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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수계 2003년부터 용수달린다/우리나라­세계수자원현황·이용실태

    ◎한국 수자원 45% 유실… 실 사용량 23%뿐/지구촌 연 공급 9조t­수요 4조3천억t 「물,물,물…」.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전국이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먹을 물조차 모자랐다.사정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물」에게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물은 넘쳐도 문제고 모자라도 큰 일이다.그러나 사람은 물없이 살 수 없다.먹는 차원을 넘어 농공업 용수에다 에너지원으로도 쓰인다.수질 및 대기 오염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실로 인류의 생존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세계와 우리나라의 수자원 현황 및 이용 실태를 알아본다. 물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이다.부존량이 무려 13억8천만㎞³이다.연간 물 공급량은 9천㎞³(9조t),사람이 쓰는 수요량은 4천3백㎞³(4조3천억t)이다.수치상으로는 공급이 남아도는 셈이다.하지만 바닷물과 남·북극의 얼음을 빼면 실제 이용할 수 있는 물의 부존량은 40조t이다. 게다가 인구 증가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세계의 물 사용량은 지난 50년대보다 5배 이상 늘었다.앞으로도 짧은 기간에 더 많은 물을 쓸 것이다.아직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물 부족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음껏 물의 혜택을 누리는 나라는 기껏해야 미국과 서유럽 등 일부에 불과하다.중국은 50여개의 도시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등 중동 국가는 2000년에 물 공급량이 지금의 3분의 1로 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우리나라의 강수량은 연평균 1천2백74㎜이다.세계 평균 강수량 9백70㎜보다 높다.하지만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강수량은 3천㎜로 세계 평균 3만4천㎜의 11분의 1에 불과하다.더욱이 전체 강수량의 3분의 2가 우기인 6∼9월에 집중돼 있는데다 지역 및 연도 별로 강수량의 편차가 심해 물을 다스리기가 여간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수자원 총량은 연평균 1천2백67억t.이 중 45%인 5백70억t은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증발되고 나머지 55%인 6백97억t이 강으로 흐른다.그러나 이 것도 연중 똑같이 흐르지 않고 4백67억t은 장마철에 바다로 한꺼번에 흐른다. 따라서 실제 이용가능한 물의 양은 연간 2백30억t이다.평소 댐에 가둔 양을 더하면 지난 93년 말 현재 당장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물의 총 보유량은 3백10억t이다. 반면 우리가 1년에 쓰는 물은 93년 말 현재 2백90억t이다.우리나라 수자원 총량의 22.8%만 활용하는 셈이다.강물 1백64억t,댐과 저수지에 가둔 물 1백6억t,지하수를 20억t 쓴다. 지금은 쓰는 물보다 보유한 물이 약 20억t 정도 많다. 그러나 인구가 늘고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물의 사용량은 계속 늘 전망이다.건설교통부는 물의 수요량을 오는 2001년에는 3백30억t,2010년에는 3백70억t으로 추산했다. 반면 물의 확보량은 같은 기간 3백49억t,3백76억t에 그쳐 쓰고 남는 물의 비율인 예비율은 현재 7%에서 같은 기간 6%,2%로 떨어질 전망이다.수자원을 추가로 개발하지 않으면 물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는 얘기다.실제로 건교부는 전남 목포·강진·해남 지역의 수원인 탐진강 수계는 97년부터,여천·율촌에 물을 대는 섬진강 수계는 2000년부터,한강 수계는 2003년부터 용수가 부족할 것으로 우려한다.수자원의 이용률을 높이려면 그냥 바다로 흐르는 물을 보다 많이 가두는 노력이 필요하다.그러나 더 많은 댐을 지으려 해도 건설과 보상비가 갈수록 늘고 쌓을 곳도 적당치가 않다.건설 기간이 오래 걸려 빠르게 증가하는 물의 수요를 따라잡기 어렵다.그래도 물 부족 사태를 막으려면 저수시설을 늘리는 길이 최선책이다.물론 지하수 등 대체 수원의 개발도 뒤따라야 한다. 국민들이 물 한방울을 아껴쓰는 자세를 생활화하는 것도 절대 필요하다. ◎유엔물보호행동강령 ⓛ수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물의 중요성을 어린이들에게 교육시켜라. ②목욕보다는 샤워를 하고 수자원을 오염시키는 화학물질의 과도한 사용을 억제함과 동시에 재생된 물을 정원수로 써라.(이상 개인) ③캠페인과 교육,세금을 통한 합리적인 물사용 계획을 촉진시켜라. ④수자원 보호를 위해 대중을 정책결정에 포함시키고 여성의 역할을 향상시켜라. ⑤국가적인 계획수립 과정에서 통합된 수자원 계획 및 운영,그리고 깨끗한 물을 규제하고 감시하는 제도를 도입하라. ⑥효율적인 물사용을 통해 물의 보존량을 늘리고 사용자들로 하여금 물의 사용을 최대한 줄이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 ⑦농업용수의 합리적인 사용을 위해 농민들을 훈련시키고 교육하라.(이상 정부및 지역사회) ◎우리나라의 물값과 사용량/서울 수돗물값 1t당 2백원/미국의 9%­일 도쿄의 38% 불과/1인 하루 206ℓ 소비… 독 보다 60ℓ 많아/전국서 10% 절약땐 부산 물 90% 공급 우리나라의 수돗물은 세계에서 값싸기로 유명하다.비교적 물이 많았던 탓이기도 하지만 물에 대한 관심이나 투자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적었던 것도 이유이다.바꿔 말하면 대충 만든 「싸구려」 상품이라는 얘기다. 서울의 수돗물 값은 1t에 2백원이다.5백㎖ 콜라병에 담으면 1원을 주고 10개를 살 수 있다.거의 공짜인 셈이다.미국의 물값 2천3백10원의 11분의 1 수준이며 호주 시드니의 9백24원,독일 본의 7백24원보다는 3·4분의 1정도이다.프랑스 파리 5백74원이나 일본 도쿄의 5백29원에는 절반도 안될 만큼 싸다. 값이 싸서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은 다른 나라에 비해 수돗물을 지나치게 많이쓴다.가정에서 한 사람이 하루에 사용하는 물은 우리가 2백6ℓ로 영국 1백32ℓ,독일 1백46ℓ,프랑스 1백47ℓ,덴마크 1백94ℓ 등 선진국보다 훨씬 많다. 미국은 하루에 3백ℓ 이상 쓰지만 세차와 잔디에 뿌리는 물이 포함돼 절대적으로 비교하기 어렵다.일본도 2백36ℓ로 우리보다 많지만 목욕 문화가 발달된 데다 세탁기 보급 등 생활수준이 높아 우리가 물을 더 많이 쓴다고 할 수 있다. 양치질할 때 물을 틀지 않고 컵에 받아 쓰면 종전에 10외로 충분하던 물이 1ℓ로 가능,9회를 절약할 수 있다.설거지할 때 물을 받아 쓰면 1백20외를,수세식 변기에 벽돌 한장을 넣으면 하루에 1백15ℓ를,목욕할 때 샤워기 대신 욕조를 이용하면 3백ℓ의 물을 아낄 수 있다. 만약 이에 따라 전국에서 하루에 10%의 물을 절약한다면 부산에서 하루에 쓰는 물 1백62만ⓣ의 90%를 공급할 수 있고 영남 지방의 주민들이 전부 쓰고도 남을 물을 추가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은 더이상 무한재가 아니다.물의 가치도 없는 게 아니다.더욱 물의 귀중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지금은 「물을 돈쓰듯」해야 할 때다. ◎「마지막 천연수자원」관리 어떻게/지하수 매장량 연강수량의 12배/무분별한 개발땐 수질오염·지반침하 우려/철저한 지질조사 거쳐 부작용 최대한 줄여야 물이 부족할 때마다 대체 수자원으로 지하수를 얘기한다.바닷물의 담수화나 중수의 이용기술,인공 강우 등도 거론되지만 경제성이나 기술문제로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하수는 매장량이 엄청나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웬만한 가뭄도 거뜬히 견뎌 낼 수 있다.우리나라의 지하수 부존량은 1조5천4백억t로 연평균 수자원 총량 1천2백67억t의 12배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매년 지하에 스며드는 물은 2백28억t이며 지하 침반 등 부작용 없이 실제 뽑아 쓸 수 있는 물은 1백30억∼1백40억t 정도로 추산된다.특히 우리나라는 강수량이 풍부하고 지질학적 특성도 지하수를 개발하기에 다른 나라보다도 훨씬 유리하다. 그러나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등 부작용도 엄청나다.일본은 지난 57년부터 10년간 도쿄에서 하루에 80만t씩의 지하수를 뽑았었다.그러나 사전에 지질 조사를 면밀히 하지 못해 1백60㎦에 걸쳐 지반이 4.58m까지 가라앉았다.일본 열도 36군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다케미나미 지역에서는 과잉 채수로 지하에 바닷물이 침입,염소량이 증가했고 지난 82년 일본 15개 도시의 상수도용 지하수는 오염된 것으로 판정났다.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70년대 말부터 지하수 채수량을 하루 20만t으로 제한했다. 미국에서 지하수 사용률이 가장 높은 캘리포니아 산조아퀸 지역에서는 지하수위가 90m 이상 낮아져 1만3천㎦의 지반이 최고 8.8m나 내려앉았다.하와이나 중국,멕시코,태국 등에서도 지하수위의 저하로 지반 침하가 잇따랐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황산염에 오염,생태계를 파괴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부곡에서도 지하수를 유입량보다 4만t이 많은 연간 1백34만t을 뽑아 지하수위가 1백45m나 내려갔다.유리 섬유업체가 많은 인천 고잔동 지역에서는 폐기물에서 나온 오수의 침입으로 지하수가 오염됐으며 초정약수가 있는 충북 청원군초정리에는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로 우물이 마르는 등 피해가 심각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해 8월 지하수법을 제정,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지하수 개발을 추진 중이나 다소 늦은 감이 있다.지하수는 다음 세대에 물려 줄 마지막 천연 수자원이다.마땅히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하고 개발해야 할 것이다.
  • 북­이라크 「핵」/조사활동 착수/호 핵과학기술협

