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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철 선수단 단장 문답

    “이번 올림픽은 스포츠의 정치적인 순기능이 극대화된 대회였습니다” 이상철 한국선수단 단장(58·한체대총장)은 1일 폐회된 시드니올림픽의 가장 큰 성과로 개회식에 남북한 선수단이 동시입장한 것을 꼽았다. 한국이 출전한 24개종목의 경기를 빠짐없이 관전했다는 이 단장은“한국 스포츠가 IMF체제라는 커다란 시련기를 지나왔지만 그래도 한민족의 끈기와 저력으로 각 종목의 기량이 골고루 향상된 것을 확인했다”며 앞으로 경기 지도자나 국가,국민이 조금만 더 신경쓰면 세계적인 체육강국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드니 올림픽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4년전 애틀랜타 때와 비교해 미국이나 러시아가 전체 메달의 절반 이상을 휩쓰는 시대는 지났다.영국이나 독일 네덜란드 쿠바 등 각국의 경기력이 대단히 향상됐다.한국도 태권도 양궁 레슬링에서 긍적적인 결과를 얻었고,특히하키 여자농구 같은 구기종목에서 선전하는 등 각 종목이 골고루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금메달 10개 이상 획득과 종합 10위권 목표에는 못미쳤는데.= 배드민턴 레슬링 핸드볼 야구 태권도 등에서 아쉽게 놓친 금메달이 많다. 최소 3개 정도는 빗나갔다고 본다.메달을 땄을 때의 흥분보다 메달을 못땄을 때의 괴로움이 더 컸다.실력은 백지장 차이였다.우리는 은메달이 많지 않은가.전체 메달수에서는 종합 8위권의 성적이다. ◆육상 수영 등 기초종목의 취약성이 또 한번 지적됐는데.= 일본이나중국은 육상이나 수영에서 메달을 얻고 있는데 이는 학교체육의 차이에서 초래됐다고 본다.교육은 시설과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경기력은 저변이 두꺼워야 한다.현재 국내 학교 가운데 국제 규격의 수영장을 갖춘 곳은 한국체대밖에 없다.결국 시설 및 지도자 부족이 기초종목 부진의 원인이다.이번 올림픽에서 개회식 때의 관중보다 육상 첫날입장관중이 더 많았다는 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힘들었거나 아쉬움이 남는 점은. 야구선수들의 ‘카지노 파문’을접하고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또 4년간 올림픽출전을 위해 땀흘린 남자핸드볼 한경태가 눈을 다쳐 수술을 한 뒤 그 이튿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13일간이나 그 사실을 함구했을 때는 가슴이찢어지는 듯했다. 어머니가 눈 수술을 받은 아들이 쇼크받을 것을 걱정해 아버지의 작고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쓰러웠다. ◆4년 뒤 있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선수단이 개선해야 할 점을 꼽는다면.=좀 더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이미펜싱이나 사이클은 그동안 투자를 많이 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근본적인 궤도 수정보다 질적인 투자만 더 이뤄진다면 스포츠 강국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시드니 특별취재단
  • 초점인물/ 자민련 강온 충돌…金宗鎬대행 ‘곤혹’

    자민련의 ‘내홍(內訌)’이 심상치 않다.이한동(李漢東) 총리의 총재직 사퇴 등 당의 전면 쇄신을 요구하는 강경파와 ‘현상유지’로맞서는 온건파간의 충돌은 당 분열 양상으로 번지는 중이다. 강창희(姜昌熙)·한영수(韓英洙) 부총재 등은 급기야 조기 전당대회소집 요구라는 ‘강수’를 던졌다. 피할 수 없는 한판을 예고하고 있어 짙은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가장 곤혹스런 인물은 김종호(金宗鎬·사진) 총재권한대행이다.당 쇄신에 대한 공감대가 날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반대편손을 들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체제 유지에 무게가 실린 김종필(金鍾泌·JP) 명예총재의 의중을 거스르기도 어렵다.“잘 수습돼야 할텐데…”라며 연일 한숨만 내쉬는 것도 이런 연유다.권한대행을 맡은이후 그에게 닥친 최초의 ‘시련’인 셈이다. 하지만 강경파들의 당쇄신 목소리는 좀처럼 수그러질 것 같지 않다. 오일만기자 oilman@
  • 폴란드 코르제니오프스키 경보 첫 2관왕

    29일 시드니 올림픽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경보 사상 첫 2관왕 탄생에 열광하고 있었다. 경보의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은 폴란드의 로베르트 코르제니오프스키(32).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열린 남자 50㎞ 경보에서 2위로 들어온 라트비아의 아이거 파데제브를 1분18초 차이로 여유있게따돌리고 3시간42준22초로 우승,육상 첫날 20㎞에 이어 2종목을 석권했다. 2종목 동시 제패는 56년 멜버른대회에서 20㎞종목이 추가된 이후 처음이다. 지난 대회 우승자이기도 한 그는 지난 22일 20㎞종목에서 2위로 골인했지만 선두로 들어온 베르나르도 세구라(멕시코)가 뒤늦게 실격처리되는 바람에 행운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었다.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24세에 출전한 92년 바르셀로나대회에서는20㎞에서 완주조차 못했고 50㎞에서는 부정자세로 실격패,절망에 빠져 선수생활을 그만둘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아이에게 패배자로 기억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고 과감하게 훈련방법을 바꿔 재기를 노렸다.고국을 떠나매일 프랑스와벨기에의 국경을 넘나드는 독특한 훈련방법을 택했다.프랑스에서 아침식사 후 경보로 벨기에로 들어갔고 점심 전에 다시캠프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스포츠전문가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자신만의 훈련방법을 고집한 끝에 9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낸데 이어 96애틀란타 대회50㎞종목에서 우승,재기에 성공했다. 20㎞경기에서 멋적게 따낸 우승 때문에 시드니 근교에서 친구들과머물렀던 그는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실력으로 금메달을 땄다”며함박웃음을 지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육상 최고령 금메달리스트 40세 즈베레바 女투원반 우승

    올림픽 육상경기 사상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나왔다. 28일 시드니올림픽조직위원회에 따르면 하루전 40세 불혹의 나이에육상 여자 투원반에서 우승한 엘리나 즈베레바(40·여·벨로루시)가역대 올림픽 최고령 육상 우승자로 기록됐다. 즈베레바는 27일 시드니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벌어진 여자 투원반경기 결선 3차 시도에서 68.40m를 던져 경쟁자인 아나스타시아(65.71m·그리스)와 이리나 야첸코(65.20m·벨로루시)를 누르고 금메달을목에 걸었다. 185㎝의 키에 100㎏이라는 여자로서는 엄청난 거구인 즈베레바는 이번 올림픽에서 우승하기까지 시련을 겪기도 했다.88서울올림픽에서 5위를 차지했던 즈베레바는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지난 92년부터 1년간 선수활동을 정지당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즈베레바는 재기에 성공했다.지난 96애틀란타에서 동메달을땄고 95,99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한 것이다.그리고 여세를몰아 이번 올림픽에서 우승까지 일궈냈다. 1960년 11월16일생인 즈베레바는 40번째 생일을 한달여앞두고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자신의 생일을 앞당겨 자축했다. 홍원상기자 wshong@
  • 시각장애인 러니언,여자 육상 1,500m준결승 진출

