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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K리그 ‘이야기’가 없다

    현대 문화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3분짜리 댄스 음악이든 3시간 넘는 영화이든 이야기가 없는 문화는 없다. 시대마다 문화 형식이 다르고 소비 방식이 바뀌었을 뿐 이야기는 모든 문화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줄거리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은 줄거리 때문이 아니다. 등장인물의 성격, 갈등 관계, 복선 등 이야기를 구성하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빚어내는 예상 밖의 충격을 보기 위해 간다. 그러나 우리 프로 스포츠 현장에서는, 특히 축구장에는 이야기가 빈곤하다. 축구를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만 정말 요즘 K-리그는 각본이 없어도 너무 없다. 사람들이 왜 축구장을 찾는가. 오직 축구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짜릿한 이야기를 보기 위해서다. 감독과 선수의 이야기, 승패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모진 시련을 딛고 선 이야기, 세상을 깜짝 놀래 주려는 선수들의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 그리고 모든 것이 농축된 한판의 짜릿한 승부를 90분 동안 만끽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야기가 없다. 선수들은 감정 없는 검투사들처럼 뛸 뿐이다. 자신들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팬들을 의식한 열정적인 경기가 아니라 그저 공을 찰 시간이 되었으니 차 보는 듯한 경우도 있다.감독이나 구단도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갈등이 농축된 축구장의 힘을 인식하지 못한 듯 하다. 물론 선수와 감독들이 갑자기 토크쇼에 출연한 연예인들처럼 수다를 떨자는 게 아니다. 구단들이 구경거리 일색의 이벤트를 늘어놓으라는 게 아니다.중요한 것은 팬들이 왜 축구장을 찾는가 하는 점을 재인식하자는 것이다. 축구만이 줄 수 있는 희로애락의 격렬한 열정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위해 선수들은 모든 에너지와 상상력을 동원하여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쳐야 하고 감독 역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경기를 통해 짜릿한 이야기를 선사해야 한다.에피소드부터 뜨거운 논쟁까지 널리 알려 뜨거운 관심과 흥미를 유발해야 한다. 축구장에 찾아온 사람을 ‘팬’이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당당한 권리를 지닌 문화 소비자이다. 언제든지 다른 이야기를 찾아서 떠날 수 있는 권리가 그들에게 있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프로야구 2007] 양준혁 2000 안타 신화 작성 “지금부터는 2500 히트 도전”

    ‘기록 사냥은 계속된다.’ 프로야구 사상 첫 개인 통산 2000안타의 대기록을 일군 ‘원조 괴물’ 양준혁(38·삼성)의 욕심은 끝이 없다. 지난 9일 잠실 두산전 9회 1사후 이승학의 초구 직구를 밀어쳐 좌중간 안타로 감격의 ‘2000안타 봉’을 처녀 등정한 직후 양준혁은 “3000안타는 (나이 탓에) 무리가 따르지만 2500안타에는 도전해 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야구는 내 인생’ “권투 선수가 경기가 끝나면 쓰러지듯이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니까 이 순간까지 왔습니다.” 양준혁은 평범한 내야땅볼이라도 1루까지 전력 질주한다.“내일은 없다.”라는 절실한 마음가짐에서다. 일본으로 진출한 이승엽(요미우리) 등에 밀려 항상 2인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2인자의 설움은 본인이 아니면 모른다. 내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 역할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어느 자리에서든 최선을 다한 결과는 엄청났다.15시즌 만에 나온 2000안타는 미국, 일본에 견줘 뒤지지 않는다.130년 역사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2000안타를 넘은 선수는 246명뿐이다. 현역은 26명. 피트 로즈의 4256안타(24시즌)가 최다이고, 현역으로는 크랙 비지오(휴스턴)의 2980안타가 최다. 일본프로야구에서도 2000안타를 돌파한 선수는 35명에 그친다. 한국인 장훈(3085안타·23시즌)이 유일하게 3000안타를 넘었다. 현역 가운데 최다는 다쓰나미 가즈요시(주니치)의 2431개. 아울러 그가 작성한 기록도 셀 수가 없다. 지난달 19일 작성한 15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5월19일),14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2006년 8월27일), 통산 최다 루타(2006년 5월23일), 최다 타점(2006년 5월16일), 최다 득점(2005년 9월4일), 최다 볼넷(2006년 4월9일), 최다 안타(2005년 6월25일) 등등.●‘변화가 두렵지 않다’ 그는 ‘선수협’ 파동, 해태(현 KIA) 이적,2005년 슬럼프 등 수많은 시련을 겪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양준혁은 “현실에 안주하면 발전이 없다. 야구는 끝이 없다.”고 강조했다.유연성이 떨어지는 몸이지만 자기관리로 지금까지 큰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해왔다. 그는 “몸을 던지니까 오히려 부상을 안 당했다.”고 말했다. 선동열 삼성 감독은 “워낙 자기 관리를 잘하는 선수”라고 말했다. 팀 관계자들도 “신경 안 써도 되는 선수”라고 입을 모은다.‘안 되면 되게 한다.’는 신념으로 방망이를 곧추세우는 그의 기록 행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한편 양준혁은 2000안타 공을 한국야구위원회(KBO)에 기증했다. 방망이는 경북 경산 볼파크 내 삼성 야구박물관에 전시된다. 그는 성원해준 팬들을 위해 개인 돈으로 1200만원 상당의 자동차 한 대를 12일 대구 KIA전에 경품으로 내놨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삶과 죽음…극단 포착한 詩 ‘독특’

    삶과 죽음…극단 포착한 詩 ‘독특’