    【시드니 UPI 연합】 호주 과학자들은 핵무기 제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북한과 이라크의 비밀 핵활동을 밝히기 위한 조사에 세계최초로 착수했다고 18일 발표했다. 호주 핵과학기술협회(ANSTO)의 대변인은 이날 『이번 계획은 국제에너지기구(IAEA)의 감시활동의 일환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한 국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핵무기 제조능력 보유여부를 밝히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번 계획은 북한과 이라크의 핵활동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 「뇌사 법적인정」더 늦출수 없다/김병길 연대의대교수(논단)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94년도 한국의 사회지표는 26.1세였던 한국인의 평균 연령이 14년 사이에 5세 가량 증가해 30.9세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평균 연령의 증가에는 경제성장과 함께 한국의학의 발전이 가장 핵심적인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는 한국의학이 부분적으로 세계 최첨단이거나 선진국의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뇌사의 법적인 인정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된다.21세기 의학은 암 정복과 함께 장기 이식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68년 열린 세계의학총회는 「시드니 선언」을 통해 심폐 정지 이외에 비가역성 뇌사도 죽음임을 발표했다.이런 선언이 있고 27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93년 기준으로 뇌사를 인정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의 50개 전 주와 선진 40여개국,아시아의 대만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등이다. 대한의학협회도 83년에 이미 뇌사문제를 다루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문 분야별로학자들이 각종 세미나와 공청회를 가진 끝에 93년 「뇌사에 관한 선언」을 내놓았다.이 선언이 담고 있는 뇌사 판정의 기준은 어느나라보다도 엄격하다.만에 하나 의학적으로 허점이 개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뇌사를 판정하는 의료기관과 뇌사자의 장기를 이식하는 기관은 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했다.미리 의학협회에 신청해 시설 장비 인력 등을 심의받는 것은 물론 사후 보고도 필수적으로 하도록 했다. 94년 말 기준으로 이같은 자격을 갖춰 뇌사판정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전국 46개 병원이다.그리고 이 가운데 장기이식을 할 수 있는 기관은 33곳이다.장기 이식이라 함은 신장 간장 심장 각막 등 14개의 장기 및 조직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한의학협회의 활동은 엄격히 보면 법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우리나라에서 뇌사자의 장기이식은 88년에 처음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이미 70년도 말에 사형집행인의 유언에 따라 몇차례 이루어진 적이 있다.현행 법규로 보면 이 모두가 불법적인 의술행위이다. 그나마우리나라는 70% 이상이 가족 또는 친인척으로부터 신장을 공여받고 있는 실정이다.90% 이상이 뇌사자로부터 제공받는 선진국과는 대조적이다. 이제 우리도 뇌사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뇌사가 죽음임을 인정한다 해도 그 숫자는 전체 사망자의 1% 정도에 그친다.그러나 이 숫자는 기계에 생명을 의존하고 있는 우리들의 부모 형제 자매 동료 대부분을 구할 수 있다.그들을 생각한다면 더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 세계화 실천과 진두지휘/김영삼 대통령 유럽순방 등정(사설)

    김영삼 대통령은 2일 「역사적」인 유럽 5개국 순방길에 오른다.대통령의 정상외교가 처음도 아니고 대통령의 해외나들이가 처음인 것도 아니지만 이번 김대통령의 순방외교에 「역사적」이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우선 이번 순방외교는 김대통령이 작년 11월 시드니에서 「세계화」를 선언한 이후 대통령 자신이 직접 펼치는 첫「세계화 외교」다. ○뜻깊은 유엔정상회의 참석 다음으로는 이번 나들이의 주 목적인 유엔사회개발 정상회의 참가의 의미다.오는 11일부터 이틀동안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사회개발 정상회의에는 중국의 이붕 총리,일본의 무라야마(촌산)총리,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독일의 콜 총리,러시아의 옐친 대통령,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 등 무려 1백29개국 세계정상들이 함께 참가하는 그야말로 세계화된 매머드 정상회의다.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런 유의 대형 정상회의에 참가해본 경험이 일찍이 없기도 하지만 이런 회의는 국제적으로도 최근에야 시작된 새로운 성격의 국제회의라는 점에 우리는 유의한다. 이러한 초대형 정상회의는 92년에 열렸던 리우환경회의,93년의 세계인권회의, 94년의 인구와 개발회의 등이 거의 전부로 최근에야 시작된 새로운 형태다.앞서 열거한 회의들이 특정주제를 다룬 회의인데 비해 이번 사회개발 정상회의는 유엔창설 50주년에 맞춰 「새로운 유엔의 탄생」이라는 목표를 지향하는 점에서 포괄적이고 통합적이다. ○세계위한 우리역할 다짐 이번 회의는 또 빈곤 실업 범죄등 범세계적인 문제를 세계의 정상들이 함께 협의한다는 의미가 있다.이제 온 세계는 한 울타리속에 살게된 것이다.중국의 공해가 바로 우리의 하늘을 뒤덮고 미국의 범죄가 남의 일이 아니며 아프리카의 빈곤이 바로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냉전종식이후 모색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 맞는 발전전략을 찾는 새로운 외교형태라 할 수 있다.모든 이슈가 세계화함에 따라 회의의 규모도,성격도 세계화 하고 있다.세계화가 왜 필요하고 왜 세계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을 새삼 일깨워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정상회의인 것이다. 김대통령은 지금 바로 세계화시대의 세계화 외교무대에 나서고 있다.이번 정상회의에서 우리의 발전경험을 세계에 소개하고 우리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을 위해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대통령은 연초 「세계화외교」를 제시하면서 우리의 국력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한바 있다.그렇게 하는 것만이 우리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고 새롭게 형성되는 세계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길임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세일즈 외교도 적극 전개 냉전종식 이후 세계외교의 뚜렷한 추세는 유엔을 중심한 다자외교다.이슈가 국제화하면서 이세상에는 한두나라가 만나서 해결할 문제가 없어져 가고 있다.이런 세계의 흐름을 바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때만이 우리의 권익을 지켜나갈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김 대통령의 이번 정상외교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뜻깊고 실질적이라 할 수 있다.한국은 이제 후진국도 아니며 더이상 개발도상국도 아니다.15개 세계중심국가의 일원으로서 우리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국제사회의 발전과 안정을 위해서도 기여하고 적절한 책임을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대통령은 바로 이점을 정상회의에서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시의에 맞는 대응이라 생각한다. 김 대통령은 정상회의를 전후해서 프랑스 체코 독일 영국 벨기에도 방문한다.이들 나라는 세계 최대의 지역통합경제권으로 부상하고 있는 유럽연합의 핵심국가들이다.유럽연합은 또한 냉전후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속에서 하나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연합체제다.유럽연합의 의미와 역할에 주목할 때인 것이다. ○독일방문 통일의지 과시 이러한 주요 지역에 대통령이 뛰어들어 정상들과 국제문제를 논의하고 세일즈외교를 펼치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60여 경제인들이 대통령의 유럽순방길에 함께 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세일즈외교의 효과를 극대화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김 대통령의 이번 순방국중에 독일이 들어있는 것은 또다른 의미가 있다.분단국가의 대통령으로서 독일통일의 현장을 직접 돌아보는 것은 그 상징성외에도 통일의지를 다지고 통일경험을 축적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김영삼대 통령의 이번 순방외교가 소기의 목적을 거두는 성공적인 것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아울러 대통령의 정상외교에 국민들의 성원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또 이번 기회가 우리국민 모두의 세계화에 대한 국민의식수준의 향상에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세계화」 주창(민주화에서 세계화로:4)

