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뷰] ‘대한민국 브랜드’ 업그레이드
공을 몰고 갈 땐 조마조마하고,골이 들어가지 않을 땐 발을 동동 굴렀다.상대 팀 선수가 슛을 할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골을 넣었을 땐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따지고 보면 단순한 축구경기에 불과하다지만 나는 어느새 우리 선수들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그 시간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만 것이었다.
어디 나뿐이었을까.우리 팀 선수가 골을 넣을 땐 ‘삼천리 금수강산’이 출렁였다.그 순간,경기장에서의 함성은 거대한 파도와 같았고,거리에서 내지른 시민들의 환호성은 텅 빈 빌딩들을 뒤흔들었다.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껑충껑충 뛰고,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고,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골인이야 골인’하며 소리를 질렀다.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혼연일체가 되어 기쁨과 아쉬움을 함께 만끽한 적이 있었던가.어떤 이는 ‘8·15해방’이후 처음이라고도 하고,어떤 이는 단군 이래 처음이라고도 한다.
하긴 외침과 폭압적인 정권에 시달려온 우리 국민들로서는 ‘방어적 단결력’을 보여주는 데 익숙해 있을 뿐 그 어떤 순수한 의미에서의 ‘단결력’을 과시할 기회가 없었다.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백년을 돌아보더라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인해 이 땅은 전쟁터가 되었고,곧이어 나라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감으로써 나라없는 고통을 겪었다.해방이후 6·25전쟁의 비극이 있었고,이어서 독재 등 정치적 후진성으로 인한 고통이 뒤따랐다.
우리 속담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다.전자는 주변국에 의해 억압받고 짓밟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고,후자는 계속되는 시련 속에서 저항하는 심정을 암시하는 표현이다.이러한 상황에서 나라 밖에 비친 한국의 이미지는 당연하게도 ‘가련한 나라’‘분단의 나라’‘독재의 나라’등 부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개발도상국 과정에서의 고도성장과 더불어 88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나 오랜 세월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국가이미지를 탈바꿈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바로 얼마 전,통계상의 경제적 성취만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자위하는 순간 전대미문의 환란을 맞게 되었고,그로 인해 실추된 부정적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이런 우리에게 월드컵은 새로운 국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다.
요즘 우리 국민들은 한국이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닌 ‘역동적인 나라’임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전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열광적으로 응원을 하는 나라,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바른 민족임을 과시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지칠 줄 모르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한국 축구의 역동성에 놀라고,온나라가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응원열기에 놀라고 있다.그러나 이것이 어찌 우리 민족이 가진 저력의 ‘전부’일 수 있겠는가.
예부터 우리 민족은 시를 사랑하고,음악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다.월드컵 기간에도 영화관이 만원사례를 이루고,오나가나 책을 읽는 ‘문화민족’의 이미지도 이 역동성에 섞어 함께 보여주었으면 한다.
오봉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