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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락사고로 만신창이된 전직 승무원, 3D 기술로 얼굴 재건

    추락사고로 만신창이된 전직 승무원, 3D 기술로 얼굴 재건

    추락사고로 얼굴을 심하게 다친 전직 승무원이 3D 스캐닝 기술의 도움으로 얼굴 재건에 성공했다. 중국일보에 따르면 쓰촨항공 국내선 승무원이었던 첸 리단(26, 여)은 4년 전인 2015년 5월, 중국 하이난의 한 호텔 7층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구조대는 에어컨 실외기에 매달려 있던 첸을 설득했으나, 그녀는 구조용 에어매트리스가 채 펴지기도 전에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진 첸은 머리에 300여 개가 넘는 심을 박는 대수술을 치렀다. 미모의 승무원이었던 첸은 이 사고로 얼굴 전체가 망가졌으며 치아 역시 모두 빠지고 말았다. 머리 모양도 추락의 충격으로 완전히 바뀌었으며 기억마저 잃었다. 첸의 아버지는 “딸은 사고 후 이름과 나이 외에 기억의 대부분을 잃었다. 기억상실과 학습장애로 고생하고 있으며, 시력도 거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이후 고향인 쓰촨성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진 첸은 두개골 복구 수술을 진행했다. 의료진은 3D 스캐닝 기술을 이용해 수술을 진행했고 첸의 얼굴을 재건하는데 성공했다. 약 2년간의 치료를 받은 첸은 현재 자신의 얼굴에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첸은 자신의 새 얼굴에 대해 “이전과 거의 똑같다. 과거에도 예뻤고 지금도 예쁘다”며 기뻐했다. 한편 사고 후 4년이 지나도록 첸의 추락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한때 연인과의 불화로 인한 자살시도가 아니었느냐는 추측도 나왔으나 첸의 가족들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첸의 아버지는 “사고 당시 딸은 남자친구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름과 나이는 기억나지만 내가 그날 누구와 함께 있었으며 왜 추락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딸의 사고에 얽힌 진상을 규명해 실추된 명예를 되찾을 것이라며 의지를 내비쳤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와우! 과학] 세계 최초 유전자 요법 통한 ‘실명질환’ 치료 성공

    [와우! 과학] 세계 최초 유전자 요법 통한 ‘실명질환’ 치료 성공

    세계 최초 유전자 요법을 통한 노인성 안구질환의 성공 사례가 등장했다고 영국 BBC가 18일 보도했다. 성공 사례의 주인공은 옥스퍼드에 사는 여성 자넷 오스본(80)으로, 이 여성은 노인층의 시력상실을 일으키는 안구질환인 노인성황반변성(AMD, Age-related Macular Degeneration) 환자였다. 노인성 황반변성은 황반이 노화나 유전적인 요인 등에 의해 기능이 떨어지면서 시력이 감소되고, 심할 경우 시력을 완전히 잃기도 하는 질환으로, 영국에서만 60만 명이 이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옥스퍼드대학 안과학 교수인 로버트 맥라렌은 AMD를 앓고 있는 오스본을 포함한 총 10명의 환자를 상대로 유전자 치료를 시도했다. 유전자 치료는 황반 부위의 망막을 들춘 뒤, 이 안에 인체에 무해한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해당 바이러스에는 잘못된 DNA 서열을 바로잡아주는 유전자가 들어있으며, 이 바이러스가 황반변성을 일으키는 망막세포상피의 유전자 결함을 바로잡아주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교정된 유전자는 발병 이전처럼 올바른 단백질을 분비, 망막세포와 황반이 더 손상되는 것을 막아준다. 이러한 유전자 치료는 황반변성으로 인해 손상된 시력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아니지만, 진행을 멈추게 해 남아있는 시력을 유지하고 실명을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러한 유전자 치료법은 영국의 생명공학기업인 자이로스코프 세러퓨틱스가 개발한 것이며, 오스본은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의 임상시험을 통해 황반변성 진행이 멈춘 효과를 본 첫 번째 사례자가 됐다. 해당 치료법을 개발한 자이로스코프 세러퓨틱스는 단 한 번의 시술로도 효과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오스본 외에 또 다른 임상시험 참여자 9명은 현재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노인성황반변성은 노인 실명 원인 1위에 꼽히며, 완치 방법이 없다. 항체 주사나 레이저 수술로 진행을 지연시키는 방법만 존재하며, 방치할 경우 실명으로 이어진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공공기관 채용비리 182건 적발…기관별 사례 보니

    공공기관 채용비리 182건 적발…기관별 사례 보니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비리 의혹’을 계기로 실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전수조사 결과 200건에 가까운 부조리 사례가 적발됐다. 수사의뢰 또는 징계대상인 임직원 288명은 즉시 업무에서 배제됐다. 이번 결과는 1205개 기관을 대상으로 2017년 10월 특별점검 이후 실시한 신규채용, 2014년부터 지난해 10월가지 최근 5년간 이뤄진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점검 결과다. 다만 2017년 10월 이전에 이뤄진 신규채용이라 하더라도 비위 제보 등이 들어왔을 경우엔 조사대상에 포함했다. 서울교통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5개 기관은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어서 제외됐다. 조사 결과 채용비리는 총 182건이 적발됐다. 이 가운데 부당청탁이나 친인척 특혜 등 비리 혐의가 짙은 36건에 대해서는 수사의뢰했다. 채용 과정상 중대 과실 등이 있었던 146건은 징계·문책을 요구할 방침이다. 유형별로 신규채용 관련 채용비리 158건, 정규직 전환 관련은 24건이었다. 특히 16건은 친인척 특혜 채용 의혹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별도로 채용규정이 불명확하거나 규정 미비 등 업무 부주의 사안은 2452건이 발견됐다.권익위가 공개한 수사의뢰 대상기관 중 공공기관 사례는 아래와 같다. 나머지 지방공공기관, 기타공직유관단체 사례는 권익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 2012년 4월 병원에서 특정 업무직 채용 시 조카가 응시한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면접위원으로 참여. ●근로복지공단 2012년 3월 병원에서 정규직 채용 시 친구의 자녀가 응시한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면접위원으로 참여. ●한국기계연구원 2016년 4월 정규직 채용시험에서 합격자 추천순위를 조작. ●원자력연구원 2018년 10월 모교 출신 교수에게 연구원 신규채용 인력 추천을 요청하고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추천받은 특정인에게 최고점수 부여, 이 과정에서 특정인은 본인의 학교, 경력 등 개인정보 노출. ●경북대병원 2014년 2월 채용담당부서가 응시자격(의료관련 자격증 소지자)이 없는 직원의 자매, 조카, 자녀에게 응시자격을 임의로 부여해 최종 합격. ●경북대병원 2013년 6월 청원경찰 결격사유(시력장애)가 있는 사람을 응시자 어머니의 청탁을 받아 채용.  ●서울대병원 2018년 2월 상급자 지시에 따라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아닌 비상시업무 종사자 3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전북대병원 2018년 5월 면접 동점자 처리 기준(단순 합산 고득점자 우선)과 달리 ‘평균’(최고점·최하점 제외) 점수로 평가해 1, 2위 합격 뒤바뀜. ●강원대병원 2017년 12월 면접위원이 배점기준을 초과해 점수를 주고 채용담당자는 다른 면접위원과 협의 없이 이를 임의로 수정. 2018년 10월 필기시험 성적을 제대로 산정하지 않아 합격대상자 2명은 불합격되고 불합격돼야 할 2명이 합격. ●강원대병원 2015년 서류전형 시 채용담당 부서에서 지원자의 점수를 임의로 부여해 서류전형 합격 처리하고 채점표에 전형위원이 평가한 것처럼 서명. ●경북대 치과병원 2017년 10월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하루 전 서류평가 기준을 임의로 새롭게 만들어 적용. ●한국국방연구원 2014년 1월 채용 관련 면접전형에 합격한 응시자 2명 중 1명을 별도 심의없이 최종결재 과정에서 임의로 불합격 처리. ●전쟁기념사업회 2016년 3월 서류심사 결과 면접 대상자로 최종 1명이 추천됐지만 기관장 결재 과정에서 면접대상자가 1명인점, 나이가 어려서 이직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면접없이 탈락 처리. ●국방전직교육원 2016년 1월 무경력자를 관련 경력이 있는 타 응시자에 비해 높은 점수로 서류·면접심사에서 합격시켰고, 이후 상급자 지시로 합격자를 당초 채용직위가 아닌 다른 직위에 임용. ●한국건설관리공사 2016년 3월 일반직 전환 후보자 선정기준에는 근무성적평가 일정 점수 이상인 직원을 선정한다고 돼 있음에도 기준 점수 미만인 직원을 전환 후보자로 선정. ●국토정보공사 2016년 3월 직원 자녀를 당초 자격미달로 불합격처리 했지만 같은 해 5월 자격미달자임을 알면서도 서류·면접심사를 거쳐 최종합격. ●농수산식품유통공사 2017년 5월 용역업체 관리를 총괄하는 소장이 본인이 관리하는 용역업체에 본인의 동생과 장기간 부하직원으로 근무했던 지인을 채용하도록 청탁. 채용된 동생과 부하직원은 18년 정규직으로 전환 결정. ●공영홈쇼핑 2015년 2월 채용 시 고위직의 자녀 포함 6명이 신규채용 시험을 거치지 않고 단기계약직으로 채용. 차후 정규직으로 전환. ●부산항보안공사 2015년 8월 내부직원 3명이 공모직 서류전형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자격요건에 특별한 문제가 없음에도 응시자 11명 전원을 탈락 처리.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이 영업사원이셨죠”, 유석영 아지오 대표의 ‘다시 서기’

    “문재인 대통령이 영업사원이셨죠”, 유석영 아지오 대표의 ‘다시 서기’