    ◎“지구촌 중심국가로” 한민족비전 제시/21세기초 통일·G7수준의 국부 목표/개혁성과 바탕,국가경쟁력 강화 박차/“「개화 실패」 반복 않는다” 의지… 국민 실천력 뒷받침돼야 김영삼 대통령은 지난해 11월17일 호주의 시드니에서 「세계화 구상」을 밝혔다.이때까지만 해도 국민들은 물론 공직자나 정치지도자들까지 「세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그러나 김 대통령이 귀국한 뒤 「세계화」는 곧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김 대통령은 「세계화」를 『세계의 변화에 적응하고 나아가 세계를 경영해 나가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김대통령의 「세계화 구상」은 하루 아침에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지난날에 대한 예리한 통찰에서 나온 사려 깊은 결론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김대통령은 11월22일 확대국무회의에서 국정지표로 「세계화」를 제시하면서 뼈아픈 우리의 역사를 되새겼다.『지난 19세기말 우리민족은 그때 가장 큰 시대적 과제이자 도전이었던 개화에 실패하여 그뒤 수십년을 가난하고 낙후된 약소국의 고통 속에서 보낸 역사적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운다.잘못은 두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지금 우리가 바로 그 한세기 전과 마찬가지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김대통령의 판단으로 여겨진다.세계화를 천명하면서 굳이 아팠던 역사를 되새긴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는 경제대국의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는 일본에도 뼈아픈 역사는 있다.1853년 개방을 거부하던 일본을 미국의 페리제독이 군함을 이끌고 포격했다.일본의 사무라이들은 혼비백산했다.그러나 이들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고 곧 이어 1868년 메이지(명치)유신을 단행했다.서구처럼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국가의 모든 체제와 국민의식을 개혁한 것이다.심지어는 서양인과 같은 체격을 갖추기 위해 국민들의 식생활까지 개조하는 노력을 기울였다.「천황폐하 우유를 드시다」라는 신문의 머리기사도 이러한 분위기를 잘 나타낸 것이었다. 일본은 17세기에도 그때 세계를 주름잡던 네덜란드의 해군력과 진취적인 경제활동을 배우자는 「난학」(네덜란드를 배우자)이란 움직임이 있었다.그때만 해도 파격적인 서양인과의 결혼을 장려하자는 주장도 나올 정도였다. 일본은 1945년 전쟁으로 패망한 뒤 또 한번 난관을 극복했다.한국의 6·25사변을 틈타 경제를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64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일본경제는 세계수준으로 떠오른다.엑스포를 비롯해 각종 세계대회를 유치해 국민의식도 세계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영국도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의 경제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때가 있다.19세기의 독일은 영국의 경제적 성공을 모방하는데 바빴다.그러나 역사는 반전했고 그 주역은 노력하는 자의 몫이 됐다. 「세계화」를 향한 우리의 여건은 성숙해 가고 있다.박정희정권이 심혈을 기울인 고도의 경제성장과 서울올림픽으로 드높아진 우리국민들의 자신감은 이땅에 민주주의의 터전을 다진 문민정부 2년동안의 개혁작업으로 가속도를 더하고 있다.대통령도 직접 대규모의 경제인들을 이끌고 동남아로,유럽으로 국가 차원의 세일즈에 나선다.김대통령의 3월초 유럽순방에는 경제인이 60여명이나 수행한다.경제인 가운데는 대기업의 총수를 비롯,금융계 중소기업 패션계 인사까지 망라돼 있다.의류업체 대표인 프랑수아즈의 진태옥사장과 사라의 안희정 사장이 수행하는 것은 파리의 패션업계를 겨냥한 것이다.대통령을 수행하는 경제인은 청와대에서 선정한 것이 아니라 통상산업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희망기업을 신청받아 선정했다는 점도 지난날과는 다른 변화다. 유엔 안보리의 이사국 진출노력,월드컵축구대회의 서울 유치운동,김철수대사의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출마등 세계의 중심에 한발 더 다가서려는 밖으로 향한 노력도 숨가쁘다.정부가 마련한 「세계화 지표」에 따르면 우리는 오는 2000년까지 동북아의 중심국가가 된다.2010년이면 환태평양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2020년이 되면 통일공화국으로 선진 7개국 수준에 진입한다.참으로 가슴 뿌듯한 세계화의 설계도가 아닐 수 없다. 바깥에서도 한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세계적으로 정평있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최근 펴낸 「21세기 미래예측」이라는 책에는 싱가포르의 이광요전총리,홍콩의 크리스토프 패튼총독,하버드대학의 헨리 루이스 게이츠교수등이 미래전망을 제시하고 있다.이들은 대부분 한국을 언급했고 한국의 미래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워싱턴DC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인 프레드 벅스틴은 22세기의 승자들이 될 가능성이 큰 여덟개 지역들 가운데 하나로 「독일의 선례를 통해 단숨이 아닌,20년이상 비용을 절약하는 방식으로 통일을 이룬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를 꼽았다.이광요전총리도 한반도에 대해 『김정일정권은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붕괴되고 남한이 북한을 관리하게 된다.통일된 한국은 2025년 중간규모의 강대국이 된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인 전망도 국민들의 의식개혁과 실천이 없이는 장미빛 청사진에 불과하다.정부나 기업이 혼자서만 세계화를 이끌수는 없다.대통령 정부 기업인 국민 모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 프랑스회사의 한국지점에 근무하는 프레데릭 메이어씨(30)는 지난해 한국여인과 결혼했다.이들 부부는 『파리에서는 모두 자유로움을 느꼈으나 서울에서는 이방인을 대하는심상치 않은 눈길이 섭섭하다』고 말한다.전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들이 제일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곳도 우리나라라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해외에 나가기만 하면 현지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한국은 4천년이 넘는 역사의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배타성이 강하고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한 외국특파원의 지적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이제 「세계화」의 과제는 작은 일부터라도 세계일류가 되겠다는 온 국민의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 태권도(한국문화 세계화의 길:5)

    ◎“재미있게” 규칙 개정·장비 개선 필요/동호인 세계 145개국 4천만명… 해마다 늘어/체계적 무도철학 정립,인성교육 도움돼야 무도철학의 신체적 발현인 태권도는 아름다움을 신체적 동작으로 추구하는 사물놀이,탈춤등 처럼 우리의 민족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한국인이 낳은 문화 가운데 태권도처럼 세계적으로 보급된 문화는 없을 것이다.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이조의 도자기나 현대의 자동차보다도,어쩌면 김치나 갈비보다도 온세계에 널리 퍼져 침투한 것이 태권도다.예컨대 격투기 인구가 많은 미국에서도 무도체육관의 70%는 태권도가 차지하고 있고 그 비율은 지금도 상승하고 있단다』(일본의 스포츠전문잡지인 「스포츠 그래픽 넘버」의 88서울올림픽특집호). 『현재 세계태권도연맹(WTF)에 가입한 회원국은 145개국이며 수련생은 약4천만명에 이르고 있다.앞으로도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이 경제성장에 발맞추어 가입할 것으로 전망되며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 수련생의 증가도 예상된다』(WTF이경명사무차장). 태권도가 동양의 다른 타격기(정격기)무도를 제치면서 세계화의 선두를 달리고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었던 까닭은 한마디로 무도의 합리적인 스포츠화에 가장 먼저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 치러지고있는 태권도는 한국전통무예인 태권도가 아니라 경기스포츠로서의 태권도다.안전성에 대한 배려,알기쉬운 승패,기타 경기를 성립시키는 갖가지 요소를 지금의 태권도는 모두 갖추고 있다』(일본의 격투기전문잡지 「격투기통신」88년12월호). 태권도의 뿌리는 태껸이다.그러나 현재의 태권도는 태껸과 크게 다르다. 『태껸이란 한마디로 한국무도의 근원이다.태권도도 태껸으로부터 태어났다.태껸을 현대적인 스포츠로 만든 것이 태권도다.태껸과 태권도의 차이는 태권도가 직선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는데 견주어 태껸의 움직임은 곡선적인 것과 종합무도이기 때문에 태껸에는 기술에 제한이 없어 손에 의한 안면공격과 메치기기술도 있다는 점등이다』(정경화태껸지도자). 태권도는 73년5월에 WTF를 창설하고 눈부신 세계화를 이룬끝에 94년9월 파리에서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20 02년 시드니올림픽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지구가족으로부터 가장 합리적인 동양의 타격기로 받아들여지도록 태권도를 스포츠화한 것이 세계화 달성의 길을 열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단 20년 남짓 사이에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다음 두가지가 크게 작용했다. 하나는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과 함께 전쟁터로 건너간 태권도가 다른 나라군대에게 실전무도로 소개되어 큰 관심을 모으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월남전이후 많은 태권도지도자들이 온세계로 퍼져나갔다. 또 구 서독에 광부로 건너간 사람들 가운데에도 태권도지도자들이 적지않게 끼어있어 광부로서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귀국하지 않고 세계각국에 태권도체육관을 연 사람들이 많았다. 뿐만아니라 미국과 중남미를 향한 이민붐을 타고 많은 태권도지도자들이 남북미대륙으로 건너가 태권도보급에 힘썼다. 또하나는 외국어구사능력과 외교적 수완이 뛰어나 비올림픽경기종목인 태권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IOC부위원장의 자리에 올라간 김운용WTF총재가 각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각 대륙의 스포츠통활체등을 설득해서 선수권대회 창설과 대륙단위종합체전의 정식종목으로 태권도를 채택하도록 만든 것도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까지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할 것이다. 태권도가 세계속에 보다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태권도를 보다 재미있는 경기로 만들기 위한 경기규칙개정과 장비의 개선등이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태권도철학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이를 세계화 시키는 것이 앞으로 치러야할 제2단계 작업이라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될 것같다. 『유도의 세계화가 이루어지자 88서울올림픽에서 유도의 종주국인 일본은 금메달을 한개밖에 따지 못했다.어쩌면 이 결과야 말로 유도의 참된 세계화일는지도 모른다.태권도의 세계화도 언젠가는 유도와 비슷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한국이 태권도의 종주국으로서의 위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경기기술의 부단한 개발과 아울러 태권도철학의 이론적 체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태권도 철학이야말로 태권도를 세계속에 보다깊이 뿌리내리도록 만들어 줄 것으로 생각한다』(민경호·UC버클리교수·초대 미국태권도협회회장). 『미국에서는 이제 학교선생님의 말씀도 잘 안듣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아직도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칠수 있는 사람은 신부나 목사등의 성직자와 무도사범뿐이다.태권도지도자들에게도 경기기술뿐만아니라 수련생의 인간교육을 기대하는 부모들이 많다』(메어리 추·재미 여성태권도지도자). 온세계의 많은 청소년들에게 태권도수련을 통해 전인교육이 베풀어질때 태권도의 세계화는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태권도의 역사/태껸이 뿌리… 소림사권법보다 3백년 앞서 태권도의 기원은 삼국시대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역사적인 자료가 남아있는 것은 삼국시대부터다. 고구려 제10대 산상왕13년(209년)부터 수도였던 환도산성에 있는 무용총벽화에는 오늘날의 태권도와 같은 자유대련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이 벽화는 우리 태권도의 역사가 중국의 소림사권법 보다도100년에서 300년이상 앞선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놀라운 역사적 자료다』(김광성,김경지 교수가 함께 지은 「한국태권도사」). 태권도의 원형은 태껸,수박,권법,수박희,수벽타,각저,날파람등 여러가지로 불렸으며 고구려의 청년무사집단인 선배,신라의 화랑등이 이 격투기를 익혔다.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군사를 뽑는 시험과목의 하나로 태권도겨루기가 실시됐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또 옛기록에 보면 몸을 날려 상대방의 상투를 발로 스치는 비각술이라는 것도 있었다. 오늘날의 태권도가 가라데나 쿵후보다도 다채로운 발기술을 많이 쓰고 있는 것도 역시 옛날부터의 전통이 살아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제때 탄압을 받았던 태껸,혹은 수박은 광복후 여러유파의 도장이 난립했으나 61년에 통합을 이루어 대한태수도협회를 탄생시켰고 65년에 명칭을 대한태권도협회로 고쳤다. 태권도의 어원을 살펴보면 태는 발로 뛰고 차고 내려친다는 뜻을,권은 손 또는 주먹으로 친다는 뜻을,도는 철학적 태도 또는 생활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전문인이 말하는 태권도의 길◁ ◎새로운 경기기술 개발 노력을/김운용씨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으로 태권도의 세계화는 일단 달성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듯 싶다. 그러나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앞으로 열리는 올림픽의 조직위원회들이 그때마다 태권도를 선택해 주어야만 한다. 육상이나 수영등의 기본종목은 조직위원회가 빼버릴수 없지만 유도,복싱,태권도등은 조직위원회만 외면하면 그 올림픽에서는 빠지게 된다. 조직위원회가 종목을 선정할때 그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세력이 있다. 막대한 방영권료를 지불해서 올림픽을 재정적으로 크게 지원해주고 있는 TV방송국이 바로 그것이다. 선수의 뇌에 손상을 준다는 우려와 판정을 둘러싼 말썽 때문에 늘 IOC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복싱이 그래도 올림픽에 머물 수 있는 것은 복싱을 선호하는 미국TV방송국이 바람막이 노릇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는 호구의 착용으로 안전성이 확보되어 있고 전자심판기의 등장으로 판정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또한컬러도복착용여부를 놓고 의견이 갈라져 있는 유도와는 달리 일찍부터 호구의 컬러화로 TV쪽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다만 팬들과 TV의 관심을 보다 끌기위해 경기규칙과 장비의 개선,그리고 새로운 기술개발에 대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스포츠와 무도 융화시켜야/박동근씨 미태권도협 기술분과위원장 『태권도는 스포츠에 앞서 하나의 정신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운동경기의 측면만을 강조해서는 안되고 무도,즉 정신적 측면을 적절하게 융화시켜야 합니다』 25년동안 미국에서 태권도보급을 위해 애써온 미국태권도협회(USTU) 기술분과위원장 박동근(55·뉴욕대·태권도9단)교수는 태권도 세계화의 요체를 정신력강조라면서 『가라데·쿵후 등 미국에 소개된 동양경기중 태권도만 그 주도권을 미국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고 여전히 한국사람이 장악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정신력에서 앞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내의 태권도가 지나치게 기술위주의 경기력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한 박교수는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서는단순한 스포츠만이 아닌 무도로서의 체계화와 세계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룰과 폼의 정립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대사8명 인사

