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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에 나오는 글이다. 김 명예회장의 심정은 삼양그룹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삼양그룹은 흔히 ‘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 본 뒤 건너가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우보(牛步)경영’ ‘내실경영’ ‘보수경영’ ‘정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의 이면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해 성장동력을 놓쳐 재계 50위권으로 처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있다.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 성장경영 꿈도 못 꿔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은 강연때마다 삼양사의 사례를 들곤 한다. 허 사장은 “삼양사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국내 최고의 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뒤처졌다.”며 삼양식의 경영방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느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양사는 이승만 대통령 재직시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형인 ‘인촌’ 김성수씨가 부통령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의 라이벌로 활동해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 창업주는 1951년 제당공장을 짓기 위해 울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정부가 공장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외화 사용 승인을 3년이나 늦게 내줘 고초를 겪기도 했다.3공화국때도 인촌이 창간한 ‘야당지’ 동아일보를 지원하느라 정부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정부의 금융지원 같은 특혜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게 삼양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양사 문성환 부사장은 “60∼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의 성장동력은 정치권과 야합해 무차별적인 차입경영에 있었다.”며 “그러나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정경유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통기업을 묵묵히 지켜온 2세 기업인 이런 안정 지향적인 기업 경영은 외환위기(IMF)때 빛을 발했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무너졌지만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2004년 12월 현재 삼양그룹의 매출액은 2조 7180억원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는 8537억원으로 부채비율 60%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양사는 매출 8902억원, 부채 2799억원, 부채비율 40%다. 이런 이유로 삼양그룹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와 신산업경영원이 주최하는 재무경영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삼양그룹이 튼실한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김상홍(83) 명예회장의 공이 크다. 김 명예회장은 1956년 34세에 삼양사 사장에 취임했다. 부친 김연수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지만 80년이나 넘게 기업을 온전히 지켜온 ‘수성’(守城)이 그의 최대 업적이다. 김 명예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을 지켜온 데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철저하게 받은 경영수업 덕이 컸다. 창업주는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던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가 운영하던 매하구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를 베풀지 않고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호텔 경영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때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성공해 맨 윗사람이 되려면 우선 그 분야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기초를 익혀야 된다.”며 조선호텔에서 접시닦기와 객실담당(벨보이)부터 맡도록 권했다. 이후 1947년 제헌의원이던 나용균씨의 추천으로 수도경찰청(내무부 치안국) 경위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4년간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1952년 큰아버지인 김성수씨가 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총경직에서 퇴직했다. 이때부터 김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는 장남 상준씨를 비롯해 둘째 상엽, 넷째 상돈씨에게는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 맡겼다. 김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삼양사는 셋째인 김 명예회장과 다섯째 상하씨가 일을 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밑바닥부터 배워라 김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받았던 경영수업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다고 회고한다. 회사의 맨 밑바닥 일부터 배우라고 지시했는데 주산, 부기, 기장은 물론 고용노무작업, 구매자금조달 등 실무 업무부터 맡아야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상업고교 출신처럼 주산을 열심해 배워야 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삼양그룹은 사무직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우선 공장에서 현장 연수를 하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김 명예회장은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주 앞에서는 의자에 마주 앉는 일조차 삼갔다고 한다. 부친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지만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겠다.”며 어려워했다. 지금도 사무실에 부친의 흉상을 두고 ‘무언의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혹독한 ‘문하생’ 생활을 보낸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제당사업을 전개할 때는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설탕 영업의 골간을 만들었다.70년대 제당업이 정상에 오르자 경영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 삼양종합금융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는 삼양종합금융은 물론 1대 주주였던 전북은행에도 삼양사 직원을 단 한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 자율과 원칙을 지킨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의 장수비결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체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중용정신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제조업을 통해 건전하게 돈을 벌어야 하고, 수익성이 좋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회장을 함께 맡았던 김 명예회장에 대해 “과묵 침착하며 절제를 아는 선비, 중용의 참뜻을 실천해온 외유내강형의 단아한 신사”라고 평가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6년 동생인 상하씨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났다. ●삼양의 제2탄생을 마무리 김상하(80) 그룹회장은 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그룹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 담은 뒤 줄곧 부친과 상홍 회장을 도왔다.1952년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삼양사 공장설계와 전문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회장은 형제간이긴 해도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상홍 회장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반면 상하 회장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상홍 회장이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상하 회장은 이런저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성격이다. 취미도 상홍 회장은 단조로움을 즐겼던 반면 상하 회장은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서는 꼼꼼한 상홍 명예회장이 관리를 맡고, 활동적인 상하 그룹회장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분담을 이뤘다. 실제로 상하 회장은 유창한 일어 실력과 깨끗한 인품으로 재계에서는 국제 감각이 뛰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혔다. 특히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게는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 활동을 벌였다. 상하 회장은 이런 왕성한 대외활동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삼양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어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위상을 높였다.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 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폭넓은 대외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외유내강의 기업인 상하 그룹회장은 소탈하면서 모가 없는 성품이지만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진퇴를 명확히 제시하는 ‘외유내강형’의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국내 폴리에스테르 업체들이 신·증설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그는 화학섬유 사업의 한계를 감안해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또한 섬유본부에서 신사업으로 오랫동안 검토해 샘플 제작까지 끝낸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도 사업의 구조적인 경쟁력과 취약성을 들어 사업을 중단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상홍 명예회장을 모시는 데도 깍듯했다. 상홍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상하 회장은 서울 성북동에 형집과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 담장 중간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핫라인’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며 “아우는 본래 2층집을 짓고 싶었는데 순전히 나 때문에 일조권을 염두에 두고 단층집을 짓고 산다.”며 돈독한 형제애를 소개했다. 상하 회장은 2004년 3월 상홍 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아들인 원씨는 삼양사 사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이로써 1975년부터 30년간 지속된 2세 형제경영에 이어 3세 사촌 형제간 공동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숨은 주역들 김 명예회장과 그룹회장은 삼양그룹이 81년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동생들과 매제의 역할히 컸다고 회고한다. 김 명예회장은 “나는 아우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크고 작은 일에 신중을 거듭했다. 아우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친께서 잡아놓은 틀을 잡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지난 2002년 작고한 김상응 막내 동생을 손꼽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상응씨는 96년부터 삼양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외환위기 등 창업 이래 최고의 시련기를 뚝심으로 돌파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고 떠올린다. 부인 권명자(53)씨와 4남 1녀인 자식들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 막내 여동생 희경(66)씨의 남편 김성완(66)씨의 공헌도 높이 평가했다. 김씨는 미국 유타대 교수로 생체고분자 및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김 명예회장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성이 좋은 분야는 의약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김 교수의 의견에 따라 1993년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 ‘삼양그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삼양그룹이 중점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화학, 식품, 의약부문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공격경영 김윤(53) 회장은 부친 상홍 명예회장, 상하 그룹회장과 같이 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기에 앞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영업전선을 두루 체험해 보라는 부친의 의도였다. 이를 두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김상홍 회장님의 큰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훗날에야 그 사실을 알고 한쪽으로는 좀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상홍 회장님의 인품을 새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IS(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MBA 석사를 취득한 뒤 곡물회사인 루이스 드레푸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익혔다. 또 삼촌인 상하 그룹회장처럼 도쿄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삼양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손수 챙기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져 나갔다. 고국에 귀국한 뒤에는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이사(90년)-상무(91년)-대표이사 전무(93년), 대표이사 사장(96년)-대표이사 부회장(2000년)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았다. 2004년 삼양사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로 삼양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보수적인 관행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론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대 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설정했다. ●다시 세계로 진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전기전자, 부품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양공정소료 유한공사를 설립,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만주에 진출한 데 이어 68년 만에 중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재진출했다. 향후 중국을 기점으로 인도, 중남미 등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세계적인 전문 화학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식품부문을 총괄하는 통합 브랜드로 ‘큐원’(Qulity No.1)을 출범시켰다.47년간 사용해 오던 대표 브랜드 ‘삼양설탕’을 과감히 버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1996년부터 삼양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길러졌다. 과감한 추진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발휘됐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섬유·식품·화학 등을 핵심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특히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양그룹 직원들은 단 한명의 구조조정과 한 푼의 임금삭감 없이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9일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에 이명박 서울시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뽑혔다. 또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3세에도 공동경영 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인 김원(48) 사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인 김윤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3대 경영의 주역들은 선대 회장들과는 달리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윤 회장은 부친인 상홍 명예회장이 내성적인데 반해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원 사장은 전방위 대외활동을 펼친 부친 상하 그룹 회장과는 달리 묵묵히 사촌형을 챙기고 있다. 원 사장은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 회장처럼 도쿄지점 부장을 거쳐 삼양이 의약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1993년 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면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연구개발본부장(전무)에 오르는 등 ‘테크노 경영인’으로 각인되고 있다.1999년 부사장 승진에 이어,2000년 8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공계 출신으로 매사에 치밀하며 경영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 영업에 치중했던 부친과 달리 관리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영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도 자식 뜻대로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그룹회장은 창업주처럼 자식들의 결혼과 관련해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최대한 들어주는 스타일을 지켰다. 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부인 김유희(46)씨를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김씨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데다 집안 대대로 친척들이 이대 출신이 많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부인을 웬만한 행사에는 동행할 정도로 ‘부인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사석에서 김 회장의 18번인 ‘만남’을 두 부부가 함께 부른다고 한다. 김원 사장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부인 배주연(41)씨를 만나 열애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반면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정(46) 삼남석유화학부사장은 중매로 배필을 만났다. 김량 사장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의 중매로 부인 장영은(46)씨와 혼인했다. 상홍 명예회장과 김 전 장관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친해 자연스레 연결됐다. 김 전 장관은 영은씨의 부친인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어서 혼인을 주선했다. 김정 부사장은 어머니 박상례(75)씨가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안혜원(39)씨를 만났다. 안씨 부친이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어서 흔쾌히 혼담이 오갔다. jrlee@seoul.co.kr ■ 막강한 손녀사위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는 부인 박하진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는 2세들보다 3세들의 혼사를 통해 혼맥을 이뤘다. 재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손녀사위들은 대학교수, 의사, 경영인 등의 전문 직업군을 이루며 삼양가(家)의 명망을 잇고 있다. 둘째아들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1남3녀를 두었는데 3명의 사위가 모두 교수인 것이 이채롭다. 김 전 총리는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5년제였던 경복중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당시는 도쿄제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올 정도의 수재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전 총리는 학자 사위들을 좋아했다. 김 전 총리의 장녀 명신(58)씨 남편 송상현(65)씨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의 손자다. 둘째딸 영신(56)씨는 정성진(58) 서울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다. 정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이다. 막내딸 양순(52)씨의 부군 이양팔(59)씨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또 상홍(83) 명예회장의 장녀 유주(56)씨도 윤영섭(59)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혼인했다. 창업주의 넷째딸인 정유(73)씨는 외동딸인 원경(43)씨를 한정수(48) 전 충남대 교수와 결혼시켰다. 손녀사위들의 ‘의사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창업주의 둘째딸 상민(78)씨는 둘째딸인 이정현(41)씨를 백완기(47)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의사와 인연을 맺어 줬다. 김 창업주의 셋째딸 정애(75)씨 장녀 조경미(47)씨의 부군 주춘희(47)씨도 캐나다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삼양가가 전문 경영인 집안이어서인지 손녀사위들도 전문 경영인이 많다. 김 창업주의 장남 상준씨의 장녀 정원(62)씨의 남편 김선휘(68)씨는 삼양염업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딸 정희(58)씨는 김준기(62) 동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또 셋째딸 정림(57)씨도 윤대근(59)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과 결혼해 유달리 ‘동부그룹’과 인연이 많다. 창업주의 둘째 김상협 전 총리가 교육자 집안으로 꾸렸던 것에 비해 장남 상준씨는 전형적인 경영인 가족을 형성한 셈이다. 넷째 상돈(81) 삼양염업사회장은 외동딸 희진(45)씨를 오광희(49) 전 나이스 정보통신 전무와 결혼시켰다. 다섯째 상하(80) 그룹회장도 외동딸 영난(44)씨를 송하철(45) ㈜ 항소 사장과 혼인시켰다. 송씨는 송삼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다. jrlee@seoul.co.kr ■ 계열사 사장들 ‘전문적 경험’ 풍부 삼양그룹의 현 계열사 사장들은 경영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3세들을 지원하는 것에 역할이 주로 맞춰져 있다. 분야별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 경영 승계가 무리없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박종헌(66) 삼양사 사장은 40년동안 영업, 해외업무, 인사, 재무, 기획분야를 두루 거쳤다.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법학도답게 매사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영훈 대법원장과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다.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유통부문의 핵심 역량을 쌓아왔다.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제조업 유통부문의 경영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김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김경원(62) 삼남석유화학 사장은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때부터 중앙연구소 소장, 화성본부장, 삼양화성 사장 등 화학, 섬유,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두루 지낸 전문 경영인이다. 폴리에스테르 부문의 대가로 ‘폴리머 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연구통’이다. 송창기(63) 삼양중기 사장은 인사관리분야에서 15년간 일해온 ‘인사통’이다. 총무부장, 인사부장,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삼양중기에서 기계부문 4개사로의 분사와 주물사업부문 합작사 설립을 성공리에 추진했다. 박호진(59) 삼양화성 대표는 도쿄지점을 거쳐 전주공장에서 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난 3월 대표로 선임돼 사원간에 가족적인 유대감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규한(58) ㈜삼양밀맥스 대표는 판매와 현장을 두루 거친 식품부문 전문가다. 경영과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췄고 비전팀을 만들어 내부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변수식(55) 삼양데이타시스템 대표는 전사적자원관리(ERP)팀장,IT전략팀장, 경영혁신(PI)팀장 등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변 대표는 IT부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IT통’이다. 김상익(59) 삼양웰푸드 대표는 경리부, 삼양제넥스 경영지원팀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경리와 관리를 맡았다.2004년 대표로 선임돼 원칙과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경영을 중시한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고침 서울신문 17일자 15면에 게재된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편에서‘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송 전 사장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주말 탐방] 한강낚시터 잠실~행주대교까지