    지난 12일 청와대 연풍문에 한 구두매장이 ‘입성’했다. 김정숙 여사도 사회적 가치확산을 위해 구두 한 켤레를 흔쾌히 구입했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청와대 첫 구두매장의 영광스런 주인공은 2016년 5월 18일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가 광주 5.18 묘지 참배시 낡은 구두 밑창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큰 관심을 받았던, 그 구두를 만든 아지오란 회사다. 1급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유석영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의 일자리를 통한 자활을 위해 2010년 야심차게 구두공장을 시작했지만 2013년 8월 31일 폐업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해 5월엔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셨다. 변변한 판로가 없었을 뿐더러 장애인이 만든 ‘장애투성이 구두’란 사회적 편견 탓에, 행상 중 천 원짜리 한 장 받으며 거지 취급까지 받았다. 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법, 2016년 ‘문재인 구두’가 문템으로 급부상 하게 되면서 오래전에 폐업한 아지오란 회사가 다시금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시즌1에 제작한 문재인 구두는 청각장애인들의 피와 땀이 섞인 제품은 두 말할 필요 없는 터. 구두 밑창이 금일 갈 정도로 오랫동안 신고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모습을 본 후,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 유대표. 하지만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든든한 ‘영업사원 문재인’의 호기를 등에 업었지만 시즌2의 시작을 권했던 주위 많은 사람들의 권유에도 섣불리 시작할 수 없었다. 청각장애인분들께 또 다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공장 문을 다시 열게 만든 원동력은 다름아닌 늘 그와 함께 했던 청각장애인들이었다. 그는 “구두사업을 하면서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 한다. 하지만 이분들이 일터로 출근하는 모습은, 비록 내가 보이진 않지만 그들의 따뜻한 말과 촉감으로 충분히 느껴진다”며 “그분들이 발산하는 에너지가 시즌 1때부터 이미 내 몸 속에 깊이 중독돼 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삼고초려 아니 십고초려를 해도 ‘이건 아니다’라는 자기 결정을 내리고 30년 간 연을 맺고 있었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나도 도울테니 다시 한 번 해봅시다’란 유이사장의 말에 희망을 얻게 됐다는 유대표. 아지오 시즌 2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14일 성남시 중원구 실리콘밸리 회사를 찾아가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와의 만남을 정리했다.(Q) 지난 12일 청와대 연풍문에 판매장이 마련됐다. 감회가 남다를 거 같은데아지오란 이름 하나 남김 없이 모두 다 증발해 버렸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저희가 만든 신발을 구두밑창이 갈라지기까지 신으신 것이 이슈가 되서 부활하는 동기를 마련했다. 다시 시즌2를 시작해서 1년이란 시간이 지난 동안안 회사를 다듬고 소비자들에게 판매를 시작했다. 그 와중에 청와대에서 사회적가치 확산이라는 차원에서 김정숙 여사께서 직접 오셔서 발도 재주시고 신발도 구입해 주셔서 저희한테는 큰 힘이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청각장애인들이 일터가 굉장히 편협한데 여기에 힘을 보태주셨다는 것은 앞으로 장애인들의 일자리도 늘어나고,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행복해지는 삶에 있어서 똑같이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구두 만드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80년대 라디오 취재를 갔을 때 우리나라 구두 3사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생산부서에서 많이 일하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두 제조업이 해외에서 도입된 시스템으로 바뀌어 가고 그로인해 청각장애인들이 전부 실직했다. 저는 그분들의 솜씨가 너무나 아까워 시장동향이나 여러 가지 사회적 환경을 고려치 않고 이분들의 일자리만 구축해야겠다는 마음으로 2010년도에 문을 열게 된 거다. (Q) 문재인 대통령이 폐업한 아지오 구두를 4년 넘게 신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펑펑 울었다고 했는데처음에 구두공장 시작할 때는 야심차게 청각장애인분들과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어보자’라고 약속하고 시작했던 건데 제가 경영을 변변치 못하게 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어머니가 페업한 그해 5월 돌아가셨고 3개월 후인 8월 31일에 문을 닫았다. 그때도 말도 못할 정도로 많이 울었는데 문대통령께서 우리 구두를 4년 이상 신으셨다라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보다 더 많이 울었던 거 같다. (Q) 문재인 대통령의 신발 구입배경은구두를 팔 데가 따로 없었다. 결국은 행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급여를 줘야 되고 집세를 내야 했기 때문에 찬밥 더운밥 가릴 겨를이 없었다. 결국 국회에 가서 구두를 팔아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국회에 문을 두드렸다. 당시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윤후덕 의원이 문을 열어주셔서 장을 열게 된 것이다. 2011년도에 1/3이상의 국회의원들이 사주셨고 그 다음해에 또 다시 국회로 구두를 팔러 갔다. 그때 선거를 앞두고 바쁜 와중에도 문재인 후보께서 와주셔서 “나도 열심히 뛸 테니깐 여러분도 꼭 성공해 주시기 바래요. 신발이 참 편합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Q) 당시 유대표에겐 문재인이란 사람은 어떤 분으로 기억하고 있는지저는 굉장히 사람들의 인위적인 따스함과 겉치레 등에 대한 느낌을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악수를 할 때 많이 느낀다. 당시 문대표께서는 제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다정하게 진심어린 마음을 주셨고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대통령 취임하시고 다시 직접 뵀을 때도 그 느낌은 한결 같았던 걸로 기억한다. (Q) 폐업하게 된 이유는솔직히 말하면 대표인 저의 영업능력이나 경영 추진이 부족했다. 대기업 구두 메이커들이 성업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 속에 우리가 뛰어들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무모했던 거 같다. 또한 장애인분들에 대한 편견도 매우 컸던 거 같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여러 측면에서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편견이 회사가 문을 닫게 되는 데 있어 조금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Q) 본인도 시각장애인 1급이다. 같은 장애인으로서 직원을 바라보는 심정이 남다를 거 같은데저 역시 시력을 잃었을 뿐이지 그 외의 기능은 아주 건강하다. 나머지 잔존기능으로 여러 기회가 제공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충분히 많다. 저는 운보 김기창 선생님을 늘 생각한다. 귀가 안 들렸기 때문에 더욱 몰입해서 그림을 그렸듯이 구두를 제작하는 일도 청각장애인들의 탁월한 집중력을 통해 일을 더욱 잘 할 수 있다고 생각에는 늘 변함이 없다.(Q) 청와대에서 문재인 구두를 다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는데대통령이 취임 하시고 구두를 다시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때가 2017년도 5월14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망한 상태였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라도 우선 와서 발 사이즈를 잰 후 다시 만들면 안 되겠냐고 해서 “시즌 1때 함께 일했던 청각장애인들은 이미 다 뿔뿔이 흩어졌고 아지오의 정신은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구두는 아지오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Q) 유시민 이사장에게 시즌 2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와 어떤 인연인가노무현재단 이사장님은 저와 30년이 넘게 가깝게 지내던 사이다. 젊은 시절에 장애인 문제를 가지고 서로 만나서 의논하고 장애인들의 진로를 많이 열어줬던 분이다. 문재인 구두가 이슈화 되면서 한창 막 붐이 올랐지만 함부로 다시 구두공장을 열 수 없었다. 저는 한 번 망했다. 망한 건 괜찮은데 큰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수도 없이 고민을 하다가 유시민 이사장님을 찾아갔다. “이거 브랜드도 좋고 대통령께서 영업도 해주셨다. 나도 도울테니깐 같이 한 번 해보자”라고 말씀 하셔서 시즌 2의 문을 열게 됐다. (Q) 아지오 시즌1때 함께 했던 올해 안승문 구두장인(현 공장장)도 다시 함께 하셨는데안승문 구두장인도 어머니가 청각장애인이시다. 그러한 걸 계기로 제가 줄기차게 요구했다. 아마 그분은 십고초려 이상은 하셨을 거다. 제가 시즌2 시작할 때 “이거 하다가 우리 죽어도 좋다. 같이 해보자” 그랬더니 하던 망치 던져놓고 여기 와서 시작하게 됐다. (Q) 역대급 모델들이 참여하셨는데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뜻 있는 분을 모시려고 노력했는데 정말 좋은 분들이 많이 동참해 주셨다. 유시민 이사장님 뿐 아니라 가수 유희열씨, 저랑 형동생하는 강원래씨.도 참여하셨다. 또 여성화를 출시할 무렵 모델이 필요하다고 유시민 이사장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유희열씨를 통해 전화 한 통화로 이효리씨를 ‘쉽게’섭외할 수 있었다. (Q) 직원들의 기술 습득 능력은 어떤 편인지구두제작 실력이 하루 아침에 쉽게 습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분들이 일에 대한 응집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에 비해 습득 속도가 빠르다. 물론 구두 장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하다. 청각장애인분들도 지금 정도면 어떻게 하면 제품을 우수하게 만들지,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에게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을지를 인지하고 있다. 조금 더 노력하면 4~5년 후엔 제2, 제3의 공장을 지휘할 수 있는 그런 장인들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Q) 시각장애인 사장과 청각장애인 사원간의 ‘케미’가 대단하다고 들었는데사람들은 괜한 걱정들을 한다. ‘안 보이니깐, 안 들리니깐 이 결합체는 정말 불편할 것이다’라고. 불편한 건 맞다. 청각장애인과 둘이만 있으면 몇 가지 정도의 대화는 하지만 그 이상의 대화는 진도는 못나간다. 하지만 서로 배려를 해요. 제가 안 보인다는 걸 그분들이 인정 해주고, 저도 그 분들이 안 들린다는 잘 인지하고 있다. 중요한 얘기를 할 때는 반드시 통역사와 함께 한다. (Q) ‘자신감보다 기대감이 조금 앞선다’라는 건 어떤 의미신지사람들은 ‘대통령이 계시고 이슈화가 돼있고 많은 모델들이 뒷받침을 하니깐 잘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아니다. 잘한다고 박수를 쳐줄 수는 있지만 상품에 대한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건 그냥 거품에 불과한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거래까지 성사시키려면 저희 노력은 그 기대와 더불어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이 있다면아지오하면 ‘편하다’, 아지오하면 ‘품질이 참 좋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표 모델’이란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많은 고객분들이 저희들을 아껴주시고 응원해 주신다면 이곳에서 일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주옥같은 솜씨를 통해 좋은 신발을 만들어 국민들의 발을 건강하게 해드리고 싶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시각장애 가족을 위한 ‘만지는 그림 동화책’을 아시나요?

    시각장애 가족을 위한 ‘만지는 그림 동화책’을 아시나요?

    “시각장애 아이들이 그 나이대에 받아야 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면 점차 비장애 아이들과 격차가 생기게 돼요. 이 아이들에게도 동등한 교육 여건을 줘야겠다는 생각에 촉각 도서를 만들게 됐어요.” 나누미 촉각 연구소장 문미희(39)씨는 시각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 만지는 그림 동화책(이하 촉각 도서)을 제작하고 있다. 판매 목적이 아닌 자원봉사다. 촉각 도서는 왼쪽에는 책의 이야기와 점자가, 오른쪽에는 책 내용에 맞는 인형이나 소품 등이 부착돼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아이들의 발달을 돕기 위한 오감 도서와는 다르게 촉각 도서 같은 경우는 물건이나 대상의 고유한 재질을 최대한 비슷하게 옮겨놓는다. 예를 들어, 유리컵에 관한 동화책일 경우 유리를 직접 책에 넣을 수 없으니 유리와 가장 비슷한 질감을 직접 만져보며 찾아내 책에 구현해내는 것이다. 12일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나누미 촉각 연구소에서 서울신문과 만난 문미희 소장은 “촉각 도서는 시각장애 아동뿐만 아니라 시력을 잃은 부모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해요”라고 강조했다.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되신 어머니가 있었는데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는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수가 없었죠.”2010년 4월부터 근 10년을 촉각 도서 제작에 힘쓰고 있는 문미희 소장. 본업이 설치미술가인 그가 촉각 도서 제작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저 미술 작업 중 하나였을 뿐이다. “처음에는 미술 작업으로 시작했던 거였는데, 진행하다 보니 이게 그냥 작업으로서 끝날 게 아니라 책이 더 만들어져서 보급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거죠.” 어려움도 당연히 있었다. 과거 촉각 도서 제작 행위가 예술이냐 복지냐는 갈림길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평가돼 문화재단 기금 지원 심사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문미희 소장은 “문화기금을 받으려고 하니까 분야가 예술이냐 복지냐에 혼동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어딘가에 기대서 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이끌어나가자는 생각에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문미희 소장은 매주 목요일, 작업 공간에서 자원봉사 어머니들과 함께 촉각 도서를 제작하고 있다. 1권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6개월이며, 지금까지 약 100여 권을 완성했고 대부분은 지역 도서관이나 시각 장애인학교에 기증했다.일본 같은 경우는 한 지역의 한 학교 도서관에만 약 5만 권이 넘는 촉각 도서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촉각 도서가 많아지기 위해선 지역 곳곳에 촉각 도서를 만드는 분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문미희 소장은 전했다. “유럽에서는 촉각 도서 공모전이 있어요. 일반 시민들에게 몇 가지 지침만 알려주고 공모를 하는데, 굉장히 다양한 책들이 나와요. 퀄리티가 높고 낮은 걸 떠나서 아이들에게 얼마큼 더 많은 상상력을 입혀줄 수 있는 책인가,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문미희 소장은 촉각 도서 자원봉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의정부에 위치한 ‘나누미 촉각 연구소’에 방문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5만 권을 채우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아직 촉각 도서 역사가 짧지만 하나하나 만들어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많은 책을 보유하고, 이 책을 많은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글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영상 박홍규, 문성호 기자 gophk@seoul.co.kr
  • 인기 신작 없었던 게임 빅3, 中에 실적 좌지우지

    게임업계 ‘빅3’라 불리는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가 나란히 중국 때문에 울고 웃었다. 3사가 모두 지난해 4분기에 저조한 실적을 낸 가운데 매출 구조상 중국의 영향을 덜 받거나 중국에서 성적이 좋았던 회사가 그나마 나았다. 3사는 지난 13일까지 지난해 4분기 실적을 차례로 발표했다. 연간 실적은 대체로 양호했지만 분기 실적은 큰 폭으로 꺾였다. 넥슨은 매출액 4594억원, 영업이익은 389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3%, 67% 감소했다. 엔씨는 매출 3997억원, 영업이익 1126억원으로 각각 25%, 41% 줄어들었다. 넷마블은 매출 4871억원, 영업이익 380억원으로 매출은 20.9%, 영업이익은 59% 줄어들었다. 몇 년간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하며 연간 5조원 규모의 수출시장을 이끌었던 3사가 이렇게 주춤하게 된 이유로 업계는 우선 인기 신작이 없었던 점을 꼽는다. 3사는 각각 ‘던전앤파이터·메이플스토리’(넥슨), ‘리니지M’(엔씨소프트), ‘리니지2레볼루션’(넷마블) 등 종전의 히트작으로 실적을 견인하고 있지만 그 뒤를 잇는 신작을 내지 못하고 있다. 신작 부재 외엔 중국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외국자본 게임 판호(판매 허가 번호) 발급을 중단했으며, 지난해엔 청소년 시력 보호를 명목으로 판호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이에 따라 발급 중단 이전에 판호를 보유한 게임만 중국에서 매출을 올릴 수 있는데 3사 중 비교적 실적이 좋은 넥슨의 경우 던전앤파이터가 10년째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엔씨는 매출에서 지식재산권(IP) 분야가 매우 크다. 특히 지난해엔 대만에서 ‘리니지M’으로 큰 성과를 올려 로열티 매출이 전년 대비 39%나 성장했다. 엔씨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 주춤했음에도 연간 실적에서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이유는 로열티 매출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올해는 중국의 판호발급 재개와 신작의 잇따른 출시가 예상돼 업계 실적 개선을 전망하는 시각이 많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화성 이주 프로젝트 ‘마스원’ 결국 파산… “전세계 사기극”

