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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영남권 낙선자 ‘살리기’

    열린우리당은 152석이라는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으나 68석이 걸린 영남권의 경우,고작 4석을 얻는 데 그쳤다.당 안팎에서는 상생과 통합의 정치를 위해서라도 영남권 낙마자들에 대한 정치적 배려가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조심스레 나온다. 패배의 쓴 잔을 마신 영남권 후보들 가운데 정치행보가 주목되는 인사들은 김정길·김두관·이강철·이철 등 4명이다. 당 안팎에서 이와 관련,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나 오는 6월5일로 예정된 부산시장 및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이들을 입후보시켜야 한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정동영 의장이 이들 낙선자들과 이번주내 만날 것으로 전해져 회동결과가 주목된다. ●김정길·김두관 단체장 출마 권유 열린우리당의 윤원호 비례대표 당선자는 18일 “총선 직후 김정길 전 장관에게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건의했으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면서 “김 전 장관을 떨어뜨린 것은 너무한 일로 19일 부산 선대위 해단식에서 그런 쪽으로 모색해 봐야겠다.”고 말했다.김 전 장관은 이날 참모들과 해단식을 겸한 등산을 하며 향후 정치행보를 모색했다. 김두관 전 장관 측근들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에 나갈 것을 김 전 장관에게 권유하고 있다. 이른바 ‘왕특보’로 통하던 이강철 대구시 선대위원장의 경우,청와대 입성설이 나돈다. 당내에서 누구보다 대구·경북(TK) 정서를 잘 알고 있는 정치인인 데다 청와대로서도 통합의 정치를 위해 한나라당 텃밭인 TK에서 정치적 시련을 맛본 그를 활용할 명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이철 전 의원의 경우 보궐선거 출마설 등이 나돈다. ●이강철·정윤재등 청와대 입성설 최인호(부산 해운대·기장갑)·정윤재(부산 사상)·송인배(경남 양산) 후보 등 친(親) 노무현계 386 낙선자들의 경우 청와대 참모 기용설이 나오고 있다. ‘해운대 발전론’을 기치로 내걸었던 최 후보의 경우 16대에 이어 이번에도 고배를 마신 만큼 해운대구청장 보궐선거에 입후보시켜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여대야소 정국] 한나라 “朴風은 계속된다”

    17대 총선 결과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원내 과반수 의석을 내주긴 했지만 ‘박근혜’라는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는 점에서 크게 밑질 게 없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이 때문에 겉으로는 일단 평온한 모습을 보인다.하지만 박근혜 대표 체제가 상당기간 유지되건,아니면 새로운 경쟁세력이 나타나 갈등이 불거지건 간에 일정 수준의 당내 구조조정 및 면모 일신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총선을 20여일 앞둔 전당대회에서 ‘한나라호(號)’의 사령탑에 오른 박 대표는 유연함과 친근감을 앞세운 ‘박근혜 바람’을 확산시키며 한나라당의 강력한 대권주자로 떠올랐다.열린우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아온 정동영 의장이 노인 폄하 발언으로 선대위원장에서 물러나는 등 상처를 입은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탄핵 역풍’으로 “50석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던 한나라당에 박근혜 대표마저 없었다면 과연 개헌저지선(100석)을 훨씬 웃도는 121석을 얻을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이 당 안팎의 주된 기류다. 따라서 차기 대권을 꿈꾸는 유력주자들과 정파들도 당분간 박 대표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17대 국회가 문을 여는 오는 6월 이후 정치관계법·노사관계법 개정 등 각종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강공에 밀릴 경우,박 대표 체제에 대한 당내 반발기류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박 대표가 오는 6월 열리는 전당대회 대표경선에 출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대표직을 수행하려면 당 안팎의 공세에 시달릴 수밖에 없고,그러다 보면 대권 행보에 차질을 빚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소수 야당’의 대표를 맡아 시련을 겪느니 잠행을 통해 내공을 쌓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6월 전대 이후 거취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제 방금 총선이 끝났다.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고 말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박 대표는 “(선거기간 중 국민들에게) 한나라당은 앞으로 정치문화를 한단계 높이는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면서 당 개혁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정당으로서 면모를 일신하고,정책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여의도연구소 등에 국고보조금도 더 많이 지원하고,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확인하는데 당력을 쏟겠다.”며 “앞으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분이 책임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달라지는 공기업] 농업기반공사

    농업기반공사는 공기업 중에서 역사(96년)가 가장 길다.긴 역사만큼이나 조직이나 운영 측면에서 낡은 틀도 유지돼왔다. 이런 공사가 요즘 ‘열린 경영’을 모토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변신의 선봉에는 지난 2월 말 취임한 농림부 차관 출신 안종운(安鍾云·55) 사장이 있다.그는 회사의 중심을 농지·농수·간척사업에서,낙후한 농촌을 고소득·친환경 산업의 터전으로 바꾸는 농촌종합개발 사업으로 옮기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확 바뀌어야 산다 “순천자(順天子)는 흥하고 역천자(逆天子)는 망한다.” 안 사장이 즐겨 인용하는 말이다.그는 “열린 경영의 첫 삽을 뜨겠다.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가장 빨리 변화에 순응하는 자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틈나는 대로 직원들에게 얘기한다. 그가 변신을 강조하는 것은 공직경력과 무관하지 않다.75년 서울대 농대를 나와 행정고시 17회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 농업구조정책과장,농정기획심의관,농업경영벤치마킹 추진단장 등을 지내며 농·축협의 통합,농업기반공사와 농지개량조합의 통합 등 농업개혁과 구조조정작업을 주도해 왔다. 그래서인지 취임 초부터 ‘변신’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먼저 직원들과의 접촉 빈도를 높였다.직원들로부터 애로사항과 건의를 최대한 수렴했다.건의는 주로 ▲수익사업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인사·승진제도 등에서 낡은 관행을 버려야 한다 ▲기획·연구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직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쪽지를 돌려 간부인사에 대한 추천을 받기도 했다.추천기준은 공사 발전에 대한 열정,강한 실천력,청렴성,조직 장악력 등이었다. 직원들은 요즘 자유로운 업무분위기를 느끼고 있지만 늘 아이디어를 재촉받고 있다.전국 지사장들도 마찬가지다.그들에게는 CEO(최고경영자)형 책임경영이 부여돼 있다. ●농촌개발공사로 불러달라 농업기반공사는 1908년 전북 옥구 수리조합이 효시다.일제 강점기의 토지개량협회,국토개발기 농어촌진흥공사를 거쳐 2000년 1월 농지개량조합 등과 통합해 기반공사로 출범했다. 공사의 기능은 한마디로 농촌의 땅을 보수하고 물을 공급하는 일이다.경기도 의왕시 본사와 전국 93개 지사를 합해 직원이 8000명으로 공기업으로는 한전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과거엔 여당의 선거조직으로 악용되었다는 비판도 받았고,사장은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그러나 안 사장은 18대의1의 경쟁을 뚫고 뽑힌 공모직 사장이다. 공사는 지난해 큰 상처를 입었다.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새만금사업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사업주체로서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공사가 변신이 필요한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공사는 농지 및 용수 개량사업,간척사업 등은 현 수준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간척사업은 사업 중인 곳만 마무리하고 더 이상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공사가 이미 준공했거나 시행 중인 간척지 면적은 15만㏊로 서울시 면적의 3분의2에 해당된다. 공사는 농촌을 친환경농업마을,테마관광마을,준도시형마을 등 지역특성에 맞게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강과 산이 수려하면 관광마을로,문화와 역사가 깊으면 전통테마마을로 조성한다는 구상이다.이에 필요한 도시자본의 농촌 유입을 앞당기기 위해 농촌투자유치센터를 도농교류센터로 확대·개편했다.최근엔 안산시에 있는 산하 농어촌연구원에 1000평 규모의 주말농장을 개설했다.도시민들에게 5만원의 임대료를 받고 10평을 1년 동안 빌려준다. 올 하반기쯤에는 공사의 이름을 ‘농업농촌공사’나 ‘농촌개발공사’ 등으로 바꾸는 방안도 신중히 검토 중이다.농림부 일부 간부들도 올 하반기에 이뤄질 예정인 공사의 기능개편과 맞물려 공사의 이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다. 안 사장은 “농업개방 파고가 농촌엔 시련이지만 발상을 바꾸면 지금이 오히려 기회이고,지금부터 대응해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쌀은 포기할 수 없다 그는 “우수한 쌀 전업농들에게 공사의 후원으로 해외연수 기회를 주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또 쌀 전업농 전용 인터넷사이트를 개설해 전업농들이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공사는 쌀 시장 개방에 따른 쌀값 하락에 대비,지난 97년부터 쌀 산업구조개선사업을 하고 있다.농림부와 함께 오는 2010년까지 가구당 6㏊ 규모의 쌀 전업농 7만가구를 육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 [이라크 ‘제2전쟁’] 고이즈미 ‘발만 동동’