    “달릴 때는 세상이 환하게 보여요” 27일 시드니 육상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올림픽 최고의 인간승리드라마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시각장애인 말라 러니언(31·미국)이 여자육상 1,500m 예선 1회전을 7위로 통과,준결승에 진출한 것.6위까지 자동으로 준결승에 오르는 이날 경기에서 러니언은 4분10초83의 기록으로 6위에 0.01초 뒤졌지만 각 조에서 탈락한 선수들 중 기록순으로 다시 뽑는 6명 안에 들어 24명이 겨루는 준결승에합류했다. 러니언의 삶은 시련과 좌절의 연속이었다.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매우 좋아해 체조와 축구를 시작했지만 9살때 ‘퇴행성 망막 질환’을앓기 시작해 14살때 시력을 거의 상실했다.축구를 포기하고 육상 선수로 진로를 바꾼 뒤에는 다리 부상으로 2년간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시각장애인이 올림픽에 출전하기는 러니언이 처음이다.30㎝ 떨어진물체도 형체만 구분할 정도의 시력이지만 함께 뛰는 선수들의 발 소리를 듣고 방향을 잡는 독톡한 주법으로 99세계육상선수권대회 미국대표로 뽑히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당시 성적은 10위.그때부터 올림픽 출전 의지를 불태운 그녀는 미국대표선발전에서 3위를 차지,마침내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나서게 됐다. 92바르셀로나 장애인올림픽 육상 4관왕과 96애틀랜타 장애인올림픽7종경기 금메달을 목에 건 러니언은 이번 올림픽에서는 ‘장애인’의꼬리표를 떼고 당당히 ‘보통사람’들과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김재천기자 patrick@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9)샌프란시스코·LA

    ◆ 美洲 독립운동 거점 샌프란시스코·LA. 샌프란시스코는 미주지역 조국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한인들이 ‘상항(桑港)’이라고 부른 풍광이 아름다운 이곳에는 구한말 이래 하와이군도의 노동이민을 비롯,많은 한인들이 찾아들어 자리를 잡거나 로스앤젤레스 등 각 지방으로 진출하는 ‘거점’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는 한국민족운동사상 첫번째 ‘의열투쟁’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페리부두에서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 두 의사가 대한제국정부의 외교고문의 직함을 가지고 일제 한국침략의 앞잡이 노릇을 한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현장이다. 이 지역 최초의 한인단체 ‘상항친목회’가 1903년 9월 페리부두 인근의 스트리트 차이나타운에서 발족한 것을 시작으로 미주 한인사회최초의 민족운동기관으로 발전한 공립협회(公立協會)가 1905년 4월차이나타운 왼쪽 퍼스픽 스트리트 938번지의 회관에서 출발했다.공립협회는 기관지 ‘공립신보(公立新報)’에 이어 ‘신한민보(新韓民報)’를 발행하면서 국권회복운동을 벌였다. 두 의사의 의거직후인1909년 2월 미주본토의 공립협회와 하와이의합성협회 등 모든 한인단체를 통합,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를 창립하고 페리 스트리트 232번지에 중앙총회본부를 두고 기관지로 국내외 항일민족언론을 주도한 ‘신한민보’를 발행했다.영문명으로 ‘The New Korea’라고 표기한 ‘신한민보’는 1914년까지 5년동안 232번지 건물에서 발행하다가 1937년 로스앤젤레스 제퍼슨거리에 중앙회관을 건립,그곳에서 한국전쟁때까지 40년여년동안 한번도 결간없이 발행하면서 민족해방과 통일이념을 구현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한인국민회 중앙회관과 ‘신한민보’의 발행처로 사용되었던 페리스트리트 232번지 건물은 도시계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그 위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북가주 광복회장 이하전(독립유공자)옹과 중립화 통일운동에 열정을 보이는 최봉윤옹,이정순 한인회장등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자 애쓰고 있다. 장인환·전명운 두 의사가 일제의 한국침략 앞잡이로 활동한 미국인 스트븐스를 총살·응징한 것은 1908년 3월24일 상오 9시 10분이다. 스티븐스가 페리 정거장에 도착하여 승용차에서 내려 페리빌딩으로들어서려는 순간,대기중이던 전명운이 먼저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그러나 불발이었다.뒤이어 전 의사가 스티븐스의 얼굴을 총두(銃頭)로갈기는 순간 장 의사가 권총 3발을 발사,일본의 주구는 쓰러졌다가이틀뒤 절명했다.두 의사가 우연스럽게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거사에 나서 성공한 것이다. 장 의사는 1909년 1급 살인혐의로 구속돼 25년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19년 국민회의 가석방 청원서가 수락되어 석방되었다.석방후독립운동에 헌신하던 그는 1930년 생활과 병고 등으로 향년 54세로이곳에서 자살하였다.전 의사는 사건발생 97일만에 구속되어 재판을받다가 무죄로 석방되었다.전 의사는 석방이후 미국에서 불우한 삶을 보내다가 1947년 63세로 세상을 떴다.두분 다 불우한 여생을 마친것이다. 샌프란시스코한인사회는 지난 3월23일 의거92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지난해 이어 두번째인 이 행사는 의거장소인 페리부두가 현장여건상 개최가 어려워 한인회관에서 열었다.지난해는 ‘한미수교1백주년기념조각’이 있는 자스틴 허만광장에서 거행되었다.한인 지도자들은 이곳에 두 의사의 동상을 세우고자 성금을 모으고 본국의 지원을 바라고 있다.현재 페리부두의 육중한 3층짜리 페리빌딩은 역사기념물로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두 한인의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1896년에 건립된 지역 대표적 건물인 까닭이다. 초기 한인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온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안창호·이대위 등이 친목회를 조직하고 가정예배를 드리기시작해 1907년 캘리포니아거리에 있는 3층 주택을 임대해 예배를 보는등 시련끝에 1994년 쥬다거리에 교회건물을 구입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98년에 현재 건물을 신축하여 감리교회당과 역사자료실 부설로 운영하고 있다.현 건물은 독립운동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이곳한인들의 믿음과 각종 독립운동 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미주 항일독립운동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선생의 발자취는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곳곳에 남아있다.특히 로스앤젤레스 제퍼슨 거리 1938번지 대한인국민회 중앙회관앞 거리는 로스앤젤레스시가 1994년2월 ‘도산 안창호광장’으로 이름지을 만큼 도산의 업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도산은 1902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LA를 오가면서 항일민족운동을 주도했다.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을 중심으로 미국은 물론 멕시코·원동지방의 시베리아,만주등지에 대한인국민회 지방총회를조직할만큼 광범위한 조직을 만들어 항일구국투쟁을 벌였다.흥사단의 단소(團所)인 중앙회관은 LA 벙커 힐에 있던 것을 얼마후 피게로아스트리트 106번지의 2층 목조건물로,1932년에는 남(南)카타리나 거리 3421번지의 땅을 구입해 2층 유선양옥을 지어 옮긴 것이 오늘에 이른다. 미주 독립운동의 정신적 산실인 대한인국민회중앙회관은 1936년 LA 36 스트리트에 있었으나 얼마후 제퍼슨거리 1368번지로 옮겼다.대한인국민회 회관은 퇴색한 단층건물이 철책담으로 둘러싸여 제퍼스 큰길과 만나고 현관 벽 위에 ‘대한인국민총회’라는 현판이 선명하게 부각되어있다.LA 연합장로교회 소유인 이 건물은 지금도 매년 3·1절과 광복절에는 교포들이 모여 기념예배를 본다. 한인회 간부들은 한인회와 정부가 합동으로 교회로 부터 건물을 구입,보수하여 민족운동박물관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LA 한국문화원 최규학영사와 현지언론 피플뉴스 발행인 민병용씨 등 많은 사람이 민족운동박물관건립운동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1937년부터 1946년까지 도산가족이 살았던 남가주대학 구내 도산 사가(私家)는 당시 건물(1937년)그대로 보존돼 있다.현재 ‘The Ahn Family Residence’라고 쓰인 동판표지물이 설치돼 있다.올해 3·1절행사때 한국을 방문한 셋째딸 안수산 여사가 노구를 이끌고 방문자들을 친절하게 안내한다.도산의 많은 유물은 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하나같이 조국 독립운동의 얼이 배인 것들이다.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김삼웅주필 kimsu@
  • 영국 레드그레이브, 조정 사상 첫 5연속‘천하통일’