    화성 이주 프로젝트 ‘마스원’ 결국 파산… “전세계 사기극”

    전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인류 최초의 화성정착 프로젝트가 결국 허무하게 끝났다. 지난 11일(현지시간) 캐나다 공영 방송 CBC뉴스 등 해외언론은 인류의 화성정착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마스원'(Mars One)이 이미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은 상태라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마스원은 지난달 15일 스위스 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았으며, 이같은 사실이 뒤늦게 보도된 직후 CEO 바스 란스도르프는 곧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커다란 화제와 논란을 일으킨 마스원의 화성 정착 프로젝트는 지난 2013년 처음 시작됐다. 마스원 측은 대대적으로 화성인 후보자 모집에 나서 전세계적에서 총 20만 2586명의 지원자를 받아 2015년 2월 이중 100명을 선발했다. 총 100명의 인원을 국적별로 보면 미국이 39명, 유럽 31명, 아시아계 16명,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에서 각각 7명이 선발됐으며 한국인은 없었다. 그러나 다시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는 ‘편도 티켓’ 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리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문제는 이뿐 만이 아니다. 과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과연 참가자의 안전을 담보하면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대두된 것. 특히 장기 간의 우주여행으로 인한 건강 문제, 우주 방사선으로 인해 생기는 암 발병 확률 증가와 DNA 파괴, 시력 감퇴, 골격계 손실 등 다양한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지도 해결하지 못했다. 여기에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자금 마련 등 전체적인 재원 방안 역시 불투명했다. 이후 마스원 측은 2026년부터 화성에 인류를 보내겠다는 당초 계획을 5년 연기했다. 이유는 최소 60억 달러 이상이 드는 비용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지만 전문가들은 마스원이 '기술도 돈도 없다'면서 사기 의혹을 제기했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현장 행정] 정신없는 이삿날… 동대문은 아파트 단지서 전입신고

    [현장 행정] 정신없는 이삿날… 동대문은 아파트 단지서 전입신고

    직원 5명 상시 배치 구정 서비스 제공 구청 경계석 낮추고 점자 안내책 보급“주민들을 위한 구정 서비스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겠습니다.”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지난달 25일 답십리 파크자이 아파트에 임시 개설한 ‘답십리2동 현장민원실’을 찾았다. 답십리 파크자이는 3만 2960㎡ 면적에 13~20층 규모로 지어진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로 802가구 2500여명이 입주한다. 구는 입주를 시작한 지난달 23일부터 이 아파트에 현장민원실을 설치하고 직원 5명을 상시 배치해 2개월간 운영하는 식으로 찾아가는 구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현장민원실에서는 전입신고, 확정일자 부여, 주민등록 등·초본 및 인감증명서 발급, 대형 생활폐기물 신고 접수 등의 업무를 창구 이동 없이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이날 현장민원실에서 만난 한 주민은 “구에서 입주민 편의를 위해 아파트 단지 내에 현장민원실을 설치해 줘서 고맙다. 동대문구로 이사 오길 잘했다”고 말했다. 현장민원실은 주민 편의를 위한 행정서비스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구는 거동이 불편한 주민이 구청 민원실에 접근하기 쉽게 구청 종합민원실로 연결되는 출입문 2곳(구청 로비 및 보건소 연결문)을 자동문으로 교체했다. 민원실 앞 보도의 경계석도 낮춰 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한 보행 약자도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점자로 된 민원 안내책자도 만들어 보급했다. 책자에는 주민등록 등·초본, 제 증명 발급 수수료, 여권 발급, 각종 복지정책 내용 등 민원실의 전반적인 업무 내용이 담겨 있어 시각 장애인의 민원업무 처리를 돕는다. 8배율 확대경, 고성능 보청기, 휠체어 등을 제공해 시력이나 청력 등이 좋지 않은 민원인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민원 서비스 개선 방안도 계속 내놓을 계획이다. 추후 무인민원발급기의 신용카드 결제, 외국인·다문화 민원인을 위한 외국어 지원서비스 등도 도입할 예정이다. 동대문구는 지난해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국민행복민원실’에 신규 선정됐고, ‘2018년 행정발전 유공(원스톱민원창구)’ 부문에서도 우수기관으로 뽑힌 바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한 ‘2018 민원서비스 종합평가’에서 전국 304개 기관 중 상위 10%에만 주는 최우수 등급(S등급)도 받았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작은 부분 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펴 구민들에게 최고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대문구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원준범 세무사의 생활 속 재테크] 연말정산 의료비 세액공제는 나이·소득 관계없이 받을 수 있어 꼭 챙겨야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 환급액을 더 많이 받는 방법을 묻는 직장인들이 많다. 사실 지난해 소득과 지출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연말정산 특성상 해가 넘어간 시점에서 공제액을 늘릴 방법은 많지 않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가능한 항목도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빠뜨렸던 의료비 세액공제를 챙기는 것이다. 회사의 연말정산 기간이 끝나고 누락된 내역을 찾더라도 종합소득세 신고기간인 5월에 확정신고를 통해 돌려받을 수 있다. 의료비 세액공제란 근로소득자가 본인과 배우자, 생계를 같이하는 부양가족(부모·자녀·형제자매 등)을 위해 쓴 의료비의 15%를 소득세에서 깎아 주는 제도다. 본인과 65세 이상자, 장애인, 건강보험산정특례자를 위해 쓴 의료비와 난임시술비는 총급여액(연봉-비과세소득)의 3%를 넘는 금액을 한도 없이 전액 공제해 주고, 그 외의 부양가족은 연 700만원이 한도액이다. 다른 공제보다 대상 항목이 넓지만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 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의료비가 ‘누구의 의료비인지’와 ‘어떤 항목으로 지출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첫 번째로 ‘누구의 의료비인가’를 따질 때는 의료행위를 받는 대상의 나이 및 소득 요건에 제한이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말정산에서 공제 규모가 가장 큰 기본공제(1명당 150만원)를 받으려면 부모는 만 60세 이상, 자녀는 만 20세 이하 등의 나이 요건과 연간 소득 100만원(근로소득만 있다면 500만원) 이하라는 소득 요건에 맞아야 하지만 의료비 세액공제는 나이·소득에 관계없이 받는다. 예를 들어 소득이 있는 50대 아버지의 의료비를 아들이 냈다면 아버지는 아들의 기본공제대상자가 아니지만 아들이 아버지 의료비를 세액공제받을 수 있다. 다만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살거나, 같이 살지 않더라도 용돈을 드리고 보살피는 등 생계를 같이하는 부양가족일 때만 가능하다. 본인 의료비보다 부모나 조부모의 의료비가 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 근로자가 낸 의료비 중 공제 대상에서 누락되는 의료비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두 번째로 ‘어떤 항목에 지출했는지’도 중요하다. 크게는 진찰이나 치료 또는 질병예방을 위해 의료기관에 지급한 비용과 치료·요양을 위해 약사법에 따른 의약품(한약 포함)을 산 비용이 포함된다. 특히 시력보정용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구입비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기본공제대상자 1명당 연 50만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건강검진과 라식으로 불리는 레이저각막절삭술 비용도 공제 대상이지만 신고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국투자증권 마케팅부 세무컨설턴트
  • 김병조 방송퇴출→교수 “정치적 멘트 후폭풍…덕분에 새 인생”

    김병조 방송퇴출→교수 “정치적 멘트 후폭풍…덕분에 새 인생”

    개그맨 김병조가 말실수 한 번에 방송 퇴출된 사연을 공개한다. 24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마이웨이’에서는 “지구를 떠나거라”, “먼저 인간이 되어라”라는 유행어로 한 시대를 웃기고 울렸던 개그맨 김병조의 우여곡절 인생 이야기가 공개된다. 김병조는 1975년 TBC 개그 프로그램 ‘살짜기 웃어예’로 데뷔,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유재석을 능가하는 국민 MC 겸 인기 개그맨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배추머리 김병조는 갑자기 브라운관에서 사라져 모두를 놀라게 했었다. 1987년 6월 한 정당의 전당대회에 참석해 “다른 당을 비꼬는 개그를 해 달라”는 요청에 공연을 진행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한 기자가 그의 발언을 기사화하면서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불어닥쳤다. 그는 “방송사와 집으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가족들을 위협하는 협박 전화까지 감당해야 했다. 억울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마음고생을 많이 한 만큼 많은 수확을 얻은 일이었다”고 회상한다. 현재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병조는 수십 년째 매주 수요일, 조선대학교 강단에 선다. 13년 전 갑작스러운 건강의 위기가 찾아와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그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그런 그에게 수요일은 가장 행복한 날이다. 그는 “운전을 못해 30년 동안 아내가 운전사 역할을 해줬다”고 말하며 40여 년의 결혼생활 동안 그의 옆에서 내조해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들과 함께 인터넷 방송활동을 시작한 사실도 공개하며 “처음에는 아들을 도와주기 위한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아들과 추억을 쌓고 있는 기분이다”고 전했다. 앞서 김병조는 MBC ‘추억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해 방송 퇴출된 당시 심경을 밝힌 바 있다. 그는 “1980년대는 한창 인기가 많았을 때고 내 말 한마디가 영향을 미칠 때였다”고 운을 뗐다. 이홍렬은 “당시 김병조의 발언은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미리 작성된 대본으로 알고 있다”고 했고, 김병조도 “대본을 보고 꺼림칙하긴 했지만 나는 연기자니까 해야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는 방송 퇴출이었다. 이에 대해 김병조는 “힘들었다. 어머니께서 밥만 먹으면 된다고 해서 힘을 얻었다. 고향에 내려가서 한학도 하고 지금은 강의를 하고 있다”며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다. ‘당시 그 기자가 원망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김병조는 “그 기자 덕분에 새로운 인생, 진짜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혼내주는 분이 스승”이라고 했다. 오늘(24일) 밤 10시 ‘인생다큐-마이웨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성난 노란 조끼 8만 4000명 운집… 경찰 고무탄 논란

    성난 노란 조끼 8만 4000명 운집… 경찰 고무탄 논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노란 조끼’로 대변되는 저변에 깔린 국민들의 분노를 대화로 풀자며 ‘사회적 대토론’을 시작했으나, 국민들의 화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19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노란 조끼’ 10차 집회에는 정부 추산 8만 4000명의 시민이 몰렸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지난주 9차 집회와 같은 규모다. 파리에는 9차 집회보다 1000여명 적은 7000명이 모였다. 시위대는 ‘마크롱(대통령)은 사임하라’, ‘파리 시민들이여 봉기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전반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집회가 진행됐으나, 복면을 쓴 일부 극렬 시위대는 폭죽을 터뜨리거나 병·돌 등을 경찰에 던지며 충돌했다. 경찰은 최루가스· 물대포 등으로 맞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5일 시위 국면을 타개하려고 2개월의 일정으로 사회적 대토론을 시작했다. 그는 그러나 부유세 폐지를 토론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핵심 개혁 의제를 고수할 뜻을 밝혀 반발을 샀다. 이런 가운데 현지 경찰이 집회 진압 과정에서 고무탄을 과도하게 사용했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AFP는 지난 18일 노란 조끼 9차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고무탄에 눈을 맞아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사연을 소개했다. 현지 시민단체 디스암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7일 ‘노란 조끼’ 1차 집회 이후 지금까지 경찰의 고무탄에 맞아 중상을 입은 시민은 98명이 이른다. 이 가운데 15명은 실명했다. 현지 일간 리베라시옹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노란 조끼’ 77명이 머리를 심하게 다쳐 뇌진탕 등 증세를 호소했다고 전했다. 고무탄은 경찰 규정상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에 표적에서 최소 10m 이상의 거리를 두고 목 아랫부분에 쏴야 한다. 그러나 이 규정은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눈부시거나 황홀하거나… 빛나는 부산