    □오스트리아 이승곤 이탈리아 신두병 그리스 송학원 튀니지 이두복 세네갈 김일건 사우디 신효현 루미니아 백낙환 터키 유병우 정부는 10일 주오스트리아대사에 이승곤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을,주이탈리아대사에 신두병 전의전장을 임명하는등 공관장 8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이날 임명된 대사는 ▲주그리스 송학원 경기도 국제관계자문대사 ▲주튀니지 이두복 전대전시 국제관계자문대사 ▲주세네갈 김일건 외교안보연구원 아·태연구관 ▲주사우디아라비아 신효헌 전조약국장 ▲주루마니아 백낙환 구주국장 ▲주터키 유병우 아주국장 등이다. ◇이 주오스트리아 대사=▲경북 청도(58세) ▲서울대 정치학과 ▲북미1과장 ▲주시카고총영사 ▲주미공사 ▲기획관리실장 ▲외교정책실장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신 주이탈리아대사=▲강원 명주(59세)▲연세대 정외과▲주시드니영사▲총무과장 ▲미주국장 ▲주유고대사 ▲의전장 ◇송 주그리스대사= ▲강원 춘성(61세) ▲연세대 정외과 ▲공보문화과장 ▲영사교민국장 ▲주애틀란타총영사 ▲주라이베리아대사 ▲경기도 국제관계자문대사 ◇이 주튀니지대사=▲충남 홍성(61세) ▲연세대 정외과 ▲공보문화과장 ▲주프랑스공사 ▲중동아프리카국장 ▲주벤쿠버총영사 ▲대전시 국제관계자문대사 ◇김 주세네갈대사=▲경남 김해(38세) ▲서울대 정치학과 ▲주휴스턴영사 ▲주나이지리아공사 ▲주니제르대사 ▲주네팔대사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 ◇신 주사우디아라비아대사=▲서울(55세) ▲서울대 행정학과 ▲국제기구1과장 ▲주인도네시아공사 ▲주가나대사 ▲조약국장 ◇백 주루마니아대사= ▲서울(50세) ▲외국어대 외교학과 ▲서구1과장 ▲주말레이시아공사 ▲구주국장 ◇유 주터키대사=▲경기 이천(51세) ▲서울대 정치학과 ▲주일1등서기관 ▲동북아1과장 ▲주일참사관 ▲아·태국장
  • 김치(한국문화 세계화의 길:4)