    ‘영국의 철인’ 스티브 레드그레이브(38)가 23일 열린 남자 무타포어 결승에서 우승,올림픽 조정 사상 처음으로 5회연속 금메달을 목에 거는 영광을 누렸다. 레드그레이브의 이번 쾌거는 96애틀랜타올림픽에서 우승한 뒤 운동선수에게는 치명적인 당뇨병과 기대에 대한 부담감으로 은퇴를 선언하는 등 곡절 끝에 얻은 것이어서 그 의미와 가치가 각별하다.레드그레이브가 시련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된 것은 아내와 두 딸의 격려였다. 이번 금메달은 레드그레이브가 당뇨병을 극복,16년 이상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정상급 기량을 유지해 얻은 것이라 더욱 값지다. 레드그레이브는 지난 7월 스위스 세계선수권에서 우승을 놓쳤으나이번 올림픽에서 이탈리아,미국,호주 등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감격의 설욕전을 펼쳤다. 어려서부터 모든 스포츠에 재능이 있었던 레드그레이브는 14세에 조정에 입문했고 79세계주니어챔피언십 싱글스컬 대회를 통해 세계 무대에 데뷔했다.그리고 84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영국 조정의 선두주자로 부상한 이후 천부적인 재능에 끝없는 노력과 불타는 야망이 가세해 88서울올림픽,92바르셀로나올림픽,96애틀랜타올림픽,그리고 시드니올림픽까지 모두 5개 대회의 금메달을 획득,올림픽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 한편 92년,96년 대회에서 레드그레이브의 무타페어 우승 파트너이자 친한 동료인 핀센트 역시 이번에 3회 연속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영광을 누려 그의 기쁨은 두배가 됐다. 이동미기자 eyes@
  • [대한광장] 가을이다

    어느 날 문득 가을이 우리 곁에 왔다.소매 끝을 스치는 바람결이 어제와 다른가 싶어 먼 산을 바라보니,산빛도,강가에 나뭇잎 부딪치는소리도 어제와 다르다.우리 몰래 세월이 벌써 이렇게 훌쩍 흐른 것이다.둘러보면 산 뿐이 아니다.태풍에 시달린 나무 이파리들도 상처를쓰다듬으며 어느새 색깔이 퇴색해 간다.큰물에 쓰러진 개울가의 고마리꽃이며,물봉선화며,구절초도 꽃을 환하게 피웠다. 이제 이 세상의 모든 나무와 풀들은 한 계절을 정리하고 있다.쓰러졌으면 쓰러진 대로,꼿꼿하게 서 있으면 서 있는 대로 그것들은 살아 온 세월 앞에 고개를 수그리며 익어간다. 논두렁을 넘어 찰랑찰랑 익어가는 벼며,콩 밭에 키 큰 수수도 제 무게로 고개를 숙였다.큰바람 속에서도 제 몸을 잘 간수하여 붉어져 가는 대추야,감아,알밤들아,모든 바람을 이긴 곡식들아,풀들아,나무들아 콘크리트 벽 속에서 소주를 마시며 더위를 이겨 낸 사람들아,모두 애썼다.작고 크든 시련을 딛고 일어선 것들은 산들바람부는 이 가을 하늘아래 모두 눈부시다. 밤길을 걸으며 풀섶에서울어대는 풀벌레 울음소리,깊은 밤 어디선가 낭랑하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한 계절의 이 쓸쓸한 모퉁이를 돌아가며,나는 문득 소슬해지는 어깨를 추스린다.나는 잘 살았는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그러므로 가을은 남보다 자기를 들여다보게 하는,자기에게 더 외로운 계절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가.내가 온 힘을 기울여 애쓰는 이 수고가 세상의 어디에 소용이 된단 말인가.끝까지 놓지 않으려는 내 몫인 것 같은 이 재물과 권력과 지식은 얼마나 하찮고 부질없는 것들인가.세월은 바람같이 빠르고 인생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다만 이 세상에 남을 것은 진실 뿐임을 알 때 생은 경이로워진다.눈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떡에 눈 멀면 훗날 그 떡보다 더 큰 욕을 먹는다는 것을 알라.한줌 권력이 저 들에 피어있는 들꽃보다 낫다는 생각을 나는 해보지 않았다. ‘사랑의 온기가 더 그리워지는/가을 해거름 들길에 나는 서 있습니다/먼 들 끝으로 해가 눈부시게 가고/산그늘도 묻히면/길가에 풀꽃처럼 떠오르는/그대 얼굴이/어둠을 하얗게 가릅니다/내 안의 그대처럼/꽃들은 쉼없이 피어나고/내 밖의 그대처럼/풀벌레들은/세상의 산을일으키며 웁니다/한 계절의 모퉁이에/그대 다정하게 서 계시어/춥지않아도 되니/이 가을은 얼마나 근사 한지요/지금 이대로 이 길을 걷고 싶고/그리고 마침내 그대 앞에/하얀 풀꽃 한 송이로 서고 싶어요’ 어느 가을.나는 힘없고 가난한 내 사랑에 따뜻한 온기가 되고 싶어,해지는 들길에 앉아 이 시를 썼다. 내가 근무하는 작은 학교 운동장에 서늘한 산그늘이 내려온다.아이들이 놀다 돌아간 운동장은 산뜻하게 비어 있다.소슬바람이 부는 산아래 나는 두 손을 편히 내려놓고 서서 산을 올려다본다.어쩌면 산은 저리 변함이 없을꼬? 산그늘은 천천히 내려오며 작은 마을을 덮고 푸른 강을 건너 앞산을 오른다.해 지는 동네도,강변에 풀잎들도 참 곱다.서산에 걸린 해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발광하는 저 찬란한 가을논과 강물의 풍경을 함께 보는 일은 행복하다. 보아라,저 메밀잠자리들은 내가 밥 한 숟갈 주지 않았어도 푸른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저 풀잎들은 그대가 눈길 한번 주지 않았어도 저렇게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간다. 가을이다.이 가을 저 들에 풀잎 한 포기,한톨의 곡식인들 어찌 내게 무심하리.한 계절의 모퉁이는 돌며 나는 나에게 진정 다시 묻고 싶다.너의 가을은 저 파란 우리나라 가을하늘처럼 참말로 근사한가? [김 용 택 시인]
  • [김삼웅 칼럼] 重慶에서 맞은 광복군 창설60년

