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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심학교 청각장애 야구팀 ‘소리없는 함성’

    “고교 졸업후에도 당당하게 야구선수로 뛰는 모습을 보여줘 후배들과 많은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던져주고 싶습니다.” 국내 최초 청각장애아로 구성된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 에이스이자 중심타자였던 장왕근(19)군. 열정만은 어떤 선수에 뒤지지 않지만 요즘 진로고민 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다.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선수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중단해야 될지 갈림길에 놓여 있어서다. 졸업예정자 8명 가운데 평택복지대학 입학이 확정된 포수 출신 이현철(19)군을 제외한 6명도 사정이 딱하기는 마찬가지. 3년전 야구팀을 처음 만들어 일반대회에 출전했을 당시 이들은 시련과 좌절을 넘어 장애와 편견을 이겨낸 ‘희망의 전도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들은 요즘 현실의 높고 차가운 벽에 부딪혀 참담함을 맛보고 있다. 이들을 선뜻 받아줄 곳이 많지 않고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조일연(52) 성심학교 교감은 이들의 뜻을 꺾지 않으려고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실업팀 창단을 위해 서울시청과 충북도청, 강원랜드 등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팀을 만들기 어렵다는 공허한 답변만 돌아왔다.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 사장으로 있는 재일동포 사업가 손정의씨에게 여러 경로로 창단을 부탁했지만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에게도 선수 한명이라도 2군 연습생으로 키워달라고 ‘SOS’를 쳐놓은 상태다. 다행히 최근 국제디지털대학 사령탑을 맡은 감사용(48)씨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감 감독은 선수를 보내주면 열심히 지도해 프로팀에 진출시키겠다며 두차례나 충주 성심학교를 찾았고 특히 장군에게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장군은 184㎝,84㎏의 좋은 체격조건에 지난해 4월 ‘아름다운 꼴찌팀’ 서울대 야구부와의 친선경기 때 홈런을 때렸을 정도로 파워도 겸비한 선수. 하지만 학비 일부를 면제해 주겠다는 ‘장학생’ 영입 약속에도 장군 등 졸업 예정자들은 감 감독의 이런 제안이 ‘그림의 떡’이다. 글러브와 배트 등 장비구입비와 각종 대회 출전에 따른 경비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가정형편이 힘들기 때문. 장군은 동생 영태(16)가 성심학교에서 야구를 하고 있고 부모님 모두 같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어 대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딱한 처지다. 연합뉴스
  • 한국 가톨릭 최초의 추기경

    한국 가톨릭 최초의 추기경

    약간 노르스름한 얼굴, 코와 입이 특징적이다. 계획을 묻자『뭘 했으면 좋을지 기자 양반 의견 좀 듣자』고, 상당히 여유있는 일면도 보인다. 빈농(貧農)의 아들로 태어나「전하」로까지 발돋움한 김수환(47) 추기경(樞機卿)을 명동성당 안의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한국 가톨릭 2백년 역사상 최초의 추기경 서품 결정 3월 28일 한국의「가톨릭」192년 최고 최대의 경사를 맞았다. 서울대교구의 김수환 대주교가「로마」교황「바오로」6세로부터 추기경(카디발)의 서품이 결정되었다. 김수환 대주교는 1946년 중국의「티엔」대주교, 53년 인도의「그라시아스」대주교, 60년「필리핀」의「산토스」대주교, 일본의「다쓰오·도이」대주교가 추기경 서품을 받은 이래 동양인으로는 다섯 번째로 추기경으로 임명된 것. 『한국의「가톨릭」도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건 나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한국과 한국 천주교의 영광이라 해야겠습니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도무지 얼떨떨하군요』 얼떨떨한 듯했으나 기쁨의 빛 또한 역력했다. 지난 해 5월 30일 사상 최연소의 대주교로 착좌(着座)한 김대주교는 착좌 10개월 만에 다시 내려진 추기경이라는 벅찬 영광이 중압스러운 듯, 크게 파안(破顔)했다. 추기경은 천주교회에 있어 교황 다음가는 성직자. 추기경 회의나「로마」교황청의 여러 성성(聖省)에 있어 교황의 고문역 또는 협력자로 교회 일반행정에 직접 참여한다. 특히 추기경은 교회 전반의 행정임무, 교황 선거권 및 피선거권 그리고 공의회(公議會)의 의결권을 가지며「로마」교황청의 여러 성성과 관청의 장관 및 구성원이 될 자격이 부여됨은 물론 교황이 특파하는 대사로도 임명될 수 있다. 추기경에는 보통「전하(His Eminention)」라는 존칭이 부여되며 외국여행 때「가톨릭」교국에서 국빈(國賓)으로, 기타 국에서는 VIP로 우대된다는 것. 김추기경의 표현을 빌면 5억의 신자를 가진「가톨릭」교회를 하나의 제국으로 가상할 때 추기경은 그 제국의 왕자이다.「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고「사랑의 봉사」에 몸을 내던질 각오와 사명을 한층 뿌듯이 절감케 된다고 - . 3월 29일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김추기경은 30일 상오 10시 명동성당에서 일요「미사」를 집전했다.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현대 교회의 진로를 연구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항상 주장하는 그는 이날의 강론에서『오늘의 혼란된 세계를 구출하기 위해 사랑과 믿음으로「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할 것』을 역설했다. 교회도 사회도 개인도 모두『방향감각을 잃고 있다』는 것이 김추기경의 탄식. 가난한 농군 아들로 2차대전 땐 사경(死境)겪고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가난한 농부 김영석(金永錫)씨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때부터 독실한 교인인「가톨릭」교도 집안. 일본 상지(上智)대학 재학시절 학병으로 끌려가 미군포로가 되는 등 젊은 날은 거듭되는 시련과 회의 속에서 보냈다. 51년 성신(聖神)대학을 졸업, 30세에 신부의 서품을 받았으며 56년엔 서독에 유학,「뮌스터」대학에서 6년 동안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이름 모를 남양의 어느「정글」속에서 종전을 맞은 그는 미군포로가 되어 본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숱한 사경을 헤맸다.「라틴」어는 물론 영·독·불어에도 능통한 그의 어학 실력은 이 미군포로 시절에 다져진 것이라는 것. 『현대는 정신상실의 시대입니다. 교회가 이러한 시대 조류에 무감각할 수는 없어요. 현 시점이야말로 우리(교인)가 누구보다 먼저 자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안이한 생각을 버려야 돼요』 추기경은 보통 홍모(紅帽)와 인의(仁衣)를 입는다. 휘장도 대주교 것보다는 훨씬 호화로운 것으로 바뀐다. 그러나 김추기경은 휘장도 옷도 그대로 지금의 것을 따르겠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엔 약 76만 명의 천주교 교우가 있다. 이중 대주교는 5명, 주교는 11명이며「몬시뇰」5명, 신부 808명, 수녀 2,229명, 수사 238명의 성직자가 있다.(68년 10월 현재) 김대주교가 47세로 추기경이 된 것은「아시아」사람으론 비교적 빠른 셈이지만「이탈리아」의 어느 대주교는 35세에 추기경이 된 적도 있다. 이번에「바오로」6세에 의해 발표된 새 추기경은 모두 35명. 이로써「로마·가톨릭」교의 추기경 총수는 교회사상 가장 많은 136명으로 늘어났다. 항상 입가에 흘리는「캐치·워드」로「바울」서 26장 28절『여러분과 모든 이를 위하여』를 외는 김추기경은 무엇보다 온후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장년신사. 궐련의 자연(紫煙)을 조용히 내뿜으며 30분 동안의「인터뷰」를 달변으로 일관했다. ”가족계획 자체 반대 않아, 신앙은 개인의 자각으로” - 오늘의 신앙이 지양해야 할 궁극적인 길은? 『사회적인 신앙의 시대에서 우린 지금 인격적인 신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신앙은 결국 개인의 자각으로 인격적인 요소에 의해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영세 받은 신자에게 재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은 내 오래 전부터 주장해 온 지론이다』 - 산아제한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가족계획 자체를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과 경향을 올바로 잡자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부유한 집에서 오히려 산아제한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곧 가정의 붕괴·도의의 퇴폐를 뜻한다. 가정이 정신적으로 퇴폐해질 때 그 사회가 정화되고 안정되길 바랄 수 없는 것이다』 -「히피」들을 어떻게 보는지? 『미국서 보았는데「히피」가운데 대다수의 아이들이 상류가정의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행위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적인 성격의 폭발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요즘 사회문제로 자주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와 이들「히피」의 행위와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인가. 현대의 성년들에게 보다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 선데이서울 69년 4/6 제2권 14호 통권 제28호 ]
  • [주말에 뭘 보러갈까]

    <연극> ■갈매기 5~30일 정동극장. 지루하고 어려운 체호프 대신 쉽고 재밌는 체호프를 표방한 새로운 해석의 무대로 지난해 초연 당시 호평을 받은 작품. 몇몇 주역을 제외하고 전년 멤버가 그대로 출연한다. 전훈 연출, 송옥숙 남명렬 김호정 출연.(02)751-1500. ■고양이늪 1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광기와 집착에 사로잡혀 파멸로 치닫는 여인의 이야기. 아일랜드 여성극작가 마리나 카의 대표작으로 국내 초연이다. 한태숙 연출, 서이숙 지현준 공호석 출연.(02)744-7304. ■코끼리 사원에 모이다 4∼27일 동숭아트센터소극장.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 동물원에 모여든다. 노동혁 작·남동훈 연출, 박성준 곽자형 출연.(02)764-8760. ■러브레터 12월31일까지 한양레퍼토리시어터. 두 남녀가 일생을 통해 편지를 주고 받으며 엮어가는 사랑이야기.A.R. 거니 작·최형인 연출, 이호재 설경구 최형인 정경순 출연.(02)764-6460. <뮤지컬> ■바리 4~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자신을 던져 병든 나라와 죽어가는 아비를 구한 바리공주 신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가무극. 바리 신화의 드라마틱한 서사에 동서양의 음악과 몸의 언어를 얹었다. 김정숙 작·유희성 연출, 신영숙 홍경수 출연.1588-7890. ■나비의 현기증 4∼13일 극장 용. 연극, 무용, 아크로바트가 결합된 종합예술로 벨기에 서커스극단 페리아 뮤지카의 아시아 초연작.1544-5955. ■헤드윅 무기한 라이브극장. 동독 출신 트랜스젠더 가수의 성 정체성 고민을 풀어낸 록 뮤지컬. 이지나 연출, 송용진 김다현 엄기준 서문탁 출연.1588-7890. ■아이 러브 유 무기한 연강홀. 사랑에 관한 스무개의 에피소드를 엮은 로맨틱 뮤지컬. 한진섭 연출, 남경주 이정화 오나라 정상훈 출연.(02)501-7888. ■비밀의 정원 12월31일까지 백암아트홀. 역대 뮤지컬 명곡들과 명장면들에 새로운 스토리를 입혔다. 남경주 연출, 최정원 출연.(02)501-7888. <미술> ■필로프린트 판화전 4~10일 서울 현대백화점 미아점 갤러리. 판화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의 모임인 ‘필로프린트’의 18회 정기전. 판화의 저변 확대와 판화미술의 발전을 위해 창작에 열을 올리는 서정화, 김혜경, 신우희, 박성미, 이영기, 장진봉씨 등의 작품이 선보인다. 이들 작품외에 중국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02)2117-2117. ■백순실전 가을에 딱 어울리는 황토빛의 그림들로 가득찼다. 차(茶)에 대한 애정을 화폭에 담아온 그녀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동다송(東茶頌)시리즈를 선보인다. 소리로 치면 남도 민요가 흘러 나오고, 영화로 치면 서편제를 보는 듯한, 한국적인 미가 물씬 풍긴다.15일 서울 인사동 노화랑.(02)2117-2117. ■박수근가(家) 3대에 걸친 화업의 길 경매를 열면 항상 최고가를 기록하는 한국 최고의 화가 박수근의 장녀 인숙, 장남 성남, 장손 진흥씨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5일∼2006년2월26일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 미술관.(033)480-2655. ■김경렬전 한국의 나무들을 주소재로 하여 우리의 삶을 되새겨 보는 자리. 겨울 시련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 넓은 그늘로 쉼터를 만들며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느티나무 등 우리 삶속에 살아있는 나무들을 그린 유화 17점이 전시된다.8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02)736-1020. <클래식>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7~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중후하고 화려한 색채, 폭발적인 사운드로 음악의 제왕으로 불리는 베를린 필의 21년만의 내한 공연. 영국출신 젊은 거장 사이먼 래틀경의 영입으로 새롭게 변신한 베를린 필의 모습을 확인하는 자리가 될 듯.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을 비롯, 서양음악의 걸작품들을 연주한다. 토마스 아데의 ‘아쉴라’는 한국초연.(02)6303-1915. ■정명훈&아시아 연합오케스트라 6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031)729-5615. ■히사이시 조&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O.S.T콘서트 3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031)729-5615. <어린이> ■하마가 난다 11월13일까지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룬 라이트 형제와 조선시대 발명가 정평구의 이야기.(02)382-5477.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돌아온 ‘원조 에로스타’ 안소영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돌아온 ‘원조 에로스타’ 안소영씨

