사출신들이 주축이 된 조선임시군사위원회(위원장 李應俊)가,9월1일에는 좌익 성향의 학병동맹(위원장 王益權)이 잇따라 조직됐다.이밖에 학병단·학도대·광복군국내지대·보안대·한국혁명군·장병대·장총단·조선국군학교·대한민국 군사후원회·육해공군 출신 동지회·한국장교단 등 수많은 군사단체가 등장해 나름대로 활동을 벌였다. 45년 11월 현재 미군정청에 등록한 군사단체는 30곳을 넘어섰으며 비등록조직을 합하면 60여 단체가 존재했다. 이같은 군사조직의 난립에 당황한 미군정은 한국군 창설을 가시화하는 작업에 바로 착수했다.45년 11월13일 군정법령 제28호를 공포해 창군 기본계획 수립을 맡는 국방사령부를 설치한 데 이어 12월5일에는 군간부 양성을 목표로 군사영어학교를 세웠다. 그럼에도 군사단체들의 발호는 그치지 않았고 무력충돌도 적잖게 발생했다.46년 1월18일 학생동맹은 서울 도심에서 반탁전국학생총연맹 시위대를 습격했다.이에 따라 경기도경은 張澤相 부장의 지휘아래 다음날 새벽 학생동맹 본부를 기습해 해체시켰다.이날 金斗漢이 이끄는 우익단체 대한민청은 좌파그룹인 조선국군준비대(총사령관 李赫基)에 총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미군정은 결국 46년 1월20일 사설군사단체해체령을 내려 강력한 단속에 들어갔고 그에 따라 각종 군사조직은 점차 퇴색했다. 한편 창군작업은 남조선국방경비대와 조선해안경비대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진행됐다.국방경비대는 병력 600명으로 제1연대 제1대대를 편성,46년 1월15일 서울 태릉에서 입대식을 갖고 출범했다.2월7일에는 국방경비대 사령부를 구성했으며 그해 4월까지 병력을 8연대로 늘렸다. 국방경비대 사령부는 국방부를 거쳐 통위부로 이름을 바꾸었고 남조선국방경비대도 국방경비대­남조선경비대 순서로 개칭하면서 대한민국 육군의 모태로 자리잡았다.정부 수립 직전 남조선경비대의 규모는 5여단,15연대에 장교 1천403명,사병 4만9천87명이었다. 육군에 비해 해군 창설작업은 훨씬 순조로웠다.해방된지 며칠 지나지 않은 8월21일 孫元一을 중심으로 해사대가 조직됐다.孫元一은 중국 남경 중앙대농학원 항해과를 나와 외항선에서 선원생활을 한 인물로,뒤에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제5대 국방장관(53∼56년)을 역임한다. 해사대는 그해 11월11일 해방병단(海防兵團)으로 확대되면서 100t급 2척과 40t급 1척 등을 갖고 미약하나마 해안경비에 나섰다.46년 6월15일에 군정법령 제86호에 따라 조선해안경비대로 개편된 뒤 전국 주요항구에 기지를 건설하고 총사령부를 서울에 두는 등 위치를 확고히 했다. 해병대는,여순반란사건을 겪으면서 그필요성이 인정돼 49년 4월15일 해군에서 차출한 병력 400여명으로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출범했다. ○공군 연락기 20대로 창설 공군은 가장 늦은 49년 10월1일 조직됐다.해방직후 국내외 항공계 인사들이 모여 한국항공건설협회로 출발했으며 48년 5월15일 육군항공부대로 탈바꿈했다.육군 예하 항공군으로서 기틀을 닦은 공군은 창설 당시 1천600여 병력과 연락기 20대를 보유했다. 창군을 전후한 시기에 군은 숱한 시련을 겪었다.근본적으로 한미간에 시각차가 있었다.정부수립에 앞장선 정치 지도자들은 내심 북진통일을 바래 강력한 군대를 원한 반면 전쟁을 원치 않은 미국은 일정수준 이상의 군사력 확보를 견제했다.군맥(軍脈)에 따른 내부갈등이 있었고,‘여순반란사건’‘대구 6연대 사건’ 등 군에 침투한 좌익세력에서 비롯된 상쟁도 여러차례 발생했다. 그러나 가장 큰 위기는 창군 2년이 채 안돼 발발한 6·25였다.소련의 강력한 지원아래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춘 북한 인민군의 공격에 국군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그럼에도 이 위기를 극복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은 짧은 세월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됐다. ◎“美는 李承晩의 北侵을 경계했다”/초대 주한대사 무초의 진술서 첫 확인 대한민국이 처음 군을 조직할 때 한국과 미국 정부사이에는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한국은 당연하게 강력한 군대를 갖기를 원한반면 미국은 상당히 견제하는 태도를 보였다.이는 ‘한국이 강한 군대를 보유하면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통일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미국의 이같은 의혹에는 당시 한국정부 고위인사들의 경솔한 언행도 크게 작용했다.李承晩 대통령이 1949년 9월30일 자신의 개인적인 정치고문인 로버트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李承晩은 이 편지에서 “나는 지금이 북한에 있는 우리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과 합세해 평양에 있는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공격하는데 가장 좋은 기회라고 강하게 느끼고 있다.우리는 金日成의 부하들을 산악지역으로 몰아내 거기에서 굶어죽게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면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우리방위선이 강해질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6·25 발발 아홉달전쯤에 쓴 이 편지는,李承晩의 ‘남한 단독정부 극복’이라는 통일의지를 드러낸 동시에 미국이 한국군 전력강화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근거가 있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편지는 1950년 가을 유엔에서 공산측에 의해 ‘북침의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당시 미 정부는 편지가 가짜라고 주장했지만 후에 올리버는 진짜임을 확인해 주었다. 李承晩의 편지가 한국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면 미국의 판단을 보여주는 자료로 무초의 진술이 있다.대한민국 주재 첫 미국대사인 무초는 1973년 12월 트루만 대통령도서관의 기록담당자에게 재임 때 경험을 토로했다. 현재 문서로 남아 있는 이 진술에서 무초는 “한국인들이 국토를 자체방위케 하는 한편 북한 진격이라는 그들의 열망을 억제해야 했다”고 회고했다.그는 “미국은 매우 어렵고 미묘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왜냐하면 우리가 李承晩과 한국군에게 원하는 것을 주었다면 그들은 북진을 개시했을 것이고,북한도 동일하게 남진했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오명은 우리몫이 됐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무초 대사의 진술서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 영웅세대의 비극/이대실 생명공학硏 유전체사업단장(굄돌)

    우리 어른들의 지나온 발자취를 보자.조선 말기 무력함과 국치의 울분을 가진 이로부터 시작하여,일제의 치욕을 겪었으며,해방후 혼란에 시달렸고,전쟁의 처절함과 생사의 고빗길을 헤매었다.또한 보리고개의 쓰라린 배고픔을 달래야 했으며,권위주의 시대의 횡포를 감수한 세대다.역경의 굴레 속에서도 역사의 단절과 사회의 전환기를 헤쳐가며 시련과 한을 땀으로 바꾸어 왔다.역사이래 최대의 번영을 이룩한 영광의 주역들이다.우리는 이들에게 한민족 최고영웅훈장을 달아주고,마음 속 깊이 우러나오는 박수를 쳐야 한다. 나는 이 영웅세대를 ‘유형재산세대’라 부르고 싶다.허기진 배를 채우려 가시적이고 유형적인 경제목표를 향해 매진해 왔다.유형재산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온 세대다.그 결과 창조적인 내일을 준비하지 못했고,전통적인 규범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지 오래전이다.아마도 주어진 환경에서 어쩔 수 없었으리라. 그로 인해 또 시련이 닥쳐왔다.IMF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밀려오면서,그들이 쌓아온 유형재산의 허상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가령 산업경쟁력이 무형의 과학기술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체험적으로 느끼지 못했다.단지 구색을 갖추기 위한 장식품 정도였다.국가경제가 유형적 상혼만 가지고는 안된다.이제부터라도 지식창조의 전통,미래를 그려갈 과학기술,그리고 문화적 자산을 쌓아야 한다.영원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비극도 예견된다.영웅세대는 아이들에게 전통과 혼을 심어주지 못했다.아이들은 텅빈 가슴을 안고 방황하고 있다.가치관의 진공상태에서 외래문화와 규범이 여과없이 채워진다.영웅세대는 생각이 다른 신세대로부터 소외되어 실의에 빠져 있다.아니 내팽겨쳐지고 있다.이제라도 차분히 앉아 전통의 맥을 이어주고,마음의 고향을 찾아주어야 한다.영웅세대는 내일을 향해 다시 한번 출사표를 던질 때이다.
  • 국민회의 제3정책조정위장 李錫玄 의원(초점인물)