    ◎외국인 입맛 맞게 다양한 종류 개발을/80국에 수출… “독특한 맛·건강식품” 찬사/양도유지·용기 등 과학적 연구 서둘때 세계 각국의 영양학자들이 자국의 자랑거리 음식을 전시하는 코너.한국은 잘익은 보쌈김치등 다양한 김치와 불고기를 차려내었다.…빨갛고 화려한 빛깔에 새콤하고 감칠맛나는 김치. 한쪽씩 먹어보고 이내 확 입맛이 당긴 세계의 학자들은 야채요리의 정수 『김치를 공동 연구하자』고 달려들었다.­93년7월 호주 시드니 세계영양학회에서의 일이다. 『김치의 우수성을 떠들 필요는 없다.한번 맛본 사람들은 반해버린다.채소를 식초에 절여먹는 사우어크라우트 등을 즐기는 독일인이나 역사가 깊고 문화적 전통이 있는 나라 사람들 일수록 쉽게 매혹된다』­영양학자들은 이렇게 김치의 세계화·상품화에 자신을 갖고 입을 모은다. 우리 스스로 한때 「초라한 반찬」이라고 여겼던 김치가 최근 건강을 지키는 중요음식으로 세계인들의 식탁속에 새롭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수출 6년새 3배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김치수출액은 약4천만달러.이는 사실상 김치의 세계화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88년의 1천3백23만달러와 비교,3배이상 증가한 규모.업계는 올해도 30%이상 수출이 늘 것으로 본다. 수출물량의 증가와 동시에 수출대상국의 다변화 또한 특기할만하다. 주요수출 국가는 일본중심에서 미국과 EU 스페인 인도 싱가포르 아일랜드등 30여개국.1천달러이하까지 치면 세계 80여개국에 달한다. 수출된 김치는 교포가 아닌 대부분 현지 외국인들이 구매한다는 사실도 괄목할만한 사항이다. 남편을 따라와 서울에서 살고 있는 하이디 피터즈씨(37)는 『미국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LA지역에서 살아 김치를 먹어볼 기회가 많았다』며 『한국에서 살 동안 백김치·물김치 담그는 법등을 배워갈 생각』이라고 말한다. 김치의 신비를 알고 싶은 세계인들은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내 김치박물관에서 김치의 역사와 영양을 공부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김치박물관 김경미 실장은 『외국인들은 김치를 건강식품으로 믿으며 특히 식욕을 촉진시키는 애피타이저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한다.숙대 전희정 교수(식품영양학과)는 『고추 마늘 젓갈등에 대한 신비도 외국인들이 김치를 선호하는 중요 원인』이라고 꼽는다. ○노화·암발생 억제 고추를 흔히 위궤양의 원인으로만 생각한다.그러나 고추의 캅사이신 성분은 노화를 억제하는 물질.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덜 늙는 요소다.또 마늘의 독특한 냄새를 나게하는 아닐린이라는 성분은 항암작용을 하는 것이다.그러나 국내에는 이런 연구를 체계적으로 하는 연구기관이 한곳도 없다. 국내의 김치 제조업체는 대·소 규모 합해서 1백여곳이 넘는다. 김치수출 경력이 30년에 이르는 영성상사 천동혁 부회장은 김치의 세계화·상품화의 과제로 『정부가 김치의 과학화를 위한 연구로 제조업체들을 뒷받침해줘야 하며 유통단계에서의 선도유지와 용기의 고급화및 국내 배추가격의 안정등에도 힘 써 줄 것』을 바란다. 김치는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섭씨14도에서 담가 보관할때 가장 맛있고 각종 비타민이 풍부해진다.포도주는 유통과정에서 질소가스로 진공패킹해 맛의 변질을 막는다.김치는 가격등의 문제로 아직 병 진공포장을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주대 생물공학과 박연희교수는 『그동안 각종 첨단산업에 밀려 김치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수출의 뒷받침이 너무 소홀했다』면서 독립된 김치연구소를 설립,종합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연구로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품화의 또다른 걸림돌은 「냄새」.외국여행을 자주해본 전문가들은 『치즈냄새는 얼마나 역한가.이것을 따져보면 우리의 열등의식이 지나치게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육류내의 나이트로스아민이라는 물질은 어떤 효소와 만나면 위에서 발암물질을 생성시킬수 있다.그러나 김치를 먹으면 위를 비타민C로 코팅시켜 보호해준다. 김치연구회 조재선 회장(경희대 교수)은 『김치의 수출은 외화획득이라는 경제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식문화를 세계화 한다는데 더욱 의의가 크다』고 강조한다. 즉 김치의 매운 맛을 대상국에 맞게 조정하고 각 나라별로 생산되는 채소류에 우리 김치의 침엽법을 접목시켜,이를테면 우리가 중국에는 없는 메뉴인 자장면을 먹듯그들 입맛에 맞는 새로운 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백제시대 「저」라는 음식을 배워간 일본은 우리네 「고대김치」에 해당하는 「나나쓰케」를 먹어왔다.그러다 최근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운 일본인들은 약삭빠르게 「기무치」라는 이름으로 세계시장에 김치를 팔고 있다. ○일 기무치와 경쟁 일본 도야마켄의 한 고교에서는 5년전부터 조리과 학생들을 한국에 보내 김치담기 실습을 하게 하는가하면 여행사들은 「한국김치 투어」를 개발,짭짤한 재미를 누린다.NHK는 지난해 대대적인 김치 특집프로그램을 제작·방영,일본내에서 김치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바 있다.일본은 이밖에도 지난해 5월 북경에서 열린 아시아지역 국제식품규격(CODEX)위원회에서 한국을 앞질러 김치의 국제식품 규격등록을 거론,우리를 긴장 시켰다.지금 일본과 우리나라의 김치수출액을 비교해보면 일본은 단무지절임·소위 「기무치」등을 포함해 연 9백만달러어치를 수출한다.우리의 4천만달러와는 큰 차이가 있지만 언제 우리를 추월할지 결코 안심 할 수 없는 상황이다.서울대 식품영양학과 이혜수 명예교수는 『한국이 세계의 김치시장을 석권하고 종주국의 체면을 지키려면 다국적 수출용 김치의 연구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안한다. 요리연구가 한정혜씨도 『2년전 일본 규슈지방의 아주 외딴지역에서 「김치 우동」이라는 음식점이 보여 들른적이 있었다』며 다양한 김치메뉴 개발을 주장한다.또한 지난해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김치축제」와 같은 행사를 지속해 독일 뮌헨의 맥주 페스티벌이나 프랑스의 포도주 축제인 보졸레 누보처럼 관광으로 연결시키고 더나아가 각도마다의 특색있는 김치축제를 가져볼만하다고 말한다. 70년대 일본은 「소니에서 스시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세계에 그들의 식문화를 과시했다.우리도 높아진 국력과 함께 세계속에 김치등 우수한 식문화를 적극 상품화해 나가야겠다. ◎김치는 세계에 한국 알리는 홍보물/중국음식처럼 고급화 전략 채택토록/데이비드 로트씨의 말/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1등 서기관 『한 나라의 문화는 그 나라 음식에 의해서 가장 잘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김치는 세계에 한국을 가장 쉽고 빠르게 알리는 수단인거죠』 한국생활 2년반만에 일주일에 두번쯤은 김치를 먹어야 직성이 풀리게 되었다는 데이비드 로트씨(31·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1등서기관).그는 한국과 이스라엘이 국교를 재개한 지난 92년 우리나라에 부임,한국을 배우고 이스라엘을 한국속에 심으려고 노력하는 육사출신 엘리트 외교관이다. 『물김치·열무김치 등을 많이 먹어 봤지만 역시 매운 배추김치가 최고』라는 로트씨는 『한국에서 2년쯤 살다보니까 김치말고도 김치볶음밥이나 「김치버거」등의 음식이 있다는 것도 알게돼 가끔 식당에서 주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로트씨는 『이스라엘에도 한국식당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라며 『한국김치를 이탈리아나 중국음식처럼 고급스럽게 만들어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추는 것도 세계화를 위한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한국음식점을 찾아 외식하기를 즐겨한다는 로트씨는 『세살배기 아들도 이제는 김치맛을 즐려 찾는다』며 입맛을 다셨다.
  • 인도양 5개국 회의/무역자유화 등 논의

    【시드니 AFP 연합】 호주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인도네시아 등을 포괄하는 인도양 무역 및 안보협력체 창설을 위한 회의를 오는 6월 개최할 것이라고 가레트 에반스 외무장관이 7일 밝혔다. 에반스 장관은 이날 데 클레르크 남아공부통령의 이같은 제안을 환영한다면서 호주서남부의 항구도시 퍼스에서 오는 6월 이에 관한 회의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에반스 장관과 데 클레르크 부통령은 이같은 역내 국가간의 협력이 기존의 동남아국가연합이나 아·태경제협력체에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 민자 당직인선/「차세대」 중위배치 지도자 양성 “시동”

    ◎“선진정당으로”… 청와대의 구상/특별위원장 등 다수 「점거」 예상/중진지분 고려 고위직 배치는 않을듯 민자당 당직개편에 세대교체바람이 예고되고 있다.그 바람이 얼마나 거셀지,영향권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헤아리기 어렵다.다만 당직임면권자인 김영삼대통령의 구상 밑바닥에 신세대 육성이라는 큰 명제가 깔려 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종전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새로운 인사틀이 이번 당직개편에서 선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이유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4일 『대통령은 새로 창당하는 기분으로 인사틀을 짤 것』이라면서 『그 기준은 나이나 경력,몇선이냐의 문제가 아닌 능력이 될것으로 안다』고 밝혔다.또 다른 관계자는 『대통령의 인사구상에 차세대의 육성이 하나의 중요한 명제로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하고 『다만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 재선이상에서 상당한 발탁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이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석하면 종전과는 달리 선수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에 따른 인사가 이루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다른 말로는 세대교체적인 성격의 인사가 상당부분 당직개편에 반영될 것임을 의미한다. 김대통령이,그것이 비록 전면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세대교체성 인사를 할 것이란 점은 여러차례 공개적으로 시사됐었다.김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시드니에서 세계화구상을 밝히면서 이 구상이 근본적으로 다음세대를 위한 것임을 강조한바 있다.김대통령은 나아가 지난달 25일 세계화구상의 실천방안을 밝히는 자리에서 『우리의 정당은 정책정당,당내민주화가 보장된 정당,차세대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정당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차세대 육성」 정당론을 갈파한 뒤 첫인사가 이번 민자당의 창당에 준하는 당직개편이고 보면 세대교체가 이번 인사의 한 중요한 성격이 되리란 점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청와대와 민자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간당직자 15명과 특별위원장 4명의 인선에서 특히 세대교체의 성격이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당 12역에도 세대교체적인 인사가 있을 것으로 점치고는 있다.그러나 현실적으로 선거를위해 중진실세들을 모두 포용해야하는 처지에서 고위당직에 「다음세대」를 고려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당헌과 당규를 독임제가 아닌 위원회제로 고친 것과 경선제의 도입 자체가 제도적으로 다음세대의 진출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위원회제는 독임제와 달리 위원회의 의견을 수렴,당론에 반영시켜야 하는 능력이 중요시 된다.연공서열제라기 보다는 능력우선적인 성격이 강한 편이다.또한 민주적 토론과 의견수렴에 익숙한 다음세대가 보다 능력을 발휘하기에 좋은 제도로서의 성격도 지녔다. 김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고려한다면 어떤 인물들이 「차세대육성」의 명분을 업고 중용될 것인지는 아직 점치기 어렵다.실제로는 대표에 어떤 인물을 앉혀야 하는가도 아직은 결정되지 않았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하마평에 들어가면 지나치게 많은 변수로 구체적인 이름을 끄집어 낼 수 없게 돼 있다. 대통령의 생각에 비교적 밝은 한 관계자는 『당을 새롭게 꾸미게 될 것』이라면서 『국회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당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없을 정도로 전면개편을 하게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그는 이어 옛날처럼 계파나 몇선이냐의 여부,지역고려등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능력과 자질,열성만을 고려한 총력체제가 나타날 것같다고 예견하고 있다.
  • 세계화의 실천과제(사설)