    지난 17일 낮 중국 중경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중경(重慶)청사 재복원 개막식과 광복군 창설 60주년 기념행사가 조촐하게 거행되었다. 청사 2층에 마련된 항일군사활동자료전시관도 개막되었다.해방후 처음으로 광복군 창설 기념행사가 중경 현지에서 거행된 것이다. 60년전인 1940년 바로 이날 중경에서는 한국광복군 창군식이 거행되었다. 한민족은 나라를 잃고 세계각지를 유랑하면서 산발적으로 의열투쟁과 독립군의 항전을 계속하였지만 임시정부 산하에 ‘국군’인 광복군이 창설되기는 처음이다. 남의 나라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임정의 지도자들은 중국정부의 협력과 미주 동포들의 성금으로광복군을 창설했다. 비록 창군날에는 병력이 30여명에 불과한 초라한모습이었지만 광복군의 사기는 충천하고 독립운동사적 의미는 각별하다. 광복군 창군의 날 중경의 날씨는 쾌청했다.행사장 가릉빈관(嘉陵賓館)에는 임정 국무위원을 비롯,내외귀빈 2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식장 중앙에는 대형 태극기가 게양되고“초나라는비록 세집만으로도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나무를 베히고 뿌리를 말리는 각오라면 끝내 우리는 고국에 돌아갈 날이 있을 것이다”는 등의표어가 식장을 자못 숭엄하게 하였다(조소앙, ‘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기록’). 나라 잃은지 30년만에 이역만리에서 조국을 되찾고자광복군을 창설한 임정의 애국지사들과 대부분 일본군을 탈출하여 참여한 젊은 군인들의 감격과 전의로 대회장은 흥분에 휩싸였다. 김구 주석은 “광복군은 1919년 임시정부군사조직법에 의거하여 중국 총통 장개석의 특별허락을 받아 조직되었으며 중화민국과 합작하여 우리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 저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연합국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는 ‘광복군선언문’을 발표했다. 임정의 광복군 창군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것이었다. 당시 만주지역에 120만명으로 추산되는 한국인과 중국대륙 각지에 살고 있는 동포청년들,그리고 당시 중국관내 일본 육군 26개 보병사단과 20개 독립혼성여단의 병력 중에는 강제징집된 한인청년이20만여명에 이르는데 이들을 모아서 국토 수복작전으로 빼앗긴 조국을 무력탈환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출범한 광복군은 연합군과 공동작전으로 대일전쟁에 참여했다.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연합하여 대일전쟁을 수행하고 국내진공작전을 위해 미국과 OSS특수훈련을 실시하였다. 시련도 많았다. 우선 중국정부는 ‘한국광복군 행동 9개준승’이란것을 만들어 중국 군사위원회가 통할지휘토록 하였다. 광복군은 중국군의 통제와 간섭을 받게 된 것이다. 나라없는 군대의 한계일 수밖에없었다. 그러나 끈질긴 교섭으로 4년만에 군 통수권을 회복하였다. 대한민국 국군 창설 반세기가 지나도록 작전지휘권이 외국에 넘겨진것과 크게 비교된다.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은 일본의 항복으로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김구 주석이 통탄한 대로 임정은 발언권을 잃고 건국과정은 물론 그이후 군의 핵심은 일군과 만군출신들이 차지했다. 임정과 광복군은‘개인자격’으로 귀국하여 소외의 대상이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창설되어 일본과 나치독일에 선전을포고하면서 일군과 싸우고 중국 국부군과 협동하여 각처에서 항일전을 전개했으면서도 광복후에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자리에 일군·만군출신이 올라섰다. 건국사의 첫자리가 이렇게 왜곡되었다. 임정 중경청사 재복원 행사에는 윤경빈 광복회장을 비롯,김우전 광복군동지회장, 박유철 독립기념관장, 홍순영 주중대사와 중국측에서는 진근은(陳根銀) 중경시 외사부주임등 관계자가 참석하고 행사후에는 광복군총사령부 유적지와 백범선생의 망명지 등을 돌아봤다. 대부분 20대 학도병으로 일군을 탈출하여 광복군에 참여했던 이들은 이제백발이 성성한 80고령의 ‘노병’으로 변했지만 나라사랑의 열정은여전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1940년 9월17일 임시정부의 국군으로광복군이 창군한 날을 국군의 기념일로 지정하여 통일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60년전 그날의 감격을 되새겼다.광복군 회갑날의 중경하늘도 맑고 깨끗했다. ■중국 중경에서 김삼웅 주필kimsu@
  • 韓·中 외교가에 ‘달라이라마 태풍’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달라이 라마의 방한 문제를 둘러싸고 한·중 외교가 새로운 시련을 맞고 있다.달라이 라마 방한준비위원회는 내달 16일 방한 초청을 예고했고 중국 정부는 강력한 반대입장을 이미 우리 정부에 통보한 상태다. 종교적 활동 자유를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한·중관계의 ‘부정적 영향’을 앞세운 중국정부 사이에서 최종 키(비자발급)를 쥔 우리 정부는 ‘한숨’만 내쉬는 형국이 됐다.일각에서는 자칫 한·중 마늘파동과 ‘납 꽃게’ 파문과는 비교도 안될 ‘외교 마찰’도 배제할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아직 최종 결정을 유보 중이다.하지만 내부적으로 “시민단체들의 초청을 막을만한 명분이 없다”는 쪽으로 가닥이 정리되는 분위기다.수년전부터 시민단체들의 초청 움직임을 비공식 접촉을 통해설득했지만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내부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4월 하순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한·중 외무장관 회담에서이정빈(李廷彬) 외교부장관은 달라이 라마에 대한 한국 방문에 대해중국측의 양해를 구했다는후문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반응은 싸늘하다.우다웨이(武大衛) 주한 중국대사는 최근 “(달라이 라마의 방한이) 중국인들의 신경을 건드릴 것이기 때문에 양국관계가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한국 정부의 명확한 입장표명을 촉구했다. 이에 외교부 당국자는 15일 “정부는 티베트 망명정부를 인정하지않지만 민주국가로서 종교의 자유 활동을 보장할 수 밖에 없다”며“그러나 종교와 정치 활동과는 구별돼야 하며 중국 정부의 관심을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입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오일만기자 oilman@
  • 새 비디오/ ‘허공에의 질주’