    눈부시거나 황홀하거나… 빛나는 부산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부산은 비교적 온화한 겨울을 즐길 수 있는 휴양도시다. ‘제2의 도시’다운 화려함과 오랫동안 지켜온 역사가 공존한다. 15개 자치구와 1개 자치군을 두고 있는 큰 도시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친다. 바다 위를 오가는 케이블카, 해변을 환하게 밝히는 마천루의 조명에 부산의 바다는 더 특별해진다. 해수온천에 몸을 담갔다 옛날 시장을 구경하고 구석구석 특색 있는 골목을 하나씩 거닐다 보면 몇날 며칠도 짧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가 2시간 40분 만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한반도의 동남쪽 끝에 자리한 도시를 머릿속에 그리면 꽤 멀게 느껴지는데 기차에서 딴짓을 좀 하다 보면 금방이다. 커다란 역사를 빠져나오니 북적한 도시 한복판이다. 도시의 소음 사이로 바람을 타고 온 짭짤한 바다냄새가 뒤섞인다. 광장의 팔각 비둘기집이 과거의 시간 한 토막을 떼어놓은 것 같다. 이곳에서 부산 여행을 시작했다.부산의 바다를 발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2017년 6월 문을 연 송도해상케이블카는 ‘국내 제1호 근대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 옆에 자리하고 있다. 1913년 7월 문을 연 송도해수욕장은 처음에는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을 위한 휴양시설로 개발됐다. 오랫동안 부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었지만 해운대, 광안리 등의 부상으로 한동안 옛 명성을 잃었다. 1964년 건설됐던 해상케이블카가 1988년 운행을 중단한 것은 시설 노후와 이용객 감소 때문이었다. 29년 만에 재개장한 해상케이블카는 송도해수욕장 부활의 상징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암남공원까지 1.62㎞를 운행한다. 옛 케이블카보다 운행거리가 4배 가까이 늘었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크루즈’에 오른다. 불투명 바닥의 ‘에어크루즈’도 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출발한 케이블카는 이내 거북섬 위를 지나 바다 위로 나아간다. 등 뒤로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 남항대교, 영도 풍경이 펼쳐진다. 바닥창 밑으로는 에메랄드빛 물결이 넘실댄다. 부산 바다가 이렇게 맑았나 싶다. 8분 30초간 위로 오른 케이블카는 암남공원 내 전망대에 멈춘다. 맑은 날이면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돌아오는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송림공원 앞에 내린다. 바로 앞바다 거북섬은 2016년 5월 해수욕장에서부터 이어지는 구름산책로로 연결됐다. 바다 위 고래조각상 등을 감상하면서 구불구불 난 산책로를 걸으면 작은 암초인 거북섬에 이른다. 바다로 삐죽 솟은 산책로 끝까지 가면 알록달록 방파제 위로 갈매기 떼가 새하얗게 모여 앉은 모습도 보인다. 과자를 꺼내 공중에 손을 휘휘 저으면 시력 좋은 갈매기들이 냉큼 날아와 먹이를 입에 문다. 한창 변신 중인 해수욕장 뒤로는 호텔 등 신축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부산의 바다 하면 해운대를 빼놓을 수 없다. 상전벽해의 아이콘이 된 해운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 나온 사람들, 부산에 놀러온 여행객들로 겨울바다가 조금도 쓸쓸하지 않다. 한편에는 빼곡한 고층빌딩이 화려한 대도시의 면모를 자랑하지만 해변 모래사장에 서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한가로운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지금도 급변하고 있는 해운대에는 공사 중인 인근 새 아파트를 홍보하는 아주머니가 “모델하우스를 보고 가라”며 이른 아침부터 전단지를 돌린다. 홍콩을 닮아가는 해운대 야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해수욕장을 조금 벗어나는 것이 좋다. 달맞이언덕 아래 자리잡은 ‘미포끝집’은 유명인들의 사인이 빼곡한 이름난 횟집이다. 야경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도 몰린다. 식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마린시티 쪽 형형색색의 빌딩 조명과 밝게 빛을 내는 광안대교가 만드는 장관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바다 전망을 실컷 즐겼다면 바닷속 여행을 떠나 봐도 좋다. 해운대해수욕장 바로 뒤에 위치한 ‘씨라이프 부산아쿠아리움’에는 상어, 바다거북, 가오리 등 250종 1만여 마리 해양생물이 살고 있다. 열대우림, 심해, 체험존 등 테마별로 꾸며진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면서 신기한 해양생물을 보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카스펭귄, 작은발톱수달 등 귀여운 동물들 앞에서는 아이들이 떠날 줄 모른다. 3000t 메인수조에 투명보트를 타고 들어가 상어를 좀더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다. 해운대는 해수온천으로도 유명하다. 많은 온천이 영업 중인데 그중 원조는 1935년 문을 연 ‘할매탕’이다. 류머티즘·관절염·신경통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할머니들이 유독 많이 찾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름만 들으면 낡고 허름한 시설일 것 같지만 2016년 최신 시설로 재개장했다. 특히 독립된 온천탕인 가족탕이 있어 인기다. 영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천을 즐기고 싶다면 할매탕 바로 옆 ‘해운대온천센터’를 이용하면 된다. 나날이 변화하고 있는 해운대지만 해운대시장에서는 여전히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좁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은 시장 골목 안에 ‘친구 아이가’, ‘뭐라카노’ 등 구수한 부산 사투리가 머리 위로 빛을 밝힌다. ‘해운대라꼬 빛축제’ 일환이다. 곰장어, 돼지국밥 등 식사부터 어묵, 튀김 등 간식까지 먹거리들이 즐비한 시장을 그냥 지나치긴 힘들다. 설움이 뒤엉킨 미로…단단히 박제된 추억바다를 마음껏 즐겼다면 이제 부산 골목의 매력을 느껴볼 차례다. 국제시장에서 보수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책방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는 보수동책방골목이 나온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때 이북에서 피란 온 손정린씨 부부가 현재 중구 보수동사거리 입구에 ‘보문서점’을 연 것이 시초다. 손씨 부부는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잡지, 고물상에서 수집한 각종 헌책을 팔기 시작했다. 그 시절 천막교실로 향하던 많은 학생들의 통학로가 된 이곳에 다른 피란민들도 하나씩 비슷한 서점을 열면서 책방골목으로 거듭났다. 골목 중간 지점에는 책을 한아름 품에 안은 사람의 동상이 서 있다. 1970년대 70여 점포가 성행했던 골목의 상징이다. 전성기 때만큼 붐비지는 않지만 여전히 천천히 책방들을 둘러보면서 헌책을 고르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부산의 명소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어 타지에서 온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골목 한편에 자리잡은 ‘우진스낵’은 4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이어 온 분식집이다. 지금도 처음 문을 연 사장님이 온종일 고로케와 도넛을 튀겨낸다. 부담 없는 가격에 사먹는 ‘추억의 맛’은 빛바랜 사진 같은 책방골목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책방골목 사이로 난 더 좁은 골목의 오르막 계단을 따라 산 쪽으로 올라가 본다. 수십 계단을 올라도 다시 그만큼의 계단이 남아 있다. 낮고 작은 계단이지만 개수 때문에 만만찮다. 계단을 다 오르면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다시 계단이 나온다. 겨울이지만 햇살이 따뜻한 낮이라 계단과 오르막길을 반복하다 보니 땀까지 맺힌다.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걸어야 한다. 행정구역상 대청동인 비탈진 동네에는 주차장을 머리에 이고 있는 집들이 많다. 지형을 이용한 공간 활용이 눈길을 끈다. 알록달록한 공영주차장 건물 옆으로 난 60여 계단을 또 오르니 전망대다.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너머 남항대교, 부산항 뒤 부산항대교 등이 내려다보인다. 여행자들이 찾아도 좋을 전망대지만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으로 더 인기인 것 같다. 전망대 벤치에 둥그렇게 앉은 할머니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공영주차장 전망대에서 영주동 방향으로 난 산동네 주택가 골목에는 예쁜20여점이 자칫 우울할 수 있는 골목 곳곳에 산뜻한 색을 더한다. 고래, 사슴, 호랑이가 뛰놀고 꽃이 만발한 골목 사이로 동네 고양이가 햇볕을 쬐며 한가롭게 뒹군다. 주택가 아담한 카페에서 잠시 쉬어 가도 좋다. 길 중간쯤엔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다. 관광용 모노레일이 아니라 가파른 계단을 오르기 힘든 지역 주민들에게 에스컬레이터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무작정 부산의 골목을 누비는 것도 좋지만 부산의 역사를 알고 나면 그냥 지나칠 사소한 것도 재미로 느껴질 수 있다. 보수동책방골목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는 부산근대역사관이 있다. 1929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건설된 건물은 그 자체가 역사적 건축물이다. 6·25 때는 미국대사관으로 쓰였고 전쟁 후엔 미국 해외공보처 부산문화원으로 활용됐다. 1999년 한국 정부에 반환됐고 이후 부산시가 인수해 근대역사관으로 조성했다. 1876년 근대 개항부터 시작된 일제 수탈의 역사를 중심으로 부산의 근대사가 사진, 지도, 책자 등과 함께 흥미롭게 전시돼 있다. 옛 개항장 시가지의 가구점, 과자점, 미곡취인소 등 일본식 건물도 재현돼 있다. 관람은 무료다.부산역 앞 초량차이나타운(상해거리)과 텍사스거리도 이색적인 풍경을 더해 주는 골목이다. 텍사스거리는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 과거 미군들을 상대로 한 유흥가였다. 한때는 청소년 출입이 제한되기도 했고 호황을 누렸지만 현재는 쇠락한 모습이 뚜렷하다. 1990년대부터 교역을 위해 온 러시아인들의 방문과 거주가 늘었고 지금은 텍사스거리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러시아어 간판이 빼곡하다. 이런 변화는 이어진 차이나타운에서도 발견된다. 300m 거리 양옆으로 홍등이 쭉 매달려 있는 거리는 빨갛게 빛을 내는 등불과 노란색 불빛 간판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 항우와 우희 동상이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고 삼국지 벽화가 길게 이어져 있다. 중국 상점·음식점 사이사이로 러시아어 간판들도 보인다. 러시아어로 빨갛고 노랗게 칠해져 있는 게 재미있다. 중국인들이 아침으로 먹는 콩국과 밀가루반죽튀김 등으로 유명한 오래된 중국집들 사이로 러시아의 보르시(수프), 샤슬릭(꼬치), 빵과 케이크 등을 파는 음식점들이 들어서 국제적인 거리의 느낌을 준다.최근 부산의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골목으로는 서면 옆 동네인 전포동의 전포카페거리가 있다. 예전에 철공소 등이 밀집돼 있던 동네에 개성 있는 카페가 하나둘 들어서면서 10년 전쯤부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일대에 300곳가량의 카페가 있다고 한다. 부산지하철 2호선 전포역 7번 출구 부근에는 지난해 6월 ‘부산커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김동규(41)씨가 7년 전부터 모은 커피 관련 골동품 420여점이 전시돼 있다. 1850년에 포르투갈에서 만들어진 대형 커피분쇄기를 비롯해 각국의 분쇄기, 드립머신, 주전자와 커피잔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입장료가 없고 커피 판매도 하지 않는다. 김 관장은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거리가 상업화되고 있다”며 “전포카페거리의 특색을 지키고 싶어 박물관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떠들썩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다면 기존 카페거리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떨어진 ‘전리단길’을 추천한다. 부산진소방서 뒤로 난 골목들에는 전포카페거리가 처음 생길 때의 분위기가 새롭게 피어오르고 있다. 페인트 냄새가 나고 철을 깎는 쇳소리가 울리는 골목에는 예쁜 카페, 디저트 가게 등이 다소곳이 자리잡았다. 그 사이로 들어선 인문학 서점과 사진관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작은 가죽공방, 목공소, 은세공 가게에서는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글 사진 부산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여행수첩 →잘 곳 : ‘페어필드 바이 메리어트 부산’이 지난달 해운대에 문을 열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셀렉트 서비스 브랜드로 지난해 4월 서울 영등포에 이은 두 번째 오픈이다. 지하 2층, 지상 22층 건물에 총 225개 객실이 있다. 23㎡ 크기의 스탠다드룸으로 구성됐다. 10만원 이하의 가격대로 가성비가 뛰어나다. 풀서비스 대신 필요한 서비스에 집중했다. 작지만 알찬 피트니스센터, 코인세탁실 등이 구비돼 있다. 2호선 해운대역에서 도보 10분 거리, 바닷가에서 3분 거리로 주변 관광지를 걸어다닐 수 있는 입지가 최대 장점이다.
  • 도서·공연비 최대 100만원까지 추가 공제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15일부터 시작됐다. 직장인들은 국세청 홈택스에서 각종 증빙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올해부터 달라지는 공제 항목에 유의해야 한다. 우선 총급여액 7000만원 이하 근로자가 지난해 7월 1일 이후 신용카드로 지출한 도서·공연비는 총액의 30%를 소득공제받을 수 있다. 최대 100만원까지 추가 공제가 가능하다. 총급여액이 5500만원 이하인 근로자의 월세세액공제율이 10%에서 12%로 상향된다. 보험료세액공제가 적용되는 보험에 임차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경우 주택임차보증금 반환보증 보험료가 추가된다. 청년 중소기업 취업자의 소득세 감면 대상은 만 15~29세에서 만 15~34세로, 감면율은 70%에서 90%로 각각 확대된다. 감면 기간도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생산직 초과근로수당 비과세 기준은 월정액 급여 150만원에서 190만원으로 올라간다. 중증질환, 희귀난치성질환 등으로 건강보험 산정특례대상자로 등록된 부양가족을 위해 지출한 의료비는 공제한도(700만원)가 폐지돼 전액 공제받을 수 있다. 만 6세 이하 자녀 세액공제는 아동수당 도입에 따라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시력보정용 안경·콘택트렌즈 구입비, 유치원·어린이집 교육비, 취학 전 아동 학원비, 중·고등학생 교복비 등은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조회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직접 영수증을 발급받아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총급여 3083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4인 가족(자녀 2명)이면 별도 공제증명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지난해 1년간 낸 세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다.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팁…책값·공연비도 공제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팁…책값·공연비도 공제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15일 시작됐다. 직장인은 오전 8시부터 국세청 홈택스(www.hometax.go.kr)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신용카드 사용금액, 의료비 등 연말정산을 위한 각종 증빙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부터 공제가 시작되는 ‘신용카드로 쓴 도서·공연비’와 ‘3억원 이하 주택임차보증금 반환 보증보험료’ 자료도 새로 포함됐다. 총급여액 7000만원 이하 근로자가 지난해 7월 1일 이후 신용카드로 지출한 도서·공연비는 총액의 30%를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 신용카드 사용액이 소득공제액 한도를 초과하면 도서·공연비는 최대 100만원까지 추가 공제할 수 있다.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조회되지 않은 의료비는 15일부터 17일까지 의료비 신고센터에 신고할 수 있다. 시력보정용 안경·콘택트렌즈 구입비, 유치원·어린이집 교육비, 취학전 아동 학원비, 중·고등학생 교복비 등은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에서 조회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 때에 따라 직접 영수증을 발급받아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또 근로자가 부모 등 부양가족이 쓴 신용카드 지출액을 함께 공제받으려면 사전에 자료 제공 동의를 받아야 한다. 자료 제공 동의는 PC나 모바일에서 할 수 있다. 근로자가 부양가족의 공인인증서 등 본인인증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면 신청서와 함께 부양가족의 신분증과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첨부해 온라인으로 제출하면 된다. 이날과 ‘편리한 연말정산 서비스’ 시작일인 18일, 수정·추가 자료 제공 다음 날인 21일, 부가가치세 신고 마감일인 25일 등에는 접속자가 몰릴 가능성이 있어 가급적 다른 날에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7년 전 불임 판정 받은 여성, ‘알비노 아기’ 출산한 사연