    ◎“고용증진 위해 태스크포스 구성”/“생생한 국민여론 전달… 행정 경직화 막겠다” 국민회의 李錫玄 의원은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제3정책조정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현안파악과 실업대책 마련을 위해 각계각층으로부터 의견수렴이 한창이다.지난해 8월 ‘남조선 명함파동’에 휘말려 계룡산에 ‘칩거’해야 했던 상황과는 너무나 판이하다. 李위원장은 8일 명함파동이 색깔공세를 위한 안기부 작품임이 드러났다면서 “역사에 비밀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홀가분한 표정이 역력했다.하지만 한동안 당과 총재에 누를 끼쳤다는 ‘자책감’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고 ‘가슴앓이’를 털어놓았다. 시련을 딛고 일어선 만큼 열정도 대단하다.李위원장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가교론(架橋論)’으로 답한다.“살아 움직이는 여론을 정부에 전달, 행정의 경직화를 막겠다”는 소신이다.또 “고용증진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너도 밤나무 아래서 쓴 나도 밤나무이야기’라는 에세이를 펴내,호평을 받는 등 숨은 문재(文才)를 선보이기도 했다.‘정치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당에 복귀했다는 李위원장.47세의 나이로 아직도 미혼인 그가 영원히 정치와 ‘결혼’할까봐 주위에선 가슴을 졸이고 있다.
  • 지옥의 역사 Ⅰ·Ⅱ/앨리스 터너 지음(화제의 책)

    ◎지옥의 이미지와 관념의 변천양상 천국이 정신적이라면 지옥은 기이할 정도로 육감적이다. 창조적인 사람들 특히 화가와 시인들은 지옥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기괴한 상상,귀스타브 도레의 음울한 환상,윌리엄 블레이크가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과 시….이 책에서는 인간의 상상력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지옥의 이미지와 지옥관념의 변천양상을 살핀다. 수메르에서 고대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지옥은 그저 죽은 자들이 머무르는 지하의 어두운 장소일 뿐,특별히 죄인을 처벌하는 곳이라는 개념은 없었다.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죄 지은 자가 사후에 처벌받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그러나 기원전 5세기에 이르면 핀다로스는 악한 자들이 지옥에서 끔찍한 노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했고,플라톤은 ‘고르기아스’에서 지하세계의 심판관을 열거하고,‘파이돈’에서는 생전에 지은 죄의 무게에 따라 각각 다른 시련을 겪는 영혼의 운명을 묘사했다.또 헬레니즘 시대에 널리 퍼진 신비주의 신앙은 초기 기독교의 지옥관에 영향을 미쳤다.교회가 지배하던 중세는 ‘지옥의 전성기’였다.중세의 지옥은 이단을 박해하고 억압적 지배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도구였다.그러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사람들은 지옥을 하나의 실재로 생각하는 전통적 지옥관을 거부했다.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지옥을 “당신의 하녀나 재단사가 믿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한편 괴테·블레이크·바이런·보들레르·랭보·멜빌 등 낭만주의 문학가들은 지옥에 관한 흥미로운 태도를 보여줬다.그들은 악을 기피하거나 죄악시하지 않았다.그들에게 지옥은 사회의 도덕·관습을 이탈하고 삶의 한계를 뛰어넘는 즐겁고 위악스런 도피처였다.현세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지옥,그 은유적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이찬수 옮김 동연 전2권 각권9천원.
  • 국민회의 총장 鄭均桓 의원/대변인엔 辛基南 의원/당직 개편

    국민회의 총재인 金大中 대통령은 25일 당사무총장에 鄭均桓 의원을 임명하는 등 당8역등 주요 당직에 대한 개편을 단행했다. 당 8역중 지방자치위원장에는 金玉斗 의원,홍보위원장에는 林采正 의원,연수원장에는 金珍培 의원,대변인에는 辛基南 의원이 각각 임명됐으며 韓和甲 총무대행,金元吉 정책위의장,柳在乾 총재비서실장은 유임됐다. 金대통령은 사무총장 산하의 기획조정위원장에 薛勳 의원,조직위원장에 尹鐵相 의원,직능위원장에 趙誠俊 의원,정세분석위원장에 金榮煥 의원,인권위원장에 韓基贊 변호사를 각각 기용했다. 정책위 확대개편으로 신설된 정책위 제1정조위원장에는 南宮鎭 의원,제2정조위원장에는 張永達 의원,제3정조위원장에는 李錫玄 의원이 각각 임명됐다. 나머지 인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여성특위위원장=金希宣 서울동대문갑지구당위원장 ▲청년특위위원장=鄭漢溶 의원 ▲국가경영전략위위원장=金泳鎭 의원 ▲경제대책위위원장=金明圭〃 ▲국제협력위위원장=梁性喆〃 ▲윤리위위원장=李沅衡 전 의원 ▲제1정조부위원장=秋美愛 의원 ▲제2정조부위원장=鄭鎬宣〃 ▲제3정조부위원장=李聖宰〃 ▲총재비서실 수석부실장=千正培〃 ◎鄭均桓 총장/치밀한 성격… 협상고비마다 뚝심 발휘 성실하고 치밀해 무슨 일을 맡기든지 차질없이 해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남의 일도 자기 일처럼 해주는 ‘정치권의 의리파’. 국회 내무위에서 주로 의정생활을 해온 3선.13대때부터 여야 정치관계법특위에 참여,협상의 결정적인 고비때마다 뚝심을 발휘해 인정을 받았다. 최근 경선총무 정지작업을 해오던 중,성실성과 전북출신 배려를 엎고 사무총장에 발탁됐다.부인 李玉子 여사(46)와 1녀. ▲전북 고창·55세 ▲성균관대 정외과졸 ▲13·14·15대의원 ▲민주연합청년동지회중앙회장 ◎金玉斗 지방자치위장/옥고 겪으면서도 33년간 DJ보좌 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신앙에 가깝다.털털한 외모처럼 사람이 좋다는 평. 지난 65년 金대통령의 수행비서로 정계에 입문한뒤 33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두 차례의 옥고와 8차례의 연행 등 시련을 겪었다.부인尹永子씨(51)와 1남1녀. ▲전남 장흥·60세 ▲고려대 정책과학대학원 수료 ▲민주당 사무부총장·원내부총무 ▲14·15대 의원 ◎林采正 홍보위장/언론계 출신… 승부욕 강한 원칙주의자 원칙에 충실하고 논리적이며 승부욕이 강하다는 평. 언론인 출신의 재선의원으로 75년 동아투위 사건으로 언론계를 떠난뒤 재야에서 활동하다 지난 87년 대선때 金大中 후보를 지원한 것이 인연이 돼 정계에 입문했다. 부인 奇永男씨(56)와 1남1녀. ▲전남 나주·57세 ▲고려대 법대졸 ▲동아일보 기자 ▲민통련 상임위원장 ▲14·15대 의원 ◎金珍培 연수원장/75년 해직언론인… ‘인동초의 새벽’ 저술 소신과 논리를 지닌 원칙주의자.지난 75년 동아일보 언론자유투쟁으로 해직됐으며 68년에는 정치자금의 내막을 파헤친 글을 월간지에 기고했다가 수난을 겪기도했다.정계에 입문한뒤 ‘인동초의 새벽’이라는 金大中 대통령에 관한 책을 저술.부인 張貞淑 여사(51)와 2남1녀. ▲전북 부안·64세 ▲고대 법대졸 ▲동아일보·경향신문기자 ▲11·15대의원 ◎辛基南 대변인/변호사시절 방송활동 경력… 언론에 밝아 차분하고 논리적이다.변호사 활동 당시 방송활동을 많이 해 언론에 익숙하고,국회 문체공위에서 활약한 점이 발탁 배경이라는 후문. 국민회의 초선의원들의 모임인 ‘푸른정치모임’의 간사,총재특보단 대변인 등을 맡는 등 모든 일에 의욕적이다.부인 金恩珠 여사(41)와 2남1녀. ▲전북 남원·47세 ▲서울 법대 ▲해사 교수 ▲서울변호사회 인권위원
  • 공사 최초 외국인 졸업생/20일 소위 임관 태국인 나타차이