    우리나라 최초의 심야 상영 영화를 아시나요. 시곗바늘을 20여년 전으로 되돌려보자.1982년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 한 해였다. 자정까지 제한된 통행금지가 해제됐고 두발 자유화가 실시됐다. 또 전국적인 교복 자율화 조치도 이때 결정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른바 3S(Screen,Sex,Sports) 정책에 의해 일련의 문화적 잠금장치를 푼 것. 따라서 성 묘사에 대한 까다로운 검열장치도 자연스럽게 완화됐다. 이때 깜짝놀랄 영화 한 편이 등장한다. 바로 ‘애마부인’이다. 우리나라 에로영화의 효시로 지난 54년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의 키스장면이 나오는 ‘운명의 손’(한형모 감독) 이후 가히 혁명적 사건일 만큼 과감한 노출로 영화 팬들을 흥분시켰다. 그해 3월27일 자정, 서울극장에서는 ‘애마부인’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심야 상영하게 된다. 이날 밤 좌석수 1500석인 극장에 500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아수라장이 됐다. 매표소가 박살나고 경찰까지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 이처럼 당시 ‘애마부인’은 통금해제에 편승, 수많은 청춘들을 심야극장으로 끌어들였다. 뿐만 아니다. 개봉 첫해에 31만명의 관객을 동원, 그해 한국영화 개봉작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이후 ‘애마부인’은 한국 영화 사상 최다인 무려 13편의 속편이 제작되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아울러 숱한 ‘애마걸’이 등장하면서 갖가지 스캔들까지 뿌렸다. 또 ‘산딸기’‘빨간앵두’‘뼈와 살이 타는 밤’ ‘피조개 뭍에 오르다’‘어우동’‘변강쇠’‘뽕’ 등의 에로영화가 봇물처럼 스크린을 장식했다. ‘애마부인’은 이래저래 우리 사회의 변천사와 궤적을 같이했고 추억의 팬들에겐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제목의 ‘애마’는 ‘愛馬’가 아니라 삼베를 사랑하는 ‘愛麻’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애마부인’이 다시 거론된다. 그 주인공이 컴백하기 때문이다. 안소영(46·본명 안기자)씨. 미국에서 살다가 지난 5월 7년 만에 귀국했다. 최근에는 누드화보집을 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프랑스 영화 ‘엠마뉴엘’과 ‘차탈레 부인의 사랑’의 실비아 크리스텔이 떠오른다. 이른바 한국의 실비아 크리스텔로 비유되는 안소영.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영화에서 적극적인 섹스를 추구하는 여인으로 파격 등장했다. 이로 인해 나름대로 한(恨)많은 인생길을 걸어왔다. 늘 벗어야 하는 배우로, 또 ‘큰 가슴’이라는 고정된 시선과 굴레를 동시에 안고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 안씨는 지난 76년 연기 인생을 시작해 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또 98년 미국으로 훌쩍 떠나 뉴저지주에서 ‘황부자 순두부집’을 운영하며 아들과 둘이 외롭게 지냈다. 틈틈이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연기의 본능을 참지 못했고 결국 귀국을 결심했다. 돌아오자마자 KBS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에 출연했고, 지난 8월에는 누드화보를 찍었다. 서울여대 사진학과 교수인 안씨의 동생과 함께 서울과 제주에서 촬영했다. 안씨는 요즘 ‘내나이 마흔일곱’을 위해 특별한 것을 마련하고 있다. 내년에 데뷔 30년을 맞는다. 그래서 뮤지컬과 영화출연을 위해 차분히 준비 중이다. 뮤지컬 제목은 ‘뜨거운 홍차를 같이해’이며 내년 3월 대학로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서 주인공 히피소녀를 맡아 노래와 연기력으로 승부를 걸 각오다. 영화는 ‘안소영 세대에 바친다’는 주제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이 다 끝났다. 벗는 배우의 굴레를 벗고 나이에 걸맞은 제2의 배우인생으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커피숍에서 안씨를 만났다. 머플러와 체크무늬 상의가 가을날 햇살과 잘 어울렸다. 먼저 근황을 물었다.“일주일에 3일은 서초동의 예술의 전당을 찾아요. 뮤지컬 자료를 얻기 위해서지요.”라고 대답했다. 뮤지컬은 목소리도 따라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지체없이 “옛날부터 뮤지컬을 하고 싶었어요. 성대가 약하긴 하지만 폐활량을 높이기 위해 매주 일요일마다 등산을 통해 체력훈련하고 있지요.”라고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청계산을 찾는다는 것. 때마침 아들한데 전화가 걸려온다. 숙제가 끝나면 할머니를 모시고 공원 산책을 나가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아이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아니, 아직도 그런 질문 하나요. 그냥 미혼모로 알아주세요.”라고 하면서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아들과 서로 의지하며 잘 살고 있거든요.”라고 약간 역정을 낸다. 이어 미국 생활 얘기가 나왔다. 그는 97년 미혼모가 됐고 ‘안소영 컬렉션’이라는 의상실 경영도 어려워져 미국 뉴저지로 떠났다. 아는 사람이라곤 동생 지인들이 전부. 처음에는 의류명품점을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아들이 워낙 순두부를 좋아해 순두부집을 2년 동안 운영하게 됐다. 아들 이름이 황도연. 부자되라는 뜻에서 ‘황부자∼’로 지었다. 운동화끈을 조여매고 주방이며 손님 접대며 밤 10시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하다보니 힘들어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고백했다. 안씨에게 ‘애마부인’은 어떤 모양으로 남아 있을까.“어쩔 수 없이 출연했고 그로 인해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왔어요.”라고 했다. 그래서 애정보다는 ‘애증’이 가득한 작품이라고 했다. 자신의 본질적 연기는 그게 아닌데 늘 ‘애마부인’으로 고정시선을 받는 게 정말 싫었고, 또 행복보다는 시련과 굴곡이 더 많았다고 했다. 아이에게도 배우라는 점을 당당히 얘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그렇게 투자를 많이 했건만 ‘애마부인’이란 족쇄로 얻는 것이 별로 없었다. 안씨는 “그 영화 이후에는 감독마다 다들 벗으라고 해 정말 싫었어요.”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만큼은 달랐다고 했다. 추억 한토막.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촬영현장을 따라다니던 안소영은 중학교때 처음 임 감독을 만났다.“소영이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어.”라는 얘기를 들어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애마부인’을 찍고 나서 “너무 어이가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86년 임 감독의 ‘티켓’에 출연한 안씨는 “감독님 제발 벗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었다. “원래 저는 순수 연극을 좋아했어요. 이해랑 선생님의 연극 ‘죄와벌’(극단 신협)에서 노주현씨랑 처음 연기를 했거든요.” 안씨는 어릴 적 원로 배우 김지미씨를 좋아했다. 김씨가 웃을 때 입이 약간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거울 앞에서 흉내를 내곤 했다. 중학교 때부터 서울 충무로의 배우전문학교에 다니며 영화계 사람들과 자주 만났다. 고교 졸업 때에는 기자가 되려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 응시했으나 떨어져 인생팔자가 연기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하자 “남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해요. 어떤 기대감도 없고요. 아이와 살면서 그 속에서 행복을 얻으면 되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들처럼 결혼해서 한 아내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성격상 맞지 않는다는 것. 안씨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살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미국이나 타이완에서 순두부집을 곧 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순두부는 보통 한국식이 아니라 양념이나 재료에 많은 정성을 쏟아붓는 특별 순두부라고 했다. “제게 연기를 위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요.‘독짓는 늙은이’의 편안한 시골여인처럼 살고 싶어요. 화려함이 아닌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말입니다. 또 나이 60에는 제 인생의 누드화보 전시회를 꼭 열 생각입니다.” km@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59년 서울 출생 ▲78년 정화여자상고 졸업 ▲76년 ‘내일 또 내일’로 영화 데뷔 ▲77년 연극 ‘죄와 벌’ ▲주요 출연작 오늘밤은 참으세요(81년) 애마부인(82) 달빛 멜로디(84) 여자가 두번 화장할 때(84) 자유처녀(85) 합궁(88) 그 섬에 가고 싶다(93)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95) 등 17편
  • 시련의 부시

