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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리우드 독특커플 베스트 3?…”우리, 영화처럼 살아요”

    할리우드 독특커플 베스트 3?…”우리, 영화처럼 살아요”

    할리우드에는 브래드 피트와 안제리나 졸리,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즈 같은 환상의 커플만 있을까. 독특한 사연을 가진 커플도 있고, 남다른 곡절을 가진 커플도 많다. 예를 들어 30년 이라는 세월을 뛰어 넘은 부부라든지, 서로의 치명적인 상처를 감싸주며 사는 부부도 있다. 할리우드가 놀란 독특한 사연을 가진 3쌍의 스타커플을 모았다. ◆ 우디 앨런 & 순이 프레빈 : 입양딸에서 부부로 할리우드의 엉뚱남 우디 앨런. 그의 결혼 역시 상식을 뒤엎었다. 앨런은 지난 1997년 딸(?) 순이 프레빈과 결혼했다. 이들의 나이차는 35살.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건 순이가 앨런의 과거 연인인 미아 패로우의 입양딸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당시 앨런과 패로우는 정식 부부는 아니었다. 하지만 순이를 친딸처럼 여겼던 앨런이었기에 두 사람의 결혼은 가히 충격이었다. 물론 둘은 주위의 시선에도 불구 결혼 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둘은 순이를 꼭 닮은 귀여운 딸 베쳇도 낳았고, 한 살 아래 동생으로 맨지를 입양했다. 그 어느 커플보다 이상한,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앨런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순이가 곁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따가운 주변 시선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럴 수록 우리의 사랑은 더욱 커져갔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 커트니 콕스 & 데이빗 아퀘이드 : 둘만 있으면 돼 배우 커트니 콕스와 데이빗 아퀘이드 부부. 영화 ‘스크림’을 통해 만난 이들은 1999년 행복한 웨딩마치를 올렸다. 아내 콕스가 7살 많은 할리우드 대표적인 연상연하 커플. 이들의 허니문은 지금까지도 화제다. 둘 다 활발한 성격으로 유명한 이들은 동물원이 있는 부치가든과 놀이동산이 있는 디즈니 월드 등이었다. 둘만 있으면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을 커플. 하지만 이들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아이를 원했지만 신혼 초 수 차례 유산 경험을 했다. 여러가지 치료방안을 모색하며 노력한 끝에 지난 2004년 6월 첫 딸 코코를 출산했다. 남편 아퀘이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부부는 딸 코코와 함께 가장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라며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보여줘 할리우드를 짠하게 만들고 있다. ◆ 오지 오스본 & 샤론 오스본 : 약물 중독 남편과 시한부 아내 그룹 ‘블랙 사바스’ 멤버인 오지 오스본과 연예 기획사 잉글리쉬 뮤직의 매니저 샤론 오스본은 올해로 결혼 20주년이 된 잉꼬부부이다. 하지만 둘이 사랑한 20년은 그 어느 커플의 20년보다 애틋하다. 지난 20년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우선 결혼 당시 오지는 한번의 이혼 경험이 있었다. 게다가 과도한 약물과 알콜에 중독으로 큰 질병까지 앓았다. 하지만 샤론은 사랑하는 연인 곁을 떠나지 않고 적극적인 치료로 오지를 돌봤다. 결국 다시 건강을 찾은 오지는 샤론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 2002년 아내 샤론이 결장암 진단을 받은 것. 암 발견 후 즉시 수술을 받았지만 이미 암세포가 장기에 많이 퍼져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과거 샤론이 그랬던 것처럼 오지는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헌신을 다했다. 덕분에 현재 샤론은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오지는 “샤론이 죽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평생 옆에서 지켜줄 것이다”고 다짐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닷컴@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최태환칼럼] 이근안, 밀양, 문근영

    [최태환칼럼] 이근안, 밀양, 문근영

    얼마전이다.신문 사회면에 나란히 실린 기사가 눈길을 잡았다.‘고문 기술자 이근안 목사됐다’,‘납북어부 24년만에 간첩 굴레 벗다’ 잠시 혼란스러웠다.고문,용공조작,신원,회개,하나님….아스팔트위의 뒤틀린 낙엽처럼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뒹군다.  이근안씨는 경찰 출신이다.대공수사 전문가였다.군사정권 시절 악명 높았다.물고문,전기고문은 기본이었다.숱한 민주인사가 그의 모진 잡도리에 무너졌다.무고한 시민이 간첩이 됐고,빨갱이가 됐다.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피해자였다.1985년,그는 민청학련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필자는 당시 법원·검찰 출입기자였다.김근태 법정을 드나들었다.그는 어느날 상처 딱지 한움큼을 챙겨 나왔다.구치소에서 몰래 모았다고 했다.고문·가혹행위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고문 혐의의 이씨는 1999년 자수했다.수배 10여년 만이었다.그는 7년 복역생활 중 하나님을 만났다고 했다.신앙인으로 거듭났다.이제 마음의 평화를 넘어,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납북어부 서창덕씨 사연은 가슴 아리다.그는 연평도 부근서 조기잡이를 하다 북한경비정에 피랍됐다.1967년이었다.124일만에 풀려났다.시련의 연속이었다.7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최근에야 간첩누명을 벗었다.24년 만의 무죄선고였다.그는 고문 후유증에 시달린다.‘간첩’이 된 뒤 옥중 이혼당했다.몸은 망가졌고,가족은 해체됐다.지금까지 자식들과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이제 60대 초반의 그다.만감의 표정이었다.법정을 나서는 그의 애달픈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고문 피해자들은 이씨를 용서했을까.많은 사람들은 그의 목회자 변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인간적 잣대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떠오른다.살인자는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교도소에서 만난 하나님께 세상과의 화해를 간구하고 있다.하지만 아들을 잃은 주인공은 받아들이지 못한다.무너진 삶의 축을 견디지 못하며 방황한다.살인자는 교도소가 천국이고,피해자는 지금의 삶이 지옥인 현실.하나님이 만든 기막힌 상황에 피해자는 절망한다.하나님의 ‘밀양’(secret sunshine)은 누구에게 먼저 내리는 게 옳은 것일까.적어도 피해자를 통해 가해자에게 용서와 화해가 닿아야 한다는 인간적 절규가 가슴에 닿는다.  어떤 이들은 이근안씨 역시 ‘시대의 피해자’라고 안타까워한다.‘공권력의 또 다른 희생자’라고 주장한다.용서와 화해의 주문이다.인터넷에서 이씨를 향한 비난과 동정론이 각축하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고문·가혹행위는 지난 시절의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것일까.국가권력이나 기관에 의한 폭력은 크게 줄었다.하지만 권력에 의한 폭력추방이 곧 삶의 질 향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또 다른 집단·개인으로부터의 유형·무형의 폭력이 유령처럼 우리사회를 떠돌고 있다.사이버에 의한 폭력도 그 하나다.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최근 배우 문근영의 기부행위가 빨치산 선전용으로 덧칠됐다.군사정권 시절을 회상케 하는 이념공세가 섬뜩하다.  인터넷을 통해 표출되는 내 안의 악마성 때문에 이웃이,타인이 인격살인을 당할 수 있다.고문이나 가혹행위에 의한 것보다 더 깊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당신도 고문 기술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라.신문 사회면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최태환 논설실장 yunjae@seoul.co.kr
  • 시련 딛고 돌아온 90년대 ‘꽃미남’

    시련 딛고 돌아온 90년대 ‘꽃미남’

     1990년대를 풍미했던 ‘원조 꽃미남’ 가수 김원준.언제부터인가 TV에서 사라졌던 그가 뮤지컬 배우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26일 오후 6시50분에 방송되는 MBC ‘네버엔딩 스토리’에서는 오랜 공백을 깨고 대중 앞에 다시 선 김원준을 만나본다. ‘모두 잠든 후에’,‘언제나’,‘쇼’ 등의 히트곡으로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던 김원준.5집 앨범까지는 승승장구했지만,그 뒤로 연이은 음반실패로 많은 빚을 지고 그의 인생에는 시련이 닥쳤다.그동안 수차례 뮤지컬 출연을 거절했던 그가 뮤지컬 ‘라디오 스타’에서 ‘한물간 로커’ 역할로 출연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작품을 통해 냉정한 현실을 겪은 후 오히려 안하무인으로 살았던 스타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것.  김원준은 “무대에서 이야기하는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제 이야기 같았다.”고 뮤지컬 배우로 변신한 배경을 털어놓았다.또한 4년째 대학에서 실용음악 강의를 하는 등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김원준.그의 10년지기 친구들인 그룹 ‘캔’의 배기성과 ‘유리상자’ 이세준과 함께 ‘인간 김원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와 함께 오상진 아나운서가 중국 현지로 날아가 ‘테크노 여전사’ 가수 이정현을 만나본다. 베이징시민이 뽑은 ‘한국 하면 떠오르는 연예인’ 1위에 선정되는 등 그녀가 12억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과 중국에서 발매한 새 앨범의 안무연습 현장을 공개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남북관계 파국맞나] 현대 대북관광 올스톱… 존폐기로에