    어느 나라든 국가발전의 성패는 국가적 목표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협력,그리고 실천이 관건이다.대통령이나 정부의 국민 설득력과 지도력이 강조되는 것도 그러한 행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그런 점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자신의 세계화 국가목표에 대한 개념과 과제를 명확히 제시한 것은 국민적 동참과 협력을 넓혀 사회적 실천노력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11월 시드니선언 이후 일부 공무원들조차 세계화를 재작년의 국제경쟁력강화 목표와 혼동하는 메시지 전달과 수용의 문제는 이것으로 매듭지어질 것으로 기대된다.이제 국정목표 추진의 견인차 역할을 맡고있는 행정부 공무원을 비롯한 공직사회 전체가 확실한 방향을 체득하고 국가 사회 전체가 새로운 결의로 다시 뛰는 분위기조성에 앞장서 주기 바란다. 우리는 이번 세계화의 국가목표와 6개 분야의 실천과제야말로 과거와 같은 정권적 차원의 정치적 캐치프레이즈를 뛰어넘는 국가적 차원의 시대적 과제라는 올바른 국민적 인식이 필요함을 절감한다.그 내용에서 보듯이 세계화 과제는 세계중심국가건설의 국가발전전략이며 교육개혁과 정치의 선진화등 6개 분야방향은 이 시대의 국민여망과 발전의지를 담은 총체적 비전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따라서 이 목표야말로 정통성 시비의 대상이 되었던 역대정부가 하던 국민동원의 관주도 방식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김대통령이 연두회견과 연두보고에서 누차 설명해온 국가과제의 내용을 이번에 굳이 다시 체계화해서 설명한것도 어디까지나 설득을 통해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확대하려는 것이다.이제 문제는 그러한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한 사회적 수용의 자세다.자유로운 비판이나 다양한 의견은 민주사회의 원리지만 우리도 선진사회처럼 그것이 갈등과 소모를 조장하는 냉소주의로 흐르는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권위주의시대의 정부불신을 바탕으로한 고식적 반감이나 영합주의에 근거한 선동적 반대는 뿌리깊은 지역간,세대간 갈등구조위에 국력의 분산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동안 진지한 실천적 의지없이 국가적 과제마저 분파적이기주의의 대상으로 삼아 짐짓 세계화가 무엇이냐고 묻는 식으로 희화화 하려는 자세는 없었던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일부 정치권이 편가르기의 낡은 의식을 가지고 국가목표는 공직자가 아니면 친여세력이나 관심을 갖는 일쯤으로 치부하는 과거의 행태를 지양하고 활발한 정책경쟁을 통한 초당적 협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을 포함한 지도층이 뿌리깊은 저항과 반동의 타성에서 벗어나 참여와 협력의 새로운 행동규범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세계화의 지름길이라는 자각이 필요한 때다.
  • 세계화 추진 「실천강령」 제시/김대통령 「6대과제」 천명의 함축

    ◎“논쟁 벗고 행동을” 공직사회에 강한 주문/언론도 대상지목… 제구실 찾기 개입 시사 김영삼대통령이 25일 세계화구상에 대한 구체적 내용과 방향을 새로이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호주의 시드니에서 밝힌 뒤 이미 여러차례 개념을 풀이해보고 방향도 제시했던 것들이다.그럼에도 이날 세계화추진위원들을 만나 세계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입체적인 내용을 다시 한번 밝힌 것은 세계화에 관한 논쟁국면을 실천국면으로 전환하기 위한 고도의 정치행위로 볼 수 있다.특히 새마을운동이나 근대화운동처럼 세계화를 하나의 국민운동으로 끌고가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명의로 된 「국민교범」이 필요했고 그동안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쳐 집대성한 일종의 「세계화사전」을 내게 된 것이다. 김대통령은 잇단 세계화추진 의지의 천명에도 불구하고 일부 공직자 사이에 세계화에 대한 사명의식이 미흡하다고 판단,공직사회에 세계화에 관한 강한 소명의식을 불어넣을 필요성을 느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또한 최근 정쟁바람을 타고 국가의 생존전략으로 제시된 세계화전략의 의미가 퇴색조짐을 보인데서도 이런 재정리 작업을 통한 분위기 전환의 필요성을 느꼈던게 아닌가 싶다.이같은 세계화구상의 구체화는 결국 나라전체의 분위기를 생산적이고 일하는 쪽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을 담당했던 박세일정책기획수석이 이날 『이제 세계화가 더이상 논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는 뜻에서 세계화에 대한 추상적 논의를 끝내고 행동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강조한 사실이 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박수석은 특히 『김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시드니에 이어 연두회견에서 세계화구상을 밝혔음에도 불구,아직 세계화개념에 대한 견해의 불일치가 있는 것처럼 비치고 있음을 중시,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그는 『과거 1백년이 근대화 공업화 시대라면 향후 1백년은 세계화시대로 현재는 문명기적 전환기라 할수 있다』면서 『공직자는 물론 국민 모두가 이같은 시대사적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국가발전이라는 목표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세계화구상을 거듭 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이 이날 오늘의 시대를 혁명적 변화의 시대로 정의하면서 과거 1백년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으나 실패했음을 지적한 것은 그의 시대인식과 세계화전략에 대한 집념을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1백1년전의 갑오경장은 개화파와 수구파의 싸움으로 3년만에 끝났고 결국 우리는 개방과 공업화를 통한 「근대국가」를 세우는 작업에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21세기로 넘어가는 현재를 갑오경장이 있었던 시대와 비유함으로서 국민,특히 정치권에 강한 메시지를 주었다. 이를 테면 현재의 민자당내 김종필전대표를 둘러싼 보수파의 움직임이나 정책대안 없이 소모전을 되풀이 하는 야당이 갑오경장을 실패로 만든 수구파의 움직임과 같은 역사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이의 개선을 정치권에 촉구한 것이다.김대통령이 정치와 언론을 3번째로 세계화가 필요한 분야로 지적하면서 여러가지 발전방향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김대통령은 야당에는 정책으로 경쟁할 것을,이른바 「3김구도」에 대해서는 차세대 정치인의 양성과 당내 민주화를 들어 이같은 구도가 청산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언론에 대해서도 「정론을 펴는 공기」가 되어야 한다고 요청함으로써 권력투쟁에 천착하는 언론의 보도태도를 간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언론,특히 신문의 불공정거래(내부 불공정거래 포함)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조사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김대통령이 직접 언론을 세계화의 대상으로 거론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대통령으로서 단순히 세계화를 촉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부가 가진 합법적 방법으로 언론의 공기화를 유도할 것이란 점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지난해말 박수석에게 세계화에 대한 구상과 견해를 피력한 뒤 이를 정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박수석과 전성철정책1비서관등이 중심이 돼 마련한 이 교범은 앞으로 남은 김대통령의 임기동안 국정운영의 중심지표이자 이념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김대통령이 교육의 세계화를 이야기하면서 자율과 경쟁을 촉구하고,교육부가 고교입시 부활문제등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표한 것에서 이러한 세계화구상과 구체적 정부정책 사이의 상관관계가 입증되고 있다. 앞으로 구체적 정책을 일관할 단어는 김대통령이 밝힌대로 「생산성」과 「유연성」이 될 것이다.
  • 지구촌 35개시 기상정보제공/기상청,23일부터 비·안개등 8개항목

    기상청은 23일부터 세계 35개 주요도시의 기상정보를 매일 제공한다. 기상청은 20일 『정부의 세계화 시책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각국 주요도시의 기상정보를 매일 하오5시에 서비스한다』고 밝히고 이 기상정보는 특히 수출입업무를 하는 업체들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상정보가 제공되는 도시는 뉴욕·도쿄·런던·파리·베를린·로마·모스크바·홍콩 등을 비롯,우리나라와 교류가 많은 도시 대부분이다. 예보내용은 흐림·구름많음·구름조금·맑음·비·소나기·안개비·시정 3㎞이내 안개 등 8개 항목으로 분류된다. 문의전화는 기상청 예보관리과 (02)722­7391. 정보제공 대상 도시는 다음과 같다. 후쿠오카·도쿄·오사카·베이징·상해·방콕·다카·호치민·홍콩·자카르타·콸라룸푸르·마닐라·싱가포르·타이베이·괌·사이판·봄베이·시드니·토론토·오타와·앵커리지·호놀룰루·로스앤젤레스·시카고·워싱턴·뉴욕·샌프란시스코·런던·뮌헨·파리·취리히·암스테르담·코펜하겐·모스크바·하바로프스크.
  • 스위스 인력정보단체/세계 118개도시비교/서울 살기좋은도시 67위