    영화 ‘아이다호’에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를 갈구하던 젊은이,리버 피닉스.‘허공에의 질주’(원제 RunningOn Empty)에서는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고 23세로 요절한 성격파 배우 리버 피닉스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부초처럼 떠돌아다녀야 하는 도피자 가족의 아픔을 그린 이 영화는흔히 접하는 미국산 영화들과는 다른 미덕을 갖추고 있다.무엇보다사회운동 자체를 여과없이 소재로 끌어들였다는 점이 그렇고,이를 액션도 아닌 가족드라마로 만들었다는 점이 또 그렇다. 네이팜탄 사용을 반대해 군사실험실을 폭파한 아더와 애니 부부는 두아들과 함께 FBI에 쫓기며 숨어산다.6개월에 한번씩 이름과 머리색깔,눈동자 색깔까지 바꾸며 미래없이 도피생활을 하던 이들 가족에게더 큰 시련이 닥친다.고교생인 큰 아들 대니(리버 피닉스)의 피아노재능을 발견한 음악교사 필립스는 줄리어드 진학을 권하고, 갈등하던아더 가족은 아들의 장래를 위해 독립을 허락한다.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갈까봐 소리나지 않는 건반을 두드리는 대니,다시 만날 기약없이 끝내 이별하는 가족이야기가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가족애 속에 얼핏얼핏 묻어나는 사회성 짙은 메시지는 80년대쯤국내 개봉됐더라면 주목받았을 듯하다.‘오리엔탈 특급작전’을 연출한 시드니 루멧 감독의 88년작.워너홈 비디오 출시. 황수정기자
  • 이정길군, 남부서 찾아 헌혈동참에 감사

    “경찰관 아저씨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할께요” 7년 동안 앓아온 백혈병을 훌훌 털어버린 이정길군(14·서울 시흥중학교 1년)이 4일 오전 부모와 함께 그동안 헌혈에 동참해준 서울 남부경찰서 경찰관들을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지난 5월 이군의 아버지 이문희씨(42)는 남부경찰서 민원실에 “어머니의 골수 이식을 앞둔 정길이가 혈소판이 부족해 수술을 못하고있으니 도움을 간절히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띄웠고 경찰은 곧바로 헌혈단을 모집했다. 지난 2일 정길군이 두 차례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퇴원할 때까지 B형 혈액을 가진 경찰관과 전·의경 등 18명이 피를 나누어 주었다. 아들의 수술비로 살던 집까지 처분한 아버지 이씨는 “근무를 마치고 땀을 뻘뻘 흘리며 병원에 찾아와 헌혈하던 모습을 평생 못잊을 것”이라면서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들이 완치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서장 김종명(金種明) 총경은 “정길이는 큰 시련을 이긴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며 손을 꼭잡았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스카 록그룹 ‘노 다웃’ 노래듣는다

    172㎝의 훤칠한 키에 파워넘치면서도 섹시한 목소리,놀라운 무대매너로 국내에서도 추종자를 낳기 시작한 미국의 스카 록그룹 ‘노 다웃’의 보컬리스트 그웬 스테파니. 육중한 기타 사운드에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곁들인 남성록이 위풍당당 행진하던 때 이들의 경쾌하고도 발랄한 스카음악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세계적으로 1,500만장 이상이 팔린 ‘비극의 왕국’은 ‘돈 스피크’‘아이 엠 저스트 어 걸’과 같은 노래로 스카열풍을 낳으며 이 앨범이 15만장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김종서의 ‘시련’,스카밴드 ‘노브레인’과 ‘앤’이 그같은 열풍을 반증한 것. 그가 이끄는 노 다웃을 국내 팬들이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오는 28일 을지로 3가에 문을 여는 트라이포트홀의 개관기념 축하무대(오후8시) 첫 테이프를 끊는 것. 이 공연장엔 모두 2,000여명이 스탠딩으로 들어가게 된다.1588-7890,www.ticketlink.co.kr노 다웃은 너바나,펄 잼,사운드 가든을 필두로 한 그런지 시애틀록과 동부의 픽시스,스매싱 펌킨스의 얼터너티브록이 자웅을겨루던 90년대 초반 데뷔한 4인조 혼성그룹. 내한공연은 최근작 ‘리턴 오브 더 새턴’을 홍보하기 위한 것. 스카는 자메이카 민속음악이 리듬 앤 블루스 등 미국의 대중음악을받아들여 레게라는 장르로 발전하기 이전 단계의 음악으로 흥겨운 리듬이 반복되는 것이 특징. 80년대 중반 스카풍의 영국 펑크록밴드 매드니스에 영감을 받아 87년초 결성된 이 밴드는 그웬과 그의 오빠 에릭, 존 스펜스 세 사람으로출발했다. 그룹명은 스펜스가 즐겨 사용하던 어휘 ‘의심할 바 없이’에서 따왔다. 내한공연에 이어 일본 주요도시 순회공연과 홍콩 말레이시아 투어가계획돼 있다. 임병선기자
  • 인터넷 實名비판 뜨거운 찬반논쟁

    최근 인터넷상에서 욕설과 인신공격 등이 난무하게 벌어지고 있어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실명(實名)비판의 역기능’이라며 실명비판을 주도하는 전북대 강준만 교수를 비난하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계명대 이진우교수(철학과)는 학술평론지 ‘emerge 새 천년’ 9월호에서 “한국의 사이버세계가 공포의 무법천지로 변한 것은 실명비판의 역기능”이라고 주장했다.실명비판이란 사람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그의 주장과 사상을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이 교수는 ‘인물’과 ‘사상’을 연결시켜 비판하는 강 교수의 전략이 우리사회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지만 사이버 공간의 정글화를만든 ‘주역’이라고 꼬집었다.그러면서 그는 강 교수가 ‘철학자 이진우의 네가지 콤플렉스’에서 자신을 ‘기지촌 지식인’이라고 단정하면서 저널리즘을 중단하라는 ‘인신공격’성 실명비판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그는 실명비판으로 토론이 활발한 것처럼보이지만 결국 다수의 지식인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이름을 잃어버리게 만드는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어 “만약 조선일보에 글을 쓰면 보수적이란 낙인을 들이대고 김대중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면 실명비판 역시 편가르기와줄세우기 식의 권력놀음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실명비판은 언행일치와 책임을 따지는 일종의 도덕놀음”이라고 맞받아쳤다.그는 “우리의 과거 비판문화엔 지식인의 도덕성을 따지는 것이 없었다”며 “지식인에게 면책특권은없다”고 반박했다.그는 이같은 내용의 이교수에 대한 재반론을 월간 ‘인물과 사상’ 10월호에서 펼칠 예정이다.그는 또 ‘열린전북’ 9월호에서 “앞으로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실명비판’문화의 정착을 위해 뛰겠다”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
  • [시드니를 빛낼 스타]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4㎏ 심권호

    두마리 토끼를 잡아라-.‘효자종목’의 가장 듬직한 ‘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54㎏급 심권호(28·주택공사)가 2체급 그랜드슬램과올림픽 2연패라는 ‘두마리 토끼사냥’에 나섰다. 격투기선수로는 다소 나이가 많지만 후배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남다르다.훈련강도도 올림픽이 가까워질 수록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심권호는 이미 48㎏급에서 그랜드슬램을 이룩했다.그랜드슬램은 한선수가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 등 4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현 54㎏급에서도 98년 세계선수권,98년방콕아시안게임,99년 아시아선수권을 휩쓸어 그랜드슬램에 올림픽금메달만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다. 애틀랜타올림픽 48㎏급 우승자인 심권호는 올림픽 이후 이 체급이없어지자 한때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그러나 10여년동안 정들었던매트를 매정하게 버릴 수 없어 54㎏급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련도 있었다.체급을 올린 뒤 지난해 올림픽대표 선발전 등에서 라이벌 하태연(24·삼성생명)에게 3연패하는 등 선수생활이 막을내리는 듯 했다.그러나 이를 악문 심권호는 지난 4월 올림픽선발전 2·3차전에서 우승하면서 극적으로 대표팀에 복귀했다.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나자로(쿠바),알프레도(독일),보리스(러시아),강용균(북한) 등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이즐비하다.보리스와 강용균은 한차례 꺽은 경험이 있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이 첫 대면이기 때문이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심권호는 이번 올림픽 우승을 끝으로 16년간 정들었던 매트를 떠날예정이다.심권호는 “결승전이 있는 9월26일을 레슬링역사에 큰 이정표가 생기는 날로 만들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
  • 신간 맛보기