    “시의 내용을 풍성하게, 깊이있게 하려면 교양성이나 사물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 철학이 중요합니다. 요즘들어 교양, 철학, 인식능력 등을 더욱 더 가다듬어야 하지 않나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아무래도 독서량을 더 늘려야 겠지요.” 이수익 시인의 시에는 현실적인 삶의 풍경과 체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상작이 실려 있는 근작 시집 ‘꽃나무 아래의 키스’에도 삶과 죽음, 절정과 몰락 등 극단의 일상에서 포착한 풍경을 담은 시들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도시를 걸어다니다 우연히 눈에 띈 풍경을 그만의 독특한 독법으로 읽어내 이미지화한 것들이다. ●삶 속의 풍경을 이야기하다 그런 점에서 요즘 젊은 시인들의 언어 해체나 요설이 담긴 시들과는 구분된다. 시는 전달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시인에게 젊은 시의 다양성은 긍정적인 것이지만, 두서없이 난해하고 자기취향적인 언어를 남발하는 태도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시인은 여러차례 자신만의 ‘시인론’을 밝힌 바 있다. “시인이란 ‘불행의 작두’를 타야 할 숙명을 지닌 사람이다.” 시인이란 칼날 같은 현실을 돌아가지 않고 당당하게 그 위를 걷고, 자신의 상처로 세상이 치유되지 않으면 기꺼이 죽음에도 키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독특한 시인론은 그가 왜 철학, 교양, 인식 등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지 짐작하게 한다. 시인은 공초 선생과는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여러차례 전해들은 공초 선생의 치열한 삶의 태도는 자신의 시작(詩作)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고백했다. ●문학에 눈뜨다 시인은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고별’ ‘편지’ 등이 당선돼 등단했다. 약관을 갓 넘긴 서울사대 영어교육과 2학년 때의 일이다. 시인의 자질은 이미 중학교(부산사대부중) 때부터 충분히 엿보였다. 입학한 뒤 교지 ‘천마’에 시를 투고했다가 탈락한 ‘중학생 이수익’은 절치부심, 중 2년 1학기 때 다시 도전해 마침내 선생님의 눈에 띄었다.2학기 때는 제4회 ‘학원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1969년 발표한 첫 시집 ‘우울한 샹송’은 시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정형화된 시 작법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구어체로 읊조리는 듯한 가벼움을 담은 시인의 초기 ‘연애시’에 대해 미당 서정주 등은 “새로운 시의 패턴을 가져왔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등단 초기, 이처럼 운율과 리듬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인은 “시를 그렇게 쓰면 골격의 힘이 없어질 수 있으니 이미지 시를 써보라.”는 시인 박남수의 조언에 또 다른 시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시인에게 ‘이미지즘 계열의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나의 길을 가련다 “사물, 즉 사람에 내재하는 비극적 요소를 이미지화하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이제는 이미지에 정서를 입히는 쪽으로 약간 변형시켰습니다. 아무래도 삶의 모습을 많이 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은 대학졸업 후 줄곧 방송국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가진 채 시 창작을 병행해왔다. 부산MBC 프로듀서로 입사해 KBS 라디오 차장,KBS 편성운영국 부주간 등을 거쳐 KBS TV 편성주간,KBS 라디오본부 편성주간,KBS 라디오2국 국장,KBS 라디오센터 제작위원 등을 지내다 재작년 정년퇴직했다. 요즘은 고려대 사회교육원 시창작반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일반 문학지망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뿐 대부분의 시간을 시창작에 쏟아붓고 있다. “나의 세계를 만드는 데는 굉장한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한 곳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만도 힘이 들어요. 실험할 여력이 없습니다. 나의 방향을 깊이 있게 뚫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시집까지 4∼5년 주기로 시집을 발표해온 시인은 요즘도 외출할 일이 있으면 메모지부터 챙기는, 영락없는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글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 심사평 마지막 남은 시인 5,6명 중에서 이수익이 금년도 공초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별 어려움 없이 심사위원 전원의 합의에 도달하였다. 이수익의 시가 맑고 선명한 것만큼이나 수상자로서의 이수익의 자격이 선명하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그의 시집 ‘꽃나무 아래의 키스’ 중에서 당선 시편을 ‘오체투지(五體投地)’로 결정하는 과정 역시 수월하였다. 이 시가 갖는 간결성, 뜻의 함축성, 빛과 음영의 아름다운 어른거림 등이 읽는 이에게 선명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시란 영혼의 구조의 드러남’이라고 믿고 있다. 이 때의 영혼이 별 고뇌도 모르는 평범한 영혼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시련과 고뇌와 심미적 체험을 삭여 남다른 만큼의 수준에 이른, 그러한 영혼을 두고 하는 말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영혼이, 시어들이 엮는 뜻의 구조 속에 마치 살아서 피어오르듯이 부각된다. 시에서 영혼의 구조를 드러내는 시인은 그만한 경지에 가 있다는 말도 된다. 이런 말이 시인 이수익만큼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다. 이수익의 시세계를 단적으로 말하면 ‘허무를 덮는 아름다운 서정성의 그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때의 ‘허무’ 역시 퇴폐적인 허무가 아니며, 삶과 존재에 대한 비극적 체험으로서의 허무다. 비극적 체험과 미의식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체험해오고 있는 바다. 쉽게 말해서 슬픈 노래가 아름답지 않은가. 이수익은 시인으로서 이러한 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당선작으로 뽑힌 시의 제목 ‘오체투지’는 땅에 몸을 내던지다시피 하며 엎드려 절대자에게 몸도, 마음도 봉헌함을 나타내는 일종의 종교의식이다. 이 시 역시 간결한 형식과 시어의 이미지의 선명함, 뜻의 깊이와 그늘의 짙음이 읽는 이에게 매우 큰 감명을 준다.‘누에’ ‘거미’ ‘나’의 병치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은 미물의 형제이며 동시에 천사의 형제일 수도 있다. 끝 연 3행이 주는 운동감과 색채감도 놀랍다. 이러한 시의 특색은 그대로 시인 이수익의 인품과 일치한다. 이수익 시인의 공초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심사위원 이근배, 임헌영, 성찬경을 대표하여 성찬경 씀. ■ 이수익 시인은 ▲1942년 경남 함안 출생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1965년 서울대 사대 영어교육과 졸업, 신인예술상 수상 ▲1980년 부산시문학상 수상 ▲1987년 현대시문학상 수상 ▲1988년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1995년 정지용문학상 수상 ▲2001년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 작품집 시집 ‘우울한 샹송´(1969),‘야간 열차´(1978),‘슬픔의 핵(核)´(1983),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2000),‘꽃나무 아래의 키스´(2007).
  • 박세리 8일 LPGA ‘명예의 전당’ 입성

    박세리 8일 LPGA ‘명예의 전당’ 입성

    1998년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US오픈. 박세리(30·CJ)는 ‘맨발 투혼’으로 연장 끝에 사상 최연소 메이저 우승이자, 사상 처음 데뷔 첫 해 메이저 2연승을 일궜다. 당시 외환 위기에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은 그가 마침내 세계 골프사의 한 페이지를 수놓게 됐다. ●맥도널드 챔피언십 1R만 뛰면 자격 박세리는 7일 밤 미국 메릴랜드주 하브드그레이스의 불록골프장에서 개막하는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을 통해 LPGA 명예의 전당 입회 조건을 모두 갖추게 된다.1라운드를 마치고 박세리가 스코어카드를 제출하는 순간, 마지막 조건이었던 ‘10시즌 활동’을 인정받기 때문. 이번 대회는 박세리가 올 10번째 출전하는 경기로 LPGA는 10개 대회 이상 나가면 한 시즌을 소화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박세리는 오는 9월 명예의 전당에서 축하 파티의 주인공이 되고,11월 헌액식에서 입회 증서를 받는다. 1998년 LPGA에 데뷔, 메이저 5승을 포함해 통산 23승을 챙긴 박세리는 2004년 미켈롭울트라오픈 우승을 따내며 메이저 4승(8점), 투어 대회 18승(18점),2003년 베어트로피 수상(1점)으로 명예의 전당 입성 포인트 27점을 이미 채웠다.LPGA 명예의 전당 아시아 선수 1호 탄생 초읽기에 들어간 셈. ●LPGA 명예의 전당 아시아선수론 1호 박세리는 투포환 선수를 하던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프채를 쥐었다.15살 때 라일 앤드 스콧 여자오픈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원재숙을 꺾고 우승,‘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박세리는 1997년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에 수석으로 합격, 세계를 향해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LPGA에 데뷔하자마자 첫해 4승, 이듬해 4승을 따내며 단숨에 최강자로 떠올랐다. 그의 성공 신화는 국내에서 골프 대중화를 이끌었고 한국 선수들이 줄지어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시련 딛고 부활… “이번 대회는 자축 무대” 시련도 있었다. 꿈에 그리던 명예의 전당 입성 포인트를 7년 만에 일찌감치 확보한 탓인지 2004년 중반 이후 깊고 기나긴 슬럼프에 빠진 것.70대 후반 타수를 기록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컷오프되는 경우도 허다했다.2005년 후반에는 병가를 내고 투어 활동을 접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듬해 복귀한 박세리는 LPGA챔피언십을 제패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세리는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이 전화위복이 됐다.”면서 “골프를 사랑하는 법을, 즐기는 법을 깨닫게 됐다.”고 당시를 돌이킨다. 박세리는 이번 대회에서 명예의 전당 입회 이상의 결과를 노린다.LPGA 투어 첫 승의 기쁨을 누렸던 것도,5개의 메이저 우승컵 가운데 3개를 수집한 것도, 슬럼프를 끊어낸 것도 바로 이 대회이기 때문이다. 올해 네 차례 ‘톱10’에 진입, 예전의 기량을 찾아가고 있는 박세리가 우승컵으로 명예의 전당 입성을 자축할지 주목된다. 박세리는 소리쳤다.“멋지게 웃는 모습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고 싶습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기고] 호국·보훈에 담긴 뜻은/김정복 국가보훈처장

    “삭풍은 칼날보다 날카로워 살을 에는데, 살은 깎이어도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기어도 슬프지 않노라. 차라리 이 머리 잘릴지언정 어찌 무릎을 꿇어 일제의 종이 될까보냐” 독립운동가 이상룡 지사가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면서 지은 시의 일부이다. 우리 민족이 숱한 시련을 극복하고 오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민족정신이요 자존심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강인한 정신과 자긍심은 국난을 이겨내는 원동력으로 표출되었다. 누구에게나 가장 귀중한 목숨을 국가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행동 중에 최고의 가치를 지닌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것으로 칭송되어 왔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보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응분의 예우를 통해 국민의 애국심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건강한 국가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나라를 이끌어 가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국가유공자들이 바로 서지 않고서는 국민의 가치관도 사회정의도 바로 설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나라 위한 헌신이 진정 명예로운 것이 될 때 나라의 장래도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보훈’은 국민 된 도리인 것이다. 선열들의 희생을 현재에 되살리고 미래를 밝히는 가치로 우뚝 세우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시대적 소임이다. 국가보훈은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치열한 생존경쟁을 이겨내려면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의식을 키워 국가적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 또한 국가 발전을 이루고 민족 번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국가유공자의 위국헌신 정신을 되살리고 건전한 국민정신으로 승화시켜 국민통합을 이루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분단된 국토를 통일하고 분열된 민족을 통합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완전한 광복을 이루지 못한 채 분단의 강은 깊어만 갔다. 이러한 때 지난 5월17일 한차례의 시험운행이긴 했지만 50여년 만에 발이 묶였던 철마가 7000만 한민족 통일의 꿈을 싣고 힘차게 달렸다. 이제 북핵문제도 평화적 해결의 가닥을 잡고 있고, 남북관계 개선도 한발 한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남북의 화해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우리는 오늘이 있기까지는 6·25전쟁 때 목숨 걸고 나라와 자유를 지킨 호국용사들과 21개국의 유엔군 참전용사들이 있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매년 유엔군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이뤄지고 있다. 참전용사들은 한결같이 한국전 참전에 대한 자긍심을 말한다. 우리는 유엔용사들을 통해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라는 참뜻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특히 올해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일으킨 국채보상운동 100년, 이준 열사가 헤이그에서 일제의 침략상을 알리고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백성이 나라를 위하는 정신이 있는 때는 흥하고 그 정신이 없는 때는 망하는 것이다.”라는 이준 열사님의 가르침은 가치관의 혼란을 극복하고 국가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우리에게 살아있는 교훈으로 다가온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 나라를 위해 싸우고 민주화를 위해 애쓴 이들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널리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정복 국가보훈처장
  • [종교건축 이야기] (29)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서울대성당