    7년 전 불임 판정 받은 여성, ‘알비노 아기’ 출산한 사연

    불임 판정을 받은 여성이 알비노 아기를 낳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잉글랜드 노스요크셔주 해러게이트에 사는 섀넌 코나티(22)가 불임 선고를 받은지 7년 만에 자연임신으로 아이를 출산했다고 보도했다. 섀넌은 지난 2011년 15살의 나이로 다낭성난소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다낭성난소증후군(PCOS)은 여성의 5~10%에게서 나타나는 내분비 질환으로 자연 임신 가능성이 희박하다. 17살에 남편 톰 케인(30)을 만난 섀넌 역시 여러 차례 임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임신을 거의 포기했을 때쯤 기적이 찾아왔다. 섀넌은 지난해 1월 갑작스럽게 자연 임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해 9월 딸 아바 케인을 얻은 섀넌은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희박한 임신 확률을 뚫고 태어난 아바는 빨간 눈에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아바는 알비노(백색증)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알비노는 멜라닌 색소의 분포와 합성 과정에 결함이 생겨 태어날 때부터 피부와 털, 눈의 색소가 적거나 없다. 인종에 관계 없이 평균 2만명 당 1명 꼴로 나타나며, 시력 저하나 실명, 피부암을 동반하기도 한다. 섀넌은 “아바는 시력 문제 때문에 운전도 못할 것이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희박한 임신 확률을 뚫고 태어난 희귀한 알비노 아기를 기적이라 칭했다. 그녀는 “딸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도록 사랑으로 키울 것”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불임 판정 받은 여성, 7년 만에 ‘알비노 아기’ 출산

    불임 판정 받은 여성, 7년 만에 ‘알비노 아기’ 출산

    불임 판정을 받은 여성이 알비노 아기를 낳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잉글랜드 노스요크셔주 해러게이트에 사는 섀넌 코나티(22)가 불임 선고를 받은지 7년 만에 자연임신으로 아이를 출산했다고 보도했다. 섀넌은 지난 2011년 15살의 나이로 다낭성난소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다낭성난소증후군(PCOS)은 여성의 5~10%에게서 나타나는 내분비 질환으로 자연 임신 가능성이 희박하다. 17살에 남편 톰 케인(30)을 만난 섀넌 역시 여러 차례 임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렇게 임신을 거의 포기했을 때쯤 기적이 찾아왔다. 섀넌은 지난해 1월 갑작스럽게 자연 임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해 9월 딸 아바 케인을 얻은 섀넌은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희박한 임신 확률을 뚫고 태어난 아바는 빨간 눈에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아바는 알비노(백색증)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알비노는 멜라닌 색소의 분포와 합성 과정에 결함이 생겨 태어날 때부터 피부와 털, 눈의 색소가 적거나 없다. 인종에 관계 없이 평균 2만명 당 1명 꼴로 나타나며, 시력 저하나 실명, 피부암을 동반하기도 한다. 섀넌은 “아바는 시력 문제 때문에 운전도 못할 것이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희박한 임신 확률을 뚫고 태어난 희귀한 알비노 아기를 기적이라 칭했다. 그녀는 “딸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도록 사랑으로 키울 것”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8살 시각장애 소년의 놀라운 축구 실력

    8살 시각장애 소년의 놀라운 축구 실력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년의 놀라운 축구 실력이 화제다. 8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런던에 사는 8살 소년 미키 풀리(Mikey Poulli)에 대해 소개했다. 평소 축구를 좋아해 아스날의 광팬이기도 한 미키의 꿈은 축구 선수. 하지만 미키는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7세 때 눈에 희귀병이 걸려 시력을 잃었다. 눈의 이상으로 2016년에 받은 안구 검사 결과, 미키의 상태는 시력 상실과 색각 이상이 생기는 희귀병인 원뿔-막대세포 이상증(rod cone dystrophy,RCD)으로 판명났으며 현재는 시력을 모두 잃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소년 축구단에서 활동했던 미키는 시력을 잃은 후에는 다른 친구들의 안전을 위해 더 이상 축구단에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키의 부모는 축구 선수가 되길 열망하는 아들의 꿈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들은 토튼햄의 우수센터(Center of Excellence)로 미키를 보냈고 그를 시각장애인 축구팀에 합류시켰다. 미키의 축구에 대한 천재적인 소질은 그가 팀 내에서 유일하게 눈이 먼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코치에게 큰 충격을 줬다. 미키 아버지 존 폴리(John Poulli)는 “어느 날 코치가 전화를 걸어와 아들 미키가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며 “그의 스카우트를 위해 프리에이전트(FA)에 전화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코치의 관심과 노력으로 미키는 일주일 만에 그가 꿈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그곳은 브라이튼 FC 훈련센터. 미키는 현재 그곳에서 한 달에 한번 다른 시각장애 아동들과 함께 잉글랜드 블라인드 축구팀에서 훈련하며 FA의 자금 지원을 받아 주간 일대일 코칭 수업을 받고 있다. 잉글랜드 블라인드 축구팀 감독은 미키가 국가대표팀에서 뛰기에 충분할 나이가 될 때까지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한편 시각장애인 축구의 경우 축구공은 구슬로 채워진 소리나는 공을 사용해 선수들이 공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으며 선수들은 양쪽 눈을 가리고 보호할 수 있는 아이마스크와 머리보호용 헤드밴드를 착용해야 한다. 사진= John Poulli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대한민국 국호 첫 명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해방구 佛조계지서 태동한 상하이 정부… 대한민국 국호 첫 명시

    1부 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②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중국 상하이는 명나라 말기부터 성장해 1880년대에는 동북아시아의 최대 상업 도시가 됐다. 1910년 대한제국 국권을 빼앗긴 뒤로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주목받았다.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이 독자적 주권을 행사하는 ‘조계’(외국인 자치구역)를 설치해 일본을 비롯한 다른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간섭을 피할 수 있었다. 특히 프랑스는 외국인에게도 건국이념인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보장해 한국인에게는 말 그대로 ‘해방구’였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 민족의 두 번째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태동했다.●“첫 번째 ‘임정 터’ 못 찾아…대한민국의 숙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를 위해 지난달 중순 찾아간 상하이 최대 번화가 화이하이중루 일대. 사람과 차들로 거리가 넘쳐나고 전 세계 패션 브랜드가 건물마다 즐비했다. ‘자본주의 최전선’인 이곳이 정말 사회주의 국가의 도시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기자와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고층빌딩이 가득 찬 서금이로(옛 김신부로) 지역을 바라보며 “100년 전 이곳 어딘가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프랑스 정부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선포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TV에서 보는 상하이 임정 기념관은 ‘보경리 청사’로 1926~1932년에 썼던 곳이다. 이 작가는 “최근 중국인 학자가 첫 번째 임정 터를 찾았다고 간략히 발표했지만 이에 대한 고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시원(始原)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1919년 3월 17일 러시아 고려인들이 프리모르스키(연해주)에서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를 선포했다는 소식이 퍼졌다. 때마침 서울에서도 임정 수립을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상하이 독립운동가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같은 달 26일 프랑스 조계의 한 예배당에 모였다. “조선총독부에 맞서 서둘러 임시정부를 조직하자”는 의견과 “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국내 지도자들의 뜻을 들어 보고 정하자”는 반론이 맞섰다. 하지만 3·1운동 직후부터 중국과 러시아에서 거물급 인사들이 상하이로 모여들고 있어 정부 수립을 더는 늦추기 어려웠다. 앞선 노령정부에다가 서울에 임정(한성정부)이 또 생기면 독립운동의 주도권을 놓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4월 10일 이동녕(1869~1940)과 이광수(1892~1950), 여운형(1886~1947) 등은 우리 역사 최초의 의회인 임시의정원을 꾸리고 첫 번째 회의를 가졌다. 밤을 새워 토의하던 중 신석우(1894∼1953)가 “임시정부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따오고 공화제 국가인 중화민국에서 ‘민국’을 가져온 것이다. 여운형이 “이 나라가 ‘대한’이라는 이름으로 망했는데 또다시 ‘대한’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묻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다시 흥해 보자”고 재치 있게 응수했다. 의원 다수가 이에 공감해 상하이정부의 이름이 정해졌다. 다음날 이들은 국무총리에 이승만(1875~1965)을 추대하고 내무 안창호(1878~1938), 재무 최재형(1860~1920) 등 6부 총장(장관)을 임명했다. 우리가 국가기념일로 기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4월 11일)은 여기서 유래됐다.●왕 아닌 인민이 주인인 민주공화정 첫 공식화 그렇다면 두 번째 임정은 왜 상하이에 세워졌을까.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최선화(1911~2003) 부부의 임정 기록을 외손녀 김현주씨가 정리한 ‘제시의 일기’(1999년)를 보면 여기가 왜 임정의 적지인지 잘 묘사돼 있다. “중일전쟁(1937~1945) 전 상하이는 서양 문물의 향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자기 나라와 똑같이 살 수 있도록 조계지로 분할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조계지가 시설이 가장 좋았다. 프랑스는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답게 망명객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조선에서 온 이들이 다른 조계지에 숨으면 곧 붙들려 갔지만 프랑스 조계지에서는 안전했다. 설사 끌려간다고 해도 프랑스 정부가 항의하면 다시 풀려나올 수 있었다.”(1946년 2월 21일) 상하이정부는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노령·한성정부와 달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명시하고 한국사 최초로 민주공화정 국가 건설을 공식화한 것이다. 새 나라가 대한제국(조선)을 계승하면서도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인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3·1운동 전까지 이어져 오던 복벽주의(나라를 되찾아 왕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를 완전히 단절시킨 것이다. 다만 상하이정부가 추구한 ‘외교독립론’은 훗날 임정이 끊임없이 갈등과 내분에 빠지는 단초가 됐다. 외교적 방법론은 당시 우리 민족의 현실적 역량을 반영한 전략이기는 했다. 그럼에도 (이기든 지든) 일본과의 전쟁을 수행하지 않고는 나라를 되찾을 수 없다고 믿는 무장투쟁론자들을 설득하진 못했다.●쑨원의 부인 추모 능원에 신규식 등 만국공묘 상하이지하철 10호선 쑹위안루역 2번 출구로 나오니 말끔하게 정돈된 공원이 있었다. ‘중화민국의 아버지’ 쑨원(1866~1925)의 두 번째 부인이자 ‘중국의 국모’로 불리는 쑹칭링(1893~1981)을 추모하는 곳이다. 공원 한쪽에 외국인 묘지를 모아 놓은 ‘만국공묘’가 나타났다. 묘비를 하나씩 더듬다가 낯선 한국인 이름 하나를 찾아냈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기획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계자’로 인정받는 신규식(1880~1922)이었다. 나라를 위해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을 만큼 불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특히 한쪽 눈을 가린 채 카이저 수염을 기른 외모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하지만 그가 초기 임정을 상하이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누구보다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충북 청원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신채호(1880~1936), 신석우와 함께 ‘산동삼재’(산동신씨 가문의 3대 수재)로 불렸다. 대한제국에서 군 장교로 활동하다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첫 번째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가족에게 발견돼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눈 시력을 잃었다. 지인들이 ‘애꾸눈’이라고 놀리자 신규식은 스스로를 ‘예관’(睨觀·한쪽 눈으로 흘겨봄)으로 불렀다.●신해혁명 경험삼아 민주공화정 개념 전파 1910년 8월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두 번째로 집에서 독을 마셨다. 때마침 대종교 종사 나철(1863~1916)의 눈에 띄어 다시 한 번 구조됐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이듬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중국의 공화주의 노력을 한반도에 적용하겠다는 생각에 쑨원과 천두슈(1879~1942), 천치메이(1878~1916) 등 혁명가 그룹과 친분을 맺었다. 쑨원이 이끄는 ‘중국동맹회’(1905~1912·중국 국민당의 전신)에 가입하고 청 왕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에도 직접 참여했다. 1912년 국내 독립운동 세력을 결집하고자 ‘동제사’를 조직했다. 총재 박은식(1859~1925)을 비롯해 김규식(1881~1950), 신채호, 조소앙(1887~1958) 등 동제사 출신은 후일 임정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다. 이들은 1917년 7월 임시정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2년 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촉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두 번째 임정이 상하이에 자리잡은 건 신규식의 노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대한민국 국호를 제안한 신석우가 바로 신규식의 조카”라며 “신규식은 자신의 신해혁명 경험을 독립지사들에게 소개해 대한민국의 토대가 된 민주공화정 개념을 설파했다”고 설명했다. 1921년 11월 쑨원이 이끄는 중국국민당이 베이징 군벌정부에 대항해 광둥에 호법정부를 세웠다. 신규식은 국무총리·외무총장 자격으로 그를 찾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식 국가로 승인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쑨원은 혁명동지 신규식을 극진히 예우했다. 호법정부의 정치·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에도 그의 부탁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는 국제적으로 정식 주권기구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임정이 국민당의 후원을 받아 다소나마 활로를 찾는 계기가 됐다. ●해외서 문전박대 뒤 임정 외교독립론 도마에 1922년 대통령 이승만이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고자 워싱턴회의에 갔다가 개최국인 미국으로부터 문전박대 당해 쫓겨났다. 임정의 외교독립론이 논란이 됐다. 신규식은 이런 임정의 처지를 비관해 25일간 단식하다가 같은 해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일각에서는 그가 1921년 쑨원을 만났을 때 황제에게 예를 표하는 ‘만세’를 외친 것을 두고 사대적 자세를 지적한다. 하지만 대의명분을 누구보다 중시하던 신규식의 평소 성격에 비춰 볼 때 그런 굴욕을 참아내며 쑨원을 대한 건 오로지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으리라. 상하이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시지프스의 나무, 그 역설의 존재론-이영광론/신수진