    |도쿄 황성기 이춘규특파원|일본 열도가 ‘이라크 납치 충격’에 휩싸인 하루였다.설마했던 일이 ‘민간인 피랍’이라는 현실로 나타나면서 초 패닉상태에 빠졌다.엔화가 하락하고,주가도 폭락했다. 일본 정부는 정보수집,고위관료 현지 파견,납치단체와의 접촉에 나섰으나 3명의 구출에는 이르지 못했다.‘사흘 내 자위대 철수’라는 납치단체의 요구가 워낙 무거운 탓이다.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은 9일 기자회견 때 “철수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피랍된 3명의 안전이다.일본 정부는 신속한 구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납치단체가 어떤 성격인지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된 상황이다.이들이 내건 시한(11일)까지 교섭이 성사되지 않으면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이라크전쟁을 지지하고,자위대를 파병한 일본 정부로선 속타는 시나리오다. 일본 정부는 1977년 일본 적군파에 의한 비행기 납치 사건 당시 “사람 목숨이 중요하다.”며 600만달러,적군파 6명의 석방,일본 출국이라는 요구조건을 들어줘 156명의 탑승객을 구한 바 있다.그러나 이번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범인들이 자위대 철수라는 요구를 변경하지 않는 한 일본 정부가 조건을 수용하기 힘들다.그렇다고 피랍자 가족들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가족들은 이날 가와구치 요리코 외상과 만난 자리에서 “자위대 철수도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라크에는 자위대원 550명을 포함,대사관 직원,기자,비정부기구(NGO) 요원 등 640명이 있다.일본 정부는 현지 자국민을 쿠웨이트로 대피시키기 위해 군용기를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9일 전했다. 납치된 일본인은 시민운동가 이마이 노리아키(18),자원봉사자 다카도 나호코(34),자유기고가 고리야마 소이치로(32)씨.이들은 3월 말,4월 초 각각 일본을 떠나 요르단 암만의 호텔에서 합류,이라크로 가다 납치됐다. 일본 정부는 이라크에 대해 최고의 경계조치인 ‘대피 권고’를 발동하고 있으나 이번 사건처럼 자원봉사자 등의 입국에는 속수무책이다.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민간인 납치에까지 이르도록 한 일본 정부의 책임은 면하기 힘들게 됐다. 납치의 원점인 자위대 파병에 대한 근본적 논쟁이 재연될 수 있다.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자위대를 파병한 정권의 책임론으로 비화될 공산이 크다.“테러에 굴하지 않는다.”고 호언해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였다.순풍을 타고 온 고이즈미 정권은 2001년 4월 발족 이후 최대 시련을 맞은 셈이다. marry04@˝
  • 최태원회장 ‘뉴SK’ 선언

    최근 그룹 창립 51주년을 맞아 ‘뉴SK’를 선언한 SK㈜ 최태원 회장은 8일 경기도 용인 SK아카데미(연수원)에서 창립 기념식을 갖고 “50주년이었던 지난해에 기쁨을 나눴어야 했는데 (분식회계,정치자금,소버린 분쟁 등) 크나큰 아픔이 있었다.”면서 “지난해의 시련과 아픔을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알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자.”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어 “기업의 가치 극대화와 사회공헌 확대,구성원의 가치 제고 등 3대 변화과제와 SKMS(SK Management System)를 통해 SK가 신뢰를 회복하고 재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낡은 관행과 질곡을 뒤로 하고 새로운 SK를 향해 재도약하자.”고 ‘뉴SK’ 출발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서는 “세계 일류 수준의 지배구조를 갖추기 위한 개선작업이 상당히 진행됐으며 이사회가 최종 의사결정기구가 될 것”이라면서 “관계사들이 명실상부한 ‘이사회 중심의 독립경영’ 체제를 달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존의 재벌체제 대신 ‘기업문화와 브랜드를 공유하는 계열사간 네트워크’로 전환할 것임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이날 행사에는 최 회장과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신헌철 SK㈜ 사장을 비롯한 관계사 임원들과 최재원 전 SK텔레콤 부사장,최신원 SKC 회장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교수