    ■ 민주·공화, 백악관 개편·대국민 사과 요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언론에 유출시킨 이른바 ‘리크게이트’의 수사 결과가 28일(현지시간) 발표된 이후 오히려 정치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유출 당사자로 지목된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는 기소되자마자 사임했지만, 그것이 문제의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 된 것 같다. 민주당측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이 리크게이트와 관련, 아무런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는다면서 대국민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또 특검의 조사를 계속 받고 있는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사임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당의 상원 원내대표인 해리 레이드 의원은 30일 ABC와 CNN에 출연,“부시 대통령이 리비 전 실장의 기소 직후 기자회견에서 그를 애칭인 ‘스쿠터’라고 부르며 법원 판결 전까지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고 두둔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특검수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비난했다. 레이드 의원은 로브 부비서실장의 사임이나 해임을 촉구, 민주당측이 앞으로 로브에 대한 정치공세를 강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공화당 정권 내에서도 균열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공화당의 척 슈머 상원의원 등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인한 정치적 위기 당시 보여준 것처럼 백악관 내부 조사를 통해 잘못을 시인하고 초당적인 인물들로 백악관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리크게이트의 여파로 부시 대통령이 가장 많은 말을 듣는 체니 부통령과 로브 부실장,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에 대한 신임을 다소 상실했다고 백악관 보좌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타임은 이어 “부인 로라를 제외한 대통령의 모든 관계가 최근 훼손됐다.”면서 “신뢰를 잃지 않은 유일한 인사는 국내 정치와 무관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라고 전했다. 한편 체니 부통령이 계속 조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워싱턴 정가에 나도는 가운데 인터넷 매체인 드러지리포트는 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가 리비 전 실장의 재판에 체니 부통령을 증인으로 출석시킬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dawn@seoul.co.kr ■ 아시아·중남미서 노골적 반미정책 확산 부시는 대외정책에서도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늑장 대처, 리크게이트 등의 여파로 국내정치에서 발목을 잡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외정책에서도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국은 연말까지 외교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힘빠진 부시 정부가 헤쳐나가기엔 만만찮은 도전이라고 WSJ가 31일 지적했다.3년 전만 해도 냉전 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전성시대를 여는 듯했으나 이제 중동, 아시아, 중남미할 것 없이 세계 곳곳에서 패권 유지에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중동의 ‘눈엣가시’ 이란과는 최근 ‘대화를 통한 접근’ 정책으로 선회했지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강경자세로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갈림길에 접어든 이라크전에서도 힘든 결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라크 제헌의회가 공식적으로 닻을 올린 후 ‘승리’를 선언하고 발을 빼든가, 아니면 몇년 이상 계속 미군을 주둔시켜 힘겨운 사후처리를 하든지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오는 12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아시아 13개국이 “우리도 태평양국가”라고 주장해온 미국을 빼고 첫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열 예정이지만 속수무책으로 쳐다만 보고 있다. 미국은 최근 중국의 약진으로 아시아 지역의 영향력에 타격을 입고 있는 상태다. 미국은 위안화 절상과 무역역조 시정 등 중국과의 현안 조정에도 애를 먹고 있다. 미국의 앞마당으로 불리는 중남미에서도 반미·탈미 움직임은 확산 중이다. 지난 5월 미주기구(OAS) 사무총장에 미국이 미는 후보가 처음 낙선한 게 대표적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열린세상] 어느 퇴역 부사관에게 보내는 편지/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김원사님, 그 동안 적조했습니다. 군을 떠나신 지도 어느 덧 한 해가 다되어 갑니다. 소년병으로 시작해 햇수로 38년이나 계셨던 군 생활을 그만두셨으니 병영 밖에서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가 않네요. 이른 새벽 일어나는 습관은 여전하실 테고요. 부모 곁을 막 떠난 어린 청년들을 제대로 된 해병으로 만드느라 바빴던 나날 때문에 요즘 하루하루가 지루하진 않으신지요? 동해안의 여느 부대 주임원사로 계실 때 뵈온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이제야 말씀이지만, 바닷바람에 깊게 패인 이마의 주름살에서 그 어떤 장군의 별들보다도 더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살아오신 외길의 ‘연륜’을 그대로 볼 수 있었지요. 지난주 익산의 육군부사관학교에 다녀왔습니다. 강연 대상이 부사관 그룹이라는 사실만 알고 새벽 기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강당에 들어서니 전국 각지에서 오신 원사님과 주임원사님들이 그득했어요. 강단에 올라 인사를 하려 하니 목부터 잠겨 오더군요. 여태껏 우리 군에 그토록 많은 원사들이 계시는지도 몰랐던 제가 인생 선배인 그분들에게 뭘 가르치겠습니까? ‘진작 뵈러 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게 제 첫마디였습니다. 요즘 추진 중에 있는 ‘국방개혁 2020’에 대해 설명하며 김 원사님이 들으시면 어떤 표정이실까 궁금했습니다. 지금 우리 군은 창군 이래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엄청난 개혁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매년 1만명씩이나 줄어나갈 병력 감축이나 군 구조의 재편, 그 속을 뜯어보면 볼수록 우리 군의 구석구석에 커다란 파장을 끼칠 내용들입니다. 무엇보다 병영 환경의 놀랄 만한 개선 소식은 어려운 군 생활을 했던 중장년 세대에게 요사이 제법 술안주거리가 된다고들 하네요. 이런 소식에 김 원사께서는 부사관들의 처우 개선이나 역할 확대가 미흡하다고 섭섭해하진 않으셨나요? 제가 오늘 이 글을 쓸 용기를 낸 것은 나름대로 김 원사님의 후배들이 명실공히 군의 허리로서 갈수록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확신에서입니다. 미래 전장에서는 정예기술군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문성을 갖춘 부사관들의 임무 영역은 늘어갈 수밖에 없고, 우수한 인력 풀로 만들기 위해 국가도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실제로 ‘국방개혁 2020’ 과정에서 장교나 사병 수는 줄어들지만 부사관급은 외려 늘어날 모양입니다. 더욱이 미래의 전쟁은 지·해·공군이 통합 전투력을 발휘하는 합동 전장에서 전개됩니다. 이번 국방개혁도 우리 군에 부족한 합동성을 강화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난주 육군부사관학교의 강당에는 육·해·공군 원사들이 한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또 소속해 있는 자군만을 논하는 이도 하나 없었습니다. 합동성의 과제가 어려운 것만은 아니구나 하며 내심 놀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머잖은 장래에 김 원사님의 젊은 후배들이 ‘국군전문사관학교’에서 ‘전문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커가기를 바랍니다. 추억의 하사관학교에서 등장하던 매서운 기합이 줄어들어 군기가 다소 빠져 보일 수도 있겠지요. 전문적인 식견이 있답시고 어깨를 펴고 잘난 척하는 후배가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너무 속상해하지는 마십시오. 김 원사님의 깊게 팬 구릿빛 시련의 연륜이 있었기에 그들의 밝고 당당한 얼굴이 있을 수 있음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날씨가 찹니다. 겨울바다에서 수영하시던 시절만 생각하고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에 조심하세요. 그래야 잘난 후배들한테 원조 ‘해병혼(海兵魂)’에 대해 소주 한 잔을 곁들여 일장 훈시도 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다시 뵈올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스포츠 라운지] 日씨름대회 태백·금강급 통합장사 이성원

    [스포츠 라운지] 日씨름대회 태백·금강급 통합장사 이성원

    1986년 가을 충남 보령 청라초등학교 운동장. 다부진 체구의 한 아이가 또래 친구와 주먹다짐을 벌이는 걸 본 씨름 코치가 둘을 불렀다. 코치는 주먹질은 그만두고 모래판에서 씨름으로 승부를 가르는 건 어떠냐며 권했다. 지는 건 죽는 것보다 싫었던 아이는 이를 악문 채 밀어치기로 가볍게 친구를 꺾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 아이를 바라보던 코치의 눈은 대어를 낚은 듯 번뜩였다.‘모래판의 재간둥이’ 이성원(29·구미시체육회)은 이렇게 해서 샅바를 잡았다. 이성원은 “그땐 한창 민속씨름 바람이 불 때이기도 했고 또래에 비해 몸도 약해서 운동을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그게 ‘7전8기’ 씨름 인생의 험로로 들어서는 첫걸음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만년 ‘2등 인생’ ‘2등 인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됐다.5학년 때 충남도민체전에 나가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올랐지만 대전에서 온 한살 위 선수를 만나 무릎을 꿇었다.5학년 내내 유독 그 선수에게만 지면서 2등만 했다. 그 선수가 졸업한 6학년 때 1등을 독차지하며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에서 장사가 나왔다는 소문까지 돌았지만 씁쓸함을 감추기는 힘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소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균형을 쉽게 잃지 않을 만큼 몸이 유연하고 안다리 기술만은 국내 최고라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 이성원은 1999년 2월 LG에 입단했다. 하지만 당시 씨름에는 백두급(100㎏ 이상)과 한라급(100㎏ 이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177㎝,90㎏의 왜소한 체구(?)에서 나오는 그의 기술은 ‘탱크’ 김용대(29·현대삼호)와 모제욱(30·LG) 등 10㎏가량 무거운 상대들에게 통하지 않았다.2000년 5월 하동대회부터 이듬해 8월 진안 올스타전까지 무려 5차례 연속 준우승. 이성원은 “하루 대여섯 끼를 억지로 꾸역꾸역 먹으며 8㎏가량 불리기도 했지만 몸이 감당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상에 오르니 이번엔 팀 해체 2003년 2월 금강급(80.1∼90㎏)이 부활됐다. 씨름인들은 모두 이제 이성원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아니었다.‘기술의 달인’ 장정일(28·현대삼호)이 혜성같이 등장한 것. 같은 해 3월과 4월 영천과 진안에서 장정일에 이어 다시 2위에 머물렀다. 이성원은 장정일의 작은 버릇 하나까지 공책에 적어두며 연구했고 마침내 6월 장성대회에서 생애 첫 꽃가마에 올랐다. 이성원은 두 뺨위로 흘러내린 눈물이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독한 불운은 끝이 아니었다. 이듬해 6월 의정부대회를 제패하며 전성기를 열었던 이성원에게 12월 팀 해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프라이드 진출할까, 아르바이트 할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작은 체구도 통하는 격투기 프라이드 무대로 가볼까 하다 나이 탓에 고개를 저었고 상자 나르기 아르바이트라도 해볼까 고민까지 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곳은 모래판뿐이라는 생각에 담금질을 계속했다. 지난해 7월 이성원을 눈여겨봤던 김종화 감독이 불러줘 월급 500만원의 조건으로 구미시체육회에 입단했고, 다시 땀을 흘린 지 석달 만인 지난 22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장사대회 태백·금강급에서 통합장사에 오르며 끝모르던 시련과 이별을 고했다. 이성원은 “상금 500만원으로 가족과 함께 동해안 여행이라도 다니면서 모든 불운을 바다에 버리고 오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글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NPB] ‘승짱’ 몸값도 ‘짱’