    ◎“직각식사에 애로… 한국은 제2 모국/한·태 군사외교의 밑거름 되고싶다” 【청주=한만교 기자】 공군사관학교 사상 첫 외국인 졸업생이 배출된다. 오는 20일 있을 공사 제 46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소위로 임관하는 태국인 나타차이 생도(26·항공공학전공)가 주인공. 나타차이 생도는 매년 한명씩 태국 공사 예비생도를 교육시켜달라는 태국공군당국의 요청에 따라 지난 94년 입교한 최초의 외국인 생도로 한국 생도와 똑같은 교육과정을 거쳤다. 공사에는 나타차이 생도 외에도 4학년 콤크리트(24) 3학년 타넷(24) 2학년 참니(22) 1학년 차트론(21) 등 태국인 생도 4명이 재학중이다. 나타차이 생도는 “지난 4년간 힘든 일도 많았지만 보람있고 유익했다”며 “그동안 이국땅에서의 시련을 극복 할 수 있게 배려해 준 동기생,선·후배에게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한국은 제2의 모국이고 공사는 영원한 모교”라면서 “초기 생도시절 서투른 한국어,추운 날씨,입에 맞지 않는 음식,공사 특유의 직각식사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나타차이생도는 “그동안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유능한 조종사가 되겠다”며 “한·태 군사외교의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 배우 전옥의 삶·예술 부활/‘눈물의 여왕’ 27일부터 공연

    ◎한국 무대공연사의 전설 ‘눈물의 여왕’ 전옥­.1911년 함흥 출생.코흘리개때도 군것질값보다는 극장비를 달라고 떼를 썼을 만큼 무대를 동경했던 소녀.팔푼이한테 시집가는게 싫어 열다섯에 도망하다시피 서울로 올라와 배우가 됐고 나중 백조가극단을 만들어 이땅에 가극바람을 일으키며 한시절 무대를 주름잡았던 해방 전후사의 대표적인 광대. 일단 무대에만 서면 하늘도,땅도 울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눈물의 여왕’.북한 최고의 인민배우 강홍식의 아내였다가 남한 공연예술의 기수 최일의 아내가 돼야 했고 전쟁 뒤에는 영화의 그늘에 가려 마음으로만 무대를 꿈꾸다 74년 58살의 젊은 나이로 쓸쓸히 삶을 마감한 시대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 이제는 한국 무대공연사에서 전설이 돼버린 전옥이 그의 시대와 삶,예술과 함께 다시 부활한다.부활의 무대는 삼성영상사업단이 27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눈물의 여왕’.한동안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한국화에 주력해온 삼성영상사업단이 그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방향을 틀어 해외 수출용으로 제작하는 첫 창작품이다.아울러 대본과 연출을 맡은 이윤택이 ‘대중주의를 통한 연극의 부흥’을 목표로 대중가극이라는 새로운 장르 개척에 도전하는 시험무대이기도 하다. 작품의 배경은 이땅에서 이데올로기가 가장 치열하게 충돌했던 6·25전쟁.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 전옥과 그가 이끌던 백조가극단이 겪게 되는 시련과 애환,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숙명적 사랑과 비극이 중심줄거리를 이루어 대사와 독백,노래와 음악으로 펼쳐지는 대중가극이다. 주인공 전옥과 토벌대장 차일혁총경,빨치산의 거두 이현상을 비롯해 배삼룡·허장강·고복수·황금심 등 유명 실존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며 배역 역시 이혜영(전옥)·조민기(차일혁)·전도연(신정하)·이현상(신구) 등 호화 캐스팅이다.특히 전옥의 실제 수양딸 원희옥이 직접 출연,어린 시절의 자신을 연기하는 임선애와 신·구 노래대결을 벌인다.4월12일까지.278­4490.
  • “중국판 뉴딜정책으로 경기부양”/주용기 중 총리의 경제정책 방향

    ◎실업대란 막게 SOC 확충·중화학 육성/새 내각 기술관료 중용… 산업전반 개혁 【베이징=정종석 특파원】 중국의 주룽지(주용기)국무원총리는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선출이 확정된 뒤 장내의 2천900여 대표들로부터 대대적 환성과 함께 한참동안 우레같은 박수를 받았다.전날 장쩌민(강택민) 국가주석이나 후진타오(호금도) 국가부주석,리펑(이붕) 전인대상무위원장이 선출됐을 때 장내에서 의례적인 박수 만이 잠깐 나왔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중국의 국민적 영웅은 주총리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주총리가 요즘 가장 열심히 연구하는 분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미대통령과 영국 경제학자 존 M.케인즈의 리플레이션정책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한 중국의 수출 및 외국인투자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앞으로 3년 동안 교량,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시설과 농업,중화학공업 등에 모두 1조달러를 투자,경제발전과 함께 대대적인 고용창출을 이루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중국판 뉴딜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복안이다. 중국에는 지금 흡사 ‘전쟁상황’과 비슷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정부조직 축소로 8백여만개의 당·정 일자리가 4백여만개로 줄어들고 국유기업 개혁이 본격화하면 1천만∼2천만명의 노동자가 거리로 나온다.시장경제로의 이행에 따른 엄청난 홍역인 셈이다.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수출이 감소하고 소비자물가도 점차 오르고 있다.경제성장 목표 8%를 하향조정해야 한다는 논쟁도 한창이다.그래서 뉴딜정책식의 대대적 고용창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샤깡(하강·대량실업)’에 따른 천하대란 가능성마저 엿보이고 있다. 주총리가 18일 발표할 새 내각의 주요직책에 신진관료와 함께 기업인 출신들을 대거 발탁하는 것은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새 술을 새 부대에 부어 이제까지 시장경제원리를 무시해온 중국경제를 ‘환골탈태’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시다.특히 중국산업 전반을 이끌 국가경제무역위 주임(부총리급)에 관료가 아닌 성화런(성화인·63) 중국석유화학총공사 사장,국토자원부장에 주용캉(주영강) 중국석유천연가스총공사 사장같은 기업인을 기용하는 등 파격인사가 예상된다. 중국은 지난해 이미 국유기업민영화 조치로 1천만명이 일자리를 잃는 등 ‘샤깡’문제가 최대로 정치·사회문제화하고 있다.이번 전인대를 계기로 중국의 각종 개혁작업은 더욱 가속화하게 된다.그 전권과 책임을 주총리가 부여받은 것이다.따라서 12억 중국의 ‘경제대통령’이나 다름없는 그의 얼굴은 지금 영광보다는 고난과 시련의 주름살이 강하게 느껴진다. ▷주룽지(주용기) 총리 약력◁ △28년 10월 후남성(호남성) 창사시(장사시) 출생(70세) △칭화(청화)대학 총학생회장.전기공정과 졸업.고급공정사 △국가경제계획위 위원 겸 개술개조국장·부주임,청화대학 경제관리학원학장 겸임 △중국공산당 13기 후보위원 당선 △상하이(상해)시장 및 당위 서기(조자양 추천) △국무원 부총리(등소평 추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중국인민은행장 겸임 △국무원 상무부총리.
  • 나무의 영혼/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굄돌)

    가끔씩 전에 살던 아파트 근처를 지나칠 때면 중요한 일을 놓아두고 도망친 듯한 켕김을 느낀다.몸에 초록색 그물 같은 것을 두른채 주위의 벽돌과 콘크리트 더미에 가려,힘들게 올린 팔만이 겨우 보이는 그 나무때문이다.나이가 730살이나 된다는 서울의 최장수 느티나무. 그곳에 이사했을 때 느티나무는 참으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며 마을에서 수호신 대접을 받고 있었다.주민들은 해마다 그 나무에 제사를 지냈다.매봉산을 배경으로,주변의 그보다는 어리지만 꽤 나이든 잔가지의 나무들과 함께서 있는 그 느티나무는 서울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장한 모습이었다. 그 나무의 시련은 주변의 연립주택 단지를 사들인 재벌 건설회사에 땅이팔리면서 시작되었다.회사는 어떤 교수들에게서 유리한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와 나무를 보호하려는 구청의 조사를 뒤엎고 아파트 건립계획을 진행시켰다.처음에는 나무를 살리고자 애쓰는 듯하던 구청 각 부서는 완연 태도가 달라졌고 밤마다 주민들의 애타는 모임이 이어졌다. 그러나 주민들의 노력은 지역이기주의로 몰리고 행정은 기업 쪽으로 기울어지는 가운데,주민들 내부에서도 분열과 이탈이 생겨 그동안 늦춰져온 건설작업이 차츰 기지개를 편 것이다.지난 일년간 별 진전이 없어 보이던 건설현장에서 느티나무의 주변에 그물을 치고 연립주택 철거가 한창이다. 이제 고층아파트로 철갑을 두른 나무는 바로 창문을 마주한 새 주민들의 눈에만 모습을 보인 채,시름시름 죽어갈 것이다.나무에도 영이 있다는데,나무를 죽이는 데 공모한 땅주인과 기업 관계자·관리·교수들은 나무의 영혼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길잃은 환경정책 주변을 700살이 넘은 나무의 영혼이 배회할텐데….
  • 연극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2’ 소극장 오늘서