    “퇴계선생은 로맨스나 스캔들이 없었나요?” “왜요,단양의 기생 두향(杜香)이 하고 연애한 것은 유명하잖아요.” “낮퇴계,밤퇴계가 달랐다면서요?” “그런 속전이 있지.” “자네 퇴계선생의 매화음(梅花吟)이라는 걸 들어봤나?” “아뇨.” “퇴계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알고 싶으면 매화에 관한 시를 읽어봐.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저 매화나무에 물 줘라’하셨고 내내 아무 말 없다가 저녁에 일으켜 앉히니 앉은 채로 서거하셨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에서 저자와 한 퇴계연구가 사이에 오고 간 선문답이다. 혹자들은 100여년전에 ‘서유견문’의 유길준(兪吉濬)이 있다면 이 시대에는 ‘문화견문’을 쓴 유홍준(兪弘濬·55·명지대 미술사학)교수가 있다고 얘기한다.공교롭게도 둘은 이름의 ‘돌림자’도 같은 기계(杞溪)유씨 ‘충목공파’의 문장가 집안 출신이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반도 구석구석 안 가본데가 없다.북한까지 다녀왔다.발품으로 일궈낸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3권이 이를 입증한다.1,2권만 합쳐 250만부나 팔렸다.작고한 소설가 이문구는 생전에 그를 가리켜 ‘문화재급 역마살’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국토 박물관’으로 불려 그는 지난 10년동안 ‘나의 문화유사 답사기’(이하 답사기)를 비롯해 ‘완당평전’‘화인열전’ 등 13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대부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특유의 감각적 글솜씨로 ‘해방후 최고의 베스트셀러’‘살아 있는 국토박물관’이라는 수식어가 곧잘 붙어다닐 정도로 평판이 높다. 시인 박노해씨는 옥중에서 ‘답사기’를 읽고 저자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제 눈을 맑게 열어준 운명같은 마주침의 책,펼칠 때마다 선방의 죽비처럼 내 등짝을 때리는 책,내 마음속 가장 은밀한 자리에 꽂아둔 우리 시대 고전같은 책입니다.…유 선생의 ‘답사길’을 따라가다보면 내 속에 갇혀 있던 나 아닌 것들이 벌떼처럼 살아나서 나를 깨뜨립니다.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땅의 자식이구나,조상님들이 내속에 살아계시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소설가 박완서씨는 ‘답사기’를 읽고 이렇게 언론에 기고했다.“읽고 깨우친 바 기쁨이 하도 커서 말하고 싶은 걸 참을 수가 없다.기막힌 비경이나 특별히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풍기고 싶어 입이 근지러운 심정이라고나 할까….” 지난 주말 명지대 행정관 4층 복도끝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을 노크했다.한창 집필중인 ‘답사기’ 4,5권의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연구실 문을 열자 ‘고색 창연한’ 냄새가 코끝에 확 밀려왔다. 산골 오지의 어느 노인이 밤새 새끼꼬아 촘촘히 기워만들었음직한 멍석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그위에는 낡은 궤짝 하나가 앙증맞게 놓여 있었다.또 양쪽 벽에 쭉 늘어진 책꽂이에는 ‘답사의 노정’을 말해주듯 때묻은 고서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1만권은 훨씬 넘지요.이쪽은 한국미술사,저쪽은 중국미술사,저기 저쪽에는 서양미술사 책자들이지요.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중독처럼 사다놓은 결과물입니다.” 담배 하나 꺼내 물었다.97년 이전에 3년정도 끊었으나 북한을 다녀오면서 다시 피우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네모난 성냥곽에서 성냥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성냥은 충청도 어딘가에 있는 국내 유일의 공장에서 만든것입니다.그런데 자동이래요.이렇게 열었다 놓으면 뚜껑이 저절로 닫히니까.나원 참….”답사도중에 얻어온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한가지 놀라운 일,책상위에 당연히 있어야 할 컴퓨터가 없었다.600자원고지와 만년필이 대신해 있었다.그는 “컴퓨터로 글을 쓰면 이쪽저쪽에서 글을 퍼오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진다.쓰다가 잘못되면 원고지를 과감히 버리고 다시 써야 글이 살아 숨쉰다.”며 특유의 ‘원고지철학’을 늘어놓았다.컴퓨터는 인문적인 것을 쏙 빼버린 기계적인 빠름일 뿐,고뇌도 없고 과정도 없으며,잃어버린 게 많다고 했다. 문득 독자들을 사로잡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했다.기다렸다는 듯이 “최고의 취미는 여행이다.여행이라는 매체를 넣고 글을 썼다.마침 독자들이 거기에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거침없는 답변이 계속됐다. ●“학자인지 문필가인지 나도 몰라” “가끔 내 자신이 학자인지,문필가인지,평론가인지를 물어보곤 합니다.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문사(文士)가 없어요.고행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문사말입니다.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서 문사일 수 없으며 지조있는 선비정신이 내재돼야 합니다.‘답사기’를 3권까지 썼지만 갈수록 글쓰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절반쯤 진행중인 4,5권 집필도 더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했다.제주도를 답사했더니 4·3사건을 안 다룰 수가 없고,경상도를 갔더니 거창학살사건을 다시 조명해야 하기 때문이란다.이런 과정을 거쳐 ‘답사기’의 완결편 2권을 올 상반기중 마무리할 작정이다. 그런 다음 일생의 또다른 역작,즉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어떤 강렬한 요구에 답을 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새로운 다짐이다.그것은 온국민이 함께 읽을 수 있는 ‘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일이다.준비는 오래전부터 해와 곧바로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술사는 문화사의 꽃입니다.학식과 학덕을 쌓은 사람이 그 시대의 역사관을 잘 반영했을 때 더욱 향기나는 꽃이 되겠지요.또 복잡한 현상을 단박에 단도질할 수 있는 깊이와 연구업적이 뒤따라야 합니다.영어로 쓰여진 한국미술사는 물론 번역할 수 있는 마땅한 텍스트도 없습니다.” ●한국인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 강해 이곳저곳 강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인은 대부분 문화적 자존심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그는 반면에 열등의식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했다.결국 ‘짬뽕’식이 되다보니 단군 이래 세계문화를 주도해본 적이 한번도 없이 중심부가 아닌,늘 주변부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이제는 주변이 아닌 중심적인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동아시아문화의 ‘주주’로서 다른 나라에 문화적 영향을 줘야 한다는 필연이 도래했다고 역설했다.한국미술사를 집필하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이란다. “일본은 동아시아를 주도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기네들만 살려고 해서 실패했습니다.더이상 도덕적으로 동아시아를 주도하기는 틀렸습니다.중국사람들은 우리보다 5,6년 뒤져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한류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십시오.대중의 힘은 어마어마합니다.미국의 문화가 오기전에 마를린 먼로가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왔지 않습니까.이제는 세계에서 1등이 나와야 합니다.노무현 대통령도 동아시아물류중심국가를 외쳤는데 이는 반쪽에 불과합니다.물류와 문화가 합쳐진 그런 정책이어야 하지요.” 나이 40이 넘어가면 과거의 이력이 얼굴에 하나둘 새겨진다는 말을 꺼내자 그는 “파란과 곡절도 많았다.93년 이전까지는 정말 별볼 일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14년반만의 대학졸업,교수직 박탈,8년동안의 백수상태,운동권 이론가라는 제도권 교수의 따돌림 등만 떠올려도 그렇단다. ●고3때 담임선생님 권유로 미대 진학 청운초·중학을 나온 그는 경복고교 입학시험에 낙방했다.중동고로 방향을 튼 그는 1967년 고3때 국문학과를 택하려고 했으나 담임선생의 권유로 서울대 미학과에 진학했다.그러나 ‘예술학개론’‘예술비평’ 등의 딱딱한 강의가 많아 연극회에 가입해 유치진의 ‘토막’,천승세의 ‘만선’ 등 민족극 공연에 적극 참가했다.공부는 뒷전이었다.연출은 주로 서울대 미학과 선배인 김지하씨가 맡았다. 대학시절 그의 서울 종로구 창성동 집에는 소위 ‘의식있는’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보안 경찰관에게 데모꾼 소굴로 인식됐다.결국 69년 4월 ‘3선개헌 풍자극’의 대본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도피생활을 하다가 그해 7월 무기정학을 받았다.시련을 호되게 겪은 그는 서둘러 군입대를 하게 됐다.제대 후 한국미술사 연구에 필생을 걸고 뜻을 세우지만 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됐다.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현상수배중이던 이철(전 국회의원)에게 남의 주민등록증을 빌려줬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75년 2월 그는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됐다.방황하던 그는 7개월 뒤 군복무중 미술관에서 만난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원래는 장준하 선생이 주례를 맡기로 했으나 의문의 실족사로 리영희 교수로 바뀌었다.결혼 후에는 금성출판사,공간사 등에 다녔다. 80년 10월,입학한 지 14년 반만에 겨우 졸업장을 받고 이듬해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 전공에 들어갔다.대학원을 마친 그는 건국대 교수로 채용됐으나 미복권 상태임이 밝혀져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이때 그는 ‘미술속에서 현실을 찾자’는 구상 아래 그 유명한 슬라이드강좌 ‘젊은이를 위한 한국 미술사’를 열어 떠돌이 생활로 대중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답사기’라는 역마살도 이때 시작됐다. “인세요? 한 15억원정도? 세금 한 4억 냈을테고….집사람한테 물어봐도 안 가르쳐줘요.장관이라도 돼야 정확히 알 수 있을란가?(웃음)” ‘답사의 달인’에게 꼭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전문화의 진수는 경주,건축의 아름다움은 병산서원·부석사라고 했다.또 자연의 풍요로움을 느끼려면 제주가 으뜸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알면 보이나니,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유홍준 교수는 ▲1967년 중동고 졸.80년 서울대 미학과 졸.83년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98년 찰학박사(성균관대). ▲77년 공간 편집부.78년∼83년 중앙일보 계간 미술부 근무.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당선.91년∼2002년 영남대 회화과 조교수.2002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문화예술대학원장.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2003년 문화재위원. ▲저서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다시 현실과 비평에서,정직한 관객,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3,나의 북한유산 답사기,완당평전,화인열전 등. ˝
  • [우리 결혼해요]이철희(32)·박가영(25)씨