    [남북관계 파국맞나] 현대 대북관광 올스톱… 존폐기로에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현대그룹 대북사업이 10년 만에 좌초 위기를 맞았다. 북측이 24일 군사분계선을 통한 남한 주민들의 개성관광을 다음달 1일부로 전면 차단한다고 밝힘에 따라 금강산에 이어 개성관광마저 중단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이후 서해교전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고 정몽헌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으로 이어져 오던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이 존폐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당초 개성공단은 타격을 받더라도 개성관광만큼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던 현대그룹은 예상과 달리 북측이 개성관광 중단조치를 먼저 취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아산 임원 등 그룹의 대북사업 담당자들은 대책회의를 가졌지만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향후 사태진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다. 현대아산 고위 관계자는 이날 “북측으로부터 사전에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서 “11월말까지는 정상대로 개성관광을 실시할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11월18일 크루즈선을 통한 금강산관광이 성사되면서 대북사업을 시작한 현대그룹은 2000년 8월 금강산·개성 특구 지정 및 인프라 사업권을 따냈다. 2002년 11월에는 금강산, 개성 특구법이 채택되면서 현대아산은 이들 지역에서 관광 및 공단 조성 사업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2003년 6월에 개성공업지구 착공,2003년 8월 금강산 육로관광이 개시됐다. 육로관광 시작 이후 지난 7월 관광객 피살로 관광이 중단되기까지 195만 6000여명이 금강산을 다녀 왔고,2007년 12월 시작한 개성관광 역시 지난 10월 관광객 10만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관광객 피살로 인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데 이어 개성관광까지 중단 통보를 받으면서 대북사업이 중대 위기를 맞게 됐다. 현대그룹은 남북 간 경색분위기가 풀리면 대북사업이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현 회장도 “단 한 명이 북한 관광지를 찾더라도 대북 사업을 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문제는 남북간 교착상태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는 것. 재계는 개성관광 중단으로 현대그룹이 대북사업은 물론 그룹 자체 존폐도 걸려 있을 정도의 최대 시련을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2010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근호·성훈 투톱 “19년 무승 깬다”

    [2010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근호·성훈 투톱 “19년 무승 깬다”

    ‘제2의 김도훈’ 이근호(23·대구FC)와 ‘장대 늦깎이’ 정성훈(29·190㎝·부산)이 19년 만의 사우디아라비아 격파의 선봉장을 다짐했다. 사우디와의 2010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최종예선 3차전(20일 새벽 1시35분 리야드 킹파드 스타디움)을 앞두고 둘은 “골 넣을 준비를 마쳤다.”고 새삼 각오를 다졌다. 허정무 감독은 18일 리야드 말라즈경기장에서 가진 11대11 연습경기에서 최전방에 이근호와 정성훈을 내세웠다. 생김새와 킬러 본능이 닮아 ‘제2의 김도훈’으로 불리는 이근호는 미니게임 때 정성훈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받아 감각적인 논스톱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날 미니게임에서 나온 유일한 골이다. 이근호는 “(동갑내기) 박주영과의 경쟁을 자극제로 삼아 팀 전력에 플러스 요인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습경기로 보아 박주영은 조커로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근호는 지난해 6월29일 이라크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며 골을 신고했을 정도로 뛰어난 골 감각을 자랑했다. 올 시즌 K-리그에서 정규리그와 컵대회를 합쳐 13골을 낚아 토종 최고 공격수로 인정받았다. 특히 활약이 돋보인 건 지난달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 3-0 승리에 이어 같은 달 15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가진 월드컵 최종예선 2차전 4-1 완승 때였다. 우즈베키스탄전 후반에 투입돼 2골을 몰아쳤고, 정성훈과 투톱으로 나선 UAE전에서도 A매치 두 경기 연속 2골로 킬러 본능을 보였다. A매치 12경기에서 5골을 기록 중인 그는 “사우디에 19년간 이기지 못하긴 했지만 여섯 경기밖에 안 된다. 징크스는 깨지라고 있는 것인데 내가 앞장서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달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을 통해 데뷔,A매치 경력 2경기뿐인 정성훈은 고공 플레이에 능하고 위치 선정과 움직임이 좋아 수비수들을 달고 다니며 공간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는 카타르와 가진 평가전에서 아깝게 득점 기회를 놓쳤지만 상대 수비수들에게 위협적인 플레이를 보여줬다. 허 감독도 “얕은 경험에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니게임 주전 골키퍼로는 지난해 아시안컵 음주파문의 시련을 딛고 1년4개월여 만에 복귀한 ‘거미손’ 이운재(수원)가 나섰고 중앙 미드필드에서는 기성용(서울)과 김정우(성남)가 호흡을 맞췄다. 왼쪽 날개에는 허정무호에 처음 발탁된 하대성(대구), 오른쪽에는 이청용(서울)이 포진했다.4-4-2 포메이션의 포백 수비라인에는 김치우(서울)-강민수(전북)-조용형(제주)-이영표(도르트문트)가 나섰다. 미니게임 후반에는 하대성 자리에 ‘왼발 스페셜리스트’ 염기훈(울산)을, 김정우 대신 조원희(수원)를 투입했다. 때마침 허 감독은 맏딸 재영씨가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 대표팀에서는 사우디전의 좋은 조짐이라며 반가워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우승 목표… 독하게 경기할 것”

    “우승 목표… 독하게 경기할 것”

    “올해 우승하고 싶다.” 지난 시즌 우승팀 GS칼텍스의 이성희 감독을 비롯한 모든 감독이 일제히 밝힌 올해 목표다.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08~2009시즌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미디어데이에서 5개 팀 감독들은 올해 대회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이성희 감독은 “지난 시즌 시련도 많았고 승률 50%로 어렵게 우승을 했기 때문에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번에는 준비와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우승을 위해 독하게 하려고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지난해 챔피언결정전에서 져 2위를 기록한 흥국생명의 황현주 감독은 “모든 감독의 바람은 우승이다. 그러나 올해 우리 팀은 팬들을 위해 즐거운 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우승에만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GS칼텍스에 패해 3위를 차지한 KT&G의 박삼용 감독은 “지난 시즌 나름대로 선전을 했지만 못내 아쉬움이 컸다. 올시즌에는 부족한 점을 채우려고 노력했다. 승리를 많이 챙겨 승리수당을 많이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규리그 4위인 한국도로공사의 박주점 감독은 “작년에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올해는 용병도 확보했고 전력도 많이 보강했기 때문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싶다. 가능하면 우승도 노크해 보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지난해 꼴찌인 현대건설 홍성진 감독은 “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작년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했다. 플레이오프를 목표로 하고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면 우승까지 노려 보겠다.”고 강조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30년만에 뮤지컬 ‘고교얄개’ 이승현