    1. 경사지고 거꾸로 선 각도의 위상학 인간을 위해 죽음의 신을 쇠사슬로 묶었지만 신에게 붙잡혀 영원한 벌을 받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 카뮈는 부조리에 대해 사유한다. 1) 그가 주목한 것은 바위가 정상에 닿자마자 다시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주저 없이 고통의 근원으로 다시금 향하는 시지프스의 바로 그 돌아서는 순간이다. 시지프스는 자신의 비참한 존재 조건을 감히 통찰하고 부조리한 삶을 무한히 들어올림으로써 결코 패배하지 않는 반항적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지프스의 결의와 반복처럼 이영광은 계속해서 쓴다. 우울과 명랑을 진자처럼 오가며 그는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지고 절벽을 오른다.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 아니 그건 너무 SF적이다. 그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끝까지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이 바람과 좌절은 그 자체로 시지프스의 은유와 부합한다. 1998년 등단 이후 서정적 주체의 환부를 드러내고 그 통증의 발로를 소상히 추적하고자 하는 시정신으로 그는 이제 ‘끝없는 사람’에 당도했다. 다섯 권의 시집에서 아픔을 갱신하며 정신의 높이를 몸의 위치로 끌어내린 그는 기꺼이 병실로 치환된 세계를 겪어낸다. 곰팡이와 거미줄이 쉴 새 없이 자라나는 위태로운 상태일지라도 그는 적어도 자기 세계를 가진 자로서 이 경사지고 거꾸로 선 각도의 입지는 이영광의 정신적 배후로, 그의 위상학으로 건재해왔다. 이영광은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가 문득 “한 번도 문제가 돼본 적”(‘문제’) 없는 역설적인 세계를 깨닫는다. 합리와 효용만을 쫓는 병리학적 사회에 대한 통찰과 반성이 예의 그 반동의 시작점에 있었다면 그의 시를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은 역설적 사유의 방식이다. 이를테면 그에게 죽음이라는 테마는 삶보다 더 압도적이다. 죽음은 미학적 감수성의 대상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도약시키는 극단이기 때문이다. 이는 2010년대 한국시에서 진단되는 시대적 감각이나 향유적 양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의 대결구도를 견디는 주체의 극기를 보여준다. 세계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과 윤리는 자칫 자기 동일성에 포섭될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폭력의 메커니즘이 확산되고 있는 세계를 주시한다. 2) “죽기 전에”(‘오일장’) 죽기 위함이라는 역설과 비판적 실천 의지는 자해에 가까운 자학으로 점철되었고 마침내 이러한 기근 속에서 이영광의 시적 주체는 나무의 존재로 현현한다. 나무와 숲이라는 식물적 상상력과 가공할 병실로 환원된 세계 인식을 근거로 계속해서 “간다”, “가야한다”(‘나무는 간다’)를 역설하는 이영광의 이 길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3) 2. 상실과 존재의 원환(圓環)으로서 병폐의 징후 : 미치다, 아프다, 병들다 이영광의 시에는 상실과 결여의 수사가 넘쳐난다. 상실은 존재를 표상하고 존재는 다시 상실을 견인한다. 그에게 상실은 존재에 대한 자신만의 의식화이다. 대상이 충족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의식하지 않는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는 사랑을 갈구할 필요가 없다. 사랑을 찾는다는 것은 사랑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때의 상실은 사랑의 존재에 대한 의식화인 것이다. 나무는 미친다 바늘귀만큼 눈곱만큼씩 미친다 진드기만큼 산 낙지만큼 미친다 나무는 나무에 묶여 혓바닥 빼물고 간다 누더기 끌고 간다 눈보라에 얻어터진 오징어튀김 같은 종아리로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며, 가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데 고문받는 몸뚱이로 나무는 간다 뒤틀리고 솟구치며 나무들은 간다 결박에서 결박으로, 독방에서 독방으로, 민달팽이만큼 간다 솔방울만큼 간다 가야한다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걸음으로, 가야 한다 세상이 녹아 없어지는데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 공중의 결승선(決勝線)에서, 나무는 문득, 질주를 멈추고 아득히 정신을 잃는다 미친 나무는 푸르다 다 미친 숲은 푸르다 나무는 나무에게로 가버렸다 나무들은 나무들에게로 가버렸다 모두 서로에게로, 깊이깊이 사라져버렸다 ―‘나무는 간다’ 전문 이상(李箱)에게 열두 명의 무서워하는 아해와 무서운 아해가 있었듯, 이영광에게는 미치고 푸르고 가고 가버린 나무가 있다. 시인의 자기의식은 나무로 환유되고 있는 이지러진 시적 주체의 자화상으로부터 기인한다. 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주요한 지평으로서 나무는 시적 주체의 술에 취한 가계(家系)와 생활과 속내를 목도해왔을 뿐 아니라 그 울음을 위로하던 내밀한 기억으로 인하여 제 자신 역시 깊은 병을 앓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조금씩 미쳐가는 나무는 제 스스로의 몸에 묶여 혀를 빼물고 있으면서도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도망치지 못한 채 순순히 미쳐가고 있던 나무는 “천지에 가득 죽음에 뚫리”면서도 계속해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징한 로고스를 탈각한 채 세계를 거대한 병실로 치환하면서 그것과 한몸인 나무가 겨우 붙어 있는 숨으로 뱉어내는 전언, 이 신음이 바로 이영광의 시가 육박해가는 시의 음성이다. 그것은 “고문받는 몸뚱이”의 형상이리만치 처절하게 으스러진 어떤 것이다. 변형되고 훼손되고 상실하면서 이제 나무들은 간다. “결박”과 “독방”이라는 이 문제적 존재의 필요충분조건 위에 그가 가고자 하는 길은 나 있다. 그것이 설령 “제자리걸음”일지라도 가고자 하는 까닭은 세상이 “뒤집히”거나 “녹아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분의 관계로서 나무의 뿌리격인 세상은 나무의 존재를 끊임없이 몰락시키며 역설적으로 바로 그 허물어지는 순간들로부터 나무가 재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도출해낸다. 나무는 미친다. 미치면서 간다. 미쳤기 때문에 가는 것이고, 미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이 광기와 착란의 고투는 “공중의 결승선”에서 마침내 분신하듯 정신을 잃고 제 몸을 산화하고 만다. 정신을 잃고 나서야 푸르게 미친 나무와 푸르게 미친 숲은 모두 서로에게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온통 상실과 결여의 비존재로 읽히는 세계에서 에포케가 발생하는 이 공명의 찰나로부터 이영광의 시집은 시작된다. 정체와 암전에서 시동을 걸 때 나타나는 재부팅의 효과, 그 광포한 분란을 통과할 때에만 겨우 돌아오는 불규칙한 심호흡이 바로 이영광 시에서 나타나는 병폐의 첫 번째 징후인 ‘미치다’의 증상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미친, 혹은 미쳐버린 이 나무들의 진격은 삶의 벼랑 끝에서 발휘되는 재기의 몸부림이자 고유한 주체 확보의 계기가 된다. 시끄럽게 부서지고 피 나던 집이었는데/누구도 아이를 욕하거나 때리지 않았다/조용한 아이였다/조심하는 아이였다/모든 걸 알고 모든 것에 준비된 표정으로/떨려고 하지 않았다/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상관없습니다/(중략)/아프지 않겠습니다/아이가 되지 않겠습니다/온몸을 희끄무레한 붕대로 감고 있어서/아플 곳이 없었다/죽으면 죽으리라. 4) /살면 살리라/벗은 아이였다/벗겨진 아이였다/생각하지 않고,/늘 남의 생각만 생각하는/망가져가는 아이였다 무섭고 많은/시간이 잡은 아이였다/하루는 사십년처럼 흐르고/사십년은 하루처럼 멎어/어느 날, 돌아온 아이였다/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아직도 망가져가는 아이였다 ―‘망가져가는 아이’ 부분 상실과 결여로 화하는 존재의 나쁜 사정(아프거나 혹은 죽거나)은 핏속을 흐르는 불가해한 광기와 걷잡을 수 없는 슬픔, 시라는 것에 붙들려 오도 가도 못하는 몹쓸 운명에 다름 아니다. 문명과 역사의 폭압으로부터 거세된 욕망은 이제 생태적 상상력을 넘어서 가족 내력으로부터 발생한 병폐적 징후들, 상실된 존재라는 치부로 고백된다. 폭력과 방임과 유기라는 총체적인 학대 속에서도 아이는 자라야만 한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숨죽여 자라는 동안 모든 걸 알아차려버린 아이는 어느덧 “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아이가 된다. 온몸을 붕대로 감고 있어서 아플 곳이 없는 그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성경을 외우는 동안 죽고 또 죽어 역설적으로 그 죽음 속에서만 살 수 있다. 그러나 사십년의 세월 속에서도 조금도 빛바래지 않는 “도대체 왜 도대체 왜 도대체 왜”라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이의 하루는 사십년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이고, 사십년은 하루처럼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발가벗겨지고 죽임당한 채 자신을 영구히 복원하지 못하는 이 시적 주체의 내력은 질병의 코드로 나타나며 역설적으로 바로 이 상실과 결여의 반대급부로서만 존재의 기표에 가까스로 다다를 수 있다. 모든 곳이 아파서 아플 곳이 없는 아이, 아픈데도 아프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아이, 아픈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데도 안 보이는 아이로 아픔이 재현되는 양상에서 볼 수 있듯, 이영광이 상실의 주체를 존재의 그것으로 전복시키는 역설을 보여줄 때 그 도화선은 병폐적 징후로 드러난다. 병폐적 징후의 두 번째 시어로서 ‘아프다’ 역시 꺼져가는 삶에 대한 각성과 의지의 기제로 작동되고 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새 활로의 모색을 담당하는 기저가 된다.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그는 병들었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가만히 멈춰 있기죠/그는 병들었다, 하지만/나는 왜 병이 좋은가/왜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나/그는 버르적댄다/습관적으로 입을 벌린다/침이 흐른다/혁명이 필요하다 이 스물네평에/냉혹하고 파격적인 무갈등의 하루가,/어떤 기적이 필요하다/물론 나에겐 죄가 있다/하지만 너무 오래 벌받고 있지 않는가, 그는/묻는다,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중략)/저녁은 모든 희망을 치료해준다/그는 힘없이 낫는다/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나는 무장봉기를 꿈꾸지 않는다/대홍수가 나지 않아도,/메뚜기떼가 새까맣게 하늘을/덮지 않아도 좋다/나는 안락하게 죽었다/나는 내가 좋다/그는 돼지머리처럼 흐뭇하게 웃는다/소주와 꿈 없는 잠/소주와 꿈 없는 잠 ―‘저녁은 모든 희망을’ 부분 이영광은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한다는 뒤바뀐 선후 관계를 통해 병의 중의적 차원을 암시한다. 이는 낫기 위해서는 먼저 병이 들어야 하는 논리적 인과성에 대한 일종의 언어유희이기도 하지만 병폐의 징후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은 본래 어떠해야 했는지를 복기시키는 반동의 기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는 병들어 있는 ‘그’의 곁을 지키고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전력을 다해 멈춰 있기 위해 “혁명”이라든가 “기적”과 같은, 존재의 근원을 통째로 뒤바꿀 만한 지각변동을 꿈꾸지만 현기증을 일으키는 이 소요 사태 속에서 ‘나’는 도리어 병이 좋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병은 푸르게 미쳐가는 생의 긍정적 요소로 읽어내야 한다.) 시어들을 모두 거꾸로 뒤집어놓은 이러한 양상들은 이제 죽음 속에서만 살 수 있음을 가시화하기 위한 이영광식의 역설로 정립된다. 그래서 이영광이 쓰는 존재의 본질은 언어로 포착되지 않으며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하며 와해되고 생성한다. 이 유동적인 성질은 시인으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존재가 되기 위해 ‘그’는 “버르적”대고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린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그’는 또 다른 ‘나’이지만 ‘나’는 ‘나’를 만듦으로써 도리어 더 외로워지는 아이러니에 처한다. 고통과 쾌락, 경험과 선험,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시인이 접근하고자 하는 ‘나’는 다가갈수록 멀어질 뿐 한시도 오롯한 ‘나’가 되지 못한다. 이영광의 시적 주체는 몸이라는 집을 한 채 지니고 있다. 집은 일종의 병실로 나타나며 그는 이 무력한 “스물네평”에 “변혁”, “새날”, “자폭”, “재앙”, 혹은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나 대혼란이 벌어지길 기도한다. 그것은 더 완벽하게 미치고, 더 못 견디게 아프며, 더 깊이 병들어 차라리 그 병세에 차도가 없어져버리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희망을 앓아온 ‘그’는 싸워보지도 못한 채 힘없이 완치되고 만다. 이것은 패배조차 허락되지 않는 참담한 실패를 증거한다. 상실을 경험함으로써만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이러한 역설적 구조는 이영광이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유의 패러다임으로 병폐의 세 번째 징후인 ‘병들다’의 의미다. 내 것조차 될 수 없는 고통의 전유물인 ‘나’ 앞에서 시인은 그의 유일한 도구인 시만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시지프스가 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시는 이영광의 시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인 상실과 존재의 원환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세계 속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멈춰 있는 것, 불변하는 것, 영구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논리적 명쾌함은 불가능해지고 점점 수식어가 많아질 뿐이다. 이 구태의연한 언어의 불가능성은 상실과 결여로서 존재에 대한 회의와 그대로 닮아 있다.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나’와의 간극은 모순으로 일관하고 있는 세계의 이원성, 이를테면 안과 밖, 전력과 정지, 죄와 벌, 아침과 저녁, 빛과 어둠, 삶과 죽음, 현실과 꿈 등을 통해 구조화된다. 마침내 모든 상실이 존재를 부상시킨다는 것을 예감하게 된 ‘나’는 “소주와 꿈 없는 잠”에 혼곤하게 빠져든다. 만해의 “잠 없는 꿈”(‘잠 없는 꿈’, 님의 침묵, 회동서관, 1926)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는 이 구절 속에는 모든 대상이 뒤집어진 거울 속 같은 세계가 놓여 있다. 현상과 이면이 전복되는 세계를 목도하며 ‘나’는 세계의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트랙을 돌며 남겨진 부분(병폐로 나타나는 이상 징후)을 확보하고 그것을 존재로 변환할 궁리에 몰두한다. 3. 시지프스의 역설 : 나무의 존재론 지난 시력으로 볼 때 이영광의 작업은 상실과 존재의 원환으로서 병폐의 징후를 포착하는 동시에 시대적 데카당스를 향한 분기였고 시적 실천에 의한 궐기였다.