    “여동생 셋 중 왜 하필 막내냐.부모님 설득할 자신 없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될 줄 알았던 친구의 한마디는 다가올 시련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습니다.사실 저도 친구의 막내 동생과 연인 사이가 될 줄 몰랐습니다.친구 집을 오가며 봤던 친구의 막내 여동생 박가영(25·유치원 교사)씨.그녀는 당시 고등학생이었지만 저는 이미 그녀를 여자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귀어 보지 않을래.오빠 친구와 동생이 아니라 남자대 여자로 말이야.”“오빠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그녀는 오빠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원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비밀 데이트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저는 그녀를 보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친구 집을 방문했습니다.친구 부모님은 저의 속마음도 모른 채 보기 드문 젊은 청년이라며 아들 같이 대해주었습니다.저 또한 열과 성을 다해 공경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첫번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가영씨의 오빠이자 제 친구인 그가 우리의 만남을 눈치챈 거죠.친구는 “부모님 아시기 전에 헤어지라.”며 냉정히 말했습니다.그러나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니 동생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있다.니가 좀 밀어주라.”며 거듭된 부탁과 온갖 협박(?)을 가했습니다.결국 저는 친구를 아군으로 만들며 결혼을 향한 1차 관문을 어렵게 통과했습니다.특히 친구는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적절한 도움을 주며 지원을 하곤 했습니다.저 역시 동생을 곱게(?) 모시겠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켰습니다.이렇게 우리의 사랑은 점차 커져갔습니다.그러나 두번째 위기가 곧 찾아왔습니다.친구의 부모님이 아신 거죠.아버님은 “니가 그런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다.”며 다시는 발걸음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셨습니다.저의 예비 신부 가영씨는 부모님 뜻에 따라 그만 헤어지자는 말을 저에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저는 친구 부모님에게 “부모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도리이겠지만 이것만은 도저히 인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라며 막무가내로 매달렸습니다.친구도 옆에서 많이 도왔죠.결국 부모님도 승낙하시더군요. 저는 최근 가영씨에게 서울 63빌딩 스카이라운지에서 프러포즈를 했습니다.“가영아,너에게 한가지만 약속할게.네 곁에서 평생 사랑한다고.”주변에서는 한쌍의 부부 탄생을 축복하는 박수 소리로 요란했습니다.그리고 저는 봤습니다.감동하는 신부의 눈에서 한방울의 눈물을…. 저희는 다음달 24일 결혼합니다.힘든 연애 과정을 거친 만큼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 “2006년 용인本校서 제2의 도약” 부도 극복 장충식 단국대이사장

    장충식(張忠植·72) 단국대 이사장은 그 대학의 산 증인이다.1960년 교수로 발을 디딘 이래 지금껏 44년 동안 ‘단국인’으로 있다.단국대 재학과 강사 시절까지 따지면 기간은 훨씬 더 길어진다. 지난 98년 이사장 시절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부도를 맞았다. 6년 후인 지난해 12월23일 부도에 따른 임시(관선)이사 체제에서 정이사 체제로 전환했다.부도의 수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공사를 재개하기 위해 노력중인 용인캠퍼스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서울 한남동 시대를 접고 2006년에 문을 열 용인캠퍼스는 단국대의 새로운 도약이기 때문이다.34만평에 이르는 용인캠퍼스는 단국대의 본교이자 중심이 된다.천안캠퍼스는 치·의대 계열,한남동캠퍼스는 특수대학원 체제로 운영된다. “새 캠퍼스는 첨단 공학계열의 시설과 설비를 갖출 것입니다.교육 여건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캠퍼스가 될 겁니다.대학촌도 만들 계획입니다.” 용인캠퍼스는 2005년에 완공,2006년부터 정상적인 운영에 들어간다.1500명 수용이 가능한 학생 기숙사에다 교수들을 위한 800세대의 임대주택도 조성된다.교수나 학생들이 캠퍼스 안에 머물면서 공부와 연구에 매진토록 하기 위해서다. 또 1·2학년에 대해서는 등록금 계약제를 시행하기 위해 학생회측과도 협의했다고 밝혔다.학생과 학교가 등록금의 적정선을 협의하는 제도이다.장학금도 1대 1로 인간적으로 맺어줘 관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이런 장학금제 목표를 2000명 선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게 장 이사장의 말이다. “용인캠퍼스의 플랜이 현재와 같은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 부도 등 적잖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교직원이나 학생들도 많은 고생을 했죠.모두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장 이사장은 대학 부도에 대해 잘못된 운영을 반성하면서도 정부의 책임 부분도 거론했다. “당초 대학이 이전될 부지는 현재의 용인캠퍼스가 아닌 강남구 세곡동의 현 국정원 자리였지요.600억원 정도 나가던 세곡동 땅을 담보로 천안캠퍼스에 대학병원을 설립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이 땅을 국정원에 200억원에 팔게 됐습니다.이 부분 역시 대학의 운영을 더욱 악화시킨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김영삼 정권 때 ‘실세’가 찾아와 정치자금을 요구했으나 한푼도 주지 않았다는 말도 꺼냈다.“이제야 말하지만 98년 최종 부도가 날 때까지 대학 안팎의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장 이사장은 백범 김구 선생의 이념을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고 자신했다.통일과 민족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이다.현재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이다.국내 대학 가운데 첫 분교인 천안캠퍼스의 설립 역시 민족정신과 연계됐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천안은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유관순 열사를 비롯,주위에 윤봉길 의사·김좌진 장군 등 충절의 고향이라는 사실만으로 분교 부지로 결정했습니다.민족의 중요성을 일깨우고,민족을 통일시킬 수 있는 젊은이를 키워야 합니다.” 장 이사장은 남북관계에도 상당히 관여했다.86년 남북체육회담 한국대표,91년 세계 청소년축구대회 남북단일팀 단장,2000년 8월15일 제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단 단장,2000년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맡았다. 장 이사장은 “젊은이들은 우리의 미래”라면서 “이들이 성장해야 나라도 번영한다.”며 젊은이들에 대한 기대를 강조했다.젊은이들을 이해하려는 차원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최신 노래를 부르며,인라인스케이트 타기도 시도하고 있다.암울하던 일제 시대의 노래보다는 젊은이들의 랩이 더 듣기 좋다고도 했다. 학교 법인의 일 이외에 새벽 시간을 이용,6·25 전쟁을 다룬 자전적 소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를 쓰고 있다.이미 4권을 출간한 상태이다. 박홍기기자˝
  • [조정래의 세상보기] 역사를 뒤엎은 다수의 폭거