    [김문기자가 만난사람]30년만에 뮤지컬 ‘고교얄개’ 이승현

    인생을 정신없이 살다가 중년의 나이에 딱 어느 하루쯤이다. 20~30년 전의 ‘나’를 만나 데이트를 한다면? 당신은 과연 무슨 말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하루를 같이 지낼 거나. 무대 구석에 조명이 들어온다.40대 후반의 ‘나두수’가 등장한다.(객석을 향한 독백)참 세월이 빠르죠. 저도 여기까지 오는 데 한 30년은 넘게 걸린 것 같아요.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더니만 틀린 말이 아닌가 봐요. 바람이 차가워지면 사람이 추억에 잠기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옛날 생각나고, 몰려다니던 친구들, 옛날에 가던 빵집, 영화관이 떠오르고, 그리고 첫사랑. 영아, 오영아~ 나두수는 유재하의 ‘지난날’을 부른다.‘지난 옛일 모두 기쁨이라 하면서도~’ 이어 학창시절의 자신을 만난다. 젊은 두수: 어? 누구세요? 중년 두수: 나, 나두수다. 30년 후의 바로 너. 젊은 두수: 나라구요? (중년두수를 훑어본다) 야, 너 왜 이렇게 망가졌냐? 관리 좀 하지. 중년 두수: 너도 내 나이 돼 봐. 그게 쉽나. 그건 그렇고 이 자식이 왜 반말이야! 젊은 두수: 씨이, 아저씨가 나래매요. 자신한테 존댓말 쓰는 사람이 봤냐... 구요. 아무튼 그래서 대체 누구신대요? 중년 두수 : 내가 너라니까? 젊은 두수: 아 진짜 쪽 팔려, 아저씨가 나라는 증거를 대보시죠. 세월이 지난 중년의 ‘나’와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의 ‘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나’라는 증거가 쉬이 나올 리 만무하며 소통 또한 썩 잘 될까 걱정이다. 어쨌거나 둘이 지낸 하루가 어떠했을지는 작가적 상상에 맡겨보자. 여기에 등장하는 ‘중년 두수’가 바로 하이틴의 우상으로 한때를 풍미했던 배우 이승현(47)씨.1977년 영화 ‘고교얄개’ 를 비롯,24편의 얄개 시리즈에서 주인공 ‘얄개’를 맡아 1970년대 중·후반의 스크린을 휘어잡았다. 당시 5만 관객만 들어도 흥행성공이었지만 ‘고교얄개’는 무려 25만명이 넘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도 얄개는 어느날 팬들의 곁을 홀연히 떠났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이름도 점점 잊혀져 갔다. 몇 번의 국내 컴백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그럴 때마다 이상한 소문만 무성했다. 이런 그가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뮤지컬 ‘돌아온 고교얄개’(주원성 연출·내년 1월4일까지)에서 중년의 두수가 되어 추억의 팬들과 다시 만나고 있다. 세월속에 쪼그라진 지금과 꿈 많던 학창시절의 ‘얄개’를 만나 회상하는 형식이어서 이 가을에 잔잔한 추억을 선사한다. 그는 다섯살 때 영화에 데뷔,20여년 동안 무려 4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주연만 100여편을 맡았다. 또 80여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했으니 웬만한 30대 후반 이상의 팬들은 왕년의 얄개 모습을 여전히 생생 스토리로 기억하고 있다. 현재에도 포털사이트에 얄개팬클럽 회원만 5000여명에 이른다. 서울 정동 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에서 데뷔 40여년 만에 오랜 침묵을 깨고 뮤지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씨를 만났다. ▶뮤지컬 무대에는 처음 서는 것으로 압니다. -맞습니다. 사실 늘 긴장이 됩니다. 한달 정도 연습을 했는데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과는 확연히 달라요. 미흡한 점이 많지만 노래와 대사 등이 버무려지는 뮤지컬 특유의 맛을 느끼고 있습니다. 웃음을 일궈내고 관객들한테 박수도 많이 받아 기분도 좋습니다. 또 지난날의 나였던 젊은 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찡하고 그래요. ▶어떻게 뮤지컬을 하게 됐습니까. -제가 올 2월에 ‘잘될거야’라는 음반을 냈습니다. 이때 주위에서 뮤지컬을 한번 해보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그러던 중 ‘진짜진짜 좋아해’를 만든 제작진에서 교복세대를 위한 추억의 우리 뮤지컬을 만들자는 취지로 ‘돌아온 고교얄개’를 준비했지요. ▶팬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객석을 꽉꽉 메워 주시니까 기분이 무척 좋아요. 왕년에 추억의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던 아줌마 아저씨는 물론 요즘의 젊은 연인들도 많이 오는 것 같아요. ▶하이틴의 우상으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훌쩍 떠난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때 군사정권 시절이었지요. 가요계에는 금지곡이 많이 있었고 영화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검열도 심했고, 그때 제가 우상으로 너무 뜨니까 중앙정보부에서 은연 중 압박이 왔어요. 우상이라는 게 용납이 안 됐습니다. 특히 하이틴의 우상이라고 하니까 말이죠. 당연히 의욕이 꺾일 수밖에요. 그렇게 주춤하던 차에 서울에서 음식업을 하던 어머니의 사업이 실패하고 말았지요. 하루아침에 몰락하자 저는 영어공부나 하겠다며 달랑 3000달러만 갖고 캐나다로 혼자 떠났습니다.26살 때였지요. 캐나다 토론토에 도착한 그는 랭귀지스쿨을 마치고 영화역사를 공부하려고 토론토대학 1학기 과정을 다녔다. 하지만 돈이 쪼들리게 되자 공부를 포기하고 식당일이며 지렁이잡기 등 돈이 되는 일은 가리지 않았다. 사는 곳도 토론토에서 몬트리올과 캐나다 북부의 위니펙 등을 전전했다. 그렇게 7년,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1993년 10월에 귀국했다. 곧바로 어머니와 함께 필리핀으로 갔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공부를 했다. 그러던 1995년 필리핀 현지 목사의 소개로 유학 온 한국인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2년 뒤 귀국한 그는 처가가 있는 대전에 살림을 차렸다. 마땅한 돈벌이가 없어 부인과 함께 만두가게를 열었다. 만두도 직접 만들고 배달도 했다. 1998년 어느날 옛고향인 서울 충무로를 찾았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충무로에서 여관을 하던 어머니 친구한테 놀러 갔다가 조긍하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에 첫 출연하면서 배우인생이 시작된 곳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다행히 지인을 만나면서 그렇게 원하던 영화 한 편을 찍게 됐다. 전무송, 박준규 등이 출연한 ‘블루스’에서 조폭 중간보스역을 맡았다. 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면서 세인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다시 절망을 한 그는 대전에서 공중전화기와 감식초 판매일을 했다. 그러던 2001년 후배와 함께 영화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투자자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이 무렵 부인과 이혼하는 아픔까지 겪었다. 술만 마시고 자살하려고 한강까지 갔다. 어린 아들과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나 포기하고 돌아왔다. 마음을 다시 고쳐 먹은 그는 지방의 문화행사 등에 쫓아다니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얄개는 울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KBS의 ‘인간극장’에 등장,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팬클럽과 ‘얄개 이승현 살리기 운동본부’까지 생긴 것도 이때였다. “올해는 다시 시작하는 해입니다.‘잘될 거야’라는 음반을 내자 방송출연도 이어지고 있고, 영화 출연제의도 들어오고, 공연중인 뮤지컬도 반응이 좋구요.” 내년 봄에는 TV 방송 드라마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그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만큼 앞으로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으로 방송이든 영화든 닥치는 대로 하면서 팬들과 만나겠다.”고 했다. 아울러 ‘고교얄개’ 이상으로 대박을 터뜨릴 영화 한 편을 꼭 만들겠다고 했다.2대독자인 그는 슬하에 초등6년생의 아들을 두었다. 재결합한 부인과 함께 대전에서 산다. 영문학을 전공한 부인은 동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이승현은 누구 ▲1961년 서울 출생. ▲66년 조긍하 감독 ‘육체의 길’ 영화데뷔. ▲68년 동양방송 아역 탤런트 데뷔. ▲77년 ‘고교얄개’ 빅히트, 이후 24편의 얄개시리즈 주인공 출연. ▲80년 경복고 졸업. ▲82년 장안대 졸업. ▲86년 캐나다 출국.7년동안 토론토 몬트리올 위니펙 등에서 지냄. ▲93~97년 필리핀에서 신학공부 및 선교활동. ▲98년 귀국. 영화 ‘블루스’ 조연출연. ▲2008년 2월 음반 ‘잘될 거야’ 출반. ▲08년 11월 뮤지컬 ‘돌아온 고교얄개’ 출연 중. ●주요수상 청룡영화상(1972,73), 대종상특별상(73), 백상예술대상(74,75), 국무총리상(75) 등.
  • 이수영 “10년 후?…여전히 가수일 것” (인터뷰)