    ◎다섯색깔 사랑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꿈꾸고 또 체험한다.저마다 다른 형형색색의 사랑을. 극단 오늘이 이 시대 사랑의 색깔을 다각도로 고찰하는 연극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2’를 지난 5일부터 서울 대학로 소극장 오늘에서 공연중이다.96년 같은 타이틀로 선보였던 전편에 이은 후속 공연.전편이 사랑이 지닌 공통적인 본질과 세대간의 차이에 촛점을 맞추었다면 이번 무대는 주로 남녀간의 사랑의 차이에 중점을 두었다.변두리 싸구려여관을 찾아든 다섯쌍의 남녀가 만들어내는 다섯 색깔의 사랑이야기가 빠른 템포로 전개되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첫번째는 각자 사랑의 상처를 지닌채 우연히 만난 커플 이야기.이들은 자기 상처밖에 보지 못해 서로를 보듬어 안지 못한다.두번째는 이상형만을 고집하다 청춘을 훌쩍 넘긴 35살 노총각·노처녀의 만남을 통해 사랑과 자존심의 관계를 짚어본다.세번째는 여자와 여자간 금기의 동성애가 그려지고 이어 오랜 관계로 서로에게 무료함을 느끼는 남녀 사이의 습관적 사랑의 의미를 찾아본다.마지막으로는 IMF 한파로 어려움을 겪는 중년부부의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사랑의 이야기.이때의 사랑은 시련을 극복하는 힘이다. 작은 일상의 무대화에 몰두해온 위성신이 전편에 이어 극작과 연출을 맡고 김승연·이주은·김재환 등이 출연한다.화·수 하오 7시30분,목·금 4시30분·7시30분,토·일·공휴일 4시·7시.문의 747­2090.
  • “정치공작 근절… 수사권 대공만”/이 안기부장 문답

    ◎국익 도움될 해외정보 낱낱이 수집/사조직 징후 발견… 과감히 개혁할것 이종찬 신임안기부장은 4일 “안기부를 국민을 위해 서비스하는 기관으로 운영해나가겠다”고 밝혔다.이안기부장은 이날 상오 임명사실이 발표되자 ‘정치적 중립’을 의식한 듯,당사가 아닌 신교동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안기부 운영 방침을 피력했다. ­소감은. ▲지난 80년 기조실장을 끝으로 안기부를 떠난뒤 18년 만이다.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안기부가 본연의 임무에 열중할 수 있도록 개혁하라는 분부를 받았다. ­안기부 운영 방침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온 것은 국가의 신경조직이 마비됐기 때문이다.앞으로 세계 널리 국가이익을 충족할 만한 요소들을 모조리 파악,국가의 신경조직을 튼튼히 하겠다.나라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안기부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본다. ­조직개편 방향은. ▲복안은 갖고 있다.그러나 정보기관의 특수성을 감안,비밀리에 추진할 생각이다.중점은 국내정치 공작에서 벗어나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다. ­김현철 인맥 등의 정리는. ▲과거 간부중에 사적 인맥을 끌어들인 경우도 있고 사조직 처럼 계보나 계파를 만들었다는 징후를 발견했다.정보기관은 중립적이어야 한다.과감히 개혁할 것이다. ­안기부 수사권에 대한 입장은. ▲대공수사에만 한정하겠다.절대 남용하지 않겠다. 이시영 초대부통령의 손자인 이부장은 11대 총선이후 ‘정치1번지’라는 서울 종로에서 내리 4선을 기록했으나 지난 92년 대선을 앞두고 민자당 후보 경선에서 중도하차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김대통령과는 95년 국민회의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해 인연을 맺었다.이부장은 서울시장 출마가 무산된데 대해 “선거를 통해 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섭섭하다”면서도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성공한 정보책임자로 지목,정치적 야망을 잠시 접어두었을 뿐임을 시사했다.초등학교 동기동창인 부인 윤장순씨(61)와 1남2녀를 두고 있다.
  • 월드컵구장 건설은 장기 투자/유재한(기고)

    오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를 치르기 위한 경기장 건설을 두고 말들이 많다.이 어려운 시기에 굳이 돈이 많이 드는 경기장을 여러 곳에 새로 건설해야 할 필요가 있는냐는 부정적인 의견이 대부분인 것 같다. 현재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이같은 우려는 타당성과 함께 설득력을 지닌다.국가 경제의 체질개선과 재도약을 위해 국가 전체의 거품빼기는 당연한 것이다.여기에 체육도 고통분담을 하여하는 것은 당연하다.이런 맥락에서 월드컵 경기장 건설규모에 대해 신중한 재검토도 필요하다고 본다. ○큰틀 유지속 거품빼야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시기에는 곧잘 보릿고개에 빗대어 희망을 갖곤했다.60년대 그 어렵던 보릿고개에서도 봄에 뿌릴 씨앗은 먹지 않았고,오히려 흉년에 논밭매기에 더 많은 힘을 기울였다.즉 현재의 어려움 때문에 새로운 희망의 싹,앞으로의 성장의 씨앗까지 포기한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조금은 지나칠지 모르나 내일을 준비하지 않으면 자학의 나락에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2002년 월드컵경기장 건설에 대한 투자도 긴 안목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당장의 여건이 어려워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해도 미래를 내다보며 이미 마련된 기존의 큰 틀을 깨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무엇보다 2002년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겠다는 것은 우리의 다짐인 동시에 세계인과의 약속이다.그리고 그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면 국제적 신뢰를 회복하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특히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는 국제화시대의 한국의 신용도를 높일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월드컵개최와 관련,경기장및 부대시설의 건설에 필요한 장비와 기자재 등은 국내 유휴물량을 활용하면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또 국내 실업인력과 유휴자원을 이용하고 부가가치를 높여 나간다면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더우기 최근의 실업사태를 감안해 볼때 고용창출의 효과도 있다.그리고 건설비는 2000년 이후에나 본격 지출되므로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고 본다.뿐만 아니라 24만명의 고용창출과 19조원에 이르는 생산 및부가가치 유발효과가 있고 대회 운영경비의 대부분은 외화를 벌어서 충당하기 때문에 국가경제를 살찌울 수 있다. ○생산·부가가치 19조 유발 98프랑스월드컵의 경우 1달여의 대회기간 동안 직접 경기장을 찾는 월드컵페밀리를 제외하더라도 전세계에서 연 370억명이 TV를 통해 지켜보게 될 것으로 국제축구연맹(FIFA)은 전망한다.실제의 시청자 수는 이보다 훨씬 넘을 수도 있다.대회기간 동안 전세계인들은 눈과 귀로 프랑스의 모든 것을 보고느끼게 될 것이다.이같은 관심은 2002년에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단지 TV시청자 수로만볼때 2002년 월드컵은 경제위기로 훼손된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회복하고 세계인류를 향한 우리의 발전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이다.무한 경쟁시대에서 마지막 경쟁력은 국가와 기업의 이미지라고 하지 않던가.그 나라 국민을 신뢰하지 않고서는 그 나라의 상품에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는 법이다. 국가적 투자를 아끼지 않고 국민적 성원을 집중시켜 월드컵을 준비한다면 2002년에는 지금의 IMF한파를 극복,시련을딛고 일어선 자랑스런 한국인의 모습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2002년 월드컵은 국가 재도약의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미래의 밀알,2002년 월드컵에 대한 투자는 지금 당장의 여건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며 냉정하고 지혜롭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우리는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후세를 위한 배려도 있어야겠다.
  • 새정부 각료 17명의 프로필