    ‘아시아 홈런킹을 잡아라.’ 이승엽(29)이 신들린 방망이로 일본프로야구의 만년 하위팀 롯데를 31년 만에 재팬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자 그의 주가가 폭등세다. 이 때문에 이승엽의 향후 진로가 새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승엽은 올해로 롯데와의 2년 계약이 끝난다. 이승엽은 그동안 “롯데에 남고 싶다.”고 말했고 롯데도 “이승엽을 잡겠다.”고 언급해 이승엽의 롯데 잔류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상황은 사뭇 달라졌다. 우선 이승엽이 지난해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좌투수 공포’에서 벗어났다. 또 팀내 홈런 1위(30개), 타점 1위(82개)로 명실상부한 외국인 거포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도 지난 26일 끝난 재팬시리즈 4경기에서 홈런 3방을 터뜨리며 5할대의 ‘괴력’을 뽐내면서 다른 구단들의 군침을 한껏 돋운 것. 특히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주니치 드래건스, 한신 타이거스 등 센트럴리그의 부자구단들이 이승엽의 진가를 인정, 영입 작전에 뛰어들 태세다. 이들 구단은 올해 처음 도입된 인터리그 경기에서 이승엽이 홈런 12개를 폭발시키며 ‘인터리그 홈런왕’에 오른 데 주목한다. 그러면 이승엽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롯데는 이미 올시즌 연봉 20억원(2억엔)을 크게 웃도는 2년간 50억원(5억엔)을 제시했다.이승엽은 내년 몸값으로 최소 25억원을 보장받았다는 얘기다. 현재 퍼시픽리그 외국인타자 가운데 연봉 20억원 이상을 받는 선수는 모두 5명. 이승엽 외에 호세 페르난데스(2억엔), 알렉스 카브레라(4억엔 이상 세이부), 홀버트 카브레라(2억 8000만엔) 바티스타(5억 2000만엔 이상 소프트뱅크) 등이다. 롯데와 요미우리 등이 이승엽 줄다리기를 벌일 경우 이승엽의 연봉은 30억원 이상 치솟을 공산이 크다. 이승엽이 재팬시리즈를 통해 ‘전국구 스타’로 부상하면서 일본 잔류쪽에 더욱 무게가 실린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승엽의 간절한 꿈인 메이저리그 진출과 친정팀 삼성으로의 ‘U턴’을 결코 배제할 수는 없다. 새달 10일부터 열리는 아시아시리즈 이후 빨라질 이승엽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김민수기자 kimm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아·장애인 사랑 50년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고아·장애인 사랑 50년 말리 홀트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인생은 둥글다고 했던가. 그래서 가운데와 언저리가 있단다. 한번 왔다가 가는 인생, 기왕이면 가운데에서 살아봄이 어떨까. 문득 ‘니나 붓슈만’이란 여인이 생각난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이다. 말 그대로 생의 한가운데 서서 삶을 두려움 없이 온전히 받아들인다. 파란과 곡절의 인생항로, 우수와 슬픔, 그 어떤 고난도 극복하는 자기 신념이 강한 여성이다.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의 말리 홀트(70·한국명 許滿理) 이사장. 스물한 살 꽃다운 처녀 때부터 동방의 나라, 낯선 한국땅에서 ‘입양과 장애’라는 두 단어를 어깨에 모질게도 짊어지고 꼭 반세기를 걸어왔다. 어렵고 고달픈 생의 그늘에서도 자신보다 버려진 아이, 온전치 못한 아이들을 더 소중하게 온몸으로 맞이하며 살아온 특별한 인생이다. 말리는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자인 홀트 부부의 딸. 지난 50년을 입양아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해와 우리나라 입양 역사의 산증인이다. 아버지 해리 홀트(1964년 작고)와 어머니 버서 홀트(2000년 작고)가 떠나간 뒤인 요즘도 24시간 장애인들과 지내며 묵묵히 홀트아동복지회를 이끌고 있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해외에 입양된 아이만 해도 9만 5000여명.6·25 전쟁의 폐허 속에 시작됐기에 초창기에는 전쟁고아와 혼혈아가 대다수였으며 최근에는 미혼모 아이들이 많아지는 추세여서 나름대로 한국 사회의 변천사를 반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탄현동에 위치한 ‘홀트아동복지타운’을 찾았다. 본관 건물 바로 옆에 ‘말리의 집’이라는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었더니 5살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바닥에 앉아 있다. 한 아이는 불편한 몸 때문인지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코를 흘리고 있었고 또 다른 아이는 빵을 먹고 있었다. 잠시 후 외출 나갔던 말리가 들어왔다.“미안해요. 미국에서 친구가 와서 보내느라고 조금 늦었어요.”라고 했다. 인터뷰는 마당의 의자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50주년을 맞는 소감에 대해 “한국도 지난 세월만큼 참으로 많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입양아들이)정상적으로 자라 결혼까지 하는 모습을 보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고 피력했다. 때마침 한국인 아가씨로 보이는 두 명이 지나가면서 영어로 인사한다.“어릴 적 노르웨이와 미국으로 입양 갔는데 한달 전 자원봉사하러 이곳에 왔습니다. 온김에 생부모를 만날 생각도 있습니다. 다 커서 저렇게 찾아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고 덧붙였다. 또한 “저들은 한국의 말과 문화 등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합니다.”면서 “옛날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잘 놀아주고 일년에 4∼5명 정도는 본가족과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고 부연했다. 50년 세월이면 강산이 다섯번 변했다고 하자 “56년 10월3일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 내렸을 때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돼 있었습니다. 곳곳에 총알이 박혀 있는 건물이며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정말 많았습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 서울시청 마이크로버스로 고아들을 잔뜩 실어오곤 했는데 워낙 못 먹고 며칠씩 씻지를 못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노인네 모습과 영락없었다고 회고했다. 어떤 경우에는 버스 안에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핏덩이 영아들이 보자기나 신문지에 싸인 채 발견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인큐베이터가 없어 전구로 보온을 시키는 등 응급조치로 살려보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죽은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고 아픈 기억을 되새겼다. 61년 부친이 일산 현 위치에 3만 3000여평의 땅을 사서 복지타운을 건립할 때까지 서울 효창동과 녹번동의 임시 수용시설에서 정말 고생도 많이 했단다. 지금은 전국 11개지부를 둘 만큼 시설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가장 힘들 때가 언제냐고 했더니 “어쩌다 아이가 죽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 때 좋은 환경의 집안에 입양 보내는 것이 중요한데 다른 생각이 있는 사람을 만날 때는 많이 힘들어집니다.”라고 토로했다. 결혼을 안한 이유를 묻자 “신앙심이 있으면 굳이 안해도 됩니다. 고아 장애인들이 있는데 곧 그들의 어머니가 아닙니까.”면서 “꼬마들은 자신에게 할머니 누나 언니 등으로 곧잘 부릅니다.”라며 웃는다. 하루 일과에 대해서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성경책을 놓고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고 했다. 이어 전날의 일을 깨알같이 메모한다. 아침 7시 식사시간에는 어김없이 장애인들의 할머니가 된다.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손 훈련을 꾸준히 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 자리에서 일어서면 온몸에 잼과 밥풀떼기들이 너덜너덜 붙어 있을 정도. 간단히 샤워한 다음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체크한다. 요즘도 미국의 친구들로부터 격려의 메일이 자주 온다.9시에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평상의 일과를 시작한다. 저녁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줄 잼을 만들고 시간이 나면 한국어를 틈틈이 공부한다. 한국말로 아이들과 대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읽고 쓰기에는 아직도 서툴다. 때문에 영자신문이나 TV를 통해 돌아가는 세상사를 접한다.“한국인들은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고 했다. 아울러 “중국이나 필리핀을 왔다갔다 하지만 한국이 가장 빨리 달라졌습니다. 전쟁으로 아무것도 없었는데….”라고 한국의 발전상에 새삼 놀라워했다. 말리가 한국에 오게 된 연유는 아버지인 해리 홀트의 도와 달라는 부탁도 있었지만 본인 자신도 평소에 불우아동을 돕는 데 관심이 많았다. 잠시 집안 얘기가 나왔다. 어머니 버서 홀트는 원래 간호 교사가 되려고 했으나 농부인 해리 홀트를 만나면서 농부의 아내가 됐다. 그러나 결혼 직후인 29년부터 대공황이 이어지자 오리건주로 이사했다. 해리는 이곳에서 목재사업에 뛰어들어 큰 돈을 벌었다. 그러던 54년 홀트 부부는 우연히 한국전쟁 고아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우선 한국인 고아 8명을 입양하려고 했으나 당시 미 연방법에는 2명 이상 입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홀트 부부는 의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의회는 두 달 만에 ‘홀트법안’이라고 이름을 붙인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결국 55년 10월12일 8명의 전쟁 고아를 입양한 것을 시작으로 해리는 한국에서, 버서는 미국에서 입양사업을 시작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최대의 시련은 88년 서울올림픽 때. 정부가 ‘고아 수출국’이라는 비난을 우려해 해외입양 금지령을 내렸던 것. 홀트아동복지회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정부가 슬그머니 금지령을 취소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됐다. 일찍부터 부모의 뜻을 이어받은 말리는 그동안 부산 광주 전주 등지의 고아원과 예수병원 등에서 활동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의촌 진료에도 앞장서는 등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은 혈통주의가 강해요. 그러다 보니 입양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입양은 불행한 아이나 아이를 원하는 가정을 위해 서로 좋은 일입니다. 낳은 부모나 기르는 부모나 사랑은 다 똑같죠.” 전문 장애인병원을 건립해 장애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말리는 현재 일산타운에서 주로 입양이 힘든 고아 장애인 270명을 돌보고 있다. 아울러 “한국 땅에는 부모가 묻혔고 또 자신의 청춘을 바친 곳이기에 영원한 고향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말리의 어머니는 오리건주 자택에서 사망했지만 유언에 따라 현재 일산타운내의 남편 묘소 옆에 나란히 묻혔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5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파이어스틸 출생. ▲53년 오리건주 크레스웰고교 졸업 ▲56년 새크래드 하트 간호전문대학 졸업 ▲64년 오리건대학 간호학과 졸업 ▲91년 노스콜로라도 주립대 특수교육학과 졸업(석사) ▲56∼65년 홀트아동복지회, 부산 이사벨영아원, 우정보육원, 미국 오리건 병원, 전주 예수병원 간호자문역 ▲65∼78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67∼74년 홀트일산원 원장 ▲92∼현재 나사렛대학 재활학과 교수 ▲98∼현재 홀트아동복지회 이사 ▲2000∼현재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 수상경력 국민훈장 석류장(81년), 로버트 피어상(84년) 세계성령봉사상(98년) 적십자 인동장 금장(00년) 일가상(01년) 비추미 여성대상(03년) 등.
  • 케이블업계 ‘시련의 계절’

    케이블업계 ‘시련의 계절’

    쌀쌀해진 날씨만큼이나 올해 가을은 케이블업계에게 ‘시련의 계절’이 될 성싶다. 그동안 몇차례 위기에도 불구하고 케이블업계는 1300만 가입자를 배경으로 발빠르게 대처해왔다. 최근 들어 광대역통합망(BcN)사업에 시범사업자로 참가했고, 디지털 전환을 통한 각종 신규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케이블망을 통한 인터넷 가입자도 크게 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상파방송·통신사업자들의 반격이 개시됐다. 방송쪽에서는 방송시간 연장과 종합편성PP문제를, 통신쪽에서는 IPTV(인터넷TV)를 또 다시 들고 나왔다. 역차별을 호소했던 케이블 업계가 되려 역차별을 해명해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된 것. ●방송시간 연장, 방송위의 마지막 선물? 방송위원회는 지상파방송의 낮시간 방송을 허용해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상파DMB(이동형디지털방송)서비스가 등장하는 12월쯤부터는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상황을 봐서 야간방송 제한도 풀겠다는 쪽이다. 케이블을 비롯해 각종 뉴미디어는 24시간 방송인데 지상파만 제한하는 것은 역차별이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지상파 방송시간을 제한하는 곳은 없다는게 그 이유다. 그럼에도 케이블업계의 시선은 차갑다. 케이블에서도 지상파의 영향력은 여전한데다 내년에 임기를 마감하는 2기 방송위원회가 방송사업자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는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24일 방송위가 연 공청회에서도 케이블업계의 이런 불편한 감정은 그대로 노출됐다. ●종합편성PP? SO들 가담? 종합편성PP(채널사용사업자)는 사실상 지상파 채널과 다를 바 없기에 케이블업계에게는 또 하나의 악재다. 그나마 지역MBC들이 뭉쳤을 경우에는 MBC에 대한 특혜라는 대응논리라도 있다. 그런데 지역민방들까지 가세하면 상황이 변할 수 있다. 지역민방들은 이미 생존을 위해 전문PP등록을 모색하고 있었다. 때마침 지역MBC가 종합편성PP 얘기를 꺼내자 여기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 광주민방 송도훈 정책실장은 “29일 춘천에서 지역민방끼리 모여 이 문제를 심도깊게 논의할 것”이라면서 “이해 차이가 있다면 지역민방의 일부라도 참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SO(유선방송사업자)들까지 여기에 가세하느냐다.‘케이블업계’라고는 하지만 PP와 SO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다보니 의견이 다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들간 대립과 분열이다. 지역MBC측에서 일부 SO와 접촉한다고 밝히자 케이블TV협회가 “호응하는 SO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재빨리 진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보미디어사업법? 또 IPTV? 열린우리당 유승희 의원은 지난 13일 ‘정보미디어산업법’을 발의했다.IPTV를 포함한 뉴미디어에서 통신사업자의 손을 들어준 법안이다. 같은 당 이종걸 의원은 IPTV만을 위한 법을 따로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 두 의원이 속한 곳은 통신사업자와 정보통신부를 다루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다. 케이블사업자들이 디지털전환을 통해 인터넷망 사업까지 시작하자 KT 등 인터넷 사업자들이 반격에 나섰다는 신호탄이다. 케이블업계는 ‘온 몸으로 저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언제까지 ‘선전’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미 KT는 한국방송학회가 마련한 연속 토론회 ‘IPTV 이슈와 전망’을 후원하는 등 치열한 홍보전에 돌입한 지 오래다. ●재허가추천 거부되는 SO나오나? 또 하나의 걸림돌은 SO에 대한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 심사다. 케이블업계는 사실 큰 걱정을 안하고 있는 편이다. 아무래도 문제가 일어날 소지는 규모가 작은 SO들인데 이들의 경우 지역독점권을 보장받고 있어 방송위가 일방적으로 재허가추천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단하기는 어렵다. 방송위는 지난해 설마설마하던 iTV(경인방송)를 퇴출시켰다. 거기에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도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신 명분과 실익을 챙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역성과 공익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고 내년 방송위 상임위원 구성 때 지상파쪽 인물들이 독식하는 구조를 깨트려야 한다는데 뜻을 모으고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대박 신화’ 이룬 벤처갑부들