    [종교건축 이야기] (29)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서울대성당

    한국정교회. 신교인지, 구교인지, 아니 한국에선 그 존재마저도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 하지만 엄연히 전국에 2000명의 세례교인이 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교회다. 서울을 비롯해 인천 부산 전주 춘천 양구 용미리 등 7개의 정교회 성당에서 매일 하루 두번씩 예배가 열리며 주말엔 어김없이 성찬예배가 진행된다. 이 가운데 서울 마포경찰서 맞은 편 언덕의 성 니콜라스 대성당(마포구 아현1동 424-1)은 한국정교회의 총본산격으로, 한국에선 처음 세워진 비잔틴 양식의 독특한 공간이다. “하나인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정교회 교인들은 신앙의 신조 ‘니케아 신경’을 외울 때 이렇게 말한다.‘그리스도께서 세우셨고, 오순절에 거룩한 사도들에 의해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고 위대한 교부들에 의해 조직되고 지역공의회와 세계 공의회의 보호를 받은 교회’.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 5대 교구가 형성되어 내려오던 그리스도교는 1054년 동서방 교회의 분열로 인해 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의 4개 지역을 관할하는 정교회와 로마를 배경으로 한 로마 가톨릭으로 갈라졌다. 이 가운데 정교회는 서방교회라 부르는 로마 가톨릭과 구분해 동방교회로 통한다. 한국정교회는 아직 독립교회나 자치교회로 인정받지 못한 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구를 모교회(母敎會)로 선교활동을 펼치는 작은 교회. 그리스에서 파송된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를 중심으로 그리스 출신의 주교와 한국인 신부 6명, 한국인 보제신부 1명, 러시아 출신 신부 1명 등 9명의 사제가 사역하고 있다. 종교로서의 정교회는 1900년에야 이 땅에 처음 들어왔지만 정교회와 우리와의 만남은 800년전 고려시대부터 있어왔다. 몽골 군이 유럽을 유린하던 중세시대 몽골에 파견되었던 로마 교황청의 사절이 남긴 기록을 들여다 보면 몽골의 왕실은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이어서 러시아에서 온 대공(大公)을 후하게 대접했다. 당시 볼모로 잡혀가 있던 고려 왕실 등의 귀족 자제들이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조선 영조시대 청나라 베이징에 사신으로 갔던 이윤신은 ‘문견사건(聞見事件)’에서 ‘큰 코 오랑캐’라는 의미의 대비달자(大鼻獺子)를 만났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 대비달자는 바로 ‘코 큰 러시아 정교회 선교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 조선 선교책임자로 입국한 러시아 흐리산토스 쉐헤트콥스키 대신부가 그해 2월17일 러시아 공사 관저의 큰 방에서 성찬예배를 드린 것이 한국정교회의 시초. 한국정교회는 그 날을 생일로 삼고 있다. 고종으로부터 부지를 하사받아 지금 경향신문 자리인 서울 정동 22번지에 첫 성당을 세웠는데 러시아에서 제작해 들여온 7개의 크고 작은 이색 종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소리가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이후 정교회는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의 선교사가 모두 추방되면서 사실상 단절됐지만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교구로 조직되어 교세를 늘여가다가 한국전쟁을 맞아 다시 철퇴를 맞았다.1947년 한국인 사제 알렉세이 김의한이 서품되었지만 전쟁 발발 두 달뒤 납북되어 처형되었고 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던 것이다. 정동성당도 전쟁의 와중에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당시 한국에 파병된 그리스 병사들이 매월 1달러씩 모아 성당 복구 비용에 보태기도 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 육군의 종군 사제인 안드레아스 할쿄풀로스 대신부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보리스 문이춘이 교회재건에 나서 1968년 아현동 언덕에 지금의 성당을 세워 놓았다. 로마 가톨릭 교회들이 긴 사각형의 공간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신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바실리카 양식을 택한다면 정교회 교회들은 한결같이 중앙의 둥근 돔을 통해 쏟아져 내리는 하늘의 빛을 수렴하는 비잔틴 양식을 쓴다. 성니콜라스 대성당도 다르지 않다. 멀찌감치서 볼 때도 지붕의 둥근 돔이 가장 먼저 눈에 든다. 성당 입구 왼쪽에 선 아치형 종탑도 보통 교회나 성당의 것과는 완연히 다르다. 모두 5개의 크고 작은 종들에 내리 걸린 줄을 잡아당겨 치도록 했는데 요즘도 매일 예배 때 어김없이 종이 울린다. 정교회가 처음 들어오면서 선교사들이 러시아에서 7개의 종을 들여왔는데 전쟁중 2개만 남긴 채 모두 파손되었고 지금은 이 2개와 나중에 그리스 정부가 기증해온 3개의 종을 모아 5개의 종을 걸었다.1978년 종탑을 세울 때도 파병 그리스 병사들이 모금한 돈이 쓰여졌다고 한다. 정문 위에 걸린 수호성인 성 니콜라스의 금색 모자이크상을 보며 성당 문을 들어서면 비잔틴 양식 그대로 천장의 거대한 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앙 돔을 기준으로 신자석과 전례공간인 지성소가 나뉘지만 중앙 돔 양쪽에 사각형 공간을 각각 두어 결국 내부 공간은 십자가 모양을 갖추고 있다. 성당 문 바로 앞에는 양쪽에 촛불을 밝히는 성초대가 있는데 신자들이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나를 희생하고 이타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정화의 공간이다. 전례공간으로 가다 보면 신자석 앞 왼편에 세례조가 눈에 띈다. 전통적으로 침수 세례를 고수하는 정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지하 1.5m 깊이의 공간에 물을 채워 신자들이 세번 물속에 잠기는 과정을 통해 세례를 받는다. 정교회는 로마 가톨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화(聖畵)를 중시한다고 한다.4세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성화는 대부분 복음서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리스도교의 심오한 진리를 신자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보조교재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성당 안은 온통 성화로 도배되다시피 장식됐다. 모두 그리스 아테네대학의 소존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제작해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중앙 돔 역시 거대한 성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상 만물을 주관하는 꼭대기의 예수를 정점으로 성모 마리아와 천사·세례요한, 구약의 예언자 아브라함·다윗·모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이른바 구약의 의인들이 차례로 그려져 있다. 결국 이 돔은 천상의 예수님부터 지상의 인간까지 연결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신자석과 전례공간인 지성소를 구분하는 이코노스타시스(성상 칸막이)도 천주교 성당과는 달리 높게 쳐져 있어 독특하다. 꼭대기에는 정교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꽃봉오리 십자가가 올려져 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짊어진 예수의 고귀함을 아름답게 표현한 십자가이다. 성상 칸막이 중간의 ‘아름다운 문’ 양쪽에는 역시 예수와 세례요한, 성모마리아상이 새겨졌다. 성상 칸막이 안쪽의 전례공간 구성은 천주교 성당과 비슷하지만 제대 벽은 성모상과 아기예수, 최후의 만찬을 형상화한 성화로 마감하고 있다. 성당 왼쪽, 선교사관과 사무실·교육실로 쓰이는 건물의 지하엔 성 막심 성당이 있다. 중앙 성당이 일요일 성찬예배가 열리는 곳이라면 이곳은 평일 두차례씩 예배가 열리는 소성당. 초기 선교사들이 입던 제의와 18세기 제작된 성화, 복음경, 한글 기도문, 성가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러시아 신자들을 위한 예배와 영어 예배도 이곳에서 열린다. kimus@seoul.co.kr ■ “교세 확장보다 진실된 믿음 전파에 힘써” 소티리오스 트람바스(78) 대주교는 1975년 문이춘 신부의 후임으로 그리스 정교회에서 부임해 32년간 한국정교회를 이끌고 있는 한국정교회의 가장 웃어른. 교인 2000명에 불과하지만 한국정교회를 대표하며, 세례며 온갖 성사를 주례하는 ‘영적 아버지’로 통한다.“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달랑 성당 하나밖에 없었어요. 종탑도 없이 성당 한 쪽에서 종 몇 개를 매달아 예배를 알리곤 했는데, 돌이켜 보면 놀랄 만한 성장을 이뤘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정교회는 천주교 못지않게 이 땅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세계 어느 지역 정교회에도 뒤지지 않는 신자들의 열성과 신심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소티리오스 대주교. 그는 “한국의 정교회 교인들은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가르침’의 의미를 가진 정교회 교리에 존경스러울만큼 충실한 채 성숙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거듭 자랑한다. “서구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인해 교세를 확장시켜 나갔지만 정교회는 초기 교회의 진리를 훼손하지 않은 채 진실된 믿음(복음) 전파에 치중해온 역사를 갖습니다. 지금도 세계의 정교회는 이같은 초기 교회의 정신을 올곧게 지키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수많은 종교들이 분쟁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한국은 지구상 유례없는 다종교국가라는 소티리오스 대주교는 “그러나 같은 종파이면서도 분열을 재생산하는 한국의 개신교는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며 “성장과 신자 확보에 치중하지 않는 정교회를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 엄마는 좋겠네, 딸도 좋겠네