    [주말 탐방] 한강낚시터 잠실~행주대교까지

    한강의 ‘강태공’ 그들은 누구인가. 그 이름에서 유유자적이 느껴지지만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중국 고대의 실제인물인 강태공은 노인이 될 때까지 특별히 하는 일이 없던 ‘백수’였다. 그는 주나라 문왕(文王)의 눈에 들어 재상에 오르기까지 위수(渭水·황하의 지류)에 낚싯대를 드리운 촌로였다. 낚시로 세월을 보냈던 시절, 아내가 집을 나가는 등 시련을 겪었던 강태공의 마음이 어찌 편하기만 했을까. 서울 한강의 ‘강태공’들도 엇비슷하다. 하루 평균 100여명, 연간 3만여명을 헤아리는 그들. 물이 맑아지고 어종이 크게 늘면서 일부 지류에서는 견지낚시를 즐기는 애호가들도 눈에 띈다. 그들은 한강에서 무엇을 낚을까. 그들은 대부분 짜릿한 손맛에 고기 비늘만큼이나 찬란한 삶의 꿈을 긷지 않을까. 한강이 낚시 명소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한강의 낚시터는 잠실수중보에서 강서구 개화동 행주대교에 이르는 양안 57㎞ 구간(강남 33㎞, 강북 24㎞)에 펼쳐져 있다. 상수원 보호구역인 광나루지구와 선유도공원을 제외한 한강시민공원 10개 지구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2003년 9월부터 19개 지역(19.4㎞)에서는 낚시 행위가 금지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낚시터에 대한 관리는 9월까지 낚시터가 있는 각 자치구에서 관할했으나 이달부터 한강수계 낚시터 전역을 한강시민공원사업소가 관리하도록 조례가 개정됐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는 낚시터 관리·운영 권한이 넘어옴에 따라 낚시터를 전면 재정비하고 조정할 계획으로 있다. 우선 한강 서울수계 대부분이 낚시 가능지역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낚시터마다 강태공들을 위한 의자 등 편의시설들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강에서 낚시하기 위해서는 강태공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도 있다. 우선 개인당 4대 이상의 낚싯대를 펼칠 수 없고, 훌치기 낚시(미끼를 달지 않고 세 방향으로 뻗어있는 바늘을 지나가는 물고기의 몸에 걸어서 잡는 낚시)를 해서는 안 된다. 잠실수중보에서 성산대교까지는 떡밥·어분낚시가 허용되지 않으며 모든 구간에서 야영·취사행위도 금지돼 있다. 특히 떡밥 낚시는 한강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 위반시 30만원의 과태료를 각오해야 한다. 지구별로 낚시터의 특징을 살펴본다. ●잠실지구 잠실수중보 인근에서 탄천 양수장까지 2㎞에 이르는 구간으로 한강낚시터의 대표격이다. 잠실수중보 밑으로 물고기가 밀집해 있지만 2년 전 수중보가 낚시 금지구역으로 지정돼 낚시꾼들의 아쉬움이 큰 지역이다. ●뚝섬지구 영동대교 하류 600m 지점에서 자양빗물펌프장까지 1.7㎞ 구간에 낚시꾼들이 몰린다. 누치·쏘가리·잉어·강준치 등 한강에서 대물 소식이 가장 많이 전해지는 곳이다. 장마철에는 붕어와 잉어가 떼지어 오르는 길목이다. ●반포지구 낚시터 시설이 가장 잘 돼 있어 ‘낚시터공원’으로 불린다. 특히 반포주공아파트 뒤편에 1만 2000평 규모의 인공섬인 서래섬이 길쭉한 모양으로 조성돼 있다. ●양화지구 한강에서 보기 드문 대낚시 포인트이다. 당산철교에서 성산대교 직전의 양화 유람선 선착장까지 2㎞의 호안은 대어가 종종 올라온다. 특히 선유도를 마주보고 형성돼 있는 800m 구간은 물살의 영향이 거의 없고 침수수초가 형성돼 있다. ●여의도지구 여의도 샛강 유입부에서 상류로 한강철교 아래까지 붕어·잉어·누치 등 어종이 다양하다. 계단식 호안과 어소(고기집) 블록이 깔려 있다. 호안이 단조로워 릴낚시가 성행한다. ●망원지구 양화지구 맞은편의 망원지구 낚시터로 성산대교 근처 홍제천 유입구부터 상류의 당산철교까지 2.9㎞ 구간에서 잉어가 잘 낚인다. 릴낚시와 대낚시가 고루 구사된다. ●이촌지구 예부터 두무포라 불리던 이곳은 강변에 늪지가 많아 잉어가 모이는 집산지로 유명하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꿈이 이뤄질 세상을 낚고 있죠” 평일인 지난 17일 오후 한강 낚시꾼들이 많이 있다는 서래섬을 찾았다. 서래섬은 반포대교와 동작대교 사이에 있는 인공섬으로 1982∼86년 올림픽대로 건설과 함께 조성됐다. 구름 한점 없이 화창한 날에 열대여섯명의 낚시꾼들이 5∼10m 간격으로 앉아 낚싯대를 담그고 있었다. “평일에 이렇게 한강에 나온 낚시꾼들치고 사연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래섬에서 처음 만난 유모(43·관악구 신림2동)씨는 낯선 기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주저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원망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강이 고마울 따름이죠. 이렇게 낚싯대를 던져놓고 출렁이는 물을 바라보는 것이 화를 식히는 유일한 길이거든요. 이것마저 없었다면 길가에 나앉아 술이나 마시는 신세로 전락했겠죠.” 유씨는 올 1월까지만 해도 경기도 안양 근처에 직원 12명을 거느린 모자공장 사장이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자금유통이 어려워지고 수금이 안 되더니 급기야 올초 공장문을 닫게 됐단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다툼이 잦았던 아내와는 이혼했다.10살짜리 딸은 동생 집에 맡겨졌다. 유씨는 딸이 보고 싶지만 만나지 않겠단다. 딸 얘기가 나오자 눌러쓴 모자를 한번 더 힘껏 누른다. 유씨는 3개월째 거의 매일 한강에 나와 온갖 구상을 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 재기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한강은 희망을 낚으려는 유씨와 같은 사람들에게 한없이 고마운 공간이다. 홀로 낚싯대 2대를 던져 놓은 공정기(45·구로구)씨는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공씨는 스스로를 삼청교육대 피해자라고 밝혔다. “삼청교육대에 4주동안 잡혀 있었어요. 악몽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삼청교육피해자신고접수’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25살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는 공씨는 그후 20년동안 제대로 직장을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뒤에서 감시하면서 자신을 쫓아다니는 느낌 때문이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던 공씨는 정신과 진료를 통해 장애등급까지 받았다. 공씨는 “그나마 한강에 나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면서 “우선 피해자접수 결과를 지켜본 뒤 다른 일을 해 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임한 후 낚시를 즐기는 김모(65)씨는 ‘꿈’을 낚고 있다. 그는 10년 전 회사를 은퇴하고 재테크를 통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그는 진행형인 ‘꿈’의 실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모은 돈으로 노인전문요양소를 짓고 있어요. 아직 설계중인데 몇년 안에 완공될 것 같습니다.” 김씨의 아내는 5년 전 세상을 떠났고, 두 자녀들도 모두 가정을 갖고 있다. 그는 “더이상 세상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면서 꿈이 이뤄질 세월을 낚고 있다. 소주 한 병에 순대 2인분을 사들고 한강을 찾은 김기철(60)씨와 노병선(57)씨는 4년 전 낚시하다 만나 친구가 됐다. 모두 아내와 함께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젊어서는 가게일에 열중했지만 이제는 모두 아내들에게 일임했단다. 둘은 거의 매일 함께 낚시를 다닌다. 굳이 한강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최저 비용으로 최고 재미를 누릴 수 있는 낚시터를 찾는 것도 둘만의 쏠쏠한 삶의 재미다. 노씨는 “이곳저곳 다녀봤지만 한강만한 낚시터도 없다.”면서 “낚시꾼들에게서 요금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3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 낚시터에서는 낚싯대 1대당 1000원씩 요금을 받았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주말 낚시꾼들은 몰라도 평일 낚시꾼들 숫자는 곧 경기회복과 맞물려 있다.”면서 “40대 중반의 평일 낚시꾼 수가 ‘확’줄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14)