    권성문 KTB 사장이 최근 잡코리아의 지분 매각으로 단숨에 ‘벤처 갑부’로 떠오르면서 그동안 ‘대박 신화’를 터뜨린 벤처 기업인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벤처 부호의 첫 신호탄을 쏘아올린 경영인은 방준혁(37) 전 플레너스 사장. 방 전 사장은 지난해 플레너스 지분 400만주(18.78%)를 CJ측에 팔아 800억원 가량을 벌었다.2000년 3월 게임업체 넷마블을 설립한 지 4년 만에 대박을 터뜨렸다. 김정률(52) 전 그라비티 회장도 벤처 대박 신화의 한 획을 그었다. 게임업체인 그라비티 대주주였던 김 전 회장은 지난 8월 말 보유 지분 52.4%(364만 619주)를 일본 소프트뱅크 계열 투자펀드에 총 4000억원에 매각했다. 매각 대금 4000억원은 IT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초특급 대박. 그는 2000년 창업 자금 5억원으로 그라비티를 설립한 지 5년 만에 국내 벤처업계 사상 최고 갑부의 주인공이 됐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김 전 회장은 최근 공금 횡령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라비티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지난 수년간 600만달러 가량을 유용한 사실을 시인하고, 스스로 이자를 덧붙여 730만달러를 회사에 지급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를 내부 경영권 싸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소프트뱅크쪽 류일영 대표가 지난 달 부임한 이후 김 전 회장 계열인 윤웅진 대표가 사임하는 등 소프트뱅크 친정체제를 강화하고 있어 이번 사건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권성문(44) 사장의 두차례에 걸친 ‘대박 스토리’도 화제다. 권 사장은 2001년 인터넷 경매업체인 옥션 지분을 미국 이베이사에 팔아 600억여원의 매각 차익을 거둔 데 이어 최근 잡코리아의 지분(65.5%)을 미국 취업 포털 ‘몬스터닷컴’에 매각,634억원을 또 벌어 들였다.4년새 무려 1200억원이 넘는 평가차익을 거뒀다.그러나 ‘돈방석’에 앉기 전에 권 사장도 적지 않은 시련을 거쳤다.2001년 벤처 거품이 사라진 이후엔 1년간 미국에서 은둔생활을 했으며,KTB를 설립한 이후 실적 부진으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했었다. 김화수(35) 잡코리아 사장도 ‘벤처 갑부’ 대열에 합류했다. 김 사장은 잡코리아 지분 11.75%를 보유,100억원에 가까운 대박을 터뜨렸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에 나오는 글이다. 김 명예회장의 심정은 삼양그룹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삼양그룹은 흔히 ‘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 본 뒤 건너가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우보(牛步)경영’ ‘내실경영’ ‘보수경영’ ‘정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의 이면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해 성장동력을 놓쳐 재계 50위권으로 처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있다.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 성장경영 꿈도 못 꿔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은 강연때마다 삼양사의 사례를 들곤 한다. 허 사장은 “삼양사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국내 최고의 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뒤처졌다.”며 삼양식의 경영방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느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양사는 이승만 대통령 재직시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형인 ‘인촌’ 김성수씨가 부통령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의 라이벌로 활동해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 창업주는 1951년 제당공장을 짓기 위해 울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정부가 공장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외화 사용 승인을 3년이나 늦게 내줘 고초를 겪기도 했다.3공화국때도 인촌이 창간한 ‘야당지’ 동아일보를 지원하느라 정부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정부의 금융지원 같은 특혜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게 삼양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양사 문성환 부사장은 “60∼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의 성장동력은 정치권과 야합해 무차별적인 차입경영에 있었다.”며 “그러나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정경유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통기업을 묵묵히 지켜온 2세 기업인 이런 안정 지향적인 기업 경영은 외환위기(IMF)때 빛을 발했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무너졌지만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2004년 12월 현재 삼양그룹의 매출액은 2조 7180억원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는 8537억원으로 부채비율 60%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양사는 매출 8902억원, 부채 2799억원, 부채비율 40%다. 이런 이유로 삼양그룹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와 신산업경영원이 주최하는 재무경영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삼양그룹이 튼실한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김상홍(83) 명예회장의 공이 크다. 김 명예회장은 1956년 34세에 삼양사 사장에 취임했다. 부친 김연수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지만 80년이나 넘게 기업을 온전히 지켜온 ‘수성’(守城)이 그의 최대 업적이다. 김 명예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을 지켜온 데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철저하게 받은 경영수업 덕이 컸다. 창업주는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던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가 운영하던 매하구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를 베풀지 않고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호텔 경영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때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성공해 맨 윗사람이 되려면 우선 그 분야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기초를 익혀야 된다.”며 조선호텔에서 접시닦기와 객실담당(벨보이)부터 맡도록 권했다. 이후 1947년 제헌의원이던 나용균씨의 추천으로 수도경찰청(내무부 치안국) 경위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4년간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1952년 큰아버지인 김성수씨가 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총경직에서 퇴직했다. 이때부터 김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는 장남 상준씨를 비롯해 둘째 상엽, 넷째 상돈씨에게는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 맡겼다. 김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삼양사는 셋째인 김 명예회장과 다섯째 상하씨가 일을 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밑바닥부터 배워라 김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받았던 경영수업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다고 회고한다. 회사의 맨 밑바닥 일부터 배우라고 지시했는데 주산, 부기, 기장은 물론 고용노무작업, 구매자금조달 등 실무 업무부터 맡아야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상업고교 출신처럼 주산을 열심해 배워야 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삼양그룹은 사무직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우선 공장에서 현장 연수를 하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김 명예회장은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주 앞에서는 의자에 마주 앉는 일조차 삼갔다고 한다. 부친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지만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겠다.”며 어려워했다. 지금도 사무실에 부친의 흉상을 두고 ‘무언의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혹독한 ‘문하생’ 생활을 보낸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제당사업을 전개할 때는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설탕 영업의 골간을 만들었다.70년대 제당업이 정상에 오르자 경영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 삼양종합금융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는 삼양종합금융은 물론 1대 주주였던 전북은행에도 삼양사 직원을 단 한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 자율과 원칙을 지킨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의 장수비결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체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중용정신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제조업을 통해 건전하게 돈을 벌어야 하고, 수익성이 좋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회장을 함께 맡았던 김 명예회장에 대해 “과묵 침착하며 절제를 아는 선비, 중용의 참뜻을 실천해온 외유내강형의 단아한 신사”라고 평가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6년 동생인 상하씨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났다. ●삼양의 제2탄생을 마무리 김상하(80) 그룹회장은 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그룹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 담은 뒤 줄곧 부친과 상홍 회장을 도왔다.1952년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삼양사 공장설계와 전문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회장은 형제간이긴 해도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상홍 회장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반면 상하 회장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상홍 회장이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상하 회장은 이런저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성격이다. 취미도 상홍 회장은 단조로움을 즐겼던 반면 상하 회장은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서는 꼼꼼한 상홍 명예회장이 관리를 맡고, 활동적인 상하 그룹회장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분담을 이뤘다. 실제로 상하 회장은 유창한 일어 실력과 깨끗한 인품으로 재계에서는 국제 감각이 뛰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혔다. 특히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게는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 활동을 벌였다. 상하 회장은 이런 왕성한 대외활동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삼양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어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위상을 높였다.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 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폭넓은 대외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외유내강의 기업인 상하 그룹회장은 소탈하면서 모가 없는 성품이지만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진퇴를 명확히 제시하는 ‘외유내강형’의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국내 폴리에스테르 업체들이 신·증설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그는 화학섬유 사업의 한계를 감안해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또한 섬유본부에서 신사업으로 오랫동안 검토해 샘플 제작까지 끝낸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도 사업의 구조적인 경쟁력과 취약성을 들어 사업을 중단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상홍 명예회장을 모시는 데도 깍듯했다. 상홍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상하 회장은 서울 성북동에 형집과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 담장 중간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핫라인’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며 “아우는 본래 2층집을 짓고 싶었는데 순전히 나 때문에 일조권을 염두에 두고 단층집을 짓고 산다.”며 돈독한 형제애를 소개했다. 상하 회장은 2004년 3월 상홍 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아들인 원씨는 삼양사 사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이로써 1975년부터 30년간 지속된 2세 형제경영에 이어 3세 사촌 형제간 공동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숨은 주역들 김 명예회장과 그룹회장은 삼양그룹이 81년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동생들과 매제의 역할히 컸다고 회고한다. 김 명예회장은 “나는 아우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크고 작은 일에 신중을 거듭했다. 아우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친께서 잡아놓은 틀을 잡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지난 2002년 작고한 김상응 막내 동생을 손꼽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상응씨는 96년부터 삼양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외환위기 등 창업 이래 최고의 시련기를 뚝심으로 돌파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고 떠올린다. 부인 권명자(53)씨와 4남 1녀인 자식들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 막내 여동생 희경(66)씨의 남편 김성완(66)씨의 공헌도 높이 평가했다. 김씨는 미국 유타대 교수로 생체고분자 및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김 명예회장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성이 좋은 분야는 의약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김 교수의 의견에 따라 1993년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 ‘삼양그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삼양그룹이 중점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화학, 식품, 의약부문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공격경영 김윤(53) 회장은 부친 상홍 명예회장, 상하 그룹회장과 같이 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기에 앞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영업전선을 두루 체험해 보라는 부친의 의도였다. 이를 두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김상홍 회장님의 큰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훗날에야 그 사실을 알고 한쪽으로는 좀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상홍 회장님의 인품을 새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IS(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MBA 석사를 취득한 뒤 곡물회사인 루이스 드레푸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익혔다. 또 삼촌인 상하 그룹회장처럼 도쿄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삼양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손수 챙기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져 나갔다. 고국에 귀국한 뒤에는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이사(90년)-상무(91년)-대표이사 전무(93년), 대표이사 사장(96년)-대표이사 부회장(2000년)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았다. 2004년 삼양사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로 삼양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보수적인 관행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론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대 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설정했다. ●다시 세계로 진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전기전자, 부품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양공정소료 유한공사를 설립,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만주에 진출한 데 이어 68년 만에 중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재진출했다. 향후 중국을 기점으로 인도, 중남미 등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세계적인 전문 화학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식품부문을 총괄하는 통합 브랜드로 ‘큐원’(Qulity No.1)을 출범시켰다.47년간 사용해 오던 대표 브랜드 ‘삼양설탕’을 과감히 버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1996년부터 삼양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길러졌다. 과감한 추진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발휘됐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섬유·식품·화학 등을 핵심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특히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양그룹 직원들은 단 한명의 구조조정과 한 푼의 임금삭감 없이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9일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에 이명박 서울시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뽑혔다. 또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3세에도 공동경영 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인 김원(48) 사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인 김윤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3대 경영의 주역들은 선대 회장들과는 달리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윤 회장은 부친인 상홍 명예회장이 내성적인데 반해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원 사장은 전방위 대외활동을 펼친 부친 상하 그룹 회장과는 달리 묵묵히 사촌형을 챙기고 있다. 원 사장은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 회장처럼 도쿄지점 부장을 거쳐 삼양이 의약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1993년 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면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연구개발본부장(전무)에 오르는 등 ‘테크노 경영인’으로 각인되고 있다.1999년 부사장 승진에 이어,2000년 8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공계 출신으로 매사에 치밀하며 경영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 영업에 치중했던 부친과 달리 관리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영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도 자식 뜻대로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그룹회장은 창업주처럼 자식들의 결혼과 관련해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최대한 들어주는 스타일을 지켰다. 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부인 김유희(46)씨를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김씨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데다 집안 대대로 친척들이 이대 출신이 많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부인을 웬만한 행사에는 동행할 정도로 ‘부인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사석에서 김 회장의 18번인 ‘만남’을 두 부부가 함께 부른다고 한다. 김원 사장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부인 배주연(41)씨를 만나 열애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반면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정(46) 삼남석유화학부사장은 중매로 배필을 만났다. 김량 사장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의 중매로 부인 장영은(46)씨와 혼인했다. 상홍 명예회장과 김 전 장관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친해 자연스레 연결됐다. 김 전 장관은 영은씨의 부친인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어서 혼인을 주선했다. 김정 부사장은 어머니 박상례(75)씨가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안혜원(39)씨를 만났다. 안씨 부친이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어서 흔쾌히 혼담이 오갔다. jrlee@seoul.co.kr ■ 막강한 손녀사위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는 부인 박하진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는 2세들보다 3세들의 혼사를 통해 혼맥을 이뤘다. 재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손녀사위들은 대학교수, 의사, 경영인 등의 전문 직업군을 이루며 삼양가(家)의 명망을 잇고 있다. 둘째아들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1남3녀를 두었는데 3명의 사위가 모두 교수인 것이 이채롭다. 김 전 총리는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5년제였던 경복중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당시는 도쿄제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올 정도의 수재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전 총리는 학자 사위들을 좋아했다. 김 전 총리의 장녀 명신(58)씨 남편 송상현(65)씨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의 손자다. 둘째딸 영신(56)씨는 정성진(58) 서울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다. 정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이다. 막내딸 양순(52)씨의 부군 이양팔(59)씨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또 상홍(83) 명예회장의 장녀 유주(56)씨도 윤영섭(59)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혼인했다. 창업주의 넷째딸인 정유(73)씨는 외동딸인 원경(43)씨를 한정수(48) 전 충남대 교수와 결혼시켰다. 손녀사위들의 ‘의사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창업주의 둘째딸 상민(78)씨는 둘째딸인 이정현(41)씨를 백완기(47)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의사와 인연을 맺어 줬다. 김 창업주의 셋째딸 정애(75)씨 장녀 조경미(47)씨의 부군 주춘희(47)씨도 캐나다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삼양가가 전문 경영인 집안이어서인지 손녀사위들도 전문 경영인이 많다. 김 창업주의 장남 상준씨의 장녀 정원(62)씨의 남편 김선휘(68)씨는 삼양염업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딸 정희(58)씨는 김준기(62) 동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또 셋째딸 정림(57)씨도 윤대근(59)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과 결혼해 유달리 ‘동부그룹’과 인연이 많다. 창업주의 둘째 김상협 전 총리가 교육자 집안으로 꾸렸던 것에 비해 장남 상준씨는 전형적인 경영인 가족을 형성한 셈이다. 넷째 상돈(81) 삼양염업사회장은 외동딸 희진(45)씨를 오광희(49) 전 나이스 정보통신 전무와 결혼시켰다. 다섯째 상하(80) 그룹회장도 외동딸 영난(44)씨를 송하철(45) ㈜ 항소 사장과 혼인시켰다. 송씨는 송삼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다. jrlee@seoul.co.kr ■ 계열사 사장들 ‘전문적 경험’ 풍부 삼양그룹의 현 계열사 사장들은 경영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3세들을 지원하는 것에 역할이 주로 맞춰져 있다. 분야별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 경영 승계가 무리없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박종헌(66) 삼양사 사장은 40년동안 영업, 해외업무, 인사, 재무, 기획분야를 두루 거쳤다.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법학도답게 매사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영훈 대법원장과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다.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유통부문의 핵심 역량을 쌓아왔다.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제조업 유통부문의 경영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김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김경원(62) 삼남석유화학 사장은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때부터 중앙연구소 소장, 화성본부장, 삼양화성 사장 등 화학, 섬유,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두루 지낸 전문 경영인이다. 폴리에스테르 부문의 대가로 ‘폴리머 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연구통’이다. 송창기(63) 삼양중기 사장은 인사관리분야에서 15년간 일해온 ‘인사통’이다. 총무부장, 인사부장,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삼양중기에서 기계부문 4개사로의 분사와 주물사업부문 합작사 설립을 성공리에 추진했다. 박호진(59) 삼양화성 대표는 도쿄지점을 거쳐 전주공장에서 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난 3월 대표로 선임돼 사원간에 가족적인 유대감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규한(58) ㈜삼양밀맥스 대표는 판매와 현장을 두루 거친 식품부문 전문가다. 경영과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췄고 비전팀을 만들어 내부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변수식(55) 삼양데이타시스템 대표는 전사적자원관리(ERP)팀장,IT전략팀장, 경영혁신(PI)팀장 등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변 대표는 IT부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IT통’이다. 김상익(59) 삼양웰푸드 대표는 경리부, 삼양제넥스 경영지원팀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경리와 관리를 맡았다.2004년 대표로 선임돼 원칙과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경영을 중시한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고침 서울신문 17일자 15면에 게재된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편에서‘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송 전 사장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주말 탐방] 한강낚시터 잠실~행주대교까지