    엄마는 좋겠네, 딸도 좋겠네

    과부모녀가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8년수절의 어머니와 과부 3년의 딸은 이 결혼식으로 모두 개가함과 함께 어머니는 사위를, 딸은 아버지를 새로 맞이하게 된 것. 우리나라서 처음 있는 이 모녀합동 결혼식 뒤엔 숨은 사연도 많다. 똑같이 1남1녀둔 과부 같은 주례에 어머니부터 9월 23일 낮 충남 논산군 연무읍 안심리 문화예식장에선 각각 1남1녀를 가진 모녀 과부가 함께 결혼식을 올렸다. 비록 한 날, 한 예식장에서 같은 주례와 하객속에서 결혼식을 올리게는 되었지만 어머니와 딸사이의 선·후를 따져 어머니의 결혼식이 끝난 뒤 딸의 결혼식이 속행됐다. 이날 낮 12시부터 약 50분동안 이웃 한의사 김화중씨(51·보건당약방)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 두쌍의 주인공은 신랑 나(羅)순봉씨(51·연무읍 안심리)와 신부 최(崔)민수씨(44·논산읍 화지동), 그리고 신랑 김명(金明)환씨(32·채운면 화정리)와 신부 유(兪)윤숙양(28·논산읍 화지동). 이들 두 신부는 모두 남편을 잃은 친 어머니와 딸 사이. 그러니까 이들의 이날 결혼식은 같이 낭군을 맞으면서 어머니는 사위를 얻고 딸은 아버지를 맞이한 것. 지금껏 듣도 보지도 못한 이들 모녀의 결혼식은 영문 모르는 일부 하객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는데 방금 주례의 결혼선포를 받고 단 아래로 내려선 나씨가 아버지로서 딸 유양을 신랑 김군에게 이끌고 나가자『눈 깜박할 사이에 28년이 흘렀다』고 하객들은 웃음을 띠었다. 『너무하다』는 일부 친지의 반발에 부딪친 이 모녀의 동시결혼식은 주례 김씨가 미풍양속에 어긋난다고 두쌍 모두의 주례를 거부, 친지들은 주례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설득이 늦어지는 바람에 이들의 결혼식은 예정시간(상오11시10분)보다 50분이 늦게 올려졌다. 딸은 결혼한지 3년만에 어머닌 8년전 남편잃어 누가 뭐라든 이들 모녀의 결혼식은 50분동안에 불과 9천원의 경비(예식장비 3천원, 피로연 6천원)로 간략하게 끝냈다. 식에서 베풀어진 절차는 주례의 성혼선포, 간단한 예물 교환뿐, 내빈축사나 친족대표의 인사 따위는 생략됐다. 처음에 주례 맡기를 거절했던 주례 김씨는 간략한 결혼식을 끝낸 다음 이들을『극한의 가정의례준칙 실천자』라고 오히려 찬사를 보냈다. 몇몇 친지를 빼놓고는『이럴수가…』있느냐는 듯이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식이 끝나자 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각기 생업에 매달린 이들에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숨겨져 있다. 이들 모녀는 지난 13일 신부들의 집(논산읍 화지동)에서 약혼식을 함께 했으나 결혼식 택일은 신랑쪽에 맡기고 통지를 기다렸다. 딸의 신랑쪽에서 9월 23일로 결혼일자를 정해오자 이틀뒤에 어머니의 신랑쪽에서도 같은날로 알려왔다. 너무도 우연히 택일이 같아진 것. 신랑쪽에서 정한 날짜는 신부로서 거부할수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둘 중 한사람이 양보해야한다는 얘기가 나올만큼 모녀는 큰 시련에 부닥쳤다. 8년전에 남편을 잃고 불행하게 살아온 어머니 최씨를 더 늙기전에 꼭「웨딩·드레스」를 입혀 보는것이 딸의 유일한 희망. 그러나 어머니 역시 굶주림 속에서도 귀엽게 기른 외딸이 결혼3년만에 남편을 잃어 1남1녀의 자식을 기르느라 고생하는 것을 볼때마다 훌륭한 남자에게 개가시키는 일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들은 이 딱한 사연을 점장이 이(李)모여인(63)에게 물어 해결을 짓기로 했다. 점장이가 모녀 중매서고 신랑들과 비슷한점 많아 점장이 이모여인은 딸과 어머니를 모두 중매한 장본인. 점장이 이여인은 이렇게된 바엔 차라리 어떤 빈축이 오가더라도 함께 결혼식을 강행하라고 격려, 이들은 그 뜻을 따르게된 것이다. 중매로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이들에겐 너무도 우연의 일치가 많았다. 어머니의 남편이 된 나씨는 죽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3남4녀를 두었고 막내아이가 10살이 넘을 때까진 재혼을 하지말라는 유언을 지켜 8년동안을 어머니 역할까지 겸해왔다. 한편 새로 나씨에게 개가한 최여인은 16살 어린나이에 30살 위인 유모씨와 예식을 갖추지 못하고 초혼, 꼭 8년전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돼 수절을 지켜온터. 그러니까 두사람 모두 8년수절한 홀아비와 과부이다. 딸 유양은 4년전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남편의 사망 보상금으로 집을 마련, 어머니와 함께 닥치는대로 고된행상을 벌여 가족을 보살펴 왔으나 연약한 여자들만의 힘으론 자녀 교육은 고사하고 먹고 살기에도 힘겨웠다. 어머니의 중매를한 점장이 이여인은 논산군 채운면 화정리에서 양계장을 경영하는 총각 김군을 중매, 이들역시 첫눈에 반해 버렸다. 여기 곁들여 가족들의 재혼촉구는 날로 더욱 적극적. 이들은 가족회의를 열고 화제가된 날 결혼식 까지 승낙을 받았다. 처음부터 우연한 일치의 연속이었고 떡장사, 떡방앗간, 그리고 채소와 얼음과자 행상으로 역경을 걸어온 이들은 알찬 사랑과 근면·검소한 생활의 본보기. 처음엔 빈정거리던 이웃들도 이들의 솔직대담한「혁신」에 찬사를 보내며 새 결혼살림이 행복하기를 빌고 있다. [선데이서울 70년 10월 4일호 제3권 40호 통권 제 105호]
  • [사설] 경찰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경찰조직의 자중지란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한화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의 여파다.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이유로 지난 주말 홍영기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물러났다. 이어 경찰은 자체 감찰을 토대로 이 사건의 은폐·외압 여부를 가리기 위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일각에서는 ‘경치일’(警恥日)로 규정하고 ‘조직을 팔아 먹은 배신자’ 운운하며 이택순 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사태로 번지고 있다. 경찰이 처음부터 이 사건을 법대로 처리했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이다. 사건을 이렇게 변질시킨 것은 결국 경찰이 자초한 것 아닌가. 이제 경찰 총수까지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게 생겼으니 부끄러울 만도 할 것이다. 더구나 경찰청장은 부하 경찰관들로부터 극도의 불신을 받는 처지다. 조직을 추스르기에도 벅차 보여 안타깝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경찰관들은 자중해야 한다. 수뇌부에 책임을 묻고 비난하기에 앞서 국민 앞에 깊이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외압의혹 수사를 검찰에 넘겨준 것은 불가피했다고 본다. 경찰 수뇌부가 더 연루됐을지도 모르는데, 이를 한 점 의혹 없이 밝히자면 경찰 자체수사로 가능하다고 보는가. 위기 앞에서 흔들리는 경찰조직이 딱하기 그지없다. 이래 가지고는 국민의 신뢰만 잃을 뿐이다. 경찰관들은 감정적인 언동을 자제하기 바란다. 이 사건과 관련한 성명발표나 검찰수사에 대한 집단적 반발 움직임을 보여서도 안 된다. 그 대신, 법의 테두리와 상식을 일탈한 파행수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똑똑히 보라. 사랑받는 경찰, 신뢰받는 경찰이 되고 싶다면 이성적이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라. 경찰은 이 아픈 시련을 딛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 ‘승승장구’ 신영 첫 시련