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기인하는 디스토피아와 대치하면서 그가 겪어내는 소외와 환멸은 미치고, 아프고, 병든 시적 주체의 상태로 반복된다. 시인은 조금도 비켜서지 않고 이 고통을 직면함으로써 사람다움의 정의에 대해 생각한다. 세월호 삼보일배가 살려고, 기어서 남녘에서 올라오고 있는데/잃은 아이 언니인가 누나인가 하는/그 여린 아가씨, 옷이 함빡 젖고 운동화가 다 해졌데/(중략)/마음이란 거 그거, 찌르지 마, 자꾸 피가 샌다고/중환자실 천장에 달려 뚝뚝 떨어지는 피 주머니 같은 그것에게 ―‘마음 1’ 부분 아니, 아니…… 돌아가야 해요/예쁘고 미운 친구들과 괴롭고 즐거운 학교와/인사하던 골목길과 상점들에게로 그렇고 그런 사람들에게로/돌아가야 해요, 꿈꾸고 꿈꾸고 꿈꾸면 괜찮아지던 곳에,/끝없는 사람으로 돌아가야 해요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유령 6’ 부분 시집 곳곳에 기록된 4월 16일은 우리로 하여금 섣불리 환부를 봉합하는 대신 고통을 날것 그대로 경험하도록 한다. “오늘도 무사하지 않았느냐고” “겁도 없이”(‘겁’) 이야기하는 자신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징역 살고 싶”(‘무인도’)은 심정을 토로한다. 고통의 근원지를 밝히고 불편과 부끄러움을 마주함으로써 우리가 “끝없는 사람으로 돌아”갈 때만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이영광의 피 흘리는 세계는 사람의 것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영광에게 존재가 되기 위한 상실과 병폐의 과정은 다음 시들에서 죽음의 이미지들로 변환된다. 시집 전반에 걸쳐 삶과 죽음이라는 시어는 전도되어 있으며 자주 몸 바꾸어 나타나는 죽음의 현시들은 삶의 부장품처럼 예상치 못한 일상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출토된다. 이는 삶과 죽음을 매 순간 견디어내면서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과도 같다. 정말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자기를/살려주는 일/정말 해야 할 일도 저에게 위로를/던지지 않는 일/입이 말을 못하겠나/손이 구원을 못 쓰겠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하지 않는 것을 해내는 일 ―‘깔깔대는 혼’ 부분 고독이 안되자 그는 삶을 물어뜯었다/사람이 안되면 사람을,/진심에 지피면 진심을 무찔러야 했는데/삶을 쓰러뜨렸다/죽음이 안되면 죽음을 여의어야 했는데/삶을 버렸다 ―‘하지만’ 부분 자기를 순순히 살려주는 일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고 하는 이 전언은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려는 저 위악과 자위의 역설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때문에 내가 나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영광식으로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나로 죽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 “진심을 무찔러야”하고, “죽음을 여의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 견딤의 미학이 그에게는 시를 쓰는 행위, 존재를 성립하기 위한 방법론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시의 외연에 등재시킨 상실과 결여의 병폐적 현상들을 주체의 확립과 존재로 복귀시키며 재구조화하는 이영광의 시도는 그것이야말로 시의 임무와 사명임을 숙연하게 보여준다. 뒷밭이 우릴 먹여주지 않니 시인은 싫다 너는 학교에서 라디오도 타왔지 않니 취직도 안하고 출세도 안되고 시인이 되어 내려갔을 때는, 나는 네가 시인만은 되지 말길 죽 바랐다, 이젠 객사하지 말라고 기도해야겠다, 어머니는 말했다 나보다 더 어두운 짐승,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시인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뒷밭이 북풍한설이어서 굳게 다짐했다 시인이, 나는 아니다 언젠가는 가짜를 들킬 것 같아 두렵다 어쩌다 어머니 말을 잊어먹을 때면 그 짐승이 불쑥 머리를 내밀기도 한다 그때 깊이 눌러 감추어버렸던 시인이란 것을 들킬까봐 또 나는 무섭다 세상 모든 밭들은 왜 다 기근인가 객사 얘기는 그만하세요 뒷밭은 언제나 우릴 굶겼어요 저는 그냥 방랑만 하는 거예요 시늉만 하는 거예요 ―‘뒷밭’ 부분 시인님이 되느니/땅끝까지 실종되고 말겠다/시인님이 되느니/살처분 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겠다//높이지 않아도 시인은/만장처럼 드높으므로/아무리 높여도 시인은/꿇은 상주처럼 낮으므로 ―‘시인님’ 부분 자전적 시임이 분명한 위의 메타시들에서 시인은 시 쓰기를 업으로 삼고 영원한 삶을 견디는 시지프스로 화한다. 평생 뒷밭에서 일을 하신 어머니는 시인이라곤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들려주던 김삿갓밖에 알지 못한다. 그런데 김병연의 전기를 가능케 한 드라마틱한 방랑과 객사에만 방점을 두어 마치 시인이 되면 반드시 떠돌다가 죽게 될 것이라고 믿는 듯 아들의 행보를 심려한다. 시인이란 대개 시대의 병폐를 가장 먼저 진단하는 첨병으로 부나 권력과 같은 가치들을 풍자하며 으레 속세를 떠난 듯 자유로운 자들로 통용되지 않는가. 문학을 알지 못하는 어머니에게도 시인의 입지가 지닌 이 변방의 좌표가 어렴풋이 짐작되었으리라. 시인이 되겠다는 아들이 겪어야 할 그 정처 없는 빈곤도 싫었겠지만 도무지 숨길 수 없는 저 반역과 모반의 기질, 세상을 척지고 홀로 싸워나가야 하는 어두운 예감 같은 것이 서늘히 엄습해왔을 것이다. “나보다 더 어두운 짐승”인 어머니에게 불효를 자처하면서 기어이 멋대로 시인이 되어버린 시적 주체는 그러나 간혹 제가 가짜임이 들통날까봐 저어한다. 또 제가 정말 시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그것 역시 두려워한다. 자신은 그저 시인 “시늉만 하는” 것이라고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그의 말은 어쩐지 자신을 더 안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 되느니 “땅끝까지 실종되”거나 “살처분 당하는 분홍 돼지가 되”고 말겠다는 이 호언장담, 이 비하와 경멸의 자기모멸감 속에는 기실 시의 쪽배로밖에는 이 깊은 생을 건널 재간이 없는 한 사람의 떨림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만장처럼 드높”고 “꿇은 상주처럼 낮”은 이 고결하고도 비천한 이름 곁에 선 시인의 결연함은 슬프도록 장엄하고 눈물겹도록 어리석다. 뭇사람들이 그 눈에서 “죄인”과 “천치”를 읽고 간 미당의 피맺힌 아침과도 같은 부끄러운 혼, 그러나 뉘우치지 않는 그 오만한 자세를 이영광은 어딘가 닮아 있다. 나무의 적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세력/빈 들은 이글거리는 뿌리들을 비끄러맨다/바람은 잡념의 가지들을 조각조각 부러뜨린다/나무의 정권들이 나무 속으로 들어간다/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진다/한 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삭풍과 눈보라와 흙먼지의 백만 대군을,/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무한의 지평선을/한그루 장창으로 막아선다 ―‘한점 배후도 없이 나무는’ 부분 맨주먹을 쥐고 눈밭에 선 나무, 시적 주체로 형상화된 이 강인한 나무는 무방비 상태의 싸움꾼이다. “저렇게, 싸우지 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저렇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싸움의 상대는 바람이다. 바람은 “얼굴을 드러낸 적 없는 세력”으로 나무와 교전한다. 제 뿌리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의 정직한 생의 기록은 어디서부터 불어왔는지 모를 홀연한 바람의 태생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나무가 거역할 수 없는 피투성(被投性)의 존재로서 육중한 삶을 떠메고 가야 한다면 바람은 무한한 가변성이라는 무상함을 상징한다. 제 몸을 한그루 장창 삼아 “삭풍과 눈보라와 흙먼지” 불어오는 지평선을 제압하는 나무 안에는 뜯겨나간 뿌리와 부러진 가지들의 비명이 난무한다. 이 부서진 한 그루의 육체 안에는 삶과 죽음이 온통 뒤엉켜 있어 그 둘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나무는, 오직 나무로 지워”지게 된다는 이 유연한 나무의 병법을 통해 시적 주체는 상실과 병폐를 넘어서는 영원한 시지프스의 시 쓰기와 존립을 이루게 된다. 언제나 환한 볕보다는 그늘의 모서리를 맴돌던 시적 주체는 마침내 “한 점 배후도 없이” 맨몸으로 제 삶을 일궈내는 나무가 된다. 당신이 한낱 사람의 몸 사람의 말로 날 죽여 나는 음 사월 물푸레나무같이 푸르렀습니다 푸르고 튼튼하게 병났습니다 물푸레나무 곁에서 춤추는 물푸레나무같이 기쁨을 못 이겨, 나는 당신이 한없이 외로웠습니다 당신은 한낱 사람의 말 사람의 몸을 그쳐 날 다시 살려내고, 사랑 없는 사랑이 되어 떠났습니다 마른 가을이 살찐 여름을 단숨에 쓰러뜨리듯 나는 모든 기쁨을 힘없이 무찔러 이기고, 음 시월 물푸레나무같이 시들어 병 나았습니다 ―’물푸레나무같이’ 전문 당신이 건넨 “사람의 몸” “사람의 말”로 인하여 병들고 죽어가는 ‘나’는 기쁨에 못 이겨 춤을 추면서도 당신이 외로웠다고 말한다. 당신이 “사람의 말” “사람의 몸”을 그치자 ‘나’의 병은 나았지만 나는 사랑도 기쁨도 잃은 채 시들게 된다. 시인의 책무란 본래 사람의 것으로 아플 때 죽음과도 같은 병폐 속에서 도리어 시퍼렇게 살아나 그 한없는 외로움을 읊는 것이며, 사람의 것이 떠났을 때 힘없이 시들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상실과 존재의 아포리아 속으로 망명하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시적 주체는 이제 자신의 생애보다 오래된 나무의 부동자세가 불러일으키는 바람의 무한수열을 느낀다. 그 바람은 상실과 존재의 원환으로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며 나무의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곳에서 분다. 그 바람을 관장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바람보다 먼저 미치고, 먼저 아프고, 먼저 병들어버리는 자로서 시인뿐이다. 시적 주체는 필연적으로 역설의 폐허에서 기아와 고독과 광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존재의 상실이야말로 새 존재를 생성해내기 위한 회로의 추동장치로 작동한다. 이영광은 병폐라는 허구적 장치를 통해 결국 시를 앓을 때만 존재가 도래할 수 있는 기반을 예비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픔으로 인하여 시적 주체는 소진되거나 무화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내려가는 순간에 시를 통한 삶을 발견함으로써 형이상학적 존재로 재탄생한다. 사랑과 상실, 기쁨과 슬픔, 병과 치유, 죽음과 생명이 마치 한몸처럼 붙어 있는 이 역설의 시학은 나무의 존재로 부활하는 이영광식의 신화를 재현하고 있다. 시적 주체는 바람이 일으키는 병폐의 징후를 통해 생사의 영원한 지평 위로 나무의 삶을 고양시키고 재편한다. 그때 들려오는 푸른 존재의 잎사귀 소리는 원래 자기 몸 안에서 울리던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천지의 울음을 내재하고 있는 나무의 존재론은 이제 이영광 시의 아이덴티티가 될 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시를 기억하는 주요한 하나의 축으로 자리할 것이다. 4. 역설의 폐허에서 자란 존재의 아포리아 2000년대 이후 미정형 주체들의 등장은 기존의 논리로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서정시라는 장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독자적인 체계를 생성했다. 스스로 자기 존재의 기원이 되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는 난해함에 유폐된 것일지라도 기성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발명의 의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정치적 추문이라는 2010년대의 현실에 직면한 시는 윤리적 문제에 봉착한다. 해체환상유희적 계보에 틈입한 윤리의 맥락 속에서 이영광은 가장 클래식한 발성과 감성으로 노래할 때만이 구축될 수 있는 자기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담론보다 광활하고 가변적이며 모순적인 존재로서 ‘끝없는 사람’을 구현하는 시. 그가 세속성의 탐닉이나 언어의 실험에 동참하지 않고 자신의 좌표를 확보한 까닭은 사람이 가진 그 예외적 불가능성만이 시의 자기복제가 아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너무 나 같아서 나 같지 않”고, “너무 나 같지 않아서 나 같”(‘불을 끄려고 한다’)다고 하는 시적 주체의 음성은 소외와 환멸로 점철된 우리 시대의 메아리다.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세계의 트랙을 돌며 이영광은 미치고, 아프고, 병들어 있는 이상 징후들을 감지하고 그 상실의 집합들을 지속적으로 출몰시킨다. 병을 앓듯 자신을 오래도록 앓는 자만이 존재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의 중의성을 비롯한 역설적 언어의 고안은 시 안에 자신의 존재론을 도입하기 위한 장치이자 다의적 층위를 포섭하기 위한 그의 기획을 보여준다. 나무는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버리고 마침내 한 무더기의 푸른빛만이 단지 거기에 남아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영광의 숲은 마음껏 길을 잃도록 안내한다. 그는 병들어 있는 주체를 통해 그 존재 자체가 곧 황폐한 세계의 산물임을 증거하고, 현실 맥락 속에 은폐된 이력과 배후를 드러낸다. 그러나 병의 의미가 긍정과 부정의 이중적 층위로 활용되면서 더 깊이 병들어 죽어버리는 지경에 이를 때라야 그 죽음으로서 삶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소외되고 병든 주체의 착란과 광기는 가고 가고 또 감으로써만 이 견고한 세계를 꿰뚫고 장악하고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덩어리의 푸른 흔들림으로 산화한 나무의 기투는 결국 “나는 자꾸자꾸 미쳐서 반드시 삶이 되고 말 것”(‘오일장’)이라는 다짐 속에서 두터운 자기 그늘을 겹겹이 축적해간다. “산은 산이다. 산은 산이 아니다. 다시 산은 산이다.”라는 선문답이 있다. 이 변증법에 의하면 이영광의 시도 나였다가, 나가 아니었다가, 다시 나로 재편됨으로써 영원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산 채로 죽어보는 건 커다란 일”(‘동구릉’)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영광은 간다. 간다는 말에는 저 피안으로 향하기 위해 이곳의 정신을 놓아버렸다는 뜻도 숨어 있다. 이영광은 간다. 더 잘, 더 곱게 가기 위하여 그는 “나으려 하지 않는 병”을 쉽사리 떠나보내지 않는다. 언제까지고 “덜 살고 덜 살고 덜 살아서” “숱한 사랑의 말”(‘세한’)을 찾기 위함이다. 그것만이 시지프스가 되어 기꺼이 감당해내야 할 자신의 길이기 때문이다. 1) 알베르 카뮈, 오영민 옮김, 시시포스 신화, 연암서가, 2014, 201~208쪽. 2) 들뢰즈의 차이(difference)나 레비나스의 타자성(alterity)과 같은 숱한 담론에서 주체와 타자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한 것처럼 상호 존립 가능한 관계의 회복은 이영광 시에서 여전히 화두로 존재한다. 3) 최근 두 권의 시집 ‘나무는 간다’(창비, 2013)와 ‘끝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8)을 대상으로 하며 시를 인용할 때는 작품의 제목만 표기한다. 4) 에스더서 4장 16절.
  • 2019년 세계는 소행성과 충돌? 푸틴과 트럼프의 운명은?