    Taxi Drivers’ Favorite Jokes Two worms who live under a golf course wake up one morning.One says to the other,“Go up top and see if it’s raining.” The other worm says,“I don’t want to.If it is raining,I’ll get all wet.” So they argue back and forth like this until they decide to draw straws.One of them wins,and the other has to go up and check. Just at this minute two women golfers happen to be passing overhead.One mentions that she has to pee,and the other woman says,“Hey,look.There is nobody else around.Why don‘t you do it right here?” So the woman squats down and takes a piss at the exact moment the little worm breaks through the surface.He takes one look around,gets totally drenched,and hurries back down below. The other worm says,“So,I see it’s raining.” “Yeah,” says the worm,wiping off his face.“As a matter of fact,it’s raining so hard that the birds are building their nests upside down!” (Words and Phrases) worm:벌레 wake up:일어나다 go up top:맨 위로 올라가다 get all wet:흠뻑 젖다 back and forth:이러니저러니 draw straws:짚으로 하는 제비를 뽑다 check:살피다 just at this minute:바로 이 때 pass overhead:머리 위로 지나가다 pee: 오줌을 누다 squat down:쪼그리고 앉다 take a piss:오줌을 갈기다 break through the surface:땅 표면을 뚫고나오다 take one look around:한 번 휘둘러 보다 get totally drenched:흠뻑 젖다 hurry back down below:아래로 급히 되돌아오다 wipe off∼:∼을 훔치다 build a nest:둥지를 틀다 upside down: 거꾸로 (해석) 골프 코스 아래에 사는 벌레 두 마리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한 벌레가 다른 벌레에게 말하길,“맨 위로 올라가 비가 오고 있는지 알아봐.” 다른 벌레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비가 오고 있다면 흠뻑 젖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은 짚으로 제비를 뽑을 때까지 티격태격 다투었습니다. 둘 중에 하나가 이기고 다른 벌레가 위로 올라가 비가 오는지 살펴봐야 했습니다. 바로 이 때 두 여성 골퍼가 위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오줌이 마렵다고 말하자, 다른 사람이 “여기 봐. 주위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여기서 누지 그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갈겼는데, 바로 이 때 그 조그만 벌레가 땅 표면을 뚫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벌레가 한 번 휘둘러보고는 온 몸이 흠뻑 젖어 급히 땅 아래로 되돌아왔습니다. 다른 벌레가 말하길,“아, 비가 오고 있구나.” 얼굴을 훔치며, 원래 벌레가 말했습니다.“그래. 사실, 비가 너무 세게 와서 새들이 둥지를 거꾸로 틀고 있을 정도야!” (해설) 땅 밑에 사는 벌레들이 기어 나올 때인가 봅니다. 두 벌레가 서로 상대방에게 밖에 나가 비가 오는지 알아오라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비를 뽑아 진 사람이 위로 올라가 알아보고 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려고 땅위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친구와 골프를 치러 온 여자가 자기들 외에 아무도 없자 쪼그리고 앉아 바로 그 자리에다 오줌을 갈겨댔습니다. 오줌 세례를 맞고 급히 되돌아온 벌레가 말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압권입니다. 세찬 오줌발에 여자의 거시길 덮고 있는 숲이 한 쪽으로 뉘여진 모습을 보고 새들이 거꾸로 둥지를 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Life Essay for Wrighting 묻어둔 세월(다시 다가온 시련) 집안을 꿈에 부풀게 했던 대사명(大使明) 덕에 한참 공부할 나이를 집안의 작은 머슴으로 보낸 김 회장은 실업고를 졸업하고 5급 공무원에 합격, 외부 공사판 감독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꿈이 없는 보통 사람의 경우엔 5급 공무원 생활도 시골에선 안정된 생활로 반쯤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회에 눈을 뜨고 인생이라는 먼 항해를 준비하는 김회장에게 5급 공무원 현장 감독 생활이란 인생의 무덤을 의미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직장에선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지만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를 김회장은 견딜 수가 없었다. 번민과 번민을 거듭한 끝에 김회장은 아버지와 식구들 몰래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밤잠을 거른 지 2년 만에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몰래 대학을 준비하다 아버지에게 들켜 실컷 혼나고,“네가 대학에 붙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If you pass a college entrance exam,I’ll eat my hat.)”는 반대 속에서 꿈에 그리던 대학 진학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엔 실업고를 졸업하고 예비고사에 합격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시기였기에 집안의 반대도 아들 보호 차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그런 상황에서의 대학 진학 준비란 무모한 도전이었기에 김 회장의 대학 진학은 별을 딴 것과 진배없었다. 직장 생활 중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아픔과 괴로움으로 몇 날을 고통 속에서 보내곤 했는데 이제 대학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 자신의 대입 준비를 위해 많은 격려를 해준 친구가 토목과를 다니고 있었기에 미래에 그 친구와 많은 일을 이루기 위해 건축과를 지원하게 된다. 장밋빛 꿈들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공부하는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며 보내던 대학 시절. 그렇게 나를 격려하고 나를 위해 꿈을 함께 꾸어 주었던 친구가 군대 생활 중 죽음을 맞게 된다.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곳에서 이토록 번민하며, 답도 없는 질문들을 찾아 헤매는가? 끝없이 생겨나는 많은 질문들에 답을 찾지 못하고, 친구와 꾸었던 많은 꿈들에 밧줄을 동여매고, 무심히 대학을 졸업한다(He just graduated from the university without finding any answers to infinitely many questions that had arisen,holding back many dreams that he and his friend had dreamed together). ■ 절대문법 (7) 자리매김 학습 문법 능력은 의사소통 능력의 주요 구성 성분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의사소통을 할 때에 지켜야 할 문법 규칙이 없다면 언어 사용은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영어 문법 규칙에서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문장에서 쓰이는 단어의 자리 개념이다. 지난 시간까지 문장을 구성하는 기본 자리에 위치할 수 있는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를 중심으로 하여 단어의 자리와 특성, 그리고 역할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네 가지 품사는 문장 구성에 핵심이 된다. 특히 영어 문장은 동사를 기준으로 하여 앞뒤에 위치하는 자리에 따라 역할과 특성이 달라지므로 문장 구성의 핵심 단어가 위치하는 자리 개념을 순서대로 이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오늘은 한국어에 없는 자리 개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어와 한국어의 문법에서 가장 차이 나는 개념 중의 하나가 관사이다. 영어는 거의 대부분의 명사가 관사와 함께 쓰인다. 관사는 영어를 사용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것인데 이의 적절한 쓰임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Woman is actor.(x) The woman is an actor.(o) 관사는 반드시 명사 앞에 위치하여 관사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살려준다. 그리고 관사의 뒤에 오는 명사가 정해진 것인지, 정해지지 않은 것인지를 알려주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관사의 자리와 역할,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 bird lived in the tree. 이 문장은 새가 살았는데 나무에 살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a bird이므로 새로운 정보로 정해지지 않은 한 마리 새를 나타내고 있으며,the tree 라고 했기 때문에 나무는 이 문장을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특정한 나무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관사는 문장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살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 [김후년의 클럽하우스] 프로골퍼 미셸 위

    만 16세를 맞는 오는 11일을 전후해 프로 전향을 선언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던 미셸 위가 6일 마침내 프로로 전향한다. 프로행은 시기를 언제로 정할 것인가의 문제였을 뿐, 프로 진출을 위한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됐다.남녀 프로대회 출전을 통해 천재성을 검증받은 그는 세계 톱프로를 배출한 레드베터 캠프에 합류해 샷을 가다듬었고 나이키로부터 스폰서 계약 러브콜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프로 전향설이 솔솔 흘러나오던 지난 8월말 이후 약 한달 동안 마치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새로운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미국의 유력한 에이전트인 월리엄 모리스와 에이전시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보도에 이어 11년 동안 줄리 잉스터의 백을 메던 베테랑 캐디인 그렉 존스턴을 영입했고 나이키를 비롯한 3개의 회사와 1000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계약금의 스폰서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뉴스가 전해졌다. 또 일본에서 열리는 카시오월드오픈에 출전, 프로의 자격으로 남녀 성대결을 펼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그가 프로로 전향하면 연 3000만∼40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이 불거져 나왔다. 잦은 천둥 끝의 번개처럼 마침내 지난 1일 그의 프로 전향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이 밝혀졌다. 이로써 이제 지구촌 골프팬들의 관심을 달구며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니던 그는 온실 속의 화초와 같던 아마추어의 세계를 벗어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정글로 뛰어든다. 이젠 프로다.16세의 어린 소녀가 뛰어들 정글의 세계는 결코 녹록지 않다. 귀엽고 깜찍한, 골프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마스코트였지만 프로 전향 이후 냉혹하고 살벌한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전처럼 호의적인 태도로 그를 대할 언론도 없다. 그의 한마디, 일거수일투족은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시련이 엄습할 것이다. 그에게 집중되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상금이 걸린 대회에 출전한 그에겐 자신을 다스리는 마인드 컨트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300야드 장타에 도사린 샷의 난조를 조절하는 한편 상금액을 결정하는 숏 퍼팅의 부담을 떨쳐내야 한다. 정글로 뛰어드는 어린 소녀의 미래는 결코 장밋빛 세계가 아니다. 돈방석위에 앉는 대가로 치러야 할,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이를 헤쳐 나갈 지혜가 요구된다.골프 칼럼니스트 golf21@golf21.com
  • 민노 10 -1석… 법안발의 ‘미달’

    민노 10 -1석… 법안발의 ‘미달’