    직접 건설을 하는 시공사가 아니라 종합 부동산개발업체로 승승장구해온 신영이 최근 실패를 맛봤다. 국내 1위 시행사로 자리매김한 신영에는 사실상 첫 실패라는 말도 업계에서는 나오고 있다. 신영이 최근 의욕적으로 추진한 충북 청주시 복대동 대농지구의 대규모 주상복합단지 지웰시티 1차분 2164가구 분양이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 3월27일 이후 1∼3위 분양에서의 계약이 절반을 밑도는 수준이다. 이같은 계약 저조에 대해 신영은 느긋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영 관계자는 14일 “극도로 침체된 부동산시장 상황과 비수도권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고려할 때 50%에 육박하는 분양은 비교적 선전한 편”이라며 “조급한 마음을 풀고 느긋하게 (분양완료를) 가을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신영이 지웰시티에서 재미를 못본 것은 최근의 부동산경기 침체에다 평당 분양가가 1140만원 정도로 고가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분양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지난해 가을에 분양했더라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오는 9월에는 2차분 1940가구를 분양할 예정이지만 이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침체된 부동산시장이 이른 시일내에 되살아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시청 공무원 출신인 정춘보 회장은 84년 신영을 세웠다. 초창기 ‘복덕방’에서 출발해 종합 부동산개발회사로 끌어올렸다. 자수성가한 셈이다. 신영은 지난 97년 처음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시그마Ⅱ 1094가구를 성공적으로 분양하면서 부동산 개발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시그마Ⅱ 시공사인 한라건설이 부도를 맞았지만 신영은 한라건설을 끝까지 밀어줬다. 이후 99년 분당신도시의 주상복합 로얄팰리스(624가구)를 비롯해 지난해 김포 지웰시티(267가구) 등 아파트와 주상복합을 지어 성공적으로 분양해 나름대로 입지를 굳혔다. 신영은 2004년에는 대농을 인수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천재 골퍼’ 미셸 위와 2년간의 광고계약을 맺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계속했다. 하는 것마다 대박을 터뜨렸다는 말을 듣던 신영이 청주 지웰시티에서 뜻밖에 만난 미분양이라는 ‘암초’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주목된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모험과 도전 변신에 성공한 기업들] (6·끝) ‘점유율 70%대’ 쿠쿠홈시스

    [모험과 도전 변신에 성공한 기업들] (6·끝) ‘점유율 70%대’ 쿠쿠홈시스

    1998년 이후 국내에서 팔린 전기밥솥은 어림잡아 1800만대. 이 중 73%인 1340만대가 ‘쿠쿠’였다. 외형 규모도 그렇지만 도산 직전에까지 몰렸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대의 밥솥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다른 기업들에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쿠쿠홈시스의 모태는 78년 창립된 성광전자였다. 사실 회사이름이 안 알려져 있었을 뿐 성광전자는 LG전자·필립스·동양매직 등 대기업 주문자상표부착(OEM)으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온 전기밥솥의 강자였다. 전환점은 97년 말 외환위기였다. 대기업들도 휘청대는 판이었으니 OEM 전문회사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었다. 대기업의 생산주문이 하나둘 끊기면서 매출이 3분의1로 줄었다. 선택이 필요했다. 과연 자체 브랜드로의 전환은 해답이 될 것인가. ●성광전자가 모태… 대기업 OEM 생산 사정은 만만치 않았다. 삼성과 LG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얼마 후면 일본 조지루시(象印)의 ‘코끼리밥솥’이 시장개방으로 들어올 판이었다. 대기업의 인지도, 자금력, 판매망과 일제에 대한 주부들의 선호도를 감안하면 톱3에 들어가는 게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구자신(현 회장) 사장은 98년 4월1일 OEM의 낡은 집을 버린다고 선언했다.“그동안 갈고 닦아온 업계 최고수준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자체 브랜드 전환은 전에도 몇차례 시도는 했었습니다. 시련기를 맞아서 과감히 도전키로 한 것이었죠. 이미 우리에게는 94년에 상표등록을 한 ‘쿠쿠’ 브랜드가 있었습니다.”(조학래 이사)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신제품을 개발했고 업계 최초로 ‘에이징 라인’을 도입했다. 모든 제품에 대해 실제 밥을 짓는 것과 똑같은 과정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상제품인지 확인하는 것으로 불량률 ‘제로’를 위해 개발된 과정이었다. 그해 8월1일. 대리점 등 판매업소에 제품이 공급되던 첫날. 구 사장은 전 직원들에게 외상거래 절대 금지 지침을 내렸다.“우리 제품을 외상으로 주면 상인들은 물건으로 보지만 선금을 내고 사가면 우리 제품을 금(金)으로 본다. 세계 최고인 우리 제품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구 사장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일단 매장에 진열을 해보고 팔리면 돈을 주는 관행이 일반화돼 있던 시절. 판매점이 곱게 들을 리 없었다. 게다가 쿠쿠라는 처음 듣는 브랜드가. 영업사원들이 아침에 회사에서 밥솥을 들고 나갔다가 저녁에 고스란히 들고 들어오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냥 OEM이나 하는 게 옳았던 게 아닌가, 외상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우리나라 상거래 관행에 비추어 너무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한숨이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비로소 주문다운 주문이 들어온 것은 한달 이상이 지난 뒤였다. 옛 성광전자 OEM 제품이 시장에서 사라진 뒤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대리점들이 성광전자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엔진시동은 늦게 걸렸지만 그 이후의 속도는 대단한 것이었다. 회사 자체 집계로는 99년 9월에 LG, 삼성 등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시중에 등장하고 나서 딱 1년 걸렸던 셈이다.2000∼2003년 4년간은 국내 가전사에 남을 만한 ‘밥솥 혈전’이 벌어진다. 가격과 신제품 출시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20만원선 밥솥이 일부 매장에서 6만원대에 팔리기도 했다. ●업계 첫 시뮬레이션 ‘에이징 라인´ 도입 가격보다는 기술에 능력을 집중했다. 다행히 그동안의 명성으로 소비자들은 가격공세에 흔들리지 않을 로열티를 갖고 있었다. 결국 몇몇 중소기업은 자금 사정으로 몰락했고 대기업은 불량률 증가와 폭발사건 등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밥솥 생산을 중단하고 만다. 오랜 밥솥전쟁의 최후의 승자는 쿠쿠가 된 셈이다. 이것이 쿠쿠를 지금과 같은 시장점유율 70%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철저한 고객관리도 성공의 원천이었다. 소비자들이 인터넷에서 건의하면 회장 이하 팀장 이상까지 모든 사람에게 메일이 전달된다. 그러다보니 불만이 바로바로 고쳐졌고 소비자들이 전하는 아이디어 중 유용한 것은 사장이 직접 담당을 지정해서 연구를 지시했다. 쿠쿠 성공요인의 또다른 한 가지. 인력 대신 임금의 구조조정을 했던 것도 주효했다. 노사협의를 통해서 임금을 1차로 13.8% 자진삭감했다. 회사를 떠나면 어디 갈 데도 없던 암울한 시절. 적게 받고 직장을 유지하자는 공감대가 노사간에 퍼지면서 핵심 인력들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열린세상] 위대한 선택/차동엽 신부