    ◎이정무 건설­실물경제 해박… 여야 교류폭 넓어 원만하고 합리적 성품으로 여야를 초월,교류폭이 넓다.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13대 민정당 공천을 받아 정계에 첫 진출했으며 14대때 낙선,절치부심끝에 재기에 성공했다. 대구백화점 사장을 지내는 등 실물 경제에도 밝으며 자민련내 역학구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T·K(대구·경북)출신이면서도 특정계파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 태도로 당지도부의 신임을 받고 있다.지난 15대 대선때 상당수 T·K의원들이 동요할때 좌고우면하지 않고 당을 고수,김종필 명예총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는 후문.부인 구순모 여사(53)와 2남 1녀. ◎주양자 보건­보스기질 강한 의료계 여성대부 추진력이 강하며 솔직한 성품으로 대외관계도 원만하다는 평.구민자당 시절 여성으로서 제3사무부총장을 지낼정도로 보스기질도 강하다. 지난 92년 14대 총선때 구민자당 전국구 공천을 받아 원내 진입에 성공했으나 15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지못해 원외에 머물다 지난 96년 10월 자민련에 입당한 홍일점 여성 부총재. 지난 56년 서울시립병원 의사를 시작으로 의료계에 발을 들여놓은뒤 서울시의사회 고문 등을 역임하는 등 의료계의 여성대부로 불린다.남편 이태헌씨(75)와 1남 3녀. ◎최재욱 환경­언론인 출신 TJ측근… 소신·의리파 의리파로 불리우며 조용하면서도 맡은 일은 철저하게 챙기는 스타일.5·18특별법 제정때 구민자당 당론에 반대,국회에서 홀로 부표를 던지고 탈당한 소신파이기도 하다.언론인 출신으로 구민자당 시절부터 자민련 박태준 총재의 측근으로 활동해 왔으며,이번 조각에 박탈되는데도 박총재의 천거가 크게 작용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환경부를 소관부처로 두고 있던 사회문화분과위 간사를 맡아 원만한 일처리 솜씨를 보임으로써 김대중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는 후문이다.부인 박해경 여사(58)와 사이에 1남 1녀. ◎신낙균 문화­방송·문화계 인연 깊은 여권운동가 매사에 꼼꼼하고 빈틈없는 자세로 주위 사람들을 긴장시키지만,원만한 대인관계로 사람들을 모으는 처신 또한 뛰어나다.방송위원회 심의위원을 지내는 등 방송계와의 인연도많은 편.한국여성유권자연맹 회장시절 모금운동을 주로 음악회를 통해 벌여 문화계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청년부장부터 시작,지난 95년 국민회의 부총재로 정치입문할 때까지 줄곧 여성운동에 몸담아 왔다.국회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여성의 정치참여를 주장하면서 실천적인 정책추진에 앞장서 왔다.남편 김훈섭씨(63)와 1남2녀. ◎박태영 산업­보험사서 잔뼈 굵은 ‘에너지 박사’ 치밀한 성격과 추진력을 겸비한 전문경영인 출신. 지난 86년 어느 기업인모임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처음 만난뒤 동교동을 찾아가 정치입문 의사를 밝히고 14대때 원내에 진출했다. 14대 재경위의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한화그룹 계열사인 경인에너지의 외화도피 및 탈세의혹을 폭로하는 등 ‘에너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발탁배경이라는 후문.대한교육보험 과장 시절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최초로 입안,회사 자산을 매년 3백20억원씩 늘려 입사 2년만에 이사로 승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부인 이숙희 여사(52)와 1남1녀. ◎김선길 해양­미서교수생활… 관·금융계 마당발 관료출신 답지않게 성격이 원만하고 대인관계가 부드럽다는 평을 듣고 있다.고향인 충북 충주에서 세번 출마끝에 지난 15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다는 등 끈질긴 면도 있다. 상공차관과 기업은행장을 지내는 등 관계와 금융계에서 오랫동안 재직한 경험이 발탁 배경이 됐다는 후문. 미 아메리칸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은뒤 교수생활을 하다 해외두뇌 유치책에 따라 지난 71년 귀국,과학기술처 진흥국장으로 관계에 발을 들여놓았다.부인 윤병수 여사(63)와 사이에 2남 1녀. ◎강창희 과기­원만·합리적… 민정당 창당작업 참여 육사 출신이나 부친이 충남대총장을 지낸 학자집안 출신답게 원만하고 합리적 성품이라는 평을 듣는 4선의원. 육군대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80년 신군부 실세였던 허화평씨의 권유로 민정당 창당작업에 참여한뒤 11대에 전국구 예비후보 1번으로 의원직을 승계,정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5공시절에는 39세에 진의종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발탁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13대때 낙선과3당합당으로 지구당위원장도 뺏기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14대에 무소속으로 재기했다.부인 이재숙 여사(49)와 1남1녀. ◎이기호 노동­양노총서 신뢰… 행정능력 인정받아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에 뚝심도 갖추고 있으며 소재가 무궁무진할 정도로 달변이다.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은 경제관료로 노사정 위원회의 노동관계법 개정과정에서 중재·조정 능력을 발휘,이번 조각에서 유일하게 재임명됐다.당초부터 기획예산위원장 물망에도 오르는 등 발탁 대상자로 꼽혔었다. 실업종합대책 수립과정에서 조직적인 행정능력을 인정받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서도 무난하다는 평과 함께 후임 장관으로 추천했다는 후문이다.취미는 등산.부인 양인순 여사(47)와 1남1녀. ◎박정수 외통­학자출신의 매너 깨끗한 국제신사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매너가 깨끗한 ‘국제신사’.학자 출신의 5선의원으로 IPU집행위원을 맡고 있는 등 국회내 대표적 ‘외교통’. 특히 미조지타운대와 아메리칸대학원을 졸업,미국의회와 행정부에 지인이 많아 미국과의 통상외교를 주도하는데 적격이라는 점이 발탁배경.대선직후 김대중 대통령의 ASEM참가 및 미국방문 준비위원장을 맡아 일찌감치 외무장관후보 0순위에 올랐다. 지난 96년초 15대 총선전 민자당을 탈당, 국민회의 부총재로 영입됐다.유정회 의원을 지낸 이범준 여사(64)와 1남. ◎박상천 법무­다혈질 ‘법안제조기’… DJ 신임 각별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열성파.다소 다혈질이라는 평가도 받고있으나 업무추진에 열성을 다한다는 것은 장점. ‘법안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국회 각종 입법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오고 있다. 20여년간 판·검사를 지낸 법조인 출신의 3선의원.13대 총선에서 평민연 케이스로 김대중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계에 입문했다.김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을 바탕으로 어려운 ‘충언’도 서슴치않는 소신파로 알려져있다. 하루 흡연량이 2갑을 넘는 애연가.부인 김금자 여사(51)와 1남2녀. ◎강인덕 통일­합리적 보수주의… 중청 대북 정보통 통일문제에 있어 보수적 색채를 보이고 있으나 사고가 유연해서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성격이 활달하고 호탕한 편이지만 업무처리는 매우 치밀하다. 지난 71년부터 10년동안 중앙정보부에서 통일문제를 다룬 대북 정보통.중앙정보부 퇴직 이후 극동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공산주의 일반과 소련의 개방·개혁 정책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 학자로서의 명성도 쌓았다. 북한전문가로서 항상 바쁜 생활을 해와 취미도 독서 및 저술.부인배정숙 여사(61)와 2남1녀. ◎천용택 국방­군사전략가… 대선때 북풍 차단 공신 결단력 있는 업무처리가 돋보이며 국방업무 전반에 능한 군사 전략가.논리적인데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스타일로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다. 군내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정책,전략,기획,군사교리 등의 분야에 밝지만출신 지역 탓에 93년 진급에서 밀려 전역한뒤 비상기획위원장을 맡았다.이후 국민회의 입당으로 정계에 입문,15대 국회에 전국구의원으로 진출했다.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장남의 병역의혹을 제기하고 북풍을 잠재우는 등 김대중 대통령의 안보 분야 핵심참모로 맹활약했다. 부인 김아미 여사(55)와 3녀. ◎이해찬 교육­기획력 치밀… ‘민청학련’ 옥고 치러 모든 면에서 성실하며 날카로운 기획력과 업무파악 능력을 갖고 있어 각종 의정활동 여론조사에서 항상 선두를 지키는 국회의원.국회 상임위에서 정부당국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의원중 하나다.88년 광주청문회 당시 ‘송곳질문’으로 청문회스타로 떠올랐다. 서울대 문리대 재학중인 지난 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제적,1년간 실형을 살면서부터 재야의 길을 걸어오다 13대때 평민당 공천을 받아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바둑과 늦게 배운 골프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부인 김정옥 여사(45)와 1녀. ◎이규성 재경­원리원칙 중시하는 정통 재무관료 원리원칙을 강조하고 공사가 분명하다.판단력이 뛰어나고 빈틈이 없어 ‘면도날’로 불리는 전형적인 재무관료.일을 많이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후배 관료들을 심하게 야단친 뒤에는 소주잔을 기울이는 인간미도 있다.겉으로는 차고 깐깐하게 보이지만 잔정이 많다.충남 강경중 2학년때 월반해 대전고와 서울대 상대를거치면서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은 전형적인 수재형이다.역대 재무장관중 인기 1위에 뽑힐 정도로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그러나 재무장관 재임중인 지난 89년 12·12 증시 부양조치로 투신.증권사를 부실의 늪에 빠트린 장본인이라는 약점도 있다.부인 정수자씨와 1녀. ◎김성훈 농림­국제적 명성 높은 농업경제전문가 농업경제전문가로 개혁적 목소리를 많이 내왔다.북한의 식량난 실태를 학계에 보고,국제 농학계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95년 지방선거때는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 후원으로 전남지사 후보경선에 나섰다가 허경만 현 지사에게 고배를 마셨다.동교동계 경제브레인으로 지난 대선때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자문역을 했다.‘우리 쌀지키기 범국민대책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쌀시장 개방저지투쟁을 주도하기도 했다.온화하면서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한국농업,이길로 가야 한다’‘쌀,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등의 저서가 있다.부인 박인아씨(46)와 3남1녀. ◎배순훈 정통­MIT 출신 전문경영인 ‘탱크주의’ MIT 박사 출신으로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를 거쳐 대우그룹에 영입된 전문경영인.치밀하고 합리적이어서 ‘배박사’로 통한다.다기능 첨단제품을 중시하는 쪽과 내구성을 중요시하는 세계 가전업계의 양대 흐름 가운데 후자인 ‘탱크주의’를 채택,대우전자를 국내 가전3사의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탁월한 경영능력을 평가받았다.광고에 직접 출연,호평을 받은 스타 경영인이기도 하다.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등 첨단분야의 해외진출을 적극 주장해 왔다.국내보다 프랑스 사교계에서 더 유명하며 두 아들도 MIT동문이다.부인 신수희씨와 2남1녀. ◎김정길 행정­3당통합때 YS와 결별… 명분 중시 솔직담백한 성격으로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적다.언변도 뛰어나 정치적 절충이나 협상에는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서글서글한 인상도 친근감을 준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초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대표적인 ‘YS맨’이었으나 지난 90년 3당통합시 김전대통령의 동행권유를 고사하고 야권통합에 힘을 쏟은 소신파. 96년 말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에서 이탈,김원기 전 의원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한뒤 지난 대선에 임박해 김대중 대통령 지원을 선택했다.부인 이은혜 여사(43)와 2남3녀.
  • “일부 지역 판사 비리 유감”/윤관 대법원장