    29일 선거법 위반혐의 등으로 기소된 국회의원 4명에 대한 대법원 선고결과와 신중식 의원의 민주당 입당으로 원내 의석 분포의 변화가 초래됐다. 이는 10·26 재보선 결과와 맞물려 향후 정치권 세력판도에 적지 않은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대법원 판결의 충격파는 민주노동당을 강타했다. 이번에 상고심에 올라간 4곳의 지역구의원 중 사전선거운동 위반혐의로 기소됐던 민노당 조승수 의원만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선고로 정당별 의석수는 열린우리당 144석, 한나라당 123석, 민주당 11석, 민주노동당 9석, 자민련 3석, 무소속 5석이 됐다. 당장 자체 법안발의 요건인 10석에서 한 석이 모자라는 9석이 되면서 독자적으로 당론을 발의할 수 없게 되면서 민노당은 참담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신중식 의원의 민주당 입당까지 겹쳐 원내 제3당 자리마저 내주게 돼 창당 이래 최대의 시련을 맞게 된 것이다. 김혜경 대표는 “금품향응을 제공한 의원에게는 파기환송하면서 정책소신을 편 의원에게는 의원직 박탈형을 내린 대법원 판결은 스스로 보수로 회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면서 “상식 이하의 판결을 결코 수용할 수 없으며 판결의 부당성을 규탄하고 다음달 울산북구 재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다. 산자위 국감 도중 공판결과를 접한 조승수 의원은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지만 국회의원으로서 담담히 수용하겠다.”며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신중식 의원의 입당으로 전체 의석이 11석으로 늘어난 민주당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유종필 대변인은 신 의원의 민주당 입당을 오동잎이 떨어진 것에 비유하며 “이파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열린우리당내 호남지역 의원들의 동요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이어 “우리가 나서서 여당 허물기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오는 사람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치권 지각변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강성종 의원과 신상진 의원에 대해 법원이 파기환송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준석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금순이’ 새 가족상 선보이며 피날레

    “시련 속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금순이를 사랑해 주신 시청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7개월여 동안 MBC 드라마의 효녀 노릇을 톡톡히 했던 ‘굳세어라 금순아’(연출 이대영 극본 이정선)가 30일 막을 내린다.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는 마지막 방영을 앞둔 ‘굳세어라…’의 성공을 축하하는 종방연이 열렸다. 지난 2월14일 첫 방송부터 시청률 30%를 넘나들며 꾸준한 인기를 모았고, 최근에는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보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금순이’ 한혜진(24)은 종방연 자리에서 “시청자들이 이번 드라마를 통해 따뜻한 가족애를 느꼈으리라 생각한다.”면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 못내 아쉽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재희 역의 강지환(26)도 “시청자들의 격려 속에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멋진 작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굳세어라…’가 인기를 끌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족간의 훈훈한 사랑을 보여줬다는 것. 여기에는 금순이라는 캐릭터도 한몫했다. 아이가 있는 젊은 과부로 세상이 던져주는 시련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능동적이고 변화하는 여성상을 그려냈다. 또 금순이의 재혼을 놓고 아들 휘성에 대한 양육권 때문에 빚어진 시댁과의 갈등을 통해 호주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가족애로 극복하며 새로운 가족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해피엔딩의 결혼식장 모습은 이러한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금순이의 부모 자리에는 친할머니와 함께 시부모인 노 소장 부부가 앉았다. 재혼하는 며느리는 어느 새 자식이 됐고, 전 시댁과 새로운 시댁 모두 함께 가족이 된 것. 이정선 작가는 “20∼50대는 물론 할머니 세대까지 다양한 어머니상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고 돌이켰다. 새달 3일부터는 ‘굳세어라…’의 후속으로 ‘맨발의 청춘’(연출 권이상, 최도훈·극본 조소혜)이 방송된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챔피언스리그] 지성 “약 되겠지”

    ‘성장통(成長痛)인가, 아니면 벤치 멤버 전락인가.’ 잉글랜드 최초의 ‘태극 프리미어리거’ 박지성(24·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련이 깊어져만 간다. 잉글랜드 진출 이후 지난달 25일 데브레챈전에 이어 또다시 벤치를 줄곧 지키는 수모를 겪어서다. 박지성은 28일 홈구장인 올드트래퍼드에서 열린 05∼06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SL벤피카와의 경기에서 교체 멤버로도 출장하지 못한 채 팀이 2-1로 승리하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게다가 이날 박지성 대신 선발 출장한 라이언 긱스(32)는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뛰었다. 전반 39분 왼발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뽑았고, 후반 40분 1-1 상황에서는 반 니스텔루이(28)의 결승골 시발점이 된 코너킥을 올리는 등 눈부시게 활약했다. 박지성은 당초 웨인 루니(20)가 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당해 선발 출장이 확실시됐다. 특히 긱스는 그동안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고,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20)의 백업 요원으로 꾸준히 기용됐던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씁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언론의 냉담한 평가 속에서도 변함 없는 신뢰를 보내주며 박지성의 버팀목이 돼 줬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지난 24일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4-3-3 포메이션과 선수 기용 등에서 팬들의 야유와 비난을 받은 뒤, 보인 흔들리는 듯한 모습은 또 다른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퍼거슨 감독은 “블랙번 경기에서 보여준 박지성의 플레이는 낮게 평가될 정도는 아니었다.”면서도 “긱스의 경험이 오늘 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루니의 빈자리는 긱스와 박지성으로 채워 나갈 것”이라고 덧붙여 박지성이 ‘유일한 대안’이 아님을 천명한 셈. 그러나 퍼거슨 감독이 무한 경쟁구도를 통해 전력의 극대화와 박지성의 능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고도의 용병술이라는 평가도 있는 만큼 낙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특히 과거 이력을 볼 때 박지성은 시련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더욱 강해지는 스타일. 지난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퍼플 상가에서도,2003년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에서도 초기에는 출전기회 부족, 저조한 성적으로 고전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영리함으로 적응한 뒤, 결국은 당당히 주전으로 우뚝 서 소속팀을 우승(일본 FA컵, 네덜란드리그 및 FA컵)으로 이끈 바 있다. 다음달 1일 풀햄과 갖는 리그 7차전에서 ‘시원한 한 방’으로 골 갈증을 해소할지 주목된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13)

    Taxi Drivers’ Favorite Jokes Two friends,an Italian boy and a Jewish boy,come of age at the same time.The Italian boy’s father presents him with a brand-new pistol.On the other side of town,at his Bar Mitzvah,the Jewish boy receives a beautiful gold watch. The next day in school,the two boys are showing each other what they got.It turns out that each boy likes the other’s present better,and so they trade. That night,when the Italian boy is at home,his father sees him looking at the watch. “Where did you getta thatta watch?” asks the man.The boy explains that he and Sammy had traded.The father blows his top.“Whatta you? Stupidda boy? Whatsa matta you?” “Somma day,you maybe gonna getta married.Then maybe somma day you gonna comma home and finda you wife inna bed with another man.Whatta you gonna do then? Looka atta you watch and say,‘How longa you gonna be?’” (Words and Phrases) come of age:성년이 되다 present∼with…:∼에게…을 선물하다 brand-new:새 제품의 at one’s Bar Mitzvah:성인식에서 turn out that∼:∼로 판명되다 trade: 물건을 교환하다 getta thatta: 그것을 얻다(get that) blow one’s top: 노발대발하다 Whatta you?:너 뭐하는 게냐?(What are you?) Stupidda boy?: 멍청이니?(Stupid boy?) Whatsa matta you?: 뭐 잘못되었니?(What is the matter with you?) somma day: 언젠가(some day) getta married: 결혼하다(get married) comma: 오다(come) (해석) 이탈리아 소년과 유태인 소년인 두 친구가 같은 때에 성인식을 치렀습니다. 이탈리아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새 권총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도시의 다른 한 쪽에서 유태인 소년이 성인식에서 아름다운 금시계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날 학교에서 두 소년이 서로에게 자기가 받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선물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 밝혀져, 그 둘은 선물을 바꿨습니다. 그 날 밤 이탈리아 소년이 집에 있을 때, 아버지가 소년이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시계 어디에서 구했니?”라고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소년이 Sammy와 선물을 바꿨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버지가 머리 뚜껑이 열렸습니다.“너 뭐하는 게냐? 멍청이니? 뭐 잘못되었니?” “언젠가 넌 아마 결혼할 게다. 그러다 언젠가 집에 돌아와 아내가 다른 사람과 침대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다. 그 때 뭘 할 거니? 시계를 보면서 ‘얼마나 오래 걸려요?’라고 물으렴.” (해설) 이탈리아 사람하면 무자비하게 총질을 해대는 마피아가 떠오르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조크가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익살입니다. 이탈리아 아버지가 성인이 된 아들에게 권총을 사 준 이유를 아들이 깨닫지 못하고 그 선물을 같은 시기에 성인이 된 유태인 친구의 금시계 선물과 바꿨으니,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뚜껑이 열릴 만도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나중에 결혼을 했다가 아내가 딴 남자와 문제가 생기면 권총으로 해결하라고, 권총을 선물했는데 시계와 바꿔왔으니 얼마나 열불이 나겠습니까? 참다못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현장에서 바꿔온 시계나 보면서 그 둘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물어보라고 반어적으로 비아냥거리는군요. ■ Life Essay for Wrighting -묻어둔 세월(첫 번째 시련)학습지 시장 40조원 매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김성수 회장의 인생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그를 괴롭혔다. 세상을 폭넓게 알게 하기 위해 그랬을까? 어머니의 태몽은 이러했다. 길을 가는데 예사롭지 않은 상자가 눈앞에 나타나고 곡절 끝에 열어본 상자에서는 ‘대사명’(大使明)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풍수에 밝은 동네의 어른들이 그의 어린 시절에 그를 보면 줄곧 인물이라고 귀띔을 하곤 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롯해 온 집안에서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집안 차원에서 인물(?)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당시에 큰 인물이란 판·검사가 제일인지라 성공하기 위한 코스로서 서울법대에 진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4학년인 어린 그는 전남 장흥 시골마을에서 광주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떠밀리듯 유학을 떠나게 된다. 총명과 지혜가 어린 김 회장의 깊숙한 곳에서 아직 영글지 않아서 그랬을까?(Was it because his cleverness and wisdom were not fully developed in the heart of young President Kim?) 끝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로 어린 그는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렸고,2년여의 광주 생활을 광주서중의 낙방으로 마감했다. 그 뒤 아버지는 실망감과 공허감 때문에 인물 교육을 포기했다. 아버지의 교육 포기는 그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빼앗긴 것을 의미한다.(His father’s despairing of training him to be a great man means that he was deprived of all the opportunities to study). 고등학교도 공고를 가게 되었고 중학교 시절 내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모두 소에게 먹일 꼴을 벤다든지, 집안의 궂은일을 모두 맡아서 하게 되었다. 풍수에 밝다는 지관들에게 속은 아버지의 허탈감 때문인지, 심혈을 기울였던 10년 세월 때문인지 서중 낙방이후 어린 그는 집안의 작은 머슴으로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 절대문법 (6) 자리매김 학습 영어 문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장에서 쓰이는 단어의 자리이다. 따라서 영어 문장에서 단어가 놓일 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읽고, 쓰기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시간까지 동사, 명사, 형용사를 중심으로 한 단어의 자리와 특성, 그리고 역할을 살펴보았다. 영어 문장은 동사를 기준으로 앞뒤에 위치하는 단어들의 역할과 특성에 따라 다양한 구조로 변형될 수 있다. 문장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품사는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이다. 이상의 네 가지 품사는 문장 구성에 핵심이 된다. 오늘은 수식어로 대표되는 부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부사는 사실 다른 품사를 수식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다른 품사에 비해 부사의 자리는 훨씬 자유롭다. 동사의 앞뒤, 형용사의 앞뒤, 심지어는 문장의 맨 앞이나 맨 뒤에도 위치할 수 있다. 부사의 특성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사 주변의 말을 꾸며준다.(동사, 형용사, 다른 부사 수식) 주어나 목적어의 상태를 나타내는 보어가 될 수 없다. 수식어로 쓰이기 때문에 문장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I am happy.⇒I am very happy. It’s lunchtime ⇒ Now,it’s lunch time. She goes to school.⇒ She goes to school early. 부사는 문장에서 다양한 쓰임을 보일 수 있다. 반드시 다른 품사 앞에 위치하여 수식어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단어 앞뒤의 연결 관계에 따라 확장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The hare ran very fast. 이처럼 문장을 구성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와 동사이다. 주아와 동사만으로 의미가 충분히 전해질 수 있음에도 부사를 사용하여 더 구체적으로 의미를 확장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때 부사의 자유는 자유롭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적절한 쓰임을 익히는 것이 필요한다.
  • [MLB] 찬호, 끝나나