    [열린세상] 위대한 선택/차동엽 신부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는 더이상 어제오늘의 담론이 아니다. 흔히 문학, 역사학, 철학으로 대표되는 인간 정신문화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인문학은 정신보다는 물질적인 측면을 중요시하는 시류에 떠밀려 점점 쇠락하고 있다. 효율과 상업주의로 치닫고 있는 21세기 한국 문명 속에서 빠르게 그 중요성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 가치 곧 인륜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과 다름없다. 인륜을 상실하면 아무리 문명의 이기가 발달해도 세상은 황폐화의 길을 걷게 되어 있다. 결국 행복의 상실과 의미의 빈곤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미래가 온통 흔들릴 것이다. 필자는 온 국민의 가슴에 부끄러운 슬픔의 비수를 꽂은 버지니아 공대 참사 소식을 접하면서 새삼스레 인문학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우리는 이 참사를 통해 한 인간의 영혼이 기능을 상실했을 때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확인했던 한편, 한 사회에 인문정신이 풍요로울 때 인간은 얼마만큼 큰 가슴을 지닐 수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목도하였다. 흉측한 살인자의 이름을 추모석의 희생자들 명단에 나란히 새겨놓고 ‘지금은 그 누구를 탓할 때가 아니고 서로의 슬픔을 포옹해야 할 때’,‘네가 그리도 도움이 필요했는지 몰랐다. 네 가족의 평화를 빈다’라는 위로의 문구를 헌사한 버지니아 주민들의 성숙함 속에서 인문학의 승리를 엿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억지일까. 혹여 비난의 화살이 한국인에게 날아올까 조마조마했던 우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쉴 일이 아니라, 이제라도 원대한 안목에서 역사의 위기 때마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일러준 인문학의 부활을 위한 장기 포석을 놓을 때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인문학에 대한 투자가 지혜로운 선택임을 필자는 두가지 모범적인 사례에서 확인한다. 그 첫번째 예가 유대인의 탈무드다. 국가 존망의 숱한 위태로움을 보며 정신적 지주인 경전 연구의 중요성을 깨달은 유대인은 BC 500년경부터 장장 1000년간 수많은 학자들과 랍비들이 가담한 장기 프로젝트로 탈무드를 연구·보급하였다. 이처럼 정신자산에 대한 원대한 안목과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은 수천년간 한과 통곡으로 점철해온 시련의 역사를 이겨내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실인 경전과 탈무드는 오늘도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민족을 연결해 주는 정신적 지주요 얼인 동시에 탁월한 지혜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통계치로도 분명히 드러났다. 역대 노벨수상자의 약 25%가 유대인이며 20세기를 주도한 최고의 지성 21명중 15명이 유대인이다. 미국 최고 부자 40명중 절반이 유대인이다. 두번째 예는 노벨상 왕국이라 일컬어지는 시카고 대학이다. 이 대학은 노벨상 수상자를 70명이나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기까지 항존주의 교육 철학의 시조인 로버트 허친스 총장의 공적이 컸다. 허친스 박사는 교양 교육의 일환으로 학생들에게 고전 백 권을 각 분야에서 읽도록 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고전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불변한 진리와, 그러한 진리 탐구에 필요한 역할 모델을 발견하도록 함이었다. 그러한 인문·교양 교육의 성과로 시카고대 동문 교수 중에서 엄청나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인문학 투자는 결코 실용적인 관점에서 무용한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조금 눈을 높이 들어 멀리 보며 위대한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생명과 지혜의 ‘양식’을 공급해 줄 ‘정신자산’의 연구에 국가적인 투자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장구하게, 풍요롭게 번영하는 길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차동엽 신부
  • 박지성 내일 무릎수술…회복 6개월 이상 걸릴 듯

    박지성 내일 무릎수술…회복 6개월 이상 걸릴 듯

    박지성(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2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수술대에 오른다. 맨유 구단 홈페이지는 오른쪽 무릎을 다친 박지성이 세계적인 무릎 수술 권위자인 리처드 스테드먼 박사에게 진단을 받은 결과, 이날 무릎수술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맨유와 FC서울의 친선경기(7월20일) 일정 협의차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길 맨유 사장은 27일(한국시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지성이) 현재 검사를 받고 있으며 수술 여부를 곧 결정할 것”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그러나 길 사장은 박지성의 재활에 길게는 1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의 보도에 대해 “과장된 면이 있다.”며 “검사 결과가 나와야 (재활기간 등을) 정확히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특히 부상 부위가 4년 전 에인트호벤 시절 한 차례 수술을 받았던 오른쪽 무릎이어서 더욱더 수술과 재활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박지성의 복귀가 예상보다 훨씬 늦춰지는 것이 공식 확인됨으로써 2002년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을 통해 유럽에 진출한 박지성은 가장 큰 시련에 직면하게 됐다. 이번 시즌은 물론,07∼08시즌 전반기까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데다 7월 아시안컵에도 나설 수 없어 핌 베어벡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의 전력에도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이영표(30·토트넘) 역시 수술을 받고 아시안컵에 빠질 것이 분명해 한국대표팀은 경험이 풍부한 공수의 핵을 잃은 셈이어서 비상이 걸렸다. 국가대표팀의 최주영 의무팀장은 “정확한 소견을 낼 수는 없지만 완치에 1년까지는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박지성이 무릎 십자인대를 다쳤다면 재활에 적어도 6개월 이상이 걸린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지난해 9월 토트넘전에서 발목과 인대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뒤 99일 만에 돌아온 박지성은 이번 시즌 정규리그 5골과 2도움으로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해마다 되풀이되는 부상 악몽에 또다시 발목이 잡혀 상당 기간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하게 됐다. 한편 길 사장은 금호타이어가 타이틀 스폰서를 맡는 맨유와 FC서울의 친선경기에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1군 선수 20여명을 총출동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매년 방문은 어렵겠지만 2년에 한 번씩 아시아를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어 최대한 한국을 자주 찾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완경 FC서울 사장은 맨유와 우수선수 및 구단 프런트의 정기교류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챔피언스리그] 콜, 부활 ‘벨소리’

    ‘콜! 부활골!’ 조 콜(25)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가 자랑하는, 아니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이 자랑하는 테크니션 가운데 한 명이다. 첼시의 리그 2연패에 앞장섰던 그는 06∼07시즌 들어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최악의 시련을 겪었다. 개막에 앞서 미국 메이저리그사커 올스타팀과 친선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다. 콜은 지난해 9월부터 뒤늦게 팀에 합류해 교체 요원으로 뛰며 컨디션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11월 말 발 부위에 피로 골절이라는 암초를 만났고, 시즌을 일찌감치 마감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4개월의 공백을 딛고 올 4월 그가 돌아왔다. 그리고 26일 영국 런던 스탬퍼드브리지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 부활을 알리는 결승골을 뿜어냈다. 전반 29분 디디에 드로그바가 밀어준 공을 향해 슬라이딩하며 왼발을 갖다 대 상대 골문을 열었다. 부상에서 돌아온 뒤 두 번째 선발 출장(5경기 교체출장) 경기에서 낚은 귀중한 득점이자 올시즌 공식경기 두번째 골. 최근 3시즌 동안 리버풀을 상대로 무려 4골을 뿜어냈던 콜은 다시금 리버풀의 천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책꽂이]