    [조정래의 세상보기] 역사를 뒤엎은 다수의 폭거

    그들은 스스로 역사의 단두대에 자기들을 세웠다.그 심판은 머지않은 현실 속에서 국민의 이름으로,역사의 힘으로 냉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그 정치적 사형은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자업자득’이다. 2004년 3월12일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난장판이 된 국회를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진정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속깊은 사람들은 나라가 망가지고 무너지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탄핵안이 대두된 이후 각 매스컴이 실시하는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들은 각자의 의사를 표출시켰다.대강 67% 정도가 탄핵안 반대였다.그리고,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는 각계의 사회원로들도 연달아 탄핵안 철회를 권유했다.그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단체들도 탄핵의 부당성에 대해 논리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세 야당은 합세하여 기어코 탄핵안을 통과시키고 말았다.말끝마다 ‘국민,국민’을 찾는 그들은 정작 국민이 바라는 것과 정반대로 행동했다.그건 더 말할 것 없이 국민에 대한 배신이고,능멸이다.입으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발라맞추면서도 자기네들의 잇속 앞에서는 거침없이 국민들을 무시하고 짓밟아버린다는 것을 다시금 여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국민들이 70%에 이르도록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던 것은 ‘인간 노무현’을 편들어서가 아니었다.청년실업 문제,카드 신용불량자 문제,장기간의 경기침체,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아시아 네 마리 용에서 탈락할 위기,이런 난제들에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몰아닥친 폭설 피해,산불 피해로 세상이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럽고 힘겨우니까 모두모두 힘을 합쳐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는 것이었다.원로들과 시민단체들의 뜻과 호소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야당들은 코앞에 닥친 자기네 잇속 챙기기에 급급해 주인들의 간절한 뜻을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렸다.백성은 바다요,권력이란 그 바다에 뜬 일엽편주에 불과하다.새로울 것 없으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말이다.탄핵안을 통과시켰다고 해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그 권력의 배에 실려 신나게 풍악 울리며 승리감에 도취하고 있는가? 어서 많이 취하고 실컷 즐기시라. 국민의 바다는 곧 노도를 일으켜 그대들의 배를 뒤집어 엎어버릴 것이다.왜냐하면 국민들은 그 추악한 탄핵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를 샅샅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세계 그 어떤 마피아단도 현찰 150억원을 차떼기하지는 못했다.그런데 우리 한나라당은 그 일을 거뜬히 해치웠다.그래서 그들은 세계적 마피아단의 명성을 획득했다.그러니까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 아니라 ‘차떼기마피아당’으로 불러야 마땅하다.그 외에도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동원해서 800억원이 넘는 정치자금을 갈취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그 불법 행위가 샅샅이 드러나 다가오는 4·15총선에서 당이 몰락할 위기에 몰리니까 그 위기의 타개책으로 들고 나온 것이 탄핵안인 것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은 날이 갈수록 추락하는 인기를 만회하려는 탐욕으로 그 추잡한 야합을 한 것 또한 국민들은 환히 알고 있다.이념도 다르고 정책도 다른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힘을 합한 것이 추잡한 야합인 것은 탄핵 사유가 안 되는 탄핵안을 다수의 힘을 악용하여 ‘날치기’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법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법률학자 70%가 여론조사에서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내렸다. 경호권을 발동해서 의장석에 오른 국회의장은 여당 의원들의 이름을 호명해가며 이 사태는 당신들이 저지른 ‘자업자득’이라고 호통치듯 했다.의장은 자기가 국회법을 어기며 ‘날치기’를 주도하는 범법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었다.탄핵안 날치기 통과는 역사를 뒤엎은 다수의 폭거였다.그들은 스스로 역사의 단두대에 자기들을 세웠다.그 심판은 머지않은 현실 속에서 국민의 이름으로,역사의 힘으로 냉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그 정치적 사형은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자업자득’이다. 이제 우리 슬픈 조국,가엾은 대한민국을 굳건히 떠받치기 위해 모두 어깨동무하며 힘을 모으자.그리고,헌법재판소의 권위를 존중하고,재판관들의 지혜와 슬기를 믿으며 하루라도 빨리 좋은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리자.우리는 또 하나의 역사 시련 앞에 서 있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조정래의 세상보기] 역사를 뒤엎은 다수의 폭거

    그들은 스스로 역사의 단두대에 자기들을 세웠다.그 심판은 머지않은 현실 속에서 국민의 이름으로,역사의 힘으로 냉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그 정치적 사형은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자업자득’이다. 2004년 3월12일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난장판이 된 국회를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진정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속깊은 사람들은 나라가 망가지고 무너지는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탄핵안이 대두된 이후 각 매스컴이 실시하는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들은 각자의 의사를 표출시켰다.대강 67% 정도가 탄핵안 반대였다.그리고,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는 각계의 사회원로들도 연달아 탄핵안 철회를 권유했다.그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단체들도 탄핵의 부당성에 대해 논리적으로 비판했다. 그런데 세 야당은 합세하여 기어코 탄핵안을 통과시키고 말았다.말끝마다 ‘국민,국민’을 찾는 그들은 정작 국민이 바라는 것과 정반대로 행동했다.그건 더 말할 것 없이 국민에 대한 배신이고,능멸이다.입으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발라맞추면서도 자기네들의 잇속 앞에서는 거침없이 국민들을 무시하고 짓밟아버린다는 것을 다시금 여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국민들이 70%에 이르도록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던 것은 ‘인간 노무현’을 편들어서가 아니었다.청년실업 문제,카드 신용불량자 문제,장기간의 경기침체,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아시아 네 마리 용에서 탈락할 위기,이런 난제들에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몰아닥친 폭설 피해,산불 피해로 세상이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럽고 힘겨우니까 모두모두 힘을 합쳐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는 것이었다.원로들과 시민단체들의 뜻과 호소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야당들은 코앞에 닥친 자기네 잇속 챙기기에 급급해 주인들의 간절한 뜻을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렸다.백성은 바다요,권력이란 그 바다에 뜬 일엽편주에 불과하다.새로울 것 없으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말이다.탄핵안을 통과시켰다고 해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그 권력의 배에 실려 신나게 풍악 울리며 승리감에 도취하고 있는가? 어서 많이 취하고 실컷 즐기시라. 국민의 바다는 곧 노도를 일으켜 그대들의 배를 뒤집어 엎어버릴 것이다.왜냐하면 국민들은 그 추악한 탄핵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를 샅샅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세계 그 어떤 마피아단도 현찰 150억원을 차떼기하지는 못했다.그런데 우리 한나라당은 그 일을 거뜬히 해치웠다.그래서 그들은 세계적 마피아단의 명성을 획득했다.그러니까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 아니라 ‘차떼기마피아당’으로 불러야 마땅하다.그 외에도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동원해서 800억원이 넘는 정치자금을 갈취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그 불법 행위가 샅샅이 드러나 다가오는 4·15총선에서 당이 몰락할 위기에 몰리니까 그 위기의 타개책으로 들고 나온 것이 탄핵안인 것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은 날이 갈수록 추락하는 인기를 만회하려는 탐욕으로 그 추잡한 야합을 한 것 또한 국민들은 환히 알고 있다.이념도 다르고 정책도 다른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같은 목적을 가지고 힘을 합한 것이 추잡한 야합인 것은 탄핵 사유가 안 되는 탄핵안을 다수의 힘을 악용하여 ‘날치기’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법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법률학자 70%가 여론조사에서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내렸다. 경호권을 발동해서 의장석에 오른 국회의장은 여당 의원들의 이름을 호명해가며 이 사태는 당신들이 저지른 ‘자업자득’이라고 호통치듯 했다.의장은 자기가 국회법을 어기며 ‘날치기’를 주도하는 범법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안중에 없었다.탄핵안 날치기 통과는 역사를 뒤엎은 다수의 폭거였다.그들은 스스로 역사의 단두대에 자기들을 세웠다.그 심판은 머지않은 현실 속에서 국민의 이름으로,역사의 힘으로 냉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그 정치적 사형은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자업자득’이다. 이제 우리 슬픈 조국,가엾은 대한민국을 굳건히 떠받치기 위해 모두 어깨동무하며 힘을 모으자.그리고,헌법재판소의 권위를 존중하고,재판관들의 지혜와 슬기를 믿으며 하루라도 빨리 좋은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리자.우리는 또 하나의 역사 시련 앞에 서 있다. 작가·동국대 석좌교수˝
  • [열린세상] 우리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상임대표