    [MLB] 찬호, 끝나나

    ‘박찬호, 이대로 끝나나.’ ‘코리안특급’ 박찬호(32·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설 땅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샌디에이고가 27일 시작한 샌프란시스코와의 홈 4연전에서마저 선발 라인에서 배제되면서 지난 20일 콜로라도 로키스전 구원등판 이후 7경기 연속 마운드에 서지 못하는 등 시련을 겪고 있는 것. 샌디에이고는 27일 선발 등판한 제이크 피비를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와의 4연전 남은 경기 선발로 애덤 이튼-페드로 아스타시오-브라이언 로렌스 등을 가동하기로 했다. 게다가 이날 배포된 구단 보도자료의 불펜 명단에마저 박찬호의 이름이 빠져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팀의 불펜 투수를 소개하는 ‘게임 노트’에 박찬호에 대한 설명을 일언반구도 없이 빼버린 것. 이 때문에 선발과 불펜의 ‘경계인’으로 애매한 처지에 있는 박찬호의 포스트 시즌 엔트리 탈락마저 점쳐지고 있다. 샌디에이고는 이날 샌프란시스코에 2-3으로 역전패하며 77승79패로 6경기를 남긴 상태에서 2위 샌프란시스코(74승82패)에 3경기차로 쫓기고 있어 남은 맞대결 3연전을 바짝 긴장한 채 치러야 한다. 만약 샌디에이고가 포스트 시즌행을 확정 짓는다 하더라도 8개 진출팀 가운데 가장 낮은 승률로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이미 불펜진의 보직마저 확고한 마당에 9년 만에 불펜 시험대에 오른 박찬호를 배려해줄 여유가 더이상 없다. 마지막 희망은 새달 1일부터 시작하는 LA다저스와의 3연전. 샌디에이고가 샌프란시스코와의 남은 3경기에서 지구 선두 자리를 확정 지으면 5일부터 플레이오프가 바로 시작되기 때문에 다저스전에 굳이 에이스 피비나 2선발 이튼을 기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후보 1순위는 단연 박찬호다.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은 “시즌 중반이면 고액 연봉선수 배려 차원에서 기회를 줄 수 있지만 막판 접전을 벌이며 7년 만의 포스트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샌디에이고에는 그럴 여유가 없어 박찬호의 플레이오프행이 어려워 보인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두번 사기당하고 농부로 정착한 탈북 귀순자 김만철씨

    “내레 이제 농부가 됐시요. 우리 집 닭들은 아주 토실토실 합네다.” 김만철(65)씨. 지난 1987년 1월 청진의대에서 의사로 근무 중 11명의 가족을 이끌고 탈북, 귀순했다. 특히 소형선박 청진호를 이용, 일본과 타이완을 거쳐 25일 만에 남녘땅을 밟은 각본없는 드라마는 북한판 엑소더스를 예고하며 당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또한 귀순 일성으로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고 싶어 왔다.”고 말해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표현대로 김씨 가족들은 귀순후 남쪽의 따뜻한 섬인 남해에 정착했다.‘평화의 집’이라는 찾아가는 선교병원을 세워 선교활동에 나서는 등 제2의 삶을 착실히 살았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두번의 사기극에 휘말려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평화의 집’이 경매처분되는 시련을 겪었다. 결국 김씨 가족은 5년전 따뜻한 남쪽에서 북쪽인 경기도 광주시의 한 산골짜기로 이사했다. 수소문 끝에 김씨의 집을 찾았다. 비포장 도로로 꾸불꾸불 이어지는 외딴 곳. 입구에는 고추를 심은 텃밭이 군데군데 보였고, 토종닭 수십마리가 초가을 햇살 아래 평화롭게 떼지어 다녔다. 때마침 김씨는 정장차림으로 네살된 외손녀와 함께 인근 병원에 막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외손녀의 변비 때문이란다. 부인 최봉례(60)씨는 “이런 누추한 곳에 다 왔느냐.”고 하면서 인터뷰를 마다하고 고추밭으로 나가버린다. 탈북 당시 11명의 가족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우선 슬하의 3남2녀 소식부터 들었다. 큰아들 광규(40)씨는 홍익대 미대를 나와 연애결혼했다. 아이 셋을 낳았으며, 모 공기업 홍보실에서 근무 중이다. 큰딸 광옥(36)씨는 화물차 운전기사인 남편, 자녀 둘과 경기도 일산에서 행복하게 지낸다. 둘째아들 명일(33)씨는 모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노동을 하며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자 만드는 공장에 다닌다. 부인은 동해출신으로 연애결혼했으며, 자녀 둘을 낳아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다. 둘째딸 광숙(31)씨는 지난 95년 강원도 화천 지역을 통해 탈북한 한용수(31)씨와 결혼, 딸 하나를 낳고 경기도 역곡에서 지낸다. 셋째아들 광호(29)씨는 아직 미혼으로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UCLA)을 나와 현재 서울대 대학원에서 천체물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김씨는 “18년전 탈북 당시 식구 11명에서 지금은 스물대여섯으로 늘었다. 손자·손녀를 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족 전체가 모일 수 있는 것은 1년에 한번꼴이어서 귀순 당시에 견주면 격세지감. 이어 “지난 세월, 남한에서 살아오는 동안 사기를 당하는 등 혹독한 적응기를 거쳤다.”면서 여생을 땅의 진리를 터득하며 살겠단다. 김씨는 남해에서 가지고 온 미니 포클레인으로 직접 집을 짓고 텃밭을 일궜다. 또 한마리, 두마리 키우기 시작한 닭이 지금은 100여마리로 늘었다. 고추농사는 닭들이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실패를 거듭했고 대신 그걸 먹고 자란 닭들만 살쪘다고.“기왕이면 완전 토종인 우리 닭들이나 선전을 좀 잘 해달라.”며 웃는다. 북한에 있는 가족 얘기가 나오자 “위로 형들이 몇분 있는데 어렵게 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떻게든 돕긴 도와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삼성 ‘시련의 계절’

    삼성이 시련의 연속이다.‘X파일 후폭풍’이 눈덩이처럼 확산되면서 3개월 만에 고개를 납작 숙였다.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한숨만 내쉰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최근 건강을 이유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삼성으로서는 가뜩이나 민감한 시기에 이 회장의 ‘건강 이상설’이 제기돼 곤혹스럽다. 또 이 회장의 출국 시기가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어 답답함을 더한다. 검찰과 정치권이 이 회장을 타깃으로 할 조짐을 보이자 건강을 핑계 삼아 해외로 도피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시중에 돌아서다.●김용철 前법무팀장 한겨레行 여기에 김용철(변호사) 전 삼성 법무 팀장이 반(反)재벌 논조를 펴온 한겨레행(行)을 택해 삼성으로서는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김 변호사는 도청테이프로 삼성을 협박한 재미동포 박인회씨를 수차례 만나 당시 삼성의 사정에 누구보다 정통한 인물이다.또 그는 1997년부터 삼성의 각종 법적 현안을 다루면서 삼성의 치부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으며, 사실상 삼성에서 ‘팽’을 당한 처지라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인재 스카우트의 대명사인 삼성이 거꾸로 당한 꼴”이라며 “김 변호사의 한겨레행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의 확대도 삼성의 고민거리다. 지난달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의 소환 조사에 이어 최근엔 삼성의 ‘금고지기’인 김인주 구조조정본부 사장도 검찰에 불려나가 조사를 받았다. 이 때문에 검찰이 본격적으로 삼성에 칼날을 세우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더구나 김 사장은 검찰로부터 세풍 수사기록을 토대로 추궁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검찰이 사실상 도청테이프의 내용을 근거로 수사를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기 때문이다.●검찰, 李회장 겨냥 수순 밟기? 검찰은 이뿐 아니라 참여연대가 고발한 삼성의 기아차 인수 로비 의혹도 수사에 나서고 있다. 검찰이 결국 이 회장을 겨냥한 수순을 하나씩 밟고 있다는 분석이다. 검찰은 또 지난달 말 삼성에버랜드의 지분변칙 증여 의혹 사건과 관련해 허태학 삼성석유화학 사장과 박노빈 삼성에버랜드 사장에게 각각 징역 5년과 3년을 구형했다. 검찰의 대(對)삼성 강경 입장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는 삼성의 지배구조를 겨냥한 금융산업구조개편에관한법률(금산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룰 예정이어서 삼성은 이래저래 시달리는 신세로 바뀌었다. 삼성이 향후 이 난관들을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양양 낙산사 화재 5개월…복구현장 가보니