    이수영 “10년 후?…여전히 가수일 것” (인터뷰)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놓지 않는다. 사뿐사뿐 내려놓는 고운 말투 끝자락마다 ‘겸손함’이 뭍어난다. 5집 앨범 ‘원스(Once)’로 돌아온 가수 이수영(29)은 ‘발라드의 여왕’보다 ‘9년차 신인가수’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렸다. “지난 1년간 공백기는 제 가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고비였어요. 천직이라 믿어던 가수를 못하게 되면 무얼 해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죠. 기적을 믿으세요? 제게는 이번 컴백이 그래요.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켜내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한 기적’이죠.” 1999년 1집 ‘아이 빌리브(I Believe)’로 24만장이라는 이례적인 판매고를 기록, 발라드계의 기대주로 떠오른 이수영은 이후 ‘네버 어게인(Never Again)’, ‘스치듯 안녕’, ‘그리고 안녕’, ‘라라라’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이수영표 발라드’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상복도 쏟아졌다. 2004년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으며 10대가수 가요제에서 최우수 가수상을 2년 연속 거머쥐었다. 탄탄대로를 걸어온듯 보이는 그녀에게 ‘기적’이란 단어는 의외로 비춰질 수 있다. 이수영에게 있어 ‘기적’은 ‘시련의 극복’을 의미했다.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둥지를 잃어버린 이수영은 올 초까지 ‘다시는 무대로 복귀하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데뷔 9년만에 가장 많은 것을 깨닫게 된 공백기였어요. 쉴새없이 달려와서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죠. 무대에 다시 설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지난 매 순간이 제게 ‘기적’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더라고요.” ◆ 고비 이겨낸 앨범명 ‘원스’(Once), 초심으로 시작 “우리는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행운을 너무도 익숙해서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죠. 저 역시 그랬고요. 모든 걸 잃어버릴 뻔 하고 다시 일어서니까 제가 혼자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됐어요. 이제는 제 주변 고마운 분들을 위해 노래하고 싶어요. 다시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서 초심으로 시작하고 싶어요.” 앨범명 ‘원스(Once)’는 이런 의미를 담아 이수영이 직접 지었다. “‘원스’(Once) 뒤에는 사실 어게인(again) 이나 모어(more)가 생략돼 있다고 보시면 되요. 다시 한번 ‘신인 이수영’으로 돌아와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죠. 이번 앨범은 저에게 1집과 비등한 의미를 갖는 앨범이에요. 데뷔 때 부터 안고 있었던 아픔을 훌훌 털어냈으니 이제야 비로소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음악’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때문일까. 일명 ‘오리엔탈 발라드’로 독특한 음색과 꺾기 창법을 구사했던 이수영의 음악이 한결 편안해 졌다. “그간 이수영은 ‘발라드 가수’로 구분했지만, 사실 정확히 말해 저는 한번도 ‘정통 발라드 가수’였던 적이 없어요. 발라드에 기초해 크로스오버적인 느낌이 강했어요. 동양적이거나 아이리쉬, 혹은 팝적인 요소를 가미해 ‘이수영표 발라드’를 강조하려 했죠.” 이번 타이틀 곡의 의미에 대해 이수영은 ‘첫 정통 발라드 도전’이라고 함축했다. “편안하게 불렀어요. 마음을 한결 비우고 나니 제 본연의 목소리로 노래하게 되더라고요. 예전 곡와 큰 차이점을 찾지 못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로서는 큰 변화를 시도한거죠. 음색이 편안해진 대신 가사와 감성적인 사운드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어요.” ◆ 女心 대변하는 발라드 부르고파 타이틀 곡 ‘이런 여자’는 ‘나쁜 여자로 헤어지고 싶은 여자’의 이야기다. ‘니가 미워 니가 싫어 다 귀찮아. 이젠 사랑한다는 말 더는 못하겠어. 미안한데 부탁인데 헤어지자. 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있어 (’이런 여자’ 가사 중)’ “표면적으로는 헤어져달라고,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이별을 고하는 ‘나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죠. 하지만 조금만 가사에 귀 기울여 보시면 여성 분들은 아실거예요. ‘헤어지자’는 말이 80%는 진심이 아니라는 걸…. 사랑을 하다 보면 ‘못돼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지 않나요?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생긴 건 못된 상황이지만 어떻게 보면 상대방이 채워주지 못한 빈자리가 있었다는 걸 수 있잖아요. ‘헤어지자’는 말이 ‘왜 그랬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겠니’라는 애절한 부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걸 남자들은 모르는 거죠.” 이수영은 자신의 노래가 사랑받았던 이유를 “여자들의 마음을 표현한 곡들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는 누구보다도 여자의 심정으로 노래하려 해요. 사랑에 있어서는 철저히 여자 편이거든요.(웃음)” “처량하고 가녀린 음색 탓도 있지만 여자들의 진심을 대변해 주고 싶었어요. 남자분들의 경우 섬세한 분들은 제 가사를 이해하시겠지만 터프한 분들은 ‘아, 헤어지자네’ 하시겠죠? 울고 아픈 마음은 제가 노래로 토해낼게요. 마음의 벽이 없는 따뜻한 사랑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수영은 영락없는 ‘가수’였다. 10년 후를 묻자 ‘여전히 가수일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렇다면 인터뷰 첫머리에 고백했던 ‘가수를 하지 않았으면 무얼 했을까’라는 고민에 그녀는 어떤 결론을 얻고 돌아온걸까. “바보같이 들리실 지 모르겠지만 결국 ‘노래’였어요. 악단이나 극단에 들어가서라도, 아니면 무명으로라도 저는 노래를 하고 있을 거예요. 고비가 됐던 공백기를 통해 느꼈어요. 제가 노래를 하지 않게 된다면 오직 ‘두 가지’ 경우일 것이라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거나, 제 노래를 들어주는 분이 단 한 명도 없거나….(웃음) 눈치 채셨죠? 평생 노래할게요. 제가 받은 사랑을 모두 되돌려 드릴까지!”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오풍연 대기자 법조의 창] 김민석답지 못하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의 버티기가 점입가경이다. 지난달 31일 예정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은 뒤 여의도 당사에서 지금껏 농성을 하고 있다.12일 검찰의 구인집행도 무위로 돌아갔다. 김 최고위원이 표적수사 및 야당탄압을 이유로 구인집행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김 최고위원의 혐의내용을 보자. 지난해 8월과 올 2월 사업가 2명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 4억 5000만원을 받았다는 것. 공교롭게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 총선을 앞둔 시점이어서 의혹을 살 만하다. 물론 그는 총선에 나가지 못했다. 당에서 비리전력을 들어 공천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의 성격이다. 검찰은 이를 불법정치자금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최고위원은 돈을 받은 점은 인정한다. 다만 개인적 채무이거나 순수한 목적의 후원금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정치인들이 돈을 받았다가 법망에 걸리면 흔히 쓰는 수법이다. 김 최고위원은 아직 젊다.1964년생으로 만 44세다. 그동안 쓰라린 경험도 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았다. 이력을 훑어보자.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의장을 지냈다.5공 중반기를 넘어 전두환 정권의 탄압이 심할 때다. 민주화운동으로 복역,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96년 지역구(서울 영등포을) 의원 배지를 달아 화려하게 부상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재선에 성공했다. 젊은 기수로 여야는 물론 국민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여세를 몰아 2002년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를 거머쥐었지만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했다.16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그해 그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 대신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를 밀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정치적 시련도 함께 찾아왔다. 각고 끝에 2004년 2월 민주당에 복당했다. 올 총선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지난 7월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재기의 기반을 마련했다. 김 최고위원이 어떤 수사(修辭)를 댄다 해도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공인이 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면 된다. 같은 당 박주선 최고위원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3번 기소됐다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도 멀리 본다면 법 절차를 따르는 것이 옳다. 앞으로 30년 정치를 할 수 있는 나이다. 소탐대실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민석다운 행동을 보여 줄 때다. poongynn@seoul.co.kr
  • “범죄자 처벌 못지않게 인권수호 중요”

    “범죄자 처벌 못지않게 인권수호 중요”

    “검찰은 인권 수호라는 사명을 범죄자 처벌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강신욱(64) 전 대법관이 10일 검찰 창설 60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검찰 전자신문 ‘뉴스프로스’와의 11월호 인터뷰에서 검찰 후배들에게 “신뢰의 정도를 넘어서 국민이 검찰을 사랑하고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을 만들어 ‘특검’과 같은 것이 필요없는 검찰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시 9회 출신인 강 전 대법관은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 등을 거치며 수사역량을 인정받았으며 지난 2000년부터 6년 동안 대법관을 지냈다. 그는 “검찰이 시련도 많이 겪고 욕도 많이 들었지만 오늘날 산업화·민주화된 대한민국을 이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과거 검사들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절차를 소홀히 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인권 수호를 강조한 것이다. 또 “특수부는 1년에 단 한 건의 수사를 하더라도 거악을 척결해야 하고 형사부나 조사부도 일반사건에 대해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면서 “그런 검찰 활동이 지속되다 보면 국민이 검찰을 보다 신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수부 2과장 재직 시절 민주화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은 강 전 대법관은 “검찰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서 잘 사용하면 국가발전에 이바지하는 정의의 칼이 되지만 조금이라도 남용하면 국가와 국민을 파멸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며 검찰 후배들에게 겸허한 자세로 일해달라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행복어 사전] 꿈이 그냥 떠나가게 하지 마라