    [주말 탐방] 한강낚시터 잠실~행주대교까지

    한강의 ‘강태공’ 그들은 누구인가. 그 이름에서 유유자적이 느껴지지만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중국 고대의 실제인물인 강태공은 노인이 될 때까지 특별히 하는 일이 없던 ‘백수’였다. 그는 주나라 문왕(文王)의 눈에 들어 재상에 오르기까지 위수(渭水·황하의 지류)에 낚싯대를 드리운 촌로였다. 낚시로 세월을 보냈던 시절, 아내가 집을 나가는 등 시련을 겪었던 강태공의 마음이 어찌 편하기만 했을까. 서울 한강의 ‘강태공’들도 엇비슷하다. 하루 평균 100여명, 연간 3만여명을 헤아리는 그들. 물이 맑아지고 어종이 크게 늘면서 일부 지류에서는 견지낚시를 즐기는 애호가들도 눈에 띈다. 그들은 한강에서 무엇을 낚을까. 그들은 대부분 짜릿한 손맛에 고기 비늘만큼이나 찬란한 삶의 꿈을 긷지 않을까. 한강이 낚시 명소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한강의 낚시터는 잠실수중보에서 강서구 개화동 행주대교에 이르는 양안 57㎞ 구간(강남 33㎞, 강북 24㎞)에 펼쳐져 있다. 상수원 보호구역인 광나루지구와 선유도공원을 제외한 한강시민공원 10개 지구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2003년 9월부터 19개 지역(19.4㎞)에서는 낚시 행위가 금지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낚시터에 대한 관리는 9월까지 낚시터가 있는 각 자치구에서 관할했으나 이달부터 한강수계 낚시터 전역을 한강시민공원사업소가 관리하도록 조례가 개정됐다. 한강시민공원사업소는 낚시터 관리·운영 권한이 넘어옴에 따라 낚시터를 전면 재정비하고 조정할 계획으로 있다. 우선 한강 서울수계 대부분이 낚시 가능지역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낚시터마다 강태공들을 위한 의자 등 편의시설들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강에서 낚시하기 위해서는 강태공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도 있다. 우선 개인당 4대 이상의 낚싯대를 펼칠 수 없고, 훌치기 낚시(미끼를 달지 않고 세 방향으로 뻗어있는 바늘을 지나가는 물고기의 몸에 걸어서 잡는 낚시)를 해서는 안 된다. 잠실수중보에서 성산대교까지는 떡밥·어분낚시가 허용되지 않으며 모든 구간에서 야영·취사행위도 금지돼 있다. 특히 떡밥 낚시는 한강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 위반시 30만원의 과태료를 각오해야 한다. 지구별로 낚시터의 특징을 살펴본다. ●잠실지구 잠실수중보 인근에서 탄천 양수장까지 2㎞에 이르는 구간으로 한강낚시터의 대표격이다. 잠실수중보 밑으로 물고기가 밀집해 있지만 2년 전 수중보가 낚시 금지구역으로 지정돼 낚시꾼들의 아쉬움이 큰 지역이다. ●뚝섬지구 영동대교 하류 600m 지점에서 자양빗물펌프장까지 1.7㎞ 구간에 낚시꾼들이 몰린다. 누치·쏘가리·잉어·강준치 등 한강에서 대물 소식이 가장 많이 전해지는 곳이다. 장마철에는 붕어와 잉어가 떼지어 오르는 길목이다. ●반포지구 낚시터 시설이 가장 잘 돼 있어 ‘낚시터공원’으로 불린다. 특히 반포주공아파트 뒤편에 1만 2000평 규모의 인공섬인 서래섬이 길쭉한 모양으로 조성돼 있다. ●양화지구 한강에서 보기 드문 대낚시 포인트이다. 당산철교에서 성산대교 직전의 양화 유람선 선착장까지 2㎞의 호안은 대어가 종종 올라온다. 특히 선유도를 마주보고 형성돼 있는 800m 구간은 물살의 영향이 거의 없고 침수수초가 형성돼 있다. ●여의도지구 여의도 샛강 유입부에서 상류로 한강철교 아래까지 붕어·잉어·누치 등 어종이 다양하다. 계단식 호안과 어소(고기집) 블록이 깔려 있다. 호안이 단조로워 릴낚시가 성행한다. ●망원지구 양화지구 맞은편의 망원지구 낚시터로 성산대교 근처 홍제천 유입구부터 상류의 당산철교까지 2.9㎞ 구간에서 잉어가 잘 낚인다. 릴낚시와 대낚시가 고루 구사된다. ●이촌지구 예부터 두무포라 불리던 이곳은 강변에 늪지가 많아 잉어가 모이는 집산지로 유명하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꿈이 이뤄질 세상을 낚고 있죠” 평일인 지난 17일 오후 한강 낚시꾼들이 많이 있다는 서래섬을 찾았다. 서래섬은 반포대교와 동작대교 사이에 있는 인공섬으로 1982∼86년 올림픽대로 건설과 함께 조성됐다. 구름 한점 없이 화창한 날에 열대여섯명의 낚시꾼들이 5∼10m 간격으로 앉아 낚싯대를 담그고 있었다. “평일에 이렇게 한강에 나온 낚시꾼들치고 사연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서래섬에서 처음 만난 유모(43·관악구 신림2동)씨는 낯선 기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주저했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원망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강이 고마울 따름이죠. 이렇게 낚싯대를 던져놓고 출렁이는 물을 바라보는 것이 화를 식히는 유일한 길이거든요. 이것마저 없었다면 길가에 나앉아 술이나 마시는 신세로 전락했겠죠.” 유씨는 올 1월까지만 해도 경기도 안양 근처에 직원 12명을 거느린 모자공장 사장이었다.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자금유통이 어려워지고 수금이 안 되더니 급기야 올초 공장문을 닫게 됐단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다툼이 잦았던 아내와는 이혼했다.10살짜리 딸은 동생 집에 맡겨졌다. 유씨는 딸이 보고 싶지만 만나지 않겠단다. 딸 얘기가 나오자 눌러쓴 모자를 한번 더 힘껏 누른다. 유씨는 3개월째 거의 매일 한강에 나와 온갖 구상을 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 재기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한강은 희망을 낚으려는 유씨와 같은 사람들에게 한없이 고마운 공간이다. 홀로 낚싯대 2대를 던져 놓은 공정기(45·구로구)씨는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공씨는 스스로를 삼청교육대 피해자라고 밝혔다. “삼청교육대에 4주동안 잡혀 있었어요. 악몽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삼청교육피해자신고접수’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25살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는 공씨는 그후 20년동안 제대로 직장을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뒤에서 감시하면서 자신을 쫓아다니는 느낌 때문이다. 여러 직장을 전전하던 공씨는 정신과 진료를 통해 장애등급까지 받았다. 공씨는 “그나마 한강에 나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면서 “우선 피해자접수 결과를 지켜본 뒤 다른 일을 해 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대기업에서 정년퇴임한 후 낚시를 즐기는 김모(65)씨는 ‘꿈’을 낚고 있다. 그는 10년 전 회사를 은퇴하고 재테크를 통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그는 진행형인 ‘꿈’의 실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모은 돈으로 노인전문요양소를 짓고 있어요. 아직 설계중인데 몇년 안에 완공될 것 같습니다.” 김씨의 아내는 5년 전 세상을 떠났고, 두 자녀들도 모두 가정을 갖고 있다. 그는 “더이상 세상일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면서 꿈이 이뤄질 세월을 낚고 있다. 소주 한 병에 순대 2인분을 사들고 한강을 찾은 김기철(60)씨와 노병선(57)씨는 4년 전 낚시하다 만나 친구가 됐다. 모두 아내와 함께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젊어서는 가게일에 열중했지만 이제는 모두 아내들에게 일임했단다. 둘은 거의 매일 함께 낚시를 다닌다. 굳이 한강만을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최저 비용으로 최고 재미를 누릴 수 있는 낚시터를 찾는 것도 둘만의 쏠쏠한 삶의 재미다. 노씨는 “이곳저곳 다녀봤지만 한강만한 낚시터도 없다.”면서 “낚시꾼들에게서 요금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3년 전까지만 해도 한강 낚시터에서는 낚싯대 1대당 1000원씩 요금을 받았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주말 낚시꾼들은 몰라도 평일 낚시꾼들 숫자는 곧 경기회복과 맞물려 있다.”면서 “40대 중반의 평일 낚시꾼 수가 ‘확’줄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14)