    양양 낙산사 화재 5개월…복구현장 가보니

    천년의 고찰 낙산사를 태운 지난 4월의 강원도 양양 산불로부터 5개월.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과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인간의 집념으로 화마(火魔)가 낸 상처는 어느덧 아물어 가고 있었다. 잿더미를 뚫고 올라온 나무와 풀이 허리춤까지 올라왔는가 하면, 형체를 잃은 낙산사도 새 단장에 분주했다. 남은 태풍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는 양양 산불 복구현장을 한가위를 일주일 앞둔 11일 둘러봤다. ●적은 비 덕분에 복구 가속 불이 마을 뒤쪽 대나무밭을 타고 삽시간에 번지는 통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용호리. 주저 앉았던 집들이 상당부분 복구돼 있었고 뒷산에는 잡목이 허리까지 자라 있다. 전문가들이 걱정했던 산사태의 가능성도 크게 줄었다. 용호리 토박이 이모(72)씨는 “지난번 장마와 태풍때 비가 적게 온 덕에 공사가 빨리 이뤄졌다.”면서 “특히 2002년 태풍 ‘루사’ 피해 때 통나무 등으로 산 곳곳에 지지대를 만들어 놓았던 게 산사태를 막는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들어 양양군의 강수량은 580㎜로 평년(연 평균 1200∼1300㎜)보다 적다. 이달 초 태풍 ‘나비’가 왔을 때에도 강수량이 99㎜에 그쳤다. 좋은 토질 덕분에 풀과 나무 등 식생이 빨리 회복된 것도 약해진 지반을 강하게 만들어줬다. 현재 양양군 전체 피해주택 163채 중 66%인 108채의 복구가 끝났다. 나머지도 이달 말까지 복구를 마칠 계획이지만 일부 주민들은 추석을 컨테이너 박스에서 보낼 가능성도 있다. ●“태풍 1~2개 더” 소식에 긴장 관광지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이달 3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열리는 ‘송이축제’에는 지난해(1400명)의 2배가 넘는 3000여명의 일본인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배용준(욘사마)이 주연한 영화 ‘외출’의 촬영지 삼척을 둘러보는 일본 여행사의 ‘욘사마 패키지 투어’에 송이축제 관람이 포함됐다. 군청 문화관광과 박상민 과장은 “산불 뒤 송이축제를 치를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으나 송이산지에는 피해가 없어 올해에도 평년수확량인 40t을 무난히 달성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풍이 더 올 수 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아직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고 있는 용호리 주민 김모(36·여)씨는 “복구공사가 끝나지 않아 중요한 물건들은 다른 지역에 사는 친척들에게 맡겨놨다.”고 걱정했다. 낙산해수욕장 근처 음식점들도 해변의 포장을 모두 걷어놓은 상태였다. ●“낙산사 원형 복원 전화위복 기회” 걸음을 돌려 접어든 낙산사에서는 고고학과 고건축 전문가 등 10여명으로 ‘복원 추진위원회’가 꾸려져 발굴조사가 한창이었다. 녹아 내린 보물 479호 동종 역시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위해 자문위원단을 구성, 성분과 3차원 영상 등을 분석 중이다. 복원되더라도 문화적 가치가 없는 ‘모조품’에 불과하겠지만 이곳에 다시 가져와 시련과 부활의 상징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산불 당시 화염에 휩싸여 무너지는 모습이 보도된 뒤 낙산사를 찾는 불자들의 발길은 오히려 늘었다. 특히 일대 산림을 포함,30여만평이 소실됐는데도 서까래 하나 그을리지 않은 바닷가 절벽 위 홍련암이 “부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입소문이 확산돼 복원성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글 사진 양양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결실의 땅’ 한반도/최미숙 증산도 부산당리도장 수호사

    며칠 전 태풍 나비가 한반도 동남 해안을 쓸고 지나갔다. 다행히 한반도를 바로 덮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위력이 대단했었다. 일본의 피해는 컸다고 하는데 이웃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일본은 우리에게 잔인하고도 잦은 침략을 일삼아 왔지만, 공교롭게도 자연재해에 있어서는 방풍림처럼 우리를 막아 온 것도 사실이다. 풍수지리에서 혈(穴)이 되는 자리는 모름지기 좌로는 청룡, 우로는 백호를 끼게 되어 있다. 이때 백호는 만첩백호(萬疊白虎)라 하여 그 산맥이 첩첩이 겹쳐질수록 좋은 상이고, 청룡은 비상청룡(飛翔靑龍)이라 하여 쭉 뻗어나가는 것을 좋은 지세로 본다. 우리나라는 좌로는 일본열도가 비상청룡의 상을 취하여 쭉 뻗어 한반도를 감싸고, 우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만첩백호가 우리나라에 마치 순복(順伏)하듯 옹위하고 있다. 따라서 태평양 일원에서 시작되는 태풍이 북상하여 올라 온다고 하더라도 중국 타이완 일본에 의해 꺾여, 한반도를 바로 타격하는 태풍은 그리 많지 않은 연유도 그런 까닭이다. 동북아시아 끝자락에 매달린 이 한 많고 작은 땅덩어리가 어떤 역활이 있길래 국제적 이목을 집중시키고 풍수지리적으로도 천혜의 요새로써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일까? 역학으로 한반도의 방위는 간(艮)에 배속된다. 간방이란 동북방(東北方)을 말한다. 또한 간은 열매를 뜻하기도 한다. 즉 한반도는 동북방의 결실의 땅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 인류의 발상지로 지목되는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시작된 우리 선조는 고향을 등지고 신령스러운 간방의 땅 한반도로 장구한 시간 이동하여 한과 시련 속에서도 오늘의 문명의 꽃을 피워왔다. 위로는 백두산의 천지로부터 아래로는 한라산의 백록의 영산정기가 한반도를 보호하여 왔고, 그 중간에 위치한 강화도 마니산은 단군시대부터 천상의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던 곳이다. 그뿐인가. 백두대간의 줄기에서 결인(結咽)된 세계의 공원, 금강산 1만 2000봉의 영기는 신비로움을 넘어서서 영험스럽기까지하다. 중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던 시황제가 불로초를 찾아 동남동녀 500인을 보냈던 동방의 신선의 나라 조선. 광명을 숭상하여 눈처럼 흰 옷을 즐겨 입었던 백의의 나라. 이웃이 서로 정을 나누며 한 가족처럼 살았지만, 국난에 이르러서는 선비와 승려, 아낙과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분연히 일어서 지켜온 나라였다. 며칠 전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너무도 비극적인 참사가 빚어지고 있는 미국 뉴올리언스에 우리 동포들의 눈물겨운 사랑의 나눔이 그것이다. 어느 민족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정. 내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고 서로를 돌봐주는 봉사정신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서 면면히 이어져 오는 우리네 민족정신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캐나다의 어느 교과서에는 국가 표시도 되어 있지 않고 주변 강국의 역학관계로 분단되고 왜곡돼 현재는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한반도. 이런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를 필자에게 묻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둔 밤이 지나면 반드시 밝은 아침이 오는 것처럼 밝고 희망차다고 말하겠다. 공자는 설괘전에서 간(艮)을 만물지소성종이소성시야(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라 하였다. 모름지기 만물은 간(艮)에서 매듭을 짓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열매가 한철의 수확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다음철 파종을 대비하는 이치와 같이.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정신에는 가히 지금까지의 문명을 매듭짓고 다가올 후천의 새 문명을 열어갈 저력이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음을 확신한다. 최미숙 증산도 부산당리도장 수호사
  • [이주일의 어린이책] 지빠귀 부리 왕자/펠릭스 호프만 그림

    “흥, 절구통!” “늘어진 엿가락 같군!” “몽땅하면 재주가 없다고!” “낮귀신이 따로 없군!” “틀어진 장작개비!” 도도하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공주. 신랑감으로 찾아온 멋진 남자들에게 온갖 트집을 다 잡으며 딱지를 놓는다. 그림 형제의 고전 ‘지빠귀 부리 왕자’(펠릭스 호프만 그림, 박경희 옮김, 비룡소 펴냄)는 콧대높은 공주가 제멋대로 성질을 부리는 장면으로 운을 뗀다. 시원시원한 그림이 곁들여진 그림동화로 새롭게 탄생한 덕분에 취학전 아동들도 쉽게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옛날 어느 나라에 매우 아름다운 공주가 살고 있었습니다.”로 열리는 이야기는 금세 아이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맨다. 신랑감 후보 대열에 끼인 맨 앞쪽의 착한 왕자에게도 공주는 또 버릇없이 딴죽을 건다. 왕자의 뾰족한 턱을 가리키며 “지빠귀 새의 부리같다.”고 놀리자 이번엔 늙은 임금님이 화가 났다. 궁궐 문을 들어서는 첫번째 거지에게 무작정 공주를 시집보내겠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선언하는 게 아닌가. 책의 들머리에 놓인 ‘극적 장치’앞에서 꼴깍 군침을 삼킬 독자들을 위해 이야기는 속도를 높인다. 며칠뒤 궁궐 창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떠돌이 거지 악사, 꼼짝없이 그의 아내가 되고만 공주. 이제 2장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분위기를 바꿔 이어진다. 남루한 행색으로 거지 악사를 따라 길을 떠난 공주는 난생 처음으로 온갖 험한 일을 다하게 된다. 궁궐시절을 생각하며 제멋대로 살았던 시간들을 후회도 해보지만, 시련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끼니를 마련하기 위해 급기야는 하녀가 되어 다시 궁궐로 들어가게 됐으니! 중반쯤 넘어 가면 해피엔딩을 눈치챌 수 있는 평이한 이야기 구도이긴 하다. 남을 함부로 평가하는 공주의 못된 버릇을 고쳐 놓으려 임금님은 단단히 별렀고, 거지악사는 다름아닌 공주가 ‘지빠귀 부리’라고 놀렸던 그 뾰족턱의 왕자였던 것. 몇번씩 곱씹게 하는 철학적 메시지는 없어도 명쾌한 ‘고전적’ 서사틀이 오히려 책읽는 맛을 돋워 준다. 넉넉한 여백을 둔, 은은한 색감의 연필선 그림이 신선하다.5세 이상.8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朴대통령 “6억弗이 마지노선” 훈령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朴대통령 “6억弗이 마지노선” 훈령