    [행복어 사전] 꿈이 그냥 떠나가게 하지 마라

    사람들은 꿈을 간직한 채 “나는 꿈을 가졌어”라고 말해. 그리고는 가끔 꺼내보면서 ‘그래, 아직 꿈이 있어’라고 생각하며 안도한단다. 하지만 상자 속의 꿈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상일 뿐이야. 자신의 꿈을 말만 하고, 생각만 하고, 계획만 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에겐 허황된 꿈으로, 실패의 삶을 살게 되는 거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성공의 삶을 살게 된단다.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은 바꾸지 않은 채 결과만 바꾸고 싶어 하기 때문이며, 꿈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것은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야. 현실에 안주하면서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꿈만 꾸고 생각만 한다면 진정한 삶의 변화는 얻을 수 없어. 꿈은 자기를 변화시키는 힘이야.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하잖아. 꿈의 크기가 미래를 결정해. 꿈이 크면 클수록 또한 많을수록 삶에 힘을 불어넣는단다. 씨앗은 때를 기다릴 줄 알고, 꽃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견디면서 꿈을 키워가고 현실화 시킨단다. 꽃 피기 전까지 혹은 열매를 맺기 전까지는 그 씨앗이 무엇이 될 것인지 모를 때도 있어. 그렇다고 씨앗을 땅에 심지 않으면 꽃도 열매도 볼 수 없는 것이란다. 꿈도 마찬가지란다. 뱁새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 독수리가 되기를 꿈꾸지 마라. 독수리가 되고 싶다면 독수리 떼와 함께 날아야만 하는 거야. 꿈을 단단히 붙들어야 해. 꿈을 놓치면 네 인생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독수리일 뿐이야. 정말로 독수리가 되어 세상을 자유롭게 비행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독수리가 사는 곳으로 가야만 해. 그 열정이 바로 꿈을 구체화 시키고 현실화 시키는 거야. 네 꿈이 그냥 떠나가게 하지 마라. 꿈을 잃어버리면 원하는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어. 자신이 원하는 것, 되고 싶어 하는 것을 확실하게 그려라. 그리고 실현된다는 확신을 가져. 꿈이 희망이나 단순한 꿈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야. 비록 네 꿈의 씨앗이 아주 작더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돼. 꿈이 있으면, 그 꿈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어도 절대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어떠한 시련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고 해도 꿈을 포기하거나 절대로 꿈을 잃지 말거라. 설사 꿈이 원하는 대로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꿈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정말 불행한 사람이란다. 날마다 자신이 원하는 꿈을 꾸면서 인생의 지도를 그려라. 그 꿈을 절대로 놓치지 마라. 만일 이미 떠나가 버렸다고 느낀다면 찾아가서 그 꿈을 꼭 붙들어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보다는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당장 실천하라. 꿈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겐 자신이 원하고 바라던 선물이 주어진단다. 꿈을 이루기 위해 꿈틀거리는 내 안의 작은 혁명, 그 혁명을 세상에 내보이는 용기는 두려움과 망설임에 맞서는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야. 세상의 모든 위대함은 가슴 뛰는 꿈을 향한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된단다. 꿈이 바로 네 앞에 있다. 그 꿈을 그냥 떠나보내지 말고 손을 뻗어 꼭 붙들어라. 글 이지상 자유기고가       월간 <삶과꿈> 2008년 10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열린세상] 수출주도형 경제의 위험/이성형 정치학박사·중남미 전문가

    [열린세상] 수출주도형 경제의 위험/이성형 정치학박사·중남미 전문가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안다. 지난 근 40년간 거품 속에서 흥청망청 먹고 마셨다는 사실을. 꼭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아시아도 미국의 과소비 덕분에 엄청난 수출 특수를 누렸고, 벌어들인 달러로 양주도 마시고 자식들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의 신화, 기러기 대형을 이룬 일본과 동남아 그리고 중국의 연계성장, 이 모든 것은 ‘최후의 소비자’로서 미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러니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 덕분에 생긴 엄청난 거품이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600조달러에 달하는 파생상품 계약이 대표적이다. 지구 인구 한 사람 당 10만달러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 가운데 1%가 부실로 판정이 나서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푼다 하자. 자그마치 6조달러의 부실채권을 떠맡아야 할 게다.6000억달러를 풀어서 패니매, 프레디 맥,AIG를 국가가 인수했다. 투자은행이란 간판이 월스트리트에서 사라졌다. 금융의 세계화로 월스트리트와 긴밀히 연결된 유럽도 거품의 연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유럽도 나라마다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을 퍼붓고 있다. 금융위기는 이제 실물경제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저성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저성장은 고율의 실업으로 사회적 불안과 침체로 이어질 게다. 신경제는 허깨비였고, 모기지 붐은 묘지의 반딧불에 불과했다. 다행히 아시아의 금융은 짧은 영어 실력 덕분에 약간 비켜나 있다. 금융산업이 형편없이 낙후된 중국은 유탄을 거의 맞지 않았다. 중국의 관치금융을 비판하던 미국도 패니매, 프레디 맥을 인수하면서 면목을 잃었다. 슬그머니, 이렇게 중얼거린다.“그래, 우리도 모두 중국인이야!” 한국과 일본도 ‘금융의 선진화’가 덜 진척된 까닭에 크게 물리지 않았다. 하지만 거품의 붕괴는 아시아의 수출주도형 경제에 큰 시련의 시대를 예고한다. 최종 소비자로서 미국은 일단 소비를 줄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미국내 고용지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히스패닉계 불법 고용인구는 대규모로 해고되어 다시 남하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 후보시절에 당선되면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중국산 섬유 수입을 제한하는 긴급 세이프 가드 조치는 물론이고,2600억 달러에 달하는 대중적자를 줄이기 위해 위안화 평가절상까지 압박할 것이다. 신정부는 클린턴 제1기의 초기처럼, 일자리 창출과 국내 산업의 육성을 위해 전략적 무역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것이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도 자동차 추가개방이 없으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수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앵글로-색슨 모델의 신용경제 자본주의도 위기지만, 이에 덕을 보던 아시아 수출주도 경제도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미국이 최종 소비자 역할을 포기한다면, 아시아의 대미 수출은 줄어들 것이고, 이는 곧 외국인투자와 일자리의 축소로 연결될 것이다. 만약 중국과 한국의 수출이 감소한다면 일본의 대 아시아 수출도 감소하기 마련이다. 중국은 주로 저가품 수출 비중이 높으니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이에 대한 대응책은 없을까. 아시아에는 아직도 고도성장의 엔진이 식지 않은 중국과 인도가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내년에도 6% 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다. 여기에 기회가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생산구조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동반성장, 동반침체의 사이클을 탈 가능성이 높다. 시급히 논의되어야 할 사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포괄적인 한·중·일 경제협력이다. 이 협력이 순조롭지 않으면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는 극심한 침체에 빠져들 것이다. 이성형 정치학박사·중남미 전문가
  • 유럽 건설장비 공략기지… 4년뒤 ‘글로벌 톱3’

    유럽 건설장비 공략기지… 4년뒤 ‘글로벌 톱3’

    6일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35㎞ 떨어진 도브리스 밥캣공장. 진흙 범벅의 널찍한 공터서 ‘굴착기쇼’가 펼쳐졌다. 흙을 파는 놈, 파놓은 흙을 퍼올리는 놈, 방해되는 자갈을 치우는 놈, 편편하게 다지는 놈…. 주어진 ‘임무’에 따라 앞에 붙인 도구(어태치먼트)와 덩치는 각기 달랐지만 움직임이 날쌔기는 막상막하였다. 몸체의 선명한 ‘밥캣’(북미 살쾡이)들이 서로 경쟁하는 듯했다. 소형 건설장비 분야의 세계1위인 밥캣은 자신들이 만든 장비가 살쾡이의 민첩하고 자유자재한 움직임을 닮았다는 뜻에서 1962년부터 살쾡이 얼굴을 장비에 새겨넣기 시작했다. 지금은 상징이 됐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지난해 11월 미국 밥캣을 인수하면서 두산의 시장점유율은 세계 17위에서 7위로 10계단이나 껑충 뛰었다.2012년 ‘글로벌 톱3’ 도약이 목표다. 이동욱 두산인프라코어 유럽법인장은 “밥캣은 소형, 두산인프라코어는 중대형 건설장비가 각각 전공”이라며 “소형에서 대형까지의 상품 라인업, 딜러망 상호연계, 밥캣의 절대적 브랜드 파워 등을 잘 활용하면 일본의 벽을 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건설장비 시장의 세계 1~3위는 캐터필러, 고마쓰, 히타치다. 미국 캐터필러는 지금도 합작업체(미쓰비시중공업)의 설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사실상 일본업체로 간주된다. 일본을 넘어서려면 세계 최대 건설장비 시장인 유럽을 잡아야 한다. 미니굴착기와 스키드로더(흙을 퍼올리는 기계)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도브리스공장의 트레이시 슈미츠 공장장은 “유럽은 포클레인이라는 걸출한 굴착기 회사(프랑스)를 배출한 까닭에 자존심이 유난히 세 공략이 쉽지 않다.”며 “철저한 현지화와 차별화된 서비스가 승부수”라고 밝혔다. 철도 위를 이동하면서 작업하는 레일웨이 굴착기, 건물 파쇄가 전공인 데몰리션 굴착기 등이 그 좋은 예다. 요청하면 바로 다음날까지 수리를 끝마쳐 주는 ‘넥스트 데이 서비스’도 콧대높은 유럽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밥캣발(發) 유동성 위기로 두산 본사는 몸살을 앓았지만 정작 이곳은 ‘어떻게 된 거냐.’며 진의조차 물어온 고객사가 없었다고 한다. 다만 세계적 금융위기는 비켜가지 못했다.“1990년대 초반,‘9·11테러’이후 세번째로 가장 혹독한 시련기”라는 이동욱 법인장은 “감산을 통해 재고 물량을 30%가량 줄였다.”고 털어놓았다. 도브리스(체코)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원금 반토막 속출… ‘시련의 펀드’