    Taxi Drivers’ Favorite Jokes Two worms who live under a golf course wake up one morning.One says to the other,“Go up top and see if it’s raining.” The other worm says,“I don’t want to.If it is raining,I’ll get all wet.” So they argue back and forth like this until they decide to draw straws.One of them wins,and the other has to go up and check. Just at this minute two women golfers happen to be passing overhead.One mentions that she has to pee,and the other woman says,“Hey,look.There is nobody else around.Why don‘t you do it right here?” So the woman squats down and takes a piss at the exact moment the little worm breaks through the surface.He takes one look around,gets totally drenched,and hurries back down below. The other worm says,“So,I see it’s raining.” “Yeah,” says the worm,wiping off his face.“As a matter of fact,it’s raining so hard that the birds are building their nests upside down!” (Words and Phrases) worm:벌레 wake up:일어나다 go up top:맨 위로 올라가다 get all wet:흠뻑 젖다 back and forth:이러니저러니 draw straws:짚으로 하는 제비를 뽑다 check:살피다 just at this minute:바로 이 때 pass overhead:머리 위로 지나가다 pee: 오줌을 누다 squat down:쪼그리고 앉다 take a piss:오줌을 갈기다 break through the surface:땅 표면을 뚫고나오다 take one look around:한 번 휘둘러 보다 get totally drenched:흠뻑 젖다 hurry back down below:아래로 급히 되돌아오다 wipe off∼:∼을 훔치다 build a nest:둥지를 틀다 upside down: 거꾸로 (해석) 골프 코스 아래에 사는 벌레 두 마리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한 벌레가 다른 벌레에게 말하길,“맨 위로 올라가 비가 오고 있는지 알아봐.” 다른 벌레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비가 오고 있다면 흠뻑 젖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둘은 짚으로 제비를 뽑을 때까지 티격태격 다투었습니다. 둘 중에 하나가 이기고 다른 벌레가 위로 올라가 비가 오는지 살펴봐야 했습니다. 바로 이 때 두 여성 골퍼가 위로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오줌이 마렵다고 말하자, 다른 사람이 “여기 봐. 주위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여기서 누지 그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갈겼는데, 바로 이 때 그 조그만 벌레가 땅 표면을 뚫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벌레가 한 번 휘둘러보고는 온 몸이 흠뻑 젖어 급히 땅 아래로 되돌아왔습니다. 다른 벌레가 말하길,“아, 비가 오고 있구나.” 얼굴을 훔치며, 원래 벌레가 말했습니다.“그래. 사실, 비가 너무 세게 와서 새들이 둥지를 거꾸로 틀고 있을 정도야!” (해설) 땅 밑에 사는 벌레들이 기어 나올 때인가 봅니다. 두 벌레가 서로 상대방에게 밖에 나가 비가 오는지 알아오라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비를 뽑아 진 사람이 위로 올라가 알아보고 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임무를 수행하려고 땅위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친구와 골프를 치러 온 여자가 자기들 외에 아무도 없자 쪼그리고 앉아 바로 그 자리에다 오줌을 갈겨댔습니다. 오줌 세례를 맞고 급히 되돌아온 벌레가 말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압권입니다. 세찬 오줌발에 여자의 거시길 덮고 있는 숲이 한 쪽으로 뉘여진 모습을 보고 새들이 거꾸로 둥지를 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Life Essay for Wrighting 묻어둔 세월(다시 다가온 시련) 집안을 꿈에 부풀게 했던 대사명(大使明) 덕에 한참 공부할 나이를 집안의 작은 머슴으로 보낸 김 회장은 실업고를 졸업하고 5급 공무원에 합격, 외부 공사판 감독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꿈이 없는 보통 사람의 경우엔 5급 공무원 생활도 시골에선 안정된 생활로 반쯤 성공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회에 눈을 뜨고 인생이라는 먼 항해를 준비하는 김회장에게 5급 공무원 현장 감독 생활이란 인생의 무덤을 의미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직장에선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지만 그렇게 보내는 하루하루를 김회장은 견딜 수가 없었다. 번민과 번민을 거듭한 끝에 김회장은 아버지와 식구들 몰래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밤잠을 거른 지 2년 만에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몰래 대학을 준비하다 아버지에게 들켜 실컷 혼나고,“네가 대학에 붙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If you pass a college entrance exam,I’ll eat my hat.)”는 반대 속에서 꿈에 그리던 대학 진학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엔 실업고를 졸업하고 예비고사에 합격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시기였기에 집안의 반대도 아들 보호 차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그런 상황에서의 대학 진학 준비란 무모한 도전이었기에 김 회장의 대학 진학은 별을 딴 것과 진배없었다. 직장 생활 중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아픔과 괴로움으로 몇 날을 고통 속에서 보내곤 했는데 이제 대학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 자신의 대입 준비를 위해 많은 격려를 해준 친구가 토목과를 다니고 있었기에 미래에 그 친구와 많은 일을 이루기 위해 건축과를 지원하게 된다. 장밋빛 꿈들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공부하는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며 보내던 대학 시절. 그렇게 나를 격려하고 나를 위해 꿈을 함께 꾸어 주었던 친구가 군대 생활 중 죽음을 맞게 된다.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곳에서 이토록 번민하며, 답도 없는 질문들을 찾아 헤매는가? 끝없이 생겨나는 많은 질문들에 답을 찾지 못하고, 친구와 꾸었던 많은 꿈들에 밧줄을 동여매고, 무심히 대학을 졸업한다(He just graduated from the university without finding any answers to infinitely many questions that had arisen,holding back many dreams that he and his friend had dreamed together). ■ 절대문법 (7) 자리매김 학습 문법 능력은 의사소통 능력의 주요 구성 성분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의사소통을 할 때에 지켜야 할 문법 규칙이 없다면 언어 사용은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영어 문법 규칙에서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문장에서 쓰이는 단어의 자리 개념이다. 지난 시간까지 문장을 구성하는 기본 자리에 위치할 수 있는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를 중심으로 하여 단어의 자리와 특성, 그리고 역할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네 가지 품사는 문장 구성에 핵심이 된다. 특히 영어 문장은 동사를 기준으로 하여 앞뒤에 위치하는 자리에 따라 역할과 특성이 달라지므로 문장 구성의 핵심 단어가 위치하는 자리 개념을 순서대로 이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오늘은 한국어에 없는 자리 개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어와 한국어의 문법에서 가장 차이 나는 개념 중의 하나가 관사이다. 영어는 거의 대부분의 명사가 관사와 함께 쓰인다. 관사는 영어를 사용하면서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것인데 이의 적절한 쓰임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Woman is actor.(x) The woman is an actor.(o) 관사는 반드시 명사 앞에 위치하여 관사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살려준다. 그리고 관사의 뒤에 오는 명사가 정해진 것인지, 정해지지 않은 것인지를 알려주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관사의 자리와 역할,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A bird lived in the tree. 이 문장은 새가 살았는데 나무에 살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a bird이므로 새로운 정보로 정해지지 않은 한 마리 새를 나타내고 있으며,the tree 라고 했기 때문에 나무는 이 문장을 쓴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특정한 나무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관사는 문장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살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 [김후년의 클럽하우스] 프로골퍼 미셸 위

    만 16세를 맞는 오는 11일을 전후해 프로 전향을 선언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던 미셸 위가 6일 마침내 프로로 전향한다. 프로행은 시기를 언제로 정할 것인가의 문제였을 뿐, 프로 진출을 위한 준비는 착실하게 진행됐다.남녀 프로대회 출전을 통해 천재성을 검증받은 그는 세계 톱프로를 배출한 레드베터 캠프에 합류해 샷을 가다듬었고 나이키로부터 스폰서 계약 러브콜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프로 전향설이 솔솔 흘러나오던 지난 8월말 이후 약 한달 동안 마치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새로운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미국의 유력한 에이전트인 월리엄 모리스와 에이전시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보도에 이어 11년 동안 줄리 잉스터의 백을 메던 베테랑 캐디인 그렉 존스턴을 영입했고 나이키를 비롯한 3개의 회사와 1000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계약금의 스폰서 계약을 맺을 것이라는 뉴스가 전해졌다. 또 일본에서 열리는 카시오월드오픈에 출전, 프로의 자격으로 남녀 성대결을 펼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그가 프로로 전향하면 연 3000만∼4000만 달러의 수입을 거둘 것이라는 예측이 불거져 나왔다. 잦은 천둥 끝의 번개처럼 마침내 지난 1일 그의 프로 전향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이 밝혀졌다. 이로써 이제 지구촌 골프팬들의 관심을 달구며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니던 그는 온실 속의 화초와 같던 아마추어의 세계를 벗어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정글로 뛰어든다. 이젠 프로다.16세의 어린 소녀가 뛰어들 정글의 세계는 결코 녹록지 않다. 귀엽고 깜찍한, 골프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마스코트였지만 프로 전향 이후 냉혹하고 살벌한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전처럼 호의적인 태도로 그를 대할 언론도 없다. 그의 한마디, 일거수일투족은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감당하지 못할 엄청난 시련이 엄습할 것이다. 그에게 집중되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상금이 걸린 대회에 출전한 그에겐 자신을 다스리는 마인드 컨트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300야드 장타에 도사린 샷의 난조를 조절하는 한편 상금액을 결정하는 숏 퍼팅의 부담을 떨쳐내야 한다. 정글로 뛰어드는 어린 소녀의 미래는 결코 장밋빛 세계가 아니다. 돈방석위에 앉는 대가로 치러야 할,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이를 헤쳐 나갈 지혜가 요구된다.골프 칼럼니스트 golf21@golf21.com
  • ‘금순이’ 새 가족상 선보이며 피날레

    “시련 속에서도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금순이를 사랑해 주신 시청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7개월여 동안 MBC 드라마의 효녀 노릇을 톡톡히 했던 ‘굳세어라 금순아’(연출 이대영 극본 이정선)가 30일 막을 내린다.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는 마지막 방영을 앞둔 ‘굳세어라…’의 성공을 축하하는 종방연이 열렸다. 지난 2월14일 첫 방송부터 시청률 30%를 넘나들며 꾸준한 인기를 모았고, 최근에는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보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금순이’ 한혜진(24)은 종방연 자리에서 “시청자들이 이번 드라마를 통해 따뜻한 가족애를 느꼈으리라 생각한다.”면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 못내 아쉽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재희 역의 강지환(26)도 “시청자들의 격려 속에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멋진 작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굳세어라…’가 인기를 끌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족간의 훈훈한 사랑을 보여줬다는 것. 여기에는 금순이라는 캐릭터도 한몫했다. 아이가 있는 젊은 과부로 세상이 던져주는 시련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능동적이고 변화하는 여성상을 그려냈다. 또 금순이의 재혼을 놓고 아들 휘성에 대한 양육권 때문에 빚어진 시댁과의 갈등을 통해 호주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가족애로 극복하며 새로운 가족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해피엔딩의 결혼식장 모습은 이러한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금순이의 부모 자리에는 친할머니와 함께 시부모인 노 소장 부부가 앉았다. 재혼하는 며느리는 어느 새 자식이 됐고, 전 시댁과 새로운 시댁 모두 함께 가족이 된 것. 이정선 작가는 “20∼50대는 물론 할머니 세대까지 다양한 어머니상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고 돌이켰다. 새달 3일부터는 ‘굳세어라…’의 후속으로 ‘맨발의 청춘’(연출 권이상, 최도훈·극본 조소혜)이 방송된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민노 10 -1석… 법안발의 ‘미달’

    민노 10 -1석… 법안발의 ‘미달’

    29일 선거법 위반혐의 등으로 기소된 국회의원 4명에 대한 대법원 선고결과와 신중식 의원의 민주당 입당으로 원내 의석 분포의 변화가 초래됐다. 이는 10·26 재보선 결과와 맞물려 향후 정치권 세력판도에 적지 않은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대법원 판결의 충격파는 민주노동당을 강타했다. 이번에 상고심에 올라간 4곳의 지역구의원 중 사전선거운동 위반혐의로 기소됐던 민노당 조승수 의원만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선고로 정당별 의석수는 열린우리당 144석, 한나라당 123석, 민주당 11석, 민주노동당 9석, 자민련 3석, 무소속 5석이 됐다. 당장 자체 법안발의 요건인 10석에서 한 석이 모자라는 9석이 되면서 독자적으로 당론을 발의할 수 없게 되면서 민노당은 참담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신중식 의원의 민주당 입당까지 겹쳐 원내 제3당 자리마저 내주게 돼 창당 이래 최대의 시련을 맞게 된 것이다. 김혜경 대표는 “금품향응을 제공한 의원에게는 파기환송하면서 정책소신을 편 의원에게는 의원직 박탈형을 내린 대법원 판결은 스스로 보수로 회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면서 “상식 이하의 판결을 결코 수용할 수 없으며 판결의 부당성을 규탄하고 다음달 울산북구 재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내보였다. 산자위 국감 도중 공판결과를 접한 조승수 의원은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지만 국회의원으로서 담담히 수용하겠다.”며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신중식 의원의 입당으로 전체 의석이 11석으로 늘어난 민주당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유종필 대변인은 신 의원의 민주당 입당을 오동잎이 떨어진 것에 비유하며 “이파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열린우리당내 호남지역 의원들의 동요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이어 “우리가 나서서 여당 허물기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오는 사람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치권 지각변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강성종 의원과 신상진 의원에 대해 법원이 파기환송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준석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챔피언스리그] 지성 “약 되겠지”