    ‘김-오히라 회담’의 핵심은 역시 자금의 성격과 총액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62년 11월8일자로 직접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게 훈령을 내려 “청구권에 관하여, 명목을 독립축하금 또는 경제협력으로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청구권에 대한 변제 내지 보상으로 지불될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킬 수 있는 표현이 되어야 할 것임을 강조할 것”이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총액에 대한 지시는 더욱 구체적이다.“순 변제와 무상조의 합계액이 차관액보다 많아야 하며 총액이 6억불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라.”고 훈령을 내렸다. 이어 “만약 무상조가 3.5억불 이하로 내려올 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라.”면서 공적원조 부채액을 포기시킬 것 등 3개항의 지침을 따로 보냈다. 일부 문서는 ▲발신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수신 ‘국가정보 부장’ ▲제목은 ‘대일 절충에 관한 훈령’으로 돼있다. 양자 회담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져 ‘김-오히라 메모’를 도출했다. 메모는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1억달러 이상’으로 일본이 한국에 제공할 총액의 대강을 적고 있으나 자금 명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메모는 두 장짜리로 간략하게 구성됐다. 유상·무상·수출입 차관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양측의 요구조건을 먼저 기재한 뒤 각 항마다 ‘이것을 ∼한 조건으로 양 수뇌에게 건의한다.’는 합의내용을 담고 있다. 김종필 부장은 “단독회담 후 생길 수 있는 해석의 차이를 방지하기 위해 메모를 남기도록 하자.”고 제안했고, 오히라 외상은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거액의 별도 정치자금 제공설 등 갖가지 의혹에 시달렸고, 이에 김 부장은 두 차례나 외유길에 오르는 시련을 겪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최태원 회장이 달라졌다

    최태원 회장이 달라졌다

    최태원 SK㈜ 회장이 최근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해 주목을 받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달에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모임을 비롯해 이달초 대전과 대덕사업장 순시에서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한 현장경영의 일환으로 이뤄진 방문이지만 전보다 ‘깔끔해진’ 최 회장의 모습에 직원들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최 회장은 최근 들어 강연 등 공식 행사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 버릇을 자제하거나 머리카락도 정갈하게 빗고 나타나는 등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 회장은 이전에는 공식행사장에서도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거나 머리카락이 뻗쳐 있는 장면이 자주 목격돼 투박한 이미지의 경영자로 여겨져 왔다. 최 회장의 이같은 변신은 국내 4대 재벌기업의 총수로서 세련되고 매너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변의 권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행사 시 엷은 화장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제시했지만 이것만큼은 최 회장이 쑥스러워해 거절하고 있다. 특히 소버린자산운용의 등기이사직 박탈 시도로 시련을 겪을 당시 최 회장 본인이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이같은 시도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새영화] 인 굿 컴퍼니

    사회성과 작품성이 제대로 균형을 이룬 드라마를 만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6일 개봉하는 ‘인 굿 컴퍼니(In Good Company)’는 그 희소가치를 만끽하게 해주는 할리우드 드라마이다. 실직 위기에 내몰린 한 가장의 이야기와 달콤한 청춘 로맨스가 절묘하게 손을 잡았다. 잘나가던 스포츠 잡지사의 광고이사 댄(데니스 퀘이드)에게 느닷없이 시련이 닥친다. 기업합병으로 정리해고 위기에 처한 것도 속상한데, 설상가상 자신의 자리를 뺏은 새 이사 듀리아(토퍼 그레이스)는 아들뻘의 20대 청년. 마음 같아서야 당장 사표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아내는 늦둥이를 임신해 들떠 있고, 큰딸 알렉스(스칼렛 요한슨)도 뉴욕대 입학통지서를 받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실직문제를 다루고 있으되 영화의 어조는 경직되지 않고, 젊은 등장인물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다. 조직에서 강등되고도 가족 몰래 혼자 속앓이를 하는 댄,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탓에 댄의 화목한 가정을 부러워하는 젊은 상관 듀리아. 듀리아는 가장의 자리를 힘겹게 지켜내는 댄을 이해하면서 갈등이 풀리는 듯하지만, 뜻밖에 듀리아와 알렉스가 사랑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된 댄은 착잡한 마음이 된다.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2005프로야구] 김기식, 뇌종양 이긴 ‘프로의 꿈’