    원금 반토막 속출… ‘시련의 펀드’

    수익률 50%대를 넘나들며 지난해 최대 히트 상품으로 등극했던 펀드가 된서리를 맞고 있다. 신용경색과 경기 침체로 증시가 폭락하면서 수익률이 가라앉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원금 자체가 반토막나는 펀드가 속출해서다. 5일 자산운용협회 등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주식형펀드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하락장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유입되던 펀드 자금이 지난 9월 마이너스로 돌아서더니 지난 10월에는 1조 3582억원이나 빠져나갔다. 이에 따라 설정 펀드 수도 10월에는 1만개 이하로 떨어졌다. 매월 새로 출시되던 펀드 수도 많아봤자 20~30개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이수진 제로인 대리는 “지난해에는 매월 40~50개 이상 신규 펀드가 쏟아져 나오고 수십, 수백억원대의 자금이 흘어들었던 데 비하면 지금 펀드시장은 크게 얼어붙은 것”이라고 말했다.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이미 법적 대응에 나섰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손실을 보게 된 ‘우리2스타파생상품KW-8호’ 펀드 가입자 220여명을 비롯해 ‘블랙록월드광업주’·‘블랙록월드골드’·‘우리파워인컴펀드’·‘우리2스타파생상품KH-3호’·‘우리파워오일펀드’ 등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펀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에 대해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일부에서는 판매 채널인 은행 쪽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도 한다. 은행은 예·적금 등 안정적인 자산만 다뤄본 데다 대출에서는 항상 ‘갑(甲)’의 입장에 서 있어 봤기 때문에 을(乙)이 되어서 ‘투자 관련 민원’을 다뤄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또 펀드 열풍 때문에 직장인의 월급통장이 CMA 등으로 빠져나가면서 수익이 줄어들자 은행들이 더 펀드 판매에 매달렸다고 본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이미 불완전판매로 인한 분쟁 우려는 나왔었다. 그러나 단순히 투자 손실이라면 구제가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투자자 스스로 계약서를 보고 자필로 서명한 문서가 증거로 남아있고 , 상담 내용 녹취록 같은 것을 판매사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투자손실만으로는 이의를 제기해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펀드를 다루는 인터넷 카페에서 “증거가 없어서 소송을 낼 수가 없다.”거나 “이 ELS의 기초자산이 공기업 혹은 재벌기업이기 때문에 원금 손실은 절대 없다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펀드 가입자 1000만 시대’란 곧 웬만한 집에 펀드 하나씩은 있다는 의미인만큼 ‘투자자’보다는 ‘소비자’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자기 책임 아래 움직이는 투자자는 이익이든 손실이든 스스로 떠안지만 금융상품의 소비자는 생산자에게 신의성실을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고도로 복잡해지고 있는 금융상품에 대해 운용사와 판매사 등이 보다 자세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를 지우자는 것이다. 안수현 한국외대 교수는 “판매사가 상품의 복잡성에 상응하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는지, 또 무조건 많이 팔기만 하면 되는 인센티브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등을 따져봐야 한다.”면서 “정부는 위탁교육기관 등을 통해 상품에 대한 교육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자체 투자자교육을 실시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주자는 의견도 있다. 주의할 점도 있다. 안 교수는 “지나친 금융교육 때문에 노년층의 금융 사기 피해자가 늘고 있다는 미국의 최근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무조건적인 교육 확대가 아니라 연령대별 직업별로 세분화된 접근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캐릭터 뷰] ‘라디오 스타’ 최곤 “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뷰는 작품 속의 인물을 만나는 곳입니다.이번에는 이준익 감독,박중훈 안성기 주연의 영화 ‘라디오 스타’를 각색한 뮤지컬 ‘라디오 스타’의 극중 인물 최곤을 파헤쳤습니다. 최곤은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이 뮤지컬에서 최곤 역을 맡은 가수 김원준씨를 만나 뮤지컬 중의 최곤의 얘기 전말을 들어봤습니다. ●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 ♬’ 뮤지컬에서 1988년 가수왕을 휩쓸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최곤.당시 그가 떴다 하면 사람이 몰려들어 반경 10㎞ 이내에는 교통이 마비됐다.최곤은 요즘의 가수 ‘비’와 맞먹는 인기를 누렸다. 최곤은 노랫말이 애절해 인상 깊은 ‘비와 당신’으로 스타덤에 오른다.이 노래를 모르면 ‘간첩’이란 말을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곤은 이게 끝이었다.팬들은 이 노래의 가사처럼 더 이상 그를 그리워하지 않게 된다.록의 저항정신을 잘못 해석한 최곤에게 실망했기 때문이다.최곤은 폭력 사건 등을 자주 일으켜 ‘범법자’란 인식이 자리했다.어느 때부턴가 대중은 그를 잊어갔다. 그 후 20년.‘잊혀진 가수’ 최곤은 청취자 곁에 다시 다가선다.그는 외진 강원도 영월의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한다.그는 특유의 건들거리는 화법을 구사한다. ● “가수 비,본 조비도 최곤한텐 안 되죠.” “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음악하고 있으니까요.죽을 때까지 음악을 할 겁니다.” 통 얼굴보기 힘들었다는 말문에 대한 최곤의 대답이다.20년이란 간극이 있지만 자신감은 여전하다. 1988년 당시 자신의 상황과 요즘의 가수 세계를 비교해 달라고 했더니 ‘자기만한’ 인물은 없다고 말한다.역시 최곤다운 답이다.본 조비 같은 유명 아티스트와도 비교하지 말란다.본 조비는 인생에 굴곡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이댄다.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88년 가수왕’이라고 소개한다. “저 아시잖아요.접니다.88년 가수왕 최곤.사실 그때는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그냥 나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불러주고,환호하고 그러더군요.그런데 이 XX같은 성질을 못 이겨서….” 최곤은 폭행 사건에 수없이 연루되면서 대중과 언론의 눈 밖에 났다.최곤은 그런 시련을 겪고서야 주위 사람을 생각할 줄 알게 됐다고 한다.라디오 DJ 생활을 하면서 겨우 남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터득했다.예전의 그는 거울에 둘러쌓여 있었다.자신 외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라디오를 하다 보니 그 거울이 유리로 바뀌었다고 한다.최곤은 그 창을 통해 다양한 생활상을 접하며 조금은 부드럽게 바뀌었다. 최곤은 주위 사람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법을 깨닫는다.그렇다고 안하무인 격으로 살아온 지난 날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최정상에 있을 때는 누구와 타협도 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으나,그건 당시에는 값어치가 있는 삶이었다.그 때에는 음악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 것일 뿐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팬은 ‘필요악(惡)’ 살아가는 방식에서 세상과 타협을 한 최곤이지만,음악 분야에서는 어떤 것도 자신의 신념을 꺾을 수 없다고 한다.그에게 음악은 자유이고 낭만이다.이 외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심지어 그는 팬들조차 ‘필요악’이라고 정의했다.자신의 음악을 누군가가 즐기는 건 좋은 일이긴 하지만,그들을 위해 음악을 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음악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없다는 최곤에게도 생명줄 같은 존재는 있다.신인때부터 함께 했던 매니저 박민수가 최곤의 심장이다.최근 대형 기획사와의 계약 문제로 사이가 잠시 벌어지긴 했지만,부러진 뼈가 더 튼튼해진다는 말로 박 매니저와 끝까지 함께 한다는 뜻을 보였다. “민수 형요? 제 심장이죠.심장이 뛰어야 사람이 살고 피가 도는 것 아닙니까.솔직히 형이 없었으면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죠.저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미련퉁이’이기도 한데요.그래서 형을 믿을 수 밖에 없죠. 최곤이라는 배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박민수라는 선장이 꼭 필요합니다.” 최곤의 방송은 친절하지 않다.심드렁하면서도 불친절하기까지 하다.최곤만의 색이 입혀진 방송은 특별하다.감추고 싶은 속마음을 들춰내면서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주기 때문이다.그의 지역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은 청취자들의 인기를 거듭해 본사는 곧 전국 방송으로 격상할 계획을 갖는다. ▶ [캐릭터뷰] ‘별순검’ 진무영, 요즘 검·경에 ‘일침’ ▶ [캐릭터뷰] ‘베토벤 바이러스’ 배용기(박철민)를 만나다 ▶ [캐릭터뷰] 배우 김현숙, ‘막돼먹은 영애씨’와 대화하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경제난 극복 이것이 문제다] 10월 수출 10% 증가… 둔화 뚜렷