    윤관 대법원장은 2일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의정부 지원 판사 비리 사건’과 관련,“사법부는 일부 지방의 비극적인 일로 시련을 겪고 있고 국민들에게 큰 걱정을 끼쳐드리고 있다”며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윤대법원장은 이날 신규 법관 51명과 예비판사 79명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이번 일로 지금까지 쌓아온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승복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것 같은 참담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 총리 서리체제 불가피하다(사설)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두고 국회의 신여권과 한나라당이 격돌,총리의 국회인준 표결이 또 다시 무산됨으로써 새정부의 정상적인 출범은 어렵게 됐다.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제 김대중 대통령은 예상대로 김종필 총리서리 체제로 정부를 운영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다만 3일 조각에는 고건 현총리의 제청 형식을 밟을지도 모른다고 한다.국회의 인준을 받지못한 서리총리의 각료 제청이 위헌소지가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서다.제청권의 정당성 여부와 관계없이 새정부가 정정당당히 정부 구성을 못하는 일은 불행한 사태가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이제 국정공백 상태를 더이상 방치할수 없다는 것이 국민일반의 인식이므로 새정부는 서리체제로 갈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을것 같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이 결코 정상적인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법률적으로 옳고 그르고가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일단 서리체제로 가더라도 하루빨리 비정상적 정치상황은 시정돼야 할것이다.정부를 출범시켜 행정공백을 막되 여야는 곧 재협상을 시도해야 한다.지금은 국회가 새정부에 힘을 보태줘도 IMF사태를 어떻게 극복해 낼지 모르는위기 상황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이 파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을 참으로 곤혹스럽게 한다.집권 여당시절 IMF사태를 야기한 중대한 책임이 있고 다수 야당으로서 국정의 한부분을 책임져야 할 한나라당의 이런 정치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일이 여기까지 왔으면 여권도 다른 대안을 생각해 두어야 할 때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공동정부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일단은 공동정부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국정에 차질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것이다. 공동정부가 출발부터 이런 시련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여권이 원하든 원치 않든 조기정계개편도 고려해야 할 상황임일 동시에 알려주고 있다.
  • 의회정치의 시련(대한민국 50년:9)