    ●한비자가 나라를 살린다(최윤재 지음,청년사 펴냄)경제학교수가 펼치는 본격적인 한국사회개혁론.그 이론적 무기로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기원전 280?∼233?)의 지혜를 빌렸다. 엄격한 상벌의 시행을 주장한 한비자의 사상은 엄정한 법과 제도의확립을 통해 나라를 경영해야 한다는 현대경제학 특히 제도경제학의주장과 일맥상통한다는 게 저자(고려대 교수)의 견해. 인정과 의리에 얽매이는 ‘유교적’사고방식으론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기 어려우니 ‘법앞의 만인평등’을 주장한 한비자의 ‘법가적’사고로 21세기를 헤쳐나가자는 것이다.9,000원●간박사가 들려주는 간병 이야기(김정룡 지음,에디터 펴냄)유명한간 치료 전문의 김정룡 박사가 40여 년 봉직한 서울대 정년퇴임을 앞두고 썼다. 인체 장기 중에서 가장 큰 간은 마치 화학공장처럼 위와 장에서 소화되어 만들어진 영양소를 한데 모아 합성분해,피와 살 또는 에너지가 되게하며 독물을 걸러준다.저자는 간의 구조와 역할,간염에서 간암까지 각종 간질환의 종류와 치료법,술과 간과의 관계,한약·양약과 간,건강한 간을 위한 좋은 생활 습관 등을 진찰실에서 상담하듯 친절하게 말해준다.8,500원. ●마음의 풍경(이해인 외 지음,이레 펴냄)시인 소설가 등 문인 18명의 짧으나 여운있는 글 모음집.화가 박항률의 그림 19점이 중간중간들어있다. 이해인 안도현 박완서 최성각 등의 글은 자연의 이야기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곽재구 장석남 등은 삶의 소리를 담고 있으며 또 임의진이인환 권저앵 오정희 등의 글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말한다. 이밖에 정채봉 정호승 강은교 김용택 재연 김하돈 김재일 긴훈 등의 감칠 맛나는 글들이 망각된 삶의 여러 자잘한 의미들을 깨우쳐준다. 8,000원. ●미국의 제국주의(권오신 지음,문학과지성사 펴냄) ‘필리핀들의 시련과 저항’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하기 시작했던 1898년경부터 필리핀이 독립하던 1946년까지를 시점으로잡아 제국주의의 정책과 이념을 낱낱이 해부했다. 미국과 필리핀 역사에 해박한 지은이는 “미국 제국주의의 성격을파악하기 위해 미국이 실제로 제국주의 정책을 적용했던 필리핀 식민통치에 주목했다”고 밝힌다. 미국의 대(對)필리핀 식민지배 준비과정에서부터,식민지배 확립,독립 과도정부 지배,2차 대전기 정책 등을 두루 짚었다.1만6,000원
  • 새 내각에 듣는다/ 辛國煥 산업자원부장관