    정치는 끝모를 혼란속을 헤매고 있다.이럴 때일수록 국민 모두가 새로운 가치관 모색과 정립을 통해 이 혼란을 극복할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민족사적으로나 문명사적으로 중대한 도전을 받는 전환기에 처해 있다.오늘날 인류의 가장 큰 공동의 목표와 과제는 과학 문명의 도구적 기능을 인류의 평화 공존과 복지 증진을 위하여 올바로 선용하는 일이다.우리의 국가적 과제 또한 그러한 세계 질서 속에 참여하여 응분의 협력과 정당한 경쟁을 통하여 국가 민족의 활로를 개척하고 더욱 높은 목표와 이상을 향해 새 역사의 앞날을 열어 나가는 일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보며 긍지를 갖고 자부할 것은 당당히 자부하고 부끄럽게 반성할 것은 겸손하게 반성함으로써 좀더 나은 앞날을 기약하지 않으면 안된다.기나긴 역사를 통해 한 많은 수난을 당하면서도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강인한 생명력과 정체성을 지닌 문화 민족의 공동체이다. 비록 세계사의 모순이 빚은 냉전 구조 속에서 조국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과 시련을 겪었으나 그 어려움을 이기고 세계가 인정하고 남이 부러워하는 경제 성장을 이룩해 중진국 상위권에 진입하는 저력을 발휘한 국민이다.그러나 우리나라는 협소한 국토에 부존자원이 별로 없고 과학 기술과 자본력에 있어서도 선진국과 격차가 크며 주변은 강대한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다.모든 이념,경제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세계 속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으며 계속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튼튼한 경제력과 더불어 문화와 도덕이 높은 모범 선진국의 면모와 내실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날 폐쇄적 정체 사회가 낳은 절대 빈곤이라는 구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속한 근대화 과정을 겪었다.이를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풍요를 누리게 된 것은 당연히 자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오랜 권위주의 통치 아래 생겨난 구조적 비리와 지나친 물량적 가치 추구는 사회 전반에 많은 역기능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경제적 성장 속에 빈곤층은 늘어갔고 사회 도처에서 그늘은 짙어져 갔다. 정치 지도층의 무능과 비리,공직사회의 부정과 부패,인간성 상실로 인한 잔인한 살상과 패륜행위,집단적 이기주의와 사당파쟁,공공질서 문란과 조직적 폭력,분수없는 소비향락과 퇴폐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나아가 성도덕 타락과 가정윤리 파괴,언론윤리 결핍과 대중문화의 저질화,생명질서 파괴와 환경오염 등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한국병’과 사회악이 무섭게 만연되고 있는 것이 어둡고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러한 사회악과 병리 현상들의 원인과 책임은 뿌리 깊고 광범위한 것이어서 어제오늘 생긴 것도 아니요,한두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우리 모두는 이러한 문제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그 원인과 책임은 여러 가지로 진단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급격한 사회변동과 문화 이전(文化移轉)과정에서 전통적 가치가 붕괴되었음에도 아직 새로운 가치질서가 그 자리를 메우지 못한 데서 찾을 수도 있다.국가 경영을 책임진 정치 지도층의 철학과 능력의 부재,자율과 타율에 의한 구조적 모순과 비리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이제 우리는 이러한 반사회적,반인륜적 사회악을 극복하고 독재와 빈곤이 없고 부정과 부패가 없으며 혼란과 분쟁이 없는 건강하고 정의로운 선진사회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나아가 다른 나라들이 못 가지고 있거나 상실한 높은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와 윤리규범을 창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국민적 자각과 민족적 소명의식을 지니고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에 의한 21세기적 패러다임과 목표를 가지고 착실하고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것이다.그리고 한번 발걸음을 뗀 이상 그것을 멈추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정치는 끝모를 혼란속을 헤매고 있다.이럴 때일수록 국민 모두가 새로운 가치관 모색과 정립을 통해 이 혼란을 극복할 길을 찾아야 한다. 서영훈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상임대표˝
  • 정동영의 생각-표결 저지로 정치력 시험

    야당의 대통령 탄핵공세로 최대 고비에 몰린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10일 비례대표 출마를 전격선언했다.전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의회쿠데타’를 비판하며 동료의원들과 함께 철야농성에 들어간 지 반나절만의 일이다.‘몽골기병론’을 내세운 그의 속도전 정치철학이 엿보인다. 그는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반드시 퇴출시키고 창당에 대한 심판을 받기 위해 지역구를 떠나 비례대표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측근들은 22∼23번 등 당선이 아슬아슬한 순번을 받아 ‘배수의 진’을 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당초 그는 지역구(전주 덕진) 잔류 및 비례대표 출마 여부를 전주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밝힐 예정이었다.그러나 야당의 탄핵안 발의를 계기로 정국이 소용돌이치면서 ‘사즉생’의 자세를 보이는 첫 카드로 비례대표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그는 “17대 국회에 들어가지 못해도 좋다는 각오다.1당이 되지 못한다면 그런 정도의 시련은 감수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며 총선승리를 위해 유리한 지역구에 안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펼 것임을 강조했다. 그에게는 이번 탄핵정국이 정치인으로서 맞는 ‘가장 큰 위기이자 기회’다.그는 4·15총선에서 제 1당 쟁취를 공약으로 내세워 의장에 당선됐다.이후 정치개혁과 민생투어 행보로 소수당임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당 지지도를 1등으로 끌어올려 총선 전망을 밝게 했다.그런데 야권의 탄핵카드로 이같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이번 탄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당의 총선승리는 물론 대권주자로서의 자신의 정치력을 국민들로부터 검증받게 된다. 그는 야권의 탄핵안 표결 강행시 물리적 저지는 물론,총선전에서도 민생안정과 정치개혁을 화두로 야당과의 차별화에 자신을 던질 계획이다.그는 “이번 탄핵안을 반드시 저지해야 하는 사명이 있으며,전국 방방곡곡을 뛰어다녀 총선에서 확고한 탄핵저지선을 확보하고,확실한 국정안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섬유업계 ‘최악 경영난’