    ●인터넷을 믿지 마세요(이지영 지음, 에세이 펴냄) 지난 2001년 등단한 수필가 이지영씨가 에세이집 ‘인터넷을 믿지 마세요’(에세이 펴냄)를 냈다. 오타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과정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삼아 ‘믿음’의 의미를 되새겨본 표제작을 비롯해 최근까지 쓴 50여편의 글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엄마, 아빠를 부르며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말고는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가슴엔 시퍼런 멍만 깊이 새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다가올 고통의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찌 알았으랴.”(‘인생의 폭풍이 지난 후에’ 가운데) 콩팥 옆의 림프관이 막혀 있어 림프액이 소변과 함께 배출되는 ‘유미뇨’라는 희귀병을 앓았던 아들의 투병과 회복과정을 그린 작품에서는 주변의 걱정과 도움을 고마워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조시인 이상범씨의 딸인 작가는 “감당하기 벅찬 시련이 연달아 닥쳐왔던 지난 10년간 글쓰기는 커다란 위안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1만원. ●킬러, 형사, 탐정클럽(외르크 폰 우트만 지음, 김수은 옮김, 열대림 펴냄) 1434년 영국과의 전쟁에서 돌아온 프랑스군 원수 질 드 레는 흑마술에 빠져들었고 그 과정에서 140명의 아이들을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했다. 그는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수염을 가져 ‘푸른 수염의 사나이’로 불렸다. 영화나 문학작품을 통해 살인사건을 접하는 경우도 많다. 히치코크 감독의 영화 ‘사이코’는 공포의 명장면을 남겼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서는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여주인을 죽인다. 아버지를 살해한 오이디푸스 왕부터 O.J. 심슨 사건에 이르기까지 살인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소개한다.1만 2800원. ●로마의 역사(장 이브 보리오 지음, 박명숙 옮김, 궁리 펴냄) 로마 건국설화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을 중심지로 정하고 암소와 황소에 쟁기를 달고 사각형의 경계선을 그어 로마가 탄생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고고학 연구성과에 따르면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했다는 기원전 753년 이전에도 고대 로마인은 조직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치세를 거치며 로마는 세계제국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고,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로마에 ‘영원한 도시’라는 별칭을 붙였다. 로마의 쇠락은 4세기경부터 시작됐다. 북방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리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로마를 떠나 콘스탄티노플로 향했다. 로마제국에 힘입어 영화를 누리던 로마가 제국으로부터 버림받는 순간이었다.2700여년에 걸친 로마의 방대한 역사를 조명한 책.2만 5000원. ●중화사상과 동아시아-자기최면의 역사(이희진 지음, 책세상 펴냄) 동아시아 ‘역사전쟁’의 허위성을 지적하고, 그 기저에는 중화사상이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주변국들이 오히려 중국적 사고방식을 역이용해 실리를 취했으며 이런 역사를 통해 각국이 자국중심적 사고를 갖게 됐다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자기최면이다. 한국도 중화사상의 모방에 있어 예외가 아니다. 요컨대 혈통과 문화를 근거로 발해를 우리 역사로 편입하고 말갈족의 역사를 지우려는 논리가 동북공정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보는 신채호 등의 초기 민족주의 주장은 국수주의의 단초를 지니고 있다는 견해도 밝힌다.3900원. ●지식의 충돌 책vs책(권정관 지음, 개마고원 펴냄) 문화비평가가 비슷한 사안에 대해 상반된 해석이나 주장을 펼친 책 18권을 비교 분석한 서평집. 하랄트 뮐러는 저서 ‘문명의 공존’에서 종교를 중심으로 문명충돌론을 주장한 새뮤얼 헌팅턴을 겨냥해 그가 가진 위기의식의 근저에 서구 문명의 쇠락과 함께 나타난 스스로의 불안이 내재돼 있다고 지적한다. 문명충돌론은 서구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이 만들어낸 가상의 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헌팅턴이 단순화의 주술에 걸려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며, 뮐러의 저서에 대해서는 전지구적 시장논리에 경도돼 있다고 비평한다. 애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과 장융·존 핼리데이 부부가 쓴 ‘마오’도 비교한다. 스노의 책이 마오쩌둥에 관한 영웅적 신화가 만들어지는 데 기여했다면, ‘마오’는 그에 대한 온갖 추문과 스캔들을 통해 극단적 이면을 추적한 책이라는 설명이다.1만 2000원. ●육조(六朝)시대의 남경(南京)(류쑤펀 지음, 임대희 옮김, 경인문화사 펴냄) 타이완의 중국사 연구자인 저자가 1993년 펴낸 ‘육조의 성시(城市)와 사회’ 중에서 상편에 해당하는 ‘건강성’(建康城)’만을 떼어내 단행본으로 정리했다. 건강이 도성이 된 원인과 그 흥망의 역사, 도시구조, 동시대 북조의 중심도시인 낙양과의 비교 등을 시도한다. 남경과 건강은 모두 같은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지금의 중국 장쑤성(江蘇省) 성도(省都) 난징을 말한다. 이곳은 동오(東吳) 이후 동진ㆍ송ㆍ제ㆍ양ㆍ진에 이르는 육조시대에 줄곧 도읍이었다.1만 7000원.
  • 마약중독 딛고 의사·시장으로

    1969년 미국 뉴저지의 한 법정. 절도와 마약 소지로 기소된 20세 청년 도널드 커스는 마약 중독자였다. 때가 묻은 청바지는 허리 아래로 흘러내렸고 행색은 초라했다. 판사는 그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대신 마약 치료 시설에 들어갈 것을 명령했다. 그로부터 36년이 흐른 지난해 11월 도널드 커스(57)는 로스앤젤레스 인근 도시인 랜초 쿠카몽가시(市)의 시장에 당선됐다. 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3일 마약중독자에서 의사로,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시장으로 변신한 도널드 커스의 ‘인생 역전’을 소개했다. 뉴저지에서 태어난 커스 시장은 12세 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15세 때 대마초를 흡연했다. 그도 한때는 똑똑한 학생이었다. 학급에서 IQ가 가장 높았고 성적도 우수했다. 마약은 총명했던 그를 방황으로 이끄는 촉매제였다. 대마초보다 훨씬 강력한 코카인에도 빠졌다.그러나 거리에서 마약 중독자로 체포된 그는 2년 동안 치료를 받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공사장 인부로 일하면서도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고 믿은 그는 뉴저지의 사립대인 ‘페어레이 디킨슨’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리가 왜 당신을 받아줘야 하느냐.”는 비웃음조차 받았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의 전력을 보고 퇴짜를 놓았지만 컬럼비아대는 입학을 허가했다. 그는 의과대에 진학, 수석으로 졸업했고 존스홉킨스에서 인턴을,UCLA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거쳤다. 시련은 계속됐다. 마약을 끊은 후 결장암에 걸렸다. 수술과 치료로 1년을 보낸 커스는 자신과 같은 유혹에 빠진 마약중독자들의 재활 치료에 투신했다. 그는 로마린다대학 행동치유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부고]

    ●조해룡(예비역 육군 소령)용일(부산교육정보원 장학사)용철(외환은행 부산본점 차장)씨 모친상 박성동(부산시 사하구청 세무계 주무관)오승원(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재정운영 팀장)김위년(혼다 마케팅팀장)씨 빙모상 18일 김해 전문장례식장, 발인 20일 오전 9시 (055)314-0444●이강회(대한코리아산업 대표)강연(미래하우징뱅크 〃)강훈(호주 거주)씨 모친상 김재관(구리농수산물공사 감사)홍준표(한나라당 국회의원)씨 빙모상 1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02)3010-2631●신영진(전 서울시 서기관)씨 별세 원우(사업)원조(테크노세미켐 부장)씨 부친상 서태성(국토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씨 빙부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2)3010-2262●송경호(사업)현승(연합뉴스 상무)씨 부친상 윤영기(우리은행 합정동지점장)안형석(강화 조산초등학교 교사)조범(서울양천고 〃)조호준(훠엔시스 생산관리팀장)씨 빙부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1일 오전 7시 (02)3010-2295●권근범(자영업)선주(한국스티펠제약 사장)선진(서울 동작구보건소장)순우(KBS 외주제작팀 PD)씨 부친상 차창룡(서울대 의대 교수)이상흡(KBS 예능국 PD)장윤진(사업)오상철(은강목재 대표)조은행(서영섬유 〃)이재열(서울대 사회대 교수)씨 빙부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1일 오전 6시 (02)3410-6912●이성호(전 유성전자 대표)성국(전 한국컴퓨터산업 상무이사)성규(전 영신상호신용금고 부장)성운(경동보일러 북부천대리점 대표)성인(KMC무역상사 〃)성열(대성이앤지 〃)씨 모친상 최홍완(전 대진설비 상무이사)김동환(사업)김진수(국가정보원 이사관)씨 빙모상 19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1일 오전 6시 (02)921-2899●김승종(삼성화재 새빛대리점 대표·전 서울은행 차장)인종(태준제약 부사장·전 삼성전기 상무)옥경(대지중 교사)씨 부친상 민경래(사업)김규배(〃)김춘호(대한주택공사 과장)이요한(자영업)씨 빙부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02)3410-6916●김영재(대구신문연구원 대표)영기(KT 의성지점)씨 부친상 전시련(자영업)박효길(자영업)씨 빙부상 전태훤(한국일보 산업부 기자)씨 외조부상 19일 경북 의성 안계농협장례식장, 발인 21일 오전 7시30분 (054)862-1910●이문한(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트팀 차장)씨 빙부상 19일 부산 대동병원, 발인 21일 오전 9시 (051)550-9956●김태우(부산시변호사회 회장)씨 부친상 19일 동아대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30분 (051)256-7011●최병문(전 한국구화학교 설립자·사회복지법인 우성재단 설립자)씨 별세 참도(한국구화학교 교장)문애숙(작곡가·목사)씨 부친상 최광엽(동아기전 대표)씨 빙부상 18일 경희 동서신의학병원, 발인 21일 오전 8시 (02)440-8912●전용철(한국존슨앤드존슨 차장)씨 부친상 1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1일 오전 (02)3410-6915●송규진(사업)동진(〃)씨 부친상 추재문(사업)이택하(SBS감사·전 동양오리온투자신탁증권 사장)씨 빙부상 1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0일 오전 8시 (02)3010-2230●민동석(농림부 통상차관보)의근(우진산업 대표)동석(농림부 통상차관보)규식(㈜비노스 대표)씨부친상 19일 서울 연대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발인 21일 오전 9시 (02)392-3299,011-721-7290
  • [기고] 중용과 통합,임시정부에서 배우자/박유철 국가보훈처장