    “과거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경험과 열정을 갖고 신경제 산업정책을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신국환(辛國煥·61) 산업자원부 장관은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구조조정이 최종적으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금융부문과 함께 제조업 등 실물경제의 구조혁신이 필수적”이라며 “우리경제가 어려움에서 벗어나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부가가치를 높여,신경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년만에 수장(首長)이 되어 친정으로 돌아온 신 장관으로부터 앞으로의 산업정책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 경제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까. 그동안 IMF(국제통화기금) 위기를 극복하느라 거시적이고 단기적인금융정책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러나 앞으로는 미시적이고중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실물중심의 개혁을 착실히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중장기 비전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세계 경제는 경제통합 추세의 가속화,디지털·기술주도의 신경제 환경 도래,사이버 무역의 확산이 빠르게진행되고 있습니다.늦어도 10년 뒤엔 우리나라가 동북아 경제의 중심에 선다는 목표 아래 큰 틀에서 산업 전반의 구조를 개혁,경쟁력을 강화하고 산업간의 불균형을조정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경제에 있어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산업구조의 혁신입니다.우리 산업의 내면적·질적인 혁신과 변화를구하면서 정보기술의 발달과 디지털화에 대비해 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합니다.자동차 철강 등 전통적인 주력산업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지역간의 불균형,물류난,고비용 저효율 등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를 재점검해 우리경제의 잠재력을 키워야 합니다. ■하반기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산자부가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합니까. 급속한 경기냉각을 방지하면서 잠재성장률 수준의 정상성장 궤도에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면 경제운용의 과제입니다.산자부는저금리 기조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관계 부처와 긴밀히 협의해 나가면서 새로운 성장 원천을 확보하도록 정책을 펴나갈 것입니다.정보통신과 생명공학 등 기술혁명에 대응해 새로운 산업의 성장기반을 마련하고,기존 주력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무역수지 흑자기조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수출 100억달러,500억달러 돌파의 주역으로서 무역수지 흑자기반을안정적으로 조성하기 위한 대안이 있다면. 교역조건에서 상당히 어려운 문제들이 가로놓여 있습니다.해외시장여건이 어떠하더라도 끄덕없이 흑자기반을 구축하려면 경쟁의 근원적인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대내외의 여건변화에 흔들리지않고 적정수준의 무역흑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교역조건개선형의 무역전략을 추진해야 합니다. ■산업의 IT화가 시대적 요청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데.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필수적입니다.급속하게 발전하는정보기술을 기존 제조업에 접목시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못하면 우리 기업은 글로벌 마켓에서 도태될 것입니다.자동차 철강 등전통적인 오프라인 산업의 정보화를 정착시켜 산업프로세스 전반을개혁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기업간전자상거래 확산과민간의 정보화투자 확대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데 정책의 역점을두고자 합니다. ■기업구조개혁작업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실물경제를 맡고 있는 부처의 장관으로서 어떤 복안을 갖고 계신지요. 최근 구조조정 과정에서 재계의 태도가 많이 위축된 게 사실이지만앞으로 경제단체와 주요 기업들을 전면에 내세워 구조개혁에 동참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겠습니다.공기업,민간 기업,경제단체까지 산자부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하고 관계부처와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정책을 적극적으로 보완해 나가겠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정책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만. 지금은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우리가 동북아지역 경제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느냐,못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장래가 달려있습니다. 앞으로 남과 북의 산업협력도 한·중,한·일,한·러시아 등 동북아산업을 고려해 추진돼야 하며 국내 산업구조도 이에 맞게 혁신돼야합니다. ■최근의 현대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대는 외형적인변화에 그치지 말고 생산성과 경쟁력을 향상시켜야합니다.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에 산자부도 나름대로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우리 경제의 암초가 되지 않도록 경영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산자부가 시대의 흐름에 뒤처진다는 비판이 많았는데요. 문명사적 변혁기에 접어들었는데 실물경제를 책임지다시피 하는 산자부가 구태를 벗고 변화를 리드하며 새로운 틀을 구축해 나가야 할것입니다.시장의 변화에 뒤처져서는 안됩니다.최소한 같이 가거나 앞질러 갈 수 있는 산자부가 돼야 합니다.그래야 기업을 이끌어 갈 수있는 리더십도 생깁니다. ■상공부 출신 선배가 장관으로 온데 대해 산자부 직원들의 기대가큽니다.그동안 ‘힘’이 빠져 있던 산자부에 힘을 실어줄 자신이 있으신지. 산자부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합니다.지금은 시너지의 시대고 상생(相生)의 시대입니다.산자부 가족 전체가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고 응집할 수 있는 직장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모두같이 뛰어야 합니다. 직원들과 자주토론회를 갖고 문제점을 파악해대안을 찾아나가겠습니다. *辛國煥장관, 정책결정 빠르고 거침없는 일처리 정평. 예전에 상공부 재직시절 직원들은 신국환 장관을 ‘신프로’라고 불렀다.화끈하고 적극적이며 보스기질이 다분한 그는 25년간 상공부에몸담으면서 업무는 물론,업무 외적인 일에서도 진짜 프로다운 모습을보여줬다. 정책결정이 빠르고,목표달성을 위해선 관련부처나 기업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설득하는 것이 그의 업무스타일이다.한마디로 거침이 없다. 80년대 초 신 장관이 상공부 전자전기공업국장이던 때의 일화.2차석유파동,사회적 불안으로 기업의 투자의욕이 꺾여있던 어려운 시기였다.상공부는 난국타개를 위해 주요 품목별로 국제경쟁력 제고방안을 마련했고 반도체 산업도 그 중 하나였다.전략적인 차원에서 의욕적인 반도체 국산화 계획이 확정됐지만 공장건설에만 5,000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을 어느 기업에도 선뜻 권하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 명예회장이 상공부를 찾았다. 장관면담에앞서 잠시 들른 정 전 명예회장에게 “기술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니 전자공업과 같은 첨단기술에 투자해 그룹 전체의 체질을 개혁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면서 투자를 권유,단 20분 만에전자산업 참여의사를 받아냈다. 그의 프로근성은 무역정책의 핵심 포스트에서 일할 때 가장 빛났다. 100억달러 달성때 과장이었던 그는 상역(商易)국장이 되자 수출 500억달러 달성에 대한 욕심이 발동했다.부내의 수출담당관회의를 활성화하고 수출담당관이 수출동향에 대해 장관(당시 琴震鎬씨)에게 직접보고하도록 했다. 수출업계에는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하되 긴장감이조성되도록 월별 수출촉진대책회의를 갖는 등 모든 정력을 쏟았다. 국내외적으로 수출조건은 악화됐지만 치밀한 분석과 적절한 대응이조화를 이뤄 88년 11월14일 500억달러를 넘어섰다.그는 최장수 상역국장(84년 2월∼88년 12월)으로 기록된다. 신 장관은 자기관리가 철저하기로도 유명하다.아무리 술이 과해도 5시에 일어나 운동한 뒤 7시에는 사무실에 나가 1시간 가량 외국어 공부를 하고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상공부 재직시절 그의 시간표다.외국어 공부는 혼자 하지 않고 원어민 강사를 초빙해 국장실에서 과장들과 함께 하곤 했다. ‘남에게 지는 것을 절대 못참는다’는 그에게도 시련과 패배는 있었다.무혐의로 처리되긴 했지만 92년 공업진흥청장에서 물러날 당시기업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내사를 받기도 했고 96년 15대 총선때 자민련에 입당한 이후 15대,98년 보선,16대 총선까지세차례나 고향(문경·예천)에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정치권에선 ‘TJ(朴泰俊 전 총리)맨’으로 분류돼 이번개각에서 자민련 몫으로 친정에 복귀했다.출신 선배인 그가 장관으로 복귀한 데대해 산자부 직원들은 한결같이 자긍심을 느낀다.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치며 국가경제의 핵심역할을 했던 상공부의옛 영광을 되살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다.도전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신프로의 ‘닥달’도 달갑게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들이다. ■저서로 본 정책방향 신 장관은 94년 낸 저서 ‘한국경제의 선택과도전’에서 21세기의 한국이 선진산업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조업 중심의 혁신적 성장을 지속 추구하면서 무역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고도화와 무역확대를 통한 고도성장전략이다. 그러기 위해 기업은 끊임없이 경영혁신을 해야하고 근로자들은 근면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경제에는 공짜가 없다.그래서 기적도 없다’며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살려 우리민족의 근면성을 바탕으로 두뇌력과 결집된 힘을 다시 한번 발휘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대담 함혜리 디지털팀 차장
  • 새천년 첫 광복절 김대통령 경축사/ 연설 全文-1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은 광복 55주년이 되는 날이자 새천년 21세기에 처음 맞는 8·15 경축일입니다. 이 뜻깊은 날을 맞아 먼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유가족 여러분에게도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또한 생존해 계시는 독립유공자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려 마지않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이산가족의 남북간 동시 상호방문이 처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입니다.어찌 감격의 눈물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55년전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다시 없는 기쁨이었습니다.그러나 동시에 엄청난 비극과 시련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국토의 분단,동족상잔의 전쟁,그리고 경제의 황폐화가 이어졌습니다.반세기 동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동포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적대와반목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확고한 안보태세 아래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왔습니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일어나 경제를 일으켰습니다.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독재체제의 삼엄한 탄압과 횡포 아래서도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1997년 마침내 헌정사상 최초로 국민에 의해 여야간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대업을 이루는데성공했습니다.참으로 자랑스러운 국민의 힘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시련은 그치지 않았습니다.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그 순간부터 우리는 IMF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경제위기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또다시 일어섰습니다.‘금 모으기 운동’으로 대표된바와 같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국가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을 모았습니다.그리고 우리는 해냈습니다.전세계는 또 한번 우리 국민의 놀라운 저력과 불굴의 의지를 확인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저는이 자리를 빌려 위대한 우리 국민에 대하여 한없는 자랑스러움과 감사의 뜻을 밝히고자 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55주년 광복절을 맞아우리는 조상들과 선열들의 얼이 깃들어있는 이 독립기념관에서 그 어느 때보다 떳떳한 심정으로 그분들의영전에 보고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남을대업을 우리가 지금 이룩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달전 우리는 분단 55년만에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을 7천만 민족과 세계 앞에 선포했습니다. 우리 민족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6·15남북공동선언이야말로 오늘의 광복절에 대한 최대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남과 북은 지금 두 정상의 합의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과 장관급 회담 등 후속조치들을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습니다.이러한 진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성원과 지지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도 이제 2년반이되었습니다.정부는 국민과 하나가 되어 짧은 기간동안 많은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언론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있습니다.시위·집회·결사의 자유도 보장되고 있습니다.모든 노동운동이 합법화되었고 노동자의정치참여가 허용되었습니다.최루탄이 사라졌습니다. 여성차별 금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법이 제정되는 등 여성의 권리도 대폭 향상되었습니다.시민단체의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어 국정과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한국은 이제 세계적인 인권국가의 반열에 서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분야에서도 우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무엇보다 우리는 급박했던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38억달러에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이제 900억달러에 이르렀습니다.금리·환율·물가가 크게 안정되었습니다.무역수지와 경제성장도 견실한 기조를유지하고 있습니다.실업률이 OECD국가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일부에서 몇차례씩 제기했던 경제대란설의 우려도 모두 극복해 냈습니다. 우리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튼히 바꾸기 위해 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관계의 4대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4대 개혁과 병행해서 지식정보화 혁명을 추진하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정보 인프라 스트럭처의 구축과 전 국민을대상으로 한 정보화 교육의 확대,벤처기업의 육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이제 아시아에서 가장 앞서가는 정보화 국가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외환위기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저소득층이 생계에 어려움을겪게 된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왔습니다.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정부는 획기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새로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4인 가족 기준으로 월92만원까지 생계비가 보장됩니다.이제 돈이 없어서 밥을 굶거나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자녀를 교육시키지 못하는 일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보고드리는 바입니다. 시행과정에서 일부 진통도 있었지만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의료보험 등 4대 보험을 모두 실시함으로써 선진 복지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의약분업도 국민에게 일시적인고통과 불편을 끼치고 있는 것은 가슴아픈 일입니다만,국민 여러분과 후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시행해 나가야 할 정책인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안보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우리 국군은 최고 사령관인 대통령을 신뢰하는 가운데 평화와 화해를위한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한·미간의 안보협력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국민 여러분이 국정에 대해 많이 염려하고 계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쓰러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는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국민의 정부는 부단한 노력을 다했지만 여러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4대 개혁의 미완성,도덕적 해이,개혁피로 증후군과 집단이기주의,그리고 정치의 불안정 등 나라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이제 개각의 단행과 더불어 국정 제2기로 접어들었습니다.앞으로 더욱 굳은 개혁의지와 투명하고 일관되며 효율적인 정책집행을 통해 시장과 국민을 안심시키고 신뢰와 희망을갖도록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이미 설정한 민주주의,시장경제,생산적복지의 3대 국정철학 아래 앞으로의 임기동안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5대 목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인권국가,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를만드는데 헌신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평생을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몸바쳐 왔습니다.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인권법’을 시행하겠습니다.국민 여러분의공감대 위에 ‘국가보안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고자 합니다.약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겠습니다.‘부패방지법’을 빠른 시일 안에입법하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인권이 살아 숨쉬는 나라,부정이 결코 용납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야 말겠습니다. 민주주의는 확고한 법질서의 토대 위에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해치는 집단이기주의와 불법·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처해 나가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 박물관 산책/ 만델라·아프리카 민속 특별전