    글로벌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로 전이되면서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수출이 심각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 우리 경제의 수출 의존도(명목 국내총생산 대비 통관 기준 수출액의 비율)는 지난해 38.7%로 미국(8.4%), 일본(16.3%)은 물론 중국(37.5%)보다도 높았다. 수출이 잘 돼야 나라경제가 잘 돌아가고 국민 소득도 늘어나는 구조다. 전 세계 경기 침체의 충격을 어떤 나라보다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내년도 수출 성장세의 둔화는 기정사실화돼 있다.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 경기 침체와 중국, 중남미 등 신흥국·개발도상국들의 성장세 둔화가 이유다. 우리 물건을 사 갈 나라들의 구매력이 뚝 떨어졌으니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수출통계에는 우려가 현실로 바뀌고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10월 수출은 378억 9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0%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해 9월 -1.1%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낮다. 자동차 수출의 경우 올해 1~9월 전체 1.5% 감소한 데 이어 10월에는 무려 14.3%나 줄었다. 우리 전체 수출의 22%를 차지하는 최대 텃밭 중국은 지난달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다. 한달 전만 해도 15.5%의 증가율을 보였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수출도 6.3% 증가에 그쳐 9월 증가율(21.7%)의 3분의1 이하로 떨어졌다.9월에 26.7%가 늘었던 유럽연합(EU) 수출도 지난달 8.2% 감소로 반전하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정부는 4일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내년 수출 목표로 민간 경제연구소들의 전망치 4800억달러대보다 많은 5000억달러로 제시했다. 하지만 국제무역연구원 4825억달러(전년대비 8.6% 증가), 삼성경제연구소 4847억달러(8.3%),LG경제연구원 4867억달러(8.9%) 등 민간연구기관들은 한결같이 목표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특정 지역이 아닌 전 세계적 경기 침체를 맞아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출이 원·달러 환율 등 요인보다는 세계 경제의 성장세에 결정적으로 영향 받아 왔다는 점에서 더욱 혹독한 시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출 경쟁국인 일본의 엔화와 중국 위안화의 강세 등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도 조성돼 있는 게 사실이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내년에 거의 제로 성장에 머물 것으로 보이는 선진국들보다 개발도상국이나 자원부국 등에 수출 역량을 집중하고 기업들의 해외 마케팅 능력을 극대화한다면 우호적인 환율 여건(고환율)과 함께 수출 둔화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캐릭터뷰] ‘라디오 스타’ 최곤 “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캐릭터뷰] ‘라디오 스타’ 최곤 “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뷰는 작품 속의 인물을 만나는 곳입니다.이번에는 이준익 감독,박중훈 안성기 주연의 영화 ‘라디오 스타’를 각색한 뮤지컬 ‘라디오 스타’의 극중 인물 최곤을 파헤쳤습니다.  최곤은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이 뮤지컬에서 최곤 역을 맡은 가수 김원준씨를 만나 뮤지컬 중의 최곤의 얘기 전말을 들어봤습니다. ●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 ♬’ 뮤지컬에서 1988년 가수왕을 휩쓸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최곤.당시 그가 떴다 하면 사람이 몰려들어 반경 10㎞ 이내에는 교통이 마비됐다.최곤은 요즘의 가수 ‘비’와 맞먹는 인기를 누렸다. 최곤은 노랫말이 애절해 인상 깊은 ‘비와 당신’으로 스타덤에 오른다.이 노래를 모르면 ‘간첩’이란 말을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곤은 이게 끝이었다.팬들은 이 노래의 가사처럼 더 이상 그를 그리워하지 않게 된다.록의 저항정신을 잘못 해석한 최곤에게 실망했기 때문이다.최곤은 폭력 사건 등을 자주 일으켜 ‘범법자’란 인식이 자리했다.어느 때부턴가 대중은 그를 잊어갔다.  그 후 20년.‘잊혀진 가수’ 최곤은 청취자 곁에 다시 다가선다.그는 외진 강원도 영월의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정오의 희망곡’을 진행한다.그는 특유의 건들거리는 화법을 구사한다. ● “가수 비,본 조비도 최곤한텐 안 되죠.” “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왜냐구요? 음악하고 있으니까요.죽을 때까지 음악을 할 겁니다.” 통 얼굴보기 힘들었다는 말문에 대한 최곤의 대답이다.20년이란 간극이 있지만 자신감은 여전하다. 1988년 당시 자신의 상황과 요즘의 가수 세계를 비교해 달라고 했더니 ‘자기만한’ 인물은 없다고 말한다.역시 최곤다운 답이다.본 조비 같은 유명 아티스트와도 비교하지 말란다.본 조비는 인생에 굴곡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이댄다.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88년 가수왕’이라고 소개한다. “저 아시잖아요.접니다.88년 가수왕 최곤.사실 그때는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그냥 나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불러주고,환호하고 그러더군요.그런데 이 XX같은 성질을 못 이겨서….” 최곤은 폭행 사건에 수없이 연루되면서 대중과 언론의 눈 밖에 났다.최곤은 그런 시련을 겪고서야 주위 사람을 생각할 줄 알게 됐다고 한다.라디오 DJ 생활을 하면서 겨우 남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터득했다.예전의 그는 거울에 둘러쌓여 있었다.자신 외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라디오를 하다 보니 그 거울이 유리로 바뀌었다고 한다.최곤은 그 창을 통해 다양한 생활상을 접하며 조금은 부드럽게 바뀌었다. 최곤은 주위 사람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법을 깨닫는다.그렇다고 안하무인 격으로 살아온 지난 날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최정상에 있을 때는 누구와 타협도 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으나,그건 당시에는 값어치가 있는 삶이었다.그 때에는 음악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 것일 뿐 과거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팬은 ‘필요악(惡)’ 살아가는 방식에서 세상과 타협을 한 최곤이지만,음악 분야에서는 어떤 것도 자신의 신념을 꺾을 수 없다고 한다.그에게 음악은 자유이고 낭만이다.이 외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심지어 그는 팬들조차 ‘필요악’이라고 정의했다.자신의 음악을 누군가가 즐기는 건 좋은 일이긴 하지만,그들을 위해 음악을 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음악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없다는 최곤에게도 생명줄 같은 존재는 있다.신인때부터 함께 했던 매니저 박민수가 최곤의 심장이다.최근 대형 기획사와의 계약 문제로 사이가 잠시 벌어지긴 했지만,부러진 뼈가 더 튼튼해진다는 말로 박 매니저와 끝까지 함께 한다는 뜻을 보였다. “민수 형요? 제 심장이죠.심장이 뛰어야 사람이 살고 피가 도는 것 아닙니까.솔직히 형이 없었으면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죠.저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미련퉁이’이기도 한데요.그래서 형을 믿을 수 밖에 없죠. 최곤이라는 배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박민수라는 선장이 꼭 필요합니다.” 최곤의 방송은 친절하지 않다.심드렁하면서도 불친절하기까지 하다.최곤만의 색이 입혀진 방송은 특별하다.감추고 싶은 속마음을 들춰내면서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주기 때문이다.그의 지역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은 청취자들의 인기를 거듭해 본사는 곧 전국 방송으로 격상할 계획을 갖는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영화보다 더 슬픈 성북구 ‘라디오스타’ 베일 “우리는 돈 안되는 음악하는 화학 실험체” [캐릭터뷰] ‘베토벤 바이러스’ 배용기(박철민)를 만나다 [캐릭터뷰] 이종혁 “별순검 진무영, 좀 편하게 살아라” [캐릭터뷰]김현숙이 극중의 자신 ‘영애’에게 “정신 차려라”
  • [핫리우드] 할리우드 스타들, 비극의 가족사는?