    유대인 시인 사뮈엘 울먼은 ‘청춘’이라는 시에서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었을 때 비로소 늙는 것”이라며 인간의 꿈과 정신의 가치를 찬미했다. 윤봉길 의사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올리는 서신에서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산다. 이상은 무엇이냐? 목적의 성공자이다.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이상의 꽃이 피고 목적의 열매가 맺기를 자신하여 길을 떠나간다는 결심을 하였다.”라고 썼다.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태울 수 있는 열정을 다짐한 것이다. 이상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88년 전 일제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선열들은 자주독립이라는 이상을 품고 불굴의 의지로 투혼을 불태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1919년 3·1운동으로 표출된 온 겨레의 독립을 향한 여망을 모아 4월13일 중국 상하이에 세워졌다. 그 후 임시정부는 일제의 탄압을 받아 항저우, 창사, 충칭 등으로 청사를 수차례 이전해야 하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런 모진 시련 속에서도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일제 폭압에 신음하는 겨레의 가슴에 뜨거운 조국애를 심어 주었으며, 민족혼의 산실로서 대한인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떨쳤다. 또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이끌어 우리 민족의 자존의지와 긍지를 되살렸다. 나아가 일제강점 이후 끊임없이 전개돼온 무장투쟁의 맥을 이어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고 다양한 항일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다해 왔다. 임시정부가 갖는 역사적 의의는 임정이 비록 망명지에 수립되었으나 우리나라 최초로 등장한 민주공화제로 대한민국 민주헌정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 헌법에도 잘 반영돼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27년이란 오랜 기간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일이었으며, 국제외교를 강화하여 열강세력이 1943년 카이로선언을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을 보장하게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임시정부의 자주독립과 민주공화의 정신은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으로 계승되어 민족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고 있다. 또한 임시정부에서 표방한 민주, 정의, 독립정신은 6·25전쟁과 4·19혁명,5·18민주화운동 등 광복 후 우리 역사의 고비마다 국난 극복과 민주 발전을 위한 시대정신으로 표출되었다. 임시정부의 또 하나의 의의는 20여년간 통합을 추구하던 임정의 좌·우 양 세력이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는 것이다.1942년 임시정부는 좌·우합작이자 통합정부를 이루었다. 독립이라는 최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좌·우세력이 정치적으로는 자유를, 경제적으로는 평등의 요소를 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이념적인 격차를 줄여 신의를 쌓아간 과정과 성과는 역사적 교훈이 된다.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지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보다 밝은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다. 오늘 우리가 88년 전 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시정부 헌장에는 “남녀노소와 모든 종파가 일치단결하여 정의와 인도가 지배하는 나라를 세우자.”는 말이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적 갈등을 넘어 국민통합으로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다.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 이어령 전 문화장관 세례받는다

    이어령(73) 전 문화부 장관이 세례를 받고 개신교에 귀의할 뜻을 밝혔다. 이 전 장관은 12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오래전부터 지성인으로서 기독교에 관심을 가져 왔지만 이제는 영적 측면에서 다가가고자 한다.”며 “7월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이 기독교에 귀의하겠다는 배경에는 딸 민아(47)씨가 겪었던 오랜 시련이 큰 작용을 했다.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가 변호사가 된 민아씨는 1992년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는 오랜 투병 생활을 했다. 이 전 장관은 “딸의 고통 앞에서 아버지가 해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지만 딸이 오랫동안 믿어온 하나님은 기쁨을 주고 상처를 치유해줬다.”면서 “딸이 믿는 대상에 대해 지성이 아닌 경배의 대상으로 다가가고 그런 믿음을 딸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연합뉴스
  • [靑 “개헌발의 조건부 유보”] 靑 명분있는 ‘퇴각’… 국정운영 득? 실?

    [靑 “개헌발의 조건부 유보”] 靑 명분있는 ‘퇴각’… 국정운영 득? 실?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이슈에서 명분을 갖춘 퇴각의 길로 몰리면서 임기말 국정 운영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하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지지세를 유지해 국민연금법이나 사립학교법, 로스쿨법안, 북핵 6자회담 등 고난도의 의제를 풀어나가려던 복안에 일단 제동이 걸리게 됐다. 청와대는 그동안 임기말 회복한 정국 주도권과 이슈 선점권을 이용해 굵직한 역사적·사회적 문제의 해법찾기를 시도해 나간다는 의욕을 보여왔다. 노 대통령 스스로 “한 시대의 막내가 되고 싶다.”고 표현한 것처럼 임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사회 각 분야에 걸친 과거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고 싶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아왔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같은 정치 도전은 개헌 국면에서 의회 권력에 막혀 진퇴양난에 봉착하게 된 형국이다. 물론 겉으로는 노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이날 개헌 발의유보를 열린우리당이 주도하고 청와대가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향후 협상과정을 통해 한동안 개헌의 불씨는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탈당으로 여당이 사라진 국회에서, 그것도 입법부내 모든 정파를 망라한 원내대표 6인이 노 대통령의 개헌 추진에 제동을 건 점은 개헌 협상에 임하는 노 대통령의 발걸음을 무겁게 할 전망이다. 각 정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헌 발의를 당초 복안대로 강행하면, 탈당한 대통령이 임기말 의회 권력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최악의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부담은 ‘승부사’인 노 대통령으로서도 감당하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나머지 국정 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회와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처지에서도 그렇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이날 오전 언론과의 접촉에서 “아직 보도로만 봐서 (원내대표 합의의)정확한 내용을 검토한 뒤 논의해 봐야 한다.”,“오후에 종합적으로 발표한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점도 이같은 상황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노 대통령의 부담이 이번 개헌 사안에 그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당장 한·미 FTA 관련 문서가 완전 공개되면, 일부 언론과 청와대가 주도한 ‘FTA 이벤트’의 거품이 빠질 수 있다는 민주노동당과 범국본, 진보진영 등 ‘반 FTA진영’의 공세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그동안 정부가 부각해온 것과는 달리 한·미 FTA의 부정적인 조항들이 국민과 정치권에 공개된다면, 노 대통령은 또다시 시련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이종현의 나이스 샷] 골프가 주는 감동

    며칠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골프장에서 올해 102세인 엘지 맥린 할머니가 홀인원을 했다. 이 소식을 접한 국내의 한 70대 골퍼는 필드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데 홀인원은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노인은 자신도 102세까지 골프를 할 수 있을까라는 아련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골프는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도전을 준다. 사실 스포츠 가운데 102세 노인이 즐길 수 있는 종목이 몇 개나 될까. 단언하건대 골프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한쪽 팔로 골프채를 휘두르는 골퍼, 의족을 한 채 라운딩하는 골퍼, 휠체어를 타고 페어웨이와 그린을 누비는 골퍼 등이 모두 골프이기에 가능하다. 폴 에이징어는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암을 정복하고 지금도 필드에서 활약하고 있다. 존 댈리 역시 알코올 중독으로 손가락질 대상이 됐지만 골프를 통해 새 삶을 찾아 장타자들의 우상이 됐다. 얼마 전 미국에 사는 한 교포가 사진 한 장과 함께 메일을 보내왔다. 암투병 중인 아들이 함께 라운드를 도는 도중에 홀인원을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홀인원을 통해 “살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됐다.”며 장문의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마치 소설 ‘마지막 잎새’를 읽는 듯한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렇듯 골프는 인간에게 안락한 초록색 행복을 주는가 하면 코스 곳곳의 핸디캡으로 시련을 안기기도 한다. 라운딩을 통해 행복과 시련, 희망과 감동, 심지어 기적까지 체험할 수 있는 게 골프다. 올해 마스터스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잭 존슨, 그리고 최경주는 모두 보잘 것 없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년들이었다. 하지만 잭슨은 신(神) 만이 챔피언을 점지한다는 꿈의 무대에서 우승했다. 최경주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의 남자골프 정상에 올라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선사했다. 골프에는 항상 예기치 못한 일들이 숨어 있다. 반드시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며 위기와 시련도 함께 준다. 하지만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마지막 홀에서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도 골프다. 누구나 골프 만의 감동과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홀인원을 통해 강한 삶의 희망을 새로 다진 위의 두 사람처럼.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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