    ◎49년 무장경찰대,국회반민 특위 습격 폭거/친일파 대거 구속되자 이승만 “특위활동 중지” 지시/‘프락치사건’국회부의장 등 15명 무더기 구속 사태도 이승만 한사람의 고집으로 하룻밤새 의원내각제가 대통령제로 바뀌기는 했어도 대한민국 의정 50년의 문을 연 제헌국회는 정치의 중심무대였다.1948년 5월31일 개원한 제헌국회는 의회민주주의의 이상을 지향했다.필요한 권한이 주어졌고 의사진행은 민주적이었다.의원들간에 횟수경쟁이 벌어질 만큼 발언도 자유로웠다.이승만 대통령도 국회의 건의나 요구가 있을 때마다 국회에 출석,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주요법안 심의때는 정부의 입장을 직접 설명하는 등 국회를 존중했다. 그러나 이승만이 초대내각 구성에서 원내 최대정파인 한민당을 배제한 것을 계기로 정부와 국회는 불신과 갈등의 관계로 접어들었다.의정 초기 정부와 국회의 대결은 대부분 국회의 승리로 귀결됐다. ○지방자치법 폐기 일방통고 1948년 8월에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계속된,지방자치제 실시여부를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국회가승리를 거둔 것은 당시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 우위의 정치구도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이때만 해도 정부와 국회의 대결은 권한의 유무나 헌법의 해석 등 입헌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방자치 문제에서의 패배를 고비로 정부는 이 틀을 깨려 들었다.정부는 국회가 폐회하기를 기다려 1948년 5월12일 지방자치법 폐기를 일방통고했다.정부의 재재의 요구가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방자치법은 계류중인 상태였으며 따라서 국회의 폐회로 자동폐기됐다는 게 정부측이 내세운 어거지 논리였다.이때부터 이승만 정권은 노골적인 국회탄압에 나섰다.갓 싹을 틔운 의회민주주의에 시련이 시작됐다. 제헌국회때 정부와 국회간 대결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문제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이의 전개와 결말은 이후 대한민국 의정 50년사의 성격을 규정하는 결정적 잣대로 작용했다.일제하의 친일파 및 민족반역자 처벌문제는 농지개혁과 함께 건국이후 떠오른 최대과제중의 하나였다.국회는 헌법제정과 내각구성을 마친 직후인 1948년 8월5일 이를위한 특별법기초위원회를 설치하고 한달만인 9월7일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통과시켰다.이에 따라 국회내에 특위가 설치되고 법원과 검찰에는 특별재판관,특별검찰관으로 구성된 특별재판부가 구성됐다.특위활동은 이듬해 구체화해 49년 1월8일 친일자본가 박흥식을 필두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속속 체포했다. 반민특위가 활동에 나서자 정부내 친일파세력은 필사적으로 저항했고 저항의 선두에는 행정및 정치적 기반을 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승만이 섰다.이승만은 특위활동이 활발해지자 반민법 개정을 요구하는 특별담화 발표(1월10일),체포된 친일경찰 노덕술에 대한 석방요구(1월24일),반민법 개정안 제출(2월15일),반민특위 활동의 중지 및 특경대 해산 지시(4월16일) 등으로 특위를 계속 압박했다. ○“남로당과 연결” 전격 구속 그럼에도 특위가 6월4일 서울시경 사찰과장 최운하,종로서 사찰주임 조응선을 체포하는등 고삐를 늦추지 않자 이틀뒤 무장경찰대가 반민특위를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아울러 당시 정부와 국회의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국회 프락치사건이다.정부와 국회가 극한대결로 치닫던 5월20일 소장파의원 3명이 국가보아법 위반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이유는 이들이 남로당과 연결되어 국회에서 프락치활동을 했다는 것이었다.이어 8월14일 소장파의 좌장격인 국회부의장 김약수 등 의원 12명이 추가구속됐다. 이같은 국회프락치사건은 반민특위의활동 및 이후 정부와 국회의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사건의 정치적 배경은,당시 수사총책인 검찰총장 권승렬이 국회에서“이사건에 물적 증거라는 것은 없습니다마는…,다소는 있습니다마는…,대개 물적 증거가 박약한…서로 연락해서 논의한 사건은 사람의 말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밖에 없습니다”(49.5.23 국회속기록)고 한 보고에서 유추해 볼 수있다.그때 미국·영국 등 주요 우방은 반민특위 습격과 국회프락치사건을 ‘이승만의 뜻’으로 보았음이 최근 발굴한 자료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어쨌든 국회프락치사건으로 입법부 우위를 떠받쳐온 힘의 원천인 소장파의원들은 몰락하고 소장파가 주도한 반민특위 활동도 마찬가지로 힘을 잃게 됐다.또 이 사건은 정부가 정치적 반대자들을 친공으로 몰아 제거하는길을 트는 출발점이 됐다.국회는 반민족행위의 공소시효를 단축하는 개정안을 7월6일 이승만의 요구대로 통과시켰고 이로써 반민특위 활동은 사실상 전면중지됐다. 소장파가 제거된 이후 국회는 원내 제1세력인 민국당이 중심이 되어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내각책임제 개헌을 추진했다.하지만 개헌은 1950년 3월14일 국회에서 부결돼,국회의 패배로 결말나고 이를 고비로 국회우위 시대는 종식을 맞았다. ○“행정부 견제” 내각제 추진 제헌국회 2년새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민주정치의 기반인 국회의 행정부종속을 초래,행정부 만능인 권위주의 통치가 이땅에 뿌리내리는 씨앗이 됐다.그결 과 비상계엄령과 백골단 등에 의한 공포분위기 속에 기립표결로 헌법을 바꾼 2대 국회의 발췌개헌,민의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을 소수점으로 계산한 3대국회의 사사오입개헌 등 파행이 이어지다 끝내 1961년 5·16 군사쿠데타,72년 유신,80년의 군사쿠데타 등 세 차례 헌정중단의 비극으로까지 연결됐다. 제헌국회는 의회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시대적 한계를 동시에 드러냈다.다양한 정파로 구성됐지만 친일파와 지방자치 문제의 처리에서 보듯 초정파적 단결력으로 정부를 제압하는 힘을 과시했다.사안에 따라 연합과 대립의 관계를 형성,민의의 대변기구로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갈등을 신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던 셈이다.이런 점에서 제헌국회는 의회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소중한 경험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1949년의 일련의 사태는 이러한 가능성을 좌절시킴과 동시에 합법적인 정치활동의 공간,즉 정치민주화의 폭을 크게 제약했다.반세기 가깝게 우리 정치를 옥죄어온 권위주의 체제는 이때 이미 싹튼 것이다. ◎미 “국회 프락치사건 이승만의 뜻”/미군정 사법부근무 프란켈 보고전문서 확인 이승만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입법부의 독립에 관해 자기중심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인식을 가졌다. 미군정 당시 사법부와 경제협조처(ECA)에 근무한 에른스트 프란켈은 국회프락치사건을주의깊게 관찰한 결과를 에버렛 드럼라이트 주한미대사관 참사관에게 전달했다.국회프락치사건 재판이 한창 진행중인 1950년 3월22일 드럼라이트는 미 국무부에 프란켈의 보고를 전문으로 보냈다. 이 보고에서 프란켈은 재판의 공정성과 관련해 “검사는 고문에 따른 자백에 의존하고 판사들은 변호사가 신청한 증인채택을 거부하는 등 재판이 편향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이어 “재판장은 기소된 의원들이 비록 ‘좋은’일을 했더라도 남로당 지시에 따른 것이라면 불법”이며 특히 “미군철수를 요청하고 국군의 북진통일을 반대한 것은 범죄”로 보았음을 밝혔다. 프란켈은 또 이승만을 “자신의 권위와 지도력을 보장하는 한 국회를 구성한 정당과 개인들이 어떤 주장을 제기해도 수용한 반면 분단에 관련한 문제나 체제기반을 침식하는 정치적 반대활동은 결코 용인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결국 미국은 애초부터 국회프락치사건을 정치적인 것으로 파악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한편 이보다 앞서 반민특위 습격사건이 발생한지 나흘뒤인 49년 6월10일 영국의 서울총영사 C. 홀트는 어네스트 베빈 외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특위 본부 습격을 지시했다”고 보고했다. 미·영 양국의 주한 외국관들이 본국에 보고한 이같은 내용들은 그동안 일부에서 제기해온 국회프락치사건의 행정부 작위설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 절망과 투혼의 계절/전인영 서울대 교수(서울광장)

    지난 25일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취임사에서 지도층의 잘못으로 죄없는 국민이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치르게 되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6·25 이후 최대의 외환위기라는 국난을 맞아 물가는 오르고 실업자가 증대하며 소득이 감소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위기국면 타개를 위해 온 국민이 애국심을 발휘해 달라고 호소했다.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아 길고 험난한 고난의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국민에게 취임 초부터 고통감수와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 대통령의 마음도 매우 괴롭고 아팠을 것이다. ○국민고통 감수·희생 요구 우리는 정말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요즈음 신문 방송 매체들은 사업실패와 실직 및 생활고 등으로 인한 비극적 사건들을 잇달아 보도하고 있다.IMF 사태는 건전한 기업들을 포함한 수많은 기업들을 도산시키고,충실한 직장인들을 불안과 실직상태로 몰아넣고 있으며,서민들의 경제·사회생활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극소수지만 경제난으로 절망감을 못 이겨 소중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마저 나타나고 있다.오죽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면 귀중한 목숨마저 버려야 했을까를 생각할 때 실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기막힌 수난사를 돌이켜 볼 때,오늘의 상황이 최악의 절망적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가난하고 외세가 좌우하던이조 말기의 절망적 상황,나라를 잃고 고유의 언어·이름마저 쓸 수 없었던 일제 36년동안의 탄압과 치욕,수 백만의 인명을 앗아간 동족상잔의 한국전쟁과 눈물겨운 피난생활,식량난으로 쓰러져 가는 북녘의 우리 동포들을 생각할 때,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가리켜 절망적 상황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극심한 고통과 절망감에 쉽게 굴하지 말고,또 한번 위기극복을 위한 투혼을 발휘해야 한다.인간의 능력은 무한에 가깝다.절박한 위기상황이나 열악한 환경하에서 인간은 믿기 어려운 강인함과 위대함을 발휘할 수 있다.오늘날 우리가 처한 힘든 상황이 무한히 지속될 리는 없다.최악의 상황을 인내와 노력으로 극복해 나간다면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사업에 실패하여 한때 생을 끊으려 했던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고 재기에 성공한 사례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있다.배우자를 잃은 평범했던 주부가 자녀들을 위해 강인한 생활력을 지닌장한 어머니로 변모하는 모습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인간은 위기와 절망적 상황에서 쇠처럼 강해질 수도 있다.절망적인 사람에게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면,그 자체만도 큰 축복이요 희망임을 명심하고 시간과 인내와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인내·노력으로 위기 극복 우리는 위기상황을 맞아 굴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구한 인물 및 민족들의 경험으로부터 용기와 소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임진왜란 중 이순신장군은 고립무원과 열세의 절박한 상황하에서 왜군의 서해 진출을 끝까지 차단함으로써 일본에게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1950년 6∼7월 기간 한국군은 불의의 기습과 무기·장비의 열세로 인하여 군사적 패배를 거듭하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싸웠었다.그 해 여름 내내 워커 장군은 인민군의 결사적 공격으로 낙동강 방어선 일부가 붕괴되는 절망적 상황을 맞으면서도 인천 상륙이 성공할 때까지 방어선을 끝내 사수했다. ○“우리경제 강화” 단련기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처칠 수상은 절망적 사태 전개에 굴하지 않고 영국인을 단합시켜 히틀러의 야욕을 꺾었다.레닌그라드와 스탈린그라드를 사수해 소련을 구한 주코프 장군과 그를 믿고 따른 러시아 국민들의 인내와 투혼도 전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심각한 외환·재정위기가 우리에게 무한의 인내와 고통 및 희생을 요구하고 있지만,우리가 굴복하지 않는 한 절망은 없다.역사는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절망적 상황을 극복한 인간의지와 투쟁의 승리사이다.“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는 말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을 주는 진리이다.우리 격언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사람은 순탄할 때 보다 험난할 때,더욱 강해지고 성숙해 지기 마련이다.현 IMF시대는 우리 국민과 경제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시련기이며 단련기이다.대통령을 위시한 온 국민이 국난극복을 위해 혼연일치로 단결하고 불굴의 투혼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고 말것이다.
  • 이상·현실 접목 위기극복 앞장서자/서울대 선우중호 총장 졸업식사