    뇌종양 수술도, 세상의 편견도 그의 앞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우완사이드암 투수 김기식(24·영남대졸)이 24일 프로야구 현대와 계약금 1억 5000만원 연봉 2000만원에 입단 계약을 맺고 꿈에도 그리던 프로 마운드에 서게 됐다. 그는 인천 동산고 3학년이던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대에 2차 7번으로 지명된 뒤 대학 졸업 후 프로 무대를 밟을 예정이었다. 고교 시절 ‘기대주’에 불과했던 김기식은 대학에서 더욱 꽃을 피웠다. 대학 4학년 때인 2003년에는 10경기에서 9승을 거두며 방어율 1.16의 빼어난 성적을 거뒀고 대학선수권 최우수선수로 뽑히며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는 등 2004년 신인 최대어로 꼽혔다. 하지만 김기식의 시련도 이 즈음 찾아왔다.2003년말 뇌종양 진단을 받은 것. 수술을 거치며 병마와 싸웠고, 다시 일어섰지만 재발을 우려하는 현대의 머뭇거림에 2년간의 방황을 겪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혈혈단신 태평양을 건넜지만 실패했고, 현대는 여전히 다시 돌아온 그와의 계약을 꺼려해 모교인 영남대를 찾아 후배들과 훈련하며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거듭했다. 김기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재활과 강도높은 훈련으로 과거의 구위를 많이 회복했다. 김기식은 “고생 끝에 이제 웃으면서 운동할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면서 “남들보다 두배 더 열심히 노력하고 꼭 성공해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입단 소감을 밝혔다. 현대측은 “아직 과거의 몸상태는 아니지만 야구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잠재력을 보고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1981년 ‘걱정 반 기대 반’속에 등장한 20대의 젊은 총수가 사반세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중년의 관록이 물씬 풍기는 회장이 됐다. 재벌가(家)의 어린 도련님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영자로 바뀌었으며, 패기만만하고 저돌적인 성격은 다소 무뎌진 대신 기다림의 여유를 알게 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 25년째. 당시 국내 최연소 10대그룹 총수로, 풋내 나는 젊은이로 알려진 김 회장의 이미지는 싹 가시고, 어느덧 성공한 2세 경영인, 구조조정의 마술사, 의리파 총수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김 회장은 재계에서 2세 경영의 성공적인 착근을 넘어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경영 수완을 보여줬다. 선친인 고 김종희 창업주 때보다 규모면에서 20배 이상의 성장을 이뤘으니 세간의 평가가 그리 터무니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행착오와 시련도 적지 않았다. 또 그의 성공을 시대상황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악연이 있기도 했으며, 생존을 위해 선친의 손길이 잔뜩 묻은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했다. 또 한화의 부활을 알리는 대한생명 인수 때에는 로비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시절에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던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2세 경영인의 실패가 다반사인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이너마이트 김’ “몇십 배가 남는다고 해도 난 설탕이나 페인트를 들여올 달러가 있으면 단 얼마라도 화약을 더 들여올 겁니다. 나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이며, 화약쟁이가 어떻게 설탕을 들여옵니까?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이나 먹고 살거요.”(실록 김종희) 한화그룹(옛 한국화약그룹) 김종희 창업주가 얼마나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집착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들이 선뜻 하려 하지 않는 사업이었지만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화약업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이름보다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통했다. 그가 다이너마이트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인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의 외곬 성격과 경영 방식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확히 터져야 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속성과 닮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리역 폭발사고.“이리역 폭발사고는 창업 이후 가장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었습니다. 선친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룹 전체를 내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부가 당시 이리시 재건에 총예산 130억원을 잡았는데, 한화가 내놓은 돈이 91억원이었으니 선친의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김승연 회장) 김 창업주는 1922년 충남 천안에서 부친 김재민(작고)옹과 모친 오명철(작고) 여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 화약과 첫 인연을 맺었다.1952년 부산 피란 시절에 한국화약을 창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역과 건설, 정유, 기계 등 기간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김 창업주가 손을 댄 회사 가운데 성격이 다른 유일한 기업은 대일유업(현 빙그레)이다. 여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대일유업의 거듭된 적자로 골치를 썩던 정부는 한국화약(현 한화)에 대일유업 인수를 요청했지만 김 창업주는 기간산업이 아닌 탓에 인수를 꺼려했다. 그러나 축산농가가 쓰러지고 있다는 정부의 집요한 설득에 못 이겨 그는 대일유업을 떠안았다. ●김 회장의 뚝심경영 패기만만한 김승연 회장의 뚝심 경영은 1982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 인수와 합작사인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의 경영권 확보에서 시작됐다. 모든 임원들이 당시 한양화학 인수에 반대했지만 김 회장은 혼자서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젊은 혈기로 무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주주인 다우케미칼의 한양화학 철수는 본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지,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가계약으로 협박하던 다우케미칼측을 ‘편지’ 한장으로 저지한 김 회장의 놀라운 협상 전략이 더해지면서 한화는 당초보다 싼값에 한양화학을 인수하게 됐다. 이는 불안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잠재우며 ‘김승연 체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미국 유니언오일사와 합작해 설립한 경인에너지의 경영권 확보에서도 김 회장의 ‘뚝심’은 잘 드러난다. 한화측에 불리한 계약서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김 회장은 유니언오일의 한국 경영진을 대상으로 ‘을사보호조약 같은….’이라는 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5공 시절에 더욱 화려해진다. 명성그룹 5개사를 인수해 콘도를 비롯한 레저산업에 진출했다. 또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을 인수, 유통 분야로의 사업 확장도 꾀했다.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경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장인인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이 전두환 정권의 실세인 탓에 김 회장의 이같은 공격경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일부 있었다. 서 전 장관이 사위인 김 회장의 사업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관측에서다. 91년에는 빙그레와 제일화재가 계열 분리되면서 2세들의 분가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나는 가정 파괴범”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 회장도 외환위기 파고는 쉽게 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계열사를 팔아야만 했다. 그는 매각 금액을 줄이더라도 고용은 100% 승계를 원칙으로 했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으로 50∼60명의 직원이 일터를 잃게 되자 사내 방송에서 “선대 김종희 회장이 한화를 창업한 이래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었다.”면서 “나는 그들의 가정에 많은 고통을 준 가정파괴범이며, 만일 내가 경영을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비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집에 러닝머신을 설치해서 발에 물집이 생겨 터질 정도로 뛰어보기도 했다.”면서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 때문에 체중이 5㎏ 이상 빠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는 정말 회장직에서 물러날 각오로 경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끝나면서 그에게 ‘구조조정 마술사’라는 애칭이 붙었지만 그는 이에 대해 가슴 아픈 별명이라고 했다. 한화는 2000년 동양백화점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대덕테크노밸리 설립,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외환위기 시절 위축됐던 사세를 크게 확장시킨 것이다. 이로써 한화는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과 대한생명의 금융, 한화국토개발과 한화유통이 포진한 유통·레저산업을 3대 축으로 하는 성장엔진을 마련하게 됐다. ●강태영 여사의 외유내강 강태영(78) 여사를 옆에서 지켜본 이들은 ‘조용하지만 강단있다.’고 평한다. 지난해 4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할 때다. 김호연 회장은 이 상에 자부심이 유독 컸다고 한다. 한때 ‘경영자로서 자질이 의심된다.’는 비난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탓이었다. 강 여사는 작은아들의 수상 소식에 들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시상식장을 직접 찾아 격려할 정도였다. 강 여사는 특히 90년대 초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우의가 상했던 탓에 형제가 화목하게 지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주변에선 전한다. 강 여사는 또 남편인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 한번도 생일 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고 한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2003년 어머니가 희수를 맞을 때 온 가족이 뜻을 모아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 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는 강 여사도 김 창업주 생전에 큰 목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묵묵히 내조를 했다고 한다. 두 아들의 평은 한결같다.“어머니는 유교적인 태도를 간직한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김 창업주와 강 여사는 1946년 장남인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룬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차남인 김 창업주가 부친의 강요에 못 이겨 집안간 혼처가 결정난 곳으로 먼저 상투를 틀었기 때문이다. ●백두진 국회의장 부인의 중매로 김 창업주 생전에 치른 혼사는 맏딸 영혜(57)씨밖에 없다. 영혜씨의 남편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차남인 이동훈(57) 전 제일화재 회장이다. 김 회장은 부친 타계 1년 후인 1982년 서정화 당시 내무부장관의 장녀 영민(44)씨를 배필로 맞았다. 영민씨는 당시 김 회장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신부로, 서울대 약대 3학년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김 회장과 영민씨의 만남은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백두진씨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맺어졌다. 서 전 장관과 김 회장 양가를 잘 알고 있는 백의장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결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과 영민씨는 교제를 시작했고,82년 10월에 식을 올렸다. 동생인 김호연(50) 회장도 형이 결혼하자 곧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48)씨를 배필로 맞아 혼례식을 치렀다. 영민씨는 결혼 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약대를 수석 졸업했다. 현모양처 스타일로 자식 뒷바라지에 애쓰며, 바깥 활동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영민씨 친가도 만만치 않은 유력 가문이다. 부친인 서 전 장관은 29세 때 군수를 지냈으며,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민정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정신 전 대검찰청 차장은 서 전 장관의 친동생이며, 고 서정귀 호남석유 사장은 6촌형이다. 영민씨의 조부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고 서상환 장관이다. ●천안의 명문가 김 회장의 방계도 화려하다. 백부인 고 김종철 의원은 전 국민당 총재로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지냈다. 한화 계열사인 한국베어링(현 파그베어링)과 태평물산(현 한화무역)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경영엔 관여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 유성은(83) 여사 사이에 요섭-신연-수연-진연-규연-광연 등 5남1녀를 뒀다. 둘째숙부인 김종식(70) 전의원은 큰형인 김종철 전 총재가 작고하자 선거구인 천안을 물려받아 국회의원을 지냈다. 부인 문영숙(59) 여사 사이에 정연-서연-도연-원필 등 3남1녀를 뒀다. 고모인 김종숙(64) 여사는 미국에서 UC미클릭에서 지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영일(70)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 부사장을 맡는 등 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친인척 가운데 현재 한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는 인사는 김신연 한화폴리드리머 대표가 유일하다. 김 대표는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의 차남이다. ●‘한화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총자산 37조원의 ‘거함’ 대한생명을 이끄는 신은철(58) 부회장은 보험업에 30년을 몸담아온 생명보험업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사내에서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통한다. 취임 직후 대전 영업현장을 방문, 처음 만나는 지점장 20여명의 이름을 외우고, 친근한 선배처럼 대화를 나눠 참석자들이 헹가래를 쳐주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평소 ‘3선(先) 경영’(선견, 선수, 선제)을 강조한다. 사전에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 신속하게 실행하는 조직만이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출신으로 삼선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나왔다. 진영욱(54) 신동아화재 사장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23세의 나이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수재다.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에서 잔뼈가 굵었다.99년 한화증권 사장으로 전격 발탁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한화증권을 우량 금융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2002년 대한생명과 함께 한화 계열사로 편입된 신동아화재를 만성적 적자 구조에서 흑자로 전환시켰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허원준(59)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는 68년 한화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한 이후 줄곧 석유화학 한 분야에 매진한 전문가이다. 엔지니어와 연구실장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쳤다. 외환위기 이후 한화석유화학의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로서 비핵심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으며, 해외 자본을 유치해 재무구조를 향상시켰다. 경남 출신으로 부산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관수(54) 한화국토개발㈜ 사장은 79년 태평양건설 입사 이후 제일화재 총무부장, 한화종합화학 기획실장, 한화석유화학 관리담당 임원, 여천 NCC 관리 임원, 한화건설 기획담당 임원 등 다양한 직무를 수행했다. 그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뿐 아니라 스킨십 경영을 중시한다.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나왔다. 김현중(55) ㈜한화건설 사장은 건축 기사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실전형 경영인’이다.2000년 개발사업 전문가로서 한화건설로 스카우트된 김 사장은 아파트 브랜드 ‘꿈에그린’과 주상복합 브랜드 ‘오벨리스크’를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4년만에 회사 규모를 4배로 키워냈다. 인천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나왔다. 남영선(52) ㈜한화 사장은 78년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해 인사와 총무, 기획 등 관리업무를 두루 거쳤다. 또 그룹 홍보팀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폭넓은 대외 활동과 원만한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충남 출신으로 배재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golders@seoul.co.kr ■ 김승연회장의 자식교육관 “눈에 꿈이 담겨 있지 않으면 산 너머가 보이지 않고, 그 곳에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깁니다.”(김승연 회장) 김 회장은 동관(22)-동원(20)-동선(16) 등 3세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한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체육활동을 오히려 권한다. 이는 선친에게서 받은 자식 교육에서 비롯된다. 김종희 창업주는 평소에 “남자는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워보고 그래야 해. 어차피 될 놈은 무엇을 하든 간에 나중에 제대로 되니까. 남자의 과정은 여자와 다르지.”라고 했다고 한다. 선친의 기대 때문일까. 자식들 모두 수재인 데다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김 회장은 경기고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 드폴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호연 회장도 경기고와 서강대, 일본 히도쓰바시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또 전인교육을 강조한다.“교육 문제는 집사람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어 저는 큰 방향만 잡아줄 뿐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공부뿐 아니라 지·덕·체를 고루 갖췄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바람입니다.” 3형제도 김 회장의 기대대로 공부뿐 아니라 체육과 문화 활동에 관심이 크다. 특히 막내 동선은 취미로 시작했던 승마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지금은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남 동관은 미국 하버드에 재학 중이며, 차남 동원은 예일대, 막내 동선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재계에서 손꼽히는 2대째 미국통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주와 김승연(53) 한화 회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국의 마당발’이다. 그룹 모체인 화약부문이 방위산업과 연관이 많은 데다 창업주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한미군 및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또 김 회장은 한·미교류협회 회장으로서 선친의 인맥을 미국 정계로 더욱 발전시켰다. 부자는 자연스럽게 ‘다이너마이트 김과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로 불렸다. 리처드 워커 전 주한 미국 대사와의 2대(代)에 걸친 약속은 한화 김씨 부자의 미국 인맥 관리를 잘 보여준다. 창업주는 워커 전 대사의 60세 생일 잔치를 한국식 환갑 잔치로 열어주기로 했지만 1981년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이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인 김 회장이 82년에 환갑 잔치를 열어줌으로써 선친의 약속을 지켰을 뿐 아니라 워커 전 대사의 팔순 잔치도 2002년 서울에서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20년 이상의 약속을 대를 이어 지킨 셈이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선친은 1960년 말부터 워커 전 대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워커 전 대사가 두세달 빨리 태어나 워커 대사는 한국의 미풍양속에 따라 자신이 형님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선친은 또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미군사령관과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세 사람은 자주 만났고, 만남의 횟수만큼 우정도 깊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커 전 대사의 아내였던 세니도 모친(강태영 여사)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김 회장은 또 한·미교류협회를 만들어 미국 인맥을 더욱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데니스 헤스터트 하원 의장,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체니 부통령, 얼 포머로이 민주당 의원, 클린턴 전 대통령 등과 꾸준히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인연은 2002년 미국 하원에서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결의서가 통과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할머니 초딩들 “까막눈 뜨니 희망의 빛”

    성인 대상 학력인증학교인 양원초등학교에 다니는 늦깎이 학생들이 방학숙제로 낸 생활수기 내용이 눈물겹다. 한 학기 동안 익힌 한글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써내려간 수기에는 전쟁과 가난으로 배우지 못한 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가난 탓에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한 변두리(64·여)씨는 15세에 대구의 한 직물공장에서 일하면서 까막눈의 설움을 처음 느꼈다. 작업설명서를 읽지 못해 실수를 거듭했다. 연애편지조차 친구에게 대독과 대필을 부탁해야 했다. 결혼해 남편과 차린 음식점에서는 계산을 못해 거스름돈을 많이 내주기도 했다. 그 때마다 가족이 힘이 됐지만 결혼 12년 만에 낳은 아들이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고, 남편마저 충격으로 세상을 등지면서 시련이 닥쳤다.‘무식한’ 탓에 집과 가게까지 이웃에게 손해보고 팔아버린 그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었다. 변씨에게 희망의 빛줄기가 된 것이 배움의 기회였다. 이제 웃음과 희망을 되찾은 그는 “학교가 아니었다면 고통 속에 부모를 원망하고 신세를 한탄하다 지금쯤 죽었을지 모른다.”면서 “마음 속 생각을 일기장에 적는 내 자신이 너무 신기하다.”고 썼다. 무려 14장에 걸쳐 한풀이하듯 인생 역경을 풀어낸 하종심(58·여)씨는 “쓰고 싶은 건 뭐든지 쓸 수 있게 해 보자.”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공부한다고 했다.6·25전쟁을 겪으며 배움의 기회를 놓친 뒤 할머니의 손에 자란 하씨에게 공부는 사치였다. 할머니가 시력을 잃은 12살 때부터는 생계를 떠안아야 했다. 지금도 밤새 청소일을 하느라 한숨도 자지 못하고 곧바로 책과 씨름하는 그는 “전쟁이 내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에 세상이 원망스럽지만 늦게라도 공부할 수 있어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했다. 어려서 몸이 약해 학교를 다니지 못한 한윤남(57·여)씨는 수십년 동안 은행에 갈 때면 가슴이 턱턱 막혔다. 눈이 잘 안 보이는 척 옆 사람에게 부탁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과 함께 은행 일을 보곤 했다. 그는 “지금은 사람들을 붙잡고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대학에서 신학을 배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1학년 2반 담임교사인 고예곤씨는 “모질게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일어선 분들의 글을 읽으며 가슴이 뜨거웠다.”면서 “뒤늦게 시작한 배움을 통해 인생이 장밋빛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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