    리얼리티 쇼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으로 비욘세. 에디 머피 등이 출연한 영화 ‘드림걸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제니퍼 허드슨의 비극이 최근 할리우드를 슬픔에 잠기게 하고 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제니퍼 허드슨의 어머니 다넬 도너슨과 오빠 제이슨이 시카고 남부의 자택에서 총에 맞은 변사체로 발견된 데 이어 실종됐던 조카 줄리언 킹 역시 한 차량 뒷자석에서 여러 군데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경찰은 “허드슨가의 비극이 가족 사이의 불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용의자로는 제니퍼의 자매인 줄리아의 전 남편 윌리엄 발포어가 지목됐다. 아마추어 가수 지망생에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할 정도로 ‘거물 스타’가 됐지만 제니퍼 허드슨은 현재 견딜 수 없는 가족의 비극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는 대중들의 이목을 끌 만한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매스컴을 장식하지만 이처럼 안타까운 가족의 비극사가 발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동안 비극의 가족사를 경험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례를 모아봤다. ◆로만 폴란스키의 비극 2002년 칸 영화제에서 ‘피아니스트’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명감독 로만 폴란스키에게는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파렴치한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1977년 당시 13세에 불과하던 미성년자 모델과 맺은 성관계로 강간혐의가 적용돼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도피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렴치한’같은 그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관계자들이나 대중들도 적지 않다. 그 이유는 자신의 아내가 잔인한 살인마 집단에게 너무도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다. 1968년 오컬트 무비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악마의 씨’를 통해 로만 폴란스키는 더욱 주목을 받게 됐지만 이듬해 여배우 출신의 아내 샤론 테이트가 현재까지 미국에서 희대의 살인마로 꼽히는 찰스 맨슨 일당에게 칼로 난자를 당하고 살해당하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찰스 맨슨이 노린 이는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가 아니라 명가수 도리스 데이의 아들인 음악 프로듀서 텔리 멜커였다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자신을 뮤지션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텔리 멜커에게 앙심을 품고 집을 습격했지만 그는 이미 이사를 갔고 그 집에 로만 폴란스키 부부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유럽으로 출장 중이던 로만 폴란스키는 화를 면했지만 임신 8개월이던 그의 아내는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로만 폴란스키는 평생 고통스러운 기억을 짊어진 채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말론 브란도의 쓰디쓴 말년 수 많은 명배우가 탄생한 할리우드에서도 최고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스타는 누굴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등 거장과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등이 최고의 배우라고 추천하는 주인공이 바로 말론 브란도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워터 프론트’.‘대부’. ‘지옥의 묵시록’등 숱한 명작들에서 선보인 연기는 할리우드의 많은 별 중에서도 단연 빛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더없이 불행했다. 비극적인 가족사 때문이다. 첫 아내에게서 태어난 아들 크리스천은 1990년 이복 여동생의 남자친구를 살해했다. 남자친구가 자신의 여동생을 괴롭힌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고로 말론 브란도는 수시로 아들의 법정에 불려다니며 파파라치의 표적이 됐으며 아들은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오빠에 의해 남자친구가 살해당한 충격을 견디지 못한 그의 딸이 1995년.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배우로서 누구보다 큰 족적을 남긴 말론 브란도이지만 가정사에서는 더욱 큰 시련을 겪으며 쓰디쓴 말년을 보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주영, 베스트11 선정-대표팀 복귀 ‘겹경사’

    박주영, 베스트11 선정-대표팀 복귀 ‘겹경사’

    박주영(23 ·AS모나코)이 마침내 50일 만에 리그 2호골을 폭발했다. 프랑스 현지 언론의 호평 속에 ‘주간 베스트11’에 선정되더니 ‘허정무호’의 부름을 받아 4개월여 만에 대표팀에 재승선했다. 오랜 골 침묵의 시련을 이겨낸 뒤 맞은 겹경사다. 박주영은 3일 오전(한국시간) 벌어진 프랑스 리그1 르 아브르와 원정경기에서 팀이 2-1로 리드하던 후반 6분 팀의 세번째골이자 결승골을 성공시켜 3-2 승리를 이끌었다. 1골 1도움을 기록한 환상적인 데뷔전이었던 지난 9월14일 로리앙전 이후 50일 만에. 시즌 8경기 만에 수확한 리그 2호골이었다. 팀에 시즌 첫 원정승리를 안기는 결승포여서 더욱 값졌다. 프랑스 언론도 전·후반 쉬지 않고 위협적으로 그라운드를 누빈 박주영을 높게 평가했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스포츠지 ‘레키프’는 인터넷 평점에서 박주영에게 양 팀 통틀어 경기 최고 평점인 7점을 주었다. 박진감 넘친 이날 경기는 별 다섯개의 ‘명품경기’로 꼽혔다. 리그 12차 라운드 ‘주간 베스트 11’의 공격수에도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프랑스 축구사이트 ‘막시풋(maxifoot.fr)’은 박주영을 베스트 11에 선정한 뒤 “자신이 가진 색채를 모두 보여줬다. 쉼없는 시도는 (중앙수비수) 네스토르와 질레의 괴롭힘을 당했지만 결국 한국의 골잡이는 결승골로 그 노력을 보답받았다”고 평가했다. ‘막시풋’은 박주영이 데뷔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할 당시 박주영을 베스트11 선정하면서 ‘금주의 선수’로 선정했던 사이트다. 박주영은 대한축구협회가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 원정경기(20일)를 위해 3일 발표한 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6월 22일 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북한전에 마지막으로 출전한 박주영이 대표팀에 부름을 받는 것은 허정무호가 최종예선 체제로 전환한 뒤 처음이다. 박주영은 이날 르 아브르전 전반 리카타와 4-4-2 포메이션의 투톱으로 나섰다. 모나코는 전반 21분 퀴프레. 전반 40분 리카타의 추가골로 리드를 잡았지만 후반 시작 4분만에 네스토르에게 추격골을 허용했다. 하지만 곧바로 후반 6분 박주영의 전광석화같은 벼락슛이 터졌다. 알론소가 오른쪽에서 날카롭게 침투하면서 문전으로 크로스했고. 박주영이 쇄도하며 오른발로 밀어넣었다. 박주영은 후반 17분에도 리카타의 크로스를 받아 회심의 헤딩슛을 날렸지만 아쉽게 골키퍼에 걸렸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 정가연기자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토요영화] 레이

    ●레이(EBS 세계의 명화 오후 11시35분) 소년 레이(제이미 폭스)는 7살 때 시각장애인이 됐다. 시력을 잃기 직전 목격한 동생의 죽음은 평생 치명적인 상처가 되어 그를 따라 다닌다. 아들이 혼자 힘으로도 당당히 살아 가길 원했던 어머니 아레사(샤론 워런)는 그를 누구보다 더 엄하게 키운다. 덕분에 레이는 강하다. 무엇보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 시각 대신 청각이 발달해 남들이 듣지 못하는 벌새의 날갯짓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이렇게 귀로 받아들인 소리를 그는 피아노로, 노래로 구현해 낸다. 가스펠과 블루스를 접목시킨 새로운 스타일은 곧 선풍적 인기를 끈다. 흑인 시각장애인에게 쏟아지는 공고한 편견의 벽을 넘어 실력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순회공연, 발매음반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이어 출연한 라디오 방송을 인연으로 그는 목사의 딸 델라(케리 워싱턴)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성공가도를 달리는 그의 내면에는 사실 남 모를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환영처럼 사라지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공포와 외로움이 늘 그를 괴롭힌다. 결국 마약에까지 손을 대고 밴드 코러스 마지(레니자 킹)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수렁 속으로 빠져 든다. 이것은 암흑의 전조였을 뿐이다. 마약 복용 혐의로 체포되고 마지의 죽음소식까지 날아들자 레이는 간신히 스스로를 지탱해 온 한 줄기 의지마저 모조리 빠져 나가는 듯한 절망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그의 가슴 한 구석에서는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이 꿈틀댄다. ‘레이’는 미국의 전설적 뮤지션인 레이 찰스의 삶을 담은 전기영화다. 작품 속에는 장애인으로서의 인간승리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느끼는 창조의 고통, 한 인간으로서 겪는 시련과 재활과정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생전의 레이 찰스가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는 40여곡의 음악은 진정성 넘치는 스토리와 더불어 깊은 감동을 일깨운다. ‘애니 기븐 선데이’‘베이트’로 급부상한 제이미 폭스는 이후 ‘콜래트럴’을 통해 주연급 배우로 자리매김했다.‘레이’에서 마침내 주인공을 꿰찬 그는 일부러 하루 10시간 이상 눈을 가리고 생활하는가 하면, 레이 찰스 특유의 제스처나 시선까지도 그대로 재현해 ‘레이 찰스의 재림’이라는 찬사를 이끌어 냈다. 결국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저력을 보였다. 연출은 1982년작 ‘사관과 신사’로 스타감독의 반열에 오른 테일러 핵퍼드(64) 감독이 맡았다. 최근 ‘러브 랜치’(2009년 개봉 예정)를 연출하는 등 여전히 현장을 지키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원제 ‘Ray’.152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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