    졸업은 여러분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떠나 현실 사회라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지금까지 다양한 이론을 배우는 가운데 기성사회를 분석·평가·비판하던 입장에서 앞으로는 기성사회 안에서 개인과 사회,나아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할 시점이 된 것입니다. 대학생활이 이상을 가꾸고 그 이상을 실현할 능력을 기르는데 힘쓴 시기라면 졸업 후의 생활은 현실과 이상을 접목시키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이상론에 치우친 나머지 자칫 현실왜곡이나 현실도피를 빚어낼 수 있는 것이 대학생활이 갖는 한계의 하나라면,졸업 후의 사회생활에서는 눈 앞의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이상이나 전망을 포기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졸업 후의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대학 캠퍼스에서 가슴 속에 아로 새긴 이상이나 전망을,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습득한 원칙이나 이론을 굳건히 지키면서 우리 사회를 맑고 밝게 가꾸어 나가겠다는 새로운 각오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학교는 2년전 개교 50주년을 맞아도덕적으로 사고·행동하는 인간육성,친환경적인 교육실현,학문의 대학·세계의 대학으로 21세기를 이끌 새로운 지식과 기술창출,민족문화의 계승·발전에 의한 세계문화 선도 등의 건학이념을 천명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은 졸업 후에도 이러한 건학이념을 모교에 남겨 두고 떠날 것이 아니라 졸업 후에도 작게는 개인의 생활철학,크게는 사회의 목표나 국가의 목표로 승화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우리나라의 발전과 우리민족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취지에서 만든 서울대학교 건학이념은 졸업생 여러분의 노력에 따라 우리사회와 국가의 목표로 발전될 수 있습니다.가까운 장래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시 바랍니다. IMF관리 체제라는 국가적 위기에 처해 있는 오늘의 현실은 우리 모두의 이러한 노력을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 있습니다.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여러분에게는 더욱 엄청나게 느껴질 현실에 대해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은 책임을 절감하면서도 이런 때일수록 능력있고 심신이 건강한 젊은 인재들에게 큰 기대를 걸게 되는 것입니다.오늘날 우리사회는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쓰고 있습니다만,오늘의 위기는 여러분과 같은 젊은 인재들이 서로 용기를 북돋우고 격려하면서 지성과 창의력,근면성을 발휘하여야만 극복될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남다른 저력이 있습니다.민족의 5천년 역사와 해방이후 현대사가 이를 입증합니다.해방이후 우리는 정치·사회·경제 측면에서 온갖 시련을 헤쳐왔으며 전후의 폐허를 20∼30년만에 ‘한강의 기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때 긴장을 풀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값진 희생을 치르면서 민족주의·법치주의를 뿌리내리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협동성,창조성을 다시 한번 발휘해야 합니다.여러분의 이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가 당면한 위기는 극복될 것입니다. 노자는 일찍이 ‘도덕경’에서 ‘자기를 이기는 자가 가장 강하다’라고 했습니다.또 ‘검약의 길은 사람들에게 넓고 여유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말도 했습니다.지금은 바로 개인적으로나사회적으로나 사소한 이해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대승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일정한 지식만 갖춘 ‘소아주의자’가 아닌 지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대아주의자’가 됨으로써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길로 이끌어가는데 앞장서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 깊은 침묵 지키는 JP/“국민정부 첫 시련 초래” 자괴감에 착잡

    ◎“정치도리 먼저해야” 대야 섭섭함 표출 김종필 총리지명자는 26일 힐튼호텔에서 재외동포리셉션를 주최했다.전날 대통령취임식에 참석한 해외동포들이 대상이다.총리자격으로 계획했다.하지만 총리인준을 받지 못했다.손님들은 초청해 놓았다.취소할 수도없다.고민끝에 자민련명예총재와 총리지명자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는 이처럼 어정쩡한 ‘새 재상’으로 출발했다.그럼에도 평상심을 찾으려는 흔적이 엿보인다.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나카소네야스히로(중증근강홍),다케시타 노부루(죽하등)전 일본총리 등과 조찬을 함께 했다.상오에는 당3역등 당내 의원들을 만났다.장정연중국대사와 유술경중국인민외교학회전회장 등도 면담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할리가 없다.전날 총리인준이 무산되자 말수가 줄었다.내면적으로 깊은 침묵이다.같은날 저녁 ‘DJT회동’에서는 말을 아꼈다고 자민련 이정무 총무가 전했다. 침묵에는 여러 뜻이 묻어 있다.야당에 대한 섭섭함이 첫째다.그는 이날 명예총재실을 찾은 소속의원들에게 “정치도리를 먼저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총리인준을 거부한 한나라당을 겨냥했다.‘분노’의 완곡한 표현이다. 착잡함은 더하다.그는 누차 사심을 버렸다고 강조하고 있다.내각제의 관철을 위해 김대중 정부의 첫 총리를 선택했다.그런데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종착역’에 도달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법하다. 무엇보다 사상초유의 국난이 중압갑을 더해주고 있다.‘국민정부’의 첫 시련이 자신의 문제로 발발했다는 현실이 괴롭다.김대중 대통령에게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2인자’로서의 조심스러움도 물론이다.
  • 국가위기 헤쳐나갈 선구자 되자/고려대 홍일식 총장 졸업식사

    여러분이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는 바로 지금,우리나라는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극심한 사회·경제적 충격과 위기감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과 함께 필연적으로 밀어닥칠 고물가 고실업 등 경제적 고통도 피할 수 없겠거니와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불안 또한 우리가 감당해야 할 험로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엄중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우리나라와 민족의 장래가 참으로 양양하다는 것을 확신합니다.우리 국민 모두에게 국가적 위험을 극복하고자 하는 단합된 의지가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의지의 선봉에 서서 민족공동체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여러분 같은 인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면한 시대상황은 일시적 임기응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무수한 과제들을 제기하고 있지만 여러분은 온갖 장애와 도전을 극복하고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만한 충분한 힘을 갖추었읍니다.여러분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부응,국민적 통합과 자기혁신의 선구자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할 때 우리가 겪고 있는 오늘의 이 시련이 민족적 역량의 성숙을 위해 오히려 다행스러운 각성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를 생각해봅시다.오뉴월에는 모든 풀과 나무가 다같이 푸르지만 만물이 얼어붙는 세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송백의 푸르름이 그 참된 가치를 드러내듯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세한의 정신’이 필요합니다.국난의 시대에 민족 구성원들 모두가 계층과 지역과 정파의 구별을 버리고 세한의 정신으로 합심하여 위기를 극복,한국인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운명체 의식과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신뢰,공동 목표를 향한 헌신의 정신입니다.여러분이 갖춘 지성의 협동정신과 진취적 역량은 이러한 시대적 소명앞에 더욱 미더운 가치를 입증하리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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