    국내 섬유업체들이 사상 최악의 시련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수출이 줄고,원료값이 급등했는데도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이 크다.경기 침체와 원사 자체의 공급과잉,저가전략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도 대형 악재다.게다가 내년부터는 40년간 유지됐던 쿼터제마저 폐지된다. 대표적 섬유기업인 코오롱은 지난해 창사이래 처음으로 683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더이상 원사사업이 승산이 없다고 보고 올해 관련 사업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지난해 이미 구미공장의 노후화된 원사 설비는 폐쇄했다.코오롱은 원사 대신 전자·자동차 재료 등 고부가가치 소재로 사업다각화를 꾀할 계획이다. ●섬유 공장 폐쇄에 줄도산 예상 태광산업의 계열사로 중견 폴리에스터 전문 생산업체인 대한화섬은 최근 하루 생산량 180t규모의 폴리에스터 단(短)섬유 생산라인의 가동을 중단했다.대한화섬측은 “원료인 고순도 텔레프탈산(TPA)과 에틸렌그리콜(EG)의 가격 상승과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부진,중국의 저가물량 공세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하루 생산량 360t규모의 장섬유 생산량도 절반 수준까지 줄이고 감산에 따른 인력구조조정도 추진키로 했다.이미 태광산업은 지난달 말 올해 임금동결과 주5일,주40시간 근무제 실시에 합의했다.중단된 생산라인은 시장상황을 봐서 재가동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섬유업계의 임금동결과 인원감축은 확산 일로에 있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 중인 새한도 올해 임금을 동결키로 합의했다.2000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새한은 그동안 전체 직원의 40%를 감축했다. ●쿼터제 폐지,보호막 사라져 섬유산업의 위기는 특히 40년간 유지됐던 쿼터제가 내년부터 폐지돼 섬유무역이 완전 자유화되면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섬유산업연합회는 “우리나라 섬유업체는 1만 6000∼1만 8000개로 이 중 99%가 중소기업이라서 쿼터가 폐지돼 수출물량을 받지 못하면 도산하는 업체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쿼터제가 사라지면 그동안 보호막 아래 있던 모든 나라가 무한경쟁체제 아래에서 미국·유럽연합(EU) 등에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게 된다.우리나라는 쿼터량을 높게 지정받아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며,지난해 섬유제품 대미 수출액의 78.8%는 쿼터품목이었다.미국섬유제조업협회(ATMI)는 중국의 섬유쿼터 해제품목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6월 전체의 53%에서 올해는 75%로 상승,2006년 말까지 한국은 16억달러(한화 1조 90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했다.중국은 쿼터 철폐시 섬유·의류 수출이 150% 성장하면서 전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최대 화학섬유업체인 효성측은 “현재 화섬업체 13개 중 6개가 부실기업”이라며 “부실업체가 계속 가격덤핑으로 치고 나와 이대로 가면 5년안에 모든 업체가 공멸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효성도 지난해 3·4분기에 섬유부문에서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윤창수기자 geo@˝
  • [2004 LA마라톤대회] 49세 포즈냐코바 2연패

    8일 열린 2004 LA마라톤대회에서 49세의 ‘아줌마선수’ 타티아나 포즈냐코바(우크라이나)가 여자부 정상에 올랐다.2시간30분16초의 기록으로 그것도 지난 대회에 이어 2연패를 차지했다.우승상금 5만달러 외에 ‘아줌마의 투혼’을 인정받아 2만 5000달러를 보너스로 받았다. 포즈냐코바가 5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간힘을 낸 것은 아테네올림픽 때문이다.1955년 3월생으로 15세 때인 70년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뜀박질로 34년의 세월을 보낸 셈이다.그러나 아직 올림픽엔 출전하지 못했다. 물론 처음부터 마라톤을 한 것은 아니다.800m와 1500m가 주종목인 중장거리 선수였다.육상강국이었던 구소련 대표선수로 10년 이상 활약했다.그러나 올림픽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고,운도 따르지 않았다.포즈냐코바는 “80모스크바올림픽을 앞두고 1500m에서 3분56초50이라는 좋은 기록을 세워 올림픽출전을 기대했지만 예상외로 다른 선수들이 좋은 기록을 내는 바람에 선발되지 못했다.”면서 지금도 아쉬움을 드러냈다.포즈냐코바의 당시 기록은 24년이 지난 현재까지 역대 랭킹 23위에 올라있을 정도.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96년 41세의 나이에 첫 아이를 낳았다.체력을 고려해 출산 이후 장거리를 포기하고 중거리로 전향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엄마가 된 뒤 더 자신감이 생겼다.그래서 오히려 거리를 늘려 1만m에 도전했고,이후에 본격적으로 마라톤으로 방향을 바꿨다. 아직 은퇴는 생각하지 않는다.나이가 들수록 기록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소속사도 없고 전문코치도 없다.남편 알렉스 자호루이코가 유일한 운동친구다.그러나 남편은 절대적인 후원자이고 든든한 코치다.러시아에서 출생했지만 남편을 따라 국적도 바꿨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지난 96년 금지약물 복용으로 2년간 자격정지를 당했다.길거리에서 구입한 감기약에 금지약물인 에페드린이 포함된 줄 모르고 먹은 것.그러나 99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올림픽 출전 가능성은 높다.기록 인정기간(2003년 1월1일∼2004년 8월9일)에 세운 개인최고기록은 2시간29분40초(2003년 3월)로 올림픽 A기준기록(2시간37분)을 넘어섰다. 박준석기자 pjs@˝
  • 눈물로 맞는 600번째 ‘수요집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어온 수요시위가 오는 17일로 600회를 맞는다. 지난 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첫 시위를 벌인 지 12년2개월 만의 일이다. 수요집회가 남긴 대외적 성과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93년 6월 빈 세계인권대회 결의문에 위안부 문제가 포함되고 98년 8월 유엔 인권소위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배상을 요구하는 보고서가 채택됐다.지난해 7월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시련도 있었다.2001년 7월 시위에 참여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에 항의,일장기를 불태웠다는 이유로 집회금지 조치를 당했고 최근에는 한 여성 연예인의 ‘위안부 누드’ 파문에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건강칼럼] 피부의 적, 황사

    파울루 코엘류는 그의 저서 ‘연금술사’에서 사막을 ‘크나큰 모래 휘장 안에 거대한 생명체의 꿈틀거림’으로 표현했다.평지였다가 밤새 산으로 바뀌기도 하는 사막은 영화 ‘무사’에서 사람을 삼킬 듯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으로도 기억된다.이렇듯 사막과 그곳의 모래바람은 인간에게 하나의 고난이자 시련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이 황사라는 모래바람은 피부에도 위험한 적이다.봄날 흰 옷에 때가 앉듯 얼굴에 돋는 뾰루지는 기분까지 흐려놓는다.황사,이 오염되고 건조한 대륙의 모래바람은 틀림없는 불청객이다.특히 거기에 섞여 오는 중금속 실리콘과 알루미늄,칼륨,칼슘 등은 자체로도 문제지만 대기 중에서 질소산화물(NO)이나 황산화물(SO) 등을 생성,각종 피부 질환을 일으킨다. 황사철,피부관리에서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은 세안.외출 후 꼼꼼한 이중 세안과 비누 등 세안제의 잔여물이 남지 않도록 꼼꼼하게 행궈내는 일은 기본이다.황사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라면 미지근한 물과 저자극성 폼클렌징을 이용하며,피부가 지치고 푸석해졌다면 적당한 마사지와 아이크림을 이용,잔주름을 예방하기도 한다. 그러나 밀실에 숨지 않는 한 황사 예방엔 한계가 있다. 황사로 피부트러블이 심해지고,알레르기 반응이나 여드름 증상이 나타난다면 피부과 전문의를 찾는 것이 현명하다.여드름 종류는 클리어터치나 스무스빔으로 간단하게 치료된다. 클리어터치는 한달 만에 염증성 여드름을 약 60∼80%까지 없애주며,주변 피부 조직을 손상시키지 않고 회복도 빨라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선호한다.여드름은 물론 여드름 흉터까지 치료하는 스무스빔은 피부 피지선의 활동을 억제하고,콜라겐 재합성을 촉진해 ‘여드름 구멍’에 살이 차오르게 해 가히 피부마술사라 할 만하다.˝
  • “서울, 반세기 전엔 이랬어요”