    2019년 세계는 소행성과 충돌? 푸틴과 트럼프의 운명은?

    “2019년 새해에는 미국과 아시아에 대형 지진이 닥치고, 러시아는 소행성과 충돌할 것이다. 미국·러시아 지도자들의 신변은 위협받게 될 것이다.” 2018년 한 해가 권력을 가진 ‘스트롱맨’들의 철권 통치가 득세하고 포퓰리즘이 몰아친 시기였다면 2019년은 세계 인류가 각종 자연 재해와 전쟁 위협의 공포 속에 살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세계 유명 예언가들의 예언을 바탕으로 2019년 세계가 직면해야 할지 모르는 사건들에 대해 보도했다. 미국의 9·11 테러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정확하게 예측했던 시각장애인 할머니 반젤리야 판데마 디미트로바는 1996년 85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 5079년까지 인류가 겪게 될 일에 대해 세세히 예언했고 2019년은 인류에게 여러 재앙이 닥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1911년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뒤 영적인 힘을 얻게 되면서 유명세를 탄 뒤 ‘바바 할머니’라는 뜻의 ‘바바 반가’(Baba Vanga)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익스프레스는 여태까지 바바 반가의 예언 가운데 85%가 맞아떨어졌다고 전했다.러시아 소행성 충돌 및 푸틴 암살 시도, 트럼프 청력 손실 바바 반가는 2019년에는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대지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유럽에서는 경제 붕괴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또 러시아에는 커다란 운석(소행성)이 떨어질 것이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러시아는 1908년에도 중부 시베리아에 소행성이 충돌해 나무 8000만그루가 사라지고 순록 수백마리가 몰살하는 사건을 겪은 바 있다. 당시 충돌의 위력은 히로시마 투하 원자폭탄의 185배로, 인간 거주 지역에 떨어졌다가는 대형 참사가 발생할 뻔했다. 미국 대통령에 관한 예언도 눈길을 끈다. 바바 반가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도널드 트럼프)이 의문의 병으로 쓰러져 청력을 손실할 것이며, 그의 가족 중 한 명이 교통사고 등으로 크게 다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밖에 ‘불의 고리’로 알려진 미국 서부 지역에 강진과 쓰나미와 같은 대형 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바바 반가가 남긴 수많은 예언 가운데 “미국에 두 마리 강철 새의 공격이 찾아올 것”이라며 9.11 사태를 지칭한 예언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2010년부터 무슬림의 세력이 강해져 유럽을 장악할 것”이라며 이슬람 무장 단체의 테러를 예언하기도 했다. 이밖에 2043년에 무슬림이 전 유럽을 지배하게 되고 5079년에는 인류가 멸망한다는 예언을 남겼다.3차 대전 및 기후 변화 가능성도 16세기 프랑스 유명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년)가 2019년에 대해 예언한 글에도 유사한 점이 발견돼 주목된다. 익스프레스는 노스트라다무스가 3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소행성 충돌, 기후 변화를 예견했다고 전했다.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노스트라다무스는 “두번은 일어서고, 두번은 넘어질 것이다. 동양은 서양을 약화시킬 것이다. 몇 번의 전투 끝에 적수는 어려운 시기에 실패할 것이다”라는 글을 남겼는데, 노스트라다무스의 추종자들은 이 예언을 미국과 러시아간 전쟁 발발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3차 대전의 죽음과 공포가 지구를 파괴한 뒤 인류는 소행성의 충돌에 직면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이밖에 그는 “수면이 올라오고 육지는 가라앉게 될 것이다”고 말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표면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르트라다무스는 1666년의 런던 대화재,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의 등장, 20세기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집권 등을 예견해 유럽에서 예언가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미국 서부 지진 및 영국 ‘노딜 브렉시트’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예측해 유명해진 영국의 크레이그 해밀턴 파커(63)도 중동에서의 전쟁, 트럼프 대통령의 신변 위협, 자연 재해, 영국의 하드 브렉시트 등이 2019년에 발생할 일이라고 예언했다. 파커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시도를 겪어도 결국 탄핵 당하지는 않겠지만 2019년에 질병을 앓게 될 것”이라면서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도 고조되겠지만 실제 전쟁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땅에서 상당한 지층 운동이 벌어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해 지진이 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밖에 파커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의회를 설득해 브렉시트 합의문을 비준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결국 영국이 EU와 아무런 합의 없이 내년 3월 29일 EU를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커는 “결국 메이 총리는 내년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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