    ◎제네바 1위·싱가포르 9위·도쿄 28위/북경·상해·광주 열악한 도시 10위안에 세계 1백18개 도시의 삶의 질을 비교·평가한 결과 스위스의 호반도시 제네바가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나타났다. 제네바에 있는 국제적인 인력 정보 제공단체인 국제 자원협력그룹이 17일 발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네바에 이어 밴쿠버,빈,토론토,룩셈부르크 등이 삶의 질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뉴욕을 기준으로 1백점으로 잡고 다른 도시들을 비교한 점수로 순위를 매긴 결과,제네바가 1백6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테러 위협이 상존하는 알제가 43.53으로 꼴찌를,그리고 서울은 85.52로 67위를 기록했다. 이번 조사는 정치·사회적 환경,문화,건강,교육,공공서비스,오락 시설,소비재 수준과 물가,주택,자연환경 등 42개 항목이 중점 비교 평가됐다. 미국 도시들은 높은 범죄율로 인해 상위권에서 밀려났다.보스턴이 미국 도시 중 최상위인 30위에 올랐고 샌프란시스코가 31위,시애틀이 33위,뉴욕이 44위를 차지했다. 중국과 옛소련 그리고 아프리카의 도시들은 대부분 하위권에 머물렀다.특히 가장 열악한 도시 10위권안에는 중국의 북경,상해,광주가 들어 있는데 이들 도시는 소비재 수준이 낮고 의료 수준이 낙후돼 있으며 공해,주택,공공 서비스 분야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도시들은 서유럽과 동유럽간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11개 서유럽 도시가 20위 안에 들어 있는 반면 동유럽 지역은 옛동독 지역의 라이프치히가 56위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고 부다페스트가 60위,프라하가 69위로 그 뒤를 이었다.옛소련지역은 이보다 더 심한 차이를 보여 모스크바,상트 페테르부르크,키예프가 모두 최하위권에 속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싱가포르가 9위로 가장 높이 평가 됐고 그 뒤를 오클랜드와 시드니가 차지했다.도쿄는 아시아에서 8위를 차지했고 전체로는 28위에 머물렀다.
  • 주유엔 대사 박수길씨/외교안보 연구원장 이정빈씨

    정부는 11일 주유엔대사에 박수길외교안보연구원장을,외교안보연구원장에 이정빈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을 임명하는등 본부 간부 및 공관에 대한 인사를 발표했다.인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시드니총영사 민병규 ▲주미공사 정의용 ▲외교안보연구원연구위원 이창범 ▲2002 월드컴축구유치위원회 사무총장 송영식 ▲장관특별보좌관겸 통상담당대사 김삼훈 ▲의전장직무대리 문동석 ▲아시아·태평양국장 김하중 ▲통상국장 장기호 ▲구주국장 한태규 ▲공보관 유광석◎국제대형사건 처리 역량발군/박수길 주유엔대사 훤칠한키에 구수한 화술이 호감을 주는 보스형. 61년에 외무부에 들어온 국제법전문가. 제1차관보시절 김만철일가 망명사건,도재승서기관피랍, KAL기 폭파사건 등 국제적인 대형사건처리에 외교역량을 발휘. 제네바대사 시절에는 쌀시장개방소신을 밝히다가소환되기도 했다. ▲경북 경산·62세 ▲고려대 법학과졸 ▲외무부 조약국장 ▲외무부1차관보 ▲주제네바대사 ▲외교안보연구원 ◎6공때 북방외교 적극수행/이정빈 외교안보위원장 온유한성품으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전형적 직업외교관.업무추진에서는 큰 줄기와 방향을 잡은 뒤 후배들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후배들의 신망이높은 편. 1차관보로 재직시에는 한·소수교에 깊숙히 참여하는 등 6공의 북방외교를 적극 수행 ▲전남 영광·58세 ▲서울대 행정학과졸 ▲외무부 중동국장 ▲대통령정무비서관 ▲주스웨덴 대사 ▲외무부 1차관보 ▲주인도 대사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세계화/국제화/김 대통령의 정의

    ◎세계화/“정치·경제 등 총망라”… 「세계일류」 지향/국제화/“국가­국가사이” 개념… 경제적측면 의미 김영삼대통령은 28일 국제화와 세계화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세계화작업의 본격추진을 앞두고 스스로 개념을 정리한 것이다.이날 낮 출입기자단과의 송년오찬 자리에서다. 김대통령은 『내말이 꼭 맞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두개념 사이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그는 우선 국제화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개념이고,주로 경제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에 비해 세계화는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체육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것이고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는 전략의 개념이라고 정의를 했다. 그는 세계화로 나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하고는 전세계가 같이 개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세계와 같이 호흡하자는 것이 세계화라고도 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세계화의 구체적 방향에 대해 두가지의 독특한 해석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김대통령은 우선 『「내것」이 있어야 세계화를 할수 있다』고 말했다.그는 『내것이 있어야 세계화하는 것이지 남의 것을 모방이나 해서는 안된다』면서 『한국적인 것이 있어야 한국이 세계로 뻗쳐 나간다』고 강조했다.김대통령의 이말은 세계화 방법의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우리 것을 지키고 우리 것을 발전시켜 이를 세계문화화하자는 한국중심의 세계화를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세계화는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란 점을 강조한 부분이다.김대통령은 『국제화는 19세기,20세기를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었고 세계화는 21세기를 향해 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그러면서 그는 『시드니에서 세계화구상을 발표할 당시 차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던 것이 이런 뜻』이라고 부연했다. 김대통령은 세계화시대에 살아가는 방편으로 「세계일류」를 꼽았다.세계일류가 되어있지 않으면 절대 안된다고 강조했다.그러나 김대통령은 예술분야나 올림픽등에서 우리가 얼마나 우수한 인재를 많이 배출하고 있느냐면서 세계화속에서 우리국민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 비쳤다. 전체적으로 이날 간담회에서 김대통령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을 두번 세번 강조했다.모든게 잘 풀려 기분이 좋은듯 보였다. 국내문제와 관련,개각에 국민들이 높은 지지를 보여준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또 수출이 올연말 9백50억달러에 이르고 경상수지적자가 20억달러정도 나지만 우리의 경제규모에 비춰 아무런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자랑했다.경제성장은 8%에 물가는 5.5∼5.6%선에서 지켜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김대통령은 내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겠다는 국가원수가 너무 많아 고민이라고 즐거운 비명도 질렀다.그러나 다 받아들일 수는 없고 우리가 만나서 도움이 되는 사람을 받아야하므로 「짜게」계획을 짜고 있다고 했다.우리나라에 상주하는 외국공관이 1백45개국이나 된다면서 그 정도로 외국공관이 많은 나라가 몇나라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세계화를 본격 추진할 새해를 앞두고 김대통령은 출입기자들에게 넘치는 자신감과 의욕을 과시했다.자신의 자신감과 의욕을 국민에게 알려주도록 기자들에게 점심을 낸 듯했다.
  • 세계화와 노상격투/황성돈(일요일 아침에)

    대통령의 말은 정말 대단한 힘을 지닌 것 같다.호주 시드니에서 던진 「세계화」라는 말 한마디로 지금 정부안은 물론이고 우리사회 온 구석구석이 이 「세계화」라는 말로 언산언해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그 말을 던진 분의 격이 높아서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이 보다는 그만큼 상당수의 국민들이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그런데 막상 우리가 사는 주위를 돌아다 보면 정말 그 세계화를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꽤나 멀게만 느껴진다.그중의 하나가 바로 노상격투 문제다.그것도 벌건 대낮에…. 우리나라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이미 7백만대를 넘어섰다.세계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몇 안되는 나라에 우리나라가 든다는 사실과 함께 이 통계는 정말이지 우리도 이제 자동차에 관한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려준다.정말 기쁜 일이고 우리의 어깨가 으쓱거릴 만도 한 일이다.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하드웨어 수준에 걸맞는 사회적·행정적 소프트웨어의 낙후로 인해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이 전혀 세계적이라고 할수 없는 행태를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가 7백만대 쯤 되면 현재의 우리나라 교통체계와 도로사정으로는 아무리 조심운전을 한다고 해도 접촉사고 정도는 어느 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는 상황이다.그런데 일단 접촉사고가 났다하면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나 당한 사람 모두 목소리 높이기 일쑤이고,격한 감정에 말 한마디라도 상대방 자존심을 건드렸다 싶으면 차사고 문제 그 자체는 뒷전으로 밀리고,욕설에 멱살잡고,주먹다짐,발길질까지 오가는 것을 우리는 흔치 않게 목격하곤 한다.상황이 이쯤되고 보니 여성운전자들에게 있어 접촉사고는 본인이 사고를 낸 경우이든 당한 경우이든 보통 난감한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세계 여러나라들 가운데 적어도 제대로 된 나라 쳐놓고 우리나라 처럼 대로상에서 그것도 벌건 대낮에 멱살잡고 주먹질하는 광경을 흔히 볼수 있는 나라는 단 한나라도 없다.심지어 우리보다 경제수준이 처진다는 나라들을 방문해 보더라도 필자의 경험으로는 한번도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대로상에서 치고받고 하는 광경을 보며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한국의 국제화·세계화를 운운하고 국가경쟁력 제고와 한국방문의 해를 다지는 이 마당에 실로 부끄럽고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외국에서도 차사고는 난다.그런데 사고 뒤의 처리과정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한 예로 미국의 경우를 보자.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면 사고를 낸 사람이나 당한 사람 모두 잠시 허망한 표정을 지은 다음 서로 자신의 전화번호와 보험회사 전화번호를 교환한 뒤 가볍게 헤어지거나,경찰을 불러 현장확인서를 받아 차후에 보험회사에 제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이 우리와 그들을 이렇게 다르게 만들었을까.태권도가 국기인 만큼 우리의 국민성이 그들 보다 호전적이기 때문에,아니다.충분하고도 편리한 차후 보상이 담보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자동차 보험제도 때문에,일리 있는 얘기다.그러나 이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그것은 바로 폭력에 관한 한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엄정하고 준엄한 법집행 기강이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또한 쉽게 법원에 찾아가 해결할수 없도록되어 있는 높은 법원문턱도 법 보다는 주먹과 목소리에 의한 현장즉결을 더 선호케 하는 이유가 된다. 미국에서 만일 접촉사고의 당사자들 간에 추호의 폭력이 생겼다가는 폭력을 휘두른 사람은 그대로 법원에 고소당하게 되고,차사고 처리시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도록 되어있다.그리고 사고뒤의 실질적 싸움은 양 보험회사의 변호사들 몫이다.담쟁이 덩굴이 자기집에 넘어와 시야를 불편하게 했다고 법원에 찾아가는 것이 바로 미국의 풍토다.이런 풍토에서 주먹다짐은 그야말로 「상황 끝」이다.우리 보다 훨씬 낮은 법원의 문턱이 바로 이런 풍토를 만든 것이다. 펜티엄급 컴퓨터를 노상격투 처럼 XT급 소프트웨어로 돌리고 앉아 있는 한 우리의 세계화는 정말이지 「말 잔치」로 끝날수 밖에 없다.사회적·행정적 소프트웨어의 상위화(upgrade)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한 때가 되었다.
  •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장성준(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7)