    해방→전쟁→재건으로 이어지는 1945∼1961년에 걸친 격동기 서울의 역사가 사진으로 되살아났다. 서울시는 해방 이후부터 5·16 군사쿠데타까지 서울의 모습과 시민생활상을 담은 제3권(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출발)을 4일 발간했다.2002년 제1권(개항 이후 서울의 근대화와 그 시련)과 제2권(일제침략 아래서의 서울)에 이어 세번째다. 3권에는 10절판(4×6전지) 485쪽으로,580여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해방,되찾은 서울 ▲한국전쟁과 서울 ▲정치 1번지 서울 ▲다시 건설되는 서울 ▲교통과 통신 ▲문화·예술 ▲시민생활의 변화 ▲서울의 경관 등 13장으로 돼 있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 보관자료는 물론 정부기록보존소·국사편찬위원회,언론사 및 시민들의 소장자료를 기증받아 수록했다.서울역사자료실(올림픽공원내)을 비롯해 서울시종합자료관·국공립도서관 등에서 열람할 수 있다.서울시 간행물·기념품 온라인 쇼핑몰((store.seoul.go.kr)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시 홍보관과 정부간행물센터에서도 살 수 있다.한글·영문판 각 2만원.(02)2171-2126. 최용규기자 ykchoi@˝
  • 金추기경 양측에 쓴소리

    김수환(82) 추기경은 4일 친북·반미 흐름을 우려하는 자신의 발언과 관련,보수와 진보 양측이 논쟁을 벌인 것에 대해 “보·혁에 대해 좀 더 배워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김 추기경은 이날 마산문화방송 창사 35주년 기념강연에서 이같이 말하고 일부 인사들이 자신의 과거를 들먹인데 대해 불쾌감을 나타냈다. 김 추기경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나라 미래에 대해 진지한 마음으로 의견을 주고 받는 것은 좋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토론에서 쉽게 협소해지고,감정을 노출시켜 상대방을 비하·인신공격까지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추기경은 또 최근 안상영 전 부산시장과 현대아산 정몽헌 회장 등 사회 유력인사들의 자살사건과 관련,“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더라도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이 죽음의 절망속에서도 ‘예스’라고 답한 사실을 깊이 깨닫고 이같은 가치관을 가지며 살아야 할 것”이라고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추기경은 이에 덧붙여 “고통 없는 인생은 없고 어떤 선한 일도 고통은 수반되게 마련”이라며 “어려움과 시련을 겪어야 참된 인간이 되고 항상 하느님을 믿는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마산 이정규기자 jeong@˝
  • [우리 결혼해요]우종민(34)·김미옥(28)씨

    친구 소개로 우연히 찾게 된 교회에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됐습니다. 대학 2학년때 급작스레 찾아온 인연은 9년이란 세월속에 사랑으로 영글었습니다.당시 그 교회의 청년부 음악부장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찬송하던 그이가 천생 배필이 될 줄은 몰랐어요. 만난 지 1년여만에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됐습니다.그 교회 목사님이 청년회 등산을 주선했고 우리는 함께 내장산을 등반하게 됐지요.등반을 제안한 목사님이 시아버님이 될 줄은 모른 채…. 그날 저는 힘겹게 등산을 했고 동료들보다 한참 뒤떨어져 가파른 정상으로 발걸음을 움직이고 있을 때였습니다.목사님의 아들인 그이가 저의 손을 잡아끌며 용기를 북돋웠습니다.손을 처음 잡혔을때 전 ‘이 사람과 끝까지 함께 해야 할 것’이란 느낌을 처음 가졌지요.우리는 그후 자연스레 교회에서 데이트를 즐겼습니다.장소가 교회라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사랑이 깊어가면서 시련이 닥쳐왔습니다.3년여 교제끝에 양가 부모님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반대에 부딪혔지요.저는 원래 일곱 딸만 있는 가정에서 자라나 성격이 활발하고 ‘말괄양이’기질도 조금은 있습니다.목사님은 그런 저를 죽 지켜 보면서 며느리로서 별로 달갑잖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우리집이 비기독교 가정이란 점도 맘에 안 들어 했고요.우리집 역시 가풍이나 성격의 차이를 이유로 들면서 반대했습니다. 제가 몸져 누웠을 때 그이가 전복죽을 몰래 끓여다주고,꿀과 인삼을 사다 주고 정성스레 돌봐줬습니다.그렇게 정이 깊어가는데 양가에서 반대라니 하늘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런 세월이 벌써 9년이 흘렀습니다.그리고 오는 3월20일 백년가약을 온 가족들에게 알리고 신혼생활에 들어갑니다.저는 교원 임용고시를 준비중이고 그이는 시아버님처럼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 다니는 중입니다. 결혼하면 시부모님과 남편을 잘 받들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참가정을 이뤄 나가겠습니다.어려움은 있었을지라도 우리의 사랑이 열매를 맺게된 올 봄은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 [기고] 일제만행 사진발굴과 3·1정신/안주섭 국가보훈처장

    3월이 오면,“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우리 민족 고난의 시대를 표현한 한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85년 전 기미년의 봄,종다리도 하늘 잃고 울었을 그 암흑 속에서,전 민족이 하나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뜨거운 함성이 오랜 역사를 넘어 들리는 듯하다. 올해는 3·1독립운동이 일어난 지 85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그러나 3·1절을 앞두고,일본의 한반도 강점 시기에 자행된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진 1000여 점이 발굴돼,우리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 사진들 가운데,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백두산 천지에 쇠말뚝을 박고 제사를 지내는 행위가 담겨진 장면은 우리 민족에 대한 압제 수준을 넘어 국토 곳곳의 맥을 끊고,우리 나라를 지구상에서 말살하려던 천인공노할 만행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를 통해서 오늘이,오늘을 통해서 미래가 보인다.”는 토인비의 말이 시련의 역사를 겪은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으로 다가오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대한이 자주독립국임과 대한인의 자주민임’을 세계 만방에 선언했던 3·1독립운동은 사상·종교·지역 등 모든 것을 초월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민족이 하나로 뭉칠 수 있음을 보여준 우리 민족 최대의 항일투쟁이었다. 이는 세계 석학들이 평한 바와 같이,“전세계를 놀라게 한 위대한 사실이었고,한국 민족운동사에서 가장 중대한 의의를 지닌 운동이며 투쟁이었다.”고 하겠다. 이렇듯 3·1독립운동을 통해 발휘된 3·1정신은,우리 나라가 국권회복을 하기까지 전 민족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었고,오늘날에는 자주·자유·세계평화정신으로 승화되어 우리 국민의 영원한 지표가 되고 있다. 오늘 우리가 85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선열들의 당당함과 그 불굴의 독립정신을 되새기자는 것은 결코 지난 역사의 한 사실을 회고하자는 데만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위국헌신을 실천한 선열들의 고귀한 애국충정을 본받고,과거의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보다 희망찬 내일을 가꾸어 나가자는 것이다. 따라서 선열들의 민족혼과 나라사랑 정신을 오늘에 계승 발전시켜 후손에게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주는 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몫인 것이다. 지금 국제정세는 안보,경제,역사 등 전 분야에 걸쳐 자국의 이익을 위한 무한경쟁 속에 급변하고 있으며,나라간 평화공존이 화두가 되고 있으면서도 한쪽에서는 전쟁과 내란 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지구촌의 현상이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앞에는 세대와 계층과 지역의 벽을 넘어,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열어가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이러한 때 우리 민족의 자존을 위해 강한 의지와 저력을 보여줌으로써 빛나는 승리를 가져온 3·1독립운동의 자주 독립정신을 이어받아 국민화합을 이룰 수 있도록 온 국민이 힘과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하겠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일찍이 3·1운동을 통해 본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황금시대를 연 동방의 빛’이라고 예찬하였다.3월이면,전국 방방곡곡에서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이루어 지고 있다.이것은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해 전 민족이 하나가 되었던 그날의 모습을 되새겨 보고 계승·발전시키려는 것이다. 3·1절 85주년이 되는 올해야말로 진정 선열들의 위훈을 기리고,나라사랑의 푸른정신을 되새기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안주섭 국가보훈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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