    남산 서울타워에 있는 지구촌민속박물관은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일대기와 아프리카 민속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연다. 10일부터 12월 31일까지.이 전시는 2001년 한국방문의 해와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문화교류 차원에서 마련됐다. 남아공 흑인민권운동의 상징인 만델라는 1918년 남아공 트란스케이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그의 정식 이름은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그의코사어 이름 ‘롤리랄라’는 ‘나무가지를 잡아당기다’라는 뜻으로 말썽꾸러기를 암시한다.훗날 그의 친구들은 만델라가 겪은 숱한 시련을 그 이름 탓으로 돌리곤 했다.이번 전시는 만델라의 삶의 자취와 영혼의 성장사를 그대로 읽게 한다.로빈섬 교도소에서의 수형생활,93년 노벨평화상 수상 장면 등인간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진자료들이 전시된다. 아프리카 원시미술은 20세기 현대 서양미술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특히큐비즘 작가인 피카소와 브라크,야수파 마티스 같은 작가들에게 아프리카는절대적인 에너지원이었다.큐비즘은 아프리카 말리의 도곤족,바울레족,세누포족 등에 크게 빚을 지고 있다.이번 전시에서는 아프리카의 의·식·주,원시신앙,통과의례 등에 관한 희귀 민속자료들이 소개된다.탄자니아 마콘데족의가면,모리타니아의 낙타가죽 배낭,가나의 아샨티 인형,남아공 줄루족의 주거등이 볼거리다.(02)773-9590. 김종면기자
  • 여야수뇌 가슴앓이 속사정도 ‘판이’

    ■徐英勳 민주당대표.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에게 있어서 국회법 변칙처리에 따른 최근의 국회 파행은 정치권 진입 후 가장 큰 시련으로 보인다.당 총재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대신한 집권여당 대표로서 정국의 원활한 운영을 도모해야 하나 상대가 있는 정치현실이 여의치 않은 것이다. 원칙과 정치현실의 괴리에 대한 복잡한 심경은 지난달 24일 국회법 변칙처리 후 그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서대표는 변칙처리 이튿날인 25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파동의 책임은 수적 우위를 믿고 적법한 민주절차를 원천봉쇄한 한나라당에 있다”고 강도높게 한나라당을 비난했다.상당부분 ‘소신’에 의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회 파행이 거듭되면서 서대표는 마침내 변칙처리에 대해 ‘사과’를 검토하는 단계에까지 왔다.실제로 1일 기자회견을 준비하기까지 했다. ‘관리형 대표’의 한계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대등한 위상을확보하지 못한 정치현실도 그에게는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민주당이지난 1일 경색정국 타결방안과 관련,‘영수회담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도 뒤집어보면 서대표의 ‘현실’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자민련의 행태는 서대표에게 운신의 한계를 더욱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파행의 발단이 자민련이건만 서대표는 정작 자민련과는 별다른 대화나 교감을이루지 못하고 있다.결국 집권여당 대표로서 정국운영의 무한책임을 지고도역할은 제한돼 있는 것이 서대표의 고민인 것이다. 진경호기자 jade@. ■李會昌 한나라당총재. 최근 국회전략을 둘러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비타협적 강경기조에는 야당의 차기주자로서 리더십과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고 당내 입지를 굳히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렸다.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며 자민련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와 관계개선을 시도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저질스런 공작정치는 이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밀약설 파문에 쐐기를 박는 과정에서 이총재의 ‘권력지향성’ 논리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중장기 정치플랜을 감안한 이총재가 당내 구심점을 강화하고 ‘3김(金)식정치’와 차별되는 선명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고있다는 분석이다. 이총재는 이러한 정치적 속내를 2일 의총에서 비교적 솔직히 드러냈다.먼저밀약설파문 이후 정치력과 리더십이 도마에 오른 것을 의식, “많은 걱정을끼쳐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분명한 것은 항상 원칙과 정도로 가려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피력했다. 이총재는 “우리당의 입장은 결코 표류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서 “국민에게 창피하지 않고,죄짓지 않는 의정상을 만들자”고 야성(野性)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본인의 정치적인 셈법에 따라 현 상황까지 이른 이총재로서는 이번국회 파행이 기회인 동시에 또다른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정치 입문이후 줄곧 ‘타이밍의 정치’에 미숙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총재가 이번에도 협상의 적기를 놓치게 되면 국회 파행에 따른 책임 논란이 부메랑으로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찬구기자 ck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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