    ‘성장통(成長痛)인가, 아니면 벤치 멤버 전락인가.’ 잉글랜드 최초의 ‘태극 프리미어리거’ 박지성(24·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시련이 깊어져만 간다. 잉글랜드 진출 이후 지난달 25일 데브레챈전에 이어 또다시 벤치를 줄곧 지키는 수모를 겪어서다. 박지성은 28일 홈구장인 올드트래퍼드에서 열린 05∼06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SL벤피카와의 경기에서 교체 멤버로도 출장하지 못한 채 팀이 2-1로 승리하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다. 게다가 이날 박지성 대신 선발 출장한 라이언 긱스(32)는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뛰었다. 전반 39분 왼발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뽑았고, 후반 40분 1-1 상황에서는 반 니스텔루이(28)의 결승골 시발점이 된 코너킥을 올리는 등 눈부시게 활약했다. 박지성은 당초 웨인 루니(20)가 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당해 선발 출장이 확실시됐다. 특히 긱스는 그동안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고,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20)의 백업 요원으로 꾸준히 기용됐던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씁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언론의 냉담한 평가 속에서도 변함 없는 신뢰를 보내주며 박지성의 버팀목이 돼 줬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지난 24일 블랙번과의 경기에서 4-3-3 포메이션과 선수 기용 등에서 팬들의 야유와 비난을 받은 뒤, 보인 흔들리는 듯한 모습은 또 다른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퍼거슨 감독은 “블랙번 경기에서 보여준 박지성의 플레이는 낮게 평가될 정도는 아니었다.”면서도 “긱스의 경험이 오늘 밤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루니의 빈자리는 긱스와 박지성으로 채워 나갈 것”이라고 덧붙여 박지성이 ‘유일한 대안’이 아님을 천명한 셈. 그러나 퍼거슨 감독이 무한 경쟁구도를 통해 전력의 극대화와 박지성의 능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고도의 용병술이라는 평가도 있는 만큼 낙담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특히 과거 이력을 볼 때 박지성은 시련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더욱 강해지는 스타일. 지난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퍼플 상가에서도,2003년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에서도 초기에는 출전기회 부족, 저조한 성적으로 고전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영리함으로 적응한 뒤, 결국은 당당히 주전으로 우뚝 서 소속팀을 우승(일본 FA컵, 네덜란드리그 및 FA컵)으로 이끈 바 있다. 다음달 1일 풀햄과 갖는 리그 7차전에서 ‘시원한 한 방’으로 골 갈증을 해소할지 주목된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성수의 맛있는 영어 English]웃기는 영어(13)

    Taxi Drivers’ Favorite Jokes Two friends,an Italian boy and a Jewish boy,come of age at the same time.The Italian boy’s father presents him with a brand-new pistol.On the other side of town,at his Bar Mitzvah,the Jewish boy receives a beautiful gold watch. The next day in school,the two boys are showing each other what they got.It turns out that each boy likes the other’s present better,and so they trade. That night,when the Italian boy is at home,his father sees him looking at the watch. “Where did you getta thatta watch?” asks the man.The boy explains that he and Sammy had traded.The father blows his top.“Whatta you? Stupidda boy? Whatsa matta you?” “Somma day,you maybe gonna getta married.Then maybe somma day you gonna comma home and finda you wife inna bed with another man.Whatta you gonna do then? Looka atta you watch and say,‘How longa you gonna be?’” (Words and Phrases) come of age:성년이 되다 present∼with…:∼에게…을 선물하다 brand-new:새 제품의 at one’s Bar Mitzvah:성인식에서 turn out that∼:∼로 판명되다 trade: 물건을 교환하다 getta thatta: 그것을 얻다(get that) blow one’s top: 노발대발하다 Whatta you?:너 뭐하는 게냐?(What are you?) Stupidda boy?: 멍청이니?(Stupid boy?) Whatsa matta you?: 뭐 잘못되었니?(What is the matter with you?) somma day: 언젠가(some day) getta married: 결혼하다(get married) comma: 오다(come) (해석) 이탈리아 소년과 유태인 소년인 두 친구가 같은 때에 성인식을 치렀습니다. 이탈리아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새 권총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도시의 다른 한 쪽에서 유태인 소년이 성인식에서 아름다운 금시계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날 학교에서 두 소년이 서로에게 자기가 받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선물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 밝혀져, 그 둘은 선물을 바꿨습니다. 그 날 밤 이탈리아 소년이 집에 있을 때, 아버지가 소년이 시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시계 어디에서 구했니?”라고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소년이 Sammy와 선물을 바꿨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버지가 머리 뚜껑이 열렸습니다.“너 뭐하는 게냐? 멍청이니? 뭐 잘못되었니?” “언젠가 넌 아마 결혼할 게다. 그러다 언젠가 집에 돌아와 아내가 다른 사람과 침대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다. 그 때 뭘 할 거니? 시계를 보면서 ‘얼마나 오래 걸려요?’라고 물으렴.” (해설) 이탈리아 사람하면 무자비하게 총질을 해대는 마피아가 떠오르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조크가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익살입니다. 이탈리아 아버지가 성인이 된 아들에게 권총을 사 준 이유를 아들이 깨닫지 못하고 그 선물을 같은 시기에 성인이 된 유태인 친구의 금시계 선물과 바꿨으니,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뚜껑이 열릴 만도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나중에 결혼을 했다가 아내가 딴 남자와 문제가 생기면 권총으로 해결하라고, 권총을 선물했는데 시계와 바꿔왔으니 얼마나 열불이 나겠습니까? 참다못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현장에서 바꿔온 시계나 보면서 그 둘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물어보라고 반어적으로 비아냥거리는군요. ■ Life Essay for Wrighting -묻어둔 세월(첫 번째 시련)학습지 시장 40조원 매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김성수 회장의 인생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그를 괴롭혔다. 세상을 폭넓게 알게 하기 위해 그랬을까? 어머니의 태몽은 이러했다. 길을 가는데 예사롭지 않은 상자가 눈앞에 나타나고 곡절 끝에 열어본 상자에서는 ‘대사명’(大使明)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풍수에 밝은 동네의 어른들이 그의 어린 시절에 그를 보면 줄곧 인물이라고 귀띔을 하곤 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롯해 온 집안에서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집안 차원에서 인물(?)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당시에 큰 인물이란 판·검사가 제일인지라 성공하기 위한 코스로서 서울법대에 진학하기 위해 초등학교 4학년인 어린 그는 전남 장흥 시골마을에서 광주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떠밀리듯 유학을 떠나게 된다. 총명과 지혜가 어린 김 회장의 깊숙한 곳에서 아직 영글지 않아서 그랬을까?(Was it because his cleverness and wisdom were not fully developed in the heart of young President Kim?) 끝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로 어린 그는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렸고,2년여의 광주 생활을 광주서중의 낙방으로 마감했다. 그 뒤 아버지는 실망감과 공허감 때문에 인물 교육을 포기했다. 아버지의 교육 포기는 그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빼앗긴 것을 의미한다.(His father’s despairing of training him to be a great man means that he was deprived of all the opportunities to study). 고등학교도 공고를 가게 되었고 중학교 시절 내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모두 소에게 먹일 꼴을 벤다든지, 집안의 궂은일을 모두 맡아서 하게 되었다. 풍수에 밝다는 지관들에게 속은 아버지의 허탈감 때문인지, 심혈을 기울였던 10년 세월 때문인지 서중 낙방이후 어린 그는 집안의 작은 머슴으로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 절대문법 (6) 자리매김 학습 영어 문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장에서 쓰이는 단어의 자리이다. 따라서 영어 문장에서 단어가 놓일 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읽고, 쓰기에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시간까지 동사, 명사, 형용사를 중심으로 한 단어의 자리와 특성, 그리고 역할을 살펴보았다. 영어 문장은 동사를 기준으로 앞뒤에 위치하는 단어들의 역할과 특성에 따라 다양한 구조로 변형될 수 있다. 문장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품사는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이다. 이상의 네 가지 품사는 문장 구성에 핵심이 된다. 오늘은 수식어로 대표되는 부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부사는 사실 다른 품사를 수식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다른 품사에 비해 부사의 자리는 훨씬 자유롭다. 동사의 앞뒤, 형용사의 앞뒤, 심지어는 문장의 맨 앞이나 맨 뒤에도 위치할 수 있다. 부사의 특성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사 주변의 말을 꾸며준다.(동사, 형용사, 다른 부사 수식) 주어나 목적어의 상태를 나타내는 보어가 될 수 없다. 수식어로 쓰이기 때문에 문장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I am happy.⇒I am very happy. It’s lunchtime ⇒ Now,it’s lunch time. She goes to school.⇒ She goes to school early. 부사는 문장에서 다양한 쓰임을 보일 수 있다. 반드시 다른 품사 앞에 위치하여 수식어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단어 앞뒤의 연결 관계에 따라 확장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The hare ran very fast. 이처럼 문장을 구성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와 동사이다. 주아와 동사만으로 의미가 충분히 전해질 수 있음에도 부사를 사용하여 더 구체적으로 의미를 확장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때 부사의 자유는 자유롭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적절한 쓰임을 익히는 것이 필요한다.
  • [MLB] 찬호, 끝나나

    [MLB] 찬호, 끝나나

    ‘박찬호, 이대로 끝나나.’ ‘코리안특급’ 박찬호(32·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설 땅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샌디에이고가 27일 시작한 샌프란시스코와의 홈 4연전에서마저 선발 라인에서 배제되면서 지난 20일 콜로라도 로키스전 구원등판 이후 7경기 연속 마운드에 서지 못하는 등 시련을 겪고 있는 것. 샌디에이고는 27일 선발 등판한 제이크 피비를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와의 4연전 남은 경기 선발로 애덤 이튼-페드로 아스타시오-브라이언 로렌스 등을 가동하기로 했다. 게다가 이날 배포된 구단 보도자료의 불펜 명단에마저 박찬호의 이름이 빠져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팀의 불펜 투수를 소개하는 ‘게임 노트’에 박찬호에 대한 설명을 일언반구도 없이 빼버린 것. 이 때문에 선발과 불펜의 ‘경계인’으로 애매한 처지에 있는 박찬호의 포스트 시즌 엔트리 탈락마저 점쳐지고 있다. 샌디에이고는 이날 샌프란시스코에 2-3으로 역전패하며 77승79패로 6경기를 남긴 상태에서 2위 샌프란시스코(74승82패)에 3경기차로 쫓기고 있어 남은 맞대결 3연전을 바짝 긴장한 채 치러야 한다. 만약 샌디에이고가 포스트 시즌행을 확정 짓는다 하더라도 8개 진출팀 가운데 가장 낮은 승률로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이미 불펜진의 보직마저 확고한 마당에 9년 만에 불펜 시험대에 오른 박찬호를 배려해줄 여유가 더이상 없다. 마지막 희망은 새달 1일부터 시작하는 LA다저스와의 3연전. 샌디에이고가 샌프란시스코와의 남은 3경기에서 지구 선두 자리를 확정 지으면 5일부터 플레이오프가 바로 시작되기 때문에 다저스전에 굳이 에이스 피비나 2선발 이튼을 기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들의 빈자리를 메울 후보 1순위는 단연 박찬호다.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은 “시즌 중반이면 고액 연봉선수 배려 차원에서 기회를 줄 수 있지만 막판 접전을 벌이며 7년 만의 포스트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샌디에이고에는 그럴 여유가 없어 박찬호의 플레이오프행이 어려워 보인다.”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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