    ◎바다 향해 열린 조개… 호의 자신감 표상/2천6백명 수용 콘서트 홀 등 대형 홀5개/국제현상공모 설계서 완공까지 18년… 세계적 관광명소로 호주는 구대륙에 대해 콤플렉스를 지녀왔다.창조적 문화유산의 결핍과 출생의 정통성 때문이다.석기시대를 사는 30만 원주민의 땅에서 1770년 영국식민지가 된 호주대륙은 죄수 유형지,이민 개척지를 거쳐 근세에야 신생독립을 이루었다(1926년).그들은 자신감을 쌓아가면서 서서히 콤플렉스를 해소하여 왔다.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건설(1955∼1973년)은 이 연장선상에 서 있으며,호주인의 문화적 자신감을 창조한 대표적 예에 속한다. 현재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호주를 연상케 하는 상징으로 전세계에 통한다.태평양 시드니만에 돌출한 갑 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열려진 조개처럼 하얗게 빛난다.조개지붕은 간결하고도 동적인 형태메시지를 던지며 어느 위치에서도 아름답다.특히 주변 경관과 극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대중에게 쉽게 어필한다. 조개지붕 밑은 5개의 홀이 있어 각기 심포니 콘서트·오페라·실내악·연극전용으로 되어 있다.그밖에 전시홀,식당 3개,바 6개,도서관,분장실 60개 등이 있다.건물 연면적은 실효공간만도 1만4천평에 이른다.독특한 이 건물의 창조에는 한 건축가의 영감과 이의 구현을 가능케 한 구조기사의 솜씨가 있다.물론 건축주인 정치가와 시당국의 존재도 간과할 수 없다.이 건물 이후 유사한 예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않다. 건물은 호주 주정부가 1955년 시드니시에 국립 오페라하우스 건설을 위한 국제현상설계를 공모함으로써 시작되었다.시드니는 영국 유형수가 처음 하선하여 오늘의 호주를 이루게 한 역사적 장소인데,이 항구의 해안 포대가 부지로 선택되었다. ○덴마크건축가 설계 당선된 설계안은 뜻밖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덴마크인 건축가 요른 웃존이 제출한 것이었다.38세인 그는 시영주택 몇십호의 설계경험뿐이었으나 우아하고 도전적인 설계안으로 다른 안들을 압도하였다.도면은 개념도로 분위기 정도만 표현된 스케치였으며 이 점에서 논란이 있었다.그러나 4인 심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이 도면을검토하면 할수록 위대한 오페라하우스가 될 가능성을 보인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설계안의 조개지붕은 경이로운만큼 까다로움도 컸다.만약 다른 단순한 구조를 택했다면 비용과 수년에 걸친 논쟁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심사위원회가 선정한 웃존의 설계를 받아들이고 그의 제안에 따라 덴마크계 영국인 오버 아럽을 구조기사로 지명했다.당선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각종 실험과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3년이 더 걸려 실시설계가 완료되었다. 건설은 1959년부터 시빌 시빅사가 맡아 3단계로 진행하였다. 1단계는 당초 해안포대로 사용되던 건물과 전차차고를 철거하고 조그마한 바윗덩이던 부지를 확대하여 콘크리트 대지를 구축하고 본체 공사를 하는 것이었다.이 기간에도 설계도의 검토와 수정은 계속되었고 끝무렵에야 지붕의 구조와 재료를 최종적으로 확정할 수 있었다. 2단계는 건물 지붕이었다.이 부분은 강한 형태요소로서 구조적으로 어렵고 창의성을 요하는 부분이었다.조개지붕은 서로 기대어 세웠으며 조립식 콘크리트판에 타일을 붙여 마감하고 대형 유리벽을 도입하였다. 마지막으로 내부공사가 본격화되면서 마침 구성된 새 행정부는 시공방식과 하청업체 선정 등에 있어서 웃존과 의견을 달리하고 있었다.웃존은 1966년2월에 돌연히 오페라하우스의 건축가직을 사퇴하고 호주를 떠나고 말았으며 이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호주인 설계팀이 작업을 승계하였고 건물의 성격에 약간의 변경이 있었다.가장 큰 홀(2천6백90석)을 오페라와 콘서트 겸용에서 콘서트 전용으로 바꾸었는데 음향실험 결과 겸용이 불가하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그리고 두번째 규모를 오페라홀(1천5백47석)로 배정하였다.그 결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복잡한 무대기구와 큰 오케스트라피트를 필요로 하는 그랜드오페라는 공연할 수 없거나 축소하여야 했다.이 때문에 비평자들은 이 건물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변경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이들은 오페라하우스라는 단어가 잘못된 것이라면서 당초의 현상설계요강이 오페라를 주기능으로 보지 않았음을 지적하고있다.실제로 콘서트가 더 인기 있었으며 오페라홀을 크게 하여 보았자 관중이 적어 빈 좌석만 많을 것이라는 걱정과 함께 좌석수를 더 줄여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공사비 1억불 넘어 이렇듯 많은 논쟁을 거쳐 건물이 1973년에 완공되었을때 공사비는 당초예상 7백만달러를 훨씬 초과한 1억2백만달러가 소요되었다.비용 대부분은 복권판매수익으로 충당되었다.주정부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고 이제부터는 극적인 새 건물에 쏟아지는 시민의 사랑과 국제적 칭송을 즐기기 시작하였다.어느덧 건물은 공연센터로서보다는 오히려 시드니항의 진주와 같은 경관명소로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건물은 또 다시 이목을 모으고 있었다.1989년에 이르러 의회에서는 긴급 보수비용 8천6백만달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발표된 것이다.지붕 타일이 떨어지고 빗물이 새고 있었으며,창과 벽도 그러하였다.콘크리트조립판 틈을 메운 실런트는 20년 수명이 기대되었으나 불과 10년만에 퇴락되었다.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호주의 국보건물은 비용이 얼마가 들지간에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했고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1년내내 각종 행사 현재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관리와 운영은 별도 법인체가 담당한다.시설의 주된 임차자는 호주오페라단·호주방송단이며 이외에도 많은 임의단체가 사용한다.법인체는 자체 기획의 무료 또는 상업적 공연도 하는데 임차자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하여 낮공연을 주로 한다.오페라하우스의 안팎에서는 1년 내내 축제·파티·음악회·민속행사·불꽃놀이 등이 열린다. 호주정부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추구한 것은 분명하다.그들을 처음부터 호주를 상징할 세계적 건물을 원했다.설계와 건설에서 보여진 드라마틱한 과정은 이 꿈을 성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건축가의 예지와 함께 설계심사위원의 안목과 건축주의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내고 있다.이 건물은 호주인으로 하여금 문화적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이 점에서 우리는 문화적 상징이란 현재에서도 창조되며 의외로 쉽게 사람을 설득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본다.
  • 수도료 매년 10% 인상/환경처/99년까지 현재의 2배로 올려

    오는 99년까지 가정용 수도요금이 현재보다 2배정도 인상되며 적정사용량을 초과할 경우 높은 누진율이 적용된다. 환경처는 13일 수돗물 사용량의 절감을 위해 현재 생산원가의 55%수준인 t당 3백9원의 가정용 수도요금을 매년 10% 정도씩 올려 99년에는 생산원가의 1백%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현행 4단계로 돼있는 요금체계를 월사용량에 따라 10t이하,11∼20t,21∼30t,31∼40t,41∼50t,51t 이상 등 6단계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특히 4∼5인 가족기준 적정사용량인 20t을 초과하는 사용량에 대해서는 요금수준을 생산원가보다 높게 책정하고 단계별로 누진율을 크게 확대키로 했다. 그러나 20t까지는 연차적으로 상향조정하되 99년 이후에도 생산원가 이하수준으로 유지할 방침이다. 환경처는 99년까지 가정용 수돗물 사용량의 20%를 절감한다는 목표아래 구체적인 개선안을 마련,내무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95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방침이다. 우리나라의 전국평균 수도요금은 t당 2백38원으로 생산원가의 77% 수준으로 미국 워싱턴(2천3백10원),독일 본(7백24원),호주 시드니(9백24원),프랑스 파리(5백74원)등 주요도시에 비해 크게 낮다. 환경처 관계자는 『수도요금의 인상으로 하루 1백16만t의 수돗물이 절약되며 연간 1천3백억원의 생산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정부는 이를 통해 99년까지 가정용 수돗물 사용량의 20% 절감을 유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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